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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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6
제42과열재앙(3) - 이ㆍ파리 재앙 -
출 8:16-24
읽을말씀 : 출 8:16-24 | 외울말씀 : 출 15:26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이의 재앙과 파리의 재앙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열 재앙 중 뱀·피·개구리의 재앙에 대한 영적 의미를 살펴보았고, 오늘은 이어서 열 재앙 중 이의 재앙과 파리의 재앙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1. 이의 재앙
개구리 재앙을 당하고도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이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이르기를 "아론에게 명하여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이 그대로 행하니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올랐습니다.
애굽의 술객들도 자기 술법으로 이를 내려 하였으나 그와 같이 못하자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바로에게 고했습니다(출 8:16-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마음이 강퍅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곤충으로서 더러운 곳에 기생하는데, 그 모양은 하얗고 길쭉하게 생겼으며 사람이나 생축의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습니다. 이의 종류도 다양해서 머리와 옷, 겨드랑이, 털 같은 데 기생하는 등 약 280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가 사람의 살에 붙어 피를 빨아먹으면 가렵고 각종 병균을 옮기니 얼마나 귀찮고 괴롭겠습니까?
그러면 이의 재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땅의 티끌이 변하여 이가 되었다고 했는데, 티끌은 입으로 훅 불기만 해도 날아갈 정도로 아주 작은 것입니다. 이도 큰 것은 수 미리미터에서 작은 것은 0.5 미리미터 정도이고 그보다 더 작은 것도 있습니다. 이처럼 볼품없는 것들, 생명도 없고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 말라 죽어 있는 상태의 티끌이 살아 움직이는 이가 되어 피를 빨아먹으며 가렵게 하고 병균을 옮기는 것이 이의 재앙입니다.
따라서 이의 재앙의 영적인 의미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잠재되어 있던 작은 일들이 갑자기 큰 일로 비화되어 많은 괴로움과 고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게 더러움이 있을 때 이가 기생하듯이 이가 사람에게 올랐다는 것은 악의 모양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에게 이의 재앙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이의 재앙이 사람에게 임한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 미움이 싹트거나 분을 참지 못하고 혈기를 내거나, 사소한 거짓말을 숨기려다 많은 거짓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또한 악한 생각이 틈탔다든가 하면 마음의 고통을 받게 되고 신앙생활이 힘들어지며 사소한 질병이 생기게 되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이유로 갑자기 열병이 생기거나 감기가 왔다면 이것이 바로 이의 재앙임을 알아 마음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면 신속히 치료가 됩니다.
그렇다면 생축에게 이가 올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생축이란 살아 있는 동물로서, 그때 당시 가축은 땅과 더불어 재산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든 신하이든 백성이든 땅과 포도원이 있었고 짐승들을 길러 자기의 소유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소유물은 무엇이겠습니까? 집이나 땅, 사업터, 일터뿐 아니라 동거하고 있는 가족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생축에게 이가 올랐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발단이 되어서 큰 일로 발전되어 괴롭힐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옮아 함께 고통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부모의 죄가 자녀에게 옮겨가고, 아내의 죄가 남편에게 옮겨져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경우인데, 이것은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가령, 부모가 혈기를 내어 어린아이가 열병이 났다면 이의 재앙임을 깨닫고 신속히 회개하면 아이에게서 열병이 물러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이의 재앙은 악의 모양이 있어 임하는 것이므로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우연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는 악의 모양을 발견하여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2. 파리의 재앙
바로가 이의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서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자 하나님께서는 파리 떼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궁과 신하의 집은 물론 애굽 전역이 파리 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무수한 파리 떼로 애굽 땅이 해를 받았는데 이는 애굽 사람들의 패역함이 온 땅에 미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엔 파리 떼가 없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을 구별하시는 표징이었습니다.
'파리'는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곤충으로서 몸에 털이 많이 나 있어 털과 발에 병균을 묻혀 곳곳을 날아다니면서 전염병을 옮깁니다. 이러한 파리에 의해 전염되는 병에는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콜레라, 이질, 결핵, 나병 등이 있습니다. 애굽 땅에 이러한 파리 떼가 가득하니 갖가지 전염병이 생겨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사흘쯤 광야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허락하고 파리 떼의 재앙을 거두는 기도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파리 떼의 재앙이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변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바로 왕이 얼마나 비겁하게 행동했는지, 왜 재앙이 계속하여 임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의 간악한 속성과 하나님의 자비를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파리 떼의 재앙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파리가 더러운 곳에서 생겨나 전염병을 옮기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악하면 더러운 말이 입으로 나오고, 그로 인해 병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바로 파리의 재앙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5:11을 보면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은 음식인데 음식은 소화된 후 몸 밖으로 배설되므로 사람의 마음을 더럽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선한 마음에서 선이 나오고 악한 마음에서 악이 나오므로 마음이 더러우면 더러운 말이 나오고, 거짓된 마음이 있으면 거짓말이 나오며, 간사한 마음이 있으면 간사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요, 입으로 뱉는 악으로 인해 병이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마 15:18-20). 즉 파리가 더러운 곳에서 생겨나 전염병을 옮기듯이 마음이 더러우면 입술의 말도 악해지고, 병이 생겨나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된다는 것을 깨달아 "힘드네, 피곤하네, 졸리네, 죽겠네!" 등의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항상 긍정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파리 떼의 재앙이란 바로 마음이 악하고 더럽기 때문에 그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들이 올무가 되어서 질병이 차곡차곡 쌓여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 안에 질병이 쌓이거나 자녀나 남편, 아내, 일터 위에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감기나 가벼운 전염병이 왔다면 이것은 이의 재앙에 해당되는 것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즉시 치료받을 수 있지만 파리 떼의 재앙부터는 회개해도 즉시 낫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보응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의 재앙과는 달리 사소한 것이 아닌 악한 것으로 인해 보응이 따르는 것이므로 그동안 쌓였던 악들을 철저히 돌이켜 통회자복을 해야 치료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사랑을 받던 임금이었지만 살인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다윗을 책망하셨습니다. 다윗은 즉시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지만 그에 따르는 보응은 엄청나게 컸습니다.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으며, 아들 압살롬에 의해 궁궐에서 쫓겨나 피난을 가야 했고, 자녀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결국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지요. 다윗 임금의 믿음이 크고 하나님을 사랑한 만큼 징계도 컸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죄사함을 받으니 구원받아 영생에 이를 수 있지만 죄에 대한 보응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 가운데 입술로 짓는 죄들이 있어도 그것이 죄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며, 이로 인해 사업터, 일터, 가정이나 자신에게 죄의 보응이 따르는데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입술에서 나오는 악한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깨달아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입술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잠언 12:13-14을 보면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했고, 잠언 18:21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결코 재앙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의롭고 선한 마음으로 항상 긍정적인 말, 좋은 말, 선한 말, 의로운 말, 빛 된 말만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 바라며, 만일 재앙이 임하였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재앙에서 해방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이의 재앙, 파리의 재앙을 통하여 마음의 악으로 인해 재앙이 임하게 됨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삶을 살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일로 고통을 받거나 몸에 병이 생기게 되면 신속히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고 악을 벗어 버리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이의 재앙과 파리의 재앙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열 재앙 중 뱀·피·개구리의 재앙에 대한 영적 의미를 살펴보았고, 오늘은 이어서 열 재앙 중 이의 재앙과 파리의 재앙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1. 이의 재앙
개구리 재앙을 당하고도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이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이르기를 "아론에게 명하여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이 그대로 행하니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올랐습니다.
애굽의 술객들도 자기 술법으로 이를 내려 하였으나 그와 같이 못하자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바로에게 고했습니다(출 8:16-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마음이 강퍅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곤충으로서 더러운 곳에 기생하는데, 그 모양은 하얗고 길쭉하게 생겼으며 사람이나 생축의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습니다. 이의 종류도 다양해서 머리와 옷, 겨드랑이, 털 같은 데 기생하는 등 약 280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가 사람의 살에 붙어 피를 빨아먹으면 가렵고 각종 병균을 옮기니 얼마나 귀찮고 괴롭겠습니까?
그러면 이의 재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땅의 티끌이 변하여 이가 되었다고 했는데, 티끌은 입으로 훅 불기만 해도 날아갈 정도로 아주 작은 것입니다. 이도 큰 것은 수 미리미터에서 작은 것은 0.5 미리미터 정도이고 그보다 더 작은 것도 있습니다. 이처럼 볼품없는 것들, 생명도 없고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 말라 죽어 있는 상태의 티끌이 살아 움직이는 이가 되어 피를 빨아먹으며 가렵게 하고 병균을 옮기는 것이 이의 재앙입니다.
따라서 이의 재앙의 영적인 의미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잠재되어 있던 작은 일들이 갑자기 큰 일로 비화되어 많은 괴로움과 고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게 더러움이 있을 때 이가 기생하듯이 이가 사람에게 올랐다는 것은 악의 모양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에게 이의 재앙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이의 재앙이 사람에게 임한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 미움이 싹트거나 분을 참지 못하고 혈기를 내거나, 사소한 거짓말을 숨기려다 많은 거짓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또한 악한 생각이 틈탔다든가 하면 마음의 고통을 받게 되고 신앙생활이 힘들어지며 사소한 질병이 생기게 되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이유로 갑자기 열병이 생기거나 감기가 왔다면 이것이 바로 이의 재앙임을 알아 마음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면 신속히 치료가 됩니다.
그렇다면 생축에게 이가 올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생축이란 살아 있는 동물로서, 그때 당시 가축은 땅과 더불어 재산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든 신하이든 백성이든 땅과 포도원이 있었고 짐승들을 길러 자기의 소유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소유물은 무엇이겠습니까? 집이나 땅, 사업터, 일터뿐 아니라 동거하고 있는 가족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생축에게 이가 올랐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발단이 되어서 큰 일로 발전되어 괴롭힐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옮아 함께 고통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부모의 죄가 자녀에게 옮겨가고, 아내의 죄가 남편에게 옮겨져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경우인데, 이것은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가령, 부모가 혈기를 내어 어린아이가 열병이 났다면 이의 재앙임을 깨닫고 신속히 회개하면 아이에게서 열병이 물러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이의 재앙은 악의 모양이 있어 임하는 것이므로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우연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는 악의 모양을 발견하여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2. 파리의 재앙
바로가 이의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서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자 하나님께서는 파리 떼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궁과 신하의 집은 물론 애굽 전역이 파리 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무수한 파리 떼로 애굽 땅이 해를 받았는데 이는 애굽 사람들의 패역함이 온 땅에 미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엔 파리 떼가 없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을 구별하시는 표징이었습니다.
'파리'는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곤충으로서 몸에 털이 많이 나 있어 털과 발에 병균을 묻혀 곳곳을 날아다니면서 전염병을 옮깁니다. 이러한 파리에 의해 전염되는 병에는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콜레라, 이질, 결핵, 나병 등이 있습니다. 애굽 땅에 이러한 파리 떼가 가득하니 갖가지 전염병이 생겨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사흘쯤 광야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허락하고 파리 떼의 재앙을 거두는 기도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파리 떼의 재앙이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변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바로 왕이 얼마나 비겁하게 행동했는지, 왜 재앙이 계속하여 임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의 간악한 속성과 하나님의 자비를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파리 떼의 재앙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파리가 더러운 곳에서 생겨나 전염병을 옮기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악하면 더러운 말이 입으로 나오고, 그로 인해 병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바로 파리의 재앙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5:11을 보면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은 음식인데 음식은 소화된 후 몸 밖으로 배설되므로 사람의 마음을 더럽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선한 마음에서 선이 나오고 악한 마음에서 악이 나오므로 마음이 더러우면 더러운 말이 나오고, 거짓된 마음이 있으면 거짓말이 나오며, 간사한 마음이 있으면 간사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요, 입으로 뱉는 악으로 인해 병이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마 15:18-20). 즉 파리가 더러운 곳에서 생겨나 전염병을 옮기듯이 마음이 더러우면 입술의 말도 악해지고, 병이 생겨나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된다는 것을 깨달아 "힘드네, 피곤하네, 졸리네, 죽겠네!" 등의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항상 긍정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파리 떼의 재앙이란 바로 마음이 악하고 더럽기 때문에 그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들이 올무가 되어서 질병이 차곡차곡 쌓여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 안에 질병이 쌓이거나 자녀나 남편, 아내, 일터 위에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감기나 가벼운 전염병이 왔다면 이것은 이의 재앙에 해당되는 것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즉시 치료받을 수 있지만 파리 떼의 재앙부터는 회개해도 즉시 낫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보응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의 재앙과는 달리 사소한 것이 아닌 악한 것으로 인해 보응이 따르는 것이므로 그동안 쌓였던 악들을 철저히 돌이켜 통회자복을 해야 치료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사랑을 받던 임금이었지만 살인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다윗을 책망하셨습니다. 다윗은 즉시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지만 그에 따르는 보응은 엄청나게 컸습니다.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으며, 아들 압살롬에 의해 궁궐에서 쫓겨나 피난을 가야 했고, 자녀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결국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지요. 다윗 임금의 믿음이 크고 하나님을 사랑한 만큼 징계도 컸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죄사함을 받으니 구원받아 영생에 이를 수 있지만 죄에 대한 보응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 가운데 입술로 짓는 죄들이 있어도 그것이 죄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며, 이로 인해 사업터, 일터, 가정이나 자신에게 죄의 보응이 따르는데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입술에서 나오는 악한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깨달아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입술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잠언 12:13-14을 보면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했고, 잠언 18:21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결코 재앙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의롭고 선한 마음으로 항상 긍정적인 말, 좋은 말, 선한 말, 의로운 말, 빛 된 말만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 바라며, 만일 재앙이 임하였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재앙에서 해방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이의 재앙, 파리의 재앙을 통하여 마음의 악으로 인해 재앙이 임하게 됨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삶을 살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일로 고통을 받거나 몸에 병이 생기게 되면 신속히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고 악을 벗어 버리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10-19
제41과열재앙(2) - 뱀ㆍ피ㆍ개구리 재앙 -
출 7:10-13, 7:20-25, 8:2-7
읽을말씀 : 출 7:10-13, 7:20-25, 8:2-7 | 외울말씀 : 출 7:12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뱀, 피, 개구리의 재앙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영적으로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항상 승리와 축복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열 재앙의 서론으로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신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열 재앙이 임한 이유를 살펴보고 그 중에 뱀과 피 그리고 개구리 재앙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애굽에 열 재앙이 임한 이유
하나님께서 애굽에 많은 재앙을 내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굽 왕 바로와 백성들이 끝내 죽임을 당하기까지 재앙을 받은 것은 그만큼 바로가 강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 재앙은 누구에게나 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면 그토록 많은 재앙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강퍅하게 하셨다는 의미는 선한 바로를 임의로 강퍅케 했다는 뜻이 아니라 숨겨진 강퍅한 마음을 드러나게 하셨다는 뜻이지요. 바로는 열 재앙을 당하고 나서야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켰는데, 다시 변개하여 그들을 뒤쫓다가 수장당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강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가 강퍅하니 그 신하들은 물론 백성들도 강퍅해져서 결국 강퍅한 사람끼리 모여 피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였는데 그들이 선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므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그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
2. 열 재앙의 종류
그러면 열 재앙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는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서 뱀으로 변한 뱀의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지팡이가 뱀이 된 역사를 재앙으로 보기에 애매하여 빼고 열 재앙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재앙으로 취급하여 열한 재앙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둘째는 피의 재앙이요, 셋째는 개구리의 재앙이며, 넷째는 이의 재앙입니다.
다섯째는 파리 떼의 재앙이요, 여섯째는 악질의 재앙이며, 일곱째는 독종의 재앙입니다. 여덟째는 우박의 재앙이요, 아홉째는 메뚜기 재앙이며, 열 번째는 암흑의 재앙이요, 열한 번째는 장자의 재앙입니다. 바로는 강퍅한 마음을 지녔기에 이렇게 많은 재앙을 당하고서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켰습니다.
3. 뱀의 재앙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바로가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모세의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져 그것이 뱀이 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자 지팡이가 뱀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불러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였는데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 버렸습니다.
뱀의 역사를 하나의 재앙으로 보는 이유는 애굽의 뱀은 한 번 물리면 즉사하게 되는 독사이므로 뱀의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 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앞에 뱀을 등장시킴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지요. 모세의 지팡이를 뱀으로 변화시킨 것은, 죽어 있는 나무를 살아 있는 뱀으로 변화되게 역사하신 이가 곧 모세가 믿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는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모세가 믿는 하나님이 있는가보다 하고 믿으려고 했지만, 자기가 부리는 술객들도 뱀을 만드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더욱 강퍅한 마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지팡이가 변하여 뱀이 되게 하셨을까요? 또한 아론의 뱀이 술객들의 뱀을 삼킨 것은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것일까요? 바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수 없으므로 뱀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뱀은 곧 사단을 의미하며 뱀의 재앙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도 생각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하고 우연으로 돌려버리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이제 막 하나님을 영접했거나 전도를 받아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어떠한 문제나 시험거리를 해결받은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을 우연의 일치로 돌려버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차츰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 없게 되니 해결되었던 문제들이 다시 찾아오기도 하며 더욱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또한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낸 뱀이 술객들이 나타낸 뱀을 삼켰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것이며, 비록 하나님의 역사를 우연의 일치로 돌린다 해도 직접 체험한 것이기에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4. 피의 재앙
뱀의 재앙을 받고도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두 번째 재앙을 내리시기 시작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하수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 애굽 사람들이 하수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굽 술객들도 자기의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기를 거절하고 궁으로 들어가서 그 일에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하숫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는데 7일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의 재앙인데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뱀의 재앙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 주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부인하고 우연의 일치로 돌려버리면 악의 모양이 있는 만큼 시험이 찾아와 피의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물은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는 것이니 물이 피로 변한 피의 재앙이란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주변을 통해 찾아오는 시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초신자에게 친구나 부모, 일가 친척 또는 이웃으로부터 이런 시험이 오면 어떻겠습니까? 초신자들의 믿음 상태에서는 이런 일들이 짜증스럽고 고통스러운 재앙입니다.
가령 주일을 온전히 지키려고 하면 뭘 그렇게 열심히 믿느냐고 하면서 적당히 믿으라고 한다든가, 주일만 되면 모임을 만들어서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거나 주일을 온전히 지킬 수 없게 하는 것 등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지켜 주시지 못하므로 질병이 틈타고 시험 환난이 찾아오게 되지요.
이런 경우 주변에서는 교회에 다니니까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 회개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모든 시험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개구리 재앙
바로가 피의 재앙을 만나고도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명하여 지팡이를 잡고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니 개구리가 하수에서 무수히 생겨 올라와 온 애굽 땅을 덮었던 것입니다(출 8:3-4).
애굽 술객들도 이와 같이 행했지만 이들을 제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개구리를 떠나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것을 약속합니다. 이에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개구리가 모두 나와 죽고 숨이 통하게 되자 바로는 다시 마음이 완강해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개구리 재앙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개구리도 역시 사단을 의미하는데 요한계시록 16:13에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라고 나옵니다. 개구리는 아주 징그러우며 구약에 나오는 가증스러운 동물에 속하지요. 개구리가 궁과 침실과 침상 위에와 신하의 집과 백성에게 들어간다고 했는데 여기서 '궁, 신하의 집, 백성'은 온 인류 전체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화덕과 떡반죽 그릇에도 들어간다 하였는데, 떡반죽 그릇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의미하며, 화덕은 일터와 사업터를 뜻합니다.
만일 방과 침실, 사업터, 일터, 일용할 양식에까지 사단이 역사해서 분란을 일으킨다고 하면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예를 들어, 개구리가 침상 위에 올라왔다는 것은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니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핍박을 한다거나, 반대로 남편이 교회에 다니니 아내가 불의한 행위를 한다거나 하여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악의 모양을 발견하여 회개하고 아내나 남편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세 가지 재앙은 바로의 술객들이 등장하여 하나님의 역사와 똑같이 행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체험하고도 우연의 일치라고 하며 하나님을 서운케 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항상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입으면 재앙을 만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재앙이 임했을 때에는 즉시 회개하여 세상과 타협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승리의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뱀, 피, 개구리의 재앙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영적으로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항상 승리와 축복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열 재앙의 서론으로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신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열 재앙이 임한 이유를 살펴보고 그 중에 뱀과 피 그리고 개구리 재앙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애굽에 열 재앙이 임한 이유
하나님께서 애굽에 많은 재앙을 내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굽 왕 바로와 백성들이 끝내 죽임을 당하기까지 재앙을 받은 것은 그만큼 바로가 강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 재앙은 누구에게나 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면 그토록 많은 재앙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강퍅하게 하셨다는 의미는 선한 바로를 임의로 강퍅케 했다는 뜻이 아니라 숨겨진 강퍅한 마음을 드러나게 하셨다는 뜻이지요. 바로는 열 재앙을 당하고 나서야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켰는데, 다시 변개하여 그들을 뒤쫓다가 수장당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강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가 강퍅하니 그 신하들은 물론 백성들도 강퍅해져서 결국 강퍅한 사람끼리 모여 피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였는데 그들이 선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므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그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
2. 열 재앙의 종류
그러면 열 재앙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는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서 뱀으로 변한 뱀의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지팡이가 뱀이 된 역사를 재앙으로 보기에 애매하여 빼고 열 재앙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재앙으로 취급하여 열한 재앙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둘째는 피의 재앙이요, 셋째는 개구리의 재앙이며, 넷째는 이의 재앙입니다.
다섯째는 파리 떼의 재앙이요, 여섯째는 악질의 재앙이며, 일곱째는 독종의 재앙입니다. 여덟째는 우박의 재앙이요, 아홉째는 메뚜기 재앙이며, 열 번째는 암흑의 재앙이요, 열한 번째는 장자의 재앙입니다. 바로는 강퍅한 마음을 지녔기에 이렇게 많은 재앙을 당하고서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켰습니다.
3. 뱀의 재앙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바로가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모세의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져 그것이 뱀이 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자 지팡이가 뱀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불러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였는데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 버렸습니다.
뱀의 역사를 하나의 재앙으로 보는 이유는 애굽의 뱀은 한 번 물리면 즉사하게 되는 독사이므로 뱀의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 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앞에 뱀을 등장시킴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지요. 모세의 지팡이를 뱀으로 변화시킨 것은, 죽어 있는 나무를 살아 있는 뱀으로 변화되게 역사하신 이가 곧 모세가 믿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는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모세가 믿는 하나님이 있는가보다 하고 믿으려고 했지만, 자기가 부리는 술객들도 뱀을 만드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더욱 강퍅한 마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지팡이가 변하여 뱀이 되게 하셨을까요? 또한 아론의 뱀이 술객들의 뱀을 삼킨 것은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것일까요? 바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수 없으므로 뱀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뱀은 곧 사단을 의미하며 뱀의 재앙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도 생각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하고 우연으로 돌려버리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이제 막 하나님을 영접했거나 전도를 받아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어떠한 문제나 시험거리를 해결받은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을 우연의 일치로 돌려버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차츰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 없게 되니 해결되었던 문제들이 다시 찾아오기도 하며 더욱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또한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낸 뱀이 술객들이 나타낸 뱀을 삼켰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것이며, 비록 하나님의 역사를 우연의 일치로 돌린다 해도 직접 체험한 것이기에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4. 피의 재앙
뱀의 재앙을 받고도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두 번째 재앙을 내리시기 시작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하수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 애굽 사람들이 하수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굽 술객들도 자기의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기를 거절하고 궁으로 들어가서 그 일에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하숫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는데 7일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의 재앙인데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뱀의 재앙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 주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부인하고 우연의 일치로 돌려버리면 악의 모양이 있는 만큼 시험이 찾아와 피의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물은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는 것이니 물이 피로 변한 피의 재앙이란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주변을 통해 찾아오는 시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초신자에게 친구나 부모, 일가 친척 또는 이웃으로부터 이런 시험이 오면 어떻겠습니까? 초신자들의 믿음 상태에서는 이런 일들이 짜증스럽고 고통스러운 재앙입니다.
가령 주일을 온전히 지키려고 하면 뭘 그렇게 열심히 믿느냐고 하면서 적당히 믿으라고 한다든가, 주일만 되면 모임을 만들어서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거나 주일을 온전히 지킬 수 없게 하는 것 등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지켜 주시지 못하므로 질병이 틈타고 시험 환난이 찾아오게 되지요.
이런 경우 주변에서는 교회에 다니니까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 회개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모든 시험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개구리 재앙
바로가 피의 재앙을 만나고도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명하여 지팡이를 잡고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니 개구리가 하수에서 무수히 생겨 올라와 온 애굽 땅을 덮었던 것입니다(출 8:3-4).
애굽 술객들도 이와 같이 행했지만 이들을 제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개구리를 떠나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것을 약속합니다. 이에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개구리가 모두 나와 죽고 숨이 통하게 되자 바로는 다시 마음이 완강해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개구리 재앙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개구리도 역시 사단을 의미하는데 요한계시록 16:13에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라고 나옵니다. 개구리는 아주 징그러우며 구약에 나오는 가증스러운 동물에 속하지요. 개구리가 궁과 침실과 침상 위에와 신하의 집과 백성에게 들어간다고 했는데 여기서 '궁, 신하의 집, 백성'은 온 인류 전체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화덕과 떡반죽 그릇에도 들어간다 하였는데, 떡반죽 그릇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의미하며, 화덕은 일터와 사업터를 뜻합니다.
만일 방과 침실, 사업터, 일터, 일용할 양식에까지 사단이 역사해서 분란을 일으킨다고 하면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예를 들어, 개구리가 침상 위에 올라왔다는 것은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니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핍박을 한다거나, 반대로 남편이 교회에 다니니 아내가 불의한 행위를 한다거나 하여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악의 모양을 발견하여 회개하고 아내나 남편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세 가지 재앙은 바로의 술객들이 등장하여 하나님의 역사와 똑같이 행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체험하고도 우연의 일치라고 하며 하나님을 서운케 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항상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입으면 재앙을 만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재앙이 임했을 때에는 즉시 회개하여 세상과 타협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승리의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2007-10-12
제40과열재앙(1)
출 7:1-7
읽을말씀 : 출 7:1-7 | 외울말씀 : 딤전 2:4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열 재앙을 통하여 사람에게 시험 환난이 오고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깨달아 재앙을 피하며 시험 환난을 믿음으로 승리하여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곧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키기 위해 모세를 세우시고 열 가지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애굽이란 영적으로 이 세상을 칭하므로 애굽에 내렸던 열 재앙은 오늘날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열 재앙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사람에게 시험 환난이 오고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깨우쳐 줌으로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재앙과는 상관이 없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신 배경과 열 재앙에 대한 서론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하게 된 배경
출애굽기 7:1-7을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땅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에게 붙여 주신 이름으로 창세기 32:28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왜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을까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었지만 꿈이 있었는데 장자가 아니었기에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와 몹시 배고파하는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권을 삽니다. 이로써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소유하게 되었고 결국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까지 받아 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에서는 야곱을 미워하여 급기야는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삼촌인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여 오랜 세월을 지낸 후 아내와 자녀들을 얻고 많은 재산을 모아 고향인 가나안 땅을 향해 돌아오게 되지요.그런데 얍복 나루를 건너기 전에 형 에서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그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든 재산과 아내와 자녀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어버리게 될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며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 축복까지 받습니다.
이사야 41:14에 나오는 말씀대로 환도뼈가 부러져 지렁이 같은 야곱이 되었으니 이제까지 자신을 의지하였던 교만과 자아가 철저히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에서의 마음을 주관하셔서 서로 화목케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형성되고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라 이름하는 야곱에게는 네 여인을 통해 낳은 열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요셉은 낙심치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기억하며 항상 하나님 보시기에 정도를 걸었으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범사에 형통함을 입습니다.
결국 요셉은 애굽 왕 다음가는 직위인 총리대신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던 중 7년 흉년이 계속되자 야곱이 살던 가나안 땅에도 흉년이 들어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 양식을 구하러 왔다가 총리대신인 요셉을 만나게 되지요. 이를 계기로 야곱의 온 가족은 양식이 있는 애굽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왕이 바뀌면서 자기들보다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고 강한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애굽이 요셉을 통해 받았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새로운 왕은 그 방책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종으로 삼아 고역을 시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였고 애굽 왕은 새로 태어나는 히브리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받은 모세
이때 모세가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는 아이가 준수한 것을 보고 석 달을 숨겼다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자 갈 상자에 넣어 하숫가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의 공주가 발견하여 양자로 삼고자 하니 이를 보고 있던 모세의 누이가 재치 있게 행동하여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서 모세를 양육하게 되었지요.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자랐지만 이스라엘 민족인 친어머니의 손에 양육되었으므로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장성한 후에 자기 민족이 고역 당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어떤 애굽 사람이 자기의 동포를 치는 것을 보고 쳐 죽여 모래에 감추었습니다. 이 사실이 자기 동포에 의해 탄로가 나고 애굽 왕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찾게 됩니다.
그러면 모세는 어떻게 히브리 사람이 자기의 민족임을 알았을까요? 모세는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어머니를 통해서 자신이 히브리 백성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모세가 애굽 왕인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자신의 동포를 위한 일을 하였기에 애굽 사람에 의해서 고발을 당해야 하겠지만 오히려 그 일을 숨겨 주고 두둔해 주어야 할 동족이 모세를 팔았던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가서 40년 동안 목동으로 지내게 되지요. 이것은 자기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는 모세를 연단하여 출애굽의 지도자로 삼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지도자로 삼으셨는데 그 당시 모세의 나이가 80세였습니다.
3. 열 재앙이 임하게 된 배경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자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수 있는 길이 열릴 때까지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결국 바로 왕은 열 가지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였지요.
당시 애굽 사람들은 사자와 같이 용맹스럽고 강한 민족성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체구가 단단하고 피가 들끓는 젊은이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바로 임금들, 즉 파라오들은 자신을 신으로 여겼고 신하와 백성들은 임금을 신처럼 받들었습니다. 그러니 모세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 곧 하나님을 소개하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애굽 왕과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기까지 재앙을 받은 것은 그만큼 바로가 강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머리가 되는 왕이 강퍅하니 백성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한 가정에서 가장이 강퍅하면 가족들도 대부분 강퍅한 것과 같습니다. 만일 애굽 백성들이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필요가 없었지요.
출애굽기를 보면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출 9:12) 하신 말씀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9:18에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마치 독재자 하나님인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 천하 만민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니 마음이 강퍅한 사람일지라도 어떻게 하든지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리가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시는 독재자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 자체이시며 선하고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영계의 법칙 곧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시는 분이시니 우리가 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으면 재앙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살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주시고 좋은 길을 선택하게 하시는 분이지 결코 미리 정해 놓고 마음대로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애굽 왕 바로는 악이 드러날 때마다 이를 버려 나간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악을 행해 나가니 결국은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재앙을 통해서 그 마음속에 있는 강퍅함을 계속 드러나게 하셨는데, 성경에서는 이를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열 재앙의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디모데전서 2:4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해 밝히 깨닫고 빛 가운데 거하여 항상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열 재앙을 통하여 사람에게 시험 환난이 오고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깨달아 재앙을 피하며 시험 환난을 믿음으로 승리하여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곧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키기 위해 모세를 세우시고 열 가지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애굽이란 영적으로 이 세상을 칭하므로 애굽에 내렸던 열 재앙은 오늘날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열 재앙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사람에게 시험 환난이 오고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깨우쳐 줌으로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재앙과는 상관이 없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신 배경과 열 재앙에 대한 서론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하게 된 배경
출애굽기 7:1-7을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땅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에게 붙여 주신 이름으로 창세기 32:28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왜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을까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었지만 꿈이 있었는데 장자가 아니었기에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와 몹시 배고파하는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권을 삽니다. 이로써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소유하게 되었고 결국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까지 받아 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에서는 야곱을 미워하여 급기야는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삼촌인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여 오랜 세월을 지낸 후 아내와 자녀들을 얻고 많은 재산을 모아 고향인 가나안 땅을 향해 돌아오게 되지요.그런데 얍복 나루를 건너기 전에 형 에서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그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든 재산과 아내와 자녀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어버리게 될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며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 축복까지 받습니다.
이사야 41:14에 나오는 말씀대로 환도뼈가 부러져 지렁이 같은 야곱이 되었으니 이제까지 자신을 의지하였던 교만과 자아가 철저히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에서의 마음을 주관하셔서 서로 화목케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형성되고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라 이름하는 야곱에게는 네 여인을 통해 낳은 열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요셉은 낙심치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기억하며 항상 하나님 보시기에 정도를 걸었으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범사에 형통함을 입습니다.
결국 요셉은 애굽 왕 다음가는 직위인 총리대신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던 중 7년 흉년이 계속되자 야곱이 살던 가나안 땅에도 흉년이 들어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 양식을 구하러 왔다가 총리대신인 요셉을 만나게 되지요. 이를 계기로 야곱의 온 가족은 양식이 있는 애굽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왕이 바뀌면서 자기들보다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고 강한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애굽이 요셉을 통해 받았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새로운 왕은 그 방책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종으로 삼아 고역을 시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였고 애굽 왕은 새로 태어나는 히브리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받은 모세
이때 모세가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는 아이가 준수한 것을 보고 석 달을 숨겼다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자 갈 상자에 넣어 하숫가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의 공주가 발견하여 양자로 삼고자 하니 이를 보고 있던 모세의 누이가 재치 있게 행동하여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서 모세를 양육하게 되었지요.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자랐지만 이스라엘 민족인 친어머니의 손에 양육되었으므로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장성한 후에 자기 민족이 고역 당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어떤 애굽 사람이 자기의 동포를 치는 것을 보고 쳐 죽여 모래에 감추었습니다. 이 사실이 자기 동포에 의해 탄로가 나고 애굽 왕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찾게 됩니다.
그러면 모세는 어떻게 히브리 사람이 자기의 민족임을 알았을까요? 모세는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어머니를 통해서 자신이 히브리 백성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모세가 애굽 왕인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자신의 동포를 위한 일을 하였기에 애굽 사람에 의해서 고발을 당해야 하겠지만 오히려 그 일을 숨겨 주고 두둔해 주어야 할 동족이 모세를 팔았던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가서 40년 동안 목동으로 지내게 되지요. 이것은 자기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는 모세를 연단하여 출애굽의 지도자로 삼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지도자로 삼으셨는데 그 당시 모세의 나이가 80세였습니다.
3. 열 재앙이 임하게 된 배경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자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수 있는 길이 열릴 때까지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결국 바로 왕은 열 가지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였지요.
당시 애굽 사람들은 사자와 같이 용맹스럽고 강한 민족성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체구가 단단하고 피가 들끓는 젊은이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바로 임금들, 즉 파라오들은 자신을 신으로 여겼고 신하와 백성들은 임금을 신처럼 받들었습니다. 그러니 모세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 곧 하나님을 소개하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애굽 왕과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기까지 재앙을 받은 것은 그만큼 바로가 강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머리가 되는 왕이 강퍅하니 백성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한 가정에서 가장이 강퍅하면 가족들도 대부분 강퍅한 것과 같습니다. 만일 애굽 백성들이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필요가 없었지요.
출애굽기를 보면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출 9:12) 하신 말씀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9:18에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마치 독재자 하나님인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 천하 만민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니 마음이 강퍅한 사람일지라도 어떻게 하든지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리가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시는 독재자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 자체이시며 선하고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영계의 법칙 곧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시는 분이시니 우리가 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으면 재앙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살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주시고 좋은 길을 선택하게 하시는 분이지 결코 미리 정해 놓고 마음대로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애굽 왕 바로는 악이 드러날 때마다 이를 버려 나간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악을 행해 나가니 결국은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재앙을 통해서 그 마음속에 있는 강퍅함을 계속 드러나게 하셨는데, 성경에서는 이를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열 재앙의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디모데전서 2:4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해 밝히 깨닫고 빛 가운데 거하여 항상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2007-10-05
제39과십계명(10)
출 20:17
읽을말씀 : 출 20:17 | 외울말씀 : 약 1:15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10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
1. 탐내지 말지니라
출애굽기 20:17을 보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고 제10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탐심'이란 탐내는 마음, 부당한 욕심이라고 사전에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가 아닌 남의 것을 계속하여 바라고 불의한 방법으로 탐하는 마음이 곧 탐심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범죄가 탐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탐심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도적질도 하며 간음하고 절도, 강도, 사기, 횡령, 살인 등 갖가지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질을 탐해서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지위와 명예를 탐해서 죄를 범하기도 하므로 탐심은 참으로 경계해야 할 악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웃집을 방문했는데 그 집이 부요하여 온갖 귀한 물건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이므로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탐심이 생긴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훔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더라도 이를 통해서 자기 마음 안에 욕심이 자리잡은 것을 알 수 있으며, 결국 이러한 탐심이 각종 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2. 탐심을 버리면 임하는 축복
사람에게는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영혼, 곧 참 생명입니다. 천하를 얻는다 해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만 이 세상의 부귀를 얻지 못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할 수 있는 참 생명을 소유한다면 진정 부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열심히 충성, 봉사하는 사람이 행여 가난하게 산다고 해도 '저 사람은 하나님께 열심히 충성하는데 왜 물질의 축복을 받지 못할까?'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참된 축복은 물질이 많은 것에 있지 않고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온전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자연히 물질의 축복도 따르게 되지요.
반면에 영혼이 잘되지 않은 사람에게 많은 물질이 있으면 자칫 욕심으로 인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날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다가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세상을 향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물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탐심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망으로 인도하는 악임을 분명히 깨우쳐서 물질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말씀하셨으니 참 믿음을 소유하려면 탐심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9 이하를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자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아갔지만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먹고 살며 심지어는 개들이 와서 그 헌 데를 핥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나사로는 비록 거지였지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선을 행해 나갔습니다. 반면 부자는 이 땅에 소망을 두었고 욕심을 가졌으며 악하게 살았지요.
결국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지는 천사들의 손에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음부에 내려가 세세토록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누가 더 행복한 사람입니까? 이 세상에서 거지로 살았다 해도 구원을 얻은 나사로가 당연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며 세상을 향할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물질의 축복을 주십니다. 야고보서 4:2-3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응답되지 않지만 성령의 역사를 따라 기도하면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이므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분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해 주시는 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대로 행해 나감으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 나가면 자연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 기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 같은 기도를 통하여 탐심을 철저히 버리고 오직 성령의 역사를 따라 구하면 영혼이 잘되어 구원받는 것은 물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3. 자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성경을 보면 물질을 탐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사람들의 예가 곳곳에 나옵니다. 여호수아 7:20 이하에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아간이라는 사람이 은과 금을 탐해서 도적질했다가 돌에 맞아 죽은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열왕기하 5:23 이하를 보면 엘리사의 종 게하시 역시 은과 의복을 탐해서 거짓말을 하여 나아만에게 선물을 받았다가 문둥병에 걸렸던 것을 볼 수 있고, 사도행전 5:1 이하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탐심 때문에 성령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다가 죽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탐심으로 인해 많은 범죄가 일어남을 깨달아 우리는 탐심을 버리고 자족하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4:11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풍부한 데도 처할 줄 알고 빈곤한 데도 처할 줄 알아 오로지 영적인 부요함을 누리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거나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자족하며 감사할 줄 아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녕 탐내고 사모하며 갖고 싶어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진리의 말씀입니다. 죄를 버리고 의 가운데 나와 의인이 되기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나 장막이나 명예나 권세를 탐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을 다 소유했다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을 살면 내세에서 영생을 얻어 영원한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4. 십계명을 지킬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지켜 행하는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뿐 아니라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됩니다(신 28:1-6).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각종 저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신 28:15-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아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5:14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친구가 되는 축복도 받게 됩니다.
더욱이 요한일서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하셨으니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계명을 지켜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십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값진 것인가를 아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행함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 뛰어나게 하시고 영생의 축복을 주시며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10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
1. 탐내지 말지니라
출애굽기 20:17을 보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고 제10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탐심'이란 탐내는 마음, 부당한 욕심이라고 사전에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가 아닌 남의 것을 계속하여 바라고 불의한 방법으로 탐하는 마음이 곧 탐심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범죄가 탐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탐심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도적질도 하며 간음하고 절도, 강도, 사기, 횡령, 살인 등 갖가지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질을 탐해서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지위와 명예를 탐해서 죄를 범하기도 하므로 탐심은 참으로 경계해야 할 악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웃집을 방문했는데 그 집이 부요하여 온갖 귀한 물건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이므로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탐심이 생긴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훔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더라도 이를 통해서 자기 마음 안에 욕심이 자리잡은 것을 알 수 있으며, 결국 이러한 탐심이 각종 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2. 탐심을 버리면 임하는 축복
사람에게는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영혼, 곧 참 생명입니다. 천하를 얻는다 해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만 이 세상의 부귀를 얻지 못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할 수 있는 참 생명을 소유한다면 진정 부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열심히 충성, 봉사하는 사람이 행여 가난하게 산다고 해도 '저 사람은 하나님께 열심히 충성하는데 왜 물질의 축복을 받지 못할까?'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참된 축복은 물질이 많은 것에 있지 않고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온전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자연히 물질의 축복도 따르게 되지요.
반면에 영혼이 잘되지 않은 사람에게 많은 물질이 있으면 자칫 욕심으로 인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날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다가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세상을 향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물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탐심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망으로 인도하는 악임을 분명히 깨우쳐서 물질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말씀하셨으니 참 믿음을 소유하려면 탐심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9 이하를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자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아갔지만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먹고 살며 심지어는 개들이 와서 그 헌 데를 핥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나사로는 비록 거지였지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선을 행해 나갔습니다. 반면 부자는 이 땅에 소망을 두었고 욕심을 가졌으며 악하게 살았지요.
결국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지는 천사들의 손에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음부에 내려가 세세토록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누가 더 행복한 사람입니까? 이 세상에서 거지로 살았다 해도 구원을 얻은 나사로가 당연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며 세상을 향할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물질의 축복을 주십니다. 야고보서 4:2-3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응답되지 않지만 성령의 역사를 따라 기도하면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이므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분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해 주시는 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대로 행해 나감으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 나가면 자연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 기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 같은 기도를 통하여 탐심을 철저히 버리고 오직 성령의 역사를 따라 구하면 영혼이 잘되어 구원받는 것은 물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3. 자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성경을 보면 물질을 탐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사람들의 예가 곳곳에 나옵니다. 여호수아 7:20 이하에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아간이라는 사람이 은과 금을 탐해서 도적질했다가 돌에 맞아 죽은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열왕기하 5:23 이하를 보면 엘리사의 종 게하시 역시 은과 의복을 탐해서 거짓말을 하여 나아만에게 선물을 받았다가 문둥병에 걸렸던 것을 볼 수 있고, 사도행전 5:1 이하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탐심 때문에 성령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다가 죽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탐심으로 인해 많은 범죄가 일어남을 깨달아 우리는 탐심을 버리고 자족하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4:11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풍부한 데도 처할 줄 알고 빈곤한 데도 처할 줄 알아 오로지 영적인 부요함을 누리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거나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자족하며 감사할 줄 아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녕 탐내고 사모하며 갖고 싶어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진리의 말씀입니다. 죄를 버리고 의 가운데 나와 의인이 되기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나 장막이나 명예나 권세를 탐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을 다 소유했다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을 살면 내세에서 영생을 얻어 영원한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4. 십계명을 지킬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지켜 행하는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뿐 아니라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됩니다(신 28:1-6).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각종 저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신 28:15-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아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5:14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친구가 되는 축복도 받게 됩니다.
더욱이 요한일서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하셨으니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계명을 지켜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십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값진 것인가를 아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행함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 뛰어나게 하시고 영생의 축복을 주시며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9-25
제38과추석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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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목표 :
1. 추석의 유래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시대부터 지내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에 속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합니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는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습니다.
또 한문으로는 '배'라고도 하는데 이날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의 하나입니다. 추석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드는데 이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2. 추석에 대한 성경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서 초실절(맥추감사절)과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주셔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이러한 감사의 절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 추석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시겠습니다.
묵상기도------------------------------------------------------------------- 다같이
기 원-----------------------------------------------------------------------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아멘 -
찬 송------------------------- 460장 ---------------------------------------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다같이
기 도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들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모든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민 6:24-26 ------------------------------------- 인도자
설 교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다같이
주기도문 ----------------------------------------------------------------------다같이
4. 설교 예문
본 문 : 민수기 6:24-26(제목: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역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1)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님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3)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살아 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하나님을 잘 섬겨 복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1. 추석의 유래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시대부터 지내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에 속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합니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는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습니다.
또 한문으로는 '배'라고도 하는데 이날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의 하나입니다. 추석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드는데 이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2. 추석에 대한 성경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서 초실절(맥추감사절)과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주셔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이러한 감사의 절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 추석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시겠습니다.
묵상기도------------------------------------------------------------------- 다같이
기 원-----------------------------------------------------------------------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아멘 -
찬 송------------------------- 460장 ---------------------------------------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다같이
기 도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들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모든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민 6:24-26 ------------------------------------- 인도자
설 교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다같이
주기도문 ----------------------------------------------------------------------다같이
4. 설교 예문
본 문 : 민수기 6:24-26(제목: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역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1)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님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3)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살아 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하나님을 잘 섬겨 복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9-21
제37과십계명(9)
출 20:16
읽을말씀 : 출 20:16 | 외울말씀 : 야 4:11-12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9계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6을 보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는 제9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네 이웃이란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을 말하며 부모, 형제, 자녀도 이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부모, 형제, 자녀 등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명하신 이유를 깨달아 결코 범죄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거짓 증거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판단하거나 비판하며 헤아려 정죄하는 경우
마태복음 7:1 이하를 보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들추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실 수 있지만,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상대를 판단하고 헤아리는 것은 스스로 거짓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므로 또다시 상대도 나를 비판하고 헤아리게 됩니다.
거짓 증거는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시험과 환난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빼내어 온전히 진리만이 임한 성결된 상태가 되면 진리로 밝히 분별할 수 있으니 상대방에게 티를 빼내라고 권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마음으로 변화되어 성결된 경지에 이르게 되면 상대방의 티를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짓 증거를 하지 않으려면 먼저는 이웃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이나 겉모습을 통해서는 마음 중심을 알 수 없으므로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여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1-12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달아 결코 판단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율법을 판단하고 재판하는 사람이니 이는 곧 하나님을 판단하는 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왜 옳지 않은 것일까요? 요한일서 2:15-16 말씀대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래서 각자 보고 듣고 배워 입력시킨 것으로 나름대로 양심의 판단기준을 만들어 가므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양심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각 사람의 양심은 진리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양심을 좇아 판단하는 것도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것이니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인 것이요, 자신이 입력시켜 놓은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상대를 판단하거나 정죄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모두 거짓 증거에 해당됩니다.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아 혹여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신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니 돌이켜 회개하면 용서를 받지만, 만일 회개치 않고 계속 판단하고 정죄해 간다면 심판 날에 재판을 받아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아담의 후예인 인류를 정죄하셨다면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정죄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도 죄인인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니, 우리도 상대를 정죄하거나 판단하고 헤아리는 죄를 결코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36 이하에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권면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하거나 판단, 정죄하여 거짓 증거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비록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지요.
2. 말을 더하거나 빼는 경우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말로 인하여 오해를 빚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경우도 있지만 한 마디의 말을 잘못함으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전할 때에는 조금도 실수가 없도록 제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결코 말을 더하거나 빼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설령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전달한다고 해도 억양이나 표정, 말의 장단, 어순에 따라 그 내용이나 뜻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 주 안에서 상대를 칭찬하는 말이나 사랑의 말, 권면의 말 등 좋은 말만 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평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사람에 대하여 제3자로부터 험담을 듣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때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감정을 더 보태서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 엉뚱한 말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형제의 티를 보고 험담하는 말을 할 때에는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여 그에 따른 보응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이 나를 흉보았다며 내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전한다면 그 말을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좋지 않은 말을 전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하며 그런 말은 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진리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상대에게 어떠한 말을 전함에 있어서 사실 그대로를 전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생각에 의해 더하거나 빼서 전달하는 일이 있다면 이것도 거짓 증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대로를 전하지 않으면 상대가 오해할 수도 있고,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으며,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 사실과 다르게 증거하는 경우
마태복음 26:57 이하를 보면, 예수님을 잡은 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거짓 증거를 찾았으나 결국 얻지 못하게 되자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며 거짓 증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비유 들어 설명하신 것인데 이들은 이 말씀의 뜻을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 속에서 거짓으로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6:69-70을 보면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말을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든가, 아니면 "그때 나는 그 자리에 없었노라." 하며 거짓 증거하는 일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여 어떤 해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거짓 증거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진실하고 거룩한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1을 보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 속에 거짓말이나, 농담 등 비진리의 말을 모두 버리고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하거나 헤아려 정죄하는 일이나, 말을 더하거나 빼서 전하는 일, 또한 사실과 다르게 증거하는 것이 모두 거짓 증거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바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성경에 기록된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영혼이 잘된 만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9계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6을 보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는 제9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네 이웃이란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을 말하며 부모, 형제, 자녀도 이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부모, 형제, 자녀 등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명하신 이유를 깨달아 결코 범죄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거짓 증거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판단하거나 비판하며 헤아려 정죄하는 경우
마태복음 7:1 이하를 보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들추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실 수 있지만,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상대를 판단하고 헤아리는 것은 스스로 거짓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므로 또다시 상대도 나를 비판하고 헤아리게 됩니다.
거짓 증거는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시험과 환난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빼내어 온전히 진리만이 임한 성결된 상태가 되면 진리로 밝히 분별할 수 있으니 상대방에게 티를 빼내라고 권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마음으로 변화되어 성결된 경지에 이르게 되면 상대방의 티를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짓 증거를 하지 않으려면 먼저는 이웃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이나 겉모습을 통해서는 마음 중심을 알 수 없으므로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여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1-12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달아 결코 판단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율법을 판단하고 재판하는 사람이니 이는 곧 하나님을 판단하는 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왜 옳지 않은 것일까요? 요한일서 2:15-16 말씀대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래서 각자 보고 듣고 배워 입력시킨 것으로 나름대로 양심의 판단기준을 만들어 가므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양심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각 사람의 양심은 진리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양심을 좇아 판단하는 것도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것이니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인 것이요, 자신이 입력시켜 놓은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상대를 판단하거나 정죄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모두 거짓 증거에 해당됩니다.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아 혹여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신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니 돌이켜 회개하면 용서를 받지만, 만일 회개치 않고 계속 판단하고 정죄해 간다면 심판 날에 재판을 받아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아담의 후예인 인류를 정죄하셨다면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정죄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도 죄인인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니, 우리도 상대를 정죄하거나 판단하고 헤아리는 죄를 결코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36 이하에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권면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하거나 판단, 정죄하여 거짓 증거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비록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지요.
2. 말을 더하거나 빼는 경우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말로 인하여 오해를 빚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경우도 있지만 한 마디의 말을 잘못함으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전할 때에는 조금도 실수가 없도록 제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결코 말을 더하거나 빼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설령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전달한다고 해도 억양이나 표정, 말의 장단, 어순에 따라 그 내용이나 뜻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 주 안에서 상대를 칭찬하는 말이나 사랑의 말, 권면의 말 등 좋은 말만 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평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사람에 대하여 제3자로부터 험담을 듣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때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감정을 더 보태서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 엉뚱한 말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형제의 티를 보고 험담하는 말을 할 때에는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여 그에 따른 보응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이 나를 흉보았다며 내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전한다면 그 말을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좋지 않은 말을 전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하며 그런 말은 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진리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상대에게 어떠한 말을 전함에 있어서 사실 그대로를 전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생각에 의해 더하거나 빼서 전달하는 일이 있다면 이것도 거짓 증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대로를 전하지 않으면 상대가 오해할 수도 있고,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으며,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 사실과 다르게 증거하는 경우
마태복음 26:57 이하를 보면, 예수님을 잡은 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거짓 증거를 찾았으나 결국 얻지 못하게 되자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며 거짓 증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비유 들어 설명하신 것인데 이들은 이 말씀의 뜻을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 속에서 거짓으로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6:69-70을 보면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말을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든가, 아니면 "그때 나는 그 자리에 없었노라." 하며 거짓 증거하는 일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여 어떤 해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거짓 증거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진실하고 거룩한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1을 보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 속에 거짓말이나, 농담 등 비진리의 말을 모두 버리고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하거나 헤아려 정죄하는 일이나, 말을 더하거나 빼서 전하는 일, 또한 사실과 다르게 증거하는 것이 모두 거짓 증거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바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성경에 기록된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영혼이 잘된 만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9-14
제36과십계명(8)
출 20:15
읽을말씀 : 출 20:15 | 외울말씀 : 말 3:8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8계명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5을 보면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라는 십계명 중 여덟 번째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전에 보면 도적질이란 '잘못된 목적을 위하여 잘못된 수단으로 재물을 다루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지요. 즉 자기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취해 오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중에는 '이 계명만큼은 자신 있게 지켜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의 영적인 의미를 분명하게 알아야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남의 것을 취하는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이란,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인 양 남의 것을 취해 오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훔치지 않았다면 도적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직접 훔치지 않았다 해도 도적질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절도, 강도, 사기, 횡령 등 타인의 것을 취하는 경우뿐 아니라 상대를 속이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합니다. 어떤 물건을 속여 팔아서 이익을 과다하게 남긴다거나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남의 것을 사용하는 경우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도적질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친구 사이거나, 허물없이 다정한 사이라 해도 허락 없이 사용한다면 이것도 엄밀한 도적질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남의 것을 훔쳐야만 도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취하여 마음에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도적질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니면 주인의 허락을 받고 사용하거나 취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지요. 가령 어떤 성도 가정에 심방을 갔는데 마침 그분이 출타중이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목이 마르다고 해서 냉장고 문을 열고 마음대로 음료수를 마신다거나 음식을 꺼내 먹었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도적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이런 사소한 것이 쌓이게 되면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나중에 어떤 큰 일을 저지르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합당하게 여기시지 않는 것입니다. 흔히 죄라고 하면 큰 것만 생각하기 쉬우나 죄 가운데는 아주 작은 것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 해도 한 번 행할 때와 열 번 행했을 때의 마음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도적질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만큼 양심이 무디어지기 때문에 나중에는 양심의 가책도 느낄 줄 모르게 되고 큰 것도 서슴없이 도적질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죄악의 시초가 되는 것은 아예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당한 뇌물을 받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3:8을 보면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뇌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죄악들이 발생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남의 것을 탐내지 말며, 자기 것이 아니면 조금도 취하려는 마음이 없어야 도적질하는 죄를 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영적인 의미의 도적질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도적질이라고 하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남의 것을 취하는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은 의롭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도적질하는 죄를 범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의미의 도적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경우
말라기 3:8-9을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 곧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였기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것을 도적질해도 떨리고 무서운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것을 어찌 도적질할 수 있겠습니까? 십일조는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여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 되므로 저주가 임하게 되지요. 이 세상에서도 도적질을 하는 죄를 범하면 경중에 따라서 형량이 정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면 경중에 따라 물질의 어려움을 당하고 각종 시험 환난과 질병 등이 틈타는 것입니다.
말라기 3:10-12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란 수입 전체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고정적인 수입 외에도 식사를 대접받았거나 기타 선물을 받았다면 이런 부수입도 계산하여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자연의 법칙과 같이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물질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는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며 물질의 축복을 넘치게 주십니다.
다음은 헌물을 도적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헌물이란 감사예물을 뜻하는데 하나님의 자녀는 범사에 감사해야 하며 감사한 마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감사의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에 이르고, 귀한 직분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며, 시험 환난으로부터 지킴받는 등 여러 모로 은혜를 받았으면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집안에 우환질고가 끊이질 않고 사업도 잘 되지 않는 등 어려움이 많았던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 사고가 떠나가고 질병이 물러가며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변화되었다는 간증이 많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도적질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며 복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 모두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경우
영적인 도적질에는 이렇게 십일조와 헌물 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23:30-32을 보면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몽사는 꿈을 말하는데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거짓 몽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것일까요?
자기 생각 속에서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하여 이러한 꿈을 보여 주셨다."고 한다든가, 자기 생각 속에서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환상을 보여 주셨다."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잘못 전해 주는 경우입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도 있지만 자기 생각 속에 꾼 꿈이 있으며, 원수 마귀 사단이 주는 꿈도 있습니다. 그러니 꿈을 잘못 분별하고 상대에게 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오류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사단이 준 환상을 보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혹을 받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런 것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하며 미혹을 받는 일이 결코 없어야겠습니다.
심지어는 거짓으로 예언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데 아무리 그럴 듯하게 해도 결과를 보면 거짓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때나 예언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 곧 하나님의 섭리 속에 악이 없는 성결된 사람들을 택하여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자기 생각이나, 스스로의 감동함 속에서 나온 것을 예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한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적질에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육적인 도적질뿐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취하는 영적인 도적질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으니 결코 도적질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진실한 믿음을 소유하여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8계명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5을 보면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라는 십계명 중 여덟 번째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전에 보면 도적질이란 '잘못된 목적을 위하여 잘못된 수단으로 재물을 다루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지요. 즉 자기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취해 오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중에는 '이 계명만큼은 자신 있게 지켜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의 영적인 의미를 분명하게 알아야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이란,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인 양 남의 것을 취해 오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훔치지 않았다면 도적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직접 훔치지 않았다 해도 도적질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절도, 강도, 사기, 횡령 등 타인의 것을 취하는 경우뿐 아니라 상대를 속이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합니다. 어떤 물건을 속여 팔아서 이익을 과다하게 남긴다거나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남의 것을 사용하는 경우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도적질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친구 사이거나, 허물없이 다정한 사이라 해도 허락 없이 사용한다면 이것도 엄밀한 도적질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남의 것을 훔쳐야만 도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취하여 마음에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도적질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니면 주인의 허락을 받고 사용하거나 취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지요. 가령 어떤 성도 가정에 심방을 갔는데 마침 그분이 출타중이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목이 마르다고 해서 냉장고 문을 열고 마음대로 음료수를 마신다거나 음식을 꺼내 먹었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도적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이런 사소한 것이 쌓이게 되면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나중에 어떤 큰 일을 저지르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합당하게 여기시지 않는 것입니다. 흔히 죄라고 하면 큰 것만 생각하기 쉬우나 죄 가운데는 아주 작은 것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 해도 한 번 행할 때와 열 번 행했을 때의 마음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도적질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만큼 양심이 무디어지기 때문에 나중에는 양심의 가책도 느낄 줄 모르게 되고 큰 것도 서슴없이 도적질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죄악의 시초가 되는 것은 아예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당한 뇌물을 받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3:8을 보면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뇌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죄악들이 발생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남의 것을 탐내지 말며, 자기 것이 아니면 조금도 취하려는 마음이 없어야 도적질하는 죄를 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도적질이라고 하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남의 것을 취하는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은 의롭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도적질하는 죄를 범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의미의 도적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말라기 3:8-9을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 곧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였기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것을 도적질해도 떨리고 무서운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것을 어찌 도적질할 수 있겠습니까? 십일조는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여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 되므로 저주가 임하게 되지요. 이 세상에서도 도적질을 하는 죄를 범하면 경중에 따라서 형량이 정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면 경중에 따라 물질의 어려움을 당하고 각종 시험 환난과 질병 등이 틈타는 것입니다.
말라기 3:10-12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란 수입 전체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고정적인 수입 외에도 식사를 대접받았거나 기타 선물을 받았다면 이런 부수입도 계산하여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자연의 법칙과 같이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물질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는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며 물질의 축복을 넘치게 주십니다.
다음은 헌물을 도적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헌물이란 감사예물을 뜻하는데 하나님의 자녀는 범사에 감사해야 하며 감사한 마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감사의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에 이르고, 귀한 직분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며, 시험 환난으로부터 지킴받는 등 여러 모로 은혜를 받았으면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집안에 우환질고가 끊이질 않고 사업도 잘 되지 않는 등 어려움이 많았던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 사고가 떠나가고 질병이 물러가며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변화되었다는 간증이 많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도적질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며 복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 모두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도적질에는 이렇게 십일조와 헌물 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23:30-32을 보면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몽사는 꿈을 말하는데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거짓 몽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것일까요?
자기 생각 속에서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하여 이러한 꿈을 보여 주셨다."고 한다든가, 자기 생각 속에서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환상을 보여 주셨다."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잘못 전해 주는 경우입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도 있지만 자기 생각 속에 꾼 꿈이 있으며, 원수 마귀 사단이 주는 꿈도 있습니다. 그러니 꿈을 잘못 분별하고 상대에게 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오류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사단이 준 환상을 보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혹을 받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런 것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하며 미혹을 받는 일이 결코 없어야겠습니다.
심지어는 거짓으로 예언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데 아무리 그럴 듯하게 해도 결과를 보면 거짓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때나 예언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 곧 하나님의 섭리 속에 악이 없는 성결된 사람들을 택하여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자기 생각이나, 스스로의 감동함 속에서 나온 것을 예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한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적질에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육적인 도적질뿐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취하는 영적인 도적질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으니 결코 도적질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진실한 믿음을 소유하여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09-07
제35과십계명(7)
출 20:14
읽을말씀 : 출 20:14 | 외울말씀 : 골 3:5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7계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칭찬받는 신앙인이 될 뿐 아니라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4을 보면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제7계명이 나옵니다. '간음'의 사전적인 의미는 부부가 아닌 다른 남녀가 음란한 성적 관계를 맺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간음은 이런 육적인 간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간음에 대해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영적인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적인 간음 역시 근원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 정욕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5-6을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며 믿음이 있다 해도 마음에서 탐심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보다 세상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제2계명에 나오는 우상과 제7계명의 영적인 간음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상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형태가 없는 신을 불상과 같이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과 믿는다는 사람들이 믿음이 연약하여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여 온전히 진리 안에서 살아가지 못할 때는 하나님보다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더 사랑하고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 등을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간음은 믿음이 있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물질이나 가족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이때는 영적인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과 영적인 간음은 차이가 있으므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나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할지라도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했을 때 이를 우상을 섬겼다고 하는 것이지, 영적인 간음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성경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예레미야 3:8을 보면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임금 이후 하나님을 배역하고 영적인 간음을 행함으로 인하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를 회개치 않고 있다가 결국 멸망하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도 남유다가 계속하여 우상을 섬기므로 영적인 간음을 행한다고 엄히 지적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4:4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 되어 주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되어 영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니 믿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타협하여 벗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신부된 자격을 잃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간음하는 여자에게 '나의 사랑하는 신부여'라고 말씀할 수는 없지요.
2. 마음의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27-28을 보면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간음을 남녀간의 불륜관계만 생각하기 쉬운데,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간음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어도 마음에 상대방을 그리며 행위를 상상한다면 간음이 된다는 것이지요. 오늘날은 비디오나 스크린,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서 그러한 행위를 상상하며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간음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진리와 전혀 상관없는 것은 보거나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러한 마음의 간음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불같은 기도를 통하여 성령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간음하는 마음을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간음의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임이나 잡지 등 음란물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생각이 떠오른다 해도 생각의 방향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마음 중심을 기뻐하심으로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두 번 하다 그치는 것이 아니요, 한 달이 되든, 1년, 2년, 3년이 되든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해 나간다면 능히 마음의 간음을 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생각을 바꿔 나감으로 차단할 수 있는 단계를 통과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는 음란한 장면을 보았다 해도 내가 생각하지 않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간음은 느낌과 함께 생각을 통해 오는 것인데 이 생각 자체를 차단하고 지배해 버리니 마음으로 죄가 틈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냥 생각이 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좋지 않은 장면을 보았다 해도 전혀 내 생각 속에서 동요가 없으므로 간음하려는 마음이 일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면 일부러 생각하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어떠한 음욕을 생각하려고 해도 생각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죄성 자체를 뽑아 버렸기에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듣는다 해도 느낌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진리가 아닌 것은 아예 떠오르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간음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혹여 생각 속에 순간 틈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간음했다고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생각 속에 틈탄 것을 계속 받아들여서 상상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큰 죄가 되지만 깨닫는 즉시 회개하고 온전히 성결되고자 노력해 나갈 때는 하나님께서도 은혜와 능력을 주시고 승리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3. 육체의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6:32에는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하였고, 레위기 20:10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6:9-10을 보면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육체의 간음을 하는 자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셨지요. 육체의 간음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을 파멸시키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들었을 때 육체의 간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가장 싫어하시며 그 다음에는 마음의 간음이요, 그 다음이 육체의 간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의 간음이 있으므로 육체의 간음이 오는 것이니 마음에서 간음이 없어지면 육체의 간음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간음은 큰 죄로 여기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범할 수 없는 큰 죄이지요.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의 전입니다. 로마서 12:1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거하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여 말씀에 위배된 일이 있다면 반드시 돌이켜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아야 할 것이고, 초신자여서 진리를 몰라 간음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부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가 진리를 깨우치고 죄를 버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영적인 간음, 마음의 간음, 육체의 간음을 모두 벗어버리고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모든 계명들을 지켜 행함으로 축복된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된 자격을 잘 갖추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7계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칭찬받는 신앙인이 될 뿐 아니라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4을 보면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제7계명이 나옵니다. '간음'의 사전적인 의미는 부부가 아닌 다른 남녀가 음란한 성적 관계를 맺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간음은 이런 육적인 간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간음에 대해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영적인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적인 간음 역시 근원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 정욕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5-6을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며 믿음이 있다 해도 마음에서 탐심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보다 세상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제2계명에 나오는 우상과 제7계명의 영적인 간음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상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형태가 없는 신을 불상과 같이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과 믿는다는 사람들이 믿음이 연약하여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여 온전히 진리 안에서 살아가지 못할 때는 하나님보다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더 사랑하고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 등을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간음은 믿음이 있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물질이나 가족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이때는 영적인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과 영적인 간음은 차이가 있으므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나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할지라도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했을 때 이를 우상을 섬겼다고 하는 것이지, 영적인 간음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성경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예레미야 3:8을 보면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임금 이후 하나님을 배역하고 영적인 간음을 행함으로 인하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를 회개치 않고 있다가 결국 멸망하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도 남유다가 계속하여 우상을 섬기므로 영적인 간음을 행한다고 엄히 지적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4:4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 되어 주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되어 영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니 믿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타협하여 벗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신부된 자격을 잃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간음하는 여자에게 '나의 사랑하는 신부여'라고 말씀할 수는 없지요.
2. 마음의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27-28을 보면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간음을 남녀간의 불륜관계만 생각하기 쉬운데,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간음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어도 마음에 상대방을 그리며 행위를 상상한다면 간음이 된다는 것이지요. 오늘날은 비디오나 스크린,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서 그러한 행위를 상상하며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간음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진리와 전혀 상관없는 것은 보거나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러한 마음의 간음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불같은 기도를 통하여 성령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간음하는 마음을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간음의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임이나 잡지 등 음란물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생각이 떠오른다 해도 생각의 방향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마음 중심을 기뻐하심으로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두 번 하다 그치는 것이 아니요, 한 달이 되든, 1년, 2년, 3년이 되든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해 나간다면 능히 마음의 간음을 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생각을 바꿔 나감으로 차단할 수 있는 단계를 통과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는 음란한 장면을 보았다 해도 내가 생각하지 않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간음은 느낌과 함께 생각을 통해 오는 것인데 이 생각 자체를 차단하고 지배해 버리니 마음으로 죄가 틈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냥 생각이 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좋지 않은 장면을 보았다 해도 전혀 내 생각 속에서 동요가 없으므로 간음하려는 마음이 일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면 일부러 생각하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어떠한 음욕을 생각하려고 해도 생각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죄성 자체를 뽑아 버렸기에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듣는다 해도 느낌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진리가 아닌 것은 아예 떠오르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간음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혹여 생각 속에 순간 틈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간음했다고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생각 속에 틈탄 것을 계속 받아들여서 상상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큰 죄가 되지만 깨닫는 즉시 회개하고 온전히 성결되고자 노력해 나갈 때는 하나님께서도 은혜와 능력을 주시고 승리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3. 육체의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6:32에는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하였고, 레위기 20:10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6:9-10을 보면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육체의 간음을 하는 자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셨지요. 육체의 간음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을 파멸시키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들었을 때 육체의 간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가장 싫어하시며 그 다음에는 마음의 간음이요, 그 다음이 육체의 간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의 간음이 있으므로 육체의 간음이 오는 것이니 마음에서 간음이 없어지면 육체의 간음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간음은 큰 죄로 여기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범할 수 없는 큰 죄이지요.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의 전입니다. 로마서 12:1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거하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여 말씀에 위배된 일이 있다면 반드시 돌이켜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아야 할 것이고, 초신자여서 진리를 몰라 간음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부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가 진리를 깨우치고 죄를 버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영적인 간음, 마음의 간음, 육체의 간음을 모두 벗어버리고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모든 계명들을 지켜 행함으로 축복된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된 자격을 잘 갖추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31
제33과십계명(6)
출 20:13
읽을말씀 : 출 20:13 | 외울말씀 : 요일 3:15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십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한다.
1. 육적인 살인은 물론, 영적인 살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0:13에 제6계명으로 "살인하지 말지니라" 말씀하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듯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육적으로 죽이는 것도 큰 죄이지만 영적인 살인은 더 큰 죄가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살인하지 않았으니 제6계명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우나 영적인 의미를 알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육적인 살인은 나라의 법에 크게 저촉받는 죄이므로 하나님 앞에서도 당연히 죄가 되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방인도 큰 죄로 여기는 살인죄를 범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육적인 살인에는 실수나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 등으로 살인하는 경우가 있으며, 가족계획이라는 미명 하에 낙태를 시켜 살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자살하는 것도 살인에 해당됩니다. 이는 내세의 심판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지요.
그러면 영적인 살인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를 실족시키는 것이 바로 영적인 살인입니다. 실족(失足)이란 발을 잘못 디딘다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바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참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8:7을 보면 예수님께서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말씀하시며 실족케 하는 사람에게 화가 미치게 됨을 경고하셨습니다.
2. 영적인 살인의 구체적인 예
1) 진리에 어긋난 말을 전하는 것은 영적인 살인이 됩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진리를 잘못 가르쳐 줌으로 죄를 범하게 하였다면 이는 영적인 살인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5:39). 그런데 오른뺨을 맞고 흥분하여 상담을 요청해 올 때, 당신도 지지 말고 같이 때려 주어야 한다고 하며 진리에 어긋나게 가르쳐 줬다면 결국 상대를 실족시킨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놀러가거나 오락을 취해도 괜찮다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도록 가르쳤다면 진리에 어긋난 가르침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하셨는데, 바쁜 세상에 어떻게 자주 모일 수 있느냐며 모이기를 폐하도록 가르친다면 이것도 영혼을 실족시키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쳐 주면 금방 실족당하지는 않더라도 진리를 잘못 앎으로 점점 죄와 타협하게 되니 결국 영적 살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중상모략을 하고 분당을 시키거나 상대의 말만 듣고 사실이 아닌 말을 사실인 것처럼 전하는 것도 실족시키는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말을 전할 때 그가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기분 나쁘게 여길 줄 압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악함으로 입술을 제어치 못하고 전하여 상대가 상처를 받게 되니 영적 살인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당신의 흉을 보더라."고 전해서 서로 감정을 갖고 미워하도록 했다면 이는 사단의 역사이며 형제를 살인하는 것이요, 실족시키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형제의 티를 보고 지적하는 것이 곧 영적 살인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를 칭찬하는 말이나 좋은 말이 아니면 굳이 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에 자신이 악함으로 스스로 실족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초신자가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왜 저런가?' 한다면 그 형제가 실족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악이 있으므로 스스로 실족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존경했던 사람이 어느 날 거짓말을 하거나 비진리를 행하는 것을 발견한 후 실망하여 하나님을 떠났다면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고 섬겼다면 사람 때문에 실족당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악이 있으므로 스스로 실족당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사는 선한 사람은 그런 것을 보았다 해도 오히려 긍휼히 여기고 기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살다가 교회에 나와서 회개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능력을 받아 빛 가운데 살아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성도의 도리이지요. 우리가 먼저 진리의 빛을 밝혀 줌으로써 그들이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동일하신 분입니다. 만일 누구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나오지 않는다면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 편에서 믿었다 안 믿었다 하는 어리석은 행위일 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스스로 실족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때론 아무리 진리의 말씀이어도 전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이제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니 술 담배를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주일에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합니다."라고 권면한다면 부담이 되어 교회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도 실족시키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설령 진리의 말씀이라 해도 전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혹 잘못 전달되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지 않지만 그에 따른 보응은 받게 됩니다. 보응이 따른다고 해서 즉시 징계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성령의 역사를 깨우치지 못한 상태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형통함을 받지 못하게 하셔서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의 마음을 닮으면 닮을수록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실족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가룟 유다는 자신이 악하므로 스스로 실족을 당한 것이지요. 그러니 자신이 악함으로 인해 살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 못할 때는 실수하여 상대를 실족시키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곧 회개할 수 있으나 진리를 알면서도 계속하여 상대를 실족시켜 나간다면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이 크게 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죄로 인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니 사단이 유혹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악의 모습을 벗어버리기 원하시며,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서 세상에서 잘못 입력된 구습들을 버려 나갈 때,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뿐 아니라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아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진리를 행치 않는 모든 것들이 영적인 살인에 해당됩니다
영적인 살인은 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며, 진리 속에 행치 않는 것을 뜻합니다. 진리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형제를 판단, 정죄하거나 티를 보고 이간질시키는 것 등은 다 말씀에 위배되지요. 진리에 어긋나고, 진실이 없는 말이나 태도 등은 사단이 역사하여 결국 영적인 살인을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며, 형제에게 욕설을 하는 마음속에는 미움과 더 나아가 살인할 수 있는 의지가 숨어 있으므로 미움은 살인하는 행위와 다름없습니다(마 5:21-22 ; 요일 3:15).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여전히 남을 비방하고 중상모략하거나 이간하고 헐뜯는다면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며 영적으로 살인하는 것입니다.
만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보인다면 내 마음에 악한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마 7:3). 또한 형제의 잘못과 부족한 모습이 보이는 것은 내 마음에 사랑이 없음을 깨달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시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며 원수가 주릴 때 먹이며 목마를 때 마시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않으면 그것이 올무가 되어 사단의 역사를 받으므로 영혼을 실족시킬 수 있으니 날마다 육체의 일들과 육신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되면 진실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직 기도하며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이와 더불어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해 주심으로 비진리를 버리고, 절제할 수 있는 힘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주어지게 됩니다. 결국 때가 되면 비진리는 모두 벗어지고 거룩함이 임하므로 진리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들을 잘 지켜 행함으로 마음껏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십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한다.
1. 육적인 살인은 물론, 영적인 살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0:13에 제6계명으로 "살인하지 말지니라" 말씀하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듯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육적으로 죽이는 것도 큰 죄이지만 영적인 살인은 더 큰 죄가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살인하지 않았으니 제6계명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우나 영적인 의미를 알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육적인 살인은 나라의 법에 크게 저촉받는 죄이므로 하나님 앞에서도 당연히 죄가 되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방인도 큰 죄로 여기는 살인죄를 범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육적인 살인에는 실수나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 등으로 살인하는 경우가 있으며, 가족계획이라는 미명 하에 낙태를 시켜 살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자살하는 것도 살인에 해당됩니다. 이는 내세의 심판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지요.
그러면 영적인 살인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를 실족시키는 것이 바로 영적인 살인입니다. 실족(失足)이란 발을 잘못 디딘다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바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참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8:7을 보면 예수님께서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말씀하시며 실족케 하는 사람에게 화가 미치게 됨을 경고하셨습니다.
2. 영적인 살인의 구체적인 예
1) 진리에 어긋난 말을 전하는 것은 영적인 살인이 됩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진리를 잘못 가르쳐 줌으로 죄를 범하게 하였다면 이는 영적인 살인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5:39). 그런데 오른뺨을 맞고 흥분하여 상담을 요청해 올 때, 당신도 지지 말고 같이 때려 주어야 한다고 하며 진리에 어긋나게 가르쳐 줬다면 결국 상대를 실족시킨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놀러가거나 오락을 취해도 괜찮다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도록 가르쳤다면 진리에 어긋난 가르침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하셨는데, 바쁜 세상에 어떻게 자주 모일 수 있느냐며 모이기를 폐하도록 가르친다면 이것도 영혼을 실족시키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쳐 주면 금방 실족당하지는 않더라도 진리를 잘못 앎으로 점점 죄와 타협하게 되니 결국 영적 살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중상모략을 하고 분당을 시키거나 상대의 말만 듣고 사실이 아닌 말을 사실인 것처럼 전하는 것도 실족시키는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말을 전할 때 그가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기분 나쁘게 여길 줄 압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악함으로 입술을 제어치 못하고 전하여 상대가 상처를 받게 되니 영적 살인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당신의 흉을 보더라."고 전해서 서로 감정을 갖고 미워하도록 했다면 이는 사단의 역사이며 형제를 살인하는 것이요, 실족시키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형제의 티를 보고 지적하는 것이 곧 영적 살인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를 칭찬하는 말이나 좋은 말이 아니면 굳이 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에 자신이 악함으로 스스로 실족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초신자가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왜 저런가?' 한다면 그 형제가 실족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악이 있으므로 스스로 실족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존경했던 사람이 어느 날 거짓말을 하거나 비진리를 행하는 것을 발견한 후 실망하여 하나님을 떠났다면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고 섬겼다면 사람 때문에 실족당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악이 있으므로 스스로 실족당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사는 선한 사람은 그런 것을 보았다 해도 오히려 긍휼히 여기고 기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살다가 교회에 나와서 회개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능력을 받아 빛 가운데 살아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성도의 도리이지요. 우리가 먼저 진리의 빛을 밝혀 줌으로써 그들이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동일하신 분입니다. 만일 누구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나오지 않는다면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 편에서 믿었다 안 믿었다 하는 어리석은 행위일 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스스로 실족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때론 아무리 진리의 말씀이어도 전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이제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니 술 담배를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주일에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합니다."라고 권면한다면 부담이 되어 교회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도 실족시키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설령 진리의 말씀이라 해도 전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혹 잘못 전달되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지 않지만 그에 따른 보응은 받게 됩니다. 보응이 따른다고 해서 즉시 징계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성령의 역사를 깨우치지 못한 상태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형통함을 받지 못하게 하셔서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의 마음을 닮으면 닮을수록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실족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가룟 유다는 자신이 악하므로 스스로 실족을 당한 것이지요. 그러니 자신이 악함으로 인해 살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 못할 때는 실수하여 상대를 실족시키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곧 회개할 수 있으나 진리를 알면서도 계속하여 상대를 실족시켜 나간다면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이 크게 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죄로 인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니 사단이 유혹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악의 모습을 벗어버리기 원하시며,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서 세상에서 잘못 입력된 구습들을 버려 나갈 때,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뿐 아니라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아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진리를 행치 않는 모든 것들이 영적인 살인에 해당됩니다
영적인 살인은 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며, 진리 속에 행치 않는 것을 뜻합니다. 진리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형제를 판단, 정죄하거나 티를 보고 이간질시키는 것 등은 다 말씀에 위배되지요. 진리에 어긋나고, 진실이 없는 말이나 태도 등은 사단이 역사하여 결국 영적인 살인을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며, 형제에게 욕설을 하는 마음속에는 미움과 더 나아가 살인할 수 있는 의지가 숨어 있으므로 미움은 살인하는 행위와 다름없습니다(마 5:21-22 ; 요일 3:15).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여전히 남을 비방하고 중상모략하거나 이간하고 헐뜯는다면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며 영적으로 살인하는 것입니다.
만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보인다면 내 마음에 악한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마 7:3). 또한 형제의 잘못과 부족한 모습이 보이는 것은 내 마음에 사랑이 없음을 깨달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시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며 원수가 주릴 때 먹이며 목마를 때 마시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않으면 그것이 올무가 되어 사단의 역사를 받으므로 영혼을 실족시킬 수 있으니 날마다 육체의 일들과 육신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되면 진실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직 기도하며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이와 더불어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해 주심으로 비진리를 버리고, 절제할 수 있는 힘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주어지게 됩니다. 결국 때가 되면 비진리는 모두 벗어지고 거룩함이 임하므로 진리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들을 잘 지켜 행함으로 마음껏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24
제33과십계명(5)
출 20:12
읽을말씀 : 출 20:12 | 외울말씀 : 요일 4:20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십계명 중 제5계명을 살펴봄으로 부모를 공경하며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1. 영적인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출애굽기 20:12을 보면 제5계명이 나와 있는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부모란 나를 낳아 길러 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잉태될 수 있는 생명의 근본된 씨앗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자녀를 낳아 길러 주는 육적인 부모가 있는가 하면 영적인 부모가 있는데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공경이라는 단어는 공손히 섬긴다는 뜻으로서, 삼가서 예를 차려 높인다는 의미입니다. 즉 윗사람에 대한 순종과 섬김을 의미하는 것이며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공경의 대상은 단지 육의 부모만이 아니라 영을 낳아 주신 하나님도 되십니다. 우리가 참 생명을 주신 영적인 부모 곧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며 진리 안에서 살아가게 되므로 육적인 부모도 자연히 공경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육적인 부모를 공경하기에 앞서 영적인 부모이신 하나님을 먼저 공경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요한복음 1:12-13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본된 씨를 주신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로마서 8:15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곧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죄를 싸워 버려 나가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0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육의 부모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공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빛 가운데 나아가는 사람은 부모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도 육의 부모를 공경하여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고 주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후에는 부모를 사랑하는 차원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로서의 육적인 사랑을 하였지만 주 안에 들어오면 영적인 사랑 차원에서 부모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마큼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사랑하는 정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진리 안에 들어와서 죄를 버리고 육체의 일들을 벗어 버리며 온전히 말씀 가운데 살아갈 때는 나를 낳아 주신 부모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 것을 깨닫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분의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육의 부모도 극진히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자녀가 있지만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여 효도하는 자녀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사랑이 식어져 가는 오늘날에는 부모를 지극히 사랑하는 자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도 착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며 사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더욱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사랑으로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공경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 안에서 육적인 부모를 공경하라
에베소서 6:1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 사이에 교제할 때는 친절하고 밝은 미소를 띠던 사람이 성전을 나가면 달라집니다. 가정에 돌아가서는 내가 언제 웃었느냐는 듯이 부모나 형제 혹은 남편에게 불친절하게 대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하며 기쁨이 충만하여 주의 종들에게 순종도 잘하지만 막상 성전을 떠나 집에 가서는 가족들과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윗사람에게 순종하지도 못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도 공경하지 못하는데 어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려고 하는 것뿐이지, 정녕 하나님을 공경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되고 변함이 없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들도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든지 변함없는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지도 않고 우습게 여기거나 오히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 기도해도 응답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진정 부모를 공경하고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부모와의 세대 차이로 교육방법과 사고방식이 달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내 생각이나 의견이 부모와 맞지 않다고 해서 답답히 여길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자신이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주고 이해해 드려야 합니다.
즉 내가 죽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장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고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해도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도리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3:20을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되 먼저는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고 불평하거나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부모의 생각이나 의견이 자신과 다르고 옳지 않다고 해도 함부로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아야 하지요. 어떤 일이 생길 경우 혹여라도 섭섭해하시지 않도록 양해를 구하되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하여 따라야 하므로 주일을 지키지 말라는 등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명하거나 요구할 때는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면 순복하는 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3. 부모를 공경할 때 임하는 축복
그러면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면 어떠한 복이 임하게 될까요? 출애굽기 20:12을 보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셨고 에베소서 6:2-3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생명이 길다는 것은 단순히 80세, 90세까지 장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면 영혼이 잘되어 가며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함께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가 왔다가도 일곱 길로 물러가는 것이요, 일터, 사업터도 축복을 받으며 불의의 사고나 질병, 시험 환난 등도 만나지 않고 항상 형통함을 입게 되니 이러한 모든 것을 통틀어 곧 생명이 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부모님을 사랑하며 공경하고 계신지요? 만약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사랑하고 지극히 섬겨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십계명 중 제5계명을 살펴봄으로 부모를 공경하며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1. 영적인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출애굽기 20:12을 보면 제5계명이 나와 있는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부모란 나를 낳아 길러 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잉태될 수 있는 생명의 근본된 씨앗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자녀를 낳아 길러 주는 육적인 부모가 있는가 하면 영적인 부모가 있는데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공경이라는 단어는 공손히 섬긴다는 뜻으로서, 삼가서 예를 차려 높인다는 의미입니다. 즉 윗사람에 대한 순종과 섬김을 의미하는 것이며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공경의 대상은 단지 육의 부모만이 아니라 영을 낳아 주신 하나님도 되십니다. 우리가 참 생명을 주신 영적인 부모 곧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며 진리 안에서 살아가게 되므로 육적인 부모도 자연히 공경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육적인 부모를 공경하기에 앞서 영적인 부모이신 하나님을 먼저 공경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요한복음 1:12-13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본된 씨를 주신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로마서 8:15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곧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죄를 싸워 버려 나가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0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육의 부모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공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빛 가운데 나아가는 사람은 부모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도 육의 부모를 공경하여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고 주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후에는 부모를 사랑하는 차원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로서의 육적인 사랑을 하였지만 주 안에 들어오면 영적인 사랑 차원에서 부모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마큼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사랑하는 정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진리 안에 들어와서 죄를 버리고 육체의 일들을 벗어 버리며 온전히 말씀 가운데 살아갈 때는 나를 낳아 주신 부모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 것을 깨닫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분의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육의 부모도 극진히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자녀가 있지만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여 효도하는 자녀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사랑이 식어져 가는 오늘날에는 부모를 지극히 사랑하는 자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도 착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며 사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더욱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사랑으로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공경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 안에서 육적인 부모를 공경하라
에베소서 6:1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 사이에 교제할 때는 친절하고 밝은 미소를 띠던 사람이 성전을 나가면 달라집니다. 가정에 돌아가서는 내가 언제 웃었느냐는 듯이 부모나 형제 혹은 남편에게 불친절하게 대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하며 기쁨이 충만하여 주의 종들에게 순종도 잘하지만 막상 성전을 떠나 집에 가서는 가족들과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윗사람에게 순종하지도 못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도 공경하지 못하는데 어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려고 하는 것뿐이지, 정녕 하나님을 공경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되고 변함이 없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들도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든지 변함없는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지도 않고 우습게 여기거나 오히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 기도해도 응답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진정 부모를 공경하고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부모와의 세대 차이로 교육방법과 사고방식이 달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내 생각이나 의견이 부모와 맞지 않다고 해서 답답히 여길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자신이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주고 이해해 드려야 합니다.
즉 내가 죽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장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고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해도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도리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3:20을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되 먼저는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고 불평하거나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부모의 생각이나 의견이 자신과 다르고 옳지 않다고 해도 함부로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아야 하지요. 어떤 일이 생길 경우 혹여라도 섭섭해하시지 않도록 양해를 구하되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하여 따라야 하므로 주일을 지키지 말라는 등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명하거나 요구할 때는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면 순복하는 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3. 부모를 공경할 때 임하는 축복
그러면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면 어떠한 복이 임하게 될까요? 출애굽기 20:12을 보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셨고 에베소서 6:2-3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생명이 길다는 것은 단순히 80세, 90세까지 장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면 영혼이 잘되어 가며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함께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가 왔다가도 일곱 길로 물러가는 것이요, 일터, 사업터도 축복을 받으며 불의의 사고나 질병, 시험 환난 등도 만나지 않고 항상 형통함을 입게 되니 이러한 모든 것을 통틀어 곧 생명이 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부모님을 사랑하며 공경하고 계신지요? 만약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사랑하고 지극히 섬겨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