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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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7
제9과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롬 1:17
읽을말씀 : 롬 1:17 | 외울말씀 : 롬 10:10 l 참고 말씀 : 눅 1:5~6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차원을 넘어 진정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기 위해 죄를 버리고 영 적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흔히 고아나 과부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의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온유하고 착해 보이며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 성내지 않으며 말없이 잘 참는 사람을 볼 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인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의인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고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사람의 겉과 속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마음속에 시기 질투가 있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배신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의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
성경을 보면 여호와의 도를 행하는 사람(호 14:9),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 없이 행하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눅 1:5~6). 그런데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된 대로 사람이 아무리 의롭게 살고자 해도 태어날 때부터 조상의 기를 통해 죄의 성질을 이어받으므로 원죄가 있고, 살면서 짓는 자범죄가 있기 때문에 의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피 흘려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고 의인이라 불리웁니다. 또한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되니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기뻐하시는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죄를 버리고 마음의 의를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죄를 버릴 수 없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인 구약시대에는 행위로 죄를 짓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행위적인 구원은 온전치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으로 부르짖어 간구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죄를 온전히 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를 버리고 성결을 이루며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를수록 하나님의 사랑괴 인정을 받는 의인이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됩니다.
2. 왜 의인이 되어야 하는가?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한 대로 죄인은 원수 마귀에게 속하여 멸망의 길로 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죄에서 돌이키면 원수 마귀가 주는 시험 환난과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면 악한 원수 마귀가 만지지도 못하니 질병과 상관이 없으며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선수들이 혹독한 훈련을 받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의인이 되기까지는 연단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감당할 만한 연단을 허락하시며 더욱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친히 인도하시며 연단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하시고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하시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으로서 완전해지기까지 연단하셨습니다. 결국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라는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여 모든 연단이 끝난 뒤에는 범사에 축복을 받고 형통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 연단을 허락하시고 의인이 되는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을 통과하는 만큼 축복을 주시고 더 큰 믿음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마음을 닮은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 영적 믿음을 소유하려면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여기서 믿음이란 영적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에는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육적 믿음을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부모, 스승, 이웃, 친구 등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머리 뇌세포 기억장치에 지식으로 담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입력해 놓은 지식과 일치하면 믿는 믿음을 육적 믿음이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유에서 유(有)의 창조 즉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은 믿을 수 있지만,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 즉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은 믿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바다야, 파도야, 잠잠하라!" 하시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나귀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시고,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게도 하시며, 견고한 여리고성도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일반적인 상식과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니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지만 이는 세상 사람의 지식으로 이해도 안 되고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영적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이러한 사실들이 마음에 믿어지지 않으니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적 믿음은 구하는 것을 응답받을 수 없으며 구원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영적 믿음은 산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가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즉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내 생각과 지식에 맞추지 않으니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믿어집니다. 그래서 영적 믿음은 순종할 수 없는 것을 행하는 믿음,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믿음이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산 믿음입니다.
이러한 영적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열심히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하였으니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진리를 알 수 없으니 믿음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며 말씀을 듣고, 각종 모임을 통해 말씀이나 간증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의 지식이 심겨지고 지식적인 믿음이 생겨난다고 해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진리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버리며 말씀대로 행해 나가야 지식적인 믿음이 받침대가 되어 영적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4. 의인이 되어 믿음으로 살아가는 방법
아브라함은 항상 자기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영적 믿음으로 오직 순종하며 믿음의 행군을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과정에서 앞길을 가로막는 홍해를 어떻게 건넜습니까?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범람하는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는 영적 믿음을 소유했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으로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생활 가운데도 앞길을 가로막는 홍해, 무너뜨려야 할 여리고 성과 범람하는 요단강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닥쳤을 때 의로운 중심으로 진리 안에 사는 것이 곧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대가 나를 때렸을 때 육적 믿음으로는 같이 때리고 미워하지만, 영적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합니다. 이러한 산 믿음, 행하는 믿음이 있을 때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며 진리대로 행합니다. 간혹 어떻게 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는데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으로 □□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은 □□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2. 로마서 10장 10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을 받으며 마음 중심에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8편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믿음이 장성하여 의인이 되는 만큼 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이 다릅니다.
'해의 영광'이란 악을 온전히 버리고 성결하여 3천층 또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을 뜻합니다.
'달의 영광'이란 2천층에 가는 사람의 영광을 뜻하며, '별의 영광'은 1천층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을 말합니다. 또한 별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이 각각 크기나 밝기가 다르듯이 영광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천국에 가서 받을 상급과 영광이 다릅니다. 낙원에 들어 가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한 일이 없으므로 상급이 없고 아예 영광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참고 말씀 고전 15:39~41)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차원을 넘어 진정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기 위해 죄를 버리고 영 적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흔히 고아나 과부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의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온유하고 착해 보이며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 성내지 않으며 말없이 잘 참는 사람을 볼 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인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의인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고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사람의 겉과 속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마음속에 시기 질투가 있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배신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의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
성경을 보면 여호와의 도를 행하는 사람(호 14:9),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 없이 행하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눅 1:5~6). 그런데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된 대로 사람이 아무리 의롭게 살고자 해도 태어날 때부터 조상의 기를 통해 죄의 성질을 이어받으므로 원죄가 있고, 살면서 짓는 자범죄가 있기 때문에 의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피 흘려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고 의인이라 불리웁니다. 또한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되니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기뻐하시는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죄를 버리고 마음의 의를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죄를 버릴 수 없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인 구약시대에는 행위로 죄를 짓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행위적인 구원은 온전치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으로 부르짖어 간구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죄를 온전히 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를 버리고 성결을 이루며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를수록 하나님의 사랑괴 인정을 받는 의인이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됩니다.
2. 왜 의인이 되어야 하는가?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한 대로 죄인은 원수 마귀에게 속하여 멸망의 길로 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죄에서 돌이키면 원수 마귀가 주는 시험 환난과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면 악한 원수 마귀가 만지지도 못하니 질병과 상관이 없으며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선수들이 혹독한 훈련을 받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의인이 되기까지는 연단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감당할 만한 연단을 허락하시며 더욱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친히 인도하시며 연단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하시고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하시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으로서 완전해지기까지 연단하셨습니다. 결국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라는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여 모든 연단이 끝난 뒤에는 범사에 축복을 받고 형통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 연단을 허락하시고 의인이 되는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을 통과하는 만큼 축복을 주시고 더 큰 믿음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마음을 닮은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 영적 믿음을 소유하려면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여기서 믿음이란 영적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에는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육적 믿음을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부모, 스승, 이웃, 친구 등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머리 뇌세포 기억장치에 지식으로 담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입력해 놓은 지식과 일치하면 믿는 믿음을 육적 믿음이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유에서 유(有)의 창조 즉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은 믿을 수 있지만,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 즉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은 믿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바다야, 파도야, 잠잠하라!" 하시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나귀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시고,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게도 하시며, 견고한 여리고성도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일반적인 상식과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니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지만 이는 세상 사람의 지식으로 이해도 안 되고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영적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이러한 사실들이 마음에 믿어지지 않으니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적 믿음은 구하는 것을 응답받을 수 없으며 구원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영적 믿음은 산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가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즉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내 생각과 지식에 맞추지 않으니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믿어집니다. 그래서 영적 믿음은 순종할 수 없는 것을 행하는 믿음,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믿음이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산 믿음입니다.
이러한 영적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열심히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하였으니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진리를 알 수 없으니 믿음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며 말씀을 듣고, 각종 모임을 통해 말씀이나 간증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의 지식이 심겨지고 지식적인 믿음이 생겨난다고 해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진리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버리며 말씀대로 행해 나가야 지식적인 믿음이 받침대가 되어 영적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4. 의인이 되어 믿음으로 살아가는 방법
아브라함은 항상 자기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영적 믿음으로 오직 순종하며 믿음의 행군을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과정에서 앞길을 가로막는 홍해를 어떻게 건넜습니까?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범람하는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는 영적 믿음을 소유했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으로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생활 가운데도 앞길을 가로막는 홍해, 무너뜨려야 할 여리고 성과 범람하는 요단강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닥쳤을 때 의로운 중심으로 진리 안에 사는 것이 곧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대가 나를 때렸을 때 육적 믿음으로는 같이 때리고 미워하지만, 영적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합니다. 이러한 산 믿음, 행하는 믿음이 있을 때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며 진리대로 행합니다. 간혹 어떻게 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는데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으로 □□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은 □□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2. 로마서 10장 10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을 받으며 마음 중심에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8편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믿음이 장성하여 의인이 되는 만큼 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이 다릅니다.
'해의 영광'이란 악을 온전히 버리고 성결하여 3천층 또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을 뜻합니다.
'달의 영광'이란 2천층에 가는 사람의 영광을 뜻하며, '별의 영광'은 1천층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을 말합니다. 또한 별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이 각각 크기나 밝기가 다르듯이 영광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천국에 가서 받을 상급과 영광이 다릅니다. 낙원에 들어 가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한 일이 없으므로 상급이 없고 아예 영광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참고 말씀 고전 15:39~41)
2009-02-20
제8과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의
롬 5:18
읽을말씀 : 롬 5:18 | 외울말씀 : 잠 4:23 l 참고 말씀 : 마 22:37~39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한 행동은 무엇이며, 우리가 생명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어떤 의를 이루어야 하는지 알게 한다.
일반적으로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란 사람들이 말하는 의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의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로써 우리가 참 생명과 영생을 얻도록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의인이 되어 참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1. 의의 한 행동과 예수 그리스도의 의
로마서 5장 18절에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했는데 여기서 '한 범죄'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의 범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에서 자녀 된 권세를 누리며 풍요롭게 살도록 축복하면서 선악과만은 먹지 말도록 금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사단의 사주를 받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이로 인해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사망이 임하게 되었고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된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영 혼 육으로 창조되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하는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고 영생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눈물, 고통, 질병, 사망이 있는 이 땅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범죄한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도 죄인이 되어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러면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는데 왜 그 후손까지 죄인이 된 것일까요? 사람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태어나는데 그 안에는 부모의 기가 들어 있어 부모의 생김새, 성품, 취향, 습관 등이 닮아 나옵니다. 이처럼 부모의 기가 자녀에게 전달되듯이 부모가 가지고 있는 죄성도 유전되는 것입니다. 태어난 지 1, 2년밖에 안 되는 아기들도 미워하고 시기하며 분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고백한 것처럼 범죄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기(氣)속에 죄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어 사망에 이를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만세 전에 구원의 길을 예비하고 감추어 두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입니다.
때가 이르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아무 죄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의의 한 행동으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2.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
그러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를 죄라고 하는 것이며(요 16:9) 의인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배신한다면 인륜을 저버린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원수 마귀를 따른다면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 말씀을 지킨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주만물과 우리를 지은 창조주이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또 스스로 계시며,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실 뿐 아니라, 천국과 지옥을 예비하시고 공의의 심판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값없이 구원의 문에 들어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하듯이 믿음으로 천국 시민권을 소유했으면 하늘나라의 법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의 법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것을 지키면 의에 이르고 결국 천국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둘째로, 생각을 지키고 마음의 악을 버리며 행함이 온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원죄도 없고 자범죄도 없으시니 악의 모양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본받아 의로운 사람이 되려면 생각을 지키고 마음의 악을 버리며 행함이 온전해야 합니다.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마음인 진리가 임해 생각을 통해 죄를 짓지 않고, 성령의 주관 인도를 받아 행함이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머리로 불법을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악한 행동이 나옵니다. 탐욕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부귀영화를 누릴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마음에 심습니다. 이 마음이 요동하여 결국 악한 행동으로 나오지요. 즉 탐심이 마음 안에 있기 때문에 생각을 통해 사단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사기나 횡령, 도둑질 등 악한 행동으로 나온다는 말입니다. 만일 마음 자체에 악이 없으면 생각을 통해 사단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거짓을 생각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나오며 간음을 생각하기 때문에 간음이 행동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죄의 쓴 뿌리를 빼내면 생각을 통해 죄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아도 선으로 보고, 선으로 말하고, 선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도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도를 다 지켜 행하여 표본이 되어 주셨으니 우리도 그대로 본받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지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규례에 대해 흠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계명이란 대표적으로 십계명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66권 안에 담긴 하나님의 명령을 축약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십계명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으므로 참뜻을 알고 지켜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첫째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둘째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는 대로 행해야 하지요. 예수님은 말씀대로 다 행하시며 다투거나 들레지 않으셨고, 틈나는 대로 낮이나 밤이나 무시로 기도하시며 규례도 온전히 지켰습니다.
규례란 하나님께서 정한 규칙으로 가령 유월절을 지키거나 십일조를 드리는 것 등입니다. 유월절은 오늘날 부활절에 해당되는데 예수님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지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기독교인은 이스라엘이 지키는 여러 의식의 영적 의미를 계승하여 오늘날도 지키고 있습니다. 즉 구약 시대의 육의 할례가 신약 시대에는 마음의 할례를 의미하고, 구약 시대의 제사법을 계승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 즉 계명과 규례를 지켜 행하면 참된 생명을 얻어 의롭게 됩니다. 사람이 의롭지 못하므로 분쟁이 생기고 원수 맺으며 질병이 오기 마련인데,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를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면 어떤 질병도 틈타지 않고(출 15:26) 만사형통한 삶과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만민 위에 뛰어난 사람,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신 28:1~14).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잠언 4장 23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를 얼마나 행하고 있는지 체크해 봅시다.
a. □ 매일 성경 1장 이상 읽고 있나요?
b. □ 주보에 나오는 성구를 매일 외우고 있나요?
c. □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나요?
d. □ 거짓말 등 버려야 할 나쁜 습관을 버렸나요?
e. □ 내가 말한 대로, 마음에 정한 대로 실천하나요?
f. □ 늘 복음을 전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7편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읽어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혼이란? 사람의 뇌세포 안에는 기억장치가 있는데 이 기억장치와 그 안에 기억된 지식들과 그것을 떠올리는 생각의 작용을 통틀어 혼이라 한다. 이러한 혼이 있으므로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다.
생각이란? 뇌의 기억장치에 입력된 지식을 혼의 작용을 통해 되살려 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크게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영의 생각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한 행동은 무엇이며, 우리가 생명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어떤 의를 이루어야 하는지 알게 한다.
일반적으로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란 사람들이 말하는 의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의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로써 우리가 참 생명과 영생을 얻도록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의인이 되어 참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1. 의의 한 행동과 예수 그리스도의 의
로마서 5장 18절에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했는데 여기서 '한 범죄'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의 범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에서 자녀 된 권세를 누리며 풍요롭게 살도록 축복하면서 선악과만은 먹지 말도록 금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사단의 사주를 받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이로 인해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사망이 임하게 되었고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된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영 혼 육으로 창조되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하는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고 영생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눈물, 고통, 질병, 사망이 있는 이 땅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범죄한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도 죄인이 되어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러면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는데 왜 그 후손까지 죄인이 된 것일까요? 사람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태어나는데 그 안에는 부모의 기가 들어 있어 부모의 생김새, 성품, 취향, 습관 등이 닮아 나옵니다. 이처럼 부모의 기가 자녀에게 전달되듯이 부모가 가지고 있는 죄성도 유전되는 것입니다. 태어난 지 1, 2년밖에 안 되는 아기들도 미워하고 시기하며 분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고백한 것처럼 범죄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기(氣)속에 죄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어 사망에 이를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만세 전에 구원의 길을 예비하고 감추어 두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입니다.
때가 이르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아무 죄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의의 한 행동으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2.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
그러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를 죄라고 하는 것이며(요 16:9) 의인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배신한다면 인륜을 저버린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원수 마귀를 따른다면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 말씀을 지킨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주만물과 우리를 지은 창조주이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또 스스로 계시며,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실 뿐 아니라, 천국과 지옥을 예비하시고 공의의 심판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값없이 구원의 문에 들어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하듯이 믿음으로 천국 시민권을 소유했으면 하늘나라의 법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의 법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것을 지키면 의에 이르고 결국 천국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둘째로, 생각을 지키고 마음의 악을 버리며 행함이 온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원죄도 없고 자범죄도 없으시니 악의 모양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본받아 의로운 사람이 되려면 생각을 지키고 마음의 악을 버리며 행함이 온전해야 합니다.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마음인 진리가 임해 생각을 통해 죄를 짓지 않고, 성령의 주관 인도를 받아 행함이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머리로 불법을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악한 행동이 나옵니다. 탐욕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부귀영화를 누릴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마음에 심습니다. 이 마음이 요동하여 결국 악한 행동으로 나오지요. 즉 탐심이 마음 안에 있기 때문에 생각을 통해 사단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사기나 횡령, 도둑질 등 악한 행동으로 나온다는 말입니다. 만일 마음 자체에 악이 없으면 생각을 통해 사단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거짓을 생각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나오며 간음을 생각하기 때문에 간음이 행동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죄의 쓴 뿌리를 빼내면 생각을 통해 죄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아도 선으로 보고, 선으로 말하고, 선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도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도를 다 지켜 행하여 표본이 되어 주셨으니 우리도 그대로 본받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지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규례에 대해 흠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계명이란 대표적으로 십계명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66권 안에 담긴 하나님의 명령을 축약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십계명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으므로 참뜻을 알고 지켜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첫째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둘째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는 대로 행해야 하지요. 예수님은 말씀대로 다 행하시며 다투거나 들레지 않으셨고, 틈나는 대로 낮이나 밤이나 무시로 기도하시며 규례도 온전히 지켰습니다.
규례란 하나님께서 정한 규칙으로 가령 유월절을 지키거나 십일조를 드리는 것 등입니다. 유월절은 오늘날 부활절에 해당되는데 예수님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지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기독교인은 이스라엘이 지키는 여러 의식의 영적 의미를 계승하여 오늘날도 지키고 있습니다. 즉 구약 시대의 육의 할례가 신약 시대에는 마음의 할례를 의미하고, 구약 시대의 제사법을 계승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 즉 계명과 규례를 지켜 행하면 참된 생명을 얻어 의롭게 됩니다. 사람이 의롭지 못하므로 분쟁이 생기고 원수 맺으며 질병이 오기 마련인데,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를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면 어떤 질병도 틈타지 않고(출 15:26) 만사형통한 삶과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만민 위에 뛰어난 사람,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신 28:1~14).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잠언 4장 23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를 얼마나 행하고 있는지 체크해 봅시다.
a. □ 매일 성경 1장 이상 읽고 있나요?
b. □ 주보에 나오는 성구를 매일 외우고 있나요?
c. □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나요?
d. □ 거짓말 등 버려야 할 나쁜 습관을 버렸나요?
e. □ 내가 말한 대로, 마음에 정한 대로 실천하나요?
f. □ 늘 복음을 전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7편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읽어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혼이란? 사람의 뇌세포 안에는 기억장치가 있는데 이 기억장치와 그 안에 기억된 지식들과 그것을 떠올리는 생각의 작용을 통틀어 혼이라 한다. 이러한 혼이 있으므로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다.
생각이란? 뇌의 기억장치에 입력된 지식을 혼의 작용을 통해 되살려 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크게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영의 생각으로 구분할 수 있다.
2009-02-13
제7과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마 23:13~33
읽을말씀 : 마 23:13~33 | 외울말씀 : 롬 12:9 l 참고 말씀 : 마 11:20~24
교육목표 : 고통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의 모습을 철저히 버리게 한다.
오늘날 부모 자녀 간이나 부부, 형제, 이웃 사이에 이런저런 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족 간에 재산 문제로 고소하는가 하면, 자기 유익에 따라 배신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많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자신에게도 큰 고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 가운데 계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들도 선에 속하기를 간절히 원하시지요.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1. 고통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을 미워하라
세상에서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을 선하다고 하지만 도덕이나 양심도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선이 아니거나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인 것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선의 절대적 기준은 오직 하나님 말씀이며 이에 어긋난 것은 모두 악입니다.
마음에 악이 있으면 어느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습니다. 비록 조그마한 악의 모양일지라도 그 악이 자라면 사단이 역사하여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죄 가운데 빠져들지요. 악은 자신과 상대에게 고통과 아픔이 되므로 모양이라도 미워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면 자연히 멀리하게 되고 생각지도 않으며 행치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질병이 틈타거나 시험 환난이 오는 것은 마음의 악을 행함으로 나타내는 육체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육체의 일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짐승과 다름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사람의 본분을 찾도록 징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비진리의 생각이나 육신의 일 때문에 시험 환난이 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육신의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육체의 일로 발전할 수 있으니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2.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에 속한 자가 되어야
만일 하나님의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면 이것도 악 중의 악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0~2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라신과 벳새다가 회개치 않자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책망하시고, 가버나움에 대하여는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큰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할 만한 놀라운 권능을 보았으니 그 가르침을 좇아 회개하고 악을 버려야 할 텐데 오히려 그들은 배척하였지요.
그런가 하면 마태복음 12장 38~39절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시지요. 가령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거나, 죽은 자를 살리면 믿겠다는 사람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믿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흠을 잡고 배척하며 잡아 죽일까 궁리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았지요.
오늘날도 하나님의 종과 일꾼들을 통해 수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도 믿지 않고 판단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속에 악이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일을 버리지 않아 육체의 일을 자꾸 행하다 보니 점점 심령이 무뎌지고 완악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양심이 무뎌져 화인 맞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깨닫지를 못하니 회개할 수도 없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육체의 일을 끊고 그 다음에는 마음에 있는 육신의 일을 버려야지요. 이렇게 죄와 악을 버려 나갈 때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요일 1:7, 3:9). 이런 사람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며 어떠한 질병도 치료받고 가정이나 일터, 사업터 등 어떤 문제라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미워해야 할 악의 모양들
그러면 선에 속한 자가 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악을 미워해야 하는지 마태복음 23장 13~33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는 경우
천국 문이란 복음 안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우리가 진리를 알고 지켜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말씀을 지키는 척 했지만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 뜻과는 반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속에는 불법과 악이 가득하였므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온갖 궤계를 꾸며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손가락질받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은 물론 상대도 구원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교인 하나가 생기면 자기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경우
시집살이를 호되게 한 며느리가 정작 시어머니가 되면 더 심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배여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누구에게 배우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사고방식, 언어 행동이 크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같은 사람을 만나 신앙생활을 하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함께 악으로 빠지게 되지요.
예를 들면 교회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인도한 사람의 언어와 행동으로 인해 출석하지 않거나 주님을 믿지 않는 경우, 머리 된 일꾼이 본이 되지 못해 교구나, 구역, 기관의 부흥을 막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3) 탐심, 거짓, 욕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못 전달하는 경우
하나님께 무엇을 맹세하거나 서원한 것은 마땅히 지키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자신의 탐심, 욕심을 따라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영이 아닌 썩을 육입니다. 가령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말씀은 소홀히 하고 헌금 작정에만 강조한다면 그는 소경 된 인도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천국에 들어갈 것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4)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린 경우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버린 '의와 인과 신'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의'란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을 좇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이란 인간의 삶 속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짐승만도 못할 수 있고 법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신'이란 믿음으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벧후 1:4). 악을 버리고 계명을 온전히 지켜야 신의 성품을 참예할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의와 인과 신은 소홀히 하고 예물만 중요시했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물보다도 상한 심령 곧 회개하는 마음을 더 기뻐하십니다(시 51:16~17).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죄를 지적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고, 십일조나 기타 것을 가르쳐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해야 합니다.
5)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경우
투명한 크리스털 잔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아름답게 빛날 수도, 추하고 더러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 안에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이 가득하다면 어찌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니 말씀으로 자신을 조명하여 탐욕과 방탕 등 마음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겉모습은 자연히 깨끗해집니다.
6) 회칠한 무덤과 같은 경우
아무리 호화롭게 꾸며 놓은 무덤이라도 속에는 벌레가 우글거리며 시체가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마음속에는 더러운 악이 있으면서 겉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척 가장하는 가증한 사람을 회칠한 무덤이라 합니다. 즉 마음속에는 미움, 시기, 질투, 간음 등 많은 죄가 있으면서 선하고 지혜로우며 온전한 척하며 상대를 권면하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7) 자신은 여전히 의롭다고 여기는 경우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다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않았을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조상보다 선하거나 의롭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악한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진리를 듣고 마음에 걸리는데도 여전히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며 회개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말씀에 자신을 조명하여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신속히 벗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로마서 12장 9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악을 버리고 선에 속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요?
3. 내 안에서 책망받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모습을 찾아보세요. 혹여 나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대가 교회나 목자를 멀리한 한 적은 없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6편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죄'와 '악'의 차이
'죄'란 마음의 악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며 '악'은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속성'이다. 그래서 '악'은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와 같고 '죄'는 눈에 보이는 줄기와 잎, 열매 부분과 같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의 줄기와 잎, 열매가 있을 수 없듯이 악으로 인해 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교육목표 : 고통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의 모습을 철저히 버리게 한다.
오늘날 부모 자녀 간이나 부부, 형제, 이웃 사이에 이런저런 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족 간에 재산 문제로 고소하는가 하면, 자기 유익에 따라 배신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많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자신에게도 큰 고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 가운데 계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들도 선에 속하기를 간절히 원하시지요.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1. 고통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을 미워하라
세상에서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을 선하다고 하지만 도덕이나 양심도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선이 아니거나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인 것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선의 절대적 기준은 오직 하나님 말씀이며 이에 어긋난 것은 모두 악입니다.
마음에 악이 있으면 어느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습니다. 비록 조그마한 악의 모양일지라도 그 악이 자라면 사단이 역사하여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죄 가운데 빠져들지요. 악은 자신과 상대에게 고통과 아픔이 되므로 모양이라도 미워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면 자연히 멀리하게 되고 생각지도 않으며 행치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질병이 틈타거나 시험 환난이 오는 것은 마음의 악을 행함으로 나타내는 육체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육체의 일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짐승과 다름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사람의 본분을 찾도록 징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비진리의 생각이나 육신의 일 때문에 시험 환난이 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육신의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육체의 일로 발전할 수 있으니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2.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에 속한 자가 되어야
만일 하나님의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면 이것도 악 중의 악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0~2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라신과 벳새다가 회개치 않자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책망하시고, 가버나움에 대하여는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큰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할 만한 놀라운 권능을 보았으니 그 가르침을 좇아 회개하고 악을 버려야 할 텐데 오히려 그들은 배척하였지요.
그런가 하면 마태복음 12장 38~39절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시지요. 가령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거나, 죽은 자를 살리면 믿겠다는 사람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믿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흠을 잡고 배척하며 잡아 죽일까 궁리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았지요.
오늘날도 하나님의 종과 일꾼들을 통해 수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도 믿지 않고 판단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속에 악이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일을 버리지 않아 육체의 일을 자꾸 행하다 보니 점점 심령이 무뎌지고 완악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양심이 무뎌져 화인 맞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깨닫지를 못하니 회개할 수도 없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육체의 일을 끊고 그 다음에는 마음에 있는 육신의 일을 버려야지요. 이렇게 죄와 악을 버려 나갈 때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요일 1:7, 3:9). 이런 사람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며 어떠한 질병도 치료받고 가정이나 일터, 사업터 등 어떤 문제라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미워해야 할 악의 모양들
그러면 선에 속한 자가 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악을 미워해야 하는지 마태복음 23장 13~33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는 경우
천국 문이란 복음 안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우리가 진리를 알고 지켜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말씀을 지키는 척 했지만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 뜻과는 반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속에는 불법과 악이 가득하였므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온갖 궤계를 꾸며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손가락질받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은 물론 상대도 구원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교인 하나가 생기면 자기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경우
시집살이를 호되게 한 며느리가 정작 시어머니가 되면 더 심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배여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누구에게 배우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사고방식, 언어 행동이 크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같은 사람을 만나 신앙생활을 하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함께 악으로 빠지게 되지요.
예를 들면 교회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인도한 사람의 언어와 행동으로 인해 출석하지 않거나 주님을 믿지 않는 경우, 머리 된 일꾼이 본이 되지 못해 교구나, 구역, 기관의 부흥을 막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3) 탐심, 거짓, 욕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못 전달하는 경우
하나님께 무엇을 맹세하거나 서원한 것은 마땅히 지키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자신의 탐심, 욕심을 따라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영이 아닌 썩을 육입니다. 가령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말씀은 소홀히 하고 헌금 작정에만 강조한다면 그는 소경 된 인도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천국에 들어갈 것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4)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린 경우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버린 '의와 인과 신'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의'란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을 좇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이란 인간의 삶 속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짐승만도 못할 수 있고 법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신'이란 믿음으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벧후 1:4). 악을 버리고 계명을 온전히 지켜야 신의 성품을 참예할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의와 인과 신은 소홀히 하고 예물만 중요시했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물보다도 상한 심령 곧 회개하는 마음을 더 기뻐하십니다(시 51:16~17).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죄를 지적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고, 십일조나 기타 것을 가르쳐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해야 합니다.
5)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경우
투명한 크리스털 잔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아름답게 빛날 수도, 추하고 더러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 안에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이 가득하다면 어찌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니 말씀으로 자신을 조명하여 탐욕과 방탕 등 마음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겉모습은 자연히 깨끗해집니다.
6) 회칠한 무덤과 같은 경우
아무리 호화롭게 꾸며 놓은 무덤이라도 속에는 벌레가 우글거리며 시체가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마음속에는 더러운 악이 있으면서 겉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척 가장하는 가증한 사람을 회칠한 무덤이라 합니다. 즉 마음속에는 미움, 시기, 질투, 간음 등 많은 죄가 있으면서 선하고 지혜로우며 온전한 척하며 상대를 권면하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7) 자신은 여전히 의롭다고 여기는 경우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다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않았을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조상보다 선하거나 의롭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악한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진리를 듣고 마음에 걸리는데도 여전히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며 회개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말씀에 자신을 조명하여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신속히 벗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로마서 12장 9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악을 버리고 선에 속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요?
3. 내 안에서 책망받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모습을 찾아보세요. 혹여 나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대가 교회나 목자를 멀리한 한 적은 없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6편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죄'와 '악'의 차이
'죄'란 마음의 악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며 '악'은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속성'이다. 그래서 '악'은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와 같고 '죄'는 눈에 보이는 줄기와 잎, 열매 부분과 같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의 줄기와 잎, 열매가 있을 수 없듯이 악으로 인해 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2009-02-06
제6과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마 3:5~10
읽을말씀 : 마 3:5~10 | 외울말씀 : 마 3:10, 참고 말씀 : 갈 5:22~23
교육목표 :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책망한 이유를 알아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한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며 죄를 자복하는 사람마다 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하면서 엄히 책망합니다.
1. 독사의 자식들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당시 유대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바리새인은 성별된 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들은 내세에 대해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심판을 믿고 모세의 율법과 장로의 유전을 철저히 지킨 사람들로서 상당한 사회적인 지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전문가 중심의 중류 계급이라면 사두개인은 부유한 귀족층과 제사장 계급을 대표하는 상류층 사람들입니다. 사두개인은 바리새인들과 달리 세속 세력과 적당히 타협하였으며, 헬라 문화를 수용하고 지지했습니다. 이들은 기록된 율법만을 경전으로 인정했고, 부활, 영혼의 영원성, 천사,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은 거부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도 현세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이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이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6장 1~4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시험했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치시자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고(마 9:34),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하였습니다(마 12:14).
이처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며 마귀의 역사로 판단 정죄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혹여 여러분은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 능력으로 벙어리가 말하며 귀신이 나가는 등 온갖 역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정죄하지는 않았습니까? 성경대로 기사와 표적을 베풀며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교회를 이단이다, 잘못되었다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악의가 가득하여 시기, 질투, 미움, 교만, 판단, 정죄 등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하였습니다. 형식적인 율법 준수와 세속적인 명예만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들은 옛 뱀(계 12:9), 곧 사단의 사주를 받았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이를 암시하기 위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표현했지요.
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빛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만일 빛과 반대인 어둠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하고 책망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매사에 선과 사랑으로 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여전히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이 가득하니 어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여전히 원수 마귀의 뜻을 좇아 살아간다면 차라리 돌들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여 인간 경작을 하시는 이유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하면서 경고합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으니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한 대로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져진다는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습니다. 첫째 사망은 육의 생명이 끝남으로 죽는 것이라면 둘째 사망은 사람의 주인인 영혼이 심판받아 지옥에 던져지는 것을 말합니다.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는다고 해도 불의를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니 지옥의 불못에 들어갑니다. 이때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심한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심히 대적하고 거짓 선지자같이 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한 사람들은 불못보다 칠배나 뜨거운 유황못에 던져집니다(계 19:20).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를 촉구하는 동시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3.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은 아담의 불순종 때문에 세상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의 자녀로 태어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행하면 참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므로 구원에 이르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빛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빛의 열매, 사랑의 열매, 성령의 열매 등 선하고 아름다운 진리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열매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듯이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무례히 행치 않는 등 영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생명까지라도 줄 수 있는 희생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죄와 악과 불법을 버리고 성결한 만큼 이룰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열매는 희락입니다. 좋은 일뿐만 아니라 어떠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소망 가운데 항상 기뻐하는 사람은 염려 근심하지 않으며 어떠한 문제가 와도 믿음으로 구하니 그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세 번째 열매인 화평은 아무와도 걸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미움이나 다툼, 이기적인 욕심이 없기에 상대를 위하고 희생하며 섬기고 무례하지 않으므로 화평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열매는 오래 참음입니다. 이해하고 용서하여 진리 안에서 참는 것입니다. 화가 나고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지만 억지로 눌러서 참는 것이 아니라 악을 버리고 선과 진리로 채우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나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마음에 악을 버리기 위해 오래 참으며 하나님 앞에 올린 기도와 간구가 응답이 올 때까지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 열매인 자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며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자기가 옳다는 마음이 있다면 자비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모든 것을 넓게 받아들이며 사랑으로 상대를 돌아볼 때에 비로소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열매는 양선으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으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마음입니다. 모든 죄를 벗어 버리고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선을 추구하는 진리의 마음입니다.
일곱 번째 열매는 충성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싸워 버리며 진리를 이루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또 교회나 가정, 직장 등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모든 사명을 감당하는 온 집의 충성이 있습니다.
여덟 번째 열매는 온유인데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솜털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온유해지면 누가 찔러도 아파하거나 상처받지 않습니다. 솜에 돌을 던지면 소리없이 감싸듯이 많은 사람이 쉴 수 있는 그늘이 되며 포용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절제의 열매가 맺히면 모든 면에서 안정을 누리며 질서 속에서 때를 맞추어 합력하여 열매 맺을 수 있으니 아름답고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믿음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십니다. 비록 악을 행했어도 중심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은 회개를 받으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시편 103편 12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한 대로 구원해 주십니다. 하물며 의를 지켜서 선을 행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들이 구하지 않은 마음의 소원까지도 아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를 맺으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엄히 책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다 함께 외워 봅시다.
3. 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후손처럼 살아가고 있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5편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빛의 열매란?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대로 행할 때 나타나는 모든 열매를 말하며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 했습니다.
'착함'이란 악이 없는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유익을 좇아 악을 행치 않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의로움'이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에 믿어야 순종의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했습니다(롬 10:10).
'진실함'이란 거짓되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어떤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말합니다.
교육목표 :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책망한 이유를 알아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한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며 죄를 자복하는 사람마다 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하면서 엄히 책망합니다.
1. 독사의 자식들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당시 유대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바리새인은 성별된 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들은 내세에 대해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심판을 믿고 모세의 율법과 장로의 유전을 철저히 지킨 사람들로서 상당한 사회적인 지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전문가 중심의 중류 계급이라면 사두개인은 부유한 귀족층과 제사장 계급을 대표하는 상류층 사람들입니다. 사두개인은 바리새인들과 달리 세속 세력과 적당히 타협하였으며, 헬라 문화를 수용하고 지지했습니다. 이들은 기록된 율법만을 경전으로 인정했고, 부활, 영혼의 영원성, 천사,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은 거부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도 현세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이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이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6장 1~4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시험했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치시자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고(마 9:34),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하였습니다(마 12:14).
이처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며 마귀의 역사로 판단 정죄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혹여 여러분은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 능력으로 벙어리가 말하며 귀신이 나가는 등 온갖 역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정죄하지는 않았습니까? 성경대로 기사와 표적을 베풀며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교회를 이단이다, 잘못되었다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악의가 가득하여 시기, 질투, 미움, 교만, 판단, 정죄 등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하였습니다. 형식적인 율법 준수와 세속적인 명예만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들은 옛 뱀(계 12:9), 곧 사단의 사주를 받았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이를 암시하기 위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표현했지요.
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빛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만일 빛과 반대인 어둠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하고 책망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매사에 선과 사랑으로 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여전히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이 가득하니 어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여전히 원수 마귀의 뜻을 좇아 살아간다면 차라리 돌들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여 인간 경작을 하시는 이유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하면서 경고합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으니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한 대로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져진다는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습니다. 첫째 사망은 육의 생명이 끝남으로 죽는 것이라면 둘째 사망은 사람의 주인인 영혼이 심판받아 지옥에 던져지는 것을 말합니다.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는다고 해도 불의를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니 지옥의 불못에 들어갑니다. 이때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심한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심히 대적하고 거짓 선지자같이 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한 사람들은 불못보다 칠배나 뜨거운 유황못에 던져집니다(계 19:20).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를 촉구하는 동시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3.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은 아담의 불순종 때문에 세상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의 자녀로 태어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행하면 참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므로 구원에 이르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빛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빛의 열매, 사랑의 열매, 성령의 열매 등 선하고 아름다운 진리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열매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듯이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무례히 행치 않는 등 영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생명까지라도 줄 수 있는 희생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죄와 악과 불법을 버리고 성결한 만큼 이룰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열매는 희락입니다. 좋은 일뿐만 아니라 어떠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소망 가운데 항상 기뻐하는 사람은 염려 근심하지 않으며 어떠한 문제가 와도 믿음으로 구하니 그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세 번째 열매인 화평은 아무와도 걸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미움이나 다툼, 이기적인 욕심이 없기에 상대를 위하고 희생하며 섬기고 무례하지 않으므로 화평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열매는 오래 참음입니다. 이해하고 용서하여 진리 안에서 참는 것입니다. 화가 나고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지만 억지로 눌러서 참는 것이 아니라 악을 버리고 선과 진리로 채우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나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마음에 악을 버리기 위해 오래 참으며 하나님 앞에 올린 기도와 간구가 응답이 올 때까지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 열매인 자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며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자기가 옳다는 마음이 있다면 자비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모든 것을 넓게 받아들이며 사랑으로 상대를 돌아볼 때에 비로소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열매는 양선으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으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마음입니다. 모든 죄를 벗어 버리고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선을 추구하는 진리의 마음입니다.
일곱 번째 열매는 충성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싸워 버리며 진리를 이루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또 교회나 가정, 직장 등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모든 사명을 감당하는 온 집의 충성이 있습니다.
여덟 번째 열매는 온유인데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솜털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온유해지면 누가 찔러도 아파하거나 상처받지 않습니다. 솜에 돌을 던지면 소리없이 감싸듯이 많은 사람이 쉴 수 있는 그늘이 되며 포용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절제의 열매가 맺히면 모든 면에서 안정을 누리며 질서 속에서 때를 맞추어 합력하여 열매 맺을 수 있으니 아름답고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믿음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십니다. 비록 악을 행했어도 중심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은 회개를 받으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시편 103편 12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한 대로 구원해 주십니다. 하물며 의를 지켜서 선을 행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들이 구하지 않은 마음의 소원까지도 아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를 맺으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엄히 책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다 함께 외워 봅시다.
3. 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후손처럼 살아가고 있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5편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빛의 열매란?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대로 행할 때 나타나는 모든 열매를 말하며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 했습니다.
'착함'이란 악이 없는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유익을 좇아 악을 행치 않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의로움'이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에 믿어야 순종의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했습니다(롬 10:10).
'진실함'이란 거짓되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어떤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말합니다.
2009-01-30
제5과육체의 일
갈 5:19~21
읽을말씀 : 갈 5:19~21 | 외울말씀 : 사 59:1, 참고말씀 마 7:21
교육목표 :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육체의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아 신속히 버리고 철저히 경계하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의 담을 헐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섭리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일을 행하면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육체의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1.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지 않고 죄악 가운데 방탕하게 산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했습니다. 비록 온전히 죄를 버리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창세기 6장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육체가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하지 않으시니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란 무슨 뜻일까요? 국어사전에는 육체에 대해 '구체적인 물질로서의 인간의 몸뚱이, 신체, 육신'이라고 했지만 성경에서는 이와 달리 영적 의미로 육체와 육신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육체란 행함으로 나타난 죄의 총칭'이며 이것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을 육체의 일이라고 합니다. 또한 '육신이란 진리가 빠져나간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말하며, 그 죄성들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을 육신의 일이라고 합니다. 즉 언제든지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죄성들을 육신의 일이라고 하며, 육신의 일을 총칭하여 육신이라고 하지요. 가령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여 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합시다. 이때 상대를 미워하여 때리고 싶은 마음은 아직 행위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쁜 마음이요, 이런 마음 자체가 육신의 일이 됩니다. 만약 이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실제로 상대를 구타했다면 육체의 일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들을 행하는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영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육체의 일을 행한다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육체의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육체의 일
1)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음행'이란 결혼 전 합법적인 부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육체적인 관계를 맺거나, 결혼한 사람이 다른 여자나 남자를 취하거나, 자기 몸을 내주는 경우입니다. 이런 육적 음행 외에도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우상을 섬기며 점을 보거나 사술이나 요사스러운 술법을 취하는 영적 음행이 있습니다.
'더러운 것'이란 죄성에 관계된 모든 것들에 해당되는데 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뛰어넘어 난잡하게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예를 들면 강도가 모녀를 같이 성폭행하는 경우나 아들이 어미의 하체를 범하는 것이나 아비가 자녀의 하체를 범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호색'이란 색욕을 좇아 각종 옳지 못한 행동들을 하는 것으로서 생활태도 전부가 음란을 좇아 행하며 음란에 젖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짐승과 교접한다거나 여자가 여자끼리 남자가 남자끼리 동성연애하는 것, 또 각종 기구를 사용하는 등 정상적인 한계를 벗어나 잘못되어진 것을 말합니다.
2)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
'우상숭배'란 참 신이신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목석이나 금, 은, 동, 나무나 쇠붙이로 여러 형상을 만들어 그 앞에 경배하는 것을 말합니다(신 4:16-19). 또한 물질이나 자녀, 남편이나 아내 등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다면 이것도 우상숭배가 됩니다(골 3:5, 6).
'술수'란 모든 것에 있어서 궤사 즉 교묘한 거짓으로 속여서 상대를 꾀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들을 말합니다. 무당을 믿는 무속 신앙, 점치는 복술, 사회 각 분야에서 나오는 사술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원수 맺는 것'이란 상대에게 원한을 품고 상대방이 극단적으로 파멸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원수같이 여기고 죽이려 한 것처럼 자신에게 악한 감정이 있어 상대를 멀리하고 미워하는 정도가 지나치면 해를 가하거나 비방하고 수군거리며 중상모략하는 등 각종 악한 일이 난무하게 됩니다.
3) 분쟁과 시기와 분냄
'분쟁'은 자기의 유익과 권세를 좇아 나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다툼입니다. 독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기의 독재와 권세를 추구하고 이기심과 욕심이 있으므로 분쟁하게 되는데 이러한 분쟁은 부부나 부모 자녀 또는 정당이나 각 나라에도 있으며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삼하 18:7).
'시기'란 자신이 남보다 못함을 느낄 때 혹은 자신보다 남이 나음을 느낄 때 마음에서 질투함으로 인해 상대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결국 시기는 악의에 찬 분노로 발전하게 되며 분쟁이 되고 당 짓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창 30장, 삼상 18:7-8, 창 4:1-8).
'분냄'이란 속으로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가 그냥 참고 소화시키는 단순한 분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불의한 분냄을 말합니다.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죽이려고 쫓아다닌 사울 왕처럼 매사에 자기 생각과 맞지 않다고 화를 내는 경우입니다(삼상 18:6-11, 22:11-19).
4)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
'당 짓는 것'이란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로 뭉치지 않고 그룹을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과 말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서 수군거리고 비방하며 악의 모양을 좇아 판단하며 정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리함'이란 당을 만들어 자기 생각을 좇아 분리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가족이나 교회 안에서도 분리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아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좇아 갈라져 나가는 경우입니다(삼하 15장).
'이단'이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입니다(벧후 2:1).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이단이라 정죄할 수 없습니다.
5)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투기'란 시기, 질투 등이 발전해서 상대에게 해를 가하거나 어떠한 제재를 가하는 등의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즉 시기가 지나쳐 행함으로 옮겨진 것이 바로 투기입니다.
'술 취함'이란 술 탓으로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므로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거나 행동이 거칠어져 범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창세기 9장에는 노아가 홍수 심판 이후에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실수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 외에도 술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알코올 중독이 되면 참으로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
'방탕함'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절제하고 방종한 생활로 술에 취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음란한 생활을 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도 방탕한 것입니다.
6)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 외에도 유사한 육체의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편이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거나 부모가 자녀를 잘 간수하지 못하는 등 타락하고 부패한 죄의 모습은 우리 눈에 현저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육체의 일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응답받을 수도 없으며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면 눈물로 회개하면서 신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혹여 내 안에 육체의 일이 너무 많아 '언제 다 버릴 수 있을까' 염려하며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열심히 선을 행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 육체의 일은 물론, 육신의 일도 버리고 영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갈 5:21)
2. 육신이란 ( )으로 나타나지 않은 ( )의 총칭
( )이란 육신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
3. 육체란 ( )으로 나타난 ( )의 총칭
( )이란 육체를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
4. 육체의 일이나 육신의 일을 버린 경험담이나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간증하며 서로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4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읽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몸'과 '육신'의 차이
첫 사람 아담은 생령으로서 전혀 죄가 없었지만 사단의 역사를 받아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아담의 범죄 후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어 주신 생명의 지식인 진리가 빠져나가고 비진리로 물들어 버린 사람의 형체를 '몸'이라 한다. 그리고 이 '몸'에 죄성이 결합된 것을 '육신'이라 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육체의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아 신속히 버리고 철저히 경계하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의 담을 헐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섭리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일을 행하면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육체의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1.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지 않고 죄악 가운데 방탕하게 산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했습니다. 비록 온전히 죄를 버리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창세기 6장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육체가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하지 않으시니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란 무슨 뜻일까요? 국어사전에는 육체에 대해 '구체적인 물질로서의 인간의 몸뚱이, 신체, 육신'이라고 했지만 성경에서는 이와 달리 영적 의미로 육체와 육신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육체란 행함으로 나타난 죄의 총칭'이며 이것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을 육체의 일이라고 합니다. 또한 '육신이란 진리가 빠져나간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말하며, 그 죄성들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을 육신의 일이라고 합니다. 즉 언제든지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죄성들을 육신의 일이라고 하며, 육신의 일을 총칭하여 육신이라고 하지요. 가령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여 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합시다. 이때 상대를 미워하여 때리고 싶은 마음은 아직 행위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쁜 마음이요, 이런 마음 자체가 육신의 일이 됩니다. 만약 이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실제로 상대를 구타했다면 육체의 일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들을 행하는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영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육체의 일을 행한다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육체의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육체의 일
1)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음행'이란 결혼 전 합법적인 부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육체적인 관계를 맺거나, 결혼한 사람이 다른 여자나 남자를 취하거나, 자기 몸을 내주는 경우입니다. 이런 육적 음행 외에도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우상을 섬기며 점을 보거나 사술이나 요사스러운 술법을 취하는 영적 음행이 있습니다.
'더러운 것'이란 죄성에 관계된 모든 것들에 해당되는데 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뛰어넘어 난잡하게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예를 들면 강도가 모녀를 같이 성폭행하는 경우나 아들이 어미의 하체를 범하는 것이나 아비가 자녀의 하체를 범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호색'이란 색욕을 좇아 각종 옳지 못한 행동들을 하는 것으로서 생활태도 전부가 음란을 좇아 행하며 음란에 젖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짐승과 교접한다거나 여자가 여자끼리 남자가 남자끼리 동성연애하는 것, 또 각종 기구를 사용하는 등 정상적인 한계를 벗어나 잘못되어진 것을 말합니다.
2)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
'우상숭배'란 참 신이신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목석이나 금, 은, 동, 나무나 쇠붙이로 여러 형상을 만들어 그 앞에 경배하는 것을 말합니다(신 4:16-19). 또한 물질이나 자녀, 남편이나 아내 등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다면 이것도 우상숭배가 됩니다(골 3:5, 6).
'술수'란 모든 것에 있어서 궤사 즉 교묘한 거짓으로 속여서 상대를 꾀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들을 말합니다. 무당을 믿는 무속 신앙, 점치는 복술, 사회 각 분야에서 나오는 사술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원수 맺는 것'이란 상대에게 원한을 품고 상대방이 극단적으로 파멸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원수같이 여기고 죽이려 한 것처럼 자신에게 악한 감정이 있어 상대를 멀리하고 미워하는 정도가 지나치면 해를 가하거나 비방하고 수군거리며 중상모략하는 등 각종 악한 일이 난무하게 됩니다.
3) 분쟁과 시기와 분냄
'분쟁'은 자기의 유익과 권세를 좇아 나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다툼입니다. 독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기의 독재와 권세를 추구하고 이기심과 욕심이 있으므로 분쟁하게 되는데 이러한 분쟁은 부부나 부모 자녀 또는 정당이나 각 나라에도 있으며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삼하 18:7).
'시기'란 자신이 남보다 못함을 느낄 때 혹은 자신보다 남이 나음을 느낄 때 마음에서 질투함으로 인해 상대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결국 시기는 악의에 찬 분노로 발전하게 되며 분쟁이 되고 당 짓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창 30장, 삼상 18:7-8, 창 4:1-8).
'분냄'이란 속으로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가 그냥 참고 소화시키는 단순한 분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불의한 분냄을 말합니다.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죽이려고 쫓아다닌 사울 왕처럼 매사에 자기 생각과 맞지 않다고 화를 내는 경우입니다(삼상 18:6-11, 22:11-19).
4)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
'당 짓는 것'이란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로 뭉치지 않고 그룹을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과 말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서 수군거리고 비방하며 악의 모양을 좇아 판단하며 정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리함'이란 당을 만들어 자기 생각을 좇아 분리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가족이나 교회 안에서도 분리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아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좇아 갈라져 나가는 경우입니다(삼하 15장).
'이단'이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입니다(벧후 2:1).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이단이라 정죄할 수 없습니다.
5)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투기'란 시기, 질투 등이 발전해서 상대에게 해를 가하거나 어떠한 제재를 가하는 등의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즉 시기가 지나쳐 행함으로 옮겨진 것이 바로 투기입니다.
'술 취함'이란 술 탓으로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므로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거나 행동이 거칠어져 범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창세기 9장에는 노아가 홍수 심판 이후에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실수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 외에도 술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알코올 중독이 되면 참으로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
'방탕함'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절제하고 방종한 생활로 술에 취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음란한 생활을 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도 방탕한 것입니다.
6)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 외에도 유사한 육체의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편이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거나 부모가 자녀를 잘 간수하지 못하는 등 타락하고 부패한 죄의 모습은 우리 눈에 현저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육체의 일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응답받을 수도 없으며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면 눈물로 회개하면서 신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혹여 내 안에 육체의 일이 너무 많아 '언제 다 버릴 수 있을까' 염려하며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열심히 선을 행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 육체의 일은 물론, 육신의 일도 버리고 영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갈 5:21)
2. 육신이란 ( )으로 나타나지 않은 ( )의 총칭
( )이란 육신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
3. 육체란 ( )으로 나타난 ( )의 총칭
( )이란 육체를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
4. 육체의 일이나 육신의 일을 버린 경험담이나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간증하며 서로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4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읽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몸'과 '육신'의 차이
첫 사람 아담은 생령으로서 전혀 죄가 없었지만 사단의 역사를 받아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아담의 범죄 후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어 주신 생명의 지식인 진리가 빠져나가고 비진리로 물들어 버린 사람의 형체를 '몸'이라 한다. 그리고 이 '몸'에 죄성이 결합된 것을 '육신'이라 한다.
2009-01-23
제0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1. 주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게 있어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이는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신앙 안에서 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 조상들은 설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습니다.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하나님께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 - - - - - - - - - - - - - 사도신경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원 인도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아 멘 -
찬 송 - - - - - - - - - - - - - - - - 460장-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렇게 함께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 - - - - - - - - - - - - - - - 에베소서 5:20-21 - - - - - - - - - - - - - - - - 인도자
설 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찬 송 - - - - - - - - - - - - - - - - - 305장 - - - - - - - - - - - - - - - - - 다같이
주기도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같이
3. 설교 예문
제 목: 하나님께 감사하라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에베소서 5:20-21)
본문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요.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불꽃같은 눈동자로 자녀 된 우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이 시간 우리 가족이 설 명절을 맞이하여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습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약속된 대로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주셨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지요. 그러니 우리는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목자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 가시는 분이 바로 목자이십니다.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계셔도 그분을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그분의 자녀가 되어 사랑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그 길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밝히 제시해 주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친히 본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분이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와 함께했던 조카 롯이 지킴받고 축복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목자의 양 떼로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양 떼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목자가 계시기에 지난 한 해도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목자를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본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신 말씀대로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할 수밖에 없지만,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신 주님을 경외함으로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복종한다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화목하며 우애하고 부모는 자녀를 주의 교양으로 양육해야 하지요.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께 사랑받고 축복받는 가정이 될 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더욱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여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1. 주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게 있어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이는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신앙 안에서 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 조상들은 설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습니다.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하나님께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 - - - - - - - - - - - - - 사도신경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원 인도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아 멘 -
찬 송 - - - - - - - - - - - - - - - - 460장-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렇게 함께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 - - - - - - - - - - - - - - - 에베소서 5:20-21 - - - - - - - - - - - - - - - - 인도자
설 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찬 송 - - - - - - - - - - - - - - - - - 305장 - - - - - - - - - - - - - - - - - 다같이
주기도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같이
3. 설교 예문
제 목: 하나님께 감사하라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에베소서 5:20-21)
본문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요.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불꽃같은 눈동자로 자녀 된 우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이 시간 우리 가족이 설 명절을 맞이하여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습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약속된 대로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주셨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지요. 그러니 우리는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목자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 가시는 분이 바로 목자이십니다.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계셔도 그분을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그분의 자녀가 되어 사랑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그 길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밝히 제시해 주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친히 본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분이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와 함께했던 조카 롯이 지킴받고 축복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목자의 양 떼로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양 떼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목자가 계시기에 지난 한 해도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목자를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본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신 말씀대로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할 수밖에 없지만,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신 주님을 경외함으로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복종한다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화목하며 우애하고 부모는 자녀를 주의 교양으로 양육해야 하지요.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께 사랑받고 축복받는 가정이 될 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더욱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여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9-01-16
제3과성부·성자·성령
마 28:19
읽을말씀 : 마 28:19 | 외울말씀 : 고후 13:13, 참고 말씀 요일 5:8
교육목표 :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고 깨달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역할은 다르지만 근본이 하나이시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에 대한 비밀한 말씀이므로 사람의 제한적인 사고와 이론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
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누가 낳거나 지은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하여 시작도 끝도 없고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신 분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는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셨습니다(요 1:1, 요일 1:5).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여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셨습니다. 근본 하나님께서 거하시던 하나의 공간을 여럿으로 나누고 스스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근본 하나님으로부터 나셨으며(행 13:33, 히 5:5), 성령님 역시 근본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요 15:26, 갈 4:6).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부터 시작하여 백보좌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구원의 섭리를 함께 이루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예수님만 고통당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님께서도 함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이 땅의 영혼들을 위해 애통함으로 간구하시며 사역하실 때, 주님과 하나님도 같은 마음으로 느끼시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5장 8절에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하셨습니다. 물은 영적으로 말씀이신 하나님의 사역이며 피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주님의 사역을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 되어 사역하심으로 믿는 자녀들에게 구원받은 증거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8장 19절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했고,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축복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근본 속성이 같고 마음과 생각이 일치하기 때문에 질서 가운데 인간 경작을 위한 역할이 정확히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온전한 구원을 위한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보혜사 성령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2. 성부 하나님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으로서 인류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마지막 때의 심판자가 되십니다. 사람이 이 땅에 온 시작이 있으니 심판의 날도 있기 마련입니다(계 20:11-15, 요 3:18). 창조주로서 인간 경작의 시작을 이루셨으니 심판주로서 백보좌 심판을 통해 끝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성부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경우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표현은 민족과 민족 위에, 세계 열방 위에 모든 걸 통치하시는 분, 세계 속에 유일하신 참 신이라는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란 표현에는 개개의 민족이나 나라 혹은 개인에게 임하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에는 축복이 임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을 때에는 저주가 임합니다. 무엇이 죄이고, 의인지 알려 주어 심판이 임하지 않도록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이 듣지 않고 계속하여 죄를 짓습니다.
때가 이르매 성부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예비하신 구세주를 보내시고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을 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3. 성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 처형을 당해야 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으며(히 9:22, 레 17:11)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려면 나무에 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갈 3:13).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이처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아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면 그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고 이단이라 정의합니다(요일 4:2-3, 벧후 2:1). 그래서 이단으로 정죄된 파를 보면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오직 성부 하나님을 알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려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빌 2:5-11).
4. 보혜사 성령
인간 경작에 있어서 보혜사 성령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6,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는 온 인류 위에 동시에 임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온 인류에게 임하시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보혜사란 법정 대리인, 조언자라는 뜻으로 성령의 사명을 담은 호칭입니다. 구약 시대는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전이므로 보혜사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실 수 없었지만 오늘날은 누구든지 믿는 자들의 마음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이유는 개인 교사와 같이 우리 마음에 내주하면서 영혼을 살리지 않고는 결단코 진리 가운데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서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통달하고 계시므로(고전 2:10)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도록 도와주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보혜사 성령의 사역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달으며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끄시며 우리를 깨뜨려 좋은 그릇으로 만들어 주십니다(롬 8:26). 셋째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며(요 14:26),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장래 일을 알려 주십니다(요 16:13). 넷째로 성령의 소욕에 순종하여 열매를 맺으며 은사를 받게 하십니다(갈 5:22-23, 고전 12:7-10). 이 밖에도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기도 하고(행 10:19), 지시하시며(행 8:29),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막아 주십니다(행 16:6).
따라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려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생명을 얻고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왜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을까요?
2.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3.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3과 '육체의 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인간 경작이란?
일반적으로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시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라는 열매를 얻고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앗을 이 땅에 심으셨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이 헤아릴 수 없이 태어나고 있으며 마음 밭을 개간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거듭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과정을 '인간 경작'이라고 한다.
교육목표 :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고 깨달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역할은 다르지만 근본이 하나이시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에 대한 비밀한 말씀이므로 사람의 제한적인 사고와 이론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
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누가 낳거나 지은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하여 시작도 끝도 없고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신 분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는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셨습니다(요 1:1, 요일 1:5).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여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셨습니다. 근본 하나님께서 거하시던 하나의 공간을 여럿으로 나누고 스스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근본 하나님으로부터 나셨으며(행 13:33, 히 5:5), 성령님 역시 근본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요 15:26, 갈 4:6).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부터 시작하여 백보좌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구원의 섭리를 함께 이루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예수님만 고통당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님께서도 함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이 땅의 영혼들을 위해 애통함으로 간구하시며 사역하실 때, 주님과 하나님도 같은 마음으로 느끼시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5장 8절에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하셨습니다. 물은 영적으로 말씀이신 하나님의 사역이며 피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주님의 사역을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 되어 사역하심으로 믿는 자녀들에게 구원받은 증거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8장 19절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했고,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축복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근본 속성이 같고 마음과 생각이 일치하기 때문에 질서 가운데 인간 경작을 위한 역할이 정확히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온전한 구원을 위한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보혜사 성령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2. 성부 하나님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으로서 인류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마지막 때의 심판자가 되십니다. 사람이 이 땅에 온 시작이 있으니 심판의 날도 있기 마련입니다(계 20:11-15, 요 3:18). 창조주로서 인간 경작의 시작을 이루셨으니 심판주로서 백보좌 심판을 통해 끝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성부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경우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표현은 민족과 민족 위에, 세계 열방 위에 모든 걸 통치하시는 분, 세계 속에 유일하신 참 신이라는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란 표현에는 개개의 민족이나 나라 혹은 개인에게 임하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에는 축복이 임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을 때에는 저주가 임합니다. 무엇이 죄이고, 의인지 알려 주어 심판이 임하지 않도록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이 듣지 않고 계속하여 죄를 짓습니다.
때가 이르매 성부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예비하신 구세주를 보내시고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을 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3. 성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 처형을 당해야 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으며(히 9:22, 레 17:11)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려면 나무에 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갈 3:13).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이처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아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면 그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고 이단이라 정의합니다(요일 4:2-3, 벧후 2:1). 그래서 이단으로 정죄된 파를 보면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오직 성부 하나님을 알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려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빌 2:5-11).
4. 보혜사 성령
인간 경작에 있어서 보혜사 성령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6,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는 온 인류 위에 동시에 임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온 인류에게 임하시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보혜사란 법정 대리인, 조언자라는 뜻으로 성령의 사명을 담은 호칭입니다. 구약 시대는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전이므로 보혜사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실 수 없었지만 오늘날은 누구든지 믿는 자들의 마음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이유는 개인 교사와 같이 우리 마음에 내주하면서 영혼을 살리지 않고는 결단코 진리 가운데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서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통달하고 계시므로(고전 2:10)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도록 도와주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보혜사 성령의 사역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달으며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끄시며 우리를 깨뜨려 좋은 그릇으로 만들어 주십니다(롬 8:26). 셋째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며(요 14:26),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장래 일을 알려 주십니다(요 16:13). 넷째로 성령의 소욕에 순종하여 열매를 맺으며 은사를 받게 하십니다(갈 5:22-23, 고전 12:7-10). 이 밖에도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기도 하고(행 10:19), 지시하시며(행 8:29),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막아 주십니다(행 16:6).
따라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려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생명을 얻고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왜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을까요?
2.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3.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3과 '육체의 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인간 경작이란?
일반적으로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시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라는 열매를 얻고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앗을 이 땅에 심으셨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이 헤아릴 수 없이 태어나고 있으며 마음 밭을 개간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거듭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과정을 '인간 경작'이라고 한다.
2009-01-09
제2과구원
행 4:12 / 참고말씀 : 요일 3:21, 22
읽을말씀 : 행 4:12 / 참고말씀 : 요일 3:21, 22 | 외울말씀 : 요 14:6
교육목표 :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 알게 한다.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에 대한 약속을 하면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성령의 사역, 특히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깨달음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인이 되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1.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이 되려면
세상에는 종교와 문화에 따라 많은 신이 있고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까지 있습니다(행 17:23). 요즘에는 여러 종교의 장점을 혼합시켜 만든 '신흥종교'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고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믿는 '종교다원주의'가 보편적인 철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신 4:39, 요 14:6, 행 4:12).
손목시계만 보더라도 부속품이 정교하게 맞물려 작동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 줍니다. 자그마한 시계 하나도 그것을 설계한 사람이 있고 분명한 계획 속에 그 일을 해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이 우주는 시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광대하여 인간의 두뇌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태양계가 한 치 오차 없이 정밀하게 운행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기관과 세포 등 여러 구성 요소가 정교하게 어울리는데 그중 인간이 밝혀 낸 사실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체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천지만물을 창조한 신이 왜 보이지 않으며 우리와 대화할 수 없는 것입니까? 그 모습이 보이고 음성이 들린다면 확실히 있는 줄 알겠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의 담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고 온전히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죄가 있으면 그분을 만날 수도, 교통할 수도 없습니다. 캄캄한 곳에 있으면 자기 옷에 때가 묻어 있어도 보이지 않지만 눈부시게 밝은 빛이 있으면 옷에 묻은 조그만 티까지도 낱낱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 그러면 믿겠다." 아니면 "하나님! 나에게 좀 나타나 주세요. 나도 믿고 싶은데 도무지 그 증거가 없어서 내게 믿음이 안 옵니다." 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받아야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잠언 8:17-18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2. 성경에 기록된 구원(救援)의 의미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성경 39권은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기 이전의 내용입니다.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신약성경 27권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온 이후의 내용으로서 영원한 천국에 대해서도 밝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락한 인간들이 갖가지 신을 섬기는데 진정한 축복을 줄 수 있는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었을 때, 사업에 실패한 사람에게 재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을 때, 가정 형편상 공부하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을 때에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인류를 죄악에서 건져내는 것, 곧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테두리 안에 들어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알기 쉽게 영적으로 표현한다면 구원의 입구는 예수 그리스도요, 구원의 집은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도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길을 완성하셨습니다. 사람이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불멸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어 나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의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결국 심판 받아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섭리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얻을 때에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가능한 것일까요?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에덴동산에서 살다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우리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아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으며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른 것입니다.
영계의 법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 대신하여 죄의 대가를 받을 때만 가능합니다. 즉 모든 인류의 죄를 영계의 법에 합당한 사람이 대신 져야 죄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순종의 죄로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다시 찾으려면 영계의 법인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레 25:23-25).
사람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외모와 성격뿐 아니라 죄성까지도 물려받습니다. 가령 어린아이에게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죄성을 바로 원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원죄가 없어야 하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고, 스스로 율법을 다 지켜 행하셨기에 자범죄가 없습니다. 또한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랑이 있었기에 십자가의 처형을 기쁨으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시고자 나무 십자가에 달려 (갈 3:13) 원죄와 자범죄가 없는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도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주시는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자기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버림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 법도를 지키며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 영원한 구원의 집인 천국에 이를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2. 사도행전 4:12 말씀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3. 여러분은 자신있게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성부.성자.성령' 읽어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토지 무르기 법칙이란?
이스라엘 토지법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토지를 팔 때에 영영히 팔지 않고 나중에 되찾을 수 있도록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매매계약서에 명시했다. 언제라도 부유한 근족이 와서 대신 토지를 무르게 하였고, 근족 중에 무를 사람이 없으면 본인이 부유케 되어 무를 힘이 있을 때 되찾을 수 있었다(레 25:23-25).
토지 무르기법은 인간 구원에 관한 영계의 법과 직접 연관이 있다. 즉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권세를 원수 마귀에게 넘겨 주었지만 그 권세를 무를 수 있는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되돌려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
교육목표 :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 알게 한다.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에 대한 약속을 하면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성령의 사역, 특히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깨달음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인이 되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1.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이 되려면
세상에는 종교와 문화에 따라 많은 신이 있고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까지 있습니다(행 17:23). 요즘에는 여러 종교의 장점을 혼합시켜 만든 '신흥종교'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고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믿는 '종교다원주의'가 보편적인 철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신 4:39, 요 14:6, 행 4:12).
손목시계만 보더라도 부속품이 정교하게 맞물려 작동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 줍니다. 자그마한 시계 하나도 그것을 설계한 사람이 있고 분명한 계획 속에 그 일을 해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이 우주는 시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광대하여 인간의 두뇌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태양계가 한 치 오차 없이 정밀하게 운행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기관과 세포 등 여러 구성 요소가 정교하게 어울리는데 그중 인간이 밝혀 낸 사실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체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천지만물을 창조한 신이 왜 보이지 않으며 우리와 대화할 수 없는 것입니까? 그 모습이 보이고 음성이 들린다면 확실히 있는 줄 알겠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의 담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고 온전히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죄가 있으면 그분을 만날 수도, 교통할 수도 없습니다. 캄캄한 곳에 있으면 자기 옷에 때가 묻어 있어도 보이지 않지만 눈부시게 밝은 빛이 있으면 옷에 묻은 조그만 티까지도 낱낱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 그러면 믿겠다." 아니면 "하나님! 나에게 좀 나타나 주세요. 나도 믿고 싶은데 도무지 그 증거가 없어서 내게 믿음이 안 옵니다." 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받아야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잠언 8:17-18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2. 성경에 기록된 구원(救援)의 의미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성경 39권은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기 이전의 내용입니다.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신약성경 27권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온 이후의 내용으로서 영원한 천국에 대해서도 밝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락한 인간들이 갖가지 신을 섬기는데 진정한 축복을 줄 수 있는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었을 때, 사업에 실패한 사람에게 재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을 때, 가정 형편상 공부하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을 때에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인류를 죄악에서 건져내는 것, 곧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테두리 안에 들어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알기 쉽게 영적으로 표현한다면 구원의 입구는 예수 그리스도요, 구원의 집은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도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길을 완성하셨습니다. 사람이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불멸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어 나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의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결국 심판 받아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섭리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얻을 때에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가능한 것일까요?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에덴동산에서 살다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우리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아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으며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른 것입니다.
영계의 법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 대신하여 죄의 대가를 받을 때만 가능합니다. 즉 모든 인류의 죄를 영계의 법에 합당한 사람이 대신 져야 죄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순종의 죄로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다시 찾으려면 영계의 법인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레 25:23-25).
사람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외모와 성격뿐 아니라 죄성까지도 물려받습니다. 가령 어린아이에게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죄성을 바로 원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원죄가 없어야 하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고, 스스로 율법을 다 지켜 행하셨기에 자범죄가 없습니다. 또한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랑이 있었기에 십자가의 처형을 기쁨으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시고자 나무 십자가에 달려 (갈 3:13) 원죄와 자범죄가 없는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도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주시는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자기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버림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 법도를 지키며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 영원한 구원의 집인 천국에 이를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2. 사도행전 4:12 말씀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3. 여러분은 자신있게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성부.성자.성령' 읽어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토지 무르기 법칙이란?
이스라엘 토지법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토지를 팔 때에 영영히 팔지 않고 나중에 되찾을 수 있도록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매매계약서에 명시했다. 언제라도 부유한 근족이 와서 대신 토지를 무르게 하였고, 근족 중에 무를 사람이 없으면 본인이 부유케 되어 무를 힘이 있을 때 되찾을 수 있었다(레 25:23-25).
토지 무르기법은 인간 구원에 관한 영계의 법과 직접 연관이 있다. 즉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권세를 원수 마귀에게 넘겨 주었지만 그 권세를 무를 수 있는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되돌려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
2009-01-02
제1과마음을 하나로
수 1:6~9
읽을말씀 : 수 1:6~9 | 외울말씀 : 히 10:38
교육목표 : 모든 성도들과 일꾼들이 하나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이루며 영육간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한다.
축복의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교회와 개개인에게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며 자신과 화평을 이룰 뿐아니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당부한 것처럼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는다면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이나 학교, 교회, 직장, 사회 등 여러 공동체 안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갑니다. 서로 마음이 하나되어 화평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넘치는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 안에서 마음이 하나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1) 범사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모두가 하나 되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제사장들에게 범람하는 요단 강물을 밟으라 할 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급하고 거센 물살이 아닌 하나님 역사를 바라보고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강물을 밟을 때, 요단강은 흐름을 멈추었습니다(수 3장).
하나님 일을 이룰 때 몇몇 사람이 불신의 눈으로 보면 전체적인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철벽 같은 여리고 성을 돌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침묵을 지켰습니다. '적군이 화살이라도 쏘면 그대로 맞을 텐데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 성 주위를 돌면 어쩌나.' 하며 불평불만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한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굳건한 성벽이 무너졌습니다(수 6장).
'믿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현실이나 세상 이치를 모르고 사람이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으면서 하늘만 바라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믿음이 그런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열두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에도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보내 상황을 파악하게 했습니다. 현실은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기에 믿고 그 뜻을 구해 나간 것입니다.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을 바라보니 불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40년 광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민 13, 14장).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을 통해 출애굽 2세대의 믿음이 성장하게 하셨고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받으려면 사람이 최선을 다해 믿음의 받침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개척 이후 우리 교회도 이처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니 안일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힘쓰고 애썼습니다. 요단강이 범람하는 것처럼 어려운 현실에 직면할 때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는 믿음의 고백과 행함으로 하나님 뜻을 이뤄 갔습니다.
2) 소망으로 새 예루살렘을 바라봄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은 이 땅에서 영광이나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충성할 때 이 땅에서도 축복을 주시지만, 혹여 아무런 상이 없다 해도 장차 누릴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온 영으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계 21장, 『천국』 책자 참조).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가장 큰 소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의 피 값을 찾아드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0:38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앞서가는 몇몇 일꾼뿐 아니라 모두가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그 소망 가운데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노력해 나갈 때 자신의 마음 그릇이 변화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지 소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새 예루살렘이 마음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2. 마음을 선한 것에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해도 서로 선을 마음에 품을 때라야 진정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선으로 하나 되었느냐에 따라,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서로 마음이 하나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간은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범죄하였고 결국 그로 인해 이스라엘도 아이 성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수 7장).
그러므로 하나님 일을 할 때에는 함께 선한 것을 품어야 합니다. 각 사람이 선을 품었는지, 욕심을 품었는지, 또 하나님 영광을 위하는 마음인지, 자기 명예를 구하는 마음인지에 따라 마음이 하나 될 수도 있고 흩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할 때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며 교회와 목자를 사랑해서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정적으로 해도 마음에 선한 것을 두지 않으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항상 양보와 용서, 화평과 섬김, 희생과 인내 등 선의 마음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윗 사람이 열심히 어떤 행사를 추진할 때에 아랫 사람은 '교회에 힘이 되고자 하는데 나도 최대한 힘을 모아야겠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이 일이 잘되어도 주도하는 사람들만 인정받고 칭찬받는데 왜 내가 굳이 힘든 일을 해야 하나.' 하지는 않았는지요.
또한 윗사람의 입장에서 전체를 위해 일을 추진하는데 일꾼들의 마음이 잘 모이지 않을 때, 감사와 기쁨으로 '내가 더 기도하고 능력을 받아야겠다.' 했는지요. 아니면 '교회와 전체를 위해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을 써주지 않는가.', '당연히 질서를 따라 순종해야 하는데 왜 순종해 주지 않는가.' 불편해하며 상대를 노여워하지는 않았는지요. '일꾼들이 자기가 맡은 분야만 생각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니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 다음에는 애쓰지 말고 각자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야겠다.' 하며 서운해 하지는 않았는지요.
영육간에 질서는 지켜야 하지만 질서를 주장할 때에도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려 주는 것이 선인 것입니다. 또한 더 좋은 의견이 있어서 건의했는데, 다른 일꾼이나 머리가 그 의견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이때 항상 선을 좇는 사람이라면 겸비하게 전체의 입장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내 의견이 더 낫다 해도, 혹은 전체의 의견대로 하면 내가 희생한다 해도 따라 줍니다. 비진리가 아니면 결정된 사항에 대해 최대한 마음을 모아 주지요. 이처럼 하나님 일을 이루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선입니다. 누가 더 옳고 그른지, 조금 열매를 더 내고 덜 내는지가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섬겨 주고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닮은 자녀들이 선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 일할 때, 그 열매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려 주셔서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은 더 잘되게 인도하시지요. 하나님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모든 일을 믿음과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선으로 마음을 모아 하나님 나라를 크게 이루며 영육간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모든 성도들과 일꾼들이 하나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이루며 영육간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한다.
축복의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교회와 개개인에게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며 자신과 화평을 이룰 뿐아니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당부한 것처럼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는다면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이나 학교, 교회, 직장, 사회 등 여러 공동체 안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갑니다. 서로 마음이 하나되어 화평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넘치는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 안에서 마음이 하나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1) 범사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모두가 하나 되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제사장들에게 범람하는 요단 강물을 밟으라 할 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급하고 거센 물살이 아닌 하나님 역사를 바라보고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강물을 밟을 때, 요단강은 흐름을 멈추었습니다(수 3장).
하나님 일을 이룰 때 몇몇 사람이 불신의 눈으로 보면 전체적인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철벽 같은 여리고 성을 돌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침묵을 지켰습니다. '적군이 화살이라도 쏘면 그대로 맞을 텐데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 성 주위를 돌면 어쩌나.' 하며 불평불만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한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굳건한 성벽이 무너졌습니다(수 6장).
'믿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현실이나 세상 이치를 모르고 사람이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으면서 하늘만 바라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믿음이 그런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열두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에도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보내 상황을 파악하게 했습니다. 현실은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기에 믿고 그 뜻을 구해 나간 것입니다.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을 바라보니 불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40년 광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민 13, 14장).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을 통해 출애굽 2세대의 믿음이 성장하게 하셨고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받으려면 사람이 최선을 다해 믿음의 받침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개척 이후 우리 교회도 이처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니 안일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힘쓰고 애썼습니다. 요단강이 범람하는 것처럼 어려운 현실에 직면할 때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는 믿음의 고백과 행함으로 하나님 뜻을 이뤄 갔습니다.
2) 소망으로 새 예루살렘을 바라봄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은 이 땅에서 영광이나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충성할 때 이 땅에서도 축복을 주시지만, 혹여 아무런 상이 없다 해도 장차 누릴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온 영으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계 21장, 『천국』 책자 참조).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가장 큰 소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의 피 값을 찾아드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0:38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앞서가는 몇몇 일꾼뿐 아니라 모두가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그 소망 가운데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노력해 나갈 때 자신의 마음 그릇이 변화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지 소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새 예루살렘이 마음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2. 마음을 선한 것에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해도 서로 선을 마음에 품을 때라야 진정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선으로 하나 되었느냐에 따라,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서로 마음이 하나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간은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범죄하였고 결국 그로 인해 이스라엘도 아이 성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수 7장).
그러므로 하나님 일을 할 때에는 함께 선한 것을 품어야 합니다. 각 사람이 선을 품었는지, 욕심을 품었는지, 또 하나님 영광을 위하는 마음인지, 자기 명예를 구하는 마음인지에 따라 마음이 하나 될 수도 있고 흩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할 때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며 교회와 목자를 사랑해서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정적으로 해도 마음에 선한 것을 두지 않으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항상 양보와 용서, 화평과 섬김, 희생과 인내 등 선의 마음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윗 사람이 열심히 어떤 행사를 추진할 때에 아랫 사람은 '교회에 힘이 되고자 하는데 나도 최대한 힘을 모아야겠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이 일이 잘되어도 주도하는 사람들만 인정받고 칭찬받는데 왜 내가 굳이 힘든 일을 해야 하나.' 하지는 않았는지요.
또한 윗사람의 입장에서 전체를 위해 일을 추진하는데 일꾼들의 마음이 잘 모이지 않을 때, 감사와 기쁨으로 '내가 더 기도하고 능력을 받아야겠다.' 했는지요. 아니면 '교회와 전체를 위해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을 써주지 않는가.', '당연히 질서를 따라 순종해야 하는데 왜 순종해 주지 않는가.' 불편해하며 상대를 노여워하지는 않았는지요. '일꾼들이 자기가 맡은 분야만 생각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니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 다음에는 애쓰지 말고 각자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야겠다.' 하며 서운해 하지는 않았는지요.
영육간에 질서는 지켜야 하지만 질서를 주장할 때에도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려 주는 것이 선인 것입니다. 또한 더 좋은 의견이 있어서 건의했는데, 다른 일꾼이나 머리가 그 의견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이때 항상 선을 좇는 사람이라면 겸비하게 전체의 입장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내 의견이 더 낫다 해도, 혹은 전체의 의견대로 하면 내가 희생한다 해도 따라 줍니다. 비진리가 아니면 결정된 사항에 대해 최대한 마음을 모아 주지요. 이처럼 하나님 일을 이루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선입니다. 누가 더 옳고 그른지, 조금 열매를 더 내고 덜 내는지가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섬겨 주고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닮은 자녀들이 선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 일할 때, 그 열매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려 주셔서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은 더 잘되게 인도하시지요. 하나님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모든 일을 믿음과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선으로 마음을 모아 하나님 나라를 크게 이루며 영육간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2008-12-26
제52과지극히 충성된 자
눅 16:10
읽을말씀 : 눅 16:10 | 외울말씀 : 눅 16:10
교육목표 :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잘 하였다."" 칭찬받을 뿐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만큼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중에 한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더 남겼고, 또 한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며 칭찬을 하였지요.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사명 하나라도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정녕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사명일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명이라도 소중한 것이지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명을 잘 감당할 때는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당장 맡은 일은 소홀히 하고 있으면서 "더 큰 사명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는 경우도 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사명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기 원하고 사람 앞에 드러나고자 직분을 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우, 충성하는 자체보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내기 어렵고 큰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6:10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말씀하신 대로 작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도 큰 사명을 맡기실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창세기 37-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한 민족으로 성장하기까지 애굽에 들어가 거할 길을 여십니다. 먼저 요셉이 강대국 애굽에 들어가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린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한 장관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일부터 시작하게 하셨지요. 점차 주인의 신망을 얻게 되니 모든 살림을 주관하는 자리에 세우시고, 다음에는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 감옥은 일반 죄수들이 아니라 고위층 사람들이 왕에게 범죄했을 때 수감되는 감옥으로 요셉은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라 전체를 다스릴 수 있도록 넓은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13년을 보내고서야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될 수 있었지요. 요셉은 타고난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통해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장관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대충했다면 그는 종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마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더 높은 직분을 맡게 된 후에도 사심과 들렘이 없었으며, '어찌하면 주인에게 유익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온 집안을 최선을 다해 돌아보았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을 다하는 요셉이었기에 결국 나라 전체를 맡아서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귀히 여기며 '어찌하면 사명을 잘 감당할까?' 마음을 쓰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느끼므로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맡은 영혼들이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쳐 주고 싶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때 심히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상대를 섬기는 것 같아도 원하는 열매를 낼 수가 없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베푼다 해서 영혼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을 좇아 행할 때라야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심방하면 변화되지 않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심방하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정확하게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은혜받고 마음 문을 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방법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생기면 자연히 겸비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매달리게 되지요. 따라서 사명 감당을 잘하는 것은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성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성결되어 능력받고 열매를 내고자 하는 뜨거운 소망이 있으면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면서 짜증이나 감정,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 등 작은 악의 모양이라도 민감하게 깨달으며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가는 만큼 더 큰 능력을 받게 되고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심장으로,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8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참혹한 고난을 당하시면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피곤함도 개의치 않았고, 험한 파도와 높은 산, 광야의 모든 위험도 무릅쓸 수 있었습니다. 주의 복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수모와 살과 뼈가 부서지도록 매를 맞는 고통,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희생은 자신을 사랑하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9:3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할 정도였지요. 이처럼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 온전히 감당하고자 기도하면서 성결되는 만큼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임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만큼, 삶 전체를 영혼들을 위해 내어 주는 목자의 심정을 깨닫게 되지요.
목자의 마음은 육의 부모들이 먼 곳에 간 자녀를 늘 마음에 품고 '내 아들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밥은 잘 챙겨먹고 있을까?' 염려하는 것보다 더하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1:28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백한 것처럼 밤낮 영혼들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들을 갈무리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도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품을 때 열심히 심방하게 될 뿐 아니라, 무시로 그들의 형편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됩니다. 혹여 뾰족한 말로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지요. 소중한 목자의 양 떼이니 그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기업으로 여겨져 사랑이 갈 뿐입니다.
아기가 짜증을 내어도 어머니는 좋은 것을 주듯이 갈무리하는 영혼을 편케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섬겨 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어찌하면 그 영혼이 잘될 수 있을까?' 하여 영육간에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범죄하여 시험 환난을 당할 때면 자신이 더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맡은 양 떼의 문제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양 떼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내 자녀나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으로 열심히 영혼을 갈무리하며 섬기다 보면 진실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면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처럼 자신이 영혼을 갈무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목자의 마음을 느끼며 더욱 주님께도 아버지께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장과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을 품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부흥에 부흥을 더하여 더 큰 사명을 맡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칭찬받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교육목표 :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잘 하였다."" 칭찬받을 뿐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만큼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중에 한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더 남겼고, 또 한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며 칭찬을 하였지요.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사명 하나라도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정녕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사명일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명이라도 소중한 것이지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명을 잘 감당할 때는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당장 맡은 일은 소홀히 하고 있으면서 "더 큰 사명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는 경우도 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사명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기 원하고 사람 앞에 드러나고자 직분을 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우, 충성하는 자체보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내기 어렵고 큰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6:10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말씀하신 대로 작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도 큰 사명을 맡기실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창세기 37-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한 민족으로 성장하기까지 애굽에 들어가 거할 길을 여십니다. 먼저 요셉이 강대국 애굽에 들어가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린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한 장관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일부터 시작하게 하셨지요. 점차 주인의 신망을 얻게 되니 모든 살림을 주관하는 자리에 세우시고, 다음에는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 감옥은 일반 죄수들이 아니라 고위층 사람들이 왕에게 범죄했을 때 수감되는 감옥으로 요셉은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라 전체를 다스릴 수 있도록 넓은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13년을 보내고서야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될 수 있었지요. 요셉은 타고난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통해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장관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대충했다면 그는 종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마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더 높은 직분을 맡게 된 후에도 사심과 들렘이 없었으며, '어찌하면 주인에게 유익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온 집안을 최선을 다해 돌아보았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을 다하는 요셉이었기에 결국 나라 전체를 맡아서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귀히 여기며 '어찌하면 사명을 잘 감당할까?' 마음을 쓰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느끼므로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맡은 영혼들이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쳐 주고 싶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때 심히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상대를 섬기는 것 같아도 원하는 열매를 낼 수가 없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베푼다 해서 영혼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을 좇아 행할 때라야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심방하면 변화되지 않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심방하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정확하게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은혜받고 마음 문을 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방법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생기면 자연히 겸비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매달리게 되지요. 따라서 사명 감당을 잘하는 것은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성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성결되어 능력받고 열매를 내고자 하는 뜨거운 소망이 있으면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면서 짜증이나 감정,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 등 작은 악의 모양이라도 민감하게 깨달으며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가는 만큼 더 큰 능력을 받게 되고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심장으로,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8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참혹한 고난을 당하시면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피곤함도 개의치 않았고, 험한 파도와 높은 산, 광야의 모든 위험도 무릅쓸 수 있었습니다. 주의 복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수모와 살과 뼈가 부서지도록 매를 맞는 고통,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희생은 자신을 사랑하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9:3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할 정도였지요. 이처럼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 온전히 감당하고자 기도하면서 성결되는 만큼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임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만큼, 삶 전체를 영혼들을 위해 내어 주는 목자의 심정을 깨닫게 되지요.
목자의 마음은 육의 부모들이 먼 곳에 간 자녀를 늘 마음에 품고 '내 아들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밥은 잘 챙겨먹고 있을까?' 염려하는 것보다 더하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1:28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백한 것처럼 밤낮 영혼들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들을 갈무리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도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품을 때 열심히 심방하게 될 뿐 아니라, 무시로 그들의 형편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됩니다. 혹여 뾰족한 말로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지요. 소중한 목자의 양 떼이니 그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기업으로 여겨져 사랑이 갈 뿐입니다.
아기가 짜증을 내어도 어머니는 좋은 것을 주듯이 갈무리하는 영혼을 편케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섬겨 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어찌하면 그 영혼이 잘될 수 있을까?' 하여 영육간에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범죄하여 시험 환난을 당할 때면 자신이 더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맡은 양 떼의 문제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양 떼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내 자녀나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으로 열심히 영혼을 갈무리하며 섬기다 보면 진실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면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처럼 자신이 영혼을 갈무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목자의 마음을 느끼며 더욱 주님께도 아버지께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장과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을 품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부흥에 부흥을 더하여 더 큰 사명을 맡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칭찬받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