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TOTAL : 1501 PAGE : 90/106
2008-03-14
제11과온몸에 채찍을 맞고 피 흘리신 예수님
막 15:15-20, 레 17:10-11, 히 9:22
읽을말씀 : 막 15:15-20, 레 17:10-11, 히 9:22 | 외울말씀 : 벧전 2:24, 출 15:26
교육목표 : 하나님의 섭리 속에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보혈을 흘리신 이유를 깨닫고 죄와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어 강건한 삶을 살게 한다.
1. 온몸에 채찍을 맞고 피 흘리신 예수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로마 군병에게 뺨을 맞고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건장하고 잘 훈련된 병사가 예수님의 옷을 벗긴 뒤 뾰쪽한 납덩이가 달린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채찍이 예수님의 온몸을 휘감아 챌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뼈가 드러나고 피가 낭자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사 50:6) 하신 말씀처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죄인 된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온몸에 채찍을 맞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왜 혹독한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셔야 했을까요? 그 섭리가 이사야 53:5-6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베드로전서 2:24에도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 박히고 온몸에 채찍을 맞아 흘리신 피로 인류는 죄와 모든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연약함이나 질병으로 고통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질병은 죄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9:1-8에는 예수님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시며 죄 문제부터 해결한 뒤에 일어나 가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5장에는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시고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지셨음을 믿는데도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출애굽기 15:26에 보면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이란 이 세상에 있는 온갖 질병을 총칭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죄를 지을 때 질병이 생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고 모든 규례를 지키면 어떠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연약할 때에는 질병이 틈타면 약이나 병원 등 세상 방법을 의지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자라면 하나님 말씀 안에 살므로 질병이 틈타지 않으며 설령 질병이 틈탄다 해도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중심으로 회개하면 치료받습니다.
간혹 '나는 믿음이 연약하므로 범죄할 때가 있다, 사람이 온전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는 힘들다.'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연약하다, 힘들다." 고백하면 연약하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강건하다, 충만하다."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와서 피곤도 능히 이기며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뀝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 받아도 여전히 아픈데 어떻게 나았다고 합니까? 그러면 거짓말이 아닌가요?" 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1:24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했습니다. 히브리서 11:1-2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했습니다. 믿음은 이룬 것을 보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바랄 때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아무리 "나을 줄 믿습니다." 해도 치료되지 않는다면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진실하게 믿는 믿음을 입술로 고백할 때 실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치료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아프다, 고통스럽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영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약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온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 질병을 대속해 주셨음을 분명히 믿고, 진리 가운데 행하면 강건해집니다.
2.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마태복음 8:17을 보면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질병과 연약함을 대신 져 주셨으니 우리는 더 이상 이 때문에 고통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은 본래 연약한 존재이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하셨는데 육신이 연약하여 잠들지 않았느냐?" 하며 늘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육신이 연약했던 것은 아직 성령을 받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믿음의 고백대로 이루어집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는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할 때 모든 질병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결코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 때 하나님께서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며, 능치 못할 일이 없도록 역사해 주십니다(막 9:23). 나아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히브리서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신 말씀대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하면 예수님 당시와 같이 권능을 체험합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등 각색 병자를 고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리신 이유
히브리서 9:22을 보면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사람이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려면 누군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이나 소를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레위기 17:11에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피를 흘릴 때 그 피가 죄를 속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늘 짐승을 잡아 제사드려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흠도 티도 없는 보혈, 능력의 피를 흘려 주신 후부터는 더 이상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죄까지 인류의 모든 죄가 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19-20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말씀합니다.
아담의 원죄로 죄인된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여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대신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통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보혈을 흘리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아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며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와 암송아지 재를 부정한 사람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였지만 이제는 이런 외적인 의식은 필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온갖 불법을 행하던 마음을 씻고 정결한 마음과 행실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주님의 피는 흠도 점도 없이 깨끗하여 죄를 온전히 씻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 자녀는 질병으로 고통당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죄 문제뿐 아니라 질병과 연약함까지도 예수님이 친히 담당해 주셨으니 항상 강건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기 위해 피 흘려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영육간에 강건한 삶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섭리 속에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보혈을 흘리신 이유를 깨닫고 죄와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어 강건한 삶을 살게 한다.
1. 온몸에 채찍을 맞고 피 흘리신 예수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로마 군병에게 뺨을 맞고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건장하고 잘 훈련된 병사가 예수님의 옷을 벗긴 뒤 뾰쪽한 납덩이가 달린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채찍이 예수님의 온몸을 휘감아 챌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뼈가 드러나고 피가 낭자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사 50:6) 하신 말씀처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죄인 된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온몸에 채찍을 맞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왜 혹독한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셔야 했을까요? 그 섭리가 이사야 53:5-6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베드로전서 2:24에도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 박히고 온몸에 채찍을 맞아 흘리신 피로 인류는 죄와 모든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연약함이나 질병으로 고통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질병은 죄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9:1-8에는 예수님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시며 죄 문제부터 해결한 뒤에 일어나 가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5장에는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시고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지셨음을 믿는데도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출애굽기 15:26에 보면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이란 이 세상에 있는 온갖 질병을 총칭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죄를 지을 때 질병이 생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고 모든 규례를 지키면 어떠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연약할 때에는 질병이 틈타면 약이나 병원 등 세상 방법을 의지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자라면 하나님 말씀 안에 살므로 질병이 틈타지 않으며 설령 질병이 틈탄다 해도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중심으로 회개하면 치료받습니다.
간혹 '나는 믿음이 연약하므로 범죄할 때가 있다, 사람이 온전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는 힘들다.'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연약하다, 힘들다." 고백하면 연약하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강건하다, 충만하다."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와서 피곤도 능히 이기며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뀝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 받아도 여전히 아픈데 어떻게 나았다고 합니까? 그러면 거짓말이 아닌가요?" 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1:24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했습니다. 히브리서 11:1-2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했습니다. 믿음은 이룬 것을 보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바랄 때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아무리 "나을 줄 믿습니다." 해도 치료되지 않는다면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진실하게 믿는 믿음을 입술로 고백할 때 실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치료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아프다, 고통스럽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영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약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온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 질병을 대속해 주셨음을 분명히 믿고, 진리 가운데 행하면 강건해집니다.
2.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마태복음 8:17을 보면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질병과 연약함을 대신 져 주셨으니 우리는 더 이상 이 때문에 고통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은 본래 연약한 존재이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하셨는데 육신이 연약하여 잠들지 않았느냐?" 하며 늘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육신이 연약했던 것은 아직 성령을 받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믿음의 고백대로 이루어집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는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할 때 모든 질병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결코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 때 하나님께서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며, 능치 못할 일이 없도록 역사해 주십니다(막 9:23). 나아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히브리서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신 말씀대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하면 예수님 당시와 같이 권능을 체험합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등 각색 병자를 고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리신 이유
히브리서 9:22을 보면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사람이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려면 누군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이나 소를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레위기 17:11에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피를 흘릴 때 그 피가 죄를 속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늘 짐승을 잡아 제사드려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흠도 티도 없는 보혈, 능력의 피를 흘려 주신 후부터는 더 이상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죄까지 인류의 모든 죄가 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19-20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말씀합니다.
아담의 원죄로 죄인된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여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대신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통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보혈을 흘리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아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며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와 암송아지 재를 부정한 사람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였지만 이제는 이런 외적인 의식은 필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온갖 불법을 행하던 마음을 씻고 정결한 마음과 행실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주님의 피는 흠도 점도 없이 깨끗하여 죄를 온전히 씻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 자녀는 질병으로 고통당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죄 문제뿐 아니라 질병과 연약함까지도 예수님이 친히 담당해 주셨으니 항상 강건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기 위해 피 흘려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영육간에 강건한 삶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3-07
제10과예수님의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게 하신 섭리
요 19:23-24, 시 22:18
읽을말씀 : 요 19:23-24, 시 22:18 | 외울말씀 : 요 19:23
교육목표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전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누고 속옷은 찢지 않되 제비를 뽑게 한 하나님의 섭리와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한다.
1. 예수님의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그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아 빌라도 총독에게 끌고 갔을 때, 그는 예수님의 죄를 찾지 못해 놔주기 원했지만 유대인의 강력한 반발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붙였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어로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민 히브리와 그 당시 세계 강국인 로마, 세계문화를 지배한 헬라의 언어로 기록한 것은 전 세계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인정한다는 표시입니다.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고 '유대인의 왕'이라 하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바꾸라고 하지만 빌라도는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며 그대로 두었습니다. 시편 22:18을 보면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는 예언이 나오는데 예수님의 옷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서기 70년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잘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19:23을 보면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겉옷을 취하여 네 깃으로 나누어 한 깃씩 가졌습니다. 옷의 형체가 없어지니 누구의 옷인 줄 알 수 없지요.
여기서 '예수님의 겉옷'은 영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와 백성을 뜻하며, '옷을 네 깃으로 나누므로 옷의 형체가 없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 나라 곧 유대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라의 존립마저 무너질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옷이라는 하나의 완성품이 사방으로 흩어져 한낱 천 조각에 불과하듯이 나라는 없어지고 이스라엘 이름만 남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로마 군병들이 '겉옷을 각각 한 깃씩 취했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질 것을 예시합니다. 서기 70년에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이스라엘은 점령되어 성전 건물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훼파되고, 무려 약 110만 명이 학살당하고 겨우 9천 명 정도만 살아남아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만 남을 뿐 백성은 나라를 잃고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졌지요.
2.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로마 군병들은 속옷도 취했는데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고 하였습니다(요 19:24). 시편 22:18에 "내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속옷은 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짰는데 이것을 군병들이 찢지 않고 제비 뽑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스라엘 민족은 야곱을 필두로 하여 그의 열두 아들에 의해 열두 지파가 형성되고 그 후손으로 이어졌습니다(신 32:9, 창 35:10-11). 예수님의 속옷이 위에서부터 호지 않고 통으로 짜내려 왔다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머리인 야곱으로 시작하여 위에서부터 순수하게 내려온 단일민족임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속옷을 찢지 아니하고 제비 뽑은 것은 야곱으로부터 내려온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다만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마음 중심을 볼 수 있는데, 곧 야곱이 변함없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를 택하지 않고 야곱을 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변함없는 중심이므로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다시 나라를 세웠습니다. 1948년 5월 14일 독립한 이스라엘은 짧은 기간에 선진국가로 급부상했고, 그들의 뛰어난 민족성은 전 세계가 인정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독립 후 이스라엘을 치는 나라는 망할 것을 예언하는데(겔 38:8 이하), 그대로 이스라엘을 치는 나라들은 망하고 항복한 것을 역사가 증명하지요. 1967년, 이스라엘 주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6일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스라엘의 유학생들은 전장에 참여하기 위해 서둘러 귀국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민족성은 특출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범해 그 보응으로 나라를 잃고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그 무엇으로 찢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호지 않고 위로부터 통으로 짠 속옷을 이방인들이 찢지 못한 것처럼, 그들의 마음만은 찢을 수 없음을 성경이 예언하며 역사가 그대로 증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옷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영적인 의미를 통해 인류 역사의 흐름은 하나님 섭리 가운데 진행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에 예언된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더욱 깨어 참 믿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오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교육목표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전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누고 속옷은 찢지 않되 제비를 뽑게 한 하나님의 섭리와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한다.
1. 예수님의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그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아 빌라도 총독에게 끌고 갔을 때, 그는 예수님의 죄를 찾지 못해 놔주기 원했지만 유대인의 강력한 반발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붙였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어로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민 히브리와 그 당시 세계 강국인 로마, 세계문화를 지배한 헬라의 언어로 기록한 것은 전 세계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인정한다는 표시입니다.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고 '유대인의 왕'이라 하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바꾸라고 하지만 빌라도는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며 그대로 두었습니다. 시편 22:18을 보면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는 예언이 나오는데 예수님의 옷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서기 70년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잘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19:23을 보면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겉옷을 취하여 네 깃으로 나누어 한 깃씩 가졌습니다. 옷의 형체가 없어지니 누구의 옷인 줄 알 수 없지요.
여기서 '예수님의 겉옷'은 영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와 백성을 뜻하며, '옷을 네 깃으로 나누므로 옷의 형체가 없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 나라 곧 유대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라의 존립마저 무너질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옷이라는 하나의 완성품이 사방으로 흩어져 한낱 천 조각에 불과하듯이 나라는 없어지고 이스라엘 이름만 남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로마 군병들이 '겉옷을 각각 한 깃씩 취했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질 것을 예시합니다. 서기 70년에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이스라엘은 점령되어 성전 건물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훼파되고, 무려 약 110만 명이 학살당하고 겨우 9천 명 정도만 살아남아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만 남을 뿐 백성은 나라를 잃고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졌지요.
2.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로마 군병들은 속옷도 취했는데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고 하였습니다(요 19:24). 시편 22:18에 "내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속옷은 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짰는데 이것을 군병들이 찢지 않고 제비 뽑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스라엘 민족은 야곱을 필두로 하여 그의 열두 아들에 의해 열두 지파가 형성되고 그 후손으로 이어졌습니다(신 32:9, 창 35:10-11). 예수님의 속옷이 위에서부터 호지 않고 통으로 짜내려 왔다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머리인 야곱으로 시작하여 위에서부터 순수하게 내려온 단일민족임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속옷을 찢지 아니하고 제비 뽑은 것은 야곱으로부터 내려온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다만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마음 중심을 볼 수 있는데, 곧 야곱이 변함없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를 택하지 않고 야곱을 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변함없는 중심이므로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다시 나라를 세웠습니다. 1948년 5월 14일 독립한 이스라엘은 짧은 기간에 선진국가로 급부상했고, 그들의 뛰어난 민족성은 전 세계가 인정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독립 후 이스라엘을 치는 나라는 망할 것을 예언하는데(겔 38:8 이하), 그대로 이스라엘을 치는 나라들은 망하고 항복한 것을 역사가 증명하지요. 1967년, 이스라엘 주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6일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스라엘의 유학생들은 전장에 참여하기 위해 서둘러 귀국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민족성은 특출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범해 그 보응으로 나라를 잃고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그 무엇으로 찢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호지 않고 위로부터 통으로 짠 속옷을 이방인들이 찢지 못한 것처럼, 그들의 마음만은 찢을 수 없음을 성경이 예언하며 역사가 그대로 증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옷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영적인 의미를 통해 인류 역사의 흐름은 하나님 섭리 가운데 진행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에 예언된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더욱 깨어 참 믿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오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2008-02-29
제9과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예수님
요 19:32-36
읽을말씀 : 요 19:32-36 | 외울말씀 : 빌 2:5-6
교육목표 :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다리를 꺾이우지 않으신 이유와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시고 피와 물을 다 쏟으신 이유를 알아보면서 부활과 영생의 믿음을 갖게 한다.
1. 다리를 꺾이우지 않으신 예수님
요한복음 19:31-33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시고 운명하시자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않기 위해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군병들이 예수님과 함께 못박힌 다른 두 사람의 다리를 꺾었으나 예수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은 것을 확인하고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다리뼈를 꺾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민수기 9:12에 보면 예수님을 어린 양에 비유하여 표현하면서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했고 시편 34:20에는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했으니 성경에 예언된 말씀이 그대로 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12:46에도 어린 양의 살은 먹되 그 뼈를 꺾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린 양은 순종을 잘하고 아직 교미하지 않은 양이기 때문에 가장 좋은 살을 제공하고 상대를 해치거나 대항치도 않습니다. 또한 깨끗하고 아름답고 순하므로 사람의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온전히 자기를 희생하여 가죽과 고기와 털까지 제공하는 유익한 동물입니다. 따라서 어린 양은 아무런 흠과 점이 없는 예수님을 지칭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흠과 티가 많으므로 어린 양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양이라 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죄와 자범죄가 없으신 분이며 아무 죄 없이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은 바 되셔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에 의해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아무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그 몸의 뼈까지 꺾을 수 없었고 또한 꺾이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는 구약에 예언해 놓은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2.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신 예수님
주님께서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빌 2:6-8).
또한 이 땅에 오셔서 포로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고 가난한 사람에게 부요함을 주시며 병든 사람 약한 사람을 치료해 주셨지요. 뿐만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고자 하루 종일 일하시고 제자들이 쉴 때에도 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오직 선을 행하셨지만 유대인들로부터 갖은 핍박과 멸시 천대를 받으며 끝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요한복음 19:33-34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줄 번연히 알면서도 로마 군병은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으니 사람이 얼마나 잔악한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으니 참으로 크신 사랑입니다.
3. 피와 물을 다 쏟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 물과 피를 쏟으셨는데 이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토지 무르기의 법칙 중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레 25:25) 하신 대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구세주는 사람의 근족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로마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나왔다는 것은 사람으로 오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어찌 배고픔과 고통을 느끼셨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에 배고픔을 느끼기도 하고(눅 4:2) 때를 좇아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마 8:24).
둘째로 우리도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4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했고 빌립보서 2:5에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말씀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분이지만 십자가의 모든 고통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면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참 생명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능력의 물과 피라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분이시니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 쏟으신 피와 물은 흠과 티가 없는 보배로운 피와 물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는 부활할 수 있는 피와 물이요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셨지만 사람과는 전혀 다른 능력의 피와 물입니다.
이처럼 흠도 점도 없는 예수님께서 거룩한 피를 흘려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 씻음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참 생명을 얻어 부활할 수 있고 영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흘리신 물은 영생수로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므로 우리가 듣고 행하는 만큼 하나님의 참 자녀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고 피와 물을 쏟으신 것은 죄 없는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또한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참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증거 해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쏟으신 물과 피 때문에 한편 강도는 십자가상에서 처형당하기 직전에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롬10:10). 여러분 모두 믿음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행하는 사람이 되어 신속히 신의 성품에 참예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죄악 가운데 있던 우리들을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아 더욱 능력 있는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다리를 꺾이우지 않으신 이유와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시고 피와 물을 다 쏟으신 이유를 알아보면서 부활과 영생의 믿음을 갖게 한다.
1. 다리를 꺾이우지 않으신 예수님
요한복음 19:31-33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시고 운명하시자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않기 위해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군병들이 예수님과 함께 못박힌 다른 두 사람의 다리를 꺾었으나 예수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은 것을 확인하고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다리뼈를 꺾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민수기 9:12에 보면 예수님을 어린 양에 비유하여 표현하면서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했고 시편 34:20에는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했으니 성경에 예언된 말씀이 그대로 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12:46에도 어린 양의 살은 먹되 그 뼈를 꺾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린 양은 순종을 잘하고 아직 교미하지 않은 양이기 때문에 가장 좋은 살을 제공하고 상대를 해치거나 대항치도 않습니다. 또한 깨끗하고 아름답고 순하므로 사람의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온전히 자기를 희생하여 가죽과 고기와 털까지 제공하는 유익한 동물입니다. 따라서 어린 양은 아무런 흠과 점이 없는 예수님을 지칭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흠과 티가 많으므로 어린 양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양이라 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죄와 자범죄가 없으신 분이며 아무 죄 없이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은 바 되셔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에 의해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아무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그 몸의 뼈까지 꺾을 수 없었고 또한 꺾이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는 구약에 예언해 놓은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2.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신 예수님
주님께서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빌 2:6-8).
또한 이 땅에 오셔서 포로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고 가난한 사람에게 부요함을 주시며 병든 사람 약한 사람을 치료해 주셨지요. 뿐만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고자 하루 종일 일하시고 제자들이 쉴 때에도 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오직 선을 행하셨지만 유대인들로부터 갖은 핍박과 멸시 천대를 받으며 끝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요한복음 19:33-34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줄 번연히 알면서도 로마 군병은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으니 사람이 얼마나 잔악한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으니 참으로 크신 사랑입니다.
3. 피와 물을 다 쏟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 물과 피를 쏟으셨는데 이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토지 무르기의 법칙 중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레 25:25) 하신 대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구세주는 사람의 근족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로마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나왔다는 것은 사람으로 오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어찌 배고픔과 고통을 느끼셨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에 배고픔을 느끼기도 하고(눅 4:2) 때를 좇아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마 8:24).
둘째로 우리도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4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했고 빌립보서 2:5에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말씀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분이지만 십자가의 모든 고통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면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참 생명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능력의 물과 피라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분이시니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 쏟으신 피와 물은 흠과 티가 없는 보배로운 피와 물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는 부활할 수 있는 피와 물이요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셨지만 사람과는 전혀 다른 능력의 피와 물입니다.
이처럼 흠도 점도 없는 예수님께서 거룩한 피를 흘려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 씻음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참 생명을 얻어 부활할 수 있고 영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흘리신 물은 영생수로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므로 우리가 듣고 행하는 만큼 하나님의 참 자녀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고 피와 물을 쏟으신 것은 죄 없는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또한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참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증거 해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쏟으신 물과 피 때문에 한편 강도는 십자가상에서 처형당하기 직전에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롬10:10). 여러분 모두 믿음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행하는 사람이 되어 신속히 신의 성품에 참예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죄악 가운데 있던 우리들을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아 더욱 능력 있는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2-22
제8과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사 53:4-6, 갈 3:13-14
읽을말씀 : 사 53:4-6, 갈 3:13-14 | 외울말씀 : 사 53:5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와 십자가의 고난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한다.
1. 예수님께서는 왜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는가?
요한복음 19:17-18에 보면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왜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했을까요?
첫째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함입니다.
갈라디아서 3:13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롬 6:23)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어 율법의 저주를 받고 사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지요. 첫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한 이후 아담의 후손은 부모의 기(氣)를 통해 죄성을 이어받아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지니게 되었고, 이 땅에 살면서 스스로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망의 저주에서 구원하시고자 대신하여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며, 결국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롬 5:12-13).
둘째로, 아브라함의 복을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함입니다.
갈라디아서 3:14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세기 22:16-18에 잘 기록되어 있는데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말씀했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고 명하실 때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또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하셨을 때에도 어떤 이유나 핑계를 대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기에(히 11:19)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았으며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혼의 축복뿐 아니라 자녀, 건강, 장수, 물질의 복 등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축복을 받은 것처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복을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이방인에게까지 미치게 하셨습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그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었으며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요 1:12, 롬 8:16).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주셔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시며(롬 8:15),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 안에 거하는 만큼 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믿음을 주셔서 영생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 죄 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달아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며 승리의 삶을 영위해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겪으신 고통
창세기 3:14에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은 뱀은 종신토록 흙을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흙의 영적인 의미는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뱀 곧 사단의 역할은 사람의 생각을 주관하여 악을 행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사단의 사주를 받은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사람을 칼로 죽이거나, 사자굴에 던지거나, 십자가에 매달거나 사람을 시체와 함께 묶어 매장하는 등 여러 가지 잔인하고 끔찍한 처형법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십자가의 처형이 가장 가혹한 처형법이었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는 것이 바로 죄인된 모든 사람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고통을 받으셨을까요?
1) 양손과 양 발에 못박히는 고통
십자가의 처형법은 큰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사람을 묶어 놓고 양손과 양 발에 큰 못을 박아 수 시간 매달아 죽게 하는 방법입니다. 금방 숨이 끊어지면 차라리 고통을 오래 받지 않지만, 급소를 찌르는 것이 아니므로 오랫 동안 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더군다나 사람의 체중으로 인해 몸이 아래로 처지므로 양손과 양 발에 그 고통이 더욱 가중되니 십자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러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이유는 오직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게 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2) 뜨거운 햇볕에 여러 시간 매달려 있어야 하는 고통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온몸은 채찍을 맞아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뜨거운 사막지대의 햇볕을 받으며 여러 시간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피곤과 갈증과 굶주림 가운데 수 시간 매달려 물과 피를 쏟았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크셨을까요?
3) 온갖 조롱과 말할 수 없는 크나큰 고통
마태복음 27:29-30에 보면 "가시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에 의해 온갖 핍박과 조롱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온갖 핍박과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한 벌레 떼까지 피 냄새를 맡고 와서 상처와 못박힌 곳을 핥는 등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으셨지요.
이사야 53:6에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말씀했습니다. 아무 흠도 점도 없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저주받은 사람만이 매달리는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통받으신 이유를 분명히 알아 더욱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았던 모든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더욱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와 십자가의 고난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한다.
1. 예수님께서는 왜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는가?
요한복음 19:17-18에 보면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왜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했을까요?
첫째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함입니다.
갈라디아서 3:13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롬 6:23)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어 율법의 저주를 받고 사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지요. 첫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한 이후 아담의 후손은 부모의 기(氣)를 통해 죄성을 이어받아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지니게 되었고, 이 땅에 살면서 스스로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망의 저주에서 구원하시고자 대신하여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며, 결국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롬 5:12-13).
둘째로, 아브라함의 복을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함입니다.
갈라디아서 3:14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세기 22:16-18에 잘 기록되어 있는데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말씀했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고 명하실 때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또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하셨을 때에도 어떤 이유나 핑계를 대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기에(히 11:19)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았으며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혼의 축복뿐 아니라 자녀, 건강, 장수, 물질의 복 등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축복을 받은 것처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복을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이방인에게까지 미치게 하셨습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그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었으며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요 1:12, 롬 8:16).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주셔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시며(롬 8:15),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 안에 거하는 만큼 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믿음을 주셔서 영생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 죄 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달아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며 승리의 삶을 영위해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겪으신 고통
창세기 3:14에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은 뱀은 종신토록 흙을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흙의 영적인 의미는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뱀 곧 사단의 역할은 사람의 생각을 주관하여 악을 행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사단의 사주를 받은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사람을 칼로 죽이거나, 사자굴에 던지거나, 십자가에 매달거나 사람을 시체와 함께 묶어 매장하는 등 여러 가지 잔인하고 끔찍한 처형법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십자가의 처형이 가장 가혹한 처형법이었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는 것이 바로 죄인된 모든 사람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고통을 받으셨을까요?
1) 양손과 양 발에 못박히는 고통
십자가의 처형법은 큰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사람을 묶어 놓고 양손과 양 발에 큰 못을 박아 수 시간 매달아 죽게 하는 방법입니다. 금방 숨이 끊어지면 차라리 고통을 오래 받지 않지만, 급소를 찌르는 것이 아니므로 오랫 동안 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더군다나 사람의 체중으로 인해 몸이 아래로 처지므로 양손과 양 발에 그 고통이 더욱 가중되니 십자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러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이유는 오직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게 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2) 뜨거운 햇볕에 여러 시간 매달려 있어야 하는 고통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온몸은 채찍을 맞아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뜨거운 사막지대의 햇볕을 받으며 여러 시간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피곤과 갈증과 굶주림 가운데 수 시간 매달려 물과 피를 쏟았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크셨을까요?
3) 온갖 조롱과 말할 수 없는 크나큰 고통
마태복음 27:29-30에 보면 "가시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에 의해 온갖 핍박과 조롱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온갖 핍박과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한 벌레 떼까지 피 냄새를 맡고 와서 상처와 못박힌 곳을 핥는 등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으셨지요.
이사야 53:6에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말씀했습니다. 아무 흠도 점도 없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저주받은 사람만이 매달리는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통받으신 이유를 분명히 알아 더욱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았던 모든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더욱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2008-02-15
제7과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구원받는 길
고전 2:6-10
읽을말씀 : 고전 2:6-10 | 외울말씀 : 요 1:12
교육목표 :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한다.
1. 만세 전에 감추었던 비밀
선악과를 따 먹도록 사람을 유혹했던 간교한 뱀은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창 3:14). 또한 창세기 3:15에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하신 대로 원수 마귀는 여자의 후손 중에 자기를 상하게 할 사람이 태어날 것을 알고 그를 죽이고자 작정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원수 마귀는 구약 시대부터 악한 사람을 사주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괴롭히며 핍박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에는 간악한 헤롯 왕을 사주하여 베들레헴과 그 주변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였지요(마 2:16). 예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통해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게 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헤롯이 죽기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마 2:13-15). 그후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 살며 30세부터 공생애에 들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지요.
원수 마귀는 자기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을 모두 죽여서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계략을 꾸밉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양손, 양 발에 못 박히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원수 마귀는 철저하게 여자의 후손을 죽이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가 감춰 있지요. 고린도전서 2:7-8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세 전에 섭리하신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요?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영계의 법칙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있습니다(롬 6:23). 원수 마귀는 아무런 죄도 흠도 없는 예수님(히 7:26, 벧전 2:22-23)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렇게 원수 마귀는 영계의 법을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불순종함의 죄를 범하여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원수 마귀가 이러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았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서 5:18에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참 생명과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의 법에 따라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근족으로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지요. 원죄와 자범죄가 없었기에 힘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죄가 전혀 없는 예수님을 나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려면
요한복음 1:12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했는데 과연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가 주어질까요?
요한복음 4장에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과정과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사람들에게 전하니 많은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이 혼혈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상종하지도, 사마리아 땅을 밟지도 않았습니다. 혹 그 땅을 거쳐 가야 할 경우에는 멀리 돌아서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 사마리아 땅을 지나면서 잠시 우물가에 앉아 계시다가 마침 물을 길러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지역적인 특성상 이스라엘의 여행자들은 항상 물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질 리 없고 설령 물이 떨어졌어도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으니 잠깐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하신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영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사마리아 여인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이 소식을 동네 사람에게 전파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 참 생명과 영생을 얻고 천국을 소유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과 단순히 아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7:21에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합니다.
왜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두어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는지,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하셨는지 구원의 섭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요. 귤의 맛을 알려면 단순히 겉모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먹어 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다'라고 막연히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가' 하는 십자가의 섭리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깨달을 때 진정한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참자녀가 됨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한다.
1. 만세 전에 감추었던 비밀
선악과를 따 먹도록 사람을 유혹했던 간교한 뱀은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창 3:14). 또한 창세기 3:15에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하신 대로 원수 마귀는 여자의 후손 중에 자기를 상하게 할 사람이 태어날 것을 알고 그를 죽이고자 작정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원수 마귀는 구약 시대부터 악한 사람을 사주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괴롭히며 핍박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에는 간악한 헤롯 왕을 사주하여 베들레헴과 그 주변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였지요(마 2:16). 예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통해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게 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헤롯이 죽기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마 2:13-15). 그후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 살며 30세부터 공생애에 들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지요.
원수 마귀는 자기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을 모두 죽여서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계략을 꾸밉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양손, 양 발에 못 박히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원수 마귀는 철저하게 여자의 후손을 죽이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가 감춰 있지요. 고린도전서 2:7-8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세 전에 섭리하신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요?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영계의 법칙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있습니다(롬 6:23). 원수 마귀는 아무런 죄도 흠도 없는 예수님(히 7:26, 벧전 2:22-23)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렇게 원수 마귀는 영계의 법을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불순종함의 죄를 범하여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원수 마귀가 이러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았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서 5:18에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참 생명과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의 법에 따라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근족으로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지요. 원죄와 자범죄가 없었기에 힘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죄가 전혀 없는 예수님을 나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려면
요한복음 1:12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했는데 과연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가 주어질까요?
요한복음 4장에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과정과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사람들에게 전하니 많은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이 혼혈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상종하지도, 사마리아 땅을 밟지도 않았습니다. 혹 그 땅을 거쳐 가야 할 경우에는 멀리 돌아서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 사마리아 땅을 지나면서 잠시 우물가에 앉아 계시다가 마침 물을 길러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지역적인 특성상 이스라엘의 여행자들은 항상 물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질 리 없고 설령 물이 떨어졌어도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으니 잠깐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하신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영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사마리아 여인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이 소식을 동네 사람에게 전파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 참 생명과 영생을 얻고 천국을 소유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과 단순히 아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7:21에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합니다.
왜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두어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는지,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하셨는지 구원의 섭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요. 귤의 맛을 알려면 단순히 겉모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먹어 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다'라고 막연히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가' 하는 십자가의 섭리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깨달을 때 진정한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참자녀가 됨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2-07
제0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1. 신앙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陰曆)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게 있어서 일 년 중에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서양력을 사용하게 된 근래에 이르러서 양력 1월 1일로 음력 설을 대신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설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명절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이 말 안에는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설이 되면 우리 조상들은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다. 그런데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설날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해를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주 안에서 행복하게 보내면 되는 것이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 - - - - - - - - - - - - - 사도신경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인도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아 멘 -
찬 송 - - - - - - - - - - - - - - - - 460장-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 멘 -
성경봉독 - - - - - - - - - - - - - - - - 엡 5:20-21 - - - - - - - - - - - - - - - - 인도자
설 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찬 송 - - - - - - - - - - - - - - - - - 305장 - - - - - - - - - - - - - - - - - 다같이
주기도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같이
3. 설교 예문
제 목: 하나님께 감사하라 (본문: 에베소서 5:20-21)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본문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 먼저 불꽃 같은 눈동자로 자녀된 우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설 명절을 맞이하여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약속된 대로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아가게 될 천국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서 우리는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목자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 가시는 분이 바로 목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이 계신다 해도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해야 만나고 어떻게 그분의 자녀가 되며 어떻게 해야 사랑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그 길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밝히 제시해 주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친히 본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분이 목자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와 함께했던 조카 롯이 지킴받고 축복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목자의 양 떼로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살아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양 떼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목자가 계시기에 양 떼가 지난 한 해도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목자를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신 말씀대로,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위해 주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이 생길 수 있지만,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신 주님을 경외함으로 우리 가족 모두도 서로 간에 섬기며 복종해 간다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화목하고 우애하며 자녀를 주의 교양으로 양육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었을 때, 우리 가정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목자의 영의 공간 안에 거하는 가정이 되어 범사에 형통하며 축복받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올 한 해도 이처럼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가정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더욱 온전한 신앙생활을 통해 천국 새예루살렘을 침노해 들어가는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1. 신앙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陰曆)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게 있어서 일 년 중에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서양력을 사용하게 된 근래에 이르러서 양력 1월 1일로 음력 설을 대신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설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명절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이 말 안에는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설이 되면 우리 조상들은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다. 그런데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설날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해를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주 안에서 행복하게 보내면 되는 것이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 - - - - - - - - - - - - - 사도신경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인도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아 멘 -
찬 송 - - - - - - - - - - - - - - - - 460장-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 멘 -
성경봉독 - - - - - - - - - - - - - - - - 엡 5:20-21 - - - - - - - - - - - - - - - - 인도자
설 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찬 송 - - - - - - - - - - - - - - - - - 305장 - - - - - - - - - - - - - - - - - 다같이
주기도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같이
3. 설교 예문
제 목: 하나님께 감사하라 (본문: 에베소서 5:20-21)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본문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 먼저 불꽃 같은 눈동자로 자녀된 우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설 명절을 맞이하여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약속된 대로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아가게 될 천국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서 우리는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목자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 가시는 분이 바로 목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이 계신다 해도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해야 만나고 어떻게 그분의 자녀가 되며 어떻게 해야 사랑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그 길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밝히 제시해 주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친히 본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분이 목자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와 함께했던 조카 롯이 지킴받고 축복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목자의 양 떼로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살아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양 떼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목자가 계시기에 양 떼가 지난 한 해도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목자를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신 말씀대로,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위해 주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이 생길 수 있지만,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신 주님을 경외함으로 우리 가족 모두도 서로 간에 섬기며 복종해 간다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화목하고 우애하며 자녀를 주의 교양으로 양육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었을 때, 우리 가정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목자의 영의 공간 안에 거하는 가정이 되어 범사에 형통하며 축복받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올 한 해도 이처럼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가정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더욱 온전한 신앙생활을 통해 천국 새예루살렘을 침노해 들어가는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2-01
제5과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예수 그리스도
레 25:23-25
읽을말씀 : 레 25:23-25 | 외울말씀 : 고전 2:8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지 살펴보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 얻을 수 없는 이유를 알게 한다.
1. 만세 전에 감취었던 구원의 길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할 것과,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의 영이 죽어 멸망의 길로 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는데, 바로 '십자가의 도(道)'입니다. 만약 인간 구원의 길을 원수 마귀가 미리 알면 죄인된 인류를 구원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비밀한 가운데 감추어 두셨습니다.
고린도전서 2:7-8에 보면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지요. 아담의 불순종으로 원수 마귀의 자녀로 전락한 모든 인류를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회복시키려면 영계의 법칙을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인류를 구원시키고자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였습니다.
2. 토지 무르기 법칙
레위기 25:23-25에 보면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近族)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만일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무를 수 있으며 근족이 대신하여 무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토지 무르기 법칙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토지를 팔 때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팔고 사는가 하는 계약 과정을 기록하고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토지를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워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여 성전 창고에 보관하고, 다른 1부는 인봉하지 않다가 언제라도 볼 수 있게 성전 입구에 펼쳐 놓지요. 설령 토지를 팔았더라도 다시 살 수 있는 힘이 생겨 되돌려 받고자 하면 언제든지 계약서에 기록된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좇아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도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천하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게 되었지만(누가복음 4:6),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영영히 팔지는 못하며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아(로마서 10:13)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요한복음 1:12).
3.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과 예수 그리스도
레위기 25:23-25에 기록된 토지 무르기의 조건에 합당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고 사람의 근족이어야 하며, 무를 수 있는 힘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5:4을 보면 '불순종한 아담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넘겨주었지만 무를 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하나님께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계약을 인봉한 책의 일곱 인을 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사도 요한이 너무 슬퍼서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5절에는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말씀합니다. 다윗의 뿌리 곧 예수 그리스도가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5:12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했고, 로마서 5:19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멸망의 길을 가던 모든 인류가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될 수 있지요.
토지 무르기 법칙에 의하면 돈이 없어 토지를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영영히 팔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토지를 판 사람이 다시 달라고 하면 주어야 합니다. 만일 본인이 무를 힘이 없을 때에는 근족이 대신 물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무르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이어야 하므로 토지 무를 자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지 무르기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즉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토지 무르기 법칙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한 죄가 있으므로 아담의 핏줄을 타고난 인류는 모두 원죄가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으니,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 사람을 찾고자 하늘 위를 보니 천사만 있고 땅 위를 살펴보니 아담의 후예인 죄인들만 있고 음부에 있는 영혼들 중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요한계시록 5:1-3).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지 무르기 두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법으로는 다윗의 뿌리이지만, 남녀가 결혼하여 잉태된 것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오직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예가 아닙니다(마태복음 1:18-21).
셋째로, 토지 무를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빚을 갚아 주려고 해도 힘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토지 무르기를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의 힘이 강하여 토지를 주지 않는다면 받을 수 없으니 상대보다 강한 힘이 있어야 하지요. 이처럼 죄를 대속하려면 죄를 무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지 무르기 세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원죄가 없습니다.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33년 동안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셨으니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전혀 없었지요. (베드로전서 2:22-24, 히브리서 7:26).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온전한 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므로 토지 무를 힘이 있었고, 결국에는 원수 마귀가 방해하지 못하고 되돌려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위의 조건이 모두 성립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동생이 천만 원의 빚을 졌는데 수억 원을 가진 형이 있다 해도 빚을 대신 갚아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룻기 4:6을 보면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며 토지 무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무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다음 근족인 보아스가 대신 나오미의 토지를 물러 주게 되는데 이는 사랑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부로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희생적인 사랑이 없으셨다면 과연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시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시며 오직 선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피조물인 사람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피 흘려 죽음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에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것이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사도행전 4:12).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밝히 깨달아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권세를 회복함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서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지 살펴보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 얻을 수 없는 이유를 알게 한다.
1. 만세 전에 감취었던 구원의 길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할 것과,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의 영이 죽어 멸망의 길로 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는데, 바로 '십자가의 도(道)'입니다. 만약 인간 구원의 길을 원수 마귀가 미리 알면 죄인된 인류를 구원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비밀한 가운데 감추어 두셨습니다.
고린도전서 2:7-8에 보면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지요. 아담의 불순종으로 원수 마귀의 자녀로 전락한 모든 인류를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회복시키려면 영계의 법칙을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인류를 구원시키고자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였습니다.
2. 토지 무르기 법칙
레위기 25:23-25에 보면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近族)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만일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무를 수 있으며 근족이 대신하여 무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토지 무르기 법칙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토지를 팔 때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팔고 사는가 하는 계약 과정을 기록하고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토지를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워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여 성전 창고에 보관하고, 다른 1부는 인봉하지 않다가 언제라도 볼 수 있게 성전 입구에 펼쳐 놓지요. 설령 토지를 팔았더라도 다시 살 수 있는 힘이 생겨 되돌려 받고자 하면 언제든지 계약서에 기록된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좇아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도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천하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게 되었지만(누가복음 4:6),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영영히 팔지는 못하며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아(로마서 10:13)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요한복음 1:12).
3.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과 예수 그리스도
레위기 25:23-25에 기록된 토지 무르기의 조건에 합당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고 사람의 근족이어야 하며, 무를 수 있는 힘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5:4을 보면 '불순종한 아담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넘겨주었지만 무를 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하나님께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계약을 인봉한 책의 일곱 인을 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사도 요한이 너무 슬퍼서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5절에는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말씀합니다. 다윗의 뿌리 곧 예수 그리스도가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5:12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했고, 로마서 5:19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멸망의 길을 가던 모든 인류가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될 수 있지요.
토지 무르기 법칙에 의하면 돈이 없어 토지를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영영히 팔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토지를 판 사람이 다시 달라고 하면 주어야 합니다. 만일 본인이 무를 힘이 없을 때에는 근족이 대신 물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무르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이어야 하므로 토지 무를 자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지 무르기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즉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토지 무르기 법칙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한 죄가 있으므로 아담의 핏줄을 타고난 인류는 모두 원죄가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으니,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 사람을 찾고자 하늘 위를 보니 천사만 있고 땅 위를 살펴보니 아담의 후예인 죄인들만 있고 음부에 있는 영혼들 중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요한계시록 5:1-3).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지 무르기 두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법으로는 다윗의 뿌리이지만, 남녀가 결혼하여 잉태된 것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오직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예가 아닙니다(마태복음 1:18-21).
셋째로, 토지 무를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빚을 갚아 주려고 해도 힘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토지 무르기를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의 힘이 강하여 토지를 주지 않는다면 받을 수 없으니 상대보다 강한 힘이 있어야 하지요. 이처럼 죄를 대속하려면 죄를 무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지 무르기 세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원죄가 없습니다.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33년 동안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셨으니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전혀 없었지요. (베드로전서 2:22-24, 히브리서 7:26).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온전한 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므로 토지 무를 힘이 있었고, 결국에는 원수 마귀가 방해하지 못하고 되돌려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위의 조건이 모두 성립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동생이 천만 원의 빚을 졌는데 수억 원을 가진 형이 있다 해도 빚을 대신 갚아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룻기 4:6을 보면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며 토지 무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무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다음 근족인 보아스가 대신 나오미의 토지를 물러 주게 되는데 이는 사랑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부로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희생적인 사랑이 없으셨다면 과연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시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시며 오직 선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피조물인 사람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피 흘려 죽음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에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것이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사도행전 4:12).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밝히 깨달아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권세를 회복함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서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2008-01-25
제4과불순종으로 사망에 이른 사람들
창 3:1-7
읽을말씀 : 창 3:1-7 | 외울말씀 : 야 1:15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이 어떻게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고 죄의 결과는 사망임을 분명히 깨달아 믿음 위에 굳게 서서 구원에 이르는 사람이 되게 한다.
1.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받은 사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 과정이 창세기 2장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며 사람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되 질서를 세우셔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명하셨습니다(창세기 2:16-17). 또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시고 돕는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각종 들짐승과 새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진리와 선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영장으로 세운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알려 주시며 우주만물과 영계의 법칙에 대해서도 가르치셨습니다. 오직 선과 진리의 말씀만을 가르치셨으므로 아담은 영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오랜 세월을 평안히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축복하신 대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마음껏 자손을 펼치고 만물을 다스리며 살았던 것입니다(창세기 1:28).
2. 간교한 뱀의 유혹에 넘어가 불순종한 사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창조하여 축복하시며 지극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주권을 표시하는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을 뿐 마음껏 자녀된 권세와 자유를 누리며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자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이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원수 마귀는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사람을 유혹했지요. 그 당시 뱀은 매끈매끈하고 깨끗하며 길고 둥글게 생겨서 사람과 가까이 지냈고, 또한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며 사랑받을 뿐 아니라 들짐승 중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사람을 유혹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원수 마귀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것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범죄하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범죄하도록 원수 마귀가 유혹하는 것은 사람에게 범죄의 동기가 있기 때문이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면서 진리의 말씀으로 분별하여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뱀을 싫어하는 것은 뱀이 사람을 범죄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사람과 원수가 되었기에 징그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생각이 전혀 없다면 사실 뱀은 오히려 깨끗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지요.
그렇다면 간교한 뱀이 사람을 어떻게 유혹하였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된 것일까요? 뱀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악과만은 따 먹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고 교묘하게 물었던 것입니다. 이때 여자가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불확실하게 대답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요, 분명히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뱀은 더욱 적극적으로 여자를 유혹하며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확신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창세기 3:1-6).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 확신 가운데 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원수 마귀 사단은 간교하게 역사합니다. 예를 들어, "꼭 그렇게 모이기에 힘써야 하느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순종하여 행하던 것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의심을 주기 위해 반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9을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진리의 반석에 굳게 서 있어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 마귀를 물리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 안에 거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믿음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반면에 진리 안에 거하지 않으면 사단이 역사하게 되지요.
에베소서 6:11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열심히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혹 원수 마귀 사단이 유혹한다 할지라도 담대히 물리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5:18-19에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아 지극히 작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순종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인류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지 못하니 사단이 생각을 통해 욕심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러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예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곧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와는 그 실과를 따 먹고 자신과 함께한 아담에게도 주어 그도 먹게 하였지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지 못하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지요. 따라서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게 되었을까요? 생령으로서 영과 혼, 육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주인이 되는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고 혼과 육도 원수 마귀 사단의 지배하에 고통을 받게 되었지요. 또한 만물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니 남자는 종신토록 얼굴에 땀이 흘러야 비로소 그 소산을 먹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잉태의 고통이 크게 더해졌을 뿐 아니라 수고하고 자식을 낳으며 남편을 사모하며 다스림을 받아야 했지요. 사람을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한 간교한 뱀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며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뱀을 살펴보면 흙을 먹고 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흙을 먹고 살게 하셨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일까요? 창세기 3:19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아담에게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흙은 흙으로 창조된 우리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종신토록 흙을 먹으라고 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뱀 곧 원수 마귀 사단에게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먹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함으로 시험 환난이 찾아오며, 갖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누가복음 4:5-7에도 아담의 불순종으로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모든 권세가 원수 마귀에게 넘겨진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아 죄를 짓도록 하여 멸망의 길을 가게 하며,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사람들도 미혹하여 범죄케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12을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지으니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사람의 주인된 영이 죽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원수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또한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의 후손인 인류도 죄의 종이 되어 영원히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로마서 5:19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영생에 이르는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인데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이 어떻게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고 죄의 결과는 사망임을 분명히 깨달아 믿음 위에 굳게 서서 구원에 이르는 사람이 되게 한다.
1.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받은 사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 과정이 창세기 2장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며 사람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되 질서를 세우셔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명하셨습니다(창세기 2:16-17). 또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시고 돕는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각종 들짐승과 새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진리와 선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영장으로 세운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알려 주시며 우주만물과 영계의 법칙에 대해서도 가르치셨습니다. 오직 선과 진리의 말씀만을 가르치셨으므로 아담은 영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오랜 세월을 평안히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축복하신 대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마음껏 자손을 펼치고 만물을 다스리며 살았던 것입니다(창세기 1:28).
2. 간교한 뱀의 유혹에 넘어가 불순종한 사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창조하여 축복하시며 지극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주권을 표시하는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을 뿐 마음껏 자녀된 권세와 자유를 누리며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자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이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원수 마귀는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사람을 유혹했지요. 그 당시 뱀은 매끈매끈하고 깨끗하며 길고 둥글게 생겨서 사람과 가까이 지냈고, 또한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며 사랑받을 뿐 아니라 들짐승 중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사람을 유혹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원수 마귀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것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범죄하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범죄하도록 원수 마귀가 유혹하는 것은 사람에게 범죄의 동기가 있기 때문이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면서 진리의 말씀으로 분별하여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뱀을 싫어하는 것은 뱀이 사람을 범죄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사람과 원수가 되었기에 징그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생각이 전혀 없다면 사실 뱀은 오히려 깨끗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지요.
그렇다면 간교한 뱀이 사람을 어떻게 유혹하였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된 것일까요? 뱀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악과만은 따 먹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고 교묘하게 물었던 것입니다. 이때 여자가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불확실하게 대답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요, 분명히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뱀은 더욱 적극적으로 여자를 유혹하며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확신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창세기 3:1-6).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 확신 가운데 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원수 마귀 사단은 간교하게 역사합니다. 예를 들어, "꼭 그렇게 모이기에 힘써야 하느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순종하여 행하던 것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의심을 주기 위해 반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9을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진리의 반석에 굳게 서 있어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 마귀를 물리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 안에 거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믿음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반면에 진리 안에 거하지 않으면 사단이 역사하게 되지요.
에베소서 6:11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열심히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혹 원수 마귀 사단이 유혹한다 할지라도 담대히 물리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5:18-19에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아 지극히 작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순종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인류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지 못하니 사단이 생각을 통해 욕심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러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예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곧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와는 그 실과를 따 먹고 자신과 함께한 아담에게도 주어 그도 먹게 하였지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지 못하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지요. 따라서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게 되었을까요? 생령으로서 영과 혼, 육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주인이 되는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고 혼과 육도 원수 마귀 사단의 지배하에 고통을 받게 되었지요. 또한 만물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니 남자는 종신토록 얼굴에 땀이 흘러야 비로소 그 소산을 먹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잉태의 고통이 크게 더해졌을 뿐 아니라 수고하고 자식을 낳으며 남편을 사모하며 다스림을 받아야 했지요. 사람을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한 간교한 뱀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며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뱀을 살펴보면 흙을 먹고 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흙을 먹고 살게 하셨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일까요? 창세기 3:19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아담에게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흙은 흙으로 창조된 우리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종신토록 흙을 먹으라고 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뱀 곧 원수 마귀 사단에게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먹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함으로 시험 환난이 찾아오며, 갖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누가복음 4:5-7에도 아담의 불순종으로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모든 권세가 원수 마귀에게 넘겨진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아 죄를 짓도록 하여 멸망의 길을 가게 하며,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사람들도 미혹하여 범죄케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12을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지으니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사람의 주인된 영이 죽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원수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또한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의 후손인 인류도 죄의 종이 되어 영원히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로마서 5:19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영생에 이르는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인데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2008-01-18
제3과사람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창 1:27, 마 3:12
읽을말씀 : 창 1:27, 마 3:12 | 외울말씀 : 마 3:12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이유와 심판 때에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는 이유를 알아보고 참된 믿음을 소유한 알곡 성도가 되어 영생과 천국을 얻게 한다.
1.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적인 일을 말씀하실 때 항상 비유를 들어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비유의 말씀이 나오는데 그 중에는 씨 뿌리는 비유, 추수에 대한 비유, 포도원의 비유 등이 있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신다는 뜻이요, 추수 때가 되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을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 땅에서 경작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로서(출애굽기 3:14),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요한계시록 22:13). 또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지니고 계신 분입니다. 신성이 있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셔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인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동시에 인성을 지니고 계시므로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시고 함께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순종하는 로봇과 같은 천사들보다 감정과 이성을 가지고 자유 의지에 의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참자녀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는 로봇이 아무리 많은 일을 담당하여 사람에게 유익을 주며 사랑을 받는다 할지라도 자신을 닮은 친자녀가 더 사랑스러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자유 의지를 가진 사람을 창조하시고 경작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아 양육하면서 훌륭하게 장성하면 큰 기쁨이 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많은 수고를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사람의 영이 죽게 되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게 될 뿐 아니라 사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셨습니다. 그 중에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참자녀들도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사람을 경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는 이유
마태복음 3:12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말씀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을 것을 의미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경작하여 열매를 거둔 후에는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 사람을 경작하시되 때가 이르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자녀는 구원받아 영생에 이르도록 천국에 들이시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멸망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왜 사랑의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 누구는 멸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사람 편에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이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뿐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알곡과 쭉정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알곡이 되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진리와 위배되는 악을 좇는 사람은 쭉정이가 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추수할 때 쓸모없는 쭉정이는 모아 불에 태우거나 거름 등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아무 쓸모없는 쭉정이를 불에 태우실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며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거룩하셔서 쭉정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들여 놓아 천국이 오염되고 더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알곡은 천국으로 인도 받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시고, 진리의 말씀 안에 살지 아니하고 세상과 타협한 쭉정이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도록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지십니다.
3. 인간 경작의 역사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셔서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며 에덴동산을 지키게 하셨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후 이 땅에서 사람들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아담을 통해 이 땅에 씨를 뿌리시고 인간 경작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농부가 씨를 뿌려 경작을 할 때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경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불순종한 아담 이 후 계속하여 경작하고 계십니다. 아담에게 씨를 주시고 아담을 통해 자손을 퍼트리시며 계속 심고 거두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불순종한 아담을 통해 멸망의 길을 가던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알곡이 되는 것이요, 마음 문을 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함으로 죄인 그대로 있거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며 불순종을 거듭하는 사람들은 멸망의 길을 가는 쭉정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 경작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고 죄인이 되어 영이 죽어 버린 때부터 죄인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나 아담이 불순종하기 이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살았던 오랜 세월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 때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때로서 아직 하나님의 참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이 시작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이나 지질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는 인류의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가 겨우 수천 년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성경은 잘못되었다’고 오해하기도 하지요. 아담이 불순종하기 이전 오랜 세월 동안 에덴동산에서 살며 생육하고 번성했던 인류 역사가 있었고, 그 이 후 타락과 함께 사람이 죽음을 맛보는 역사가 있었음을 깨닫는다면 그들도 창조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나타난 화석 중 아담의 범죄 이 후 지금까지의 기간, 즉 약 6천 년이 넘는 우리 사람의 화석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또 그렇게 배우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는 성경 66권 말씀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는 것이요, 진리의 말씀 안에 살아가게 됩니다. 새해를 맞아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오직 그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구원과 응답은 물론,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이유와 심판 때에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는 이유를 알아보고 참된 믿음을 소유한 알곡 성도가 되어 영생과 천국을 얻게 한다.
1.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적인 일을 말씀하실 때 항상 비유를 들어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비유의 말씀이 나오는데 그 중에는 씨 뿌리는 비유, 추수에 대한 비유, 포도원의 비유 등이 있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신다는 뜻이요, 추수 때가 되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을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 땅에서 경작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로서(출애굽기 3:14),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요한계시록 22:13). 또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지니고 계신 분입니다. 신성이 있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셔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인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동시에 인성을 지니고 계시므로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시고 함께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순종하는 로봇과 같은 천사들보다 감정과 이성을 가지고 자유 의지에 의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참자녀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는 로봇이 아무리 많은 일을 담당하여 사람에게 유익을 주며 사랑을 받는다 할지라도 자신을 닮은 친자녀가 더 사랑스러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자유 의지를 가진 사람을 창조하시고 경작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아 양육하면서 훌륭하게 장성하면 큰 기쁨이 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많은 수고를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사람의 영이 죽게 되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게 될 뿐 아니라 사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셨습니다. 그 중에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참자녀들도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사람을 경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는 이유
마태복음 3:12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말씀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을 것을 의미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경작하여 열매를 거둔 후에는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 사람을 경작하시되 때가 이르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자녀는 구원받아 영생에 이르도록 천국에 들이시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멸망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왜 사랑의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 누구는 멸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사람 편에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이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뿐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알곡과 쭉정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알곡이 되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진리와 위배되는 악을 좇는 사람은 쭉정이가 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추수할 때 쓸모없는 쭉정이는 모아 불에 태우거나 거름 등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아무 쓸모없는 쭉정이를 불에 태우실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며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거룩하셔서 쭉정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들여 놓아 천국이 오염되고 더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알곡은 천국으로 인도 받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시고, 진리의 말씀 안에 살지 아니하고 세상과 타협한 쭉정이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도록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지십니다.
3. 인간 경작의 역사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셔서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며 에덴동산을 지키게 하셨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후 이 땅에서 사람들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아담을 통해 이 땅에 씨를 뿌리시고 인간 경작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농부가 씨를 뿌려 경작을 할 때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경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불순종한 아담 이 후 계속하여 경작하고 계십니다. 아담에게 씨를 주시고 아담을 통해 자손을 퍼트리시며 계속 심고 거두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불순종한 아담을 통해 멸망의 길을 가던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알곡이 되는 것이요, 마음 문을 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함으로 죄인 그대로 있거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며 불순종을 거듭하는 사람들은 멸망의 길을 가는 쭉정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 경작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고 죄인이 되어 영이 죽어 버린 때부터 죄인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나 아담이 불순종하기 이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살았던 오랜 세월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 때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때로서 아직 하나님의 참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이 시작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이나 지질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는 인류의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가 겨우 수천 년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성경은 잘못되었다’고 오해하기도 하지요. 아담이 불순종하기 이전 오랜 세월 동안 에덴동산에서 살며 생육하고 번성했던 인류 역사가 있었고, 그 이 후 타락과 함께 사람이 죽음을 맛보는 역사가 있었음을 깨닫는다면 그들도 창조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나타난 화석 중 아담의 범죄 이 후 지금까지의 기간, 즉 약 6천 년이 넘는 우리 사람의 화석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또 그렇게 배우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는 성경 66권 말씀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는 것이요, 진리의 말씀 안에 살아가게 됩니다. 새해를 맞아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오직 그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구원과 응답은 물론,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1-11
제2과사람을 창조하시고 가르치신 하나님
창 1:26-28
읽을말씀 : 창 1:26-28 | 외울말씀 : 창 1:27
교육목표 : 창조론과 진화론의 상반된 두 가지 이론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와 진화론의 허구성을 살펴봄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창조하시고 가르치셨는지에 대해 알게 한다.
1. 창조주이신 하나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진화론만을 배웠기 때문에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인 타당성을 분석해 보기도 전에 진화론을 믿고 창조론을 배격합니다. 성경 66권 중 첫 권인 창세기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창세기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시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주만물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이론으로서,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신본주의 사상입니다. 반면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자연 발생하여 하등에서 고등으로, 동종에서 이종으로 진전되어 사람도 원숭이와 같은 기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을 우연의 산물로 보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본주의 사상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들은 삶의 목적을 이 땅에 두고 살아가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인생을 최대한 즐기고자 무언가를 열심히 찾지만 참된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다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니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인생입니까.
진화론이 생겨난 후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이 맞는 것으로 믿어 왔지만, 오늘날은 진화론보다는 창조론이 더욱 과학적이라는 증거가 속속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진화론은 진화론자 자신에 의해서 부정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우연하게 발생되었다는 진화론이 확률적으로나, 열역학 2법칙, 지질학 등 과학적으로 볼 때 타당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화론자들이 최초의 인류로 주장했던 50만 년 전 자바인의 뼈는 독일 탐험대에 의해 원숭이의 뼈였음이 판명되었습니다. 20만 년 전에 살았다고 추측된 네안데르탈인도 비타민 D가 결핍된 곱사병 환자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이처럼 진화론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도 합당치 않고 과학적으로도 타당성이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진화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주장하고 있는 진화론자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로마서 1:25-28에는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에서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누군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거리에 늘어선 각종 빌딩들 역시 주인이 자기의 마음에 맞게 설계하고 건축업자에게 의뢰함으로 지어진 것이며 결코 저절로 지어졌거나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천지만물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하나님의 지혜로 설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 보면 하나님을 조물주라 하였고 하나님께서 모든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에도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하였지요.
로마서 11:36에는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말씀하고 있으며, 요한복음 1:3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성경뿐 아니라 우주만물 안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주만물을 돌아보면 동서남북이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철이 있으며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정확하고 질서 있게 운행되고 있으니 이것을 어찌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가 아닌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전 세계의 사람이나 짐승, 새, 바다의 고기가 한결 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은 것을 보아도 조물주 한 분에 의해 우주만물이 창조되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9-20을 보면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하나님을 몰라서 못 믿었습니다."라는 핑계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7-28에 기록된 대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창조하셨을까요?
창세기 2:7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름답게 만드셨는데, 그 안에 피가 돌고 호흡하며 소화할 수 있는 기관들을 만드셔서 모든 작용이 잘 이루어지도록 완벽한 상태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살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쉽게 이해하려면 형광등에 불이 들어와 빛을 발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됩니다. 즉 형광등에서 빛을 발하게 하려면 먼저는 제대로 조립된 형광등이 있어야 하고 형광등이 전원과 잘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형광등이 빛을 발하지 못하며 스위치를 올려 전류를 흐르게 해 주어야 불이 들어오고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살아 움직이는 생령이 된 것입니다.
피조물인 사람도 문명의 발달로 지혜와 지식이 높아지니 우주를 탐험하며 지능 있는 컴퓨터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시고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이니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조성해 놓으셨습니다. 즉 호흡할 수 있는 공기와 아름다운 산천초목과 다스릴 수 있는 모든 생물들을 예비해 놓으신 것이지요. 그 후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자 생령이 되어 곧 호흡할 수 있었으며 살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며 섭리입니까.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시고 생령이 되게 하셨음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3. 사람을 가르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시고 그곳을 지키며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막 태어난 어린 아이가 처음에는 생리작용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환경조건을 통하여 부모, 형제, 교사 등을 통하여 여러 가지 교육을 받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천지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과 진리의 말씀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16-17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이런 것은 먹어도 되지만 저런 것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지 못한 채 살다가 간교한 뱀의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자상하신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죄의 삯인 사망이 임하여 사람에게 있어 주인의 역할을 하는 영이 죽게 되었고, 결국 영원히 살 수 없는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사람들의 이러한 불순종을 미리 아셨지만 사랑이 많으시기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며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구원의 섭리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창조론과 진화론의 상반된 두 가지 이론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와 진화론의 허구성을 살펴봄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창조하시고 가르치셨는지에 대해 알게 한다.
1. 창조주이신 하나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진화론만을 배웠기 때문에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인 타당성을 분석해 보기도 전에 진화론을 믿고 창조론을 배격합니다. 성경 66권 중 첫 권인 창세기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창세기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시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주만물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이론으로서,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신본주의 사상입니다. 반면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자연 발생하여 하등에서 고등으로, 동종에서 이종으로 진전되어 사람도 원숭이와 같은 기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을 우연의 산물로 보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본주의 사상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들은 삶의 목적을 이 땅에 두고 살아가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인생을 최대한 즐기고자 무언가를 열심히 찾지만 참된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다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니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인생입니까.
진화론이 생겨난 후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이 맞는 것으로 믿어 왔지만, 오늘날은 진화론보다는 창조론이 더욱 과학적이라는 증거가 속속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진화론은 진화론자 자신에 의해서 부정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우연하게 발생되었다는 진화론이 확률적으로나, 열역학 2법칙, 지질학 등 과학적으로 볼 때 타당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화론자들이 최초의 인류로 주장했던 50만 년 전 자바인의 뼈는 독일 탐험대에 의해 원숭이의 뼈였음이 판명되었습니다. 20만 년 전에 살았다고 추측된 네안데르탈인도 비타민 D가 결핍된 곱사병 환자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이처럼 진화론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도 합당치 않고 과학적으로도 타당성이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진화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주장하고 있는 진화론자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로마서 1:25-28에는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에서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누군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거리에 늘어선 각종 빌딩들 역시 주인이 자기의 마음에 맞게 설계하고 건축업자에게 의뢰함으로 지어진 것이며 결코 저절로 지어졌거나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천지만물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하나님의 지혜로 설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 보면 하나님을 조물주라 하였고 하나님께서 모든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에도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하였지요.
로마서 11:36에는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말씀하고 있으며, 요한복음 1:3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성경뿐 아니라 우주만물 안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주만물을 돌아보면 동서남북이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철이 있으며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정확하고 질서 있게 운행되고 있으니 이것을 어찌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가 아닌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전 세계의 사람이나 짐승, 새, 바다의 고기가 한결 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은 것을 보아도 조물주 한 분에 의해 우주만물이 창조되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9-20을 보면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하나님을 몰라서 못 믿었습니다."라는 핑계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7-28에 기록된 대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창조하셨을까요?
창세기 2:7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름답게 만드셨는데, 그 안에 피가 돌고 호흡하며 소화할 수 있는 기관들을 만드셔서 모든 작용이 잘 이루어지도록 완벽한 상태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살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쉽게 이해하려면 형광등에 불이 들어와 빛을 발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됩니다. 즉 형광등에서 빛을 발하게 하려면 먼저는 제대로 조립된 형광등이 있어야 하고 형광등이 전원과 잘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형광등이 빛을 발하지 못하며 스위치를 올려 전류를 흐르게 해 주어야 불이 들어오고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살아 움직이는 생령이 된 것입니다.
피조물인 사람도 문명의 발달로 지혜와 지식이 높아지니 우주를 탐험하며 지능 있는 컴퓨터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시고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이니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조성해 놓으셨습니다. 즉 호흡할 수 있는 공기와 아름다운 산천초목과 다스릴 수 있는 모든 생물들을 예비해 놓으신 것이지요. 그 후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자 생령이 되어 곧 호흡할 수 있었으며 살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며 섭리입니까.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시고 생령이 되게 하셨음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3. 사람을 가르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시고 그곳을 지키며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막 태어난 어린 아이가 처음에는 생리작용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환경조건을 통하여 부모, 형제, 교사 등을 통하여 여러 가지 교육을 받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천지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과 진리의 말씀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16-17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이런 것은 먹어도 되지만 저런 것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지 못한 채 살다가 간교한 뱀의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자상하신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죄의 삯인 사망이 임하여 사람에게 있어 주인의 역할을 하는 영이 죽게 되었고, 결국 영원히 살 수 없는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사람들의 이러한 불순종을 미리 아셨지만 사랑이 많으시기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며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구원의 섭리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