구역공과
TOTAL : 1473 PAGE : 95/105
2006-12-22
제51과예수 그리스도
행 4:12
읽을말씀 : 행 4:12 | 외울말씀 : 행 4:12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깨달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를 힘입음으로 삶에 항상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람의 이름은 단지 몇 음절로 구성된 문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면 단지 그 이름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과 성품, 언행과 분위기 등 그 사람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함께 떠오르지요. 여러분은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어떠한 마음과 생각이 드시는지요?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세 가지로 말씀드릴 때에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새록새록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
1)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순간부터 성장 과정과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의 모든 것이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인생들의 어려움을 대신 지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이신 것도 인류의 구원자로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지요.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짐승과 다름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흠도 점도 없는 깨끗한 보혈을 흘리셨으며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죽으셨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죽임당하셨기 때문에 사망에 매여 계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완전한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이처럼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고 입술로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혹 현실의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할 때 힘들고 절망하며 낙심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잊었거나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를 풀어 주심으로 영원한 사망의 고통에서 건져내신 구원자이심을 믿는다면 현실의 문제로 인한 어려움에서도 능히 여러분을 건져 주실 수 있음을 믿음으로 다시금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승리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며 우리에게는 "위로자"가 되십니다
요한일서 2:1-2에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2:5-6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했지요.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로서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고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속전으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주셨지요.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의로운 행동을 중심에서 믿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간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살기 위해 하나님께 능력을 구할 때 주님께서도 이 영혼을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 대신 간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 영혼이 중심에서 죄를 회개하오니 보혈의 능력으로 모든 죄를 다 씻었나이다. 저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고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내려 주옵소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요 중보가 되십니다.
이에 히브리서 4: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했지요. 물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으로, 로마서 8:26에 보면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모두 여러분의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여러분 자신보다 더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혹 여러분이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해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심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5을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도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열심히 붙좇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하셨고, 오히려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애통하는 자, 핍박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곧 천국이 저희 것이며 위로를 받을 것이고 또한 천국의 상급이 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자들의 압제로 인해 눌려 있던 사람들과 가난으로 인해 궁핍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한줄기 큰 소망의 빛으로 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기에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의 위로를 바라면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말씀으로만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참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도록 상황을 바꿔 주시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요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위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의 이름이요, 어떤 사람에게는 소망의 이름이며, 부요의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응답자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4:13-14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들으심으로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케 해 주십니다.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문제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이름의 권세로 인해 어둠이 물러가고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 권세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알아야 능력이 나타나고 원수 마귀 사단도 무서워서 물러가지요.
비유를 들자면, 만일 경찰과 도둑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자신이 도둑인 것을 모르는 경찰이라면 도둑은 그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연하게 행동하고 도망가려 하지도 않지요. 그러나 자신이 도둑인 것을 알고 있는 경찰이 나타나면 잡힐 것이 무서워 재빨리 도망치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물리칠 때의 능력이 전혀 다르며 기도의 응답도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란 마태복음 1:21에 나온 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서 '구원한 자'라는 완성형이 아니라, 앞으로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자요, 중보자인 구세주의 직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구세주의 자격을 획득한 사람을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요,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언제 구세주가 되셨습니까?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 깨뜨리고 부활하셨을 때 우리의 구원자,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예수이고,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말로 하면 '구세주' 또는 줄여서 '주'라 하고 여기에 존칭어를 붙여서 '주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사도들도 주님의 부활 승천 후에 기도하거나 말씀을 증거할 때 '예수님'이라 하지 않고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였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행 3:6).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반드시 '주' 혹은 '그리스도'를 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요 16:23).
그런데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 해도 의심하며 구하거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할 때는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약 1:6, 4:3). 따라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되 온전한 믿음으로 의심 없이 기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구한 모든 것을 응답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자요, 대언자시며 위로자가 되시고 응답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로 인해 여러분들의 삶에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풍성하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깨달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를 힘입음으로 삶에 항상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람의 이름은 단지 몇 음절로 구성된 문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면 단지 그 이름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과 성품, 언행과 분위기 등 그 사람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함께 떠오르지요. 여러분은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어떠한 마음과 생각이 드시는지요?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세 가지로 말씀드릴 때에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새록새록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
1)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순간부터 성장 과정과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의 모든 것이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인생들의 어려움을 대신 지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이신 것도 인류의 구원자로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지요.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짐승과 다름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흠도 점도 없는 깨끗한 보혈을 흘리셨으며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죽으셨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죽임당하셨기 때문에 사망에 매여 계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완전한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이처럼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고 입술로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혹 현실의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할 때 힘들고 절망하며 낙심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잊었거나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를 풀어 주심으로 영원한 사망의 고통에서 건져내신 구원자이심을 믿는다면 현실의 문제로 인한 어려움에서도 능히 여러분을 건져 주실 수 있음을 믿음으로 다시금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승리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며 우리에게는 "위로자"가 되십니다
요한일서 2:1-2에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2:5-6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했지요.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로서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고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속전으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주셨지요.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의로운 행동을 중심에서 믿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간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살기 위해 하나님께 능력을 구할 때 주님께서도 이 영혼을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 대신 간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 영혼이 중심에서 죄를 회개하오니 보혈의 능력으로 모든 죄를 다 씻었나이다. 저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고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내려 주옵소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요 중보가 되십니다.
이에 히브리서 4: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했지요. 물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으로, 로마서 8:26에 보면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모두 여러분의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여러분 자신보다 더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혹 여러분이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해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심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5을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도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열심히 붙좇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하셨고, 오히려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애통하는 자, 핍박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곧 천국이 저희 것이며 위로를 받을 것이고 또한 천국의 상급이 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자들의 압제로 인해 눌려 있던 사람들과 가난으로 인해 궁핍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한줄기 큰 소망의 빛으로 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기에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의 위로를 바라면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말씀으로만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참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도록 상황을 바꿔 주시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요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위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의 이름이요, 어떤 사람에게는 소망의 이름이며, 부요의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응답자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4:13-14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들으심으로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케 해 주십니다.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문제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이름의 권세로 인해 어둠이 물러가고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 권세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알아야 능력이 나타나고 원수 마귀 사단도 무서워서 물러가지요.
비유를 들자면, 만일 경찰과 도둑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자신이 도둑인 것을 모르는 경찰이라면 도둑은 그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연하게 행동하고 도망가려 하지도 않지요. 그러나 자신이 도둑인 것을 알고 있는 경찰이 나타나면 잡힐 것이 무서워 재빨리 도망치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물리칠 때의 능력이 전혀 다르며 기도의 응답도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란 마태복음 1:21에 나온 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서 '구원한 자'라는 완성형이 아니라, 앞으로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자요, 중보자인 구세주의 직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구세주의 자격을 획득한 사람을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요,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언제 구세주가 되셨습니까?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 깨뜨리고 부활하셨을 때 우리의 구원자,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예수이고,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말로 하면 '구세주' 또는 줄여서 '주'라 하고 여기에 존칭어를 붙여서 '주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사도들도 주님의 부활 승천 후에 기도하거나 말씀을 증거할 때 '예수님'이라 하지 않고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였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행 3:6).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반드시 '주' 혹은 '그리스도'를 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요 16:23).
그런데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 해도 의심하며 구하거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할 때는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약 1:6, 4:3). 따라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되 온전한 믿음으로 의심 없이 기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구한 모든 것을 응답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자요, 대언자시며 위로자가 되시고 응답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로 인해 여러분들의 삶에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풍성하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2-15
제50과믿음으로 바라보자
히 11:1-3
읽을말씀 : 히 11:1-3 | 외울말씀 : 히 11:1-3
교육목표 :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군함으로 신속히 영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크신 영광과 축복들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믿음으로 바라보라" 말씀하셨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을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의 힘과 지혜로 불가능한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너무나 쉽고 신속하게 해결되는 것을 무수히 보여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러한 증거들과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증거들을 보여 주시며 믿음으로 바라보라고 이끄시기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따라갈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하시지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믿음의 훈련들을 통해 여러분 스스로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음으로 바라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힘찬 믿음의 행진을 해야 하겠습니다.
1. 믿음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육적인 믿음이 아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육적인 믿음은 유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요,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지요. 예를 들어, 나무로 책상을 만들었다 하는, 바로 유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 육적인 믿음이요, 내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는 지식적인 믿음입니다. 이 육적인 믿음으로는 사람의 생각과 틀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릴 수가 없으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요,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이지요. 이러한 산 믿음, 영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본 교회에 주신 비전들을 하나하나 성취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2천 년도부터 해외 연합대성회들을 여러 차례 이루었는데 단지 육적인 믿음만 가졌다면 어느 성회도 그처럼 크게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장 넉넉한 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회를 개최할 현지 상황도 좋지 않았지요. 성회 개최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사람들을 미혹하는가 하면 테러의 위협도 있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순종하여 발을 내딛으면 방해가 큰 만큼 하나님의 영광도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진실 자체이기에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힘이 있으며 어떤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하는 놀라운 능력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현실을 보니 "어렵겠다, 못하겠다." 생각한다면 이는 육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만 알고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이러한 죽은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의 행함을 내보일 수 있는 산 믿음, 바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현실적인 사람의 생각으로는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것처럼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행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질지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의 손을 펴서 받아 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기 때문에 그처럼 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이루어야 할 많은 일들 앞에서도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민 14:8-9) 출애굽 1세대 중에서는 이처럼 믿음으로 고백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믿음의 고백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의 주도적인 흐름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반드시 이뤄지지만 육신의 생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는 데 참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제는 영이 아니고서는 아니 된다 강조했던 말씀대로 영의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온전한 영의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절대로 포기라는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포기하는 이유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뛰어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계가 있는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장애물이 장애물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한계를 짓지도 않기에 불가능이라는 것도 포기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본자세이지요.
그런데 수년 전 여러분이 가나안 성전을 이루고자 했을 때 왜 그것을 취하지 못했을까요? 애쓰고 힘써서 취해 보고자 하였으나 매번 필요한 만큼 재정이 준비되지 않자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왔고 결국은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당시 취하려던 곳은 가나안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곳이 아니었지만 그러한 과정을 허락하신 것은 여러분들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목자의 믿음으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믿음으로 가나안 성전을 취해 보도록 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믿음이 없이는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던 것이지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때에도 장애물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기브온에서는 다섯 나라 연합군과 싸워야 했고 가나안 땅의 동 서편과 북방을 취할 때에도 그곳의 연합한 이방 군대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 적군의 수가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 했지요.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여호수아에게는 두려움이나 낙심이 아니라 오직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그러니 항상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을 친히 이 제단을 통해서 나타내 행해 보여 주시는 것을 여러분들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기만 하심으로 우리가 이루게 될 과업을 온전히 이루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3) 자신의 성결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 믿음의 1단계에서 지금의 믿음으로 성장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믿고 바라봐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영으로 일구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와질 것을 기대하시며 바라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자신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한 자녀로 나와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도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리고 마음의 심비에 새겨서 행함으로 나타내 보일 때 어느 순간 깊숙이 영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육의 모습이 발견된다 하여 낙심하며 포기하는 사람이라면 영적인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결도 영적인 믿음으로 바라본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이 변함없으며 흔들림이 없습니다. 성결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비진리와 육의 마음을 발견하면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러한 축복도 성결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영의 흐름을 타고 어찌하든 영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성령도 도우시고 늘 깨우침을 주시는 것이지요.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능히 성결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들은 영을 사모하여 어찌하든 영으로 들어가기 원하시지요? 그러면 많은 일들이 믿음으로 가능한 것처럼 성결도 능히 이룰 수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변함없이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목자가 이끌어서가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가 영의 흐름을 주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지되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포기라는 것이 없으며 자신의 성결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크신 영광과 놀라운 축복들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군함으로 신속히 영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크신 영광과 축복들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믿음으로 바라보라" 말씀하셨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을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의 힘과 지혜로 불가능한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너무나 쉽고 신속하게 해결되는 것을 무수히 보여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러한 증거들과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증거들을 보여 주시며 믿음으로 바라보라고 이끄시기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따라갈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하시지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믿음의 훈련들을 통해 여러분 스스로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음으로 바라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힘찬 믿음의 행진을 해야 하겠습니다.
1. 믿음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육적인 믿음이 아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육적인 믿음은 유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요,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지요. 예를 들어, 나무로 책상을 만들었다 하는, 바로 유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 육적인 믿음이요, 내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는 지식적인 믿음입니다. 이 육적인 믿음으로는 사람의 생각과 틀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릴 수가 없으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요,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이지요. 이러한 산 믿음, 영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본 교회에 주신 비전들을 하나하나 성취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2천 년도부터 해외 연합대성회들을 여러 차례 이루었는데 단지 육적인 믿음만 가졌다면 어느 성회도 그처럼 크게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장 넉넉한 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회를 개최할 현지 상황도 좋지 않았지요. 성회 개최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사람들을 미혹하는가 하면 테러의 위협도 있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순종하여 발을 내딛으면 방해가 큰 만큼 하나님의 영광도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진실 자체이기에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힘이 있으며 어떤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하는 놀라운 능력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현실을 보니 "어렵겠다, 못하겠다." 생각한다면 이는 육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만 알고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이러한 죽은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의 행함을 내보일 수 있는 산 믿음, 바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현실적인 사람의 생각으로는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것처럼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행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질지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의 손을 펴서 받아 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기 때문에 그처럼 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이루어야 할 많은 일들 앞에서도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민 14:8-9) 출애굽 1세대 중에서는 이처럼 믿음으로 고백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믿음의 고백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의 주도적인 흐름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반드시 이뤄지지만 육신의 생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는 데 참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제는 영이 아니고서는 아니 된다 강조했던 말씀대로 영의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온전한 영의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절대로 포기라는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포기하는 이유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뛰어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계가 있는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장애물이 장애물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한계를 짓지도 않기에 불가능이라는 것도 포기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본자세이지요.
그런데 수년 전 여러분이 가나안 성전을 이루고자 했을 때 왜 그것을 취하지 못했을까요? 애쓰고 힘써서 취해 보고자 하였으나 매번 필요한 만큼 재정이 준비되지 않자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왔고 결국은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당시 취하려던 곳은 가나안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곳이 아니었지만 그러한 과정을 허락하신 것은 여러분들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목자의 믿음으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믿음으로 가나안 성전을 취해 보도록 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믿음이 없이는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던 것이지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때에도 장애물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기브온에서는 다섯 나라 연합군과 싸워야 했고 가나안 땅의 동 서편과 북방을 취할 때에도 그곳의 연합한 이방 군대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 적군의 수가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 했지요.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여호수아에게는 두려움이나 낙심이 아니라 오직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그러니 항상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을 친히 이 제단을 통해서 나타내 행해 보여 주시는 것을 여러분들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기만 하심으로 우리가 이루게 될 과업을 온전히 이루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3) 자신의 성결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 믿음의 1단계에서 지금의 믿음으로 성장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믿고 바라봐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영으로 일구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와질 것을 기대하시며 바라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자신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한 자녀로 나와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도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리고 마음의 심비에 새겨서 행함으로 나타내 보일 때 어느 순간 깊숙이 영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육의 모습이 발견된다 하여 낙심하며 포기하는 사람이라면 영적인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결도 영적인 믿음으로 바라본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이 변함없으며 흔들림이 없습니다. 성결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비진리와 육의 마음을 발견하면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러한 축복도 성결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영의 흐름을 타고 어찌하든 영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성령도 도우시고 늘 깨우침을 주시는 것이지요.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능히 성결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들은 영을 사모하여 어찌하든 영으로 들어가기 원하시지요? 그러면 많은 일들이 믿음으로 가능한 것처럼 성결도 능히 이룰 수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변함없이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목자가 이끌어서가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가 영의 흐름을 주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지되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포기라는 것이 없으며 자신의 성결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크신 영광과 놀라운 축복들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2-08
제49과축복
왕상 17:12
읽을말씀 : 왕상 17:12 | 외울말씀 : 왕상 17:12
교육목표 : 사르밧 과부의 믿음과 순종의 행함을 통해 참된 축복의 비결을 알아 영육간에 넘치는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떠한 중심으로 심고 행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도 달라지는데 영혼이 잘되는 만큼 주시는 것이기에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를 통해 축복의 비결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1. 사르밧 과부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
당시 이스라엘은 아합 왕과 온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며 갖가지 죄악을 행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예언케 하셨지요. 그런데도 아합 왕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야를 미워하며 죽이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까마귀를 통해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시며 마실 수 있는 시냇물도 예비해 두셨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가뭄이 심하여 그릿 시냇물까지 말라 버리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엘리야에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왕상 17:9)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시돈에 이른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인을 만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부탁하였지요. 이 여인은 처음 본 나그네의 청이었지만 물리치지 않고 순순히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또다시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말했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인해 물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 음식까지 구한다는 것은 염치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 여인은 오히려 도울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민망히 여기며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말했습니다(왕상 17:12).
그러자 엘리야는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답변했습니다. 이에 사르밧 과부는 어떤 이유나 핑계도 대지 않고 엘리야가 부탁한 대로 순종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말한 대로 놀라운 축복이 임하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왕상 17:15-16).
2.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비결
1) 하나님의 사람을 신뢰했고 그 입술의 말을 믿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믿었기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는 엘리야의 말에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것을 그대로 믿고 어떠한 생각도 동원치 않고 아무런 주저함 없이 즉시로 순종했지요.
이처럼 선지자를 신뢰하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면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대하 20:20). 여기서 '선지자'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주의 종으로 하나님 앞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 마음을 옥토로 개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가 나타나는 사람이지요(고후 12:12).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름받은 주의 종을 신뢰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왕을 세워 줄 것을 요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셨지요(삼상 8:7).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를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2) 마음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선지자를 신뢰하고 그 입술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면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이므로 온전한 순종이 이뤄지게 됩니다. 거짓이 없고 진실한 사람의 특성 중의 하나는 변명하지 않고 동문서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묻는 것에 대해 진실한 마음으로 대답하고자 한다면 동문서답이 나오지 않으며 바르게 듣고 바르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와 나눈 대화를 통해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였을 때, 사르밧 과부는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했습니다. 만일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떡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떡이 없다."라고만 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의 말대로 이뤄 드리고 싶지만 당장 떡을 드리지 못함으로 인해 민망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고백하였지요. 이처럼 사르밧 과부는 현재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거짓 없이 사실대로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말했던 것도 '어려운 형편이니 나는 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르밧 과부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겠는지요? 동문서답이 나오고 할 수 없다는 변명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는 말로 표현은 안한다 해도 '내 형편이 이렇게 어려우니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겠다.'라는 생각들이 동원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축복받을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선지자를 신뢰함이 진실이기에 우선 "예, 아멘." 하고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있는 그대로 내놓게 됩니다.
우리가 선지자를 신뢰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믿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질에 있어서 무의 상태라 할지라도 생명을 드리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심고 행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부요케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에 먼저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나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하나님을 믿으며 선지자의 말씀을 신뢰한다고 고백해도 마음에 진실을 이룬 만큼 축복의 역사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순종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한계를 뛰어 넘는 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생명을 드리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과 아들이 마지막으로 먹으려 했던 양식을 선지자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남은 양식을 먹으면 어떻게 양식을 구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자신과 아들에겐 생명과 같은 양식인데도 엘리야 선지자가 달라고 할 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드리는 순종을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되 넘치게 갚아 주셨던 것입니다(왕상 17:15-16).
순종은 육신의 생각으로는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로 재듯이 '이것이 내게 유익이 되겠는가?' 따진다면 결코 생명을 드리는 순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드리는 순종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지자를 신뢰하기 때문에 어떤 생각도 동원치 않고 자기 형편 그대로 전부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부를 드릴 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드리고 싶으나 너무 적기에 오히려 민망한 마음이지요.
바로 이것이 크고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정녕 내 생명도 드릴 수 있을진대 이것을 드림으로 당장 어떤 곤란한 일을 만난다 해도 아버지께 드릴 수 있음으로 기뻐하나이다!' 이 같은 중심으로 심어야 큰 축복으로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까지 사르밧 과부가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받은 비결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축복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르밧 과부의 믿음과 순종을 본받아 영육간에 넘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사르밧 과부의 믿음과 순종의 행함을 통해 참된 축복의 비결을 알아 영육간에 넘치는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떠한 중심으로 심고 행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도 달라지는데 영혼이 잘되는 만큼 주시는 것이기에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를 통해 축복의 비결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1. 사르밧 과부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
당시 이스라엘은 아합 왕과 온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며 갖가지 죄악을 행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예언케 하셨지요. 그런데도 아합 왕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야를 미워하며 죽이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까마귀를 통해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시며 마실 수 있는 시냇물도 예비해 두셨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가뭄이 심하여 그릿 시냇물까지 말라 버리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엘리야에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왕상 17:9)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시돈에 이른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인을 만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부탁하였지요. 이 여인은 처음 본 나그네의 청이었지만 물리치지 않고 순순히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또다시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말했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인해 물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 음식까지 구한다는 것은 염치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 여인은 오히려 도울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민망히 여기며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말했습니다(왕상 17:12).
그러자 엘리야는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답변했습니다. 이에 사르밧 과부는 어떤 이유나 핑계도 대지 않고 엘리야가 부탁한 대로 순종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말한 대로 놀라운 축복이 임하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왕상 17:15-16).
2.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비결
1) 하나님의 사람을 신뢰했고 그 입술의 말을 믿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믿었기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는 엘리야의 말에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것을 그대로 믿고 어떠한 생각도 동원치 않고 아무런 주저함 없이 즉시로 순종했지요.
이처럼 선지자를 신뢰하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면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대하 20:20). 여기서 '선지자'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주의 종으로 하나님 앞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 마음을 옥토로 개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가 나타나는 사람이지요(고후 12:12).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름받은 주의 종을 신뢰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왕을 세워 줄 것을 요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셨지요(삼상 8:7).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를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2) 마음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선지자를 신뢰하고 그 입술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면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이므로 온전한 순종이 이뤄지게 됩니다. 거짓이 없고 진실한 사람의 특성 중의 하나는 변명하지 않고 동문서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묻는 것에 대해 진실한 마음으로 대답하고자 한다면 동문서답이 나오지 않으며 바르게 듣고 바르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와 나눈 대화를 통해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였을 때, 사르밧 과부는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했습니다. 만일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떡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떡이 없다."라고만 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의 말대로 이뤄 드리고 싶지만 당장 떡을 드리지 못함으로 인해 민망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고백하였지요. 이처럼 사르밧 과부는 현재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거짓 없이 사실대로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말했던 것도 '어려운 형편이니 나는 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르밧 과부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겠는지요? 동문서답이 나오고 할 수 없다는 변명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는 말로 표현은 안한다 해도 '내 형편이 이렇게 어려우니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겠다.'라는 생각들이 동원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축복받을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선지자를 신뢰함이 진실이기에 우선 "예, 아멘." 하고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있는 그대로 내놓게 됩니다.
우리가 선지자를 신뢰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믿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질에 있어서 무의 상태라 할지라도 생명을 드리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심고 행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부요케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에 먼저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나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하나님을 믿으며 선지자의 말씀을 신뢰한다고 고백해도 마음에 진실을 이룬 만큼 축복의 역사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순종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한계를 뛰어 넘는 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생명을 드리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과 아들이 마지막으로 먹으려 했던 양식을 선지자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남은 양식을 먹으면 어떻게 양식을 구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자신과 아들에겐 생명과 같은 양식인데도 엘리야 선지자가 달라고 할 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드리는 순종을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되 넘치게 갚아 주셨던 것입니다(왕상 17:15-16).
순종은 육신의 생각으로는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로 재듯이 '이것이 내게 유익이 되겠는가?' 따진다면 결코 생명을 드리는 순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드리는 순종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지자를 신뢰하기 때문에 어떤 생각도 동원치 않고 자기 형편 그대로 전부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부를 드릴 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드리고 싶으나 너무 적기에 오히려 민망한 마음이지요.
바로 이것이 크고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정녕 내 생명도 드릴 수 있을진대 이것을 드림으로 당장 어떤 곤란한 일을 만난다 해도 아버지께 드릴 수 있음으로 기뻐하나이다!' 이 같은 중심으로 심어야 큰 축복으로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까지 사르밧 과부가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받은 비결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축복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르밧 과부의 믿음과 순종을 본받아 영육간에 넘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2-01
제48과내게 가장 소중한 것
요삼 1:4
읽을말씀 : 요삼 1:4 | 외울말씀 : 요삼 1:4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김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를 나타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잠언 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말씀하신 대로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주어진 삶 속에서 사랑받는 증거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랑받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혹여 하나님보다 세상에 속한 어떤 것이 내 안에 가장 소중한 것으로 담겨져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세상에 속한 것도 담겨 있고 하나님께 속한 영의 것도 담겨 있는데 여전히 세상의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자기 자신을 깨우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을 점검해 보아야 할까요?
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했고, 마가복음 12:30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기뻐하며,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듣고 배운 진리대로 행한다 하지만, 정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함이 아니라 자기 보기에 좋은 행함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원래의 뜻에서 벗어나거나 심지어는 역(逆)으로 생각하고 행하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행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지요.
특히 머리된 일꾼들은 어떠한 행사를 이룰 때에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궁극적인 뜻은 모른 채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일을 이룬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행사를 진행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릴 만한 열매나 영적으로 유익 되는 좋은 결과 없이 그저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인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작은 모임을 하든, 큰 행사를 하든 그것이 정녕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이 되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여 어떤 일을 했다 해도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과 상관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아무리 멋있게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다 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아니라면 전부 무(無)로 돌릴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요.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뛰어난 지식을 가졌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기에 자기의 의를 깨뜨려 나갔습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기까지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갔지요. 주님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날마다 자신은 죽어지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빌 3:8-9).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자신의 마음을 일구며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라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를 궁구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외모를 더 멋있어 보이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어서 부유해질까?' 이런 것을 궁구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을 궁구하며 그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지요.
여러분의 삶의 목적에 순위를 매긴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이란 항목이 과연 몇 위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두 가지를 말씀드릴 때에 과연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행했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과 자기 생각 속에 막무가내로 행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정도를 걷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에서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내보인다 하나 위로부터 주어진 영적인 믿음이 아닌 것은 정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공의를 어기는 경우가 있지요. 이런 경우는 자신은 믿음으로 행한다 했지만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은 받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 현실에서 당장 일이 잘되지 않거나 응답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딜 때에 쉽게 절망하고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 또한 믿음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결코 변개함이 없는 것입니다.
한번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으면 끝까지 믿는 것이 참으로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믿음으로 행했다면 어떤 장애물이 있고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진정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이지요. 그래서 마침내 믿음 가운데 승리할 때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영혼들에 대한 전도입니다. 누가복음 15:7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한 영혼이 전도를 받아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정녕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전도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고 영혼들을 사랑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 하지요. 여기에는 많은 사랑의 수고와 섬김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알기에 전혀 수고롭게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기쁨으로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나름대로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으니까 내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면 될 거야. 전도나 영혼 관리는 그 사명을 가진 일꾼들이 하면 되겠지' 하고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봅니다. 또한 열심히 전도를 하시는 분들도 정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전도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도 믿음으로 하기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전도한다는 것은 영혼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내 입술의 지혜로운 말로 상대를 설득시키려고 하거나 나의 강한 의지로 상대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아버지께서 상대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아버지께서 상대의 마음을 녹여 주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전도할 때에 정녕 실한 열매로 맺혀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목자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저 목자를 사랑함으로 육으로 목자를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믿음에 변개함이 없었고 아버지의 나라를 이룸에 있어서 어떠한 일에도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으며 오직 순종해 왔던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또한 설령 육적으로 부끄러움 당할 일이라 해도 어떤 것도 개의치 않으며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점, 그리고 세상과 타협치 않음은 물론, 세상에서 아무리 값진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귀히 여기거나 취하려 하지 않았던 점을 본받고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 보시기에 온전하며 변개함이 없는 진실된 점들을 바라보고 본받는 것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라봄의 믿음의 법칙에 의해 목자를 닮아 주님의 마음을 이루며 아버지 하나님의 참자녀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진실하게 점검함으로 이제는 "내가 진리를 듣고 행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없고 영혼들이 변화되어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없도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비의 신앙,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신앙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김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를 나타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잠언 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말씀하신 대로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주어진 삶 속에서 사랑받는 증거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랑받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혹여 하나님보다 세상에 속한 어떤 것이 내 안에 가장 소중한 것으로 담겨져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세상에 속한 것도 담겨 있고 하나님께 속한 영의 것도 담겨 있는데 여전히 세상의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자기 자신을 깨우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을 점검해 보아야 할까요?
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했고, 마가복음 12:30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기뻐하며,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듣고 배운 진리대로 행한다 하지만, 정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함이 아니라 자기 보기에 좋은 행함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원래의 뜻에서 벗어나거나 심지어는 역(逆)으로 생각하고 행하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행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지요.
특히 머리된 일꾼들은 어떠한 행사를 이룰 때에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궁극적인 뜻은 모른 채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일을 이룬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행사를 진행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릴 만한 열매나 영적으로 유익 되는 좋은 결과 없이 그저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인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작은 모임을 하든, 큰 행사를 하든 그것이 정녕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이 되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여 어떤 일을 했다 해도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과 상관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아무리 멋있게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다 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아니라면 전부 무(無)로 돌릴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요.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뛰어난 지식을 가졌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기에 자기의 의를 깨뜨려 나갔습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기까지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갔지요. 주님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날마다 자신은 죽어지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빌 3:8-9).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자신의 마음을 일구며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라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를 궁구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외모를 더 멋있어 보이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어서 부유해질까?' 이런 것을 궁구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을 궁구하며 그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지요.
여러분의 삶의 목적에 순위를 매긴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이란 항목이 과연 몇 위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두 가지를 말씀드릴 때에 과연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행했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과 자기 생각 속에 막무가내로 행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정도를 걷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에서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내보인다 하나 위로부터 주어진 영적인 믿음이 아닌 것은 정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공의를 어기는 경우가 있지요. 이런 경우는 자신은 믿음으로 행한다 했지만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은 받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 현실에서 당장 일이 잘되지 않거나 응답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딜 때에 쉽게 절망하고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 또한 믿음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결코 변개함이 없는 것입니다.
한번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으면 끝까지 믿는 것이 참으로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믿음으로 행했다면 어떤 장애물이 있고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진정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이지요. 그래서 마침내 믿음 가운데 승리할 때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영혼들에 대한 전도입니다. 누가복음 15:7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한 영혼이 전도를 받아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정녕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전도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고 영혼들을 사랑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 하지요. 여기에는 많은 사랑의 수고와 섬김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알기에 전혀 수고롭게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기쁨으로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나름대로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으니까 내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면 될 거야. 전도나 영혼 관리는 그 사명을 가진 일꾼들이 하면 되겠지' 하고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봅니다. 또한 열심히 전도를 하시는 분들도 정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전도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도 믿음으로 하기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전도한다는 것은 영혼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내 입술의 지혜로운 말로 상대를 설득시키려고 하거나 나의 강한 의지로 상대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아버지께서 상대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아버지께서 상대의 마음을 녹여 주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전도할 때에 정녕 실한 열매로 맺혀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목자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저 목자를 사랑함으로 육으로 목자를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믿음에 변개함이 없었고 아버지의 나라를 이룸에 있어서 어떠한 일에도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으며 오직 순종해 왔던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또한 설령 육적으로 부끄러움 당할 일이라 해도 어떤 것도 개의치 않으며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점, 그리고 세상과 타협치 않음은 물론, 세상에서 아무리 값진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귀히 여기거나 취하려 하지 않았던 점을 본받고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 보시기에 온전하며 변개함이 없는 진실된 점들을 바라보고 본받는 것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라봄의 믿음의 법칙에 의해 목자를 닮아 주님의 마음을 이루며 아버지 하나님의 참자녀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진실하게 점검함으로 이제는 "내가 진리를 듣고 행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없고 영혼들이 변화되어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없도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비의 신앙,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신앙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1-24
제47과하나님의 섭리는 변함이 없나니
신 26:16-19
읽을말씀 : 신 26:16-19 | 외울말씀 : 신 26:19
교육목표 : 마지막 때에 성령의 권능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수많은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어떤 시험과 환난도 해결해 주기를 원하시며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본교회를 세우시고 크신 권능을 나타내시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온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려 주시고 어찌하든 수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해 마지막 때에 영혼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섭리를 밝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권능
베드로후서 3:3-4을 보면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라는 사실을 알려 주어도 잘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날 때가 있으면 반드시 죽음의 때가 오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도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종말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반면에, 전도를 받고도 주를 영접하지 않았거나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악 중에 살았던 사람들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신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온 세상을 진동시킬 권능을 통해 구원받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땅에는 아직도 핍박과 고난으로 인해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나라들이 있으며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주를 믿는다 해도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8:8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기독교에 대한 심한 핍박이 있는 곳에서도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기만 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고 복음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믿음을 갖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던 사람들도 큰 권능의 역사를 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전 세계의 구원받을 영혼들을 거둬들이시고자 놀라운 권능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2. 마지막 때임을 어떻게 알고 믿을 수 있는가?
1)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통하여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끝날이 언제인지 그 날과 시를 알려 주지는 않으셨지만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도록 힌트를 주셨습니다. 마치 하늘이 흐리면 비가 올 것을 알 수 있듯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마지막 때를 예측할 수 있는 징조들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대해 "난리와 소란의 소문"이 있을 것이며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1-5에도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오늘날은 많은 징조들이 있으며, 지구촌 곳곳에 온갖 재앙과 재난,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흉악한 범죄와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사람들이 깨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뎌져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깨어 있는 사람들은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점점 더 확실히 느끼며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한 목소리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2) 본교회에 주신 예언의 말씀들을 통하여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교회에 향하신 섭리가 있으므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유명 인사들의 죽음이나 대통령 선거 결과, 국회의원 선거 결과 등을 비롯하여 국내외 정세에 관한 것들도 많이 알려 주셨습니다. 대부분 그대로 이뤄졌고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들은 지금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나타날 일들인데 그 중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지요.
우선, 하나님께서는 개척 당시부터 북한에 대한 말씀을 많이 주셨는데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 본교회에서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1983년 12월에는 마지막 때 남북간에 정상급 회담이 열리게 될 것과 그 후에 되어질 일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곧 일시적으로 북한이 외부 세계에 대해 문을 열 것이며,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문을 닫을 것이라 알려 주신 것입니다. 문이 열리면 성결의 복음과 권능을 들고 들어가 북한 선교를 이뤄야 한다 하셨지요.
그런데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폐쇄 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개방을 위한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북한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해 왔는데 이러한 체제 유지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요. 국내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정치 경제 상황이고 우방이라 믿고 있던 중국이나 러시아는 이미 개방의 물결을 타고 급속한 변화를 체험해 가고 있으며 미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개방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럼에도 지금 북한이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앞으로의 개방에 대비하여 좀 더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조치인 것이지요. 그러니 북한이 강경하게 나온다는 것은 결국 개방을 위한 수순이 되는 것이고 그만큼 개방의 때가 가까웠다는 의미가 됩니다.
다음으로, 마태복음 24:14을 보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복음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기 위해 중요한 두 지역이 있는데 하나는 북한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 지역 곧 중동 이슬람 국가들입니다. 이러한 곳에 복음이 확산되는 것이 바로 땅 끝까지 복음이 들어가는 것이며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본교회가 성결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해야 할 것과 특별히 마지막 때가 되면 이스라엘에까지 들어가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이스라엘 성회가 이뤄지면 이 땅에서 우리의 사명은 거의 마무리되고 마지막 날이 바로 눈앞에 이르는 것이라 하셨지요.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주신 말씀들을 하나하나 이뤄 오셨습니다. 특히 지난 2000년부터는 해외 성회를 치를 때마다 수십만 혹은 수백만의 인파가 모이게 하시고 그들 가운데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한번 성회를 치르고 나면 그 인근 지역은 물론 이웃 나라들에까지 소문이 더하여 권능의 역사와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2006년 미국 연합 대성회에서는 성회 실황이 전 세계 200여 개국에 생중계되어 시공을 초월한 놀라운 권능과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 간증이 쇄도하기도 했지요.
또한 두바이 선교를 통해서는 중동 선교가 시작되었고 우리의 마지막 선교지인 이스라엘을 향한 준비 작업이 더욱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말로만 이스라엘 선교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스라엘 성회를 이루기 위한 실질적인 길을 뚫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대성전을 건축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주의 권능을 목도하며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대성전을 지을 때는 하나님의 권능을 사모하는 전 세계 열왕, 곧 부귀와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도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두바이 선교를 통하여 복음에 대해 단단히 벽을 쌓고 있는 이슬람 세계의 깊은 곳까지도 하나님의 권능이 알려지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과 본교회를 향한 섭리들을 개척 당시부터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오늘날까지 해가 다르게 더욱 크신 권능을 보여 주시면서 본교회에 주신 말씀들을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한번 말씀하신 그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본교회를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주님께서 오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명하신 모든 사명들을 다 이루게 하시고 온 세계에 주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본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아름다운 새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마지막 때에 성령의 권능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수많은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어떤 시험과 환난도 해결해 주기를 원하시며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본교회를 세우시고 크신 권능을 나타내시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온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려 주시고 어찌하든 수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해 마지막 때에 영혼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섭리를 밝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권능
베드로후서 3:3-4을 보면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라는 사실을 알려 주어도 잘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날 때가 있으면 반드시 죽음의 때가 오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도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종말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반면에, 전도를 받고도 주를 영접하지 않았거나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악 중에 살았던 사람들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신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온 세상을 진동시킬 권능을 통해 구원받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땅에는 아직도 핍박과 고난으로 인해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나라들이 있으며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주를 믿는다 해도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8:8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기독교에 대한 심한 핍박이 있는 곳에서도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기만 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고 복음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믿음을 갖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던 사람들도 큰 권능의 역사를 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전 세계의 구원받을 영혼들을 거둬들이시고자 놀라운 권능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2. 마지막 때임을 어떻게 알고 믿을 수 있는가?
1)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통하여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끝날이 언제인지 그 날과 시를 알려 주지는 않으셨지만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도록 힌트를 주셨습니다. 마치 하늘이 흐리면 비가 올 것을 알 수 있듯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마지막 때를 예측할 수 있는 징조들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대해 "난리와 소란의 소문"이 있을 것이며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1-5에도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오늘날은 많은 징조들이 있으며, 지구촌 곳곳에 온갖 재앙과 재난,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흉악한 범죄와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사람들이 깨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뎌져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깨어 있는 사람들은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점점 더 확실히 느끼며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한 목소리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2) 본교회에 주신 예언의 말씀들을 통하여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교회에 향하신 섭리가 있으므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유명 인사들의 죽음이나 대통령 선거 결과, 국회의원 선거 결과 등을 비롯하여 국내외 정세에 관한 것들도 많이 알려 주셨습니다. 대부분 그대로 이뤄졌고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들은 지금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나타날 일들인데 그 중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지요.
우선, 하나님께서는 개척 당시부터 북한에 대한 말씀을 많이 주셨는데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 본교회에서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1983년 12월에는 마지막 때 남북간에 정상급 회담이 열리게 될 것과 그 후에 되어질 일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곧 일시적으로 북한이 외부 세계에 대해 문을 열 것이며,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문을 닫을 것이라 알려 주신 것입니다. 문이 열리면 성결의 복음과 권능을 들고 들어가 북한 선교를 이뤄야 한다 하셨지요.
그런데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폐쇄 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개방을 위한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북한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해 왔는데 이러한 체제 유지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요. 국내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정치 경제 상황이고 우방이라 믿고 있던 중국이나 러시아는 이미 개방의 물결을 타고 급속한 변화를 체험해 가고 있으며 미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개방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럼에도 지금 북한이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앞으로의 개방에 대비하여 좀 더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조치인 것이지요. 그러니 북한이 강경하게 나온다는 것은 결국 개방을 위한 수순이 되는 것이고 그만큼 개방의 때가 가까웠다는 의미가 됩니다.
다음으로, 마태복음 24:14을 보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복음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기 위해 중요한 두 지역이 있는데 하나는 북한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 지역 곧 중동 이슬람 국가들입니다. 이러한 곳에 복음이 확산되는 것이 바로 땅 끝까지 복음이 들어가는 것이며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본교회가 성결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해야 할 것과 특별히 마지막 때가 되면 이스라엘에까지 들어가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이스라엘 성회가 이뤄지면 이 땅에서 우리의 사명은 거의 마무리되고 마지막 날이 바로 눈앞에 이르는 것이라 하셨지요.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주신 말씀들을 하나하나 이뤄 오셨습니다. 특히 지난 2000년부터는 해외 성회를 치를 때마다 수십만 혹은 수백만의 인파가 모이게 하시고 그들 가운데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한번 성회를 치르고 나면 그 인근 지역은 물론 이웃 나라들에까지 소문이 더하여 권능의 역사와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2006년 미국 연합 대성회에서는 성회 실황이 전 세계 200여 개국에 생중계되어 시공을 초월한 놀라운 권능과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 간증이 쇄도하기도 했지요.
또한 두바이 선교를 통해서는 중동 선교가 시작되었고 우리의 마지막 선교지인 이스라엘을 향한 준비 작업이 더욱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말로만 이스라엘 선교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스라엘 성회를 이루기 위한 실질적인 길을 뚫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대성전을 건축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주의 권능을 목도하며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대성전을 지을 때는 하나님의 권능을 사모하는 전 세계 열왕, 곧 부귀와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도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두바이 선교를 통하여 복음에 대해 단단히 벽을 쌓고 있는 이슬람 세계의 깊은 곳까지도 하나님의 권능이 알려지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과 본교회를 향한 섭리들을 개척 당시부터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오늘날까지 해가 다르게 더욱 크신 권능을 보여 주시면서 본교회에 주신 말씀들을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한번 말씀하신 그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본교회를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주님께서 오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명하신 모든 사명들을 다 이루게 하시고 온 세계에 주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본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아름다운 새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1-17
제46과감사
시 106:1-3
읽을말씀 : 시 106:1-3 | 외울말씀 : 시 106:1
교육목표 : 한 해 동안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조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감사제를 드리게 한다.
추수 때가 되어 곡식들이 알알이 영글고 들판이 황금빛으로 넘실거리면 농부는 흥에 겨워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그동안 흘린 눈물과 땀방울을 수확의 기쁨과 풍요로움으로 보상받게 됩니다. 이처럼 한 해 동안 믿음으로 심고 행한 것들을 주님 안에서 풍성한 열매로 거두어 감사드리는 절기가 바로 추수감사절이지요.
시편 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올 한 해 동안도 우리의 삶 가운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께 진한 감사의 향을 올려드리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첫째로,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은혜뿐만 아니라 확실한 믿음을 가진 알곡 성도로서 천국까지 이를 수 있게 하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구원받았다 해도 그것으로 다 이루었다 할 수는 없지요. 육적으로도 어린아이가 성장해서 청년이 되고 장년이 돼야 하는데,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면 병약하거나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고 거듭났다 해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한다 할 수 없으며 결국 구원받을 믿음조차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농부가 추수할 때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사르는 것처럼, 인간 경작을 마감하는 추수 때도 말씀대로 순종한 참자녀들은 천국에 들이고 속이 채워지지 않은 쭉정이와 같은 신자들은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믿는다 하면서도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또한 영혼이 잘되고 천국을 침노하는 방법과 마음의 할례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지도 않지요. 이런 사람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영혼이 잘될 수 없으며 믿음의 1, 2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동안 수많은 말씀을 듣고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인간 경작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깨달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참자녀로 변화되고 천국 중에서도 가장 좋은 처소를 침노해야 함을 깨달았기에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1-2에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하신 대로 더 이상 땅엣 것을 바라지 않고 헛된 세상 정욕을 욕심내지 않으며, 오직 위엣 것 곧 천국만을 소망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국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말할 수 없는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처럼 영혼이 잘될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중심에서부터 감사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이 성장하도록 역사하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구원받고 좋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밝히 알려 주시며 때를 좇아 연단의 시간을 허락하심으로 믿음을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하며 기도하고 사명을 감당하니 "큰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지요.
말씀에 비춰 보면 "내가 믿음의 몇 단계쯤 이르렀구나." 하고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지만 시험이 올 때 믿음의 분량을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단을 믿음으로 극복함으로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신앙생활 가운데 연단의 때를 맞으면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연단이 시작되니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낱낱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믿음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며 변질되는 모습과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불순종했던 모습들을 깨우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의와 틀 속에서 가리어졌던 것, 육신의 생각을 동원했던 것, 자존심을 세웠던 것들이 떠올려지게 되며, 자기를 버리지 못함으로 고집하고 있던 것,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변론하고자 했던 것들도 하나하나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연단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에는 심히 애통함으로 마음을 찢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해야만 마음 깊이 심겨져 있던 비진리를 벗어 버리고 더 크고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은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여러 가지 연단의 세월들을 겪어 왔습니다. 이런 연단을 통과한 후에 지난날을 돌아볼 때 연단받기 전의 자신의 모습과 연단받은 이후가 많이 다른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자세가 달라졌고, 범사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에는 품지 못한 사람까지도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대하지요.
또한 세상 정욕이 안개같이 헛된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고 천국 소망이 전보다 더욱 간절해집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연단을 거친 후에는 그 감동과 깊이가 달라져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사랑에 중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성숙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자기 발견의 아픔이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지 못함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도 하며 두려운 하나님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밝히 아시며 그 아픔을 함께 느끼십니다. 또한 주님과 성령님께서도 우리가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할 수 있도록 간절한 중보의 기도를 올려 주시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모든 연단을 오직 감사함으로 받으며 믿음, 소망,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걸음마 연습을 할 때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걷도록 지켜보며 넘어질 때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놔둡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관심하게 놔두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아이를 늘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연단을 허락하시고 그 안에서도 섬세하게 지키시며 인도하셨기 때문에 오늘날의 여러분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항상 진심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새예루살렘을 소망삼고 달려갈 수 있게 하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믿음이 연약하여 범죄하며 곤고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도 다시 회개하고 노력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며 다시 힘을 내어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어떤 사람은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어 진리를 알고 직분을 감당하면서도 행해서는 안 될 죄를 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공의에 따르면 회개의 영이 임하지 않으므로 회개하기도 어렵고 혹시 회개하여 간신히 구원은 받는다 해도 좋은 천국의 영광을 바라기는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깊은 진리의 말씀을 들어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죄 가운데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특별한 죄사함의 기회들을 주셨습니다. 그동안 막힌 담이 아무리 크다 해도, 구원받기조차 쉽지 않은 처지에 있었다 해도, 겸비하게 하나님 앞에 간구한 사람들에게는 회개할 수 있도록 긍휼의 문을 열어 주셨지요.
뿐만 아니라 다시 예전의 소망을 회복하여 주시고 온 영의 흐름이라는 축복 속에서 낙오되지 않고 새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체험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잃어버린 신뢰관계를 다시 회복하며 부지런히 상급을 쌓아 가면서 소망 중에 달려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이지요. 이것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은혜가 아니라 정녕 너무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입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귀한 영혼들을 일가친척이나 저 자신보다 더 소중히 돌보면서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밤낮 눈물로 진리를 가르치고 쉼 없이 기도하고 금식한다 해도 여전히 참믿음을 갖지 못하고 범죄하는 양 떼가 있을 때에는 아버지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눈물로 간구했지요.
어찌하든 그들의 생명을 구해야 하겠기에,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새예루살렘에 같이 가야 하겠기에 하나님 앞에 생명을 다해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셨을 때는 제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보다 더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더구나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소망의 문을 다시 한 번 열어 주셨을 때는 그 감격과 감사를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7:47에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많이 사함받은 은혜를 진실로 깨닫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진한 큰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드림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에 위로와 큰 기쁨의 열매들로 나와지시기를 바랍니다.
교육목표 : 한 해 동안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조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감사제를 드리게 한다.
추수 때가 되어 곡식들이 알알이 영글고 들판이 황금빛으로 넘실거리면 농부는 흥에 겨워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그동안 흘린 눈물과 땀방울을 수확의 기쁨과 풍요로움으로 보상받게 됩니다. 이처럼 한 해 동안 믿음으로 심고 행한 것들을 주님 안에서 풍성한 열매로 거두어 감사드리는 절기가 바로 추수감사절이지요.
시편 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올 한 해 동안도 우리의 삶 가운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께 진한 감사의 향을 올려드리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첫째로,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은혜뿐만 아니라 확실한 믿음을 가진 알곡 성도로서 천국까지 이를 수 있게 하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구원받았다 해도 그것으로 다 이루었다 할 수는 없지요. 육적으로도 어린아이가 성장해서 청년이 되고 장년이 돼야 하는데,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면 병약하거나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고 거듭났다 해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한다 할 수 없으며 결국 구원받을 믿음조차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농부가 추수할 때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사르는 것처럼, 인간 경작을 마감하는 추수 때도 말씀대로 순종한 참자녀들은 천국에 들이고 속이 채워지지 않은 쭉정이와 같은 신자들은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믿는다 하면서도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또한 영혼이 잘되고 천국을 침노하는 방법과 마음의 할례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지도 않지요. 이런 사람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영혼이 잘될 수 없으며 믿음의 1, 2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동안 수많은 말씀을 듣고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인간 경작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깨달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참자녀로 변화되고 천국 중에서도 가장 좋은 처소를 침노해야 함을 깨달았기에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1-2에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하신 대로 더 이상 땅엣 것을 바라지 않고 헛된 세상 정욕을 욕심내지 않으며, 오직 위엣 것 곧 천국만을 소망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국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말할 수 없는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처럼 영혼이 잘될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중심에서부터 감사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이 성장하도록 역사하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구원받고 좋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밝히 알려 주시며 때를 좇아 연단의 시간을 허락하심으로 믿음을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하며 기도하고 사명을 감당하니 "큰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지요.
말씀에 비춰 보면 "내가 믿음의 몇 단계쯤 이르렀구나." 하고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지만 시험이 올 때 믿음의 분량을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단을 믿음으로 극복함으로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신앙생활 가운데 연단의 때를 맞으면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연단이 시작되니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낱낱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믿음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며 변질되는 모습과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불순종했던 모습들을 깨우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의와 틀 속에서 가리어졌던 것, 육신의 생각을 동원했던 것, 자존심을 세웠던 것들이 떠올려지게 되며, 자기를 버리지 못함으로 고집하고 있던 것,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변론하고자 했던 것들도 하나하나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연단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에는 심히 애통함으로 마음을 찢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해야만 마음 깊이 심겨져 있던 비진리를 벗어 버리고 더 크고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은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여러 가지 연단의 세월들을 겪어 왔습니다. 이런 연단을 통과한 후에 지난날을 돌아볼 때 연단받기 전의 자신의 모습과 연단받은 이후가 많이 다른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자세가 달라졌고, 범사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에는 품지 못한 사람까지도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대하지요.
또한 세상 정욕이 안개같이 헛된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고 천국 소망이 전보다 더욱 간절해집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연단을 거친 후에는 그 감동과 깊이가 달라져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사랑에 중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성숙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자기 발견의 아픔이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지 못함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도 하며 두려운 하나님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밝히 아시며 그 아픔을 함께 느끼십니다. 또한 주님과 성령님께서도 우리가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할 수 있도록 간절한 중보의 기도를 올려 주시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모든 연단을 오직 감사함으로 받으며 믿음, 소망,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걸음마 연습을 할 때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걷도록 지켜보며 넘어질 때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놔둡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관심하게 놔두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아이를 늘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연단을 허락하시고 그 안에서도 섬세하게 지키시며 인도하셨기 때문에 오늘날의 여러분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항상 진심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새예루살렘을 소망삼고 달려갈 수 있게 하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믿음이 연약하여 범죄하며 곤고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도 다시 회개하고 노력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며 다시 힘을 내어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어떤 사람은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어 진리를 알고 직분을 감당하면서도 행해서는 안 될 죄를 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공의에 따르면 회개의 영이 임하지 않으므로 회개하기도 어렵고 혹시 회개하여 간신히 구원은 받는다 해도 좋은 천국의 영광을 바라기는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깊은 진리의 말씀을 들어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죄 가운데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특별한 죄사함의 기회들을 주셨습니다. 그동안 막힌 담이 아무리 크다 해도, 구원받기조차 쉽지 않은 처지에 있었다 해도, 겸비하게 하나님 앞에 간구한 사람들에게는 회개할 수 있도록 긍휼의 문을 열어 주셨지요.
뿐만 아니라 다시 예전의 소망을 회복하여 주시고 온 영의 흐름이라는 축복 속에서 낙오되지 않고 새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체험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잃어버린 신뢰관계를 다시 회복하며 부지런히 상급을 쌓아 가면서 소망 중에 달려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이지요. 이것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은혜가 아니라 정녕 너무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입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귀한 영혼들을 일가친척이나 저 자신보다 더 소중히 돌보면서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밤낮 눈물로 진리를 가르치고 쉼 없이 기도하고 금식한다 해도 여전히 참믿음을 갖지 못하고 범죄하는 양 떼가 있을 때에는 아버지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눈물로 간구했지요.
어찌하든 그들의 생명을 구해야 하겠기에,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새예루살렘에 같이 가야 하겠기에 하나님 앞에 생명을 다해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셨을 때는 제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보다 더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더구나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소망의 문을 다시 한 번 열어 주셨을 때는 그 감격과 감사를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7:47에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많이 사함받은 은혜를 진실로 깨닫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진한 큰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드림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에 위로와 큰 기쁨의 열매들로 나와지시기를 바랍니다.
2006-11-10
제45과기뻐 춤추며 노래하며
막 7:31-37
읽을말씀 : 막 7:31-37 | 외울말씀 : 막 7:37
교육목표 : 믿음을 갖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주십니다. 그래서 불치의 병에서 놓임 받고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며 듣지 못하던 귀가 들리게 되는 등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체험한 사람들은 샘솟듯 솟아나는 행복 가운데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지요.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통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귀먹고 어눌한 자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을 뿐만 아니라 각색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마 4:23-24). 그래서 전파하신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며 믿음으로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해 주셨지요.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을 때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쳐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눌하다'는 뜻은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떠듬떠듬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32:27에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므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니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쳐 주시자 귀가 열리고 말이 분명해졌지요.
이 외에도 귀신들림으로 인해 귀먹거나 벙어리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쫓아 주시자 곧바로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9:25을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고통받고 있는 한 아이를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자 귀신이 나가고 아이는 온전케 되었지요.
신체 조직의 일부가 퇴화되었거나 신경 세포가 이미 죽어 버림으로 인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병 고치는 은사(고전 12:9)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분량이 장성한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권세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에 맞춰 믿음으로 기도했을 때 온전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본교회를 통해 베푸신 청각장애 치료 사례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믿음의 분량이 장성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면 성경상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엡 4:13, 히 13:8). 지금까지 하나님의 권능으로 난청이 치료되는 것은 물론, 태어날 때부터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듣게 되는 경우도 무수히 보았습니다. 심지어는 50년이 넘도록 들리지 않던 귀가 당회장님의 기도를 통해 열려 듣게 된 사례도 있지요.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할 때 오늘날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능을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2000년 일본 나고야 성회 시 열세 명의 청각 장애인들이 당회장님의 단 한 번의 기도로 한꺼번에 치료받아 간증을 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역사가 국내의 청각 장애인들에게도 알려져 2001년 5월 본교회의 2주 연속 특별 부흥성회 시에는 국내의 많은 청각 장애인들이 참석하여 치료받음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당시 33세 된 한 여성도님은 여덟 살 때 사고로 농아가 되었는데 전도받아 믿음으로 치료받고자 부흥성회에 정성껏 참석했습니다. 성회 시 당회장님의 안수기도를 받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나 실망하지 않고 다른 분들이 치료받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믿음으로 인정해 주시고 성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해가 갈수록 권능의 역사는 더 크게 나타나 2002년 7월 중미의 온두라스 성회에서도 귀머거리와 벙어리 된 많은 사람들이 듣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성회의 안전 총책임자로서 성회를 적극 도왔던 분의 딸도 태어날 때부터 들리지 않던 귀가 치료되었지요.
2004년 독일 기독교 사상 최대 성회였던 독일 연합대성회 시 비트릭 메헤르만이라는 여자분은 평소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아 고통을 받았는데 성회 첫날 기도 시간에 '뻥' 하는 소리가 나면서 그 후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찰 결과 얇았던 고막이 두꺼워져 잘 듣게 된 것이라며 담당 의사도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였다고 하지요.
2006년 미국 연합대성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난청을 치료받았는데 그 중에 유니 라디오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데이비드 곤잘레스는 20년간 헤드폰을 쓰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대화는 물론 방송을 진행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지요. 그런데 성회에 참석하여 기도를 받을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머리까지 시원한 기운이 돌더니 귀가 잘 들리게 되어 이제는 방송 진행도 더욱 명쾌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받으려면
1)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마가복음 7:33-35을 보면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했습니다. '에바다'는 '열리라'는 의미의 아람어인데, 예수님께서 창조의 근본의 소리로 "에바다" 하고 명하시자 그대로 귀가 열려 들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귀머거리 된 이 사람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 하였는데, 귀머거리 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니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지요. 또한 본인이 스스로 믿음 가운데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친히 귀에 손가락을 넣어 주심으로 느낌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당사자가 믿음을 소유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게 되지요. 오늘날은 문명이 발달하여 수화를 비롯, 비디오나 책자, 신문 등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매체들이 많이 있으므로 청각 장애인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어 믿음을 심어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어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영적으로 물세례, 곧 죄사함을 베푸시기 위함이었지요.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맑은 물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씻어 버린다는 의미가 있지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예수님은 더러움을 씻어 내는 물 대신 침으로써 죄사함의 의미를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9:1-2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응답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진실하게 돌아보아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첫째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6:9에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말씀하셨으니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지 않은 것이 바로 죄임을 깨우쳐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설령 형제가 나를 미워한다 해서 똑같이 미워해서는 안 되며, 이해하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요일 4:11). 그리하여 모든 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도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치료의 역사를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욕심을 가지고 기도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욕심을 가지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넷째로, 의심하며 기도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6-7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내보이며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히 11:6).
다섯째로,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선한 계명들을 지켜야 합니다(요 14:21). 간혹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가운데서도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가장 기본적인 계명인 주일 성수를 하지 않았거나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로, 하나님 앞에 심지 않고 받으려 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프거나 약한 사람은 우선 모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강건한 몸이 될 수 있고 또한 물질의 문제가 있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물질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넘치는 축복으로 함께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향해 "에바다" 곧 "열리라"고 명하시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해진 것처럼 하나님의 권능으로는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을 갖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며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믿음을 갖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주십니다. 그래서 불치의 병에서 놓임 받고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며 듣지 못하던 귀가 들리게 되는 등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체험한 사람들은 샘솟듯 솟아나는 행복 가운데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지요.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통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귀먹고 어눌한 자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을 뿐만 아니라 각색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마 4:23-24). 그래서 전파하신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며 믿음으로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해 주셨지요.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을 때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쳐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눌하다'는 뜻은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떠듬떠듬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32:27에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므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니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쳐 주시자 귀가 열리고 말이 분명해졌지요.
이 외에도 귀신들림으로 인해 귀먹거나 벙어리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쫓아 주시자 곧바로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9:25을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고통받고 있는 한 아이를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자 귀신이 나가고 아이는 온전케 되었지요.
신체 조직의 일부가 퇴화되었거나 신경 세포가 이미 죽어 버림으로 인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병 고치는 은사(고전 12:9)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분량이 장성한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권세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에 맞춰 믿음으로 기도했을 때 온전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본교회를 통해 베푸신 청각장애 치료 사례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믿음의 분량이 장성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면 성경상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엡 4:13, 히 13:8). 지금까지 하나님의 권능으로 난청이 치료되는 것은 물론, 태어날 때부터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듣게 되는 경우도 무수히 보았습니다. 심지어는 50년이 넘도록 들리지 않던 귀가 당회장님의 기도를 통해 열려 듣게 된 사례도 있지요.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할 때 오늘날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능을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2000년 일본 나고야 성회 시 열세 명의 청각 장애인들이 당회장님의 단 한 번의 기도로 한꺼번에 치료받아 간증을 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역사가 국내의 청각 장애인들에게도 알려져 2001년 5월 본교회의 2주 연속 특별 부흥성회 시에는 국내의 많은 청각 장애인들이 참석하여 치료받음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당시 33세 된 한 여성도님은 여덟 살 때 사고로 농아가 되었는데 전도받아 믿음으로 치료받고자 부흥성회에 정성껏 참석했습니다. 성회 시 당회장님의 안수기도를 받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나 실망하지 않고 다른 분들이 치료받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믿음으로 인정해 주시고 성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해가 갈수록 권능의 역사는 더 크게 나타나 2002년 7월 중미의 온두라스 성회에서도 귀머거리와 벙어리 된 많은 사람들이 듣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성회의 안전 총책임자로서 성회를 적극 도왔던 분의 딸도 태어날 때부터 들리지 않던 귀가 치료되었지요.
2004년 독일 기독교 사상 최대 성회였던 독일 연합대성회 시 비트릭 메헤르만이라는 여자분은 평소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아 고통을 받았는데 성회 첫날 기도 시간에 '뻥' 하는 소리가 나면서 그 후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찰 결과 얇았던 고막이 두꺼워져 잘 듣게 된 것이라며 담당 의사도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였다고 하지요.
2006년 미국 연합대성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난청을 치료받았는데 그 중에 유니 라디오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데이비드 곤잘레스는 20년간 헤드폰을 쓰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대화는 물론 방송을 진행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지요. 그런데 성회에 참석하여 기도를 받을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머리까지 시원한 기운이 돌더니 귀가 잘 들리게 되어 이제는 방송 진행도 더욱 명쾌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받으려면
1)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마가복음 7:33-35을 보면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했습니다. '에바다'는 '열리라'는 의미의 아람어인데, 예수님께서 창조의 근본의 소리로 "에바다" 하고 명하시자 그대로 귀가 열려 들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귀머거리 된 이 사람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 하였는데, 귀머거리 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니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지요. 또한 본인이 스스로 믿음 가운데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친히 귀에 손가락을 넣어 주심으로 느낌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당사자가 믿음을 소유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게 되지요. 오늘날은 문명이 발달하여 수화를 비롯, 비디오나 책자, 신문 등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매체들이 많이 있으므로 청각 장애인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어 믿음을 심어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어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영적으로 물세례, 곧 죄사함을 베푸시기 위함이었지요.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맑은 물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씻어 버린다는 의미가 있지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예수님은 더러움을 씻어 내는 물 대신 침으로써 죄사함의 의미를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9:1-2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응답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진실하게 돌아보아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첫째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6:9에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말씀하셨으니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지 않은 것이 바로 죄임을 깨우쳐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설령 형제가 나를 미워한다 해서 똑같이 미워해서는 안 되며, 이해하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요일 4:11). 그리하여 모든 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도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치료의 역사를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욕심을 가지고 기도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욕심을 가지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넷째로, 의심하며 기도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6-7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내보이며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히 11:6).
다섯째로,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선한 계명들을 지켜야 합니다(요 14:21). 간혹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가운데서도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가장 기본적인 계명인 주일 성수를 하지 않았거나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로, 하나님 앞에 심지 않고 받으려 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프거나 약한 사람은 우선 모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강건한 몸이 될 수 있고 또한 물질의 문제가 있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물질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넘치는 축복으로 함께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향해 "에바다" 곧 "열리라"고 명하시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해진 것처럼 하나님의 권능으로는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을 갖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며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1-03
제44과일어나 뛰고 걸으며
막 2:5-12
읽을말씀 : 막 2:5-12 | 외울말씀 : 막 2:12
교육목표 :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체험하며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한다.
성경을 보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뛰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베드로, 사도 바울을 통해서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는 표적이 나타났지요(행 3:1-10, 14:8-11).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오늘날도 변함없이 역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를 통해 어떻게 해야 일어나 걷고 뛰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성경상에서 일어나 뛰고 걸은 사건
1)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된 중풍병자
가버나움에 사는 어떤 중풍병자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귀신을 쫓아낼 뿐만 아니라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신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중풍병자는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소문만을 듣고도 그대로 믿고 예수님을 꼭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니 중풍병자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는 병이 중하여 혼자 움직일 수 없으니 자기를 도와줄 친구를 찾았고 다행히 친구들은 중풍병자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와 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용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그들이 믿음이 부족했다면 그냥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2) 끝까지 믿음을 내보인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
그러나 중풍병자와 친구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내보였습니다.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지붕을 뜯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참믿음은 이처럼 행함이 따르며 내가 겸비하게 낮아졌을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행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만일 중풍병자가 집 안에 누워서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제가 여기 누워 있는 것도 아시지요? 중풍병으로 움직일 수 없으니 제가 여기 누워 있어도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했다면 결코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을 불러서 예수님 앞에 찾아갔던 것이며 그의 친구들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중풍병자를 위하여 지붕까지 뜯어 가며 봉사할 수 있었지요.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있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믿음과 정성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그 즉시 깨끗하게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3) 믿음의 행함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받고 치료받은 중풍병자
마가복음 2:5을 보면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질병이 죄로 인해 온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신 말씀입니다(출 15:26). 신명기 28장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지켜 행하면 어떤 질병도 틈타지 못함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후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질병이 죄로 인해 생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실 때에 죄사함을 주신 이유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나아간다고 해서 무조건 죄사함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통회자복하여 죄를 회개한 다음에는 범죄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한 대로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악에서 선 가운데로 나오면 자연히 주님의 보혈의 피가 죄를 씻어 깨끗한 마음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행함으로 죄사함을 받은 중풍병자는 깨끗이 치료받고 자기가 실려 온 들것을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어떤 서기관들은 마음에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며 의논을 합니다. 중풍병자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료받은 것을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비를 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말씀하셨지요.
들것에 누워 있던 중풍병자가 일어나 걸어갔다는 것은 곧 죄사함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나온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다만 말씀으로 명하여 그의 병을 고쳐 주신 것을 보았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요 14:11).
2. 본교회에서 일어나 뛰고 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들
요한복음 14:12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100% 믿었기에 본교회에는 개척 당시부터 세상에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했던 질병들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치료된 간증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면 본교회를 통해 나타난 수많은 표적 중에서 오늘 말씀과 관련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할 때 참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1) 손수건을 통한 치료의 역사들
사도행전 19:11-12을 보면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했습니다.
이러한 성경상의 일들도 본제단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교회 주의 종들이나 일꾼들이 당회장님께 기도받은 손수건을 가지고 해외에서 대형집회를 인도하면 귀신들린 자가 온전함을 입고 눈 먼 자가 눈을 뜨며 벙어리가 말을 하고 귀머거리가 듣는가 하면 혼자서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뛰는 희한한 권능의 역사들이 무수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케냐, 북방, 필리핀, 인도네시아, 몽골, 네팔, 온두라스, 일본, 영국, 파키스탄, 독일, 벨기에, 네델란드 등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집회가 열려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2) 인도 연합대성회시 가네쉬 소년
2002년 인도 연합대성회에서는 이전과는 권능의 차원이 전혀 달라져 준비된 심령에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가 그대로 꽂혀서 즉시 고쳐지고 창조되는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한 예로, 가네쉬 소년은 1999년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친 골반 뼈에 종양이 생겨 결국은 우측 골반을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분 남은 골반뼈와 허벅지뼈에 금속판을 대고 아홉 개의 나사못을 박아 고정시켰지요. 현지 의사의 말에 의하면 금속판으로 연결시켰지만 지탱하는 힘이 약해서 목발을 짚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금속판이 부러지거나 나사가 느슨해지며, 받는 통증도 엄청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가네쉬는 인도 연합대성회에 참석하여 환자 기도를 받는데 온몸이 뜨거워지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후 모든 통증이 사라져 이제는 목발을 짚지 않아도 아무 통증이 없으며 자유롭게 걷고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두바이 선교시 인도 출신의 여인
그 이후 더욱 창조의 권능의 완성을 이루어 두바이 선교 때도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인도 출신의 한 여자 분은 교통사고 후유증과 합병증이 겹쳐 일 년 이상을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기운이 없어 말도 잘 못하였으며 안경이 떨어져도 혼자서 줍지 못했고 걷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만지기만 해도 통증을 호소할 정도로 고통 중에 있었지요. 그러나 당회장님께 기도받고 나서는 즉시 일어나 걷기 시작함으로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4) 미국 연합대성회시 구엘레모 파비오스 소년
구엘레모 파비오스 소년은 생후 이틀 만에 산소 부족으로 인해 소아마비가 되어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고 일어설 수도 없었습니다. 다리 수술을 4번이나 받았으나 치료받지 못하였고 걷기 위해 사용하던 보조기구들이 휠체어를 비롯 6가지 이상이나 되었지요. 병원에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다시 수술 일정을 잡아 놓은 상태였고 시력도 나빠 2살 때부터 13년간 안경을 착용하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뉴욕 성회 소식을 듣고 믿음으로 참석하였는데 기도를 받을 때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면서 누군가 다리를 직접 두들기며 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후 혼자 일어나 걷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력도 좋아져 안경 없이도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회 후 병원 검진을 받아 보았는데 좋아진 결과에 의사 선생님도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큰 권능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마음껏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체험하며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한다.
성경을 보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뛰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베드로, 사도 바울을 통해서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는 표적이 나타났지요(행 3:1-10, 14:8-11).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오늘날도 변함없이 역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를 통해 어떻게 해야 일어나 걷고 뛰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성경상에서 일어나 뛰고 걸은 사건
1)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된 중풍병자
가버나움에 사는 어떤 중풍병자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귀신을 쫓아낼 뿐만 아니라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신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중풍병자는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소문만을 듣고도 그대로 믿고 예수님을 꼭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니 중풍병자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는 병이 중하여 혼자 움직일 수 없으니 자기를 도와줄 친구를 찾았고 다행히 친구들은 중풍병자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와 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용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그들이 믿음이 부족했다면 그냥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2) 끝까지 믿음을 내보인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
그러나 중풍병자와 친구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내보였습니다.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지붕을 뜯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참믿음은 이처럼 행함이 따르며 내가 겸비하게 낮아졌을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행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만일 중풍병자가 집 안에 누워서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제가 여기 누워 있는 것도 아시지요? 중풍병으로 움직일 수 없으니 제가 여기 누워 있어도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했다면 결코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을 불러서 예수님 앞에 찾아갔던 것이며 그의 친구들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중풍병자를 위하여 지붕까지 뜯어 가며 봉사할 수 있었지요.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있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믿음과 정성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그 즉시 깨끗하게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3) 믿음의 행함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받고 치료받은 중풍병자
마가복음 2:5을 보면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질병이 죄로 인해 온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신 말씀입니다(출 15:26). 신명기 28장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지켜 행하면 어떤 질병도 틈타지 못함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후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질병이 죄로 인해 생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실 때에 죄사함을 주신 이유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나아간다고 해서 무조건 죄사함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통회자복하여 죄를 회개한 다음에는 범죄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한 대로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악에서 선 가운데로 나오면 자연히 주님의 보혈의 피가 죄를 씻어 깨끗한 마음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행함으로 죄사함을 받은 중풍병자는 깨끗이 치료받고 자기가 실려 온 들것을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어떤 서기관들은 마음에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며 의논을 합니다. 중풍병자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료받은 것을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비를 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말씀하셨지요.
들것에 누워 있던 중풍병자가 일어나 걸어갔다는 것은 곧 죄사함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나온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다만 말씀으로 명하여 그의 병을 고쳐 주신 것을 보았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요 14:11).
2. 본교회에서 일어나 뛰고 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들
요한복음 14:12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100% 믿었기에 본교회에는 개척 당시부터 세상에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했던 질병들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치료된 간증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면 본교회를 통해 나타난 수많은 표적 중에서 오늘 말씀과 관련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할 때 참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1) 손수건을 통한 치료의 역사들
사도행전 19:11-12을 보면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했습니다.
이러한 성경상의 일들도 본제단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교회 주의 종들이나 일꾼들이 당회장님께 기도받은 손수건을 가지고 해외에서 대형집회를 인도하면 귀신들린 자가 온전함을 입고 눈 먼 자가 눈을 뜨며 벙어리가 말을 하고 귀머거리가 듣는가 하면 혼자서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뛰는 희한한 권능의 역사들이 무수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케냐, 북방, 필리핀, 인도네시아, 몽골, 네팔, 온두라스, 일본, 영국, 파키스탄, 독일, 벨기에, 네델란드 등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집회가 열려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2) 인도 연합대성회시 가네쉬 소년
2002년 인도 연합대성회에서는 이전과는 권능의 차원이 전혀 달라져 준비된 심령에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가 그대로 꽂혀서 즉시 고쳐지고 창조되는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한 예로, 가네쉬 소년은 1999년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친 골반 뼈에 종양이 생겨 결국은 우측 골반을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분 남은 골반뼈와 허벅지뼈에 금속판을 대고 아홉 개의 나사못을 박아 고정시켰지요. 현지 의사의 말에 의하면 금속판으로 연결시켰지만 지탱하는 힘이 약해서 목발을 짚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금속판이 부러지거나 나사가 느슨해지며, 받는 통증도 엄청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가네쉬는 인도 연합대성회에 참석하여 환자 기도를 받는데 온몸이 뜨거워지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후 모든 통증이 사라져 이제는 목발을 짚지 않아도 아무 통증이 없으며 자유롭게 걷고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두바이 선교시 인도 출신의 여인
그 이후 더욱 창조의 권능의 완성을 이루어 두바이 선교 때도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인도 출신의 한 여자 분은 교통사고 후유증과 합병증이 겹쳐 일 년 이상을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기운이 없어 말도 잘 못하였으며 안경이 떨어져도 혼자서 줍지 못했고 걷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만지기만 해도 통증을 호소할 정도로 고통 중에 있었지요. 그러나 당회장님께 기도받고 나서는 즉시 일어나 걷기 시작함으로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4) 미국 연합대성회시 구엘레모 파비오스 소년
구엘레모 파비오스 소년은 생후 이틀 만에 산소 부족으로 인해 소아마비가 되어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고 일어설 수도 없었습니다. 다리 수술을 4번이나 받았으나 치료받지 못하였고 걷기 위해 사용하던 보조기구들이 휠체어를 비롯 6가지 이상이나 되었지요. 병원에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다시 수술 일정을 잡아 놓은 상태였고 시력도 나빠 2살 때부터 13년간 안경을 착용하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뉴욕 성회 소식을 듣고 믿음으로 참석하였는데 기도를 받을 때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면서 누군가 다리를 직접 두들기며 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후 혼자 일어나 걷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력도 좋아져 안경 없이도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회 후 병원 검진을 받아 보았는데 좋아진 결과에 의사 선생님도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큰 권능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마음껏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0-27
제43과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요 9:32-33
읽을말씀 : 요 9:32-33 | 외울말씀 : 요 9:32-33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행함을 내보임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응답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 후에 유대인들에게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첫 설교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행 2:22)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던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라는 증거를 갖고 계시는데 바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라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베드로 자신 역시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후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걷고 뛰게 하는(행 3:8) 등 큰 권능을 베풀었습니다. 이처럼 권능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표요,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확실한 방법이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자에게 권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1.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소경에 대해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것이 뉘 죄 때문인지를 여쭙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신 후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명하셨습니다. 그 즉시 소경이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져 보게 되었지요.
이 소경은 자신의 눈을 치료해 달라고 간청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와서 만나 주시고 고쳐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첫째로,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 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실로암 물가로 가서 눈을 씻었습니다. 그 결과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눈이 밝아져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는다 해도 소경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믿고 순종할 때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며 소경이 눈을 뜨는 것과 같이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로,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치료받은 후 유대인들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비록 육적인 눈은 닫혀 있었지만 선한 마음 가운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깨닫고 있었지요. 반면에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의 강한 틀로 인한 영적인 소경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초지종을 물을 때에 치료받은 소경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담대히 증거했지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다시 힐문하기를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하니 소경은 "선지자니이다" 대답합니다. 이는 소경된 자신의 눈을 고쳐 줄 수 있는 분이라면 분명 하나님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유대인들은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하면서 오히려 소경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더구나 죄인에게 권능을 주셔서 소경의 눈을 고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지요.
이처럼 유대인들은 진실을 보아도 믿지 못하고 깨달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소경은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진실을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9:31-33에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고백하고 있지요.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보고도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성경을 보면 소경을 눈 뜨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46:8에는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했고, 이사야 29:18에는 "그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35:5에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했는데, 곧 메시야가 오시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다는 말씀이지요.
이런 말씀들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틀과 악함 속에서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은 율법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선한 양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알았습니다. 또한 소경의 눈을 고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알았던 것이지요.
셋째로, 은혜를 받은 후 주님 앞에 나와 완전히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예수님을 만나 눈을 떴을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구원의 축복까지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 했을 때에 소경은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하시자 "주여 내가 믿나이다"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마음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질병을 치료해 주시고 축복을 주시니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진정 구주로 영접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입술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하신 대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어두움의 일을 벗고 날마다 빛 가운데 행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면 어찌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7:11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약속하신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이나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본교회에서도 눈을 뜨는 역사가 나타나
1982년 교회 개척 이후 지금까지 본교회에서도 눈을 뜨는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 왔습니다. 날 때부터 보이지 않던 눈이 기도받고 보이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아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벗고 간증하였지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 먼저 2002년 7월 온두라스 대성회시 일어났던 역사입니다.
마리아라는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는 두 살 때 심하게 열병을 앓은 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았으나 실패하여 10년 동안 오른쪽 눈으로는 빛조차 볼 수 없었는데 성회에 참석하여 저의 기도를 받고 빛을 보기 시작하였고 곧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죽어 버린 눈의 신경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새롭게 창조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또한 리카르도 목사님은 실명의 위기 속에서 단물을 통해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이분은 7년 전 사고로 인해 망막이 상하고 출혈이 심해서 병원에서는 점점 시력을 잃어 앞을 볼 수 없게 된다고 했는데 온두라스 연합대성회시 열렸던 목회자 세미나 첫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권능의 단물을 눈에 넣었는데 놀랍게도 사물이 점점 또렷이 보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한 것입니다.
아프리카 나이로비 지교회의 콤보라는 청년은 가족들에게 전도하면서 본교회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간증하고 저의 기도를 받은 권능의 손수건으로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 달력을 선물로 주었는데 두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가 전도하는 손자의 말을 듣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달력을 받아 펼치는 순간 두 눈이 떠지고 보이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18:25-26을 보면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행함으로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행함을 내보임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응답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 후에 유대인들에게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첫 설교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행 2:22)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던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라는 증거를 갖고 계시는데 바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라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베드로 자신 역시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후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걷고 뛰게 하는(행 3:8) 등 큰 권능을 베풀었습니다. 이처럼 권능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표요,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확실한 방법이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자에게 권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1.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소경에 대해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것이 뉘 죄 때문인지를 여쭙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신 후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명하셨습니다. 그 즉시 소경이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져 보게 되었지요.
이 소경은 자신의 눈을 치료해 달라고 간청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와서 만나 주시고 고쳐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첫째로,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 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실로암 물가로 가서 눈을 씻었습니다. 그 결과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눈이 밝아져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는다 해도 소경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믿고 순종할 때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며 소경이 눈을 뜨는 것과 같이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로,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치료받은 후 유대인들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비록 육적인 눈은 닫혀 있었지만 선한 마음 가운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깨닫고 있었지요. 반면에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의 강한 틀로 인한 영적인 소경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초지종을 물을 때에 치료받은 소경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담대히 증거했지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다시 힐문하기를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하니 소경은 "선지자니이다" 대답합니다. 이는 소경된 자신의 눈을 고쳐 줄 수 있는 분이라면 분명 하나님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유대인들은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하면서 오히려 소경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더구나 죄인에게 권능을 주셔서 소경의 눈을 고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지요.
이처럼 유대인들은 진실을 보아도 믿지 못하고 깨달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소경은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진실을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9:31-33에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고백하고 있지요.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보고도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성경을 보면 소경을 눈 뜨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46:8에는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했고, 이사야 29:18에는 "그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35:5에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했는데, 곧 메시야가 오시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다는 말씀이지요.
이런 말씀들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틀과 악함 속에서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은 율법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선한 양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알았습니다. 또한 소경의 눈을 고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알았던 것이지요.
셋째로, 은혜를 받은 후 주님 앞에 나와 완전히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예수님을 만나 눈을 떴을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구원의 축복까지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 했을 때에 소경은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하시자 "주여 내가 믿나이다"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마음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질병을 치료해 주시고 축복을 주시니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진정 구주로 영접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입술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하신 대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어두움의 일을 벗고 날마다 빛 가운데 행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면 어찌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7:11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약속하신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이나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본교회에서도 눈을 뜨는 역사가 나타나
1982년 교회 개척 이후 지금까지 본교회에서도 눈을 뜨는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 왔습니다. 날 때부터 보이지 않던 눈이 기도받고 보이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아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벗고 간증하였지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 먼저 2002년 7월 온두라스 대성회시 일어났던 역사입니다.
마리아라는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는 두 살 때 심하게 열병을 앓은 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았으나 실패하여 10년 동안 오른쪽 눈으로는 빛조차 볼 수 없었는데 성회에 참석하여 저의 기도를 받고 빛을 보기 시작하였고 곧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죽어 버린 눈의 신경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새롭게 창조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또한 리카르도 목사님은 실명의 위기 속에서 단물을 통해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이분은 7년 전 사고로 인해 망막이 상하고 출혈이 심해서 병원에서는 점점 시력을 잃어 앞을 볼 수 없게 된다고 했는데 온두라스 연합대성회시 열렸던 목회자 세미나 첫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권능의 단물을 눈에 넣었는데 놀랍게도 사물이 점점 또렷이 보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한 것입니다.
아프리카 나이로비 지교회의 콤보라는 청년은 가족들에게 전도하면서 본교회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간증하고 저의 기도를 받은 권능의 손수건으로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 달력을 선물로 주었는데 두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가 전도하는 손자의 말을 듣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달력을 받아 펼치는 순간 두 눈이 떠지고 보이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18:25-26을 보면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행함으로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0-20
제42과빛의 권능
요일 1:5
읽을말씀 : 요일 1:5 | 외울말씀 : 요일 1:5
교육목표 :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권능의 차원에 이름으로 마음껏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 속한 빛 안에는 창조주 하나님만의 권세와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권능의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의 어두운 세력들이 떠날 수밖에 없으며 갖가지 인생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권능의 빛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지, 권능의 초입 단계부터 완성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또한 피조물의 차원을 넘어선 권능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피조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의 4단계
권능을 받은 초입단계에서부터 피조물로서 행할 수 있는 최고의 권능까지는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람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은 네 단계의 권능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권능의 빛이 임하면 각 단계별로 어떠한 역사들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1) 권능의 1단계 : 성령의 불로 태우는 단계로서 '붉은 빛'으로 역사되는 단계
성령의 불은 온갖 병균이나 바이러스, 세균 등에 의해 생긴 갖가지 질병들을 태워서 치료하게 되는데 백혈병이나 암, 에이즈와 같은 병들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데 권능의 1단계와 병 고치는 은사와는 구분해야 합니다. 권능은 일단 주어지면 항상 나타나지만 병 고치는 은사는 항상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하게 쓰이면 거두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능력 면에 있어서도 병 고치는 은사와 권능과는 전혀 다릅니다. 병 고치는 은사는 아주 중한 병이나 희귀한 병과 같은 경우 쉽게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환자가 믿음이 적은 경우는 더 어렵지요. 그러나 권능의 단계에서는 환자가 조금만 믿음을 내보여도 단번에 역사될 수가 있습니다.
2) 권능의 2단계 : '푸른 빛'을 통해 역사되는 단계로서 영안이 열려 보면 마치 레이저광선과 같은 빛들이 쏟아져 나가 역사되는 단계
권능의 2단계에서는 먼저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줍니다. 예를 들어, 귀신 들린 사람, 사단의 역사를 받는 사람, 그리고 각종 세력으로 역사받는 사람에게 빛이 임하여 그를 사로잡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주지요. 자폐증 중에도 어두움의 세력으로 인한 것이나 그 밖에 정신적인 이상과 신경성 질병들이 치료됩니다.
또한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 중에서도 귀신의 역사로 인해 생긴 경우, 사단의 역사로 인해 신경쇠약에 걸리고 그로 인해 위장과 같은 소화기 계통까지 이상이 생긴 경우,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줄 때 함께 치료되는 것을 봅니다.
이 밖에도 병원에서 진찰해 보면 아무 이상이 없는데 이곳저곳이 아픈 경우도 귀신이나 악한 영에 의한 것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신속히 우상을 버리고 그동안 지었던 우상 숭배의 죄를 철저히 통회자복했을 때 권능의 빛이 임하여 사로잡고 있던 귀신이나 악한 영들을 물리쳐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또 권능의 2단계의 빛이 임하면 가정이나 사업터, 일터에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 축복이 임하지요.
다음으로, 권능의 2단계에서는 몸에서 떠난 영혼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허락하셨을 때만 기도하여 영혼을 불러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잠시 몸을 떠났던 영혼을 불러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역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장사된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향해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을 때,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창조의 최상의 권능이지요. 더욱이 다른 선지자나 사도가 떠난 영혼을 불러온 것은 일회성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권능을 여러 번 행하심으로 피조물과는 권능의 차원이 분명히 달랐음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3) 권능의 3단계 : '무색 또는 흰색'의 빛으로 역사되는 단계
3단계의 권능이 나타나면 모든 종류의 표적이 따르게 되는데 여기서 '표적'이란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들리지 않는 귀가 들리는 것, 또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짧았던 다리가 길어지며 소아마비나 뇌성마비가 온전해지는 등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외에도 나면서부터 기형이나 불구가 된 신체의 부분이나 완전히 퇴화된 부분이 온전케 되는 것, 그리고 부스러진 뼈가 붙어서 정상이 되거나 없던 뼈가 생겨나고 끊어진 힘줄이 붙는 것 등도 권능의 3단계에서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또한 권능의 3단계에서는 창조의 역사도 나타나므로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며 나쁜 눈이 좋은 눈으로, 잘 안 들리던 귀가 잘 들리는 귀로, 썩었거나 완전히 기능을 잃었던 오장육부가 새롭게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권능의 4단계 : 황금색으로 역사되는 단계로서 권능의 완성 단계
'권능의 완성'이란 피조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의 완성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권능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창세 이래 지금까지 피조물로서는 권능의 4단계를 이룬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권능만이 권능의 4단계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예수님께서는 4단계의 권능으로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설명드릴 창조의 최상의 권능, 곧 모든 권능의 완성 단계에서 행하신 것입니다.
권능의 4단계는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단계로서 천기를 움직이는 기사(奇事)가 나타나고 무생물도 명하는 대로 순종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물론 창조의 역사도 나타나는데,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와 말씀으로만 명하셔도 역사가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잔잔케 되고(마 8:23-27),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나무가 곧 말라 버렸습니다(마 21:18-19). 이처럼 자연과 만물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되었던 것입니다. 이 밖에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환자가 그 시로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마 8:8-13).
오늘날에도 본교회에서는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는 순간 멈추는 놀라운 기사가 일어나기도 하고 주변은 억수같이 비가 오는 때라도 본교회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오지 않으며, 짙은 구름이 기도하는 순간에 사라지고 반짝이는 별들이 드러나는 체험을 하지요. 올 하계 수련회시에도 전국이 찜통더위 속에 있는데 본교회 수련회 장소만은 시원한 날씨가 계속되었으며 심지어 춥다고 긴팔옷을 입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비도 야외 행사들을 피하여 내림으로 마치 비구름이 우리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 같았지요. 이 밖에도 '화기야 물러가라' 명하면 무생물인 화기도 권능 앞에 순종하여 물러가는 것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2. 피조물 차원 이상의 권능
권능의 4단계보다 높은 권능의 단계가 있는데 바로 피조물의 한계 안에서가 아닌 창조주의 입장에서 베풀어지는 권능의 역사입니다. 권능의 4단계 역시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며,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권능이지요. 그런데 권능의 4단계까지는 권능을 행하는 사람 편에서 그릇이 준비된 만큼 하나님의 권능을 끌어내리는 단계입니다. 준비된 그릇의 한계 안에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1) 창조의 근본된 권능
권능의 4단계 이상인 창조의 근본된 권능의 단계부터는 이러한 한계가 없으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외적으로 보기에는 4단계의 권능에서 일어나는 것들과 동일한 역사를 베푼다 해도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치료의 역사가 나타난다 해도 창조의 근본된 권능으로는 단에서만 기도해도 동시에 수천, 수만 명에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4단계의 권능으로 일일이 손을 얹고 기도할 때보다 오히려 더 크게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계 여러 연합대성회에서는 단에서 기도한 것만으로도 귀신이 나가고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앉은뱅이, 소아마비 등의 연약함과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불치, 난치병들이 치료되었지요.
이뿐 아니라 창조의 근본된 권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많은 기사들이 따르는데, 한 예로 본교회의 각종 행사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태양 주위에 원형 무지개나 이중, 삼중, 사중 원형 무지개 등 기이하고 희한한 무지개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는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전남 무안 앞 바다의 짠물이 단물로 변화된 사건과 이 단물을 통한 수많은 치료의 역사들, 사진이나 이름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도 시공을 초월하여 나타나는 치료의 역사들은 셀 수도 없습니다.
2) 창조의 최상의 완성된 권능
창조의 최상의 완성된 권능은 창조의 근본된 권능과는 또 다른 차원이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에 빛으로 홀로 계실 때의 바로 그 빛으로부터 나오는 권능입니다. 이것은 모든 권능의 최종 완성을 이루는 단계로서 창조의 최상의 권능을 마음껏 펼쳐 나갈 때가 바로 성령의 역사를 100% 나타내는 때이지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만물을 만드시면서 단지 말씀으로 명하여 이루셨던 것처럼 창조의 최상의 권능의 완성이 이루어지면 그때는 말씀으로만 명하여도 그대로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소경에게 "눈을 떠라" 하면 그 즉시 눈을 떠서 보게 되고 벙어리에게 "말하라" 하면 그 자리에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게 되지요. 어떤 연약함도 그 자리에서 명하는 대로 온전해지고 죽은 자도 "일어나라" 하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는 것은 물론이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2에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보다 더 큰 일도 능히 이루어낼 수가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깨어 기도하여 온전한 성결을 이룸으로 권능의 차원에까지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증거하여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며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권능의 차원에 이름으로 마음껏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 속한 빛 안에는 창조주 하나님만의 권세와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권능의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의 어두운 세력들이 떠날 수밖에 없으며 갖가지 인생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권능의 빛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지, 권능의 초입 단계부터 완성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또한 피조물의 차원을 넘어선 권능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피조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의 4단계
권능을 받은 초입단계에서부터 피조물로서 행할 수 있는 최고의 권능까지는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람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은 네 단계의 권능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권능의 빛이 임하면 각 단계별로 어떠한 역사들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1) 권능의 1단계 : 성령의 불로 태우는 단계로서 '붉은 빛'으로 역사되는 단계
성령의 불은 온갖 병균이나 바이러스, 세균 등에 의해 생긴 갖가지 질병들을 태워서 치료하게 되는데 백혈병이나 암, 에이즈와 같은 병들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데 권능의 1단계와 병 고치는 은사와는 구분해야 합니다. 권능은 일단 주어지면 항상 나타나지만 병 고치는 은사는 항상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하게 쓰이면 거두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능력 면에 있어서도 병 고치는 은사와 권능과는 전혀 다릅니다. 병 고치는 은사는 아주 중한 병이나 희귀한 병과 같은 경우 쉽게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환자가 믿음이 적은 경우는 더 어렵지요. 그러나 권능의 단계에서는 환자가 조금만 믿음을 내보여도 단번에 역사될 수가 있습니다.
2) 권능의 2단계 : '푸른 빛'을 통해 역사되는 단계로서 영안이 열려 보면 마치 레이저광선과 같은 빛들이 쏟아져 나가 역사되는 단계
권능의 2단계에서는 먼저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줍니다. 예를 들어, 귀신 들린 사람, 사단의 역사를 받는 사람, 그리고 각종 세력으로 역사받는 사람에게 빛이 임하여 그를 사로잡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주지요. 자폐증 중에도 어두움의 세력으로 인한 것이나 그 밖에 정신적인 이상과 신경성 질병들이 치료됩니다.
또한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 중에서도 귀신의 역사로 인해 생긴 경우, 사단의 역사로 인해 신경쇠약에 걸리고 그로 인해 위장과 같은 소화기 계통까지 이상이 생긴 경우,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줄 때 함께 치료되는 것을 봅니다.
이 밖에도 병원에서 진찰해 보면 아무 이상이 없는데 이곳저곳이 아픈 경우도 귀신이나 악한 영에 의한 것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신속히 우상을 버리고 그동안 지었던 우상 숭배의 죄를 철저히 통회자복했을 때 권능의 빛이 임하여 사로잡고 있던 귀신이나 악한 영들을 물리쳐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또 권능의 2단계의 빛이 임하면 가정이나 사업터, 일터에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 축복이 임하지요.
다음으로, 권능의 2단계에서는 몸에서 떠난 영혼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허락하셨을 때만 기도하여 영혼을 불러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잠시 몸을 떠났던 영혼을 불러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역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장사된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향해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을 때,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창조의 최상의 권능이지요. 더욱이 다른 선지자나 사도가 떠난 영혼을 불러온 것은 일회성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권능을 여러 번 행하심으로 피조물과는 권능의 차원이 분명히 달랐음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3) 권능의 3단계 : '무색 또는 흰색'의 빛으로 역사되는 단계
3단계의 권능이 나타나면 모든 종류의 표적이 따르게 되는데 여기서 '표적'이란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들리지 않는 귀가 들리는 것, 또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짧았던 다리가 길어지며 소아마비나 뇌성마비가 온전해지는 등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외에도 나면서부터 기형이나 불구가 된 신체의 부분이나 완전히 퇴화된 부분이 온전케 되는 것, 그리고 부스러진 뼈가 붙어서 정상이 되거나 없던 뼈가 생겨나고 끊어진 힘줄이 붙는 것 등도 권능의 3단계에서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또한 권능의 3단계에서는 창조의 역사도 나타나므로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며 나쁜 눈이 좋은 눈으로, 잘 안 들리던 귀가 잘 들리는 귀로, 썩었거나 완전히 기능을 잃었던 오장육부가 새롭게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권능의 4단계 : 황금색으로 역사되는 단계로서 권능의 완성 단계
'권능의 완성'이란 피조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의 완성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권능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창세 이래 지금까지 피조물로서는 권능의 4단계를 이룬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권능만이 권능의 4단계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예수님께서는 4단계의 권능으로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설명드릴 창조의 최상의 권능, 곧 모든 권능의 완성 단계에서 행하신 것입니다.
권능의 4단계는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단계로서 천기를 움직이는 기사(奇事)가 나타나고 무생물도 명하는 대로 순종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물론 창조의 역사도 나타나는데,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와 말씀으로만 명하셔도 역사가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잔잔케 되고(마 8:23-27),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나무가 곧 말라 버렸습니다(마 21:18-19). 이처럼 자연과 만물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되었던 것입니다. 이 밖에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환자가 그 시로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마 8:8-13).
오늘날에도 본교회에서는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는 순간 멈추는 놀라운 기사가 일어나기도 하고 주변은 억수같이 비가 오는 때라도 본교회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오지 않으며, 짙은 구름이 기도하는 순간에 사라지고 반짝이는 별들이 드러나는 체험을 하지요. 올 하계 수련회시에도 전국이 찜통더위 속에 있는데 본교회 수련회 장소만은 시원한 날씨가 계속되었으며 심지어 춥다고 긴팔옷을 입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비도 야외 행사들을 피하여 내림으로 마치 비구름이 우리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 같았지요. 이 밖에도 '화기야 물러가라' 명하면 무생물인 화기도 권능 앞에 순종하여 물러가는 것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2. 피조물 차원 이상의 권능
권능의 4단계보다 높은 권능의 단계가 있는데 바로 피조물의 한계 안에서가 아닌 창조주의 입장에서 베풀어지는 권능의 역사입니다. 권능의 4단계 역시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며,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권능이지요. 그런데 권능의 4단계까지는 권능을 행하는 사람 편에서 그릇이 준비된 만큼 하나님의 권능을 끌어내리는 단계입니다. 준비된 그릇의 한계 안에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1) 창조의 근본된 권능
권능의 4단계 이상인 창조의 근본된 권능의 단계부터는 이러한 한계가 없으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외적으로 보기에는 4단계의 권능에서 일어나는 것들과 동일한 역사를 베푼다 해도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치료의 역사가 나타난다 해도 창조의 근본된 권능으로는 단에서만 기도해도 동시에 수천, 수만 명에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4단계의 권능으로 일일이 손을 얹고 기도할 때보다 오히려 더 크게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계 여러 연합대성회에서는 단에서 기도한 것만으로도 귀신이 나가고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앉은뱅이, 소아마비 등의 연약함과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불치, 난치병들이 치료되었지요.
이뿐 아니라 창조의 근본된 권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많은 기사들이 따르는데, 한 예로 본교회의 각종 행사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태양 주위에 원형 무지개나 이중, 삼중, 사중 원형 무지개 등 기이하고 희한한 무지개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는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전남 무안 앞 바다의 짠물이 단물로 변화된 사건과 이 단물을 통한 수많은 치료의 역사들, 사진이나 이름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도 시공을 초월하여 나타나는 치료의 역사들은 셀 수도 없습니다.
2) 창조의 최상의 완성된 권능
창조의 최상의 완성된 권능은 창조의 근본된 권능과는 또 다른 차원이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에 빛으로 홀로 계실 때의 바로 그 빛으로부터 나오는 권능입니다. 이것은 모든 권능의 최종 완성을 이루는 단계로서 창조의 최상의 권능을 마음껏 펼쳐 나갈 때가 바로 성령의 역사를 100% 나타내는 때이지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만물을 만드시면서 단지 말씀으로 명하여 이루셨던 것처럼 창조의 최상의 권능의 완성이 이루어지면 그때는 말씀으로만 명하여도 그대로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소경에게 "눈을 떠라" 하면 그 즉시 눈을 떠서 보게 되고 벙어리에게 "말하라" 하면 그 자리에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게 되지요. 어떤 연약함도 그 자리에서 명하는 대로 온전해지고 죽은 자도 "일어나라" 하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는 것은 물론이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2에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보다 더 큰 일도 능히 이루어낼 수가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깨어 기도하여 온전한 성결을 이룸으로 권능의 차원에까지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증거하여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며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