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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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9
제51과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
마 2:1~12
읽을말씀 : 마 2:1~12 | 외울말씀 : 마 2:11
교육목표 :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왜 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했으며 동방 박사들로부터 세 가지 예물을 받으셨는지 그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한다.
1.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자녀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계인의 축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은 온 인류의 축복이요 하나님께는 영광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18-25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에도 불구하고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아무 보잘것없는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눅 2:3-7). 이는 전도서 3:18에 말씀한 대로 사람들이 짐승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심으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으니 혼의 지배를 받는 혼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혼의 지배를 받게 된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거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혼의 사람이 되어 버린 인류를 다시금 영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과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기 위해 친히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사람의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51-55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영의 양식을 먹는 사람마다 죄 사함을 받고 참 생명을 얻어 영생하게 하신 하나님과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기쁨으로 담당하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머리 숙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1-12에 보면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고, 헤롯 왕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쳐 준 대로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 예수를 찾거든 자기에게 고하여 자기도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하는데, 이는 아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박사들에게 꿈으로 헤롯 왕에게 가지 말 것을 지시하시고, 예수님의 육의 부친인 요셉에게 역사하셔서 애굽으로 피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았던 것처럼 영안이 열린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 땅에는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들이나 율법학자들, 또한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누가복음 2:8-20에 보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주었고 목자들은 이 일로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양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누가복음 2:25-38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또한 "안나"라는 여선지자 역시 나이 많아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였는데, 결국 이들은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고 하나님께 영광돌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속히 오실 주님을 증거하지만(계 22:20), 주님께서 곧 오실 것을 마음 중심에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 하나님께서 예언해 놓으신 모든 말씀은 알았어도 막상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못했던 외식주의자들처럼, 교회에 다니며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알긴 알아도 속히 오실 주님을 중심에서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외식주의자들처럼 외모만 경건할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 먼저 경건하여지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늘 깨어 기도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의 의미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만물이 썩어 없어질 것들이므로 황금, 유향, 몰약도 결국은 썩어 없어질 것이지만, 예물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변치 아니하고 썩지 아니할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렇다면 세 가지 예물을 드린 영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1) 황금의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합니다. 그런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마 6:21)고 했으니 황금은 또한 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저주를 받아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을 대속해 주시기 위해 친히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보잘것없는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고 오히려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고후 8:9).
또한 부의 상징인 황금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귀히 여겼다 할지라도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영생을 사모하며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2) 유향의 의미
유향이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주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죄악들을 대속해 주신 것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23:27을 보면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고, 마태복음 15:11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여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므로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인 의미는 예수님께서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3) 몰약의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썩지 않게 뿌려지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무리 호의호식하며 산 사람이라도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몰약을 예물로 드린 영적인 의미는 예수님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이로써 우리의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4. 성탄절의 영적인 의미
예수님께 경배하며 예물을 드린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무조건 만인의 구주가 되시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깨어 있는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이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게 됩니다.
더 나아가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황금 곧 세상의 부귀, 영화, 명예를 주님 앞에 드리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향 곧 우리의 마음을 모두 주님께 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또한 몰약, 곧 우리의 썩어 없어질 육체를 주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나갈 뿐 아니라, 오직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과 영생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을 맞아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황금과 유향, 몰약이 뜻하는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넘치게 받으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고백하는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왜 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했으며 동방 박사들로부터 세 가지 예물을 받으셨는지 그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한다.
1.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자녀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계인의 축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은 온 인류의 축복이요 하나님께는 영광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18-25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에도 불구하고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아무 보잘것없는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눅 2:3-7). 이는 전도서 3:18에 말씀한 대로 사람들이 짐승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심으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으니 혼의 지배를 받는 혼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혼의 지배를 받게 된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거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혼의 사람이 되어 버린 인류를 다시금 영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과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기 위해 친히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사람의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51-55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영의 양식을 먹는 사람마다 죄 사함을 받고 참 생명을 얻어 영생하게 하신 하나님과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기쁨으로 담당하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머리 숙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1-12에 보면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고, 헤롯 왕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쳐 준 대로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 예수를 찾거든 자기에게 고하여 자기도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하는데, 이는 아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박사들에게 꿈으로 헤롯 왕에게 가지 말 것을 지시하시고, 예수님의 육의 부친인 요셉에게 역사하셔서 애굽으로 피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았던 것처럼 영안이 열린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 땅에는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들이나 율법학자들, 또한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누가복음 2:8-20에 보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주었고 목자들은 이 일로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양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누가복음 2:25-38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또한 "안나"라는 여선지자 역시 나이 많아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였는데, 결국 이들은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고 하나님께 영광돌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속히 오실 주님을 증거하지만(계 22:20), 주님께서 곧 오실 것을 마음 중심에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 하나님께서 예언해 놓으신 모든 말씀은 알았어도 막상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못했던 외식주의자들처럼, 교회에 다니며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알긴 알아도 속히 오실 주님을 중심에서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외식주의자들처럼 외모만 경건할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 먼저 경건하여지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늘 깨어 기도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의 의미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만물이 썩어 없어질 것들이므로 황금, 유향, 몰약도 결국은 썩어 없어질 것이지만, 예물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변치 아니하고 썩지 아니할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렇다면 세 가지 예물을 드린 영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1) 황금의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합니다. 그런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마 6:21)고 했으니 황금은 또한 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저주를 받아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을 대속해 주시기 위해 친히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보잘것없는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고 오히려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고후 8:9).
또한 부의 상징인 황금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귀히 여겼다 할지라도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영생을 사모하며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2) 유향의 의미
유향이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주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죄악들을 대속해 주신 것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23:27을 보면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고, 마태복음 15:11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여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므로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인 의미는 예수님께서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3) 몰약의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썩지 않게 뿌려지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무리 호의호식하며 산 사람이라도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몰약을 예물로 드린 영적인 의미는 예수님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이로써 우리의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4. 성탄절의 영적인 의미
예수님께 경배하며 예물을 드린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무조건 만인의 구주가 되시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깨어 있는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이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게 됩니다.
더 나아가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황금 곧 세상의 부귀, 영화, 명예를 주님 앞에 드리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향 곧 우리의 마음을 모두 주님께 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또한 몰약, 곧 우리의 썩어 없어질 육체를 주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나갈 뿐 아니라, 오직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과 영생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을 맞아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황금과 유향, 몰약이 뜻하는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넘치게 받으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고백하는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8-12-12
제50과다시 오실 주님
마 24:32-35
읽을말씀 : 마 24:32-35 | 외울말씀 : 계 22:20
교육목표 : 성경을 통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믿게 하고 재림에 대한 성경의 예언과 오늘날 그 징조들을 통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한다.
1. 성취될 재림의 사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는 하늘로 올리워 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게 되는데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 1:11).
이제까지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은 기록된 대로 다 이루어져 왔으며 오직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 앞으로 이루어질 몇 가지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부활을 믿으며 재림과 천국을 믿기 때문에 천국의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19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기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희생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성도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을 사모하기는커녕 재림에 대해 증거하면 두려워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증거하는 사람들을 이단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깨달아 깨어 있게 됩니다. 만약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여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멋있고 웅장한 영광과 승리의 모습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에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다가 죽은 사람은 주님의 공중 재림 때 부활할 것이기에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잠자는 자"라고 부릅니다(고전 15:20). 이러한 자들의 영혼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함께 데리고 오시며, 이때 무덤에 장사되었던 육은 썩지 아니할 육으로 부활하여 공중으로 끌어 올려지고 주님과 함께 온 영혼과 결합되어 완전한 부활체를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살전 4:14-16).
2)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은 자의 휴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부활되면, 다음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 사람이 홀연히 변화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고전 15:51-58, 살전 4:17).
우리는 자연 속에서 부활과 휴거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던 굼벵이나 구더기가 매미나 파리로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시니 그것이 안개가 되어 비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서도(욥 36:27) 상상해 볼 수 있지요. 이렇듯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부활하는 것과 휴거 곧 공중으로 들림받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성경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고 하셨고,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말씀하셨습니다(계 1:3).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며(벧후 3:8), 우리의 연수는 칠십이요 강건해야 팔십입니다(시 90:10). 따라서 인류의 오랜 역사 가운데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재림은 더욱 임박한 사실이며 하나님 편에서도 재림은 속히 이루어질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에 대해 곳곳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37을 보면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고, 빌립보서 4:5에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말씀했으며, 야고보서 5:8에서는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3:11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권면하고 있으며, 요한계시록 22:20에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림의 때가 가까움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전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시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 행하는 알곡 신자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지만, 세상과 짝하며 사는 쭉정이 신자는 재림이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성경에는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고 믿는 자는 신부라고 하였는데 어찌 신랑이 오기를 사모하지 않는 신부가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깨어 있는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기도하고 있기에 때가 가까움을 깨닫고 열심히 신부단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 24:36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며 미혹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지만 어두움에 있으면 도적같이 임한다(살전 5:2-4)는 사실을 깨달아 항상 깨어 근신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세상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인이었던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도록 명하신 것에 순종하였고, 결국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통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무화과나무에 내린 저주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루어졌고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1:18-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말씀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없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그 피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말았습니다(마 27:25).
그리하여 AD 70년 경,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이스라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요 19:23). 그 당시 로마가 성전 훼파의 기념으로 남겨 둔 서쪽 성벽의 일부는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눈물로 기도하는 장소인 통곡의 벽으로 남아 역사적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민족은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율법을 지켜 행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학살을 당하는 등 참으로 처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으니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1948년 5월 14일,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주신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부상시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사 49:8, 겔 38:8).
이처럼 완전히 멸망해 버렸던 이스라엘이 약 190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세워졌다는 것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 것이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놀라운 사건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하여지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이 독립하여 선진국이 되었으니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질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이 세대란 이스라엘이 독립해 살고 있는 현 세대를 지칭하거나 이스라엘의 희년으로 모든 것이 회복되어 자유를 누리는 기쁘고 즐거운 해 등 몇 가지 해석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나타나는 많은 징조들을 통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이르렀음을 깨달아 늘 깨어 기도하며 신부단장을 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성경을 통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믿게 하고 재림에 대한 성경의 예언과 오늘날 그 징조들을 통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한다.
1. 성취될 재림의 사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는 하늘로 올리워 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게 되는데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 1:11).
이제까지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은 기록된 대로 다 이루어져 왔으며 오직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 앞으로 이루어질 몇 가지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부활을 믿으며 재림과 천국을 믿기 때문에 천국의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19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기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희생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성도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을 사모하기는커녕 재림에 대해 증거하면 두려워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증거하는 사람들을 이단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깨달아 깨어 있게 됩니다. 만약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여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멋있고 웅장한 영광과 승리의 모습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에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다가 죽은 사람은 주님의 공중 재림 때 부활할 것이기에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잠자는 자"라고 부릅니다(고전 15:20). 이러한 자들의 영혼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함께 데리고 오시며, 이때 무덤에 장사되었던 육은 썩지 아니할 육으로 부활하여 공중으로 끌어 올려지고 주님과 함께 온 영혼과 결합되어 완전한 부활체를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살전 4:14-16).
2)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은 자의 휴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부활되면, 다음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 사람이 홀연히 변화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고전 15:51-58, 살전 4:17).
우리는 자연 속에서 부활과 휴거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던 굼벵이나 구더기가 매미나 파리로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시니 그것이 안개가 되어 비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서도(욥 36:27) 상상해 볼 수 있지요. 이렇듯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부활하는 것과 휴거 곧 공중으로 들림받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성경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고 하셨고,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말씀하셨습니다(계 1:3).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며(벧후 3:8), 우리의 연수는 칠십이요 강건해야 팔십입니다(시 90:10). 따라서 인류의 오랜 역사 가운데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재림은 더욱 임박한 사실이며 하나님 편에서도 재림은 속히 이루어질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에 대해 곳곳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37을 보면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고, 빌립보서 4:5에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말씀했으며, 야고보서 5:8에서는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3:11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권면하고 있으며, 요한계시록 22:20에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림의 때가 가까움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전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시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 행하는 알곡 신자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지만, 세상과 짝하며 사는 쭉정이 신자는 재림이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성경에는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고 믿는 자는 신부라고 하였는데 어찌 신랑이 오기를 사모하지 않는 신부가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깨어 있는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기도하고 있기에 때가 가까움을 깨닫고 열심히 신부단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 24:36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며 미혹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지만 어두움에 있으면 도적같이 임한다(살전 5:2-4)는 사실을 깨달아 항상 깨어 근신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세상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인이었던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도록 명하신 것에 순종하였고, 결국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통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무화과나무에 내린 저주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루어졌고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1:18-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말씀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없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그 피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말았습니다(마 27:25).
그리하여 AD 70년 경,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이스라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요 19:23). 그 당시 로마가 성전 훼파의 기념으로 남겨 둔 서쪽 성벽의 일부는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눈물로 기도하는 장소인 통곡의 벽으로 남아 역사적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민족은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율법을 지켜 행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학살을 당하는 등 참으로 처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으니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1948년 5월 14일,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주신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부상시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사 49:8, 겔 38:8).
이처럼 완전히 멸망해 버렸던 이스라엘이 약 190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세워졌다는 것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 것이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놀라운 사건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하여지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이 독립하여 선진국이 되었으니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질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이 세대란 이스라엘이 독립해 살고 있는 현 세대를 지칭하거나 이스라엘의 희년으로 모든 것이 회복되어 자유를 누리는 기쁘고 즐거운 해 등 몇 가지 해석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나타나는 많은 징조들을 통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이르렀음을 깨달아 늘 깨어 기도하며 신부단장을 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8-12-05
제49과우리들의 처소와 면류관
요 14:1~6
읽을말씀 : 요 14:1~6 | 외울말씀 : 요 14:2~3
교육목표 : 천국과 면류관의 분류에 대해 알아보고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장차 거할 처소와 면류관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되게 한다.
1. 천국과 면류관의 분류
많은 사람들이 천국은 있다고 알고 있어도 천국의 구조가 어떠한지 알지 못하며, 각 사람마다 믿음이 다르고 행함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천국을 가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말씀했으니 천국은 하나가 아니요 둘 이상 여러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곳곳에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며(갈 6:7)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마 16:27, 계 2:23)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므로 천국도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어야 합당한 것이요,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천국이 주어져야 마땅한 것입니다.
천국은 굉장히 넓은 곳이요,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좋은 곳으로서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낙원은 천국 중에서도 가장 못한 곳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살게 하셨던 에덴동산보다 더욱 아름다운 곳입니다. 또한 천국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처럼 천국이 여러 곳으로 분류되어 있듯이 상급으로 주어지는 면류관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썩지 아니할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 등이 있어 믿음에 따라 상급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2.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처소와 면류관
1) 믿음의 1단계: 낙원, 면류관 없음
낙원은 이 세상과 달리 눈물, 슬픔, 고통이 없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천국 중에서는 가장 못한 곳으로 믿음의 1단계, 곧 성령받을 만한 믿음(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한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23:42-43에 보면, 한편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답변하셨습니다. 결국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3일 동안 옥의 영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시고(벧전 3:19) 부활하신 후 40일간 이 땅에 머무셨다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한편 강도가 십자가상에서 회개하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 낙원에 거하게 될 것을 아시기에 믿음의 눈으로 보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편 강도는 왜 낙원에 거하게 될까요? 하늘나라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상급심판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뿐 죄를 싸워 버리지도 않았고 사명을 감당한 것도 아닌 한편 강도에게는 면류관이 주어지지 않으며 천국에서 가장 못한 낙원에 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2) 믿음의 2단계: 1천층, 썩지 아니할 면류관
구원에 이르게 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열심을 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이때는 믿음의 2단계라고 하는데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천국의 1천층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1천층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면류관이 주어질까요? 디모데후서 2:5-6에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말씀하셨으니 운동선수가 경기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해야 상을 탈 수 있듯이 하나님 말씀대로 경기해야만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진리 말씀에 주일을 지키라 했고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고 했으면 주일을 지키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말씀을 지켜나갈 때 면류관을 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법인 영계의 법칙을 무시하면 이는 지식적인 믿음에 불과한 것이니 법대로 경기하지 않는 운동선수와 같은 것이요, 경기에 참여한 자라고 할 수 없으니 면류관을 받을 수 없지요.
그러나 아직 믿음이 연약하다 할지라도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경기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요, 법대로 경기한 자이니 이러한 사람에게는 이름이 붙지는 않으나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이 상급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3) 믿음의 3단계: 2천층, 영광의 면류관
믿음의 3단계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오면 2천층에 거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나아가는 단계이므로 언행이 변화되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구실을 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 믿는 자로서 본을 보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했으니(전 1:2-3) 이 땅에서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잠시잠깐에 불과하며 명예, 지식, 권력, 재물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헛된 삶이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3단계가 되면 행함과 진실함으로 모든 일을 하게 되므로 주변에서 "저런 사람 같으면 나도 교회에 다니겠다"란 말을 듣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므로 상급으로 면류관을 주시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와 2천층에 거할 자격을 얻은 성도에게 어떤 면류관을 주실까요? 베드로전서 5:3-4에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양무리의 본이 되는 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는 결국은 시들어 없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은 시들지 않는 것이요, 이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4) 믿음의 4단계: 3천층, 생명의 면류관
믿음의 4단계, 곧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오면 온갖 시험 환난을 다 거치면서 승리하여 모든 죄악을 버리고 예수님을 닮아 성결된 자로서 죽도록 충성하기 때문에 3천층에 거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마태복음 5:10-12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고 천군천사로 호위하시며 영광의 구름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그러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3천층에 거할 자격을 얻게 되면 어떤 면류관이 주어질까요? 요한계시록 2:10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육적인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죽도록 모든 모양의 죄와 싸워서 버린 것으로 바로 "나"가 없는 것이요, 생명이 다하기까지 싸워 바친 것이니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2에도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자는 죽도록 충성하며 모든 시험을 참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5) 믿음의 5단계: 새 예루살렘,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
믿음의 5단계,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오면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한 자로서 새 예루살렘에 거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특별시 안에 대통령이 거하는 청와대가 있듯이 천국의 3천층 안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니 천군천사가 호위하고 영광의 구름이 둘려 있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 곳이겠습니까.
새 예루살렘은 가로, 세로, 높이가 6천 리이며 열두 진주문이 있어 12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고 12기초석에는 12제자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12천사가 지키고 있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계 21:7-8). 성결되었다고 해도 다 행함이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 집에 충성하고 팔복이 온전히 임하여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도 성령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했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일변하여 성결되어 갔으며 복음을 전파하다 끝내는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면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어떤 면류관이 주어질까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에게 24장로들이 쓰는 금면류관(계 4:4)이나 사도 바울에게 주셨던 의의 면류관을 주십니다(딤후 4:8).
이제까지 믿음의 단계에 따라 앞으로 천국에서 거하게 될 처소와 주어지는 면류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1, 2천층에 거하면 천사가 따르지 않고 영광의 구름으로 둘리지도 않지만 3천층 이상 들어오면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니 그만큼 영광의 빛이 달라집니다.
잠언 17:3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신다"고 했으니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육목표 : 천국과 면류관의 분류에 대해 알아보고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장차 거할 처소와 면류관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되게 한다.
1. 천국과 면류관의 분류
많은 사람들이 천국은 있다고 알고 있어도 천국의 구조가 어떠한지 알지 못하며, 각 사람마다 믿음이 다르고 행함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천국을 가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말씀했으니 천국은 하나가 아니요 둘 이상 여러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곳곳에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며(갈 6:7)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마 16:27, 계 2:23)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므로 천국도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어야 합당한 것이요,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천국이 주어져야 마땅한 것입니다.
천국은 굉장히 넓은 곳이요,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좋은 곳으로서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낙원은 천국 중에서도 가장 못한 곳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살게 하셨던 에덴동산보다 더욱 아름다운 곳입니다. 또한 천국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처럼 천국이 여러 곳으로 분류되어 있듯이 상급으로 주어지는 면류관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썩지 아니할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 등이 있어 믿음에 따라 상급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2.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처소와 면류관
1) 믿음의 1단계: 낙원, 면류관 없음
낙원은 이 세상과 달리 눈물, 슬픔, 고통이 없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천국 중에서는 가장 못한 곳으로 믿음의 1단계, 곧 성령받을 만한 믿음(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한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23:42-43에 보면, 한편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답변하셨습니다. 결국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3일 동안 옥의 영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시고(벧전 3:19) 부활하신 후 40일간 이 땅에 머무셨다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한편 강도가 십자가상에서 회개하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 낙원에 거하게 될 것을 아시기에 믿음의 눈으로 보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편 강도는 왜 낙원에 거하게 될까요? 하늘나라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상급심판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뿐 죄를 싸워 버리지도 않았고 사명을 감당한 것도 아닌 한편 강도에게는 면류관이 주어지지 않으며 천국에서 가장 못한 낙원에 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2) 믿음의 2단계: 1천층, 썩지 아니할 면류관
구원에 이르게 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열심을 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이때는 믿음의 2단계라고 하는데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천국의 1천층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1천층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면류관이 주어질까요? 디모데후서 2:5-6에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말씀하셨으니 운동선수가 경기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해야 상을 탈 수 있듯이 하나님 말씀대로 경기해야만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진리 말씀에 주일을 지키라 했고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고 했으면 주일을 지키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말씀을 지켜나갈 때 면류관을 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법인 영계의 법칙을 무시하면 이는 지식적인 믿음에 불과한 것이니 법대로 경기하지 않는 운동선수와 같은 것이요, 경기에 참여한 자라고 할 수 없으니 면류관을 받을 수 없지요.
그러나 아직 믿음이 연약하다 할지라도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경기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요, 법대로 경기한 자이니 이러한 사람에게는 이름이 붙지는 않으나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이 상급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3) 믿음의 3단계: 2천층, 영광의 면류관
믿음의 3단계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오면 2천층에 거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나아가는 단계이므로 언행이 변화되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구실을 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 믿는 자로서 본을 보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했으니(전 1:2-3) 이 땅에서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잠시잠깐에 불과하며 명예, 지식, 권력, 재물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헛된 삶이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3단계가 되면 행함과 진실함으로 모든 일을 하게 되므로 주변에서 "저런 사람 같으면 나도 교회에 다니겠다"란 말을 듣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므로 상급으로 면류관을 주시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와 2천층에 거할 자격을 얻은 성도에게 어떤 면류관을 주실까요? 베드로전서 5:3-4에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양무리의 본이 되는 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는 결국은 시들어 없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은 시들지 않는 것이요, 이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4) 믿음의 4단계: 3천층, 생명의 면류관
믿음의 4단계, 곧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오면 온갖 시험 환난을 다 거치면서 승리하여 모든 죄악을 버리고 예수님을 닮아 성결된 자로서 죽도록 충성하기 때문에 3천층에 거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마태복음 5:10-12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고 천군천사로 호위하시며 영광의 구름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그러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3천층에 거할 자격을 얻게 되면 어떤 면류관이 주어질까요? 요한계시록 2:10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육적인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죽도록 모든 모양의 죄와 싸워서 버린 것으로 바로 "나"가 없는 것이요, 생명이 다하기까지 싸워 바친 것이니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2에도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자는 죽도록 충성하며 모든 시험을 참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5) 믿음의 5단계: 새 예루살렘,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
믿음의 5단계,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오면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한 자로서 새 예루살렘에 거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특별시 안에 대통령이 거하는 청와대가 있듯이 천국의 3천층 안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니 천군천사가 호위하고 영광의 구름이 둘려 있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 곳이겠습니까.
새 예루살렘은 가로, 세로, 높이가 6천 리이며 열두 진주문이 있어 12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고 12기초석에는 12제자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12천사가 지키고 있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계 21:7-8). 성결되었다고 해도 다 행함이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 집에 충성하고 팔복이 온전히 임하여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도 성령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했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일변하여 성결되어 갔으며 복음을 전파하다 끝내는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면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어떤 면류관이 주어질까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에게 24장로들이 쓰는 금면류관(계 4:4)이나 사도 바울에게 주셨던 의의 면류관을 주십니다(딤후 4:8).
이제까지 믿음의 단계에 따라 앞으로 천국에서 거하게 될 처소와 주어지는 면류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1, 2천층에 거하면 천사가 따르지 않고 영광의 구름으로 둘리지도 않지만 3천층 이상 들어오면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니 그만큼 영광의 빛이 달라집니다.
잠언 17:3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신다"고 했으니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8-11-28
제48과복 있는 사람
시 1:1~3
읽을말씀 : 시 1:1~3 | 외울말씀 : 시 1:1~3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약속하신 모든 복을 누리며 만사형통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 어떻게 행하여야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 복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한다.
세상에서는 대체로 건강, 재물, 명예, 권세,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자녀가 출세하여 효도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다 누린다 해도 자칫하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생명을 잃게 되면 다 헛된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 불의의 사고나 어떤 재앙으로도 무너지지 않으며, 천국에서도 영원한 상급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야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합니다
악인의 꾀는 육신의 생각을 주관하는 사단으로부터 오는데, 사람의 마음에 악이 있으면 생각을 해도 육신의 생각 즉 비진리의 악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악한 생각 속에서 나오는 꾀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한 일들을 도모하게 되지요.
미워하고 시기하며 질투함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한 갖가지 계교를 세우고, 상대를 짓밟아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한 꾀로는 결코 참된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만은 악인의 꾀를 좇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하만은 유대인 모르드개가 자신을 경배하지 않으므로 심히 마음이 상하여 모르드개뿐 아니라 그 나라 안에 있는 유대인 전체를 멸하려고 꾀를 짜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계획을 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악한 계략이 밝혀져서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갖가지 모략을 세우고 부정과 비리를 행하는 사람들에 관한 일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니 오직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를 좇아 행할 때라야 복되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며, 한 푼이라도 더 저축하고 투자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심지어 남을 속이더라도 유익을 취하되 그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주일에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온전한 십일조와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드립니다. 또 사업을 할 때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하여 손해를 본다 해도 상대를 속이거나 어떤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함이 때로는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진리 안에서 행할 때라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을 행위적으로 어긴 사람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살인하고 도적질할 마음이 있어도 실제 살인하지 않고 훔치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만으로도 죄인이라 하십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도적질, 간음, 판단, 정죄 등이 마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인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도 죄인인데 행함으로 범죄하는 육체의 일은 하나님 앞에 더욱 중한 죄가 됩니다(갈 5:19-21). 아무리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고 육체의 일들을 행하면 결국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24-25을 보면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범죄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이 반드시 드러나며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고 범죄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사람이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있는가, 그렇게 살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결코 힘든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해 본 경험이 있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고 범죄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 담대하므로 마음이 항상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또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능히 피할 길을 주시며 모든 시험 환난, 질병, 재난도 막아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범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기쁨과 평강이 없고 시험 환난을 당할 때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결코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3.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너무나 싫어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도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사단의 미혹을 받아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사람이 교만하여 범죄한 이후로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에서는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자기를 내세우며 대접받으려 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멸시한다고 느끼면 고통스러워하며, 상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떻게든 섬김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며,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반드시 높임을 받습니다. 이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진리의 법칙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4:11을 보면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말씀하셨지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도 종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를 지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섬기며 낮은 자가 될 때 이 땅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며, 또한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라 인정받으니 진정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본문 시편 1:2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말씀합니다. 밤낮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간다는 뜻입니다. 율법이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며, 좁은 의미로는 십계명을 포함하여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규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오묘하신 뜻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각종 예배나 기도회 등 어디든 참석하여 말씀을 듣기 위해 힘써 노력할 것입니다. 예배 때 잡념이나 졸음에 빠지는 일도 없으며,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달아서 "아멘"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명심하고 묵상함으로 마음에 온전히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감정을 품거나 육신의 생각,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행하며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과 주관,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적극적인 삶의 자세이며 마음가짐입니다. 또한 본문 시편 1:3에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일수록 더 깊이 더 멀리 뿌리를 내려서 무럭무럭 자라고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항상 수분을 흡수할 수 있으므로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냇가는 영적으로 축복의 근원 곧 생수를 마음껏 빨아들여서 늘 푸르를 수 있고 때를 따라 열매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품을 말합니다. 정녕 하나님의 품 안에 심겨져 있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 안에 진리의 말씀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즉 말씀을 깨우쳐서 마음에 양식삼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기 위한 뿌리가 마음 깊숙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묵상하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므로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며 선과 사랑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또한 항상 기뻐하고 깨어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며 살아가니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진리 가운데 거하여 하나님 앞에 복 있는 사람이 됨으로 이 땅에서 복된 삶을 누릴 뿐 아니라,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도 풍성한 상급을 받고 존귀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약속하신 모든 복을 누리며 만사형통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 어떻게 행하여야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 복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한다.
세상에서는 대체로 건강, 재물, 명예, 권세,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자녀가 출세하여 효도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다 누린다 해도 자칫하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생명을 잃게 되면 다 헛된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 불의의 사고나 어떤 재앙으로도 무너지지 않으며, 천국에서도 영원한 상급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야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합니다
악인의 꾀는 육신의 생각을 주관하는 사단으로부터 오는데, 사람의 마음에 악이 있으면 생각을 해도 육신의 생각 즉 비진리의 악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악한 생각 속에서 나오는 꾀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한 일들을 도모하게 되지요.
미워하고 시기하며 질투함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한 갖가지 계교를 세우고, 상대를 짓밟아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한 꾀로는 결코 참된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만은 악인의 꾀를 좇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하만은 유대인 모르드개가 자신을 경배하지 않으므로 심히 마음이 상하여 모르드개뿐 아니라 그 나라 안에 있는 유대인 전체를 멸하려고 꾀를 짜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계획을 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악한 계략이 밝혀져서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갖가지 모략을 세우고 부정과 비리를 행하는 사람들에 관한 일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니 오직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를 좇아 행할 때라야 복되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며, 한 푼이라도 더 저축하고 투자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심지어 남을 속이더라도 유익을 취하되 그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주일에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온전한 십일조와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드립니다. 또 사업을 할 때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하여 손해를 본다 해도 상대를 속이거나 어떤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함이 때로는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진리 안에서 행할 때라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을 행위적으로 어긴 사람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살인하고 도적질할 마음이 있어도 실제 살인하지 않고 훔치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만으로도 죄인이라 하십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도적질, 간음, 판단, 정죄 등이 마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인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도 죄인인데 행함으로 범죄하는 육체의 일은 하나님 앞에 더욱 중한 죄가 됩니다(갈 5:19-21). 아무리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고 육체의 일들을 행하면 결국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24-25을 보면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범죄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이 반드시 드러나며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고 범죄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사람이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있는가, 그렇게 살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결코 힘든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해 본 경험이 있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고 범죄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 담대하므로 마음이 항상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또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능히 피할 길을 주시며 모든 시험 환난, 질병, 재난도 막아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범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기쁨과 평강이 없고 시험 환난을 당할 때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결코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3.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너무나 싫어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도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사단의 미혹을 받아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사람이 교만하여 범죄한 이후로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에서는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자기를 내세우며 대접받으려 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멸시한다고 느끼면 고통스러워하며, 상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떻게든 섬김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며,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반드시 높임을 받습니다. 이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진리의 법칙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4:11을 보면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말씀하셨지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도 종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를 지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섬기며 낮은 자가 될 때 이 땅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며, 또한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라 인정받으니 진정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본문 시편 1:2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말씀합니다. 밤낮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간다는 뜻입니다. 율법이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며, 좁은 의미로는 십계명을 포함하여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규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오묘하신 뜻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각종 예배나 기도회 등 어디든 참석하여 말씀을 듣기 위해 힘써 노력할 것입니다. 예배 때 잡념이나 졸음에 빠지는 일도 없으며,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달아서 "아멘"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명심하고 묵상함으로 마음에 온전히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감정을 품거나 육신의 생각,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행하며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과 주관,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적극적인 삶의 자세이며 마음가짐입니다. 또한 본문 시편 1:3에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일수록 더 깊이 더 멀리 뿌리를 내려서 무럭무럭 자라고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항상 수분을 흡수할 수 있으므로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냇가는 영적으로 축복의 근원 곧 생수를 마음껏 빨아들여서 늘 푸르를 수 있고 때를 따라 열매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품을 말합니다. 정녕 하나님의 품 안에 심겨져 있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 안에 진리의 말씀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즉 말씀을 깨우쳐서 마음에 양식삼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기 위한 뿌리가 마음 깊숙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묵상하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므로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며 선과 사랑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또한 항상 기뻐하고 깨어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며 살아가니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진리 가운데 거하여 하나님 앞에 복 있는 사람이 됨으로 이 땅에서 복된 삶을 누릴 뿐 아니라,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도 풍성한 상급을 받고 존귀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8-11-21
제47과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
눅 22:39~44
읽을말씀 : 눅 22:39~44 | 외울말씀 : 눅 22:44
교육목표 : 예수님의 기도 모습을 통해 올바른 기도 자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아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기도의 모습
오늘은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여 주신 기도의 모습을 통해 올바른 기도의 자세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며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마 7:7)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혹은 해결받아야 할 문제가 있을 때라야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고(눅 22:39) 선지자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으며(단 6:10),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였습니다(행 3:1).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시간을 정해 놓고 꾸준하게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2)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게 되고 상대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라면 당연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으며 솔로몬 왕도(왕상 8:54), 사도 바울도(행 20:36), 순교자 스데반 집사도(행 7:60)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육의 부모나 이 세상의 권세있는 자 앞에 무엇을 구할 때에도 행여 실수하지 않을까 삼가는데 하물며 피조물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어찌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자세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 기도할 때에는 당연히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31에도 보면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정욕으로 잘못 구한 것이 되므로 오직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2-3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하신 것이니 혹여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잘못 기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4)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44에 보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하여 예수님께서 간절하게 기도하시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은 밤이면 기온이 낮아 땀이 날 수 없는 기후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힘쓰고 애써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몸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간절히 기도하셨는가를 마음에 양식삼아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통해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
1) 중심을 바쳐 기도해야 합니다
창세기 32장에는 야곱이 얍복 강을 앞에 두고 외삼촌 라반과의 약속으로 뒤로 물러날 수도 없고 그를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형 에서로 인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처한 야곱은 이제까지 자신을 의지하였던 교만과 자아를 철저히 깨뜨리고 환도뼈가 부러지는 절박한 기도를 함으로써 마침내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자기를 잡으러 온 형 에서와 화목하게 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또한 불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돌렸던 엘리야는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한 중심의 기도를 함으로써 3년 반 동안 타는 가뭄 끝에 큰 비를 내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받기도 했습니다(왕상 18:41-45). 이처럼 간절한 중심의 기도라야 하나님을 감동시켜 즉시 응답을 받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3:3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내 생각이 끊기므로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탈 수 없어 중심을 바쳐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살려냈고(왕상 17:17-24), 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살아났으며(욘 2:2),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고 하시며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눅 18:1-8).
이처럼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땀을 흘려야 소산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므로 땀 흘려 부르짖어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인데 시끄럽게 부르짖어 구해야 주시는가? 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셨는데 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음으로 외부와 차단되듯 우리의 모든 생각과 잡념, 세상 근심 걱정도 끊어 버리고 마음의 중심을 모아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골방에 들어가 기도한 것이 아니라 동산에서 밤에 철야하셨고(눅 6:12) 다니엘 선지자는 창문을 열고 기도하였으며(단 6:10) 베드로도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행 10:9). 이처럼 중심을 바쳐 부르짖어 기도해야 공중 권세 잡은 원수 마귀의 진을 뚫고 하늘 보좌로 상달되는 기도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3)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마음을 열면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을 받게 되는데 이때에는 겨자씨만한 적은 믿음입니다. 차츰 주일성수와 기도를 해 나가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힘쓰게 되면 믿음이 자라게 되지만 믿음의 반석에 서기 전까지는 시험 환난이 찾아오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낙심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반석에 서게 되면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도하게 되지요.
이렇게 기도를 점점 쌓아가다 보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받아 죄를 싸워 버림으로 주님의 모습을 닮아 가게 되고 주님의 뜻을 밝히 알아 그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되니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자기 스스로 갖는 "육적인 믿음"이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갖는 믿음은 행함과 일치되지 않으나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따르는 산 믿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믿음으로 말씀에 따라 순종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믿어지는 산 믿음을 주십니다. 내가 가진 육적인 믿음을 하나님께 내보이면 하나님께서 덧입혀 주시는 영적인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즉시 응답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는 말씀처럼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함으로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4)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믿기에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나라에 상급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결코 기도하는 것이 피곤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리 없지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하면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한다는 것은 내 자신이 상대방의 마음과 입장에 서서 그의 문제를 나의 문제와 똑같이 여기고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전건축을 위해 기도한다면 나의 집을 세우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하고, 환자를 위해 기도한다면 환자의 입장이 되어 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인 양 사랑의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보여 주신 기도의 모습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에 비추어 자신의 기도 자세와 마음 중심을 점검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예수님의 기도 모습을 통해 올바른 기도 자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아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기도의 모습
오늘은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여 주신 기도의 모습을 통해 올바른 기도의 자세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며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마 7:7)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혹은 해결받아야 할 문제가 있을 때라야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고(눅 22:39) 선지자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으며(단 6:10),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였습니다(행 3:1).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시간을 정해 놓고 꾸준하게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2)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게 되고 상대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라면 당연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으며 솔로몬 왕도(왕상 8:54), 사도 바울도(행 20:36), 순교자 스데반 집사도(행 7:60)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육의 부모나 이 세상의 권세있는 자 앞에 무엇을 구할 때에도 행여 실수하지 않을까 삼가는데 하물며 피조물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어찌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자세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 기도할 때에는 당연히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31에도 보면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정욕으로 잘못 구한 것이 되므로 오직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2-3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하신 것이니 혹여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잘못 기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4)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44에 보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하여 예수님께서 간절하게 기도하시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은 밤이면 기온이 낮아 땀이 날 수 없는 기후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힘쓰고 애써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몸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간절히 기도하셨는가를 마음에 양식삼아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통해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
1) 중심을 바쳐 기도해야 합니다
창세기 32장에는 야곱이 얍복 강을 앞에 두고 외삼촌 라반과의 약속으로 뒤로 물러날 수도 없고 그를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형 에서로 인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처한 야곱은 이제까지 자신을 의지하였던 교만과 자아를 철저히 깨뜨리고 환도뼈가 부러지는 절박한 기도를 함으로써 마침내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자기를 잡으러 온 형 에서와 화목하게 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또한 불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돌렸던 엘리야는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한 중심의 기도를 함으로써 3년 반 동안 타는 가뭄 끝에 큰 비를 내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받기도 했습니다(왕상 18:41-45). 이처럼 간절한 중심의 기도라야 하나님을 감동시켜 즉시 응답을 받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3:3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내 생각이 끊기므로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탈 수 없어 중심을 바쳐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살려냈고(왕상 17:17-24), 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살아났으며(욘 2:2),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고 하시며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눅 18:1-8).
이처럼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땀을 흘려야 소산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므로 땀 흘려 부르짖어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인데 시끄럽게 부르짖어 구해야 주시는가? 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셨는데 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음으로 외부와 차단되듯 우리의 모든 생각과 잡념, 세상 근심 걱정도 끊어 버리고 마음의 중심을 모아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골방에 들어가 기도한 것이 아니라 동산에서 밤에 철야하셨고(눅 6:12) 다니엘 선지자는 창문을 열고 기도하였으며(단 6:10) 베드로도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행 10:9). 이처럼 중심을 바쳐 부르짖어 기도해야 공중 권세 잡은 원수 마귀의 진을 뚫고 하늘 보좌로 상달되는 기도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3)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마음을 열면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을 받게 되는데 이때에는 겨자씨만한 적은 믿음입니다. 차츰 주일성수와 기도를 해 나가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힘쓰게 되면 믿음이 자라게 되지만 믿음의 반석에 서기 전까지는 시험 환난이 찾아오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낙심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반석에 서게 되면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도하게 되지요.
이렇게 기도를 점점 쌓아가다 보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받아 죄를 싸워 버림으로 주님의 모습을 닮아 가게 되고 주님의 뜻을 밝히 알아 그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되니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자기 스스로 갖는 "육적인 믿음"이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갖는 믿음은 행함과 일치되지 않으나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따르는 산 믿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믿음으로 말씀에 따라 순종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믿어지는 산 믿음을 주십니다. 내가 가진 육적인 믿음을 하나님께 내보이면 하나님께서 덧입혀 주시는 영적인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즉시 응답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는 말씀처럼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함으로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4)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믿기에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나라에 상급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결코 기도하는 것이 피곤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리 없지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하면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한다는 것은 내 자신이 상대방의 마음과 입장에 서서 그의 문제를 나의 문제와 똑같이 여기고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전건축을 위해 기도한다면 나의 집을 세우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하고, 환자를 위해 기도한다면 환자의 입장이 되어 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인 양 사랑의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보여 주신 기도의 모습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에 비추어 자신의 기도 자세와 마음 중심을 점검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2008-11-14
제46과추수감사제
출 23:14~17
읽을말씀 : 출 23:14~17 | 외울말씀 : 출 23:16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성경적인 유래와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추수감사제를 드리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1.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근거
우리가 매년 지켜야 할 절기로는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러한 절기 중의 하나로서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한 해의 마지막 때)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23:14-16을 보면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무교병의 절기란 유대 정월인 아빕월(태양력 3-4월) 10일에 어린 양을 취하여 4일 동안 간직하였다가 잡아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며 출애굽 당시 죽음의 사자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는 유월절(逾越節)을 지낸 후, 일주일간 무교병을 먹으며 출애굽하였던 때를 기념하는 절기로서 무교절(신 16:16)이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할 때 급히 탈출하느라 발효시키지 않고 만든 떡을 먹었기 때문에 고난의 때를 기억하며 무교병을 먹는 것입니다.
무교절은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음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므로 오늘날 신약 시대에 와서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지키는 부활절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음으로, 맥추절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가 지난 후에 있는 절기이므로 칠칠절(출 34:22)이라고도 하며, 날짜로 계산하여 50일이 되므로 오순절(행 2:1)이라고도 합니다. 오늘날은 맥추감사절로 지키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수장절은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수고하여 거둔 것을 저장함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며 초막절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광야에 있는 동안 초막에 거하게 하신 줄을 자손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해 지켜지며 일주일 동안 집을 떠나 초막에 거하는 훈련을 하기도 합니다(레 23:42-43).
그러므로 수장절은 광야에서 약 40년간 방황하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해방을 기념하고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므로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됩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매년 지켜야 할 절기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있으며 신년감사주일, 교회창립기념일 등이 있습니다.
2. 추수감사절의 의미
초막절은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절기 중 마지막 절기로서 큰 기쁨과 즐거움의 축제였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16:13-17을 보면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 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일 년간 농사를 지어 일용할 양식과 땅의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일 뿐 아니라 영적인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게 하시며, 내세의 소망 가운데 영생의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천국을 예비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인도하시니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구하는 이에게 주시고 찾는 이에게 찾게 하시며 두드리는 이에게 열리게 하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추수감사절은 참으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상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은 역사적으로 성결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를 통해 일어난 영국의 신앙적 대각성 운동이 전 유럽에 출렁일 때에 믿음을 위해 독자적인 길을 나선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땅에 와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처음 수확한 소산들을 하나님께 정성껏 드리며 예배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땅을 일구며 살아온 청교도들이 심은 대로 거둘 수 있도록 축복하셔서 오늘날 미국이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고, 그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과 조상들의 믿음을 기리며 뜻깊게 지키고 있습니다.
3. 추수감사제
추수감사절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은 추수감사제를 드리게 됩니다. 먼저는 생명을 주시고 사망에서 건져 주심에 감사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감사제를 드려야 하며(시 56:12-13), 또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믿음으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9:7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으니 기쁨으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아브라함, 엘리야, 모세뿐만 아니라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나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감사제를 드림으로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사밧 임금은 모압 연합군의 침입을 당했을 때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고 감사제를 드렸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암몬, 모압, 세일산 거민을 진멸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대하 20:20 이하).
또한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사르밧 과부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아니하였으므로 궁핍한 중에도 자기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귀한 음식인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을 하나님의 종이었던 엘리야에게 심었습니다. 먹을 것이 금보다 귀한 때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심으니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날 때까지 사르밧 과부와 그의 가족과 엘리야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넘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왕상 17:8-16).
열왕기하 4:8-17을 보면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를 지극한 정성으로 대접한 수넴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으나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섬겼으므로 소원대로 아들을 낳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온 믿음을 통해 드리는 감사제를 기뻐 받으시고 행함이 따르는 감사의 제물을 드릴 때 즉시 역사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많이 뿌리면 가을에 많이 거둘 수 있듯이 하나님 앞에 행함있는 감사를 심어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시기를 바랍니다.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성경적인 유래와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추수감사제를 드리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1.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근거
우리가 매년 지켜야 할 절기로는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러한 절기 중의 하나로서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한 해의 마지막 때)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23:14-16을 보면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무교병의 절기란 유대 정월인 아빕월(태양력 3-4월) 10일에 어린 양을 취하여 4일 동안 간직하였다가 잡아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며 출애굽 당시 죽음의 사자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는 유월절(逾越節)을 지낸 후, 일주일간 무교병을 먹으며 출애굽하였던 때를 기념하는 절기로서 무교절(신 16:16)이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할 때 급히 탈출하느라 발효시키지 않고 만든 떡을 먹었기 때문에 고난의 때를 기억하며 무교병을 먹는 것입니다.
무교절은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음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므로 오늘날 신약 시대에 와서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지키는 부활절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음으로, 맥추절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가 지난 후에 있는 절기이므로 칠칠절(출 34:22)이라고도 하며, 날짜로 계산하여 50일이 되므로 오순절(행 2:1)이라고도 합니다. 오늘날은 맥추감사절로 지키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수장절은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수고하여 거둔 것을 저장함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며 초막절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광야에 있는 동안 초막에 거하게 하신 줄을 자손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해 지켜지며 일주일 동안 집을 떠나 초막에 거하는 훈련을 하기도 합니다(레 23:42-43).
그러므로 수장절은 광야에서 약 40년간 방황하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해방을 기념하고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므로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됩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매년 지켜야 할 절기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있으며 신년감사주일, 교회창립기념일 등이 있습니다.
2. 추수감사절의 의미
초막절은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절기 중 마지막 절기로서 큰 기쁨과 즐거움의 축제였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16:13-17을 보면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 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일 년간 농사를 지어 일용할 양식과 땅의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일 뿐 아니라 영적인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게 하시며, 내세의 소망 가운데 영생의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천국을 예비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인도하시니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구하는 이에게 주시고 찾는 이에게 찾게 하시며 두드리는 이에게 열리게 하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추수감사절은 참으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상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은 역사적으로 성결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를 통해 일어난 영국의 신앙적 대각성 운동이 전 유럽에 출렁일 때에 믿음을 위해 독자적인 길을 나선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땅에 와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처음 수확한 소산들을 하나님께 정성껏 드리며 예배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땅을 일구며 살아온 청교도들이 심은 대로 거둘 수 있도록 축복하셔서 오늘날 미국이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고, 그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과 조상들의 믿음을 기리며 뜻깊게 지키고 있습니다.
3. 추수감사제
추수감사절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은 추수감사제를 드리게 됩니다. 먼저는 생명을 주시고 사망에서 건져 주심에 감사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감사제를 드려야 하며(시 56:12-13), 또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믿음으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9:7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으니 기쁨으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아브라함, 엘리야, 모세뿐만 아니라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나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감사제를 드림으로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사밧 임금은 모압 연합군의 침입을 당했을 때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고 감사제를 드렸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암몬, 모압, 세일산 거민을 진멸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대하 20:20 이하).
또한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사르밧 과부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아니하였으므로 궁핍한 중에도 자기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귀한 음식인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을 하나님의 종이었던 엘리야에게 심었습니다. 먹을 것이 금보다 귀한 때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심으니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날 때까지 사르밧 과부와 그의 가족과 엘리야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넘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왕상 17:8-16).
열왕기하 4:8-17을 보면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를 지극한 정성으로 대접한 수넴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으나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섬겼으므로 소원대로 아들을 낳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온 믿음을 통해 드리는 감사제를 기뻐 받으시고 행함이 따르는 감사의 제물을 드릴 때 즉시 역사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많이 뿌리면 가을에 많이 거둘 수 있듯이 하나님 앞에 행함있는 감사를 심어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시기를 바랍니다.
2008-11-07
제45과사람의 본분을 찾자
전 12:13-14
읽을말씀 : 전 12:13-14 | 외울말씀 : 전 12:13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알아 어떻게 해야 사람의 본분을 행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알아본다.
1. 사람의 본분이란?
요즈음 신문을 보노라면 참으로 불법이 성하여지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고 정욕을 좇아 살아감으로 짐승과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짐승보다도 못한 사람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되지요.
왜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속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이는 살아 계셔서 모든 행위를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사람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인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14-16을 보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람의 본분을 행하며 빛된 생활을 하여, 사랑이 식어지고 죄악으로 어두워진 세상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으셨기 때문에 거룩하고 온전하였습니다. 거짓이 없이 깨끗하고 온유하였으며 진실함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면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만물의 영장이었습니다(창 1:27-28). 그런데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람답게 살던 아담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되자 죄가 들어왔고, 죄의 삯으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창 2:17, 롬 6:23). 여기서 사망이란 사람의 주인된 영이 죽게 되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죽은 영을 살려 주시고 사람의 본분을 찾게 해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모든 죄를 대속케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죽은 영이 살아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사람의 본분을 행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13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분(전 12:14)이심을 알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해 아래서 정욕을 좇아 행하는 모든 수고는 헛된 것이요,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무익한 것임을 깨달아(전 2:11)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뿐만 아니라 성경 66권 말씀대로 살아가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을 행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의 본분을 지키려면
1) 하나님을 밝히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밝히 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명을 주어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가 하는 여러 가지 영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밝히 안다면 사람의 본분을 지키며 사람답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밝히 알지 못하면 큰 믿음을 가질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없으며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도 적으니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셔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요, 우주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으로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인형과 같이 예쁘기만 하거나 로봇과 같이 순종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좇아 순종하는 하나님의 참자녀를 원하셨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또한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이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창 1:26-2:17).
세월이 지난 후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었습니다(창 3:1-13). 우리는 불순종하여 멸망의 길을 가게 된 아담을 통하여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에덴 동산에 두셔야 했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원수 마귀가 지배하는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고 계시는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날 때 부모의 기를 받아 여러 가지 악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자라나면서 비진리를 보고 듣고 배우므로 점점 더 악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면 차츰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하여 어떤 시험과 환난이 찾아와도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먹으나 입으나 마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밝히 알게 되면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하나님의 참자녀를 원하셨기에 인간을 창조하셨고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요, 그러기 위하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죄악을 벗어 버리고 성결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2) 자기 자신을 개간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밝히 알고 인생의 목표를 깨달았다면 자기 자신을 열심히 개간하여야 사람의 본분을 지킬 수 있습니다. 농부가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묵은 밭을 열심히 개간하여 돌은 골라내고 흙을 부수어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옥토로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밭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주는 작업이 있어야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자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니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개조시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믿음을 소유한, 성결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러운 마음을 깨끗한 마음으로 바꾸어 주고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의 마음으로, 악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바꿔 주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셨고, 고린도전서 6:9에는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말씀하셨으니 아무리 교회에 다니는 자라 할지라도 마음밭을 개간하여 거룩한 삶을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요일 1:5-8).
또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고 명령하셨으니(벧전 1:16, 살전 5:22, 마 23:26) 열심히 죄를 벗어 버리고 성령의 9가지 열매(갈 5:22-23), 사랑장(고전 13장), 팔복(마 5:1-12)이 임하도록 자신의 마음밭을 개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가 되고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빌 2:5-8, 벧후 1:4) 사람의 본분을 지키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3) 자기 생활을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지키려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함으로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위치가 있으며 그 위치에 따른 삶이 있으므로 자기 생활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여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에서 인정받도록 성실히 일해야 합니다. 또한 부모로서, 자녀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각각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지요.
이와 같이 육적으로 맡겨진 사명 외에 영적으로 맡겨진 일도 충실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이기를 힘쓰며 예배드리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기뻐하며 감사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 외에도 구역장, 인도자, 기관장 등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아무리 작은 일이 맡겨졌다 할지라도 귀히 여기고 충성되이 감당함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찾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을 밝히 알아야 하고, 둘째로 자기 자신의 마음밭을 개간하여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셋째로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람의 본분을 지켜 행함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고 영혼 구원에 힘쓰며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알아 어떻게 해야 사람의 본분을 행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알아본다.
1. 사람의 본분이란?
요즈음 신문을 보노라면 참으로 불법이 성하여지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고 정욕을 좇아 살아감으로 짐승과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짐승보다도 못한 사람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되지요.
왜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속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이는 살아 계셔서 모든 행위를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사람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인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14-16을 보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람의 본분을 행하며 빛된 생활을 하여, 사랑이 식어지고 죄악으로 어두워진 세상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으셨기 때문에 거룩하고 온전하였습니다. 거짓이 없이 깨끗하고 온유하였으며 진실함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면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만물의 영장이었습니다(창 1:27-28). 그런데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람답게 살던 아담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되자 죄가 들어왔고, 죄의 삯으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창 2:17, 롬 6:23). 여기서 사망이란 사람의 주인된 영이 죽게 되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죽은 영을 살려 주시고 사람의 본분을 찾게 해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모든 죄를 대속케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죽은 영이 살아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사람의 본분을 행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13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분(전 12:14)이심을 알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해 아래서 정욕을 좇아 행하는 모든 수고는 헛된 것이요,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무익한 것임을 깨달아(전 2:11)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뿐만 아니라 성경 66권 말씀대로 살아가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을 행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의 본분을 지키려면
1) 하나님을 밝히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밝히 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명을 주어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가 하는 여러 가지 영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밝히 안다면 사람의 본분을 지키며 사람답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밝히 알지 못하면 큰 믿음을 가질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없으며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도 적으니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셔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요, 우주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으로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인형과 같이 예쁘기만 하거나 로봇과 같이 순종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좇아 순종하는 하나님의 참자녀를 원하셨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또한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이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창 1:26-2:17).
세월이 지난 후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었습니다(창 3:1-13). 우리는 불순종하여 멸망의 길을 가게 된 아담을 통하여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에덴 동산에 두셔야 했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원수 마귀가 지배하는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고 계시는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날 때 부모의 기를 받아 여러 가지 악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자라나면서 비진리를 보고 듣고 배우므로 점점 더 악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면 차츰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하여 어떤 시험과 환난이 찾아와도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먹으나 입으나 마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밝히 알게 되면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하나님의 참자녀를 원하셨기에 인간을 창조하셨고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요, 그러기 위하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죄악을 벗어 버리고 성결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2) 자기 자신을 개간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밝히 알고 인생의 목표를 깨달았다면 자기 자신을 열심히 개간하여야 사람의 본분을 지킬 수 있습니다. 농부가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묵은 밭을 열심히 개간하여 돌은 골라내고 흙을 부수어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옥토로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밭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주는 작업이 있어야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자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니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개조시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믿음을 소유한, 성결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러운 마음을 깨끗한 마음으로 바꾸어 주고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의 마음으로, 악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바꿔 주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셨고, 고린도전서 6:9에는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말씀하셨으니 아무리 교회에 다니는 자라 할지라도 마음밭을 개간하여 거룩한 삶을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요일 1:5-8).
또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고 명령하셨으니(벧전 1:16, 살전 5:22, 마 23:26) 열심히 죄를 벗어 버리고 성령의 9가지 열매(갈 5:22-23), 사랑장(고전 13장), 팔복(마 5:1-12)이 임하도록 자신의 마음밭을 개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가 되고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빌 2:5-8, 벧후 1:4) 사람의 본분을 지키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3) 자기 생활을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지키려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함으로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위치가 있으며 그 위치에 따른 삶이 있으므로 자기 생활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여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에서 인정받도록 성실히 일해야 합니다. 또한 부모로서, 자녀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각각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지요.
이와 같이 육적으로 맡겨진 사명 외에 영적으로 맡겨진 일도 충실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이기를 힘쓰며 예배드리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기뻐하며 감사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 외에도 구역장, 인도자, 기관장 등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아무리 작은 일이 맡겨졌다 할지라도 귀히 여기고 충성되이 감당함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찾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을 밝히 알아야 하고, 둘째로 자기 자신의 마음밭을 개간하여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셋째로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람의 본분을 지켜 행함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고 영혼 구원에 힘쓰며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8-10-31
제44과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0~12
읽을말씀 : 계 22:10~12 | 외울말씀 : 계 22:12
교육목표 :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물질의 축복,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구원의 확신은 어떻게 임하는가?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인데도 구원받을 수 있는 줄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확실한 구원의 도리를 알고 행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의 확신은 어떻게 임하는 것일까요?
1)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0:9, 10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나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마음에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마음에 믿어져야 재림도 믿어지고(행 1:11) 천국도 믿어지며(요 14:1~3) 구원의 확신이 오게 됩니다.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며,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2) 행함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며(약 2:22)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곧 죽은 믿음입니다(약 2:26).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으면 입술로 시인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친 만큼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함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행함 있는 믿음을 내보인만큼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성령으로 마음 안에 인쳐 주십니다.
따라서 마음의 할례를 받고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의로워져야 구원에 이르며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에 충성한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스스로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히브리서 6:4~6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고 타락한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받으리라 생각할지라도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의를 이루어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또한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가야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소유하고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물질의 축복은 어떻게 임하는가?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시므로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여 주일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영적 축복을 주시고, 또한 하나님의 물권을 인정하여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에게는 물질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며 물질로 심어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으로 마태복음 23:23에는 '의와 인과 신을 갖추고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였고, 말라기 3:9~12에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우리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둘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드리면 오히려 물질이 줄어드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과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에 십일조를 드린 성도들에게 축복을 주시되 한 알의 밀알이 땅에 심겨져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처럼 가정과 일터, 사업터에 물질의 축복이 임하게 하시고 시험 환난을 막아 주셔서 물질이 낭비되지 않도록 지켜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뿐 아니라 감사예물이나 절기예물도 기뻐 받으시고 넘치는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고후 9:6~8, 갈 6:7~9). 열왕기상 17:8~16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는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에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을 선지자 엘리야에게 대접하여 다시 비가 내릴 때까지 통에 밀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를 대접한 것에도 이렇게 놀라운 축복으로 갚아 주신 하나님께서 어찌 행한 대로 갚아 주시지 않겠으며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게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진정 믿음이 있다면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것은 물론, 각종 예물을 열심히 심어서 마음껏 물질의 축복을 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3. 하늘나라의 상급은 어떻게 임하는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행함은 믿음에 따라 각기 다른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느냐에 따라 하늘나라에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상을 받으면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가 되므로 자신에게 영광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집니다. 하물며 선과 의와 사랑만 있는 하늘나라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받는다면 얼마나 빛나고 값지겠습니까. 더구나 성결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 되지요.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 가운데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고 성결을 이루며 하늘나라에 상급을 많이 쌓아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영혼 구원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전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앞에 힘껏 감사예물과 건축예물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을 만난 간증과 변화된 거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 이웃에게 칭송을 받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결혼도 하지 않고 밤낮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며 죽도록 충성했고, 모세 선지자 또한 애굽 왕자의 직위를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4-25). 이들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이 있었기에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충성할 수 있었지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으므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히 12:2). 그러니 우리도 천국 소망 가운데 온전히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충성하고 헌신하며 아버지 하나님께 상급을 많이 받아야 하겠습니다.
혹자는 '영혼 구원이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이라면 주의 종들은 온전히 영혼 구원을 위해 힘써 일할 수 있으니 상급이 참으로 많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종들은 영혼 구원에 힘쓰되 세상에서 녹을 받고 일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녹을 받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상급이 되지 않습니다.
주의 종들에게 상급이 되는 것은 맡겨진 일 이상으로 희생하고 봉사하여 많은 일을 감당하며 양 떼를 잘 갈무리하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을 때 상급이 되지요. 즉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넘치게 행해야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내용의 설교라 할지라도 능력이 다르므로 주의 종들은 불같은 기도를 통해 능력을 받아야 하며 그 능력 가운데 일할 때 많은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본분을 다했다고 천국에서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기본적인 본분이므로 상급이 되지 않지요.
성도의 본분 외에 교사나 부장, 성가대, 기관장, 안내위원, 헌금위원 등 충성하는 것들이 상급이 됩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모은 물질로 당연히 드려야 할 십일조, 감사예물 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힘써 드릴 때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전도하고 교회와 주의 종을 섬기며 각 분야에서 헌신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기쁨으로 충성할 때 하늘나라 상급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말씀대로 지켜 행함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에서도 충성 봉사함으로 하늘나라에 상급을 많이 쌓으시길 바랍니다.
교육목표 :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물질의 축복,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구원의 확신은 어떻게 임하는가?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인데도 구원받을 수 있는 줄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확실한 구원의 도리를 알고 행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의 확신은 어떻게 임하는 것일까요?
1)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0:9, 10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나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마음에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마음에 믿어져야 재림도 믿어지고(행 1:11) 천국도 믿어지며(요 14:1~3) 구원의 확신이 오게 됩니다.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며,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2) 행함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며(약 2:22)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곧 죽은 믿음입니다(약 2:26).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으면 입술로 시인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친 만큼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함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행함 있는 믿음을 내보인만큼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성령으로 마음 안에 인쳐 주십니다.
따라서 마음의 할례를 받고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의로워져야 구원에 이르며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에 충성한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스스로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히브리서 6:4~6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고 타락한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받으리라 생각할지라도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의를 이루어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또한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가야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소유하고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물질의 축복은 어떻게 임하는가?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시므로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여 주일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영적 축복을 주시고, 또한 하나님의 물권을 인정하여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에게는 물질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며 물질로 심어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으로 마태복음 23:23에는 '의와 인과 신을 갖추고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였고, 말라기 3:9~12에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우리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둘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드리면 오히려 물질이 줄어드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과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에 십일조를 드린 성도들에게 축복을 주시되 한 알의 밀알이 땅에 심겨져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처럼 가정과 일터, 사업터에 물질의 축복이 임하게 하시고 시험 환난을 막아 주셔서 물질이 낭비되지 않도록 지켜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뿐 아니라 감사예물이나 절기예물도 기뻐 받으시고 넘치는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고후 9:6~8, 갈 6:7~9). 열왕기상 17:8~16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는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에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을 선지자 엘리야에게 대접하여 다시 비가 내릴 때까지 통에 밀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를 대접한 것에도 이렇게 놀라운 축복으로 갚아 주신 하나님께서 어찌 행한 대로 갚아 주시지 않겠으며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게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진정 믿음이 있다면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것은 물론, 각종 예물을 열심히 심어서 마음껏 물질의 축복을 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3. 하늘나라의 상급은 어떻게 임하는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행함은 믿음에 따라 각기 다른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느냐에 따라 하늘나라에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상을 받으면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가 되므로 자신에게 영광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집니다. 하물며 선과 의와 사랑만 있는 하늘나라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받는다면 얼마나 빛나고 값지겠습니까. 더구나 성결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 되지요.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 가운데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고 성결을 이루며 하늘나라에 상급을 많이 쌓아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영혼 구원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전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앞에 힘껏 감사예물과 건축예물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을 만난 간증과 변화된 거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 이웃에게 칭송을 받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결혼도 하지 않고 밤낮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며 죽도록 충성했고, 모세 선지자 또한 애굽 왕자의 직위를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4-25). 이들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이 있었기에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충성할 수 있었지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으므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히 12:2). 그러니 우리도 천국 소망 가운데 온전히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충성하고 헌신하며 아버지 하나님께 상급을 많이 받아야 하겠습니다.
혹자는 '영혼 구원이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이라면 주의 종들은 온전히 영혼 구원을 위해 힘써 일할 수 있으니 상급이 참으로 많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종들은 영혼 구원에 힘쓰되 세상에서 녹을 받고 일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녹을 받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상급이 되지 않습니다.
주의 종들에게 상급이 되는 것은 맡겨진 일 이상으로 희생하고 봉사하여 많은 일을 감당하며 양 떼를 잘 갈무리하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을 때 상급이 되지요. 즉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넘치게 행해야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내용의 설교라 할지라도 능력이 다르므로 주의 종들은 불같은 기도를 통해 능력을 받아야 하며 그 능력 가운데 일할 때 많은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본분을 다했다고 천국에서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기본적인 본분이므로 상급이 되지 않지요.
성도의 본분 외에 교사나 부장, 성가대, 기관장, 안내위원, 헌금위원 등 충성하는 것들이 상급이 됩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모은 물질로 당연히 드려야 할 십일조, 감사예물 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힘써 드릴 때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전도하고 교회와 주의 종을 섬기며 각 분야에서 헌신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기쁨으로 충성할 때 하늘나라 상급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말씀대로 지켜 행함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에서도 충성 봉사함으로 하늘나라에 상급을 많이 쌓으시길 바랍니다.
2008-10-24
제43과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마 13:31-32, 요일 2:12-14
읽을말씀 : 마 13:31-32, 요일 2:12-14 | 외울말씀 : 마 11:12
교육목표 : 아비의 믿음을 소유하여 가장 좋은 천국 새 예루살렘을 침노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겨자씨의 비유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대한 많은 비유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중 겨자씨의 비유가 나오는데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인 세계에 대해 알려 주시기 위해 많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는데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천국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겨자씨는 겨우 볼펜으로 점을 찍어 놓은 것만큼 매우 작은 씨로 처음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믿음을 겨자씨만한 믿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씨를 심지 않고 그대로 두면 말라 생명력을 잃게 되므로 씨를 심고 싹이 나도록 가꾸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설명하면,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이기를 힘쓰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진리의 말씀을 양식 삼아 기도하고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씨를 심고 싹이 나게 되면 나무로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고 불같이 기도함으로 세상을 좇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큰 나무가 되면 그늘이 생기게 되고 공중의 새들이 와서 쉼을 얻고 둥지를 틀고 깃들이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며 또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고 기도함으로 큰 믿음을 가졌을 때 많은 영혼이 와서 충만함을 얻고 은혜를 입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믿음은 성장하는 것이므로 마태복음 17:20에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겨자씨만한 믿음일지라도 이것이 싹이 나고 자라서 큰 믿음이 되면 산을 명하여 옮기라 하여도 옮길 만큼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졌다면 과연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요? 여호수아도 처음에는 겨자씨만한 믿음이었으나 40년간 모세와 함께하며 모세의 믿음을 보고 또 친히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리고성을 돌았고, 순종했기 때문에 여리고성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해와 달에게 멈추라고 명하였을 때 해와 달이 그 운행을 멈추었으니(수 10:12-13)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이렇게 나무가 성장하듯 믿음도 성장 과정이 있음을 깨달아 큰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2.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세례 요한이 이 땅에 와서 예수님에 대해 증거한 후부터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은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천국은 믿음으로 소유하는 것이요, 침노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왜 침노를 당하는 것일까요?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공의로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믿음으로 소유하게 하시되 이 땅에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즉 이 땅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천국의 처소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겨우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했을 뿐 행한 것이 없는 사람과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과는 엄연히 상급이 다르기 때문에 천국의 처소도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이는 같은 한국일지라도 서울특별시나 경기도가 다르고 군이나 면이 다르듯이 천국에서도 분명히 처소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한 편 강도가 죽음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들어간 낙원(눅 23:43)뿐 아니라 새 예루살렘(계 21장) 등 거할 곳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6천 리가 되는 곳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온 집에 충성한 성도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천국은 아무리 외곽 지역이라 할지라도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지만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으로 갈수록 그 아름다움과 행복이 더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분량에 따라 각기 다른 천국을 소유하게 되므로 보다 좋은 처소를 얻기 위해서는 침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요, 침노하는 사람이 빼앗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어떻게 천국을 침노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게 되면 비록 겨자씨만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지만 열심히 심고 가꾸면서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여 천국을 침노해야 합니다. 그러면 천국을 침노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복종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2:12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말씀하신 대로 구원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씨를 땅 속에 심지 않으면 곧 말라 새가 날아와서 먹어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치 않고 가만히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마저도 빼앗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 사모하고 꿀보다 더 달게 여기며(시 19:10) 항상 복종하여 온전히 진리 안에 거해야 행함 있는 믿음이 되어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강건하여지고 원수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화전을 소멸해야 합니다. 또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써야 합니다(엡 6:10-18). 우리가 얼마나 전신갑주를 취하고 믿음으로 싸워 이겼느냐에 따라 마음의 성결을 이루는 것과 믿음의 분량이 달라지므로 천국에서 거하는 처소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3)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천국에 갈 수 있고 소망이 있어야 천국을 바라보고 진리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이 있어야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으며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요일 4:8) 사랑이 없으면 새예루살렘에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셨으니(고전 13:13) 사랑을 좇아 천국을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사랑을 이루는 정도에 따라 처소도 달라지게 됩니다.
4. 믿음의 분량에 따른 천국의 처소
천국을 침노해 나가면 믿음의 분량에 따라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가 달라집니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뿐 아니라 구원받은 강도가 들어가는 낙원도 있으므로 크게 5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자 합니다.
1) 자녀들의 믿음
요한일서 2:12을 보면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모든 죄를 사함받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데 이때는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낙원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게 됩니다.
2) 아이들의 믿음
요한일서 2:14을 보면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는 아이들이 자라나서 부모를 알게 되듯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단계의 믿음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심겨져 이제 겨우 싹이 난 상태의 믿음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이란 영적으로 젖먹는 신자들을 의미하며 이들은 1천층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됩니다.
3) 청년들의 믿음
요한일서 2:13을 보면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기에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악한 자를 이기며 진리 안에 거하는 믿음의 단계입니다. 청년들이란 영적으로 밥먹는 신자들을 가리키며 이들에게는 2천층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4) 아비들의 믿음
요한일서 2:14을 보면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들은 신앙이 성숙된 단계이므로 아버지에 대하여 알되 태초부터 해서 그 근본을 아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그대로 깨달음이 오고 영감으로 깨우쳐지는 단계의 믿음입니다. 이들은 큰 나무로 성장한 성결된 성도들로서 3천층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요, 더 나아가 온 집에 충성하며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에게는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 다른 여러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무서워 도망갔지만 성령을 받고 겨자씨만한 믿음이 장성하여 큰 믿음이 되니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고 순교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온전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를 밝히 깨닫고 열심히 천국을 침노하여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아비의 믿음을 소유하여 가장 좋은 천국 새 예루살렘을 침노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겨자씨의 비유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대한 많은 비유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중 겨자씨의 비유가 나오는데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인 세계에 대해 알려 주시기 위해 많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는데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천국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겨자씨는 겨우 볼펜으로 점을 찍어 놓은 것만큼 매우 작은 씨로 처음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믿음을 겨자씨만한 믿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씨를 심지 않고 그대로 두면 말라 생명력을 잃게 되므로 씨를 심고 싹이 나도록 가꾸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설명하면,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이기를 힘쓰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진리의 말씀을 양식 삼아 기도하고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씨를 심고 싹이 나게 되면 나무로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고 불같이 기도함으로 세상을 좇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큰 나무가 되면 그늘이 생기게 되고 공중의 새들이 와서 쉼을 얻고 둥지를 틀고 깃들이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며 또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고 기도함으로 큰 믿음을 가졌을 때 많은 영혼이 와서 충만함을 얻고 은혜를 입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믿음은 성장하는 것이므로 마태복음 17:20에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겨자씨만한 믿음일지라도 이것이 싹이 나고 자라서 큰 믿음이 되면 산을 명하여 옮기라 하여도 옮길 만큼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졌다면 과연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요? 여호수아도 처음에는 겨자씨만한 믿음이었으나 40년간 모세와 함께하며 모세의 믿음을 보고 또 친히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리고성을 돌았고, 순종했기 때문에 여리고성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해와 달에게 멈추라고 명하였을 때 해와 달이 그 운행을 멈추었으니(수 10:12-13)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이렇게 나무가 성장하듯 믿음도 성장 과정이 있음을 깨달아 큰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2.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세례 요한이 이 땅에 와서 예수님에 대해 증거한 후부터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은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천국은 믿음으로 소유하는 것이요, 침노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왜 침노를 당하는 것일까요?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공의로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믿음으로 소유하게 하시되 이 땅에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즉 이 땅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천국의 처소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겨우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했을 뿐 행한 것이 없는 사람과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과는 엄연히 상급이 다르기 때문에 천국의 처소도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이는 같은 한국일지라도 서울특별시나 경기도가 다르고 군이나 면이 다르듯이 천국에서도 분명히 처소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한 편 강도가 죽음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들어간 낙원(눅 23:43)뿐 아니라 새 예루살렘(계 21장) 등 거할 곳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6천 리가 되는 곳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온 집에 충성한 성도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천국은 아무리 외곽 지역이라 할지라도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지만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으로 갈수록 그 아름다움과 행복이 더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분량에 따라 각기 다른 천국을 소유하게 되므로 보다 좋은 처소를 얻기 위해서는 침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요, 침노하는 사람이 빼앗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어떻게 천국을 침노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게 되면 비록 겨자씨만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지만 열심히 심고 가꾸면서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여 천국을 침노해야 합니다. 그러면 천국을 침노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복종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2:12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말씀하신 대로 구원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씨를 땅 속에 심지 않으면 곧 말라 새가 날아와서 먹어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치 않고 가만히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마저도 빼앗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 사모하고 꿀보다 더 달게 여기며(시 19:10) 항상 복종하여 온전히 진리 안에 거해야 행함 있는 믿음이 되어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강건하여지고 원수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화전을 소멸해야 합니다. 또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써야 합니다(엡 6:10-18). 우리가 얼마나 전신갑주를 취하고 믿음으로 싸워 이겼느냐에 따라 마음의 성결을 이루는 것과 믿음의 분량이 달라지므로 천국에서 거하는 처소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3)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천국에 갈 수 있고 소망이 있어야 천국을 바라보고 진리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이 있어야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으며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요일 4:8) 사랑이 없으면 새예루살렘에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셨으니(고전 13:13) 사랑을 좇아 천국을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사랑을 이루는 정도에 따라 처소도 달라지게 됩니다.
4. 믿음의 분량에 따른 천국의 처소
천국을 침노해 나가면 믿음의 분량에 따라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가 달라집니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뿐 아니라 구원받은 강도가 들어가는 낙원도 있으므로 크게 5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자 합니다.
1) 자녀들의 믿음
요한일서 2:12을 보면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모든 죄를 사함받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데 이때는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낙원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게 됩니다.
2) 아이들의 믿음
요한일서 2:14을 보면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는 아이들이 자라나서 부모를 알게 되듯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단계의 믿음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심겨져 이제 겨우 싹이 난 상태의 믿음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이란 영적으로 젖먹는 신자들을 의미하며 이들은 1천층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됩니다.
3) 청년들의 믿음
요한일서 2:13을 보면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기에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악한 자를 이기며 진리 안에 거하는 믿음의 단계입니다. 청년들이란 영적으로 밥먹는 신자들을 가리키며 이들에게는 2천층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4) 아비들의 믿음
요한일서 2:14을 보면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들은 신앙이 성숙된 단계이므로 아버지에 대하여 알되 태초부터 해서 그 근본을 아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그대로 깨달음이 오고 영감으로 깨우쳐지는 단계의 믿음입니다. 이들은 큰 나무로 성장한 성결된 성도들로서 3천층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요, 더 나아가 온 집에 충성하며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에게는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 다른 여러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무서워 도망갔지만 성령을 받고 겨자씨만한 믿음이 장성하여 큰 믿음이 되니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고 순교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온전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를 밝히 깨닫고 열심히 천국을 침노하여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2008-10-17
제42과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사도 바울
딤후 4:7-8
읽을말씀 : 딤후 4:7-8 | 외울말씀 : 행 20:24
교육목표 :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천국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사도 바울의 출생과 하나님의 부르심
바울은 헬라어로 '작은 자'란 뜻이지만, 사도 바울은 대사도로서 기독교사에 우뚝 솟아난 거봉이 되었습니다. 그는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당시의 석학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한 율법의 교육을 받았습니다(행 22:3).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족속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하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고 그리스도 교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섰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빌 3:5-6). 당시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로마의 시민권도 갖고 있었습니다(행 22:26-28).
그가 당시 유명한 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수학한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가문이 부유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까지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로서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영웅, 곧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철저한 유대교였던 사울은 많은 사람이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 한 목수의 아들을 메시아라고 추종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기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박해를 지휘하는 관권을 받아 옥에 가두고 죽일 때 찬성표를 던졌습니다(행 26:10).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현장에도 있었고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울이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갈 때였습니다. 홀연히 하늘에서 강한 빛이 비취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셨지요. 사울은 자신이 그토록 핍박하던 예수님을 만난 후, 다메섹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지난 날을 회개하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2. 사도 바울의 고난과 소망
사도 바울은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 이방 곳곳에 많은 교회를 세워 세계선교의 기반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이루기까지 원수 마귀 사단의 많은 방해를 받았으므로 그 길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8을 보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는 복음을 전하는 과정 중에 여러 번 매를 맞았으며 여러 번 죽을 뻔했고(고후 11:23
감옥에도 수없이 갇혔습니다. 이러한 연단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은 더욱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고 하늘의 소망이 넘쳐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2:2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체험은 자칫하면 교만하게 할 수 있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7에서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수많은 연단을 통하여 마음의 할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날마다 죽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베풀며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행 14:11)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로마서 2:28-29을 보면 마음의 할례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례란 하나님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첫 언약으로 난 지 팔일 된 남자 아이의 성기 끝을 잘라내는 의식을 말합니다(창 17:10). 하나님께서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 곧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진리에 어긋난 비진리를 버리고 거룩한 성품을 이루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날마다 죽는 것을 자랑하며(고전 15:31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고 하면서 온전한 구원을 위해 근신하였습니다. 결국 주님의 형상을 이룬 그는 담대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4:16)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고백할 정도로 사랑이 넘쳐났고 천국의 소망이 있었기에 어떤 핍박이 닥쳐와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좇았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한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우리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행 20:24). 그러므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치 않고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육목표 :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천국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사도 바울의 출생과 하나님의 부르심
바울은 헬라어로 '작은 자'란 뜻이지만, 사도 바울은 대사도로서 기독교사에 우뚝 솟아난 거봉이 되었습니다. 그는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당시의 석학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한 율법의 교육을 받았습니다(행 22:3).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족속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하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고 그리스도 교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섰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빌 3:5-6). 당시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로마의 시민권도 갖고 있었습니다(행 22:26-28).
그가 당시 유명한 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수학한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가문이 부유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까지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로서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영웅, 곧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철저한 유대교였던 사울은 많은 사람이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 한 목수의 아들을 메시아라고 추종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기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박해를 지휘하는 관권을 받아 옥에 가두고 죽일 때 찬성표를 던졌습니다(행 26:10).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현장에도 있었고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울이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갈 때였습니다. 홀연히 하늘에서 강한 빛이 비취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셨지요. 사울은 자신이 그토록 핍박하던 예수님을 만난 후, 다메섹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지난 날을 회개하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2. 사도 바울의 고난과 소망
사도 바울은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 이방 곳곳에 많은 교회를 세워 세계선교의 기반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이루기까지 원수 마귀 사단의 많은 방해를 받았으므로 그 길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8을 보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는 복음을 전하는 과정 중에 여러 번 매를 맞았으며 여러 번 죽을 뻔했고(고후 11:23
감옥에도 수없이 갇혔습니다. 이러한 연단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은 더욱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고 하늘의 소망이 넘쳐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2:2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체험은 자칫하면 교만하게 할 수 있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7에서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수많은 연단을 통하여 마음의 할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날마다 죽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베풀며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행 14:11)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로마서 2:28-29을 보면 마음의 할례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례란 하나님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첫 언약으로 난 지 팔일 된 남자 아이의 성기 끝을 잘라내는 의식을 말합니다(창 17:10). 하나님께서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 곧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진리에 어긋난 비진리를 버리고 거룩한 성품을 이루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날마다 죽는 것을 자랑하며(고전 15:31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고 하면서 온전한 구원을 위해 근신하였습니다. 결국 주님의 형상을 이룬 그는 담대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4:16)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고백할 정도로 사랑이 넘쳐났고 천국의 소망이 있었기에 어떤 핍박이 닥쳐와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좇았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한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우리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행 20:24). 그러므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치 않고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