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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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3
제21과빛 가운데 행할 때 죄 사함
요일 1:5-10, 엡 5:9-13
읽을말씀 : 요일 1:5-10, 엡 5:9-13 | 외울말씀 : 요일 1:7
교육목표 : 빛과 어둠의 정의를 깨닫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은 빛이시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어떤 질병이라도 치료하시고 직장의 문제, 가정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지요.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항상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빛 가운데 나와야 합니다. 요한일서 1:5을 보면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습니다.
빛이란 영적으로 진리를 의미하며 어두움과 정반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 5:8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하셨지요. 이는 빛이 어두움을 물리치듯 빛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진리를 배운 사람은 빛을 발하여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빛의 자녀들이 진리대로 행함으로 맺는 열매가 빛의 열매입니다.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말씀하십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사랑과 갈라디아서 5:22 이하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도 빛의 열매에 속하지요.
그러므로 빛이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사랑하라, 기도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와 같이 선과 의와 사랑에 관한 진리의 모든 말씀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어두움이란 빛이 없는 캄캄한 상태로 영적으로는 죄를 의미하며 결국에는 사망에 이릅니다. 로마서 1:29 이하에 나오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등을 비롯해 성경에 '도적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등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것이 다 어두움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므로 하나님 자녀들이 빛 가운데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범사에 형통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반면 어두움의 세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지요.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어두움 가운데 살면 원수 마귀 사단의 지배를 받습니다. 영계에서는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사이에 사귐이 있다는 뜻이지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요한복음 1:12) 하나님은 우리의 영의 아버지가 되시지요.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말씀합니다(요한일서 1: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것은 진리의 사귐을 말합니다. 영적인 사귐을 가지면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말씀을 듣고 보며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교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 가운데 행하여 죄를 짓는다면 거짓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행치 않으니 결국 사망의 길로 가게 되지요. 사무엘상 2장을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이때 엘리 제사장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그리 말라" 훈계와 권면만 할 뿐이었지요. 징계를 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결국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고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 후손에게까지 저주가 임해 그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는 날이 임할지니라 하였지요(삼상 2:27-36, 4:11-22).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녀는 마땅히 책망하고 징계를 해서라도 돌이키게 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에베소서 5:11-13을 보면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빛 가운데 살지 못한다면 마땅히 사랑으로 권면하고 책망하여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빛 되신 하나님과 온전한 사귐이 있다 할 수 있으며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인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엡 5:9).
3. 주님의 피가 어떻게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가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써 모든 죄를 정결케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람에게는 크게 두 가지 죄가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담을 통해 내려오는 원죄와 성장하면서 스스로 짓는 자범죄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십자가의 도를 믿고 회개하면 모든 죄가 사해져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요한복음 6:54에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말씀하지요. 즉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어둠에서 떠나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 결국은 구원에 이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씀대로 행할 때 차츰 우리 안에 어둠이 사라지지요. 그리고 빛만 거하므로 주님의 피로 씻김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에 세상에서 습관적으로 거짓말했어도 현재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면 그 죄를 용서받게 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먹지 않으면 죽고 맙니다. 이처럼 행함이 따르지 않고 여전히 거짓말을 하면 주님의 보혈이 모든 죄를 씻은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할 때에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열심히 행한 만큼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4. 중심을 보시며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엡 5:9-10).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면 마음의 소원도 이루어 주십니다(시 37:4).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지요.
초신자의 경우 "나는 아직 진리 말씀 안에 살지 못하는데 지금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므로 하나님과 사귀며 빛 가운데 살고자 하는 사람을 죄 있다 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마음속에 간음, 살인, 미움과 같은 어두움이 남았을지라도 죄와 싸워 열심히 버리려고 하면 그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해 주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보혈로 죄 사함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행 3:26) 말씀하시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빛 가운데 거하여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짐으로 하늘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빛과 어둠의 정의를 깨닫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은 빛이시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어떤 질병이라도 치료하시고 직장의 문제, 가정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지요.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항상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빛 가운데 나와야 합니다. 요한일서 1:5을 보면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습니다.
빛이란 영적으로 진리를 의미하며 어두움과 정반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 5:8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하셨지요. 이는 빛이 어두움을 물리치듯 빛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진리를 배운 사람은 빛을 발하여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빛의 자녀들이 진리대로 행함으로 맺는 열매가 빛의 열매입니다.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말씀하십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사랑과 갈라디아서 5:22 이하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도 빛의 열매에 속하지요.
그러므로 빛이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사랑하라, 기도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와 같이 선과 의와 사랑에 관한 진리의 모든 말씀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어두움이란 빛이 없는 캄캄한 상태로 영적으로는 죄를 의미하며 결국에는 사망에 이릅니다. 로마서 1:29 이하에 나오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등을 비롯해 성경에 '도적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등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것이 다 어두움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므로 하나님 자녀들이 빛 가운데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범사에 형통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반면 어두움의 세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지요.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어두움 가운데 살면 원수 마귀 사단의 지배를 받습니다. 영계에서는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사이에 사귐이 있다는 뜻이지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요한복음 1:12) 하나님은 우리의 영의 아버지가 되시지요.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말씀합니다(요한일서 1: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것은 진리의 사귐을 말합니다. 영적인 사귐을 가지면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말씀을 듣고 보며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교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 가운데 행하여 죄를 짓는다면 거짓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행치 않으니 결국 사망의 길로 가게 되지요. 사무엘상 2장을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이때 엘리 제사장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그리 말라" 훈계와 권면만 할 뿐이었지요. 징계를 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결국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고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 후손에게까지 저주가 임해 그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는 날이 임할지니라 하였지요(삼상 2:27-36, 4:11-22).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녀는 마땅히 책망하고 징계를 해서라도 돌이키게 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에베소서 5:11-13을 보면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빛 가운데 살지 못한다면 마땅히 사랑으로 권면하고 책망하여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빛 되신 하나님과 온전한 사귐이 있다 할 수 있으며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인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엡 5:9).
3. 주님의 피가 어떻게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가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써 모든 죄를 정결케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람에게는 크게 두 가지 죄가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담을 통해 내려오는 원죄와 성장하면서 스스로 짓는 자범죄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십자가의 도를 믿고 회개하면 모든 죄가 사해져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요한복음 6:54에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말씀하지요. 즉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어둠에서 떠나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 결국은 구원에 이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씀대로 행할 때 차츰 우리 안에 어둠이 사라지지요. 그리고 빛만 거하므로 주님의 피로 씻김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에 세상에서 습관적으로 거짓말했어도 현재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면 그 죄를 용서받게 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먹지 않으면 죽고 맙니다. 이처럼 행함이 따르지 않고 여전히 거짓말을 하면 주님의 보혈이 모든 죄를 씻은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할 때에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열심히 행한 만큼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4. 중심을 보시며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엡 5:9-10).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면 마음의 소원도 이루어 주십니다(시 37:4).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지요.
초신자의 경우 "나는 아직 진리 말씀 안에 살지 못하는데 지금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므로 하나님과 사귀며 빛 가운데 살고자 하는 사람을 죄 있다 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마음속에 간음, 살인, 미움과 같은 어두움이 남았을지라도 죄와 싸워 열심히 버리려고 하면 그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해 주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보혈로 죄 사함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행 3:26) 말씀하시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빛 가운데 거하여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짐으로 하늘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5-16
제20과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
요 6:52-58
읽을말씀 : 요 6:52-58 | 외울말씀 : 요 1:1, 14
교육목표 : 인자의 살과 피는 무엇이며 어떻게 먹고 마시는지를 알아 영생 을 얻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아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요한복음 6:53-55에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즉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생명을 유지하려면 음식물을 먹고 마셔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영생을 하기 위해서는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1. 인자의 살은 무엇이며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요한복음 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합니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요 1:14).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48절 이하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말씀하십니다. 즉 영생할 수 있는 참된 양식은 인자의 살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의 살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며,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성경 66권 말씀을 양식 삼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비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9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했고, 베드로전서 1:19에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12:9-10에는 어린 양을 먹는 방법이 잘 나와 있습니다.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고 하셨지요. 그러면 인자의 살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날로 먹지 말아야 합니다.
날로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읽고 양식 삼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쓰였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읽으면 하나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고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6:6을 보면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즉 날로 먹는다면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골방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믿음의 선진들이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산이나 빈들에서 기도하셨고(눅 6:12, 막 1:35)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했지요.
그렇다면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골방에 들어가면 외부와 차단되듯이 잡념이나 세상 근심 걱정을 차단하여 중언부언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중심으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참 뜻을 바로 알아 양식 삼아야 합니다.
둘째로, 물에 삶아서 먹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 양을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는 것은 인자의 살 곧 하나님 말씀에 다른 어떤 것을 섞지 말고 순수하게 먹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성인군자나 철학자 등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의 말이나 정치, 사회 이야기 등을 섞어서 전달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사람의 말은 세월이 흐르면 변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변함 없지요.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진리이니 세상적인 이론이나 지식을 섞어서 먹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셋째로, 통째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합니다.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는 것은 어린 양을 통째로 잡아 불에 구워 먹으라는 뜻입니다. 인자의 살 곧 성경 66권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먹어 영적인 양식을 삼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에 맞추어 필요한 부분만을 읽거나 믿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어느 것 하나 빼지 말고 모두 먹되 불에 구워 먹어야 하지요.
여기서 불이란 성령의 불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쓴 것이기 때문에 읽고 들을 때에도 성령의 충만함과 감동함 속에서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지식으로만 쌓일 뿐 결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성령의 감동함으로 대하면 송이꿀같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곧 성령의 불에 구워 먹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말씀이 깨달아지고 소화가 잘되어 영적인 살과 피가 되고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지요.
넷째로,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고 남은 것은 곧 소화(燒火)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해질 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통째로 먹되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은 원수 마귀가 권세를 잡고 있는 흑암의 세상으로서 영적으로는 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가 이르러 참 빛 되신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그때에는 어둠이 물러 가고 모든 것이 온전히 회복되어 빛의 세계인 아침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아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신부단장을 마쳐야 합니다. 또한 인생은 강건해야 70, 80세이므로 언제 주님 앞에 가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열심히 말씀을 양식 삼아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2. 인자의 피는 무엇이며 어떻게 마셔야 하는가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고 물도 함께 마셔야 합니다. 만약 수분을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음식이 소화되지 않으니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자의 살을 먹을 때도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소화할 수 없고 영생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거룩한 보혈이지요. 이 보혈의 공로를 힘입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아 정결케 하므로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가 되는 것입니다(요 6:55).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음료인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일까요?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하신 대로,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뜻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곧 빛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요일 1:5) 말씀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 빛 가운데 행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이지요. 그럴 때 예수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아 구원에 이릅니다.
음식물을 먹으면 잘 소화되어 영양분은 흡수되고 노폐물은 배설되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행하면 진리는 흡수되고 비진리는 배설되므로 검은 마음이 하얀 마음으로 바꾸어집니다. 예를 들어, 미움이라는 죄를 버리기 위해서는 '사랑하라'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명심하여 행할 때 잘 소화되어 '사랑'이라는 영양분은 흡수되고 '미움'이라는 노폐물이 배설됩니다. 이렇게 하여 더럽고 추한 마음을 빼버리니 자연히 하얗고 아름다운 진리의 마음이 됩니다.
3.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은 본래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제외한 각종 과일을 따 먹으며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동행해 주시면서 선과 진리만을 가르쳐 주셨지요.
그러나 아담이 원수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영이 죽고 말았지요. 그 후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고 원수 마귀 사단과 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비진리에 물들어 가고 죄악이 관영해져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선한 마음을 주관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며 악을 버리도록 역사하시지요. 우리가 악을 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같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하고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해 하나님 말씀을 잘 먹을 수 있습니다. 즉 기도하며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에 말씀이 영적으로 피와 살이 되어 영생할 수 있지요. 그러면서 비진리인 불순물은 다 배설해 나가니 까만 마음이 하얀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0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합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사람은 말씀을 마음에 심음으로 비진리가 물러 가고 진리가 임하니 마음이 의로워지고 깨끗해집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심으로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키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대로 행하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인자의 살과 피는 무엇이며 어떻게 먹고 마시는지를 알아 영생 을 얻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아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요한복음 6:53-55에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즉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생명을 유지하려면 음식물을 먹고 마셔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영생을 하기 위해서는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1. 인자의 살은 무엇이며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요한복음 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합니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요 1:14).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48절 이하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말씀하십니다. 즉 영생할 수 있는 참된 양식은 인자의 살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의 살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며,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성경 66권 말씀을 양식 삼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비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9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했고, 베드로전서 1:19에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12:9-10에는 어린 양을 먹는 방법이 잘 나와 있습니다.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고 하셨지요. 그러면 인자의 살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날로 먹지 말아야 합니다.
날로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읽고 양식 삼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쓰였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읽으면 하나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고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6:6을 보면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즉 날로 먹는다면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골방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믿음의 선진들이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산이나 빈들에서 기도하셨고(눅 6:12, 막 1:35)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했지요.
그렇다면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골방에 들어가면 외부와 차단되듯이 잡념이나 세상 근심 걱정을 차단하여 중언부언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중심으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참 뜻을 바로 알아 양식 삼아야 합니다.
둘째로, 물에 삶아서 먹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 양을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는 것은 인자의 살 곧 하나님 말씀에 다른 어떤 것을 섞지 말고 순수하게 먹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성인군자나 철학자 등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의 말이나 정치, 사회 이야기 등을 섞어서 전달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사람의 말은 세월이 흐르면 변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변함 없지요.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진리이니 세상적인 이론이나 지식을 섞어서 먹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셋째로, 통째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합니다.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는 것은 어린 양을 통째로 잡아 불에 구워 먹으라는 뜻입니다. 인자의 살 곧 성경 66권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먹어 영적인 양식을 삼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에 맞추어 필요한 부분만을 읽거나 믿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어느 것 하나 빼지 말고 모두 먹되 불에 구워 먹어야 하지요.
여기서 불이란 성령의 불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쓴 것이기 때문에 읽고 들을 때에도 성령의 충만함과 감동함 속에서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지식으로만 쌓일 뿐 결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성령의 감동함으로 대하면 송이꿀같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곧 성령의 불에 구워 먹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말씀이 깨달아지고 소화가 잘되어 영적인 살과 피가 되고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지요.
넷째로,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고 남은 것은 곧 소화(燒火)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해질 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통째로 먹되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은 원수 마귀가 권세를 잡고 있는 흑암의 세상으로서 영적으로는 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가 이르러 참 빛 되신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그때에는 어둠이 물러 가고 모든 것이 온전히 회복되어 빛의 세계인 아침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아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신부단장을 마쳐야 합니다. 또한 인생은 강건해야 70, 80세이므로 언제 주님 앞에 가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열심히 말씀을 양식 삼아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2. 인자의 피는 무엇이며 어떻게 마셔야 하는가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고 물도 함께 마셔야 합니다. 만약 수분을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음식이 소화되지 않으니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자의 살을 먹을 때도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소화할 수 없고 영생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거룩한 보혈이지요. 이 보혈의 공로를 힘입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아 정결케 하므로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가 되는 것입니다(요 6:55).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음료인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일까요?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하신 대로,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뜻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곧 빛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요일 1:5) 말씀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 빛 가운데 행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이지요. 그럴 때 예수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아 구원에 이릅니다.
음식물을 먹으면 잘 소화되어 영양분은 흡수되고 노폐물은 배설되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행하면 진리는 흡수되고 비진리는 배설되므로 검은 마음이 하얀 마음으로 바꾸어집니다. 예를 들어, 미움이라는 죄를 버리기 위해서는 '사랑하라'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명심하여 행할 때 잘 소화되어 '사랑'이라는 영양분은 흡수되고 '미움'이라는 노폐물이 배설됩니다. 이렇게 하여 더럽고 추한 마음을 빼버리니 자연히 하얗고 아름다운 진리의 마음이 됩니다.
3.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은 본래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제외한 각종 과일을 따 먹으며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동행해 주시면서 선과 진리만을 가르쳐 주셨지요.
그러나 아담이 원수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영이 죽고 말았지요. 그 후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고 원수 마귀 사단과 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비진리에 물들어 가고 죄악이 관영해져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선한 마음을 주관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며 악을 버리도록 역사하시지요. 우리가 악을 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같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하고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해 하나님 말씀을 잘 먹을 수 있습니다. 즉 기도하며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에 말씀이 영적으로 피와 살이 되어 영생할 수 있지요. 그러면서 비진리인 불순물은 다 배설해 나가니 까만 마음이 하얀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0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합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사람은 말씀을 마음에 심음으로 비진리가 물러 가고 진리가 임하니 마음이 의로워지고 깨끗해집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심으로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키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대로 행하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5-09
제19과성령강림과 초대교회
행 2:1-4, 2:37-47
읽을말씀 : 행 2:1-4, 2:37-47 | 외울말씀 : 행 2:38
교육목표 : 성령강림절을 기념하여 성령이 어떻게 강림하였으며 교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초대교회의 신앙생활은 어떠하였는지를 깨달아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1. 성령강림과 성령의 역사
사도행전 1:4-5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친히 살아 계심을 증거하시고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또한 승천하시기 전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8).
그래서 약 120명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러던 중 오순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지요(행 2:1-4).
이것이 성령강림의 시초로서 곧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욜 2:28-29). 그래서 사도행전 2:16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성령받은 사람들은 각종 방언을 말함은 물론, 성령의 역사로 예언도 하고 환상도 보며 각종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권능을 행하게 되었고, 성도들은 이러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부활절 이후 50일이 되는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사함을 얻은 사람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행 2:38).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행 19:2) 성령을 받을 때 위로부터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임하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으며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교회의 형성과 초대교회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기사와 표적을 행하니 예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성도들의 모임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교회의 시초이며 이를 초대교회라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함께 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직접 보았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치리했기 때문에 가장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초대교회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을까요?
첫째로,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46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25에도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했으니 우리는 초대교회를 본받아 모이기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예배는 물론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새벽예배 등 각종 예배 및 기도회에 참석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성전에 모이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도함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42을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했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응답의 열쇠이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 5:17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으며, 마태복음 7:7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말씀하시며, 베드로전서 4:7에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경고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과 죄악을 이길 힘이 없으므로 진리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기도로써 영적 교통을 하게 되면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게 되므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진리 안에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믿음이 성장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며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니 질병이 틈타지 않고 항상 강건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이기를 힘쓰면 자연히 주 안에서 서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좇게 되지만 믿음의 형제들과 교제하면 신앙간증 및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 더욱 믿음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서로 사랑하며 항상 기뻐했습니다
사도행전 2:44-47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었을 뿐 아니라,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신 대로(마 22:37-40, 막 12:30-31)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사람은 영이 죽어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으나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은 눈물, 고통, 슬픔, 질병, 사망이 없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전도에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했고, 로마서 10:13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뜻은 만인을 구원하는 것이요, 이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47을 보면 성도들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므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이럴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43을 보면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강퍅해져 기사와 표적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에(요 4:48) 예수님께서도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임을 확증시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 마음 중심에서 믿어지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사와 표적을 통하여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여 확실한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4:20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초대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서로 교제하고 불같이 기도하여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뿐 아니라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 날마다 구원받는 수를 더하며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는 초대교회를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무수한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힘써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성령강림절을 기념하여 성령이 어떻게 강림하였으며 교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초대교회의 신앙생활은 어떠하였는지를 깨달아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1. 성령강림과 성령의 역사
사도행전 1:4-5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친히 살아 계심을 증거하시고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또한 승천하시기 전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8).
그래서 약 120명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러던 중 오순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지요(행 2:1-4).
이것이 성령강림의 시초로서 곧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욜 2:28-29). 그래서 사도행전 2:16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성령받은 사람들은 각종 방언을 말함은 물론, 성령의 역사로 예언도 하고 환상도 보며 각종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권능을 행하게 되었고, 성도들은 이러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부활절 이후 50일이 되는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사함을 얻은 사람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행 2:38).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행 19:2) 성령을 받을 때 위로부터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임하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으며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교회의 형성과 초대교회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기사와 표적을 행하니 예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성도들의 모임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교회의 시초이며 이를 초대교회라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함께 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직접 보았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치리했기 때문에 가장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초대교회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을까요?
첫째로,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46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25에도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했으니 우리는 초대교회를 본받아 모이기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예배는 물론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새벽예배 등 각종 예배 및 기도회에 참석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성전에 모이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도함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42을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했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응답의 열쇠이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 5:17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으며, 마태복음 7:7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말씀하시며, 베드로전서 4:7에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경고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과 죄악을 이길 힘이 없으므로 진리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기도로써 영적 교통을 하게 되면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게 되므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진리 안에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믿음이 성장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며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니 질병이 틈타지 않고 항상 강건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이기를 힘쓰면 자연히 주 안에서 서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좇게 되지만 믿음의 형제들과 교제하면 신앙간증 및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 더욱 믿음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서로 사랑하며 항상 기뻐했습니다
사도행전 2:44-47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었을 뿐 아니라,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신 대로(마 22:37-40, 막 12:30-31)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사람은 영이 죽어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으나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은 눈물, 고통, 슬픔, 질병, 사망이 없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전도에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했고, 로마서 10:13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뜻은 만인을 구원하는 것이요, 이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47을 보면 성도들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므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이럴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43을 보면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강퍅해져 기사와 표적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에(요 4:48) 예수님께서도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임을 확증시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 마음 중심에서 믿어지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사와 표적을 통하여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여 확실한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4:20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초대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서로 교제하고 불같이 기도하여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뿐 아니라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 날마다 구원받는 수를 더하며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는 초대교회를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무수한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힘써야 하겠습니다.
2008-05-02
제18과영적 어린아이
마 18:1-4, 23:12
읽을말씀 : 마 18:1-4, 23:12 | 외울말씀 : 마 18:3
교육목표 : 어린이 주일을 맞아 영적인 어린아이의 의미를 알고 천국에서 큰 자 로 인정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18:1-4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인지 여쭙니다. 이때에 예수님이 한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이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큰 자라고 말씀합니다.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큰 자가 되고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철없이 어리광을 부리며 유치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선하고 좋은 점을 취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진난만하고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영적으로 순수하고 단순하며 겸손한 마음을 소유하기 원하십니다.
1. 영적인 어린아이의 특징
1) 단순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쉽게 무엇에 적응하는 반면에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변할 수 있습니다. 어른보다는 아직 세상 때가 묻지 않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을뿐더러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얀 백지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처럼 어린아이는 어른이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동생을 때리면 안 된다, 군것질을 많이 하면 안 된다." 등 가르치는 대로 익혀 '하라' 하는 일은 하고, '하지 말라'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그대로 믿고 순종합니다. 어떤 것은 진리이고 어떤 것은 비진리라고 하면 그대로 받아들여 순종하지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할 때에도 어떤 이유를 대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인지, 나에게 유익이 되는지'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니 반드시 선하신 뜻이 있는 줄 믿고 즉시 순종했습니다.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진리를 배우는 대로 믿고 들은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순수합니다
어린아이는 어떤 생각이나 판단, 분별 능력이 전혀 없는 무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자라면서 부모와 가족, 이웃과 친구를 통해 선과 악을 배우고 사리를 분별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은 좋은 것을 얻으면 그 자체로 행복해하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으며 순수하게 반응합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두려움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크게 받습니다.
반면 어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 줄 배웠어도 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잘못을 행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 어둠에 물들어 순수함이 사라지면 죄를 범하면서도 무감각해지지요. 그러나 진리 안에 들어와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면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선한 것을 보면 쉽게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고 악한 것은 몸서리치도록 싫어하지요. 세상 사람은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진리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악이라 하시면 몹시 싫어하고 어찌하든 버리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영적인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을 이루어 미세한 죄악이라 해도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오직 선한 것을 간절히 사모해야겠습니다.
3) 교만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지식이 적고 힘이 약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무엇을 가르쳐 주면 자기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그대로 믿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숨기려 하지 않고 부모나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높아지거나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어린아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자신의 지식과 맞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판단하거나 오해하지 않습니다. 믿고 순종할 뿐이지요. 예를 들어,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권능의 역사들을 본 수많은 사람이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만한 권능을 행하는 분이라면 정녕 하나님의 사람이겠구나.'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아도 권능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볼 때에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것을 겸손히 인정한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들을 때에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도 체험하기를 사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들으면 그대로 믿고 순종하며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2.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려면
1) 불같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죄악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2:16을 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이 세상은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세상 비진리를 보고 듣고 배우면서 마음이 죄악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교만과 혈기, 판단, 정죄, 욕심과 시기, 질투, 미움 등 비진리들로 마음이 더러워진 것이지요.
디모데전서 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불같은 기도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이런 죄악들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욕심과 자존심 그 밖의 모든 죄악들을 벗어 버리는 만큼 깨끗한 양심과 순수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믿고 깨달으며 더 온전히 순종할 수 있지요.
2) 모든 이론과 생각을 파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0:5을 보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님 말씀과 맞지 않을 때에는 무조건 버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지요.
왜냐하면 사람이 가진 대부분의 지식과 이론은 원수 마귀가 주관하는 세상으로부터 온 것으로 하나님 말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주관자가 마귀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하나씩 배워 나가는 것마다 진리가 아닌 것들을 생각에 담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으로 좇아온 것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가진 생각과 이론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고 부인하려 한다면 말씀 자체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높아진 교만이지요.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동원하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좇아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4장을 보면 한 여인이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어드립니다. 이것을 본 어떤 사람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못마땅히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저가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고 온 천하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셨지요. 이 여인은 생각을 동원치 않고 성령의 주관을 좇아 순종했기에 예수님의 칭찬을 받고 길이 기억된 바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기의 생각과 이론을 동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끝까지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므로 결국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7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불같은 기도 속에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하고 항상 자신의 생각과 말을 진리에 비춰 보아야 합니다. 나아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모든 이론과 지식을 파하며 오직 영의 생각과 성령의 소욕을 좇기 위해서는 힘써야 하지요.
그러므로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하나님 뜻이 어디 있는지, 성령의 소욕은 어느 편을 원하시는지를 기도하며 날마다 변화되어 천국에서 큰 자라 인정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어린이 주일을 맞아 영적인 어린아이의 의미를 알고 천국에서 큰 자 로 인정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18:1-4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인지 여쭙니다. 이때에 예수님이 한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이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큰 자라고 말씀합니다.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큰 자가 되고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철없이 어리광을 부리며 유치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선하고 좋은 점을 취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진난만하고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영적으로 순수하고 단순하며 겸손한 마음을 소유하기 원하십니다.
1. 영적인 어린아이의 특징
1) 단순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쉽게 무엇에 적응하는 반면에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변할 수 있습니다. 어른보다는 아직 세상 때가 묻지 않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을뿐더러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얀 백지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처럼 어린아이는 어른이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동생을 때리면 안 된다, 군것질을 많이 하면 안 된다." 등 가르치는 대로 익혀 '하라' 하는 일은 하고, '하지 말라'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그대로 믿고 순종합니다. 어떤 것은 진리이고 어떤 것은 비진리라고 하면 그대로 받아들여 순종하지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할 때에도 어떤 이유를 대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인지, 나에게 유익이 되는지'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니 반드시 선하신 뜻이 있는 줄 믿고 즉시 순종했습니다.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진리를 배우는 대로 믿고 들은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순수합니다
어린아이는 어떤 생각이나 판단, 분별 능력이 전혀 없는 무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자라면서 부모와 가족, 이웃과 친구를 통해 선과 악을 배우고 사리를 분별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은 좋은 것을 얻으면 그 자체로 행복해하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으며 순수하게 반응합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두려움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크게 받습니다.
반면 어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 줄 배웠어도 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잘못을 행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 어둠에 물들어 순수함이 사라지면 죄를 범하면서도 무감각해지지요. 그러나 진리 안에 들어와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면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선한 것을 보면 쉽게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고 악한 것은 몸서리치도록 싫어하지요. 세상 사람은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진리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악이라 하시면 몹시 싫어하고 어찌하든 버리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영적인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을 이루어 미세한 죄악이라 해도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오직 선한 것을 간절히 사모해야겠습니다.
3) 교만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지식이 적고 힘이 약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무엇을 가르쳐 주면 자기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그대로 믿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숨기려 하지 않고 부모나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높아지거나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어린아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자신의 지식과 맞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판단하거나 오해하지 않습니다. 믿고 순종할 뿐이지요. 예를 들어,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권능의 역사들을 본 수많은 사람이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만한 권능을 행하는 분이라면 정녕 하나님의 사람이겠구나.'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아도 권능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볼 때에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것을 겸손히 인정한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들을 때에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도 체험하기를 사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들으면 그대로 믿고 순종하며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2.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려면
1) 불같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죄악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2:16을 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이 세상은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세상 비진리를 보고 듣고 배우면서 마음이 죄악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교만과 혈기, 판단, 정죄, 욕심과 시기, 질투, 미움 등 비진리들로 마음이 더러워진 것이지요.
디모데전서 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불같은 기도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이런 죄악들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욕심과 자존심 그 밖의 모든 죄악들을 벗어 버리는 만큼 깨끗한 양심과 순수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믿고 깨달으며 더 온전히 순종할 수 있지요.
2) 모든 이론과 생각을 파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0:5을 보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님 말씀과 맞지 않을 때에는 무조건 버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지요.
왜냐하면 사람이 가진 대부분의 지식과 이론은 원수 마귀가 주관하는 세상으로부터 온 것으로 하나님 말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주관자가 마귀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하나씩 배워 나가는 것마다 진리가 아닌 것들을 생각에 담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으로 좇아온 것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가진 생각과 이론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고 부인하려 한다면 말씀 자체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높아진 교만이지요.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동원하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좇아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4장을 보면 한 여인이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어드립니다. 이것을 본 어떤 사람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못마땅히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저가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고 온 천하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셨지요. 이 여인은 생각을 동원치 않고 성령의 주관을 좇아 순종했기에 예수님의 칭찬을 받고 길이 기억된 바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기의 생각과 이론을 동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끝까지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므로 결국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7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불같은 기도 속에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하고 항상 자신의 생각과 말을 진리에 비춰 보아야 합니다. 나아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모든 이론과 지식을 파하며 오직 영의 생각과 성령의 소욕을 좇기 위해서는 힘써야 하지요.
그러므로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하나님 뜻이 어디 있는지, 성령의 소욕은 어느 편을 원하시는지를 기도하며 날마다 변화되어 천국에서 큰 자라 인정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4-25
제17과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
요 3:3-5, 행 2:38
읽을말씀 : 요 3:3-5, 행 2:38 | 외울말씀 : 요 3:5
교육목표 :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신앙상태를 점검하여 참된 구원에 이르게 한다.
1. 니고데모는 누구인가?
니고데모는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이며 사회적으로는 최고의 권력과 부와 명성을 가진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유전(전통)을 중히 여기며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계 역사와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과 내세와 부활, 천사와 종말론,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겉모습은 거룩한 체하나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여 마치 회칠한 무덤 같기에 예수님이 책망하십니다(마 23:25-36). 아무리 사람이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거기에다 회칠을 한다 해도 그 속에는 부패한 더러운 것이 가득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외식주의자들을 향해 엄히 책망하시며 회개하고 돌이키라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며,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다고 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마 12:24).
니고데모는 이들과는 달리 선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붙좇았고, 당시 예수님을 두둔할 수 없는 위치였지만 예수님 편에 서서 변론하였습니다(요 7:51). 이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그가 사람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영적으로 무지하여 진리를 밝히 깨우치지는 못했지만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알고자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에 대해 알려 주셨고, 결국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와서 장사를 지냈습니다(요 19:39-42).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인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2.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영적 대화
요한복음 3:2에 니고데모는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훌륭한 선생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표적을 보고 육적으로 예수님을 안 것이지 영적으로 깨달은 것은 아니었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니고데모에게 영의 차원에서 볼 수 있도록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알려 줍니다. 영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한 니고데모는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할 뿐이었지요. 이처럼 우리가 지식이 많거나 부유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안다거나 교회 오래 다녔다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요.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말씀하지요.
사람이 바람 부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그 바람을 눈으로 볼 수는 없으며 바람이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서 끝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육으로 볼 수 없는 바람과 같이 영의 세계의 일들도 육적인 한계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지요.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파악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육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은 생령으로 지음 받았지만 범죄하여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생령이 아닌 육의 사람이 되었지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는 말씀처럼 육의 사람이 된 아담의 후손들도 영이 죽은 육의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인류가 영이 죽은 육의 사람으로서 천국에 갈 수 없고 지옥 곧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듭나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알려 주셨지만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여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십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뱀처럼 나무에 달리실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됨을 알려 주십니다.
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
그러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물은 더러움을 씻어 주는 정화 작용을 합니다. 영적으로 영생수는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뜻하므로(요 4:14)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2:1-11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청함을 받았을 때 포도주가 모자라자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로 먹게 하셨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혼인을 축복하셨다는 육적인 의미를 나타내려 함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하나님의 섭리를 명확히 알려 주기 위한 사건입니다.
여기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요 1:14)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피 흘리신다는 의미입니다. 포도주를 믿지 아니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마시게 한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는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 11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을 때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후에야 온전히 믿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물은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과 십자가의 섭리들을 믿어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말합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말씀을 듣고 깨달아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성령은 우리에게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주시고(요 16:8) 진리의 말씀 안에 살 수 있도록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게 하십니다.
이처럼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마음 안에 내주하시며 죄를 버리며 날마다 영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말씀처럼 성령으로 거듭나야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 곧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거듭남을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 바람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성령의 임하심도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구름이 움직이고 사람을 시원케 하며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사람도 성령을 받아 거듭나면 마음이 새로워지고 기쁨이 충만해져 인생의 목표가 바뀌는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이 임하심을 눈으로는 볼 수 없어도 나타나는 증거를 통해 성령으로 거듭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베소서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것도 오직 아버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사랑의 선물입니다. 우리를 이처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여 아름다운 영광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신앙상태를 점검하여 참된 구원에 이르게 한다.
1. 니고데모는 누구인가?
니고데모는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이며 사회적으로는 최고의 권력과 부와 명성을 가진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유전(전통)을 중히 여기며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계 역사와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과 내세와 부활, 천사와 종말론,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겉모습은 거룩한 체하나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여 마치 회칠한 무덤 같기에 예수님이 책망하십니다(마 23:25-36). 아무리 사람이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거기에다 회칠을 한다 해도 그 속에는 부패한 더러운 것이 가득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외식주의자들을 향해 엄히 책망하시며 회개하고 돌이키라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며,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다고 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마 12:24).
니고데모는 이들과는 달리 선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붙좇았고, 당시 예수님을 두둔할 수 없는 위치였지만 예수님 편에 서서 변론하였습니다(요 7:51). 이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그가 사람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영적으로 무지하여 진리를 밝히 깨우치지는 못했지만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알고자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에 대해 알려 주셨고, 결국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와서 장사를 지냈습니다(요 19:39-42).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인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2.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영적 대화
요한복음 3:2에 니고데모는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훌륭한 선생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표적을 보고 육적으로 예수님을 안 것이지 영적으로 깨달은 것은 아니었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니고데모에게 영의 차원에서 볼 수 있도록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알려 줍니다. 영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한 니고데모는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할 뿐이었지요. 이처럼 우리가 지식이 많거나 부유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안다거나 교회 오래 다녔다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요.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말씀하지요.
사람이 바람 부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그 바람을 눈으로 볼 수는 없으며 바람이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서 끝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육으로 볼 수 없는 바람과 같이 영의 세계의 일들도 육적인 한계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지요.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파악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육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은 생령으로 지음 받았지만 범죄하여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생령이 아닌 육의 사람이 되었지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는 말씀처럼 육의 사람이 된 아담의 후손들도 영이 죽은 육의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인류가 영이 죽은 육의 사람으로서 천국에 갈 수 없고 지옥 곧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듭나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알려 주셨지만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여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십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뱀처럼 나무에 달리실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됨을 알려 주십니다.
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
그러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물은 더러움을 씻어 주는 정화 작용을 합니다. 영적으로 영생수는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뜻하므로(요 4:14)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2:1-11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청함을 받았을 때 포도주가 모자라자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로 먹게 하셨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혼인을 축복하셨다는 육적인 의미를 나타내려 함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하나님의 섭리를 명확히 알려 주기 위한 사건입니다.
여기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요 1:14)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피 흘리신다는 의미입니다. 포도주를 믿지 아니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마시게 한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는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 11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을 때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후에야 온전히 믿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물은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과 십자가의 섭리들을 믿어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말합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말씀을 듣고 깨달아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성령은 우리에게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주시고(요 16:8) 진리의 말씀 안에 살 수 있도록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게 하십니다.
이처럼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마음 안에 내주하시며 죄를 버리며 날마다 영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말씀처럼 성령으로 거듭나야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 곧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거듭남을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 바람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성령의 임하심도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구름이 움직이고 사람을 시원케 하며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사람도 성령을 받아 거듭나면 마음이 새로워지고 기쁨이 충만해져 인생의 목표가 바뀌는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이 임하심을 눈으로는 볼 수 없어도 나타나는 증거를 통해 성령으로 거듭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베소서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것도 오직 아버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사랑의 선물입니다. 우리를 이처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여 아름다운 영광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4-18
제16과가상 칠언(3)
요 19:30, 누 23:46
읽을말씀 : 요 19:30, 누 23:46 | 외울말씀 : 요 19:30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시면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가상 칠언 중 제6, 7언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한다.
1. 제6언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을 보면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했는데 이는 가상칠언 중 여섯 번째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요 1:14). 그래서 오직 율법을 좇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마 9:35).
또한 만세 전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나무 십자가를 지시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셨는데, 이는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으로 모든 인류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인간 구원의 섭리를 다 이루신 것이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고백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예수님의 고백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좇아 죽기까지 순종하며 구원의 섭리를 다 이루신 것처럼, 하나님 자녀된 우리도 하나님 뜻을 좇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대로 살았다 해도 도중에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면 결국 구원에 이를 수 없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가상칠언 중 제6언의 영적인 의미를 마음에 양식 삼아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여 "다 이루었다" 고백할 수 있기 위하여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2. 제7언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말씀하신 제7언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입니다(눅 23:44-46). 그러면 구세주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 품에 부탁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에게는 영, 혼, 육이 있어서(살전 5:23)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영과 혼은 육을 떠나 하나님의 품이나 음부로 가게 되고 육은 장사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영혼은 하나님의 품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영혼은 음부로 가게 되므로(눅 16:19-31) 육신을 입은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신 것입니다.
영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주인으로서 진리로 무장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생령으로 지음 받은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되며,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영이 자라나 진리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혼이란 무엇일까요?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마치 백지 상태와 같으나 점점 성장하면서 환경과 조건을 통해 보고 듣고 배우며 느끼는 것들이 뇌세포의 기억장치에 지식으로 쌓이고 이런 것들을 통해 생각을 하는데, 이러한 모든 기억장치와 지식, 생각 등을 포함한 것이 혼입니다.
또한 육은 영과 혼이 거하는 장막으로서 우리 눈에 보이는 몸을 말하지요. 예수님께서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니 사람과 같이 영과 혼, 육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영과 혼은 엄격히 구분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과 혼을 함께 받으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영만 받으시고 혼을 받지 않으신다면 하늘나라에 갔을 때 진리만 알 뿐 이 땅에서의 눈물, 슬픔, 고통을 모르게 되니 천국의 참된 행복을 느낄 수 없고 마음 중심에서 감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신 또 다른 이유는 모든 영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예수님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소관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즉 모든 것이 하나님 소유요 하나님 주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지만 응답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기도하신 것입니다.
3. 십자가의 도 결론 "이 비밀이 크도다"
여러 시간에 걸쳐 십자가의 도를 배움으로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사람이 어떻게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는가, 또한 하나님께서 죄인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예비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도록 하신 하나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참 믿음을 소유하여 온전한 구원과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베소서 5:31-32을 보면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장성하면 부모를 떠나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 비밀이 크다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여기서 교회란 성령 받은 하나님 자녀들을 뜻하므로 우리는 이 비밀을 알아야 하는데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한 몸입니다
요한복음 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말씀한 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세상에 속한 자로서 어둠의 주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빛 가운데로 나오면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에게서 떠나 하나님 자녀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인 신랑으로 맞이하는 신부가 됩니다. 신랑, 신부가 부모를 떠나 서로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듯이 우리가 세상을 떠나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되니 얼마나 큰 비밀입니까?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신랑, 신부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되면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후사를 낳게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한 몸을 이루면 믿음의 씨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왕의 아들만 되어도 큰 권세를 누리며 살게 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곧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면 얼마나 큰 권세를 누리며 살겠는지요.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으니 참으로 큰 비밀인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유업을 이어 받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4:6-7을 보면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하나님 아들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유업으로 주시며 하나님 자녀된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셨으니 얼마나 놀라운 비밀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분이시므로 천국을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회개하여 구원받은 한 편 강도가 들어간 낙원(눅 23:43), 가장 영화로운 처소인 새예루살렘(계 21-22장) 등 여러 처소로 구분하시고 이 땅에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지금까지 가상칠언과 십자가의 도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았으니 참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아들로서 유업을 이어받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시면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가상 칠언 중 제6, 7언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한다.
1. 제6언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을 보면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했는데 이는 가상칠언 중 여섯 번째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요 1:14). 그래서 오직 율법을 좇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마 9:35).
또한 만세 전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나무 십자가를 지시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셨는데, 이는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으로 모든 인류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인간 구원의 섭리를 다 이루신 것이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고백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예수님의 고백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좇아 죽기까지 순종하며 구원의 섭리를 다 이루신 것처럼, 하나님 자녀된 우리도 하나님 뜻을 좇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대로 살았다 해도 도중에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면 결국 구원에 이를 수 없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가상칠언 중 제6언의 영적인 의미를 마음에 양식 삼아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여 "다 이루었다" 고백할 수 있기 위하여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2. 제7언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말씀하신 제7언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입니다(눅 23:44-46). 그러면 구세주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 품에 부탁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에게는 영, 혼, 육이 있어서(살전 5:23)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영과 혼은 육을 떠나 하나님의 품이나 음부로 가게 되고 육은 장사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영혼은 하나님의 품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영혼은 음부로 가게 되므로(눅 16:19-31) 육신을 입은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신 것입니다.
영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주인으로서 진리로 무장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생령으로 지음 받은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되며,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영이 자라나 진리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혼이란 무엇일까요?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마치 백지 상태와 같으나 점점 성장하면서 환경과 조건을 통해 보고 듣고 배우며 느끼는 것들이 뇌세포의 기억장치에 지식으로 쌓이고 이런 것들을 통해 생각을 하는데, 이러한 모든 기억장치와 지식, 생각 등을 포함한 것이 혼입니다.
또한 육은 영과 혼이 거하는 장막으로서 우리 눈에 보이는 몸을 말하지요. 예수님께서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니 사람과 같이 영과 혼, 육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영과 혼은 엄격히 구분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과 혼을 함께 받으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영만 받으시고 혼을 받지 않으신다면 하늘나라에 갔을 때 진리만 알 뿐 이 땅에서의 눈물, 슬픔, 고통을 모르게 되니 천국의 참된 행복을 느낄 수 없고 마음 중심에서 감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신 또 다른 이유는 모든 영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예수님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소관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즉 모든 것이 하나님 소유요 하나님 주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지만 응답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기도하신 것입니다.
3. 십자가의 도 결론 "이 비밀이 크도다"
여러 시간에 걸쳐 십자가의 도를 배움으로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사람이 어떻게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는가, 또한 하나님께서 죄인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예비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도록 하신 하나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참 믿음을 소유하여 온전한 구원과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베소서 5:31-32을 보면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장성하면 부모를 떠나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 비밀이 크다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여기서 교회란 성령 받은 하나님 자녀들을 뜻하므로 우리는 이 비밀을 알아야 하는데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한 몸입니다
요한복음 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말씀한 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세상에 속한 자로서 어둠의 주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빛 가운데로 나오면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에게서 떠나 하나님 자녀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인 신랑으로 맞이하는 신부가 됩니다. 신랑, 신부가 부모를 떠나 서로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듯이 우리가 세상을 떠나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되니 얼마나 큰 비밀입니까?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신랑, 신부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되면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후사를 낳게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한 몸을 이루면 믿음의 씨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왕의 아들만 되어도 큰 권세를 누리며 살게 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곧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면 얼마나 큰 권세를 누리며 살겠는지요.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으니 참으로 큰 비밀인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유업을 이어 받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4:6-7을 보면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하나님 아들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유업으로 주시며 하나님 자녀된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셨으니 얼마나 놀라운 비밀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분이시므로 천국을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회개하여 구원받은 한 편 강도가 들어간 낙원(눅 23:43), 가장 영화로운 처소인 새예루살렘(계 21-22장) 등 여러 처소로 구분하시고 이 땅에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지금까지 가상칠언과 십자가의 도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았으니 참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아들로서 유업을 이어받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4-11
제15과가상 칠언(2)
요 19:26-28, 마 27:46
읽을말씀 : 요 19:26-28, 마 27:46 | 외울말씀 : 마 27:46
교육목표 : 가상 칠언 중 제3, 4, 5언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더욱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채 남기신 일곱 마디의 가상칠언(架上七言) 중에서 오늘은 제3, 4, 5언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3언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두 행악자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모친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마리아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말씀하시고,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가상칠언 중 제3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육적으로는 자신이 잉태하여 낳은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가고 있으므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마리아를 위로하기 위함이요,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형제자매요, 모친이라는 사실을 온 인류에게 공포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향해 어머니라 부르지 아니하고 여자라고 부르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니(빌 2:6) 어머니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동정녀 마리아는 단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몸을 빌려 준 것뿐이요,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을 낳았을 뿐입니다(마 1:18).
마태복음 12:50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요한을 지칭하여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며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섬겨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면 믿음이 자랄수록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넘쳐나고 하늘에 시민권이 있다는 영적인 소속감이 분명해집니다(빌 3:20). 예전에는 핏줄의 형제가 더 사랑스럽고 좋았으나 차츰 믿음의 형제가 사랑스러워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한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을 깨달아 믿음의 형제들을 더욱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제4언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6을 보면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말씀했습니다. 혹자는 이를 오해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원수 마귀를 멸하고 우리 인생을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요,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죽기까지 순종하며 자기를 희생한 분이시니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하나님을 원망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제4언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시되 피조물의 손에 의해 조롱거리가 되고 십자가에 못박히시도록 철저하게 버리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이며 감당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무지한 인생들은 이를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칠 수 있도록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면서 크게 소리질렀던 것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께서는 밤새 먹지도 주무시지도 못하시면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고 온갖 고통과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셨으며 사막의 뜨거운 햇볕 아래 십자가에 매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셨으니 아무 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큰 소리로 말씀하신 것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흠도 점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처럼 철저하게 버리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버림 받고 인생들을 위해 죽어 가는데도 수많은 인생들이 어둠 가운데서 세상과 짝하여 살며 생명의 길로 나오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탄식하신 것입니다.
제5언 :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 19:28-29을 보면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편 69:21에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말씀하셨는데 이를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감동함을 받아서, 또한 영안이 열려서 환상 가운데 앞일을 기록하였는데 이 말씀을 기록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장면을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막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 수시간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시므로 실제로 심한 갈증을 느끼셨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가장 혹독한 처형 방법으로서 칼로 목 베임을 당해 짧은 순간에 피 흘리고 죽는 것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요. 이렇듯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참기 힘든 고통과 갈증을 느끼셨으나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육적인 목마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요, 영적인 참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피를 흘리므로 목이 마르니 내 목을 축이기 위하여 내 피 값을 찾아 달라 간절히 외치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내가 목마르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마음으로 듣고 주님의 피 값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피 값을 찾을 수 있을까요?
먼저는, 예수님을 알지 못해 어둠에 있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니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며 전도받아 구원에 이를 때마다 크게 기뻐하시고 하늘나라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각종 예물로 분야 분야에 하나님의 일이 추진됨으로 인해 많은 영혼이 구원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니 각종 예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면 이 또한 주님의 피 값을 찾는 길이 됩니다. 셋째는, 우리가 불같이 기도함으로 위로부터 능력을 힘입어야 영혼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으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주님의 피 값을 찾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상칠언 제3, 4, 5언의 영적인 의미를 잘 깨닫고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가상 칠언 중 제3, 4, 5언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더욱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채 남기신 일곱 마디의 가상칠언(架上七言) 중에서 오늘은 제3, 4, 5언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3언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두 행악자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모친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마리아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말씀하시고,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가상칠언 중 제3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육적으로는 자신이 잉태하여 낳은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가고 있으므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마리아를 위로하기 위함이요,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형제자매요, 모친이라는 사실을 온 인류에게 공포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향해 어머니라 부르지 아니하고 여자라고 부르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니(빌 2:6) 어머니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동정녀 마리아는 단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몸을 빌려 준 것뿐이요,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을 낳았을 뿐입니다(마 1:18).
마태복음 12:50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요한을 지칭하여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며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섬겨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면 믿음이 자랄수록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넘쳐나고 하늘에 시민권이 있다는 영적인 소속감이 분명해집니다(빌 3:20). 예전에는 핏줄의 형제가 더 사랑스럽고 좋았으나 차츰 믿음의 형제가 사랑스러워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한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을 깨달아 믿음의 형제들을 더욱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제4언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6을 보면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말씀했습니다. 혹자는 이를 오해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원수 마귀를 멸하고 우리 인생을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요,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죽기까지 순종하며 자기를 희생한 분이시니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하나님을 원망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제4언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시되 피조물의 손에 의해 조롱거리가 되고 십자가에 못박히시도록 철저하게 버리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이며 감당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무지한 인생들은 이를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칠 수 있도록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면서 크게 소리질렀던 것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께서는 밤새 먹지도 주무시지도 못하시면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고 온갖 고통과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셨으며 사막의 뜨거운 햇볕 아래 십자가에 매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셨으니 아무 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큰 소리로 말씀하신 것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흠도 점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처럼 철저하게 버리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버림 받고 인생들을 위해 죽어 가는데도 수많은 인생들이 어둠 가운데서 세상과 짝하여 살며 생명의 길로 나오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탄식하신 것입니다.
제5언 :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 19:28-29을 보면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편 69:21에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말씀하셨는데 이를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감동함을 받아서, 또한 영안이 열려서 환상 가운데 앞일을 기록하였는데 이 말씀을 기록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장면을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막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 수시간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시므로 실제로 심한 갈증을 느끼셨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가장 혹독한 처형 방법으로서 칼로 목 베임을 당해 짧은 순간에 피 흘리고 죽는 것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요. 이렇듯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참기 힘든 고통과 갈증을 느끼셨으나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육적인 목마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요, 영적인 참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피를 흘리므로 목이 마르니 내 목을 축이기 위하여 내 피 값을 찾아 달라 간절히 외치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내가 목마르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마음으로 듣고 주님의 피 값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피 값을 찾을 수 있을까요?
먼저는, 예수님을 알지 못해 어둠에 있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니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며 전도받아 구원에 이를 때마다 크게 기뻐하시고 하늘나라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각종 예물로 분야 분야에 하나님의 일이 추진됨으로 인해 많은 영혼이 구원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니 각종 예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면 이 또한 주님의 피 값을 찾는 길이 됩니다. 셋째는, 우리가 불같이 기도함으로 위로부터 능력을 힘입어야 영혼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으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주님의 피 값을 찾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상칠언 제3, 4, 5언의 영적인 의미를 잘 깨닫고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4-04
제14과가상 칠언(1)
눅 23:34-43
읽을말씀 : 눅 23:34-43 | 외울말씀 : 눅 23:43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내용 곧 가상칠언 중에서 제1, 2언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신앙생활에 적용하게 한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마지막으로 일곱 가지의 귀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러한 가상칠언(架上七言) 중에서 오늘은 제1,2언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1언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온 인류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은 아무 죄도 없는 깨끗한 분이셨지만,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친히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때 수많은 백성들은 관원들과 함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며 비웃었고 군병들도 신 포도주를 주며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고 희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간구하며 사랑의 기도를 하셨는데 이것이 가상칠언 중 첫 번째 말씀으로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저희'란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으며 희롱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고 어둠 가운데 있는 온 인류를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므로 십자가에 못박는 엄청난 죄를 지은 것이기에 그들을 대신하여 용서해 주시라고 사랑으로 간절히 기도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전도하면 믿기는커녕 조롱하고 핍박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비웃으며 어리석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가상칠언 중 제 1언에 말씀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지 아니하고 핍박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고 기도해 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44을 보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했고, 사도행전 7:54 이하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 역시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들을 위하여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2언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 위에 높이 세워진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좌우편에 두 행악자가 함께 십자가 처형을 받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39-43을 보면 한 편 강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비방하였지요. 그러자 다른 한 편 강도는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고 꾸짖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고백하며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눅 23:43) 이것이 바로 가상칠언 두 번째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회개할 때 죄사함을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메시아가 되신다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이 기록된 사복음서를 살펴보면 약간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7:44에는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고 했고, 마가복음 15:32에는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고 했습니다. 즉 양 편 강도가 모두 예수님을 욕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말씀입니다(마 5:18). 이는 성경 기자들이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허락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그 당시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면, 골고다 언덕에는 큰 십자가들이 높이 세워져 있었는데 중앙에는 예수님께서 달려 계셨고 좌우편에는 두 행악자가 함께 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 서서 조롱하고 로마 군병들은 흥분한 군중들이 십자가 가까이 밀리지 않도록 경계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수를 욕하고 있었습니다(마 27:38-42).
이렇게 수많은 군중들로 떠들썩할 때 군중들 틈에 끼어 있던 제자 한 사람이 보니 한 편 강도가 무엇이라 욕을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을 향해 욕을 한 것이 아니라 반대편 강도를 꾸짖는 것인데(눅 23:39-40), 몸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서 얼굴만 옆으로 돌려서 말을 하니 십자가 아래 군중들 틈에 끼인 제자는 예수님을 욕한 것으로 여겨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마 27:44)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군중들이 십자가 밑에 모여 있으며, 또한 십자가가 높고 멀리 있어 대화 내용이 잘 들리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정확히 분별하도록 기록의 차이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제2언을 통해 구원받은 영혼은 천국에 가게 되며 한 편 강도는 그중에서 낙원에 가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영원히 거할 천국은 무한히 넓고 큰 세계입니다. 이 땅에서도 도시와 시골이 있고, 수도와 지방이 있듯이 천국도 가장 변두리 지역인 낙원 외에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 기록되어 있는 새 예루살렘 등 각기 다른 처소가 있으며 그중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 보좌가 있는 가장 영화로운 곳으로서 하나님을 닮은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들이 거하는 천국이지요.
그러면 회개한 한 편 강도는 왜 낙원으로 들어가는 것일까요? 그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기는 했지만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을 위해 행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린 것도 아니요, 사명을 맡아 감당한 것도 아니며 누구를 전도한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주님을 영접함으로 구원받은 몸이기에 아무런 상급이 없는 낙원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므로 낙원뿐 아니라 어느 곳에든 계셔서 전 세계 곳곳을 감찰하시며 항상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따라서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것이요, 예수님의 본체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므로 강도와 함께 낙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어디에 가셨을까요? 마태복음 12:40을 보면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했고, 에베소서 4:9에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의롭고 사랑이 많으시므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음부에 가셔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3일간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입니다(벧전 3:19). 그리하여 구약 시대에 메시아를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의롭게 산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낙원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은 물론, 예수님을 본받아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며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여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내용 곧 가상칠언 중에서 제1, 2언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신앙생활에 적용하게 한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마지막으로 일곱 가지의 귀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러한 가상칠언(架上七言) 중에서 오늘은 제1,2언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1언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온 인류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은 아무 죄도 없는 깨끗한 분이셨지만,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친히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때 수많은 백성들은 관원들과 함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며 비웃었고 군병들도 신 포도주를 주며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고 희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간구하며 사랑의 기도를 하셨는데 이것이 가상칠언 중 첫 번째 말씀으로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저희'란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으며 희롱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고 어둠 가운데 있는 온 인류를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므로 십자가에 못박는 엄청난 죄를 지은 것이기에 그들을 대신하여 용서해 주시라고 사랑으로 간절히 기도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전도하면 믿기는커녕 조롱하고 핍박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비웃으며 어리석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가상칠언 중 제 1언에 말씀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지 아니하고 핍박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고 기도해 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44을 보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했고, 사도행전 7:54 이하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 역시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들을 위하여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2언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 위에 높이 세워진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좌우편에 두 행악자가 함께 십자가 처형을 받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39-43을 보면 한 편 강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비방하였지요. 그러자 다른 한 편 강도는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고 꾸짖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고백하며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눅 23:43) 이것이 바로 가상칠언 두 번째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회개할 때 죄사함을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메시아가 되신다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이 기록된 사복음서를 살펴보면 약간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7:44에는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고 했고, 마가복음 15:32에는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고 했습니다. 즉 양 편 강도가 모두 예수님을 욕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말씀입니다(마 5:18). 이는 성경 기자들이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허락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그 당시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면, 골고다 언덕에는 큰 십자가들이 높이 세워져 있었는데 중앙에는 예수님께서 달려 계셨고 좌우편에는 두 행악자가 함께 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 서서 조롱하고 로마 군병들은 흥분한 군중들이 십자가 가까이 밀리지 않도록 경계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수를 욕하고 있었습니다(마 27:38-42).
이렇게 수많은 군중들로 떠들썩할 때 군중들 틈에 끼어 있던 제자 한 사람이 보니 한 편 강도가 무엇이라 욕을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을 향해 욕을 한 것이 아니라 반대편 강도를 꾸짖는 것인데(눅 23:39-40), 몸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서 얼굴만 옆으로 돌려서 말을 하니 십자가 아래 군중들 틈에 끼인 제자는 예수님을 욕한 것으로 여겨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마 27:44)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군중들이 십자가 밑에 모여 있으며, 또한 십자가가 높고 멀리 있어 대화 내용이 잘 들리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정확히 분별하도록 기록의 차이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제2언을 통해 구원받은 영혼은 천국에 가게 되며 한 편 강도는 그중에서 낙원에 가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영원히 거할 천국은 무한히 넓고 큰 세계입니다. 이 땅에서도 도시와 시골이 있고, 수도와 지방이 있듯이 천국도 가장 변두리 지역인 낙원 외에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 기록되어 있는 새 예루살렘 등 각기 다른 처소가 있으며 그중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 보좌가 있는 가장 영화로운 곳으로서 하나님을 닮은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들이 거하는 천국이지요.
그러면 회개한 한 편 강도는 왜 낙원으로 들어가는 것일까요? 그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기는 했지만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을 위해 행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린 것도 아니요, 사명을 맡아 감당한 것도 아니며 누구를 전도한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주님을 영접함으로 구원받은 몸이기에 아무런 상급이 없는 낙원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므로 낙원뿐 아니라 어느 곳에든 계셔서 전 세계 곳곳을 감찰하시며 항상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따라서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것이요, 예수님의 본체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므로 강도와 함께 낙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어디에 가셨을까요? 마태복음 12:40을 보면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했고, 에베소서 4:9에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의롭고 사랑이 많으시므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음부에 가셔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3일간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입니다(벧전 3:19). 그리하여 구약 시대에 메시아를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의롭게 산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낙원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은 물론, 예수님을 본받아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며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여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008-03-28
제13과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손과 발에 못박히신 이유
마 27:29-30, 사 53:5-6, 골 3:1-10
읽을말씀 : 마 27:29-30, 사 53:5-6, 골 3:1-10 | 외울말씀 : 고후 10:5
교육목표 :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손과 발에 못박혀 피 흘리시며 고통을 당하셨는지를 밝히 깨달아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참 자녀가 되게 한다.
1.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신 이유
마태복음 27:27-30을 보면 로마 군병들에게 잡혀 십자가의 처형을 언도받고 관정 안으로 끌려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희롱하고자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머리에 씌운 군병들은 갈대를 예수님의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조롱하며 예수님께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병들은 갈대를 빼앗아 가시 면류관을 씌운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유대 사막에서 자라난 가시나무는 우리나라의 가시나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억세어 가시가 길고 독하게 생겼습니다. 이런 가시나무를 좌우로 얼기설기 엮되 머리보다 조금 작게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 위에 눌러 씌운 후 억센 갈대로 머리를 내리쳤으니 예수님의 고통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저주받은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피 흘리시며 고통을 받으셔야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우리가 생각으로 지은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면류관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천국에는 많은 면류관이 있는데 이 땅에서 얼마나 죄를 싸워 버리고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주어지는 면류관이 다릅니다. 곧 죄를 싸워 버리려고 노력한 성도들이 받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고전 9:25-27), 열심히 사명을 감당한 성도들이 받는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죽도록 충성하면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림으로 성결된 성도들이 받는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사도 바울처럼 모든 죄악을 버려 성결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사명을 감당한 성도들이 받는 의의 면류관(딤후 4:8), 또는 금 면류관(계 4:4) 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피 흘리시며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더욱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며 주어진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함으로 이왕이면 의의 면류관, 금 면류관을 받고자 힘써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께서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어떤 죄를 대속하셨는가?
성경을 보면 생령인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나아갈 때는 범죄하지 않았으나 생각을 통해 사단이 역사하자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게 되었고, 결국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생각을 통해 마음에 죄를 심기 때문이며 이것을 행동으로 옮김으로 더욱 큰 죄를 짓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행위로 간음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마다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마 5:27-28) 마음에 악을 심고 그것을 품으면 악이 되는 것이요, 이를 행동으로 옮기면 행악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의 근원은 생각에서 오는 것이요, 또한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생각을 차단하고 마음에 악을 품지 않으면 행악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원하는 사람은 생각을 통해 마음에 죄를 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미 약 2천 년 전에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생각을 통해 오는 모든 죄, 즉 진리에 어긋나는 죄악들을 대속해 주셨으니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결코 생각으로 죄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3. 생각을 통해 오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성경을 보면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으로 진리에 위배된 생각을 받아들이자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생령인 아담은 물론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들도 영이 죽은 혼의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이처럼 사단은 사람의 혼을 통해 진리에 위배되는 생각을 불어넣어 주는데 이를 마음에 받아들이면 죄를 범하게 됩니다. 생각이란 뇌의 기억장치에 입력된 지식을 혼의 작용을 통해 되살려 내는 것을 말하는데 혼의 사람은 자신의 지식이나 지혜, 생각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됩니다. 이러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을 양심이라 하는데 그 양심이 무디어지면 옳지 못한 것을 좇아 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생각에서 오는 지혜나 지식이 모두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진리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1+4=5라는 것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진리이므로 버릴 것이 아니지만 어떤 일로 다투거나 상대를 미워한다면 이는 진리에 위배되는 것이니 신속히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초신자가 주일에는 가게를 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축복을 받는 길이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해도 세상에서 배운 지혜와 지식을 깨뜨리지 않으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진리의 말씀에 위배되는 지식과 이론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반드시 버려야 할 육신의 생각입니다.
고린도후서 10:3-6에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혼적인 생각들은 모두 싸워 버리며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이론일지라도 진리에 위배되는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4. 예수님께서 양 손과 양발에 못박히신 이유
사람의 생각을 통해 들어온 진리에 위배된 죄악의 마음은 손과 발을 움직여 죄를 범하게 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생각을 통해 마음에 작용하므로 손과 발을 통해 범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9:43에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5:30에도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 2천 년 전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게 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손과 발로 지은 죄를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양 손과 양발에 못박혀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으면 자신의 손과 발로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감사하며 더 이상 생각은 물론 손이나 발로 죄를 범하는 일이 없는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손과 발에 못박혀 피 흘리시며 고통을 당하셨는지를 밝히 깨달아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참 자녀가 되게 한다.
1.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신 이유
마태복음 27:27-30을 보면 로마 군병들에게 잡혀 십자가의 처형을 언도받고 관정 안으로 끌려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희롱하고자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머리에 씌운 군병들은 갈대를 예수님의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조롱하며 예수님께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병들은 갈대를 빼앗아 가시 면류관을 씌운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유대 사막에서 자라난 가시나무는 우리나라의 가시나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억세어 가시가 길고 독하게 생겼습니다. 이런 가시나무를 좌우로 얼기설기 엮되 머리보다 조금 작게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 위에 눌러 씌운 후 억센 갈대로 머리를 내리쳤으니 예수님의 고통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저주받은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피 흘리시며 고통을 받으셔야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우리가 생각으로 지은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면류관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천국에는 많은 면류관이 있는데 이 땅에서 얼마나 죄를 싸워 버리고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주어지는 면류관이 다릅니다. 곧 죄를 싸워 버리려고 노력한 성도들이 받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고전 9:25-27), 열심히 사명을 감당한 성도들이 받는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죽도록 충성하면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림으로 성결된 성도들이 받는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사도 바울처럼 모든 죄악을 버려 성결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사명을 감당한 성도들이 받는 의의 면류관(딤후 4:8), 또는 금 면류관(계 4:4) 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피 흘리시며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더욱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며 주어진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함으로 이왕이면 의의 면류관, 금 면류관을 받고자 힘써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께서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어떤 죄를 대속하셨는가?
성경을 보면 생령인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나아갈 때는 범죄하지 않았으나 생각을 통해 사단이 역사하자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게 되었고, 결국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생각을 통해 마음에 죄를 심기 때문이며 이것을 행동으로 옮김으로 더욱 큰 죄를 짓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행위로 간음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마다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마 5:27-28) 마음에 악을 심고 그것을 품으면 악이 되는 것이요, 이를 행동으로 옮기면 행악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의 근원은 생각에서 오는 것이요, 또한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생각을 차단하고 마음에 악을 품지 않으면 행악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원하는 사람은 생각을 통해 마음에 죄를 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미 약 2천 년 전에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생각을 통해 오는 모든 죄, 즉 진리에 어긋나는 죄악들을 대속해 주셨으니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결코 생각으로 죄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3. 생각을 통해 오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성경을 보면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으로 진리에 위배된 생각을 받아들이자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생령인 아담은 물론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들도 영이 죽은 혼의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이처럼 사단은 사람의 혼을 통해 진리에 위배되는 생각을 불어넣어 주는데 이를 마음에 받아들이면 죄를 범하게 됩니다. 생각이란 뇌의 기억장치에 입력된 지식을 혼의 작용을 통해 되살려 내는 것을 말하는데 혼의 사람은 자신의 지식이나 지혜, 생각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됩니다. 이러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을 양심이라 하는데 그 양심이 무디어지면 옳지 못한 것을 좇아 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생각에서 오는 지혜나 지식이 모두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진리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1+4=5라는 것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진리이므로 버릴 것이 아니지만 어떤 일로 다투거나 상대를 미워한다면 이는 진리에 위배되는 것이니 신속히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초신자가 주일에는 가게를 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축복을 받는 길이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해도 세상에서 배운 지혜와 지식을 깨뜨리지 않으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진리의 말씀에 위배되는 지식과 이론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반드시 버려야 할 육신의 생각입니다.
고린도후서 10:3-6에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혼적인 생각들은 모두 싸워 버리며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이론일지라도 진리에 위배되는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4. 예수님께서 양 손과 양발에 못박히신 이유
사람의 생각을 통해 들어온 진리에 위배된 죄악의 마음은 손과 발을 움직여 죄를 범하게 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생각을 통해 마음에 작용하므로 손과 발을 통해 범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9:43에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5:30에도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 2천 년 전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게 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손과 발로 지은 죄를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양 손과 양발에 못박혀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으면 자신의 손과 발로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감사하며 더 이상 생각은 물론 손이나 발로 죄를 범하는 일이 없는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3-21
제12과부활의 소망과 확신
요 11:25-26, 고전 15:12-22
읽을말씀 : 요 11:25-26, 고전 15:12-22 | 외울말씀 : 고전 15:20
교육목표 :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의미와 증거들을 알아봄으로 부활의 확신을 갖고 소망 가운데 살게 한다.
1. 부활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 살기 원하지만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불로초를 얻으려 했던 중국의 진시황도, 세상에서 성인이라 불리는 공자나 석가, 소크라테스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은 죽었다가 다시 사셨고 지금도 살아 계실 뿐 아니라 주를 믿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죽어도 다시 살아나며 영원히 사는 영생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더구나 기독교 신앙에서의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차원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불구의 몸을 가졌거나 죽은 지 오래되어 형체도 남지 않았어도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온전한 부활체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의 모든 고난을 기쁨으로 이겨내며 어떠한 일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누구나 믿을 수 있는 부활의 증거
우주 만물과 자연에 베푸신 하나님의 섭리만 보아도 부활이 참이요, 사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롬 1:20). 예를 들어, 번데기가 변하여 나비가 되고, 굼벵이가 하늘을 나는 매미가 됩니다. 겨울의 메마른 대지는 봄이 되면 파릇파릇한 초목의 생명으로 뒤덮이며,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면 썩어 없어지는 것 같지만 곧 새싹이 나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처럼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부활의 소망은 성경상의 여러 사건을 접할 때 더욱 구체화 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2:11을 보면 선지자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는 예수님께서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모습으로 변형되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모세와 엘리야 또한 흰옷을 입고 해같이 빛나는 신령한 형체일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 어떠한 모습이 될 것인지를 암시해 주는 말씀이지요.
다음으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이나 이후에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에 대해 기록되어 있고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이라도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증거일 뿐 참된 부활은 아닙니다.
참된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었다가 완전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 후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된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3. 주님의 공중강림과 성도들의 부활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이미 구약에 여러 번 예언해 놓았고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장사한 지 삼 일이 지나자 부활체의 몸이 되어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부활의 확신을 심어 주신 주님께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마침내 구름 위로 올라가셨습니다(행 1:9-11). 주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실 것을 알려 주셨는데 땅 끝까지 이르러 천국 복음이 전파되는 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때입니다.
그때에는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천사의 호위를 받으시는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공중에 임하실 것입니다(마 24장, 살전 4장). 주님이 공중에 강림하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부활하는데, 무덤에 장사된 육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그 후에 살아 있는 사람 중에 믿음 있는 성도들이 마지막 나팔소리에 홀연히 변화하여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을 영접합니다.
4. 부활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삶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수차례 들었지만 온전히 믿지는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는 모두 도망가 버리고, 수제자 베드로조차 생명을 잃을까 두려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순교하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돌변하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실제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체험한 그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고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과 천국이 확실히 믿어진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주님을 증거하다 악한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들을 위한 사랑과 용서의 간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사도 바울이 숱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즐거이 복음 증거하는 일에 드렸던 것도 다 부활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고 한결같이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소망 가운데 죽음도 불사할 수 있었습니다.
5.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확신을 소유하려면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뢰를 갖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제어해야 합니다. 곧 혼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러면 왜 혼을 깨뜨려야 신뢰가 이루어질까요?
사람의 머리에는 뇌세포가 있고 그 안에는 기억장치가 있어 우리가 태어나서 눈으로 보고 듣고 가르침 받은 느낌들이 이 기억장치에 입력되는 것입니다. 즉 뇌세포를 하나의 그릇이라 한다면 이 그릇에 사람이 살아가면서 입력되어 기억되는 내용물은 곧 지식으로 남게 됩니다. 이렇게 기억되는 지식이 재생되어 나오는 것을 생각이라고 하며, 입력되어진 지식을 활용하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이렇게 지식과 생각과 지혜 이 모든 것을 통틀어 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혼 속에 담긴 내용물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들어온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이나, 지식을 사용하는 생각, 지혜, 이론 등도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비진리의 지식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마음으로 믿으려면 바로 혼을 깨뜨리라는 말씀이지요. 혼을 깨뜨리면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무한대로 커져서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깨우칠 수 있으며 마음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뢰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뢰를 가졌으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 즉 마음으로 믿는 믿음의 바탕 위에 반드시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야고보서 2:21-23에 보면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이것은 단순한 신뢰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그 신뢰를 행함으로 이것을 통해 확신이 와서 그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과 소경 바디매오도 예수님의 능력을 마음으로 믿을 뿐 아니라 이러한 신뢰를 행함으로 응답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믿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함을 통해 부활에 대한 확신이 오지 않으면 결단코 영생에 이를 수 없습니다(롬 10:9-10). 먼저는 마음으로 믿어서 하나님과 신뢰관계를 이루어야 하며 이 신뢰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의의 입술로 예수를 주라 시인할 때에 이 고백이 곧 믿음의 행함이 되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부활을 중심에서 온전히 믿어 드릴 때 우리도 부활할 수 있고,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또한 부활의 확신이 있어야 천국에 대한 소망이 뜨거워지며 치료와 응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부활의 소망을 견고히 하여 신뢰와 확신으로 가득 찬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의미와 증거들을 알아봄으로 부활의 확신을 갖고 소망 가운데 살게 한다.
1. 부활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 살기 원하지만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불로초를 얻으려 했던 중국의 진시황도, 세상에서 성인이라 불리는 공자나 석가, 소크라테스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은 죽었다가 다시 사셨고 지금도 살아 계실 뿐 아니라 주를 믿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죽어도 다시 살아나며 영원히 사는 영생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더구나 기독교 신앙에서의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차원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불구의 몸을 가졌거나 죽은 지 오래되어 형체도 남지 않았어도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온전한 부활체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의 모든 고난을 기쁨으로 이겨내며 어떠한 일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누구나 믿을 수 있는 부활의 증거
우주 만물과 자연에 베푸신 하나님의 섭리만 보아도 부활이 참이요, 사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롬 1:20). 예를 들어, 번데기가 변하여 나비가 되고, 굼벵이가 하늘을 나는 매미가 됩니다. 겨울의 메마른 대지는 봄이 되면 파릇파릇한 초목의 생명으로 뒤덮이며,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면 썩어 없어지는 것 같지만 곧 새싹이 나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처럼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부활의 소망은 성경상의 여러 사건을 접할 때 더욱 구체화 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2:11을 보면 선지자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는 예수님께서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모습으로 변형되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모세와 엘리야 또한 흰옷을 입고 해같이 빛나는 신령한 형체일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 어떠한 모습이 될 것인지를 암시해 주는 말씀이지요.
다음으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이나 이후에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에 대해 기록되어 있고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이라도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증거일 뿐 참된 부활은 아닙니다.
참된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었다가 완전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 후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된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3. 주님의 공중강림과 성도들의 부활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이미 구약에 여러 번 예언해 놓았고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장사한 지 삼 일이 지나자 부활체의 몸이 되어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부활의 확신을 심어 주신 주님께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마침내 구름 위로 올라가셨습니다(행 1:9-11). 주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실 것을 알려 주셨는데 땅 끝까지 이르러 천국 복음이 전파되는 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때입니다.
그때에는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천사의 호위를 받으시는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공중에 임하실 것입니다(마 24장, 살전 4장). 주님이 공중에 강림하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부활하는데, 무덤에 장사된 육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그 후에 살아 있는 사람 중에 믿음 있는 성도들이 마지막 나팔소리에 홀연히 변화하여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을 영접합니다.
4. 부활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삶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수차례 들었지만 온전히 믿지는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는 모두 도망가 버리고, 수제자 베드로조차 생명을 잃을까 두려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순교하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돌변하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실제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체험한 그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고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과 천국이 확실히 믿어진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주님을 증거하다 악한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들을 위한 사랑과 용서의 간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사도 바울이 숱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즐거이 복음 증거하는 일에 드렸던 것도 다 부활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고 한결같이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소망 가운데 죽음도 불사할 수 있었습니다.
5.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확신을 소유하려면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뢰를 갖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제어해야 합니다. 곧 혼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러면 왜 혼을 깨뜨려야 신뢰가 이루어질까요?
사람의 머리에는 뇌세포가 있고 그 안에는 기억장치가 있어 우리가 태어나서 눈으로 보고 듣고 가르침 받은 느낌들이 이 기억장치에 입력되는 것입니다. 즉 뇌세포를 하나의 그릇이라 한다면 이 그릇에 사람이 살아가면서 입력되어 기억되는 내용물은 곧 지식으로 남게 됩니다. 이렇게 기억되는 지식이 재생되어 나오는 것을 생각이라고 하며, 입력되어진 지식을 활용하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이렇게 지식과 생각과 지혜 이 모든 것을 통틀어 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혼 속에 담긴 내용물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들어온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이나, 지식을 사용하는 생각, 지혜, 이론 등도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비진리의 지식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마음으로 믿으려면 바로 혼을 깨뜨리라는 말씀이지요. 혼을 깨뜨리면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무한대로 커져서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깨우칠 수 있으며 마음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뢰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뢰를 가졌으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 즉 마음으로 믿는 믿음의 바탕 위에 반드시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야고보서 2:21-23에 보면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이것은 단순한 신뢰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그 신뢰를 행함으로 이것을 통해 확신이 와서 그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과 소경 바디매오도 예수님의 능력을 마음으로 믿을 뿐 아니라 이러한 신뢰를 행함으로 응답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믿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함을 통해 부활에 대한 확신이 오지 않으면 결단코 영생에 이를 수 없습니다(롬 10:9-10). 먼저는 마음으로 믿어서 하나님과 신뢰관계를 이루어야 하며 이 신뢰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의의 입술로 예수를 주라 시인할 때에 이 고백이 곧 믿음의 행함이 되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부활을 중심에서 온전히 믿어 드릴 때 우리도 부활할 수 있고,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또한 부활의 확신이 있어야 천국에 대한 소망이 뜨거워지며 치료와 응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부활의 소망을 견고히 하여 신뢰와 확신으로 가득 찬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