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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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4
제27과신실하신 분께 감사함으로
민 23:19
읽을말씀 : 민 23:19 | 외울말씀 : 출 23:16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맥추절의 의미
출애굽기 23:16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합니다. 맥추절은 일 년 중 곡물의 첫 수확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처음 수확한 곡식과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고 춤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요즘은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므로 상반기 동안 각자의 삶 속에서 거둔 영육간의 열매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려야지요.
오늘은 맥추절을 맞아 상반기 동안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반기에 더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언약을 풍성한 열매로 거두려면
1)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말씀을 100%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믿는 영적 믿음이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결코 불가능이란 것이 없으며 한 번 이루리라 하시면 변개치 않고 반드시 이루시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셔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개척 후 하나님께서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해 주시면 한 번도 의심치 않고 믿었습니다. "장차 세계를 이루고, 천하 만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대성전을 이룰 것이라" 하셨을 때에도 의심치 않고 그대로 믿었지요. 여러분은 그동안 무수한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세계를 이루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당시에는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겨우 열세 명으로 구성된 조그마한 개척 교회였습니다. 창틀에 유리도 끼지 못하고 사과 상자를 강대상으로 삼아 개척 예배를 드리는 때였지만 하나님 말씀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었지요. 이처럼 우리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현실과 상관없이 온전히 믿을 때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많이 보고 들으며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66권에 기록된 말씀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어 가야지요. 나아가 가나안성전과 대성전을 이루는 주역이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며 달려가야지요.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 주신다는 믿음으로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하시길 바랍니다.
2)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적 믿음은 행함의 증거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떤 유익도 주지 못합니다.
모세가 기도하여 홍해를 갈랐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으면 애굽 군대에 사로잡히기 마련이고, 요단 강물이 멈췄어도 건너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의 약속을 주셨어도 행함의 믿음을 나타내지 않으면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지요. 즉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이지요. 하나님 말씀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대로 행하고 신속히 죄악을 벗으며 충성해 나갑니다.
요한일서 3:21-22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만일 바짝바짝 목이 타는데도 앞에 있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물이 갈증을 해소한다는 것을 믿지 못한 까닭일 것입니다.
이처럼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세상과 짝하고, 불편한 일이 있으면 혈기를 내고 감정을 품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비진리와 타협하기도 하지요. 죄악을 벗고 충성하는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많은 축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온 영의 흐름 속에 신속하게 성결할 수 있도록 은혜의 문을 활짝 열고, 행한 대로 심은 대로 넘치게 축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축복의 약속을 믿는다면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해야 하지요(겔 36:37).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서 불같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 방법론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식언치 않고 후회가 없으며 한 치 오차 없이 그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나아가 주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을 찾아 행했지요. 전 세계에서 본교회를 사모할 날을 대비하여 많은 주의 종을 양성해 왔습니다. 또한 찬양팀과 예능팀,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기독문화의 수준을 높이며, 문서와 방송 선교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를 했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엄청난 재정과 희생이 따랐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을 믿었기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만약 "여력이 되면 준비하겠다." 하며 손을 놓고 있었거나,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지금처럼 세계를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단강이 멈추는 것은 하나님 능력에 달려 있지만, 믿음으로 강을 밟고 건너는 행함은 사람의 몫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행함으로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
3) 열매를 거두기까지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행함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게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끝까지 인내하며 변함없이 행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해 갈 때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여리고 성 주변을 단지 돌게만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하루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돈 후 큰 소리로 외치라 하셨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철벽 같은 성을 돈다고 해서 성이 무너질 리도 없고, 더구나 성 안에서 먼저 공격을 해 올 수도 있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성 주변을 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온전히 말씀대로 순종했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칠 일의 수를 채우고 총 열세 바퀴를 돌았을 때 마침내 성이 무너졌습니다.
야고보서 1:6, 7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놓지 않은 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없이 믿음과 행함으로 나올 때 심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고 기도하며 행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이뤄지지 않으면 더 이상 구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때론 상황이 더 어려워져 기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때 낙심하고 원망합니다. 지금까지 행함으로 쌓아온 것을 부정적인 말로 무너뜨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중도에 변질되어 포기하면 그 전까지 아무리 열심히 심었어도 열매로 거둘 수 없게 됩니다.
본교회는 개척 후 변함없이 축복의 언약을 믿고 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부흥하고 발전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 가운데서 완전히 죽는 것 같은 상황도 있었지만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극복했지요. 연단을 믿음과 진실함으로 이겨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전보다 더한 축복을 주셨고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을 바로 정복해 들어 간 것이 아닙니다.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 가나안 땅을 취해 들어갈 수 있었지요. 이처럼 온전히 믿고 변개함 없이 행할 때라야 열매를 거두며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열매를 거두기까지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삶 가운데 풍성하게 열매를 맺으며 천국에 영원한 상급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맥추절의 의미
출애굽기 23:16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합니다. 맥추절은 일 년 중 곡물의 첫 수확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처음 수확한 곡식과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고 춤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요즘은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므로 상반기 동안 각자의 삶 속에서 거둔 영육간의 열매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려야지요.
오늘은 맥추절을 맞아 상반기 동안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반기에 더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언약을 풍성한 열매로 거두려면
1)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말씀을 100%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믿는 영적 믿음이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결코 불가능이란 것이 없으며 한 번 이루리라 하시면 변개치 않고 반드시 이루시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셔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개척 후 하나님께서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해 주시면 한 번도 의심치 않고 믿었습니다. "장차 세계를 이루고, 천하 만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대성전을 이룰 것이라" 하셨을 때에도 의심치 않고 그대로 믿었지요. 여러분은 그동안 무수한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세계를 이루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당시에는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겨우 열세 명으로 구성된 조그마한 개척 교회였습니다. 창틀에 유리도 끼지 못하고 사과 상자를 강대상으로 삼아 개척 예배를 드리는 때였지만 하나님 말씀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었지요. 이처럼 우리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현실과 상관없이 온전히 믿을 때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많이 보고 들으며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66권에 기록된 말씀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어 가야지요. 나아가 가나안성전과 대성전을 이루는 주역이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며 달려가야지요.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 주신다는 믿음으로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하시길 바랍니다.
2)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적 믿음은 행함의 증거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떤 유익도 주지 못합니다.
모세가 기도하여 홍해를 갈랐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으면 애굽 군대에 사로잡히기 마련이고, 요단 강물이 멈췄어도 건너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의 약속을 주셨어도 행함의 믿음을 나타내지 않으면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지요. 즉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이지요. 하나님 말씀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대로 행하고 신속히 죄악을 벗으며 충성해 나갑니다.
요한일서 3:21-22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만일 바짝바짝 목이 타는데도 앞에 있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물이 갈증을 해소한다는 것을 믿지 못한 까닭일 것입니다.
이처럼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세상과 짝하고, 불편한 일이 있으면 혈기를 내고 감정을 품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비진리와 타협하기도 하지요. 죄악을 벗고 충성하는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많은 축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온 영의 흐름 속에 신속하게 성결할 수 있도록 은혜의 문을 활짝 열고, 행한 대로 심은 대로 넘치게 축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축복의 약속을 믿는다면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해야 하지요(겔 36:37).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서 불같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 방법론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식언치 않고 후회가 없으며 한 치 오차 없이 그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나아가 주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을 찾아 행했지요. 전 세계에서 본교회를 사모할 날을 대비하여 많은 주의 종을 양성해 왔습니다. 또한 찬양팀과 예능팀,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기독문화의 수준을 높이며, 문서와 방송 선교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를 했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엄청난 재정과 희생이 따랐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을 믿었기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만약 "여력이 되면 준비하겠다." 하며 손을 놓고 있었거나,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지금처럼 세계를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단강이 멈추는 것은 하나님 능력에 달려 있지만, 믿음으로 강을 밟고 건너는 행함은 사람의 몫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행함으로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
3) 열매를 거두기까지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행함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게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끝까지 인내하며 변함없이 행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해 갈 때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여리고 성 주변을 단지 돌게만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하루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돈 후 큰 소리로 외치라 하셨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철벽 같은 성을 돈다고 해서 성이 무너질 리도 없고, 더구나 성 안에서 먼저 공격을 해 올 수도 있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성 주변을 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온전히 말씀대로 순종했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칠 일의 수를 채우고 총 열세 바퀴를 돌았을 때 마침내 성이 무너졌습니다.
야고보서 1:6, 7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놓지 않은 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없이 믿음과 행함으로 나올 때 심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고 기도하며 행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이뤄지지 않으면 더 이상 구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때론 상황이 더 어려워져 기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때 낙심하고 원망합니다. 지금까지 행함으로 쌓아온 것을 부정적인 말로 무너뜨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중도에 변질되어 포기하면 그 전까지 아무리 열심히 심었어도 열매로 거둘 수 없게 됩니다.
본교회는 개척 후 변함없이 축복의 언약을 믿고 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부흥하고 발전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 가운데서 완전히 죽는 것 같은 상황도 있었지만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극복했지요. 연단을 믿음과 진실함으로 이겨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전보다 더한 축복을 주셨고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을 바로 정복해 들어 간 것이 아닙니다.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 가나안 땅을 취해 들어갈 수 있었지요. 이처럼 온전히 믿고 변개함 없이 행할 때라야 열매를 거두며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열매를 거두기까지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삶 가운데 풍성하게 열매를 맺으며 천국에 영원한 상급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6-27
제26과믿음의 씨앗을 심자
갈 6:6-10, 고후 9:6-7
읽을말씀 : 갈 6:6-10, 고후 9:6-7 | 외울말씀 : 갈 6:7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의 씨앗을 심고 영적으로 잘 가꾸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축복의 성도가 되게 한다.
농부는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씨를 심고 비료를 주고 열심히 가꾸며 땀 흘리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도 영적 믿음의 씨앗을 뿌려야 풍성한 소출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믿음의 씨앗을 심으려면
1)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으려면 밭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흙을 갈아엎어서 돌은 골라내고 굳은 흙은 부스러뜨려 좋은 밭으로 개간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 믿음의 씨앗을 심기 위해서도 밭을 개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네 가지 밭이 나오지요. 밭은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뜻하는데 흙이 너무 단단하기 때문에 씨를 뿌려도 싹이 나지 않는 길가밭과 자갈 때문에 싹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돌밭이 있습니다. 또한 가시떨기에 가려 싹이 잘 자라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과 잘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밭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 마음 밭에도 하나님 말씀을 들었으나 깨닫지 못하는 길가밭과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이내 넘어지는 돌밭, 말씀은 들었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가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 말씀을 듣고 깨달아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밭이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씨앗을 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밭을 개간하고 비료를 주어서 좋은 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흙이 너무 단단하면 갈아엎고 돌이 있으면 주워내며 가시떨기가 있으면 뽑아내는 등 좋은 밭으로 개간하기 위해 땀 흘리며 수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명하신 것은 하지 않으며 '버리라' 하신 것은 열심히 버려나가는 것이 곧 마음에서 자갈을 주워내는 것이요, 가시떨기를 뽑아내는 것이며 마음을 개간하여 좋은 밭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2) 씨앗이 있어야 합니다
밭을 개간한 다음에는 씨앗을 뿌려 싹이 나도록 해야 합니다. 농부가 많은 종류의 씨앗을 뿌려 여러 가지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듯이 사람의 마음 밭에도 여러 가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여기서 심는다는 것은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십일조하라, 안식일을 지켜라, 사랑하라 등 '무엇 무엇을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고 그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3) 물과 햇빛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으려면 밭과 심을 씨앗뿐 아니라 물과 햇빛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4:14에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말씀한 대로 물은 영생수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듣고 보면서 기도해야만 영생의 길로 인도받고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햇빛이 있어야 싹이 잘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가 보고 듣고 깨달아 양식 삼은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빛이 되어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어둠을 물리치고 깨끗한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므로 믿음의 씨앗이 잘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2. 믿음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방법
1) 심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농부가 씨앗을 심을 때 어떤 씨앗은 깊게, 어떤 씨앗은 얕게 심으며 어떤 씨앗은 논에, 어떤 씨앗은 밭에 심는 등 씨앗에 따라 심는 방법이 다르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도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심어야 합니다. 만일 기도의 씨앗을 심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르짖어 기도하고(렘 33:3), 예수님처럼 무릎을 꿇고 습관을 좇아 중심 바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눅 22:39-46).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기도할 때 신속히 아름다운 응답의 열매를 거둘 수 있으며 그 밖에 다른 믿음의 씨앗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 믿음을 가지고 심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6-7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영계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큰 사람은 그만큼 큰 옥토의 마음을 가진 것이니 많이 심을 것이요, 많이 심었으니 많이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에는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심어야 합니다.
3) 정성껏 가꾸어 주어야 합니다
씨앗을 심었으면 때를 따라 물을 주고 벌레가 먹지 않도록 약을 뿌려 주며 잘 자라도록 비료도 주고 잡초도 뽑아 주어야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마음에 심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가꾸어 주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와 같이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양식 삼으며 사명을 잘 감당할 때 믿음의 싹이 잘 자라나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3.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
농부가 씨앗을 심고 열심히 일하되 낙심하지 않고 인내하며 가꾸어 주면 때가 이르매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가 맺혀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씨앗을 심으면 영적으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꽃이 피면 향기를 발하게 되고 벌과 나비가 모여드는 것처럼 믿음의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밭에 심고 가꾸어 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만큼 영적인 꽃을 피워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고후 2:15). 뿐만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므로 착한 행실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마 5:13-16).
이처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먹으나 마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영위하게 될 뿐 아니라 전도의 열매가 맺히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며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4.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므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정성껏 믿음으로 심고 30배, 60배, 100배로 많은 열매를 거두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사르밧 과부는 시내가 마를 정도의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남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공궤함으로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왕상 17:8-16).
또한 누가복음 21장에 나오는 한 과부는 두 렙돈이라는 극히 적은 돈이지만 생활비 전부를 헌금 궤에 넣었습니다. 그때 이를 지켜보시던 예수님께서 과부를 칭찬하셨으니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겠습니까? 이처럼 우리도 기도로 심으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고, 충성 봉사하면 영육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는 등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많이 심고 많이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식언치 아니하시며(민 23:19)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농부가 땅을 개간하여 옥토가 되면 많은 수확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마음 밭을 개간하여 좋은 밭이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형통한 길로 인도받게 됩니다. 따라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영육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의 씨앗을 심고 영적으로 잘 가꾸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축복의 성도가 되게 한다.
농부는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씨를 심고 비료를 주고 열심히 가꾸며 땀 흘리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도 영적 믿음의 씨앗을 뿌려야 풍성한 소출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믿음의 씨앗을 심으려면
1)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으려면 밭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흙을 갈아엎어서 돌은 골라내고 굳은 흙은 부스러뜨려 좋은 밭으로 개간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 믿음의 씨앗을 심기 위해서도 밭을 개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네 가지 밭이 나오지요. 밭은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뜻하는데 흙이 너무 단단하기 때문에 씨를 뿌려도 싹이 나지 않는 길가밭과 자갈 때문에 싹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돌밭이 있습니다. 또한 가시떨기에 가려 싹이 잘 자라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과 잘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밭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 마음 밭에도 하나님 말씀을 들었으나 깨닫지 못하는 길가밭과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이내 넘어지는 돌밭, 말씀은 들었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가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 말씀을 듣고 깨달아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밭이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씨앗을 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밭을 개간하고 비료를 주어서 좋은 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흙이 너무 단단하면 갈아엎고 돌이 있으면 주워내며 가시떨기가 있으면 뽑아내는 등 좋은 밭으로 개간하기 위해 땀 흘리며 수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명하신 것은 하지 않으며 '버리라' 하신 것은 열심히 버려나가는 것이 곧 마음에서 자갈을 주워내는 것이요, 가시떨기를 뽑아내는 것이며 마음을 개간하여 좋은 밭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2) 씨앗이 있어야 합니다
밭을 개간한 다음에는 씨앗을 뿌려 싹이 나도록 해야 합니다. 농부가 많은 종류의 씨앗을 뿌려 여러 가지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듯이 사람의 마음 밭에도 여러 가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여기서 심는다는 것은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십일조하라, 안식일을 지켜라, 사랑하라 등 '무엇 무엇을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고 그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3) 물과 햇빛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으려면 밭과 심을 씨앗뿐 아니라 물과 햇빛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4:14에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말씀한 대로 물은 영생수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듣고 보면서 기도해야만 영생의 길로 인도받고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햇빛이 있어야 싹이 잘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가 보고 듣고 깨달아 양식 삼은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빛이 되어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어둠을 물리치고 깨끗한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므로 믿음의 씨앗이 잘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2. 믿음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방법
1) 심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농부가 씨앗을 심을 때 어떤 씨앗은 깊게, 어떤 씨앗은 얕게 심으며 어떤 씨앗은 논에, 어떤 씨앗은 밭에 심는 등 씨앗에 따라 심는 방법이 다르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도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심어야 합니다. 만일 기도의 씨앗을 심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르짖어 기도하고(렘 33:3), 예수님처럼 무릎을 꿇고 습관을 좇아 중심 바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눅 22:39-46).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기도할 때 신속히 아름다운 응답의 열매를 거둘 수 있으며 그 밖에 다른 믿음의 씨앗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 믿음을 가지고 심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6-7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영계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큰 사람은 그만큼 큰 옥토의 마음을 가진 것이니 많이 심을 것이요, 많이 심었으니 많이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에는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심어야 합니다.
3) 정성껏 가꾸어 주어야 합니다
씨앗을 심었으면 때를 따라 물을 주고 벌레가 먹지 않도록 약을 뿌려 주며 잘 자라도록 비료도 주고 잡초도 뽑아 주어야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마음에 심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가꾸어 주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와 같이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양식 삼으며 사명을 잘 감당할 때 믿음의 싹이 잘 자라나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3.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
농부가 씨앗을 심고 열심히 일하되 낙심하지 않고 인내하며 가꾸어 주면 때가 이르매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가 맺혀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씨앗을 심으면 영적으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꽃이 피면 향기를 발하게 되고 벌과 나비가 모여드는 것처럼 믿음의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밭에 심고 가꾸어 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만큼 영적인 꽃을 피워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고후 2:15). 뿐만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므로 착한 행실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마 5:13-16).
이처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먹으나 마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영위하게 될 뿐 아니라 전도의 열매가 맺히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며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4.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므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정성껏 믿음으로 심고 30배, 60배, 100배로 많은 열매를 거두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사르밧 과부는 시내가 마를 정도의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남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공궤함으로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왕상 17:8-16).
또한 누가복음 21장에 나오는 한 과부는 두 렙돈이라는 극히 적은 돈이지만 생활비 전부를 헌금 궤에 넣었습니다. 그때 이를 지켜보시던 예수님께서 과부를 칭찬하셨으니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겠습니까? 이처럼 우리도 기도로 심으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고, 충성 봉사하면 영육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는 등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많이 심고 많이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식언치 아니하시며(민 23:19)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농부가 땅을 개간하여 옥토가 되면 많은 수확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마음 밭을 개간하여 좋은 밭이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형통한 길로 인도받게 됩니다. 따라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영육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6-20
제25과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자 (2)
갈 5:16-26
읽을말씀 : 갈 5:16-26 | 외울말씀 : 갈 5:22-23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도록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 맺히면 그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5. 자 비
자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상대가 상식 밖의 행동을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를 헤아려 포용해 주지요. 골로새서 3:13-14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말씀합니다. 자비의 열매를 맺으려면 자신이 먼저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자기가 옳다고 하는 굳은 자기적인 마음이 자비의 마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지요. 우리가 비진리를 벗고 온전한 영의 사람이 되기 전에는 결코 스스로 옳다 할 수 없습니다. 육적인 자기를 버리고 모든 것을 넓게 받아들이며 사랑의 마음으로 상대를 돌아볼 때에 비로소 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고, 다윗도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을 선대하였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상대에게 힘과 위로를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6. 양 선
양선은 성령으로 영을 낳아 진리의 마음이 되어 선만 추구하려는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12:19-20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양선의 마음이 잘 나와 있지요.
양선의 마음은 첫째, 다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고 온갖 궤계를 꾸민 사람과 맞서거나 변론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선의 지혜로 그들을 일깨우고 피할 자리는 피하셨지요. 사람들은 권면한다면서 선으로 깨우쳐 주기보다 상대의 티를 보고 지적하기 때문에 다툼이 생깁니다. 변론하거나 상대가 받지 못하는데 계속 주면 다툼이 일기 마련이지요. 아무리 좋은 것도 상대가 받지 못하면 삼가야 합니다. 선으로 상대를 품고 선의 지혜를 좇는다면 화평할 수 있습니다.
둘째, 들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를 인정하고 알아 주기를 바라며 남을 누르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0:18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면 자연히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모세나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심으로 놀라운 권능이 나타났고 사람들이 신과 같이 여겼지요.
셋째, 상한 갈대를 꺾지 않습니다. 상한 갈대란 악한 세상에서 세파에 시달리고, 마음의 상처를 받아 그 심령이 상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갈대가 상하면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대로 두면 더 썩어 들어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람도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결코 외면치 않고 맞아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양선의 절정에 해당합니다.
넷째,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습니다. 심지는 양초나 등잔, 석유난로에서 실이나 헝겊을 꼬아서 꽂고 불을 붙이는 부분입니다. 심지가 꺼져간다면 불이 꺼져가고 있지만 불씨는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꺼져가는 심지란 마음이 악으로 심히 물들어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고 있는 사람이지요. 이러한 사람이라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양선입니다. 주님은 죄 가운데 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어찌하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지요.
7. 충 성
충성은 먼저 자신에게 맡긴 일 이상을 하는 것입니다. 급료를 주며 일을 맡겼을 때 그 일만 잘했다고 충성했다 하지는 않습니다. 삯을 받았어도 시간, 물질, 몸을 아끼지 않고 그 이상의 일을 했을 때 충성이라 하지요(마 25장). 우리가 주 안에서 충성하고 희생하는 것은 결국 썩지 아니할 참되고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명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생명을 다해 감당할 때 하나님께 "네가 충성했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지요.
다음은 온 집에 충성이 있습니다. 민수기 12:7에 하나님께서 모세 선지자에게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칭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 직분자로서, 형제간에, 가정에서 부모나 자녀에게, 직장에서 등 각 위치에서 해야 할 충성이 있지요. 우리가 한두 가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입니다.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면 적은 시간을 투자해도 모든 분야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자기 유익과 편안함을 좇기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전반적으로 돌아보며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충성이 있습니다. 계시록 2:10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합니다. 단지 육의 생명이 다하기까지 충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충성입니다. 계명을 지키고 사명을 잘 감당하며 모든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한 사도 바울처럼 육을 철저히 죽이고 성결하여 충성할 때 참된 것입니다. 죄를 버리는 것이 상급이 되지는 않지만 성결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만큼 모든 분야에 영적인 충성을 할 수 있습니다.
8. 온 유
온유란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덕이 있어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와서 쉴 수 있고 그늘이 되며 모든 사람과 걸림이 되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이지요. 그러면 옥토같이 거친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축복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5:5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많은 사람을 품으므로 천국에서 영원한 기업인 하늘나라 땅을 상급으로 받으며 큰 자랑이 되지요. 온유의 열매를 맺으려면 마음속에 있는 거친 것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 비진리를 빼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며 불같이 기도할 때 마음이 개간되어 옥토가 되지요. 상대와 걸리고 원수 맺고 미움, 시기, 다툼이 있는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개간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굳은 의지와 노력에 따라 이룰 수 있습니다. 옥토에는 무엇을 심어도 신속히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온유한 마음이 되면 다른 성령의 열매도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그만큼 온유의 열매가 중요하며 성결을 이루는 데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온유의 열매를 맺음으로 천국의 땅을 기업으로 받기 바랍니다.
9. 절 제
절제는 진리 안에서 알맞게 조절하고 방종하지 않도록 제어한다는 뜻입니다. 절제는 단지 범죄하지 않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온전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주 안에서는 모든 것이 넘칠수록 좋겠다' 생각하겠지만 영에 속한 것일수록 절제를 통해 더욱 질서와 조화가 필요하지요. 아무리 사랑이 많아도 절제하지 못하면 오히려 해가 되고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희락도 마음은 항상 기쁘고 즐거워야 하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절제할 수 있어야지요.
절제가 임한 사람은 모든 일을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않고 질서를 좇아 절제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나서야 할 때와 가만히 있어야 할 때,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분별하지요. 일을 할 때에도 어느 선까지가 자신의 위치에 맞는지, 남의 입장은 물론 자신 때문에 주변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합니다. 자기 생각에 아무리 좋아 보이고 영에 속한 일이라 해도 결코 분수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질서가 깨질 리 없고 주변과도 조화를 이루며 화평할 수 있지요.
그러나 절제하지 못하면 무분별한 행동으로 질서와 규칙을 무너뜨리고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자신은 좋은 의도에서 했어도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도를 넘음으로 질서를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오지요. 일을 서두름으로 그르치거나 사람들과 불편해집니다. 절제하지 못한 만큼 잘못하여 일을 그르치게 되고 서두르다 보면 분별력이 떨어져 이런저런 판단 정죄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령 사랑하라 하니 무조건 사랑을 베풀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 온전히 영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감정이 앞서는 육적인 사랑이 되지 않도록 절제해야 하지요.
절제란 자신을 다스리는 힘으로 참 마음이 되면 마음먹은 대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거짓이 없고 간사함이 없는 진실한 마음이 되면 자기가 정한 것을 그대로 행할 수 있지요. 이것이 처음부터 잘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일부터 결심한 것을 지키는 훈련을 하다 보면 결국 이루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9:25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하신 말씀처럼 영원한 것을 얻으려면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지키며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성결하여 온전해지는 만큼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영적 의미를 잘 양식 삼아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도록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 맺히면 그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5. 자 비
자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상대가 상식 밖의 행동을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를 헤아려 포용해 주지요. 골로새서 3:13-14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말씀합니다. 자비의 열매를 맺으려면 자신이 먼저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자기가 옳다고 하는 굳은 자기적인 마음이 자비의 마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지요. 우리가 비진리를 벗고 온전한 영의 사람이 되기 전에는 결코 스스로 옳다 할 수 없습니다. 육적인 자기를 버리고 모든 것을 넓게 받아들이며 사랑의 마음으로 상대를 돌아볼 때에 비로소 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고, 다윗도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을 선대하였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상대에게 힘과 위로를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6. 양 선
양선은 성령으로 영을 낳아 진리의 마음이 되어 선만 추구하려는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12:19-20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양선의 마음이 잘 나와 있지요.
양선의 마음은 첫째, 다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고 온갖 궤계를 꾸민 사람과 맞서거나 변론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선의 지혜로 그들을 일깨우고 피할 자리는 피하셨지요. 사람들은 권면한다면서 선으로 깨우쳐 주기보다 상대의 티를 보고 지적하기 때문에 다툼이 생깁니다. 변론하거나 상대가 받지 못하는데 계속 주면 다툼이 일기 마련이지요. 아무리 좋은 것도 상대가 받지 못하면 삼가야 합니다. 선으로 상대를 품고 선의 지혜를 좇는다면 화평할 수 있습니다.
둘째, 들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를 인정하고 알아 주기를 바라며 남을 누르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0:18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면 자연히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모세나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심으로 놀라운 권능이 나타났고 사람들이 신과 같이 여겼지요.
셋째, 상한 갈대를 꺾지 않습니다. 상한 갈대란 악한 세상에서 세파에 시달리고, 마음의 상처를 받아 그 심령이 상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갈대가 상하면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대로 두면 더 썩어 들어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람도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결코 외면치 않고 맞아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양선의 절정에 해당합니다.
넷째,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습니다. 심지는 양초나 등잔, 석유난로에서 실이나 헝겊을 꼬아서 꽂고 불을 붙이는 부분입니다. 심지가 꺼져간다면 불이 꺼져가고 있지만 불씨는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꺼져가는 심지란 마음이 악으로 심히 물들어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고 있는 사람이지요. 이러한 사람이라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양선입니다. 주님은 죄 가운데 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어찌하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지요.
7. 충 성
충성은 먼저 자신에게 맡긴 일 이상을 하는 것입니다. 급료를 주며 일을 맡겼을 때 그 일만 잘했다고 충성했다 하지는 않습니다. 삯을 받았어도 시간, 물질, 몸을 아끼지 않고 그 이상의 일을 했을 때 충성이라 하지요(마 25장). 우리가 주 안에서 충성하고 희생하는 것은 결국 썩지 아니할 참되고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명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생명을 다해 감당할 때 하나님께 "네가 충성했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지요.
다음은 온 집에 충성이 있습니다. 민수기 12:7에 하나님께서 모세 선지자에게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칭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 직분자로서, 형제간에, 가정에서 부모나 자녀에게, 직장에서 등 각 위치에서 해야 할 충성이 있지요. 우리가 한두 가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입니다.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면 적은 시간을 투자해도 모든 분야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자기 유익과 편안함을 좇기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전반적으로 돌아보며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충성이 있습니다. 계시록 2:10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합니다. 단지 육의 생명이 다하기까지 충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충성입니다. 계명을 지키고 사명을 잘 감당하며 모든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한 사도 바울처럼 육을 철저히 죽이고 성결하여 충성할 때 참된 것입니다. 죄를 버리는 것이 상급이 되지는 않지만 성결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만큼 모든 분야에 영적인 충성을 할 수 있습니다.
8. 온 유
온유란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덕이 있어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와서 쉴 수 있고 그늘이 되며 모든 사람과 걸림이 되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이지요. 그러면 옥토같이 거친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축복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5:5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많은 사람을 품으므로 천국에서 영원한 기업인 하늘나라 땅을 상급으로 받으며 큰 자랑이 되지요. 온유의 열매를 맺으려면 마음속에 있는 거친 것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 비진리를 빼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며 불같이 기도할 때 마음이 개간되어 옥토가 되지요. 상대와 걸리고 원수 맺고 미움, 시기, 다툼이 있는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개간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굳은 의지와 노력에 따라 이룰 수 있습니다. 옥토에는 무엇을 심어도 신속히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온유한 마음이 되면 다른 성령의 열매도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그만큼 온유의 열매가 중요하며 성결을 이루는 데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온유의 열매를 맺음으로 천국의 땅을 기업으로 받기 바랍니다.
9. 절 제
절제는 진리 안에서 알맞게 조절하고 방종하지 않도록 제어한다는 뜻입니다. 절제는 단지 범죄하지 않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온전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주 안에서는 모든 것이 넘칠수록 좋겠다' 생각하겠지만 영에 속한 것일수록 절제를 통해 더욱 질서와 조화가 필요하지요. 아무리 사랑이 많아도 절제하지 못하면 오히려 해가 되고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희락도 마음은 항상 기쁘고 즐거워야 하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절제할 수 있어야지요.
절제가 임한 사람은 모든 일을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않고 질서를 좇아 절제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나서야 할 때와 가만히 있어야 할 때,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분별하지요. 일을 할 때에도 어느 선까지가 자신의 위치에 맞는지, 남의 입장은 물론 자신 때문에 주변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합니다. 자기 생각에 아무리 좋아 보이고 영에 속한 일이라 해도 결코 분수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질서가 깨질 리 없고 주변과도 조화를 이루며 화평할 수 있지요.
그러나 절제하지 못하면 무분별한 행동으로 질서와 규칙을 무너뜨리고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자신은 좋은 의도에서 했어도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도를 넘음으로 질서를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오지요. 일을 서두름으로 그르치거나 사람들과 불편해집니다. 절제하지 못한 만큼 잘못하여 일을 그르치게 되고 서두르다 보면 분별력이 떨어져 이런저런 판단 정죄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령 사랑하라 하니 무조건 사랑을 베풀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 온전히 영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감정이 앞서는 육적인 사랑이 되지 않도록 절제해야 하지요.
절제란 자신을 다스리는 힘으로 참 마음이 되면 마음먹은 대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거짓이 없고 간사함이 없는 진실한 마음이 되면 자기가 정한 것을 그대로 행할 수 있지요. 이것이 처음부터 잘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일부터 결심한 것을 지키는 훈련을 하다 보면 결국 이루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9:25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하신 말씀처럼 영원한 것을 얻으려면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지키며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성결하여 온전해지는 만큼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영적 의미를 잘 양식 삼아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6-13
제24과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자 (1)
갈 5:16-26
읽을말씀 : 갈 5:16-26 | 외울말씀 : 갈 5:22-23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도록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어떤 곳을 가고자 할 때에 목표 지점을 알고 가면 헤매지 않고 신속 정확하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점을 향해 가는 중간의 큰 정거장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팔복, 사랑장이지요. 즉 자신이 성결하여 얼마큼 하나님 보좌 가까이 갈 수 있고, 주님의 마음을 닮았는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란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점차 성장함으로 맺는 열매입니다. 오늘은 갈라디아서 5:22-23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사 랑
하나님은 근본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을 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에 주신 사랑은 영적 사랑이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가 들어와 영이 죽게 되었고 그 후 육적인 사랑으로 변질되었지요. 육의 사랑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고 자기 뜻대로 따라 주지 않으면 힘들어하고 자신의 유익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변합니다.
반면 영적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듯이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무례히 행치도 않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지도 않지요. 그런데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보다도 더 높은 차원으로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의 사랑입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잘해 줘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자기를 희생하며 주는 진정한 사랑이지요.
영적 사랑은 죄와 악과 불법을 버리고 성결한 만큼 임합니다. 모세나 사도 바울은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지라도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지옥에서 세세토록 고통을 받는다 해도 자기 민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그리 되기를 원했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베푸셨습니까?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세 전에 예비하셨습니다. 때가 되자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지요. 아들까지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영적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2. 희 락
희락은 어떠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우리는 현실적으로는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희락은 우리가 육을 버리고 영으로 이뤄 나가는 만큼 임합니다.
고통과 슬픔, 근심 걱정 등은 우리 안에 죄악과 불법이라는 육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영을 사모하고 달려간다면 근심이나 걱정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믿는다면 구원의 기쁨이 항상 넘칠 수밖에 없지요.
빌립보서 4:4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천국 소망으로 항상 기뻐하며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선을 좇고자 할 때 희락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힐 것입니다.
3. 화 평
화평을 사전에서는 '마음이 평안함'이라 말합니다. 누구와 걸림이 없고 부딪치지 않으며 평화롭게 지낼 때 화평하다 하지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성령이 내주하여 진리를 좇게 주관하십니다. 비진리를 행하면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이 탄식하여 곤고해지지요. 사단이 비진리 마음을 주관하여 자기 유익을 좇게 만드니 화평이 깨지고 다툼과 갈등이 생깁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령이 주관하시는 대로 진리를 좇아야 합니다. 화평이 깨지면 가정이나 사회, 교회나 국가든 시험 환난이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9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과 화평하다 해도 정작 하나님과의 화평이 깨지면 안 되지요. 사람들과 화평도 말씀 안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가족과 화평하기 위해 진리를 어기고 하나님을 서운케 한다든가,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하나님과 화평을 깨는 사람도 있지요. 하나님과 화평하여 기쁘시게 하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케 해 주십니다(잠 16:7).
하나님과 화평하려면 무엇보다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의 근본 악을 다 뽑아야 하나님과 온전히 화평할 수 있지요.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신 것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의 담을 허물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버리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참된 화평을 이루는 첫걸음입니다.
다음으로, 자신과 화평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로 인한 마음의 싸움을 마쳐야 합니다.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 마음을 벗고 진리를 좇을 때 자신과도 화평을 이루며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럴 때라야 온전한 화평을 이룰 수 있지요.
4. 오래 참음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랑을 이루기 위한 오래 참음이 나옵니다. 즉 자신을 심히 괴롭히는 사람이나 시련에 대한 오래 참음이지요. 반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오래 참음은 모든 것에 대한 참음으로서 사랑장의 차원보다 높습니다. 만약 육이 없고 영만 있다면 '오래 참음'이 필요 없습니다. 악이 있기 때문에 참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화가 나는데 오래 참으라 말씀하시니까 억지로 참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전히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누르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악 속에서 참는 것이므로 결코 오래 참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선과 진리 가운데서 참을 필요조차 없는 오래 참음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임하면 어떠한 사람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한다든지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습니다.
오래 참음을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면 첫째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것이 있습니다. 쌓은 악이 많은 만큼 사소한 일 하나에도 힘들게 참습니다. 그러다 참지 못해 온갖 악이 나올 때에는 비진리를 행하고 말지요. 그러나 마음을 진리로 일구기 위해 오래 참으며 악을 하나하나 버려 나갈 때 열매가 맺힙니다. 이것이 비진리를 버리고 마음을 개조해 나가는 오래 참음이지요.
둘째로,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자기 의견이나 생각,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선으로 이해하고 참는 것입니다. 가령 부부간에도 성장 배경과 환경이 달라 의견이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 서로를 이해하려 하고 선으로 생각하면 싸우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지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영적으로도 마음에서 비진리를 뽑아내고 영으로 일굴수록 겸손해집니다. 곧 주님의 마음이 되어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으로 품지요. 나아가 모든 사람과도 화평하고 거룩함을 좇으니 사람 사이에 오래 참음도 이루어집니다.
셋째,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올린 기도와 간구가 응답이 올 때까지의 오래 참음이지요. 당장 응답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기에 가장 적절한 때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응답을 받으려면 반드시 참고 기다리는 오래 참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합한 사람이었지만 오랜 세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오래 참았기 때문에 왕이 되어 다윗의 계보를 따라 주님이 나오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래 참음에는 인내와 절제가 따릅니다. 막 11:24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합니다. 받은 줄로 믿고 참고 기다리면 힘들지 않습니다. 이때 오래 참음이 없다면 기도는 열심히 해 놓고 응답이 늦어지니 포기하거나 원망하므로 응답을 못 받지요.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면 응답이 올 때까지 의심 없이 기다리는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했습니다. 참음이 없는 사람은 선을 행하고도 당장 보이는 보상이 없으면 '선을 행해도 돌아오는 게 없고 오히려 손해다'며 낙심합니다. 한 때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도 결국 참지 못하고 죄를 다시 지으며 세상과 짝하지요. 그러나 오래 참음의 열매가 맺히면 참사랑을 가지고 믿음으로 계속하여 선을 행하기 때문에 때가 이르러 거두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으로 참으면 감정만 쌓이지만 선으로 오래 참으면 결국 악의 뿌리까지 뽑혀져 진리만 남게 됩니다.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선으로 참으면 마침내 참을 것이 없어지고 마음에는 오직 사랑과 긍휼, 용서가 임하지요. 나아가 악이 없기 때문에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기쁨과 행복만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령의 소욕을 좇아 열심히 행하여 성령의 열매 맺음으로써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온전히 갖추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도록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어떤 곳을 가고자 할 때에 목표 지점을 알고 가면 헤매지 않고 신속 정확하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점을 향해 가는 중간의 큰 정거장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팔복, 사랑장이지요. 즉 자신이 성결하여 얼마큼 하나님 보좌 가까이 갈 수 있고, 주님의 마음을 닮았는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란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점차 성장함으로 맺는 열매입니다. 오늘은 갈라디아서 5:22-23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사 랑
하나님은 근본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을 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에 주신 사랑은 영적 사랑이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가 들어와 영이 죽게 되었고 그 후 육적인 사랑으로 변질되었지요. 육의 사랑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고 자기 뜻대로 따라 주지 않으면 힘들어하고 자신의 유익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변합니다.
반면 영적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듯이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무례히 행치도 않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지도 않지요. 그런데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보다도 더 높은 차원으로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의 사랑입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잘해 줘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자기를 희생하며 주는 진정한 사랑이지요.
영적 사랑은 죄와 악과 불법을 버리고 성결한 만큼 임합니다. 모세나 사도 바울은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지라도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지옥에서 세세토록 고통을 받는다 해도 자기 민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그리 되기를 원했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베푸셨습니까?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세 전에 예비하셨습니다. 때가 되자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지요. 아들까지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영적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2. 희 락
희락은 어떠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우리는 현실적으로는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희락은 우리가 육을 버리고 영으로 이뤄 나가는 만큼 임합니다.
고통과 슬픔, 근심 걱정 등은 우리 안에 죄악과 불법이라는 육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영을 사모하고 달려간다면 근심이나 걱정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믿는다면 구원의 기쁨이 항상 넘칠 수밖에 없지요.
빌립보서 4:4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천국 소망으로 항상 기뻐하며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선을 좇고자 할 때 희락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힐 것입니다.
3. 화 평
화평을 사전에서는 '마음이 평안함'이라 말합니다. 누구와 걸림이 없고 부딪치지 않으며 평화롭게 지낼 때 화평하다 하지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성령이 내주하여 진리를 좇게 주관하십니다. 비진리를 행하면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이 탄식하여 곤고해지지요. 사단이 비진리 마음을 주관하여 자기 유익을 좇게 만드니 화평이 깨지고 다툼과 갈등이 생깁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령이 주관하시는 대로 진리를 좇아야 합니다. 화평이 깨지면 가정이나 사회, 교회나 국가든 시험 환난이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9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과 화평하다 해도 정작 하나님과의 화평이 깨지면 안 되지요. 사람들과 화평도 말씀 안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가족과 화평하기 위해 진리를 어기고 하나님을 서운케 한다든가,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하나님과 화평을 깨는 사람도 있지요. 하나님과 화평하여 기쁘시게 하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케 해 주십니다(잠 16:7).
하나님과 화평하려면 무엇보다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의 근본 악을 다 뽑아야 하나님과 온전히 화평할 수 있지요.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신 것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의 담을 허물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버리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참된 화평을 이루는 첫걸음입니다.
다음으로, 자신과 화평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로 인한 마음의 싸움을 마쳐야 합니다.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 마음을 벗고 진리를 좇을 때 자신과도 화평을 이루며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럴 때라야 온전한 화평을 이룰 수 있지요.
4. 오래 참음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랑을 이루기 위한 오래 참음이 나옵니다. 즉 자신을 심히 괴롭히는 사람이나 시련에 대한 오래 참음이지요. 반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오래 참음은 모든 것에 대한 참음으로서 사랑장의 차원보다 높습니다. 만약 육이 없고 영만 있다면 '오래 참음'이 필요 없습니다. 악이 있기 때문에 참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화가 나는데 오래 참으라 말씀하시니까 억지로 참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전히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누르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악 속에서 참는 것이므로 결코 오래 참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선과 진리 가운데서 참을 필요조차 없는 오래 참음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임하면 어떠한 사람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한다든지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습니다.
오래 참음을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면 첫째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것이 있습니다. 쌓은 악이 많은 만큼 사소한 일 하나에도 힘들게 참습니다. 그러다 참지 못해 온갖 악이 나올 때에는 비진리를 행하고 말지요. 그러나 마음을 진리로 일구기 위해 오래 참으며 악을 하나하나 버려 나갈 때 열매가 맺힙니다. 이것이 비진리를 버리고 마음을 개조해 나가는 오래 참음이지요.
둘째로,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자기 의견이나 생각,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선으로 이해하고 참는 것입니다. 가령 부부간에도 성장 배경과 환경이 달라 의견이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 서로를 이해하려 하고 선으로 생각하면 싸우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지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영적으로도 마음에서 비진리를 뽑아내고 영으로 일굴수록 겸손해집니다. 곧 주님의 마음이 되어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으로 품지요. 나아가 모든 사람과도 화평하고 거룩함을 좇으니 사람 사이에 오래 참음도 이루어집니다.
셋째,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올린 기도와 간구가 응답이 올 때까지의 오래 참음이지요. 당장 응답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기에 가장 적절한 때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응답을 받으려면 반드시 참고 기다리는 오래 참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합한 사람이었지만 오랜 세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오래 참았기 때문에 왕이 되어 다윗의 계보를 따라 주님이 나오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래 참음에는 인내와 절제가 따릅니다. 막 11:24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합니다. 받은 줄로 믿고 참고 기다리면 힘들지 않습니다. 이때 오래 참음이 없다면 기도는 열심히 해 놓고 응답이 늦어지니 포기하거나 원망하므로 응답을 못 받지요.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면 응답이 올 때까지 의심 없이 기다리는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했습니다. 참음이 없는 사람은 선을 행하고도 당장 보이는 보상이 없으면 '선을 행해도 돌아오는 게 없고 오히려 손해다'며 낙심합니다. 한 때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도 결국 참지 못하고 죄를 다시 지으며 세상과 짝하지요. 그러나 오래 참음의 열매가 맺히면 참사랑을 가지고 믿음으로 계속하여 선을 행하기 때문에 때가 이르러 거두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으로 참으면 감정만 쌓이지만 선으로 오래 참으면 결국 악의 뿌리까지 뽑혀져 진리만 남게 됩니다.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선으로 참으면 마침내 참을 것이 없어지고 마음에는 오직 사랑과 긍휼, 용서가 임하지요. 나아가 악이 없기 때문에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기쁨과 행복만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령의 소욕을 좇아 열심히 행하여 성령의 열매 맺음으로써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온전히 갖추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008-06-06
제23과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
롬 10:9-10, 롬 6:15-23
읽을말씀 : 롬 10:9-10, 롬 6:15-23 | 외울말씀 : 롬 10:10
교육목표 : 죄인과 의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 구원에 이르는 방법을 살펴봄으로 참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1. 죄인과 의인에 대한 구분
아담이 범죄하여 죄가 들어온 후 죄성을 이어받아 태어난 모든 인류는 죄의 삯으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말씀대로 모든 사람은 죄 아래 영원히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을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셨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의롭게 되었으니 의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당신은 죄인입니다." 하면 "제가 왜 죄인입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하지요. 이 세상에는 각 나라마다 법이 있어서 그 법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 죄인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고 간음하면 죄를 지은 것이라고 인정하지만 마음속으로 누구를 미워한다고 해서 죄인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 마음속에 있는 근본의 악까지 발견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5:28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말씀합니다. 즉 행위뿐만 아니라 마음에 품은 것까지도 죄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기준하여 혹여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3:20에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죄를 지니고 있을까요?
먼저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한 원죄가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아담의 기를 이어받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는데(롬 5:12) 이것을 원죄(原罪)라 합니다.
다음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짓는 자범죄(自犯罪)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하고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고 수군수군하고 비방하며 능욕하고 교만하고 자랑하며 악을 도모하고 부모를 거역하며 우매하고 배약하며 무정하고 무자비한 일 등입니다(롬 1:29-31).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말씀을 알게 되면 원죄와 자범죄를 인정하고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자백하게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를 자백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죄를 기억지 않으십니다(히 8:12).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그 죄과를 옮겨 주시지요(시 103:12).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우리가 마음 중심에서 돌이켜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고백이란 머리로만 인정하고 말하는 것이니 만일 입술로만 죄를 고백할 뿐 또다시 죄를 지어 나간다면 이는 자백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2:13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자백하고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 해도(롬 3:30)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참된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결의 단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죄를 버려 나가는 과정이므로 혹여 죄를 지었다면 신속히 자백함으로 항상 의인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도행전 3:19을 보면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고 영생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롬 6:17-19).
그러면 아직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초신자 경우는 어떻습니까?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나타난 행위를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마음 중심을 보시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의의 종이라고 칭하여 주십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혈기가 가득하여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심지어 구타도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한 후 혈기를 버리고자 결심하였습니다. 불같은 기도를 통해 혈기를 버리려고 한다면 처음에는 잘 안 되는 것 같지만, 점차 그 횟수가 줄어들고 결국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마음 중심에서 죄와 악을 버리려고 한다면 점차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인이라 칭하지 않으십니다.
반면 세상 것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과 짝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직도 죄의 종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머리가 좋지 못한 자녀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부모는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안타까워하며 위로하고 권면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못하면서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놀려고만 한다면 어찌 부모가 자녀를 긍휼히 여길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지, 세상과 짝하려고 하는지 우리의 중심을 감찰하십니다. 나는 죄 없다 하며 스스로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오직 말씀으로 비추어 자신의 죄를 중심에서 자백하고 돌이켜 회개해야 하지요. 로마서 10:9-10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구세주이심을 입술로 시인하고 부활하신 것을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의 섭리와 보혈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곧 죄로 인해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려 죽으셨고,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귀한 보혈을 흘려 주심을 믿는 것이지요.
이 사실이 진정 마음에서 믿어지면 자신을 위해 대신 고난당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통회자복이 나오게 됩니다. 자신이 지었던 죄들이 낱낱이 떠오르며 이제는 말씀대로 빛 가운데 살겠노라고 하는 회개의 기도가 나오지요. 이러한 회개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그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지요.
요한계시록 20:15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27에는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말씀하지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가도 성령이 소멸되고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흐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5에 보면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했고, 출애굽기 32:32에는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말씀합니다.
성경에 이러한 표현이 나오는 것은 생명책에 이름이 한 번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그 이름이 흐려지고 지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5:19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 하신 것도 성령이 소멸될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결코 성령을 소멸하여 사망에 이르는 죄만큼은 짓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16에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도 온전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기까지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크고 작은 죄를 짓습니다. 그래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다시 천국을 향해 나가지요. 이처럼 죄를 지어도 사함 받으므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가 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함 받을 수 없는 사망에 이르는 죄도 있습니다.
첫 번째 경우는 성령 훼방, 거역, 모독이며(마 12:31-32, 막 3:29, 눅 12:10), 두 번째는 많은 은혜를 받고 진리를 알면서도 짐짓 죄를 범하고 타락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이지요(히 6:4-6, 히 10:26-27). 세 번째는 갈라디아서 5:19-21에 기록된 대로 현저한 육체의 일을 행한 경우로서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이 하나님 말씀대로 이뤄지듯이 심판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이뤄집니다. 우리 영혼이 온전히 천국에 이를 때까지 항상 영으로 깨어 신부 단장을 잘함으로 영롱한 보석과 같이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드립니다.
교육목표 : 죄인과 의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 구원에 이르는 방법을 살펴봄으로 참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1. 죄인과 의인에 대한 구분
아담이 범죄하여 죄가 들어온 후 죄성을 이어받아 태어난 모든 인류는 죄의 삯으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말씀대로 모든 사람은 죄 아래 영원히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을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셨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의롭게 되었으니 의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당신은 죄인입니다." 하면 "제가 왜 죄인입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하지요. 이 세상에는 각 나라마다 법이 있어서 그 법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 죄인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고 간음하면 죄를 지은 것이라고 인정하지만 마음속으로 누구를 미워한다고 해서 죄인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 마음속에 있는 근본의 악까지 발견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5:28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말씀합니다. 즉 행위뿐만 아니라 마음에 품은 것까지도 죄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기준하여 혹여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3:20에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죄를 지니고 있을까요?
먼저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한 원죄가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아담의 기를 이어받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는데(롬 5:12) 이것을 원죄(原罪)라 합니다.
다음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짓는 자범죄(自犯罪)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하고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고 수군수군하고 비방하며 능욕하고 교만하고 자랑하며 악을 도모하고 부모를 거역하며 우매하고 배약하며 무정하고 무자비한 일 등입니다(롬 1:29-31).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말씀을 알게 되면 원죄와 자범죄를 인정하고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자백하게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를 자백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죄를 기억지 않으십니다(히 8:12).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그 죄과를 옮겨 주시지요(시 103:12).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우리가 마음 중심에서 돌이켜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고백이란 머리로만 인정하고 말하는 것이니 만일 입술로만 죄를 고백할 뿐 또다시 죄를 지어 나간다면 이는 자백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2:13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자백하고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 해도(롬 3:30)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참된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결의 단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죄를 버려 나가는 과정이므로 혹여 죄를 지었다면 신속히 자백함으로 항상 의인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도행전 3:19을 보면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고 영생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롬 6:17-19).
그러면 아직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초신자 경우는 어떻습니까?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나타난 행위를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마음 중심을 보시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의의 종이라고 칭하여 주십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혈기가 가득하여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심지어 구타도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한 후 혈기를 버리고자 결심하였습니다. 불같은 기도를 통해 혈기를 버리려고 한다면 처음에는 잘 안 되는 것 같지만, 점차 그 횟수가 줄어들고 결국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마음 중심에서 죄와 악을 버리려고 한다면 점차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인이라 칭하지 않으십니다.
반면 세상 것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과 짝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직도 죄의 종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머리가 좋지 못한 자녀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부모는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안타까워하며 위로하고 권면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못하면서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놀려고만 한다면 어찌 부모가 자녀를 긍휼히 여길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지, 세상과 짝하려고 하는지 우리의 중심을 감찰하십니다. 나는 죄 없다 하며 스스로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오직 말씀으로 비추어 자신의 죄를 중심에서 자백하고 돌이켜 회개해야 하지요. 로마서 10:9-10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구세주이심을 입술로 시인하고 부활하신 것을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의 섭리와 보혈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곧 죄로 인해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려 죽으셨고,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귀한 보혈을 흘려 주심을 믿는 것이지요.
이 사실이 진정 마음에서 믿어지면 자신을 위해 대신 고난당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통회자복이 나오게 됩니다. 자신이 지었던 죄들이 낱낱이 떠오르며 이제는 말씀대로 빛 가운데 살겠노라고 하는 회개의 기도가 나오지요. 이러한 회개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그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지요.
요한계시록 20:15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27에는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말씀하지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가도 성령이 소멸되고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흐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5에 보면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했고, 출애굽기 32:32에는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말씀합니다.
성경에 이러한 표현이 나오는 것은 생명책에 이름이 한 번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그 이름이 흐려지고 지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5:19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 하신 것도 성령이 소멸될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결코 성령을 소멸하여 사망에 이르는 죄만큼은 짓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16에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도 온전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기까지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크고 작은 죄를 짓습니다. 그래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다시 천국을 향해 나가지요. 이처럼 죄를 지어도 사함 받으므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가 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함 받을 수 없는 사망에 이르는 죄도 있습니다.
첫 번째 경우는 성령 훼방, 거역, 모독이며(마 12:31-32, 막 3:29, 눅 12:10), 두 번째는 많은 은혜를 받고 진리를 알면서도 짐짓 죄를 범하고 타락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이지요(히 6:4-6, 히 10:26-27). 세 번째는 갈라디아서 5:19-21에 기록된 대로 현저한 육체의 일을 행한 경우로서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이 하나님 말씀대로 이뤄지듯이 심판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이뤄집니다. 우리 영혼이 온전히 천국에 이를 때까지 항상 영으로 깨어 신부 단장을 잘함으로 영롱한 보석과 같이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드립니다.
2008-05-30
제22과참 믿음과 영생
히 11:1-3, 마 7:21
읽을말씀 : 히 11:1-3, 마 7:21 | 외울말씀 : 히 11:1
교육목표 : 믿음의 정의를 알아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케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고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신앙생활의 기본 요소이며 응답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 안에서 믿음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즉 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참 믿음은 과연 어떠한 믿음일까요?
1. 육적인 믿음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확인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지식적인 믿음'이나 '이성적인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나무로 책상을 만든 사실을 듣고 보아서 알았다면 의심 없이 믿어집니다. 이처럼 유(有)에서 유(有)의 창조 즉 있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바로 육적인 믿음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뇌 속에 있는 기억장치에 여러 가지 지식을 입력시킵니다.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부모나 형제, 이웃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운 지식들을 기억해 둡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 꺼내어 활용하며 그중에는 진리가 아닌 지식도 많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진리이지만, 이 세상에서 배운 지식에는 변하는 것이 많으며 진리도 있고 비진리도 있지요.
진화론은 하나님 말씀과 다르므로 진리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기 때문에 진리인 줄 생각합니다. 또한 유(有)에서 유(有)의 창조만을 배워 온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입력된 지식과 다르므로 창조론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15을 보면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말씀하십니다. 즉 육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있으면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알기는 하지만 믿지 않고 의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3:12에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하셨지요.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안다고 해도 믿지 못하고 하나님 뜻대로 행치 아니하면 육적인 믿음에 불과하며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2. 영적인 믿음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어지는 믿음을 '영적인 믿음'이라고 하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한 대로 영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제 상이 생겨나고,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제 증거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모세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출 14:21-22). 또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여리고 성을 7일 동안 돌고 외쳤더니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수 6:12-20).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약속의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창 22:3-12).
이처럼 영적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요, 산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3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한 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해도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으려면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3.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려면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1)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들으며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으니 일단 머리 속에 지식으로 담겨져 지식적인 믿음이 되면 그 다음에는 영적인 믿음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잘못 입력된 세상적인 지식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의심을 가져오는 모든 육신의 생각은 불같은 기도를 통해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 깨뜨려 버리고 잘못 입력된 지식은 빼내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여 설교를 듣고 가르침을 받는다 해도 정작 행치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사람이 피아노 교본을 백 번, 천 번 읽었다고 해서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을까요? 이론을 공부했으면 연습을 해야 하고 피나는 연습을 통해서만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듣고 가르침을 받았으면 행해 나가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만큼 영적인 지식이 담깁니다. 기사와 표적과 성도들의 간증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들을 체험하는 만큼 의심이 버려지고 영적인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이 자라는 만큼 하나님 말씀을 좇아 살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의심이 완전히 버려지면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어떤 시험과 환난이 닥쳐와도 승리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됩니다.
야고보서 1:6-7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2:14에는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하시지요. 따라서 모든 의심을 버리고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내보일 때 영적인 믿음과 구원받을 수 있는 참 믿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4. 참 믿음과 영생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 비유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준비를 잘하여 신랑을 맞이했습니다. 반면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지요. 이것은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기름 준비를 잘한 다섯 처녀와 같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한 사람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곧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니 구원받을 수 없지요.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어도 구원받을 수 없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7:22-23). 그것은 바로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불법을 행하며 죄를 지은 사람들은 쭉정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곡과 쭉정이를 분별할 수 있을까요?
쭉정이는 껍질은 있지만 알맹이가 없으므로 행위적으로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 같아도 마음은 진리로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교회에 다니며 십일조와 기도생활을 하고 충성 봉사를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니 참 믿음을 지닌 알곡이 아닙니다.
알곡은 하나님 말씀인 진리로 변화된 영의 사람으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고 모든 일을 믿음으로 행합니다. 금식을 해도 기도를 해도 믿음으로 구하니 응답받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남을 의식하여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함으로 행합니다. 이렇듯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성령의 음성을 좇아 믿음으로 행하니 결국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을 소유하려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있는지, 혹 졸거나 잡념으로 가득 차 있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심을 때에도 기쁨으로 심었는지, 아니면 인색하게 심었는지, 남의 이목 때문에 억지로 심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말씀하신 바를 신실하게 행하시는 분이십니다(민 23:19).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성경 66권에 기록된 축복의 말씀이 그대로 임하게 됩니다. 만약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충성했는데도 마음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이처럼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켜 구원과 영생은 물론, 이 땅에서도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믿음의 정의를 알아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케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고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신앙생활의 기본 요소이며 응답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 안에서 믿음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즉 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참 믿음은 과연 어떠한 믿음일까요?
1. 육적인 믿음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확인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지식적인 믿음'이나 '이성적인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나무로 책상을 만든 사실을 듣고 보아서 알았다면 의심 없이 믿어집니다. 이처럼 유(有)에서 유(有)의 창조 즉 있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바로 육적인 믿음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뇌 속에 있는 기억장치에 여러 가지 지식을 입력시킵니다.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부모나 형제, 이웃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운 지식들을 기억해 둡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 꺼내어 활용하며 그중에는 진리가 아닌 지식도 많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진리이지만, 이 세상에서 배운 지식에는 변하는 것이 많으며 진리도 있고 비진리도 있지요.
진화론은 하나님 말씀과 다르므로 진리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기 때문에 진리인 줄 생각합니다. 또한 유(有)에서 유(有)의 창조만을 배워 온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입력된 지식과 다르므로 창조론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15을 보면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말씀하십니다. 즉 육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있으면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알기는 하지만 믿지 않고 의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3:12에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하셨지요.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안다고 해도 믿지 못하고 하나님 뜻대로 행치 아니하면 육적인 믿음에 불과하며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2. 영적인 믿음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어지는 믿음을 '영적인 믿음'이라고 하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한 대로 영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제 상이 생겨나고,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제 증거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모세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출 14:21-22). 또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여리고 성을 7일 동안 돌고 외쳤더니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수 6:12-20).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약속의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창 22:3-12).
이처럼 영적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요, 산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3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한 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해도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으려면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3.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려면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1)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들으며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으니 일단 머리 속에 지식으로 담겨져 지식적인 믿음이 되면 그 다음에는 영적인 믿음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잘못 입력된 세상적인 지식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의심을 가져오는 모든 육신의 생각은 불같은 기도를 통해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 깨뜨려 버리고 잘못 입력된 지식은 빼내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여 설교를 듣고 가르침을 받는다 해도 정작 행치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사람이 피아노 교본을 백 번, 천 번 읽었다고 해서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을까요? 이론을 공부했으면 연습을 해야 하고 피나는 연습을 통해서만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듣고 가르침을 받았으면 행해 나가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만큼 영적인 지식이 담깁니다. 기사와 표적과 성도들의 간증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들을 체험하는 만큼 의심이 버려지고 영적인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이 자라는 만큼 하나님 말씀을 좇아 살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의심이 완전히 버려지면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어떤 시험과 환난이 닥쳐와도 승리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됩니다.
야고보서 1:6-7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2:14에는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하시지요. 따라서 모든 의심을 버리고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내보일 때 영적인 믿음과 구원받을 수 있는 참 믿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4. 참 믿음과 영생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 비유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준비를 잘하여 신랑을 맞이했습니다. 반면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지요. 이것은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기름 준비를 잘한 다섯 처녀와 같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한 사람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곧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니 구원받을 수 없지요.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어도 구원받을 수 없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7:22-23). 그것은 바로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불법을 행하며 죄를 지은 사람들은 쭉정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곡과 쭉정이를 분별할 수 있을까요?
쭉정이는 껍질은 있지만 알맹이가 없으므로 행위적으로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 같아도 마음은 진리로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교회에 다니며 십일조와 기도생활을 하고 충성 봉사를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니 참 믿음을 지닌 알곡이 아닙니다.
알곡은 하나님 말씀인 진리로 변화된 영의 사람으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고 모든 일을 믿음으로 행합니다. 금식을 해도 기도를 해도 믿음으로 구하니 응답받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남을 의식하여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함으로 행합니다. 이렇듯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성령의 음성을 좇아 믿음으로 행하니 결국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을 소유하려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있는지, 혹 졸거나 잡념으로 가득 차 있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심을 때에도 기쁨으로 심었는지, 아니면 인색하게 심었는지, 남의 이목 때문에 억지로 심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말씀하신 바를 신실하게 행하시는 분이십니다(민 23:19).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성경 66권에 기록된 축복의 말씀이 그대로 임하게 됩니다. 만약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충성했는데도 마음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이처럼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켜 구원과 영생은 물론, 이 땅에서도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5-23
제21과빛 가운데 행할 때 죄 사함
요일 1:5-10, 엡 5:9-13
읽을말씀 : 요일 1:5-10, 엡 5:9-13 | 외울말씀 : 요일 1:7
교육목표 : 빛과 어둠의 정의를 깨닫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은 빛이시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어떤 질병이라도 치료하시고 직장의 문제, 가정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지요.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항상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빛 가운데 나와야 합니다. 요한일서 1:5을 보면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습니다.
빛이란 영적으로 진리를 의미하며 어두움과 정반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 5:8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하셨지요. 이는 빛이 어두움을 물리치듯 빛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진리를 배운 사람은 빛을 발하여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빛의 자녀들이 진리대로 행함으로 맺는 열매가 빛의 열매입니다.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말씀하십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사랑과 갈라디아서 5:22 이하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도 빛의 열매에 속하지요.
그러므로 빛이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사랑하라, 기도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와 같이 선과 의와 사랑에 관한 진리의 모든 말씀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어두움이란 빛이 없는 캄캄한 상태로 영적으로는 죄를 의미하며 결국에는 사망에 이릅니다. 로마서 1:29 이하에 나오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등을 비롯해 성경에 '도적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등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것이 다 어두움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므로 하나님 자녀들이 빛 가운데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범사에 형통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반면 어두움의 세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지요.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어두움 가운데 살면 원수 마귀 사단의 지배를 받습니다. 영계에서는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사이에 사귐이 있다는 뜻이지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요한복음 1:12) 하나님은 우리의 영의 아버지가 되시지요.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말씀합니다(요한일서 1: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것은 진리의 사귐을 말합니다. 영적인 사귐을 가지면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말씀을 듣고 보며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교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 가운데 행하여 죄를 짓는다면 거짓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행치 않으니 결국 사망의 길로 가게 되지요. 사무엘상 2장을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이때 엘리 제사장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그리 말라" 훈계와 권면만 할 뿐이었지요. 징계를 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결국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고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 후손에게까지 저주가 임해 그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는 날이 임할지니라 하였지요(삼상 2:27-36, 4:11-22).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녀는 마땅히 책망하고 징계를 해서라도 돌이키게 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에베소서 5:11-13을 보면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빛 가운데 살지 못한다면 마땅히 사랑으로 권면하고 책망하여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빛 되신 하나님과 온전한 사귐이 있다 할 수 있으며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인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엡 5:9).
3. 주님의 피가 어떻게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가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써 모든 죄를 정결케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람에게는 크게 두 가지 죄가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담을 통해 내려오는 원죄와 성장하면서 스스로 짓는 자범죄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십자가의 도를 믿고 회개하면 모든 죄가 사해져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요한복음 6:54에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말씀하지요. 즉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어둠에서 떠나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 결국은 구원에 이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씀대로 행할 때 차츰 우리 안에 어둠이 사라지지요. 그리고 빛만 거하므로 주님의 피로 씻김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에 세상에서 습관적으로 거짓말했어도 현재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면 그 죄를 용서받게 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먹지 않으면 죽고 맙니다. 이처럼 행함이 따르지 않고 여전히 거짓말을 하면 주님의 보혈이 모든 죄를 씻은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할 때에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열심히 행한 만큼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4. 중심을 보시며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엡 5:9-10).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면 마음의 소원도 이루어 주십니다(시 37:4).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지요.
초신자의 경우 "나는 아직 진리 말씀 안에 살지 못하는데 지금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므로 하나님과 사귀며 빛 가운데 살고자 하는 사람을 죄 있다 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마음속에 간음, 살인, 미움과 같은 어두움이 남았을지라도 죄와 싸워 열심히 버리려고 하면 그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해 주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보혈로 죄 사함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행 3:26) 말씀하시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빛 가운데 거하여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짐으로 하늘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빛과 어둠의 정의를 깨닫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은 빛이시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어떤 질병이라도 치료하시고 직장의 문제, 가정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지요.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항상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빛 가운데 나와야 합니다. 요한일서 1:5을 보면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습니다.
빛이란 영적으로 진리를 의미하며 어두움과 정반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 5:8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하셨지요. 이는 빛이 어두움을 물리치듯 빛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진리를 배운 사람은 빛을 발하여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빛의 자녀들이 진리대로 행함으로 맺는 열매가 빛의 열매입니다.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말씀하십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사랑과 갈라디아서 5:22 이하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도 빛의 열매에 속하지요.
그러므로 빛이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사랑하라, 기도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와 같이 선과 의와 사랑에 관한 진리의 모든 말씀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어두움이란 빛이 없는 캄캄한 상태로 영적으로는 죄를 의미하며 결국에는 사망에 이릅니다. 로마서 1:29 이하에 나오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등을 비롯해 성경에 '도적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등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것이 다 어두움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므로 하나님 자녀들이 빛 가운데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범사에 형통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반면 어두움의 세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지요.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어두움 가운데 살면 원수 마귀 사단의 지배를 받습니다. 영계에서는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사이에 사귐이 있다는 뜻이지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요한복음 1:12) 하나님은 우리의 영의 아버지가 되시지요.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말씀합니다(요한일서 1: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것은 진리의 사귐을 말합니다. 영적인 사귐을 가지면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말씀을 듣고 보며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교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 가운데 행하여 죄를 짓는다면 거짓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행치 않으니 결국 사망의 길로 가게 되지요. 사무엘상 2장을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이때 엘리 제사장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그리 말라" 훈계와 권면만 할 뿐이었지요. 징계를 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결국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고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 후손에게까지 저주가 임해 그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는 날이 임할지니라 하였지요(삼상 2:27-36, 4:11-22).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녀는 마땅히 책망하고 징계를 해서라도 돌이키게 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에베소서 5:11-13을 보면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빛 가운데 살지 못한다면 마땅히 사랑으로 권면하고 책망하여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빛 되신 하나님과 온전한 사귐이 있다 할 수 있으며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인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엡 5:9).
3. 주님의 피가 어떻게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가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써 모든 죄를 정결케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람에게는 크게 두 가지 죄가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담을 통해 내려오는 원죄와 성장하면서 스스로 짓는 자범죄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십자가의 도를 믿고 회개하면 모든 죄가 사해져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요한복음 6:54에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말씀하지요. 즉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어둠에서 떠나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 결국은 구원에 이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씀대로 행할 때 차츰 우리 안에 어둠이 사라지지요. 그리고 빛만 거하므로 주님의 피로 씻김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에 세상에서 습관적으로 거짓말했어도 현재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면 그 죄를 용서받게 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먹지 않으면 죽고 맙니다. 이처럼 행함이 따르지 않고 여전히 거짓말을 하면 주님의 보혈이 모든 죄를 씻은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할 때에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열심히 행한 만큼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4. 중심을 보시며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엡 5:9-10).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면 마음의 소원도 이루어 주십니다(시 37:4).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지요.
초신자의 경우 "나는 아직 진리 말씀 안에 살지 못하는데 지금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므로 하나님과 사귀며 빛 가운데 살고자 하는 사람을 죄 있다 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마음속에 간음, 살인, 미움과 같은 어두움이 남았을지라도 죄와 싸워 열심히 버리려고 하면 그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해 주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보혈로 죄 사함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행 3:26) 말씀하시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빛 가운데 거하여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짐으로 하늘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5-16
제20과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
요 6:52-58
읽을말씀 : 요 6:52-58 | 외울말씀 : 요 1:1, 14
교육목표 : 인자의 살과 피는 무엇이며 어떻게 먹고 마시는지를 알아 영생 을 얻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아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요한복음 6:53-55에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즉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생명을 유지하려면 음식물을 먹고 마셔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영생을 하기 위해서는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1. 인자의 살은 무엇이며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요한복음 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합니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요 1:14).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48절 이하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말씀하십니다. 즉 영생할 수 있는 참된 양식은 인자의 살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의 살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며,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성경 66권 말씀을 양식 삼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비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9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했고, 베드로전서 1:19에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12:9-10에는 어린 양을 먹는 방법이 잘 나와 있습니다.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고 하셨지요. 그러면 인자의 살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날로 먹지 말아야 합니다.
날로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읽고 양식 삼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쓰였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읽으면 하나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고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6:6을 보면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즉 날로 먹는다면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골방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믿음의 선진들이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산이나 빈들에서 기도하셨고(눅 6:12, 막 1:35)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했지요.
그렇다면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골방에 들어가면 외부와 차단되듯이 잡념이나 세상 근심 걱정을 차단하여 중언부언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중심으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참 뜻을 바로 알아 양식 삼아야 합니다.
둘째로, 물에 삶아서 먹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 양을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는 것은 인자의 살 곧 하나님 말씀에 다른 어떤 것을 섞지 말고 순수하게 먹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성인군자나 철학자 등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의 말이나 정치, 사회 이야기 등을 섞어서 전달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사람의 말은 세월이 흐르면 변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변함 없지요.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진리이니 세상적인 이론이나 지식을 섞어서 먹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셋째로, 통째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합니다.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는 것은 어린 양을 통째로 잡아 불에 구워 먹으라는 뜻입니다. 인자의 살 곧 성경 66권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먹어 영적인 양식을 삼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에 맞추어 필요한 부분만을 읽거나 믿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어느 것 하나 빼지 말고 모두 먹되 불에 구워 먹어야 하지요.
여기서 불이란 성령의 불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쓴 것이기 때문에 읽고 들을 때에도 성령의 충만함과 감동함 속에서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지식으로만 쌓일 뿐 결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성령의 감동함으로 대하면 송이꿀같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곧 성령의 불에 구워 먹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말씀이 깨달아지고 소화가 잘되어 영적인 살과 피가 되고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지요.
넷째로,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고 남은 것은 곧 소화(燒火)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해질 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통째로 먹되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은 원수 마귀가 권세를 잡고 있는 흑암의 세상으로서 영적으로는 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가 이르러 참 빛 되신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그때에는 어둠이 물러 가고 모든 것이 온전히 회복되어 빛의 세계인 아침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아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신부단장을 마쳐야 합니다. 또한 인생은 강건해야 70, 80세이므로 언제 주님 앞에 가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열심히 말씀을 양식 삼아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2. 인자의 피는 무엇이며 어떻게 마셔야 하는가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고 물도 함께 마셔야 합니다. 만약 수분을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음식이 소화되지 않으니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자의 살을 먹을 때도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소화할 수 없고 영생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거룩한 보혈이지요. 이 보혈의 공로를 힘입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아 정결케 하므로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가 되는 것입니다(요 6:55).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음료인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일까요?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하신 대로,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뜻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곧 빛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요일 1:5) 말씀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 빛 가운데 행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이지요. 그럴 때 예수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아 구원에 이릅니다.
음식물을 먹으면 잘 소화되어 영양분은 흡수되고 노폐물은 배설되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행하면 진리는 흡수되고 비진리는 배설되므로 검은 마음이 하얀 마음으로 바꾸어집니다. 예를 들어, 미움이라는 죄를 버리기 위해서는 '사랑하라'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명심하여 행할 때 잘 소화되어 '사랑'이라는 영양분은 흡수되고 '미움'이라는 노폐물이 배설됩니다. 이렇게 하여 더럽고 추한 마음을 빼버리니 자연히 하얗고 아름다운 진리의 마음이 됩니다.
3.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은 본래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제외한 각종 과일을 따 먹으며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동행해 주시면서 선과 진리만을 가르쳐 주셨지요.
그러나 아담이 원수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영이 죽고 말았지요. 그 후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고 원수 마귀 사단과 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비진리에 물들어 가고 죄악이 관영해져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선한 마음을 주관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며 악을 버리도록 역사하시지요. 우리가 악을 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같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하고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해 하나님 말씀을 잘 먹을 수 있습니다. 즉 기도하며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에 말씀이 영적으로 피와 살이 되어 영생할 수 있지요. 그러면서 비진리인 불순물은 다 배설해 나가니 까만 마음이 하얀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0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합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사람은 말씀을 마음에 심음으로 비진리가 물러 가고 진리가 임하니 마음이 의로워지고 깨끗해집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심으로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키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대로 행하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인자의 살과 피는 무엇이며 어떻게 먹고 마시는지를 알아 영생 을 얻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아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요한복음 6:53-55에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즉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생명을 유지하려면 음식물을 먹고 마셔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영생을 하기 위해서는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1. 인자의 살은 무엇이며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요한복음 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합니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요 1:14).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48절 이하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말씀하십니다. 즉 영생할 수 있는 참된 양식은 인자의 살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의 살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며,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성경 66권 말씀을 양식 삼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비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9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했고, 베드로전서 1:19에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12:9-10에는 어린 양을 먹는 방법이 잘 나와 있습니다.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고 하셨지요. 그러면 인자의 살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날로 먹지 말아야 합니다.
날로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읽고 양식 삼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쓰였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읽으면 하나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고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6:6을 보면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즉 날로 먹는다면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골방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믿음의 선진들이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산이나 빈들에서 기도하셨고(눅 6:12, 막 1:35)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했지요.
그렇다면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골방에 들어가면 외부와 차단되듯이 잡념이나 세상 근심 걱정을 차단하여 중언부언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중심으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참 뜻을 바로 알아 양식 삼아야 합니다.
둘째로, 물에 삶아서 먹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 양을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는 것은 인자의 살 곧 하나님 말씀에 다른 어떤 것을 섞지 말고 순수하게 먹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성인군자나 철학자 등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의 말이나 정치, 사회 이야기 등을 섞어서 전달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사람의 말은 세월이 흐르면 변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변함 없지요.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진리이니 세상적인 이론이나 지식을 섞어서 먹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셋째로, 통째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합니다.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는 것은 어린 양을 통째로 잡아 불에 구워 먹으라는 뜻입니다. 인자의 살 곧 성경 66권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먹어 영적인 양식을 삼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에 맞추어 필요한 부분만을 읽거나 믿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어느 것 하나 빼지 말고 모두 먹되 불에 구워 먹어야 하지요.
여기서 불이란 성령의 불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쓴 것이기 때문에 읽고 들을 때에도 성령의 충만함과 감동함 속에서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지식으로만 쌓일 뿐 결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성령의 감동함으로 대하면 송이꿀같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곧 성령의 불에 구워 먹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말씀이 깨달아지고 소화가 잘되어 영적인 살과 피가 되고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지요.
넷째로,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고 남은 것은 곧 소화(燒火)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해질 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통째로 먹되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은 원수 마귀가 권세를 잡고 있는 흑암의 세상으로서 영적으로는 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가 이르러 참 빛 되신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그때에는 어둠이 물러 가고 모든 것이 온전히 회복되어 빛의 세계인 아침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아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신부단장을 마쳐야 합니다. 또한 인생은 강건해야 70, 80세이므로 언제 주님 앞에 가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열심히 말씀을 양식 삼아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2. 인자의 피는 무엇이며 어떻게 마셔야 하는가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고 물도 함께 마셔야 합니다. 만약 수분을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음식이 소화되지 않으니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자의 살을 먹을 때도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소화할 수 없고 영생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거룩한 보혈이지요. 이 보혈의 공로를 힘입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아 정결케 하므로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가 되는 것입니다(요 6:55).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음료인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일까요?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하신 대로,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뜻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곧 빛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요일 1:5) 말씀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 빛 가운데 행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이지요. 그럴 때 예수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아 구원에 이릅니다.
음식물을 먹으면 잘 소화되어 영양분은 흡수되고 노폐물은 배설되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행하면 진리는 흡수되고 비진리는 배설되므로 검은 마음이 하얀 마음으로 바꾸어집니다. 예를 들어, 미움이라는 죄를 버리기 위해서는 '사랑하라'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명심하여 행할 때 잘 소화되어 '사랑'이라는 영양분은 흡수되고 '미움'이라는 노폐물이 배설됩니다. 이렇게 하여 더럽고 추한 마음을 빼버리니 자연히 하얗고 아름다운 진리의 마음이 됩니다.
3.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은 본래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제외한 각종 과일을 따 먹으며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동행해 주시면서 선과 진리만을 가르쳐 주셨지요.
그러나 아담이 원수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영이 죽고 말았지요. 그 후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고 원수 마귀 사단과 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비진리에 물들어 가고 죄악이 관영해져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선한 마음을 주관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며 악을 버리도록 역사하시지요. 우리가 악을 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같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하고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해 하나님 말씀을 잘 먹을 수 있습니다. 즉 기도하며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에 말씀이 영적으로 피와 살이 되어 영생할 수 있지요. 그러면서 비진리인 불순물은 다 배설해 나가니 까만 마음이 하얀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0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합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사람은 말씀을 마음에 심음으로 비진리가 물러 가고 진리가 임하니 마음이 의로워지고 깨끗해집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심으로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키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대로 행하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5-09
제19과성령강림과 초대교회
행 2:1-4, 2:37-47
읽을말씀 : 행 2:1-4, 2:37-47 | 외울말씀 : 행 2:38
교육목표 : 성령강림절을 기념하여 성령이 어떻게 강림하였으며 교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초대교회의 신앙생활은 어떠하였는지를 깨달아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1. 성령강림과 성령의 역사
사도행전 1:4-5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친히 살아 계심을 증거하시고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또한 승천하시기 전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8).
그래서 약 120명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러던 중 오순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지요(행 2:1-4).
이것이 성령강림의 시초로서 곧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욜 2:28-29). 그래서 사도행전 2:16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성령받은 사람들은 각종 방언을 말함은 물론, 성령의 역사로 예언도 하고 환상도 보며 각종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권능을 행하게 되었고, 성도들은 이러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부활절 이후 50일이 되는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사함을 얻은 사람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행 2:38).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행 19:2) 성령을 받을 때 위로부터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임하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으며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교회의 형성과 초대교회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기사와 표적을 행하니 예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성도들의 모임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교회의 시초이며 이를 초대교회라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함께 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직접 보았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치리했기 때문에 가장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초대교회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을까요?
첫째로,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46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25에도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했으니 우리는 초대교회를 본받아 모이기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예배는 물론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새벽예배 등 각종 예배 및 기도회에 참석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성전에 모이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도함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42을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했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응답의 열쇠이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 5:17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으며, 마태복음 7:7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말씀하시며, 베드로전서 4:7에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경고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과 죄악을 이길 힘이 없으므로 진리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기도로써 영적 교통을 하게 되면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게 되므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진리 안에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믿음이 성장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며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니 질병이 틈타지 않고 항상 강건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이기를 힘쓰면 자연히 주 안에서 서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좇게 되지만 믿음의 형제들과 교제하면 신앙간증 및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 더욱 믿음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서로 사랑하며 항상 기뻐했습니다
사도행전 2:44-47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었을 뿐 아니라,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신 대로(마 22:37-40, 막 12:30-31)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사람은 영이 죽어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으나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은 눈물, 고통, 슬픔, 질병, 사망이 없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전도에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했고, 로마서 10:13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뜻은 만인을 구원하는 것이요, 이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47을 보면 성도들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므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이럴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43을 보면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강퍅해져 기사와 표적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에(요 4:48) 예수님께서도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임을 확증시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 마음 중심에서 믿어지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사와 표적을 통하여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여 확실한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4:20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초대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서로 교제하고 불같이 기도하여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뿐 아니라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 날마다 구원받는 수를 더하며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는 초대교회를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무수한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힘써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성령강림절을 기념하여 성령이 어떻게 강림하였으며 교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초대교회의 신앙생활은 어떠하였는지를 깨달아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1. 성령강림과 성령의 역사
사도행전 1:4-5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친히 살아 계심을 증거하시고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또한 승천하시기 전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8).
그래서 약 120명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러던 중 오순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지요(행 2:1-4).
이것이 성령강림의 시초로서 곧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욜 2:28-29). 그래서 사도행전 2:16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성령받은 사람들은 각종 방언을 말함은 물론, 성령의 역사로 예언도 하고 환상도 보며 각종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권능을 행하게 되었고, 성도들은 이러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부활절 이후 50일이 되는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사함을 얻은 사람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행 2:38).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행 19:2) 성령을 받을 때 위로부터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임하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으며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교회의 형성과 초대교회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기사와 표적을 행하니 예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성도들의 모임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교회의 시초이며 이를 초대교회라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함께 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직접 보았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치리했기 때문에 가장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초대교회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을까요?
첫째로,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46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25에도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했으니 우리는 초대교회를 본받아 모이기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예배는 물론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새벽예배 등 각종 예배 및 기도회에 참석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성전에 모이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도함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42을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했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응답의 열쇠이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 5:17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으며, 마태복음 7:7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말씀하시며, 베드로전서 4:7에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경고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과 죄악을 이길 힘이 없으므로 진리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기도로써 영적 교통을 하게 되면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게 되므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진리 안에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믿음이 성장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며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니 질병이 틈타지 않고 항상 강건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이기를 힘쓰면 자연히 주 안에서 서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좇게 되지만 믿음의 형제들과 교제하면 신앙간증 및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 더욱 믿음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서로 사랑하며 항상 기뻐했습니다
사도행전 2:44-47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었을 뿐 아니라,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신 대로(마 22:37-40, 막 12:30-31)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사람은 영이 죽어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으나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은 눈물, 고통, 슬픔, 질병, 사망이 없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전도에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했고, 로마서 10:13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뜻은 만인을 구원하는 것이요, 이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47을 보면 성도들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므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이럴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43을 보면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강퍅해져 기사와 표적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에(요 4:48) 예수님께서도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임을 확증시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 마음 중심에서 믿어지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사와 표적을 통하여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여 확실한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4:20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초대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서로 교제하고 불같이 기도하여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뿐 아니라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 날마다 구원받는 수를 더하며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는 초대교회를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무수한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힘써야 하겠습니다.
2008-05-02
제18과영적 어린아이
마 18:1-4, 23:12
읽을말씀 : 마 18:1-4, 23:12 | 외울말씀 : 마 18:3
교육목표 : 어린이 주일을 맞아 영적인 어린아이의 의미를 알고 천국에서 큰 자 로 인정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18:1-4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인지 여쭙니다. 이때에 예수님이 한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이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큰 자라고 말씀합니다.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큰 자가 되고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철없이 어리광을 부리며 유치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선하고 좋은 점을 취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진난만하고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영적으로 순수하고 단순하며 겸손한 마음을 소유하기 원하십니다.
1. 영적인 어린아이의 특징
1) 단순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쉽게 무엇에 적응하는 반면에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변할 수 있습니다. 어른보다는 아직 세상 때가 묻지 않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을뿐더러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얀 백지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처럼 어린아이는 어른이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동생을 때리면 안 된다, 군것질을 많이 하면 안 된다." 등 가르치는 대로 익혀 '하라' 하는 일은 하고, '하지 말라'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그대로 믿고 순종합니다. 어떤 것은 진리이고 어떤 것은 비진리라고 하면 그대로 받아들여 순종하지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할 때에도 어떤 이유를 대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인지, 나에게 유익이 되는지'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니 반드시 선하신 뜻이 있는 줄 믿고 즉시 순종했습니다.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진리를 배우는 대로 믿고 들은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순수합니다
어린아이는 어떤 생각이나 판단, 분별 능력이 전혀 없는 무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자라면서 부모와 가족, 이웃과 친구를 통해 선과 악을 배우고 사리를 분별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은 좋은 것을 얻으면 그 자체로 행복해하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으며 순수하게 반응합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두려움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크게 받습니다.
반면 어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 줄 배웠어도 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잘못을 행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 어둠에 물들어 순수함이 사라지면 죄를 범하면서도 무감각해지지요. 그러나 진리 안에 들어와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면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선한 것을 보면 쉽게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고 악한 것은 몸서리치도록 싫어하지요. 세상 사람은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진리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악이라 하시면 몹시 싫어하고 어찌하든 버리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영적인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을 이루어 미세한 죄악이라 해도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오직 선한 것을 간절히 사모해야겠습니다.
3) 교만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지식이 적고 힘이 약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무엇을 가르쳐 주면 자기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그대로 믿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숨기려 하지 않고 부모나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높아지거나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어린아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자신의 지식과 맞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판단하거나 오해하지 않습니다. 믿고 순종할 뿐이지요. 예를 들어,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권능의 역사들을 본 수많은 사람이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만한 권능을 행하는 분이라면 정녕 하나님의 사람이겠구나.'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아도 권능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볼 때에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것을 겸손히 인정한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들을 때에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도 체험하기를 사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들으면 그대로 믿고 순종하며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2.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려면
1) 불같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죄악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2:16을 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이 세상은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세상 비진리를 보고 듣고 배우면서 마음이 죄악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교만과 혈기, 판단, 정죄, 욕심과 시기, 질투, 미움 등 비진리들로 마음이 더러워진 것이지요.
디모데전서 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불같은 기도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이런 죄악들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욕심과 자존심 그 밖의 모든 죄악들을 벗어 버리는 만큼 깨끗한 양심과 순수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믿고 깨달으며 더 온전히 순종할 수 있지요.
2) 모든 이론과 생각을 파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0:5을 보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님 말씀과 맞지 않을 때에는 무조건 버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지요.
왜냐하면 사람이 가진 대부분의 지식과 이론은 원수 마귀가 주관하는 세상으로부터 온 것으로 하나님 말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주관자가 마귀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하나씩 배워 나가는 것마다 진리가 아닌 것들을 생각에 담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으로 좇아온 것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가진 생각과 이론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고 부인하려 한다면 말씀 자체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높아진 교만이지요.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동원하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좇아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4장을 보면 한 여인이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어드립니다. 이것을 본 어떤 사람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못마땅히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저가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고 온 천하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셨지요. 이 여인은 생각을 동원치 않고 성령의 주관을 좇아 순종했기에 예수님의 칭찬을 받고 길이 기억된 바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기의 생각과 이론을 동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끝까지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므로 결국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7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불같은 기도 속에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하고 항상 자신의 생각과 말을 진리에 비춰 보아야 합니다. 나아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모든 이론과 지식을 파하며 오직 영의 생각과 성령의 소욕을 좇기 위해서는 힘써야 하지요.
그러므로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하나님 뜻이 어디 있는지, 성령의 소욕은 어느 편을 원하시는지를 기도하며 날마다 변화되어 천국에서 큰 자라 인정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어린이 주일을 맞아 영적인 어린아이의 의미를 알고 천국에서 큰 자 로 인정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18:1-4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인지 여쭙니다. 이때에 예수님이 한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이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큰 자라고 말씀합니다. 천국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큰 자가 되고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철없이 어리광을 부리며 유치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선하고 좋은 점을 취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진난만하고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영적으로 순수하고 단순하며 겸손한 마음을 소유하기 원하십니다.
1. 영적인 어린아이의 특징
1) 단순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쉽게 무엇에 적응하는 반면에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변할 수 있습니다. 어른보다는 아직 세상 때가 묻지 않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을뿐더러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얀 백지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처럼 어린아이는 어른이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동생을 때리면 안 된다, 군것질을 많이 하면 안 된다." 등 가르치는 대로 익혀 '하라' 하는 일은 하고, '하지 말라'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그대로 믿고 순종합니다. 어떤 것은 진리이고 어떤 것은 비진리라고 하면 그대로 받아들여 순종하지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할 때에도 어떤 이유를 대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인지, 나에게 유익이 되는지'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니 반드시 선하신 뜻이 있는 줄 믿고 즉시 순종했습니다.우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진리를 배우는 대로 믿고 들은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순수합니다
어린아이는 어떤 생각이나 판단, 분별 능력이 전혀 없는 무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자라면서 부모와 가족, 이웃과 친구를 통해 선과 악을 배우고 사리를 분별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은 좋은 것을 얻으면 그 자체로 행복해하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으며 순수하게 반응합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두려움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크게 받습니다.
반면 어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 줄 배웠어도 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잘못을 행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 어둠에 물들어 순수함이 사라지면 죄를 범하면서도 무감각해지지요. 그러나 진리 안에 들어와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면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선한 것을 보면 쉽게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고 악한 것은 몸서리치도록 싫어하지요. 세상 사람은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진리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악이라 하시면 몹시 싫어하고 어찌하든 버리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영적인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을 이루어 미세한 죄악이라 해도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오직 선한 것을 간절히 사모해야겠습니다.
3) 교만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지식이 적고 힘이 약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무엇을 가르쳐 주면 자기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그대로 믿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숨기려 하지 않고 부모나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높아지거나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어린아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자신의 지식과 맞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판단하거나 오해하지 않습니다. 믿고 순종할 뿐이지요. 예를 들어,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권능의 역사들을 본 수많은 사람이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만한 권능을 행하는 분이라면 정녕 하나님의 사람이겠구나.'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아도 권능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볼 때에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것을 겸손히 인정한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들을 때에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도 체험하기를 사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들으면 그대로 믿고 순종하며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2.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려면
1) 불같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죄악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2:16을 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이 세상은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세상 비진리를 보고 듣고 배우면서 마음이 죄악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교만과 혈기, 판단, 정죄, 욕심과 시기, 질투, 미움 등 비진리들로 마음이 더러워진 것이지요.
디모데전서 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불같은 기도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이런 죄악들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욕심과 자존심 그 밖의 모든 죄악들을 벗어 버리는 만큼 깨끗한 양심과 순수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믿고 깨달으며 더 온전히 순종할 수 있지요.
2) 모든 이론과 생각을 파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0:5을 보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님 말씀과 맞지 않을 때에는 무조건 버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지요.
왜냐하면 사람이 가진 대부분의 지식과 이론은 원수 마귀가 주관하는 세상으로부터 온 것으로 하나님 말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주관자가 마귀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하나씩 배워 나가는 것마다 진리가 아닌 것들을 생각에 담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으로 좇아온 것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가진 생각과 이론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고 부인하려 한다면 말씀 자체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높아진 교만이지요.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동원하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좇아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4장을 보면 한 여인이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어드립니다. 이것을 본 어떤 사람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못마땅히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저가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고 온 천하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셨지요. 이 여인은 생각을 동원치 않고 성령의 주관을 좇아 순종했기에 예수님의 칭찬을 받고 길이 기억된 바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기의 생각과 이론을 동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끝까지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므로 결국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7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불같은 기도 속에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하고 항상 자신의 생각과 말을 진리에 비춰 보아야 합니다. 나아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모든 이론과 지식을 파하며 오직 영의 생각과 성령의 소욕을 좇기 위해서는 힘써야 하지요.
그러므로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하나님 뜻이 어디 있는지, 성령의 소욕은 어느 편을 원하시는지를 기도하며 날마다 변화되어 천국에서 큰 자라 인정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