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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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1
제18과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예배
요 4:24
읽을말씀 : 요 4:24 | 외울말씀 : 롬 12:1
교육목표 : 예배의 영적인 의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예배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 한다.
1. 예배의 의미
예배(禮拜)의 사전적인 의미는 '신(神)에게 경의(敬意)를 나타내며 경배하는 의식'입니다. 곧 하나님께 존경과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의식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온갖 피조물을 경배하며 헛된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나 오늘날이나 동일하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셔서 사람에게 주셨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로 타락한 사람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있는가 하면, 받지 않으시는 예배도 있습니다. 창세기 4:3-5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린 피의 제사는 열납하셨으나,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드린 제사와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4에 기록된 대로 마음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순종한 아벨의 제사를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낫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3:8-14에는 사울이 자신의 권세를 가지고 제사장의 직무를 범하였으므로 버림받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말라기 1:8-10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때에 자신들에게 쓸모없는 최하의 것으로 드렸기에 종교적인 형식과 형태는 갖추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은 예배는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장로들의 유전은 엄격히 지켰으나 그들의 중심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크게 책망하셨습니다(마 15:7-9, 23:13-18).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잘못된 형태로 드리는 예배나 자기 방식대로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예배는 자신의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예배의 원칙에 따라 드려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예배를 만들고 자기의 마음에 흡족함을 주는 방법으로 예배하는 이방종교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자,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림으로 지혜와 지식뿐만 아니라 구하지도 않은 부와 재물과 존영까지 받았습니다(왕상 3:3-15, 대하 1:1-13). 이처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뿐만 아니라 놀라운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예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마음대로 살다가 주일예배에 한번 참석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리는 것은 예배드리는 삶의 연장이므로 우리의 삶과 분리된 예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0:27에 기록된 대로 삶 속에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1에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기록되어 있듯이 구약시대의 제사는 사람들이 고안해 낸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시고 계시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 단절되었던 교제를 회복시키고자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제도가 바로 구약의 제사이지요.
구약의 제사법을 살펴보면 제사의 종류가 의미에 따라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등으로 구분되어 있고, 제사 예물 또한 제사의 종류와 형편에 따라 소, 양, 염소, 비둘기, 밀가루 등으로 일정한 규례가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복잡하고 엄격한 형식과 절차를 좇아야 하는 행위적인 의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었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야 하고 그 피로 속죄제를 드려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늘 같은 제사로 드리는 양이나 염소의 피가 인간의 죄를 능히 깨끗게 할 수 없었으므로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희생제물이 되셔서(히 9:28) 복잡하고 엄격한 의식을 좇는 구약의 피의 제사가 필요 없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께 피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이 신약에서의 예배입니다(히 9:11-12).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이었던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그 피로 제사를 드렸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후인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히 10:11-12) 이로써 우리 죄가 대속되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으로 믿는 믿음의 행함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이며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롬 12:1). 따라서 구약시대에는 제사를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구약의 제사가 흠없고 정결한 제물로 드려질 때 하나님께 열납되었듯이 신약의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3.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요한복음 4:23-24을 보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이나 그리심 산과 같은 특정한 장소적인 예배가 아니라 예배하는 자의 마음 중심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어떻게 드리는 것일까요?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66권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것을 말하며,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예배를 드릴 때 무례히 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5을 보면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 했으니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무례히 행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특히 아래와 같은 사항을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배시간에 지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와 법도를 따라 행해야 하며 이것이 마음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예배시간에 지각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무례히 행하는 것이므로 시간 안에 도착하여 기도하면서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드릴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둘째로, 예배시간에 말씀 듣기에 전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거룩한 단 위에서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 세워진 목자는 양 떼들을 천성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씀을 증거할 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고 멍하니 다른 곳을 쳐다본다거나 옆 사람과 소곤거리며 이야기한다거나 가정, 일터, 사업터에 대한 염려와 근심 걱정 등으로 잡념에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 앞에 무례히 행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예배시간에 졸거나 잠을 자는 행위도 무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을 흔드는 것도 무례한 행동입니다. 윗사람과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의 말을 끊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기도로써 대화하고 있는 사람을 흔들어 기도를 끊게 하는 무례한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술과 담배를 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줄 아는데 술과 담배를 하고 예배에 참석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만 아니라 무례한 일입니다. 전도받아 이제 교회에 나온 초신자라면 아직 술이나 담배를 끊지 못하는 믿음이 어린 상태이므로 하나님께서도 죄 있다고 하시지 않지만, 직분을 가진 사람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무례한 일인 것입니다.
넷째로, 예배 분위기를 흐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오직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기도와 찬양을 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성전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예배시간에 어린아이가 울거나 마구 떠들며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둔다면 예배에 방해가 되므로 하나님께 무례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성전에서 혈기를 내거나 큰 소리를 친다거나 세상 말을 하는 것도 무례한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에 껌을 씹는다거나 옆 사람과 웃고 떠드는 행위, 예배 도중에 일어나 나가는 행위 등은 하나님 앞에 무례한 일이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도 무례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모자를 쓰고 있거나 티셔츠나 운동복 차림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슬리퍼를 신고 오는 경우는 예의에서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외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됨과 중심이 외모에 표현되기도 하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준비하는 정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나 예물의 많고 적은 가치를 따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그분이 명하신 대로 각자 처한 형편에서 드리는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정성껏 준비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와 힘껏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소원에 응답해 주시지만, 무례하게 드리는 예배와 예물은 받지도 않으시고 응답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온전한 희생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와 예물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예물이 되도록 힘쓰며,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기쁘시게 해 드리는 영적 예배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예배의 영적인 의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예배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 한다.
1. 예배의 의미
예배(禮拜)의 사전적인 의미는 '신(神)에게 경의(敬意)를 나타내며 경배하는 의식'입니다. 곧 하나님께 존경과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의식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온갖 피조물을 경배하며 헛된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나 오늘날이나 동일하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셔서 사람에게 주셨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로 타락한 사람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있는가 하면, 받지 않으시는 예배도 있습니다. 창세기 4:3-5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린 피의 제사는 열납하셨으나,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드린 제사와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4에 기록된 대로 마음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순종한 아벨의 제사를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낫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3:8-14에는 사울이 자신의 권세를 가지고 제사장의 직무를 범하였으므로 버림받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말라기 1:8-10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때에 자신들에게 쓸모없는 최하의 것으로 드렸기에 종교적인 형식과 형태는 갖추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은 예배는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장로들의 유전은 엄격히 지켰으나 그들의 중심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크게 책망하셨습니다(마 15:7-9, 23:13-18).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잘못된 형태로 드리는 예배나 자기 방식대로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예배는 자신의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예배의 원칙에 따라 드려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예배를 만들고 자기의 마음에 흡족함을 주는 방법으로 예배하는 이방종교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자,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림으로 지혜와 지식뿐만 아니라 구하지도 않은 부와 재물과 존영까지 받았습니다(왕상 3:3-15, 대하 1:1-13). 이처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뿐만 아니라 놀라운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예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마음대로 살다가 주일예배에 한번 참석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리는 것은 예배드리는 삶의 연장이므로 우리의 삶과 분리된 예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0:27에 기록된 대로 삶 속에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1에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기록되어 있듯이 구약시대의 제사는 사람들이 고안해 낸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시고 계시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 단절되었던 교제를 회복시키고자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제도가 바로 구약의 제사이지요.
구약의 제사법을 살펴보면 제사의 종류가 의미에 따라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등으로 구분되어 있고, 제사 예물 또한 제사의 종류와 형편에 따라 소, 양, 염소, 비둘기, 밀가루 등으로 일정한 규례가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복잡하고 엄격한 형식과 절차를 좇아야 하는 행위적인 의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었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야 하고 그 피로 속죄제를 드려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늘 같은 제사로 드리는 양이나 염소의 피가 인간의 죄를 능히 깨끗게 할 수 없었으므로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희생제물이 되셔서(히 9:28) 복잡하고 엄격한 의식을 좇는 구약의 피의 제사가 필요 없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께 피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이 신약에서의 예배입니다(히 9:11-12).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이었던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그 피로 제사를 드렸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후인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히 10:11-12) 이로써 우리 죄가 대속되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으로 믿는 믿음의 행함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이며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롬 12:1). 따라서 구약시대에는 제사를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구약의 제사가 흠없고 정결한 제물로 드려질 때 하나님께 열납되었듯이 신약의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3.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요한복음 4:23-24을 보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이나 그리심 산과 같은 특정한 장소적인 예배가 아니라 예배하는 자의 마음 중심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어떻게 드리는 것일까요?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66권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것을 말하며,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예배를 드릴 때 무례히 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5을 보면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 했으니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무례히 행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특히 아래와 같은 사항을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배시간에 지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와 법도를 따라 행해야 하며 이것이 마음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예배시간에 지각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무례히 행하는 것이므로 시간 안에 도착하여 기도하면서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드릴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둘째로, 예배시간에 말씀 듣기에 전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거룩한 단 위에서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 세워진 목자는 양 떼들을 천성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씀을 증거할 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고 멍하니 다른 곳을 쳐다본다거나 옆 사람과 소곤거리며 이야기한다거나 가정, 일터, 사업터에 대한 염려와 근심 걱정 등으로 잡념에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 앞에 무례히 행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예배시간에 졸거나 잠을 자는 행위도 무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을 흔드는 것도 무례한 행동입니다. 윗사람과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의 말을 끊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기도로써 대화하고 있는 사람을 흔들어 기도를 끊게 하는 무례한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술과 담배를 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줄 아는데 술과 담배를 하고 예배에 참석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만 아니라 무례한 일입니다. 전도받아 이제 교회에 나온 초신자라면 아직 술이나 담배를 끊지 못하는 믿음이 어린 상태이므로 하나님께서도 죄 있다고 하시지 않지만, 직분을 가진 사람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무례한 일인 것입니다.
넷째로, 예배 분위기를 흐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오직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기도와 찬양을 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성전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예배시간에 어린아이가 울거나 마구 떠들며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둔다면 예배에 방해가 되므로 하나님께 무례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성전에서 혈기를 내거나 큰 소리를 친다거나 세상 말을 하는 것도 무례한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에 껌을 씹는다거나 옆 사람과 웃고 떠드는 행위, 예배 도중에 일어나 나가는 행위 등은 하나님 앞에 무례한 일이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도 무례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모자를 쓰고 있거나 티셔츠나 운동복 차림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슬리퍼를 신고 오는 경우는 예의에서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외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됨과 중심이 외모에 표현되기도 하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준비하는 정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나 예물의 많고 적은 가치를 따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그분이 명하신 대로 각자 처한 형편에서 드리는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정성껏 준비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와 힘껏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소원에 응답해 주시지만, 무례하게 드리는 예배와 예물은 받지도 않으시고 응답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온전한 희생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와 예물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예물이 되도록 힘쓰며,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기쁘시게 해 드리는 영적 예배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5-04
제17과영적인 어린아이
마 18:1-4, 23:12
읽을말씀 : 마 18:1-4, 23:12 | 외울말씀 : 마 18:3
교육목표 : 어린이 주일을 앞두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천국을 소유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소망은 아름다운 천국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 말씀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은 우리가 아이처럼 몸집이 작아지거나, 유치한 행동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린아이에게서 본받아야 할 영적인 특징은 무엇일까요?
1. 영적인 어린아이의 특징
1) 단순합니다
마치 하얀 백지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처럼 어린아이는 어른이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동생을 때리면 안 된다, 군것질을 많이 하면 안 된다." 하고 가르쳐 주면 가르침을 받은 대로 받아들입니다. 반면에 어른들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의 생각과 이론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생각으로 쉽게 따르지 못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어떤 것은 진리이고, 어떤 것은 비진리라고 하면 그대로 마음에 받아들여 믿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 유익을 따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아멘 하고 순종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하실 때도 '이것이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인가, 나에게 유익이 되는가?'를 따지지 않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이니 반드시 선하신 뜻이 있는 줄 믿고 즉시 순종했던 것입니다.
2) 순수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좋은 것을 얻으면 그 자체로 행복해하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등 어른과 달리 순수하게 반응하는 것을 봅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두려움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어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배웠어도 살아가면서 악에 물들어 있는 만큼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순수함이 사라지면 죄를 범하면서도 무감각해지는 것이지요.
진리 안에 들어와서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면 선악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한 것을 보면 쉽게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고 악한 것은 몸서리치도록 싫어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악이라 하시면 몹시 싫어하게 되고 어찌하든 범죄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을 이루어 미세한 죄악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오직 선한 것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3) 교만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교만하지 않기 때문에 어른들이 무엇을 가르쳐 주면 '옳다, 그르다.' 하며 자기 주장으로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높아지거나 인정받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 중에 자신의 지식과 맞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 있다 해도 판단하거나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믿고 순종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 해도 권능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것을 겸손히 인정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들을 때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도 체험하기를 사모합니다. 진리를 들으면 그대로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와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2.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려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 누가 큰 자인지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를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리라" 말씀하시며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디어지고 높아진 마음을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단순하며 겸손한 마음을 소유하여 천국에서 큰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불같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죄악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2:16을 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이 세상은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 자라는 동안 세상의 비진리들을 보고 듣고 배우면서 교만, 혈기, 판단, 정죄, 욕심, 시기, 질투, 미움 등 점점 마음이 죄악으로 물들어 갑니다.
디모데전서 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말씀한 대로 불같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런 죄악들을 마음에서 벗어 버려야 합니다. 모든 죄악들을 벗어 버리는 만큼 깨끗한 양심과 순수한 마음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로 믿어지고 깨달아지며 더 온전히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모든 이론과 생각을 파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0:5을 보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이론과 모든 생각, 곧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을 때는 무조건 자기 이론과 생각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가진 대부분의 지식과 이론은 원수 마귀가 주관하는 세상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자신이 가진 생각과 이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부인하려 한다면 이는 말씀 자체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높아진 교만입니다. 이렇게 생각과 이론을 동원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좇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4장을 보면 한 여인이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립니다. 이를 본 어떤 사람들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저가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다' 말씀하시며,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셨지요. 이 여인은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성령의 주관을 좇아 순종했기에 예수님의 칭찬을 받고 길이 기억된 바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생각과 이론을 동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사람을 비난하였고 끝까지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므로 결국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7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같은 기도 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항상 자신의 생각과 말을 진리에 비춰 보아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모든 이론과 지식을 파하며 오직 영의 생각과 성령의 소욕을 좇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어 천국에서 큰 자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는 부와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사람, 혹은 지식이나 재능이 뛰어난 사람, 연륜을 많이 쌓은 사람이 큰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될 때, 또 섬기는 사람이 될 때 큰 자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같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어 하나님 앞에 큰 자라 인정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어린이 주일을 앞두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천국을 소유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소망은 아름다운 천국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 말씀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은 우리가 아이처럼 몸집이 작아지거나, 유치한 행동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린아이에게서 본받아야 할 영적인 특징은 무엇일까요?
1. 영적인 어린아이의 특징
1) 단순합니다
마치 하얀 백지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처럼 어린아이는 어른이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동생을 때리면 안 된다, 군것질을 많이 하면 안 된다." 하고 가르쳐 주면 가르침을 받은 대로 받아들입니다. 반면에 어른들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의 생각과 이론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생각으로 쉽게 따르지 못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어떤 것은 진리이고, 어떤 것은 비진리라고 하면 그대로 마음에 받아들여 믿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 유익을 따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아멘 하고 순종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하실 때도 '이것이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인가, 나에게 유익이 되는가?'를 따지지 않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이니 반드시 선하신 뜻이 있는 줄 믿고 즉시 순종했던 것입니다.
2) 순수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좋은 것을 얻으면 그 자체로 행복해하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등 어른과 달리 순수하게 반응하는 것을 봅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두려움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어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배웠어도 살아가면서 악에 물들어 있는 만큼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순수함이 사라지면 죄를 범하면서도 무감각해지는 것이지요.
진리 안에 들어와서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면 선악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한 것을 보면 쉽게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고 악한 것은 몸서리치도록 싫어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악이라 하시면 몹시 싫어하게 되고 어찌하든 범죄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을 이루어 미세한 죄악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오직 선한 것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3) 교만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교만하지 않기 때문에 어른들이 무엇을 가르쳐 주면 '옳다, 그르다.' 하며 자기 주장으로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높아지거나 인정받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 중에 자신의 지식과 맞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 있다 해도 판단하거나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믿고 순종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 해도 권능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것을 겸손히 인정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들을 때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도 체험하기를 사모합니다. 진리를 들으면 그대로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와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2.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려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 누가 큰 자인지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를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리라" 말씀하시며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디어지고 높아진 마음을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단순하며 겸손한 마음을 소유하여 천국에서 큰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불같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죄악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2:16을 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이 세상은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 자라는 동안 세상의 비진리들을 보고 듣고 배우면서 교만, 혈기, 판단, 정죄, 욕심, 시기, 질투, 미움 등 점점 마음이 죄악으로 물들어 갑니다.
디모데전서 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말씀한 대로 불같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런 죄악들을 마음에서 벗어 버려야 합니다. 모든 죄악들을 벗어 버리는 만큼 깨끗한 양심과 순수한 마음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로 믿어지고 깨달아지며 더 온전히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모든 이론과 생각을 파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0:5을 보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이론과 모든 생각, 곧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을 때는 무조건 자기 이론과 생각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가진 대부분의 지식과 이론은 원수 마귀가 주관하는 세상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자신이 가진 생각과 이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부인하려 한다면 이는 말씀 자체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높아진 교만입니다. 이렇게 생각과 이론을 동원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좇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4장을 보면 한 여인이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립니다. 이를 본 어떤 사람들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저가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다' 말씀하시며,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셨지요. 이 여인은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성령의 주관을 좇아 순종했기에 예수님의 칭찬을 받고 길이 기억된 바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생각과 이론을 동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사람을 비난하였고 끝까지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므로 결국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7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같은 기도 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항상 자신의 생각과 말을 진리에 비춰 보아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모든 이론과 지식을 파하며 오직 영의 생각과 성령의 소욕을 좇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어 천국에서 큰 자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는 부와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사람, 혹은 지식이나 재능이 뛰어난 사람, 연륜을 많이 쌓은 사람이 큰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될 때, 또 섬기는 사람이 될 때 큰 자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같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어 하나님 앞에 큰 자라 인정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4-27
제16과하나님의 자녀된 축복
요 3:16, 요삼 1:2
읽을말씀 : 요 3:16, 요삼 1:2 | 외울말씀 : 빌 3:20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는 이 땅의 어떠한 권세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이 어떠한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그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한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며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누리는 축복으로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1.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늘나라 시민권을 얻게 됩니다
가정에 자녀가 태어나면 이름을 호적에 올리게 되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호적에 등록된 사람이어야 한 국가의 어엿한 국민으로 인정을 받고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고(빌 4:3),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되며(요 1:12),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고(빌 3:20), 영생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마지막 심판 날에 죄의 삯으로 영원한 사망인 불못에 던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계 20:15). 성경은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에 이르게 됨을 누누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신상을 만들어 우상 숭배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시니 모세는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고 간구합니다(출 32:7-32).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모세일지라도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면 영원한 사망의 길인 지옥에 가서 고통당할 수밖에 없음을 모세 자신이 잘 알고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용서받을 수 있다면 자신은 그러한 고통을 당할지라도 감수하겠다는 마음 중심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성령을 선물로 받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세상과 짝하여 죄악 가운데 살아간다면 성령은 점점 소멸되어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지게 됩니다.
성령이 완전히 소멸되면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완전히 지워지게 되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릴 수 없게 되고 죄의 삯인 사망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지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주님이 시인할 것을 약속하셨으니(계 3:5)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 깨달아 성령이 소멸되지 않도록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게 된 것(롬 3:23-24)을 항상 감사하며 죄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할 뿐 아니라 늘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며 죄를 싸워 버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을 좇아 행하면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본분을 찾게 되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영혼이 잘되려면 영이 사람의 주인으로서 혼을 지배하고 다스림으로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되면 죄는 버리고 의를 행하기 위하여 힘쓰게 되는데 죄를 버린 만큼 주님의 마음을 닮게 되는 것이요, 영혼이 잘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는 생령이 되게 하셨으므로(창 2:7) 영이 사람의 주인이었고 영생의 축복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영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창 2:17) 바로 생령의 죽음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기고 사람의 혼을 주관하는 사단의 역사를 받아 마음을 죄로 물들게 하고 정욕을 좇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혼이 잘된 사람입니다. 영은 사람의 주인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혼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혼은 영의 지시에 순종하는 종과 같은 위치에서, 육은 영혼이 거하는 장막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영과 혼, 육이 되기를 원하십니다(살전 5:23). 그래서 이미 죽은 영과 혼, 육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는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성령이 죽었던 영을 살리므로 산 영과 혼, 육으로 변화됩니다.
성경에는 영, 혼, 영혼을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죽은 영이 살아난 사람은 몸의 활동이 정지되었어도 사람의 주인인 영이 살아있으므로 죽었다 하지 않고 잔다고 표현합니다.
누가복음 8:52-55을 보면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하여 영이 돌아오니 일어났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인 구약시대에는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몸이 활동을 멈추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7:21-22을 보면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했지요. 이는 영이 죽고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혼이 돌아왔을 때 살아났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영과 혼을 합하여 영혼으로 기록한 누가복음 23:46에는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했습니다. '영혼'이라는 것은 영이 주인으로서 영의 지시에 혼이 순종함으로 영과 혼이 하나가 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과 혼이 하나 되어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아 모든 것에 풍성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요한삼서 1:2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면 주님께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 만사가 형통하도록 간구하시므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셔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기도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질병에 걸리지 않고 강건하며 물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잘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자녀된 본분을 행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 땅에서도 모든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고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분을 지켜 행하게 되면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7:21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란 사람의 생각이나 공상 속에 있는 막연한 세계가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의 나라로서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려지는 가장 이상적인 나라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실재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셨습니다(요 14:2-3).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눈물, 슬픔, 질병, 고통, 죽음이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 있는 사람이 되어 영화를 누리며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태어났던 많은 성인 군자들이 이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해결할 수 없었으며 자신들도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해결해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생령(生靈)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이며(창 2:7),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창 1:28).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으며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누구나 죽음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대가로 인해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끌려가서 세세토록 고통을 받아야 하는 영원한 사망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요, 모든 인류가 참생명을 얻어 구원에 이르고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딤전 2:4). 따라서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우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하는 것은 물론,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는 만사형통한 축복을 누리며 천국을 온전히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는 이 땅의 어떠한 권세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이 어떠한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그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한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며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누리는 축복으로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1.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늘나라 시민권을 얻게 됩니다
가정에 자녀가 태어나면 이름을 호적에 올리게 되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호적에 등록된 사람이어야 한 국가의 어엿한 국민으로 인정을 받고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고(빌 4:3),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되며(요 1:12),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고(빌 3:20), 영생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마지막 심판 날에 죄의 삯으로 영원한 사망인 불못에 던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계 20:15). 성경은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에 이르게 됨을 누누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신상을 만들어 우상 숭배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시니 모세는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고 간구합니다(출 32:7-32).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모세일지라도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면 영원한 사망의 길인 지옥에 가서 고통당할 수밖에 없음을 모세 자신이 잘 알고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용서받을 수 있다면 자신은 그러한 고통을 당할지라도 감수하겠다는 마음 중심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성령을 선물로 받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세상과 짝하여 죄악 가운데 살아간다면 성령은 점점 소멸되어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지게 됩니다.
성령이 완전히 소멸되면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완전히 지워지게 되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릴 수 없게 되고 죄의 삯인 사망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지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주님이 시인할 것을 약속하셨으니(계 3:5)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 깨달아 성령이 소멸되지 않도록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게 된 것(롬 3:23-24)을 항상 감사하며 죄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할 뿐 아니라 늘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며 죄를 싸워 버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을 좇아 행하면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본분을 찾게 되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영혼이 잘되려면 영이 사람의 주인으로서 혼을 지배하고 다스림으로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되면 죄는 버리고 의를 행하기 위하여 힘쓰게 되는데 죄를 버린 만큼 주님의 마음을 닮게 되는 것이요, 영혼이 잘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는 생령이 되게 하셨으므로(창 2:7) 영이 사람의 주인이었고 영생의 축복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영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창 2:17) 바로 생령의 죽음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기고 사람의 혼을 주관하는 사단의 역사를 받아 마음을 죄로 물들게 하고 정욕을 좇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혼이 잘된 사람입니다. 영은 사람의 주인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혼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혼은 영의 지시에 순종하는 종과 같은 위치에서, 육은 영혼이 거하는 장막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영과 혼, 육이 되기를 원하십니다(살전 5:23). 그래서 이미 죽은 영과 혼, 육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는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성령이 죽었던 영을 살리므로 산 영과 혼, 육으로 변화됩니다.
성경에는 영, 혼, 영혼을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죽은 영이 살아난 사람은 몸의 활동이 정지되었어도 사람의 주인인 영이 살아있으므로 죽었다 하지 않고 잔다고 표현합니다.
누가복음 8:52-55을 보면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하여 영이 돌아오니 일어났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인 구약시대에는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몸이 활동을 멈추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7:21-22을 보면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했지요. 이는 영이 죽고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혼이 돌아왔을 때 살아났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영과 혼을 합하여 영혼으로 기록한 누가복음 23:46에는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했습니다. '영혼'이라는 것은 영이 주인으로서 영의 지시에 혼이 순종함으로 영과 혼이 하나가 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과 혼이 하나 되어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아 모든 것에 풍성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요한삼서 1:2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면 주님께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 만사가 형통하도록 간구하시므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셔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기도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질병에 걸리지 않고 강건하며 물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잘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자녀된 본분을 행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 땅에서도 모든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고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분을 지켜 행하게 되면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7:21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란 사람의 생각이나 공상 속에 있는 막연한 세계가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의 나라로서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려지는 가장 이상적인 나라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실재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셨습니다(요 14:2-3).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눈물, 슬픔, 질병, 고통, 죽음이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 있는 사람이 되어 영화를 누리며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태어났던 많은 성인 군자들이 이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해결할 수 없었으며 자신들도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해결해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생령(生靈)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이며(창 2:7),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창 1:28).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으며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누구나 죽음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대가로 인해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끌려가서 세세토록 고통을 받아야 하는 영원한 사망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요, 모든 인류가 참생명을 얻어 구원에 이르고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딤전 2:4). 따라서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우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하는 것은 물론,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는 만사형통한 축복을 누리며 천국을 온전히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4-20
제15과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으려면
롬 10:9-10
읽을말씀 : 롬 10:9-10 | 외울말씀 : 요 1:12
교육목표 :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축복된 삶을 누리려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는 이 세상의 어떤 권세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의 자녀라 할지라도 권세가 대단한데 하물며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주 만물을 치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소유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聖徒)가 있는가 하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교인(敎人)이 있습니다. 교인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을 뿐,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의 반열에 들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신속히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는 구세주로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려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하지요. 그리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사랑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달아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인간의 시조인 아담의 불순종 이후 그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롬 3:10-12). 이는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천지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나타내 보이셨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우상을 섬기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롬 1:20-32).
또한 아담의 범죄 이후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며, 성장하면서 진리가 아닌 가르침을 받으며 생활하기에 스스로 많은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한 예로, 어린아이는 아무 죄가 없는 것같이 보이지만, 엄마의 품에 다른 아이가 안겨 있거나 동생이 자기보다 더 사랑을 받는다고 느껴지면 보채며 질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부모로부터 기를 받아 본성 속에 악이 있으므로 조금만 자라도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죄로 인하여 스스로는 아무리 의롭게 살아온 것 같아도 악을 행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하나님 보시기에는 의인은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입니다(롬 3:23-24).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의인이 되는 것일까요?
갈라디아서 3:11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했고, 사도행전 4:12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대속자이시며 죄로부터의 구원자이심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세주가 되심을 믿으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 보증으로 성령을 마음에 주십니다(고후 1:22).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셔서(요 1:12)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2. 성령의 소욕을 좇아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셨고, 거듭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가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답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어떠한 뜻일까요?
물이란 영생수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의미합니다(요 4:14).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인임을 깨달아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받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므로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받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으로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과 함께 마음에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이는 이제까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요일 2:16) 살아왔던 육신의 법과 새롭게 성령의 소욕을 좇아 살고자 하는 성령의 법이 싸우게 되기 때문입니다(롬 7:22-24).
이는 살아난 영과 이제까지 사람의 주인 노릇을 하던 혼의 싸움인데 믿음이 성장하여 영이 성장한 만큼 영의 힘과 혼의 힘이 대등해집니다. 그러므로 선의 세력과 악의 세력이 서로 이기고자 하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데,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으로(롬 8:26) 결국 영이 승리하여 평안을 얻게 해 주십니다.
이와 같이 영과 혼의 싸움에서 영이 승리하려면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쳐야 하며,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16-17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6-7에도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서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죄악이 버려지고 혼이 영에게 순종하는 영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행함 있는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지만(롬 10:17) 들어서 알되 지식으로만 담아 놓고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 2:17). 그래서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시며 행함 있는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보고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 곧 육적인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행함이 따르는 만큼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사랑으로 말씀하신 것이지 우리를 힘들게 하고자 말씀하신 것이 결코 아니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게 됩니다(요일 5:3).
한 예로,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하셨으므로(살전 5:16-18) 시험 환난이나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결해 주십니다.
또한 성경에는 '지키라'는 말씀들이 있는데 출애굽기 20:8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교훈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일을 기억하여 일하지 않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찬양합니다. 이렇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면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되며 영생과 천국을 얻는 구원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버리라'고 하셨는데, 그 중에 데살로니가전서 5:22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악은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총칭한 것입니다. 육신의 일이란 마음에 있는 질투, 미움, 간음 등 아직 행함으로 나타나기 전의 악의 상태를 말하며,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나타낸 상태의 악을 말합니다(갈 5:19-21).
또한 성경에는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십계명 중에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이전에 행하던 일 가운데는 하나님의 뜻인 진리에 위배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에 어긋난 일을 행하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데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진리에서 어긋난 일을 행하지 않으면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빛 가운데 행하며 행함 있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점점 믿음이 장성하여져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축복된 삶을 누리려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는 이 세상의 어떤 권세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의 자녀라 할지라도 권세가 대단한데 하물며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주 만물을 치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소유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聖徒)가 있는가 하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교인(敎人)이 있습니다. 교인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을 뿐,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의 반열에 들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신속히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는 구세주로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려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하지요. 그리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사랑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달아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인간의 시조인 아담의 불순종 이후 그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롬 3:10-12). 이는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천지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나타내 보이셨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우상을 섬기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롬 1:20-32).
또한 아담의 범죄 이후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며, 성장하면서 진리가 아닌 가르침을 받으며 생활하기에 스스로 많은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한 예로, 어린아이는 아무 죄가 없는 것같이 보이지만, 엄마의 품에 다른 아이가 안겨 있거나 동생이 자기보다 더 사랑을 받는다고 느껴지면 보채며 질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부모로부터 기를 받아 본성 속에 악이 있으므로 조금만 자라도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죄로 인하여 스스로는 아무리 의롭게 살아온 것 같아도 악을 행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하나님 보시기에는 의인은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입니다(롬 3:23-24).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의인이 되는 것일까요?
갈라디아서 3:11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했고, 사도행전 4:12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대속자이시며 죄로부터의 구원자이심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세주가 되심을 믿으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 보증으로 성령을 마음에 주십니다(고후 1:22).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셔서(요 1:12)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2. 성령의 소욕을 좇아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셨고, 거듭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가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답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어떠한 뜻일까요?
물이란 영생수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의미합니다(요 4:14).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인임을 깨달아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받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므로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받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으로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과 함께 마음에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이는 이제까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요일 2:16) 살아왔던 육신의 법과 새롭게 성령의 소욕을 좇아 살고자 하는 성령의 법이 싸우게 되기 때문입니다(롬 7:22-24).
이는 살아난 영과 이제까지 사람의 주인 노릇을 하던 혼의 싸움인데 믿음이 성장하여 영이 성장한 만큼 영의 힘과 혼의 힘이 대등해집니다. 그러므로 선의 세력과 악의 세력이 서로 이기고자 하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데,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으로(롬 8:26) 결국 영이 승리하여 평안을 얻게 해 주십니다.
이와 같이 영과 혼의 싸움에서 영이 승리하려면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쳐야 하며,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16-17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6-7에도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서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죄악이 버려지고 혼이 영에게 순종하는 영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행함 있는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지만(롬 10:17) 들어서 알되 지식으로만 담아 놓고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 2:17). 그래서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시며 행함 있는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보고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 곧 육적인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행함이 따르는 만큼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사랑으로 말씀하신 것이지 우리를 힘들게 하고자 말씀하신 것이 결코 아니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게 됩니다(요일 5:3).
한 예로,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하셨으므로(살전 5:16-18) 시험 환난이나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결해 주십니다.
또한 성경에는 '지키라'는 말씀들이 있는데 출애굽기 20:8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교훈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일을 기억하여 일하지 않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찬양합니다. 이렇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면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되며 영생과 천국을 얻는 구원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버리라'고 하셨는데, 그 중에 데살로니가전서 5:22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악은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총칭한 것입니다. 육신의 일이란 마음에 있는 질투, 미움, 간음 등 아직 행함으로 나타나기 전의 악의 상태를 말하며,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나타낸 상태의 악을 말합니다(갈 5:19-21).
또한 성경에는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십계명 중에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이전에 행하던 일 가운데는 하나님의 뜻인 진리에 위배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에 어긋난 일을 행하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데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진리에서 어긋난 일을 행하지 않으면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빛 가운데 행하며 행함 있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점점 믿음이 장성하여져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4-13
제14과교회의 조직과 질서
행 6:1-7
읽을말씀 : 행 6:1-7 | 외울말씀 : 엡 4:11-12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에 사도와 집사를 세우신 것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도 각 교회에 여러 직분자를 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교회의 조직과 질서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각자 행할 바를 행하게 한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잘 양육하고 주 안에서 친교를 나누며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연합한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직임을 허락하시고 조직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1. 초대교회의 열두 사도와 일곱 집사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생겨난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증가하자, 말씀 선포와 구제를 맡은 사도들의 과중한 직무로 인하여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들을 불러 회의를 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 6:2-4) 했지요.
그러자 성도들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곧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를 택하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일곱 명에게 안수하여 집사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사도와 성도의 직무가 분담되기 시작하였고, 사도는 성도에게 직분을 부여하여 특별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어떻게 세우셨을까요? 산에서 밤이 다하도록 기도하신 후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 열둘을 택하여 사도(使徒)라 칭하셨습니다(눅 6:12-16). 그리고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지요(마 10:1-4).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 중에서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고 자살하자(마 27:3-9),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 베드로는 함께 기도에 힘쓰던 120명의 무리에게 가룟 유다 대신 한 사람 더 세울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두 사람을 천거하였고, 그 중에 제비를 뽑아 얻은 사도가 맛디아였습니다(행 1:15-26).
이렇게 세워진 열두 사도는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게 되었고, 성도들 중에 세워진 일곱 집사는 공궤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능력 있게 전파하게 되어 성도들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초대교회는 급성장하며 큰 부흥을 이루었던 것입니다(행 6:7).
2. 교회의 조직과 여러 가지 직분
하나님께서 교회에 다양한 성령의 은사로 여러 가지 직분을 세우시는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하게 함이며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엡 4:11-12). 직분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온전한 사람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며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고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하지요(엡 4:13-16).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크게 나누어 교역자와 평신도가 있습니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양을 먹이는 목자로서 목양(牧羊)에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기도해야 합니다(딤후 4:2, 행 20:28, 마 28:20).
이런 교역자는 목사와 강도사, 혹은 전도사로 구분되는데 목사는 교단마다 약간 자격이 다르나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 교육을 받고 안수받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그리고 직무에 따라 위임목사, 담임목사, 부목사, 전도 목사, 음악 목사 등의 칭호가 있으며, 강도사나 전도사의 직무를 거친 후 안수받게 됩니다. 강도사나 전도사는 교회마다 역할이 약간 다르나 신학 교육을 받고 교회에 시무하는 교역자로서 목사를 도와 심방과 교육을 담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신도 중에서도 직분자를 세워 교회를 섬기게 하고 교회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교파에 따라 명칭이나 역할이 약간은 다르지만 여러 가지가 있으며, 평신도 중에서 최고의 직분으로는 장로가 있습니다. 장로라는 말은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직분을 강조하는 것이고, 감독이라는 말은 기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는 감독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것이므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 양 무리의 본이 될 만한 사람이며, 목회자를 도와 교회의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디도서 1:5-9을 보면 장로의 자격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으며, 디모데전서 3:1-7에는 감독의 자격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倍)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하셨지요(딤전 5:17).
이처럼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을 하는 장로 외에 교회 안에는 집사라는 직분이 있어 장로의 보조자로서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합니다. 디모데전서 3:8-13을 보면 집사의 자격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세운 교역자가 있어 교회 전체를 치리하되 기도와 하나님 말씀에 전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성도들 중에서 장로, 집사 등 직분자를 세워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질서
우리의 몸이 팔, 다리, 얼굴 등 여러 지체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교회에도 여러 가지의 직임이 있습니다(고전 12:5). 직임은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서 모두가 중요하며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사명이지만, 교회 안에 분쟁이 없고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질서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28을 보면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 행함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첫째는 사도입니다.
사도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종으로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을 말합니다. 베드로나 바울 사도처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르심을 입고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며 목숨까지라도 희생하여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고 온전한 순종에 이른 하나님의 종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름받아 나가는 하나님의 종이나 일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기에 친히 연단하시며, 합당한 그릇이 되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사용하십니다. 따라서 선지자의 직임을 맡은 사람은 마음의 악을 열심히 버리며 마음 밭을 옥토로 변화시켜 나가면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뿐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에게 선지자의 대열에 세워 주십니다.
셋째는 교사입니다.
교사란 가르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시켜야 할 사명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주일학교 교사로서 혹은 구역장이나 인도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쳐 믿음을 심어 주며 영혼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해 나가는 사명을 잘 감당하였을 때에 기뻐하십니다.
넷째는 능력 행함입니다.
교사 다음이 능력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를 나타내 주어야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 행함의 은사를 받으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이러한 능력 행함은 각색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은 물론, 소아마비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등 선천적으로 약한 자를 고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다섯째는 병 고치는 은사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능력을 행하는 사람은 극히 찾아보기 어렵지만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병 고치는 은사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기도해 줌으로 치료받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사는 교회 안에 당연히 있어서 믿음으로 나아오는 사람에게 각색 질병으로부터 해방받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복음이 더욱 널리 전파되어 많은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서로 돕는 것입니다.
믿음의 한 지체로서 이웃을 사랑하며 서로 도와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 돕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열심히 모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돕되 기도로 도와주고 사랑과 권면으로 도와주며 힘이 없는 이에게 소망을 심어 주는 등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의 유익을 구하면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크게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일곱째는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것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믿음의 형제를 다스리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재물이나 물리적인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덕으로 진리 안에서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감으로 성령의 열매, 팔복의 열매 등을 맺는 것을 말하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형제를 사랑으로 포용하며 진리 가운데 다스려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각종 방언을 하는 것입니다.
방언은 영의 기도로서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은사입니다. 각종 방언을 함으로 하나님과 영적인 깊은 교제를 할 수 있으며, 기도의 능력이 생겨서 많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영적인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하되 깊은 영적인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은 성도로서 꼭 필요한 은사입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조직을 알고 질서를 깨닫게 되면 영적 성장이 올바르게 되어 교회가 성령으로 하나가 되고, 성도들이 믿음으로 온전하여져서 큰 부흥을 이룰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각자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큰 일익을 담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에 사도와 집사를 세우신 것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도 각 교회에 여러 직분자를 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교회의 조직과 질서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각자 행할 바를 행하게 한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잘 양육하고 주 안에서 친교를 나누며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연합한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직임을 허락하시고 조직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1. 초대교회의 열두 사도와 일곱 집사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생겨난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증가하자, 말씀 선포와 구제를 맡은 사도들의 과중한 직무로 인하여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들을 불러 회의를 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 6:2-4) 했지요.
그러자 성도들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곧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를 택하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일곱 명에게 안수하여 집사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사도와 성도의 직무가 분담되기 시작하였고, 사도는 성도에게 직분을 부여하여 특별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어떻게 세우셨을까요? 산에서 밤이 다하도록 기도하신 후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 열둘을 택하여 사도(使徒)라 칭하셨습니다(눅 6:12-16). 그리고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지요(마 10:1-4).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 중에서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고 자살하자(마 27:3-9),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 베드로는 함께 기도에 힘쓰던 120명의 무리에게 가룟 유다 대신 한 사람 더 세울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두 사람을 천거하였고, 그 중에 제비를 뽑아 얻은 사도가 맛디아였습니다(행 1:15-26).
이렇게 세워진 열두 사도는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게 되었고, 성도들 중에 세워진 일곱 집사는 공궤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능력 있게 전파하게 되어 성도들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초대교회는 급성장하며 큰 부흥을 이루었던 것입니다(행 6:7).
2. 교회의 조직과 여러 가지 직분
하나님께서 교회에 다양한 성령의 은사로 여러 가지 직분을 세우시는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하게 함이며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엡 4:11-12). 직분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온전한 사람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며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고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하지요(엡 4:13-16).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크게 나누어 교역자와 평신도가 있습니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양을 먹이는 목자로서 목양(牧羊)에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기도해야 합니다(딤후 4:2, 행 20:28, 마 28:20).
이런 교역자는 목사와 강도사, 혹은 전도사로 구분되는데 목사는 교단마다 약간 자격이 다르나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 교육을 받고 안수받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그리고 직무에 따라 위임목사, 담임목사, 부목사, 전도 목사, 음악 목사 등의 칭호가 있으며, 강도사나 전도사의 직무를 거친 후 안수받게 됩니다. 강도사나 전도사는 교회마다 역할이 약간 다르나 신학 교육을 받고 교회에 시무하는 교역자로서 목사를 도와 심방과 교육을 담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신도 중에서도 직분자를 세워 교회를 섬기게 하고 교회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교파에 따라 명칭이나 역할이 약간은 다르지만 여러 가지가 있으며, 평신도 중에서 최고의 직분으로는 장로가 있습니다. 장로라는 말은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직분을 강조하는 것이고, 감독이라는 말은 기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는 감독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것이므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 양 무리의 본이 될 만한 사람이며, 목회자를 도와 교회의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디도서 1:5-9을 보면 장로의 자격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으며, 디모데전서 3:1-7에는 감독의 자격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倍)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하셨지요(딤전 5:17).
이처럼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을 하는 장로 외에 교회 안에는 집사라는 직분이 있어 장로의 보조자로서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합니다. 디모데전서 3:8-13을 보면 집사의 자격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세운 교역자가 있어 교회 전체를 치리하되 기도와 하나님 말씀에 전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성도들 중에서 장로, 집사 등 직분자를 세워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질서
우리의 몸이 팔, 다리, 얼굴 등 여러 지체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교회에도 여러 가지의 직임이 있습니다(고전 12:5). 직임은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서 모두가 중요하며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사명이지만, 교회 안에 분쟁이 없고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질서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28을 보면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 행함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첫째는 사도입니다.
사도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종으로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을 말합니다. 베드로나 바울 사도처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르심을 입고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며 목숨까지라도 희생하여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고 온전한 순종에 이른 하나님의 종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름받아 나가는 하나님의 종이나 일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기에 친히 연단하시며, 합당한 그릇이 되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사용하십니다. 따라서 선지자의 직임을 맡은 사람은 마음의 악을 열심히 버리며 마음 밭을 옥토로 변화시켜 나가면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뿐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에게 선지자의 대열에 세워 주십니다.
셋째는 교사입니다.
교사란 가르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시켜야 할 사명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주일학교 교사로서 혹은 구역장이나 인도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쳐 믿음을 심어 주며 영혼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해 나가는 사명을 잘 감당하였을 때에 기뻐하십니다.
넷째는 능력 행함입니다.
교사 다음이 능력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를 나타내 주어야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 행함의 은사를 받으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이러한 능력 행함은 각색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은 물론, 소아마비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등 선천적으로 약한 자를 고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다섯째는 병 고치는 은사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능력을 행하는 사람은 극히 찾아보기 어렵지만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병 고치는 은사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기도해 줌으로 치료받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사는 교회 안에 당연히 있어서 믿음으로 나아오는 사람에게 각색 질병으로부터 해방받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복음이 더욱 널리 전파되어 많은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서로 돕는 것입니다.
믿음의 한 지체로서 이웃을 사랑하며 서로 도와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 돕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열심히 모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돕되 기도로 도와주고 사랑과 권면으로 도와주며 힘이 없는 이에게 소망을 심어 주는 등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의 유익을 구하면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크게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일곱째는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것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믿음의 형제를 다스리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재물이나 물리적인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덕으로 진리 안에서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감으로 성령의 열매, 팔복의 열매 등을 맺는 것을 말하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형제를 사랑으로 포용하며 진리 가운데 다스려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각종 방언을 하는 것입니다.
방언은 영의 기도로서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은사입니다. 각종 방언을 함으로 하나님과 영적인 깊은 교제를 할 수 있으며, 기도의 능력이 생겨서 많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영적인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하되 깊은 영적인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은 성도로서 꼭 필요한 은사입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조직을 알고 질서를 깨닫게 되면 영적 성장이 올바르게 되어 교회가 성령으로 하나가 되고, 성도들이 믿음으로 온전하여져서 큰 부흥을 이룰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각자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큰 일익을 담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4-06
제13과고난의 주 (고난주간)
요 18:1-11
읽을말씀 : 요 18:1-11 | 외울말씀 : 요일 4:19
교육목표 :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받으셔야 했던 이유와 크신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사랑해야 할지에 대해 깨닫게 한다.
1.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의 유래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수많은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와 잎을 흔들며 "호산나" 하고 예수님을 환영했던 날입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과 말씀의 권세를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스라엘의 구원자라 생각하며 소망에 부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의 압제를 물리치고 다윗의 시대와 같이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해 주시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기대가 무르익는 가운데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았고, 수많은 무리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왕이신 예수님을 환영했던 것입니다. 정녕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왕이십니다. 그러나 이 날로부터 한 주간도 지나지 않아 왕의 이름을 높이며 환호하는 소리는 사라지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성난 군중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주위에는 왕을 경배하며 찬양하던 백성들이 사라지고 욕하며 조롱하는 무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려가지를 흔들며 소리높여 환호하는 이 날이, 실상은 곧 다가올 참혹한 고난이 시작되는 첫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은 금요일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고난을 기리는 고난주간의 첫날로서, 고난주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고 죽으셔야 했을까요?
2.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셔야 했던 이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 의해 온갖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이유는 죄인이었던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무수한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섭리이지요.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는 원죄를 가진 죄인으로 태어났으며 살아가면서도 많은 죄를 짓습니다.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기록된 대로, 영계의 법칙에 의하면 공의에 따라 모든 죄인은 반드시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창조주이시지만, 모든 것을 주관하심에 있어서 철저한 공의를 좇아 행하십니다. 그러기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칙을 어기지 않고 죄인들을 구원할 방법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방법은 바로 누군가 죄 없는 사람이 죄인들의 죄 값을 대신 치러 주는 것인데,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원죄와 자범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아담의 후예로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정자와 난자를 통해 잉태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원죄가 없으시지요. 또한 태어나서부터 온전히 율법을 지키시므로 자범죄도 없으셨습니다. 원죄도 자범죄도 없으시므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할 자격이 있으신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어 주신다면 죄인들이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 해도 공의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죄 없는 예수님의 생명을 대신 내어줌으로써, 구원의 대가가 지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러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사랑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혀 죄가 없어서 죄인들을 대속하실 자격이 있다 해도 사랑이 없다면 결코 죄인들을 위해 사망의 형벌을 당하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을 대신해서 받아야 하는 사망의 형벌은 결코 감당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몸에 채찍을 맞아 피를 흘리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셔야 했고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달리며, 손과 발에는 못이 박혀야 합니다. 채찍에 맞은 상처와 못박힌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여러 시간 동안 참혹한 고통을 겪다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러한 사망의 형벌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공의의 법칙에 따라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셨고, 일평생 가난한 삶을 사심으로 가난을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 대신 우리에게는 부요함을 누릴 수 있게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온몸에 채찍을 맞아 피 흘리며 찢기심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대속하셨습니다. 가시관에 찔려 얼굴에 피가 낭자하신 것은 우리가 마음과 생각으로 지은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한 것이지요.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주신 것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위함이며, 손과 발에 못박히고 피 흘리신 것은 우리의 행위로 범한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희생에 감사하거나 예수님을 믿어드린 것이 아닙니다.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맹세했던 제자들도 막상 예수님께서 잡혀 고난당하실 때는 대부분 두려워서 숨고 말았지요. 천국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시며 오직 선한 일만 해 주셨는데, 군중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욕하고 침 뱉으며 조롱합니다.
이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구세주를 멸시하고 대적하는 죄인들을 위해 오히려 용서를 빌어 주셨고, 이후에라도 믿고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라므로 물과 피를 다 쏟아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녕 십자가는 고통과 수치의 상징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이 바로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요 승리와 영광을 얻으시는 길이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여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사망의 형벌을 대신하여 받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사망의 형벌을 받으셨다 해도 아무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믿을 때 죄사함을 받게 되며 부활하신 주님과 믿음으로 연합하여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주님과 하나가 되면 원수 마귀 사단의 사망 권세에서 풀려나고 장차 우리도 주님과 같이 부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셨던 예수님처럼 주님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도 십자가를 바라볼 때 더 이상 두려움과 고통으로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난의 너머에 있는 구원과 생명을 볼 수 있게 되고, 고난의 대가로 주어지는 천국의 영광을 볼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이미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어느 때에 어떻게 잡히시는 줄도 아셨고 십자가의 고난이 얼마나 참혹한 것도 아셨지요. 만세 전에 감추어진 섭리 가운데 인류 구속을 완성해야 하는 중한 짐을 지셨고 더구나 참혹한 형벌을 감당해야 하기에 이 일을 이루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마음에는 잠시도 온전한 쉼이 없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2:42을 보면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지요. 이처럼 기도하실 때 차가운 기온에도 불구하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부르짖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8:11에 보면 마침내 때가 되어 잡히시게 되자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말씀하시며 잡으러 온 사람들의 손에 잡혀 가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매순간, 항상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기억하시며 어떤 고통과 희생이 있더라도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뤄 드리기만 간절히 바라셨던 것입니다.
3. 주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우리들의 마음가짐
요한일서 4:19을 보면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말씀하셨는데, 세상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주님과 같은 사랑을 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주셨는데,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십자가를 대하시는지요. "내가 주를 위해 무엇이나 할 수 있나이다." 고백하며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으신지요? 생명을 드려야 하는 것도 아닌데, 작은 유혹조차 버리지 못하여 범죄하거나 주님께서 맡겨 주신 양 떼보다 내 가족과 내 소유를 더 귀하게 여기는 분은 없으신지요?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주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죄를 버리게 되고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의 피 값을 찾아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열정이 불타게 되며 원수를 위해서도,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오직 긍휼의 기도를 올리며 용서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주님께서 가신 길이요, 하나님의 뜻인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정녕 예수님의 고통과 그 안에 담긴 사랑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시며 날마다 더한 사랑의 고백과 행함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길을 가실 때 죄로 물든 영혼들에 대한 긍휼과 아버지에 대한 사랑만을 품고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걸어가셨습니다. 주신 사명을 이뤄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오히려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시고, 지금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을 것을 생각하며 마음에 위로를 받으셨지요.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날마다 여러분의 마음에 더욱 깊이 새기며 남은 날 동안 불같은 열정으로 주를 위해 헌신함으로 장차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받으셔야 했던 이유와 크신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사랑해야 할지에 대해 깨닫게 한다.
1.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의 유래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수많은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와 잎을 흔들며 "호산나" 하고 예수님을 환영했던 날입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과 말씀의 권세를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스라엘의 구원자라 생각하며 소망에 부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의 압제를 물리치고 다윗의 시대와 같이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해 주시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기대가 무르익는 가운데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았고, 수많은 무리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왕이신 예수님을 환영했던 것입니다. 정녕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왕이십니다. 그러나 이 날로부터 한 주간도 지나지 않아 왕의 이름을 높이며 환호하는 소리는 사라지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성난 군중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주위에는 왕을 경배하며 찬양하던 백성들이 사라지고 욕하며 조롱하는 무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려가지를 흔들며 소리높여 환호하는 이 날이, 실상은 곧 다가올 참혹한 고난이 시작되는 첫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은 금요일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고난을 기리는 고난주간의 첫날로서, 고난주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고 죽으셔야 했을까요?
2.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셔야 했던 이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 의해 온갖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이유는 죄인이었던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무수한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섭리이지요.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는 원죄를 가진 죄인으로 태어났으며 살아가면서도 많은 죄를 짓습니다.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기록된 대로, 영계의 법칙에 의하면 공의에 따라 모든 죄인은 반드시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창조주이시지만, 모든 것을 주관하심에 있어서 철저한 공의를 좇아 행하십니다. 그러기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칙을 어기지 않고 죄인들을 구원할 방법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방법은 바로 누군가 죄 없는 사람이 죄인들의 죄 값을 대신 치러 주는 것인데,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원죄와 자범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아담의 후예로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정자와 난자를 통해 잉태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원죄가 없으시지요. 또한 태어나서부터 온전히 율법을 지키시므로 자범죄도 없으셨습니다. 원죄도 자범죄도 없으시므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할 자격이 있으신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어 주신다면 죄인들이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 해도 공의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죄 없는 예수님의 생명을 대신 내어줌으로써, 구원의 대가가 지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러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사랑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혀 죄가 없어서 죄인들을 대속하실 자격이 있다 해도 사랑이 없다면 결코 죄인들을 위해 사망의 형벌을 당하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을 대신해서 받아야 하는 사망의 형벌은 결코 감당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몸에 채찍을 맞아 피를 흘리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셔야 했고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달리며, 손과 발에는 못이 박혀야 합니다. 채찍에 맞은 상처와 못박힌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여러 시간 동안 참혹한 고통을 겪다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러한 사망의 형벌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공의의 법칙에 따라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셨고, 일평생 가난한 삶을 사심으로 가난을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 대신 우리에게는 부요함을 누릴 수 있게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온몸에 채찍을 맞아 피 흘리며 찢기심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대속하셨습니다. 가시관에 찔려 얼굴에 피가 낭자하신 것은 우리가 마음과 생각으로 지은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한 것이지요.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주신 것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위함이며, 손과 발에 못박히고 피 흘리신 것은 우리의 행위로 범한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희생에 감사하거나 예수님을 믿어드린 것이 아닙니다.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맹세했던 제자들도 막상 예수님께서 잡혀 고난당하실 때는 대부분 두려워서 숨고 말았지요. 천국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시며 오직 선한 일만 해 주셨는데, 군중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욕하고 침 뱉으며 조롱합니다.
이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구세주를 멸시하고 대적하는 죄인들을 위해 오히려 용서를 빌어 주셨고, 이후에라도 믿고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라므로 물과 피를 다 쏟아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녕 십자가는 고통과 수치의 상징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이 바로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요 승리와 영광을 얻으시는 길이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여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사망의 형벌을 대신하여 받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사망의 형벌을 받으셨다 해도 아무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믿을 때 죄사함을 받게 되며 부활하신 주님과 믿음으로 연합하여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주님과 하나가 되면 원수 마귀 사단의 사망 권세에서 풀려나고 장차 우리도 주님과 같이 부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셨던 예수님처럼 주님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도 십자가를 바라볼 때 더 이상 두려움과 고통으로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난의 너머에 있는 구원과 생명을 볼 수 있게 되고, 고난의 대가로 주어지는 천국의 영광을 볼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이미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어느 때에 어떻게 잡히시는 줄도 아셨고 십자가의 고난이 얼마나 참혹한 것도 아셨지요. 만세 전에 감추어진 섭리 가운데 인류 구속을 완성해야 하는 중한 짐을 지셨고 더구나 참혹한 형벌을 감당해야 하기에 이 일을 이루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마음에는 잠시도 온전한 쉼이 없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2:42을 보면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지요. 이처럼 기도하실 때 차가운 기온에도 불구하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부르짖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8:11에 보면 마침내 때가 되어 잡히시게 되자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말씀하시며 잡으러 온 사람들의 손에 잡혀 가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매순간, 항상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기억하시며 어떤 고통과 희생이 있더라도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뤄 드리기만 간절히 바라셨던 것입니다.
3. 주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우리들의 마음가짐
요한일서 4:19을 보면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말씀하셨는데, 세상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주님과 같은 사랑을 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주셨는데,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십자가를 대하시는지요. "내가 주를 위해 무엇이나 할 수 있나이다." 고백하며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으신지요? 생명을 드려야 하는 것도 아닌데, 작은 유혹조차 버리지 못하여 범죄하거나 주님께서 맡겨 주신 양 떼보다 내 가족과 내 소유를 더 귀하게 여기는 분은 없으신지요?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주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죄를 버리게 되고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의 피 값을 찾아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열정이 불타게 되며 원수를 위해서도,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오직 긍휼의 기도를 올리며 용서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주님께서 가신 길이요, 하나님의 뜻인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정녕 예수님의 고통과 그 안에 담긴 사랑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시며 날마다 더한 사랑의 고백과 행함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길을 가실 때 죄로 물든 영혼들에 대한 긍휼과 아버지에 대한 사랑만을 품고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걸어가셨습니다. 주신 사명을 이뤄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오히려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시고, 지금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을 것을 생각하며 마음에 위로를 받으셨지요.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날마다 여러분의 마음에 더욱 깊이 새기며 남은 날 동안 불같은 열정으로 주를 위해 헌신함으로 장차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3-30
제12과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교회
계 3:7-12
읽을말씀 : 계 3:7-12 | 외울말씀 : 요일 5:3
교육목표 :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교회는 어떠한 유형의 교회인가를 알고 각 교회에 대한 칭찬과 권면, 책망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구원의 길과 하나님의 자녀된 본분 등에 대하여 밝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가운데 성경의 끝 권인 요한계시록 2-3장에서는 마지막으로 당부하시는 말씀을 기록해 놓으셨는데 바로 일곱 교회에 관한 말씀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로서 일곱 교회는 역사상의 모든 교회를 총칭하고 있으며,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처음으로 세워진 초대교회로부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세워지는 모든 교회들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 개개인의 신앙상태를 점검하고 바로 세우기 위한 신앙의 길잡이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첫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
하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진리에 위배된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썼던 수고와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악한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고,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사람들을 시험하여 거짓됨을 드러낸 것을 칭찬하셨지요. 또한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던 것도 칭찬해 주셨습니다(계 2:2-3).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진리를 벗어나 점점 세상과 타협하는 신앙이 되었으므로 책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돌아보아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4-5).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우리 마음에 성전삼고 계시는 성령을 거두어 가신다는 의미이며, 교회 전체적으로는 성령의 역사가 끊어지므로 사단이 역사하여 부흥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기쁘고 충만하여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던 첫사랑의 모습들을 잃지 않도록 항상 열심을 내고, 늘 깨어 기도함으로 날마다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2. 믿음의 연단을 받은 서머나 교회
서머나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칭찬도 책망도 아닌 권면의 말씀을 들은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온전한 믿음이 되지 않았으므로 믿음이 온전한 분량에 이르기까지는 받는 고난이 있으나 이는 영혼이 잘되기 위하여 따르는 과정이니 실상은 부요한 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칭하는데, 자칭 유대인이란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은 하나님의 일을 비방하고 판단하며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자들로서 이러한 자들의 모임을 '사단의 회'라고 합니다. 오늘날도 많은 교회가 사단의 회로 인하여 부흥하지 못하고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고 환난 가운데서도 죽도록 충성하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비진리, 곧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들인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나가라는 의미입니다. 영혼이 잘되기 위하여 따르는 과정이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연단을 잘 이기고,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의 법을 어길 때 죄의 경중에 따라 법의 판결을 받듯이 진리 안에 살지 못하고 영계의 법을 어기면 그만큼 사단이 송사하여 시험 환난을 당하게 되는데 이것을 옥에 던진다고 하며 총칭하여 십일 환난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계 2:8-11). 따라서 시험 환난을 가져다 주는 죄를 신속히 버리고 믿음의 연단을 잘 받아 생명의 면류관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3. 적당주의 신앙을 따른 버가모 교회
버가모 교회에서 충성했던 안디바라는 성도가 로마 황제의 핍박하에서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기에 놋가마에 던짐받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도 버가모 교회는 믿음에서 떠나지 않고 신실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굳게 잡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에 두어 가지 책망하신 것이 있었는데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발람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발락 왕이 물질로 유혹을 하자 현혹당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게 하는 꾀를 제공해 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였습니다(민 31:16, 벧후 2:15).
이러한 내적인 부패는 외적인 환난이나 박해보다 더 위험한 것이므로 주님께서는 자신의 유익을 좇아 타협한 발람이나, 육체로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영혼은 순결하기에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미혹한 니골라 당과 같이 적당주의 신앙을 경계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속히 회개하여 돌이켜야 함을 엄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행함으로 돌이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신실한 믿음을 소유하여 결코 세상과 타협하거나 자신의 유익을 좇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4.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신 두아디라 교회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게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고 사랑과 믿음, 섬김과 인내가 있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책망할 일이 있는데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함으로 성도들을 미혹하여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합 왕의 왕비로 용납함으로 결국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게 된 것같이(왕상 16:31-33)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하는 적당주의나 교회 안에서 술수 부리는 것 등을 용납하면 결국은 우상의 제물을 함께 먹고 마신 것이 되므로 멸망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하면 반드시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데 이때 돌이키지 않고 여전히 죄를 범하면 큰 환난을 당하게 되고, 마음에 진리가 없으니 결국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리에 굳건히 서서 끝까지 말씀대로 행하며 사단을 이기는 자가 되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을 받아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약속하셨으니 우리도 거짓 선지자를 용납하거나 미혹당하지 말고 오직 진리로 분별하여 승리의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계 2:18-29).
5. 죽은 믿음을 가진 사데 교회
사데 교회는 믿는다고는 하지만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킴으로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몇 명이 있어 이들은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계 3:4-5). 사데 교회에 하신 말씀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이기는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흐리지 않고 구원받아 천국에서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다 해도 진리 안에 살아가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간다면 생명책의 이름이 흐려지므로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며 행함 있는 산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약 2:22).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들은 대로 지켜 행하기 위하여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온전치 못한 것을 회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6. 칭찬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끝까지 주님을 배반하지 않은 것을 칭찬받았습니다(계 3:8). 적은 능력이란 우리가 처음에 하나님을 믿어 겨자씨만한 믿음을 소유했을 때를 말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믿음을 가지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 중에서 항상 진리 말씀대로 살았으며 시험 환난이나 핍박이 오더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믿음의 반석에 서서 성장해 나갔으므로 주님께서 칭찬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적은 믿음으로도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마음의 성결을 이루어 나갔으며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였기에 주님께서 이 교회를 지켜 주시고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속히 오실 주님을 믿고 믿음을 잘 지켜 예비하신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믿음을 지키고 온 집에 충성하면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주시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세워 주실 것을 말씀하셨으니 우리도 최선을 다하여 믿음을 굳게 지키고 온 집에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계 3:12).
7. 차지도 덥지도 않았던 라오디게아 교회
주님께서는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지근한 신앙을 소유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책망하셨습니다(계 3:16). 차가운 신앙이란 성령을 받지 못한 채 구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반면에 뜨거운 신앙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열심히 기도하면서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나감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산 믿음을 뜻합니다.
미지근한 상태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도 알고 있기에 교회는 왔다갔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여 죄를 버리려 하지 않고 타협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받지 못한 차가운 신앙이나 미지근한 신앙은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며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은 지금까지 살펴본 일곱 교회와 같은 교회나 성도가 많이 있으므로 일곱 교회에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보고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을 배반하지 아니하여 칭찬받는 교회, 칭찬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교회는 어떠한 유형의 교회인가를 알고 각 교회에 대한 칭찬과 권면, 책망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구원의 길과 하나님의 자녀된 본분 등에 대하여 밝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가운데 성경의 끝 권인 요한계시록 2-3장에서는 마지막으로 당부하시는 말씀을 기록해 놓으셨는데 바로 일곱 교회에 관한 말씀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로서 일곱 교회는 역사상의 모든 교회를 총칭하고 있으며,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처음으로 세워진 초대교회로부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세워지는 모든 교회들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 개개인의 신앙상태를 점검하고 바로 세우기 위한 신앙의 길잡이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첫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
하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진리에 위배된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썼던 수고와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악한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고,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사람들을 시험하여 거짓됨을 드러낸 것을 칭찬하셨지요. 또한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던 것도 칭찬해 주셨습니다(계 2:2-3).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진리를 벗어나 점점 세상과 타협하는 신앙이 되었으므로 책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돌아보아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4-5).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우리 마음에 성전삼고 계시는 성령을 거두어 가신다는 의미이며, 교회 전체적으로는 성령의 역사가 끊어지므로 사단이 역사하여 부흥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기쁘고 충만하여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던 첫사랑의 모습들을 잃지 않도록 항상 열심을 내고, 늘 깨어 기도함으로 날마다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2. 믿음의 연단을 받은 서머나 교회
서머나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칭찬도 책망도 아닌 권면의 말씀을 들은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온전한 믿음이 되지 않았으므로 믿음이 온전한 분량에 이르기까지는 받는 고난이 있으나 이는 영혼이 잘되기 위하여 따르는 과정이니 실상은 부요한 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칭하는데, 자칭 유대인이란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은 하나님의 일을 비방하고 판단하며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자들로서 이러한 자들의 모임을 '사단의 회'라고 합니다. 오늘날도 많은 교회가 사단의 회로 인하여 부흥하지 못하고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고 환난 가운데서도 죽도록 충성하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비진리, 곧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들인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나가라는 의미입니다. 영혼이 잘되기 위하여 따르는 과정이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연단을 잘 이기고,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의 법을 어길 때 죄의 경중에 따라 법의 판결을 받듯이 진리 안에 살지 못하고 영계의 법을 어기면 그만큼 사단이 송사하여 시험 환난을 당하게 되는데 이것을 옥에 던진다고 하며 총칭하여 십일 환난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계 2:8-11). 따라서 시험 환난을 가져다 주는 죄를 신속히 버리고 믿음의 연단을 잘 받아 생명의 면류관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3. 적당주의 신앙을 따른 버가모 교회
버가모 교회에서 충성했던 안디바라는 성도가 로마 황제의 핍박하에서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기에 놋가마에 던짐받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도 버가모 교회는 믿음에서 떠나지 않고 신실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굳게 잡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에 두어 가지 책망하신 것이 있었는데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발람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발락 왕이 물질로 유혹을 하자 현혹당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게 하는 꾀를 제공해 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였습니다(민 31:16, 벧후 2:15).
이러한 내적인 부패는 외적인 환난이나 박해보다 더 위험한 것이므로 주님께서는 자신의 유익을 좇아 타협한 발람이나, 육체로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영혼은 순결하기에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미혹한 니골라 당과 같이 적당주의 신앙을 경계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속히 회개하여 돌이켜야 함을 엄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행함으로 돌이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신실한 믿음을 소유하여 결코 세상과 타협하거나 자신의 유익을 좇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4.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신 두아디라 교회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게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고 사랑과 믿음, 섬김과 인내가 있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책망할 일이 있는데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함으로 성도들을 미혹하여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합 왕의 왕비로 용납함으로 결국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게 된 것같이(왕상 16:31-33)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하는 적당주의나 교회 안에서 술수 부리는 것 등을 용납하면 결국은 우상의 제물을 함께 먹고 마신 것이 되므로 멸망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하면 반드시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데 이때 돌이키지 않고 여전히 죄를 범하면 큰 환난을 당하게 되고, 마음에 진리가 없으니 결국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리에 굳건히 서서 끝까지 말씀대로 행하며 사단을 이기는 자가 되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을 받아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약속하셨으니 우리도 거짓 선지자를 용납하거나 미혹당하지 말고 오직 진리로 분별하여 승리의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계 2:18-29).
5. 죽은 믿음을 가진 사데 교회
사데 교회는 믿는다고는 하지만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킴으로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몇 명이 있어 이들은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계 3:4-5). 사데 교회에 하신 말씀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이기는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흐리지 않고 구원받아 천국에서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다 해도 진리 안에 살아가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간다면 생명책의 이름이 흐려지므로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며 행함 있는 산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약 2:22).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들은 대로 지켜 행하기 위하여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온전치 못한 것을 회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6. 칭찬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끝까지 주님을 배반하지 않은 것을 칭찬받았습니다(계 3:8). 적은 능력이란 우리가 처음에 하나님을 믿어 겨자씨만한 믿음을 소유했을 때를 말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믿음을 가지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 중에서 항상 진리 말씀대로 살았으며 시험 환난이나 핍박이 오더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믿음의 반석에 서서 성장해 나갔으므로 주님께서 칭찬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적은 믿음으로도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마음의 성결을 이루어 나갔으며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였기에 주님께서 이 교회를 지켜 주시고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속히 오실 주님을 믿고 믿음을 잘 지켜 예비하신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믿음을 지키고 온 집에 충성하면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주시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세워 주실 것을 말씀하셨으니 우리도 최선을 다하여 믿음을 굳게 지키고 온 집에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계 3:12).
7. 차지도 덥지도 않았던 라오디게아 교회
주님께서는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지근한 신앙을 소유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책망하셨습니다(계 3:16). 차가운 신앙이란 성령을 받지 못한 채 구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반면에 뜨거운 신앙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열심히 기도하면서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나감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산 믿음을 뜻합니다.
미지근한 상태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도 알고 있기에 교회는 왔다갔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여 죄를 버리려 하지 않고 타협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받지 못한 차가운 신앙이나 미지근한 신앙은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며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은 지금까지 살펴본 일곱 교회와 같은 교회나 성도가 많이 있으므로 일곱 교회에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보고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을 배반하지 아니하여 칭찬받는 교회, 칭찬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007-03-23
제11과교회란 무엇인가
고전 1:2, 엡 1:22-23
읽을말씀 : 고전 1:2, 엡 1:22-23 | 외울말씀 : 마 16:18
교육목표 : 성경은 교회라는 말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이해함으로 하나님께 칭찬받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펼쳐 나가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며 성도들을 양육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봉사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교회의 의미와 역사, 그리고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요?
1. 교회의 의미와 역사
성경을 보면 교회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신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 그리스도의 백성'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먼저는 고린도 교회와 같이 지역을 따라 모인 개교회를 뜻하는 경우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를 일컫는 경우입니다.
고린도전서 1:2을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단순히 하나의 조직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성도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교회 이름이나 어떤 단체에 상관없이 모든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들은 여러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지요(고전 12:13-14).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300년 동안은 교회를 '에클레시아(ekklesia)'라고 불렀고, 이는 '불러내심을 받았다'는 의미의 헬라어입니다. 그 후 주님의 전을 의미하는 '쿠리아코스'로 바뀌게 되었는데, 그 말은 이후 영어인 '처어치(church)'로 바뀌었습니다. 에클레시아는 원래 헬라인에게 있어 '협의를 목적으로 구성된 모임'을 의미하는데, 교회에 대해 사용할 때에는 '불러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이지요. 이처럼 에클레시아란 외관상의 어떤 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이루어진 모임이나 집회를 뜻합니다.
이러한 교회는 눈에 보이는 유형적(有形的)인 교회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無形的)인 교회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이루어진 모임인 에클레시아는 무형적인 교회이며,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건물인 교회는 유형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지요.
구약의 광야시대의 성막(聖幕)은 유형적인 교회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는 도중이었으므로 성전이나 주거지가 일정한 건물로 있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동할 수 있는 장막 성전, 곧 '성막'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성막을 짓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물을 가져오게 하셨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여 쓰고도 남을 정도로 많이 가져와 모세가 중지시킬 정도였습니다(출 25:2, 36:3-7).
성막은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대로(출 25-27장) 세워졌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레위 자손들로 제사장의 직무를 담당케 하셔서 하나님을 섬기며 성막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성막은 하나님이 늘 함께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고, 신약시대에 세워지기 시작한 교회 성전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에클레시아'라는 부름받은 회중들의 모임인 무형적인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이루지만 이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건물인 유형적인 교회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온전한 교회란 무형적인 교회와 유형적인 교회를 겸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공산치하에서나 교회를 세울 수 없는 환경에 처한 곳이라면 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교회를 부정하거나 엉뚱하게 해석하여 교회라는 일정한 건물을 배척하고 가정집이나 기타의 장소에서 모여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은 합당치 않는 것입니다.
2. 교회의 사명과 초대교회
오늘날과 같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으로 인하여 형성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6:18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지요. 여기서 베드로라는 이름은 작은 바위를 의미하는 헬라어 '페트로스'이며, 반석은 큰 바위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너는 작은 바위라 내가 반석인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뜻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하나님 보좌가 계신 천국에 가신 후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교회가 형성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50일이 되던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강림한 후부터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거하며 그의 도를 전하니 많은 사람이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성전에 자주 모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시초가 되며 이를 '초대교회'라고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마태복음 28:19-20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복음을 전파하고, 거룩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내며,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성도들이 교제를 나누기 위한 것이므로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며 진리를 가르치고 성례전을 집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마 26:26-28).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큰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설교로 삼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나고 저희가 세례를 받아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게 되었습니다(행 2:41-42).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공동생활을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전도하기를 계속하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아져 초대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집사로 세우고 교회를 섬기게 하였습니다(행 6:2-6). 그 중에 스데반이라는 집사는 능력 있는 설교를 하며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고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복음이 예루살렘 밖에서도 전파된 것입니다. 이때 다소 사람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러 가는 도중에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후 회심하여 바울이 되었으며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지요. 그는 여러 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을 통하여 아시아와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여 세계 선교의 초석을 이루었고 결국 복음은 온 땅에 전파되었습니다.
3. 초대교회의 특징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워진 교회로서 모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이 날마다 구원받는 수가 더하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초대교회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요?
1)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전과 성전 바깥 뜰 동편에 있는 솔로몬 행각에 자주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사도들이 베푸는 기사와 표적을 보기도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히 10:25). 주일은 물론이거니와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구역예배, 새벽기도회 등 각종 예배와 기도회, 성도들간의 각종 모임에 힘써 모여야 합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고 천국의 소망이 넘치게 되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전혀(專一)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42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오로지 힘썼다고 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으로서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방법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지요(살전 5:17). 기도를 하면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게 되니 원수 마귀를 이기고,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또한 믿음이 성장하고 질병이 틈타지 못하며, 영육간에 강건한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항상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루 한 시간의 기도는 자신을 강건하게 해 주고 두 시간의 기도를 하면 가정과 사업터 전반에 걸쳐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서로 사랑하며 항상 기뻐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오늘날은 이와 같이 행하는 성도들이 심히 적으나 참으로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넘치는 성도라면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쁨 외에도 하늘나라의 소망이 넘쳤으므로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땅에는 눈물, 고통, 사망이 있지만 하늘나라에는 이런 것이 전혀 없음을 믿으니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었고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습니다.
4) 전도에 힘썼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말씀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것이었는데 초대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는 저절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열심히 모이고 기도하며 서로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47을 보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였습니다.
5)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시면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할 수 있는 기사와 표적을 보아야 참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도행전 2:43에는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이를 본 사람마다 두려워하였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실제로 보았으므로 더욱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었고, 사도들을 통해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을 통해서도 큰 믿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교회가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초대교회를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쓰며 모든 성도들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성경은 교회라는 말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이해함으로 하나님께 칭찬받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펼쳐 나가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며 성도들을 양육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봉사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교회의 의미와 역사, 그리고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요?
1. 교회의 의미와 역사
성경을 보면 교회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신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 그리스도의 백성'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먼저는 고린도 교회와 같이 지역을 따라 모인 개교회를 뜻하는 경우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를 일컫는 경우입니다.
고린도전서 1:2을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단순히 하나의 조직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성도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교회 이름이나 어떤 단체에 상관없이 모든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들은 여러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지요(고전 12:13-14).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300년 동안은 교회를 '에클레시아(ekklesia)'라고 불렀고, 이는 '불러내심을 받았다'는 의미의 헬라어입니다. 그 후 주님의 전을 의미하는 '쿠리아코스'로 바뀌게 되었는데, 그 말은 이후 영어인 '처어치(church)'로 바뀌었습니다. 에클레시아는 원래 헬라인에게 있어 '협의를 목적으로 구성된 모임'을 의미하는데, 교회에 대해 사용할 때에는 '불러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이지요. 이처럼 에클레시아란 외관상의 어떤 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이루어진 모임이나 집회를 뜻합니다.
이러한 교회는 눈에 보이는 유형적(有形的)인 교회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無形的)인 교회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이루어진 모임인 에클레시아는 무형적인 교회이며,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건물인 교회는 유형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지요.
구약의 광야시대의 성막(聖幕)은 유형적인 교회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는 도중이었으므로 성전이나 주거지가 일정한 건물로 있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동할 수 있는 장막 성전, 곧 '성막'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성막을 짓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물을 가져오게 하셨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여 쓰고도 남을 정도로 많이 가져와 모세가 중지시킬 정도였습니다(출 25:2, 36:3-7).
성막은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대로(출 25-27장) 세워졌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레위 자손들로 제사장의 직무를 담당케 하셔서 하나님을 섬기며 성막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성막은 하나님이 늘 함께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고, 신약시대에 세워지기 시작한 교회 성전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에클레시아'라는 부름받은 회중들의 모임인 무형적인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이루지만 이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건물인 유형적인 교회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온전한 교회란 무형적인 교회와 유형적인 교회를 겸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공산치하에서나 교회를 세울 수 없는 환경에 처한 곳이라면 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교회를 부정하거나 엉뚱하게 해석하여 교회라는 일정한 건물을 배척하고 가정집이나 기타의 장소에서 모여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은 합당치 않는 것입니다.
2. 교회의 사명과 초대교회
오늘날과 같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으로 인하여 형성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6:18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지요. 여기서 베드로라는 이름은 작은 바위를 의미하는 헬라어 '페트로스'이며, 반석은 큰 바위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너는 작은 바위라 내가 반석인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뜻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하나님 보좌가 계신 천국에 가신 후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교회가 형성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50일이 되던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강림한 후부터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거하며 그의 도를 전하니 많은 사람이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성전에 자주 모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시초가 되며 이를 '초대교회'라고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마태복음 28:19-20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복음을 전파하고, 거룩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내며,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성도들이 교제를 나누기 위한 것이므로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며 진리를 가르치고 성례전을 집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마 26:26-28).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큰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설교로 삼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나고 저희가 세례를 받아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게 되었습니다(행 2:41-42).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공동생활을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전도하기를 계속하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아져 초대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집사로 세우고 교회를 섬기게 하였습니다(행 6:2-6). 그 중에 스데반이라는 집사는 능력 있는 설교를 하며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고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복음이 예루살렘 밖에서도 전파된 것입니다. 이때 다소 사람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러 가는 도중에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후 회심하여 바울이 되었으며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지요. 그는 여러 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을 통하여 아시아와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여 세계 선교의 초석을 이루었고 결국 복음은 온 땅에 전파되었습니다.
3. 초대교회의 특징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워진 교회로서 모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이 날마다 구원받는 수가 더하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초대교회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요?
1)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전과 성전 바깥 뜰 동편에 있는 솔로몬 행각에 자주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사도들이 베푸는 기사와 표적을 보기도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히 10:25). 주일은 물론이거니와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구역예배, 새벽기도회 등 각종 예배와 기도회, 성도들간의 각종 모임에 힘써 모여야 합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고 천국의 소망이 넘치게 되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전혀(專一)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42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오로지 힘썼다고 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으로서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방법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지요(살전 5:17). 기도를 하면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게 되니 원수 마귀를 이기고,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또한 믿음이 성장하고 질병이 틈타지 못하며, 영육간에 강건한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항상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루 한 시간의 기도는 자신을 강건하게 해 주고 두 시간의 기도를 하면 가정과 사업터 전반에 걸쳐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서로 사랑하며 항상 기뻐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오늘날은 이와 같이 행하는 성도들이 심히 적으나 참으로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넘치는 성도라면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쁨 외에도 하늘나라의 소망이 넘쳤으므로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땅에는 눈물, 고통, 사망이 있지만 하늘나라에는 이런 것이 전혀 없음을 믿으니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었고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습니다.
4) 전도에 힘썼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말씀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것이었는데 초대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는 저절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열심히 모이고 기도하며 서로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47을 보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였습니다.
5)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시면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할 수 있는 기사와 표적을 보아야 참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도행전 2:43에는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이를 본 사람마다 두려워하였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실제로 보았으므로 더욱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었고, 사도들을 통해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을 통해서도 큰 믿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교회가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초대교회를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쓰며 모든 성도들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3-16
제10과성령의 은사는 무엇인가
고전 12:7-11, 롬 12:6-8
읽을말씀 : 고전 12:7-11, 롬 12:6-8 | 외울말씀 : 벧전 4:10
교육목표 :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이나 역사는 한 성령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므로 신령한 은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 사모하는 자가 되도록 한다.
우리가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을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는 열심히 기도하며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나갈 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은사란 과연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1. 신령하고 유익한 성령의 은사
은사(恩賜)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역사들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믿음의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은사라고 하는 것이지요.
성령의 은사는 각 사람에게 다르게 주어지는데, 이는 각 사람의 그릇과 중심을 정확히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나누어 주시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유익하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4-7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하며,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로 해야 합니다. 또한 권위하는 사람이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사람은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사람은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롬 12:6-8). 각자에게 허락하신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여 선한 청지기같이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활용하되(벧전 4:10), 고린도전서 12:31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말씀하셨으니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2.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 중에 특별히 은사장이라 불리우는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된 은사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지혜롭게 사용함으로 생명을 주고 믿음을 심어 주며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므로 상대방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힘과 소망을 주며 기쁨과 감사를 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특히 가르치는 직분을 받은 사람이라면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아야 많은 영혼들을 올바로 갈무리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인 악을 버리고 성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결된 만큼 하늘로부터 지혜가 임하여 영적인 사랑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지식의 말씀의 은사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뇌세포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아직은 지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부모나 주변 사람들, 그리고 주어진 환경들을 통해 보고 듣고 배우게 되는데, 이를 뇌세포에 입력시키면서 지식이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진리인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란 문자적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완전히 이해하여 그 뜻을 바로 알고 영계의 법칙을 바로 깨우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마음에 양식이 된 그 자체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므로(벧후 1:21)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 영적인 의미를 깨우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잘 깨우쳐 양식을 삼고 그대로 행하며 가르칠 때 이 말씀은 신령한 말씀이 되는 것이요, 곧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임한 것입니다.
3) 믿음의 은사
믿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응답받을 수 있고, 이러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지식적으로 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행해 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동안 입력된 것들 중에서 진리에 위배된 것은 하나하나 빼내 버리면서 진리를 입력시키고 행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만큼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4) 병 고치는 은사
병 고치는 은사란 병균에 의하여 신체의 기능에 장애를 느끼거나 고통을 당하는 경우, 기도를 통하여 병을 낫게 하는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잘못 알아 죄를 지었다거나 진리를 알면서도 행치 않았기 때문에 질병이 임한 것입니다(출 15:26).
이런 사람은 회개하고 믿음으로 기도하거나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이의 기도를 받으면 질병이 낫습니다. 그 외에도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므로 사랑의 기도를 통하여 병이 낫기도 합니다.
5) 능력 행함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와는 다른 것으로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베푸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선천적인 병이나 불구자를 치료한다거나, 성격이나 성품을 개조시킨다거나, 천기를 움직이는 권세가 여기에 속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 요한, 야고보, 베드로, 바울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 전에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결국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어 많은 영혼들을 구원시킬 수 있었던 것은 능력 행함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영혼들을 사랑하게 되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능력받아 일하고 싶은 뜨거운 마음이 되므로 불같이 기도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능력 행함의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6) 예언함의 은사
예언함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사람에게 감동함을 주심으로 앞일을 예고하게 하여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4:1-3에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말씀하셨습니다.
예언함의 은사는 꼭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함을 주셔서 역사하시는 것이지 아무 때나 예언하게 하시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성결되어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셔서 예언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어 앞일을 예고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 결코 미혹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7) 영들 분별함의 은사
영은 하나님의 영과 어둠에 속한 영으로 분류할 수 있으므로 영들 분별함이란 신령한 것과 육적인 것, 성령의 음성과 육신의 생각, 선과 악, 참과 거짓, 의와 불의 등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분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들을 분별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며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아야 온전합니다.
우리가 영들 분별함의 은사를 받으려면 모든 비진리의 생각과 이론들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해야 합니다(고후 10:5).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뜻과 영계의 법칙을 알게 되고 영들 분별함의 은사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요한일서 4:6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하였으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은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진리의 말을 듣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에 속한 말은 들어도 진리의 말을 듣지 않으므로 진리의 말을 들으면 진리의 영에 속한 사람이며, 진리의 말을 듣지 않으면 미혹의 영에 속한 것입니다. 미혹이란 마음이 흐려서 무엇에 홀리는 것으로서 자신의 의지로 이길 수 없을 만큼 원수 마귀가 목적을 놓고 방해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미혹의 영이 다가와 미혹하지 못하도록 진리 가운데 굳건히 서서 오직 진리의 영을 좇아 빛 가운데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마 24:4-5).
8) 각종 방언 말함의 은사
방언은 성령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은사로서 영의 기도입니다. 기도에는 일상적인 언어로 기도하는 마음의 기도와 방언으로 하는 영의 기도가 있는데 두 가지 기도의 방법을 번갈아 가면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언은 영의 기도로서 우리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영혼이 잘되도록 영적인 것을 구하는 것이며, 마음의 기도는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아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14:14-15).
그런데 방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은사로서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은사이기도 합니다(고전 14:5).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르짖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면 각종 방언을 말할 수 있는 은사가 임하게 됩니다.
9) 방언들 통역함의 은사
방언은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하는 기도이므로 알아듣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고전 14:13). 그런데 방언들 통역함의 은사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각종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로서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 성결되거나 특별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생각을 차단시킬 수 있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령의 은사는 신앙생활에 매우 유익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간절히 사모하여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성령의 은사를 받아 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이나 역사는 한 성령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므로 신령한 은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 사모하는 자가 되도록 한다.
우리가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을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는 열심히 기도하며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나갈 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은사란 과연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1. 신령하고 유익한 성령의 은사
은사(恩賜)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역사들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믿음의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은사라고 하는 것이지요.
성령의 은사는 각 사람에게 다르게 주어지는데, 이는 각 사람의 그릇과 중심을 정확히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나누어 주시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유익하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4-7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하며,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로 해야 합니다. 또한 권위하는 사람이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사람은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사람은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롬 12:6-8). 각자에게 허락하신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여 선한 청지기같이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활용하되(벧전 4:10), 고린도전서 12:31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말씀하셨으니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2.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 중에 특별히 은사장이라 불리우는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된 은사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지혜롭게 사용함으로 생명을 주고 믿음을 심어 주며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므로 상대방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힘과 소망을 주며 기쁨과 감사를 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특히 가르치는 직분을 받은 사람이라면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아야 많은 영혼들을 올바로 갈무리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인 악을 버리고 성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결된 만큼 하늘로부터 지혜가 임하여 영적인 사랑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지식의 말씀의 은사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뇌세포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아직은 지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부모나 주변 사람들, 그리고 주어진 환경들을 통해 보고 듣고 배우게 되는데, 이를 뇌세포에 입력시키면서 지식이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진리인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란 문자적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완전히 이해하여 그 뜻을 바로 알고 영계의 법칙을 바로 깨우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마음에 양식이 된 그 자체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므로(벧후 1:21)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 영적인 의미를 깨우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잘 깨우쳐 양식을 삼고 그대로 행하며 가르칠 때 이 말씀은 신령한 말씀이 되는 것이요, 곧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임한 것입니다.
3) 믿음의 은사
믿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응답받을 수 있고, 이러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지식적으로 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행해 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동안 입력된 것들 중에서 진리에 위배된 것은 하나하나 빼내 버리면서 진리를 입력시키고 행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만큼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4) 병 고치는 은사
병 고치는 은사란 병균에 의하여 신체의 기능에 장애를 느끼거나 고통을 당하는 경우, 기도를 통하여 병을 낫게 하는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잘못 알아 죄를 지었다거나 진리를 알면서도 행치 않았기 때문에 질병이 임한 것입니다(출 15:26).
이런 사람은 회개하고 믿음으로 기도하거나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이의 기도를 받으면 질병이 낫습니다. 그 외에도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므로 사랑의 기도를 통하여 병이 낫기도 합니다.
5) 능력 행함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와는 다른 것으로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베푸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선천적인 병이나 불구자를 치료한다거나, 성격이나 성품을 개조시킨다거나, 천기를 움직이는 권세가 여기에 속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 요한, 야고보, 베드로, 바울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 전에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결국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어 많은 영혼들을 구원시킬 수 있었던 것은 능력 행함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영혼들을 사랑하게 되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능력받아 일하고 싶은 뜨거운 마음이 되므로 불같이 기도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능력 행함의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6) 예언함의 은사
예언함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사람에게 감동함을 주심으로 앞일을 예고하게 하여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4:1-3에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말씀하셨습니다.
예언함의 은사는 꼭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함을 주셔서 역사하시는 것이지 아무 때나 예언하게 하시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성결되어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셔서 예언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어 앞일을 예고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 결코 미혹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7) 영들 분별함의 은사
영은 하나님의 영과 어둠에 속한 영으로 분류할 수 있으므로 영들 분별함이란 신령한 것과 육적인 것, 성령의 음성과 육신의 생각, 선과 악, 참과 거짓, 의와 불의 등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분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들을 분별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며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아야 온전합니다.
우리가 영들 분별함의 은사를 받으려면 모든 비진리의 생각과 이론들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해야 합니다(고후 10:5).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뜻과 영계의 법칙을 알게 되고 영들 분별함의 은사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요한일서 4:6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하였으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은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진리의 말을 듣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에 속한 말은 들어도 진리의 말을 듣지 않으므로 진리의 말을 들으면 진리의 영에 속한 사람이며, 진리의 말을 듣지 않으면 미혹의 영에 속한 것입니다. 미혹이란 마음이 흐려서 무엇에 홀리는 것으로서 자신의 의지로 이길 수 없을 만큼 원수 마귀가 목적을 놓고 방해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미혹의 영이 다가와 미혹하지 못하도록 진리 가운데 굳건히 서서 오직 진리의 영을 좇아 빛 가운데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마 24:4-5).
8) 각종 방언 말함의 은사
방언은 성령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은사로서 영의 기도입니다. 기도에는 일상적인 언어로 기도하는 마음의 기도와 방언으로 하는 영의 기도가 있는데 두 가지 기도의 방법을 번갈아 가면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언은 영의 기도로서 우리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영혼이 잘되도록 영적인 것을 구하는 것이며, 마음의 기도는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아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14:14-15).
그런데 방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은사로서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은사이기도 합니다(고전 14:5).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르짖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면 각종 방언을 말할 수 있는 은사가 임하게 됩니다.
9) 방언들 통역함의 은사
방언은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하는 기도이므로 알아듣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고전 14:13). 그런데 방언들 통역함의 은사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각종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로서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 성결되거나 특별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생각을 차단시킬 수 있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령의 은사는 신앙생활에 매우 유익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간절히 사모하여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성령의 은사를 받아 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3-09
제9과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읽을말씀 : 행 19:1-7 | 외울말씀 : 고후 1:22
교육목표 : 오늘날과 같은 교회시대에는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정을 받습니다. 따라서 성령은 어떻게 받는 것이며 성령받은 증거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성령받은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게 한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성령이 무엇이며, 자신이 성령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무엇보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1. 성령을 받는 방법
사도행전 19:1-7을 보면 사도 바울을 통해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지방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했을 때 제자들이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이들은 세례 요한이 베푸는 회개의 물세례는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어 성령을 선물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니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것이었습니다(고후 1:21-22).
사도행전 2:38-39을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했습니다. 곧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믿으면 죄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가 사역하던 당시에는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보내십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선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구제하기를 즐겨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고넬료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며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경외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행 10:1-46).
따라서 고린도전서 12:13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2. 성령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증거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이를 통해 자신의 신앙상태를 분별하고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증거들로는 과연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1)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죄사함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또한 죽었던 영이 살아났으니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룰 수 있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게 되고, 하나님의 계명들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주신 것임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이전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므로 이해하기 힘들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성령을 받고 나면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듣고 보게 되니 하나님의 뜻을 깨우쳐 영적인 양식을 삼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3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하셨으니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고 싶어집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중심에서 감사하는 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시켜 주셨습니다(롬 5:8).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순종을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 해도 믿음이 연약하여 순종하고자 하지만 결국 불순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기 전에 만들어진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이 남아 있어서 행함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려는 마음만은 기뻐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불같이 기도함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을 깨뜨려 나가며 영적인 성장과 더불어 순종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3)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은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시므로 죄를 싫어하고 악을 미워하며 선 가운데, 빛 가운데 거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는 만큼 원수 마귀가 만지지 못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그러면 죄란 무엇일까요? 요한일서 3:4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에도 영계의 법이 있는데, 바로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게 행하면 이는 불법을 행한 것이요, 죄를 범한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지켜 주실 수 없습니다.
죄는 크게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일이란 시기, 질투, 미움, 음욕 등 아직 죄를 직접 행하지는 않았지만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속성들을 말하며, 이러한 육신의 일을 행함으로 나타낼 때 바로 육체의 일이 됩니다(갈 5:19-21).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접 행함으로 나타내는 육체의 일뿐 아니라 내 안에 잠재하고 있는 육신의 일도 모두 죄라고 하시며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말씀하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성령의 주관을 받지 못하므로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의 열매, 악의 열매를 맺게 되지만 거듭난 사람들은 성령의 소욕을 좇게 되므로 불법을 행할 때 성령의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깨달아 진리를 행하며 성결된 깨끗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신앙의 형제들을 깊이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요한일서 4:20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들이 한 형제임을 알아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목자와 형제들을 사랑하며 섬기기를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5)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고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되고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천국을 소망하며, 죄와 불법과 불의를 낳게 만드는 세상과 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요한일서 5:4에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했습니다. 진리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받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6)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랫동안 했다고 해도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없지만 초신자라 해도 성령을 받으면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되니 믿음과 천국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갖게 되며 주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들이 나타남을 보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니 성령받은 증거가 따르는 것이지요.
7)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요한일서 5:15을 보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말씀하셨는데,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심을 알기 때문에 자녀로서 당연히 아버지께 구하게 되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게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며 구원의 확신 속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구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넘치도록 응답해 주심을 아는 것은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8)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게 됩니다.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화평치 못했던 사람이 화평한 사람으로,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나오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리의 도를 좇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변화하게 되니 이것이 성령받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주십니다. 그 보증으로 마음에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함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로 이웃을 사랑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오늘날과 같은 교회시대에는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정을 받습니다. 따라서 성령은 어떻게 받는 것이며 성령받은 증거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성령받은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게 한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성령이 무엇이며, 자신이 성령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무엇보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1. 성령을 받는 방법
사도행전 19:1-7을 보면 사도 바울을 통해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지방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했을 때 제자들이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이들은 세례 요한이 베푸는 회개의 물세례는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어 성령을 선물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니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것이었습니다(고후 1:21-22).
사도행전 2:38-39을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했습니다. 곧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믿으면 죄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가 사역하던 당시에는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보내십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선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구제하기를 즐겨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고넬료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며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경외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행 10:1-46).
따라서 고린도전서 12:13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2. 성령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증거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이를 통해 자신의 신앙상태를 분별하고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증거들로는 과연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1)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죄사함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또한 죽었던 영이 살아났으니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룰 수 있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게 되고, 하나님의 계명들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주신 것임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이전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므로 이해하기 힘들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성령을 받고 나면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듣고 보게 되니 하나님의 뜻을 깨우쳐 영적인 양식을 삼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3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하셨으니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고 싶어집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중심에서 감사하는 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시켜 주셨습니다(롬 5:8).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순종을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 해도 믿음이 연약하여 순종하고자 하지만 결국 불순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기 전에 만들어진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이 남아 있어서 행함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려는 마음만은 기뻐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불같이 기도함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을 깨뜨려 나가며 영적인 성장과 더불어 순종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3)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은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시므로 죄를 싫어하고 악을 미워하며 선 가운데, 빛 가운데 거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는 만큼 원수 마귀가 만지지 못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그러면 죄란 무엇일까요? 요한일서 3:4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에도 영계의 법이 있는데, 바로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게 행하면 이는 불법을 행한 것이요, 죄를 범한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지켜 주실 수 없습니다.
죄는 크게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일이란 시기, 질투, 미움, 음욕 등 아직 죄를 직접 행하지는 않았지만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속성들을 말하며, 이러한 육신의 일을 행함으로 나타낼 때 바로 육체의 일이 됩니다(갈 5:19-21).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접 행함으로 나타내는 육체의 일뿐 아니라 내 안에 잠재하고 있는 육신의 일도 모두 죄라고 하시며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말씀하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성령의 주관을 받지 못하므로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의 열매, 악의 열매를 맺게 되지만 거듭난 사람들은 성령의 소욕을 좇게 되므로 불법을 행할 때 성령의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깨달아 진리를 행하며 성결된 깨끗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신앙의 형제들을 깊이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요한일서 4:20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들이 한 형제임을 알아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목자와 형제들을 사랑하며 섬기기를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5)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고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되고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천국을 소망하며, 죄와 불법과 불의를 낳게 만드는 세상과 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요한일서 5:4에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했습니다. 진리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받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6)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랫동안 했다고 해도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없지만 초신자라 해도 성령을 받으면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되니 믿음과 천국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갖게 되며 주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들이 나타남을 보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니 성령받은 증거가 따르는 것이지요.
7)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요한일서 5:15을 보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말씀하셨는데,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심을 알기 때문에 자녀로서 당연히 아버지께 구하게 되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게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며 구원의 확신 속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구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넘치도록 응답해 주심을 아는 것은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8)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게 됩니다.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화평치 못했던 사람이 화평한 사람으로,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나오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리의 도를 좇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변화하게 되니 이것이 성령받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주십니다. 그 보증으로 마음에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함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로 이웃을 사랑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