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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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7
제48과열재앙(8) - 유월절과 성찬예식 -
출 12:21-28, 43-51
읽을말씀 : 출 12:21-28, 43-51 | 외울말씀 : 요 6:53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명하신 유월절 의식과 성찬예식의 연관성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면하고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구원의 길, 곧 유월절 의식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할례받지 않으면 유월절 의식을 지킬 수 있는 자격이 없으므로 구원받지 못하고 죽임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할례는 생명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오늘은 구약시대의 할례와 유월절이 오늘날의 성찬예식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할례와 유월절의 연관성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창대케 해 주리라" 언약하시며,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나리라" 축복해 주셨습니다(창 15:5, 17:6).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짐으로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7:14을 보면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말씀하시며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만일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끊어져서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9을 통하여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유월절 예식에 참여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출애굽기 12:43-49을 보면 "유월절 규례가 이러하니라 …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에게나 이 법이 동일하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월절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출애굽기 12:1-4에 기록된 유월절 의식으로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에 바르고 문밖에 나오지 말고 집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유월절 의식은 구원을 받기 위한 순간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유월절 의식에 참여했다고 해서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유월절 의식은 행위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이 깨끗해서도 온전해서도 아니요,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보호를 받는 선민이기 때문에 할례를 받고 매번 유월절 의식에 참여하면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인 오늘날은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잠 4:23, 롬 10:10).
구약시대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그 당시 고비를 넘기는 것뿐이었지만 신약시대는 마음의 할례를 받아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켜야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 당시만 재앙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면하기 위하여 수시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시대에 행해진 육신의 할례는 한 번으로 끝나지만 마음의 할례는 계속적으로 해 가야 합니다. 육신에 할례를 행하면 질병이 예방되고 냄새도 나지 않으므로 사람에게 유익이 되듯이 마음의 할례를 행하면 죄를 지을 리 없고 마음에서 악취가 날 리도 없으니(마 15:18-19) 결국은 성결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고 그 즉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40년의 연단의 과정이 필요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의 할례를 행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마음이 온전히 진리로 채워져 성결되면 온전한 할례를 받은 것이요,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7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옛 구습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유월절 양은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 아침이 되기 전까지 다 먹으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오늘날 구약의 모든 행위적인 것들은 내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감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11을 보면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손으로 할례를 행했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마음의 할례이므로 육적인 몸을 벗는 것이 됩니다. 즉 육체의 일, 육신의 일 등 마음에 추하고 더러운 육적인 때를 벗는 것으로 곧 그리스도의 할례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7:51에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귀로 듣고 마음에 양식을 삼을 수가 있으므로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좇게 되면 자연히 마음과 귀에 할례를 하게 되는데, 목이 곧고 교만한 사람은 항상 성령을 거슬러 세상 법도인 육체의 소욕을 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깨달아 기필코 마음의 할례를 행하여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2. 할례와 유월절, 성찬예식과의 연관성
고린도전서 11:23-26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잘 잊어버리므로 매년 생일을 기념하여 망각하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도록 성례전을 마련하시고 영원히 지키며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에 주님께서는 멸망의 길로 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 져 주시기 위해 양손, 양발에 못 박히시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기까지 고난을 당하시며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왜 주님이 이렇게 피를 흘리셔야 했는가를 되새겨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6:53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말씀했으니 진리의 말씀을 먹고 소화시킴으로 죄악된 모습을 벗고 성결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 살지 아니하면 그 안에 생명이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양식 삼으면서 계속하여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할례받은 사람이라야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월절은 구원의 표시가 되며 이스라엘 선민들을 장자의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출애굽할 수 있게 해 주신 구원의 예식인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찬예식과 결부되는데 애굽 곧 세상에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던 우리가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출애굽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니 하나님의 백성으로 환원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받은 사람은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온전한 할례, 즉 영원한 구원을 받는 사람만이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히 구원받기 위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광야를 행진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유월절은 출애굽하기 위한, 장자의 재앙을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인 구원이요, 온전히 구원에 이르기까지,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어도 마음에 할례를 해 가지 않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27 이하에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말씀하신 대로 자신을 돌아보아 죄가 없는 깨끗한 중심으로 성례전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통해 할례가 유월절과 연관이 되고 유월절은 성찬예식과 연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생명이 있고 구원에 이를 수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계속하여 마음을 할례해 나감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명하신 유월절 의식과 성찬예식의 연관성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면하고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구원의 길, 곧 유월절 의식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할례받지 않으면 유월절 의식을 지킬 수 있는 자격이 없으므로 구원받지 못하고 죽임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할례는 생명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오늘은 구약시대의 할례와 유월절이 오늘날의 성찬예식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할례와 유월절의 연관성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창대케 해 주리라" 언약하시며,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나리라" 축복해 주셨습니다(창 15:5, 17:6).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짐으로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7:14을 보면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말씀하시며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만일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끊어져서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9을 통하여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유월절 예식에 참여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출애굽기 12:43-49을 보면 "유월절 규례가 이러하니라 …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에게나 이 법이 동일하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월절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출애굽기 12:1-4에 기록된 유월절 의식으로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에 바르고 문밖에 나오지 말고 집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유월절 의식은 구원을 받기 위한 순간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유월절 의식에 참여했다고 해서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유월절 의식은 행위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이 깨끗해서도 온전해서도 아니요,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보호를 받는 선민이기 때문에 할례를 받고 매번 유월절 의식에 참여하면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인 오늘날은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잠 4:23, 롬 10:10).
구약시대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그 당시 고비를 넘기는 것뿐이었지만 신약시대는 마음의 할례를 받아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켜야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 당시만 재앙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면하기 위하여 수시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시대에 행해진 육신의 할례는 한 번으로 끝나지만 마음의 할례는 계속적으로 해 가야 합니다. 육신에 할례를 행하면 질병이 예방되고 냄새도 나지 않으므로 사람에게 유익이 되듯이 마음의 할례를 행하면 죄를 지을 리 없고 마음에서 악취가 날 리도 없으니(마 15:18-19) 결국은 성결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고 그 즉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40년의 연단의 과정이 필요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의 할례를 행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마음이 온전히 진리로 채워져 성결되면 온전한 할례를 받은 것이요,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7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옛 구습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유월절 양은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 아침이 되기 전까지 다 먹으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오늘날 구약의 모든 행위적인 것들은 내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감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11을 보면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손으로 할례를 행했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마음의 할례이므로 육적인 몸을 벗는 것이 됩니다. 즉 육체의 일, 육신의 일 등 마음에 추하고 더러운 육적인 때를 벗는 것으로 곧 그리스도의 할례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7:51에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귀로 듣고 마음에 양식을 삼을 수가 있으므로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좇게 되면 자연히 마음과 귀에 할례를 하게 되는데, 목이 곧고 교만한 사람은 항상 성령을 거슬러 세상 법도인 육체의 소욕을 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깨달아 기필코 마음의 할례를 행하여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2. 할례와 유월절, 성찬예식과의 연관성
고린도전서 11:23-26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잘 잊어버리므로 매년 생일을 기념하여 망각하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도록 성례전을 마련하시고 영원히 지키며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에 주님께서는 멸망의 길로 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 져 주시기 위해 양손, 양발에 못 박히시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기까지 고난을 당하시며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왜 주님이 이렇게 피를 흘리셔야 했는가를 되새겨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6:53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말씀했으니 진리의 말씀을 먹고 소화시킴으로 죄악된 모습을 벗고 성결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 살지 아니하면 그 안에 생명이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양식 삼으면서 계속하여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할례받은 사람이라야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월절은 구원의 표시가 되며 이스라엘 선민들을 장자의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출애굽할 수 있게 해 주신 구원의 예식인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찬예식과 결부되는데 애굽 곧 세상에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던 우리가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출애굽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니 하나님의 백성으로 환원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받은 사람은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온전한 할례, 즉 영원한 구원을 받는 사람만이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히 구원받기 위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광야를 행진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유월절은 출애굽하기 위한, 장자의 재앙을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인 구원이요, 온전히 구원에 이르기까지,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어도 마음에 할례를 해 가지 않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27 이하에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말씀하신 대로 자신을 돌아보아 죄가 없는 깨끗한 중심으로 성례전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통해 할례가 유월절과 연관이 되고 유월절은 성찬예식과 연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생명이 있고 구원에 이를 수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계속하여 마음을 할례해 나감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11-30
제47과열재앙(7) - 유월절과 할례-
창 17:9-14
읽을말씀 : 창 17:9-14 | 외울말씀 : 롬 2:28-29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명하신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빛 가운데 살아감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한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12장을 통하여 제시하신 구원의 길 곧 재앙을 면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유월절 의식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할례받지 않으면 유월절 의식을 지킬 수 있는 자격이 없으므로 구원받지 못하고 죽임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할례는 생명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오늘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할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할례는 하나님 언약의 표징
창세기 17:1-2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며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나리라" 언약하셨습니다(창 17:5-6).
아브라함이란 '열국의 아비, 많은 무리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완전히 행하였기 때문에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또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열왕이 나왔습니다. 오늘날 아브라함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기독교 국가가 태어났습니까? 또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왕들이나 대통령 또는 수상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좇는 믿음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창세기 17:7-10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도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언약하시고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며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축복이 임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하며 만일 할례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라면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7:11-14에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영원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규례에 순종하여 할례를 받되 영적인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자가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하도록 명하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태아가 모체 자궁 내의 양수 속에서 갇혀 지내다가 모체 밖으로 나와 바깥 공기를 접하게 되면 온도나 평안함 등 모든 환경이 전혀 다르므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포들이 가장 여린 상태로 있다가 칠 일이 지나게 되면 환경에 익숙해지기는 하지만 아직 동작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이때에 할례를 하게 되면 아픔이나 고통이 조금밖에 없고, 여린 살이므로 빨리 아물고 부작용이 없으니 여러 면에서 좋습니다. 그러나 어른은 살이 굳어 단단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만큼 고통스럽고 좋지 않습니다(창 34:24-25).
이처럼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도록 명하신 것은 만일 기한을 명하지 않으면 게을러질 것이며,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 받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자상하고 섬세하신 하나님의 사랑인지요. 하나님께서는 절대 주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명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할례를 남자의 성기 끝에 행하도록 명하신 이유는 가장 불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행하여 양피를 제거하면 질병이 예방되고 냄새도 나지 않으므로 발육에도 여러 가지로 유익하지요. 이처럼 사람 편에서도 좋고 하나님 편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을 남길 수 있으니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에게만 할례를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도울 수 있는 배필이 없으므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인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창 2:20-24). 그리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셨지요.
여자는 남자를 돕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또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남자가 할례를 하면 여자 또한 받은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창 3:16, 엡 5:22, 28). 이와 같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육체의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었고 만일 할례를 받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렘 4:4).
2. 할례의 영적인 의미
로마서 2:28-29을 보면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즉 육체의 할례는 하나의 그림자요, 신약시대에 와서는 실체로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마음 안에 성령을 받으면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게 됩니다.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며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 죄를 온전히 버리고 의 가운데 온전히 거하면 곧 성결을 이룬 것이요, 이런 사람은 죄를 지을 리도 없고 마음에서 악취가 날 리도 없으니 온전한 마음의 할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육체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유월절 의식을 지켰던 것처럼 성령받은 사람들은 성찬예식에 참여하여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요 6:53). 그러나 죄를 짓고 아직 회개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성찬예식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수가 없으므로 고린도전서 11:29-30에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말씀하고 있지요.
여기서 주의 몸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성례전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돌아보아 마음이 꺼림칙한데도 성례전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다면 질병이나 시험 환난이 틈탈 수 있으므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한 심령이 되어 성찬예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교단에 따라서는 물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를 구세주로 믿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했고, 요한복음 1:12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했으니 성령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물세례를 받는 것보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요. 물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 세례를 받고 자신의 죄를 회개한 깨끗한 심령이라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3. 모세의 할례와 구원
출애굽기 4:24-26을 보면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에 남자 아이는 모두 죽였기 때문에 할례받을 상황이 못되었고, 하숫가에 버려졌다가 애굽에서 공주의 아들로서 자라났으니 할례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다 해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차돌을 취하여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졌습니다. 돌에는 생명이 있는 돌과 생명이 없는 돌이 있는데 생명이 없는 돌은 표면을 깨끗이 닦으면 병균이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차돌을 취하여 할례를 행했던 것입니다. 십보라는 슬기로운 여인이었으므로 할례를 받지 않아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을 알고 재빨리 차돌을 취하여 할례를 행한 것이지요.
모세는 스스로 할례를 행했는데 두 아들과 남편이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십보라의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아프겠습니까? 십보라는 고운 마음씨의 여인이었으므로 모세가 할례를 행한 모습을 보니 더욱 사랑스럽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보라는 모세에게 "당신은 참으로 나의 피 남편이로다" 고백하며 피 흘린 남편에게 존경어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모세 오경 중의 하나로서 모세가 기록했는데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고 할례의 중요성에 대해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명하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사명을 감당하기는커녕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열 재앙을 면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강권적으로 할례를 받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데 이는 마음의 할례입니다. 즉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마음의 가죽을 벗겨야 하는 것이요, 성결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빛 가운데 살아감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명하신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빛 가운데 살아감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한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12장을 통하여 제시하신 구원의 길 곧 재앙을 면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유월절 의식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할례받지 않으면 유월절 의식을 지킬 수 있는 자격이 없으므로 구원받지 못하고 죽임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할례는 생명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오늘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할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할례는 하나님 언약의 표징
창세기 17:1-2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며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나리라" 언약하셨습니다(창 17:5-6).
아브라함이란 '열국의 아비, 많은 무리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완전히 행하였기 때문에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또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열왕이 나왔습니다. 오늘날 아브라함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기독교 국가가 태어났습니까? 또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왕들이나 대통령 또는 수상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좇는 믿음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창세기 17:7-10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도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언약하시고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며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축복이 임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하며 만일 할례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라면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7:11-14에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영원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규례에 순종하여 할례를 받되 영적인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자가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하도록 명하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태아가 모체 자궁 내의 양수 속에서 갇혀 지내다가 모체 밖으로 나와 바깥 공기를 접하게 되면 온도나 평안함 등 모든 환경이 전혀 다르므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포들이 가장 여린 상태로 있다가 칠 일이 지나게 되면 환경에 익숙해지기는 하지만 아직 동작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이때에 할례를 하게 되면 아픔이나 고통이 조금밖에 없고, 여린 살이므로 빨리 아물고 부작용이 없으니 여러 면에서 좋습니다. 그러나 어른은 살이 굳어 단단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만큼 고통스럽고 좋지 않습니다(창 34:24-25).
이처럼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도록 명하신 것은 만일 기한을 명하지 않으면 게을러질 것이며,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 받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자상하고 섬세하신 하나님의 사랑인지요. 하나님께서는 절대 주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명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할례를 남자의 성기 끝에 행하도록 명하신 이유는 가장 불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행하여 양피를 제거하면 질병이 예방되고 냄새도 나지 않으므로 발육에도 여러 가지로 유익하지요. 이처럼 사람 편에서도 좋고 하나님 편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을 남길 수 있으니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에게만 할례를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도울 수 있는 배필이 없으므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인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창 2:20-24). 그리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셨지요.
여자는 남자를 돕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또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남자가 할례를 하면 여자 또한 받은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창 3:16, 엡 5:22, 28). 이와 같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육체의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었고 만일 할례를 받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렘 4:4).
2. 할례의 영적인 의미
로마서 2:28-29을 보면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즉 육체의 할례는 하나의 그림자요, 신약시대에 와서는 실체로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마음 안에 성령을 받으면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게 됩니다.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며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 죄를 온전히 버리고 의 가운데 온전히 거하면 곧 성결을 이룬 것이요, 이런 사람은 죄를 지을 리도 없고 마음에서 악취가 날 리도 없으니 온전한 마음의 할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육체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유월절 의식을 지켰던 것처럼 성령받은 사람들은 성찬예식에 참여하여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요 6:53). 그러나 죄를 짓고 아직 회개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성찬예식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수가 없으므로 고린도전서 11:29-30에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말씀하고 있지요.
여기서 주의 몸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성례전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돌아보아 마음이 꺼림칙한데도 성례전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다면 질병이나 시험 환난이 틈탈 수 있으므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한 심령이 되어 성찬예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교단에 따라서는 물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를 구세주로 믿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했고, 요한복음 1:12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했으니 성령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물세례를 받는 것보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요. 물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 세례를 받고 자신의 죄를 회개한 깨끗한 심령이라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3. 모세의 할례와 구원
출애굽기 4:24-26을 보면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에 남자 아이는 모두 죽였기 때문에 할례받을 상황이 못되었고, 하숫가에 버려졌다가 애굽에서 공주의 아들로서 자라났으니 할례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다 해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차돌을 취하여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졌습니다. 돌에는 생명이 있는 돌과 생명이 없는 돌이 있는데 생명이 없는 돌은 표면을 깨끗이 닦으면 병균이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차돌을 취하여 할례를 행했던 것입니다. 십보라는 슬기로운 여인이었으므로 할례를 받지 않아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을 알고 재빨리 차돌을 취하여 할례를 행한 것이지요.
모세는 스스로 할례를 행했는데 두 아들과 남편이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십보라의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아프겠습니까? 십보라는 고운 마음씨의 여인이었으므로 모세가 할례를 행한 모습을 보니 더욱 사랑스럽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보라는 모세에게 "당신은 참으로 나의 피 남편이로다" 고백하며 피 흘린 남편에게 존경어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모세 오경 중의 하나로서 모세가 기록했는데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고 할례의 중요성에 대해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명하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사명을 감당하기는커녕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열 재앙을 면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강권적으로 할례를 받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데 이는 마음의 할례입니다. 즉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마음의 가죽을 벗겨야 하는 것이요, 성결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빛 가운데 살아감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11-23
제46과열재앙(6) - 유월절 -
출 12:1-10
읽을말씀 : 출 12:1-10 | 외울말씀 : 출 12:13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영원한 규례로 지킬 것을 명하신 유월절 의식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구원의 길로 온전히 갈 수 있도록 한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 땅에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기 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면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길은 유월절 의식으로서 할례와 성찬예식과도 연결되므로 앞으로 몇 주간에 걸쳐 증거하겠습니다.
1. 어린 양을 취하라
어린 양에 대한 기록이 성경 곳곳에 나오는데 베드로전서 1:19에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 했고, 요한복음 1:29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5:12에도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왜 어린 양에 비유하신 것일까요?
첫째, 양은 수많은 짐승 중에서 가장 순하고 온유합니다. 대부분의 짐승은 사나운데 유독 양만은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상대에게조차 대항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온유하고 순하며 악이 없는 양의 성품은 마치 예수님의 성품과도 같습니다. 마태복음 12:19-20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하였지요.
둘째, 양은 순종을 잘합니다.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 음성에 순종할 뿐 주인에게 반항할 줄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앞에 오직 순종과 아멘만 있으셨지 '아니오'가 없으셨지요(계 3:14). 누가복음 22:42에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일이 결코 없으셨으며 오직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셋째, 양은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제공해 줍니다. 양은 사람에게 하얗고 부드러운 털뿐만 아니라 젖과 고기까지 제공해 주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죄인된 인류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온갖 고초와 수욕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기꺼이 화목제물로 드려진 모습과 같습니다.
넷째, 양의 고기는 영양분이 많고 맛이 있습니다. 어린 양의 고기가 맛이 있듯이 우리는 주님의 살 곧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꿀과 같이 맛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다윗은 시편 19:10에서 하나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어린 양에 비유하시며 출애굽기 12:5에 '하나님께 어린 양을 드리되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어린 양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드리라고 하신 것일까요?
이는 일 년 된 양이 가장 살이 연하고 맛이 있으며, 그 모습이 깨끗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교미하기 직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청년기인 2,30대 초반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양은 일 년 된 어린 양의 때가 사람의 청년기에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흠과 티가 조금도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므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기의 양 곧 일 년 된 어린 양을 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
출애굽기 12:5-6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취하여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양을 곧바로 잡지 않고 며칠간 데리고 있다 잡으라고 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 양을 데리고 있는 동안 정들면 나중에 잡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실 때의 아픈 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양을 잡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므로 그동안 마음을 다하여 정성으로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해질 때에 잡으라고 하셨을까요? 성경을 상고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인간 경작을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때가 인간 경작의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노아시대가 끝나고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까지의 2천 년이 지나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때부터 구원의 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의 2천 년이 지난 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지금까지 약 2천 년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대를 성경은 말세 또는 마지막 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요일 2:18, 유 1:18, 히 1:2, 벧전 1:5, 20). 따라서 하루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해질 때에 어린 양을 잡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12:6-7). 설주란 문의 양쪽에 세워 문짝을 달게 된 기둥이며, 인방은 출입구 위에 가로 놓여 벽을 받쳐 주는 나무 또는 돌을 말합니다.
어린 양의 피는 영적으로 주님의 보혈을 의미하며, 그 피를 어린 양을 먹을 집의 문에 바르라고 하신 것은 구원의 문이 되시는 주님의 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이 딛고 다니지 못하도록 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0:7을 보면 "나는 양의 문이라" 했고, 9절에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장자의 재앙이 임했을 때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은 모두 죽임을 당했지만 피를 바른 집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밖으로 나오면 죽음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주님을 영접했다 해도 다시금 구원의 문밖으로 나가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니 구원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3. 어린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라
출애굽기 12:8-10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어린 양의 고기를 먹어야 하는지 그 방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밤에 먹으라는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기 이전에는 어두움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로는 영적인 밤이 시작되었으므로 영적인 밤에 사는 우리는 어린 양인 주님의 살, 곧 진리의 말씀인 성경 66권 말씀을 먹어야 구원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어린 양의 고기를 어떻게 먹어야 할까요?
불에 구워 먹되 누룩을 넣지 않은 맛없는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지금 장자의 재앙을 면하고 생명을 구원받아야 할 절박한 시기에 놓여 있으므로 원래는 금식해야 하지만 믿음이 적은 상태였기에 먹되 맛없는 것들을 먹고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린 양의 고기는 불에 구워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날로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문자적으로 풀어서 읽고 양식삼는 것을 말합니다. 문자적으로 먹다 보면 영적인 믿음이 생기지 않아 구원에도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금한 것입니다.
또한 고기를 물에 삶아 먹으면 살아 있는 영양분이 파괴되고 맛도 없습니다. 따라서 물에 삶아서 먹는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가르치지 않고 여기에다 철학이나 과학, 의학, 인간의 생각을 가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지식적인 믿음은 소유할 수 있겠으나 영적인 믿음이 되지 않으니 이것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지요.
그러므로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불에 구워 먹되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어야 합니다.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빼지 말고 통째로 다 양식삼되 성령의 불에 구워 먹어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해질 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통째로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는 것은 아침은 어두움이 물러가고 빛이 임하는 때로서 영적으로는 주님의 재림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오신 다음에는 기름 준비를 할 수 없으므로(마 25:1-13) 그 전에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양식삼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재림이 아니더라도 인생은 강건해야 7,80이며 언제 인생이 끝날지 알 수 없으므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2:11에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말씀하셨지요. 허리띠를 띠고 신을 신는 것은 해야 될 일이 있는 것과 바삐 움직여야 될 것을 의미합니다. 즉 진리 안에서 부지런히 말씀을 듣고 부지런히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팡이는 영적으로 믿음을 의미합니다. 연세 든 분들은 지팡이가 있으면 넘어지지 않고 평안하게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받지 않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주신 것입니다. 지팡이를 의지해서 하나님의 뜻을 좇게 하시고 온 이스라엘 자손이 그 지팡이의 능력됨을 보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하셨던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어린 양의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음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보혈의 피로 구원의 문 안에 있되 부지런히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침이 되기 전에 급히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영원한 규례로 지킬 것을 명하신 유월절 의식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구원의 길로 온전히 갈 수 있도록 한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 땅에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기 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면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길은 유월절 의식으로서 할례와 성찬예식과도 연결되므로 앞으로 몇 주간에 걸쳐 증거하겠습니다.
1. 어린 양을 취하라
어린 양에 대한 기록이 성경 곳곳에 나오는데 베드로전서 1:19에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 했고, 요한복음 1:29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5:12에도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왜 어린 양에 비유하신 것일까요?
첫째, 양은 수많은 짐승 중에서 가장 순하고 온유합니다. 대부분의 짐승은 사나운데 유독 양만은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상대에게조차 대항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온유하고 순하며 악이 없는 양의 성품은 마치 예수님의 성품과도 같습니다. 마태복음 12:19-20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하였지요.
둘째, 양은 순종을 잘합니다.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 음성에 순종할 뿐 주인에게 반항할 줄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앞에 오직 순종과 아멘만 있으셨지 '아니오'가 없으셨지요(계 3:14). 누가복음 22:42에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일이 결코 없으셨으며 오직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셋째, 양은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제공해 줍니다. 양은 사람에게 하얗고 부드러운 털뿐만 아니라 젖과 고기까지 제공해 주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죄인된 인류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온갖 고초와 수욕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기꺼이 화목제물로 드려진 모습과 같습니다.
넷째, 양의 고기는 영양분이 많고 맛이 있습니다. 어린 양의 고기가 맛이 있듯이 우리는 주님의 살 곧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꿀과 같이 맛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다윗은 시편 19:10에서 하나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어린 양에 비유하시며 출애굽기 12:5에 '하나님께 어린 양을 드리되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어린 양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드리라고 하신 것일까요?
이는 일 년 된 양이 가장 살이 연하고 맛이 있으며, 그 모습이 깨끗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교미하기 직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청년기인 2,30대 초반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양은 일 년 된 어린 양의 때가 사람의 청년기에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흠과 티가 조금도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므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기의 양 곧 일 년 된 어린 양을 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
출애굽기 12:5-6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취하여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양을 곧바로 잡지 않고 며칠간 데리고 있다 잡으라고 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 양을 데리고 있는 동안 정들면 나중에 잡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실 때의 아픈 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양을 잡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므로 그동안 마음을 다하여 정성으로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해질 때에 잡으라고 하셨을까요? 성경을 상고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인간 경작을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때가 인간 경작의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노아시대가 끝나고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까지의 2천 년이 지나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때부터 구원의 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의 2천 년이 지난 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지금까지 약 2천 년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대를 성경은 말세 또는 마지막 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요일 2:18, 유 1:18, 히 1:2, 벧전 1:5, 20). 따라서 하루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해질 때에 어린 양을 잡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12:6-7). 설주란 문의 양쪽에 세워 문짝을 달게 된 기둥이며, 인방은 출입구 위에 가로 놓여 벽을 받쳐 주는 나무 또는 돌을 말합니다.
어린 양의 피는 영적으로 주님의 보혈을 의미하며, 그 피를 어린 양을 먹을 집의 문에 바르라고 하신 것은 구원의 문이 되시는 주님의 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이 딛고 다니지 못하도록 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0:7을 보면 "나는 양의 문이라" 했고, 9절에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장자의 재앙이 임했을 때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은 모두 죽임을 당했지만 피를 바른 집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밖으로 나오면 죽음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주님을 영접했다 해도 다시금 구원의 문밖으로 나가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니 구원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3. 어린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라
출애굽기 12:8-10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어린 양의 고기를 먹어야 하는지 그 방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밤에 먹으라는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기 이전에는 어두움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로는 영적인 밤이 시작되었으므로 영적인 밤에 사는 우리는 어린 양인 주님의 살, 곧 진리의 말씀인 성경 66권 말씀을 먹어야 구원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어린 양의 고기를 어떻게 먹어야 할까요?
불에 구워 먹되 누룩을 넣지 않은 맛없는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지금 장자의 재앙을 면하고 생명을 구원받아야 할 절박한 시기에 놓여 있으므로 원래는 금식해야 하지만 믿음이 적은 상태였기에 먹되 맛없는 것들을 먹고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린 양의 고기는 불에 구워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날로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문자적으로 풀어서 읽고 양식삼는 것을 말합니다. 문자적으로 먹다 보면 영적인 믿음이 생기지 않아 구원에도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금한 것입니다.
또한 고기를 물에 삶아 먹으면 살아 있는 영양분이 파괴되고 맛도 없습니다. 따라서 물에 삶아서 먹는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가르치지 않고 여기에다 철학이나 과학, 의학, 인간의 생각을 가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지식적인 믿음은 소유할 수 있겠으나 영적인 믿음이 되지 않으니 이것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지요.
그러므로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불에 구워 먹되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어야 합니다.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빼지 말고 통째로 다 양식삼되 성령의 불에 구워 먹어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해질 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통째로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는 것은 아침은 어두움이 물러가고 빛이 임하는 때로서 영적으로는 주님의 재림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오신 다음에는 기름 준비를 할 수 없으므로(마 25:1-13) 그 전에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양식삼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재림이 아니더라도 인생은 강건해야 7,80이며 언제 인생이 끝날지 알 수 없으므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2:11에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말씀하셨지요. 허리띠를 띠고 신을 신는 것은 해야 될 일이 있는 것과 바삐 움직여야 될 것을 의미합니다. 즉 진리 안에서 부지런히 말씀을 듣고 부지런히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팡이는 영적으로 믿음을 의미합니다. 연세 든 분들은 지팡이가 있으면 넘어지지 않고 평안하게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받지 않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주신 것입니다. 지팡이를 의지해서 하나님의 뜻을 좇게 하시고 온 이스라엘 자손이 그 지팡이의 능력됨을 보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하셨던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어린 양의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음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보혈의 피로 구원의 문 안에 있되 부지런히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침이 되기 전에 급히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007-11-16
제45과추수감사제
출 23:14-17
읽을말씀 : 출 23:14-17 | 외울말씀 : 출 23:16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와 의미 등에 대해 알아본다.
1.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근거
우리가 매년 지켜야 할 절기로는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러한 절기 중의 하나로서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한 해의 마지막 때)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23:14-16을 보면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3대 절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무교병의 절기란 유대 정월인 아빕월(태양력 3-4월) 10일에 어린 양을 취하여 4일 동안 간직하였다가 잡아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며 출애굽 당시 죽음의 사자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는 유월절을 지낸 후, 일주일간 무교병을 먹으며 출애굽하였던 때를 기념하는 절기로서 무교절(신명기 16:16)이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할 때 급히 탈출하느라 발효시키지 않고 만든 떡을 먹었기 때문에 그 고난의 때를 기억하며 무교병을 먹는 것입니다. 무교절은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음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므로 오늘날 신약시대에 와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지키는 부활절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음으로 맥추절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가 지난 후에 있는 절기이므로 칠칠절(출애굽기 34:22)이라고도 하며, 날짜로 계산하여 50일이 되므로 오순절(사도행전 2:1)이라고도 합니다. 오늘날은 맥추감사절로 지키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수장절은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수고하여 거둔 것을 저장함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며 초막절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광야에 있는 동안 초막에 거하게 하신 줄을 자손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해 지켜지며 일주일 동안 집을 떠나 초막에 거하는 훈련을 하기도 합니다(레위기 23:42-43).
그러므로 수장절은 광야에서 약 40년간 방황하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해방을 기념하고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므로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됩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매년 지켜야 할 절기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있으며 신년감사주일, 교회창립기념일 등이 있지요.
2. 추수감사절의 의미
초막절은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절기 중 마지막 절기로서 큰 기쁨과 즐거움의 축제였습니다. 신명기 16:13-17을 보면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 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일 년간 농사를 지어 일용할 양식과 땅의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일 뿐 아니라 영적인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게 하시며, 내세의 소망 가운데 영생의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천국을 예비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인도하시니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구하는 이에게 주시고 찾는 이에게 찾게 하시며 두드리는 이에게 열리게 하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추수감사절은 참으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상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은 역사적으로 성결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를 통해 일어난 영국의 신앙적 대각성 운동이 전 유럽에 출렁일 때에, 믿음을 위해 독자적인 길을 나선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땅에 와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처음 수확한 소산들을 하나님께 정성껏 드리며 예배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땅을 일구며 살아온 청교도들이 심은 대로 거둘 수 있도록 축복하셔서 오늘날 미국이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고, 그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과 조상들의 믿음을 기리며 더욱 뜻깊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3. 추수감사제
추수감사절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은 추수감사제를 드리게 됩니다. 먼저는 생명을 주시고 사망에서 건져 주심에 감사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감사제를 드려야 하며(시편 56:12-13), 또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믿음으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9:7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으니 기쁨으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아브라함, 엘리야, 모세뿐만 아니라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나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감사제를 드림으로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사밧 임금은 모압과 압몬과 몇 마온 사람들의 침입을 당했을 때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고 감사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는 암몬, 모압, 세일산 거민을 진멸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역대하 20:20 이하).
또한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사르밧 과부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아니하였으므로 궁핍한 중에도 자기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귀한 음식인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을 하나님의 종이었던 엘리야에게 심었습니다. 먹을 것이 금보다 귀한 때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심으니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날 때까지 사르밧 과부와 그의 가족과 엘리야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넘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열왕기상 17:8-16).
열왕기하 4:8-17을 보면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를 지극한 정성으로 대접한 수넴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으나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섬겼으므로 소원대로 아들을 낳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2:44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제자들에게 칭찬하셨으니 그 여인은 후에 큰 축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중심에서 우러나온 믿음을 통해 드리는 감사제를 기뻐 받으시고 행함이 따르는 감사의 제물을 드릴 때 즉시 역사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농부가 봄에 씨앗을 많이 뿌리면 가을에 많이 거둘 수 있듯이 하나님 앞에 행함 있는 감사를 심어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와 의미 등에 대해 알아본다.
1.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근거
우리가 매년 지켜야 할 절기로는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러한 절기 중의 하나로서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한 해의 마지막 때)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23:14-16을 보면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3대 절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무교병의 절기란 유대 정월인 아빕월(태양력 3-4월) 10일에 어린 양을 취하여 4일 동안 간직하였다가 잡아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며 출애굽 당시 죽음의 사자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는 유월절을 지낸 후, 일주일간 무교병을 먹으며 출애굽하였던 때를 기념하는 절기로서 무교절(신명기 16:16)이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할 때 급히 탈출하느라 발효시키지 않고 만든 떡을 먹었기 때문에 그 고난의 때를 기억하며 무교병을 먹는 것입니다. 무교절은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음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므로 오늘날 신약시대에 와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지키는 부활절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음으로 맥추절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가 지난 후에 있는 절기이므로 칠칠절(출애굽기 34:22)이라고도 하며, 날짜로 계산하여 50일이 되므로 오순절(사도행전 2:1)이라고도 합니다. 오늘날은 맥추감사절로 지키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수장절은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수고하여 거둔 것을 저장함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며 초막절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광야에 있는 동안 초막에 거하게 하신 줄을 자손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해 지켜지며 일주일 동안 집을 떠나 초막에 거하는 훈련을 하기도 합니다(레위기 23:42-43).
그러므로 수장절은 광야에서 약 40년간 방황하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해방을 기념하고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므로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됩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매년 지켜야 할 절기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있으며 신년감사주일, 교회창립기념일 등이 있지요.
2. 추수감사절의 의미
초막절은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절기 중 마지막 절기로서 큰 기쁨과 즐거움의 축제였습니다. 신명기 16:13-17을 보면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 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일 년간 농사를 지어 일용할 양식과 땅의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일 뿐 아니라 영적인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게 하시며, 내세의 소망 가운데 영생의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천국을 예비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인도하시니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구하는 이에게 주시고 찾는 이에게 찾게 하시며 두드리는 이에게 열리게 하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추수감사절은 참으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상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은 역사적으로 성결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를 통해 일어난 영국의 신앙적 대각성 운동이 전 유럽에 출렁일 때에, 믿음을 위해 독자적인 길을 나선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땅에 와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처음 수확한 소산들을 하나님께 정성껏 드리며 예배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땅을 일구며 살아온 청교도들이 심은 대로 거둘 수 있도록 축복하셔서 오늘날 미국이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고, 그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과 조상들의 믿음을 기리며 더욱 뜻깊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3. 추수감사제
추수감사절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은 추수감사제를 드리게 됩니다. 먼저는 생명을 주시고 사망에서 건져 주심에 감사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감사제를 드려야 하며(시편 56:12-13), 또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믿음으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9:7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으니 기쁨으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아브라함, 엘리야, 모세뿐만 아니라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나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감사제를 드림으로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사밧 임금은 모압과 압몬과 몇 마온 사람들의 침입을 당했을 때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고 감사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는 암몬, 모압, 세일산 거민을 진멸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역대하 20:20 이하).
또한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사르밧 과부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아니하였으므로 궁핍한 중에도 자기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귀한 음식인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을 하나님의 종이었던 엘리야에게 심었습니다. 먹을 것이 금보다 귀한 때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심으니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날 때까지 사르밧 과부와 그의 가족과 엘리야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넘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열왕기상 17:8-16).
열왕기하 4:8-17을 보면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를 지극한 정성으로 대접한 수넴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으나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섬겼으므로 소원대로 아들을 낳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2:44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제자들에게 칭찬하셨으니 그 여인은 후에 큰 축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중심에서 우러나온 믿음을 통해 드리는 감사제를 기뻐 받으시고 행함이 따르는 감사의 제물을 드릴 때 즉시 역사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농부가 봄에 씨앗을 많이 뿌리면 가을에 많이 거둘 수 있듯이 하나님 앞에 행함 있는 감사를 심어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11-09
제44과열재앙(5) - 메뚜기ㆍ흑암ㆍ장자의 재앙 -
출 10:12-15, 21-29, 11:4-8
읽을말씀 : 출 10:12-15, 21-29, 11:4-8 | 외울말씀 : 출 12:13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메뚜기와 흑암과 장자의 재앙이 왜 임하는지를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영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악질과 독종과 우박의 재앙을 통해 가족 중에 질병이 생기거나 재물로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메뚜기·흑암·장자의 재앙을 살펴보겠습니다.
1. 메뚜기의 재앙
우박의 재앙이 임하자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에게 회개하며 뇌성과 우박을 그치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하늘을 향해 손을 펴니 뇌성과 우박이 그치고 비가 내리지 아니하였지요. 그런데 바로는 또다시 마음을 완강케 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메뚜기의 재앙을 허락하셨고,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이르신 대로 바로를 만나 메뚜기 재앙을 예고하며 이제까지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큰 재앙임을 알려 주었지요. 바로의 신하들은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자고 하면서 다시 모세와 아론을 데려오지만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남정(男丁)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며 쫓아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 손을 애굽 땅 위에 들어 메뚜기로 애굽 땅에 올라와서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고 명하셨지요.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밤새 동풍이 불더니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여 날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어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때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으니 청컨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들의 요구대로 모세가 하나님께 구하니 하나님께서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셔서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 애굽 온 지경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바로는 마음을 강퍅게 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메뚜기는 우리 사람이 볼 때 하찮은 곤충 같지만 메뚜기의 재앙은 애굽을 파탄 지경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면 메뚜기 재앙은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출애굽기 10:14-15을 보면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러라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여 날으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우박의 재앙에서는 그래도 살아남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직 땅 위에 나지 아니한 밀과 나맥 같은 것들은 상하지 아니하였고 또한 바로의 신하들 중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여 생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인 사람들은 우박에 상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박의 재앙은 부분적으로 큰 재앙이 임하는 경우이므로 갑자기 불이 나서 공장이 불타 버리거나 화상을 입은 사람이 생겨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지만 완전히 망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런데 메뚜기의 재앙이 임하니 남은 것들까지 다 뜯어 먹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집 안까지 메뚜기가 가득하였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메뚜기 재앙이란 남아 있는 분야분야 사업터, 일터, 가정 소유물들이 하나하나 조각나고 깊숙이 숨겨 놓은 패물까지도 다 없어지며 빈손만 남게 되는 재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업하다가 부도난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속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재앙을 만난 후에야 하나님을 찾게 되는데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못을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예전의 것들이 회복되는 것이지요. 정녕 돌이켜서 빛 가운데 살아가면 그때는 더 큰 축복을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진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회복뿐 아니라 더 큰 축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비진리를 행한 경우, 하나님께서 그 주간을 넘기지 않고 깨닫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아주 작은 재앙을 만났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증거임을 깨닫고 즉시 돌이키게 되지요. 반대로 하나님께서 두 번, 세 번을 역사하셨는데도 돌이키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외면해 버리시므로 점점 속병이 자라고 악질이나 독종이 발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우박이나 메뚜기의 재앙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재앙을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신앙인이 된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다시 형통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상한 갈대라도 꺾지 아니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흑암의 재앙
바로 왕이 메뚜기의 재앙을 만나고도 마음을 강퍅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다음 재앙인 흑암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0:21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었더니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므로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곳에는 흑암이 아닌 광명이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흑암의 재앙은 어두움의 재앙, 즉 죽음 직전의 재앙을 말합니다. 질병으로든 사업이 망해서든 생명처럼 아끼는 물질까지 깡그리 다 날려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개하고 돌이키지 아니하는 강퍅한 자에게 임하는 재앙입니다. 흑암의 재앙이 임하면 삶의 막다른 골목인 죽음을 앞에 놓고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헤어 나올 수도 없는 캄캄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많은 재앙을 당하고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하지 않고 악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이 떠남으로 결국은 생명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커다란 재앙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생명까지 해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질병으로 인해 재산을 탕진하고 병든 몸으로 소망이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흑암의 재앙을 당한 경우이지요. 이때라도 자신의 악을 발견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시고 재앙을 거두어 주십니다. 그러나 많은 재앙 속에서도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참지 않으시고 죽음의 재앙을 허락하시게 되는데 이는 출애굽시대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악을 발견하지 못하여 회개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달아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악에서 신속히 돌이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장자의 재앙
바로가 강퍅하여 흑암의 재앙을 당하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장자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바로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출 11:4-6)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하여 바로와 신하와 온 백성과 종에 이르기까지 장남이 죽고,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다 죽는 장자의 재앙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밤에 바로와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장자의 재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장자의 재앙이란 가장 사랑하는 자녀나 가족 중에 누군가가 죽게 되는 경우나, 혹은 완전히 타락의 길로 빠져서 구원받지 못할 길로 들어가는 경우를 뜻합니다. 그러니 이런 재앙을 당하기 전에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출애굽기의 열 재앙을 오늘날 영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인생들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하여 재앙을 허락하시고, 이 재앙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돌이켜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령 재앙이 임했을지라도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것은 무엇이며, 자신 안에 있는 비진리는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신속히 돌이켜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열 재앙의 말씀을 잘 양식삼아 왜 재앙이 임하는지를 깨닫고, 시험 환난, 재앙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미연에 방지하여 승리의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메뚜기와 흑암과 장자의 재앙이 왜 임하는지를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영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악질과 독종과 우박의 재앙을 통해 가족 중에 질병이 생기거나 재물로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메뚜기·흑암·장자의 재앙을 살펴보겠습니다.
1. 메뚜기의 재앙
우박의 재앙이 임하자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에게 회개하며 뇌성과 우박을 그치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하늘을 향해 손을 펴니 뇌성과 우박이 그치고 비가 내리지 아니하였지요. 그런데 바로는 또다시 마음을 완강케 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메뚜기의 재앙을 허락하셨고,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이르신 대로 바로를 만나 메뚜기 재앙을 예고하며 이제까지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큰 재앙임을 알려 주었지요. 바로의 신하들은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자고 하면서 다시 모세와 아론을 데려오지만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남정(男丁)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며 쫓아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 손을 애굽 땅 위에 들어 메뚜기로 애굽 땅에 올라와서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고 명하셨지요.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밤새 동풍이 불더니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여 날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어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때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으니 청컨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들의 요구대로 모세가 하나님께 구하니 하나님께서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셔서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 애굽 온 지경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바로는 마음을 강퍅게 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메뚜기는 우리 사람이 볼 때 하찮은 곤충 같지만 메뚜기의 재앙은 애굽을 파탄 지경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면 메뚜기 재앙은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출애굽기 10:14-15을 보면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러라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여 날으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우박의 재앙에서는 그래도 살아남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직 땅 위에 나지 아니한 밀과 나맥 같은 것들은 상하지 아니하였고 또한 바로의 신하들 중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여 생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인 사람들은 우박에 상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박의 재앙은 부분적으로 큰 재앙이 임하는 경우이므로 갑자기 불이 나서 공장이 불타 버리거나 화상을 입은 사람이 생겨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지만 완전히 망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런데 메뚜기의 재앙이 임하니 남은 것들까지 다 뜯어 먹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집 안까지 메뚜기가 가득하였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메뚜기 재앙이란 남아 있는 분야분야 사업터, 일터, 가정 소유물들이 하나하나 조각나고 깊숙이 숨겨 놓은 패물까지도 다 없어지며 빈손만 남게 되는 재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업하다가 부도난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속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재앙을 만난 후에야 하나님을 찾게 되는데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못을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예전의 것들이 회복되는 것이지요. 정녕 돌이켜서 빛 가운데 살아가면 그때는 더 큰 축복을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진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회복뿐 아니라 더 큰 축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비진리를 행한 경우, 하나님께서 그 주간을 넘기지 않고 깨닫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아주 작은 재앙을 만났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증거임을 깨닫고 즉시 돌이키게 되지요. 반대로 하나님께서 두 번, 세 번을 역사하셨는데도 돌이키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외면해 버리시므로 점점 속병이 자라고 악질이나 독종이 발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우박이나 메뚜기의 재앙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재앙을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신앙인이 된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다시 형통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상한 갈대라도 꺾지 아니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흑암의 재앙
바로 왕이 메뚜기의 재앙을 만나고도 마음을 강퍅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다음 재앙인 흑암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0:21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었더니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므로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곳에는 흑암이 아닌 광명이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흑암의 재앙은 어두움의 재앙, 즉 죽음 직전의 재앙을 말합니다. 질병으로든 사업이 망해서든 생명처럼 아끼는 물질까지 깡그리 다 날려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개하고 돌이키지 아니하는 강퍅한 자에게 임하는 재앙입니다. 흑암의 재앙이 임하면 삶의 막다른 골목인 죽음을 앞에 놓고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헤어 나올 수도 없는 캄캄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많은 재앙을 당하고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하지 않고 악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이 떠남으로 결국은 생명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커다란 재앙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생명까지 해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질병으로 인해 재산을 탕진하고 병든 몸으로 소망이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흑암의 재앙을 당한 경우이지요. 이때라도 자신의 악을 발견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시고 재앙을 거두어 주십니다. 그러나 많은 재앙 속에서도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참지 않으시고 죽음의 재앙을 허락하시게 되는데 이는 출애굽시대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악을 발견하지 못하여 회개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달아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악에서 신속히 돌이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장자의 재앙
바로가 강퍅하여 흑암의 재앙을 당하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장자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바로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출 11:4-6)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하여 바로와 신하와 온 백성과 종에 이르기까지 장남이 죽고,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다 죽는 장자의 재앙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밤에 바로와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장자의 재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장자의 재앙이란 가장 사랑하는 자녀나 가족 중에 누군가가 죽게 되는 경우나, 혹은 완전히 타락의 길로 빠져서 구원받지 못할 길로 들어가는 경우를 뜻합니다. 그러니 이런 재앙을 당하기 전에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출애굽기의 열 재앙을 오늘날 영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인생들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하여 재앙을 허락하시고, 이 재앙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돌이켜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령 재앙이 임했을지라도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것은 무엇이며, 자신 안에 있는 비진리는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신속히 돌이켜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열 재앙의 말씀을 잘 양식삼아 왜 재앙이 임하는지를 깨닫고, 시험 환난, 재앙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미연에 방지하여 승리의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11-02
제43과열재앙(4) - 악질ㆍ독종ㆍ우박의 재앙 -
출 9:1-12, 9:22-26
읽을말씀 : 출 9:1-12, 9:22-26 | 외울말씀 : 출 9:4
교육목표 : 악질과 독종, 우박의 재앙이 왜 임하는지를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이와 파리의 재앙을 통해 믿음 안에서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악질과 독종과 우박의 재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악질의 재앙
바로 왕이 파리 떼의 재앙을 만나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했음에도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악질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네가 만일 그들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 두면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생축 곧 말과 나귀와 약대와 우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악질이 있을 것이며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생축과 애굽의 생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지요(출 9:2-5).
그리고 자연적인 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재앙임을 깨닫도록 기한을 정하여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신 대로 시행하셨습니다(출 9:6). 그 후 애굽의 모든 생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지요. 그런데도 바로 왕은 마음이 완강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악질의 재앙이란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심한 악질은 고치기 힘든 전염병으로서 몸 안에 번지는 질병을 말합니다. 이 악질의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생축이 죽었으니 그 피해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생축이란 사람이 기르는 짐승으로 말, 소, 양, 염소, 낙타 등을 가리키며 그 당시 왕이나 신하, 백성들의 소유물로서 재산 척도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집, 일터, 사업터, 동거하는 가족들 중 살아있는 소유물 즉 사람이 생축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애굽의 생축에게 악질의 재앙이 임한 것은 애굽 왕 바로의 악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악질의 재앙은 자신의 악이 쌓여 하나님께서 외면하실 때 가족에게 악한 질병이 생기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함으로 사랑하는 자녀에게 악질이 임한다거나 아내의 악함으로 남편에게 질병이 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이 임하면 자신을 돌아볼 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출애굽기 20:5에 우상을 섬겼던 부모의 죄에 대한 보응이 자녀에게 삼사 대까지도 임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부모가 악하면 자녀는 부모로부터 악행을 배워 더욱 악을 쌓아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손이 선하여 믿음 안에서 살아간다면 부모나 조상의 악으로 인한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혹여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가족에게 악질이 임해 있지 않는가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면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돌이키지 않는다면 더 심한 재앙이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자녀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처음에는 야단을 치지만 다음에도 말을 듣지 않고 빗나간다면 매를 때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녀가 강퍅하면 부모도 강퍅하게 대하듯이 사랑의 하나님도 돌이키지 않고 악을 쌓아 가는 자녀는 외면하시고 재앙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질의 재앙을 만났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더 큰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대처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독종의 재앙
바로가 악질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도 강퍅하여 백성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독종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풀무의 재 두 움큼을 가지고 모세가 바로의 목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 그 재가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되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독종이 발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9:8-9). 모세가 그대로 행하니 사람과 짐승에게 독종이 발하고 술객도 독종으로 인해 모세 앞에 서지 못했습니다. 독종이 술객으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발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독종의 재앙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독종(毒腫)은 몹시 악성인 부스럼이라는 뜻으로, 악질이 속으로 침투하는 병이라면 독종은 외부로 드러나는 병입니다. 원래 독종은 부스럼이 나서 심히 가려우며 진물과 고름이 흐르는 심한 피부병으로 내부에 생긴 병이 깊어져 외부로 드러나게 되는 질병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암으로 아픈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속에서 병이 생겼는데 그것이 점점 더 심해지면 외부로 드러나게 됩니다. 폐병이나 에이즈, 중풍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병이 생긴 사람들의 성품은 대부분 완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혈기가 굉장히 많고 교만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은 용서하지 않고 자신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포악하거나 남의 말은 경청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워 상대를 무시해 버리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므로 이유 없이 이런 재앙을 당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신 28장). 그러면 "나는 마음이 강퍅하지 않은데 왜 암에 걸렸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강퍅하지 않다면 부모가 강퍅할 수도 있고, 조상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쌓았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출 20:5).
이러한 경우 가족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재앙으로 인해 가족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설령 부모가 우상을 섬겼다 해도 그 자녀가 하나님 말씀 안에 살 때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에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출 20:6). 그 자녀나 손자, 증손이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우상을 섬긴 부모의 죄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시므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결코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 재앙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돌이키고 회개해서 구원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앙을 통해 회개하고 돌이켜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3. 우박의 재앙
바로가 백성 앞에 자고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우박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국 이래 없었던 중한 우박을 내리시겠다고 예고하시고,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은 자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려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출 9:18-19).
그래서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자 하나님께서 뇌성과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우박이 애굽 온 땅에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무릇 밭에 있는 것을 쳤고,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니 이 재앙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우박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9:31-32을 보면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그러나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하였으니 부분적으로 상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박의 재앙은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졌을까요?
불 섞인 우박이 예고 없이 쏟아져 사람과 짐승이 죽고 밭의 채소가 다 상하여 먹을 것이 없게 되었으니 이는 어떤 불의의 사고나 일로 인하여 재물에 큰 손해를 보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사업터나 일터에 갑작스레 큰 일이 일어나 많은 손해를 본다거나 가족 중 한 사람이 큰 질병이나 사고를 당하여 갑자기 많은 돈이 나가게 되는 경우이지요. 또한 우박은 예고 없이 쏟아지되 일시에 모든 곳에 내리지 아니하고 부분적으로 크게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박의 재앙은 한꺼번에 큰 일이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큰 일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악을 행한다거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물질의 손해로 일시에 망해 버리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일시에 망하지 않도록 부분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라 부분적으로 재앙을 허락하시되 크게 임하게 하심으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박의 재앙이 왜 큰 것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목숨 다음으로 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돈 때문에 살인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끊어지기도 하지요. 믿는 사람 중에도 십계명을 알면서 돈을 벌기 위해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주일 성수를 안 하면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결국 구원받을 수가 없게 되지요.
이처럼 돈은 영혼 구원과도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박이 거의 모든 식물을 쓸어버림같이 물질에 큰 손해가 오는 것이니 얼마나 큰 재앙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을 깨달아 오직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우박의 재앙을 만나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악질과 독종과 우박의 재앙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왕처럼 강퍅하고 완악해서 순종하지 않을 때 임하는 재앙들입니다. 악하면 악할수록 더 큰 재앙이 임하는 것이니 혹 재앙이 임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열 재앙의 말씀을 잘 양식삼아 재앙을 면할 뿐 아니라, 악을 벗어 버림으로 자신과 가족이 평안함을 누리며 복된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악질과 독종, 우박의 재앙이 왜 임하는지를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이와 파리의 재앙을 통해 믿음 안에서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악질과 독종과 우박의 재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악질의 재앙
바로 왕이 파리 떼의 재앙을 만나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했음에도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악질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네가 만일 그들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 두면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생축 곧 말과 나귀와 약대와 우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악질이 있을 것이며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생축과 애굽의 생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지요(출 9:2-5).
그리고 자연적인 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재앙임을 깨닫도록 기한을 정하여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신 대로 시행하셨습니다(출 9:6). 그 후 애굽의 모든 생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지요. 그런데도 바로 왕은 마음이 완강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악질의 재앙이란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심한 악질은 고치기 힘든 전염병으로서 몸 안에 번지는 질병을 말합니다. 이 악질의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생축이 죽었으니 그 피해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생축이란 사람이 기르는 짐승으로 말, 소, 양, 염소, 낙타 등을 가리키며 그 당시 왕이나 신하, 백성들의 소유물로서 재산 척도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집, 일터, 사업터, 동거하는 가족들 중 살아있는 소유물 즉 사람이 생축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애굽의 생축에게 악질의 재앙이 임한 것은 애굽 왕 바로의 악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악질의 재앙은 자신의 악이 쌓여 하나님께서 외면하실 때 가족에게 악한 질병이 생기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함으로 사랑하는 자녀에게 악질이 임한다거나 아내의 악함으로 남편에게 질병이 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이 임하면 자신을 돌아볼 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출애굽기 20:5에 우상을 섬겼던 부모의 죄에 대한 보응이 자녀에게 삼사 대까지도 임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부모가 악하면 자녀는 부모로부터 악행을 배워 더욱 악을 쌓아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손이 선하여 믿음 안에서 살아간다면 부모나 조상의 악으로 인한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혹여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가족에게 악질이 임해 있지 않는가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면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돌이키지 않는다면 더 심한 재앙이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자녀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처음에는 야단을 치지만 다음에도 말을 듣지 않고 빗나간다면 매를 때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녀가 강퍅하면 부모도 강퍅하게 대하듯이 사랑의 하나님도 돌이키지 않고 악을 쌓아 가는 자녀는 외면하시고 재앙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질의 재앙을 만났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더 큰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대처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독종의 재앙
바로가 악질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도 강퍅하여 백성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독종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풀무의 재 두 움큼을 가지고 모세가 바로의 목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 그 재가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되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독종이 발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9:8-9). 모세가 그대로 행하니 사람과 짐승에게 독종이 발하고 술객도 독종으로 인해 모세 앞에 서지 못했습니다. 독종이 술객으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발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독종의 재앙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독종(毒腫)은 몹시 악성인 부스럼이라는 뜻으로, 악질이 속으로 침투하는 병이라면 독종은 외부로 드러나는 병입니다. 원래 독종은 부스럼이 나서 심히 가려우며 진물과 고름이 흐르는 심한 피부병으로 내부에 생긴 병이 깊어져 외부로 드러나게 되는 질병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암으로 아픈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속에서 병이 생겼는데 그것이 점점 더 심해지면 외부로 드러나게 됩니다. 폐병이나 에이즈, 중풍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병이 생긴 사람들의 성품은 대부분 완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혈기가 굉장히 많고 교만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은 용서하지 않고 자신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포악하거나 남의 말은 경청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워 상대를 무시해 버리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므로 이유 없이 이런 재앙을 당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신 28장). 그러면 "나는 마음이 강퍅하지 않은데 왜 암에 걸렸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강퍅하지 않다면 부모가 강퍅할 수도 있고, 조상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쌓았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출 20:5).
이러한 경우 가족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재앙으로 인해 가족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설령 부모가 우상을 섬겼다 해도 그 자녀가 하나님 말씀 안에 살 때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에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출 20:6). 그 자녀나 손자, 증손이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우상을 섬긴 부모의 죄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시므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결코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 재앙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돌이키고 회개해서 구원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앙을 통해 회개하고 돌이켜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3. 우박의 재앙
바로가 백성 앞에 자고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우박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국 이래 없었던 중한 우박을 내리시겠다고 예고하시고,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은 자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려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출 9:18-19).
그래서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자 하나님께서 뇌성과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우박이 애굽 온 땅에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무릇 밭에 있는 것을 쳤고,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니 이 재앙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우박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9:31-32을 보면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그러나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하였으니 부분적으로 상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박의 재앙은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졌을까요?
불 섞인 우박이 예고 없이 쏟아져 사람과 짐승이 죽고 밭의 채소가 다 상하여 먹을 것이 없게 되었으니 이는 어떤 불의의 사고나 일로 인하여 재물에 큰 손해를 보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사업터나 일터에 갑작스레 큰 일이 일어나 많은 손해를 본다거나 가족 중 한 사람이 큰 질병이나 사고를 당하여 갑자기 많은 돈이 나가게 되는 경우이지요. 또한 우박은 예고 없이 쏟아지되 일시에 모든 곳에 내리지 아니하고 부분적으로 크게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박의 재앙은 한꺼번에 큰 일이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큰 일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악을 행한다거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물질의 손해로 일시에 망해 버리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일시에 망하지 않도록 부분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라 부분적으로 재앙을 허락하시되 크게 임하게 하심으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박의 재앙이 왜 큰 것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목숨 다음으로 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돈 때문에 살인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끊어지기도 하지요. 믿는 사람 중에도 십계명을 알면서 돈을 벌기 위해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주일 성수를 안 하면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결국 구원받을 수가 없게 되지요.
이처럼 돈은 영혼 구원과도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박이 거의 모든 식물을 쓸어버림같이 물질에 큰 손해가 오는 것이니 얼마나 큰 재앙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을 깨달아 오직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우박의 재앙을 만나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악질과 독종과 우박의 재앙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왕처럼 강퍅하고 완악해서 순종하지 않을 때 임하는 재앙들입니다. 악하면 악할수록 더 큰 재앙이 임하는 것이니 혹 재앙이 임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열 재앙의 말씀을 잘 양식삼아 재앙을 면할 뿐 아니라, 악을 벗어 버림으로 자신과 가족이 평안함을 누리며 복된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10-26
제42과열재앙(3) - 이ㆍ파리 재앙 -
출 8:16-24
읽을말씀 : 출 8:16-24 | 외울말씀 : 출 15:26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이의 재앙과 파리의 재앙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열 재앙 중 뱀·피·개구리의 재앙에 대한 영적 의미를 살펴보았고, 오늘은 이어서 열 재앙 중 이의 재앙과 파리의 재앙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1. 이의 재앙
개구리 재앙을 당하고도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이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이르기를 "아론에게 명하여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이 그대로 행하니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올랐습니다.
애굽의 술객들도 자기 술법으로 이를 내려 하였으나 그와 같이 못하자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바로에게 고했습니다(출 8:16-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마음이 강퍅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곤충으로서 더러운 곳에 기생하는데, 그 모양은 하얗고 길쭉하게 생겼으며 사람이나 생축의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습니다. 이의 종류도 다양해서 머리와 옷, 겨드랑이, 털 같은 데 기생하는 등 약 280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가 사람의 살에 붙어 피를 빨아먹으면 가렵고 각종 병균을 옮기니 얼마나 귀찮고 괴롭겠습니까?
그러면 이의 재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땅의 티끌이 변하여 이가 되었다고 했는데, 티끌은 입으로 훅 불기만 해도 날아갈 정도로 아주 작은 것입니다. 이도 큰 것은 수 미리미터에서 작은 것은 0.5 미리미터 정도이고 그보다 더 작은 것도 있습니다. 이처럼 볼품없는 것들, 생명도 없고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 말라 죽어 있는 상태의 티끌이 살아 움직이는 이가 되어 피를 빨아먹으며 가렵게 하고 병균을 옮기는 것이 이의 재앙입니다.
따라서 이의 재앙의 영적인 의미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잠재되어 있던 작은 일들이 갑자기 큰 일로 비화되어 많은 괴로움과 고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게 더러움이 있을 때 이가 기생하듯이 이가 사람에게 올랐다는 것은 악의 모양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에게 이의 재앙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이의 재앙이 사람에게 임한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 미움이 싹트거나 분을 참지 못하고 혈기를 내거나, 사소한 거짓말을 숨기려다 많은 거짓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또한 악한 생각이 틈탔다든가 하면 마음의 고통을 받게 되고 신앙생활이 힘들어지며 사소한 질병이 생기게 되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이유로 갑자기 열병이 생기거나 감기가 왔다면 이것이 바로 이의 재앙임을 알아 마음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면 신속히 치료가 됩니다.
그렇다면 생축에게 이가 올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생축이란 살아 있는 동물로서, 그때 당시 가축은 땅과 더불어 재산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든 신하이든 백성이든 땅과 포도원이 있었고 짐승들을 길러 자기의 소유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소유물은 무엇이겠습니까? 집이나 땅, 사업터, 일터뿐 아니라 동거하고 있는 가족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생축에게 이가 올랐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발단이 되어서 큰 일로 발전되어 괴롭힐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옮아 함께 고통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부모의 죄가 자녀에게 옮겨가고, 아내의 죄가 남편에게 옮겨져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경우인데, 이것은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가령, 부모가 혈기를 내어 어린아이가 열병이 났다면 이의 재앙임을 깨닫고 신속히 회개하면 아이에게서 열병이 물러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이의 재앙은 악의 모양이 있어 임하는 것이므로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우연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는 악의 모양을 발견하여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2. 파리의 재앙
바로가 이의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서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자 하나님께서는 파리 떼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궁과 신하의 집은 물론 애굽 전역이 파리 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무수한 파리 떼로 애굽 땅이 해를 받았는데 이는 애굽 사람들의 패역함이 온 땅에 미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엔 파리 떼가 없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을 구별하시는 표징이었습니다.
'파리'는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곤충으로서 몸에 털이 많이 나 있어 털과 발에 병균을 묻혀 곳곳을 날아다니면서 전염병을 옮깁니다. 이러한 파리에 의해 전염되는 병에는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콜레라, 이질, 결핵, 나병 등이 있습니다. 애굽 땅에 이러한 파리 떼가 가득하니 갖가지 전염병이 생겨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사흘쯤 광야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허락하고 파리 떼의 재앙을 거두는 기도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파리 떼의 재앙이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변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바로 왕이 얼마나 비겁하게 행동했는지, 왜 재앙이 계속하여 임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의 간악한 속성과 하나님의 자비를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파리 떼의 재앙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파리가 더러운 곳에서 생겨나 전염병을 옮기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악하면 더러운 말이 입으로 나오고, 그로 인해 병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바로 파리의 재앙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5:11을 보면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은 음식인데 음식은 소화된 후 몸 밖으로 배설되므로 사람의 마음을 더럽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선한 마음에서 선이 나오고 악한 마음에서 악이 나오므로 마음이 더러우면 더러운 말이 나오고, 거짓된 마음이 있으면 거짓말이 나오며, 간사한 마음이 있으면 간사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요, 입으로 뱉는 악으로 인해 병이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마 15:18-20). 즉 파리가 더러운 곳에서 생겨나 전염병을 옮기듯이 마음이 더러우면 입술의 말도 악해지고, 병이 생겨나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된다는 것을 깨달아 "힘드네, 피곤하네, 졸리네, 죽겠네!" 등의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항상 긍정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파리 떼의 재앙이란 바로 마음이 악하고 더럽기 때문에 그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들이 올무가 되어서 질병이 차곡차곡 쌓여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 안에 질병이 쌓이거나 자녀나 남편, 아내, 일터 위에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감기나 가벼운 전염병이 왔다면 이것은 이의 재앙에 해당되는 것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즉시 치료받을 수 있지만 파리 떼의 재앙부터는 회개해도 즉시 낫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보응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의 재앙과는 달리 사소한 것이 아닌 악한 것으로 인해 보응이 따르는 것이므로 그동안 쌓였던 악들을 철저히 돌이켜 통회자복을 해야 치료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사랑을 받던 임금이었지만 살인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다윗을 책망하셨습니다. 다윗은 즉시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지만 그에 따르는 보응은 엄청나게 컸습니다.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으며, 아들 압살롬에 의해 궁궐에서 쫓겨나 피난을 가야 했고, 자녀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결국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지요. 다윗 임금의 믿음이 크고 하나님을 사랑한 만큼 징계도 컸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죄사함을 받으니 구원받아 영생에 이를 수 있지만 죄에 대한 보응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 가운데 입술로 짓는 죄들이 있어도 그것이 죄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며, 이로 인해 사업터, 일터, 가정이나 자신에게 죄의 보응이 따르는데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입술에서 나오는 악한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깨달아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입술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잠언 12:13-14을 보면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했고, 잠언 18:21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결코 재앙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의롭고 선한 마음으로 항상 긍정적인 말, 좋은 말, 선한 말, 의로운 말, 빛 된 말만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 바라며, 만일 재앙이 임하였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재앙에서 해방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이의 재앙, 파리의 재앙을 통하여 마음의 악으로 인해 재앙이 임하게 됨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삶을 살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일로 고통을 받거나 몸에 병이 생기게 되면 신속히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고 악을 벗어 버리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이의 재앙과 파리의 재앙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열 재앙 중 뱀·피·개구리의 재앙에 대한 영적 의미를 살펴보았고, 오늘은 이어서 열 재앙 중 이의 재앙과 파리의 재앙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1. 이의 재앙
개구리 재앙을 당하고도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이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이르기를 "아론에게 명하여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이 그대로 행하니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올랐습니다.
애굽의 술객들도 자기 술법으로 이를 내려 하였으나 그와 같이 못하자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바로에게 고했습니다(출 8:16-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마음이 강퍅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곤충으로서 더러운 곳에 기생하는데, 그 모양은 하얗고 길쭉하게 생겼으며 사람이나 생축의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습니다. 이의 종류도 다양해서 머리와 옷, 겨드랑이, 털 같은 데 기생하는 등 약 280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가 사람의 살에 붙어 피를 빨아먹으면 가렵고 각종 병균을 옮기니 얼마나 귀찮고 괴롭겠습니까?
그러면 이의 재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땅의 티끌이 변하여 이가 되었다고 했는데, 티끌은 입으로 훅 불기만 해도 날아갈 정도로 아주 작은 것입니다. 이도 큰 것은 수 미리미터에서 작은 것은 0.5 미리미터 정도이고 그보다 더 작은 것도 있습니다. 이처럼 볼품없는 것들, 생명도 없고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 말라 죽어 있는 상태의 티끌이 살아 움직이는 이가 되어 피를 빨아먹으며 가렵게 하고 병균을 옮기는 것이 이의 재앙입니다.
따라서 이의 재앙의 영적인 의미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잠재되어 있던 작은 일들이 갑자기 큰 일로 비화되어 많은 괴로움과 고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게 더러움이 있을 때 이가 기생하듯이 이가 사람에게 올랐다는 것은 악의 모양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에게 이의 재앙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이의 재앙이 사람에게 임한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 미움이 싹트거나 분을 참지 못하고 혈기를 내거나, 사소한 거짓말을 숨기려다 많은 거짓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또한 악한 생각이 틈탔다든가 하면 마음의 고통을 받게 되고 신앙생활이 힘들어지며 사소한 질병이 생기게 되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이유로 갑자기 열병이 생기거나 감기가 왔다면 이것이 바로 이의 재앙임을 알아 마음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면 신속히 치료가 됩니다.
그렇다면 생축에게 이가 올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생축이란 살아 있는 동물로서, 그때 당시 가축은 땅과 더불어 재산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든 신하이든 백성이든 땅과 포도원이 있었고 짐승들을 길러 자기의 소유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소유물은 무엇이겠습니까? 집이나 땅, 사업터, 일터뿐 아니라 동거하고 있는 가족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생축에게 이가 올랐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발단이 되어서 큰 일로 발전되어 괴롭힐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옮아 함께 고통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부모의 죄가 자녀에게 옮겨가고, 아내의 죄가 남편에게 옮겨져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경우인데, 이것은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가령, 부모가 혈기를 내어 어린아이가 열병이 났다면 이의 재앙임을 깨닫고 신속히 회개하면 아이에게서 열병이 물러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이의 재앙은 악의 모양이 있어 임하는 것이므로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우연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는 악의 모양을 발견하여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2. 파리의 재앙
바로가 이의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서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자 하나님께서는 파리 떼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궁과 신하의 집은 물론 애굽 전역이 파리 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무수한 파리 떼로 애굽 땅이 해를 받았는데 이는 애굽 사람들의 패역함이 온 땅에 미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엔 파리 떼가 없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을 구별하시는 표징이었습니다.
'파리'는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곤충으로서 몸에 털이 많이 나 있어 털과 발에 병균을 묻혀 곳곳을 날아다니면서 전염병을 옮깁니다. 이러한 파리에 의해 전염되는 병에는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콜레라, 이질, 결핵, 나병 등이 있습니다. 애굽 땅에 이러한 파리 떼가 가득하니 갖가지 전염병이 생겨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사흘쯤 광야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허락하고 파리 떼의 재앙을 거두는 기도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파리 떼의 재앙이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변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바로 왕이 얼마나 비겁하게 행동했는지, 왜 재앙이 계속하여 임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의 간악한 속성과 하나님의 자비를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파리 떼의 재앙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파리가 더러운 곳에서 생겨나 전염병을 옮기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악하면 더러운 말이 입으로 나오고, 그로 인해 병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바로 파리의 재앙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5:11을 보면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은 음식인데 음식은 소화된 후 몸 밖으로 배설되므로 사람의 마음을 더럽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선한 마음에서 선이 나오고 악한 마음에서 악이 나오므로 마음이 더러우면 더러운 말이 나오고, 거짓된 마음이 있으면 거짓말이 나오며, 간사한 마음이 있으면 간사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요, 입으로 뱉는 악으로 인해 병이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마 15:18-20). 즉 파리가 더러운 곳에서 생겨나 전염병을 옮기듯이 마음이 더러우면 입술의 말도 악해지고, 병이 생겨나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된다는 것을 깨달아 "힘드네, 피곤하네, 졸리네, 죽겠네!" 등의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항상 긍정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파리 떼의 재앙이란 바로 마음이 악하고 더럽기 때문에 그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들이 올무가 되어서 질병이 차곡차곡 쌓여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 안에 질병이 쌓이거나 자녀나 남편, 아내, 일터 위에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감기나 가벼운 전염병이 왔다면 이것은 이의 재앙에 해당되는 것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즉시 치료받을 수 있지만 파리 떼의 재앙부터는 회개해도 즉시 낫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보응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의 재앙과는 달리 사소한 것이 아닌 악한 것으로 인해 보응이 따르는 것이므로 그동안 쌓였던 악들을 철저히 돌이켜 통회자복을 해야 치료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사랑을 받던 임금이었지만 살인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다윗을 책망하셨습니다. 다윗은 즉시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지만 그에 따르는 보응은 엄청나게 컸습니다.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으며, 아들 압살롬에 의해 궁궐에서 쫓겨나 피난을 가야 했고, 자녀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결국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지요. 다윗 임금의 믿음이 크고 하나님을 사랑한 만큼 징계도 컸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죄사함을 받으니 구원받아 영생에 이를 수 있지만 죄에 대한 보응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 가운데 입술로 짓는 죄들이 있어도 그것이 죄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며, 이로 인해 사업터, 일터, 가정이나 자신에게 죄의 보응이 따르는데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입술에서 나오는 악한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깨달아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입술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잠언 12:13-14을 보면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했고, 잠언 18:21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결코 재앙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의롭고 선한 마음으로 항상 긍정적인 말, 좋은 말, 선한 말, 의로운 말, 빛 된 말만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 바라며, 만일 재앙이 임하였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재앙에서 해방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이의 재앙, 파리의 재앙을 통하여 마음의 악으로 인해 재앙이 임하게 됨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삶을 살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일로 고통을 받거나 몸에 병이 생기게 되면 신속히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고 악을 벗어 버리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10-19
제41과열재앙(2) - 뱀ㆍ피ㆍ개구리 재앙 -
출 7:10-13, 7:20-25, 8:2-7
읽을말씀 : 출 7:10-13, 7:20-25, 8:2-7 | 외울말씀 : 출 7:12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뱀, 피, 개구리의 재앙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영적으로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항상 승리와 축복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열 재앙의 서론으로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신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열 재앙이 임한 이유를 살펴보고 그 중에 뱀과 피 그리고 개구리 재앙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애굽에 열 재앙이 임한 이유
하나님께서 애굽에 많은 재앙을 내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굽 왕 바로와 백성들이 끝내 죽임을 당하기까지 재앙을 받은 것은 그만큼 바로가 강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 재앙은 누구에게나 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면 그토록 많은 재앙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강퍅하게 하셨다는 의미는 선한 바로를 임의로 강퍅케 했다는 뜻이 아니라 숨겨진 강퍅한 마음을 드러나게 하셨다는 뜻이지요. 바로는 열 재앙을 당하고 나서야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켰는데, 다시 변개하여 그들을 뒤쫓다가 수장당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강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가 강퍅하니 그 신하들은 물론 백성들도 강퍅해져서 결국 강퍅한 사람끼리 모여 피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였는데 그들이 선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므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그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
2. 열 재앙의 종류
그러면 열 재앙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는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서 뱀으로 변한 뱀의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지팡이가 뱀이 된 역사를 재앙으로 보기에 애매하여 빼고 열 재앙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재앙으로 취급하여 열한 재앙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둘째는 피의 재앙이요, 셋째는 개구리의 재앙이며, 넷째는 이의 재앙입니다.
다섯째는 파리 떼의 재앙이요, 여섯째는 악질의 재앙이며, 일곱째는 독종의 재앙입니다. 여덟째는 우박의 재앙이요, 아홉째는 메뚜기 재앙이며, 열 번째는 암흑의 재앙이요, 열한 번째는 장자의 재앙입니다. 바로는 강퍅한 마음을 지녔기에 이렇게 많은 재앙을 당하고서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켰습니다.
3. 뱀의 재앙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바로가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모세의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져 그것이 뱀이 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자 지팡이가 뱀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불러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였는데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 버렸습니다.
뱀의 역사를 하나의 재앙으로 보는 이유는 애굽의 뱀은 한 번 물리면 즉사하게 되는 독사이므로 뱀의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 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앞에 뱀을 등장시킴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지요. 모세의 지팡이를 뱀으로 변화시킨 것은, 죽어 있는 나무를 살아 있는 뱀으로 변화되게 역사하신 이가 곧 모세가 믿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는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모세가 믿는 하나님이 있는가보다 하고 믿으려고 했지만, 자기가 부리는 술객들도 뱀을 만드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더욱 강퍅한 마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지팡이가 변하여 뱀이 되게 하셨을까요? 또한 아론의 뱀이 술객들의 뱀을 삼킨 것은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것일까요? 바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수 없으므로 뱀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뱀은 곧 사단을 의미하며 뱀의 재앙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도 생각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하고 우연으로 돌려버리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이제 막 하나님을 영접했거나 전도를 받아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어떠한 문제나 시험거리를 해결받은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을 우연의 일치로 돌려버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차츰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 없게 되니 해결되었던 문제들이 다시 찾아오기도 하며 더욱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또한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낸 뱀이 술객들이 나타낸 뱀을 삼켰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것이며, 비록 하나님의 역사를 우연의 일치로 돌린다 해도 직접 체험한 것이기에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4. 피의 재앙
뱀의 재앙을 받고도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두 번째 재앙을 내리시기 시작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하수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 애굽 사람들이 하수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굽 술객들도 자기의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기를 거절하고 궁으로 들어가서 그 일에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하숫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는데 7일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의 재앙인데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뱀의 재앙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 주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부인하고 우연의 일치로 돌려버리면 악의 모양이 있는 만큼 시험이 찾아와 피의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물은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는 것이니 물이 피로 변한 피의 재앙이란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주변을 통해 찾아오는 시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초신자에게 친구나 부모, 일가 친척 또는 이웃으로부터 이런 시험이 오면 어떻겠습니까? 초신자들의 믿음 상태에서는 이런 일들이 짜증스럽고 고통스러운 재앙입니다.
가령 주일을 온전히 지키려고 하면 뭘 그렇게 열심히 믿느냐고 하면서 적당히 믿으라고 한다든가, 주일만 되면 모임을 만들어서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거나 주일을 온전히 지킬 수 없게 하는 것 등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지켜 주시지 못하므로 질병이 틈타고 시험 환난이 찾아오게 되지요.
이런 경우 주변에서는 교회에 다니니까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 회개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모든 시험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개구리 재앙
바로가 피의 재앙을 만나고도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명하여 지팡이를 잡고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니 개구리가 하수에서 무수히 생겨 올라와 온 애굽 땅을 덮었던 것입니다(출 8:3-4).
애굽 술객들도 이와 같이 행했지만 이들을 제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개구리를 떠나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것을 약속합니다. 이에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개구리가 모두 나와 죽고 숨이 통하게 되자 바로는 다시 마음이 완강해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개구리 재앙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개구리도 역시 사단을 의미하는데 요한계시록 16:13에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라고 나옵니다. 개구리는 아주 징그러우며 구약에 나오는 가증스러운 동물에 속하지요. 개구리가 궁과 침실과 침상 위에와 신하의 집과 백성에게 들어간다고 했는데 여기서 '궁, 신하의 집, 백성'은 온 인류 전체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화덕과 떡반죽 그릇에도 들어간다 하였는데, 떡반죽 그릇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의미하며, 화덕은 일터와 사업터를 뜻합니다.
만일 방과 침실, 사업터, 일터, 일용할 양식에까지 사단이 역사해서 분란을 일으킨다고 하면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예를 들어, 개구리가 침상 위에 올라왔다는 것은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니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핍박을 한다거나, 반대로 남편이 교회에 다니니 아내가 불의한 행위를 한다거나 하여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악의 모양을 발견하여 회개하고 아내나 남편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세 가지 재앙은 바로의 술객들이 등장하여 하나님의 역사와 똑같이 행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체험하고도 우연의 일치라고 하며 하나님을 서운케 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항상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입으면 재앙을 만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재앙이 임했을 때에는 즉시 회개하여 세상과 타협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승리의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뱀, 피, 개구리의 재앙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영적으로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항상 승리와 축복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열 재앙의 서론으로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신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열 재앙이 임한 이유를 살펴보고 그 중에 뱀과 피 그리고 개구리 재앙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애굽에 열 재앙이 임한 이유
하나님께서 애굽에 많은 재앙을 내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굽 왕 바로와 백성들이 끝내 죽임을 당하기까지 재앙을 받은 것은 그만큼 바로가 강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 재앙은 누구에게나 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면 그토록 많은 재앙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강퍅하게 하셨다는 의미는 선한 바로를 임의로 강퍅케 했다는 뜻이 아니라 숨겨진 강퍅한 마음을 드러나게 하셨다는 뜻이지요. 바로는 열 재앙을 당하고 나서야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켰는데, 다시 변개하여 그들을 뒤쫓다가 수장당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강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가 강퍅하니 그 신하들은 물론 백성들도 강퍅해져서 결국 강퍅한 사람끼리 모여 피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였는데 그들이 선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므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그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
2. 열 재앙의 종류
그러면 열 재앙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는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서 뱀으로 변한 뱀의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지팡이가 뱀이 된 역사를 재앙으로 보기에 애매하여 빼고 열 재앙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재앙으로 취급하여 열한 재앙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둘째는 피의 재앙이요, 셋째는 개구리의 재앙이며, 넷째는 이의 재앙입니다.
다섯째는 파리 떼의 재앙이요, 여섯째는 악질의 재앙이며, 일곱째는 독종의 재앙입니다. 여덟째는 우박의 재앙이요, 아홉째는 메뚜기 재앙이며, 열 번째는 암흑의 재앙이요, 열한 번째는 장자의 재앙입니다. 바로는 강퍅한 마음을 지녔기에 이렇게 많은 재앙을 당하고서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켰습니다.
3. 뱀의 재앙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바로가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모세의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져 그것이 뱀이 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자 지팡이가 뱀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불러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였는데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 버렸습니다.
뱀의 역사를 하나의 재앙으로 보는 이유는 애굽의 뱀은 한 번 물리면 즉사하게 되는 독사이므로 뱀의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 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앞에 뱀을 등장시킴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지요. 모세의 지팡이를 뱀으로 변화시킨 것은, 죽어 있는 나무를 살아 있는 뱀으로 변화되게 역사하신 이가 곧 모세가 믿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는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모세가 믿는 하나님이 있는가보다 하고 믿으려고 했지만, 자기가 부리는 술객들도 뱀을 만드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더욱 강퍅한 마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지팡이가 변하여 뱀이 되게 하셨을까요? 또한 아론의 뱀이 술객들의 뱀을 삼킨 것은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것일까요? 바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수 없으므로 뱀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뱀은 곧 사단을 의미하며 뱀의 재앙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도 생각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하고 우연으로 돌려버리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이제 막 하나님을 영접했거나 전도를 받아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어떠한 문제나 시험거리를 해결받은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을 우연의 일치로 돌려버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차츰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 없게 되니 해결되었던 문제들이 다시 찾아오기도 하며 더욱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또한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낸 뱀이 술객들이 나타낸 뱀을 삼켰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것이며, 비록 하나님의 역사를 우연의 일치로 돌린다 해도 직접 체험한 것이기에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4. 피의 재앙
뱀의 재앙을 받고도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두 번째 재앙을 내리시기 시작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하수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 애굽 사람들이 하수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굽 술객들도 자기의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기를 거절하고 궁으로 들어가서 그 일에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하숫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는데 7일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의 재앙인데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뱀의 재앙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 주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부인하고 우연의 일치로 돌려버리면 악의 모양이 있는 만큼 시험이 찾아와 피의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물은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는 것이니 물이 피로 변한 피의 재앙이란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주변을 통해 찾아오는 시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초신자에게 친구나 부모, 일가 친척 또는 이웃으로부터 이런 시험이 오면 어떻겠습니까? 초신자들의 믿음 상태에서는 이런 일들이 짜증스럽고 고통스러운 재앙입니다.
가령 주일을 온전히 지키려고 하면 뭘 그렇게 열심히 믿느냐고 하면서 적당히 믿으라고 한다든가, 주일만 되면 모임을 만들어서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거나 주일을 온전히 지킬 수 없게 하는 것 등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지켜 주시지 못하므로 질병이 틈타고 시험 환난이 찾아오게 되지요.
이런 경우 주변에서는 교회에 다니니까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 회개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모든 시험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개구리 재앙
바로가 피의 재앙을 만나고도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명하여 지팡이를 잡고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니 개구리가 하수에서 무수히 생겨 올라와 온 애굽 땅을 덮었던 것입니다(출 8:3-4).
애굽 술객들도 이와 같이 행했지만 이들을 제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개구리를 떠나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것을 약속합니다. 이에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개구리가 모두 나와 죽고 숨이 통하게 되자 바로는 다시 마음이 완강해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개구리 재앙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개구리도 역시 사단을 의미하는데 요한계시록 16:13에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라고 나옵니다. 개구리는 아주 징그러우며 구약에 나오는 가증스러운 동물에 속하지요. 개구리가 궁과 침실과 침상 위에와 신하의 집과 백성에게 들어간다고 했는데 여기서 '궁, 신하의 집, 백성'은 온 인류 전체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화덕과 떡반죽 그릇에도 들어간다 하였는데, 떡반죽 그릇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의미하며, 화덕은 일터와 사업터를 뜻합니다.
만일 방과 침실, 사업터, 일터, 일용할 양식에까지 사단이 역사해서 분란을 일으킨다고 하면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예를 들어, 개구리가 침상 위에 올라왔다는 것은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니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핍박을 한다거나, 반대로 남편이 교회에 다니니 아내가 불의한 행위를 한다거나 하여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악의 모양을 발견하여 회개하고 아내나 남편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세 가지 재앙은 바로의 술객들이 등장하여 하나님의 역사와 똑같이 행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체험하고도 우연의 일치라고 하며 하나님을 서운케 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항상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입으면 재앙을 만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재앙이 임했을 때에는 즉시 회개하여 세상과 타협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승리의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2007-10-12
제40과열재앙(1)
출 7:1-7
읽을말씀 : 출 7:1-7 | 외울말씀 : 딤전 2:4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열 재앙을 통하여 사람에게 시험 환난이 오고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깨달아 재앙을 피하며 시험 환난을 믿음으로 승리하여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곧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키기 위해 모세를 세우시고 열 가지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애굽이란 영적으로 이 세상을 칭하므로 애굽에 내렸던 열 재앙은 오늘날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열 재앙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사람에게 시험 환난이 오고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깨우쳐 줌으로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재앙과는 상관이 없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신 배경과 열 재앙에 대한 서론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하게 된 배경
출애굽기 7:1-7을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땅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에게 붙여 주신 이름으로 창세기 32:28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왜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을까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었지만 꿈이 있었는데 장자가 아니었기에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와 몹시 배고파하는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권을 삽니다. 이로써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소유하게 되었고 결국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까지 받아 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에서는 야곱을 미워하여 급기야는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삼촌인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여 오랜 세월을 지낸 후 아내와 자녀들을 얻고 많은 재산을 모아 고향인 가나안 땅을 향해 돌아오게 되지요.그런데 얍복 나루를 건너기 전에 형 에서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그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든 재산과 아내와 자녀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어버리게 될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며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 축복까지 받습니다.
이사야 41:14에 나오는 말씀대로 환도뼈가 부러져 지렁이 같은 야곱이 되었으니 이제까지 자신을 의지하였던 교만과 자아가 철저히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에서의 마음을 주관하셔서 서로 화목케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형성되고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라 이름하는 야곱에게는 네 여인을 통해 낳은 열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요셉은 낙심치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기억하며 항상 하나님 보시기에 정도를 걸었으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범사에 형통함을 입습니다.
결국 요셉은 애굽 왕 다음가는 직위인 총리대신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던 중 7년 흉년이 계속되자 야곱이 살던 가나안 땅에도 흉년이 들어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 양식을 구하러 왔다가 총리대신인 요셉을 만나게 되지요. 이를 계기로 야곱의 온 가족은 양식이 있는 애굽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왕이 바뀌면서 자기들보다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고 강한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애굽이 요셉을 통해 받았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새로운 왕은 그 방책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종으로 삼아 고역을 시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였고 애굽 왕은 새로 태어나는 히브리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받은 모세
이때 모세가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는 아이가 준수한 것을 보고 석 달을 숨겼다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자 갈 상자에 넣어 하숫가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의 공주가 발견하여 양자로 삼고자 하니 이를 보고 있던 모세의 누이가 재치 있게 행동하여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서 모세를 양육하게 되었지요.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자랐지만 이스라엘 민족인 친어머니의 손에 양육되었으므로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장성한 후에 자기 민족이 고역 당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어떤 애굽 사람이 자기의 동포를 치는 것을 보고 쳐 죽여 모래에 감추었습니다. 이 사실이 자기 동포에 의해 탄로가 나고 애굽 왕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찾게 됩니다.
그러면 모세는 어떻게 히브리 사람이 자기의 민족임을 알았을까요? 모세는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어머니를 통해서 자신이 히브리 백성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모세가 애굽 왕인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자신의 동포를 위한 일을 하였기에 애굽 사람에 의해서 고발을 당해야 하겠지만 오히려 그 일을 숨겨 주고 두둔해 주어야 할 동족이 모세를 팔았던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가서 40년 동안 목동으로 지내게 되지요. 이것은 자기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는 모세를 연단하여 출애굽의 지도자로 삼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지도자로 삼으셨는데 그 당시 모세의 나이가 80세였습니다.
3. 열 재앙이 임하게 된 배경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자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수 있는 길이 열릴 때까지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결국 바로 왕은 열 가지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였지요.
당시 애굽 사람들은 사자와 같이 용맹스럽고 강한 민족성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체구가 단단하고 피가 들끓는 젊은이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바로 임금들, 즉 파라오들은 자신을 신으로 여겼고 신하와 백성들은 임금을 신처럼 받들었습니다. 그러니 모세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 곧 하나님을 소개하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애굽 왕과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기까지 재앙을 받은 것은 그만큼 바로가 강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머리가 되는 왕이 강퍅하니 백성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한 가정에서 가장이 강퍅하면 가족들도 대부분 강퍅한 것과 같습니다. 만일 애굽 백성들이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필요가 없었지요.
출애굽기를 보면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출 9:12) 하신 말씀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9:18에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마치 독재자 하나님인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 천하 만민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니 마음이 강퍅한 사람일지라도 어떻게 하든지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리가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시는 독재자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 자체이시며 선하고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영계의 법칙 곧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시는 분이시니 우리가 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으면 재앙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살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주시고 좋은 길을 선택하게 하시는 분이지 결코 미리 정해 놓고 마음대로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애굽 왕 바로는 악이 드러날 때마다 이를 버려 나간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악을 행해 나가니 결국은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재앙을 통해서 그 마음속에 있는 강퍅함을 계속 드러나게 하셨는데, 성경에서는 이를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열 재앙의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디모데전서 2:4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해 밝히 깨닫고 빛 가운데 거하여 항상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열 재앙을 통하여 사람에게 시험 환난이 오고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깨달아 재앙을 피하며 시험 환난을 믿음으로 승리하여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곧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키기 위해 모세를 세우시고 열 가지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애굽이란 영적으로 이 세상을 칭하므로 애굽에 내렸던 열 재앙은 오늘날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열 재앙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사람에게 시험 환난이 오고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깨우쳐 줌으로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재앙과는 상관이 없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신 배경과 열 재앙에 대한 서론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하게 된 배경
출애굽기 7:1-7을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땅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에게 붙여 주신 이름으로 창세기 32:28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왜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을까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었지만 꿈이 있었는데 장자가 아니었기에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와 몹시 배고파하는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권을 삽니다. 이로써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소유하게 되었고 결국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까지 받아 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에서는 야곱을 미워하여 급기야는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삼촌인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여 오랜 세월을 지낸 후 아내와 자녀들을 얻고 많은 재산을 모아 고향인 가나안 땅을 향해 돌아오게 되지요.그런데 얍복 나루를 건너기 전에 형 에서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그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든 재산과 아내와 자녀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어버리게 될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며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 축복까지 받습니다.
이사야 41:14에 나오는 말씀대로 환도뼈가 부러져 지렁이 같은 야곱이 되었으니 이제까지 자신을 의지하였던 교만과 자아가 철저히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에서의 마음을 주관하셔서 서로 화목케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형성되고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라 이름하는 야곱에게는 네 여인을 통해 낳은 열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요셉은 낙심치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기억하며 항상 하나님 보시기에 정도를 걸었으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범사에 형통함을 입습니다.
결국 요셉은 애굽 왕 다음가는 직위인 총리대신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던 중 7년 흉년이 계속되자 야곱이 살던 가나안 땅에도 흉년이 들어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 양식을 구하러 왔다가 총리대신인 요셉을 만나게 되지요. 이를 계기로 야곱의 온 가족은 양식이 있는 애굽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왕이 바뀌면서 자기들보다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고 강한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애굽이 요셉을 통해 받았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새로운 왕은 그 방책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종으로 삼아 고역을 시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였고 애굽 왕은 새로 태어나는 히브리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받은 모세
이때 모세가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는 아이가 준수한 것을 보고 석 달을 숨겼다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자 갈 상자에 넣어 하숫가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의 공주가 발견하여 양자로 삼고자 하니 이를 보고 있던 모세의 누이가 재치 있게 행동하여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서 모세를 양육하게 되었지요.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자랐지만 이스라엘 민족인 친어머니의 손에 양육되었으므로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장성한 후에 자기 민족이 고역 당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어떤 애굽 사람이 자기의 동포를 치는 것을 보고 쳐 죽여 모래에 감추었습니다. 이 사실이 자기 동포에 의해 탄로가 나고 애굽 왕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찾게 됩니다.
그러면 모세는 어떻게 히브리 사람이 자기의 민족임을 알았을까요? 모세는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어머니를 통해서 자신이 히브리 백성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모세가 애굽 왕인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자신의 동포를 위한 일을 하였기에 애굽 사람에 의해서 고발을 당해야 하겠지만 오히려 그 일을 숨겨 주고 두둔해 주어야 할 동족이 모세를 팔았던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가서 40년 동안 목동으로 지내게 되지요. 이것은 자기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는 모세를 연단하여 출애굽의 지도자로 삼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지도자로 삼으셨는데 그 당시 모세의 나이가 80세였습니다.
3. 열 재앙이 임하게 된 배경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자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수 있는 길이 열릴 때까지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결국 바로 왕은 열 가지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였지요.
당시 애굽 사람들은 사자와 같이 용맹스럽고 강한 민족성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체구가 단단하고 피가 들끓는 젊은이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바로 임금들, 즉 파라오들은 자신을 신으로 여겼고 신하와 백성들은 임금을 신처럼 받들었습니다. 그러니 모세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 곧 하나님을 소개하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애굽 왕과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기까지 재앙을 받은 것은 그만큼 바로가 강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머리가 되는 왕이 강퍅하니 백성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한 가정에서 가장이 강퍅하면 가족들도 대부분 강퍅한 것과 같습니다. 만일 애굽 백성들이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필요가 없었지요.
출애굽기를 보면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출 9:12) 하신 말씀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9:18에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마치 독재자 하나님인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 천하 만민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니 마음이 강퍅한 사람일지라도 어떻게 하든지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리가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시는 독재자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 자체이시며 선하고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영계의 법칙 곧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시는 분이시니 우리가 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으면 재앙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살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주시고 좋은 길을 선택하게 하시는 분이지 결코 미리 정해 놓고 마음대로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애굽 왕 바로는 악이 드러날 때마다 이를 버려 나간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악을 행해 나가니 결국은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재앙을 통해서 그 마음속에 있는 강퍅함을 계속 드러나게 하셨는데, 성경에서는 이를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열 재앙의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디모데전서 2:4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해 밝히 깨닫고 빛 가운데 거하여 항상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2007-10-05
제39과십계명(10)
출 20:17
읽을말씀 : 출 20:17 | 외울말씀 : 약 1:15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10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
1. 탐내지 말지니라
출애굽기 20:17을 보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고 제10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탐심'이란 탐내는 마음, 부당한 욕심이라고 사전에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가 아닌 남의 것을 계속하여 바라고 불의한 방법으로 탐하는 마음이 곧 탐심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범죄가 탐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탐심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도적질도 하며 간음하고 절도, 강도, 사기, 횡령, 살인 등 갖가지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질을 탐해서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지위와 명예를 탐해서 죄를 범하기도 하므로 탐심은 참으로 경계해야 할 악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웃집을 방문했는데 그 집이 부요하여 온갖 귀한 물건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이므로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탐심이 생긴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훔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더라도 이를 통해서 자기 마음 안에 욕심이 자리잡은 것을 알 수 있으며, 결국 이러한 탐심이 각종 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2. 탐심을 버리면 임하는 축복
사람에게는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영혼, 곧 참 생명입니다. 천하를 얻는다 해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만 이 세상의 부귀를 얻지 못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할 수 있는 참 생명을 소유한다면 진정 부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열심히 충성, 봉사하는 사람이 행여 가난하게 산다고 해도 '저 사람은 하나님께 열심히 충성하는데 왜 물질의 축복을 받지 못할까?'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참된 축복은 물질이 많은 것에 있지 않고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온전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자연히 물질의 축복도 따르게 되지요.
반면에 영혼이 잘되지 않은 사람에게 많은 물질이 있으면 자칫 욕심으로 인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날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다가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세상을 향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물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탐심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망으로 인도하는 악임을 분명히 깨우쳐서 물질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말씀하셨으니 참 믿음을 소유하려면 탐심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9 이하를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자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아갔지만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먹고 살며 심지어는 개들이 와서 그 헌 데를 핥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나사로는 비록 거지였지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선을 행해 나갔습니다. 반면 부자는 이 땅에 소망을 두었고 욕심을 가졌으며 악하게 살았지요.
결국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지는 천사들의 손에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음부에 내려가 세세토록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누가 더 행복한 사람입니까? 이 세상에서 거지로 살았다 해도 구원을 얻은 나사로가 당연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며 세상을 향할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물질의 축복을 주십니다. 야고보서 4:2-3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응답되지 않지만 성령의 역사를 따라 기도하면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이므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분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해 주시는 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대로 행해 나감으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 나가면 자연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 기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 같은 기도를 통하여 탐심을 철저히 버리고 오직 성령의 역사를 따라 구하면 영혼이 잘되어 구원받는 것은 물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3. 자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성경을 보면 물질을 탐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사람들의 예가 곳곳에 나옵니다. 여호수아 7:20 이하에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아간이라는 사람이 은과 금을 탐해서 도적질했다가 돌에 맞아 죽은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열왕기하 5:23 이하를 보면 엘리사의 종 게하시 역시 은과 의복을 탐해서 거짓말을 하여 나아만에게 선물을 받았다가 문둥병에 걸렸던 것을 볼 수 있고, 사도행전 5:1 이하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탐심 때문에 성령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다가 죽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탐심으로 인해 많은 범죄가 일어남을 깨달아 우리는 탐심을 버리고 자족하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4:11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풍부한 데도 처할 줄 알고 빈곤한 데도 처할 줄 알아 오로지 영적인 부요함을 누리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거나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자족하며 감사할 줄 아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녕 탐내고 사모하며 갖고 싶어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진리의 말씀입니다. 죄를 버리고 의 가운데 나와 의인이 되기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나 장막이나 명예나 권세를 탐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을 다 소유했다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을 살면 내세에서 영생을 얻어 영원한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4. 십계명을 지킬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지켜 행하는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뿐 아니라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됩니다(신 28:1-6).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각종 저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신 28:15-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아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5:14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친구가 되는 축복도 받게 됩니다.
더욱이 요한일서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하셨으니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계명을 지켜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십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값진 것인가를 아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행함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 뛰어나게 하시고 영생의 축복을 주시며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10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
1. 탐내지 말지니라
출애굽기 20:17을 보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고 제10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탐심'이란 탐내는 마음, 부당한 욕심이라고 사전에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가 아닌 남의 것을 계속하여 바라고 불의한 방법으로 탐하는 마음이 곧 탐심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범죄가 탐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탐심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도적질도 하며 간음하고 절도, 강도, 사기, 횡령, 살인 등 갖가지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질을 탐해서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지위와 명예를 탐해서 죄를 범하기도 하므로 탐심은 참으로 경계해야 할 악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웃집을 방문했는데 그 집이 부요하여 온갖 귀한 물건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이므로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탐심이 생긴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훔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더라도 이를 통해서 자기 마음 안에 욕심이 자리잡은 것을 알 수 있으며, 결국 이러한 탐심이 각종 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2. 탐심을 버리면 임하는 축복
사람에게는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영혼, 곧 참 생명입니다. 천하를 얻는다 해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만 이 세상의 부귀를 얻지 못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할 수 있는 참 생명을 소유한다면 진정 부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열심히 충성, 봉사하는 사람이 행여 가난하게 산다고 해도 '저 사람은 하나님께 열심히 충성하는데 왜 물질의 축복을 받지 못할까?'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참된 축복은 물질이 많은 것에 있지 않고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온전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자연히 물질의 축복도 따르게 되지요.
반면에 영혼이 잘되지 않은 사람에게 많은 물질이 있으면 자칫 욕심으로 인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날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다가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세상을 향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물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탐심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망으로 인도하는 악임을 분명히 깨우쳐서 물질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말씀하셨으니 참 믿음을 소유하려면 탐심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9 이하를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자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아갔지만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먹고 살며 심지어는 개들이 와서 그 헌 데를 핥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나사로는 비록 거지였지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선을 행해 나갔습니다. 반면 부자는 이 땅에 소망을 두었고 욕심을 가졌으며 악하게 살았지요.
결국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지는 천사들의 손에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음부에 내려가 세세토록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누가 더 행복한 사람입니까? 이 세상에서 거지로 살았다 해도 구원을 얻은 나사로가 당연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며 세상을 향할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물질의 축복을 주십니다. 야고보서 4:2-3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응답되지 않지만 성령의 역사를 따라 기도하면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이므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분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해 주시는 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대로 행해 나감으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 나가면 자연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 기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 같은 기도를 통하여 탐심을 철저히 버리고 오직 성령의 역사를 따라 구하면 영혼이 잘되어 구원받는 것은 물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3. 자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성경을 보면 물질을 탐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사람들의 예가 곳곳에 나옵니다. 여호수아 7:20 이하에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아간이라는 사람이 은과 금을 탐해서 도적질했다가 돌에 맞아 죽은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열왕기하 5:23 이하를 보면 엘리사의 종 게하시 역시 은과 의복을 탐해서 거짓말을 하여 나아만에게 선물을 받았다가 문둥병에 걸렸던 것을 볼 수 있고, 사도행전 5:1 이하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탐심 때문에 성령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다가 죽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탐심으로 인해 많은 범죄가 일어남을 깨달아 우리는 탐심을 버리고 자족하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4:11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풍부한 데도 처할 줄 알고 빈곤한 데도 처할 줄 알아 오로지 영적인 부요함을 누리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거나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자족하며 감사할 줄 아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녕 탐내고 사모하며 갖고 싶어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진리의 말씀입니다. 죄를 버리고 의 가운데 나와 의인이 되기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나 장막이나 명예나 권세를 탐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을 다 소유했다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을 살면 내세에서 영생을 얻어 영원한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4. 십계명을 지킬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지켜 행하는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뿐 아니라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됩니다(신 28:1-6).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각종 저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신 28:15-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아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5:14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친구가 되는 축복도 받게 됩니다.
더욱이 요한일서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하셨으니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계명을 지켜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십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값진 것인가를 아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행함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 뛰어나게 하시고 영생의 축복을 주시며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