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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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5
제7과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구원받는 길
고전 2:6-10
읽을말씀 : 고전 2:6-10 | 외울말씀 : 요 1:12
교육목표 :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한다.
1. 만세 전에 감추었던 비밀
선악과를 따 먹도록 사람을 유혹했던 간교한 뱀은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창 3:14). 또한 창세기 3:15에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하신 대로 원수 마귀는 여자의 후손 중에 자기를 상하게 할 사람이 태어날 것을 알고 그를 죽이고자 작정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원수 마귀는 구약 시대부터 악한 사람을 사주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괴롭히며 핍박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에는 간악한 헤롯 왕을 사주하여 베들레헴과 그 주변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였지요(마 2:16). 예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통해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게 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헤롯이 죽기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마 2:13-15). 그후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 살며 30세부터 공생애에 들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지요.
원수 마귀는 자기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을 모두 죽여서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계략을 꾸밉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양손, 양 발에 못 박히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원수 마귀는 철저하게 여자의 후손을 죽이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가 감춰 있지요. 고린도전서 2:7-8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세 전에 섭리하신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요?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영계의 법칙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있습니다(롬 6:23). 원수 마귀는 아무런 죄도 흠도 없는 예수님(히 7:26, 벧전 2:22-23)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렇게 원수 마귀는 영계의 법을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불순종함의 죄를 범하여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원수 마귀가 이러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았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서 5:18에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참 생명과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의 법에 따라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근족으로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지요. 원죄와 자범죄가 없었기에 힘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죄가 전혀 없는 예수님을 나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려면
요한복음 1:12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했는데 과연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가 주어질까요?
요한복음 4장에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과정과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사람들에게 전하니 많은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이 혼혈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상종하지도, 사마리아 땅을 밟지도 않았습니다. 혹 그 땅을 거쳐 가야 할 경우에는 멀리 돌아서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 사마리아 땅을 지나면서 잠시 우물가에 앉아 계시다가 마침 물을 길러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지역적인 특성상 이스라엘의 여행자들은 항상 물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질 리 없고 설령 물이 떨어졌어도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으니 잠깐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하신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영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사마리아 여인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이 소식을 동네 사람에게 전파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 참 생명과 영생을 얻고 천국을 소유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과 단순히 아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7:21에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합니다.
왜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두어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는지,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하셨는지 구원의 섭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요. 귤의 맛을 알려면 단순히 겉모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먹어 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다'라고 막연히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가' 하는 십자가의 섭리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깨달을 때 진정한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참자녀가 됨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한다.
1. 만세 전에 감추었던 비밀
선악과를 따 먹도록 사람을 유혹했던 간교한 뱀은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창 3:14). 또한 창세기 3:15에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하신 대로 원수 마귀는 여자의 후손 중에 자기를 상하게 할 사람이 태어날 것을 알고 그를 죽이고자 작정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원수 마귀는 구약 시대부터 악한 사람을 사주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괴롭히며 핍박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에는 간악한 헤롯 왕을 사주하여 베들레헴과 그 주변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였지요(마 2:16). 예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통해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게 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헤롯이 죽기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마 2:13-15). 그후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 살며 30세부터 공생애에 들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지요.
원수 마귀는 자기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을 모두 죽여서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계략을 꾸밉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양손, 양 발에 못 박히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원수 마귀는 철저하게 여자의 후손을 죽이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가 감춰 있지요. 고린도전서 2:7-8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세 전에 섭리하신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요?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영계의 법칙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있습니다(롬 6:23). 원수 마귀는 아무런 죄도 흠도 없는 예수님(히 7:26, 벧전 2:22-23)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렇게 원수 마귀는 영계의 법을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불순종함의 죄를 범하여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원수 마귀가 이러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았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서 5:18에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참 생명과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의 법에 따라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근족으로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지요. 원죄와 자범죄가 없었기에 힘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죄가 전혀 없는 예수님을 나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려면
요한복음 1:12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했는데 과연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가 주어질까요?
요한복음 4장에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과정과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사람들에게 전하니 많은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이 혼혈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상종하지도, 사마리아 땅을 밟지도 않았습니다. 혹 그 땅을 거쳐 가야 할 경우에는 멀리 돌아서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 사마리아 땅을 지나면서 잠시 우물가에 앉아 계시다가 마침 물을 길러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지역적인 특성상 이스라엘의 여행자들은 항상 물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질 리 없고 설령 물이 떨어졌어도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으니 잠깐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하신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영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사마리아 여인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이 소식을 동네 사람에게 전파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 참 생명과 영생을 얻고 천국을 소유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과 단순히 아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7:21에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합니다.
왜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두어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는지,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하셨는지 구원의 섭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요. 귤의 맛을 알려면 단순히 겉모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먹어 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다'라고 막연히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가' 하는 십자가의 섭리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깨달을 때 진정한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참자녀가 됨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2-07
제0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1. 신앙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陰曆)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게 있어서 일 년 중에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서양력을 사용하게 된 근래에 이르러서 양력 1월 1일로 음력 설을 대신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설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명절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이 말 안에는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설이 되면 우리 조상들은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다. 그런데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설날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해를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주 안에서 행복하게 보내면 되는 것이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 - - - - - - - - - - - - - 사도신경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인도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아 멘 -
찬 송 - - - - - - - - - - - - - - - - 460장-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 멘 -
성경봉독 - - - - - - - - - - - - - - - - 엡 5:20-21 - - - - - - - - - - - - - - - - 인도자
설 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찬 송 - - - - - - - - - - - - - - - - - 305장 - - - - - - - - - - - - - - - - - 다같이
주기도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같이
3. 설교 예문
제 목: 하나님께 감사하라 (본문: 에베소서 5:20-21)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본문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 먼저 불꽃 같은 눈동자로 자녀된 우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설 명절을 맞이하여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약속된 대로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아가게 될 천국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서 우리는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목자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 가시는 분이 바로 목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이 계신다 해도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해야 만나고 어떻게 그분의 자녀가 되며 어떻게 해야 사랑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그 길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밝히 제시해 주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친히 본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분이 목자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와 함께했던 조카 롯이 지킴받고 축복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목자의 양 떼로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살아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양 떼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목자가 계시기에 양 떼가 지난 한 해도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목자를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신 말씀대로,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위해 주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이 생길 수 있지만,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신 주님을 경외함으로 우리 가족 모두도 서로 간에 섬기며 복종해 간다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화목하고 우애하며 자녀를 주의 교양으로 양육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었을 때, 우리 가정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목자의 영의 공간 안에 거하는 가정이 되어 범사에 형통하며 축복받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올 한 해도 이처럼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가정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더욱 온전한 신앙생활을 통해 천국 새예루살렘을 침노해 들어가는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1. 신앙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陰曆)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게 있어서 일 년 중에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서양력을 사용하게 된 근래에 이르러서 양력 1월 1일로 음력 설을 대신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설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명절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이 말 안에는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설이 되면 우리 조상들은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다. 그런데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설날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해를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주 안에서 행복하게 보내면 되는 것이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 - - - - - - - - - - - - - 사도신경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인도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아 멘 -
찬 송 - - - - - - - - - - - - - - - - 460장-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 멘 -
성경봉독 - - - - - - - - - - - - - - - - 엡 5:20-21 - - - - - - - - - - - - - - - - 인도자
설 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찬 송 - - - - - - - - - - - - - - - - - 305장 - - - - - - - - - - - - - - - - - 다같이
주기도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같이
3. 설교 예문
제 목: 하나님께 감사하라 (본문: 에베소서 5:20-21)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본문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 먼저 불꽃 같은 눈동자로 자녀된 우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설 명절을 맞이하여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약속된 대로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아가게 될 천국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서 우리는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목자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 가시는 분이 바로 목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이 계신다 해도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해야 만나고 어떻게 그분의 자녀가 되며 어떻게 해야 사랑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그 길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밝히 제시해 주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친히 본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분이 목자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와 함께했던 조카 롯이 지킴받고 축복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목자의 양 떼로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살아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양 떼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목자가 계시기에 양 떼가 지난 한 해도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목자를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신 말씀대로,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위해 주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이 생길 수 있지만,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신 주님을 경외함으로 우리 가족 모두도 서로 간에 섬기며 복종해 간다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화목하고 우애하며 자녀를 주의 교양으로 양육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었을 때, 우리 가정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목자의 영의 공간 안에 거하는 가정이 되어 범사에 형통하며 축복받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올 한 해도 이처럼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가정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더욱 온전한 신앙생활을 통해 천국 새예루살렘을 침노해 들어가는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2-01
제5과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예수 그리스도
레 25:23-25
읽을말씀 : 레 25:23-25 | 외울말씀 : 고전 2:8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지 살펴보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 얻을 수 없는 이유를 알게 한다.
1. 만세 전에 감취었던 구원의 길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할 것과,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의 영이 죽어 멸망의 길로 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는데, 바로 '십자가의 도(道)'입니다. 만약 인간 구원의 길을 원수 마귀가 미리 알면 죄인된 인류를 구원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비밀한 가운데 감추어 두셨습니다.
고린도전서 2:7-8에 보면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지요. 아담의 불순종으로 원수 마귀의 자녀로 전락한 모든 인류를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회복시키려면 영계의 법칙을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인류를 구원시키고자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였습니다.
2. 토지 무르기 법칙
레위기 25:23-25에 보면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近族)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만일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무를 수 있으며 근족이 대신하여 무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토지 무르기 법칙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토지를 팔 때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팔고 사는가 하는 계약 과정을 기록하고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토지를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워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여 성전 창고에 보관하고, 다른 1부는 인봉하지 않다가 언제라도 볼 수 있게 성전 입구에 펼쳐 놓지요. 설령 토지를 팔았더라도 다시 살 수 있는 힘이 생겨 되돌려 받고자 하면 언제든지 계약서에 기록된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좇아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도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천하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게 되었지만(누가복음 4:6),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영영히 팔지는 못하며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아(로마서 10:13)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요한복음 1:12).
3.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과 예수 그리스도
레위기 25:23-25에 기록된 토지 무르기의 조건에 합당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고 사람의 근족이어야 하며, 무를 수 있는 힘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5:4을 보면 '불순종한 아담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넘겨주었지만 무를 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하나님께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계약을 인봉한 책의 일곱 인을 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사도 요한이 너무 슬퍼서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5절에는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말씀합니다. 다윗의 뿌리 곧 예수 그리스도가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5:12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했고, 로마서 5:19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멸망의 길을 가던 모든 인류가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될 수 있지요.
토지 무르기 법칙에 의하면 돈이 없어 토지를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영영히 팔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토지를 판 사람이 다시 달라고 하면 주어야 합니다. 만일 본인이 무를 힘이 없을 때에는 근족이 대신 물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무르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이어야 하므로 토지 무를 자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지 무르기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즉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토지 무르기 법칙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한 죄가 있으므로 아담의 핏줄을 타고난 인류는 모두 원죄가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으니,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 사람을 찾고자 하늘 위를 보니 천사만 있고 땅 위를 살펴보니 아담의 후예인 죄인들만 있고 음부에 있는 영혼들 중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요한계시록 5:1-3).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지 무르기 두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법으로는 다윗의 뿌리이지만, 남녀가 결혼하여 잉태된 것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오직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예가 아닙니다(마태복음 1:18-21).
셋째로, 토지 무를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빚을 갚아 주려고 해도 힘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토지 무르기를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의 힘이 강하여 토지를 주지 않는다면 받을 수 없으니 상대보다 강한 힘이 있어야 하지요. 이처럼 죄를 대속하려면 죄를 무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지 무르기 세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원죄가 없습니다.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33년 동안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셨으니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전혀 없었지요. (베드로전서 2:22-24, 히브리서 7:26).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온전한 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므로 토지 무를 힘이 있었고, 결국에는 원수 마귀가 방해하지 못하고 되돌려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위의 조건이 모두 성립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동생이 천만 원의 빚을 졌는데 수억 원을 가진 형이 있다 해도 빚을 대신 갚아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룻기 4:6을 보면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며 토지 무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무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다음 근족인 보아스가 대신 나오미의 토지를 물러 주게 되는데 이는 사랑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부로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희생적인 사랑이 없으셨다면 과연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시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시며 오직 선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피조물인 사람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피 흘려 죽음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에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것이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사도행전 4:12).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밝히 깨달아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권세를 회복함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서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지 살펴보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 얻을 수 없는 이유를 알게 한다.
1. 만세 전에 감취었던 구원의 길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할 것과,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의 영이 죽어 멸망의 길로 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는데, 바로 '십자가의 도(道)'입니다. 만약 인간 구원의 길을 원수 마귀가 미리 알면 죄인된 인류를 구원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비밀한 가운데 감추어 두셨습니다.
고린도전서 2:7-8에 보면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지요. 아담의 불순종으로 원수 마귀의 자녀로 전락한 모든 인류를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회복시키려면 영계의 법칙을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인류를 구원시키고자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였습니다.
2. 토지 무르기 법칙
레위기 25:23-25에 보면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近族)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만일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무를 수 있으며 근족이 대신하여 무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토지 무르기 법칙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토지를 팔 때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팔고 사는가 하는 계약 과정을 기록하고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토지를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워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여 성전 창고에 보관하고, 다른 1부는 인봉하지 않다가 언제라도 볼 수 있게 성전 입구에 펼쳐 놓지요. 설령 토지를 팔았더라도 다시 살 수 있는 힘이 생겨 되돌려 받고자 하면 언제든지 계약서에 기록된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좇아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도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천하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게 되었지만(누가복음 4:6),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영영히 팔지는 못하며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아(로마서 10:13)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요한복음 1:12).
3.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과 예수 그리스도
레위기 25:23-25에 기록된 토지 무르기의 조건에 합당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고 사람의 근족이어야 하며, 무를 수 있는 힘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5:4을 보면 '불순종한 아담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넘겨주었지만 무를 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하나님께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계약을 인봉한 책의 일곱 인을 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사도 요한이 너무 슬퍼서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5절에는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말씀합니다. 다윗의 뿌리 곧 예수 그리스도가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5:12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했고, 로마서 5:19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멸망의 길을 가던 모든 인류가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될 수 있지요.
토지 무르기 법칙에 의하면 돈이 없어 토지를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영영히 팔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토지를 판 사람이 다시 달라고 하면 주어야 합니다. 만일 본인이 무를 힘이 없을 때에는 근족이 대신 물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무르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이어야 하므로 토지 무를 자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지 무르기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즉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토지 무르기 법칙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한 죄가 있으므로 아담의 핏줄을 타고난 인류는 모두 원죄가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으니,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 사람을 찾고자 하늘 위를 보니 천사만 있고 땅 위를 살펴보니 아담의 후예인 죄인들만 있고 음부에 있는 영혼들 중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요한계시록 5:1-3).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지 무르기 두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법으로는 다윗의 뿌리이지만, 남녀가 결혼하여 잉태된 것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오직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예가 아닙니다(마태복음 1:18-21).
셋째로, 토지 무를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빚을 갚아 주려고 해도 힘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토지 무르기를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의 힘이 강하여 토지를 주지 않는다면 받을 수 없으니 상대보다 강한 힘이 있어야 하지요. 이처럼 죄를 대속하려면 죄를 무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지 무르기 세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원죄가 없습니다.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33년 동안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셨으니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전혀 없었지요. (베드로전서 2:22-24, 히브리서 7:26).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온전한 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므로 토지 무를 힘이 있었고, 결국에는 원수 마귀가 방해하지 못하고 되돌려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위의 조건이 모두 성립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동생이 천만 원의 빚을 졌는데 수억 원을 가진 형이 있다 해도 빚을 대신 갚아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룻기 4:6을 보면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며 토지 무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무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다음 근족인 보아스가 대신 나오미의 토지를 물러 주게 되는데 이는 사랑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부로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희생적인 사랑이 없으셨다면 과연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시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시며 오직 선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피조물인 사람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피 흘려 죽음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에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것이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사도행전 4:12).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밝히 깨달아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권세를 회복함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서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2008-01-25
제4과불순종으로 사망에 이른 사람들
창 3:1-7
읽을말씀 : 창 3:1-7 | 외울말씀 : 야 1:15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이 어떻게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고 죄의 결과는 사망임을 분명히 깨달아 믿음 위에 굳게 서서 구원에 이르는 사람이 되게 한다.
1.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받은 사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 과정이 창세기 2장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며 사람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되 질서를 세우셔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명하셨습니다(창세기 2:16-17). 또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시고 돕는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각종 들짐승과 새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진리와 선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영장으로 세운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알려 주시며 우주만물과 영계의 법칙에 대해서도 가르치셨습니다. 오직 선과 진리의 말씀만을 가르치셨으므로 아담은 영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오랜 세월을 평안히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축복하신 대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마음껏 자손을 펼치고 만물을 다스리며 살았던 것입니다(창세기 1:28).
2. 간교한 뱀의 유혹에 넘어가 불순종한 사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창조하여 축복하시며 지극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주권을 표시하는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을 뿐 마음껏 자녀된 권세와 자유를 누리며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자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이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원수 마귀는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사람을 유혹했지요. 그 당시 뱀은 매끈매끈하고 깨끗하며 길고 둥글게 생겨서 사람과 가까이 지냈고, 또한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며 사랑받을 뿐 아니라 들짐승 중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사람을 유혹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원수 마귀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것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범죄하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범죄하도록 원수 마귀가 유혹하는 것은 사람에게 범죄의 동기가 있기 때문이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면서 진리의 말씀으로 분별하여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뱀을 싫어하는 것은 뱀이 사람을 범죄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사람과 원수가 되었기에 징그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생각이 전혀 없다면 사실 뱀은 오히려 깨끗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지요.
그렇다면 간교한 뱀이 사람을 어떻게 유혹하였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된 것일까요? 뱀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악과만은 따 먹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고 교묘하게 물었던 것입니다. 이때 여자가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불확실하게 대답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요, 분명히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뱀은 더욱 적극적으로 여자를 유혹하며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확신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창세기 3:1-6).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 확신 가운데 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원수 마귀 사단은 간교하게 역사합니다. 예를 들어, "꼭 그렇게 모이기에 힘써야 하느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순종하여 행하던 것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의심을 주기 위해 반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9을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진리의 반석에 굳게 서 있어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 마귀를 물리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 안에 거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믿음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반면에 진리 안에 거하지 않으면 사단이 역사하게 되지요.
에베소서 6:11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열심히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혹 원수 마귀 사단이 유혹한다 할지라도 담대히 물리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5:18-19에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아 지극히 작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순종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인류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지 못하니 사단이 생각을 통해 욕심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러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예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곧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와는 그 실과를 따 먹고 자신과 함께한 아담에게도 주어 그도 먹게 하였지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지 못하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지요. 따라서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게 되었을까요? 생령으로서 영과 혼, 육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주인이 되는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고 혼과 육도 원수 마귀 사단의 지배하에 고통을 받게 되었지요. 또한 만물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니 남자는 종신토록 얼굴에 땀이 흘러야 비로소 그 소산을 먹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잉태의 고통이 크게 더해졌을 뿐 아니라 수고하고 자식을 낳으며 남편을 사모하며 다스림을 받아야 했지요. 사람을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한 간교한 뱀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며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뱀을 살펴보면 흙을 먹고 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흙을 먹고 살게 하셨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일까요? 창세기 3:19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아담에게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흙은 흙으로 창조된 우리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종신토록 흙을 먹으라고 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뱀 곧 원수 마귀 사단에게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먹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함으로 시험 환난이 찾아오며, 갖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누가복음 4:5-7에도 아담의 불순종으로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모든 권세가 원수 마귀에게 넘겨진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아 죄를 짓도록 하여 멸망의 길을 가게 하며,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사람들도 미혹하여 범죄케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12을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지으니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사람의 주인된 영이 죽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원수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또한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의 후손인 인류도 죄의 종이 되어 영원히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로마서 5:19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영생에 이르는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인데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이 어떻게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고 죄의 결과는 사망임을 분명히 깨달아 믿음 위에 굳게 서서 구원에 이르는 사람이 되게 한다.
1.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받은 사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 과정이 창세기 2장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며 사람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되 질서를 세우셔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명하셨습니다(창세기 2:16-17). 또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시고 돕는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각종 들짐승과 새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진리와 선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영장으로 세운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알려 주시며 우주만물과 영계의 법칙에 대해서도 가르치셨습니다. 오직 선과 진리의 말씀만을 가르치셨으므로 아담은 영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오랜 세월을 평안히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축복하신 대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마음껏 자손을 펼치고 만물을 다스리며 살았던 것입니다(창세기 1:28).
2. 간교한 뱀의 유혹에 넘어가 불순종한 사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창조하여 축복하시며 지극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주권을 표시하는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을 뿐 마음껏 자녀된 권세와 자유를 누리며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자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이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원수 마귀는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사람을 유혹했지요. 그 당시 뱀은 매끈매끈하고 깨끗하며 길고 둥글게 생겨서 사람과 가까이 지냈고, 또한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며 사랑받을 뿐 아니라 들짐승 중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사람을 유혹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원수 마귀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것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범죄하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범죄하도록 원수 마귀가 유혹하는 것은 사람에게 범죄의 동기가 있기 때문이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면서 진리의 말씀으로 분별하여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뱀을 싫어하는 것은 뱀이 사람을 범죄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사람과 원수가 되었기에 징그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생각이 전혀 없다면 사실 뱀은 오히려 깨끗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지요.
그렇다면 간교한 뱀이 사람을 어떻게 유혹하였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된 것일까요? 뱀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악과만은 따 먹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고 교묘하게 물었던 것입니다. 이때 여자가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불확실하게 대답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요, 분명히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뱀은 더욱 적극적으로 여자를 유혹하며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확신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창세기 3:1-6).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 확신 가운데 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원수 마귀 사단은 간교하게 역사합니다. 예를 들어, "꼭 그렇게 모이기에 힘써야 하느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순종하여 행하던 것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의심을 주기 위해 반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9을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진리의 반석에 굳게 서 있어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 마귀를 물리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 안에 거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믿음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반면에 진리 안에 거하지 않으면 사단이 역사하게 되지요.
에베소서 6:11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열심히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혹 원수 마귀 사단이 유혹한다 할지라도 담대히 물리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5:18-19에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아 지극히 작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순종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인류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지 못하니 사단이 생각을 통해 욕심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러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예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곧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와는 그 실과를 따 먹고 자신과 함께한 아담에게도 주어 그도 먹게 하였지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지 못하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지요. 따라서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게 되었을까요? 생령으로서 영과 혼, 육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주인이 되는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고 혼과 육도 원수 마귀 사단의 지배하에 고통을 받게 되었지요. 또한 만물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니 남자는 종신토록 얼굴에 땀이 흘러야 비로소 그 소산을 먹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잉태의 고통이 크게 더해졌을 뿐 아니라 수고하고 자식을 낳으며 남편을 사모하며 다스림을 받아야 했지요. 사람을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한 간교한 뱀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며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뱀을 살펴보면 흙을 먹고 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흙을 먹고 살게 하셨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일까요? 창세기 3:19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아담에게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흙은 흙으로 창조된 우리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종신토록 흙을 먹으라고 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뱀 곧 원수 마귀 사단에게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먹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함으로 시험 환난이 찾아오며, 갖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누가복음 4:5-7에도 아담의 불순종으로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모든 권세가 원수 마귀에게 넘겨진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아 죄를 짓도록 하여 멸망의 길을 가게 하며,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사람들도 미혹하여 범죄케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12을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지으니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사람의 주인된 영이 죽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원수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또한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의 후손인 인류도 죄의 종이 되어 영원히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로마서 5:19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영생에 이르는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인데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2008-01-18
제3과사람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창 1:27, 마 3:12
읽을말씀 : 창 1:27, 마 3:12 | 외울말씀 : 마 3:12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이유와 심판 때에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는 이유를 알아보고 참된 믿음을 소유한 알곡 성도가 되어 영생과 천국을 얻게 한다.
1.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적인 일을 말씀하실 때 항상 비유를 들어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비유의 말씀이 나오는데 그 중에는 씨 뿌리는 비유, 추수에 대한 비유, 포도원의 비유 등이 있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신다는 뜻이요, 추수 때가 되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을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 땅에서 경작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로서(출애굽기 3:14),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요한계시록 22:13). 또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지니고 계신 분입니다. 신성이 있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셔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인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동시에 인성을 지니고 계시므로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시고 함께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순종하는 로봇과 같은 천사들보다 감정과 이성을 가지고 자유 의지에 의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참자녀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는 로봇이 아무리 많은 일을 담당하여 사람에게 유익을 주며 사랑을 받는다 할지라도 자신을 닮은 친자녀가 더 사랑스러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자유 의지를 가진 사람을 창조하시고 경작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아 양육하면서 훌륭하게 장성하면 큰 기쁨이 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많은 수고를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사람의 영이 죽게 되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게 될 뿐 아니라 사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셨습니다. 그 중에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참자녀들도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사람을 경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는 이유
마태복음 3:12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말씀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을 것을 의미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경작하여 열매를 거둔 후에는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 사람을 경작하시되 때가 이르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자녀는 구원받아 영생에 이르도록 천국에 들이시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멸망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왜 사랑의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 누구는 멸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사람 편에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이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뿐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알곡과 쭉정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알곡이 되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진리와 위배되는 악을 좇는 사람은 쭉정이가 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추수할 때 쓸모없는 쭉정이는 모아 불에 태우거나 거름 등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아무 쓸모없는 쭉정이를 불에 태우실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며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거룩하셔서 쭉정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들여 놓아 천국이 오염되고 더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알곡은 천국으로 인도 받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시고, 진리의 말씀 안에 살지 아니하고 세상과 타협한 쭉정이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도록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지십니다.
3. 인간 경작의 역사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셔서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며 에덴동산을 지키게 하셨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후 이 땅에서 사람들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아담을 통해 이 땅에 씨를 뿌리시고 인간 경작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농부가 씨를 뿌려 경작을 할 때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경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불순종한 아담 이 후 계속하여 경작하고 계십니다. 아담에게 씨를 주시고 아담을 통해 자손을 퍼트리시며 계속 심고 거두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불순종한 아담을 통해 멸망의 길을 가던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알곡이 되는 것이요, 마음 문을 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함으로 죄인 그대로 있거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며 불순종을 거듭하는 사람들은 멸망의 길을 가는 쭉정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 경작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고 죄인이 되어 영이 죽어 버린 때부터 죄인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나 아담이 불순종하기 이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살았던 오랜 세월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 때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때로서 아직 하나님의 참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이 시작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이나 지질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는 인류의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가 겨우 수천 년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성경은 잘못되었다’고 오해하기도 하지요. 아담이 불순종하기 이전 오랜 세월 동안 에덴동산에서 살며 생육하고 번성했던 인류 역사가 있었고, 그 이 후 타락과 함께 사람이 죽음을 맛보는 역사가 있었음을 깨닫는다면 그들도 창조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나타난 화석 중 아담의 범죄 이 후 지금까지의 기간, 즉 약 6천 년이 넘는 우리 사람의 화석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또 그렇게 배우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는 성경 66권 말씀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는 것이요, 진리의 말씀 안에 살아가게 됩니다. 새해를 맞아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오직 그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구원과 응답은 물론,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이유와 심판 때에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는 이유를 알아보고 참된 믿음을 소유한 알곡 성도가 되어 영생과 천국을 얻게 한다.
1.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적인 일을 말씀하실 때 항상 비유를 들어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비유의 말씀이 나오는데 그 중에는 씨 뿌리는 비유, 추수에 대한 비유, 포도원의 비유 등이 있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신다는 뜻이요, 추수 때가 되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을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 땅에서 경작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로서(출애굽기 3:14),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요한계시록 22:13). 또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지니고 계신 분입니다. 신성이 있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셔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인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동시에 인성을 지니고 계시므로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시고 함께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순종하는 로봇과 같은 천사들보다 감정과 이성을 가지고 자유 의지에 의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참자녀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는 로봇이 아무리 많은 일을 담당하여 사람에게 유익을 주며 사랑을 받는다 할지라도 자신을 닮은 친자녀가 더 사랑스러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자유 의지를 가진 사람을 창조하시고 경작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아 양육하면서 훌륭하게 장성하면 큰 기쁨이 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많은 수고를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사람의 영이 죽게 되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게 될 뿐 아니라 사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셨습니다. 그 중에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참자녀들도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사람을 경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는 이유
마태복음 3:12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말씀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을 것을 의미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경작하여 열매를 거둔 후에는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 사람을 경작하시되 때가 이르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자녀는 구원받아 영생에 이르도록 천국에 들이시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멸망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왜 사랑의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 누구는 멸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사람 편에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이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뿐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알곡과 쭉정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알곡이 되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진리와 위배되는 악을 좇는 사람은 쭉정이가 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추수할 때 쓸모없는 쭉정이는 모아 불에 태우거나 거름 등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아무 쓸모없는 쭉정이를 불에 태우실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며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거룩하셔서 쭉정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들여 놓아 천국이 오염되고 더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놓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알곡은 천국으로 인도 받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시고, 진리의 말씀 안에 살지 아니하고 세상과 타협한 쭉정이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도록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지십니다.
3. 인간 경작의 역사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셔서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며 에덴동산을 지키게 하셨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후 이 땅에서 사람들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아담을 통해 이 땅에 씨를 뿌리시고 인간 경작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농부가 씨를 뿌려 경작을 할 때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경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불순종한 아담 이 후 계속하여 경작하고 계십니다. 아담에게 씨를 주시고 아담을 통해 자손을 퍼트리시며 계속 심고 거두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불순종한 아담을 통해 멸망의 길을 가던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알곡이 되는 것이요, 마음 문을 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함으로 죄인 그대로 있거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며 불순종을 거듭하는 사람들은 멸망의 길을 가는 쭉정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 경작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고 죄인이 되어 영이 죽어 버린 때부터 죄인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나 아담이 불순종하기 이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살았던 오랜 세월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 때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때로서 아직 하나님의 참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이 시작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이나 지질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는 인류의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가 겨우 수천 년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성경은 잘못되었다’고 오해하기도 하지요. 아담이 불순종하기 이전 오랜 세월 동안 에덴동산에서 살며 생육하고 번성했던 인류 역사가 있었고, 그 이 후 타락과 함께 사람이 죽음을 맛보는 역사가 있었음을 깨닫는다면 그들도 창조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나타난 화석 중 아담의 범죄 이 후 지금까지의 기간, 즉 약 6천 년이 넘는 우리 사람의 화석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또 그렇게 배우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는 성경 66권 말씀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는 것이요, 진리의 말씀 안에 살아가게 됩니다. 새해를 맞아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오직 그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구원과 응답은 물론,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1-11
제2과사람을 창조하시고 가르치신 하나님
창 1:26-28
읽을말씀 : 창 1:26-28 | 외울말씀 : 창 1:27
교육목표 : 창조론과 진화론의 상반된 두 가지 이론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와 진화론의 허구성을 살펴봄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창조하시고 가르치셨는지에 대해 알게 한다.
1. 창조주이신 하나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진화론만을 배웠기 때문에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인 타당성을 분석해 보기도 전에 진화론을 믿고 창조론을 배격합니다. 성경 66권 중 첫 권인 창세기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창세기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시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주만물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이론으로서,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신본주의 사상입니다. 반면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자연 발생하여 하등에서 고등으로, 동종에서 이종으로 진전되어 사람도 원숭이와 같은 기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을 우연의 산물로 보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본주의 사상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들은 삶의 목적을 이 땅에 두고 살아가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인생을 최대한 즐기고자 무언가를 열심히 찾지만 참된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다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니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인생입니까.
진화론이 생겨난 후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이 맞는 것으로 믿어 왔지만, 오늘날은 진화론보다는 창조론이 더욱 과학적이라는 증거가 속속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진화론은 진화론자 자신에 의해서 부정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우연하게 발생되었다는 진화론이 확률적으로나, 열역학 2법칙, 지질학 등 과학적으로 볼 때 타당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화론자들이 최초의 인류로 주장했던 50만 년 전 자바인의 뼈는 독일 탐험대에 의해 원숭이의 뼈였음이 판명되었습니다. 20만 년 전에 살았다고 추측된 네안데르탈인도 비타민 D가 결핍된 곱사병 환자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이처럼 진화론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도 합당치 않고 과학적으로도 타당성이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진화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주장하고 있는 진화론자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로마서 1:25-28에는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에서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누군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거리에 늘어선 각종 빌딩들 역시 주인이 자기의 마음에 맞게 설계하고 건축업자에게 의뢰함으로 지어진 것이며 결코 저절로 지어졌거나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천지만물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하나님의 지혜로 설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 보면 하나님을 조물주라 하였고 하나님께서 모든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에도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하였지요.
로마서 11:36에는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말씀하고 있으며, 요한복음 1:3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성경뿐 아니라 우주만물 안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주만물을 돌아보면 동서남북이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철이 있으며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정확하고 질서 있게 운행되고 있으니 이것을 어찌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가 아닌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전 세계의 사람이나 짐승, 새, 바다의 고기가 한결 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은 것을 보아도 조물주 한 분에 의해 우주만물이 창조되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9-20을 보면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하나님을 몰라서 못 믿었습니다."라는 핑계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7-28에 기록된 대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창조하셨을까요?
창세기 2:7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름답게 만드셨는데, 그 안에 피가 돌고 호흡하며 소화할 수 있는 기관들을 만드셔서 모든 작용이 잘 이루어지도록 완벽한 상태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살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쉽게 이해하려면 형광등에 불이 들어와 빛을 발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됩니다. 즉 형광등에서 빛을 발하게 하려면 먼저는 제대로 조립된 형광등이 있어야 하고 형광등이 전원과 잘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형광등이 빛을 발하지 못하며 스위치를 올려 전류를 흐르게 해 주어야 불이 들어오고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살아 움직이는 생령이 된 것입니다.
피조물인 사람도 문명의 발달로 지혜와 지식이 높아지니 우주를 탐험하며 지능 있는 컴퓨터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시고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이니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조성해 놓으셨습니다. 즉 호흡할 수 있는 공기와 아름다운 산천초목과 다스릴 수 있는 모든 생물들을 예비해 놓으신 것이지요. 그 후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자 생령이 되어 곧 호흡할 수 있었으며 살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며 섭리입니까.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시고 생령이 되게 하셨음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3. 사람을 가르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시고 그곳을 지키며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막 태어난 어린 아이가 처음에는 생리작용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환경조건을 통하여 부모, 형제, 교사 등을 통하여 여러 가지 교육을 받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천지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과 진리의 말씀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16-17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이런 것은 먹어도 되지만 저런 것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지 못한 채 살다가 간교한 뱀의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자상하신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죄의 삯인 사망이 임하여 사람에게 있어 주인의 역할을 하는 영이 죽게 되었고, 결국 영원히 살 수 없는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사람들의 이러한 불순종을 미리 아셨지만 사랑이 많으시기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며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구원의 섭리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창조론과 진화론의 상반된 두 가지 이론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와 진화론의 허구성을 살펴봄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창조하시고 가르치셨는지에 대해 알게 한다.
1. 창조주이신 하나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진화론만을 배웠기 때문에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인 타당성을 분석해 보기도 전에 진화론을 믿고 창조론을 배격합니다. 성경 66권 중 첫 권인 창세기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창세기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시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주만물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이론으로서,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신본주의 사상입니다. 반면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자연 발생하여 하등에서 고등으로, 동종에서 이종으로 진전되어 사람도 원숭이와 같은 기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을 우연의 산물로 보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본주의 사상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들은 삶의 목적을 이 땅에 두고 살아가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인생을 최대한 즐기고자 무언가를 열심히 찾지만 참된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다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니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인생입니까.
진화론이 생겨난 후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이 맞는 것으로 믿어 왔지만, 오늘날은 진화론보다는 창조론이 더욱 과학적이라는 증거가 속속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진화론은 진화론자 자신에 의해서 부정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우연하게 발생되었다는 진화론이 확률적으로나, 열역학 2법칙, 지질학 등 과학적으로 볼 때 타당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화론자들이 최초의 인류로 주장했던 50만 년 전 자바인의 뼈는 독일 탐험대에 의해 원숭이의 뼈였음이 판명되었습니다. 20만 년 전에 살았다고 추측된 네안데르탈인도 비타민 D가 결핍된 곱사병 환자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이처럼 진화론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도 합당치 않고 과학적으로도 타당성이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진화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주장하고 있는 진화론자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로마서 1:25-28에는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에서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누군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거리에 늘어선 각종 빌딩들 역시 주인이 자기의 마음에 맞게 설계하고 건축업자에게 의뢰함으로 지어진 것이며 결코 저절로 지어졌거나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천지만물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하나님의 지혜로 설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 보면 하나님을 조물주라 하였고 하나님께서 모든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에도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하였지요.
로마서 11:36에는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말씀하고 있으며, 요한복음 1:3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성경뿐 아니라 우주만물 안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주만물을 돌아보면 동서남북이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철이 있으며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정확하고 질서 있게 운행되고 있으니 이것을 어찌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가 아닌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전 세계의 사람이나 짐승, 새, 바다의 고기가 한결 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은 것을 보아도 조물주 한 분에 의해 우주만물이 창조되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9-20을 보면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하나님을 몰라서 못 믿었습니다."라는 핑계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7-28에 기록된 대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창조하셨을까요?
창세기 2:7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름답게 만드셨는데, 그 안에 피가 돌고 호흡하며 소화할 수 있는 기관들을 만드셔서 모든 작용이 잘 이루어지도록 완벽한 상태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살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쉽게 이해하려면 형광등에 불이 들어와 빛을 발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됩니다. 즉 형광등에서 빛을 발하게 하려면 먼저는 제대로 조립된 형광등이 있어야 하고 형광등이 전원과 잘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형광등이 빛을 발하지 못하며 스위치를 올려 전류를 흐르게 해 주어야 불이 들어오고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살아 움직이는 생령이 된 것입니다.
피조물인 사람도 문명의 발달로 지혜와 지식이 높아지니 우주를 탐험하며 지능 있는 컴퓨터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시고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이니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조성해 놓으셨습니다. 즉 호흡할 수 있는 공기와 아름다운 산천초목과 다스릴 수 있는 모든 생물들을 예비해 놓으신 것이지요. 그 후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자 생령이 되어 곧 호흡할 수 있었으며 살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며 섭리입니까.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시고 생령이 되게 하셨음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3. 사람을 가르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시고 그곳을 지키며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막 태어난 어린 아이가 처음에는 생리작용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환경조건을 통하여 부모, 형제, 교사 등을 통하여 여러 가지 교육을 받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천지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과 진리의 말씀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16-17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이런 것은 먹어도 되지만 저런 것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지 못한 채 살다가 간교한 뱀의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자상하신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죄의 삯인 사망이 임하여 사람에게 있어 주인의 역할을 하는 영이 죽게 되었고, 결국 영원히 살 수 없는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사람들의 이러한 불순종을 미리 아셨지만 사랑이 많으시기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며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구원의 섭리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2008-01-04
제1과마음을 새롭게 하자
롬 12:1-2
읽을말씀 : 롬 12:1-2 | 외울말씀 : 롬 12:2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주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사람들은 새 옷이나 새 집을 갖게 되면 꿈에 부풀어 마음이 새로워지고 신선한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일시적인 것으로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퇴색하기 마련입니다. 새해를 맞아 한 해 동안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지 않으면 여전히 옛것에 속한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먹고 마시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왔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좇아 거짓말하고 미워하며 쾌락을 좇아 살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를 받거나 어떤 계기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 즉시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므로 열심히 변화시켜야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 7:21, 고전 6:9).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밭으로 비유해 놓으셨습니다. 길가밭은 단단하게 굳어 있는 밭으로서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밭을 말합니다. 돌밭은 싹이 나더라도 돌멩이 때문에 자라지 못합니다. 이처럼 지식적으로 말씀을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는 않으니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이 오면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시떨기밭은 가시떨기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서 말씀을 믿고 행한다고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반면 옥토밭은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밭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으로 순종하는 마음밭입니다. 옥토밭으로 마음밭을 개간하려면 무엇보다 변화되고자 하는 노력 위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농부가 묵은 밭을 옥토로 바꾸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돌을 골라내고 거름을 주며 잡초를 뽑고 벌레도 잡아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밭을 일구는 농부와 같이 마음밭을 개간하는 이 작업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된 자녀가 되기 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 안에서 묵은 밭을 개간해 가면 예전의 강퍅한 마음이 변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더러운 마음이 깨끗한 마음으로, 비진리의 마음이 진리의 마음으로,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설령 누가 섭섭한 말을 해도 서운해하지 않고,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대어 줍니다. 이러한 과정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야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았다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선하신 뜻
마음이 새로워지기 전에는 아무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것'이라고 알려 주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새로워지면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되므로 옥토로 변화된 만큼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게 됩니다. 마가복음 10:17-18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며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예수님을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시지 않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고 되물으십니다. 사람 중에는 선한 이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선'이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서 믿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이 다르며,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무리 선한 것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선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선한 사람이라 자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니 자신이 악하고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음을 알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곧 선을 좇아 살아갈 때 많은 열매를 거두며 풍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히브리서 11:6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고, 시편 37:4에는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중풍병자인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간 백부장의 믿음을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는 백부장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가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며 크게 칭찬하시고 즉시 하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외에도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어졌습니다(히 11장). 예수님의 제자들도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갔으며,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진리를 좇아 살면서 큰 믿음을 내보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제가 파키스탄에서 연합성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파키스탄은 회교국가로서 기독교 성회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준비했는데, 성회 당일 국민 대다수가 회교도이기 때문에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집회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성회 장소의 문은 굳게 닫혔고, 참석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경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저와 선교팀은 성회가 무사히 열릴 것을 믿었고 저는 "낮 12시가 되면 운동장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나라 권세자의 마음을 주관하여 굳게 닫힌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함이 없으면 온전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약 2:26).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려면 야구에 관한 공부뿐만 아니라, 실제로 공을 던져보고 쳐 보면서 열심히 연습해야 합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행함이 동반되어야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5:48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해야지' 마음먹었으면 변개함 없이 기도하고, '기뻐해야겠다.' 했으면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변함없이 기뻐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시며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창 22:17-18).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번성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후손으로 오셔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천하 만민이 복을 받아 영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많은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였기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으며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맞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새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며, 온전한 행함으로 나타내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주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사람들은 새 옷이나 새 집을 갖게 되면 꿈에 부풀어 마음이 새로워지고 신선한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일시적인 것으로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퇴색하기 마련입니다. 새해를 맞아 한 해 동안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지 않으면 여전히 옛것에 속한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먹고 마시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왔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좇아 거짓말하고 미워하며 쾌락을 좇아 살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를 받거나 어떤 계기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 즉시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므로 열심히 변화시켜야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 7:21, 고전 6:9).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밭으로 비유해 놓으셨습니다. 길가밭은 단단하게 굳어 있는 밭으로서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밭을 말합니다. 돌밭은 싹이 나더라도 돌멩이 때문에 자라지 못합니다. 이처럼 지식적으로 말씀을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는 않으니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이 오면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시떨기밭은 가시떨기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서 말씀을 믿고 행한다고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반면 옥토밭은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밭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으로 순종하는 마음밭입니다. 옥토밭으로 마음밭을 개간하려면 무엇보다 변화되고자 하는 노력 위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농부가 묵은 밭을 옥토로 바꾸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돌을 골라내고 거름을 주며 잡초를 뽑고 벌레도 잡아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밭을 일구는 농부와 같이 마음밭을 개간하는 이 작업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된 자녀가 되기 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 안에서 묵은 밭을 개간해 가면 예전의 강퍅한 마음이 변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더러운 마음이 깨끗한 마음으로, 비진리의 마음이 진리의 마음으로,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설령 누가 섭섭한 말을 해도 서운해하지 않고,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대어 줍니다. 이러한 과정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야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았다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선하신 뜻
마음이 새로워지기 전에는 아무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것'이라고 알려 주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새로워지면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되므로 옥토로 변화된 만큼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게 됩니다. 마가복음 10:17-18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며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예수님을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시지 않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고 되물으십니다. 사람 중에는 선한 이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선'이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서 믿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이 다르며,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무리 선한 것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선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선한 사람이라 자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니 자신이 악하고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음을 알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곧 선을 좇아 살아갈 때 많은 열매를 거두며 풍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히브리서 11:6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고, 시편 37:4에는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중풍병자인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간 백부장의 믿음을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는 백부장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가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며 크게 칭찬하시고 즉시 하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외에도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어졌습니다(히 11장). 예수님의 제자들도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갔으며,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진리를 좇아 살면서 큰 믿음을 내보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제가 파키스탄에서 연합성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파키스탄은 회교국가로서 기독교 성회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준비했는데, 성회 당일 국민 대다수가 회교도이기 때문에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집회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성회 장소의 문은 굳게 닫혔고, 참석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경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저와 선교팀은 성회가 무사히 열릴 것을 믿었고 저는 "낮 12시가 되면 운동장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나라 권세자의 마음을 주관하여 굳게 닫힌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함이 없으면 온전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약 2:26).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려면 야구에 관한 공부뿐만 아니라, 실제로 공을 던져보고 쳐 보면서 열심히 연습해야 합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행함이 동반되어야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5:48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해야지' 마음먹었으면 변개함 없이 기도하고, '기뻐해야겠다.' 했으면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변함없이 기뻐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시며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창 22:17-18).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번성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후손으로 오셔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천하 만민이 복을 받아 영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많은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였기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으며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맞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새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며, 온전한 행함으로 나타내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12-28
제51과다시 오실 주님
마 24:32-35
읽을말씀 : 마 24:32-35 | 외울말씀 : 계 22:20
교육목표 : 성경을 통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믿게 하고 재림에 대한 성경의 예언과 오늘날 그 징조들을 통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한다.
1. 성취될 재림의 사건
2천여 년 전,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는 하늘로 올라 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게 되는데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 1:11).
성경의 예언들은 기록된 대로 다 이루어져 왔으며 오직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 앞으로 이루어질 몇 가지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부활을 믿으며 재림과 천국을 믿기 때문에 천국의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19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기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희생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성도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을 사모하기는커녕 재림에 대해 증거하면 두려워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증거하는 사람들을 이단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깨달아 깨어 있게 됩니다. 만약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여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멋있고 웅장한 영광과 승리의 모습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에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다가 죽은 사람은 주님의 공중 재림 때 부활할 것이기에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잠자는 자"라고 부릅니다(고전 15:20). 이러한 자들의 영혼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함께 데리고 오시며, 이때 무덤에 장사되었던 육은 썩지 아니할 육으로 부활하여 공중으로 끌어 올려지고 주님과 함께 온 영혼과 결합되어 완전한 부활체를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살전 4:14-16).
2)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은 자의 휴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부활되면, 다음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 사람이 홀연히 변화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고전 15:51-52, 살전 4:17).
우리는 자연 속에서도 부활과 휴거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던 굼벵이나 구더기가 매미나 파리로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시니 그것이 안개가 되어 비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서도(욥 36:27) 상상해 볼 수 있지요. 이렇듯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부활하는 것과 휴거 곧 공중으로 들림 받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아모스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셨고, 베드로후서 3:8에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인류의 오랜 역사 가운데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재림은 더욱 임박한 사실이며 하나님 편에서도 재림은 속히 이루어질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에 대해 곳곳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37에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고, 요한계시록 3:11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림의 때가 가까움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전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시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 행하는 알곡 신자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지만, 세상과 짝하며 사는 쭉정이 신자는 재림이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고 믿는 자는 신부라고 하였는데 어찌 신랑이 오기를 사모하지 않는 신부가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깨어 있는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기도하고 있기에 때가 가까움을 깨닫고 열심히 신부단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 24:36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말씀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며 미혹게 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지만 어두움에 있으면 도적같이 임한다(살전 5:2-4)는 사실을 깨달아 항상 깨어 근신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세상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인이었던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도록 명하신 것에 순종하였고, 결국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통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무화과나무에 내린 저주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루어졌고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1:18-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말씀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없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그 피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말았습니다(마 27:25).
그리하여 AD 70년 경,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이스라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요 19:23). 그 당시 로마가 성전 훼파의 기념으로 남겨 둔 서쪽 성벽의 일부는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눈물로 기도하는 장소인 통곡의 벽으로 남아 역사적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민족은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율법을 지켜 행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학살을 당하는 등 참으로 처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으니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1948년 5월 14일,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주신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부상시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사 49:8, 겔 38:8).
이처럼 완전히 멸망해 버렸던 이스라엘이 약 190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세워졌다는 것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 것이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놀라운 사건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하여지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이 독립하여 선진국이 되었으니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질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이 세대란 이스라엘이 독립해 살고 있는 현 세대를 지칭하거나 이스라엘의 희년으로 모든 것이 회복되어 자유를 누리는 기쁘고 즐거운 해 등 몇 가지 해석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나타나는 많은 징조들을 통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이르렀음을 깨달아 늘 깨어 기도하며 신부단장을 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성경을 통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믿게 하고 재림에 대한 성경의 예언과 오늘날 그 징조들을 통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한다.
1. 성취될 재림의 사건
2천여 년 전,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는 하늘로 올라 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게 되는데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 1:11).
성경의 예언들은 기록된 대로 다 이루어져 왔으며 오직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 앞으로 이루어질 몇 가지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부활을 믿으며 재림과 천국을 믿기 때문에 천국의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19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기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희생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성도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을 사모하기는커녕 재림에 대해 증거하면 두려워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증거하는 사람들을 이단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깨달아 깨어 있게 됩니다. 만약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여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멋있고 웅장한 영광과 승리의 모습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에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다가 죽은 사람은 주님의 공중 재림 때 부활할 것이기에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잠자는 자"라고 부릅니다(고전 15:20). 이러한 자들의 영혼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함께 데리고 오시며, 이때 무덤에 장사되었던 육은 썩지 아니할 육으로 부활하여 공중으로 끌어 올려지고 주님과 함께 온 영혼과 결합되어 완전한 부활체를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살전 4:14-16).
2)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은 자의 휴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부활되면, 다음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 사람이 홀연히 변화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고전 15:51-52, 살전 4:17).
우리는 자연 속에서도 부활과 휴거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던 굼벵이나 구더기가 매미나 파리로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시니 그것이 안개가 되어 비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서도(욥 36:27) 상상해 볼 수 있지요. 이렇듯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부활하는 것과 휴거 곧 공중으로 들림 받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아모스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셨고, 베드로후서 3:8에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인류의 오랜 역사 가운데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재림은 더욱 임박한 사실이며 하나님 편에서도 재림은 속히 이루어질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에 대해 곳곳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37에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고, 요한계시록 3:11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림의 때가 가까움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전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시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 행하는 알곡 신자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지만, 세상과 짝하며 사는 쭉정이 신자는 재림이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고 믿는 자는 신부라고 하였는데 어찌 신랑이 오기를 사모하지 않는 신부가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깨어 있는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기도하고 있기에 때가 가까움을 깨닫고 열심히 신부단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 24:36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말씀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며 미혹게 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지만 어두움에 있으면 도적같이 임한다(살전 5:2-4)는 사실을 깨달아 항상 깨어 근신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세상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인이었던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도록 명하신 것에 순종하였고, 결국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통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무화과나무에 내린 저주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루어졌고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1:18-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말씀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없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그 피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말았습니다(마 27:25).
그리하여 AD 70년 경,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이스라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요 19:23). 그 당시 로마가 성전 훼파의 기념으로 남겨 둔 서쪽 성벽의 일부는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눈물로 기도하는 장소인 통곡의 벽으로 남아 역사적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민족은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율법을 지켜 행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학살을 당하는 등 참으로 처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으니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1948년 5월 14일,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주신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부상시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사 49:8, 겔 38:8).
이처럼 완전히 멸망해 버렸던 이스라엘이 약 190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세워졌다는 것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 것이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놀라운 사건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하여지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이 독립하여 선진국이 되었으니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질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이 세대란 이스라엘이 독립해 살고 있는 현 세대를 지칭하거나 이스라엘의 희년으로 모든 것이 회복되어 자유를 누리는 기쁘고 즐거운 해 등 몇 가지 해석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나타나는 많은 징조들을 통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이르렀음을 깨달아 늘 깨어 기도하며 신부단장을 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7-12-21
제50과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
마 2:1-12
읽을말씀 : 마 2:1-12 | 외울말씀 : 마 2:11
교육목표 :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왜 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했으며 동방박사들로부터 세 가지 예물을 받으신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한다.
1.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자녀들뿐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계인의 축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온 인류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축복이요, 하나님께 영광인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마 1:21).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호화로운 곳에서 나신 것이 아니라,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3-7에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므로 마리아도 요셉과 함께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올라가다가 해산할 날이 차서 아들을 낳았으나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서 아기 예수를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2천여 전,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서 태어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후로부터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게 되었고 혼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되므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졌던 것입니다. 영이 죽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거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후 혼의 사람이 되어 버린 인류를 다시금 영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과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요한복음 6:51-55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영의 양식을 먹고 죄 사함을 받으며 참생명을 얻어 영생하게 하신 하나님의 깊고도 놀라운 사랑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1-12에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 합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고 헤롯은 동방박사에게 아기 예수를 찾거든 알려 달라고 하지요. 헤롯 왕이 아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박사들의 꿈에 헤롯 왕에게 가지 말라 하셨고, 요셉에게 역사하셔서 애굽으로 피신하게 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았던 것처럼 영안이 열린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경배하였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 대제사장들이나 왕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으로도 가장 낮은 계층인 양치는 목자들은 그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의롭고 경건하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과 나이 많아 늙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경외한 안나 선지자는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속히 오실 주님을 증거하지만(계 22:20), 마음 중심에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 하나님께서 예언해 놓으신 모든 말씀은 알았어도 막상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못했던 외식주의자들처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속히 오실 주님을 마음 중심에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세 가지 예물의 영적인 의미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세 가지 예물을 드린 영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1) 황금의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하는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하셨듯이(마 6:21) 황금은 마음을 뜻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들이 저주를 받아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을 대속해 주시기 위해 보잘것없는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고 오히려 우리를 부요케 하신 것입니다(고후 8:9). 동방박사들이 예물로 드린 황금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주시며 영원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선물로 주신다는 뜻입니다.
2) 유향의 의미
유향이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주는 것으로 영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죄악들을 대속해 주신 것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23:27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습니다. 마태복음 15:11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 것인가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성결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3) 몰약의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썩지 않게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호의호식하며 산다 해도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므로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이 영원히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4. 성탄절의 영적인 의미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한 동방박사들은 온 인류를 대표하여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이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을 뿐 아니라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세상의 부귀, 영화, 명예를 주님 앞에 드리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향 곧 우리의 마음을 모두 주님께 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또한 몰약, 곧 우리의 썩어 없어질 육체를 주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성탄절을 앞두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황금과 유향, 몰약이 뜻하는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참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며 즐거운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 2:14)
교육목표 :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왜 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했으며 동방박사들로부터 세 가지 예물을 받으신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한다.
1.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자녀들뿐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계인의 축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온 인류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축복이요, 하나님께 영광인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마 1:21).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호화로운 곳에서 나신 것이 아니라,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3-7에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므로 마리아도 요셉과 함께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올라가다가 해산할 날이 차서 아들을 낳았으나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서 아기 예수를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2천여 전,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서 태어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후로부터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게 되었고 혼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되므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졌던 것입니다. 영이 죽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거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후 혼의 사람이 되어 버린 인류를 다시금 영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과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요한복음 6:51-55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영의 양식을 먹고 죄 사함을 받으며 참생명을 얻어 영생하게 하신 하나님의 깊고도 놀라운 사랑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1-12에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 합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고 헤롯은 동방박사에게 아기 예수를 찾거든 알려 달라고 하지요. 헤롯 왕이 아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박사들의 꿈에 헤롯 왕에게 가지 말라 하셨고, 요셉에게 역사하셔서 애굽으로 피신하게 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았던 것처럼 영안이 열린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경배하였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 대제사장들이나 왕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으로도 가장 낮은 계층인 양치는 목자들은 그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의롭고 경건하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과 나이 많아 늙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경외한 안나 선지자는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속히 오실 주님을 증거하지만(계 22:20), 마음 중심에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 하나님께서 예언해 놓으신 모든 말씀은 알았어도 막상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못했던 외식주의자들처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속히 오실 주님을 마음 중심에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세 가지 예물의 영적인 의미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세 가지 예물을 드린 영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1) 황금의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하는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하셨듯이(마 6:21) 황금은 마음을 뜻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들이 저주를 받아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을 대속해 주시기 위해 보잘것없는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고 오히려 우리를 부요케 하신 것입니다(고후 8:9). 동방박사들이 예물로 드린 황금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주시며 영원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선물로 주신다는 뜻입니다.
2) 유향의 의미
유향이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주는 것으로 영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죄악들을 대속해 주신 것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23:27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습니다. 마태복음 15:11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 것인가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성결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3) 몰약의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썩지 않게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호의호식하며 산다 해도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므로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이 영원히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4. 성탄절의 영적인 의미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한 동방박사들은 온 인류를 대표하여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이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을 뿐 아니라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세상의 부귀, 영화, 명예를 주님 앞에 드리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향 곧 우리의 마음을 모두 주님께 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또한 몰약, 곧 우리의 썩어 없어질 육체를 주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성탄절을 앞두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황금과 유향, 몰약이 뜻하는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참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며 즐거운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 2:14)
2007-12-14
제49과열재앙(9) - 구원받는 길 -
출 12:1-4
읽을말씀 : 출 12:1-4 | 외울말씀 : 엡 6:14-17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마지막 장자의 재앙이 임하기 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한 규례로 지킬 것을 명하신 유월절 의식을 통해 구원의 길을 알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앙을 면하고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길, 곧 유월절 의식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몇 주간에 걸쳐 유월절과 할례, 성찬 예식과의 연관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온전한 구원의 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증거하겠습니다.
1. 유월절 규례 제정
출애굽기 1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 유월절에 대한 규례가 나와 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세상에서 구원받아 축복된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론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월절의 규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2:1-14을 보면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달이 되게 하고… 이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이달 십사 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요 1:29, 계 5:6),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되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급히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12:15-20을 보면 "너희는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 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그달 십사 일 저녁부터 이십일 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첫날이란 구원받은 날을 의미하므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른 후에도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교병을 먹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세상을 버리고 좁은 길을 간다는 뜻인데 만일 무교병을 먹지 않고 유교병을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는 세상을 버리지 않고 넓은 길로 가는 것이므로 당연히 구원에 이르지 못하지요. 그래서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는 것은 금식을 대신하는 것이요, 자신을 낮추고 겸비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자신을 낮추고 겸비한 마음으로 좁은 길을 가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받을 때요, 구원의 날인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금식하는 마음으로 겸비한 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좁은 길인 빛 가운데 가야 하지요. 노아 때처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그저 방탕하게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은 무교병이 아닌 유교병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끊어지는 것임을 알아 유월절의 규례를 지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온전한 구원의 길
출애굽기 12:8 이하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 주신 구원의 길에 대한 핵심 내용이 나옵니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급히 먹으라"고 했는데 과연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어린 양을 통째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66권 말씀을 통째로 먹으라는 것입니다. '머리'는 상체를, '정강이'는 하체를, '내장'은 중앙을 뜻합니다. 머리와 내장과 정강이를 다 먹으라는 것은 어린 양을 통째로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셨는데 만일 그대로 행하면 손해를 보니 이 말씀은 먹지 않겠다고 하면 이것이 바로 어린 양을 통째로 먹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유익된 것만 양식을 삼는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요.
둘째로, 하나님 앞에 드릴 때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온전히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반면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으며,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거나 거역하면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도 성령을 거슬려 온전히 드리지 못하고 일부분만 드리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고 받지 않으십니다. 사도행전 5:1-11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게 행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약속한 것과 성령이 주관한 것, 그리고 십일조도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할 때 자신뿐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도 지켜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기도에 대한 응답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66권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을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거룩한 날이므로 예배 시간에 졸거나 어떤 잡념도 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온전히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각종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며 한 주간 형통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만일 예배 시간에 지각한다면 머리 부분을 먹지 않는 것이요, 예배가 마치기 전에 나간다면 정강이를 먹지 못하는 것이며, 설교 시간에 나갔다가 끝날 때쯤 해서 들어오는 사람은 내장을 먹지 않은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려야겠습니다.
넷째로, 주님께서 구원의 길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로 예비되었다가 때가 이르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다시 오셔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출애굽기 12:10을 보면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말씀하십니다. 아침이란 영적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의미합니다. 주님의 재림 이전에 성경 66권의 말씀을 양식삼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먹고 양식삼은 사람이라면 성결을 이루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온전히 진리를 양식삼은 사람은 주님께서 하나님과 하나인 것처럼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12:11에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했는데 이는 출애굽하기 위해서, 즉 세상에서 구원받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가기 위해서 완전히 준비를 갖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에베소서 6:14-16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했는데 이는 방패로 화살과 칼을 막아 생명을 보전하듯이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믿음으로 보전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으로만이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팡이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믿음의 증거로 사람이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의지하는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당시는 성령을 받은 시대가 아니기에 눈에 보이는 표적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일 믿음의 지팡이를 주시고 믿음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부지런히 진리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장자의 재앙을 내리시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즉 유월절 의식으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에 바르고 문 밖에 나오지 말고 집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겸비한 자세로 열심히 예배를 드리며 부지런히 어린 양의 살 곧 진리 말씀을 듣고 행하며 부지런히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당시 할례받은 사람만이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계속해서 마음에 할례를 받아 나가는 사람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즉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면서 육체의 일, 육신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계속해서 성결되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의 할례를 받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마지막 장자의 재앙이 임하기 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한 규례로 지킬 것을 명하신 유월절 의식을 통해 구원의 길을 알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앙을 면하고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길, 곧 유월절 의식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몇 주간에 걸쳐 유월절과 할례, 성찬 예식과의 연관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온전한 구원의 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증거하겠습니다.
1. 유월절 규례 제정
출애굽기 1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 유월절에 대한 규례가 나와 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세상에서 구원받아 축복된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론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월절의 규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2:1-14을 보면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달이 되게 하고… 이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이달 십사 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요 1:29, 계 5:6),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되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급히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12:15-20을 보면 "너희는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 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그달 십사 일 저녁부터 이십일 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첫날이란 구원받은 날을 의미하므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른 후에도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교병을 먹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세상을 버리고 좁은 길을 간다는 뜻인데 만일 무교병을 먹지 않고 유교병을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는 세상을 버리지 않고 넓은 길로 가는 것이므로 당연히 구원에 이르지 못하지요. 그래서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는 것은 금식을 대신하는 것이요, 자신을 낮추고 겸비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자신을 낮추고 겸비한 마음으로 좁은 길을 가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받을 때요, 구원의 날인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금식하는 마음으로 겸비한 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좁은 길인 빛 가운데 가야 하지요. 노아 때처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그저 방탕하게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은 무교병이 아닌 유교병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끊어지는 것임을 알아 유월절의 규례를 지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온전한 구원의 길
출애굽기 12:8 이하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 주신 구원의 길에 대한 핵심 내용이 나옵니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급히 먹으라"고 했는데 과연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어린 양을 통째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66권 말씀을 통째로 먹으라는 것입니다. '머리'는 상체를, '정강이'는 하체를, '내장'은 중앙을 뜻합니다. 머리와 내장과 정강이를 다 먹으라는 것은 어린 양을 통째로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셨는데 만일 그대로 행하면 손해를 보니 이 말씀은 먹지 않겠다고 하면 이것이 바로 어린 양을 통째로 먹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유익된 것만 양식을 삼는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요.
둘째로, 하나님 앞에 드릴 때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온전히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반면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으며,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거나 거역하면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도 성령을 거슬려 온전히 드리지 못하고 일부분만 드리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고 받지 않으십니다. 사도행전 5:1-11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게 행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약속한 것과 성령이 주관한 것, 그리고 십일조도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할 때 자신뿐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도 지켜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기도에 대한 응답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66권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을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거룩한 날이므로 예배 시간에 졸거나 어떤 잡념도 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온전히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각종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며 한 주간 형통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만일 예배 시간에 지각한다면 머리 부분을 먹지 않는 것이요, 예배가 마치기 전에 나간다면 정강이를 먹지 못하는 것이며, 설교 시간에 나갔다가 끝날 때쯤 해서 들어오는 사람은 내장을 먹지 않은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려야겠습니다.
넷째로, 주님께서 구원의 길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로 예비되었다가 때가 이르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다시 오셔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출애굽기 12:10을 보면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말씀하십니다. 아침이란 영적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의미합니다. 주님의 재림 이전에 성경 66권의 말씀을 양식삼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먹고 양식삼은 사람이라면 성결을 이루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온전히 진리를 양식삼은 사람은 주님께서 하나님과 하나인 것처럼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12:11에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했는데 이는 출애굽하기 위해서, 즉 세상에서 구원받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가기 위해서 완전히 준비를 갖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에베소서 6:14-16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했는데 이는 방패로 화살과 칼을 막아 생명을 보전하듯이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믿음으로 보전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으로만이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팡이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믿음의 증거로 사람이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의지하는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당시는 성령을 받은 시대가 아니기에 눈에 보이는 표적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일 믿음의 지팡이를 주시고 믿음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부지런히 진리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장자의 재앙을 내리시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즉 유월절 의식으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에 바르고 문 밖에 나오지 말고 집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겸비한 자세로 열심히 예배를 드리며 부지런히 어린 양의 살 곧 진리 말씀을 듣고 행하며 부지런히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당시 할례받은 사람만이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계속해서 마음에 할례를 받아 나가는 사람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즉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면서 육체의 일, 육신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계속해서 성결되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의 할례를 받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