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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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8
제19과응답의 하나님
시 78:12~29
읽을말씀 : 시 78:12~29 | 외울말씀 : 마 7:7 l 참고 말씀 : 사무엘상 1:11, 마태복음 1:19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을 만나 응답받는 비결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고 영광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돌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응답의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1.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애굽, 지금으로 말하면 이집트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출 2:23).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삼으시고 그들을 출애굽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전에서 각종 기사와 표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반석을 쳐서 강같이 물을 흐르게 하여 마시게 했고,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하늘 문을 열어 만나라는 하늘 양식을 먹이셨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는 우리가 이 세상 죄 가운데 살던 생활에서 나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이 땅에서의 믿음생활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뒷짐 지고 지켜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 삶의 과정에서 만나 주고 함께하시며 구하는 것에 응답하고 천국에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말씀하시며 응답의 비결을 알려주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응답하신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죽은 자를 살려 주신 경우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후 아이 위에 올라가 엎드리니 그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살아납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자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향해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니 그가 살아나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런 역사를 베풀었습니다(행 20:7~12).
이 외에도 성경에는 이미 경수가 끊어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이나,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 편 분벽에 글자를 쓴 대로 나라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벨사살 왕의 경우도 있습니다(단 5장). 마태복음 11장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는 일을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마감하면서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구약시대나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어제나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종이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변함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가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은 변함없는 믿음으로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려 주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요구하시더라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의심하고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이처럼 두 마음을 품으면 응답받을 수 없지만(약 1:6-8)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응답받기 위해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다 했습니다(왕상 18:42).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니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는가를 알 수 있지요. 그러한 기도를 통해 3년 반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던 땅에 큰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떠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였나요?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행 10:2). 이러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상달되어 그를 기억하시고 베드로를 보내 그와 그 자리에 참석한 일가친척, 친구까지도 모두 성령 받고 구원받으며 방언의 은사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행 10장).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정성껏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고 그에게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솔로몬처럼 축복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년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고 믿음을 내보임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로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물맷돌로 쓰러뜨린 것입니다(삼상 17:32-49). 골리앗의 죽음을 본 블레셋 군대는 놀라서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하였고, 이스라엘은 이 싸움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일개 소년 목동에 지나지 않던 다윗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이렇게 엄청나게 컸기에 하나님께 응답받아 영광도 돌리고 위기에 처한 나라도 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 큰 문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가 있다 해도 다윗처럼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신속히 만나는 사람들의 중심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침한 적이 없으니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찌 하였습니까? 마태복음 1장 19절을 보면,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했습니다. 그 여인을 위해서 끝까지 선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착하고 의로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마 1:20). 참으로 비참한 심경이 될 수도 있었던 그가 오히려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하나님을 신뢰하였기에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하나님 뜻이 자기에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한 마리아의 중심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하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엘리사벳이나 사가랴 같은 이들은 어떠하였습니까? 누가복음 1장 6절을 보면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하였습니다. 이들은 늙도록 자식이 없었으나 하나님 앞에 그 기도가 상달되어 세례 요한을 낳는 큰 축복을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나는 하나님 앞에 서원을 갚는 마음 중심이었으므로 응답을 받을 수 있었지요. 소원대로 아들을 얻은 후 아이의 젖을 떼자 곧 그를 데리고 여호와의 집이 있는 실로로 나아가 엘리 제사장에게 그 아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한나는 서원을 지켰으므로 그 이후로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을 수 있었고, 또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대선지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 기적을 베푸시고 능치 못하실 것이 없는 하나님을 만나기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니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막힌 죄의 담을 헐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선한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7장 7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신다고 했는데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나는 얼마나 갈급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응답받기 위해 늘 자신을 점검해 보고 즉시 행하는 성도가 됩시다.
4. 실생활에서 하나님께 응답받은 간증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2편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되리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만나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던 도중, 광야에서 먹을 음식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음식. 작고 둥글며 희고 모양은 깟씨(고수씨) 또는 진주와 같았다.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맛은 꿀이나 기름 섞은 과자 같았다.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을 만나 응답받는 비결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고 영광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돌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응답의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1.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애굽, 지금으로 말하면 이집트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출 2:23).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삼으시고 그들을 출애굽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전에서 각종 기사와 표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반석을 쳐서 강같이 물을 흐르게 하여 마시게 했고,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하늘 문을 열어 만나라는 하늘 양식을 먹이셨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는 우리가 이 세상 죄 가운데 살던 생활에서 나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이 땅에서의 믿음생활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뒷짐 지고 지켜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 삶의 과정에서 만나 주고 함께하시며 구하는 것에 응답하고 천국에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말씀하시며 응답의 비결을 알려주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응답하신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죽은 자를 살려 주신 경우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후 아이 위에 올라가 엎드리니 그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살아납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자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향해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니 그가 살아나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런 역사를 베풀었습니다(행 20:7~12).
이 외에도 성경에는 이미 경수가 끊어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이나,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 편 분벽에 글자를 쓴 대로 나라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벨사살 왕의 경우도 있습니다(단 5장). 마태복음 11장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는 일을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마감하면서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구약시대나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어제나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종이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변함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가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은 변함없는 믿음으로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려 주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요구하시더라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의심하고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이처럼 두 마음을 품으면 응답받을 수 없지만(약 1:6-8)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응답받기 위해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다 했습니다(왕상 18:42).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니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는가를 알 수 있지요. 그러한 기도를 통해 3년 반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던 땅에 큰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떠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였나요?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행 10:2). 이러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상달되어 그를 기억하시고 베드로를 보내 그와 그 자리에 참석한 일가친척, 친구까지도 모두 성령 받고 구원받으며 방언의 은사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행 10장).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정성껏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고 그에게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솔로몬처럼 축복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년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고 믿음을 내보임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로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물맷돌로 쓰러뜨린 것입니다(삼상 17:32-49). 골리앗의 죽음을 본 블레셋 군대는 놀라서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하였고, 이스라엘은 이 싸움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일개 소년 목동에 지나지 않던 다윗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이렇게 엄청나게 컸기에 하나님께 응답받아 영광도 돌리고 위기에 처한 나라도 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 큰 문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가 있다 해도 다윗처럼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신속히 만나는 사람들의 중심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침한 적이 없으니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찌 하였습니까? 마태복음 1장 19절을 보면,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했습니다. 그 여인을 위해서 끝까지 선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착하고 의로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마 1:20). 참으로 비참한 심경이 될 수도 있었던 그가 오히려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하나님을 신뢰하였기에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하나님 뜻이 자기에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한 마리아의 중심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하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엘리사벳이나 사가랴 같은 이들은 어떠하였습니까? 누가복음 1장 6절을 보면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하였습니다. 이들은 늙도록 자식이 없었으나 하나님 앞에 그 기도가 상달되어 세례 요한을 낳는 큰 축복을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나는 하나님 앞에 서원을 갚는 마음 중심이었으므로 응답을 받을 수 있었지요. 소원대로 아들을 얻은 후 아이의 젖을 떼자 곧 그를 데리고 여호와의 집이 있는 실로로 나아가 엘리 제사장에게 그 아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한나는 서원을 지켰으므로 그 이후로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을 수 있었고, 또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대선지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 기적을 베푸시고 능치 못하실 것이 없는 하나님을 만나기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니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막힌 죄의 담을 헐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선한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7장 7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신다고 했는데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나는 얼마나 갈급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응답받기 위해 늘 자신을 점검해 보고 즉시 행하는 성도가 됩시다.
4. 실생활에서 하나님께 응답받은 간증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2편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되리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만나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던 도중, 광야에서 먹을 음식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음식. 작고 둥글며 희고 모양은 깟씨(고수씨) 또는 진주와 같았다.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맛은 꿀이나 기름 섞은 과자 같았다.
2009-05-01
제18과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요 16:7~11
읽을말씀 : 요 16:7~11 | 외울말씀 : 요 16:8 ㅣ 참고 말씀:벧후 2:3
교육목표 :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인이 되어 앞으로 임할 심판을 면하고 영원히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말씀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또한 진리 안에 살게 하여 온전히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등 많은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우치고 진리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1.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
성령께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이유는 바로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시작과 끝에 대한 분명한 계획 속에 인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성경상의 흐름을 보면 선악 간에 분명히 구분하여 죄는 사망으로, 의는 영생으로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함께하시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멸망의 길로 갑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나 아브라함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 등 죄악이 관영해졌을 때에는 심판이 그대로 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애굽 왕 바로에게 열 재앙을 내리신 것도 그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또한 약 2천 년 전 폼페이가 극도의 음란과 퇴폐로 타락하였을 때 화산폭발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심판을 받았지요. 신약 시대에도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를 일곱 번이나 되풀이 하며 책망하셨습니다. 심판을 면하여 지옥으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책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죄에 대한 심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과 제자들이 장차 받게 될 환난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활 승천한 뒤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이 얻게 될 유익을 가르치며 격려하셨지요(요 16:7~8). 예수님의 승천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요한복음 16장 9절에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이며 이러한 사람은 결국 심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될까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구원의 문을 여시고 유일한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바로 죄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지 않은 사람은 죄 사함을 받지 못했으니 여전히 죄인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천하 만물을 보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몰라서 믿지 못했다고 핑계 댈 수는 없습니다(롬 1:20). 더구나 오늘날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십니다. 또한 누구나 한 번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전도를 받아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죄에 대하여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3. 의에 대한 심판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원죄와 자범죄도 없이 의롭게 사셨기 때문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여 승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0절에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함이요" 했는데 여기에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기 때문에 사망에 매이지 않고 부활하여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로서 천국을 소유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가셨으므로 이것을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 자녀에서 거룩한 하나님 자녀로 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얻은 것이니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야 하나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의롭게 살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조차도 조롱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술 담배를 하나? 죄만 짓고 다니면서 예수쟁이라고 하다니!" 하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믿는 사람으로서 성령을 받았지만 의롭게 살지 못하여 정죄 받는 것을 '의에 대한 심판'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가 죄에 머물지 않도록 성령을 통하여 책망하고 징계하십니다. 자신이나 가정, 일터, 사업터에 갖가지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바로 의인된 삶을 영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을 잘 알고 지켰기 때문에 스스로 의롭게 산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진리 안에 사는 우리의 의가 그들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마 5:20). 왜냐하면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마 7:21). 마음 중심으로 주님을 믿어 죄를 버리며 의 가운데 거할 때라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4. 심판을 면하려면
요한복음 16장 11절에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세상 임금이란 원수 마귀 사단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의를 이루시고 마지막 심판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심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지옥으로 갈 것이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8~19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했지요.
그러면 우리는 심판을 면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깨어 있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으며(고전 15:34),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살전 5:22).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겉으로 드러난 죄는 물론, 아무리 작은 악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악을 미워하며 선에 속하고자 결심하면 모두 버릴 수 있습니다. 더러는 '한 가지도 버리기 쉽지 않은데 어떻게 다 버릴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그러나 나무뿌리를 하나씩 캐내려고 하면 힘들지만 원뿌리를 뽑으면 잔뿌리는 저절로 따라 나옵니다. 이처럼 가장 버리기 힘든 죄를 중점적으로 버리기 위해 때를 따라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른 죄성들도 함께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고 온전한 자가 되기 원하십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할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요, 보혜사 성령께서 돕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버리고 의인된 삶을 살아야 심판을 면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13~14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했습니다. 사람의 본분을 행하는 알곡 성도가 되어 심판의 때에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6장 8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성령께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 ) 안에 알맞은 단어는 무엇일까요?
성령께서는 성령 받은 사람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 )라고 알리시며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또한 믿는 자로서 성령을 받았지만 의인답게 살지 못하면 ( )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편 '응답의 하나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보혜사(保惠師, Counselor)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성령을 지칭한다. 사람의 마음 안에 내주하면서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성령의 사역을 드러내는 말로 사용된다(요 14:16, 26, 15:26, 16:7). 보혜사로 번역된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도록 곁에 부름받은 자'로 '변호사, 조력자, 위로자, 상담자, 친구'를 뜻한다.
교육목표 :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인이 되어 앞으로 임할 심판을 면하고 영원히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말씀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또한 진리 안에 살게 하여 온전히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등 많은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우치고 진리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1.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
성령께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이유는 바로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시작과 끝에 대한 분명한 계획 속에 인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성경상의 흐름을 보면 선악 간에 분명히 구분하여 죄는 사망으로, 의는 영생으로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함께하시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멸망의 길로 갑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나 아브라함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 등 죄악이 관영해졌을 때에는 심판이 그대로 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애굽 왕 바로에게 열 재앙을 내리신 것도 그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또한 약 2천 년 전 폼페이가 극도의 음란과 퇴폐로 타락하였을 때 화산폭발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심판을 받았지요. 신약 시대에도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를 일곱 번이나 되풀이 하며 책망하셨습니다. 심판을 면하여 지옥으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책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죄에 대한 심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과 제자들이 장차 받게 될 환난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활 승천한 뒤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이 얻게 될 유익을 가르치며 격려하셨지요(요 16:7~8). 예수님의 승천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요한복음 16장 9절에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이며 이러한 사람은 결국 심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될까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구원의 문을 여시고 유일한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바로 죄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지 않은 사람은 죄 사함을 받지 못했으니 여전히 죄인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천하 만물을 보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몰라서 믿지 못했다고 핑계 댈 수는 없습니다(롬 1:20). 더구나 오늘날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십니다. 또한 누구나 한 번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전도를 받아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죄에 대하여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3. 의에 대한 심판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원죄와 자범죄도 없이 의롭게 사셨기 때문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여 승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0절에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함이요" 했는데 여기에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기 때문에 사망에 매이지 않고 부활하여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로서 천국을 소유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가셨으므로 이것을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 자녀에서 거룩한 하나님 자녀로 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얻은 것이니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야 하나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의롭게 살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조차도 조롱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술 담배를 하나? 죄만 짓고 다니면서 예수쟁이라고 하다니!" 하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믿는 사람으로서 성령을 받았지만 의롭게 살지 못하여 정죄 받는 것을 '의에 대한 심판'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가 죄에 머물지 않도록 성령을 통하여 책망하고 징계하십니다. 자신이나 가정, 일터, 사업터에 갖가지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바로 의인된 삶을 영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을 잘 알고 지켰기 때문에 스스로 의롭게 산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진리 안에 사는 우리의 의가 그들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마 5:20). 왜냐하면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마 7:21). 마음 중심으로 주님을 믿어 죄를 버리며 의 가운데 거할 때라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4. 심판을 면하려면
요한복음 16장 11절에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세상 임금이란 원수 마귀 사단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의를 이루시고 마지막 심판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심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지옥으로 갈 것이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8~19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했지요.
그러면 우리는 심판을 면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깨어 있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으며(고전 15:34),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살전 5:22).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겉으로 드러난 죄는 물론, 아무리 작은 악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악을 미워하며 선에 속하고자 결심하면 모두 버릴 수 있습니다. 더러는 '한 가지도 버리기 쉽지 않은데 어떻게 다 버릴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그러나 나무뿌리를 하나씩 캐내려고 하면 힘들지만 원뿌리를 뽑으면 잔뿌리는 저절로 따라 나옵니다. 이처럼 가장 버리기 힘든 죄를 중점적으로 버리기 위해 때를 따라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른 죄성들도 함께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고 온전한 자가 되기 원하십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할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요, 보혜사 성령께서 돕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버리고 의인된 삶을 살아야 심판을 면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13~14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했습니다. 사람의 본분을 행하는 알곡 성도가 되어 심판의 때에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6장 8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성령께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 ) 안에 알맞은 단어는 무엇일까요?
성령께서는 성령 받은 사람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 )라고 알리시며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또한 믿는 자로서 성령을 받았지만 의인답게 살지 못하면 ( )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편 '응답의 하나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보혜사(保惠師, Counselor)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성령을 지칭한다. 사람의 마음 안에 내주하면서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성령의 사역을 드러내는 말로 사용된다(요 14:16, 26, 15:26, 16:7). 보혜사로 번역된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도록 곁에 부름받은 자'로 '변호사, 조력자, 위로자, 상담자, 친구'를 뜻한다.
2009-04-24
제17과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말 4:1~3
읽을말씀 : 말 4:1~3 | 외울말씀 : 말 4:2 l 참고 말씀 : 딤전 6:3
교육목표 : 치료되고 응답받을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십니다(전 12:14). 이는 인류 역사만 살펴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유익을 구하며 상대를 무시하고 악을 쌓아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패망으로 끝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한 사람은 어리석게 보이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축복과 만인의 존중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말라기 4장 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했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선한 일에 쓰느냐, 악한 일에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엄청나게 다릅니다. 예를 들어, 다윗 왕은 하나님 뜻을 좇아 나라를 부강케 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할 것인지 궁구하며 겸손하게 구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욕심에 치우쳐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다윗을 죽이려고 오랜 세월을 허비했습니다. 교만이 극에 달하니 선지자의 지적도 무시하다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전쟁터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을 어떻게 심판하시는지 잘 깨우쳐 교만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셨으니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으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교만을 싫어하시는지 교만한 사람과 손잡고 일을 해도 함께 벌을 받습니다(잠 16:5). 악인은 악인끼리 선인은 선인끼리 모이게 되듯 그 역시 교만하기 때문에 손을 잡는 것입니다.
1) 히스기야 왕의 교만
남왕국 유다의 13대 왕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에 순종을 잘하다가 교만해져 하나님 뜻을 거스르게 됩니다. 처음엔 이방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는 등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을 철저히 배격하였습니다(대하 29:3~30:27). 그러나 문란했던 선대 왕의 과오로 정치적인 어려움과 외세의 압력을 받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접한 애굽, 블레셋, 시돈, 모압, 암몬 등과 동맹을 맺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를 거역하는 무모한 짓이라고 수차 견책하지만(사 30:1~17, 31:1, 3) 교만에 빠진 히스기야 왕은 그 말을 무시해 버리지요. 그러니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받아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간데다가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자 히스기야는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성전 기물과 왕궁의 장식품과 국가의 보고를 털기까지 합니다.
산헤립이 막대한 배상금을 받고도 협박을 계속하자 히스기야는 결국 인간의 계산이나 생각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앗수르를 물리쳐 주십니다. 가정, 일터, 사업터, 이웃, 형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사랑받지 못할 뿐 아니라 어려운 일들을 만나도 도움을 얻지 못합니다.
2) 믿는 사람들의 교만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대로 행치 않는 것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만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업신여겼다(삼하 12:10) 하시며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못하는 것, 사랑하지 못하는 것, 순종하지 못하는 것, 자기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상대의 티를 지적하는 것, 판단 정죄하며 상대를 무시하는 것 등도 모두 교만입니다. 교만하면 섬김을 받고 높아지려 하며 자기 유익과 명예를 위해 악을 쌓아갑니다. 이러한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하신 것입니다.
3) 거짓 선지자들의 교만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북이스라엘 7대 왕인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길르앗 라못을 아람 왕의 손에서 다시 되찾자는 제의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던 여호사밧 왕은 먼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자고 하지만 아합 왕은 아첨하는 거짓 선지자를 사백 명쯤 불러 묻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언하지만 참 선지자 미가야만은 아합 왕에게 화가 있을 것을 말합니다.
끝내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아람과 전쟁을 하지만 전쟁은 무승부로 끝나고 궁지에 몰려 병사로 가장한 아합 왕은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음을 맞습니다. 이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들은 결과입니다. 이러한 거짓 선지자나 거짓 선생은 심판을 받아 지옥의 불못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유황못에 던져집니다(계 21:8).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참 선지자는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합한 중심이기 때문에 올바른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식하는 선지자들은 자기의 생각을 예언처럼 말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거나 그릇된 길로 이끌지요. 가정이든 국가든 교회든 선하고 진실한 사람의 말을 들으면 화목하지만 악한 사람의 길을 좇으면 반드시 고통과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2.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 받는 심판
디모데전서 6장 3~4절에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시고 선하시기 때문에 그 말씀 안에는 모든 선이 들어 있어 다른 교훈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다른 교훈을 말하며 스스로 잘났다고 변론할 뿐 아니라 언쟁과 투기, 분쟁 등이 생깁니다. 이렇게 교만하면 마음이 부패하여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육체의 일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이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고 심판을 받습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부르며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교만을 버리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심판 날에 쭉정이와 같이 지옥불에 던져집니다.
3. 교만을 깨뜨리고 악을 버려야 축복
정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교만을 깨뜨리고 악을 버려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악을 미워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면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 구원과 응답, 축복을 주십니다. 곧 말라기 4장 2~3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사람의 본분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으로 축복해 주시니(잠 22:4)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기뻐 뛰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정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도 치료받고 건강한 삶을 누리며 천국에서 세세토록 영광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아 교만과 악의 모습이 있다면 돌이켜 회개함으로써 겸손과 섬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말라기 4장 2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북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로,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아람과 전쟁을 하다가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은 북이스라엘 7대 왕은 누구일까요?
3. 우리에게 흔히 있는 교만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는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5편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풀무와 초개
풀무란 돌이나 흙으로 만든 도가니 또는 쇠로 만들어져 금속 등을 용해하여 제련하는 용광로를 말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연단이나 심판, 지옥 등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에 던져지는 극형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죽지 않았다(단 3장).
초개란 바짝 마른 지푸라기나 검불을 가리키며 매우 하찮은 것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치료되고 응답받을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십니다(전 12:14). 이는 인류 역사만 살펴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유익을 구하며 상대를 무시하고 악을 쌓아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패망으로 끝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한 사람은 어리석게 보이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축복과 만인의 존중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말라기 4장 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했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선한 일에 쓰느냐, 악한 일에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엄청나게 다릅니다. 예를 들어, 다윗 왕은 하나님 뜻을 좇아 나라를 부강케 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할 것인지 궁구하며 겸손하게 구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욕심에 치우쳐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다윗을 죽이려고 오랜 세월을 허비했습니다. 교만이 극에 달하니 선지자의 지적도 무시하다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전쟁터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을 어떻게 심판하시는지 잘 깨우쳐 교만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셨으니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으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교만을 싫어하시는지 교만한 사람과 손잡고 일을 해도 함께 벌을 받습니다(잠 16:5). 악인은 악인끼리 선인은 선인끼리 모이게 되듯 그 역시 교만하기 때문에 손을 잡는 것입니다.
1) 히스기야 왕의 교만
남왕국 유다의 13대 왕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에 순종을 잘하다가 교만해져 하나님 뜻을 거스르게 됩니다. 처음엔 이방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는 등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을 철저히 배격하였습니다(대하 29:3~30:27). 그러나 문란했던 선대 왕의 과오로 정치적인 어려움과 외세의 압력을 받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접한 애굽, 블레셋, 시돈, 모압, 암몬 등과 동맹을 맺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를 거역하는 무모한 짓이라고 수차 견책하지만(사 30:1~17, 31:1, 3) 교만에 빠진 히스기야 왕은 그 말을 무시해 버리지요. 그러니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받아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간데다가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자 히스기야는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성전 기물과 왕궁의 장식품과 국가의 보고를 털기까지 합니다.
산헤립이 막대한 배상금을 받고도 협박을 계속하자 히스기야는 결국 인간의 계산이나 생각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앗수르를 물리쳐 주십니다. 가정, 일터, 사업터, 이웃, 형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사랑받지 못할 뿐 아니라 어려운 일들을 만나도 도움을 얻지 못합니다.
2) 믿는 사람들의 교만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대로 행치 않는 것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만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업신여겼다(삼하 12:10) 하시며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못하는 것, 사랑하지 못하는 것, 순종하지 못하는 것, 자기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상대의 티를 지적하는 것, 판단 정죄하며 상대를 무시하는 것 등도 모두 교만입니다. 교만하면 섬김을 받고 높아지려 하며 자기 유익과 명예를 위해 악을 쌓아갑니다. 이러한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하신 것입니다.
3) 거짓 선지자들의 교만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북이스라엘 7대 왕인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길르앗 라못을 아람 왕의 손에서 다시 되찾자는 제의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던 여호사밧 왕은 먼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자고 하지만 아합 왕은 아첨하는 거짓 선지자를 사백 명쯤 불러 묻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언하지만 참 선지자 미가야만은 아합 왕에게 화가 있을 것을 말합니다.
끝내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아람과 전쟁을 하지만 전쟁은 무승부로 끝나고 궁지에 몰려 병사로 가장한 아합 왕은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음을 맞습니다. 이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들은 결과입니다. 이러한 거짓 선지자나 거짓 선생은 심판을 받아 지옥의 불못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유황못에 던져집니다(계 21:8).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참 선지자는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합한 중심이기 때문에 올바른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식하는 선지자들은 자기의 생각을 예언처럼 말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거나 그릇된 길로 이끌지요. 가정이든 국가든 교회든 선하고 진실한 사람의 말을 들으면 화목하지만 악한 사람의 길을 좇으면 반드시 고통과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2.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 받는 심판
디모데전서 6장 3~4절에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시고 선하시기 때문에 그 말씀 안에는 모든 선이 들어 있어 다른 교훈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다른 교훈을 말하며 스스로 잘났다고 변론할 뿐 아니라 언쟁과 투기, 분쟁 등이 생깁니다. 이렇게 교만하면 마음이 부패하여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육체의 일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이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고 심판을 받습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부르며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교만을 버리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심판 날에 쭉정이와 같이 지옥불에 던져집니다.
3. 교만을 깨뜨리고 악을 버려야 축복
정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교만을 깨뜨리고 악을 버려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악을 미워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면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 구원과 응답, 축복을 주십니다. 곧 말라기 4장 2~3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사람의 본분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으로 축복해 주시니(잠 22:4)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기뻐 뛰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정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도 치료받고 건강한 삶을 누리며 천국에서 세세토록 영광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아 교만과 악의 모습이 있다면 돌이켜 회개함으로써 겸손과 섬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말라기 4장 2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북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로,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아람과 전쟁을 하다가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은 북이스라엘 7대 왕은 누구일까요?
3. 우리에게 흔히 있는 교만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는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5편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풀무와 초개
풀무란 돌이나 흙으로 만든 도가니 또는 쇠로 만들어져 금속 등을 용해하여 제련하는 용광로를 말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연단이나 심판, 지옥 등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에 던져지는 극형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죽지 않았다(단 3장).
초개란 바짝 마른 지푸라기나 검불을 가리키며 매우 하찮은 것을 의미한다.
2009-04-17
제16과뜻을 거스르지 말라
민 16:1~3, 31~35
읽을말씀 : 민 16:1~3, 31~35 | 외울말씀 : 출 20:5 l 참고 말씀 : 출 32:21~28
교육목표 :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 심판이 임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 법도를 지키며 정도를 걷는 자녀에게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도록 만사형통한 축복을 주십니다. 반면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 뜻을 거스르면 저주와 재앙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 행하는 참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심판이 임해
민수기 16장 1~3절을 보면 출애굽 당시 고라와 다단과 온은 당을 짓고 이스라엘의 유력한 족장 250인과 함께 하나님 뜻을 거슬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들의 지도자입니다. 모세와 함께 모든 사람이 일치단결하여 광야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상황에서 가슴 아픈 일이 생긴 것입니다. 결국 고라와 다단과 온은 가족들과 함께 땅이 갈라지면서 산 채로 그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또 그들과 함께한 족장 250인도 여호와의 불에 의해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2장에도 모세의 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이 모세를 거역한 일이 나옵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을 때 미리암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면서 비방한 것입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아론과 미리암에게 진노하시니 즉시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책망하십니다(민 12:6~8). 이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은 허다하게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하시는데도 자신의 생각과 뜻에 맞지 않으면 이를 거역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에 맞추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되니 더 이상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행하므로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사람들
1)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내린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는 등 갖가지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며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으러 40일 동안 금식하며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경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삼고 그들에게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가르쳤는데도 그 뜻을 거스른 것입니다. 그 결과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했습니다(출 32:21~28). 우리 주변을 보면 우상을 섬겨온 가정에는 유난히 우환질고가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는 죄는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에 이르게 할 만큼 큰 죄임을 깨달아(출 20:4~5) 결단코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지 않은 애굽 왕 바로
출애굽기 7~12장을 보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에서 나오려 할 때 애굽 왕 바로가 순순히 놓아 주지 않아 큰 화를 당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하나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는 것인데 마음이 강퍅한 바로 왕이 이를 방해한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열 재앙을 내리셨고 그 사이 온 나라가 피폐해졌습니다. 출애굽을 허락한 바로 왕은 너무나 억울하여 갈라진 홍해 속까지 뒤쫓다가 결국 온 군대가 수장되고 말았지요.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다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믿는다 하면서도 사소한 감정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것, 직분자들이 시기나 욕심 때문에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훼방하는 것 등도 바로 왕의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빛 가운데 살기 원하는 하나님 뜻을 알면서도 계속 어둠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갖가지 우환질고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차 경고하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세상을 향하여 그 뜻을 거스른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뜻 가운데 살면 질병이나 시험 환난은 저절로 떠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질서에 어긋난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
사무엘상 2장에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릴 음식에 먼저 손을 대는가 하면 하나님 전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행음할 정도로 불량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인 엘리 제사장은 권면만 할 뿐 어떤 조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임을 당했고, 엘리 제사장은 그 소식을 듣다가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들들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죄로 목이 부러져 죽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로 행음하거나 하나님 재정을 임의로 유용하거나 다른 목적에 쓰는 등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들을 용납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바로 엘리 제사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4) 엘리사를 조롱한 아이들과 게하시
엘리사는 하나님과 교통하며 보장받은 능력의 종입니다. 열왕기하 2장에 보면 수십 명의 아이들이 떼 지어 엘리사를 따라다니며 대머리라고 조롱하며 괴롭힙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엘리사가 저희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니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 아이들 중에 42명을 물어 죽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종의 저주와 축복은 그대로 임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사람을 비방하거나 험담하며 조롱하는 일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지요.
또한 엘리사를 수종 들던 게하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사가 아람 군대장관이었던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하나님 능력으로 치료해 준 적이 있습니다. 몹시 감격한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큰 선물을 하고자 했으나 엘리사는 한사코 거절합니다.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주인의 뜻도 모르고 물질에 눈이 어두워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서 그를 속이고 선물을 받아와 은밀히 감추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끝내 회개하지 않고 시치미를 뗐습니다. 그 결과 저주를 받으니 나아만의 문둥병이 게하시에게 옮겨왔습니다(왕하 5:20~27). 그는 엘리사의 뜻을 거스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뜻을 거스른 것입니다.
5)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초대교회 교인으로서 자기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였지만 막상 돈을 손에 쥐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는 전부라고 속였다가 죽었습니다(행 5:1-11). 이는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하고 성령을 속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므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몇 가지 예를 소개하였는데 이 외에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징계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아 혹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있었다면 즉시 돌이켜서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출애굽기 20장 5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서 법도를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3.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고라와 다단과 온 일행 그리고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나요?
4. 우리 삶 속에서 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에 대한 간증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4편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읽어 오기
● '성경상의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엘리 대제사장 : 사사시대 말기의 대제사장(삼상1:9).
사무엘을 맡아 양육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자기 아들 교육에는 실패하였다. (삼상 2:11~12).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하여 언약궤를 빼앗기고 두 아들은 전사하였다(삼상 4:17). 두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엘리는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으며, 그의 며느리도 놀라 아이를 해산하고 죽는 등 멸문의 화를 당했다. 그 와중에 낳은 아들 고아 이가봇이 있을 뿐이다(삼상 4:18~22). 그의 자손은 솔로몬 왕에게 쫓겨난 아비아달을 최후로 제사장직에서 물러났다(왕상 2:27).
교육목표 :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 심판이 임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 법도를 지키며 정도를 걷는 자녀에게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도록 만사형통한 축복을 주십니다. 반면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 뜻을 거스르면 저주와 재앙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 행하는 참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심판이 임해
민수기 16장 1~3절을 보면 출애굽 당시 고라와 다단과 온은 당을 짓고 이스라엘의 유력한 족장 250인과 함께 하나님 뜻을 거슬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들의 지도자입니다. 모세와 함께 모든 사람이 일치단결하여 광야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상황에서 가슴 아픈 일이 생긴 것입니다. 결국 고라와 다단과 온은 가족들과 함께 땅이 갈라지면서 산 채로 그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또 그들과 함께한 족장 250인도 여호와의 불에 의해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2장에도 모세의 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이 모세를 거역한 일이 나옵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을 때 미리암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면서 비방한 것입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아론과 미리암에게 진노하시니 즉시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책망하십니다(민 12:6~8). 이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은 허다하게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하시는데도 자신의 생각과 뜻에 맞지 않으면 이를 거역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에 맞추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되니 더 이상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행하므로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사람들
1)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내린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는 등 갖가지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며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으러 40일 동안 금식하며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경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삼고 그들에게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가르쳤는데도 그 뜻을 거스른 것입니다. 그 결과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했습니다(출 32:21~28). 우리 주변을 보면 우상을 섬겨온 가정에는 유난히 우환질고가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는 죄는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에 이르게 할 만큼 큰 죄임을 깨달아(출 20:4~5) 결단코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지 않은 애굽 왕 바로
출애굽기 7~12장을 보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에서 나오려 할 때 애굽 왕 바로가 순순히 놓아 주지 않아 큰 화를 당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하나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는 것인데 마음이 강퍅한 바로 왕이 이를 방해한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열 재앙을 내리셨고 그 사이 온 나라가 피폐해졌습니다. 출애굽을 허락한 바로 왕은 너무나 억울하여 갈라진 홍해 속까지 뒤쫓다가 결국 온 군대가 수장되고 말았지요.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다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믿는다 하면서도 사소한 감정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것, 직분자들이 시기나 욕심 때문에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훼방하는 것 등도 바로 왕의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빛 가운데 살기 원하는 하나님 뜻을 알면서도 계속 어둠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갖가지 우환질고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차 경고하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세상을 향하여 그 뜻을 거스른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뜻 가운데 살면 질병이나 시험 환난은 저절로 떠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질서에 어긋난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
사무엘상 2장에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릴 음식에 먼저 손을 대는가 하면 하나님 전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행음할 정도로 불량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인 엘리 제사장은 권면만 할 뿐 어떤 조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임을 당했고, 엘리 제사장은 그 소식을 듣다가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들들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죄로 목이 부러져 죽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로 행음하거나 하나님 재정을 임의로 유용하거나 다른 목적에 쓰는 등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들을 용납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바로 엘리 제사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4) 엘리사를 조롱한 아이들과 게하시
엘리사는 하나님과 교통하며 보장받은 능력의 종입니다. 열왕기하 2장에 보면 수십 명의 아이들이 떼 지어 엘리사를 따라다니며 대머리라고 조롱하며 괴롭힙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엘리사가 저희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니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 아이들 중에 42명을 물어 죽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종의 저주와 축복은 그대로 임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사람을 비방하거나 험담하며 조롱하는 일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지요.
또한 엘리사를 수종 들던 게하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사가 아람 군대장관이었던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하나님 능력으로 치료해 준 적이 있습니다. 몹시 감격한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큰 선물을 하고자 했으나 엘리사는 한사코 거절합니다.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주인의 뜻도 모르고 물질에 눈이 어두워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서 그를 속이고 선물을 받아와 은밀히 감추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끝내 회개하지 않고 시치미를 뗐습니다. 그 결과 저주를 받으니 나아만의 문둥병이 게하시에게 옮겨왔습니다(왕하 5:20~27). 그는 엘리사의 뜻을 거스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뜻을 거스른 것입니다.
5)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초대교회 교인으로서 자기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였지만 막상 돈을 손에 쥐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는 전부라고 속였다가 죽었습니다(행 5:1-11). 이는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하고 성령을 속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므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몇 가지 예를 소개하였는데 이 외에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징계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아 혹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있었다면 즉시 돌이켜서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출애굽기 20장 5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서 법도를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3.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고라와 다단과 온 일행 그리고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나요?
4. 우리 삶 속에서 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에 대한 간증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4편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읽어 오기
● '성경상의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엘리 대제사장 : 사사시대 말기의 대제사장(삼상1:9).
사무엘을 맡아 양육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자기 아들 교육에는 실패하였다. (삼상 2:11~12).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하여 언약궤를 빼앗기고 두 아들은 전사하였다(삼상 4:17). 두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엘리는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으며, 그의 며느리도 놀라 아이를 해산하고 죽는 등 멸문의 화를 당했다. 그 와중에 낳은 아들 고아 이가봇이 있을 뿐이다(삼상 4:18~22). 그의 자손은 솔로몬 왕에게 쫓겨난 아비아달을 최후로 제사장직에서 물러났다(왕상 2:27).
2009-04-10
제15과부활의 소망
행 1:10~11
읽을말씀 : 행 1:10~11 | 외울말씀 : 요 11:25 l 참고 말씀 : 요 11:26
교육목표 : 부활의 소망 가운데 악을 선으로 이기고 영적 사랑으로 충만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전혀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요?
1. 마음에 악을 버리고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예수님은 오직 선 자체만 있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아 죽이려는 이들을 결코 미워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데 악한 도구로 쓰이는 것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역할을 정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악하기 때문에 스스로 마귀의 종이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많은 말씀을 듣고 권능을 목도했지만 자신의 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그의 마음에 교만과 탐심 등 악이 가득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주했고, 결국 그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이러한 영적 상황을 아셨기에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6장 24절에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셨지요.
예수님은 상대가 악을 행해서 마음이 상하거나 힘든 것이 아니라, 악으로 인해 죄를 짓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마음 아프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마음이 악으로 물들어 있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가엾고 불쌍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조차 자신을 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신 것같이, 악 자체가 없으니 어떠한 악의 도전에도 오직 선만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율법의 저주에 매이지 않고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영적 원리를 알기에 당회장님께서도 어떠한 악의 도전에도 오직 선으로만 대응했습니다. 지금까지 터무니없는 거짓 소문으로 우리를 훼방하는 이들도, 자신들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은혜받은 제단을 떠나며 오히려 대적한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당장에는 그들로 인해 큰 손실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럴 때에도 상대의 불의를 드러내지 않았고, 감정을 내거나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직 상대가 선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악에도 오직 선으로 대응했더니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들에게 애매히 고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음이 확실하게 증명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악이 있으면 그만큼 선으로 이길 수 있는 힘이 오지 않습니다.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한다 해서 기분이 상하고 미운 감정이 나는 사람은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 마음의 악을 주관하는 권세를 가진 원수 마귀 사단의 놀림감이 되고 맙니다. 만일 원수 마귀 사단이 건드리는 대로 악한 감정이 드러나고 악한 말이 나온다면, 그들은 좋아하며 더욱 악을 요동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여 나쁜 감정이 꿈틀거리면 일단은 눌러 참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불같이 기도해서 악을 뽑아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똑같은 상황을 만나도 나쁜 감정이 생기지 않고 선으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선을 쌓아서 공의에 합당한 수준에 이르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놀라운 축복이 범사에 임하는 것입니다.
2. 영적인 사랑이 충만합니다
예수님께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은 물론 부활의 영광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마음에는 지극히 큰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그 뜻에 따라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영혼들에 대한 큰 사랑으로 죄인들이 받을 사망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영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만큼 더 큰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주님을 더욱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도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셨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고 십일조와 헌금하며 전도하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증거는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사는 만큼 부활의 소망도 더해지며, 그것이 더해질수록 세상 것에 대한 미련이 사라집니다. 장차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육의 것에 미련 둘 이유가 없지요. 잠시 사는 이 땅에 물질을 쌓기보다는 영원한 천국에 쌓으며 영광을 얻으려 하고, 내세에 더 귀한 것으로 다시 얻을 참 소망이 있기 때문에 헌신하게 됩니다. 비록 이 땅에서 힘써 이룬 것이라 해도 고집하지 않고 내주고 또 내줄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어떤 직분도, 명예도, 권세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되었다고 섬김 받으려고 하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합니다.
이렇게 충만한 영적 사랑으로 우리 교회에 새로 오는 분들이 어떤 마음의 장벽도 느끼지 않도록 포근히 감싸 안아야 하지요. 먼저 성결의 복음을 들었다면 사랑의 마음으로 나중에 오시는 분들을 배려해 줌으로 함께 부활의 소망 가운데 좋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행함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셨다가 장차 천국의 상급으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3. 입술에 기쁨과 감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사실인 것처럼 우리도 부활 때에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신령한 몸은 장애도 없고 아프지도 않으며 피로를 느끼지도 않습니다. 또한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은 밟고 다니는 길이 금이고, 각종 보석으로 단장된 곳입니다. 이처럼 행복하고 아름다운 천국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진정 믿는다면 어떤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며 빚쟁이들로부터 혹독한 독촉을 받는 어려운 상황인데 내일이면 억만금이 생긴다고 합시다. 비록 오늘은 험한 일을 당하고 굶을지라도 내일이면 억만금이 생기기 때문에 슬프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억만금보다 더 값진 천국이 마음에 임해 있으니 이 땅의 일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기쁨과 감사를 곧잘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데 채워지지 않으니 불만이 쌓이고 힘든 것입니다.
참으로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한 사람은 현실의 어려움 탓으로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현실적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환경, 기뻐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꿔 주십니다. 즉 문제가 해결되며,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쁨' 하나만 온전히 이룬다 해도, '감사' 하나만 온전히 이룬다 해도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절을 기점으로 부활의 소망으로 충만하여 불평불만, 육적인 슬픔과 애통을 다 떨쳐버리고 모든 일에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여 영육 간에 큰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1장 25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3가지로 이야기해 봅시다.
3. 억만금보다 더 값진 천국이 마음에 임했다면서 혹 어렵고 힘든 문제가 닥치면 이내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4.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하니 기분이 상하고 나쁜 감정이 꿈틀거립니다. 이때 악을 선으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3편 '뜻을 거스르지 말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부활절'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부활절이 복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누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분명히 사후의 세계가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있으며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 땅의 삶이 끝난다 해도 부활하여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수명이 다하여 죽으면 성경에서는 "죽었다" 하지 않고 "잠들었다"고 합니다.
교육목표 : 부활의 소망 가운데 악을 선으로 이기고 영적 사랑으로 충만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전혀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요?
1. 마음에 악을 버리고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예수님은 오직 선 자체만 있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아 죽이려는 이들을 결코 미워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데 악한 도구로 쓰이는 것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역할을 정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악하기 때문에 스스로 마귀의 종이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많은 말씀을 듣고 권능을 목도했지만 자신의 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그의 마음에 교만과 탐심 등 악이 가득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주했고, 결국 그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이러한 영적 상황을 아셨기에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6장 24절에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셨지요.
예수님은 상대가 악을 행해서 마음이 상하거나 힘든 것이 아니라, 악으로 인해 죄를 짓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마음 아프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마음이 악으로 물들어 있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가엾고 불쌍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조차 자신을 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신 것같이, 악 자체가 없으니 어떠한 악의 도전에도 오직 선만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율법의 저주에 매이지 않고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영적 원리를 알기에 당회장님께서도 어떠한 악의 도전에도 오직 선으로만 대응했습니다. 지금까지 터무니없는 거짓 소문으로 우리를 훼방하는 이들도, 자신들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은혜받은 제단을 떠나며 오히려 대적한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당장에는 그들로 인해 큰 손실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럴 때에도 상대의 불의를 드러내지 않았고, 감정을 내거나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직 상대가 선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악에도 오직 선으로 대응했더니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들에게 애매히 고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음이 확실하게 증명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악이 있으면 그만큼 선으로 이길 수 있는 힘이 오지 않습니다.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한다 해서 기분이 상하고 미운 감정이 나는 사람은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 마음의 악을 주관하는 권세를 가진 원수 마귀 사단의 놀림감이 되고 맙니다. 만일 원수 마귀 사단이 건드리는 대로 악한 감정이 드러나고 악한 말이 나온다면, 그들은 좋아하며 더욱 악을 요동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여 나쁜 감정이 꿈틀거리면 일단은 눌러 참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불같이 기도해서 악을 뽑아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똑같은 상황을 만나도 나쁜 감정이 생기지 않고 선으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선을 쌓아서 공의에 합당한 수준에 이르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놀라운 축복이 범사에 임하는 것입니다.
2. 영적인 사랑이 충만합니다
예수님께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은 물론 부활의 영광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마음에는 지극히 큰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그 뜻에 따라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영혼들에 대한 큰 사랑으로 죄인들이 받을 사망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영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만큼 더 큰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주님을 더욱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도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셨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고 십일조와 헌금하며 전도하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증거는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사는 만큼 부활의 소망도 더해지며, 그것이 더해질수록 세상 것에 대한 미련이 사라집니다. 장차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육의 것에 미련 둘 이유가 없지요. 잠시 사는 이 땅에 물질을 쌓기보다는 영원한 천국에 쌓으며 영광을 얻으려 하고, 내세에 더 귀한 것으로 다시 얻을 참 소망이 있기 때문에 헌신하게 됩니다. 비록 이 땅에서 힘써 이룬 것이라 해도 고집하지 않고 내주고 또 내줄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어떤 직분도, 명예도, 권세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되었다고 섬김 받으려고 하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합니다.
이렇게 충만한 영적 사랑으로 우리 교회에 새로 오는 분들이 어떤 마음의 장벽도 느끼지 않도록 포근히 감싸 안아야 하지요. 먼저 성결의 복음을 들었다면 사랑의 마음으로 나중에 오시는 분들을 배려해 줌으로 함께 부활의 소망 가운데 좋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행함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셨다가 장차 천국의 상급으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3. 입술에 기쁨과 감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사실인 것처럼 우리도 부활 때에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신령한 몸은 장애도 없고 아프지도 않으며 피로를 느끼지도 않습니다. 또한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은 밟고 다니는 길이 금이고, 각종 보석으로 단장된 곳입니다. 이처럼 행복하고 아름다운 천국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진정 믿는다면 어떤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며 빚쟁이들로부터 혹독한 독촉을 받는 어려운 상황인데 내일이면 억만금이 생긴다고 합시다. 비록 오늘은 험한 일을 당하고 굶을지라도 내일이면 억만금이 생기기 때문에 슬프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억만금보다 더 값진 천국이 마음에 임해 있으니 이 땅의 일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기쁨과 감사를 곧잘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데 채워지지 않으니 불만이 쌓이고 힘든 것입니다.
참으로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한 사람은 현실의 어려움 탓으로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현실적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환경, 기뻐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꿔 주십니다. 즉 문제가 해결되며,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쁨' 하나만 온전히 이룬다 해도, '감사' 하나만 온전히 이룬다 해도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절을 기점으로 부활의 소망으로 충만하여 불평불만, 육적인 슬픔과 애통을 다 떨쳐버리고 모든 일에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여 영육 간에 큰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1장 25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3가지로 이야기해 봅시다.
3. 억만금보다 더 값진 천국이 마음에 임했다면서 혹 어렵고 힘든 문제가 닥치면 이내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4.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하니 기분이 상하고 나쁜 감정이 꿈틀거립니다. 이때 악을 선으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3편 '뜻을 거스르지 말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부활절'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부활절이 복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누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분명히 사후의 세계가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있으며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 땅의 삶이 끝난다 해도 부활하여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수명이 다하여 죽으면 성경에서는 "죽었다" 하지 않고 "잠들었다"고 합니다.
2009-04-03
제14과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창 6:5~9
읽을말씀 : 창 6:5~9 | 외울말씀 : 창 6:9 l 참고 말씀 : 마 12:35 \; 전 12:14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을 통해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신 이유를 깨닫고 심판을 면할 수 있게 한다.
성경을 보면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며 물로 심판하여 지면에서 쓸어버릴 것을 선포하십니다. 사람을 창조하고 친히 동행하며 지극한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무서운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이유와 어떻게 하면 심판을 면하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
사람을 대하다 보면 선하거나 악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체로 좋은 환경 속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은 성품이 온유하고 선한 반면, 불우한 환경 속에서 비진리를 많이 보고 배운 사람 중에 악을 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환경이 좋아도 잘못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환경 속에서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 또 스스로 노력하여 선하게 성장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선한 사람의 예로는, 예수님을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정혼한 마리아와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율법대로라면 간음한 사람은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드러내 알리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나중에야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사실을 알았지만 마음이 참으로 선했기 때문에 이런 행함이 나온 것입니다.
반면 악한 사람의 예로는 압살롬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은 이복 형이 자기의 여동생을 범하자 마음속으로 복수를 다집니다. 결국 기회를 엿보다가 이복 형 암논을 죽인 뒤 아버지 다윗에게까지 감정을 품고 반역을 일으키는 등 큰 악을 행하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이처럼 악한 사람은 그 마음에 있는 악을 행함으로 결국 심판받게 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사랑의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
창세기 6장 5-8절을 보면 노아 시대에 홍수심판이 임한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로,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기록이나 세계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시대를 막론하고 죄악이 가득하여 그 정도를 넘어서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국가적으로 악을 쌓아 간 경우입니다. 나라의 머리와 백성이 동조하여 죄악을 쌓아 간 경우로, 독일 나치 히틀러가 행한 600만 명 유대인 대학살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독일은 패전국이 되어 동서로 분열되었으며, 그 당시 전범들은 숨어 살거나 사형을 당했습니다.
노아 당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인간 경작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였고, 죄로 가득하니 하나님께서는 한탄하며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까지 멸하시는데 그것은 동물이 사람들의 타락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동물 형상을 본뜬 우상을 만들어 장식하고 섬겼습니다. 창조주 하나님만 경배하고 찬양해야 할 사람이 피조물인 동물을 우상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동물들까지 멸함으로 사람들이 만든 우상이 얼마나 헛되며 동물 역시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데에는 공의와 함께 사랑이 담겨 있음을 깨우쳐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떠나 짐승보다 못한 상태가 되어 버린 사람들에 대해 심판을 미룬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법칙에 따라 정리한 후 새롭게 인간 경작을 시작하는 것이 인간 경작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사랑이었지요. 따라서 홍수 심판은 단지 죄를 벌하는 공의의 심판을 넘어 인간 경작의 마지막까지를 염두에 두신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개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악을 쌓아 갔을 때에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자신의 악으로 인해 생명이 단축되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죄의 경중에 따라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오늘날은 국가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죄가 관영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신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 하고 자기 주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헛된 신을 좇거나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좋아합니다. 혼전 동거는 예삿일이고 동성연애자와 그들의 결혼까지 합법화하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약이 성행하고 다투고 원수 맺고 미워하며 부정부패가 만연하지요. 이러한 현실을 흠도 점도 없는 하나님께서 어찌 그냥 두고 보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죄악이 가득하여 짐승과 다름이 없다면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악한 것을 한탄하며 심판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면 생각하는 것도 악합니다. 매사에 자기 유익을 좇아 욕심 부리며 부를 축적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늘 악한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말씀을 머리에 지식으로는 쌓되 행치 않는 사람은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매사에 생각이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마음이 선한 목동이나 여 선지자 안나와 시므온과 같은 사람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잘 지켜 행하며 가르친다고 하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알지 못했지요. 그들은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고 겉으로만 거룩한 척 했기 때문에 완악하여 하나님 뜻을 깨우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악해졌는지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고 믿는다면서도 불법과 불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왔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사람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악하면 그 가운데 나오는 계획이 악하고 결국 악을 행하게 됩니다. 이미 생각 속에서 계획이 세워졌기 때문에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야 할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 뇌물 수수, 비자금 조성, 땅 투기 등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입시 부정, 병역 비리 등 각종 비리와 살인, 강도, 방화, 폭행 등 인륜을 저버리는 행동이 난무합니다. 이렇게 자기 유익에 급급하니 모든 행사와 계획이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문명의 발달에 따라 향락과 퇴폐문화에 젖어든 노아 시대처럼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이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려면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했습니다. 노아는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습니다. 평소 삶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따랐고, 조상들 가르침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였지요. 이런 노아였기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심판 가운데에서도 지킴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하여 마음과 생각이 악하고 그 계획이 악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마음이 선한 사람은 누군가의 전도를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아갑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며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전 12:14).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려면 온갖 타락과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롬 12:2). 마지막이 가까워졌음을 알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하나님이 원하는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것만 생각하고 진리대로 행하면 영혼이 잘되는 것은 물론, 이 세상에서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으며 천국에서도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며 물로 심판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창세기 6장 9절을 외워 봅시다.
3.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방법을 아는 대로 말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세상의 죄를 대속하고자 아무 죄 없이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고난을 당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한 주간 몸과 마음을 경건케 하고 한 끼 이상 금식에 동참합시다.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 진리 곧 하나님 말씀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자체이시므로 하나님 뜻에 따라 기록된 성경을 통해 그분의 모든 선하신 뜻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믿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한 다. 참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히 11:6).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기뻐하시는 행함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온전하다고 할 수 없다(마 5:48). 하나님께 온전하다고 인정받으려면 그 선한 마음과 행함이 항상 변함 없어야 한다.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을 통해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신 이유를 깨닫고 심판을 면할 수 있게 한다.
성경을 보면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며 물로 심판하여 지면에서 쓸어버릴 것을 선포하십니다. 사람을 창조하고 친히 동행하며 지극한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무서운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이유와 어떻게 하면 심판을 면하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
사람을 대하다 보면 선하거나 악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체로 좋은 환경 속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은 성품이 온유하고 선한 반면, 불우한 환경 속에서 비진리를 많이 보고 배운 사람 중에 악을 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환경이 좋아도 잘못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환경 속에서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 또 스스로 노력하여 선하게 성장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선한 사람의 예로는, 예수님을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정혼한 마리아와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율법대로라면 간음한 사람은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드러내 알리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나중에야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사실을 알았지만 마음이 참으로 선했기 때문에 이런 행함이 나온 것입니다.
반면 악한 사람의 예로는 압살롬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은 이복 형이 자기의 여동생을 범하자 마음속으로 복수를 다집니다. 결국 기회를 엿보다가 이복 형 암논을 죽인 뒤 아버지 다윗에게까지 감정을 품고 반역을 일으키는 등 큰 악을 행하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이처럼 악한 사람은 그 마음에 있는 악을 행함으로 결국 심판받게 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사랑의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
창세기 6장 5-8절을 보면 노아 시대에 홍수심판이 임한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로,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기록이나 세계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시대를 막론하고 죄악이 가득하여 그 정도를 넘어서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국가적으로 악을 쌓아 간 경우입니다. 나라의 머리와 백성이 동조하여 죄악을 쌓아 간 경우로, 독일 나치 히틀러가 행한 600만 명 유대인 대학살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독일은 패전국이 되어 동서로 분열되었으며, 그 당시 전범들은 숨어 살거나 사형을 당했습니다.
노아 당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인간 경작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였고, 죄로 가득하니 하나님께서는 한탄하며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까지 멸하시는데 그것은 동물이 사람들의 타락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동물 형상을 본뜬 우상을 만들어 장식하고 섬겼습니다. 창조주 하나님만 경배하고 찬양해야 할 사람이 피조물인 동물을 우상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동물들까지 멸함으로 사람들이 만든 우상이 얼마나 헛되며 동물 역시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데에는 공의와 함께 사랑이 담겨 있음을 깨우쳐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떠나 짐승보다 못한 상태가 되어 버린 사람들에 대해 심판을 미룬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법칙에 따라 정리한 후 새롭게 인간 경작을 시작하는 것이 인간 경작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사랑이었지요. 따라서 홍수 심판은 단지 죄를 벌하는 공의의 심판을 넘어 인간 경작의 마지막까지를 염두에 두신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개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악을 쌓아 갔을 때에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자신의 악으로 인해 생명이 단축되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죄의 경중에 따라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오늘날은 국가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죄가 관영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신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 하고 자기 주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헛된 신을 좇거나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좋아합니다. 혼전 동거는 예삿일이고 동성연애자와 그들의 결혼까지 합법화하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약이 성행하고 다투고 원수 맺고 미워하며 부정부패가 만연하지요. 이러한 현실을 흠도 점도 없는 하나님께서 어찌 그냥 두고 보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죄악이 가득하여 짐승과 다름이 없다면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악한 것을 한탄하며 심판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면 생각하는 것도 악합니다. 매사에 자기 유익을 좇아 욕심 부리며 부를 축적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늘 악한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말씀을 머리에 지식으로는 쌓되 행치 않는 사람은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매사에 생각이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마음이 선한 목동이나 여 선지자 안나와 시므온과 같은 사람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잘 지켜 행하며 가르친다고 하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알지 못했지요. 그들은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고 겉으로만 거룩한 척 했기 때문에 완악하여 하나님 뜻을 깨우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악해졌는지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고 믿는다면서도 불법과 불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왔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사람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악하면 그 가운데 나오는 계획이 악하고 결국 악을 행하게 됩니다. 이미 생각 속에서 계획이 세워졌기 때문에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야 할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 뇌물 수수, 비자금 조성, 땅 투기 등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입시 부정, 병역 비리 등 각종 비리와 살인, 강도, 방화, 폭행 등 인륜을 저버리는 행동이 난무합니다. 이렇게 자기 유익에 급급하니 모든 행사와 계획이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문명의 발달에 따라 향락과 퇴폐문화에 젖어든 노아 시대처럼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이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려면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했습니다. 노아는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습니다. 평소 삶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따랐고, 조상들 가르침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였지요. 이런 노아였기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심판 가운데에서도 지킴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하여 마음과 생각이 악하고 그 계획이 악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마음이 선한 사람은 누군가의 전도를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아갑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며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전 12:14).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려면 온갖 타락과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롬 12:2). 마지막이 가까워졌음을 알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하나님이 원하는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것만 생각하고 진리대로 행하면 영혼이 잘되는 것은 물론, 이 세상에서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으며 천국에서도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며 물로 심판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창세기 6장 9절을 외워 봅시다.
3.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방법을 아는 대로 말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세상의 죄를 대속하고자 아무 죄 없이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고난을 당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한 주간 몸과 마음을 경건케 하고 한 끼 이상 금식에 동참합시다.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 진리 곧 하나님 말씀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자체이시므로 하나님 뜻에 따라 기록된 성경을 통해 그분의 모든 선하신 뜻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믿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한 다. 참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히 11:6).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기뻐하시는 행함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온전하다고 할 수 없다(마 5:48). 하나님께 온전하다고 인정받으려면 그 선한 마음과 행함이 항상 변함 없어야 한다.
2009-03-27
제13과하나님을 거역한 죄
창 3:17~19
읽을말씀 : 창 3:17~19 | 외울말씀 : 창 3:17 l 참고 말씀 : 사무엘상 15:22~23
교육목표 :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이며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시험 환난이 임하는가를 깨달아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
많은 사람이 인생은 그 자체가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데 얼마나 많은 고초가 있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일까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먹고 사느라고 고생을 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의식주가 아닌 또 다른 인생의 문제로 고민하고 수고합니다. 이처럼 인생의 수레바퀴 속에서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거역한 죄 때문입니다.
1.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또한 에덴동산을 창설하여 사람이 그곳을 다스리며 지키고 얼굴에 땀을 흘리지 않아도 식물을 먹으며 풍족한 삶을 누리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단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하나님의 주권을 표시하며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가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니 원수 마귀 사단의 미혹을 받고 결국 하나님을 거역하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대로 정녕 죽게 되었습니다(창 2:17).
이는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근본적인 죽음, 곧 사람의 영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는데(살전 5:23) 하나님 명령을 어기니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거역한 죄 때문에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져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인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하여 수고하며 자녀를 낳고, 남편을 사모하며 그 다스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저주받은 땅에서 평생 수고해야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창 3:16~17). 즉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만물이 저주받을 뿐 아니라,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 사망의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더러는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을까? 아셨다면 왜 선악과를 두어 불순종하게 하셨을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것은 우리를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상대성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진리만 있기 때문에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악이 없으니 미움, 고통, 질병, 사망을 몰랐지요. 상대적으로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불행을 겪지 않았으니 무엇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선악과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살 때에는 선에 대해 배웠지만 불순종한 뒤 그의 후손들은 마귀의 종이 되어 점점 악으로 물들어 갔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악해졌습니다. 부모로부터 죄성을 물려받을 뿐 아니라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가운데 악이 입력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도, 이 땅에 죄가 가득 찰 것도, 인간이 사망의 길로 갈 것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만세 전에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때가 되자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리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하셨지요. 그래서 성령의 소욕을 좇아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대로 살아감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켜 사람의 본분을 다하면(전 12:13)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빛 가운데 나올 때 죄로 인한 저주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 가운데 나오는 자녀들을 기뻐하시며 모든 저주에서 풀어 주십니다.
2. 사울 왕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공격하라" 하시면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명령하셨습니다(삼상 15장). 이는 아말렉 족속이 하나님을 크게 대적한 일에 대한 보응으로 정확히 행해져야 하는 일이었습니다(출 17장).
그런데 사울 왕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아말렉 왕 아각을 포로로 사로잡고 기름지고 좋은 양과 소를 끌고 돌아옵니다. 자신의 공적을 백성에게 보여 칭송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며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깨달을 수 있도록 권면하지만 그는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 놓았지요. 백성이 좋은 가축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상 15장 22~23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했습니다. 즉 사술과 우상 숭배하는 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술이란 요사스러운 술법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중죄이며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는 죄이지요. 결국 사무엘 선지자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면서 엄히 책망합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끝내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 앞에서 높여 달라고 사정하지요.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처럼 무섭고 슬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거역한 결과 명예와 권세를 잃었을 뿐 아니라 악신에게 시달리며 끝내 전쟁터에서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습니다. 이는 사울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면 그러한 죄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국가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 가인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나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고 아벨은 양을 치던 사람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려야 죄가 씻긴다는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히 9:22).
아담은 아들들에게 피의 제사법에 대해 누누이 가르쳤고,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제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벨은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배운 대로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원하는 제사를 드렸으나 가인은 자기 생각 속에서 편리를 좇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일로 가인은 불붙는 듯한 투기가 일어 결국에는 동생을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예배드리고 내 유익에 맞추어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가인이 악하여 하나님 뜻을 거역하니 투기와 살인 등 육체의 일을 저지르고, 심판의 결과로 저주가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신 대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창 4:11~12). 이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이며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험 환난이 초래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담이나, 사울, 가인처럼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며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여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3장 17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 ~□□□□, ~□□□, ~□□□"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지키시고 □□ 주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이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근본 원인은 □ 때문입 니다.
3. 혹여 나의 욕심이나 체면, 자존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은 없나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려는 죄의 성질까지 발견하여 벗어 버리면 신속히 성결을 이룰 수 있습니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2편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성령 거역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스르거나 성령의 역사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여 교단에 알리고 축출하는 등 상대를 해롭게 하는 경우, 또는 이와 유사한 일들을 말한다. 성령 훼방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가로 막는 것이라면 성령 거역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궤사를 꾸미고 일을 벌여 상대를 해롭게 하는 행위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이며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시험 환난이 임하는가를 깨달아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
많은 사람이 인생은 그 자체가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데 얼마나 많은 고초가 있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일까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먹고 사느라고 고생을 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의식주가 아닌 또 다른 인생의 문제로 고민하고 수고합니다. 이처럼 인생의 수레바퀴 속에서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거역한 죄 때문입니다.
1.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또한 에덴동산을 창설하여 사람이 그곳을 다스리며 지키고 얼굴에 땀을 흘리지 않아도 식물을 먹으며 풍족한 삶을 누리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단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하나님의 주권을 표시하며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가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니 원수 마귀 사단의 미혹을 받고 결국 하나님을 거역하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대로 정녕 죽게 되었습니다(창 2:17).
이는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근본적인 죽음, 곧 사람의 영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는데(살전 5:23) 하나님 명령을 어기니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거역한 죄 때문에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져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인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하여 수고하며 자녀를 낳고, 남편을 사모하며 그 다스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저주받은 땅에서 평생 수고해야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창 3:16~17). 즉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만물이 저주받을 뿐 아니라,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 사망의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더러는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을까? 아셨다면 왜 선악과를 두어 불순종하게 하셨을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것은 우리를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상대성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진리만 있기 때문에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악이 없으니 미움, 고통, 질병, 사망을 몰랐지요. 상대적으로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불행을 겪지 않았으니 무엇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선악과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살 때에는 선에 대해 배웠지만 불순종한 뒤 그의 후손들은 마귀의 종이 되어 점점 악으로 물들어 갔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악해졌습니다. 부모로부터 죄성을 물려받을 뿐 아니라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가운데 악이 입력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도, 이 땅에 죄가 가득 찰 것도, 인간이 사망의 길로 갈 것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만세 전에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때가 되자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리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하셨지요. 그래서 성령의 소욕을 좇아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대로 살아감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켜 사람의 본분을 다하면(전 12:13)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빛 가운데 나올 때 죄로 인한 저주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 가운데 나오는 자녀들을 기뻐하시며 모든 저주에서 풀어 주십니다.
2. 사울 왕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공격하라" 하시면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명령하셨습니다(삼상 15장). 이는 아말렉 족속이 하나님을 크게 대적한 일에 대한 보응으로 정확히 행해져야 하는 일이었습니다(출 17장).
그런데 사울 왕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아말렉 왕 아각을 포로로 사로잡고 기름지고 좋은 양과 소를 끌고 돌아옵니다. 자신의 공적을 백성에게 보여 칭송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며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깨달을 수 있도록 권면하지만 그는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 놓았지요. 백성이 좋은 가축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상 15장 22~23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했습니다. 즉 사술과 우상 숭배하는 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술이란 요사스러운 술법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중죄이며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는 죄이지요. 결국 사무엘 선지자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면서 엄히 책망합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끝내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 앞에서 높여 달라고 사정하지요.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처럼 무섭고 슬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거역한 결과 명예와 권세를 잃었을 뿐 아니라 악신에게 시달리며 끝내 전쟁터에서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습니다. 이는 사울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면 그러한 죄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국가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 가인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나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고 아벨은 양을 치던 사람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려야 죄가 씻긴다는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히 9:22).
아담은 아들들에게 피의 제사법에 대해 누누이 가르쳤고,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제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벨은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배운 대로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원하는 제사를 드렸으나 가인은 자기 생각 속에서 편리를 좇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일로 가인은 불붙는 듯한 투기가 일어 결국에는 동생을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예배드리고 내 유익에 맞추어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가인이 악하여 하나님 뜻을 거역하니 투기와 살인 등 육체의 일을 저지르고, 심판의 결과로 저주가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신 대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창 4:11~12). 이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이며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험 환난이 초래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담이나, 사울, 가인처럼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며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여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3장 17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 ~□□□□, ~□□□, ~□□□"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지키시고 □□ 주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이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근본 원인은 □ 때문입 니다.
3. 혹여 나의 욕심이나 체면, 자존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은 없나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려는 죄의 성질까지 발견하여 벗어 버리면 신속히 성결을 이룰 수 있습니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2편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성령 거역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스르거나 성령의 역사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여 교단에 알리고 축출하는 등 상대를 해롭게 하는 경우, 또는 이와 유사한 일들을 말한다. 성령 훼방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가로 막는 것이라면 성령 거역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궤사를 꾸미고 일을 벌여 상대를 해롭게 하는 행위이다.
2009-03-20
제12과축 복
창 12:1~4
읽을말씀 : 창 12:1~4 | 외울말씀 : 창 15:6 l 참고 말씀 : 신 28:1~12
교육목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은 이유를 알아 그의 신앙을 본받으며 축복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서 복의 근원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크신 사랑과 놀라운 축복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계획하신 섭리를 이루기 위해 각 시대마다 합당한 사람을 세우시고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지요. 하나님 앞에 기둥같이 쓰이는 사람들은 마음 씀씀이나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일반 사람과는 매우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축복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즉시 순종하였고 한 번 말씀하신 것은 아무리 상황이 바뀐다 해도 결코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하시니 그대로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왜 그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즉시로 순종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은 삶의 터전과 가족 및 친척들과의 관계를 뒤로 하고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은 낯선 곳을 향해 무작정 떠나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릇 됨을 아셨기에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룰 것과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 12:2).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할 것이라' 하시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해 복을 얻을 것이라 약속하신 것입니다(창 12:3). 또한 그의 후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을 것을 알려주십니다(창 15:4~5).
2. 연단을 통해 합당한 그릇을 만드시는 하나님
이처럼 꿈과 비전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연단을 통해 합당한 자질을 갖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는 연단을 받으면서도 오직 아멘만 하였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았으며 욕심이나 미움, 시기 질투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말씀을 믿고 인내하며, 결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창 17:4~5)
하나님께서는 연단 중에도 피할 길을 주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미모가 출중하였기 때문에 혹여 애굽 사람에게 자신이 죽임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였습니다. 결국 애굽 왕에게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은 이것을 통해 큰 깨우침을 얻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시고 바로 왕은 당장 사라를 돌려보냅니다. 비록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여 엄청난 일을 겪었지만 아브라함은 해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상당한 재물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약속하신 대로 왕이라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연단 중에도 피할 길을 주며 함께하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의를 지키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당장 현실은 어렵고 곤경에 처한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 볼 때는 오히려 축복인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믿음을 내보임으로 연단 중에도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가나안 땅에는 물이 매우 귀했는데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물이 풍부했고 육축과 은과 금도 많았습니다.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아브라함이 집에서 양성한 318명을 이끌고 간 것만 봐도 얼마나 부유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 땅과 지역은 물론, 함께한 사람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 왕들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았고, 부귀와 명예, 권세, 건강, 자녀 등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을 받았습니다.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대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 사람이 된 것이지요. 이처럼 믿음의 조상으로서 복의 근원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그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3.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그릇 됨됨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은 이유는 그릇 됨됨이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 속에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 사랑과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모든 일을 선과 사랑으로 행했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수 맺지 않았고, 상대의 허물을 들추지도 않았으며 모든 사람을 섬겼습니다. 또한 희락의 열매가 맺혀 있으므로 어떤 연단이 와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였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였지요.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과도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아내 사라와 첩 하갈 사이에서도 항상 화평을 좇았고 아랫사람에게나 윗사람에게나 또는 가족에게나 모두와 화평을 좇았습니다. 자기 생활 속에서 생기는 일에 대해 감정적이거나 편벽한 처리를 하지 않고 오래 참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아브라함은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조카 롯과 서로 동거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자신은 삼촌이지만 조카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여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양보하였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윗사람이 당연히 먼저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아브라함은 양보하며 자비를 베풀었지요.
또한 그는 양선의 마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조카 롯이 소돔 땅과 함께 멸망당할 위기에 놓이자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창 18:22~32). 그 결과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요.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 결국 멸망당합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롯을 구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순종하여 번제로 바칠 정도로 충성했으며, 아들을 가르치는 것이나 종들과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흠이 없이 온 집에 충성했습니다. 누구와도 걸리지 않음으로 화평하고 온유했으며, 사람을 구제하고 대접하는 것을 즐겨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절제할 줄 알았기에 일생 동안 경거망동하거나 지나치게 벗어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축복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불통한 것이지, 하나님 앞에 전폭적으로 맡기고 의뢰하며 순종한다면 아브라함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자세한 기록을 남기셨으니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15장 6절을 함께 외워봅시다.
2.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아브람처럼 순종할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으로 갚아주셨나요? 하나님께 간증으로 영광을 돌렸나요?
아직 간증하지 않았다면 다음 주까지 간증을 기록해서 가져옵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1편 '하나님을 거역한 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그릇 됨됨이란?
마음의 재질에 해당되는데 디모데후서 1장 20~21절에는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어떤 심정으로 받고 들은 말씀을 어떻게 마음에 새기고 행해 나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금처럼 변함이 없는 중심을 지닌 사람은 그릇됨이 좋은 만큼 신속히 성결을 이루고 영적인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낼 수 있다.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잘 새겨 행하는 만큼 좋은 그릇 됨됨이가 되는 것이요, 아브라함처럼 놀라운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교육목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은 이유를 알아 그의 신앙을 본받으며 축복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서 복의 근원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크신 사랑과 놀라운 축복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계획하신 섭리를 이루기 위해 각 시대마다 합당한 사람을 세우시고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지요. 하나님 앞에 기둥같이 쓰이는 사람들은 마음 씀씀이나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일반 사람과는 매우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축복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즉시 순종하였고 한 번 말씀하신 것은 아무리 상황이 바뀐다 해도 결코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하시니 그대로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왜 그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즉시로 순종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은 삶의 터전과 가족 및 친척들과의 관계를 뒤로 하고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은 낯선 곳을 향해 무작정 떠나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릇 됨을 아셨기에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룰 것과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 12:2).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할 것이라' 하시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해 복을 얻을 것이라 약속하신 것입니다(창 12:3). 또한 그의 후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을 것을 알려주십니다(창 15:4~5).
2. 연단을 통해 합당한 그릇을 만드시는 하나님
이처럼 꿈과 비전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연단을 통해 합당한 자질을 갖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는 연단을 받으면서도 오직 아멘만 하였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았으며 욕심이나 미움, 시기 질투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말씀을 믿고 인내하며, 결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창 17:4~5)
하나님께서는 연단 중에도 피할 길을 주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미모가 출중하였기 때문에 혹여 애굽 사람에게 자신이 죽임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였습니다. 결국 애굽 왕에게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은 이것을 통해 큰 깨우침을 얻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시고 바로 왕은 당장 사라를 돌려보냅니다. 비록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여 엄청난 일을 겪었지만 아브라함은 해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상당한 재물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약속하신 대로 왕이라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연단 중에도 피할 길을 주며 함께하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의를 지키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당장 현실은 어렵고 곤경에 처한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 볼 때는 오히려 축복인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믿음을 내보임으로 연단 중에도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가나안 땅에는 물이 매우 귀했는데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물이 풍부했고 육축과 은과 금도 많았습니다.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아브라함이 집에서 양성한 318명을 이끌고 간 것만 봐도 얼마나 부유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 땅과 지역은 물론, 함께한 사람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 왕들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았고, 부귀와 명예, 권세, 건강, 자녀 등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을 받았습니다.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대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 사람이 된 것이지요. 이처럼 믿음의 조상으로서 복의 근원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그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3.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그릇 됨됨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은 이유는 그릇 됨됨이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 속에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 사랑과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모든 일을 선과 사랑으로 행했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수 맺지 않았고, 상대의 허물을 들추지도 않았으며 모든 사람을 섬겼습니다. 또한 희락의 열매가 맺혀 있으므로 어떤 연단이 와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였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였지요.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과도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아내 사라와 첩 하갈 사이에서도 항상 화평을 좇았고 아랫사람에게나 윗사람에게나 또는 가족에게나 모두와 화평을 좇았습니다. 자기 생활 속에서 생기는 일에 대해 감정적이거나 편벽한 처리를 하지 않고 오래 참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아브라함은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조카 롯과 서로 동거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자신은 삼촌이지만 조카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여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양보하였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윗사람이 당연히 먼저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아브라함은 양보하며 자비를 베풀었지요.
또한 그는 양선의 마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조카 롯이 소돔 땅과 함께 멸망당할 위기에 놓이자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창 18:22~32). 그 결과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요.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 결국 멸망당합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롯을 구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순종하여 번제로 바칠 정도로 충성했으며, 아들을 가르치는 것이나 종들과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흠이 없이 온 집에 충성했습니다. 누구와도 걸리지 않음으로 화평하고 온유했으며, 사람을 구제하고 대접하는 것을 즐겨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절제할 줄 알았기에 일생 동안 경거망동하거나 지나치게 벗어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축복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불통한 것이지, 하나님 앞에 전폭적으로 맡기고 의뢰하며 순종한다면 아브라함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자세한 기록을 남기셨으니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15장 6절을 함께 외워봅시다.
2.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아브람처럼 순종할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으로 갚아주셨나요? 하나님께 간증으로 영광을 돌렸나요?
아직 간증하지 않았다면 다음 주까지 간증을 기록해서 가져옵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1편 '하나님을 거역한 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그릇 됨됨이란?
마음의 재질에 해당되는데 디모데후서 1장 20~21절에는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어떤 심정으로 받고 들은 말씀을 어떻게 마음에 새기고 행해 나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금처럼 변함이 없는 중심을 지닌 사람은 그릇됨이 좋은 만큼 신속히 성결을 이루고 영적인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낼 수 있다.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잘 새겨 행하는 만큼 좋은 그릇 됨됨이가 되는 것이요, 아브라함처럼 놀라운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2009-03-13
제11과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갈 5:24
읽을말씀 : 갈 5:24 | 외울말씀 : 막 14:9, 누가복음 21:3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바를 하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은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주께 칭찬받는 자가 되게 한다.
우리가 어떤 직종에 있든 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면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칭찬받는다 해도 평범한 일반인이 칭찬하는 것과 그 분야의 전문가가 칭찬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주님께서 옳다 인정하며 칭찬하시는 자가 된다면 그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1.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의롭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일이 극히 드물었는데, 간혹 칭찬하실 때에는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옳은 일을 행하였다, 이 여인을 기억하라, 기념하라, 널리 전파하라" 등의 표현을 빌려 칭찬하셨습니다(막 14:9 ; 눅 21:3). 예수님께서 주 안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는 사람들을 알려 주어 그 행함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주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가 되어 옳다 인정함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으려면
1) 하나님 앞에 열심히 단을 쌓아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기 위하여 마땅히 단을 쌓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나 야곱 등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정성껏 단을 쌓은 기록이 많습니다(창 12:7~8, 13:4, 18, 28:18).
하나님 앞에 단을 쌓는 것이란 오늘날 하나님의 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껏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양식 삼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마음에 양식 삼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축복된 삶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
기도는 영적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이므로 기도의 중요성이 성경 곳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도 자녀들과 대화하며 사랑을 주고받기 원하시기 때문에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영혼이 잘되어 천국에 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 은혜와 능력이 임하고 성령 충만해야 비진리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채울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해야 진리의 사람, 영의 사람이 되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습니다. 따라서 쉬지 말고 기도하되 예수님처럼 무릎을 꿇고 중심을 다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중언부언의 기도는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중심의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고 응답으로 축복하십니다.
3)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로마 군대의 한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중풍으로 괴로워하는 하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서 고쳐 주시려 하자 그는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니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백부장의 믿음과 겸손을 귀히 여기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 믿음은 사모한다고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이루고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일을 보고 듣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처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칭찬하며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4) 하나님 앞에 겸비한 자가 되어야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께 귀신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셨지요. 여인은 자신을 개 취급하는 예수님께 화를 내거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손히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 믿음과 겸손에 감동을 받고 딸에게서 귀신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겸비한 중심을 가지고 간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 믿음으로 심는 자가 되어야
믿음으로 심는 것도 의에 속하며 하나님께서 칭찬하십니다. 만일 부요하기 원한다면 심고 거두는 법칙에 따라 심으면 됩니다. 십일조와 감사예물이 특히 그렇습니다. 자연의 법칙만 보아도 심은 대로 거두지요(고후 9:6).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은 영혼을 구원하고 성전을 지으며 선교와 구제에 쓰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데 쓰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헌금을 드릴 때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않고 믿음과 사랑으로 즐겨 심어야 합니다.
6) 범사에 하나님을 믿고 의뢰해야
다윗은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친히 인도하심으로 갖가지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믿고 의뢰하는 자녀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세상이나 자기 지식을 더 의존한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는 만큼 하나님을 의뢰하고, 주님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 구하고 참아 기다리며 응답받을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여 오직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7)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셨으니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성도와 교제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또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무슨 일을 만나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여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말씀하실 때 믿음의 분량에 따라 이끄십니다. 믿음의 분량이 안 되는 사람에게 무조건 순종하라고 무리하게 명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작은 일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케 함으로 더 큰 영적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엔 그보다 더 큰 일을 명하셔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3. 주께 칭찬받으려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우리가 육적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고 칭찬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듯이 영의 사람이 되려면 정과 욕심은 죄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온전히 끊어야 합니다. 다윗도 안목의 정욕 때문에 부하의 아내를 간음한 후 부하를 죽게 함으로 엄청난 연단을 받았습니다. 아간은 욕심 때문에 외투와 은금을 훔쳐 가족이 말살되고, 이스라엘은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지요.
반면 아사 임금은 정과 욕심을 단호히 끊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비록 어머니라 할지라도 우상을 섬기니 더 이상 사람들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태후의 위를 폐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뜻대로 행하려면 정과 욕심을 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지녀야 자신을 지킬 수 있지요. 하나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바를 하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주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기도의 응답을 체험한 적이 있나요? 있다면 서로 나누어 보세요.
2. 수로보니게 여인이 어떻게 행했을 때 예수님께 칭찬받았나요?
3. 어른이나 상사에게 지적이나 책망을 받았을 때 나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4. 갈라디아서 5장 24절을 함께 외워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0편 '축복'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넘치는 축복과 30배, 60배, 100배의 축복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죄악을 다 버리기 전에도 믿음으로 심고 구할 때에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는 축복 곧 두 배 이상의 축복을 받는다(눅 6:38). 하지만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도 버려 성결되어 영으로 들어간 뒤에는 30배 이상, 나아가 온 영이 되었을 때에는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바를 하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은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주께 칭찬받는 자가 되게 한다.
우리가 어떤 직종에 있든 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면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칭찬받는다 해도 평범한 일반인이 칭찬하는 것과 그 분야의 전문가가 칭찬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주님께서 옳다 인정하며 칭찬하시는 자가 된다면 그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1.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의롭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일이 극히 드물었는데, 간혹 칭찬하실 때에는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옳은 일을 행하였다, 이 여인을 기억하라, 기념하라, 널리 전파하라" 등의 표현을 빌려 칭찬하셨습니다(막 14:9 ; 눅 21:3). 예수님께서 주 안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는 사람들을 알려 주어 그 행함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주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가 되어 옳다 인정함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으려면
1) 하나님 앞에 열심히 단을 쌓아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기 위하여 마땅히 단을 쌓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나 야곱 등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정성껏 단을 쌓은 기록이 많습니다(창 12:7~8, 13:4, 18, 28:18).
하나님 앞에 단을 쌓는 것이란 오늘날 하나님의 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껏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양식 삼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마음에 양식 삼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축복된 삶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
기도는 영적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이므로 기도의 중요성이 성경 곳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도 자녀들과 대화하며 사랑을 주고받기 원하시기 때문에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영혼이 잘되어 천국에 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 은혜와 능력이 임하고 성령 충만해야 비진리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채울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해야 진리의 사람, 영의 사람이 되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습니다. 따라서 쉬지 말고 기도하되 예수님처럼 무릎을 꿇고 중심을 다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중언부언의 기도는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중심의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고 응답으로 축복하십니다.
3)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로마 군대의 한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중풍으로 괴로워하는 하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서 고쳐 주시려 하자 그는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니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백부장의 믿음과 겸손을 귀히 여기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 믿음은 사모한다고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이루고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일을 보고 듣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처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칭찬하며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4) 하나님 앞에 겸비한 자가 되어야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께 귀신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셨지요. 여인은 자신을 개 취급하는 예수님께 화를 내거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손히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 믿음과 겸손에 감동을 받고 딸에게서 귀신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겸비한 중심을 가지고 간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 믿음으로 심는 자가 되어야
믿음으로 심는 것도 의에 속하며 하나님께서 칭찬하십니다. 만일 부요하기 원한다면 심고 거두는 법칙에 따라 심으면 됩니다. 십일조와 감사예물이 특히 그렇습니다. 자연의 법칙만 보아도 심은 대로 거두지요(고후 9:6).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은 영혼을 구원하고 성전을 지으며 선교와 구제에 쓰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데 쓰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헌금을 드릴 때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않고 믿음과 사랑으로 즐겨 심어야 합니다.
6) 범사에 하나님을 믿고 의뢰해야
다윗은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친히 인도하심으로 갖가지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믿고 의뢰하는 자녀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세상이나 자기 지식을 더 의존한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는 만큼 하나님을 의뢰하고, 주님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 구하고 참아 기다리며 응답받을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여 오직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7)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셨으니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성도와 교제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또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무슨 일을 만나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여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말씀하실 때 믿음의 분량에 따라 이끄십니다. 믿음의 분량이 안 되는 사람에게 무조건 순종하라고 무리하게 명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작은 일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케 함으로 더 큰 영적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엔 그보다 더 큰 일을 명하셔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3. 주께 칭찬받으려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우리가 육적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고 칭찬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듯이 영의 사람이 되려면 정과 욕심은 죄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온전히 끊어야 합니다. 다윗도 안목의 정욕 때문에 부하의 아내를 간음한 후 부하를 죽게 함으로 엄청난 연단을 받았습니다. 아간은 욕심 때문에 외투와 은금을 훔쳐 가족이 말살되고, 이스라엘은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지요.
반면 아사 임금은 정과 욕심을 단호히 끊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비록 어머니라 할지라도 우상을 섬기니 더 이상 사람들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태후의 위를 폐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뜻대로 행하려면 정과 욕심을 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지녀야 자신을 지킬 수 있지요. 하나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바를 하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주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기도의 응답을 체험한 적이 있나요? 있다면 서로 나누어 보세요.
2. 수로보니게 여인이 어떻게 행했을 때 예수님께 칭찬받았나요?
3. 어른이나 상사에게 지적이나 책망을 받았을 때 나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4. 갈라디아서 5장 24절을 함께 외워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0편 '축복'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넘치는 축복과 30배, 60배, 100배의 축복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죄악을 다 버리기 전에도 믿음으로 심고 구할 때에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는 축복 곧 두 배 이상의 축복을 받는다(눅 6:38). 하지만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도 버려 성결되어 영으로 들어간 뒤에는 30배 이상, 나아가 온 영이 되었을 때에는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2009-03-06
제10과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라
고후 10:3~6
읽을말씀 : 고후 10:3~6 | 외울말씀 : 고후 10:5 ㅣ 참고 말씀 : 롬 8:7
교육목표 :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적 믿음을 소유한 의인이 되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크게 이루어 영광 돌릴 뿐 아니라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으며 만사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며 충성한다 하지만 축복을 받지 못하고 시험과 환난, 질병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축복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육신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은 깨뜨려야
육신이란 몸과 결합된 죄성으로 아직 행위로 나타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비진리를 말합니다. 이 마음에 있는 비진리가 생각을 통해 나오는 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로마서 8장 6~7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육신의 생각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생각에는 하나님의 법인 진리대로 행하게 하는 영의 생각과 그러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롬 8:6).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진리와 비진리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영의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육신의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미운 사람을 볼 때 그냥 감정에 따라 미워하는 육신의 생각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지 하는 영의 생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이므로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만일 육신의 생각을 좇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세상으로 빠지며 시험 환난을 당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 중에서 하나님 뜻에 어긋나고 믿음 생활을 방해하는 생각이라면 육신의 생각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육신의 생각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기 의'입니다. '자기 의'란 쉽게 말하면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사람은 태어나서 부모, 스승, 친구 등 여러 사람을 통해 많은 것을 듣고 배웁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롬 3:10) 아무리 훌륭한 부모나 스승으로부터 배운다 할지라도 진리대로만 가르침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뜻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더 많이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 자체이므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고, 사람의 의와 하나님의 의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 미운 자가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동행해 주고,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도 주라고 하십니다.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시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결국 이기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의는 다릅니다. 원수는 갚아야 하며 악은 끝까지 대항하여 이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 그렇게 행하는 사람들을 의인이라 부릅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이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고백합니다.
그는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당시 세계를 지배한 로마 시민권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냐민 지파의 정통 바리새인에 속한 그는 당대 최고의 교법사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행 22:3). 철저한 유대교도로서 기독교 박해에 앞장섰으며 다메섹, 즉 지금의 다마스쿠스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체포하고자 그곳으로 가던 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구세주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지식과 교양, 사회적 지위를 모두 버리고 주를 좇았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긴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 있고 모든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배우는 모든 학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부수적인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깨우쳤기에 곳곳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2.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울 왕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된 대표적인 인물로 사울 왕을 들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은 사사들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아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왕이 되기 전 겸손한 사람이었으나 왕이 된 후 점차 교만해졌지요.
한 예로, 블레셋과 전투를 하려고 대치한 상황에서 제사장 사무엘이 정한 기한에 오지 않아 백성이 흩어지자,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를 임의로 드려 하나님 뜻을 거스르고 말았습니다. 이를 사무엘이 책망하자 회개는커녕 변명하기에 급급했지요. 또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셨을 때에도 그는 순종하지 않고 적국의 왕과 가축 중에 좋은 것은 멸하지 않고 끌고 왔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틈타니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운 것입니다.
결국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악신으로 인해 고통당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차례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만 그는 끝내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거듭 불순종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3.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려면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면 모든 이론과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해야 합니다(고후 10:5).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라는 것은 결코 우리를 얽매이거나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은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살전 5:22)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비진리가 없으면 육신의 생각이 나오지 않으며, 비진리가 있는 만큼 생각을 통해 사단의 역사를 받아서 악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은 곧 비진리를 버리며 하나님 말씀을 알고 그대로 행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모이기에 힘쓰라" 하였으면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법도를 깨우쳐 그대로 순종하면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안다고 해서 다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를 해야 위로부터 능력이 옵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충만하여 육신의 생각을 제어할 수 있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육신의 생각에 사로 잡혀 끌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쉬자, 즐기자, 먹자 하며 육체의 소욕을 좇아 나갔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룰 것인지를 묵상하며 열심히 행해 나가야 합니다. 미움, 시기 등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갖가지 악을 발견하여 버리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섬기는 사람이 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2. 고린도후서 10장 5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3.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형통치 못했던 경험이 있나요?
4. 영의 생각을 하여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은 더 잘되는 경험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9편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신의 생각'이란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가 혼의 작용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즉 진리가 아닌 비진리의 모든 생각을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진리인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기 때문에 죄가 되며(롬 8:6~7) 결국 사망을 낳게 됩니다. (롬 6:23)
교육목표 :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적 믿음을 소유한 의인이 되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크게 이루어 영광 돌릴 뿐 아니라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으며 만사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며 충성한다 하지만 축복을 받지 못하고 시험과 환난, 질병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축복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육신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은 깨뜨려야
육신이란 몸과 결합된 죄성으로 아직 행위로 나타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비진리를 말합니다. 이 마음에 있는 비진리가 생각을 통해 나오는 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로마서 8장 6~7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육신의 생각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생각에는 하나님의 법인 진리대로 행하게 하는 영의 생각과 그러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롬 8:6).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진리와 비진리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영의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육신의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미운 사람을 볼 때 그냥 감정에 따라 미워하는 육신의 생각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지 하는 영의 생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이므로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만일 육신의 생각을 좇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세상으로 빠지며 시험 환난을 당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 중에서 하나님 뜻에 어긋나고 믿음 생활을 방해하는 생각이라면 육신의 생각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육신의 생각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기 의'입니다. '자기 의'란 쉽게 말하면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사람은 태어나서 부모, 스승, 친구 등 여러 사람을 통해 많은 것을 듣고 배웁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롬 3:10) 아무리 훌륭한 부모나 스승으로부터 배운다 할지라도 진리대로만 가르침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뜻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더 많이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 자체이므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고, 사람의 의와 하나님의 의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 미운 자가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동행해 주고,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도 주라고 하십니다.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시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결국 이기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의는 다릅니다. 원수는 갚아야 하며 악은 끝까지 대항하여 이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 그렇게 행하는 사람들을 의인이라 부릅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이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고백합니다.
그는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당시 세계를 지배한 로마 시민권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냐민 지파의 정통 바리새인에 속한 그는 당대 최고의 교법사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행 22:3). 철저한 유대교도로서 기독교 박해에 앞장섰으며 다메섹, 즉 지금의 다마스쿠스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체포하고자 그곳으로 가던 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구세주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지식과 교양, 사회적 지위를 모두 버리고 주를 좇았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긴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 있고 모든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배우는 모든 학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부수적인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깨우쳤기에 곳곳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2.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울 왕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된 대표적인 인물로 사울 왕을 들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은 사사들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아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왕이 되기 전 겸손한 사람이었으나 왕이 된 후 점차 교만해졌지요.
한 예로, 블레셋과 전투를 하려고 대치한 상황에서 제사장 사무엘이 정한 기한에 오지 않아 백성이 흩어지자,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를 임의로 드려 하나님 뜻을 거스르고 말았습니다. 이를 사무엘이 책망하자 회개는커녕 변명하기에 급급했지요. 또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셨을 때에도 그는 순종하지 않고 적국의 왕과 가축 중에 좋은 것은 멸하지 않고 끌고 왔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틈타니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운 것입니다.
결국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악신으로 인해 고통당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차례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만 그는 끝내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거듭 불순종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3.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려면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면 모든 이론과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해야 합니다(고후 10:5).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라는 것은 결코 우리를 얽매이거나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은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살전 5:22)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비진리가 없으면 육신의 생각이 나오지 않으며, 비진리가 있는 만큼 생각을 통해 사단의 역사를 받아서 악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은 곧 비진리를 버리며 하나님 말씀을 알고 그대로 행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모이기에 힘쓰라" 하였으면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법도를 깨우쳐 그대로 순종하면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안다고 해서 다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를 해야 위로부터 능력이 옵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충만하여 육신의 생각을 제어할 수 있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육신의 생각에 사로 잡혀 끌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쉬자, 즐기자, 먹자 하며 육체의 소욕을 좇아 나갔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룰 것인지를 묵상하며 열심히 행해 나가야 합니다. 미움, 시기 등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갖가지 악을 발견하여 버리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섬기는 사람이 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2. 고린도후서 10장 5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3.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형통치 못했던 경험이 있나요?
4. 영의 생각을 하여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은 더 잘되는 경험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9편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신의 생각'이란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가 혼의 작용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즉 진리가 아닌 비진리의 모든 생각을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진리인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기 때문에 죄가 되며(롬 8:6~7) 결국 사망을 낳게 됩니다. (롬 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