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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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0
제41과온 집에 충성한 모세
히 11:23-27, 출 32:31-32
읽을말씀 : 히 11:23-27, 출 32:31-32 | 외울말씀 : 히 11:6
교육목표 : 모세의 탄생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하나님의 부름과 연단에 대해 알아보고 온 집에 충성한 모세의 믿음과 사랑을 본받게 한다.
1. 모세의 탄생과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이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해 아들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이주할 때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은 모두 칠십 명이었습니다(출 1:5). 그런데 이들이 애굽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그 숫자가 점점 불어나 매우 강대해지니 애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은 후 애굽에 새로 즉위한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삼고 학대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강성해지니 애굽 왕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태어나는 남자 아이는 모두 하수에 던져 죽이도록 했습니다. 이때 레위 족속 중의 한 사람이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는데 한 아이를 낳아 석 달 동안 숨겨 키웠으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상자 안에 아이를 넣어 하숫가 갈대 사이에 띄워 두고 이 아이의 누이를 시켜 살펴보게 하였습니다.
마침 목욕하러 나온 공주가 이 아이를 발견하여 왕궁으로 데려가 양자로 키웠는데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구하여 젖을 먹이게 하였습니다. 다행히 이 아이의 생모가 유모가 되었고, 공주는 이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 하였습니다. 모세(Moses)는 '물에서 건져내다'라는 뜻으로 레위 지파에 속하는 아므람과 요게벳의 아들이며 미리암과 아론의 아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가 큰 그릇이 될 것을 예지하셨기 때문에 애굽 왕궁에서 최고의 학문과 무예를 닦으며 성장하게 했습니다. 또 생모의 젖을 먹으며 자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과 그의 조상에 대해서도 알게 하셨습니다. 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데 필요한 자질을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장성한 후,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고역을 당하며 애굽 사람들로부터 아무 이유 없이 핍박당하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이 일이 탄로 나자 결국 모세는 도피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모세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2. 모세의 40년 연단과 하나님의 부르심
애굽에서 도망쳐 나와 미디안 땅에 들어가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목동을 하였는데 당시 목동은 애굽 사람들이 가장 천히 여기는 직업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연단하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하도록 섭리하신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40년간의 연단을 통해 애굽의 왕궁에서 배운 모든 생활 습관과 하나님께 합당치 못한 것들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온순한 양들을 보살피며 양치기의 생활을 하는 동안 불같았던 성격과 혈기를 버리고 양치기에 필요한 인내도 생기면서 '가장 온유한 자'라는 하나님의 인정도 받게 되었습니다(민 12:3).
모세가 마음을 낮은 곳에 두고 양을 섬기는 연단을 통해서 육체의 일들을 버리며 성결해 가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 불렀습니다. 출애굽기 3:1-4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호렙 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고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지시를 하셨습니다(출 3:7-10).
그러면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떨기나무에 불이 붙으면 당연히 나무가 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떨기나무의 불이 사라지지 않은 채 나무도 타지 않는 것은 분명히 기이한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 타고 있는 불꽃을 통해 변치 않고 썩지 않는 영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즉 영과 육이 다름을 통해 영원한 세계를 알려 주며 살아 계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나타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부터 떨기나무는 저주를 상징하기도 하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났다는 것은 저주받은 떨기나무를 주관하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이 세상의 모든 원수 마귀 사단이 굴복하고 있음을 영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40년간의 연단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3.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모세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면 80세의 나이로 출애굽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일으키는 지도자가 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모세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그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애굽에서 구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은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출 12:37)이었으니 어린이와 부녀자, 노인 등을 합치면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을 출애굽시켜서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며 가나안 땅까지 인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왕의 강퍅함으로 인해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영적 믿음이 연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곧잘 모세에게 불평하고 불만을 터뜨리며 돌로 치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그들을 보살피며, 불평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여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늘에서 내려 주기도 하셨고, 므리바의 반석에서 물이 나와 마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햇볕을 막아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사막 지방의 찬 기운을 녹여 주시며, 갖가지 기사와 표적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에 들어간 사이에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섬기는 큰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출 32:9-1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멸하고 모세를 통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삼겠다고 말씀하시자 모세는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출 32:11-13)라고 간구하여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게 하였습니다.
이튿날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애통해하며 사랑으로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1-32).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지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모세는 이렇게 백성의 죄악을 슬퍼하며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세를 어찌 사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4. 온 집에 충성한 모세
모세는 하나님께서 친히 대면하여 말씀하실 정도로 인정과 보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을 때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하자 하나님의 진노가 즉시 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민 12:6-8) 말씀하시고 그 들을 떠나시니 곧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대신 간구하여 미리암이 문둥병을 치료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는 것은 모세가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이었 때문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모든 고충은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들을 이루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며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체험하고도 그의 능력을 믿지 못하여 수시로 불평하며 불순종했지만, 모세는 그래도 그들을 믿음과 사랑으로 인도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습니다.
모세가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좇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였으며 하나님과 직접 대면한 종으로서 천국에 대해 밝히 알며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릴 것을 소망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도에서 낙담치 않고 끝까지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24-27을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과정을 통해 모세를 믿는 사람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곧 천국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계명을 지키며 말씀대로 순종하면 가나안 땅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하나님을 알고 또한 많은 것을 체험했어도 불평하거나 불순종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을 바라보며 자신을 희생하고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모세의 탄생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하나님의 부름과 연단에 대해 알아보고 온 집에 충성한 모세의 믿음과 사랑을 본받게 한다.
1. 모세의 탄생과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이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해 아들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이주할 때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은 모두 칠십 명이었습니다(출 1:5). 그런데 이들이 애굽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그 숫자가 점점 불어나 매우 강대해지니 애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은 후 애굽에 새로 즉위한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삼고 학대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강성해지니 애굽 왕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태어나는 남자 아이는 모두 하수에 던져 죽이도록 했습니다. 이때 레위 족속 중의 한 사람이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는데 한 아이를 낳아 석 달 동안 숨겨 키웠으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상자 안에 아이를 넣어 하숫가 갈대 사이에 띄워 두고 이 아이의 누이를 시켜 살펴보게 하였습니다.
마침 목욕하러 나온 공주가 이 아이를 발견하여 왕궁으로 데려가 양자로 키웠는데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구하여 젖을 먹이게 하였습니다. 다행히 이 아이의 생모가 유모가 되었고, 공주는 이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 하였습니다. 모세(Moses)는 '물에서 건져내다'라는 뜻으로 레위 지파에 속하는 아므람과 요게벳의 아들이며 미리암과 아론의 아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가 큰 그릇이 될 것을 예지하셨기 때문에 애굽 왕궁에서 최고의 학문과 무예를 닦으며 성장하게 했습니다. 또 생모의 젖을 먹으며 자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과 그의 조상에 대해서도 알게 하셨습니다. 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데 필요한 자질을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장성한 후,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고역을 당하며 애굽 사람들로부터 아무 이유 없이 핍박당하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이 일이 탄로 나자 결국 모세는 도피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모세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2. 모세의 40년 연단과 하나님의 부르심
애굽에서 도망쳐 나와 미디안 땅에 들어가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목동을 하였는데 당시 목동은 애굽 사람들이 가장 천히 여기는 직업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연단하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하도록 섭리하신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40년간의 연단을 통해 애굽의 왕궁에서 배운 모든 생활 습관과 하나님께 합당치 못한 것들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온순한 양들을 보살피며 양치기의 생활을 하는 동안 불같았던 성격과 혈기를 버리고 양치기에 필요한 인내도 생기면서 '가장 온유한 자'라는 하나님의 인정도 받게 되었습니다(민 12:3).
모세가 마음을 낮은 곳에 두고 양을 섬기는 연단을 통해서 육체의 일들을 버리며 성결해 가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 불렀습니다. 출애굽기 3:1-4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호렙 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고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지시를 하셨습니다(출 3:7-10).
그러면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떨기나무에 불이 붙으면 당연히 나무가 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떨기나무의 불이 사라지지 않은 채 나무도 타지 않는 것은 분명히 기이한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 타고 있는 불꽃을 통해 변치 않고 썩지 않는 영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즉 영과 육이 다름을 통해 영원한 세계를 알려 주며 살아 계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나타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부터 떨기나무는 저주를 상징하기도 하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났다는 것은 저주받은 떨기나무를 주관하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이 세상의 모든 원수 마귀 사단이 굴복하고 있음을 영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40년간의 연단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3.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모세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면 80세의 나이로 출애굽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일으키는 지도자가 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모세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그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애굽에서 구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은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출 12:37)이었으니 어린이와 부녀자, 노인 등을 합치면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을 출애굽시켜서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며 가나안 땅까지 인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왕의 강퍅함으로 인해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영적 믿음이 연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곧잘 모세에게 불평하고 불만을 터뜨리며 돌로 치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그들을 보살피며, 불평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여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늘에서 내려 주기도 하셨고, 므리바의 반석에서 물이 나와 마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햇볕을 막아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사막 지방의 찬 기운을 녹여 주시며, 갖가지 기사와 표적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에 들어간 사이에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섬기는 큰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출 32:9-1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멸하고 모세를 통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삼겠다고 말씀하시자 모세는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출 32:11-13)라고 간구하여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게 하였습니다.
이튿날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애통해하며 사랑으로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1-32).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지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모세는 이렇게 백성의 죄악을 슬퍼하며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세를 어찌 사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4. 온 집에 충성한 모세
모세는 하나님께서 친히 대면하여 말씀하실 정도로 인정과 보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을 때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하자 하나님의 진노가 즉시 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민 12:6-8) 말씀하시고 그 들을 떠나시니 곧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대신 간구하여 미리암이 문둥병을 치료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는 것은 모세가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이었 때문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모든 고충은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들을 이루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며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체험하고도 그의 능력을 믿지 못하여 수시로 불평하며 불순종했지만, 모세는 그래도 그들을 믿음과 사랑으로 인도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습니다.
모세가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좇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였으며 하나님과 직접 대면한 종으로서 천국에 대해 밝히 알며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릴 것을 소망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도에서 낙담치 않고 끝까지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24-27을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과정을 통해 모세를 믿는 사람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곧 천국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계명을 지키며 말씀대로 순종하면 가나안 땅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하나님을 알고 또한 많은 것을 체험했어도 불평하거나 불순종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을 바라보며 자신을 희생하고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10-03
제40과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5~17
읽을말씀 : 요 21:15~17 | 외울말씀 : 요 21:15
교육목표 :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생명의 양식을 먹이고 사랑과 섬김으로 헌신하는 영의 일꾼이 되게 한다.
1. 요한의 아들 시몬아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요한복음 11:25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제자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는 주님이 시몬에게 질문하신 것이지만 모든 교회의 주의 종과 일꾼들에게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에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말씀하셨으니 시몬은 히브리어로 게바요, 헬라어로는 베드로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16:13~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니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답변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축복하셨으니 베드로는 영적으로 "반석"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4에는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하여 반석이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몬은 베드로요, 베드로는 반석이며 반석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선 모든 사람들,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많은 주의 종들과 일꾼들에게 물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이처럼 시몬을 부르셨을까요?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중 수제자였으므로 예수님 당시부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의 모든 종들을 대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을 듣고 담대히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대답하였지요.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베드로처럼 담대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혹자는 베드로가 전에 주를 세 번 모른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고라고 말하지만 사랑의 주님께서는 이미 회개하고 돌이킨 일로 상대의 마음을 찌르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물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12:30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영 혼 육으로 되어 있어 참된 주인은 영혼이며 육은 영혼이 거하는 장막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육을 낳아 준 부모보다 영혼을 낳아 준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계명을 지키고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고, 잠언 8:13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여 주님께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시자 베드로는 사랑을 고백하였고 예수님께서는 다시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부탁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린 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혹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양이라고 표현하셨으니 어린 양은 초신자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인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 양은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9을 보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레위기에는 어린 양을 제물로 드리는 장면이 곳곳에 나오는데 어린 양은 화목제물로 오시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1~11에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어린 양을 취하여 불에 구워 먹으라는 말씀이 있는데 어린 양은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51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말씀했고, 요한복음 6:53, 54에는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을 먹는다는 것은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것입니다.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한다는 것이요,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어린 양을 먹이라" 부탁하신 것은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라는 의미입니다. 복음을 곳곳에 전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인자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심으로 영생을 소유하도록 인도해야 할 것을 깨우쳐 주신 것이지요.
4. 내 양을 치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고 대답하는 시몬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두 번째로 부탁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하며 죄를 싸워 버리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꾼이 되는데 이때 주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5:2, 3을 보면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양이란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고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나 그 외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는 교회라는 특정한 건물이나 양 떼가 없었으므로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고 양 떼를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종들이 교회를 세워 양 무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면서 정성껏 갈무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같이 목회활동을 하는 주의 종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장로, 집사, 교사 등의 직분을 받아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함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넘어진 양 떼를 일으켜 주고 치료해 주는 등 바른 길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과 의욕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최선을 다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양을 치는 것입니다.
5.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시자 시몬 베드로는 근심하여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고백을 들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 부탁하십니다.
베드로가 근심한 것은 어떤 악한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아시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양을 먹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양을 치는 일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병들고 상한 양을 치료해 주어 튼튼한 양으로 만들고, 길 잃은 양을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 안에서 바로 서지 못하고 당을 짓고 시기 질투를 일삼는 등 목자를 시험하는 양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생명의 양식을 먹임으로 순한 양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는 넉넉히 감당할 줄 믿고 불같은 기도를 하며 시험 환난이 와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양 무리를 인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심으로 큰 부흥과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하고 튼튼한 양으로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양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하늘로부터 임하게 됩니다. 생명의 양식으로 양을 열심히 먹이면 성장하여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으니 우리도 더욱 겸손과 섬김으로 양을 먹이는 착하고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생명의 양식을 먹이고 사랑과 섬김으로 헌신하는 영의 일꾼이 되게 한다.
1. 요한의 아들 시몬아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요한복음 11:25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제자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는 주님이 시몬에게 질문하신 것이지만 모든 교회의 주의 종과 일꾼들에게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에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말씀하셨으니 시몬은 히브리어로 게바요, 헬라어로는 베드로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16:13~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니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답변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축복하셨으니 베드로는 영적으로 "반석"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4에는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하여 반석이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몬은 베드로요, 베드로는 반석이며 반석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선 모든 사람들,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많은 주의 종들과 일꾼들에게 물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이처럼 시몬을 부르셨을까요?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중 수제자였으므로 예수님 당시부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의 모든 종들을 대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을 듣고 담대히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대답하였지요.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베드로처럼 담대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혹자는 베드로가 전에 주를 세 번 모른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고라고 말하지만 사랑의 주님께서는 이미 회개하고 돌이킨 일로 상대의 마음을 찌르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물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12:30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영 혼 육으로 되어 있어 참된 주인은 영혼이며 육은 영혼이 거하는 장막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육을 낳아 준 부모보다 영혼을 낳아 준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계명을 지키고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고, 잠언 8:13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여 주님께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시자 베드로는 사랑을 고백하였고 예수님께서는 다시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부탁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린 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혹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양이라고 표현하셨으니 어린 양은 초신자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인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 양은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9을 보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레위기에는 어린 양을 제물로 드리는 장면이 곳곳에 나오는데 어린 양은 화목제물로 오시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1~11에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어린 양을 취하여 불에 구워 먹으라는 말씀이 있는데 어린 양은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51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말씀했고, 요한복음 6:53, 54에는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을 먹는다는 것은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것입니다.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한다는 것이요,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어린 양을 먹이라" 부탁하신 것은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라는 의미입니다. 복음을 곳곳에 전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인자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심으로 영생을 소유하도록 인도해야 할 것을 깨우쳐 주신 것이지요.
4. 내 양을 치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고 대답하는 시몬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두 번째로 부탁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하며 죄를 싸워 버리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꾼이 되는데 이때 주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5:2, 3을 보면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양이란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고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나 그 외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는 교회라는 특정한 건물이나 양 떼가 없었으므로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고 양 떼를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종들이 교회를 세워 양 무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면서 정성껏 갈무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같이 목회활동을 하는 주의 종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장로, 집사, 교사 등의 직분을 받아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함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넘어진 양 떼를 일으켜 주고 치료해 주는 등 바른 길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과 의욕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최선을 다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양을 치는 것입니다.
5.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시자 시몬 베드로는 근심하여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고백을 들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 부탁하십니다.
베드로가 근심한 것은 어떤 악한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아시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양을 먹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양을 치는 일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병들고 상한 양을 치료해 주어 튼튼한 양으로 만들고, 길 잃은 양을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 안에서 바로 서지 못하고 당을 짓고 시기 질투를 일삼는 등 목자를 시험하는 양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생명의 양식을 먹임으로 순한 양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는 넉넉히 감당할 줄 믿고 불같은 기도를 하며 시험 환난이 와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양 무리를 인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심으로 큰 부흥과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하고 튼튼한 양으로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양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하늘로부터 임하게 됩니다. 생명의 양식으로 양을 열심히 먹이면 성장하여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으니 우리도 더욱 겸손과 섬김으로 양을 먹이는 착하고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008-09-26
제39과죽어지는 밀알이 되자
요 12:24~26
읽을말씀 : 요 12:24~26 | 외울말씀 : 요 12:24
교육목표 : 예수님처럼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를 맺는 과정을 살펴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어져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그래서 비록 자기 형체는 없어진다 할지라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싹이 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어도 씨앗이 스스로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썩어지는 밀알이 되셨을까요?
이사야 53:5~9을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지만 피조물에게 수욕을 당하시고 많은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이 모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십자가를 지고 철저히 죽어지실 수 있었던 것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무수한 영혼을 구원할 것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2에는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던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뜻합니다. 또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모세나 사도 바울 선진들도 이런 하늘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철저히 죽어질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철저히 죽어지고 비록 부끄러움을 당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첫째로, 자신에게 있어서 자아가 죽어져야 합니다.
왜 '자기'가 먼저 죽어져야 할까요?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하며 지식과 교양을 쌓아 갑니다. 이렇게 쌓은 지식과 교양이 자아를 형성하게 되지요.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 형성된 것들은 대부분 비진리에 속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속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진리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두드리게 됩니다. 자신이 마음 문을 여는 만큼 진리가 마음 안에 자리잡게 되며 그때부터 죄와의 싸움이 시작되지요.
왜냐하면 그동안 자신의 자아를 형성했던 것은 진리인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거기서부터 부딪침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할 때 자기가 죽어지기 시작하지요. 즉 말씀에 위배되는 내 생각과 이론이 발견되면 그것을 벗고 진리로 변화시키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4에 마음의 비진리를 벗는 죄와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셨지요. 비진리는 대충 회개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땀 흘리며 부르짖어 기도할 때 벗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시기도 하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안에 있던 죄의 속성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게 되지요. 이렇게 몸과 결합된 죄성이 태워지는 만큼 영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밀알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지듯이 자아를 형성하는 내용물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입력되어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은 다 구습이므로 이것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서 진리로 채워야지요. 그래서 중심에서 "나는 없나이다"라는 고백이 나올 때 비로소 영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믿음으로 교회에 다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한 사람이 교회에 나가면서 점차 복음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행전 16:31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고, 고린도전서 7:14에는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하셨습니다. 아내가 희생하고 잘 섬겨서 남편을 구원시키면 남편도 진리 따라 거룩해지고 남편도 믿지 않은 아내한테 잘하면 진리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족복음화를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는 키포인트는 처음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 가정에서 어떻게 죽어지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가족복음화를 이루려면 천국 복음과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들을 가지고 항상 전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하는 사람이 가족에게 신뢰를 받아야 하지요.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지켜보므로 믿지 않을 때와 다름없이 본은 되지 않으면서 입술로만 복음을 전한다면 신뢰할 수 없지요. 반면 가족이 보기에도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고 인정한다면 그만큼 전도해도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가정에서 죽어지는 방법은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자신의 '구습'을 벗어버릴 때 가족들은 그 변화를 금세 느낍니다(엡 4:22). 구습이란 하나님을 만나기 전 '옛 사람'일 때 자신의 몸에 배인 좋지 않은 습관이지요. 예를 들어,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쉽게 손찌검을 합니다. 또 자기 방이 아무리 지저분해도 어머니가 정리할 때까지 둔다든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고 난 후에 이불을 개키지 않고, 옷은 벗은 채로 내버려 두는 것들이지요. 이 외에도 좋지 않은 구습들을 벗어버림으로 가족 안에서 섬기고 죽어진다면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함께 할 사이입니다. 그런데 어느 형제의 허물을 들추어내며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면 형제로서의 도리가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고 남의 허물을 덮어 주며 좋은 점은 칭찬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7:9에는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볼 때 그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거나 허물을 전하며 상대 때문에 피해를 입었을 때는 더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서 얼마나 썩어지는 밀알이 되었는지는 화평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어서 자기 의를 주장하고 자기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치기 마련이고 부딪치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지요. 가령 누구와는 잘 지내는데 누구와는 불편하다면 진정으로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내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러지 못한 사람과도 모두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지요. 또한 상하 관계 속에서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화평을 좇는 사람을 통해 열매를 맺으십니다.
넷째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지요(행 1:8). 이처럼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며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할 때 하나님 나라가 크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데도 많은 사랑의 수고가 따릅니다. 그들에게 착한 행실로 빛을 비춰야 그들이 빛이신 하나님을 찾게 되지요.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합니다. 전도된 영혼을 갈무리하는 데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가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영혼들이 영적 믿음으로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그저 가지고만 있다면 열매를 남길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주님의 사랑에 빚진 심정으로 전도와 영혼 갈무리하는 일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지요.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자원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죽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8:17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원한다면 이후로도 더욱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죽어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시고 또 영으로 이끌어 들이심으로 하늘의 해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이르시길 바랍니다.
교육목표 : 예수님처럼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를 맺는 과정을 살펴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어져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그래서 비록 자기 형체는 없어진다 할지라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싹이 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어도 씨앗이 스스로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썩어지는 밀알이 되셨을까요?
이사야 53:5~9을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지만 피조물에게 수욕을 당하시고 많은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이 모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십자가를 지고 철저히 죽어지실 수 있었던 것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무수한 영혼을 구원할 것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2에는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던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뜻합니다. 또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모세나 사도 바울 선진들도 이런 하늘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철저히 죽어질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철저히 죽어지고 비록 부끄러움을 당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첫째로, 자신에게 있어서 자아가 죽어져야 합니다.
왜 '자기'가 먼저 죽어져야 할까요?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하며 지식과 교양을 쌓아 갑니다. 이렇게 쌓은 지식과 교양이 자아를 형성하게 되지요.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 형성된 것들은 대부분 비진리에 속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속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진리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두드리게 됩니다. 자신이 마음 문을 여는 만큼 진리가 마음 안에 자리잡게 되며 그때부터 죄와의 싸움이 시작되지요.
왜냐하면 그동안 자신의 자아를 형성했던 것은 진리인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거기서부터 부딪침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할 때 자기가 죽어지기 시작하지요. 즉 말씀에 위배되는 내 생각과 이론이 발견되면 그것을 벗고 진리로 변화시키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4에 마음의 비진리를 벗는 죄와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셨지요. 비진리는 대충 회개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땀 흘리며 부르짖어 기도할 때 벗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시기도 하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안에 있던 죄의 속성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게 되지요. 이렇게 몸과 결합된 죄성이 태워지는 만큼 영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밀알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지듯이 자아를 형성하는 내용물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입력되어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은 다 구습이므로 이것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서 진리로 채워야지요. 그래서 중심에서 "나는 없나이다"라는 고백이 나올 때 비로소 영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믿음으로 교회에 다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한 사람이 교회에 나가면서 점차 복음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행전 16:31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고, 고린도전서 7:14에는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하셨습니다. 아내가 희생하고 잘 섬겨서 남편을 구원시키면 남편도 진리 따라 거룩해지고 남편도 믿지 않은 아내한테 잘하면 진리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족복음화를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는 키포인트는 처음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 가정에서 어떻게 죽어지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가족복음화를 이루려면 천국 복음과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들을 가지고 항상 전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하는 사람이 가족에게 신뢰를 받아야 하지요.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지켜보므로 믿지 않을 때와 다름없이 본은 되지 않으면서 입술로만 복음을 전한다면 신뢰할 수 없지요. 반면 가족이 보기에도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고 인정한다면 그만큼 전도해도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가정에서 죽어지는 방법은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자신의 '구습'을 벗어버릴 때 가족들은 그 변화를 금세 느낍니다(엡 4:22). 구습이란 하나님을 만나기 전 '옛 사람'일 때 자신의 몸에 배인 좋지 않은 습관이지요. 예를 들어,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쉽게 손찌검을 합니다. 또 자기 방이 아무리 지저분해도 어머니가 정리할 때까지 둔다든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고 난 후에 이불을 개키지 않고, 옷은 벗은 채로 내버려 두는 것들이지요. 이 외에도 좋지 않은 구습들을 벗어버림으로 가족 안에서 섬기고 죽어진다면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함께 할 사이입니다. 그런데 어느 형제의 허물을 들추어내며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면 형제로서의 도리가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고 남의 허물을 덮어 주며 좋은 점은 칭찬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7:9에는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볼 때 그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거나 허물을 전하며 상대 때문에 피해를 입었을 때는 더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서 얼마나 썩어지는 밀알이 되었는지는 화평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어서 자기 의를 주장하고 자기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치기 마련이고 부딪치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지요. 가령 누구와는 잘 지내는데 누구와는 불편하다면 진정으로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내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러지 못한 사람과도 모두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지요. 또한 상하 관계 속에서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화평을 좇는 사람을 통해 열매를 맺으십니다.
넷째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지요(행 1:8). 이처럼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며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할 때 하나님 나라가 크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데도 많은 사랑의 수고가 따릅니다. 그들에게 착한 행실로 빛을 비춰야 그들이 빛이신 하나님을 찾게 되지요.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합니다. 전도된 영혼을 갈무리하는 데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가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영혼들이 영적 믿음으로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그저 가지고만 있다면 열매를 남길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주님의 사랑에 빚진 심정으로 전도와 영혼 갈무리하는 일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지요.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자원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죽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8:17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원한다면 이후로도 더욱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죽어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시고 또 영으로 이끌어 들이심으로 하늘의 해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이르시길 바랍니다.
2008-09-19
제38과열 므나 비유
눅 19:11~27
읽을말씀 : 눅 19:11~27 | 외울말씀 : 눅 19:26
교육목표 : 성령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적인 장사를 잘하여 성결을 온전히 이룸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한다.
흔히 열 므나 비유를 달란트 비유와 동일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각각 다른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 주님께 인정받는 척도가 달라집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육적인 재능뿐 아니라 영적 달란트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 소망, 사랑'이지요. 그러면 열 므나 비유에는 어떤 영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본문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리장 삭개오에게 구원을 베푸시며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열 므나 비유를 통해 구원에 관해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본문 11절에 "저희가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는 것은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구원의 도를 완성할 때가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육적인 권세를 가진 메시아가 되어 줄 것을 기대했으므로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예수님께서는 열 므나 비유를 통해 진리를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눅 19:12)
그러면 열 므나 비유에는 어떤 영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했습니다. '귀인'이란 귀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지만 십자가를 지기 전으로 구세주로서 왕위를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귀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므나'는 은을 계수하는 단위이지만 여기서는 성령을 뜻합니다. 귀인이 먼 나라로 갈 때에 종들에게 므나를 나눠 준 것처럼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얼마 후 성령이 오셨지요. 열 므나를 한 사람이 한 므나씩 똑같이 받았듯이 믿는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성령을 받습니다. 가령 달란트는 영적으로 믿음, 소망, 사랑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을 수 있지만 므나는 성령이므로 하나밖에 받을 수 없지요.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먼 나라로 갔다는 것은 천국에 갔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후 하나님께 가셔서 왕위를 받아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주님이 성령을 주신 후에 왕위를 가지러 천국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부활 승천하시고 왕위를 받으신 후에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지요.
그러면 왜 귀인이 므나를 준 다음에 왕위를 가지러 먼 나라로 갔다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왕위가 예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왕위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주님은 부활하셔서 왕위를 이미 얻으셨지만 성령받은 하나님 자녀는 이 세상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왕위를 회복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이 세상에서 인간 경작을 받으며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해 가는 중이지요. 주님이 공중 강림하시고 우리가 영체로 홀연히 변화될 때 비로소 영혼과 몸까지 온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셨는데 이것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성령으로 장사하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했습니다. 자기의 소유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등 육적인 것을 말합니다. 육에 속한 것을 팔아 버리는 만큼 좋은 마음 밭이 되며 무엇을 심든지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또한 영으로 일군 만큼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 안에 있는 육을 팔아 영의 좋은 마음이 되는 것이 영적 장사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에 가심으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은 하나님 자녀들이 영적인 장사를 잘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죄성과 육을 벗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것입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눅 19:15)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했는지 묻습니다. 한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기니 잘했다고 칭찬하시며 열 고을 차지하는 권세를 줍니다. 또 다른 종은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기니 칭찬은 하시지 않고 다섯 고을만 차지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달란트 비유에서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 주님께서 동일하게 칭찬하였습니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최선을 다해 갑절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것과 다섯 므나를 남긴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은 성령을 받아 육체의 일, 육신의 일을 다 벗고 온전히 성결을 이루었으므로 주님께서 칭찬하시며 열 고을을 주신 것입니다. 열 고을은 땅의 지경으로 온전히 성결을 이룬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는 3천층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은 3천층 안 새예루살렘에 들어가지요. 그리고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는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는 것은 그가 50% 이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였기 때문에 믿음의 3단계 즉 2천층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므나를 남긴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주의 한 므나를 수건에 싸 두었나이다" 합니다. 그는 아예 장사할 생각도 하지 않고 가지고만 있었지요. 그리고 당신이 엄한 사람이라 무서워서 그랬다고 변명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고 책망하시지요. 이런 사람은 성령을 받고도 죄를 싸워 버리지 않고 육체의 일, 육신의 일을 여전히 행하는 악인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 징계하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하고 환난이 오면 하나님이 치셨다고 하지요. 이것이 한 므나를 받았으되 장사는 하지 않고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눅 19:26)
주님께서는 악한 종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시며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셨습니다. 한 므나를 받아 열 므나를 만든 사람 즉 성령을 받고 죄를 온전히 버린 성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며 어찌하면 주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까 하기 때문에 열심 내어 달려가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원에 응답하시며 풍성한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죄를 지적하는 말씀을 들어도 회개하려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다가 말씀이 찔림이 되어 반발을 일으킵니다. '또 나를 두고 하는 말씀이구나!' 하며 판단하며 불편해지지요. 이렇게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자기 악 속에서 성령의 소욕을 좇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가면 성령이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히브리서 6장 4~6절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하셨지요.
누가복음 19장 27절에는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영이 죽는다는 뜻입니다. 아담이 불순종했을 때 "정녕 죽으리라" 한 대로 영이 죽게 된 것과 같지요. 즉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장사를 하지 않으면 받았던 성령까지 빼앗겨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는 것을 원치 않은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죽임을 당하는데 바로 영적 사망의 형벌을 받아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게 되지요.
그런데 여기서 바로 알아야 될 것은 이들이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원치 않았기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은 원래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도 구원받게 하시려고 그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미 이들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은총을 입은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늘 감사하며 열 므나 이상을 남기기까지 성령으로 열심히 장사하시길 바랍니다.
교육목표 : 성령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적인 장사를 잘하여 성결을 온전히 이룸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한다.
흔히 열 므나 비유를 달란트 비유와 동일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각각 다른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 주님께 인정받는 척도가 달라집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육적인 재능뿐 아니라 영적 달란트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 소망, 사랑'이지요. 그러면 열 므나 비유에는 어떤 영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본문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리장 삭개오에게 구원을 베푸시며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열 므나 비유를 통해 구원에 관해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본문 11절에 "저희가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는 것은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구원의 도를 완성할 때가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육적인 권세를 가진 메시아가 되어 줄 것을 기대했으므로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예수님께서는 열 므나 비유를 통해 진리를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눅 19:12)
그러면 열 므나 비유에는 어떤 영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했습니다. '귀인'이란 귀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지만 십자가를 지기 전으로 구세주로서 왕위를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귀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므나'는 은을 계수하는 단위이지만 여기서는 성령을 뜻합니다. 귀인이 먼 나라로 갈 때에 종들에게 므나를 나눠 준 것처럼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얼마 후 성령이 오셨지요. 열 므나를 한 사람이 한 므나씩 똑같이 받았듯이 믿는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성령을 받습니다. 가령 달란트는 영적으로 믿음, 소망, 사랑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을 수 있지만 므나는 성령이므로 하나밖에 받을 수 없지요.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먼 나라로 갔다는 것은 천국에 갔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후 하나님께 가셔서 왕위를 받아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주님이 성령을 주신 후에 왕위를 가지러 천국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부활 승천하시고 왕위를 받으신 후에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지요.
그러면 왜 귀인이 므나를 준 다음에 왕위를 가지러 먼 나라로 갔다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왕위가 예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왕위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주님은 부활하셔서 왕위를 이미 얻으셨지만 성령받은 하나님 자녀는 이 세상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왕위를 회복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이 세상에서 인간 경작을 받으며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해 가는 중이지요. 주님이 공중 강림하시고 우리가 영체로 홀연히 변화될 때 비로소 영혼과 몸까지 온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셨는데 이것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성령으로 장사하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했습니다. 자기의 소유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등 육적인 것을 말합니다. 육에 속한 것을 팔아 버리는 만큼 좋은 마음 밭이 되며 무엇을 심든지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또한 영으로 일군 만큼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 안에 있는 육을 팔아 영의 좋은 마음이 되는 것이 영적 장사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에 가심으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은 하나님 자녀들이 영적인 장사를 잘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죄성과 육을 벗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것입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눅 19:15)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했는지 묻습니다. 한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기니 잘했다고 칭찬하시며 열 고을 차지하는 권세를 줍니다. 또 다른 종은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기니 칭찬은 하시지 않고 다섯 고을만 차지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달란트 비유에서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 주님께서 동일하게 칭찬하였습니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최선을 다해 갑절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것과 다섯 므나를 남긴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은 성령을 받아 육체의 일, 육신의 일을 다 벗고 온전히 성결을 이루었으므로 주님께서 칭찬하시며 열 고을을 주신 것입니다. 열 고을은 땅의 지경으로 온전히 성결을 이룬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는 3천층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은 3천층 안 새예루살렘에 들어가지요. 그리고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는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는 것은 그가 50% 이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였기 때문에 믿음의 3단계 즉 2천층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므나를 남긴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주의 한 므나를 수건에 싸 두었나이다" 합니다. 그는 아예 장사할 생각도 하지 않고 가지고만 있었지요. 그리고 당신이 엄한 사람이라 무서워서 그랬다고 변명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고 책망하시지요. 이런 사람은 성령을 받고도 죄를 싸워 버리지 않고 육체의 일, 육신의 일을 여전히 행하는 악인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 징계하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하고 환난이 오면 하나님이 치셨다고 하지요. 이것이 한 므나를 받았으되 장사는 하지 않고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눅 19:26)
주님께서는 악한 종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시며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셨습니다. 한 므나를 받아 열 므나를 만든 사람 즉 성령을 받고 죄를 온전히 버린 성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며 어찌하면 주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까 하기 때문에 열심 내어 달려가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원에 응답하시며 풍성한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죄를 지적하는 말씀을 들어도 회개하려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다가 말씀이 찔림이 되어 반발을 일으킵니다. '또 나를 두고 하는 말씀이구나!' 하며 판단하며 불편해지지요. 이렇게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자기 악 속에서 성령의 소욕을 좇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가면 성령이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히브리서 6장 4~6절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하셨지요.
누가복음 19장 27절에는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영이 죽는다는 뜻입니다. 아담이 불순종했을 때 "정녕 죽으리라" 한 대로 영이 죽게 된 것과 같지요. 즉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장사를 하지 않으면 받았던 성령까지 빼앗겨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는 것을 원치 않은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죽임을 당하는데 바로 영적 사망의 형벌을 받아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게 되지요.
그런데 여기서 바로 알아야 될 것은 이들이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원치 않았기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은 원래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도 구원받게 하시려고 그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미 이들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은총을 입은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늘 감사하며 열 므나 이상을 남기기까지 성령으로 열심히 장사하시길 바랍니다.
2008-09-12
제37과추석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1. 추석의 유래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시대부터 지내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에 속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합니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베를 짜서 한가윗날 그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후에 '가위'라는 말로 바뀌었지요. 또 한문으로는 '배'라고도 합니다.
추석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의 하나입니다. 추석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드는데 이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은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2. 추석에 대한 성경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서 초실절(맥추감사절)과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유 명절인 추석을 이러한 감사의 절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 추석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시겠습니다.
묵상기도------------------------------------------------------------------- 다같이
기 원-----------------------------------------------------------------------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아멘 -
찬 송------------------------- 460장 ---------------------------------------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다같이
기 도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모든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민 6:24-26 ------------------------------------- 인도자
설 교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다같이
주기도문 ----------------------------------------------------------------------다같이
4. 설교 예문
본 문 : 민 6:24~26 ( 제목 :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역시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1)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3)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주 하나님을 잘 섬겨 복 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 명절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1. 추석의 유래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시대부터 지내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에 속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합니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베를 짜서 한가윗날 그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후에 '가위'라는 말로 바뀌었지요. 또 한문으로는 '배'라고도 합니다.
추석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의 하나입니다. 추석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드는데 이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은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2. 추석에 대한 성경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서 초실절(맥추감사절)과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유 명절인 추석을 이러한 감사의 절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 추석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시겠습니다.
묵상기도------------------------------------------------------------------- 다같이
기 원-----------------------------------------------------------------------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아멘 -
찬 송------------------------- 460장 ---------------------------------------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다같이
기 도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모든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민 6:24-26 ------------------------------------- 인도자
설 교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다같이
주기도문 ----------------------------------------------------------------------다같이
4. 설교 예문
본 문 : 민 6:24~26 ( 제목 :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역시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1)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3)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주 하나님을 잘 섬겨 복 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 명절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9-05
제36과달란트 비유
마 25:14~30
읽을말씀 : 마 25:14~30 | 외울말씀 : 마 25:29
교육목표 : 달란트 비유를 통해 영적 재능이 무엇인지 알고 달란트를 많이 남겨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달란트 비유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게 되어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기게 되었습니다. 각각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그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장사하지 않고 땅을 파고 그 돈을 그대로 감추어 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계산하였는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장사를 잘하여 갑절로 만들었으므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그대로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하며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면 달란트 비유는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타국은 하늘나라 곧 천국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니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또 자기 소유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천하 만물과 인생들을 말합니다(요 1:10, 히 1:2).
인생들은 인류의 시조 아담의 불순종으로 원수 마귀의 종이 되었는데(눅 4:6), 하나님의 섭리 속에 예비해 두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이를 믿고 영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그러므로 주님을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주님을 영접지 않고 원수 마귀의 소유로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빛 가운데로 인도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믿는 사람들의 본분이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2. 영적 재능
주인은 종들에게 소유를 맡기되 각각 그 재능대로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마 25:15). 이 재능은 세상적인 재능이 아니라, 영적 재능으로서 영혼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왜 믿음, 소망, 사랑이 영혼 구원에 필요한 영적 재능이 되는 것입니까?
첫째, 각자 믿음의 분량(롬 12:3)에 따라서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움과 전도의 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전할 수가 있어 믿음대로 전도가 이루어지고 영혼이 구원되지만, 믿음이 적은 사람은 담대히 전하지 못하니 그만큼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늘나라의 소망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큰 사람은 열심히 하나님 일을 하여 영혼 구원에 앞장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고자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영혼을 구원하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와도 감사와 기쁨으로 감당하려면 영적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외에도 봉사, 찬양 등 주 안에서 하는 모든 일이 영혼 구원과 직결되며 믿음, 소망, 사랑을 얼마나 이루었느냐에 따라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는 정도도 달라집니다.
3. 착하고 충성된 종
만물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소유인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종들에게 각기 주어진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하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이처럼 영혼을 구원하고자 힘쓰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여 많은 달란트를 남긴 사람들은 주님 앞에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며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즐거움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며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은 교회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즐거움에 참예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으로 상이 주어지며 천국 잔치에 참예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열심히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으므로 자기의 재능 안에서 충성하였으니 주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과 동등하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자기의 사명이 크든 작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감당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4. 악하고 게으른 종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은 오랜 후에 주인이 와서 회계할 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받았습니다(마 25:26).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을 알았기 때문에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로우시며 사랑 자체가 되시는 주님을 굳은 사람이라고 자기의 생각에 맞추어 오해했던 것입니다.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을 좇아 열심히 일하여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하는데 땅 속에 그대로 감추어 두었으니 곧 진리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지 않았으므로 게으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땅 속에 묻어 변리도 취하지 못하게 했으니 그만큼 주인의 소유에 손해를 입힌 결과를 가져왔지요. 악하고 게으른 종을 주님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명하시지요. 자기의 사명을 감당치 않고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 영혼 구원의 중요성을 깨달아 주 안에서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므로 더욱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구하심으로 착하고 충성 된 종이라 칭찬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육목표 : 달란트 비유를 통해 영적 재능이 무엇인지 알고 달란트를 많이 남겨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달란트 비유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게 되어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기게 되었습니다. 각각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그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장사하지 않고 땅을 파고 그 돈을 그대로 감추어 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계산하였는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장사를 잘하여 갑절로 만들었으므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그대로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하며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면 달란트 비유는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타국은 하늘나라 곧 천국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니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또 자기 소유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천하 만물과 인생들을 말합니다(요 1:10, 히 1:2).
인생들은 인류의 시조 아담의 불순종으로 원수 마귀의 종이 되었는데(눅 4:6), 하나님의 섭리 속에 예비해 두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이를 믿고 영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그러므로 주님을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주님을 영접지 않고 원수 마귀의 소유로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빛 가운데로 인도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믿는 사람들의 본분이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2. 영적 재능
주인은 종들에게 소유를 맡기되 각각 그 재능대로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마 25:15). 이 재능은 세상적인 재능이 아니라, 영적 재능으로서 영혼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왜 믿음, 소망, 사랑이 영혼 구원에 필요한 영적 재능이 되는 것입니까?
첫째, 각자 믿음의 분량(롬 12:3)에 따라서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움과 전도의 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전할 수가 있어 믿음대로 전도가 이루어지고 영혼이 구원되지만, 믿음이 적은 사람은 담대히 전하지 못하니 그만큼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늘나라의 소망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큰 사람은 열심히 하나님 일을 하여 영혼 구원에 앞장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고자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영혼을 구원하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와도 감사와 기쁨으로 감당하려면 영적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외에도 봉사, 찬양 등 주 안에서 하는 모든 일이 영혼 구원과 직결되며 믿음, 소망, 사랑을 얼마나 이루었느냐에 따라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는 정도도 달라집니다.
3. 착하고 충성된 종
만물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소유인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종들에게 각기 주어진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하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이처럼 영혼을 구원하고자 힘쓰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여 많은 달란트를 남긴 사람들은 주님 앞에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며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즐거움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며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은 교회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즐거움에 참예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으로 상이 주어지며 천국 잔치에 참예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열심히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으므로 자기의 재능 안에서 충성하였으니 주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과 동등하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자기의 사명이 크든 작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감당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4. 악하고 게으른 종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은 오랜 후에 주인이 와서 회계할 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받았습니다(마 25:26).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을 알았기 때문에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로우시며 사랑 자체가 되시는 주님을 굳은 사람이라고 자기의 생각에 맞추어 오해했던 것입니다.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을 좇아 열심히 일하여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하는데 땅 속에 그대로 감추어 두었으니 곧 진리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지 않았으므로 게으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땅 속에 묻어 변리도 취하지 못하게 했으니 그만큼 주인의 소유에 손해를 입힌 결과를 가져왔지요. 악하고 게으른 종을 주님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명하시지요. 자기의 사명을 감당치 않고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 영혼 구원의 중요성을 깨달아 주 안에서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므로 더욱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구하심으로 착하고 충성 된 종이라 칭찬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8-08-29
제35과신부단장을 잘하자
마 25:1~13
읽을말씀 : 마 25:1~13 | 외울말씀 : 마 25:1
교육목표 : 열 처녀 비유를 통해 기름 준비를 잘하여 신랑을 맞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마지막 때 깨어 있어 신부 단장을 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흔히 오늘날을 가리켜 말세라 합니다. 이는 정치, 도덕, 풍속 등이 심히 타락하고 기이한 자연 현상들이 곳곳에 나타나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요.
최근 몇 년 동안만 해도 대지진과 홍수, 대규모의 산불과 큰 태풍으로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기도 했습니다. 또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심한 가뭄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거나 기아에 허덕이며, 오존층의 파괴, 엘니뇨, 라니냐 현상 등으로 지구촌 전역에 이상 기후의 피해가 나타나고 있지요. 그리고 나라와 민족 간의 전쟁과 전 세계를 경악케 하는 테러를 비롯하여 인륜을 벗어난 범죄가 신문지상에 빈번히 보도되어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일들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주님의 재림과 세상 끝에 일어날 징조에 대해 예언하신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곧 그 때에는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발생하고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습니다. 또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어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 하셨는데 실제로 오늘날은 아프리카 오지라 해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거의 없지요.
다니엘 12:4에도 마지막 때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요즘은 얼마나 많은 수송 수단들이 신속히 왕래하고, 또 사람들이 지식에 지식을 더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역사의 흐름만 보더라도 우리는 세상 끝날에 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성경이 그대로 응하고 있는데도 많은 사람이 세상의 정욕에 눈이 어두워서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깨어 있지 못하고 세상에 물들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지요. 노아의 홍수 때에도 많은 사람이 구원의 방주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처럼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평안하다 하고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열 처녀 비유
마태복음 25:1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혼인잔치를 위해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중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은 가졌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을 넉넉히 준비해 놓았지요. 이제나 저제나 신랑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열 처녀는 신랑이 더디 오자 졸다가 한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등을 준비하여 맞으러 갔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등불이 꺼져감으로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하지요. 미련한 처녀들은 부랴부랴 기름을 사러 갔는데 그 사이에 신랑이 와서 슬기로운 처녀들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혼인잔치 문은 닫혔고, 아무리 애원해도 문은 열리지 않았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시는 것일까요?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잘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미련한 처녀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함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신랑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곧 재림하실 주님을 상징하며, 신부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기름 준비를 잘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결혼할 때 순결하고 선하며 아름다운 신부를 원할 것입니다. 하물며 흠과 티가 없으신 주님께서는 어떤 신부를 원하시겠습니까? 순결하고 지혜로우며 단정하고 겸손하며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신부를 바라시겠지요. 주님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어 주시고 참 생명을 얻어 구원에 이르게 하셨으니 그만한 자격을 갖춘 신부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부 된 자격
1)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
마태복음 7:24, 25을 보면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 곧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부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악을 버리며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지요.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간음하거나 남의 것을 탐내지 않으며 누구하고도 걸리지 않고 화평한 사람을 주님은 신부로 맞이하길 원하시지요.
2) 기름 준비를 잘한 사람
열 처녀 중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러 나갔어도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기름이 부족하여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기름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기름이란 기도와 성령 충만함을 뜻합니다. 기름이 있어야 등에 불을 밝힐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영혼의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차츰차츰 충만함이 떨어져 말씀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오듯이 성령의 충만함이 떨어지면 세상과 타협하고 죄악 가운데 살기 때문에 결국 구원에도 이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잘 준비하려면 쉬지 말고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3) 깨어 있는 사람
미련한 다섯 처녀가 졸지 않고 깨어 있었거나 신랑이 더디 올 줄 알았다면 기름을 넉넉하게 준비하여 혼인잔치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깨어 있는 사람만이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할 수 있고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도 못하지요(살전 5:4).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르러 노아 시대에 홍수가 나서 다 멸하기까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24:44에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말씀하셨지요.
기름 준비는 하루 이틀 단 시간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갖고 싶다고 해서 당장 생기는 것도 아니지요. 불같이 기도하고 원수 마귀와 싸워 말씀 안에 살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신부 된 자격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신부 단장을 잘하여 기쁨으로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육목표 : 열 처녀 비유를 통해 기름 준비를 잘하여 신랑을 맞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마지막 때 깨어 있어 신부 단장을 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흔히 오늘날을 가리켜 말세라 합니다. 이는 정치, 도덕, 풍속 등이 심히 타락하고 기이한 자연 현상들이 곳곳에 나타나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요.
최근 몇 년 동안만 해도 대지진과 홍수, 대규모의 산불과 큰 태풍으로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기도 했습니다. 또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심한 가뭄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거나 기아에 허덕이며, 오존층의 파괴, 엘니뇨, 라니냐 현상 등으로 지구촌 전역에 이상 기후의 피해가 나타나고 있지요. 그리고 나라와 민족 간의 전쟁과 전 세계를 경악케 하는 테러를 비롯하여 인륜을 벗어난 범죄가 신문지상에 빈번히 보도되어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일들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주님의 재림과 세상 끝에 일어날 징조에 대해 예언하신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곧 그 때에는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발생하고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습니다. 또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어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 하셨는데 실제로 오늘날은 아프리카 오지라 해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거의 없지요.
다니엘 12:4에도 마지막 때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요즘은 얼마나 많은 수송 수단들이 신속히 왕래하고, 또 사람들이 지식에 지식을 더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역사의 흐름만 보더라도 우리는 세상 끝날에 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성경이 그대로 응하고 있는데도 많은 사람이 세상의 정욕에 눈이 어두워서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깨어 있지 못하고 세상에 물들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지요. 노아의 홍수 때에도 많은 사람이 구원의 방주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처럼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평안하다 하고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열 처녀 비유
마태복음 25:1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혼인잔치를 위해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중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은 가졌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을 넉넉히 준비해 놓았지요. 이제나 저제나 신랑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열 처녀는 신랑이 더디 오자 졸다가 한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등을 준비하여 맞으러 갔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등불이 꺼져감으로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하지요. 미련한 처녀들은 부랴부랴 기름을 사러 갔는데 그 사이에 신랑이 와서 슬기로운 처녀들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혼인잔치 문은 닫혔고, 아무리 애원해도 문은 열리지 않았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시는 것일까요?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잘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미련한 처녀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함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신랑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곧 재림하실 주님을 상징하며, 신부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기름 준비를 잘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결혼할 때 순결하고 선하며 아름다운 신부를 원할 것입니다. 하물며 흠과 티가 없으신 주님께서는 어떤 신부를 원하시겠습니까? 순결하고 지혜로우며 단정하고 겸손하며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신부를 바라시겠지요. 주님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어 주시고 참 생명을 얻어 구원에 이르게 하셨으니 그만한 자격을 갖춘 신부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부 된 자격
1)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
마태복음 7:24, 25을 보면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 곧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부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악을 버리며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지요.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간음하거나 남의 것을 탐내지 않으며 누구하고도 걸리지 않고 화평한 사람을 주님은 신부로 맞이하길 원하시지요.
2) 기름 준비를 잘한 사람
열 처녀 중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러 나갔어도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기름이 부족하여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기름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기름이란 기도와 성령 충만함을 뜻합니다. 기름이 있어야 등에 불을 밝힐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영혼의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차츰차츰 충만함이 떨어져 말씀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오듯이 성령의 충만함이 떨어지면 세상과 타협하고 죄악 가운데 살기 때문에 결국 구원에도 이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잘 준비하려면 쉬지 말고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3) 깨어 있는 사람
미련한 다섯 처녀가 졸지 않고 깨어 있었거나 신랑이 더디 올 줄 알았다면 기름을 넉넉하게 준비하여 혼인잔치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깨어 있는 사람만이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할 수 있고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도 못하지요(살전 5:4).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르러 노아 시대에 홍수가 나서 다 멸하기까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24:44에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말씀하셨지요.
기름 준비는 하루 이틀 단 시간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갖고 싶다고 해서 당장 생기는 것도 아니지요. 불같이 기도하고 원수 마귀와 싸워 말씀 안에 살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신부 된 자격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신부 단장을 잘하여 기쁨으로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8-08-22
제34과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마 13:18~23, 13:44
읽을말씀 : 마 13:18~23, 13:44 | 외울말씀 : 마 13:44
교육목표 : 밭에 감추인 보화 즉 마음속에 있는 천국을 발견하여 자기 소유를 다 팔고 영원한 천국을 얻게 한다.
1.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 많은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본문에 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밭은 사람의 마음을 뜻하며 보화는 천국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에 비유하신 것일까요?
마태복음 13:18~23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밭에 비유하여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좋은 밭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길가밭은 천국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고, 돌밭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이내 넘어지는 마음입니다. 가시떨기밭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마음이고, 좋은 밭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 30배, 60배, 100배로 결실을 맺는 마음입니다.
천국이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보화와 같은 천국이 감추어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으나(살전 5:23) 영혼이 몸에 가려 보이지 않듯이 사람의 마음속에 천국이 있지만 감추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사람의 주인 역할을 하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영과 혼이 거하는 장막인 육으로 되었지요. 혼과 육은 영의 지시에 순종하며 주인격인 영이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면서 만물을 다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저주가 임하여 영이 죽게 되었지요(창 1:27~30, 2:17).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주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영이 죽어 혼 속에 갇히게 되니 혼이 사람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되었지요. 영이 살아 있을 때에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았지만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혼이 사람의 주인 역할을 하면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으로 정욕을 좇아 살고, 온갖 불의를 저질러 짐승만도 못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지요.
이렇게 영과 혼, 육의 질서가 깨져 사람의 본분을 행치 못하고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되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게 하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히 9:22)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죽었던 영이 살아나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영이 사람의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다스리게 되니 기쁨이 임하고 사람의 본분을 행함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지요. 따라서 죽은 영이 살아난 것은 곧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여 마음속에 천국이 임해 기쁨이 넘친다는 뜻입니다.
2. 보화를 발견한 후에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마태복음 13:44을 보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값진 보화가 있는 것을 안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사서 보화를 캐낼 것입니다.
그러면 보화를 발견한 후 자기의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샀다는 것은 영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하지만 즉시 능력을 받아 행하지는 못합니다. 즉 보화를 발견했다고 해서 곧바로 보화를 캐내는 것은 아니지요. 먼저 가재도구를 팔고 돈을 장만해서 그 밭을 삽니다.
따라서 자기의 소유를 판다는 것은 혼을 깨뜨리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히 12:4). 혼이 더 이상 사람의 주인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영이 주인 역할을 해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혼을 깨뜨려서 그 속에 갇혀 있는 영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치 달걀 속에 병아리가 제대로 활동하려면 껍질을 깨뜨리고 나와야 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육체의 일(갈 5:19~21)과 육신의 일(롬 13:13, 14) 등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나아가 영의 사람이 되어 신의 성품에 참예하고(벧후 1:4)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배에 참석하면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사랑하라, 기뻐하라, 감사하라, 화목하라, 절제하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등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하면서 죄악을 버리는 모든 것들이 바로 자기의 소유를 파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을 소유하려면 주인에게 값을 지불해야만 하듯이, 천국이 담겨진 밭을 사려면 천국의 주인인 하나님께 그 대가를 드려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시간과 물질, 봉사 등으로 헌신하며,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등 자신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면 천국을 얻게 되지요.
이처럼 자기의 소유를 팔아 혼을 깨뜨리며 죄를 버려 나가면 성령의 소욕을 좇아 말씀대로 살게 되고 천국을 소유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혼이 깨져 영이 살아나는 만큼 마음속에 천국이 임하고, 그만큼 영혼이 잘되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5:3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의 악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다는 것이며,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밭에 감추인 보화를 캐내어 천국을 소유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천국을 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요(마 7:21).
예를 들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의를 위해 살기 때문에 핍박을 받지만 천국이 임해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10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씀했지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고 사도 바울이나 모세, 예레미야 등 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사람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소유하는 천국
밭에 보화가 감추인 것을 믿기에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 것처럼 천국은 믿음으로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림자가 있으면 실체가 있고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본체인 천국을 소유하려면 그림자인 마음의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그림자였던 천국이 실체로 나타나고 영원히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구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있었기에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고, 구약의 율법이 있었기에 신약에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 11:1)이므로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해야만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지며 그럴 때라야 비로소 천국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자기 소유를 열심히 팔아 버림으로 마음에 천국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이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곧 천국이 실체이고 감추인 보화는 그림자이며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이 땅에 모든 것을 버렸을지라도 실상은 가장 부요한 사람입니다. 반면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설령 명예, 권세, 부, 건강이 있을지라도 실상은 가난하여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필요한 모든 것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세상 모든 것이 헛되며 죽으면 영원한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들이 세상에 좋은 것을 모두 버린 까닭은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보화를 발견하고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도 천국을 발견하였으니 말씀에 위배된 것을 버리고 행함 있는 믿음을 내보여야지요. 마음속에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자기 고집, 교만, 자존심, 비진리를 다 팔아야 심령 천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것에 미련 두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열심히 자기 소유를 팔아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교육목표 : 밭에 감추인 보화 즉 마음속에 있는 천국을 발견하여 자기 소유를 다 팔고 영원한 천국을 얻게 한다.
1.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 많은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본문에 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밭은 사람의 마음을 뜻하며 보화는 천국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에 비유하신 것일까요?
마태복음 13:18~23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밭에 비유하여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좋은 밭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길가밭은 천국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고, 돌밭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이내 넘어지는 마음입니다. 가시떨기밭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마음이고, 좋은 밭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 30배, 60배, 100배로 결실을 맺는 마음입니다.
천국이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보화와 같은 천국이 감추어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으나(살전 5:23) 영혼이 몸에 가려 보이지 않듯이 사람의 마음속에 천국이 있지만 감추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사람의 주인 역할을 하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영과 혼이 거하는 장막인 육으로 되었지요. 혼과 육은 영의 지시에 순종하며 주인격인 영이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면서 만물을 다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저주가 임하여 영이 죽게 되었지요(창 1:27~30, 2:17).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주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영이 죽어 혼 속에 갇히게 되니 혼이 사람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되었지요. 영이 살아 있을 때에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았지만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혼이 사람의 주인 역할을 하면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으로 정욕을 좇아 살고, 온갖 불의를 저질러 짐승만도 못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지요.
이렇게 영과 혼, 육의 질서가 깨져 사람의 본분을 행치 못하고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되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게 하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히 9:22)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죽었던 영이 살아나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영이 사람의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다스리게 되니 기쁨이 임하고 사람의 본분을 행함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지요. 따라서 죽은 영이 살아난 것은 곧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여 마음속에 천국이 임해 기쁨이 넘친다는 뜻입니다.
2. 보화를 발견한 후에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마태복음 13:44을 보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값진 보화가 있는 것을 안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사서 보화를 캐낼 것입니다.
그러면 보화를 발견한 후 자기의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샀다는 것은 영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하지만 즉시 능력을 받아 행하지는 못합니다. 즉 보화를 발견했다고 해서 곧바로 보화를 캐내는 것은 아니지요. 먼저 가재도구를 팔고 돈을 장만해서 그 밭을 삽니다.
따라서 자기의 소유를 판다는 것은 혼을 깨뜨리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히 12:4). 혼이 더 이상 사람의 주인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영이 주인 역할을 해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혼을 깨뜨려서 그 속에 갇혀 있는 영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치 달걀 속에 병아리가 제대로 활동하려면 껍질을 깨뜨리고 나와야 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육체의 일(갈 5:19~21)과 육신의 일(롬 13:13, 14) 등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나아가 영의 사람이 되어 신의 성품에 참예하고(벧후 1:4)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배에 참석하면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사랑하라, 기뻐하라, 감사하라, 화목하라, 절제하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등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하면서 죄악을 버리는 모든 것들이 바로 자기의 소유를 파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을 소유하려면 주인에게 값을 지불해야만 하듯이, 천국이 담겨진 밭을 사려면 천국의 주인인 하나님께 그 대가를 드려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시간과 물질, 봉사 등으로 헌신하며,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등 자신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면 천국을 얻게 되지요.
이처럼 자기의 소유를 팔아 혼을 깨뜨리며 죄를 버려 나가면 성령의 소욕을 좇아 말씀대로 살게 되고 천국을 소유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혼이 깨져 영이 살아나는 만큼 마음속에 천국이 임하고, 그만큼 영혼이 잘되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5:3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의 악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다는 것이며,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밭에 감추인 보화를 캐내어 천국을 소유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천국을 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요(마 7:21).
예를 들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의를 위해 살기 때문에 핍박을 받지만 천국이 임해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10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씀했지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고 사도 바울이나 모세, 예레미야 등 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사람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소유하는 천국
밭에 보화가 감추인 것을 믿기에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 것처럼 천국은 믿음으로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림자가 있으면 실체가 있고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본체인 천국을 소유하려면 그림자인 마음의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그림자였던 천국이 실체로 나타나고 영원히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구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있었기에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고, 구약의 율법이 있었기에 신약에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 11:1)이므로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해야만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지며 그럴 때라야 비로소 천국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자기 소유를 열심히 팔아 버림으로 마음에 천국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이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곧 천국이 실체이고 감추인 보화는 그림자이며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이 땅에 모든 것을 버렸을지라도 실상은 가장 부요한 사람입니다. 반면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설령 명예, 권세, 부, 건강이 있을지라도 실상은 가난하여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필요한 모든 것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세상 모든 것이 헛되며 죽으면 영원한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들이 세상에 좋은 것을 모두 버린 까닭은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보화를 발견하고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도 천국을 발견하였으니 말씀에 위배된 것을 버리고 행함 있는 믿음을 내보여야지요. 마음속에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자기 고집, 교만, 자존심, 비진리를 다 팔아야 심령 천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것에 미련 두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열심히 자기 소유를 팔아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2008-08-15
제33과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
눅 14:16~24
읽을말씀 : 눅 14:16~24 | 외울말씀 : 눅 14:21
교육목표 : 주님께서 배설하신 천국 잔치에 참석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고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1. 천국 잔치 비유
한 동네에 사는 어떤 사람이 "몇 월 며칠 몇 시에 큰 잔치를 베풀고자 하오니 오셔서 즐기시기 바랍니다." 하는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한두 주일 전 초대장을 받았는데 가부간 말이 없다가 잔치 당일에 변명을 늘어 놓으며 참석할 수 없다고 한다면 초대한 사람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런 비유를 들어 천국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청한 손님들에게 종을 보내어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며 잔치에 오도록 권했습니다. 그런데 밭을 사러 가야 한다, 소 다섯 겨리를 시험하러 가야 한다, 장가든 지 얼마 안 되었다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잔치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지요(눅 14장).
초청한 손님들을 위하여 막대한 비용과 온갖 정성을 들인 잔치에 그런 이유로 못 온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한 주인은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 병신들, 소경들,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종들을 보내며,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지요.
그러면 예수님은 잔치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여기서 잔치를 베푼 주인은 주님이고 장소는 교회로 예수님은 교회를 훌륭한 연회장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늘나라의 기름진 말씀으로 진수성찬을 차리고 주의 종들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을 데려오게 하셨지요.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잔치에 초대받아 진수성찬을 맛있게 먹는 것과 같습니다.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잔치를 맛볼 수 없고 천국을 소유하지 못하지만, 초청에 응하여 잔치에 참석하면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천국 잔치에 초청받고 참석한 사람들로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생을 소유하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어 열심히 천국을 침노하게 되지요(요 6:54).
2.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잔칫날이 이르기 오래전에 초청장을 보내고 준비를 마치면 종을 보내 청한 손님들을 데려오는 풍습이 있습니다. 밭을 사고 소를 사며 결혼하는 것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초청에 사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주인이 준비를 다한 후에 못 온다고 통보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안락 등으로 배부른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눅 6:24~26).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향락으로 배부르며 웃고 칭찬받는 자들은 세상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로와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국을 소유할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했습니다(약 4:14).
그래서 세계 각처에 주의 종을 보내 교회를 세우고, 천국 잔칫상을 배설하여 지금도 초청장을 띄우고 있지요. 이 초대에 응하면 영생을 얻고 천국을 소유하는 놀라운 축복을 얻는데도 썩어질 것으로 채우려는 부요한 자들은 어리석게도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3, 24)는 말씀대로이지요.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면 가난한 자, 병신, 소경, 저는 자 등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무식하고 버림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육적으로는 부족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며 도리어 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복된 사람들이지요.
자녀를 키워 보면 병들고 못난 자녀일수록 부모를 더 필요로 하고 매달리지만 부요하고 출세한 자녀는 부모에게 기대지 않습니다. 외지에 나간 자녀도 평안할 때는 소식이 없다가 고달프면 하소연의 소식을 띄웁니다. 이같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가난하고 병들고 답답하며 곤고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는 심정으로 나옵니다. 즉 자신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바로 알 때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되지요.
3. 천국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마태복음 5:3~10을 보면 잃어버린 하나님 자녀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복음을 들고 어떤 사람들에게 찾아가야 할지 말씀해 줍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인생의 낭패를 겪고 자아가 완전히 깨진 상태이므로 복음을 전하면 쉽게 받아들입니다. 애통하는 사람은 위로가 필요하므로 하나님의 위로가 담긴 복음을 전하면 잘 수용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음을 들으면 기뻐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세상을 바르게 살려고 애쓰기 때문에 복음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인생의 푯대를 찾고자 하기 때문에 복음을 좋아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청렴하게 살고자 하므로 복음을 듣고 기뻐하며, 화평케 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 가더라도 부정과 미움을 쫓아내고 화평과 사랑을 심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면 잘 받아들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은 의를 행함으로 고통당하기 때문에 복음을 들고 찾아가면 곧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같이 마음이 비어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지요.
4. 천국 잔치에 초청하는 이유
누가복음 4:18, 19을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천국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초청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가난한 사람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갈라디아서 3:13, 14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며 물질적으로도 거부였던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에게 주셔서 영적 승리뿐 아니라 물질의 축복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기쁜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 가난과 물질적인 궁핍으로부터 해방되지요.
둘째, 포로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죄의 노예가 되어 헤어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말씀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모든 포로 된 상태에서 자유하게 하실 수 있지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을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시기 때문에 천국 잔치에 참석하여 진리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셋째,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죽으면 영혼은 천국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끌려가 끝없는 절망과 고통 속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는 차라리 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천국 잔치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하여 천국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마다 부활의 소망과 천국의 소망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게 되지요(요 3:16).
넷째,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은혜의 해란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지키는 희년, 곧 노예로 팔려간 가족이나 친지 혹은 빚으로 넘어갔던 땅 등 모든 잃은 것을 회복시켜 주는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 넘겨준 모든 것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는 복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변에 아직도 주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천국 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쉼 없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성대한 세상의 잔치도 주님이 생명의 양식으로 식탁을 마련해 주신 천국 잔치와 비교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여러분은 행복하게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주님께서 배설하신 천국 잔치에 참석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고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1. 천국 잔치 비유
한 동네에 사는 어떤 사람이 "몇 월 며칠 몇 시에 큰 잔치를 베풀고자 하오니 오셔서 즐기시기 바랍니다." 하는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한두 주일 전 초대장을 받았는데 가부간 말이 없다가 잔치 당일에 변명을 늘어 놓으며 참석할 수 없다고 한다면 초대한 사람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런 비유를 들어 천국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청한 손님들에게 종을 보내어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며 잔치에 오도록 권했습니다. 그런데 밭을 사러 가야 한다, 소 다섯 겨리를 시험하러 가야 한다, 장가든 지 얼마 안 되었다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잔치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지요(눅 14장).
초청한 손님들을 위하여 막대한 비용과 온갖 정성을 들인 잔치에 그런 이유로 못 온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한 주인은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 병신들, 소경들,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종들을 보내며,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지요.
그러면 예수님은 잔치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여기서 잔치를 베푼 주인은 주님이고 장소는 교회로 예수님은 교회를 훌륭한 연회장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늘나라의 기름진 말씀으로 진수성찬을 차리고 주의 종들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을 데려오게 하셨지요.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잔치에 초대받아 진수성찬을 맛있게 먹는 것과 같습니다.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잔치를 맛볼 수 없고 천국을 소유하지 못하지만, 초청에 응하여 잔치에 참석하면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천국 잔치에 초청받고 참석한 사람들로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생을 소유하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어 열심히 천국을 침노하게 되지요(요 6:54).
2.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잔칫날이 이르기 오래전에 초청장을 보내고 준비를 마치면 종을 보내 청한 손님들을 데려오는 풍습이 있습니다. 밭을 사고 소를 사며 결혼하는 것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초청에 사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주인이 준비를 다한 후에 못 온다고 통보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안락 등으로 배부른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눅 6:24~26).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향락으로 배부르며 웃고 칭찬받는 자들은 세상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로와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국을 소유할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했습니다(약 4:14).
그래서 세계 각처에 주의 종을 보내 교회를 세우고, 천국 잔칫상을 배설하여 지금도 초청장을 띄우고 있지요. 이 초대에 응하면 영생을 얻고 천국을 소유하는 놀라운 축복을 얻는데도 썩어질 것으로 채우려는 부요한 자들은 어리석게도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3, 24)는 말씀대로이지요.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면 가난한 자, 병신, 소경, 저는 자 등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무식하고 버림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육적으로는 부족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며 도리어 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복된 사람들이지요.
자녀를 키워 보면 병들고 못난 자녀일수록 부모를 더 필요로 하고 매달리지만 부요하고 출세한 자녀는 부모에게 기대지 않습니다. 외지에 나간 자녀도 평안할 때는 소식이 없다가 고달프면 하소연의 소식을 띄웁니다. 이같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가난하고 병들고 답답하며 곤고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는 심정으로 나옵니다. 즉 자신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바로 알 때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되지요.
3. 천국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마태복음 5:3~10을 보면 잃어버린 하나님 자녀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복음을 들고 어떤 사람들에게 찾아가야 할지 말씀해 줍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인생의 낭패를 겪고 자아가 완전히 깨진 상태이므로 복음을 전하면 쉽게 받아들입니다. 애통하는 사람은 위로가 필요하므로 하나님의 위로가 담긴 복음을 전하면 잘 수용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음을 들으면 기뻐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세상을 바르게 살려고 애쓰기 때문에 복음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인생의 푯대를 찾고자 하기 때문에 복음을 좋아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청렴하게 살고자 하므로 복음을 듣고 기뻐하며, 화평케 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 가더라도 부정과 미움을 쫓아내고 화평과 사랑을 심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면 잘 받아들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은 의를 행함으로 고통당하기 때문에 복음을 들고 찾아가면 곧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같이 마음이 비어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지요.
4. 천국 잔치에 초청하는 이유
누가복음 4:18, 19을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천국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초청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가난한 사람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갈라디아서 3:13, 14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며 물질적으로도 거부였던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에게 주셔서 영적 승리뿐 아니라 물질의 축복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기쁜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 가난과 물질적인 궁핍으로부터 해방되지요.
둘째, 포로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죄의 노예가 되어 헤어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말씀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모든 포로 된 상태에서 자유하게 하실 수 있지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을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시기 때문에 천국 잔치에 참석하여 진리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셋째,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죽으면 영혼은 천국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끌려가 끝없는 절망과 고통 속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는 차라리 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천국 잔치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하여 천국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마다 부활의 소망과 천국의 소망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게 되지요(요 3:16).
넷째,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은혜의 해란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지키는 희년, 곧 노예로 팔려간 가족이나 친지 혹은 빚으로 넘어갔던 땅 등 모든 잃은 것을 회복시켜 주는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 넘겨준 모든 것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는 복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변에 아직도 주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천국 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쉼 없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성대한 세상의 잔치도 주님이 생명의 양식으로 식탁을 마련해 주신 천국 잔치와 비교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여러분은 행복하게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2008-08-08
제32과영원한 것을 위하여
전 1:1-8
읽을말씀 : 전 1:1-8 | 외울말씀 : 요 3:16
교육목표 : 솔로몬 왕을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영원한 것을 위해 사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전도서의 기록자 솔로몬 왕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일천 번제를 정성껏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셨지요. 이때 솔로몬은 부귀영화나 장수하기를 구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재판할 지혜를 구했습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이 하나님께 합당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지혜 외에도 부와 영화까지 주시며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왕상 3:3-13).
솔로몬 왕 때에는 영토가 광대하고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았으며, 안정과 번영을 누리며 그 부귀영화는 말로다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나므로 동서남북 나라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습니다(왕상 4:20-34).
그런데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인을 사랑하여 이방신을 위한 산당까지 지음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고 하셨지요(왕상 11:1-11). 그 후 이스라엘은 역경에 처하였고 영화롭던 솔로몬 왕의 시대는 가고 그의 사후에는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2. 헛되고 헛된 삶의 비유
부귀영화를 누리며 천하 열왕보다 지혜가 뛰어났던 솔로몬 왕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나이 들어 회상해 보니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됨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허무함을 해와 바람, 강물에 비유하였지요.
전도서 1장 2-7절에 보면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했지요.
1) 해는 떴다가 지며
솔로몬 왕은 해와 같이 빛났던 사람입니다. 해는 높은 왕 같은 위치와 찬란한 비전을 뜻합니다. 해는 만물을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해가 뜨면 어둠이 사라지고 더위가 찾아오지만 해가 지면 어둠과 추위가 찾아옵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다가도 구름이 가리면 더위가 가시고 높이 떴다가도 어느새 지고 말지요. 없어서는 안 될 해가 기울면 무익하게 되는 것처럼 해같이 빛나던 솔로몬 왕도 기울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인생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2) 바람은 불다가 돌아가고
바람은 분명히 있지만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바람이 불면 시원하지만 바람이 스치고 나면 더워집니다. 이처럼 시원한 바람도 스치고 나면 아무 유익이 없으니 허무한 인생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3) 강물은 흐르나 채우지 못하고
강물은 흘러도 넘치지 않고 되돌아오지 않으며 바다를 채우지 못합니다. 이처럼 지식이나 재산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족함이 없고 명예나 권세는 더 높아지려 하는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이것들을 얻기 위해 달려가지만 세월이 흘러 노년에 이르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해가 떴다가 져도 붙들 수 없고 바람 역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으며 한번 스치면 그만입니다. 이 땅에서 많은 것을 취하며 부귀영화를 누렸어도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되면 헛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으며 그 연수는 길어야 칠팔십입니다. 아침이 되면 눈 비비고 일어나 출근길부터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하루 종일 일터에서 땀 흘려 수고합니다.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자기 바쁘고 다시 해가 뜨면 어제와 같은 생활을 반복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성숙하는 것 같지만 점차 육체는 쇠하여 가고 결국에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말지요. 나름대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이루려고 노력하지만 하나님께서 영혼을 부르시면 그 무엇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생명이 끊어질 때가 되어 무엇인가를 깨우치고 후회해도 때는 늦었으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탄식이 나오지요.
그래서 내세를 준비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자기 유익을 위해 살면 아무리 취해도 만족함이 없으며 괴로울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진리대로 살지 않은 사람은 마침내 영원한 지옥불에서 처참하게 형벌을 받게 됩니다.
3. 영원한 것을 위하여
솔로몬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며 악을 행함으로 그동안 쌓았던 것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이 나이 들어 지난 일들을 반추해 보았을 때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나 한 가지 헛되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전도서 12:1에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므로 사람의 본분을 지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16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구원받아 영생을 얻으며 헛되지 않는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얻고(요 1:12)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요 6:53). 열심히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비진리는 버리고 진리로 무장하는 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해 주시지요.
생명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온갖 것을 욕심으로 취하니 만족이 없습니다. 반면 생명이 있는 사람은 재물과 지식을 쌓고 명예와 권세를 얻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축복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 솔로몬 왕은 해 아래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지만 단 헛되지 않고 생명을 얻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임을 나중에야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도 가장 귀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영원한 것을 소망할 수 있어야 하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전도하고 예배하는 것도 영원한 것을 취해 가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목표를 이 땅의 헛된 것에 두지 말고 천국의 영원한 것에 두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 영생복락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솔로몬 왕을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영원한 것을 위해 사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전도서의 기록자 솔로몬 왕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일천 번제를 정성껏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셨지요. 이때 솔로몬은 부귀영화나 장수하기를 구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재판할 지혜를 구했습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이 하나님께 합당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지혜 외에도 부와 영화까지 주시며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왕상 3:3-13).
솔로몬 왕 때에는 영토가 광대하고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았으며, 안정과 번영을 누리며 그 부귀영화는 말로다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나므로 동서남북 나라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습니다(왕상 4:20-34).
그런데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인을 사랑하여 이방신을 위한 산당까지 지음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고 하셨지요(왕상 11:1-11). 그 후 이스라엘은 역경에 처하였고 영화롭던 솔로몬 왕의 시대는 가고 그의 사후에는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2. 헛되고 헛된 삶의 비유
부귀영화를 누리며 천하 열왕보다 지혜가 뛰어났던 솔로몬 왕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나이 들어 회상해 보니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됨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허무함을 해와 바람, 강물에 비유하였지요.
전도서 1장 2-7절에 보면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했지요.
1) 해는 떴다가 지며
솔로몬 왕은 해와 같이 빛났던 사람입니다. 해는 높은 왕 같은 위치와 찬란한 비전을 뜻합니다. 해는 만물을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해가 뜨면 어둠이 사라지고 더위가 찾아오지만 해가 지면 어둠과 추위가 찾아옵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다가도 구름이 가리면 더위가 가시고 높이 떴다가도 어느새 지고 말지요. 없어서는 안 될 해가 기울면 무익하게 되는 것처럼 해같이 빛나던 솔로몬 왕도 기울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인생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2) 바람은 불다가 돌아가고
바람은 분명히 있지만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바람이 불면 시원하지만 바람이 스치고 나면 더워집니다. 이처럼 시원한 바람도 스치고 나면 아무 유익이 없으니 허무한 인생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3) 강물은 흐르나 채우지 못하고
강물은 흘러도 넘치지 않고 되돌아오지 않으며 바다를 채우지 못합니다. 이처럼 지식이나 재산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족함이 없고 명예나 권세는 더 높아지려 하는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이것들을 얻기 위해 달려가지만 세월이 흘러 노년에 이르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해가 떴다가 져도 붙들 수 없고 바람 역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으며 한번 스치면 그만입니다. 이 땅에서 많은 것을 취하며 부귀영화를 누렸어도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되면 헛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으며 그 연수는 길어야 칠팔십입니다. 아침이 되면 눈 비비고 일어나 출근길부터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하루 종일 일터에서 땀 흘려 수고합니다.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자기 바쁘고 다시 해가 뜨면 어제와 같은 생활을 반복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성숙하는 것 같지만 점차 육체는 쇠하여 가고 결국에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말지요. 나름대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이루려고 노력하지만 하나님께서 영혼을 부르시면 그 무엇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생명이 끊어질 때가 되어 무엇인가를 깨우치고 후회해도 때는 늦었으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탄식이 나오지요.
그래서 내세를 준비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자기 유익을 위해 살면 아무리 취해도 만족함이 없으며 괴로울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진리대로 살지 않은 사람은 마침내 영원한 지옥불에서 처참하게 형벌을 받게 됩니다.
3. 영원한 것을 위하여
솔로몬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며 악을 행함으로 그동안 쌓았던 것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이 나이 들어 지난 일들을 반추해 보았을 때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나 한 가지 헛되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전도서 12:1에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므로 사람의 본분을 지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16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구원받아 영생을 얻으며 헛되지 않는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얻고(요 1:12)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요 6:53). 열심히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비진리는 버리고 진리로 무장하는 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해 주시지요.
생명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온갖 것을 욕심으로 취하니 만족이 없습니다. 반면 생명이 있는 사람은 재물과 지식을 쌓고 명예와 권세를 얻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축복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 솔로몬 왕은 해 아래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지만 단 헛되지 않고 생명을 얻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임을 나중에야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도 가장 귀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영원한 것을 소망할 수 있어야 하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전도하고 예배하는 것도 영원한 것을 취해 가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목표를 이 땅의 헛된 것에 두지 말고 천국의 영원한 것에 두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 영생복락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