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TOTAL : 1501 PAGE : 83/106
2009-07-17
제29과감정을 제어하라
롬 12:19~21
읽을말씀 : 롬 12:19~21 | 외울말씀 : 롬 12:21 ㅣ 참고 말씀:시 37:8
교육목표 : 우리가 감정을 제어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께 심판을 맡겨야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감정(憾情)이란 원망하거나 성내는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서로 언짢게 여기거나 성을 내기도 하고 원수를 맺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원수를 갚기 위해 악을 행하며 서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혹여 여러분은 감정 때문에 부모와 자녀, 형제와 친구, 동료와 이웃 간에 서로 대립되어 있지는 않은가요?
1. 친히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는 이유
로마서 12장 19~20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는 권세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니(요 5:27) 오직 주님 외에는 이 세상 어떤 사람에게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5절에도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말씀하셨고,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롬 3:10) 우리는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정죄하는 일이 종종 있지요.
율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므로 우리가 재판장이 되어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교만이요 큰 죄입니다(약 4:11~12). 심판하는 권세는 흠도 티도 없고 죄가 전혀 없으신 주님에게만 있으니 우리는 누구를 심판해서도, 원수를 갚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친히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심판 날에 주님께서 갚아 주심을 믿기에 다만 주님께 부탁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는 것뿐입니다.
2. 감정을 제어하고 모든 일을 주께 맡겨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감정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5장 39~4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이해하며 포용하고 수용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감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진리 말씀에 의지해서 오로지 이해와 포용과 수용 속에 나아가면 다툼이나 원망, 탄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12장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말씀한 대로 상대가 악으로 나올 때 악으로 되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말하고 행하면 능히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져 다투거나 미워하고 슬퍼하지 말고 감정을 제어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 왕이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피난 가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사울 왕의 집 족속 중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 일행을 따라오면서 계속 저주하고 티끌을 날리며 돌을 던졌습니다. 한 나라의 왕에게 이렇게 행동하였으니 죽어 마땅한 일이었으나 다윗은 자기가 잘못하여 하나님 앞에 징계와 연단을 받고 있는 처지임을 알았기에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후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겨 결국 그를 죽이게 합니다(왕상 2:9). 다윗 왕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시므이는 악을 쌓은 악한 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악으로 멸망할 사람이었기에 신약시대에는 그런 것조차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즉, 원수를 친히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부탁하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사울 왕의 경우는 어떠하였습니까?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나와 노래하며 춤추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며 창화하였습니다(삼상 18:6~8). 이 말을 듣고 사울 왕은 불쾌하여 매우 노하였지요. 마음속에 다윗에 대한 시기가 일어나서 악이 나오고, 그것이 감정이 되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경우와는 달리 성경 곳곳에는 자기가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일들이 나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경우가 바로 그 예입니다. 바사 제국의 대신 하만은 모르드개라는 유다 사람이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여 유다인들을 몰살시키려고 흉계를 꾸며 왕의 조서까지 받아 냅니다. 그러자 모르드개와 유다인으로서 왕비가 된 에스더는 오직 금식하며 이 일을 하나님께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왕 앞에 나아가 침착하고도 지혜롭게 이 일을 탄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모두 심판하셨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자기 집에 세워 놓은 나무에 자기 자신이 달려 죽었고, 유다인들을 진멸하려 하던 대적들이 오히려 진멸을 당한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롯 왕이 교회를 핍박하면서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또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으나 교회는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천사가 옥중으로 찾아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고 있던 베드로를 깨워 옥 밖으로 내보내 준 것입니다. 날이 새어 베드로가 탈옥했다는 사실을 안 헤롯은 파수꾼들을 전부 죽이라 명합니다. 헤롯이 이렇게 악을 발한 결과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 곧 벌레가 먹어 죽었습니다(행 12:23).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더니 직접 심판하신 것입니다.
3. 선으로 악을 이겨야
감정으로 처리하는 일은 진정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성도 간에도 감정 대립이 되었을 때 참지 못하면 엄청난 오해와 다툼을 불러일으키고 심하면 원수를 맺게 됩니다. 정치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이든, 이웃이나 일터에서든 여러 가지 분야 속에서 상대가 나에게 해를 끼칠 때에 감정으로 맞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선을 행하면 그 결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또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선을 행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형통케 하며 머리가 되게 하고 높이 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 자녀인 우리는 진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감정을 제어하고 다만 기도와 간구로, 또한 금식으로 하나님 앞에 아뢰어 그분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악한 상대가 무릎을 꿇게 하십니다(시 37:7~9, 62:12).
따라서 선악 간에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는 것이니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원수 갚을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로 부탁하셨으며(벧전 2:22~23), 예수님 제자들도 핍박을 받을 때에 다만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7:60).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가 기분 나쁘게 하면 얼굴을 붉히며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감정을 제어하고 오직 기도로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어디서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으며 가정, 일터, 사업터 등 모든 곳에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혹은 모든 사람 사이에 감정으로 원수를 맺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내 눈에는 들보가 있으면서 재판장이 되어 판단하거나 형제의 티를 빼려 한다면 교만하고 하나님께 무례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공의로운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사랑의 마음으로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로마서 12장 21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우리 삶 속에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힘들었던 일과 영의 생각으로 평안함을 느꼈던 일들을 찾아봅시다.
그리고 앞으로 감정을 제어하고 영의 생각만 하리라 스스로 다짐해 봅시다.
3. 감정을 버려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나는 대로 한 가지 이상씩 적어 봅시다.
그리고 그것을 버릴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1편 '믿음의 행함'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들보란?
건물을 지을 때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가로질러서 얹는 지지대로서, 오늘날 건설 현장에서 들보는 보통 목재, 쇠,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본다'(마 7:5)는 말은 자신의 커다란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잘못만을 책잡고 나무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교육목표 : 우리가 감정을 제어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께 심판을 맡겨야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감정(憾情)이란 원망하거나 성내는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서로 언짢게 여기거나 성을 내기도 하고 원수를 맺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원수를 갚기 위해 악을 행하며 서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혹여 여러분은 감정 때문에 부모와 자녀, 형제와 친구, 동료와 이웃 간에 서로 대립되어 있지는 않은가요?
1. 친히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는 이유
로마서 12장 19~20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는 권세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니(요 5:27) 오직 주님 외에는 이 세상 어떤 사람에게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5절에도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말씀하셨고,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롬 3:10) 우리는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정죄하는 일이 종종 있지요.
율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므로 우리가 재판장이 되어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교만이요 큰 죄입니다(약 4:11~12). 심판하는 권세는 흠도 티도 없고 죄가 전혀 없으신 주님에게만 있으니 우리는 누구를 심판해서도, 원수를 갚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친히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심판 날에 주님께서 갚아 주심을 믿기에 다만 주님께 부탁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는 것뿐입니다.
2. 감정을 제어하고 모든 일을 주께 맡겨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감정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5장 39~4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이해하며 포용하고 수용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감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진리 말씀에 의지해서 오로지 이해와 포용과 수용 속에 나아가면 다툼이나 원망, 탄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12장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말씀한 대로 상대가 악으로 나올 때 악으로 되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말하고 행하면 능히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져 다투거나 미워하고 슬퍼하지 말고 감정을 제어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 왕이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피난 가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사울 왕의 집 족속 중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 일행을 따라오면서 계속 저주하고 티끌을 날리며 돌을 던졌습니다. 한 나라의 왕에게 이렇게 행동하였으니 죽어 마땅한 일이었으나 다윗은 자기가 잘못하여 하나님 앞에 징계와 연단을 받고 있는 처지임을 알았기에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후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겨 결국 그를 죽이게 합니다(왕상 2:9). 다윗 왕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시므이는 악을 쌓은 악한 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악으로 멸망할 사람이었기에 신약시대에는 그런 것조차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즉, 원수를 친히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부탁하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사울 왕의 경우는 어떠하였습니까?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나와 노래하며 춤추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며 창화하였습니다(삼상 18:6~8). 이 말을 듣고 사울 왕은 불쾌하여 매우 노하였지요. 마음속에 다윗에 대한 시기가 일어나서 악이 나오고, 그것이 감정이 되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경우와는 달리 성경 곳곳에는 자기가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일들이 나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경우가 바로 그 예입니다. 바사 제국의 대신 하만은 모르드개라는 유다 사람이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여 유다인들을 몰살시키려고 흉계를 꾸며 왕의 조서까지 받아 냅니다. 그러자 모르드개와 유다인으로서 왕비가 된 에스더는 오직 금식하며 이 일을 하나님께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왕 앞에 나아가 침착하고도 지혜롭게 이 일을 탄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모두 심판하셨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자기 집에 세워 놓은 나무에 자기 자신이 달려 죽었고, 유다인들을 진멸하려 하던 대적들이 오히려 진멸을 당한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롯 왕이 교회를 핍박하면서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또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으나 교회는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천사가 옥중으로 찾아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고 있던 베드로를 깨워 옥 밖으로 내보내 준 것입니다. 날이 새어 베드로가 탈옥했다는 사실을 안 헤롯은 파수꾼들을 전부 죽이라 명합니다. 헤롯이 이렇게 악을 발한 결과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 곧 벌레가 먹어 죽었습니다(행 12:23).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더니 직접 심판하신 것입니다.
3. 선으로 악을 이겨야
감정으로 처리하는 일은 진정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성도 간에도 감정 대립이 되었을 때 참지 못하면 엄청난 오해와 다툼을 불러일으키고 심하면 원수를 맺게 됩니다. 정치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이든, 이웃이나 일터에서든 여러 가지 분야 속에서 상대가 나에게 해를 끼칠 때에 감정으로 맞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선을 행하면 그 결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또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선을 행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형통케 하며 머리가 되게 하고 높이 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 자녀인 우리는 진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감정을 제어하고 다만 기도와 간구로, 또한 금식으로 하나님 앞에 아뢰어 그분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악한 상대가 무릎을 꿇게 하십니다(시 37:7~9, 62:12).
따라서 선악 간에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는 것이니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원수 갚을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로 부탁하셨으며(벧전 2:22~23), 예수님 제자들도 핍박을 받을 때에 다만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7:60).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가 기분 나쁘게 하면 얼굴을 붉히며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감정을 제어하고 오직 기도로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어디서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으며 가정, 일터, 사업터 등 모든 곳에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혹은 모든 사람 사이에 감정으로 원수를 맺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내 눈에는 들보가 있으면서 재판장이 되어 판단하거나 형제의 티를 빼려 한다면 교만하고 하나님께 무례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공의로운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사랑의 마음으로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로마서 12장 21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우리 삶 속에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힘들었던 일과 영의 생각으로 평안함을 느꼈던 일들을 찾아봅시다.
그리고 앞으로 감정을 제어하고 영의 생각만 하리라 스스로 다짐해 봅시다.
3. 감정을 버려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나는 대로 한 가지 이상씩 적어 봅시다.
그리고 그것을 버릴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1편 '믿음의 행함'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들보란?
건물을 지을 때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가로질러서 얹는 지지대로서, 오늘날 건설 현장에서 들보는 보통 목재, 쇠,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본다'(마 7:5)는 말은 자신의 커다란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잘못만을 책잡고 나무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2009-07-10
제28과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마 20:20-23
읽을말씀 : 마 20:20-23 | 외울말씀 : 막 11:24 ㅣ 참고 말씀 : 약 1:6-8
교육목표 :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는 경우와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를 살펴봄으로 합당한 것을 구하여 응답받게 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자녀들의 소원을 응답해 주며 사랑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고 응답으로 축복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구하느냐에 따라 응답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의 응답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응답
마태복음 20장 20-21절을 보면 제자였던 요한과 야고보가 어머니와 함께 무엇인가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가니 "무엇을 원하느뇨"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간청합니다. 그만한 권한을 가진 분이라고 믿었기에 높은 자리를 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들은 예수님의 어떠한 면을 보았기에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과 진실한 행하심을 보았고 또한 예수님이 베푸신 기사와 표적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참으로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많이 베푸셨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요 2장),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요 9장), 간질을 하며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막 9장). 또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 속에 장사되어 있는 나사로를 살리시기도 하셨습니다(요 11장).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기도 하시고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마 14장).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러한 일들을 행하신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모든 사람에게 영생, 곧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누누이 천국에 대해 듣고 배웠으며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권세가 천국에서 얼마나 큰지도 알았고 예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받을 줄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 약속을 받고자 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답변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앉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아버지 뜻대로 행하여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을 찾아 나옵니다. 자기 스스로가 어찌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나오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참 신인 것 같다.'고 인정되어 찾아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질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 치료받고자 하나님을 찾아 나오기도 하며, 그냥 전도를 받고서 좋다고 생각이 되어 하나님을 찾아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경우에 속하며 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요?
2. 무엇을 구하든지 믿음으로 구해야 응답
사사기 6장을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족속에게 약탈을 당하고 고통을 받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주십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이 무서워 몰래 밀타작을 하던 자였는데 자신이 그러한 사명을 맡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워 하나님께 두 가지 표징을 구합니다. 먼저 "양털 한 뭉치를 땅에다 두겠으니 밤새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주위 땅은 말라 있다면 믿을 수 있겠나이다" 기도하였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과연 양털에만 이슬이 내렸습니다. 기드온은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한 번 더 하나님께 구합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과연 양털만 말라 있고 주변 땅은 다 이슬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며 참 신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각종 문제로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선 모세는 완전무장한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돌격해 오자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더니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므로 그의 자녀들이 믿음을 내보이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역사해 주십니다.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경우로는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침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백부장(마 8장),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찾아 나온 여인(마 9장), 자기 딸에게 들린 흉악한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수로보니게 여인(막 7장)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어 그 즉시 응답을 받았는데 백부장은 믿음의 고백만으로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을 사랑하는 백부장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시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9)
이처럼 철저히 신뢰하여 그 앞에 순종하려는 믿음을 지닌 백부장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하인이 그 시로 나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을 만나 응답을 받습니다.
3. 무엇을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두 마음을 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내보여야 하며, 어떠한 일을 만난다 해도 오직 하나님 뜻대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어떤 시험 환난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인하고 탄식하면서, 끝까지 믿는 믿음을 내보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고 금식해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해 주시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지 응답해 주시면 내가 왜 원망하고 탄식하며 불평하겠느냐?"고 변명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한 출애굽 1세대들은 믿음을 내보이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별로 믿음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어리석은 것 같아 보이는데도 응답을 받습니다. 그것은 응답해 주어도 그 사람 마음이 변치 않을 중심인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배신할 줄 알면서도 응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훗날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내가 너에게 이렇게 응답을 주었지만 너는 이러한 응답을 보고도 나를 부인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며 공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따라 응답을 주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번에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씩 주십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단번에 응답해 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도록 변화된 만큼 조금씩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가는 만큼 믿음대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단지 응답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중심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참된 믿음을 가지고 행함을 나타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오직 □□으로 구하고 조금도 □□하지 말라 □□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을 품어 모든 일에 □□이 없는 자로다"(약 1:6-8)
4. 단물이나 전화음성사서함, 권능의 손수건 기도를 믿음으로 받고 또 사용하였을 때 응답받은 체험을 서로 간증하며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0편 '감정을 제어하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혈루증이란?
자궁의 만성 하혈증상으로 자궁 안에 종기가 생기거나 어떤 이상이 생겨 불규칙적으로 피가 흐르는 증세이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이 병을 문둥병과 같이 천벌로 생각하여 부정하게 취급했고, 혈루증 환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는 경우와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를 살펴봄으로 합당한 것을 구하여 응답받게 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자녀들의 소원을 응답해 주며 사랑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고 응답으로 축복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구하느냐에 따라 응답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의 응답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응답
마태복음 20장 20-21절을 보면 제자였던 요한과 야고보가 어머니와 함께 무엇인가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가니 "무엇을 원하느뇨"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간청합니다. 그만한 권한을 가진 분이라고 믿었기에 높은 자리를 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들은 예수님의 어떠한 면을 보았기에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과 진실한 행하심을 보았고 또한 예수님이 베푸신 기사와 표적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참으로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많이 베푸셨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요 2장),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요 9장), 간질을 하며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막 9장). 또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 속에 장사되어 있는 나사로를 살리시기도 하셨습니다(요 11장).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기도 하시고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마 14장).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러한 일들을 행하신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모든 사람에게 영생, 곧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누누이 천국에 대해 듣고 배웠으며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권세가 천국에서 얼마나 큰지도 알았고 예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받을 줄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 약속을 받고자 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답변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앉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아버지 뜻대로 행하여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을 찾아 나옵니다. 자기 스스로가 어찌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나오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참 신인 것 같다.'고 인정되어 찾아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질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 치료받고자 하나님을 찾아 나오기도 하며, 그냥 전도를 받고서 좋다고 생각이 되어 하나님을 찾아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경우에 속하며 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요?
2. 무엇을 구하든지 믿음으로 구해야 응답
사사기 6장을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족속에게 약탈을 당하고 고통을 받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주십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이 무서워 몰래 밀타작을 하던 자였는데 자신이 그러한 사명을 맡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워 하나님께 두 가지 표징을 구합니다. 먼저 "양털 한 뭉치를 땅에다 두겠으니 밤새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주위 땅은 말라 있다면 믿을 수 있겠나이다" 기도하였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과연 양털에만 이슬이 내렸습니다. 기드온은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한 번 더 하나님께 구합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과연 양털만 말라 있고 주변 땅은 다 이슬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며 참 신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각종 문제로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선 모세는 완전무장한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돌격해 오자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더니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므로 그의 자녀들이 믿음을 내보이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역사해 주십니다.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경우로는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침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백부장(마 8장),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찾아 나온 여인(마 9장), 자기 딸에게 들린 흉악한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수로보니게 여인(막 7장)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어 그 즉시 응답을 받았는데 백부장은 믿음의 고백만으로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을 사랑하는 백부장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시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9)
이처럼 철저히 신뢰하여 그 앞에 순종하려는 믿음을 지닌 백부장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하인이 그 시로 나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을 만나 응답을 받습니다.
3. 무엇을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두 마음을 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내보여야 하며, 어떠한 일을 만난다 해도 오직 하나님 뜻대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어떤 시험 환난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인하고 탄식하면서, 끝까지 믿는 믿음을 내보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고 금식해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해 주시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지 응답해 주시면 내가 왜 원망하고 탄식하며 불평하겠느냐?"고 변명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한 출애굽 1세대들은 믿음을 내보이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별로 믿음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어리석은 것 같아 보이는데도 응답을 받습니다. 그것은 응답해 주어도 그 사람 마음이 변치 않을 중심인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배신할 줄 알면서도 응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훗날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내가 너에게 이렇게 응답을 주었지만 너는 이러한 응답을 보고도 나를 부인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며 공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따라 응답을 주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번에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씩 주십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단번에 응답해 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도록 변화된 만큼 조금씩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가는 만큼 믿음대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단지 응답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중심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참된 믿음을 가지고 행함을 나타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오직 □□으로 구하고 조금도 □□하지 말라 □□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을 품어 모든 일에 □□이 없는 자로다"(약 1:6-8)
4. 단물이나 전화음성사서함, 권능의 손수건 기도를 믿음으로 받고 또 사용하였을 때 응답받은 체험을 서로 간증하며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0편 '감정을 제어하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혈루증이란?
자궁의 만성 하혈증상으로 자궁 안에 종기가 생기거나 어떤 이상이 생겨 불규칙적으로 피가 흐르는 증세이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이 병을 문둥병과 같이 천벌로 생각하여 부정하게 취급했고, 혈루증 환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2009-07-03
제27과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4~18
읽을말씀 : 출 23:14~18 | 외울말씀 : 출 23:16 l 참고 말씀:신 16:9~12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보리가 익는 철을 맞아 하나님께 곡물의 첫 열매를 드리며 전반기에 은혜 주심에 감사할 뿐 아니라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1. 맥추절(麥秋節)의 유래와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밭에 뿌린 보리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는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합니다. 칠칠절이란 명칭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이란 명칭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맥추절은 맥추감사절로 구별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을 보면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민수기 28장 26~31절에도 맥추절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 양 일곱에는 매 어린 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새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이 소제로서(레 23:17) 특별히 드려집니다. 또한 이것과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이 지난 후 첫날에 처음 익은 곡식 단을 하나님께 바친 것은 유월절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 후 50일 되는 날 곧 맥추절에 새 곡식가루로 만든 떡 두 덩이는 예수님의 부활 후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로 새로워지고 구원에 이른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하게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두게 됨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날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을 감사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영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 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은 가루: 민 28:5~6)와 전제(독주: 민 28:7)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으니(민 28:26~31)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예물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하여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6~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며, 마찬가지로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막 12:44).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리는데, 때로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거나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성전 청소 등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며 영혼이 잘되어 진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지요.
그러므로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말씀하신 대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준비하고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을 주셔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하시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버리며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하며,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천국을 약속해 주셨으니 소망이 넘칩니다. 비록 눈물, 슬픔, 질병, 고통이 있는 이 땅에 살면서 갖가지 일들을 겪는다 해도 하나님 나라가 있으니 언제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원히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고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가 되어 늘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20~23절을 보면 암몬, 모압, 세일산 세 거민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여호사밧 왕은 맨 앞에 거룩한 옷을 입힌 찬양대를 내보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적들이 자기들끼리 싸워 자멸하게 만들고 그들의 재물과 양식들을 취하게 하셨습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가 깨닫고 전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 보며 더욱 감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출애굽기 23장 16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맥추절의 영적 의미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3. 하나님 앞에 감사예물을 드릴 때 어떠한 중심으로 드리고 있나요?
4. 어떤 일에 대한 열매를 거둘 때 혹 자신이 수고한 대가로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나요? 스스로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9편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소제는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로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말한다. 소제는 반드시 곡식의 고운 가루이어야 하며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향기로운 유향을 놓아야 한다. 소제를 드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고운 가루를 그냥 불살라 드리는 것과 기름을 넣고 반죽하여 화덕에 굽거나 번철에 구워 드리는 것, 솥에 삶아 드리는 방법이 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제목으로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라 해도 정성과 중심으로 드려야 함을 뜻한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보리가 익는 철을 맞아 하나님께 곡물의 첫 열매를 드리며 전반기에 은혜 주심에 감사할 뿐 아니라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1. 맥추절(麥秋節)의 유래와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밭에 뿌린 보리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는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합니다. 칠칠절이란 명칭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이란 명칭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맥추절은 맥추감사절로 구별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을 보면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민수기 28장 26~31절에도 맥추절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 양 일곱에는 매 어린 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새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이 소제로서(레 23:17) 특별히 드려집니다. 또한 이것과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이 지난 후 첫날에 처음 익은 곡식 단을 하나님께 바친 것은 유월절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 후 50일 되는 날 곧 맥추절에 새 곡식가루로 만든 떡 두 덩이는 예수님의 부활 후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로 새로워지고 구원에 이른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하게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두게 됨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날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을 감사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영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 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은 가루: 민 28:5~6)와 전제(독주: 민 28:7)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으니(민 28:26~31)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예물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하여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6~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며, 마찬가지로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막 12:44).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리는데, 때로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거나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성전 청소 등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며 영혼이 잘되어 진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지요.
그러므로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말씀하신 대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준비하고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을 주셔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하시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버리며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하며,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천국을 약속해 주셨으니 소망이 넘칩니다. 비록 눈물, 슬픔, 질병, 고통이 있는 이 땅에 살면서 갖가지 일들을 겪는다 해도 하나님 나라가 있으니 언제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원히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고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가 되어 늘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20~23절을 보면 암몬, 모압, 세일산 세 거민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여호사밧 왕은 맨 앞에 거룩한 옷을 입힌 찬양대를 내보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적들이 자기들끼리 싸워 자멸하게 만들고 그들의 재물과 양식들을 취하게 하셨습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가 깨닫고 전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 보며 더욱 감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출애굽기 23장 16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맥추절의 영적 의미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3. 하나님 앞에 감사예물을 드릴 때 어떠한 중심으로 드리고 있나요?
4. 어떤 일에 대한 열매를 거둘 때 혹 자신이 수고한 대가로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나요? 스스로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9편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소제는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로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말한다. 소제는 반드시 곡식의 고운 가루이어야 하며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향기로운 유향을 놓아야 한다. 소제를 드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고운 가루를 그냥 불살라 드리는 것과 기름을 넣고 반죽하여 화덕에 굽거나 번철에 구워 드리는 것, 솥에 삶아 드리는 방법이 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제목으로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라 해도 정성과 중심으로 드려야 함을 뜻한다.
2009-06-26
제26과심고 거두는 법칙
고후 9:6~8
읽을말씀 : 고후 9:6~8 | 외울말씀 : 갈 6:7 l 참고 말씀:갈 6:8~9
교육목표 : 영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심고 거두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가을이 되면 우리는 들판에 누렇게 익은 벼들이 황금 물결을 이루는 풍요로움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벼가 추수의 손길을 기다리기까지는, 씨를 심고 비료를 주며 열심히 가꾸어 준 농부들의 땀 흘리는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는 분명히 그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인내하며 열심히 경작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심고 거두는 법칙과 그 방법에 대하여 잘 알면 많은 소출을 거두지만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수고해도 소출이 많지 않거나 좋은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어느 때 무슨 씨를 심고, 어느 때 거둘 것이며, 얼마를 심고 어떻게 가꾸고 작업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심고 거두는 법칙을 깨우치지 못하여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을까요?
1.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기 위해서는 먼저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밭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땀 흘리며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단단한 흙이면 갈아엎고, 돌멩이가 있으면 주워 내며, 가시떨기가 있으면 뽑아내 버리고, 또 비료를 주어 비옥하게 하면 좋은 밭으로 개조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않으며, '버리라'고 하신 것은 열심히 버리고, 또한 '하라', '지키라' 하신 것은 그대로 행하며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개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네 가지 밭의 비유가 나오는데 밭은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첫째, 단단한 흙으로 굳어 있는 길가밭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므로 하나님 말씀을 듣긴 들어도 깨우치지 못하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음도 가지지 못합니다.
둘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도 돌멩이들 때문에 잘 성장할 수 없는 돌밭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마음밭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확신이 없기 때문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리고 맙니다.
셋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서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아 잘 자라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이 있습니다. 즉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육신의 소욕을 좇아 엉뚱하게 행하며, 기도를 해도 하나님을 진정 의뢰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능력을 체험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는 뒷전에 서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넷째,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며 열매를 맺되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옥토밭입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밭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옥토밭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그분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크게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깨닫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히 12:4),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는(살전 5:22) 것이 바로 자기의 마음밭을 열심히 개간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 힘으로 부족한 것은 불같이 기도하여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아서 신속히 마음밭을 개간해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2. 다양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농부는 밭을 개간하는 작업이 끝나면 다양한 씨앗을 뿌립니다.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하듯이 농부도 자기 밭에 여러 종류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밭을 개간하는 작업과 함께 씨 뿌리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움'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해 나가면서 '사랑'의 씨를 심으면 신속히 미움을 버리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밭을 개간해 나가면 점점 옥토가 되는데 이것은 당연히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린 것뿐이므로 하나님 앞에 상급이 되지는 않습니다. 씨는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이므로, 씨를 심는다는 것은 '하라' 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뻐하라 하셨으면 기뻐함으로 심고, 전도하라 하셨으면 전도를 열심히 하며, 사랑하라, 충성하라, 감사하라, 기도하라 하는 말씀들을 열심히 행하면 그것이 바로 다양한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릴 때 가을에 추수할 것을 믿고 뿌리듯이, 하나님 앞에 심을 때도 30배, 60배, 100배로 넘치게 축복해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심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심을 때에도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한다면 결코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3. 인내와 정성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씨를 심은 다음에는 인내와 정성으로 잘 가꾸어야 합니다. 병충해를 입지 않도록 벌레를 잡아 주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비료도 주며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힘쓰고 애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씨는 열매를 맺기 전에 병들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중심을 바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못하고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며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우쳐야 자신을 발견하고 영적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 환난을 막을 수 없고, 원수 마귀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항상 깨어 기도하되 하나님 말씀대로 부르짖으며 중심을 다한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식물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꾸어 주어야 싱싱하게 잘 자라는 것과 같이 내 마음이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쳐야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틈타지 못합니다.
넷째는, 인내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종자마다 그 열매 맺는 기간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 앞에 심은 것도 금방 응답받아 열매를 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내하면서 가꾸다 보면 마음 안에 영적인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가 맺히고,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어 모든 기도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잠 8:17 ; 시 37:4).
4.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씨를 심어 열매가 맺히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처럼 영계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를 하면 연약함이 떠나가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으며, 물질로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열심히 드리면 물질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승천을 목격하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쓴 결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행하게 됩니다. 또한 초대교회가 큰 부흥을 이루어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에 바빠지자 일곱 집사를 세웠는데 주의 일에 충성한 스데반이나 빌립 집사는 사도처럼 권능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아 병들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36~40). 이처럼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밝히 깨달아 우리 마음밭을 개간할 뿐 아니라 다양한 믿음의 씨앗을 심어 많은 열매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항상 성령을 위하여 심고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며 넘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네 가지 마음밭은 무엇이며, 자신의 마음밭은 어디에 해당하는지 점검해 봅시다.
2. 갈라디아서 6장 7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3. 내가 가장 신속히 심어야 할 말씀의 씨앗은 무엇일까요? 함께 예배를 드린 사람들에게 한 가지씩 부탁해 보세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가요? 아니면 많이 다른가요?
4. 이제 내 마음에 말씀의 씨앗을 심고 가꾸어 보세요. 신속히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맥추절을 맞아 전반기를 지켜 주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육 간에 얼마나 열매를 맺었는지 점검해 봅시다.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66권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것을 말한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예배드리는 것을 말한다.
교육목표 : 영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심고 거두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가을이 되면 우리는 들판에 누렇게 익은 벼들이 황금 물결을 이루는 풍요로움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벼가 추수의 손길을 기다리기까지는, 씨를 심고 비료를 주며 열심히 가꾸어 준 농부들의 땀 흘리는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는 분명히 그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인내하며 열심히 경작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심고 거두는 법칙과 그 방법에 대하여 잘 알면 많은 소출을 거두지만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수고해도 소출이 많지 않거나 좋은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어느 때 무슨 씨를 심고, 어느 때 거둘 것이며, 얼마를 심고 어떻게 가꾸고 작업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심고 거두는 법칙을 깨우치지 못하여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을까요?
1.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기 위해서는 먼저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밭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땀 흘리며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단단한 흙이면 갈아엎고, 돌멩이가 있으면 주워 내며, 가시떨기가 있으면 뽑아내 버리고, 또 비료를 주어 비옥하게 하면 좋은 밭으로 개조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않으며, '버리라'고 하신 것은 열심히 버리고, 또한 '하라', '지키라' 하신 것은 그대로 행하며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개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네 가지 밭의 비유가 나오는데 밭은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첫째, 단단한 흙으로 굳어 있는 길가밭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므로 하나님 말씀을 듣긴 들어도 깨우치지 못하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음도 가지지 못합니다.
둘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도 돌멩이들 때문에 잘 성장할 수 없는 돌밭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마음밭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확신이 없기 때문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리고 맙니다.
셋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서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아 잘 자라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이 있습니다. 즉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육신의 소욕을 좇아 엉뚱하게 행하며, 기도를 해도 하나님을 진정 의뢰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능력을 체험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는 뒷전에 서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넷째,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며 열매를 맺되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옥토밭입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밭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옥토밭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그분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크게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깨닫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히 12:4),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는(살전 5:22) 것이 바로 자기의 마음밭을 열심히 개간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 힘으로 부족한 것은 불같이 기도하여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아서 신속히 마음밭을 개간해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2. 다양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농부는 밭을 개간하는 작업이 끝나면 다양한 씨앗을 뿌립니다.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하듯이 농부도 자기 밭에 여러 종류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밭을 개간하는 작업과 함께 씨 뿌리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움'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해 나가면서 '사랑'의 씨를 심으면 신속히 미움을 버리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밭을 개간해 나가면 점점 옥토가 되는데 이것은 당연히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린 것뿐이므로 하나님 앞에 상급이 되지는 않습니다. 씨는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이므로, 씨를 심는다는 것은 '하라' 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뻐하라 하셨으면 기뻐함으로 심고, 전도하라 하셨으면 전도를 열심히 하며, 사랑하라, 충성하라, 감사하라, 기도하라 하는 말씀들을 열심히 행하면 그것이 바로 다양한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릴 때 가을에 추수할 것을 믿고 뿌리듯이, 하나님 앞에 심을 때도 30배, 60배, 100배로 넘치게 축복해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심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심을 때에도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한다면 결코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3. 인내와 정성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씨를 심은 다음에는 인내와 정성으로 잘 가꾸어야 합니다. 병충해를 입지 않도록 벌레를 잡아 주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비료도 주며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힘쓰고 애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씨는 열매를 맺기 전에 병들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중심을 바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못하고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며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우쳐야 자신을 발견하고 영적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 환난을 막을 수 없고, 원수 마귀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항상 깨어 기도하되 하나님 말씀대로 부르짖으며 중심을 다한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식물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꾸어 주어야 싱싱하게 잘 자라는 것과 같이 내 마음이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쳐야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틈타지 못합니다.
넷째는, 인내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종자마다 그 열매 맺는 기간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 앞에 심은 것도 금방 응답받아 열매를 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내하면서 가꾸다 보면 마음 안에 영적인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가 맺히고,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어 모든 기도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잠 8:17 ; 시 37:4).
4.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씨를 심어 열매가 맺히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처럼 영계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를 하면 연약함이 떠나가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으며, 물질로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열심히 드리면 물질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승천을 목격하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쓴 결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행하게 됩니다. 또한 초대교회가 큰 부흥을 이루어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에 바빠지자 일곱 집사를 세웠는데 주의 일에 충성한 스데반이나 빌립 집사는 사도처럼 권능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아 병들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36~40). 이처럼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밝히 깨달아 우리 마음밭을 개간할 뿐 아니라 다양한 믿음의 씨앗을 심어 많은 열매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항상 성령을 위하여 심고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며 넘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네 가지 마음밭은 무엇이며, 자신의 마음밭은 어디에 해당하는지 점검해 봅시다.
2. 갈라디아서 6장 7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3. 내가 가장 신속히 심어야 할 말씀의 씨앗은 무엇일까요? 함께 예배를 드린 사람들에게 한 가지씩 부탁해 보세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가요? 아니면 많이 다른가요?
4. 이제 내 마음에 말씀의 씨앗을 심고 가꾸어 보세요. 신속히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맥추절을 맞아 전반기를 지켜 주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육 간에 얼마나 열매를 맺었는지 점검해 봅시다.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66권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것을 말한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예배드리는 것을 말한다.
2009-06-19
제25과금식과 기도의 위력
욘 3:1~10
읽을말씀 : 욘 3:1~10 | 외울말씀 : 렘 33:3ㅣ참고 말씀 : 사 58:3~9
교육목표 :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과 기도의 방법을 알아 신속히 응답받게 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여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의 표현이므로 응답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1. 금식과 기도의 위력
요나는 주전 785년을 전후하여 북이스라엘에서 요아스 왕과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던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커졌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뜻을 외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가 멸망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 위에 대풍을 내리셨고, 요나가 탄 배는 거의 난파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누구 때문에 재앙이 임했는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결국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졌는데 놀랍게도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이런 요나를 위해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였다가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십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방 민족인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어른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굵은 베로 된 옷을 입고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이 소문이 왕에게까지 전달되자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니느웨 백성에게 선포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금식으로 정성을 내보이며, 악한 행실에서 떠나 힘써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을까요?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만큼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려 주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니느웨 백성이 임금과 함께 회개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절제하고 회개하며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과 기도
금식은 한 끼부터 시작해서 하루, 이틀, 3일, 5일, 7일, 그 이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금식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좇아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금식을 하되 부르짖어 기도하며 오락을 금하고 영적인 사랑으로 기도하면(사 58:3~5)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즉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나타나는 것이지요(사 58:6~9).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습관을 좇아 기도하기 원하십니다(살전 5:17).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고(눅 22:39),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행 3:1). 가령, 청소도 매일같이 하면 비교적 간단히 끝낼 수 있으나 오래 묵혀 두었다 하면 잔뜩 먼지가 쌓이고 때가 찌들어 한참 걸려야 깨끗해집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평소에 습관을 좇아서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시험 환난이 오지 않고, 설령 온다 하더라도 가볍게 물러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형통함을 받습니다. 시험 환난을 당하고 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둘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원하십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고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대통령 앞에서도 삼가 조심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눅 22:41)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셋째로,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렘 29:12~13, 33:3). 사도행전 4장을 보면 교회 역사상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났던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고 많은 기사와 표적이 따르는 가운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에도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출 15:22~25). 그러나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해서 아무 때나 부르짖어 기도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기도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은 중심을 바쳐 기도함으로 중언부언하는 일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3. 금식과 기도로 응답받은 믿음의 선진들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바다 편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일 때까지 간절히 기도하여 비를 내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왕상 18:41~46). 어찌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였던지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으로 배가 당겨 머리가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지요.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지 이미 70년이 지난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벌써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가브리엘 천사로 하여금 다니엘에게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와서 "크게 은총받은 자여"라고 부르며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고 또 크고 놀라운 계시를 주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과 또한 세상 끝날까지 되어질 일을 그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단 9:1~27).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십자가 지실 일을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 욕심을 좇아 구하는 것은 응답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각 자기 믿음과 직분과 위치에 맞추어서 필요한 것을 구해야지 허영과 욕심을 좇아 구한다면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2~3절을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합니다.
또한 믿고 구한 것은 응답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셨고, 야고보서 1장 6~7절에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결단코 응답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금식과 기도의 위력을 알아 우리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와 금식을 하며 놀라운 응답의 역사를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레미야 33장 3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3. 혹여 금식기도를 했는데 응답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자 이사야 58장 3절부터 9절까지 읽으면서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8편 '심고 거두는 법칙'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금식과 보호식
금식기도는 어떤 목적을 갖고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보호식은 금식이 끝난 후 빠진 기를 보충하고 약해진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도록 먹는 음식을 말하며, 금식한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보호식 하는 중에는 몸을 무리하거나 힘든 일은 피해야 한다. 식사는 미음이나 죽으로 하고, 반찬은 주로 채식을 하되 양념은 하지 않으며, 육류나 기름기 있는 음식, 맵거나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 화학조미료와 향신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보호식을 잘하면 붓지 않고 피부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된다.
교육목표 :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과 기도의 방법을 알아 신속히 응답받게 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여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의 표현이므로 응답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1. 금식과 기도의 위력
요나는 주전 785년을 전후하여 북이스라엘에서 요아스 왕과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던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커졌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뜻을 외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가 멸망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 위에 대풍을 내리셨고, 요나가 탄 배는 거의 난파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누구 때문에 재앙이 임했는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결국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졌는데 놀랍게도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이런 요나를 위해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였다가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십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방 민족인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어른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굵은 베로 된 옷을 입고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이 소문이 왕에게까지 전달되자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니느웨 백성에게 선포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금식으로 정성을 내보이며, 악한 행실에서 떠나 힘써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을까요?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만큼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려 주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니느웨 백성이 임금과 함께 회개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절제하고 회개하며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과 기도
금식은 한 끼부터 시작해서 하루, 이틀, 3일, 5일, 7일, 그 이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금식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좇아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금식을 하되 부르짖어 기도하며 오락을 금하고 영적인 사랑으로 기도하면(사 58:3~5)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즉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나타나는 것이지요(사 58:6~9).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습관을 좇아 기도하기 원하십니다(살전 5:17).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고(눅 22:39),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행 3:1). 가령, 청소도 매일같이 하면 비교적 간단히 끝낼 수 있으나 오래 묵혀 두었다 하면 잔뜩 먼지가 쌓이고 때가 찌들어 한참 걸려야 깨끗해집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평소에 습관을 좇아서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시험 환난이 오지 않고, 설령 온다 하더라도 가볍게 물러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형통함을 받습니다. 시험 환난을 당하고 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둘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원하십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고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대통령 앞에서도 삼가 조심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눅 22:41)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셋째로,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렘 29:12~13, 33:3). 사도행전 4장을 보면 교회 역사상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났던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고 많은 기사와 표적이 따르는 가운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에도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출 15:22~25). 그러나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해서 아무 때나 부르짖어 기도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기도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은 중심을 바쳐 기도함으로 중언부언하는 일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3. 금식과 기도로 응답받은 믿음의 선진들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바다 편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일 때까지 간절히 기도하여 비를 내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왕상 18:41~46). 어찌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였던지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으로 배가 당겨 머리가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지요.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지 이미 70년이 지난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벌써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가브리엘 천사로 하여금 다니엘에게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와서 "크게 은총받은 자여"라고 부르며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고 또 크고 놀라운 계시를 주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과 또한 세상 끝날까지 되어질 일을 그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단 9:1~27).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십자가 지실 일을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 욕심을 좇아 구하는 것은 응답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각 자기 믿음과 직분과 위치에 맞추어서 필요한 것을 구해야지 허영과 욕심을 좇아 구한다면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2~3절을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합니다.
또한 믿고 구한 것은 응답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셨고, 야고보서 1장 6~7절에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결단코 응답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금식과 기도의 위력을 알아 우리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와 금식을 하며 놀라운 응답의 역사를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레미야 33장 3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3. 혹여 금식기도를 했는데 응답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자 이사야 58장 3절부터 9절까지 읽으면서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8편 '심고 거두는 법칙'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금식과 보호식
금식기도는 어떤 목적을 갖고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보호식은 금식이 끝난 후 빠진 기를 보충하고 약해진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도록 먹는 음식을 말하며, 금식한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보호식 하는 중에는 몸을 무리하거나 힘든 일은 피해야 한다. 식사는 미음이나 죽으로 하고, 반찬은 주로 채식을 하되 양념은 하지 않으며, 육류나 기름기 있는 음식, 맵거나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 화학조미료와 향신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보호식을 잘하면 붓지 않고 피부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된다.
2009-06-12
제24과모든 것에 화목하라
잠 16:7
읽을말씀 : 잠 16:7 | 외울말씀 : 히 12:14 l 참고 말씀:마 5:9, 잠 8:17
교육목표 : 화목의 중요성을 깨닫고 화목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게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화평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서로 대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화목을 이루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화목을 이루면 우리의 삶은 더욱 활기차고 행복해집니다.
1. 화목의 중요성
히브리서 12장 14절을 보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즉 모든 이와 더불어 화평하는 사람이 하나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며 주님을 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평이 얼마나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화평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서로 낮아지고 용서하며 참아 주는 마음으로 바뀌니 자연히 화평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 불화나 다툼 등 화목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가르침만이 참이요, 진리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나 스승, 책자 등을 통해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니 서로의 생각이나 이론이 진리가 아닌데도 서로 자기 생각이나 이론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화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할 때 화목할 수 있고 섬기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2. 화목지 못한 사람들의 수고와 고통
우리는 화목하지 못한 경우를 성경 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화목하였지만 아내 사라가 잉태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었습니다. 사라는 자녀를 얻고 싶은 인간적인 욕심으로 남편에게 자기 여종인 하갈을 첩으로 취하라고 요구합니다. 만일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겼으면 아무런 문제 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을 터인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동침하여 아이를 잉태하니 하갈은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하였고 사라는 오히려 아브라함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허락을 받아 하갈을 학대하여 도망을 치기까지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후에 90세 된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을 것을 고집합니다. 아브라함은 깊이 근심이 되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냅니다. '원수도 사랑하라' 하신 대로 서로 사랑했다면 한 집에서 오손도손 살 수 있었을 텐데, 결국은 원수를 맺고 내어쫓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큰 불화입니까? 이렇게 악을 행하므로 이 비극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 후손들이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싸우는 것입니다. 바로 이스라엘과 아랍 족속이지요. 믿음의 사람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여 결국 고통이 따르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야곱은 어떠하였습니까? 원래는 자매였던 레아와 라헬 두 사람만이 아내였는데 동생인 라헬은 아들을 낳지 못하고 반면에 언니인 레아는 네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자 라헬은 언니인 레아를 투기하여 자기의 여종인 빌하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어 자기 대신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이것을 본 언니 레아도 자기의 종 실바를 남편에게 첩으로 줍니다. 이처럼 네 여인을 거느리다보니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불행이 초래되었겠습니까? 여인들이 서로 시기 질투하고 다투었으며 그들에게서 난 아들들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쳤습니다. 형제들 중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요셉이 형들의 공모로 지나가는 상인에게 노예로 팔리고 말았지요.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먹힌 줄 알고 오래도록 애통하며 슬퍼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모든 것에 화목지 못하고 서로 불행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 화목을 이룬 사람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누군가와 화목하지 못하여 고통당한다면 여호와를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으로는 솔로몬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게 해 드렸는지 하나님으로부터 전무후무한 지혜를 응답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도 덤으로 받았습니다(왕상 3:4~15).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막힌 담이 헐어지고 죄사함 받아 구원과 영생을 얻을 뿐 아니라 기도와 간구에 응답을 받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 제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에 의해 자기 민족이 몰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사촌 오빠 모르드개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때 왕과 자기 백성인 유다인 사이에 화목을 이루기 위해 에스더는 먼저 여호와를 기쁘시게 했습니다. 수도인 수산 성에 사는 모든 유다인들과 함께 3일을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더를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대로 민족을 구원할 수 있도록 친히 인도하셨지요.
그러면 이방 모압 여인인 룻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족속 남편에게 시집을 왔으나 불행하게도 시아버지와 남편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기 살 길을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정한 마음을 가지고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 행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결국 아들 오벳을 낳아 다윗의 족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4. 화목의 축복을 받으려면
그러면 우리가 화목의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솔로몬처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잘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깨끗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며 선을 행하고 열심히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행함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함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는 고넬료나 다비다를 들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온 가족이 성령을 받았고, 다비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장~10장).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종들과 화목을 이루며 셋째로는 믿음의 형제들과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 자녀 간에, 부부간에 화목해야 하며 형제간에, 이웃 간에, 친구 간에, 직장 동료와 상사 간에, 모든 사람들과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불화나 다툼 등 화목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3. 화목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지 예를 들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7편 '금식과 기도의 위력' 읽어 오기
교육목표 : 화목의 중요성을 깨닫고 화목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게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화평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서로 대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화목을 이루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화목을 이루면 우리의 삶은 더욱 활기차고 행복해집니다.
1. 화목의 중요성
히브리서 12장 14절을 보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즉 모든 이와 더불어 화평하는 사람이 하나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며 주님을 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평이 얼마나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화평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서로 낮아지고 용서하며 참아 주는 마음으로 바뀌니 자연히 화평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 불화나 다툼 등 화목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가르침만이 참이요, 진리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나 스승, 책자 등을 통해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니 서로의 생각이나 이론이 진리가 아닌데도 서로 자기 생각이나 이론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화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할 때 화목할 수 있고 섬기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2. 화목지 못한 사람들의 수고와 고통
우리는 화목하지 못한 경우를 성경 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화목하였지만 아내 사라가 잉태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었습니다. 사라는 자녀를 얻고 싶은 인간적인 욕심으로 남편에게 자기 여종인 하갈을 첩으로 취하라고 요구합니다. 만일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겼으면 아무런 문제 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을 터인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동침하여 아이를 잉태하니 하갈은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하였고 사라는 오히려 아브라함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허락을 받아 하갈을 학대하여 도망을 치기까지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후에 90세 된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을 것을 고집합니다. 아브라함은 깊이 근심이 되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냅니다. '원수도 사랑하라' 하신 대로 서로 사랑했다면 한 집에서 오손도손 살 수 있었을 텐데, 결국은 원수를 맺고 내어쫓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큰 불화입니까? 이렇게 악을 행하므로 이 비극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 후손들이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싸우는 것입니다. 바로 이스라엘과 아랍 족속이지요. 믿음의 사람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여 결국 고통이 따르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야곱은 어떠하였습니까? 원래는 자매였던 레아와 라헬 두 사람만이 아내였는데 동생인 라헬은 아들을 낳지 못하고 반면에 언니인 레아는 네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자 라헬은 언니인 레아를 투기하여 자기의 여종인 빌하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어 자기 대신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이것을 본 언니 레아도 자기의 종 실바를 남편에게 첩으로 줍니다. 이처럼 네 여인을 거느리다보니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불행이 초래되었겠습니까? 여인들이 서로 시기 질투하고 다투었으며 그들에게서 난 아들들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쳤습니다. 형제들 중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요셉이 형들의 공모로 지나가는 상인에게 노예로 팔리고 말았지요.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먹힌 줄 알고 오래도록 애통하며 슬퍼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모든 것에 화목지 못하고 서로 불행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 화목을 이룬 사람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누군가와 화목하지 못하여 고통당한다면 여호와를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으로는 솔로몬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게 해 드렸는지 하나님으로부터 전무후무한 지혜를 응답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도 덤으로 받았습니다(왕상 3:4~15).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막힌 담이 헐어지고 죄사함 받아 구원과 영생을 얻을 뿐 아니라 기도와 간구에 응답을 받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 제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에 의해 자기 민족이 몰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사촌 오빠 모르드개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때 왕과 자기 백성인 유다인 사이에 화목을 이루기 위해 에스더는 먼저 여호와를 기쁘시게 했습니다. 수도인 수산 성에 사는 모든 유다인들과 함께 3일을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더를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대로 민족을 구원할 수 있도록 친히 인도하셨지요.
그러면 이방 모압 여인인 룻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족속 남편에게 시집을 왔으나 불행하게도 시아버지와 남편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기 살 길을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정한 마음을 가지고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 행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결국 아들 오벳을 낳아 다윗의 족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4. 화목의 축복을 받으려면
그러면 우리가 화목의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솔로몬처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잘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깨끗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며 선을 행하고 열심히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행함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함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는 고넬료나 다비다를 들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온 가족이 성령을 받았고, 다비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장~10장).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종들과 화목을 이루며 셋째로는 믿음의 형제들과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 자녀 간에, 부부간에 화목해야 하며 형제간에, 이웃 간에, 친구 간에, 직장 동료와 상사 간에, 모든 사람들과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불화나 다툼 등 화목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3. 화목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지 예를 들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7편 '금식과 기도의 위력' 읽어 오기
2009-06-05
제23과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왕하 5:23~27
읽을말씀 : 왕하 5:23~27 | 외울말씀 : 마 10:26 l 참고 말씀 : 창 18:9~15 ,요 1:47
교육목표 : 자신의 심령을 돌아봄으로 모든 것을 감찰하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며 의 가운데 행하여 범사에 응답을 받게 한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세상의 죄악을 보면 심령이 감각되어 애통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책망할 것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철저히 회개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1.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을 치료한 엘리사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던 아람에는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는 존귀한 군대 장관으로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자기 나라를 구원한 큰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에 걸려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지요. 어느 날 이스라엘에서 사로잡혀 온 작은 계집아이로부터 이스라엘의 엘리사 선지자한테 가면 문둥병도 나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왕의 허락을 받아 왕의 편지와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에 도착하여 왕에게 아람 왕의 편지를 보여주자 왕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편지의 내용이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아람 왕이 자기에게 시비를 걸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쳐들어오려는 계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왕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집에 잔뜩 기대를 갖고 왔는데 엘리사가 나와서 환영해 주기는커녕 심부름꾼을 보내어서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합니다. 이에 나아만은 마음이 분하여서 비참한 심경으로 고국을 향해 돌아가고자 하지요. 이때 그의 종들이 나아만에게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며 간곡히 말립니다. 그가 마음을 돌이켜 요단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담갔다가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엘리사의 말대로 흉측한 문둥병이 깨끗이 물러가고 그의 피부가 마치 어린아이 살같이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 장군은 너무 감사하여 엘리사 앞에 와서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끝내 사양하였고 나아만 장군은 이제부터는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하면서 자기 나라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2. 탐심으로 범죄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
한편 엘리사에게는 게하시라는 사환이 있었는데, 나아만이 가져 온 예물이 너무 탐이 나서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서 교묘히 거짓말을 하여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얻어 자기 집에 감추어 두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엘리사에게 수종 들기 위해 섰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으니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는 무서운 말을 합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을 치료한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게하시의 범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회개할 수 있도록 "네가 어디서 오느냐" 물었지만 게하시는 또 다시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자꾸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엘리사의 말대로 게하시는 문둥병이 들어 참으로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게하시는 아무도 자기의 행동을 알지 못하리라 생각하였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심령을 감각시켜 친히 알려 주시니 엘리사도 게하시의 모든 일을 훤히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이 아무도 몰래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사건이 나오는데 이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에게 이르시기를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에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도 이미 끊어진 후였으므로 뒤편 장막문 있는 데서 사라가 기가 막혀 속으로 웃고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원하기만 하면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든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다 아셨고, 또 모든 일들이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도 다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따라 예수님 앞에 온 나다나엘을 처음 보시고서 "보라 이는 참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칭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자기를 아시느냐고 묻자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직접 본 것이 아닌데도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에 놀란 나다나엘은 즉시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선지자라 할지라도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엘리사 선지자 같은 경우에는 특별히 많은 것을 알았지요. 그 당시 이스라엘과 아람은 전쟁이 잦았는데 엘리사는 가만히 앉아서도 아람 왕이 그 심복들과 어떤 작전을 의논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줌으로 이스라엘은 그때마다 그에 대한 방비를 할 수가 있었지요. 이에 아람 왕은 번민하며 자기 신하들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에게 몰래 고자질하는 줄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왕하 6:8~13).
신약 시대에 와서 베드로에게서도 그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성도들에게 믿음과 은혜가 넘쳐서 한마음 한뜻이 되었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 소유를 팔아 얼마는 감춰 두고 나머지를 전부인 양 사도들 앞에 드렸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두 사람이 짠 일이었지만 베드로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혼이 떠나 죽고 맙니다(행 5:1~10).
4.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사람이 아무리 은밀히 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마 10:26).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 중심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정직하며 온전히 거룩한 자를 원하시는데 이런 자의 길은 형통하고 구부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의를 행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령을 속이는 일이나 주의 종을 속이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나 형제, 자녀나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서로서로 속이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지요. 하나님을 속이고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거짓말하는 것, 과장하는 것, 보태는 것 또한 도적질하는 것, 간음하는 것, 거짓 증언하는 것,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각종 예물을 마음에 작정해 놓고서 하지 아니하는 것, 기도하는 척 하는 것, 중심으로 행하지 못하는 것, 기도해야지 하고 마음에 주관은 되는데 하지 않는 것 등입니다. 그 외에도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하고는 세상으로 빠지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며칠 금식하겠다고 시작했다가 중도에서 힘드니까 포기해 버리는 것 등도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이 감각되어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는 행동이나 생각을 할 때에 심령이 감각되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행하지 말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기필코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고도 심령이 마비되어 감각되지 않는다면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와 같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만일 그러한 것이 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고 모든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아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혹여 자신의 말이나 생각, 마음이나 행동을 통해 짜증이나 혈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스스로 놀란 적이 있나요?
이처럼 심령이 감각되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는 축복이요,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책망이나 지적의 말을 들을 때 쉽게 낙담하고 오해하지는 않았나요?
이 또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기 위해 힘써 기도하면 능히 버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합심하여 감사기도와 더불어 회개기도를 하겠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나 주의 종, 부모나 형제, 자녀나 이웃을 속인 일은 없는지찾아보면서 철저히 회개해야겠습니다.
혹여 회개할 일이 없다면 조그만 실수, 악의 모양이라도 신속히 발견하여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속이는 것보다 더욱 슬픈 일은 자신의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속인 일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는 범죄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혹여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여 회개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6편 '모든 것에 화목하라' 읽어 오기
교육목표 : 자신의 심령을 돌아봄으로 모든 것을 감찰하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며 의 가운데 행하여 범사에 응답을 받게 한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세상의 죄악을 보면 심령이 감각되어 애통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책망할 것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철저히 회개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1.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을 치료한 엘리사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던 아람에는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는 존귀한 군대 장관으로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자기 나라를 구원한 큰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에 걸려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지요. 어느 날 이스라엘에서 사로잡혀 온 작은 계집아이로부터 이스라엘의 엘리사 선지자한테 가면 문둥병도 나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왕의 허락을 받아 왕의 편지와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에 도착하여 왕에게 아람 왕의 편지를 보여주자 왕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편지의 내용이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아람 왕이 자기에게 시비를 걸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쳐들어오려는 계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왕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집에 잔뜩 기대를 갖고 왔는데 엘리사가 나와서 환영해 주기는커녕 심부름꾼을 보내어서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합니다. 이에 나아만은 마음이 분하여서 비참한 심경으로 고국을 향해 돌아가고자 하지요. 이때 그의 종들이 나아만에게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며 간곡히 말립니다. 그가 마음을 돌이켜 요단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담갔다가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엘리사의 말대로 흉측한 문둥병이 깨끗이 물러가고 그의 피부가 마치 어린아이 살같이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 장군은 너무 감사하여 엘리사 앞에 와서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끝내 사양하였고 나아만 장군은 이제부터는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하면서 자기 나라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2. 탐심으로 범죄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
한편 엘리사에게는 게하시라는 사환이 있었는데, 나아만이 가져 온 예물이 너무 탐이 나서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서 교묘히 거짓말을 하여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얻어 자기 집에 감추어 두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엘리사에게 수종 들기 위해 섰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으니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는 무서운 말을 합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을 치료한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게하시의 범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회개할 수 있도록 "네가 어디서 오느냐" 물었지만 게하시는 또 다시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자꾸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엘리사의 말대로 게하시는 문둥병이 들어 참으로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게하시는 아무도 자기의 행동을 알지 못하리라 생각하였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심령을 감각시켜 친히 알려 주시니 엘리사도 게하시의 모든 일을 훤히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이 아무도 몰래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사건이 나오는데 이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에게 이르시기를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에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도 이미 끊어진 후였으므로 뒤편 장막문 있는 데서 사라가 기가 막혀 속으로 웃고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원하기만 하면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든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다 아셨고, 또 모든 일들이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도 다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따라 예수님 앞에 온 나다나엘을 처음 보시고서 "보라 이는 참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칭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자기를 아시느냐고 묻자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직접 본 것이 아닌데도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에 놀란 나다나엘은 즉시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선지자라 할지라도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엘리사 선지자 같은 경우에는 특별히 많은 것을 알았지요. 그 당시 이스라엘과 아람은 전쟁이 잦았는데 엘리사는 가만히 앉아서도 아람 왕이 그 심복들과 어떤 작전을 의논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줌으로 이스라엘은 그때마다 그에 대한 방비를 할 수가 있었지요. 이에 아람 왕은 번민하며 자기 신하들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에게 몰래 고자질하는 줄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왕하 6:8~13).
신약 시대에 와서 베드로에게서도 그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성도들에게 믿음과 은혜가 넘쳐서 한마음 한뜻이 되었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 소유를 팔아 얼마는 감춰 두고 나머지를 전부인 양 사도들 앞에 드렸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두 사람이 짠 일이었지만 베드로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혼이 떠나 죽고 맙니다(행 5:1~10).
4.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사람이 아무리 은밀히 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마 10:26).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 중심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정직하며 온전히 거룩한 자를 원하시는데 이런 자의 길은 형통하고 구부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의를 행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령을 속이는 일이나 주의 종을 속이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나 형제, 자녀나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서로서로 속이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지요. 하나님을 속이고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거짓말하는 것, 과장하는 것, 보태는 것 또한 도적질하는 것, 간음하는 것, 거짓 증언하는 것,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각종 예물을 마음에 작정해 놓고서 하지 아니하는 것, 기도하는 척 하는 것, 중심으로 행하지 못하는 것, 기도해야지 하고 마음에 주관은 되는데 하지 않는 것 등입니다. 그 외에도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하고는 세상으로 빠지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며칠 금식하겠다고 시작했다가 중도에서 힘드니까 포기해 버리는 것 등도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이 감각되어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는 행동이나 생각을 할 때에 심령이 감각되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행하지 말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기필코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고도 심령이 마비되어 감각되지 않는다면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와 같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만일 그러한 것이 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고 모든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아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혹여 자신의 말이나 생각, 마음이나 행동을 통해 짜증이나 혈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스스로 놀란 적이 있나요?
이처럼 심령이 감각되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는 축복이요,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책망이나 지적의 말을 들을 때 쉽게 낙담하고 오해하지는 않았나요?
이 또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기 위해 힘써 기도하면 능히 버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합심하여 감사기도와 더불어 회개기도를 하겠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나 주의 종, 부모나 형제, 자녀나 이웃을 속인 일은 없는지찾아보면서 철저히 회개해야겠습니다.
혹여 회개할 일이 없다면 조그만 실수, 악의 모양이라도 신속히 발견하여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속이는 것보다 더욱 슬픈 일은 자신의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속인 일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는 범죄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혹여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여 회개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6편 '모든 것에 화목하라' 읽어 오기
2009-05-29
제22과용서하는 마음
겔 18:21~24
읽을말씀 : 겔 18:21~24 | 외울말씀 : 마 5:23~24 l 참고 말씀 : 시편 103:12~14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누구와도 원수 맺는 일이 없이 용서하는 마음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에스겔은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 제국에 멸망하기 전, 여호와긴 왕과 같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언자의 사명을 받고 에스겔서를 기록하였는데 그의 사역은 예레미야의 사역과 비슷합니다. 우상을 숭배한 죄의 대가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이후 에스겔은 미래의 축복과 완전한 회복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시키면서 유대민족을 위로합니다.
예레미야와 같이 4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에스겔은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현재의 심판 뒤에는 미래의 영광이 있게 될 것을 알려 주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입니다. 에스겔 18장 21~24절은 죄인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하나님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게 했던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영적인 뜻을 모르거나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너무 잔인하시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악인 멸하기를 즐겨하시겠습니까?
창세기 18~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크고 중하기가 심히 극에 달한 도시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상태에 달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멸하지 않으시고 뭔가 그들을 살려 줄 수 있는 조그만 근거라도 없을까 하여 직접 사자들을 보내어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닮은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만일 소돔성 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청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소돔 성 중에 의인 단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살피러 온 천사들에게도 해를 가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죄가 관영하고 타락하여 남색하는 극한 상태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계속 참고 용서해 준다 해도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한계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로 작정하시지요. 그런데 의인 아브라함이 조카 롯으로 인해 염려할 것을 아시고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그 성을 떠나라고 알려 줍니다. 하지만 사위들은 소돔 성에 남아 있다가 죽었고, 소돔 성이 좋아서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를 돌아보았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가나안 땅 거민들을 진멸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거민들 역시 사랑하고 용서하시기를 오래도록 하셨습니다. 얼마나 참으셨는지 성경을 보면 사백 년 동안이나 참으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참고 또 참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가나안 사람들이 돌이키지 않고 점점 더 죄악이 관영하여져서 마침내 더 이상 회개할 가망성이 없게 되자 그들을 멸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을 남겨 두면 오히려 이스라엘 자손들마저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라합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선을 베푼 사람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2. 이방 민족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의 수도였는데, 이 니느웨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래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멸하지 아니하시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요나 선지자를 니느웨로 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한편, 요나는 적국의 수도인 니느웨가 멸망당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을 갔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요나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자기 나라를 아끼는 선한 마음에 그렇게 했던 것을 이해하시고 요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고 외치게 됩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이 어찌하였습니까? 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며 무론 대소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왕도 재에 앉아 회개하며 조서를 내려서 짐승까지도 금식하며 회개하게 하였고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으라 하였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는 것은 니느웨 백성의 죄악이 심히도 관영해져서 용서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입술로만 회개하지 아니하고 행함으로 온전히 돌이키니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3. 용서하는 마음과 행복한 삶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 죄를 토설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다시 사랑을 입는 내용이 있습니다. 다윗 왕은 큰 죄를 지었지만 깨달은 즉시 회개하였더니 용서해 주시고 대신 솔로몬을 주셨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죽을병에 걸렸다가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함으로 그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았습니다. 그 아들 므낫세는 우상숭배를 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으로 쇠사슬에 결박되어 포로로 잡혀갔으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회개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다시 왕위에 오르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 12~14절을 보면 "동(東)이 서(西)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罪過)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말씀합니다. 사람은 남이 개과천선하여도 그 사람의 과거의 허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말하기가 쉬운데,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모든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기억지도 아니하시니 얼마나 아름다운 용서의 마음입니까?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양을 찾아다니는 목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양 일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 어느 목자가 그중에 한 마리를 잃자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두루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은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잃었던 양 한 마리를 찾아 즐거워하는 목자의 마음과 같아서 누가복음 15장 7절을 보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든지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일, 애매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또 그런 것들로 인해 원수를 맺거나 불목되고, 싫고 밉고 시기하게 되는 등의 일들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용서하는 마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했으니(마 6:12)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이루지 못했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장 23~24절에도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말씀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내 마음부터 할례해서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돌이킨 다음에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그에 대한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를 용서하는 마음이 되어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23장 23~24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형제의 허물을 보았을 때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이번만은 용서하지 못하겠다' 한 경우는 없었나요?
그럴 때 예수님은 어떠한 행함을 보이셨나요?
3. 혹여 겉으로는 용서한다 했지만 마음 중심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여전히 상대의 허물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합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5편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의인이란?
문자 그대로 의로운 사람을 말한다. 먼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보혈로 죄 사함 받으면 의롭다 함을 얻는다. 여기서 나아가 마음속에 있는 악, 곧 비진리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좇아 진리대로 행해 나가면 참된 의인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의인을 기뻐하시며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것에 응답해 주신다.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누구와도 원수 맺는 일이 없이 용서하는 마음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에스겔은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 제국에 멸망하기 전, 여호와긴 왕과 같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언자의 사명을 받고 에스겔서를 기록하였는데 그의 사역은 예레미야의 사역과 비슷합니다. 우상을 숭배한 죄의 대가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이후 에스겔은 미래의 축복과 완전한 회복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시키면서 유대민족을 위로합니다.
예레미야와 같이 4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에스겔은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현재의 심판 뒤에는 미래의 영광이 있게 될 것을 알려 주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입니다. 에스겔 18장 21~24절은 죄인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하나님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게 했던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영적인 뜻을 모르거나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너무 잔인하시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악인 멸하기를 즐겨하시겠습니까?
창세기 18~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크고 중하기가 심히 극에 달한 도시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상태에 달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멸하지 않으시고 뭔가 그들을 살려 줄 수 있는 조그만 근거라도 없을까 하여 직접 사자들을 보내어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닮은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만일 소돔성 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청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소돔 성 중에 의인 단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살피러 온 천사들에게도 해를 가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죄가 관영하고 타락하여 남색하는 극한 상태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계속 참고 용서해 준다 해도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한계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로 작정하시지요. 그런데 의인 아브라함이 조카 롯으로 인해 염려할 것을 아시고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그 성을 떠나라고 알려 줍니다. 하지만 사위들은 소돔 성에 남아 있다가 죽었고, 소돔 성이 좋아서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를 돌아보았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가나안 땅 거민들을 진멸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거민들 역시 사랑하고 용서하시기를 오래도록 하셨습니다. 얼마나 참으셨는지 성경을 보면 사백 년 동안이나 참으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참고 또 참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가나안 사람들이 돌이키지 않고 점점 더 죄악이 관영하여져서 마침내 더 이상 회개할 가망성이 없게 되자 그들을 멸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을 남겨 두면 오히려 이스라엘 자손들마저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라합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선을 베푼 사람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2. 이방 민족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의 수도였는데, 이 니느웨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래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멸하지 아니하시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요나 선지자를 니느웨로 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한편, 요나는 적국의 수도인 니느웨가 멸망당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을 갔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요나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자기 나라를 아끼는 선한 마음에 그렇게 했던 것을 이해하시고 요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고 외치게 됩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이 어찌하였습니까? 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며 무론 대소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왕도 재에 앉아 회개하며 조서를 내려서 짐승까지도 금식하며 회개하게 하였고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으라 하였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는 것은 니느웨 백성의 죄악이 심히도 관영해져서 용서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입술로만 회개하지 아니하고 행함으로 온전히 돌이키니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3. 용서하는 마음과 행복한 삶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 죄를 토설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다시 사랑을 입는 내용이 있습니다. 다윗 왕은 큰 죄를 지었지만 깨달은 즉시 회개하였더니 용서해 주시고 대신 솔로몬을 주셨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죽을병에 걸렸다가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함으로 그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았습니다. 그 아들 므낫세는 우상숭배를 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으로 쇠사슬에 결박되어 포로로 잡혀갔으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회개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다시 왕위에 오르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 12~14절을 보면 "동(東)이 서(西)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罪過)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말씀합니다. 사람은 남이 개과천선하여도 그 사람의 과거의 허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말하기가 쉬운데,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모든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기억지도 아니하시니 얼마나 아름다운 용서의 마음입니까?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양을 찾아다니는 목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양 일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 어느 목자가 그중에 한 마리를 잃자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두루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은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잃었던 양 한 마리를 찾아 즐거워하는 목자의 마음과 같아서 누가복음 15장 7절을 보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든지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일, 애매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또 그런 것들로 인해 원수를 맺거나 불목되고, 싫고 밉고 시기하게 되는 등의 일들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용서하는 마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했으니(마 6:12)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이루지 못했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장 23~24절에도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말씀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내 마음부터 할례해서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돌이킨 다음에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그에 대한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를 용서하는 마음이 되어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23장 23~24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형제의 허물을 보았을 때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이번만은 용서하지 못하겠다' 한 경우는 없었나요?
그럴 때 예수님은 어떠한 행함을 보이셨나요?
3. 혹여 겉으로는 용서한다 했지만 마음 중심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여전히 상대의 허물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합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5편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의인이란?
문자 그대로 의로운 사람을 말한다. 먼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보혈로 죄 사함 받으면 의롭다 함을 얻는다. 여기서 나아가 마음속에 있는 악, 곧 비진리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좇아 진리대로 행해 나가면 참된 의인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의인을 기뻐하시며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것에 응답해 주신다.
2009-05-22
제21과악행에서 돌이키라
렘 25:1~5
읽을말씀 : 렘 25:1~5 | 외울말씀 : 요일 1:7 l 참고 말씀 : 갈 5:19~21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악을 버리고 죄에서 온전히 돌이켜야 함을 알게 한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 진리 말씀대로 행치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악행의 결과는 무엇이며 또한 돌이킬 때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악행에서 돌이켜야 구원
예레미야 25장 1~5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유다 백성들을 향해 악행에서 돌이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후였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왕국마저 그 악행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려 하고 있으니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를 안타까워하며 악행에서 돌이켜야 할 것을 담대히 선포해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신 것은 바로 간음이었습니다. 여기서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라 했는데,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버리고 오히려 돌과 나무로 만든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렘 3:8~10).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출 20:3~5) 그들은 하나님 뜻을 어기고 반대로 나갔던 것입니다. 또한 유다 백성이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 나타내기를 원치 않고 여러 가지 죄 범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23년간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렘 38:4~6).
오늘날 가정, 학교, 직장, 그 외 모든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돌이켜야 할 일들이 매우 많습니다. 가정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가족의 한 일원으로 각자에게 요구되는 사항들이 있습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자'라든가, '서로 기쁨이 되는 일을 행하자' 등등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말이 반복되고 싫증이나 짜증을 내는 일들이 빈번히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매일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다면 그 아내나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받겠습니까? 이는 가정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사회를 보면 죄가 관영하였기에 죄 속에 물들어 알지 못하는 가운데 각종 사기 행각, 간음, 살인, 폭행, 마약, 유괴, 인신매매 등 수많은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는데 이는 마땅히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악행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했습니다. 즉 육체의 일을 행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 곳곳에 하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경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 5:16, 히 6:4~6, 히 10:26, 마 7:21, 마 25장).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나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들이 항상 죄를 버리라고 강조한 것이며 우리는 악행에서 돌이켜 구원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2. 애굽 왕 바로를 통해서 얻는 교훈
출애굽기를 보면 애굽 왕 바로가 등장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힘든 종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백성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모세를 그들의 구원자로 보내십니다. 즉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내셨음을 알려 줍니다(출 7:9~10). 그래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이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립니다.
첫째는 애굽의 모든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요, 둘째는 개구리 재앙이요, 셋째는 이의 재앙입니다. 넷째는 파리 떼의 재앙이요, 다섯째는 악질의 재앙이요, 여섯째는 독종의 재앙입니다. 일곱째는 우박의 재앙이요, 여덟째는 메뚜기 재앙이요, 아홉째는 흑암의 재앙이요, 열 번째는 장자의 재앙으로 생명까지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바로 왕은 열 번째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지만 이내 마음이 변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로 왕의 마음이 또 변할 것을 다 아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급히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두셨습니다. 온 애굽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서 나가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자손이 다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부랴부랴 병거들을 타고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 결과, 홍해를 건너던 애굽 사람들이 병거와 함께 홍해 속에 모두 수장되고 말았지요.
그러면 우리가 바로 왕을 통하여 깨우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뜻을 알고 순종하면 축복이요, 반면에 순종하지 않으면 재앙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라 하셨을 때 금방 돌이키면 그만큼 손실이 적지만 돌이키는 데에 시간을 끄는 만큼 많은 손실을 입습니다(「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 책자 참조).
3. 악행에서 돌이킬 때 임하는 축복
우리가 돌이킬 때에는 진정으로 돌이켜야 합니다(요일 1:7). 한번 마음에서부터 돌이키리라고 결심을 했으면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어떤 것을 결심해 놓고도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자녀들은 성령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키는 것 같다가 다시 번복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이것은 결단코 돌이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비록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을지라도 깨달은 즉시 돌이킨 사람으로 다윗 왕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에게 연단을 허락하시되 다시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다윗 왕은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하는 간음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궤계를 써서 의로운 사람인 우리아까지 죽이는 살인죄를 짓습니다(삼하 11:2~27).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와서 죄를 지적하자 즉시 회개하였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삼하 12:1~23). 다윗 왕은 이 일로 엄청난 연단을 받지만 이로 인해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는 그릇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어떠했습니까? 열왕기하 20장을 보면 히스기야 왕에게 죽을병이 든 사건이 나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와서 그의 죽음을 전해 주었지요. 그때 그는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낯을 벽으로 향하여 여호와께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통회자복을 받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으며, 앗수르 왕의 침략에서 성을 보호해 주겠다는 축복까지 주셨습니다. 단번에 통회자복하며 돌이켰더니 오히려 큰 축복으로 함께하신 것입니다(눅 15:1~22).
이처럼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면 그 지은 상태에서 완전히 돌이키는 것이 진정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셨는데 서쪽으로 가고 있다면 완전히 가던 길을 돌이켜 동쪽으로 가야 합니다. 가끔씩 다시 서쪽으로 간다면 이것을 어찌 돌이킨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예로는 사람들이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때로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 기도하지 못하는 것, 약속해 놓고 이행하지 못하는 것, 마음의 정함을 이루지 못하는 것 등입니다. 이런 것에서 돌이키기로 해 놓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으로 돌이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잘못을 고백하며 금식하고 기도했으면 당연히 행함으로 나타내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돌이키는 자에게 하나님 은혜와 긍휼과 용서, 자비와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결심한 것이나 입으로 말한 것, 또는 생각하거나 주관받은 것, 약속한 것, 이러한 모든 행할 바를 온전히 행함으로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려운 현실 앞에서, 또는 자신의 유익 앞에서 더 좋은 것을 취하고자 변개하는 모습은 없었는지 점검해 봅시다.
2. 나는 과연 하루 중 얼마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나요?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애통의 눈물과 기도를 올려 본 적이 있나요?
3. 우리 삶 속에서 악행에서 돌이켜 변화되고 축복받은 간증이 있다면 함께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4편 '용서하는 마음' 읽어 오기
● 잠깐! 알고 넘어 갑시다.
독종이란?
종양 또는 종기를 말한다. 치명적인 불치의 병으로 애굽에 내린 재앙 외에도 여호와의 궤 때문에 블레셋의 아스돗 사람들에게도 독종이 내려졌다(삼상 5:6~12).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악을 버리고 죄에서 온전히 돌이켜야 함을 알게 한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 진리 말씀대로 행치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악행의 결과는 무엇이며 또한 돌이킬 때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악행에서 돌이켜야 구원
예레미야 25장 1~5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유다 백성들을 향해 악행에서 돌이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후였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왕국마저 그 악행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려 하고 있으니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를 안타까워하며 악행에서 돌이켜야 할 것을 담대히 선포해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신 것은 바로 간음이었습니다. 여기서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라 했는데,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버리고 오히려 돌과 나무로 만든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렘 3:8~10).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출 20:3~5) 그들은 하나님 뜻을 어기고 반대로 나갔던 것입니다. 또한 유다 백성이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 나타내기를 원치 않고 여러 가지 죄 범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23년간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렘 38:4~6).
오늘날 가정, 학교, 직장, 그 외 모든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돌이켜야 할 일들이 매우 많습니다. 가정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가족의 한 일원으로 각자에게 요구되는 사항들이 있습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자'라든가, '서로 기쁨이 되는 일을 행하자' 등등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말이 반복되고 싫증이나 짜증을 내는 일들이 빈번히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매일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다면 그 아내나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받겠습니까? 이는 가정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사회를 보면 죄가 관영하였기에 죄 속에 물들어 알지 못하는 가운데 각종 사기 행각, 간음, 살인, 폭행, 마약, 유괴, 인신매매 등 수많은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는데 이는 마땅히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악행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했습니다. 즉 육체의 일을 행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 곳곳에 하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경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 5:16, 히 6:4~6, 히 10:26, 마 7:21, 마 25장).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나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들이 항상 죄를 버리라고 강조한 것이며 우리는 악행에서 돌이켜 구원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2. 애굽 왕 바로를 통해서 얻는 교훈
출애굽기를 보면 애굽 왕 바로가 등장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힘든 종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백성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모세를 그들의 구원자로 보내십니다. 즉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내셨음을 알려 줍니다(출 7:9~10). 그래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이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립니다.
첫째는 애굽의 모든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요, 둘째는 개구리 재앙이요, 셋째는 이의 재앙입니다. 넷째는 파리 떼의 재앙이요, 다섯째는 악질의 재앙이요, 여섯째는 독종의 재앙입니다. 일곱째는 우박의 재앙이요, 여덟째는 메뚜기 재앙이요, 아홉째는 흑암의 재앙이요, 열 번째는 장자의 재앙으로 생명까지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바로 왕은 열 번째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지만 이내 마음이 변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로 왕의 마음이 또 변할 것을 다 아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급히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두셨습니다. 온 애굽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서 나가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자손이 다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부랴부랴 병거들을 타고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 결과, 홍해를 건너던 애굽 사람들이 병거와 함께 홍해 속에 모두 수장되고 말았지요.
그러면 우리가 바로 왕을 통하여 깨우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뜻을 알고 순종하면 축복이요, 반면에 순종하지 않으면 재앙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라 하셨을 때 금방 돌이키면 그만큼 손실이 적지만 돌이키는 데에 시간을 끄는 만큼 많은 손실을 입습니다(「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 책자 참조).
3. 악행에서 돌이킬 때 임하는 축복
우리가 돌이킬 때에는 진정으로 돌이켜야 합니다(요일 1:7). 한번 마음에서부터 돌이키리라고 결심을 했으면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어떤 것을 결심해 놓고도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자녀들은 성령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키는 것 같다가 다시 번복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이것은 결단코 돌이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비록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을지라도 깨달은 즉시 돌이킨 사람으로 다윗 왕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에게 연단을 허락하시되 다시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다윗 왕은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하는 간음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궤계를 써서 의로운 사람인 우리아까지 죽이는 살인죄를 짓습니다(삼하 11:2~27).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와서 죄를 지적하자 즉시 회개하였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삼하 12:1~23). 다윗 왕은 이 일로 엄청난 연단을 받지만 이로 인해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는 그릇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어떠했습니까? 열왕기하 20장을 보면 히스기야 왕에게 죽을병이 든 사건이 나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와서 그의 죽음을 전해 주었지요. 그때 그는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낯을 벽으로 향하여 여호와께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통회자복을 받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으며, 앗수르 왕의 침략에서 성을 보호해 주겠다는 축복까지 주셨습니다. 단번에 통회자복하며 돌이켰더니 오히려 큰 축복으로 함께하신 것입니다(눅 15:1~22).
이처럼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면 그 지은 상태에서 완전히 돌이키는 것이 진정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셨는데 서쪽으로 가고 있다면 완전히 가던 길을 돌이켜 동쪽으로 가야 합니다. 가끔씩 다시 서쪽으로 간다면 이것을 어찌 돌이킨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예로는 사람들이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때로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 기도하지 못하는 것, 약속해 놓고 이행하지 못하는 것, 마음의 정함을 이루지 못하는 것 등입니다. 이런 것에서 돌이키기로 해 놓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으로 돌이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잘못을 고백하며 금식하고 기도했으면 당연히 행함으로 나타내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돌이키는 자에게 하나님 은혜와 긍휼과 용서, 자비와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결심한 것이나 입으로 말한 것, 또는 생각하거나 주관받은 것, 약속한 것, 이러한 모든 행할 바를 온전히 행함으로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려운 현실 앞에서, 또는 자신의 유익 앞에서 더 좋은 것을 취하고자 변개하는 모습은 없었는지 점검해 봅시다.
2. 나는 과연 하루 중 얼마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나요?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애통의 눈물과 기도를 올려 본 적이 있나요?
3. 우리 삶 속에서 악행에서 돌이켜 변화되고 축복받은 간증이 있다면 함께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4편 '용서하는 마음' 읽어 오기
● 잠깐! 알고 넘어 갑시다.
독종이란?
종양 또는 종기를 말한다. 치명적인 불치의 병으로 애굽에 내린 재앙 외에도 여호와의 궤 때문에 블레셋의 아스돗 사람들에게도 독종이 내려졌다(삼상 5:6~12).
2009-05-15
제20과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되리라
롬 10:10
읽을말씀 : 롬 10:10 | 외울말씀 : 야 3:11
교육목표 : 응답의 하나님께서 역사를 베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참고 말씀 : 민 13:31~33, 14:7~9, 다니엘 3:17~18
하나님께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하나님 역사를 입으로 시인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입술의 고백의 중요성을 깨닫고 믿음의 고백으로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 고백의 중요성
어떤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더욱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나아갈 때 반드시 돌파구를 발견하게 되고 일을 이루어 가는 것을 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하며 말씀을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역사하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탐하고 돌아와서 한 고백이 천지 차이입니다. 그중 열 사람은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여 그 땅을 악평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한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민수기 14장 7~9절에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하지요. 이처럼 그들의 말에는 구구절절이 긍정적인 시인과 믿음의 고백이었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을 제외한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백부장이 자기 하인의 중풍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갸륵한 마음을 보고 따라가 고쳐 주시려 했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며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지요. 그러자 백부장이 시인한 대로 하인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믿음을 칭찬해 주시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어려운 일도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으므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고백하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마가복음 7장 24절 이하를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시지요. 보통 사람 같으면 서운함과 모멸감으로 가버렸을 텐데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변함없이 겸비한 자세로 은혜를 구합니다. 여인은 믿음으로 나왔기 때문에 어떤 말씀에도 상처받지 않고 변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인의 선과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즉시로 딸을 치료해 주시지요. 이처럼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반드시 응답이 옵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넣겠다고 위협할 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담대히 고백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이들은 결국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하나님께서 지키심으로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에 설령 시험과 핍박이 온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오히려 축복받고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2.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과 복을 받은 사람
성경에 보면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결과는 그 입술로 시인한 대로 되었습니다. 장자의 모든 축복권이 동생 야곱에게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열왕기하 6~7장에도 비슷한 일이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오래 포위해서 공격하므로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자식까지 잡아먹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는 성문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헐값에 팔리리라" 예언하지만 왕의 심복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망령된 말을 하지요. 그러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은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다음 날 장관은 아람 군대의 진을 노략하러 가던 백성에게 밟혀 죽고 맙니다. 선지자의 말을 부정하므로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말 한마디에 하나님 역사가 따르기도 하고 마귀 역사가 따르기도 합니다.
반면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오자 여호사밧 왕은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자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가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왕은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격려하지요. 뿐만 아니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왕의 긍정적인 고백과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게 역사하셨습니다.
3.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응답받으려면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입으로 시인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마음에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믿습니다."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무조건 입으로 시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에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므로 비진리를 버리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요.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뜻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니 하나님께서 그가 입술로 시인할 때 응답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하나님 앞에 심고 구제하며 예배와 각종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은커녕 오히려 어려운 일만 닥치니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원망 불평했다면 왜 그런 모습이 나온 것일까요?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마음에 믿었다면 마음이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믿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입술로 시인한 것이니 때가 지나자 본심이 드러난 것이지요. 따라서 똑같이 충성하고 심었어도 누구는 응답받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입술의 고백대로 응답받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입술로 고백했다 해도 그것이 참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의 악이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3장 11절에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믿습니다." 해 놓고 다음에 부정하는 쓴 물을 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인내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인한 대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혹여 힘들고 어려울 때, 시험 환난이 닥쳤을 때에 부정적인 말, 원망이나 불평하는 말, 하나님 혹은 주의 종, 형제를 서운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자녀답게 단물만 내는 거룩한 입술이 되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고보서 3장 11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우리가 수로보니게 여인의 상황에 처했다면 자존심을 내세우며 불편해하지는 않았을까요? 예수님 앞에 어떤 고백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과 수로보니게 여인의 대화를 옆 사람과 함께 나눠 봅시다.
3.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수많은 생명의 말씀들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과연 나는 마음 중심에서 얼마나 믿고 행함으로 나타내고 있나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3편 '악행에서 돌이키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단물이란?
영적으로 진리의 말, 영혼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힘을 주는 말, 믿음의 고백 혹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간증을 말한다. 사람의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단물만 내는 입술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교육목표 : 응답의 하나님께서 역사를 베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참고 말씀 : 민 13:31~33, 14:7~9, 다니엘 3:17~18
하나님께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하나님 역사를 입으로 시인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입술의 고백의 중요성을 깨닫고 믿음의 고백으로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 고백의 중요성
어떤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더욱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나아갈 때 반드시 돌파구를 발견하게 되고 일을 이루어 가는 것을 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하며 말씀을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역사하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탐하고 돌아와서 한 고백이 천지 차이입니다. 그중 열 사람은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여 그 땅을 악평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한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민수기 14장 7~9절에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하지요. 이처럼 그들의 말에는 구구절절이 긍정적인 시인과 믿음의 고백이었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을 제외한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백부장이 자기 하인의 중풍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갸륵한 마음을 보고 따라가 고쳐 주시려 했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며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지요. 그러자 백부장이 시인한 대로 하인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믿음을 칭찬해 주시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어려운 일도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으므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고백하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마가복음 7장 24절 이하를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시지요. 보통 사람 같으면 서운함과 모멸감으로 가버렸을 텐데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변함없이 겸비한 자세로 은혜를 구합니다. 여인은 믿음으로 나왔기 때문에 어떤 말씀에도 상처받지 않고 변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인의 선과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즉시로 딸을 치료해 주시지요. 이처럼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반드시 응답이 옵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넣겠다고 위협할 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담대히 고백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이들은 결국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하나님께서 지키심으로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에 설령 시험과 핍박이 온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오히려 축복받고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2.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과 복을 받은 사람
성경에 보면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결과는 그 입술로 시인한 대로 되었습니다. 장자의 모든 축복권이 동생 야곱에게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열왕기하 6~7장에도 비슷한 일이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오래 포위해서 공격하므로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자식까지 잡아먹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는 성문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헐값에 팔리리라" 예언하지만 왕의 심복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망령된 말을 하지요. 그러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은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다음 날 장관은 아람 군대의 진을 노략하러 가던 백성에게 밟혀 죽고 맙니다. 선지자의 말을 부정하므로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말 한마디에 하나님 역사가 따르기도 하고 마귀 역사가 따르기도 합니다.
반면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오자 여호사밧 왕은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자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가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왕은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격려하지요. 뿐만 아니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왕의 긍정적인 고백과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게 역사하셨습니다.
3.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응답받으려면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입으로 시인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마음에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믿습니다."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무조건 입으로 시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에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므로 비진리를 버리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요.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뜻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니 하나님께서 그가 입술로 시인할 때 응답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하나님 앞에 심고 구제하며 예배와 각종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은커녕 오히려 어려운 일만 닥치니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원망 불평했다면 왜 그런 모습이 나온 것일까요?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마음에 믿었다면 마음이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믿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입술로 시인한 것이니 때가 지나자 본심이 드러난 것이지요. 따라서 똑같이 충성하고 심었어도 누구는 응답받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입술의 고백대로 응답받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입술로 고백했다 해도 그것이 참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의 악이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3장 11절에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믿습니다." 해 놓고 다음에 부정하는 쓴 물을 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인내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인한 대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혹여 힘들고 어려울 때, 시험 환난이 닥쳤을 때에 부정적인 말, 원망이나 불평하는 말, 하나님 혹은 주의 종, 형제를 서운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자녀답게 단물만 내는 거룩한 입술이 되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고보서 3장 11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우리가 수로보니게 여인의 상황에 처했다면 자존심을 내세우며 불편해하지는 않았을까요? 예수님 앞에 어떤 고백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과 수로보니게 여인의 대화를 옆 사람과 함께 나눠 봅시다.
3.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수많은 생명의 말씀들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과연 나는 마음 중심에서 얼마나 믿고 행함으로 나타내고 있나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3편 '악행에서 돌이키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단물이란?
영적으로 진리의 말, 영혼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힘을 주는 말, 믿음의 고백 혹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간증을 말한다. 사람의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단물만 내는 입술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