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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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5
제39과당세에 완전한 자
창 6:5~12
읽을말씀 : 창 6:5~12 | 외울말씀 : 창 6:9 l 참고 말씀:벧전 2:1~2
교육목표 :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받는 축복과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는 길을 깨닫게 한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들 좋을 대로 살며 스스로의 삶을 찬양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등 심히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며 사람의 가치와 본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당세에 완전한 자라 인정받은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남았습니다.
1. 당세에 완전한 의인 노아
창세기 6장 5~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했습니다. 이는 땅에 있는 모든 혈육 있는 사람의 행위가 패괴하였고 강포가 땅에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패괴하다는 것은 부수어지고 무너짐, 즉 타락한 것을 말하고, 강포는 완강하고 포악한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패괴한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는지요. 세상의 패괴와 강포가 한계를 넘어서면 하나님께서는 한탄하며 심판하십니다. 노아 때에는 이 세상을 물로, 아브라함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알곡은 천국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에 심판을 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세에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뿐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의인으로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기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지킴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들도 의인이어서 심판을 면했던 것일까요? 그들이 노아처럼 온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의인 노아에게 속해 있었고, 노아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았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아의 가족이라 해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거나 세상을 사랑하여 갔다면 그들도 멸망에 이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했기에 구원의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오늘날은 어떤 사람이 노아와 같은 의인이 될 수 있을까요? 성실하게 살며 법을 준수하고 의로우며 정직하며 자기 모든 위치와 본분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 은혜로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을 소유하면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점차 진리를 알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준행하고자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노아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고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건져 주시며 친히 역사해 주십니다.
2. 의인을 지키며 구원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연단을 받을 때에 아내 사라를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아내 사라가 매우 아름다우므로 애굽 왕 바로가 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 아브라함에게 닥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니 바로는 사라를 즉시 돌려 줄 수밖에 없었지요.
또한 바울 사도가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깊은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하나님은 지진을 일으켜 착고를 풀고 감옥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이라 해도 고넬료가 구제에 힘쓰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니 그와 그의 가족을 구원해 주고자 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동일하게 환상으로 보여 주고 성령을 통해 역사하여 서로 만나게 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을 받고 구원받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면 항상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며, 그 앞길을 인도해 주고, 미리 예비해 주며 축복하십니다. 이러한 것을 깨달아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죄로 관영된 이 세상에서 당세에 의인이라 칭함 받아 하나님 사랑과 축복을 받아야 하지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니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들도 죄인이 되어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그래야만 멸망의 길로 가던 사람들이 죄사함 받고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생명의 부활로 나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첫째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말씀했습니다.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고 깨닫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은 하나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선에 속하고 악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즉 선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되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악독한 것을 벗어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바른 소리를 듣고 마음에 담아 심비에 새기고 믿음으로 행해야만 생명이 되고 승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각종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는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썩어지고 결국에는 무로 돌아가지만, 하나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의 떡을 떼며, 구제하고 서로 돌아보아 고아나 과부를 살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너희 단장을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즉 외모를 단장하려 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도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했고, 디모데전서 6장 8절에도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먹는 것, 입는 것, 꾸미는 것 등 모든 것이 흠이 되지 않을 정도이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각종 현란한 것들이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탐심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에 물들게 하여 사망의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을 보면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말씀합니다. 그러면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 말씀의 지식을 더하는 것, 경건한 것, 덕을 세우는 것, 사랑하는 것, 오래 참는 것, 용서하는 것, 진실한 것, 무정하지 않는 것 등 이 밖에도 많이 있지요.
이렇게 신의 성품에 참예할 때에 온유한 사람, 성실한 사람, 선행하는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지면(벧전 1:16 ; 마 5:48)) 하나님 성품을 닮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장)가 맺히고, 팔복(마 5장), 그리고 영적인 사랑(고전 13장)이 임하여 범사에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6장 9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노아는 언제 올지 모르는 홍수를 대비하여 오랜 세월 방주를 지어 가는 동안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자신을 조롱하고 핍박하는 세상 사람들을 늘 애타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 죄악을 돌이키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외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차례대로 자신의 각오를 이야기하고 가정복음화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가정복음화를 위해 더욱 기도하며 전도합시다.
● 알고 넘어 갑시다!
노아의 방주 (창 6:14~16)
노아의 방주는 길이 138미터, 폭 23미터, 높이 14미터 정도의 거대한 규모로 지금부터 4,5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에덴동산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해 당시의 기술이나 지식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대로 설계되었기에 노아의 여덟 식구와 수많은 종류의 동물이 40일간의 홍수를 견뎌내고 1년 이상 방주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방주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받는 축복과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는 길을 깨닫게 한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들 좋을 대로 살며 스스로의 삶을 찬양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등 심히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며 사람의 가치와 본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당세에 완전한 자라 인정받은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남았습니다.
1. 당세에 완전한 의인 노아
창세기 6장 5~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했습니다. 이는 땅에 있는 모든 혈육 있는 사람의 행위가 패괴하였고 강포가 땅에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패괴하다는 것은 부수어지고 무너짐, 즉 타락한 것을 말하고, 강포는 완강하고 포악한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패괴한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는지요. 세상의 패괴와 강포가 한계를 넘어서면 하나님께서는 한탄하며 심판하십니다. 노아 때에는 이 세상을 물로, 아브라함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알곡은 천국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에 심판을 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세에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뿐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의인으로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기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지킴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들도 의인이어서 심판을 면했던 것일까요? 그들이 노아처럼 온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의인 노아에게 속해 있었고, 노아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았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아의 가족이라 해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거나 세상을 사랑하여 갔다면 그들도 멸망에 이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했기에 구원의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오늘날은 어떤 사람이 노아와 같은 의인이 될 수 있을까요? 성실하게 살며 법을 준수하고 의로우며 정직하며 자기 모든 위치와 본분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 은혜로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을 소유하면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점차 진리를 알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준행하고자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노아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고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건져 주시며 친히 역사해 주십니다.
2. 의인을 지키며 구원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연단을 받을 때에 아내 사라를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아내 사라가 매우 아름다우므로 애굽 왕 바로가 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 아브라함에게 닥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니 바로는 사라를 즉시 돌려 줄 수밖에 없었지요.
또한 바울 사도가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깊은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하나님은 지진을 일으켜 착고를 풀고 감옥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이라 해도 고넬료가 구제에 힘쓰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니 그와 그의 가족을 구원해 주고자 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동일하게 환상으로 보여 주고 성령을 통해 역사하여 서로 만나게 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을 받고 구원받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면 항상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며, 그 앞길을 인도해 주고, 미리 예비해 주며 축복하십니다. 이러한 것을 깨달아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죄로 관영된 이 세상에서 당세에 의인이라 칭함 받아 하나님 사랑과 축복을 받아야 하지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니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들도 죄인이 되어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그래야만 멸망의 길로 가던 사람들이 죄사함 받고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생명의 부활로 나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첫째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말씀했습니다.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고 깨닫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은 하나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선에 속하고 악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즉 선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되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악독한 것을 벗어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바른 소리를 듣고 마음에 담아 심비에 새기고 믿음으로 행해야만 생명이 되고 승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각종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는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썩어지고 결국에는 무로 돌아가지만, 하나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의 떡을 떼며, 구제하고 서로 돌아보아 고아나 과부를 살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너희 단장을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즉 외모를 단장하려 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도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했고, 디모데전서 6장 8절에도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먹는 것, 입는 것, 꾸미는 것 등 모든 것이 흠이 되지 않을 정도이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각종 현란한 것들이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탐심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에 물들게 하여 사망의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을 보면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말씀합니다. 그러면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 말씀의 지식을 더하는 것, 경건한 것, 덕을 세우는 것, 사랑하는 것, 오래 참는 것, 용서하는 것, 진실한 것, 무정하지 않는 것 등 이 밖에도 많이 있지요.
이렇게 신의 성품에 참예할 때에 온유한 사람, 성실한 사람, 선행하는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지면(벧전 1:16 ; 마 5:48)) 하나님 성품을 닮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장)가 맺히고, 팔복(마 5장), 그리고 영적인 사랑(고전 13장)이 임하여 범사에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6장 9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노아는 언제 올지 모르는 홍수를 대비하여 오랜 세월 방주를 지어 가는 동안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자신을 조롱하고 핍박하는 세상 사람들을 늘 애타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 죄악을 돌이키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외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차례대로 자신의 각오를 이야기하고 가정복음화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가정복음화를 위해 더욱 기도하며 전도합시다.
● 알고 넘어 갑시다!
노아의 방주 (창 6:14~16)
노아의 방주는 길이 138미터, 폭 23미터, 높이 14미터 정도의 거대한 규모로 지금부터 4,5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에덴동산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해 당시의 기술이나 지식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대로 설계되었기에 노아의 여덟 식구와 수많은 종류의 동물이 40일간의 홍수를 견뎌내고 1년 이상 방주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방주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의미한다.
2009-09-18
제38과요동하지 말라
삿 9:7~15
읽을말씀 : 삿 9:7~15 | 외울말씀 : 삿 8:23 l 참고 말씀:왕상 22장
교육목표 :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약방의 감초는 뿌리에 특수한 단맛이 있어서 다른 약재와 달리 유난히 많은 곳에 쓰이지만 환자의 증상에 따라 금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감초의 단맛이 토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흔히 사용하는 물품들 중에도 그것이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잘못 들어가면 부작용이나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1.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이고 왕이 된 아비멜렉
기드온의 아들인 요담이 세겜 사람들을 향해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가시나무의 비유 들어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배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족속에게 고통당하자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으로 하여금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들이 전쟁에 승리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과 그의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려 줄 것을 건의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오히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며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자 그의 첩에게서 낳은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는 야심으로 음모를 꾸밉니다.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에서 사람들을 회유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기드온의 칠십 명의 아들을 전부 몰살시키려 하지요. 이때 기드온의 말째 아들 요담만 화를 면하였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로 인하여 왕이 되었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요담은 참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세겜 남쪽에 있는 그리심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세겜 사람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칩니다.
그 내용인 즉, 나무들이 왕을 삼으려고 하자 감람나무나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는 전부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며 결코 요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왕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가시나무만은 왕이 되라는 요청에 요동하여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한다는 것입니다. 요담은 우화를 통해 아비멜렉이 신뢰할 만한 지도자인지, 과연 왕으로 삼은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것인지를 물으며 세겜 사람들을 책망했습니다.
기드온과 그의 아들들은 감람나무나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같이 결코 왕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은 가시나무와 같이 악한 방법으로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결국 이 일로 아비멜렉과 그를 추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응을 받지요.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던 세겜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손에 의해 진멸되고, 아비멜렉은 여인이 망대 위에서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아 두골이 깨져 죽고 말았습니다.
2.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
모든 사람들이 각자 위치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목자의 위치라면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여 죄악을 버릴 수 있도록 깨우쳐 주며, 또한 날마다 영적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천국 소망 가운데 살며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도 목자의 도리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목자의 말에 순종함으로 의롭고, 깨끗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이나 선지자나 서기관, 바리새인의 사명은 사람들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는 거짓 행함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 가운데 빠지도록 하여 나라까지 망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자기 신분을 지키지 못한 것은 교만과 탐심과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목자는 하나님을 바로 알도록 해 주고, 회개하여 그 마음이 깨끗해지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잘못된 왕들처럼 왕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멀리하여 죄 가운데 빠지거나 오히려 왕으로 인해 나라가 어렵게 되고 모든 백성이 고통 가운데 빠지는 슬픈 일이 생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를 망각하여 자신의 위치를 잃고 요동하면 여러 분야에서 혼동이 오고 망하기 쉽기 때문에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3. 요동하지 않는 신앙생활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지체 중에 어떤 것은 소중하고 어떤 것은 덜 소중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각자 위치에서 나름대로 다 소중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줄 알아 서로 소중히 여기며 결코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근심이나 고통을 주지 말고, 미워하거나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명을 잘 감당할 때 그것이 진정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는 것이며 또한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자신의 위치가 참으로 소중함을 깨달아 서로 귀히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보기에는 저것이 좋으니 나는 저것을 하리라' 하고 자기 일을 그만 둔다면 그것이 어찌 하나님 앞에 합당하겠습니까. 앞서 언급한 감람나무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왕이 되는 것을 마다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했고, 포도나무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면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왕이 되라는 요청에 결국 요동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유를 통해 자신의 분수와 위치를 아는 것, 자기를 깨우쳐 자기를 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길 때에 비로소 큰 일을 이룰 수 있지요.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분야가 다 소중한 것이므로 각자가 어떻게 자기 일을 감당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며, 행한 대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요동하는 가시나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음을 알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4. 기타 요동하지 말아야 할 분야들
로마서 12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큰 믿음도 있고 적은 믿음도 있으니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찬 비바람이 불고 어떤 시험 환난이 닥쳐도 결코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흔들리지 않는 반석에 선 믿음을 갖기까지 요동하지 말아야 하며 오직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였으며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무릎을 꿇고 습관을 좇아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 달라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요동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사랑하는 것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을 끝까지 변치 말고 사랑하며, 그 사랑이 더욱 승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 목자를 사랑하는 마음, 믿음의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사명을 사랑하는 마음에 조금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충성 봉사하는 것, 전도하는 것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생명의 말씀을 전함으로 어둠에 속한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귀하고 복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요동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요동하여 자기 형제를 죽이고 악한 방법으로 왕 위에 오른 아비멜렉을 본문에서 요담은 무엇에 비유하고 있나요?
2.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는 무엇인가요? 또한 각자 처한 위치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도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3. 혹여 내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요동하여 분수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거나 행동을 한 적은 없었는지 점검해 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합심으로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4편 '당세에 완전한 자' 읽어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사시대 '기드온'
이스라엘 다섯 번째 사사인 기드온은 '베는 자', '자르는 자'를 뜻하며, 므낫세 지파 요아스의 마지막 아들이다. 후에 바알 신상을 훼파하여 ' 바알과 다툰다'라는 뜻의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얻는다. 그는 농장과 과수원을 가진 순수한 농부였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곳도 타작마당이었다. 기드온은 3만 2천 명 중에서 3백 명을 선발하여 항아리와 횃불을 이용해 미디안 족속을 격파하고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삿 8:28).
교육목표 :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약방의 감초는 뿌리에 특수한 단맛이 있어서 다른 약재와 달리 유난히 많은 곳에 쓰이지만 환자의 증상에 따라 금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감초의 단맛이 토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흔히 사용하는 물품들 중에도 그것이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잘못 들어가면 부작용이나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1.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이고 왕이 된 아비멜렉
기드온의 아들인 요담이 세겜 사람들을 향해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가시나무의 비유 들어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배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족속에게 고통당하자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으로 하여금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들이 전쟁에 승리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과 그의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려 줄 것을 건의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오히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며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자 그의 첩에게서 낳은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는 야심으로 음모를 꾸밉니다.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에서 사람들을 회유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기드온의 칠십 명의 아들을 전부 몰살시키려 하지요. 이때 기드온의 말째 아들 요담만 화를 면하였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로 인하여 왕이 되었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요담은 참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세겜 남쪽에 있는 그리심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세겜 사람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칩니다.
그 내용인 즉, 나무들이 왕을 삼으려고 하자 감람나무나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는 전부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며 결코 요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왕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가시나무만은 왕이 되라는 요청에 요동하여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한다는 것입니다. 요담은 우화를 통해 아비멜렉이 신뢰할 만한 지도자인지, 과연 왕으로 삼은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것인지를 물으며 세겜 사람들을 책망했습니다.
기드온과 그의 아들들은 감람나무나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같이 결코 왕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은 가시나무와 같이 악한 방법으로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결국 이 일로 아비멜렉과 그를 추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응을 받지요.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던 세겜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손에 의해 진멸되고, 아비멜렉은 여인이 망대 위에서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아 두골이 깨져 죽고 말았습니다.
2.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
모든 사람들이 각자 위치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목자의 위치라면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여 죄악을 버릴 수 있도록 깨우쳐 주며, 또한 날마다 영적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천국 소망 가운데 살며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도 목자의 도리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목자의 말에 순종함으로 의롭고, 깨끗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이나 선지자나 서기관, 바리새인의 사명은 사람들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는 거짓 행함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 가운데 빠지도록 하여 나라까지 망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자기 신분을 지키지 못한 것은 교만과 탐심과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목자는 하나님을 바로 알도록 해 주고, 회개하여 그 마음이 깨끗해지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잘못된 왕들처럼 왕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멀리하여 죄 가운데 빠지거나 오히려 왕으로 인해 나라가 어렵게 되고 모든 백성이 고통 가운데 빠지는 슬픈 일이 생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를 망각하여 자신의 위치를 잃고 요동하면 여러 분야에서 혼동이 오고 망하기 쉽기 때문에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3. 요동하지 않는 신앙생활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지체 중에 어떤 것은 소중하고 어떤 것은 덜 소중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각자 위치에서 나름대로 다 소중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줄 알아 서로 소중히 여기며 결코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근심이나 고통을 주지 말고, 미워하거나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명을 잘 감당할 때 그것이 진정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는 것이며 또한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자신의 위치가 참으로 소중함을 깨달아 서로 귀히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보기에는 저것이 좋으니 나는 저것을 하리라' 하고 자기 일을 그만 둔다면 그것이 어찌 하나님 앞에 합당하겠습니까. 앞서 언급한 감람나무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왕이 되는 것을 마다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했고, 포도나무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면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왕이 되라는 요청에 결국 요동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유를 통해 자신의 분수와 위치를 아는 것, 자기를 깨우쳐 자기를 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길 때에 비로소 큰 일을 이룰 수 있지요.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분야가 다 소중한 것이므로 각자가 어떻게 자기 일을 감당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며, 행한 대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요동하는 가시나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음을 알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4. 기타 요동하지 말아야 할 분야들
로마서 12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큰 믿음도 있고 적은 믿음도 있으니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찬 비바람이 불고 어떤 시험 환난이 닥쳐도 결코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흔들리지 않는 반석에 선 믿음을 갖기까지 요동하지 말아야 하며 오직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였으며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무릎을 꿇고 습관을 좇아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 달라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요동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사랑하는 것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을 끝까지 변치 말고 사랑하며, 그 사랑이 더욱 승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 목자를 사랑하는 마음, 믿음의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사명을 사랑하는 마음에 조금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충성 봉사하는 것, 전도하는 것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생명의 말씀을 전함으로 어둠에 속한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귀하고 복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요동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요동하여 자기 형제를 죽이고 악한 방법으로 왕 위에 오른 아비멜렉을 본문에서 요담은 무엇에 비유하고 있나요?
2.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는 무엇인가요? 또한 각자 처한 위치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도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3. 혹여 내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요동하여 분수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거나 행동을 한 적은 없었는지 점검해 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합심으로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4편 '당세에 완전한 자' 읽어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사시대 '기드온'
이스라엘 다섯 번째 사사인 기드온은 '베는 자', '자르는 자'를 뜻하며, 므낫세 지파 요아스의 마지막 아들이다. 후에 바알 신상을 훼파하여 ' 바알과 다툰다'라는 뜻의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얻는다. 그는 농장과 과수원을 가진 순수한 농부였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곳도 타작마당이었다. 기드온은 3만 2천 명 중에서 3백 명을 선발하여 항아리와 횃불을 이용해 미디안 족속을 격파하고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삿 8:28).
2009-09-11
제37과순 종
삼상 15:22~23
읽을말씀 : 삼상 15:22~23 | 외울말씀 : 삼상 15:22 ㅣ 참고 말씀:롬 10:10, 8:7~8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싫어하시고 순종을 기뻐하시는 이유를 깨달아 오직 순종함으로 의인된 축복을 누리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끌어내리는 힘이 바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마지못해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명령을 기쁨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순종하는 차원이 되면 사람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행하게 되고 어떠한 환경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 순종은 의인으로 들어가는 문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왜 마음으로 믿어야 의에 이르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알고 정녕 마음에 믿으면 주님의 보혈로 모든 죄를 사함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열심히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한 대로 정녕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보면 '미워하지 말라' 하셨으니 미움을 버리고, '시기하지 말라' 하셨으니 시기하지 않으며,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원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행함으로 순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차원을 넘어서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이루어지면 의인의 문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으며, 바로 순종이라는 문으로 들어간 후에 비로소 하나하나 짝을 이루어 가면서 참된 의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2. 질서 안에서 순종하는 사람은 축복
이 세상에는 질서 안에서 순종의 관계가 잘 이루어져야 될 분야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는 부모가 거룩하고 진실되며 바른 삶을 살아갈수록 자기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당연히 자녀가 '예' 하고 순종하기 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녀가 있을 때에는 불행과 슬픔, 다툼의 원인이 되고 고민거리가 되기 쉽지요. 반대로 그 즉시 순종하여 자기를 신속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자녀는 부모의 기쁨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제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깍듯이 스승을 존중하며 배우는 것을 바로 깨우치고, 잘 양식 삼아 활용하며 타의 모범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회사 사장 역시 부하 직원이 자기 말에 순종할 뿐 아니라, 성실하고 진실하며 지혜로워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는 유능한 사람을 원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녀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아브라함이 사랑스럽지 않으셨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생명보다 귀한 독자라도 하나님께 바칠 만큼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의로 여기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2장 12절에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며 크게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고 엄히 책망을 합니다(삼상 15:22~23).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그러면 사울이 왜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는데 사울은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아말렉의 아각 왕을 사로잡는가 하면 기름진 양과 소 등 좋은 것을 남기고 가치 없고 낮은 것만 멸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으로 인해 사울은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사람이 자기의 생각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과는 반대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낮아져라 그러면 높아진다, 죽어져라 그러면 산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어 줘라 등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 육신의 생각과는 너무나 맞지 않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도 순종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면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내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마음도 맞춰 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자기의 생각에 맞추지 말고 '아멘'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4. 순종하는 의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맡아 길을 떠나려 하는데 일을 앞두고 갑자기 집안에 큰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아이구, 내 집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가나?' 하고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가지 못했다면 하나님 일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작정했으니 가자' 하고 가면 그 뒤의 일은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역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철저히 깨우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서로가 자기 생각에 맞추기 때문에 부부나 가족이 하나 되지 못하고, 하나님 마음에도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치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순종의 의인이 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순적하게 역사하셔서 형통케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경우에는 어떠하였습니까? 가뭄이 극심한 때 한 번 먹을 음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음식이기에 먹고 나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것을 자기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합니다(왕상 17:14). 과연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였더니 그 약속대로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양식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바로 순종하면 하나님 역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진리대로 순종하고 행함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며 참으로 영혼이 잘되는 축복과 이 땅에서의 모든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무엘상 15장 22절을 다 함께 읽고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보다 나으니라"
2. 많은 사람이 자신이 순종할 수 있는 것에만 순종합니다.
가령,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한다면 직장 일이 바쁘다, 심방이며 행사 준비가 있다 하여 기도의 양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순종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축복받은 간증을 해 봅시다. 그리고 온전한 순종을 위해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며 불순종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순종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3편 '요동하지 말라' 읽어 오기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싫어하시고 순종을 기뻐하시는 이유를 깨달아 오직 순종함으로 의인된 축복을 누리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끌어내리는 힘이 바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마지못해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명령을 기쁨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순종하는 차원이 되면 사람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행하게 되고 어떠한 환경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 순종은 의인으로 들어가는 문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왜 마음으로 믿어야 의에 이르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알고 정녕 마음에 믿으면 주님의 보혈로 모든 죄를 사함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열심히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한 대로 정녕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보면 '미워하지 말라' 하셨으니 미움을 버리고, '시기하지 말라' 하셨으니 시기하지 않으며,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원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행함으로 순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차원을 넘어서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이루어지면 의인의 문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으며, 바로 순종이라는 문으로 들어간 후에 비로소 하나하나 짝을 이루어 가면서 참된 의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2. 질서 안에서 순종하는 사람은 축복
이 세상에는 질서 안에서 순종의 관계가 잘 이루어져야 될 분야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는 부모가 거룩하고 진실되며 바른 삶을 살아갈수록 자기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당연히 자녀가 '예' 하고 순종하기 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녀가 있을 때에는 불행과 슬픔, 다툼의 원인이 되고 고민거리가 되기 쉽지요. 반대로 그 즉시 순종하여 자기를 신속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자녀는 부모의 기쁨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제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깍듯이 스승을 존중하며 배우는 것을 바로 깨우치고, 잘 양식 삼아 활용하며 타의 모범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회사 사장 역시 부하 직원이 자기 말에 순종할 뿐 아니라, 성실하고 진실하며 지혜로워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는 유능한 사람을 원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녀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아브라함이 사랑스럽지 않으셨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생명보다 귀한 독자라도 하나님께 바칠 만큼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의로 여기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2장 12절에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며 크게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고 엄히 책망을 합니다(삼상 15:22~23).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그러면 사울이 왜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는데 사울은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아말렉의 아각 왕을 사로잡는가 하면 기름진 양과 소 등 좋은 것을 남기고 가치 없고 낮은 것만 멸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으로 인해 사울은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사람이 자기의 생각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과는 반대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낮아져라 그러면 높아진다, 죽어져라 그러면 산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어 줘라 등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 육신의 생각과는 너무나 맞지 않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도 순종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면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내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마음도 맞춰 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자기의 생각에 맞추지 말고 '아멘'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4. 순종하는 의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맡아 길을 떠나려 하는데 일을 앞두고 갑자기 집안에 큰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아이구, 내 집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가나?' 하고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가지 못했다면 하나님 일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작정했으니 가자' 하고 가면 그 뒤의 일은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역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철저히 깨우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서로가 자기 생각에 맞추기 때문에 부부나 가족이 하나 되지 못하고, 하나님 마음에도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치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순종의 의인이 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순적하게 역사하셔서 형통케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경우에는 어떠하였습니까? 가뭄이 극심한 때 한 번 먹을 음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음식이기에 먹고 나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것을 자기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합니다(왕상 17:14). 과연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였더니 그 약속대로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양식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바로 순종하면 하나님 역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진리대로 순종하고 행함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며 참으로 영혼이 잘되는 축복과 이 땅에서의 모든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무엘상 15장 22절을 다 함께 읽고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보다 나으니라"
2. 많은 사람이 자신이 순종할 수 있는 것에만 순종합니다.
가령,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한다면 직장 일이 바쁘다, 심방이며 행사 준비가 있다 하여 기도의 양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순종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축복받은 간증을 해 봅시다. 그리고 온전한 순종을 위해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며 불순종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순종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3편 '요동하지 말라' 읽어 오기
2009-09-04
제36과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창 22:1~13
읽을말씀 : 창 22:1~13 | 외울말씀 : 창 22:12 l 참고 말씀:히 11:19
교육목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를 통해 의인과 믿음에 대해 알게 한다.
서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 관계가 이루어지면 눈빛이나 몸짓만 보아도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설령 이해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해도 오해하지 않고 그 입장에서 이해해 주려고 하지요. 그러나 서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친한 것 같아도 작은 일로도 감정이 상하고 갈라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얼마나 진실함으로 신뢰를 쌓았느냐에 따라 더욱 아름다운 관계로 승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순간에 허물어질 수도 있습니다.
1. 아름다운 신뢰 관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남에게 부탁해야 할 때도 있고, 부탁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만일 악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결코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탐욕을 일삼는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동참하는데 그 결과는 참으로 비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선한 일을 부탁받았을 때는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도 아끼지 않고 나서서 해결해 준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에스더는 부모 없는 자신을 딸처럼 양육한 사촌 오빠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 주기 위해 생명을 걸고 왕 앞에 나가 결국 자기 민족 유다인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합니다. 에스더가 선 가운데에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참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그 결과도 축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서로 얼마나 믿고, 잘 알며,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신의 속에서 서로 주고받을 때 진정 아름답고 온전한 결과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온전하다면 누구든지 하나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항상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신뢰 관계
창세기 12장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온전했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한 목적지를 알려 주지 않고 앞으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지요.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맡기고 말씀에 순종하여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길을 떠났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 뜻에 순종해 나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약속하셨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였습니다. 그 땅에는 기근이 심하여 애굽 땅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하는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오직 인내하며 그분의 뜻을 좇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매우 돈독하였습니다.
3. 아브라함의 의와 믿음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아브라함의 소유가 점점 많아졌고 조카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함으로 복을 받아 부유해지다 보니 둘이 한곳에 더 이상 거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신을 양보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롯이 곤경에 빠졌을 때에도 결코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양성한 가신 318인을 이끌고 가서 롯과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과 재물을 되찾아 오기도 했지요.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모든 일에 의를 좇아 행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 하셨고,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뭇별처럼 자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 중심에서 믿었습니다. 이미 자신과 아내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그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어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을 사랑스럽게 여기며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인 하갈과 동침하여 자녀를 얻을 것을 권유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그는 사라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하갈과 동침하였습니다. 훗날 이것은 큰 풍파를 일으키는 불씨가 되고 맙니다. 하갈이 자신이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여주인 사라를 멸시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오히려 사라가 아브라함을 원망합니다. 이때에도 그는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침 없이 공평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비록 하갈이 아브라함의 자녀를 잉태하였지만, 질서상 사라의 여종이기에 그녀의 눈에 좋을 대로 행하게 합니다. 창세기 16장을 보면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데 아브라함이 86세 때의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해, 하나님께서는 다음 해에 아들을 낳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약속의 씨인 이삭을 100세에 얻게 됩니다. 어느 날, 사라는 여종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봅니다. 그녀는 이를 참지 못하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지요. 늙은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신의 아들이기에 갈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모든 입장에서 오직 정도를 좇아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른 판단을 주실 때를 기다렸고,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셨을 때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시며,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한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고 즉시 순종하여 아침 일찍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 보냅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뜻이면 오직 아멘으로 순종하고, 아니면 돌아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믿음은 금방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종하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에 순간순간 오는 것이며, 그러다 보면 온전케 됩니다.
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
이와 같이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보고 하나님은 축복 주기 위한 시험을 마지막으로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한다면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기 때문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히 11:19).
그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아내와 상의하지 않고 길을 떠납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도 있게 하시고, 있는 것도 없게 할 수 있으니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 해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함 있는 참 믿음이며 온전한 믿음이지요. 이렇게 아브라함의 중심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그대로 믿고 나아가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 역사를 받을 수 있는 그 마음 자체가 바로 의로운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은 의로운 마음이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인이라 말합니다. 또한 의인이 행하는 바가 곧 믿음이며 또한 참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불릴 정도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의를 이루고 항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항상 의인의 삶을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22장 12절을 다 함께 읽고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네가 네 아들 네 □ □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 □ □을 □ □하는 줄을 아노라"
2.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의 문제, 아내 사라와 하갈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각자 본받아야 할 모습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그리고 주일성수, 십일조 등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할 일인데도 쉽게 행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면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2편 '순종' 읽어 오기
● 의인(義人)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모든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된다. 이처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으면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의인이 되려면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죄를 버리는 것은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교육목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를 통해 의인과 믿음에 대해 알게 한다.
서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 관계가 이루어지면 눈빛이나 몸짓만 보아도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설령 이해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해도 오해하지 않고 그 입장에서 이해해 주려고 하지요. 그러나 서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친한 것 같아도 작은 일로도 감정이 상하고 갈라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얼마나 진실함으로 신뢰를 쌓았느냐에 따라 더욱 아름다운 관계로 승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순간에 허물어질 수도 있습니다.
1. 아름다운 신뢰 관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남에게 부탁해야 할 때도 있고, 부탁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만일 악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결코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탐욕을 일삼는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동참하는데 그 결과는 참으로 비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선한 일을 부탁받았을 때는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도 아끼지 않고 나서서 해결해 준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에스더는 부모 없는 자신을 딸처럼 양육한 사촌 오빠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 주기 위해 생명을 걸고 왕 앞에 나가 결국 자기 민족 유다인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합니다. 에스더가 선 가운데에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참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그 결과도 축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서로 얼마나 믿고, 잘 알며,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신의 속에서 서로 주고받을 때 진정 아름답고 온전한 결과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온전하다면 누구든지 하나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항상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신뢰 관계
창세기 12장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온전했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한 목적지를 알려 주지 않고 앞으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지요.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맡기고 말씀에 순종하여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길을 떠났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 뜻에 순종해 나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약속하셨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였습니다. 그 땅에는 기근이 심하여 애굽 땅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하는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오직 인내하며 그분의 뜻을 좇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매우 돈독하였습니다.
3. 아브라함의 의와 믿음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아브라함의 소유가 점점 많아졌고 조카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함으로 복을 받아 부유해지다 보니 둘이 한곳에 더 이상 거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신을 양보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롯이 곤경에 빠졌을 때에도 결코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양성한 가신 318인을 이끌고 가서 롯과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과 재물을 되찾아 오기도 했지요.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모든 일에 의를 좇아 행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 하셨고,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뭇별처럼 자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 중심에서 믿었습니다. 이미 자신과 아내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그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어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을 사랑스럽게 여기며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인 하갈과 동침하여 자녀를 얻을 것을 권유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그는 사라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하갈과 동침하였습니다. 훗날 이것은 큰 풍파를 일으키는 불씨가 되고 맙니다. 하갈이 자신이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여주인 사라를 멸시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오히려 사라가 아브라함을 원망합니다. 이때에도 그는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침 없이 공평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비록 하갈이 아브라함의 자녀를 잉태하였지만, 질서상 사라의 여종이기에 그녀의 눈에 좋을 대로 행하게 합니다. 창세기 16장을 보면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데 아브라함이 86세 때의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해, 하나님께서는 다음 해에 아들을 낳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약속의 씨인 이삭을 100세에 얻게 됩니다. 어느 날, 사라는 여종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봅니다. 그녀는 이를 참지 못하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지요. 늙은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신의 아들이기에 갈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모든 입장에서 오직 정도를 좇아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른 판단을 주실 때를 기다렸고,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셨을 때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시며,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한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고 즉시 순종하여 아침 일찍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 보냅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뜻이면 오직 아멘으로 순종하고, 아니면 돌아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믿음은 금방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종하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에 순간순간 오는 것이며, 그러다 보면 온전케 됩니다.
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
이와 같이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보고 하나님은 축복 주기 위한 시험을 마지막으로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한다면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기 때문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히 11:19).
그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아내와 상의하지 않고 길을 떠납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도 있게 하시고, 있는 것도 없게 할 수 있으니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 해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함 있는 참 믿음이며 온전한 믿음이지요. 이렇게 아브라함의 중심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그대로 믿고 나아가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 역사를 받을 수 있는 그 마음 자체가 바로 의로운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은 의로운 마음이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인이라 말합니다. 또한 의인이 행하는 바가 곧 믿음이며 또한 참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불릴 정도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의를 이루고 항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항상 의인의 삶을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22장 12절을 다 함께 읽고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네가 네 아들 네 □ □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 □ □을 □ □하는 줄을 아노라"
2.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의 문제, 아내 사라와 하갈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각자 본받아야 할 모습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그리고 주일성수, 십일조 등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할 일인데도 쉽게 행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면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2편 '순종' 읽어 오기
● 의인(義人)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모든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된다. 이처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으면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의인이 되려면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죄를 버리는 것은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2009-08-28
제35과지혜롭게 살자
약 3:17~18
읽을말씀 : 약 3:17~18 | 외울말씀 : 눅 6:45 ㅣ 참고 말씀: 잠 3:14~18, 11:30
교육목표 : 선의 지혜와 악의 지혜를 살펴봄으로 선의 지혜의 귀중성을 알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지혜로운 사람은 어려운 일을 훨씬 적게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며 이 땅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때문에 지혜는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지혜의 귀중성
사전에는 지혜를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시비와 선악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뇌세포에 기억장치를 만들어 주시고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아직 보고 들은 것이 없기 때문에 기억장치에 아무런 지식도 들어 있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빨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라면서 부모나 형제, 선생님과 같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갑니다.
이러한 지식을 적절히 배합하여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식을 얼마나 잘 배합해서 활용하느냐에 따라 '지혜롭다', 혹은 '지혜롭지 못하다' 말하게 됩니다. 지혜는 개인뿐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 나아가 나라에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지혜가 어떠한지에 따라 사람이 죽고 살기도 하며, 한 나라가 흥하고 쇠하기도 합니다. 지혜는 크게 나누어 선한 지혜와 악한 지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한 지혜는 선한 마음에서, 악한 지혜는 악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선한 지혜를 쓰면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고, 가정도 흥하며 모든 곳에서 형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더해 줍니다. 반대로 악한 지혜를 쓰면 당장에는 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 망하거나 죽습니다. 그래서 잠언 3장 14~18절에는 선한 지혜의 귀중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2. 선의 지혜와 악의 지혜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자기 유익을 좇아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신속하게 멸망시킬 수 있는 악한 지혜를 압살롬에게 말해 줍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모략이 아닌 다윗의 충신 후새의 모략이 채택되었습니다.
후새는 다윗의 밀명을 받고 예루살렘에 들어온 사람으로서 그는 먼저 압살롬이 자신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아히도벨의 모략을 깨고 자기의 모략을 받아들이게 하여 다윗 일행의 생명을 구해 주는 큰 공을 세웁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에 선으로 악을 이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하 17:14).
아히도벨은 자기의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자기의 모략대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모략대로 하면 압살롬이 다윗에게 패하고, 다윗을 배신한 자기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을 알고 일찌감치 자살을 한 것입니다.
반면에 선한 지혜가 있었던 기생 라합은 어떻습니까? 여호수아 2장을 보면 라합 이라는 기생은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온 이스라엘 정탐꾼 두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자기 집에 유숙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왕이 정탐꾼들을 잡으려고 사람들을 보내자 지혜로운 말로 그들을 따돌려서 정탐꾼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것입니다. 라합은 이러한 선의 지혜로 인해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에 자신뿐 아니라 부모 형제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았습니다. 이처럼 선한 지혜를 좇으면 실패를 면하며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선의 지혜로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하면서 가슴 깊이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지요. 악한 사람은 악 속에서 지혜가 나오기 때문에 상대를 찌르고 무안 주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상대를 무시하거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더는 시험하지 못하도록 지혜롭게 하셨던 것입니다(눅 10:25~37). 이것이 선 속에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 나오는 한 아기를 둘러싼 두 여인의 싸움에 대한 솔로몬의 명판결은 널리 알려져 있는 놀라운 지혜입니다.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는 두 엄마에게 아기를 반으로 갈라 나누어 갖도록 명하여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 확연히 드러나도록 재판하였습니다.
이렇게 선의 지혜가 있으면 억울함을 면할 수도 있고, 간악한 사람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으며, 현명한 판단으로 상대가 고개를 숙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솔로몬 임금처럼 만천하에 놀라운 권위를 나타내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3. 선한 지혜를 받으려면
마음이 성결하면 모든 생각하는 방법론이 진리로 나옵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하신 말씀처럼 선한 마음에서는 선한 생각이 나오고 선한 방법 진리의 방법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꾀를 써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방법론은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듭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리고 성결을 이루었을 때에 선한 지혜가 나옵니다. 하지만 성결하다고 해서 무조건 지혜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성결한 마음이 되면 선한 생각과 말을 하고 선의 행동을 보입니다. 이러한 말과 행동, 생각이 지혜와 겸비되어 합력해서 선을 이루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잘못을 범한 사람이 찾아왔다고 합시다. 만일 마음속에 악이 있다면 그를 책망하거나 몹쓸 사람이라 욕하며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 벗어 버린 선한 마음이라면 미운 감정이 앞서지 않고 상대가 돌이키고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선도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잘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선의 가르침을 베풀고자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선으로 깨우침을 주어야 한다는 지혜가 옵니다.
또한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쥐가 돌아서서 고양이를 물듯이 너무 어려운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이 그런 악이 발동하지 않도록 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지혜가 오지요. 그러한 선의 지혜를 통해 그가 선에 감동되어 더 이상 악을 발전시키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결한 마음이 되면 성결한 방법론이 나오고 또 그에 필요한 지혜가 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장 17~18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성결한 마음을 이루고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결과 지혜가 다르다고 했으니 성결한 마음이 되었다면 지혜를 받는 방법론이 나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1+1=2'라는 것을 배워서 안다면 다음에 그러한 문제가 나왔을 때에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2'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곱하기와 나누기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또 배워야 다른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도 믿음의 선진들의 지혜를 배워 삶에 적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각 사건들에 대한 지혜를 잘 배워 양식을 삼으면 비슷한 일이 닥쳤을 때 성령께서 떠올려 주셔서 그대로 대처하게 하시니 항상 승리의 삶,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누가복음 6장 45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지혜란 쌓은 ( )을 적절히 잘 배합해서 ( )하는 것입니다.
3. 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 )해야 합니다. 마음이 ( )하면 모든 생각하는 방법론이 ( )로 나옵니다.
4. 한 아기를 둘러싼 두 여인의 싸움에 대한 솔로몬의 명판결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5. 우리 삶 속에서 선한 지혜로 축복받은 간증들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1편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읽어 오기
● '지혜 관련 성구' 알고 넘어갑시다!
잠언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4: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잠언 16:16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교육목표 : 선의 지혜와 악의 지혜를 살펴봄으로 선의 지혜의 귀중성을 알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지혜로운 사람은 어려운 일을 훨씬 적게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며 이 땅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때문에 지혜는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지혜의 귀중성
사전에는 지혜를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시비와 선악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뇌세포에 기억장치를 만들어 주시고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아직 보고 들은 것이 없기 때문에 기억장치에 아무런 지식도 들어 있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빨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라면서 부모나 형제, 선생님과 같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갑니다.
이러한 지식을 적절히 배합하여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식을 얼마나 잘 배합해서 활용하느냐에 따라 '지혜롭다', 혹은 '지혜롭지 못하다' 말하게 됩니다. 지혜는 개인뿐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 나아가 나라에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지혜가 어떠한지에 따라 사람이 죽고 살기도 하며, 한 나라가 흥하고 쇠하기도 합니다. 지혜는 크게 나누어 선한 지혜와 악한 지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한 지혜는 선한 마음에서, 악한 지혜는 악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선한 지혜를 쓰면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고, 가정도 흥하며 모든 곳에서 형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더해 줍니다. 반대로 악한 지혜를 쓰면 당장에는 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 망하거나 죽습니다. 그래서 잠언 3장 14~18절에는 선한 지혜의 귀중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2. 선의 지혜와 악의 지혜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자기 유익을 좇아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신속하게 멸망시킬 수 있는 악한 지혜를 압살롬에게 말해 줍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모략이 아닌 다윗의 충신 후새의 모략이 채택되었습니다.
후새는 다윗의 밀명을 받고 예루살렘에 들어온 사람으로서 그는 먼저 압살롬이 자신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아히도벨의 모략을 깨고 자기의 모략을 받아들이게 하여 다윗 일행의 생명을 구해 주는 큰 공을 세웁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에 선으로 악을 이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하 17:14).
아히도벨은 자기의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자기의 모략대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모략대로 하면 압살롬이 다윗에게 패하고, 다윗을 배신한 자기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을 알고 일찌감치 자살을 한 것입니다.
반면에 선한 지혜가 있었던 기생 라합은 어떻습니까? 여호수아 2장을 보면 라합 이라는 기생은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온 이스라엘 정탐꾼 두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자기 집에 유숙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왕이 정탐꾼들을 잡으려고 사람들을 보내자 지혜로운 말로 그들을 따돌려서 정탐꾼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것입니다. 라합은 이러한 선의 지혜로 인해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에 자신뿐 아니라 부모 형제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았습니다. 이처럼 선한 지혜를 좇으면 실패를 면하며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선의 지혜로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하면서 가슴 깊이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지요. 악한 사람은 악 속에서 지혜가 나오기 때문에 상대를 찌르고 무안 주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상대를 무시하거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더는 시험하지 못하도록 지혜롭게 하셨던 것입니다(눅 10:25~37). 이것이 선 속에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 나오는 한 아기를 둘러싼 두 여인의 싸움에 대한 솔로몬의 명판결은 널리 알려져 있는 놀라운 지혜입니다.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는 두 엄마에게 아기를 반으로 갈라 나누어 갖도록 명하여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 확연히 드러나도록 재판하였습니다.
이렇게 선의 지혜가 있으면 억울함을 면할 수도 있고, 간악한 사람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으며, 현명한 판단으로 상대가 고개를 숙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솔로몬 임금처럼 만천하에 놀라운 권위를 나타내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3. 선한 지혜를 받으려면
마음이 성결하면 모든 생각하는 방법론이 진리로 나옵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하신 말씀처럼 선한 마음에서는 선한 생각이 나오고 선한 방법 진리의 방법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꾀를 써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방법론은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듭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리고 성결을 이루었을 때에 선한 지혜가 나옵니다. 하지만 성결하다고 해서 무조건 지혜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성결한 마음이 되면 선한 생각과 말을 하고 선의 행동을 보입니다. 이러한 말과 행동, 생각이 지혜와 겸비되어 합력해서 선을 이루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잘못을 범한 사람이 찾아왔다고 합시다. 만일 마음속에 악이 있다면 그를 책망하거나 몹쓸 사람이라 욕하며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 벗어 버린 선한 마음이라면 미운 감정이 앞서지 않고 상대가 돌이키고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선도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잘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선의 가르침을 베풀고자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선으로 깨우침을 주어야 한다는 지혜가 옵니다.
또한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쥐가 돌아서서 고양이를 물듯이 너무 어려운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이 그런 악이 발동하지 않도록 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지혜가 오지요. 그러한 선의 지혜를 통해 그가 선에 감동되어 더 이상 악을 발전시키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결한 마음이 되면 성결한 방법론이 나오고 또 그에 필요한 지혜가 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장 17~18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성결한 마음을 이루고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결과 지혜가 다르다고 했으니 성결한 마음이 되었다면 지혜를 받는 방법론이 나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1+1=2'라는 것을 배워서 안다면 다음에 그러한 문제가 나왔을 때에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2'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곱하기와 나누기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또 배워야 다른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도 믿음의 선진들의 지혜를 배워 삶에 적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각 사건들에 대한 지혜를 잘 배워 양식을 삼으면 비슷한 일이 닥쳤을 때 성령께서 떠올려 주셔서 그대로 대처하게 하시니 항상 승리의 삶,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누가복음 6장 45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지혜란 쌓은 ( )을 적절히 잘 배합해서 ( )하는 것입니다.
3. 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 )해야 합니다. 마음이 ( )하면 모든 생각하는 방법론이 ( )로 나옵니다.
4. 한 아기를 둘러싼 두 여인의 싸움에 대한 솔로몬의 명판결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5. 우리 삶 속에서 선한 지혜로 축복받은 간증들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1편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읽어 오기
● '지혜 관련 성구' 알고 넘어갑시다!
잠언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4: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잠언 16:16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2009-08-21
제34과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창 31:7~13
읽을말씀 : 창 31:7~13 | 외울말씀 : 창 27:28 l 참고 말씀:창 27:27~29, 30:43
교육목표 : 야곱을 통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축복을 받는지 살펴보고 참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과 인류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그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면 어떠한 불행한 삶이라도 행복한 삶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1. 축복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여 축복받았다고 간증하며 영광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응답받지 못했다고 원망 불평하고 탄식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응답하시며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을 보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만난 사람들은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에도 친히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서 감옥에까지 갇히는 신세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이 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어 국무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결국 요셉 통해 애굽을 구원하셨으며, 부모와 형제들도 기근에서 구원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마음껏 축복 주시기 원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깨우쳐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2.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야곱의 하나님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의 아들로서, 형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형 에서는 몸에 털이 많이 나 있고 사냥을 좋아하였으며 아버지 이삭의 사랑을 받았던 반면 동생 야곱은 매끈매끈한 사람이었고 집안 일을 도와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야곱은 간교한 사람으로 지혜도 많았고, 꿈과 야심이 있어서 형에게 있는 장자의 권리도 갖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와서 몹시 배고파 할 때에 팥죽 한 그릇을 주고 형에게서 장자권을 얻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들자 죽기 전에 장자인 에서를 불러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면 축복해 주겠다고 합니다. 이를 엿들은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인 척 위장하고 들어가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 에서처럼 꾸미고 어머니가 만들어 준 별미를 갖고 들어가 아비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므로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마음껏 축복해 줍니다(창 27:27~29).
그런데 이 일이 곧 탄로가 납니다. 야곱이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형 에서가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아버지 방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삭은 깜짝 놀라 크게 떨며 야곱에게 다 축복해 주었으니 더 이상 축복해 줄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에서는 야곱에게 모든 축복을 빼앗긴 것을 알고 방성대곡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격분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만 하면 야곱을 죽이겠다고 결심합니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일단 몸을 피할 것을 권합니다.
야곱은 하는 수 없이 혈혈단신으로 부모 곁을 떠나 어머니 고향인 하란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기거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기반이 없는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 그저 봉사하는 사람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헌신적으로 한 달 정도 일을 하니 외삼촌 라반이 그에게 일한 대가로 무엇을 보수로 주면 좋을지 묻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을 위해 7년을 봉사하겠으니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7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기쁘게 일하였습니다.
드디어 7년이 지나 결혼 잔치를 치르고 아침에 보니 자기와 결혼한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외삼촌이 야곱을 속이고 라헬의 언니인 레아를 시집보낸 것입니다. 야곱은 어찌된 일이냐고 외삼촌에게 따지자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이 지방 풍속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7일을 기다리면 라헬까지 아내로 줄 테니 다시 7년을 더 봉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야곱은 억울했지만 도망자의 신분으로 감히 원망 불평도 못하고 순순히 승복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칠 수 있습니까? 항상 자기 형편과 처지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울하다, 비위가 상한다' 하여 이것저것 따지거나 자기 분수에 넘치게 행하면 반듯하게 서지 못하고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 제반 상황이 어느 정도 갖추어질 때에 자기 위치가 견고히 서는 것입니다.
마침내 야곱은 라반의 사위가 되어 인척관계가 확실해지고 또 아내도 얻고 자녀도 많이 낳아 이제는 자기 소유물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제 당당히 서기 위해 지혜를 펼치기 시작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외삼촌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합니다. 외삼촌 라반은 여호와께서 야곱으로 인해 자기에게 복을 주신 줄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창 30:27) 복덩어리 야곱을 놓치고 싶지 않아 품삯 이야기를 꺼냅니다.
야곱은 이미 여러 번 품삯을 변개했던 외삼촌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지혜를 써서 외삼촌의 양 떼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 그리고 염소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들을 자기 품삯으로 달라고 합니다. 외삼촌은 자신에게 유리한 제안이라 생각하며 쾌히 승낙하지만, 지혜로운 야곱은 이미 바라봄의 법칙을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군데군데 껍질을 벗겨내어 무늬가 생기게 하고 그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양 떼가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다 세워 놓았습니다. 실한 양, 즉 튼튼한 양이 새끼를 밸 때에는 그렇게 하고, 약한 양이면 가지를 거기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물을 마신 실한 양들은 교미하여 잉태한 후 아롱지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새끼를 많이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한 새끼들은 다 야곱의 것이 되고 약한 것들은 라반의 것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14년간 봉사하면서 어떻게 해야 양이 새끼를 잘 낳고 잘 자라는지 완전히 터득하여 양치는 달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대로 이루어지는 믿음의 법칙 또한 터득하였던 것입니다. 야곱의 소유가 심히 많아지자 라반의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의 것을 착취해서 거부가 되었다 하고 라반의 태도도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3.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 야곱의 축복
그러한 상황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야곱에게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창 31:13). 이 말에 순종하여 야곱은 삼촌 몰래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모든 소유물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출발했습니다. 3일 후에 라반이 이 사실을 알고 자기 형제들을 거느리고 야곱을 뒤쫓아 갑니다. 그러나 밤에 하나님께서 현몽하여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 하시자 라반은 결국 야곱을 해하지 않고 갈르엣에서 약조를 맺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형 에서가 400인을 이끌고 야곱을 만나러 오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장자권을 빼앗기고 복수심에 불타는 형을 생각하니 야곱은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삼촌 라반과 약조했으니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에는 형 에서가 죽이려고 기다리니 전진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시니 형 에서의 마음이 녹아 야곱을 반겨 맞았고, 야곱은 고향에 돌아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야곱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우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은 야곱처럼 고생할 필요가 없고, 아브라함처럼 쉽게 인도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생각, 자기 방법대로 나갈 때는 실패하는 것이 많지만 아브라함처럼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친히 인도하심을 받아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곱은 사냥 갔다 돌아와서 심히 곤비해 있는 형 에서에게 팥죽을 주고 무엇을 샀나요?
2. 야곱은 얍복 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하나님께 얻은 새 이름은 무엇이며, 그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요?
3. 야곱처럼 환난과 고난을 통해 깨어진 후 축복받은 경험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4.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6편 '지혜롭게 살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환도뼈란?
현대 의학 용어로 대퇴골이라 하며, 허리 아래에 있는 넓적다리뼈를 말한다.
교육목표 : 야곱을 통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축복을 받는지 살펴보고 참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과 인류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그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면 어떠한 불행한 삶이라도 행복한 삶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1. 축복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여 축복받았다고 간증하며 영광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응답받지 못했다고 원망 불평하고 탄식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응답하시며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을 보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만난 사람들은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에도 친히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서 감옥에까지 갇히는 신세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이 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어 국무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결국 요셉 통해 애굽을 구원하셨으며, 부모와 형제들도 기근에서 구원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마음껏 축복 주시기 원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깨우쳐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2.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야곱의 하나님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의 아들로서, 형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형 에서는 몸에 털이 많이 나 있고 사냥을 좋아하였으며 아버지 이삭의 사랑을 받았던 반면 동생 야곱은 매끈매끈한 사람이었고 집안 일을 도와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야곱은 간교한 사람으로 지혜도 많았고, 꿈과 야심이 있어서 형에게 있는 장자의 권리도 갖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와서 몹시 배고파 할 때에 팥죽 한 그릇을 주고 형에게서 장자권을 얻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들자 죽기 전에 장자인 에서를 불러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면 축복해 주겠다고 합니다. 이를 엿들은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인 척 위장하고 들어가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 에서처럼 꾸미고 어머니가 만들어 준 별미를 갖고 들어가 아비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므로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마음껏 축복해 줍니다(창 27:27~29).
그런데 이 일이 곧 탄로가 납니다. 야곱이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형 에서가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아버지 방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삭은 깜짝 놀라 크게 떨며 야곱에게 다 축복해 주었으니 더 이상 축복해 줄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에서는 야곱에게 모든 축복을 빼앗긴 것을 알고 방성대곡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격분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만 하면 야곱을 죽이겠다고 결심합니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일단 몸을 피할 것을 권합니다.
야곱은 하는 수 없이 혈혈단신으로 부모 곁을 떠나 어머니 고향인 하란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기거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기반이 없는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 그저 봉사하는 사람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헌신적으로 한 달 정도 일을 하니 외삼촌 라반이 그에게 일한 대가로 무엇을 보수로 주면 좋을지 묻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을 위해 7년을 봉사하겠으니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7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기쁘게 일하였습니다.
드디어 7년이 지나 결혼 잔치를 치르고 아침에 보니 자기와 결혼한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외삼촌이 야곱을 속이고 라헬의 언니인 레아를 시집보낸 것입니다. 야곱은 어찌된 일이냐고 외삼촌에게 따지자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이 지방 풍속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7일을 기다리면 라헬까지 아내로 줄 테니 다시 7년을 더 봉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야곱은 억울했지만 도망자의 신분으로 감히 원망 불평도 못하고 순순히 승복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칠 수 있습니까? 항상 자기 형편과 처지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울하다, 비위가 상한다' 하여 이것저것 따지거나 자기 분수에 넘치게 행하면 반듯하게 서지 못하고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 제반 상황이 어느 정도 갖추어질 때에 자기 위치가 견고히 서는 것입니다.
마침내 야곱은 라반의 사위가 되어 인척관계가 확실해지고 또 아내도 얻고 자녀도 많이 낳아 이제는 자기 소유물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제 당당히 서기 위해 지혜를 펼치기 시작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외삼촌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합니다. 외삼촌 라반은 여호와께서 야곱으로 인해 자기에게 복을 주신 줄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창 30:27) 복덩어리 야곱을 놓치고 싶지 않아 품삯 이야기를 꺼냅니다.
야곱은 이미 여러 번 품삯을 변개했던 외삼촌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지혜를 써서 외삼촌의 양 떼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 그리고 염소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들을 자기 품삯으로 달라고 합니다. 외삼촌은 자신에게 유리한 제안이라 생각하며 쾌히 승낙하지만, 지혜로운 야곱은 이미 바라봄의 법칙을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군데군데 껍질을 벗겨내어 무늬가 생기게 하고 그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양 떼가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다 세워 놓았습니다. 실한 양, 즉 튼튼한 양이 새끼를 밸 때에는 그렇게 하고, 약한 양이면 가지를 거기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물을 마신 실한 양들은 교미하여 잉태한 후 아롱지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새끼를 많이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한 새끼들은 다 야곱의 것이 되고 약한 것들은 라반의 것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14년간 봉사하면서 어떻게 해야 양이 새끼를 잘 낳고 잘 자라는지 완전히 터득하여 양치는 달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대로 이루어지는 믿음의 법칙 또한 터득하였던 것입니다. 야곱의 소유가 심히 많아지자 라반의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의 것을 착취해서 거부가 되었다 하고 라반의 태도도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3.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 야곱의 축복
그러한 상황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야곱에게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창 31:13). 이 말에 순종하여 야곱은 삼촌 몰래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모든 소유물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출발했습니다. 3일 후에 라반이 이 사실을 알고 자기 형제들을 거느리고 야곱을 뒤쫓아 갑니다. 그러나 밤에 하나님께서 현몽하여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 하시자 라반은 결국 야곱을 해하지 않고 갈르엣에서 약조를 맺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형 에서가 400인을 이끌고 야곱을 만나러 오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장자권을 빼앗기고 복수심에 불타는 형을 생각하니 야곱은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삼촌 라반과 약조했으니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에는 형 에서가 죽이려고 기다리니 전진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시니 형 에서의 마음이 녹아 야곱을 반겨 맞았고, 야곱은 고향에 돌아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야곱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우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은 야곱처럼 고생할 필요가 없고, 아브라함처럼 쉽게 인도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생각, 자기 방법대로 나갈 때는 실패하는 것이 많지만 아브라함처럼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친히 인도하심을 받아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곱은 사냥 갔다 돌아와서 심히 곤비해 있는 형 에서에게 팥죽을 주고 무엇을 샀나요?
2. 야곱은 얍복 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하나님께 얻은 새 이름은 무엇이며, 그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요?
3. 야곱처럼 환난과 고난을 통해 깨어진 후 축복받은 경험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4.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6편 '지혜롭게 살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환도뼈란?
현대 의학 용어로 대퇴골이라 하며, 허리 아래에 있는 넓적다리뼈를 말한다.
2009-08-14
제33과순종의 축복
삼상 15:22~23
읽을말씀 : 삼상 15:22~23 | 외울말씀 : 막 9:23 ㅣ 참고 말씀:히 11:8
교육목표 :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과 그 축복을 알게 한다.
어떤 조직과 단체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면 그 안의 질서와 규칙을 잘 지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려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얼토당토 않는 일은 당연히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앙 안에서는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하고, 할 수 없는 것에 순종할 때 그것을 진정한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할 수 없는 것을 행할 때에 의로 여기고 순종의 축복을 주시며 기사와 표적이 따르도록 역사하십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7일 동안 성을 돌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이나 지식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일입니다. 어떻게 성 주변을 돌면서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해서 성이 무너지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이니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보고 무너뜨려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순종의 결과를 통해 믿음이 성장하고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순종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사람 편에서 그런 것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과 경험, 사고방식이 세상으로부터 입력되어 그 한계가 머리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자신도 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 편에서는 한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믿음이 적기 때문이며, 생각 속에서 사람과 과학, 의학적 한계를 깨뜨리면 능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변함없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한 대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에도 그러합니다. 첩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본처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희롱하므로 사라는 이스마엘을 내쫓을 것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근심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지시하고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엄청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100세에 낳아서 애지중지 기르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짐승처럼 잡아 나무 위에 올려 놓고 불로 태워 번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창 22:1~2). 사실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다면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칭할 것이라' 하셨고(창 21:12), '자손이 심히 번성케 되며 나라들과 열왕들이 나오리라'(창 17:6)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바친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런 이유를 대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갑니다(창 22:3).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히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고(히 11:17~19), 결코 선하지 않은 일을 지시하실 리가 없다는 것을 확고부동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3.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고통
아브라함은 이런 믿음을 갖고 순종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며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참으로 컸지요. 권세로는 왕들이 그를 영접할 정도였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그러했고, 블레셋 산악 도시 그랄의 왕 아비멜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고, 주변에 물이 없을 때에도 그에게는 물이 있었습니다. 소돔에 살던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집에서 연습한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출할 정도로 많은 종이 있었으며,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신이 앞으로 하실 일을 자상하게 설명해 주실 정도로 영적인 축복까지 받았지요(창 18:17).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며 그에게 축복하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힘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각과 마음, 자기 계산에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순종할 자세를 가진 사람은 자기 유익이나 지금 상황을 따지지 않고 '내가 어찌하면 순종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깨뜨리고 순종할 때 놀라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얼마나 싫어하며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통을 가져다주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함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땅의 소산으로 드렸지만 동생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만 기뻐 받으셨지요. 가인은 이를 시기하여 아우를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불순종이 살인을 낳고 저주받은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울 왕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해야 하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정해 준 기한까지 오지 않자 그를 대신하여 자기가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사무엘은 사울 왕을 책망하였으나 그래도 사울은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불순종의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셨지만 좋은 것들은 남기고 다 멸하지 않았지요. 사무엘은 다시 사울 왕을 책망하여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하였습니다.
이처럼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사울 왕처럼 자신의 지위를 잃고 멸망으로 치닫거나 각종 환난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나 나아만 장군처럼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죽을 고비도 넘기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으려고 했던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아무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곳마다 놀라운 축복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오직 믿음으로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은 물론, 자녀의 축복,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등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9장 23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진정한 순종은 무엇이며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와 불순종할 때의 열매들이 어떠했는지 말해 봅시다.
4. 우리 삶 속에서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하여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것이 있나요?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께 맡기며 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5편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번제란?
구약시대 제사법 중에 하나로서 제물이 되는 짐승을 불에 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이다(레 1:6~9). 희생되는 짐승은 흠이 없는 수컷에만 한하여 주로 소·양·염소 등을 드렸으며, 가난한 이들은 산비둘기·집비둘기 등을 바치기도 했다(레 5:7). 짐승을 잡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우리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번제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 온전히 거하여 거룩하게 살며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오늘날 번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주일 예배를 말한다.
교육목표 :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과 그 축복을 알게 한다.
어떤 조직과 단체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면 그 안의 질서와 규칙을 잘 지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려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얼토당토 않는 일은 당연히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앙 안에서는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하고, 할 수 없는 것에 순종할 때 그것을 진정한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할 수 없는 것을 행할 때에 의로 여기고 순종의 축복을 주시며 기사와 표적이 따르도록 역사하십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7일 동안 성을 돌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이나 지식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일입니다. 어떻게 성 주변을 돌면서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해서 성이 무너지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이니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보고 무너뜨려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순종의 결과를 통해 믿음이 성장하고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순종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사람 편에서 그런 것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과 경험, 사고방식이 세상으로부터 입력되어 그 한계가 머리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자신도 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 편에서는 한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믿음이 적기 때문이며, 생각 속에서 사람과 과학, 의학적 한계를 깨뜨리면 능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변함없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한 대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에도 그러합니다. 첩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본처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희롱하므로 사라는 이스마엘을 내쫓을 것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근심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지시하고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엄청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100세에 낳아서 애지중지 기르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짐승처럼 잡아 나무 위에 올려 놓고 불로 태워 번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창 22:1~2). 사실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다면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칭할 것이라' 하셨고(창 21:12), '자손이 심히 번성케 되며 나라들과 열왕들이 나오리라'(창 17:6)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바친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런 이유를 대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갑니다(창 22:3).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히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고(히 11:17~19), 결코 선하지 않은 일을 지시하실 리가 없다는 것을 확고부동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3.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고통
아브라함은 이런 믿음을 갖고 순종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며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참으로 컸지요. 권세로는 왕들이 그를 영접할 정도였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그러했고, 블레셋 산악 도시 그랄의 왕 아비멜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고, 주변에 물이 없을 때에도 그에게는 물이 있었습니다. 소돔에 살던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집에서 연습한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출할 정도로 많은 종이 있었으며,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신이 앞으로 하실 일을 자상하게 설명해 주실 정도로 영적인 축복까지 받았지요(창 18:17).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며 그에게 축복하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힘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각과 마음, 자기 계산에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순종할 자세를 가진 사람은 자기 유익이나 지금 상황을 따지지 않고 '내가 어찌하면 순종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깨뜨리고 순종할 때 놀라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얼마나 싫어하며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통을 가져다주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함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땅의 소산으로 드렸지만 동생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만 기뻐 받으셨지요. 가인은 이를 시기하여 아우를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불순종이 살인을 낳고 저주받은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울 왕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해야 하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정해 준 기한까지 오지 않자 그를 대신하여 자기가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사무엘은 사울 왕을 책망하였으나 그래도 사울은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불순종의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셨지만 좋은 것들은 남기고 다 멸하지 않았지요. 사무엘은 다시 사울 왕을 책망하여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하였습니다.
이처럼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사울 왕처럼 자신의 지위를 잃고 멸망으로 치닫거나 각종 환난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나 나아만 장군처럼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죽을 고비도 넘기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으려고 했던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아무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곳마다 놀라운 축복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오직 믿음으로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은 물론, 자녀의 축복,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등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9장 23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진정한 순종은 무엇이며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와 불순종할 때의 열매들이 어떠했는지 말해 봅시다.
4. 우리 삶 속에서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하여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것이 있나요?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께 맡기며 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5편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번제란?
구약시대 제사법 중에 하나로서 제물이 되는 짐승을 불에 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이다(레 1:6~9). 희생되는 짐승은 흠이 없는 수컷에만 한하여 주로 소·양·염소 등을 드렸으며, 가난한 이들은 산비둘기·집비둘기 등을 바치기도 했다(레 5:7). 짐승을 잡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우리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번제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 온전히 거하여 거룩하게 살며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오늘날 번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주일 예배를 말한다.
2009-08-07
제32과순 전
마 12:18-21
읽을말씀 : 마 12:18-21 | 외울말씀 : 마 12:20 l 참고 말씀:욥 1:20~21
교육목표 : 순전의 영적인 의미와 순전한 사람이 받는 축복에 대해 살펴보고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마음이 순전치 못하여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이 순전한 사람은 허탄한 것을 좇지 않고 자기 마음을 지키며 거룩함을 좇아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순전한 자가 되면 하늘로부터 지혜를 받고 명철의 길이 보여서 모든 일에 형통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순전의 의미와 순전한 사람
사전에 '순전' 이란 '순수하고 완전함'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순전한 사람'이란 일반적으로 '덕행이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순전한 사람은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령 해로운 일을 만나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생각하며 마음에 수용하고 모든 면에서 자숙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난으로 인해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이렇게 욥은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으며 순전을 굳게 지켰습니다.
욥기 2장 3절에는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죄악이 가득 찬 세상에서 각박하게 살며 덕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본래의 사람에게 주신 것은 거룩함과 진실함, 아름다움과 깨끗함, 화평함과 덕스러움인데 이러한 본연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잃어버린 하나님 형상을 되찾아 사람의 본분을 다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미 성장 과정에서부터 그러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맹목적으로 주어진 삶을 이어 갑니다. 나름대로 세상에서 입력한 자기 생각에 맞추어 살아가기 때문에 진정 깨끗한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지요.
2.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마태복음 12장 19-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순전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말씀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보통 나무나 화초의 잎이 상하면 잘라 내거나 가지치기를 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외면하고 꺾어 버리려고 합니다. 이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상한 것이라도 꺾지 않고 다시 살리려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예수님 마음을 본받아 설령 내게 불이익을 끼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항상 선한 마음으로 대하며 진리를 좇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즉 상한 갈대도 꺾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에 해당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이 선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도 악을 품고 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도 버리지 않고 진리로 깨우쳐 주며 인내하셨습니다. 또한 병들고 불쌍한 영혼들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구원하려 하셨지요. 이처럼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부족하고 병들고 연약하여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사랑하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말아야 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가능성이 없고 모든 것이 포기 상태에 이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살려 내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할 수 있는 오래 참음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것이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바로 오래 참음의 열매와 같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바라보며 끝까지 참아 주고 이끌어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함께하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르치며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메시아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며 비웃었으나 오히려 그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대신 용서의 간구를 올리셨습니다.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한 사람들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설령 자기 부모나 자녀라 해도 수용할 수 있는 어떤 한도를 넘어서면 꺼져 가는 심지를 끄듯 꺼 버립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나가는 것이 순전한 마음이며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입니다.
셋째로, 다투지도 않고 들레지도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만나도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선의 지혜와 진리 말씀으로 그 모든 것들을 수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시기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일로 모함하고 다투며 각종 악을 동원하여 다가오곤 했으나 결코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직 선한 마음으로 그들을 일깨워 주고 피해야 할 자리는 피하면서 화평을 이루었습니다(눅 4장, 9장).
오늘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자기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으면 큰 소리가 나고 상대에게 고통과 아픔, 슬픔을 주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에서 돌이켜 평화와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들레지도 않고 모든 행함이 참으로 거룩하고 깨끗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넘치는 위엄과 권세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을 내세우지 않고, 그저 마땅히 행할 본분을 행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일을 누가 알아 주기 원하며 들레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 좋은 일을 드러나도록 역사하십니다.
3. 순전한 사람이 받는 축복
아브라함은 마음이 순전하고 모든 행함이 온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도 않고, 악으로 갚지도 않았으며, 모든 것을 선 속에서 해결하면서 참고 인내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소유가 많아져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다툴 때에도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삼촌이지만 조카에게 양보하고 자기의 유익을 좇아 더 좋은 쪽을 취한 조카에게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롯이 포로로 잡혀 가자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 구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결코 다투거나 들레는 일이 없이 모든 것을 양보하며 살았지만 손해 보기는커녕 오히려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으로 합당하게 행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으로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모든 복을 누렸으며 하나님의 벗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이 순전하여 예수님처럼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며, 다투거나 들레는 일도 없이 화평하고 평안하게 살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12장 20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떠한 마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먼저, 상한 ( )를 꺾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꺼져 가는 ( )를 끄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다투지 않고 ( )도 않아야 합니다.
3. 최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던 일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내 탓으로 돌렸던 일이 있었다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4편 '순종의 축복'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오래 참음이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23) 중에 하나로, 이해하고 용서하여 진리 안에서 참는 것을 말한다. 이는 화가 나고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분냄, 혈기 등 악을 버리고 선과 진리로 채우는 것이다.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으면 어떠한 사람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한다든지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다.
교육목표 : 순전의 영적인 의미와 순전한 사람이 받는 축복에 대해 살펴보고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마음이 순전치 못하여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이 순전한 사람은 허탄한 것을 좇지 않고 자기 마음을 지키며 거룩함을 좇아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순전한 자가 되면 하늘로부터 지혜를 받고 명철의 길이 보여서 모든 일에 형통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순전의 의미와 순전한 사람
사전에 '순전' 이란 '순수하고 완전함'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순전한 사람'이란 일반적으로 '덕행이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순전한 사람은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령 해로운 일을 만나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생각하며 마음에 수용하고 모든 면에서 자숙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난으로 인해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이렇게 욥은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으며 순전을 굳게 지켰습니다.
욥기 2장 3절에는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죄악이 가득 찬 세상에서 각박하게 살며 덕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본래의 사람에게 주신 것은 거룩함과 진실함, 아름다움과 깨끗함, 화평함과 덕스러움인데 이러한 본연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잃어버린 하나님 형상을 되찾아 사람의 본분을 다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미 성장 과정에서부터 그러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맹목적으로 주어진 삶을 이어 갑니다. 나름대로 세상에서 입력한 자기 생각에 맞추어 살아가기 때문에 진정 깨끗한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지요.
2.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마태복음 12장 19-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순전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말씀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보통 나무나 화초의 잎이 상하면 잘라 내거나 가지치기를 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외면하고 꺾어 버리려고 합니다. 이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상한 것이라도 꺾지 않고 다시 살리려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예수님 마음을 본받아 설령 내게 불이익을 끼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항상 선한 마음으로 대하며 진리를 좇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즉 상한 갈대도 꺾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에 해당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이 선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도 악을 품고 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도 버리지 않고 진리로 깨우쳐 주며 인내하셨습니다. 또한 병들고 불쌍한 영혼들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구원하려 하셨지요. 이처럼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부족하고 병들고 연약하여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사랑하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말아야 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가능성이 없고 모든 것이 포기 상태에 이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살려 내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할 수 있는 오래 참음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것이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바로 오래 참음의 열매와 같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바라보며 끝까지 참아 주고 이끌어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함께하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르치며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메시아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며 비웃었으나 오히려 그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대신 용서의 간구를 올리셨습니다.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한 사람들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설령 자기 부모나 자녀라 해도 수용할 수 있는 어떤 한도를 넘어서면 꺼져 가는 심지를 끄듯 꺼 버립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나가는 것이 순전한 마음이며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입니다.
셋째로, 다투지도 않고 들레지도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만나도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선의 지혜와 진리 말씀으로 그 모든 것들을 수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시기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일로 모함하고 다투며 각종 악을 동원하여 다가오곤 했으나 결코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직 선한 마음으로 그들을 일깨워 주고 피해야 할 자리는 피하면서 화평을 이루었습니다(눅 4장, 9장).
오늘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자기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으면 큰 소리가 나고 상대에게 고통과 아픔, 슬픔을 주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에서 돌이켜 평화와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들레지도 않고 모든 행함이 참으로 거룩하고 깨끗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넘치는 위엄과 권세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을 내세우지 않고, 그저 마땅히 행할 본분을 행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일을 누가 알아 주기 원하며 들레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 좋은 일을 드러나도록 역사하십니다.
3. 순전한 사람이 받는 축복
아브라함은 마음이 순전하고 모든 행함이 온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도 않고, 악으로 갚지도 않았으며, 모든 것을 선 속에서 해결하면서 참고 인내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소유가 많아져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다툴 때에도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삼촌이지만 조카에게 양보하고 자기의 유익을 좇아 더 좋은 쪽을 취한 조카에게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롯이 포로로 잡혀 가자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 구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결코 다투거나 들레는 일이 없이 모든 것을 양보하며 살았지만 손해 보기는커녕 오히려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으로 합당하게 행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으로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모든 복을 누렸으며 하나님의 벗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이 순전하여 예수님처럼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며, 다투거나 들레는 일도 없이 화평하고 평안하게 살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12장 20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떠한 마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먼저, 상한 ( )를 꺾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꺼져 가는 ( )를 끄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다투지 않고 ( )도 않아야 합니다.
3. 최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던 일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내 탓으로 돌렸던 일이 있었다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4편 '순종의 축복'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오래 참음이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23) 중에 하나로, 이해하고 용서하여 진리 안에서 참는 것을 말한다. 이는 화가 나고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분냄, 혈기 등 악을 버리고 선과 진리로 채우는 것이다.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으면 어떠한 사람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한다든지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다.
2009-07-31
제31과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룻 1:16
읽을말씀 : 룻 1:16 | 외울말씀 : 갈 6:9 ㅣ 참고 말씀:고전 13:4
교육목표 : 룻처럼 변함없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매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영계의 법칙 또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됩니다. 오늘은 룻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비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끝까지 선을 행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니실 때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충성하며 어떻게 순교할 것인지, 누가 자신을 팔 자인지 이미 그들의 마음 중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수제자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고백했을 때에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재차 고백했지만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마 26:33-35).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계셨지만 그를 버리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든 깨닫고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알려 주며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하셨지요(요 6:64, 70-71). 자기를 팔거나 죽일 자인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와 동행하며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영의 마음을 이루지 못하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도 열매가 보이지 않으니 '내가 괜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함없는 마음으로 끝까지 선을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2. 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룻
룻은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사사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치리하던 때에 살던 여인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가 죽으니 이스라엘은 이방인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자 우상 숭배가 틈탔고 이로 인해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해졌습니다. 이때 유다 땅 베들레헴에 살던 나오미 가정은 온 가족이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 지방으로 이주합니다.
모압은 이스라엘 동편에 있는 오늘날의 요르단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는 환난이 그치지 않아 가정의 기둥인 남편과, 이미 결혼한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습니다. 기근이라는 환난을 피해 온 가족이 고향까지 떠났는데 더 큰 환난을 만났으니 나오미는 얼마나 기구한 인생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자녀가 하나님 품을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영적으로 하나님 품인데 나오미 가정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인의 나라 모압 지방으로 갔으니 세상을 바라본 것이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분명히 하나님 품 안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데도 어려움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시험 환난을 통하여 연단하는 것이며,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축복받는 하나님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 품을 떠나지 말고 변함없이 하나님 품 안에서 견디며 이겨내야 시험 환난이 물러가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침내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땅, 곧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고자 모압 땅을 떠나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도중에 나오미는 남편도 없는 두 며느리를 불쌍히 여겨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 평안히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큰며느리 오르바는 울며 친정으로 돌아가고 작은며느리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붙좇습니다.
또 다시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강권하자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하면서 자신의 굳은 결심을 표명합니다. 나오미는 더 이상 권면하지 못하고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룻은 원래 모압 여인이었으나 나오미의 가정에 시집온 이후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남편이 죽었으니 젊은 나이에 자유를 누릴 수도 있었지만 정한 마음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홀로 된 시모를 끝까지 봉양하였습니다. 이러한 룻에 대한 기록이 성경 66권 가운데 한 권을 차지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진정 아름다운 룻의 마음을 본받아 하나님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룻이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위대한 행함을 보였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3. 끝까지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룻
룻은 시모를 공양하기 위해 이삭줍기를 하였습니다. 이 효성을 전해 들은 보아스라는 사람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부유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룻에게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자기의 밭에서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세 율법에 기업 무르기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팔았던 토지를 원래의 소유권대로 회복시키거나 자식 없이 죽은 사람의 대를 잇도록 해 주기 위해 죽은 사람의 미망인을 그 사망자의 친척이 취하여 대를 이을 수 있게 하는 법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바로 그 집안에 기업 무를 자 중의 하나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안식할 곳을 구하여 줌으로 복된 삶을 살게 하려고 룻에게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고 지시합니다.
룻이 시모 나오미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자 보아스는 룻에게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하기로 맹세합니다. 결국 보아스는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아들 오벳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룻은 참으로 변함없는 중심으로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기에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고,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4.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우리는 룻의 삶을 통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때가 이르매 거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룻이 어떤 결과를 바라고 선을 행한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니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듯이 우리도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축복을 받습니다. 룻은 영적인 사랑(고전 13장)이나 성령의 9가지 열매(갈 5:22-23)가 그대로 맺혀 있었던 여인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축복의 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떠한 불이익을 당해도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혀도, 매를 맞아도, 사자밥이 되고 풀무불에 던져져도 결코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마음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내보이니 원수 마귀가 역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복음이 더 크게 전파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이처럼 목적을 두어 나가는 곳에 우리가 피곤치 않으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고 믿음으로 행군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응답받은 줄 믿고 룻과 같은 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붙좇는 사람이 된다면 어찌 응답받지 못하겠습니까? 끝까지 믿음으로 행군하여 간구와 기도에 응답받으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룻은 시모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을 때 무엇이라고 했나요?
3. 룻기 4장 18절 이하를 보고 ( ) 안에 알맞은 이름을 써 넣으세요.
베레스-헤스론-람-암미나답-나손-살몬-( )-( )-( )-다윗
4. 룻의 고백을 활용하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결단해 봅시다(룻 1:16-17).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3편 '순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사사(士師)란?
사사란 히브리어로 '재판한다', '다스린다', '구원한다'는 의미이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부터 왕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한 정치, 군사적 지도자를 말한다. 평상시에는 재판을 하며(삿 4:5), 백성을 정치적으로 다스렸고, 비상시에는 군사적인 지도자로 활동했다. 사사들의 신분과 직업은 아주 다양했으며 임무가 끝나면 대부분 제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사사는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기보다 지역적으로 다스렸으며 세습되지 않았다.
교육목표 : 룻처럼 변함없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매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영계의 법칙 또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됩니다. 오늘은 룻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비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끝까지 선을 행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니실 때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충성하며 어떻게 순교할 것인지, 누가 자신을 팔 자인지 이미 그들의 마음 중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수제자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고백했을 때에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재차 고백했지만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마 26:33-35).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계셨지만 그를 버리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든 깨닫고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알려 주며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하셨지요(요 6:64, 70-71). 자기를 팔거나 죽일 자인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와 동행하며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영의 마음을 이루지 못하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도 열매가 보이지 않으니 '내가 괜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함없는 마음으로 끝까지 선을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2. 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룻
룻은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사사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치리하던 때에 살던 여인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가 죽으니 이스라엘은 이방인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자 우상 숭배가 틈탔고 이로 인해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해졌습니다. 이때 유다 땅 베들레헴에 살던 나오미 가정은 온 가족이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 지방으로 이주합니다.
모압은 이스라엘 동편에 있는 오늘날의 요르단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는 환난이 그치지 않아 가정의 기둥인 남편과, 이미 결혼한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습니다. 기근이라는 환난을 피해 온 가족이 고향까지 떠났는데 더 큰 환난을 만났으니 나오미는 얼마나 기구한 인생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자녀가 하나님 품을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영적으로 하나님 품인데 나오미 가정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인의 나라 모압 지방으로 갔으니 세상을 바라본 것이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분명히 하나님 품 안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데도 어려움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시험 환난을 통하여 연단하는 것이며,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축복받는 하나님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 품을 떠나지 말고 변함없이 하나님 품 안에서 견디며 이겨내야 시험 환난이 물러가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침내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땅, 곧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고자 모압 땅을 떠나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도중에 나오미는 남편도 없는 두 며느리를 불쌍히 여겨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 평안히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큰며느리 오르바는 울며 친정으로 돌아가고 작은며느리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붙좇습니다.
또 다시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강권하자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하면서 자신의 굳은 결심을 표명합니다. 나오미는 더 이상 권면하지 못하고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룻은 원래 모압 여인이었으나 나오미의 가정에 시집온 이후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남편이 죽었으니 젊은 나이에 자유를 누릴 수도 있었지만 정한 마음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홀로 된 시모를 끝까지 봉양하였습니다. 이러한 룻에 대한 기록이 성경 66권 가운데 한 권을 차지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진정 아름다운 룻의 마음을 본받아 하나님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룻이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위대한 행함을 보였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3. 끝까지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룻
룻은 시모를 공양하기 위해 이삭줍기를 하였습니다. 이 효성을 전해 들은 보아스라는 사람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부유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룻에게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자기의 밭에서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세 율법에 기업 무르기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팔았던 토지를 원래의 소유권대로 회복시키거나 자식 없이 죽은 사람의 대를 잇도록 해 주기 위해 죽은 사람의 미망인을 그 사망자의 친척이 취하여 대를 이을 수 있게 하는 법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바로 그 집안에 기업 무를 자 중의 하나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안식할 곳을 구하여 줌으로 복된 삶을 살게 하려고 룻에게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고 지시합니다.
룻이 시모 나오미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자 보아스는 룻에게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하기로 맹세합니다. 결국 보아스는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아들 오벳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룻은 참으로 변함없는 중심으로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기에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고,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4.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우리는 룻의 삶을 통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때가 이르매 거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룻이 어떤 결과를 바라고 선을 행한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니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듯이 우리도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축복을 받습니다. 룻은 영적인 사랑(고전 13장)이나 성령의 9가지 열매(갈 5:22-23)가 그대로 맺혀 있었던 여인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축복의 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떠한 불이익을 당해도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혀도, 매를 맞아도, 사자밥이 되고 풀무불에 던져져도 결코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마음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내보이니 원수 마귀가 역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복음이 더 크게 전파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이처럼 목적을 두어 나가는 곳에 우리가 피곤치 않으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고 믿음으로 행군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응답받은 줄 믿고 룻과 같은 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붙좇는 사람이 된다면 어찌 응답받지 못하겠습니까? 끝까지 믿음으로 행군하여 간구와 기도에 응답받으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룻은 시모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을 때 무엇이라고 했나요?
3. 룻기 4장 18절 이하를 보고 ( ) 안에 알맞은 이름을 써 넣으세요.
베레스-헤스론-람-암미나답-나손-살몬-( )-( )-( )-다윗
4. 룻의 고백을 활용하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결단해 봅시다(룻 1:16-17).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3편 '순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사사(士師)란?
사사란 히브리어로 '재판한다', '다스린다', '구원한다'는 의미이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부터 왕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한 정치, 군사적 지도자를 말한다. 평상시에는 재판을 하며(삿 4:5), 백성을 정치적으로 다스렸고, 비상시에는 군사적인 지도자로 활동했다. 사사들의 신분과 직업은 아주 다양했으며 임무가 끝나면 대부분 제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사사는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기보다 지역적으로 다스렸으며 세습되지 않았다.
2009-07-24
제30과믿음의 행함
수 3:7~13
읽을말씀 : 수 3:7~13 | 외울말씀 : 막 9:23 l 참고 말씀:히 11:1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소유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
믿음은 참으로 귀한 보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 세상의 어떤 권세나 명예, 부로도 얻을 수 없는 구원과 천국, 영생복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이 있으면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구하여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으니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구원의 지름길로서 신앙생활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응답의 열쇠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믿음
신앙 안에서의 믿음은 크게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적 믿음은 지식적 믿음이라고도 하는데, 내 눈으로 보아서 확인이 되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로 종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이미 들었거나 보아서 알고 있다면 그것을 의심 없이 믿습니다. 이것은 유(有)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에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을 영적 믿음이라고 합니다. 영적 믿음은 육적 믿음과는 정반대가 되는 것으로서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즉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다 해도 하나님께서 깨끗이 치료해 주실 것을 마음에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영적 믿음이 바로 참 믿음이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이며,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영적 믿음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영적 믿음은 나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그릇에 따라 적당한 분량의 믿음을 나눠 주시되(롬 12:3)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간음 등의 악한 마음을 버리고 원수까지라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등 계명을 준행하는 사람에게 영적 믿음을 주십니다. 또 영적 믿음을 소유해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기적을 체험하려면 육적 믿음을 영적 믿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머리에 입력된, 진리와 어긋난 세상적인 지식은 오히려 영적 믿음을 소유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모든 이론을 파하고 의심을 가져오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믿음은 현격히 달라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될 수 없는 일들도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에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2. 믿음의 행함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연단을 받는 동안 하나님께 불순종한 출애굽 1세들은 죽고, 영적 믿음을 소유한 출애굽 2세들은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 과정 중에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수 3:14~17)
해마다 모맥을 거두는 때면 요단 강물이 언덕에 넘칠 정도입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말씀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전적으로 믿었기에 믿음으로 행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물에 들어가 발을 디딘 채로 멈추어 서니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강물이 멈추고 멀리 있는 아담 읍 변방에 물이 쌓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흐르던 강물이 완전히 끊어지고 백성은 요단강의 마른 땅바닥으로 걸어서 여리고 성 쪽으로 건너갔습니다(수 3:1~17).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까?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참으로 기이한 일들이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 든 손을 바다를 향해 내어민다고 해서 어찌 홍해가 갈라지고 그 사이로 마른 땅이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어찌 반석을 친다고 해서 물이 나올 수 있겠으며, 나뭇가지를 던져 넣는다고 해서 쓴물이 단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행하였을 때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인간의 생각을 깨뜨리고 영적 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1)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모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할 때 '지팡이 든 손을 내어민다고 해서 과연 홍해가 갈라질 수 있을까? 혹시 안 되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의심했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어 드렸기 때문에 그 믿음대로 역사를 받았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마음에서 믿어지는 믿음을 갖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 믿음을 소유하고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까지는 금식하며, 기도하며, 열심히 말씀을 듣고 순종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순종하라" 하면 순종하고, "기도하라" 할 때 기도하고, "금식하라" 할 때 금식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해 나가면 하늘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믿음의 행함이 따르는 것이며, 믿음으로 행군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체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믿음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체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 믿을 수 있도록 체험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하나님을 더 밝히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치료해 주시라고 구해야 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응답받기 위해 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것, 그리고 주어진 달란트를 개발하는 것 등 여러 가지를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하나님을 향해 은혜를 구하며 나가는 자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체험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3)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목표를 세워 응답받기 위해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목표가 있다면, 이 일과 관계된 사람들이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때로는 금식도 하면서, 아울러 행함으로 열심히 전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전도할 때에도 막연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론이 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믿고 기도하며 행함으로 보일 때에 전도가 되고 부흥합니다.
신앙 안에서 다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꿈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 이 원하는 방향을 좇아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의 행함을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그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구하면서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 하신 대로 믿음으로 바라던 것이 실제로 주어집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의 행군을 해야 합니다. 항상 믿음의 행함을 보임으로 더 뜨겁고 충만한 삶으로 빛과 소금이 되며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9장 23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의 차이는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3. 영적 믿음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4.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을 만나 그 말씀을 듣고 ( )해야 합니다.
둘째, 믿음의 체험이 없는 사람들은 체험을 달라고 ( )해야 합니다.
셋째,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 )이 있어야 합니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2편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요단강
이스라엘에서 가장 길고 큰 강으로 실제 길이는 무려 320Km나 된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시리아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며 갈릴리 호수를 지나 사해로 흘러들어 간다. 현재 강폭은 8~15m로 비교적 좁은 편이나 고대 요단강은 매우 크고 자주 범람하였다(수 3:15). 강 양편 요단 계곡은 무성한 수목으로 경치가 아름답다. 성경을 보면 이곳에서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치료받았으며,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소유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
믿음은 참으로 귀한 보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 세상의 어떤 권세나 명예, 부로도 얻을 수 없는 구원과 천국, 영생복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이 있으면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구하여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으니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구원의 지름길로서 신앙생활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응답의 열쇠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믿음
신앙 안에서의 믿음은 크게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적 믿음은 지식적 믿음이라고도 하는데, 내 눈으로 보아서 확인이 되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로 종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이미 들었거나 보아서 알고 있다면 그것을 의심 없이 믿습니다. 이것은 유(有)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에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을 영적 믿음이라고 합니다. 영적 믿음은 육적 믿음과는 정반대가 되는 것으로서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즉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다 해도 하나님께서 깨끗이 치료해 주실 것을 마음에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영적 믿음이 바로 참 믿음이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이며,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영적 믿음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영적 믿음은 나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그릇에 따라 적당한 분량의 믿음을 나눠 주시되(롬 12:3)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간음 등의 악한 마음을 버리고 원수까지라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등 계명을 준행하는 사람에게 영적 믿음을 주십니다. 또 영적 믿음을 소유해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기적을 체험하려면 육적 믿음을 영적 믿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머리에 입력된, 진리와 어긋난 세상적인 지식은 오히려 영적 믿음을 소유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모든 이론을 파하고 의심을 가져오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믿음은 현격히 달라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될 수 없는 일들도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에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2. 믿음의 행함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연단을 받는 동안 하나님께 불순종한 출애굽 1세들은 죽고, 영적 믿음을 소유한 출애굽 2세들은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 과정 중에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수 3:14~17)
해마다 모맥을 거두는 때면 요단 강물이 언덕에 넘칠 정도입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말씀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전적으로 믿었기에 믿음으로 행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물에 들어가 발을 디딘 채로 멈추어 서니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강물이 멈추고 멀리 있는 아담 읍 변방에 물이 쌓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흐르던 강물이 완전히 끊어지고 백성은 요단강의 마른 땅바닥으로 걸어서 여리고 성 쪽으로 건너갔습니다(수 3:1~17).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까?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참으로 기이한 일들이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 든 손을 바다를 향해 내어민다고 해서 어찌 홍해가 갈라지고 그 사이로 마른 땅이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어찌 반석을 친다고 해서 물이 나올 수 있겠으며, 나뭇가지를 던져 넣는다고 해서 쓴물이 단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행하였을 때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인간의 생각을 깨뜨리고 영적 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1)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모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할 때 '지팡이 든 손을 내어민다고 해서 과연 홍해가 갈라질 수 있을까? 혹시 안 되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의심했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어 드렸기 때문에 그 믿음대로 역사를 받았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마음에서 믿어지는 믿음을 갖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 믿음을 소유하고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까지는 금식하며, 기도하며, 열심히 말씀을 듣고 순종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순종하라" 하면 순종하고, "기도하라" 할 때 기도하고, "금식하라" 할 때 금식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해 나가면 하늘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믿음의 행함이 따르는 것이며, 믿음으로 행군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체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믿음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체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 믿을 수 있도록 체험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하나님을 더 밝히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치료해 주시라고 구해야 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응답받기 위해 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것, 그리고 주어진 달란트를 개발하는 것 등 여러 가지를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하나님을 향해 은혜를 구하며 나가는 자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체험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3)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목표를 세워 응답받기 위해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목표가 있다면, 이 일과 관계된 사람들이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때로는 금식도 하면서, 아울러 행함으로 열심히 전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전도할 때에도 막연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론이 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믿고 기도하며 행함으로 보일 때에 전도가 되고 부흥합니다.
신앙 안에서 다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꿈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 이 원하는 방향을 좇아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의 행함을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그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구하면서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 하신 대로 믿음으로 바라던 것이 실제로 주어집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의 행군을 해야 합니다. 항상 믿음의 행함을 보임으로 더 뜨겁고 충만한 삶으로 빛과 소금이 되며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9장 23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의 차이는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3. 영적 믿음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4.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을 만나 그 말씀을 듣고 ( )해야 합니다.
둘째, 믿음의 체험이 없는 사람들은 체험을 달라고 ( )해야 합니다.
셋째,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 )이 있어야 합니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2편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요단강
이스라엘에서 가장 길고 큰 강으로 실제 길이는 무려 320Km나 된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시리아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며 갈릴리 호수를 지나 사해로 흘러들어 간다. 현재 강폭은 8~15m로 비교적 좁은 편이나 고대 요단강은 매우 크고 자주 범람하였다(수 3:15). 강 양편 요단 계곡은 무성한 수목으로 경치가 아름답다. 성경을 보면 이곳에서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치료받았으며,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