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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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9
제25과금식과 기도의 위력
욘 3:1~10
읽을말씀 : 욘 3:1~10 | 외울말씀 : 렘 33:3ㅣ참고 말씀 : 사 58:3~9
교육목표 :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과 기도의 방법을 알아 신속히 응답받게 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여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의 표현이므로 응답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1. 금식과 기도의 위력
요나는 주전 785년을 전후하여 북이스라엘에서 요아스 왕과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던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커졌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뜻을 외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가 멸망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 위에 대풍을 내리셨고, 요나가 탄 배는 거의 난파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누구 때문에 재앙이 임했는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결국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졌는데 놀랍게도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이런 요나를 위해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였다가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십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방 민족인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어른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굵은 베로 된 옷을 입고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이 소문이 왕에게까지 전달되자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니느웨 백성에게 선포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금식으로 정성을 내보이며, 악한 행실에서 떠나 힘써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을까요?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만큼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려 주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니느웨 백성이 임금과 함께 회개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절제하고 회개하며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과 기도
금식은 한 끼부터 시작해서 하루, 이틀, 3일, 5일, 7일, 그 이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금식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좇아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금식을 하되 부르짖어 기도하며 오락을 금하고 영적인 사랑으로 기도하면(사 58:3~5)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즉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나타나는 것이지요(사 58:6~9).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습관을 좇아 기도하기 원하십니다(살전 5:17).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고(눅 22:39),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행 3:1). 가령, 청소도 매일같이 하면 비교적 간단히 끝낼 수 있으나 오래 묵혀 두었다 하면 잔뜩 먼지가 쌓이고 때가 찌들어 한참 걸려야 깨끗해집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평소에 습관을 좇아서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시험 환난이 오지 않고, 설령 온다 하더라도 가볍게 물러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형통함을 받습니다. 시험 환난을 당하고 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둘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원하십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고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대통령 앞에서도 삼가 조심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눅 22:41)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셋째로,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렘 29:12~13, 33:3). 사도행전 4장을 보면 교회 역사상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났던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고 많은 기사와 표적이 따르는 가운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에도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출 15:22~25). 그러나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해서 아무 때나 부르짖어 기도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기도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은 중심을 바쳐 기도함으로 중언부언하는 일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3. 금식과 기도로 응답받은 믿음의 선진들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바다 편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일 때까지 간절히 기도하여 비를 내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왕상 18:41~46). 어찌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였던지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으로 배가 당겨 머리가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지요.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지 이미 70년이 지난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벌써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가브리엘 천사로 하여금 다니엘에게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와서 "크게 은총받은 자여"라고 부르며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고 또 크고 놀라운 계시를 주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과 또한 세상 끝날까지 되어질 일을 그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단 9:1~27).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십자가 지실 일을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 욕심을 좇아 구하는 것은 응답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각 자기 믿음과 직분과 위치에 맞추어서 필요한 것을 구해야지 허영과 욕심을 좇아 구한다면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2~3절을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합니다.
또한 믿고 구한 것은 응답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셨고, 야고보서 1장 6~7절에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결단코 응답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금식과 기도의 위력을 알아 우리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와 금식을 하며 놀라운 응답의 역사를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레미야 33장 3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3. 혹여 금식기도를 했는데 응답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자 이사야 58장 3절부터 9절까지 읽으면서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8편 '심고 거두는 법칙'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금식과 보호식
금식기도는 어떤 목적을 갖고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보호식은 금식이 끝난 후 빠진 기를 보충하고 약해진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도록 먹는 음식을 말하며, 금식한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보호식 하는 중에는 몸을 무리하거나 힘든 일은 피해야 한다. 식사는 미음이나 죽으로 하고, 반찬은 주로 채식을 하되 양념은 하지 않으며, 육류나 기름기 있는 음식, 맵거나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 화학조미료와 향신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보호식을 잘하면 붓지 않고 피부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된다.
교육목표 :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과 기도의 방법을 알아 신속히 응답받게 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여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의 표현이므로 응답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1. 금식과 기도의 위력
요나는 주전 785년을 전후하여 북이스라엘에서 요아스 왕과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던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커졌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뜻을 외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가 멸망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 위에 대풍을 내리셨고, 요나가 탄 배는 거의 난파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누구 때문에 재앙이 임했는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결국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졌는데 놀랍게도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이런 요나를 위해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였다가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십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방 민족인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어른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굵은 베로 된 옷을 입고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이 소문이 왕에게까지 전달되자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니느웨 백성에게 선포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금식으로 정성을 내보이며, 악한 행실에서 떠나 힘써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을까요?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만큼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려 주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니느웨 백성이 임금과 함께 회개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절제하고 회개하며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과 기도
금식은 한 끼부터 시작해서 하루, 이틀, 3일, 5일, 7일, 그 이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금식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좇아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금식을 하되 부르짖어 기도하며 오락을 금하고 영적인 사랑으로 기도하면(사 58:3~5)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즉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나타나는 것이지요(사 58:6~9).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습관을 좇아 기도하기 원하십니다(살전 5:17).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고(눅 22:39),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행 3:1). 가령, 청소도 매일같이 하면 비교적 간단히 끝낼 수 있으나 오래 묵혀 두었다 하면 잔뜩 먼지가 쌓이고 때가 찌들어 한참 걸려야 깨끗해집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평소에 습관을 좇아서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시험 환난이 오지 않고, 설령 온다 하더라도 가볍게 물러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형통함을 받습니다. 시험 환난을 당하고 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둘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원하십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고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대통령 앞에서도 삼가 조심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눅 22:41)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셋째로,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렘 29:12~13, 33:3). 사도행전 4장을 보면 교회 역사상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났던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고 많은 기사와 표적이 따르는 가운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에도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출 15:22~25). 그러나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해서 아무 때나 부르짖어 기도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기도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은 중심을 바쳐 기도함으로 중언부언하는 일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3. 금식과 기도로 응답받은 믿음의 선진들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바다 편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일 때까지 간절히 기도하여 비를 내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왕상 18:41~46). 어찌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였던지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으로 배가 당겨 머리가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지요.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지 이미 70년이 지난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벌써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가브리엘 천사로 하여금 다니엘에게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와서 "크게 은총받은 자여"라고 부르며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고 또 크고 놀라운 계시를 주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과 또한 세상 끝날까지 되어질 일을 그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단 9:1~27).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십자가 지실 일을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 욕심을 좇아 구하는 것은 응답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각 자기 믿음과 직분과 위치에 맞추어서 필요한 것을 구해야지 허영과 욕심을 좇아 구한다면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2~3절을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합니다.
또한 믿고 구한 것은 응답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셨고, 야고보서 1장 6~7절에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결단코 응답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금식과 기도의 위력을 알아 우리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와 금식을 하며 놀라운 응답의 역사를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레미야 33장 3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3. 혹여 금식기도를 했는데 응답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자 이사야 58장 3절부터 9절까지 읽으면서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8편 '심고 거두는 법칙'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금식과 보호식
금식기도는 어떤 목적을 갖고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보호식은 금식이 끝난 후 빠진 기를 보충하고 약해진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도록 먹는 음식을 말하며, 금식한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보호식 하는 중에는 몸을 무리하거나 힘든 일은 피해야 한다. 식사는 미음이나 죽으로 하고, 반찬은 주로 채식을 하되 양념은 하지 않으며, 육류나 기름기 있는 음식, 맵거나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 화학조미료와 향신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보호식을 잘하면 붓지 않고 피부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된다.
2009-06-12
제24과모든 것에 화목하라
잠 16:7
읽을말씀 : 잠 16:7 | 외울말씀 : 히 12:14 l 참고 말씀:마 5:9, 잠 8:17
교육목표 : 화목의 중요성을 깨닫고 화목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게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화평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서로 대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화목을 이루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화목을 이루면 우리의 삶은 더욱 활기차고 행복해집니다.
1. 화목의 중요성
히브리서 12장 14절을 보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즉 모든 이와 더불어 화평하는 사람이 하나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며 주님을 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평이 얼마나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화평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서로 낮아지고 용서하며 참아 주는 마음으로 바뀌니 자연히 화평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 불화나 다툼 등 화목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가르침만이 참이요, 진리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나 스승, 책자 등을 통해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니 서로의 생각이나 이론이 진리가 아닌데도 서로 자기 생각이나 이론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화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할 때 화목할 수 있고 섬기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2. 화목지 못한 사람들의 수고와 고통
우리는 화목하지 못한 경우를 성경 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화목하였지만 아내 사라가 잉태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었습니다. 사라는 자녀를 얻고 싶은 인간적인 욕심으로 남편에게 자기 여종인 하갈을 첩으로 취하라고 요구합니다. 만일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겼으면 아무런 문제 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을 터인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동침하여 아이를 잉태하니 하갈은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하였고 사라는 오히려 아브라함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허락을 받아 하갈을 학대하여 도망을 치기까지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후에 90세 된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을 것을 고집합니다. 아브라함은 깊이 근심이 되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냅니다. '원수도 사랑하라' 하신 대로 서로 사랑했다면 한 집에서 오손도손 살 수 있었을 텐데, 결국은 원수를 맺고 내어쫓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큰 불화입니까? 이렇게 악을 행하므로 이 비극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 후손들이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싸우는 것입니다. 바로 이스라엘과 아랍 족속이지요. 믿음의 사람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여 결국 고통이 따르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야곱은 어떠하였습니까? 원래는 자매였던 레아와 라헬 두 사람만이 아내였는데 동생인 라헬은 아들을 낳지 못하고 반면에 언니인 레아는 네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자 라헬은 언니인 레아를 투기하여 자기의 여종인 빌하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어 자기 대신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이것을 본 언니 레아도 자기의 종 실바를 남편에게 첩으로 줍니다. 이처럼 네 여인을 거느리다보니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불행이 초래되었겠습니까? 여인들이 서로 시기 질투하고 다투었으며 그들에게서 난 아들들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쳤습니다. 형제들 중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요셉이 형들의 공모로 지나가는 상인에게 노예로 팔리고 말았지요.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먹힌 줄 알고 오래도록 애통하며 슬퍼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모든 것에 화목지 못하고 서로 불행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 화목을 이룬 사람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누군가와 화목하지 못하여 고통당한다면 여호와를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으로는 솔로몬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게 해 드렸는지 하나님으로부터 전무후무한 지혜를 응답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도 덤으로 받았습니다(왕상 3:4~15).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막힌 담이 헐어지고 죄사함 받아 구원과 영생을 얻을 뿐 아니라 기도와 간구에 응답을 받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 제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에 의해 자기 민족이 몰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사촌 오빠 모르드개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때 왕과 자기 백성인 유다인 사이에 화목을 이루기 위해 에스더는 먼저 여호와를 기쁘시게 했습니다. 수도인 수산 성에 사는 모든 유다인들과 함께 3일을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더를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대로 민족을 구원할 수 있도록 친히 인도하셨지요.
그러면 이방 모압 여인인 룻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족속 남편에게 시집을 왔으나 불행하게도 시아버지와 남편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기 살 길을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정한 마음을 가지고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 행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결국 아들 오벳을 낳아 다윗의 족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4. 화목의 축복을 받으려면
그러면 우리가 화목의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솔로몬처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잘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깨끗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며 선을 행하고 열심히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행함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함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는 고넬료나 다비다를 들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온 가족이 성령을 받았고, 다비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장~10장).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종들과 화목을 이루며 셋째로는 믿음의 형제들과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 자녀 간에, 부부간에 화목해야 하며 형제간에, 이웃 간에, 친구 간에, 직장 동료와 상사 간에, 모든 사람들과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불화나 다툼 등 화목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3. 화목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지 예를 들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7편 '금식과 기도의 위력' 읽어 오기
교육목표 : 화목의 중요성을 깨닫고 화목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게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화평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서로 대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화목을 이루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화목을 이루면 우리의 삶은 더욱 활기차고 행복해집니다.
1. 화목의 중요성
히브리서 12장 14절을 보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즉 모든 이와 더불어 화평하는 사람이 하나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며 주님을 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평이 얼마나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화평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서로 낮아지고 용서하며 참아 주는 마음으로 바뀌니 자연히 화평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 불화나 다툼 등 화목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가르침만이 참이요, 진리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나 스승, 책자 등을 통해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니 서로의 생각이나 이론이 진리가 아닌데도 서로 자기 생각이나 이론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화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할 때 화목할 수 있고 섬기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2. 화목지 못한 사람들의 수고와 고통
우리는 화목하지 못한 경우를 성경 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화목하였지만 아내 사라가 잉태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었습니다. 사라는 자녀를 얻고 싶은 인간적인 욕심으로 남편에게 자기 여종인 하갈을 첩으로 취하라고 요구합니다. 만일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겼으면 아무런 문제 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을 터인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동침하여 아이를 잉태하니 하갈은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하였고 사라는 오히려 아브라함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허락을 받아 하갈을 학대하여 도망을 치기까지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후에 90세 된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을 것을 고집합니다. 아브라함은 깊이 근심이 되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냅니다. '원수도 사랑하라' 하신 대로 서로 사랑했다면 한 집에서 오손도손 살 수 있었을 텐데, 결국은 원수를 맺고 내어쫓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큰 불화입니까? 이렇게 악을 행하므로 이 비극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 후손들이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싸우는 것입니다. 바로 이스라엘과 아랍 족속이지요. 믿음의 사람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여 결국 고통이 따르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야곱은 어떠하였습니까? 원래는 자매였던 레아와 라헬 두 사람만이 아내였는데 동생인 라헬은 아들을 낳지 못하고 반면에 언니인 레아는 네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자 라헬은 언니인 레아를 투기하여 자기의 여종인 빌하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어 자기 대신 아들을 낳게 했습니다. 이것을 본 언니 레아도 자기의 종 실바를 남편에게 첩으로 줍니다. 이처럼 네 여인을 거느리다보니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불행이 초래되었겠습니까? 여인들이 서로 시기 질투하고 다투었으며 그들에게서 난 아들들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쳤습니다. 형제들 중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요셉이 형들의 공모로 지나가는 상인에게 노예로 팔리고 말았지요.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먹힌 줄 알고 오래도록 애통하며 슬퍼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모든 것에 화목지 못하고 서로 불행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 화목을 이룬 사람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누군가와 화목하지 못하여 고통당한다면 여호와를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으로는 솔로몬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게 해 드렸는지 하나님으로부터 전무후무한 지혜를 응답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도 덤으로 받았습니다(왕상 3:4~15).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막힌 담이 헐어지고 죄사함 받아 구원과 영생을 얻을 뿐 아니라 기도와 간구에 응답을 받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 제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에 의해 자기 민족이 몰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사촌 오빠 모르드개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때 왕과 자기 백성인 유다인 사이에 화목을 이루기 위해 에스더는 먼저 여호와를 기쁘시게 했습니다. 수도인 수산 성에 사는 모든 유다인들과 함께 3일을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더를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대로 민족을 구원할 수 있도록 친히 인도하셨지요.
그러면 이방 모압 여인인 룻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족속 남편에게 시집을 왔으나 불행하게도 시아버지와 남편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기 살 길을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정한 마음을 가지고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 행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결국 아들 오벳을 낳아 다윗의 족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4. 화목의 축복을 받으려면
그러면 우리가 화목의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솔로몬처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잘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깨끗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며 선을 행하고 열심히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행함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함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는 고넬료나 다비다를 들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온 가족이 성령을 받았고, 다비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장~10장).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종들과 화목을 이루며 셋째로는 믿음의 형제들과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 자녀 간에, 부부간에 화목해야 하며 형제간에, 이웃 간에, 친구 간에, 직장 동료와 상사 간에, 모든 사람들과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불화나 다툼 등 화목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3. 화목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지 예를 들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7편 '금식과 기도의 위력' 읽어 오기
2009-06-05
제23과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왕하 5:23~27
읽을말씀 : 왕하 5:23~27 | 외울말씀 : 마 10:26 l 참고 말씀 : 창 18:9~15 ,요 1:47
교육목표 : 자신의 심령을 돌아봄으로 모든 것을 감찰하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며 의 가운데 행하여 범사에 응답을 받게 한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세상의 죄악을 보면 심령이 감각되어 애통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책망할 것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철저히 회개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1.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을 치료한 엘리사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던 아람에는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는 존귀한 군대 장관으로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자기 나라를 구원한 큰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에 걸려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지요. 어느 날 이스라엘에서 사로잡혀 온 작은 계집아이로부터 이스라엘의 엘리사 선지자한테 가면 문둥병도 나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왕의 허락을 받아 왕의 편지와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에 도착하여 왕에게 아람 왕의 편지를 보여주자 왕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편지의 내용이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아람 왕이 자기에게 시비를 걸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쳐들어오려는 계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왕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집에 잔뜩 기대를 갖고 왔는데 엘리사가 나와서 환영해 주기는커녕 심부름꾼을 보내어서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합니다. 이에 나아만은 마음이 분하여서 비참한 심경으로 고국을 향해 돌아가고자 하지요. 이때 그의 종들이 나아만에게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며 간곡히 말립니다. 그가 마음을 돌이켜 요단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담갔다가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엘리사의 말대로 흉측한 문둥병이 깨끗이 물러가고 그의 피부가 마치 어린아이 살같이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 장군은 너무 감사하여 엘리사 앞에 와서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끝내 사양하였고 나아만 장군은 이제부터는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하면서 자기 나라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2. 탐심으로 범죄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
한편 엘리사에게는 게하시라는 사환이 있었는데, 나아만이 가져 온 예물이 너무 탐이 나서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서 교묘히 거짓말을 하여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얻어 자기 집에 감추어 두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엘리사에게 수종 들기 위해 섰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으니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는 무서운 말을 합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을 치료한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게하시의 범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회개할 수 있도록 "네가 어디서 오느냐" 물었지만 게하시는 또 다시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자꾸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엘리사의 말대로 게하시는 문둥병이 들어 참으로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게하시는 아무도 자기의 행동을 알지 못하리라 생각하였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심령을 감각시켜 친히 알려 주시니 엘리사도 게하시의 모든 일을 훤히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이 아무도 몰래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사건이 나오는데 이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에게 이르시기를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에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도 이미 끊어진 후였으므로 뒤편 장막문 있는 데서 사라가 기가 막혀 속으로 웃고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원하기만 하면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든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다 아셨고, 또 모든 일들이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도 다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따라 예수님 앞에 온 나다나엘을 처음 보시고서 "보라 이는 참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칭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자기를 아시느냐고 묻자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직접 본 것이 아닌데도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에 놀란 나다나엘은 즉시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선지자라 할지라도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엘리사 선지자 같은 경우에는 특별히 많은 것을 알았지요. 그 당시 이스라엘과 아람은 전쟁이 잦았는데 엘리사는 가만히 앉아서도 아람 왕이 그 심복들과 어떤 작전을 의논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줌으로 이스라엘은 그때마다 그에 대한 방비를 할 수가 있었지요. 이에 아람 왕은 번민하며 자기 신하들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에게 몰래 고자질하는 줄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왕하 6:8~13).
신약 시대에 와서 베드로에게서도 그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성도들에게 믿음과 은혜가 넘쳐서 한마음 한뜻이 되었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 소유를 팔아 얼마는 감춰 두고 나머지를 전부인 양 사도들 앞에 드렸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두 사람이 짠 일이었지만 베드로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혼이 떠나 죽고 맙니다(행 5:1~10).
4.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사람이 아무리 은밀히 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마 10:26).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 중심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정직하며 온전히 거룩한 자를 원하시는데 이런 자의 길은 형통하고 구부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의를 행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령을 속이는 일이나 주의 종을 속이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나 형제, 자녀나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서로서로 속이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지요. 하나님을 속이고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거짓말하는 것, 과장하는 것, 보태는 것 또한 도적질하는 것, 간음하는 것, 거짓 증언하는 것,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각종 예물을 마음에 작정해 놓고서 하지 아니하는 것, 기도하는 척 하는 것, 중심으로 행하지 못하는 것, 기도해야지 하고 마음에 주관은 되는데 하지 않는 것 등입니다. 그 외에도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하고는 세상으로 빠지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며칠 금식하겠다고 시작했다가 중도에서 힘드니까 포기해 버리는 것 등도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이 감각되어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는 행동이나 생각을 할 때에 심령이 감각되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행하지 말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기필코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고도 심령이 마비되어 감각되지 않는다면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와 같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만일 그러한 것이 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고 모든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아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혹여 자신의 말이나 생각, 마음이나 행동을 통해 짜증이나 혈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스스로 놀란 적이 있나요?
이처럼 심령이 감각되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는 축복이요,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책망이나 지적의 말을 들을 때 쉽게 낙담하고 오해하지는 않았나요?
이 또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기 위해 힘써 기도하면 능히 버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합심하여 감사기도와 더불어 회개기도를 하겠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나 주의 종, 부모나 형제, 자녀나 이웃을 속인 일은 없는지찾아보면서 철저히 회개해야겠습니다.
혹여 회개할 일이 없다면 조그만 실수, 악의 모양이라도 신속히 발견하여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속이는 것보다 더욱 슬픈 일은 자신의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속인 일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는 범죄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혹여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여 회개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6편 '모든 것에 화목하라' 읽어 오기
교육목표 : 자신의 심령을 돌아봄으로 모든 것을 감찰하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며 의 가운데 행하여 범사에 응답을 받게 한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세상의 죄악을 보면 심령이 감각되어 애통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책망할 것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철저히 회개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1.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을 치료한 엘리사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던 아람에는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는 존귀한 군대 장관으로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자기 나라를 구원한 큰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에 걸려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지요. 어느 날 이스라엘에서 사로잡혀 온 작은 계집아이로부터 이스라엘의 엘리사 선지자한테 가면 문둥병도 나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왕의 허락을 받아 왕의 편지와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에 도착하여 왕에게 아람 왕의 편지를 보여주자 왕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편지의 내용이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아람 왕이 자기에게 시비를 걸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쳐들어오려는 계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왕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집에 잔뜩 기대를 갖고 왔는데 엘리사가 나와서 환영해 주기는커녕 심부름꾼을 보내어서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합니다. 이에 나아만은 마음이 분하여서 비참한 심경으로 고국을 향해 돌아가고자 하지요. 이때 그의 종들이 나아만에게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며 간곡히 말립니다. 그가 마음을 돌이켜 요단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담갔다가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엘리사의 말대로 흉측한 문둥병이 깨끗이 물러가고 그의 피부가 마치 어린아이 살같이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 장군은 너무 감사하여 엘리사 앞에 와서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끝내 사양하였고 나아만 장군은 이제부터는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하면서 자기 나라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2. 탐심으로 범죄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
한편 엘리사에게는 게하시라는 사환이 있었는데, 나아만이 가져 온 예물이 너무 탐이 나서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서 교묘히 거짓말을 하여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얻어 자기 집에 감추어 두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엘리사에게 수종 들기 위해 섰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으니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는 무서운 말을 합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을 치료한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게하시의 범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회개할 수 있도록 "네가 어디서 오느냐" 물었지만 게하시는 또 다시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자꾸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엘리사의 말대로 게하시는 문둥병이 들어 참으로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게하시는 아무도 자기의 행동을 알지 못하리라 생각하였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심령을 감각시켜 친히 알려 주시니 엘리사도 게하시의 모든 일을 훤히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이 아무도 몰래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사건이 나오는데 이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에게 이르시기를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에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도 이미 끊어진 후였으므로 뒤편 장막문 있는 데서 사라가 기가 막혀 속으로 웃고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원하기만 하면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든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다 아셨고, 또 모든 일들이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도 다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따라 예수님 앞에 온 나다나엘을 처음 보시고서 "보라 이는 참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칭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자기를 아시느냐고 묻자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직접 본 것이 아닌데도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에 놀란 나다나엘은 즉시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선지자라 할지라도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엘리사 선지자 같은 경우에는 특별히 많은 것을 알았지요. 그 당시 이스라엘과 아람은 전쟁이 잦았는데 엘리사는 가만히 앉아서도 아람 왕이 그 심복들과 어떤 작전을 의논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줌으로 이스라엘은 그때마다 그에 대한 방비를 할 수가 있었지요. 이에 아람 왕은 번민하며 자기 신하들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에게 몰래 고자질하는 줄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왕하 6:8~13).
신약 시대에 와서 베드로에게서도 그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성도들에게 믿음과 은혜가 넘쳐서 한마음 한뜻이 되었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 소유를 팔아 얼마는 감춰 두고 나머지를 전부인 양 사도들 앞에 드렸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두 사람이 짠 일이었지만 베드로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혼이 떠나 죽고 맙니다(행 5:1~10).
4.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사람이 아무리 은밀히 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마 10:26).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 중심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정직하며 온전히 거룩한 자를 원하시는데 이런 자의 길은 형통하고 구부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의를 행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령을 속이는 일이나 주의 종을 속이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나 형제, 자녀나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서로서로 속이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지요. 하나님을 속이고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거짓말하는 것, 과장하는 것, 보태는 것 또한 도적질하는 것, 간음하는 것, 거짓 증언하는 것,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각종 예물을 마음에 작정해 놓고서 하지 아니하는 것, 기도하는 척 하는 것, 중심으로 행하지 못하는 것, 기도해야지 하고 마음에 주관은 되는데 하지 않는 것 등입니다. 그 외에도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하고는 세상으로 빠지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며칠 금식하겠다고 시작했다가 중도에서 힘드니까 포기해 버리는 것 등도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이 감각되어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는 행동이나 생각을 할 때에 심령이 감각되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행하지 말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기필코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고도 심령이 마비되어 감각되지 않는다면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와 같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만일 그러한 것이 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고 모든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아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혹여 자신의 말이나 생각, 마음이나 행동을 통해 짜증이나 혈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스스로 놀란 적이 있나요?
이처럼 심령이 감각되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는 축복이요,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책망이나 지적의 말을 들을 때 쉽게 낙담하고 오해하지는 않았나요?
이 또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기 위해 힘써 기도하면 능히 버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합심하여 감사기도와 더불어 회개기도를 하겠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나 주의 종, 부모나 형제, 자녀나 이웃을 속인 일은 없는지찾아보면서 철저히 회개해야겠습니다.
혹여 회개할 일이 없다면 조그만 실수, 악의 모양이라도 신속히 발견하여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속이는 것보다 더욱 슬픈 일은 자신의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속인 일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는 범죄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혹여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여 회개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6편 '모든 것에 화목하라' 읽어 오기
2009-05-29
제22과용서하는 마음
겔 18:21~24
읽을말씀 : 겔 18:21~24 | 외울말씀 : 마 5:23~24 l 참고 말씀 : 시편 103:12~14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누구와도 원수 맺는 일이 없이 용서하는 마음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에스겔은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 제국에 멸망하기 전, 여호와긴 왕과 같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언자의 사명을 받고 에스겔서를 기록하였는데 그의 사역은 예레미야의 사역과 비슷합니다. 우상을 숭배한 죄의 대가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이후 에스겔은 미래의 축복과 완전한 회복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시키면서 유대민족을 위로합니다.
예레미야와 같이 4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에스겔은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현재의 심판 뒤에는 미래의 영광이 있게 될 것을 알려 주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입니다. 에스겔 18장 21~24절은 죄인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하나님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게 했던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영적인 뜻을 모르거나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너무 잔인하시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악인 멸하기를 즐겨하시겠습니까?
창세기 18~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크고 중하기가 심히 극에 달한 도시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상태에 달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멸하지 않으시고 뭔가 그들을 살려 줄 수 있는 조그만 근거라도 없을까 하여 직접 사자들을 보내어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닮은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만일 소돔성 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청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소돔 성 중에 의인 단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살피러 온 천사들에게도 해를 가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죄가 관영하고 타락하여 남색하는 극한 상태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계속 참고 용서해 준다 해도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한계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로 작정하시지요. 그런데 의인 아브라함이 조카 롯으로 인해 염려할 것을 아시고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그 성을 떠나라고 알려 줍니다. 하지만 사위들은 소돔 성에 남아 있다가 죽었고, 소돔 성이 좋아서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를 돌아보았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가나안 땅 거민들을 진멸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거민들 역시 사랑하고 용서하시기를 오래도록 하셨습니다. 얼마나 참으셨는지 성경을 보면 사백 년 동안이나 참으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참고 또 참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가나안 사람들이 돌이키지 않고 점점 더 죄악이 관영하여져서 마침내 더 이상 회개할 가망성이 없게 되자 그들을 멸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을 남겨 두면 오히려 이스라엘 자손들마저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라합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선을 베푼 사람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2. 이방 민족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의 수도였는데, 이 니느웨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래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멸하지 아니하시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요나 선지자를 니느웨로 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한편, 요나는 적국의 수도인 니느웨가 멸망당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을 갔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요나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자기 나라를 아끼는 선한 마음에 그렇게 했던 것을 이해하시고 요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고 외치게 됩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이 어찌하였습니까? 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며 무론 대소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왕도 재에 앉아 회개하며 조서를 내려서 짐승까지도 금식하며 회개하게 하였고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으라 하였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는 것은 니느웨 백성의 죄악이 심히도 관영해져서 용서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입술로만 회개하지 아니하고 행함으로 온전히 돌이키니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3. 용서하는 마음과 행복한 삶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 죄를 토설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다시 사랑을 입는 내용이 있습니다. 다윗 왕은 큰 죄를 지었지만 깨달은 즉시 회개하였더니 용서해 주시고 대신 솔로몬을 주셨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죽을병에 걸렸다가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함으로 그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았습니다. 그 아들 므낫세는 우상숭배를 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으로 쇠사슬에 결박되어 포로로 잡혀갔으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회개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다시 왕위에 오르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 12~14절을 보면 "동(東)이 서(西)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罪過)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말씀합니다. 사람은 남이 개과천선하여도 그 사람의 과거의 허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말하기가 쉬운데,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모든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기억지도 아니하시니 얼마나 아름다운 용서의 마음입니까?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양을 찾아다니는 목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양 일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 어느 목자가 그중에 한 마리를 잃자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두루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은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잃었던 양 한 마리를 찾아 즐거워하는 목자의 마음과 같아서 누가복음 15장 7절을 보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든지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일, 애매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또 그런 것들로 인해 원수를 맺거나 불목되고, 싫고 밉고 시기하게 되는 등의 일들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용서하는 마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했으니(마 6:12)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이루지 못했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장 23~24절에도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말씀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내 마음부터 할례해서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돌이킨 다음에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그에 대한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를 용서하는 마음이 되어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23장 23~24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형제의 허물을 보았을 때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이번만은 용서하지 못하겠다' 한 경우는 없었나요?
그럴 때 예수님은 어떠한 행함을 보이셨나요?
3. 혹여 겉으로는 용서한다 했지만 마음 중심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여전히 상대의 허물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합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5편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의인이란?
문자 그대로 의로운 사람을 말한다. 먼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보혈로 죄 사함 받으면 의롭다 함을 얻는다. 여기서 나아가 마음속에 있는 악, 곧 비진리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좇아 진리대로 행해 나가면 참된 의인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의인을 기뻐하시며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것에 응답해 주신다.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누구와도 원수 맺는 일이 없이 용서하는 마음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에스겔은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 제국에 멸망하기 전, 여호와긴 왕과 같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언자의 사명을 받고 에스겔서를 기록하였는데 그의 사역은 예레미야의 사역과 비슷합니다. 우상을 숭배한 죄의 대가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이후 에스겔은 미래의 축복과 완전한 회복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시키면서 유대민족을 위로합니다.
예레미야와 같이 4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에스겔은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현재의 심판 뒤에는 미래의 영광이 있게 될 것을 알려 주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입니다. 에스겔 18장 21~24절은 죄인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하나님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게 했던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영적인 뜻을 모르거나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너무 잔인하시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악인 멸하기를 즐겨하시겠습니까?
창세기 18~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크고 중하기가 심히 극에 달한 도시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상태에 달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멸하지 않으시고 뭔가 그들을 살려 줄 수 있는 조그만 근거라도 없을까 하여 직접 사자들을 보내어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닮은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만일 소돔성 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청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소돔 성 중에 의인 단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살피러 온 천사들에게도 해를 가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죄가 관영하고 타락하여 남색하는 극한 상태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계속 참고 용서해 준다 해도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한계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로 작정하시지요. 그런데 의인 아브라함이 조카 롯으로 인해 염려할 것을 아시고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그 성을 떠나라고 알려 줍니다. 하지만 사위들은 소돔 성에 남아 있다가 죽었고, 소돔 성이 좋아서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를 돌아보았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가나안 땅 거민들을 진멸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거민들 역시 사랑하고 용서하시기를 오래도록 하셨습니다. 얼마나 참으셨는지 성경을 보면 사백 년 동안이나 참으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참고 또 참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가나안 사람들이 돌이키지 않고 점점 더 죄악이 관영하여져서 마침내 더 이상 회개할 가망성이 없게 되자 그들을 멸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을 남겨 두면 오히려 이스라엘 자손들마저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라합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선을 베푼 사람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2. 이방 민족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의 수도였는데, 이 니느웨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래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멸하지 아니하시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요나 선지자를 니느웨로 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한편, 요나는 적국의 수도인 니느웨가 멸망당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을 갔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요나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자기 나라를 아끼는 선한 마음에 그렇게 했던 것을 이해하시고 요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고 외치게 됩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이 어찌하였습니까? 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며 무론 대소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왕도 재에 앉아 회개하며 조서를 내려서 짐승까지도 금식하며 회개하게 하였고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으라 하였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는 것은 니느웨 백성의 죄악이 심히도 관영해져서 용서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입술로만 회개하지 아니하고 행함으로 온전히 돌이키니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3. 용서하는 마음과 행복한 삶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 죄를 토설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다시 사랑을 입는 내용이 있습니다. 다윗 왕은 큰 죄를 지었지만 깨달은 즉시 회개하였더니 용서해 주시고 대신 솔로몬을 주셨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죽을병에 걸렸다가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함으로 그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았습니다. 그 아들 므낫세는 우상숭배를 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으로 쇠사슬에 결박되어 포로로 잡혀갔으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회개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다시 왕위에 오르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 12~14절을 보면 "동(東)이 서(西)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罪過)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말씀합니다. 사람은 남이 개과천선하여도 그 사람의 과거의 허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말하기가 쉬운데,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모든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기억지도 아니하시니 얼마나 아름다운 용서의 마음입니까?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양을 찾아다니는 목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양 일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 어느 목자가 그중에 한 마리를 잃자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두루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은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잃었던 양 한 마리를 찾아 즐거워하는 목자의 마음과 같아서 누가복음 15장 7절을 보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든지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일, 애매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또 그런 것들로 인해 원수를 맺거나 불목되고, 싫고 밉고 시기하게 되는 등의 일들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용서하는 마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했으니(마 6:12)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이루지 못했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장 23~24절에도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말씀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내 마음부터 할례해서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돌이킨 다음에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그에 대한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를 용서하는 마음이 되어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23장 23~24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형제의 허물을 보았을 때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이번만은 용서하지 못하겠다' 한 경우는 없었나요?
그럴 때 예수님은 어떠한 행함을 보이셨나요?
3. 혹여 겉으로는 용서한다 했지만 마음 중심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여전히 상대의 허물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합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5편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의인이란?
문자 그대로 의로운 사람을 말한다. 먼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보혈로 죄 사함 받으면 의롭다 함을 얻는다. 여기서 나아가 마음속에 있는 악, 곧 비진리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좇아 진리대로 행해 나가면 참된 의인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의인을 기뻐하시며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것에 응답해 주신다.
2009-05-22
제21과악행에서 돌이키라
렘 25:1~5
읽을말씀 : 렘 25:1~5 | 외울말씀 : 요일 1:7 l 참고 말씀 : 갈 5:19~21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악을 버리고 죄에서 온전히 돌이켜야 함을 알게 한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 진리 말씀대로 행치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악행의 결과는 무엇이며 또한 돌이킬 때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악행에서 돌이켜야 구원
예레미야 25장 1~5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유다 백성들을 향해 악행에서 돌이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후였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왕국마저 그 악행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려 하고 있으니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를 안타까워하며 악행에서 돌이켜야 할 것을 담대히 선포해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신 것은 바로 간음이었습니다. 여기서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라 했는데,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버리고 오히려 돌과 나무로 만든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렘 3:8~10).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출 20:3~5) 그들은 하나님 뜻을 어기고 반대로 나갔던 것입니다. 또한 유다 백성이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 나타내기를 원치 않고 여러 가지 죄 범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23년간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렘 38:4~6).
오늘날 가정, 학교, 직장, 그 외 모든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돌이켜야 할 일들이 매우 많습니다. 가정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가족의 한 일원으로 각자에게 요구되는 사항들이 있습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자'라든가, '서로 기쁨이 되는 일을 행하자' 등등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말이 반복되고 싫증이나 짜증을 내는 일들이 빈번히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매일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다면 그 아내나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받겠습니까? 이는 가정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사회를 보면 죄가 관영하였기에 죄 속에 물들어 알지 못하는 가운데 각종 사기 행각, 간음, 살인, 폭행, 마약, 유괴, 인신매매 등 수많은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는데 이는 마땅히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악행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했습니다. 즉 육체의 일을 행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 곳곳에 하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경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 5:16, 히 6:4~6, 히 10:26, 마 7:21, 마 25장).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나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들이 항상 죄를 버리라고 강조한 것이며 우리는 악행에서 돌이켜 구원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2. 애굽 왕 바로를 통해서 얻는 교훈
출애굽기를 보면 애굽 왕 바로가 등장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힘든 종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백성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모세를 그들의 구원자로 보내십니다. 즉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내셨음을 알려 줍니다(출 7:9~10). 그래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이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립니다.
첫째는 애굽의 모든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요, 둘째는 개구리 재앙이요, 셋째는 이의 재앙입니다. 넷째는 파리 떼의 재앙이요, 다섯째는 악질의 재앙이요, 여섯째는 독종의 재앙입니다. 일곱째는 우박의 재앙이요, 여덟째는 메뚜기 재앙이요, 아홉째는 흑암의 재앙이요, 열 번째는 장자의 재앙으로 생명까지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바로 왕은 열 번째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지만 이내 마음이 변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로 왕의 마음이 또 변할 것을 다 아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급히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두셨습니다. 온 애굽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서 나가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자손이 다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부랴부랴 병거들을 타고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 결과, 홍해를 건너던 애굽 사람들이 병거와 함께 홍해 속에 모두 수장되고 말았지요.
그러면 우리가 바로 왕을 통하여 깨우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뜻을 알고 순종하면 축복이요, 반면에 순종하지 않으면 재앙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라 하셨을 때 금방 돌이키면 그만큼 손실이 적지만 돌이키는 데에 시간을 끄는 만큼 많은 손실을 입습니다(「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 책자 참조).
3. 악행에서 돌이킬 때 임하는 축복
우리가 돌이킬 때에는 진정으로 돌이켜야 합니다(요일 1:7). 한번 마음에서부터 돌이키리라고 결심을 했으면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어떤 것을 결심해 놓고도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자녀들은 성령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키는 것 같다가 다시 번복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이것은 결단코 돌이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비록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을지라도 깨달은 즉시 돌이킨 사람으로 다윗 왕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에게 연단을 허락하시되 다시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다윗 왕은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하는 간음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궤계를 써서 의로운 사람인 우리아까지 죽이는 살인죄를 짓습니다(삼하 11:2~27).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와서 죄를 지적하자 즉시 회개하였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삼하 12:1~23). 다윗 왕은 이 일로 엄청난 연단을 받지만 이로 인해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는 그릇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어떠했습니까? 열왕기하 20장을 보면 히스기야 왕에게 죽을병이 든 사건이 나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와서 그의 죽음을 전해 주었지요. 그때 그는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낯을 벽으로 향하여 여호와께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통회자복을 받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으며, 앗수르 왕의 침략에서 성을 보호해 주겠다는 축복까지 주셨습니다. 단번에 통회자복하며 돌이켰더니 오히려 큰 축복으로 함께하신 것입니다(눅 15:1~22).
이처럼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면 그 지은 상태에서 완전히 돌이키는 것이 진정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셨는데 서쪽으로 가고 있다면 완전히 가던 길을 돌이켜 동쪽으로 가야 합니다. 가끔씩 다시 서쪽으로 간다면 이것을 어찌 돌이킨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예로는 사람들이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때로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 기도하지 못하는 것, 약속해 놓고 이행하지 못하는 것, 마음의 정함을 이루지 못하는 것 등입니다. 이런 것에서 돌이키기로 해 놓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으로 돌이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잘못을 고백하며 금식하고 기도했으면 당연히 행함으로 나타내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돌이키는 자에게 하나님 은혜와 긍휼과 용서, 자비와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결심한 것이나 입으로 말한 것, 또는 생각하거나 주관받은 것, 약속한 것, 이러한 모든 행할 바를 온전히 행함으로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려운 현실 앞에서, 또는 자신의 유익 앞에서 더 좋은 것을 취하고자 변개하는 모습은 없었는지 점검해 봅시다.
2. 나는 과연 하루 중 얼마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나요?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애통의 눈물과 기도를 올려 본 적이 있나요?
3. 우리 삶 속에서 악행에서 돌이켜 변화되고 축복받은 간증이 있다면 함께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4편 '용서하는 마음' 읽어 오기
● 잠깐! 알고 넘어 갑시다.
독종이란?
종양 또는 종기를 말한다. 치명적인 불치의 병으로 애굽에 내린 재앙 외에도 여호와의 궤 때문에 블레셋의 아스돗 사람들에게도 독종이 내려졌다(삼상 5:6~12).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악을 버리고 죄에서 온전히 돌이켜야 함을 알게 한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 진리 말씀대로 행치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악행의 결과는 무엇이며 또한 돌이킬 때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악행에서 돌이켜야 구원
예레미야 25장 1~5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유다 백성들을 향해 악행에서 돌이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후였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왕국마저 그 악행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려 하고 있으니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를 안타까워하며 악행에서 돌이켜야 할 것을 담대히 선포해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신 것은 바로 간음이었습니다. 여기서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라 했는데,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버리고 오히려 돌과 나무로 만든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렘 3:8~10).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출 20:3~5) 그들은 하나님 뜻을 어기고 반대로 나갔던 것입니다. 또한 유다 백성이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 나타내기를 원치 않고 여러 가지 죄 범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23년간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렘 38:4~6).
오늘날 가정, 학교, 직장, 그 외 모든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돌이켜야 할 일들이 매우 많습니다. 가정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가족의 한 일원으로 각자에게 요구되는 사항들이 있습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자'라든가, '서로 기쁨이 되는 일을 행하자' 등등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말이 반복되고 싫증이나 짜증을 내는 일들이 빈번히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매일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다면 그 아내나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받겠습니까? 이는 가정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사회를 보면 죄가 관영하였기에 죄 속에 물들어 알지 못하는 가운데 각종 사기 행각, 간음, 살인, 폭행, 마약, 유괴, 인신매매 등 수많은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는데 이는 마땅히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악행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했습니다. 즉 육체의 일을 행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 곳곳에 하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경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 5:16, 히 6:4~6, 히 10:26, 마 7:21, 마 25장).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나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들이 항상 죄를 버리라고 강조한 것이며 우리는 악행에서 돌이켜 구원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2. 애굽 왕 바로를 통해서 얻는 교훈
출애굽기를 보면 애굽 왕 바로가 등장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힘든 종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백성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모세를 그들의 구원자로 보내십니다. 즉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내셨음을 알려 줍니다(출 7:9~10). 그래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이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립니다.
첫째는 애굽의 모든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요, 둘째는 개구리 재앙이요, 셋째는 이의 재앙입니다. 넷째는 파리 떼의 재앙이요, 다섯째는 악질의 재앙이요, 여섯째는 독종의 재앙입니다. 일곱째는 우박의 재앙이요, 여덟째는 메뚜기 재앙이요, 아홉째는 흑암의 재앙이요, 열 번째는 장자의 재앙으로 생명까지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바로 왕은 열 번째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지만 이내 마음이 변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로 왕의 마음이 또 변할 것을 다 아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급히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두셨습니다. 온 애굽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서 나가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자손이 다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부랴부랴 병거들을 타고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 결과, 홍해를 건너던 애굽 사람들이 병거와 함께 홍해 속에 모두 수장되고 말았지요.
그러면 우리가 바로 왕을 통하여 깨우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뜻을 알고 순종하면 축복이요, 반면에 순종하지 않으면 재앙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라 하셨을 때 금방 돌이키면 그만큼 손실이 적지만 돌이키는 데에 시간을 끄는 만큼 많은 손실을 입습니다(「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 책자 참조).
3. 악행에서 돌이킬 때 임하는 축복
우리가 돌이킬 때에는 진정으로 돌이켜야 합니다(요일 1:7). 한번 마음에서부터 돌이키리라고 결심을 했으면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어떤 것을 결심해 놓고도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자녀들은 성령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키는 것 같다가 다시 번복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이것은 결단코 돌이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비록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을지라도 깨달은 즉시 돌이킨 사람으로 다윗 왕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에게 연단을 허락하시되 다시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다윗 왕은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하는 간음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궤계를 써서 의로운 사람인 우리아까지 죽이는 살인죄를 짓습니다(삼하 11:2~27).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와서 죄를 지적하자 즉시 회개하였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삼하 12:1~23). 다윗 왕은 이 일로 엄청난 연단을 받지만 이로 인해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는 그릇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어떠했습니까? 열왕기하 20장을 보면 히스기야 왕에게 죽을병이 든 사건이 나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와서 그의 죽음을 전해 주었지요. 그때 그는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낯을 벽으로 향하여 여호와께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통회자복을 받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으며, 앗수르 왕의 침략에서 성을 보호해 주겠다는 축복까지 주셨습니다. 단번에 통회자복하며 돌이켰더니 오히려 큰 축복으로 함께하신 것입니다(눅 15:1~22).
이처럼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면 그 지은 상태에서 완전히 돌이키는 것이 진정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셨는데 서쪽으로 가고 있다면 완전히 가던 길을 돌이켜 동쪽으로 가야 합니다. 가끔씩 다시 서쪽으로 간다면 이것을 어찌 돌이킨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예로는 사람들이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때로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 기도하지 못하는 것, 약속해 놓고 이행하지 못하는 것, 마음의 정함을 이루지 못하는 것 등입니다. 이런 것에서 돌이키기로 해 놓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으로 돌이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잘못을 고백하며 금식하고 기도했으면 당연히 행함으로 나타내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돌이키는 자에게 하나님 은혜와 긍휼과 용서, 자비와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결심한 것이나 입으로 말한 것, 또는 생각하거나 주관받은 것, 약속한 것, 이러한 모든 행할 바를 온전히 행함으로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려운 현실 앞에서, 또는 자신의 유익 앞에서 더 좋은 것을 취하고자 변개하는 모습은 없었는지 점검해 봅시다.
2. 나는 과연 하루 중 얼마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나요?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애통의 눈물과 기도를 올려 본 적이 있나요?
3. 우리 삶 속에서 악행에서 돌이켜 변화되고 축복받은 간증이 있다면 함께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4편 '용서하는 마음' 읽어 오기
● 잠깐! 알고 넘어 갑시다.
독종이란?
종양 또는 종기를 말한다. 치명적인 불치의 병으로 애굽에 내린 재앙 외에도 여호와의 궤 때문에 블레셋의 아스돗 사람들에게도 독종이 내려졌다(삼상 5:6~12).
2009-05-15
제20과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되리라
롬 10:10
읽을말씀 : 롬 10:10 | 외울말씀 : 야 3:11
교육목표 : 응답의 하나님께서 역사를 베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참고 말씀 : 민 13:31~33, 14:7~9, 다니엘 3:17~18
하나님께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하나님 역사를 입으로 시인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입술의 고백의 중요성을 깨닫고 믿음의 고백으로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 고백의 중요성
어떤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더욱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나아갈 때 반드시 돌파구를 발견하게 되고 일을 이루어 가는 것을 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하며 말씀을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역사하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탐하고 돌아와서 한 고백이 천지 차이입니다. 그중 열 사람은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여 그 땅을 악평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한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민수기 14장 7~9절에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하지요. 이처럼 그들의 말에는 구구절절이 긍정적인 시인과 믿음의 고백이었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을 제외한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백부장이 자기 하인의 중풍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갸륵한 마음을 보고 따라가 고쳐 주시려 했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며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지요. 그러자 백부장이 시인한 대로 하인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믿음을 칭찬해 주시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어려운 일도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으므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고백하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마가복음 7장 24절 이하를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시지요. 보통 사람 같으면 서운함과 모멸감으로 가버렸을 텐데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변함없이 겸비한 자세로 은혜를 구합니다. 여인은 믿음으로 나왔기 때문에 어떤 말씀에도 상처받지 않고 변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인의 선과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즉시로 딸을 치료해 주시지요. 이처럼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반드시 응답이 옵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넣겠다고 위협할 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담대히 고백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이들은 결국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하나님께서 지키심으로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에 설령 시험과 핍박이 온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오히려 축복받고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2.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과 복을 받은 사람
성경에 보면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결과는 그 입술로 시인한 대로 되었습니다. 장자의 모든 축복권이 동생 야곱에게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열왕기하 6~7장에도 비슷한 일이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오래 포위해서 공격하므로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자식까지 잡아먹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는 성문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헐값에 팔리리라" 예언하지만 왕의 심복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망령된 말을 하지요. 그러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은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다음 날 장관은 아람 군대의 진을 노략하러 가던 백성에게 밟혀 죽고 맙니다. 선지자의 말을 부정하므로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말 한마디에 하나님 역사가 따르기도 하고 마귀 역사가 따르기도 합니다.
반면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오자 여호사밧 왕은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자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가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왕은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격려하지요. 뿐만 아니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왕의 긍정적인 고백과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게 역사하셨습니다.
3.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응답받으려면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입으로 시인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마음에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믿습니다."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무조건 입으로 시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에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므로 비진리를 버리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요.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뜻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니 하나님께서 그가 입술로 시인할 때 응답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하나님 앞에 심고 구제하며 예배와 각종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은커녕 오히려 어려운 일만 닥치니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원망 불평했다면 왜 그런 모습이 나온 것일까요?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마음에 믿었다면 마음이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믿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입술로 시인한 것이니 때가 지나자 본심이 드러난 것이지요. 따라서 똑같이 충성하고 심었어도 누구는 응답받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입술의 고백대로 응답받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입술로 고백했다 해도 그것이 참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의 악이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3장 11절에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믿습니다." 해 놓고 다음에 부정하는 쓴 물을 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인내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인한 대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혹여 힘들고 어려울 때, 시험 환난이 닥쳤을 때에 부정적인 말, 원망이나 불평하는 말, 하나님 혹은 주의 종, 형제를 서운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자녀답게 단물만 내는 거룩한 입술이 되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고보서 3장 11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우리가 수로보니게 여인의 상황에 처했다면 자존심을 내세우며 불편해하지는 않았을까요? 예수님 앞에 어떤 고백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과 수로보니게 여인의 대화를 옆 사람과 함께 나눠 봅시다.
3.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수많은 생명의 말씀들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과연 나는 마음 중심에서 얼마나 믿고 행함으로 나타내고 있나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3편 '악행에서 돌이키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단물이란?
영적으로 진리의 말, 영혼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힘을 주는 말, 믿음의 고백 혹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간증을 말한다. 사람의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단물만 내는 입술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교육목표 : 응답의 하나님께서 역사를 베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참고 말씀 : 민 13:31~33, 14:7~9, 다니엘 3:17~18
하나님께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하나님 역사를 입으로 시인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입술의 고백의 중요성을 깨닫고 믿음의 고백으로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 고백의 중요성
어떤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더욱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나아갈 때 반드시 돌파구를 발견하게 되고 일을 이루어 가는 것을 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하며 말씀을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역사하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탐하고 돌아와서 한 고백이 천지 차이입니다. 그중 열 사람은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여 그 땅을 악평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한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민수기 14장 7~9절에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하지요. 이처럼 그들의 말에는 구구절절이 긍정적인 시인과 믿음의 고백이었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을 제외한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백부장이 자기 하인의 중풍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갸륵한 마음을 보고 따라가 고쳐 주시려 했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며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지요. 그러자 백부장이 시인한 대로 하인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믿음을 칭찬해 주시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어려운 일도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으므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고백하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마가복음 7장 24절 이하를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시지요. 보통 사람 같으면 서운함과 모멸감으로 가버렸을 텐데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변함없이 겸비한 자세로 은혜를 구합니다. 여인은 믿음으로 나왔기 때문에 어떤 말씀에도 상처받지 않고 변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인의 선과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즉시로 딸을 치료해 주시지요. 이처럼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반드시 응답이 옵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넣겠다고 위협할 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담대히 고백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이들은 결국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하나님께서 지키심으로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에 설령 시험과 핍박이 온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오히려 축복받고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2.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과 복을 받은 사람
성경에 보면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결과는 그 입술로 시인한 대로 되었습니다. 장자의 모든 축복권이 동생 야곱에게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열왕기하 6~7장에도 비슷한 일이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오래 포위해서 공격하므로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자식까지 잡아먹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는 성문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헐값에 팔리리라" 예언하지만 왕의 심복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망령된 말을 하지요. 그러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은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다음 날 장관은 아람 군대의 진을 노략하러 가던 백성에게 밟혀 죽고 맙니다. 선지자의 말을 부정하므로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말 한마디에 하나님 역사가 따르기도 하고 마귀 역사가 따르기도 합니다.
반면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오자 여호사밧 왕은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자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가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왕은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격려하지요. 뿐만 아니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왕의 긍정적인 고백과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게 역사하셨습니다.
3.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응답받으려면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입으로 시인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마음에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믿습니다."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무조건 입으로 시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에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므로 비진리를 버리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요.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뜻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니 하나님께서 그가 입술로 시인할 때 응답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하나님 앞에 심고 구제하며 예배와 각종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은커녕 오히려 어려운 일만 닥치니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원망 불평했다면 왜 그런 모습이 나온 것일까요?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마음에 믿었다면 마음이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믿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입술로 시인한 것이니 때가 지나자 본심이 드러난 것이지요. 따라서 똑같이 충성하고 심었어도 누구는 응답받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입술의 고백대로 응답받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입술로 고백했다 해도 그것이 참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의 악이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3장 11절에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믿습니다." 해 놓고 다음에 부정하는 쓴 물을 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인내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인한 대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혹여 힘들고 어려울 때, 시험 환난이 닥쳤을 때에 부정적인 말, 원망이나 불평하는 말, 하나님 혹은 주의 종, 형제를 서운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자녀답게 단물만 내는 거룩한 입술이 되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고보서 3장 11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우리가 수로보니게 여인의 상황에 처했다면 자존심을 내세우며 불편해하지는 않았을까요? 예수님 앞에 어떤 고백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과 수로보니게 여인의 대화를 옆 사람과 함께 나눠 봅시다.
3.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수많은 생명의 말씀들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과연 나는 마음 중심에서 얼마나 믿고 행함으로 나타내고 있나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3편 '악행에서 돌이키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단물이란?
영적으로 진리의 말, 영혼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힘을 주는 말, 믿음의 고백 혹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간증을 말한다. 사람의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단물만 내는 입술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2009-05-08
제19과응답의 하나님
시 78:12~29
읽을말씀 : 시 78:12~29 | 외울말씀 : 마 7:7 l 참고 말씀 : 사무엘상 1:11, 마태복음 1:19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을 만나 응답받는 비결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고 영광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돌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응답의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1.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애굽, 지금으로 말하면 이집트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출 2:23).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삼으시고 그들을 출애굽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전에서 각종 기사와 표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반석을 쳐서 강같이 물을 흐르게 하여 마시게 했고,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하늘 문을 열어 만나라는 하늘 양식을 먹이셨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는 우리가 이 세상 죄 가운데 살던 생활에서 나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이 땅에서의 믿음생활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뒷짐 지고 지켜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 삶의 과정에서 만나 주고 함께하시며 구하는 것에 응답하고 천국에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말씀하시며 응답의 비결을 알려주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응답하신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죽은 자를 살려 주신 경우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후 아이 위에 올라가 엎드리니 그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살아납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자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향해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니 그가 살아나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런 역사를 베풀었습니다(행 20:7~12).
이 외에도 성경에는 이미 경수가 끊어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이나,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 편 분벽에 글자를 쓴 대로 나라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벨사살 왕의 경우도 있습니다(단 5장). 마태복음 11장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는 일을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마감하면서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구약시대나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어제나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종이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변함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가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은 변함없는 믿음으로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려 주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요구하시더라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의심하고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이처럼 두 마음을 품으면 응답받을 수 없지만(약 1:6-8)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응답받기 위해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다 했습니다(왕상 18:42).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니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는가를 알 수 있지요. 그러한 기도를 통해 3년 반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던 땅에 큰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떠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였나요?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행 10:2). 이러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상달되어 그를 기억하시고 베드로를 보내 그와 그 자리에 참석한 일가친척, 친구까지도 모두 성령 받고 구원받으며 방언의 은사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행 10장).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정성껏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고 그에게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솔로몬처럼 축복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년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고 믿음을 내보임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로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물맷돌로 쓰러뜨린 것입니다(삼상 17:32-49). 골리앗의 죽음을 본 블레셋 군대는 놀라서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하였고, 이스라엘은 이 싸움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일개 소년 목동에 지나지 않던 다윗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이렇게 엄청나게 컸기에 하나님께 응답받아 영광도 돌리고 위기에 처한 나라도 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 큰 문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가 있다 해도 다윗처럼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신속히 만나는 사람들의 중심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침한 적이 없으니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찌 하였습니까? 마태복음 1장 19절을 보면,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했습니다. 그 여인을 위해서 끝까지 선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착하고 의로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마 1:20). 참으로 비참한 심경이 될 수도 있었던 그가 오히려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하나님을 신뢰하였기에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하나님 뜻이 자기에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한 마리아의 중심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하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엘리사벳이나 사가랴 같은 이들은 어떠하였습니까? 누가복음 1장 6절을 보면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하였습니다. 이들은 늙도록 자식이 없었으나 하나님 앞에 그 기도가 상달되어 세례 요한을 낳는 큰 축복을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나는 하나님 앞에 서원을 갚는 마음 중심이었으므로 응답을 받을 수 있었지요. 소원대로 아들을 얻은 후 아이의 젖을 떼자 곧 그를 데리고 여호와의 집이 있는 실로로 나아가 엘리 제사장에게 그 아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한나는 서원을 지켰으므로 그 이후로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을 수 있었고, 또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대선지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 기적을 베푸시고 능치 못하실 것이 없는 하나님을 만나기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니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막힌 죄의 담을 헐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선한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7장 7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신다고 했는데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나는 얼마나 갈급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응답받기 위해 늘 자신을 점검해 보고 즉시 행하는 성도가 됩시다.
4. 실생활에서 하나님께 응답받은 간증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2편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되리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만나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던 도중, 광야에서 먹을 음식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음식. 작고 둥글며 희고 모양은 깟씨(고수씨) 또는 진주와 같았다.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맛은 꿀이나 기름 섞은 과자 같았다.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을 만나 응답받는 비결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고 영광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돌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응답의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1.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애굽, 지금으로 말하면 이집트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출 2:23).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삼으시고 그들을 출애굽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전에서 각종 기사와 표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반석을 쳐서 강같이 물을 흐르게 하여 마시게 했고,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하늘 문을 열어 만나라는 하늘 양식을 먹이셨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는 우리가 이 세상 죄 가운데 살던 생활에서 나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이 땅에서의 믿음생활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뒷짐 지고 지켜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 삶의 과정에서 만나 주고 함께하시며 구하는 것에 응답하고 천국에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말씀하시며 응답의 비결을 알려주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응답하신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죽은 자를 살려 주신 경우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후 아이 위에 올라가 엎드리니 그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살아납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자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향해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니 그가 살아나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런 역사를 베풀었습니다(행 20:7~12).
이 외에도 성경에는 이미 경수가 끊어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이나,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 편 분벽에 글자를 쓴 대로 나라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벨사살 왕의 경우도 있습니다(단 5장). 마태복음 11장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는 일을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마감하면서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구약시대나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어제나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종이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변함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가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은 변함없는 믿음으로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려 주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요구하시더라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의심하고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이처럼 두 마음을 품으면 응답받을 수 없지만(약 1:6-8)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응답받기 위해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다 했습니다(왕상 18:42).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니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는가를 알 수 있지요. 그러한 기도를 통해 3년 반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던 땅에 큰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떠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였나요?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행 10:2). 이러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상달되어 그를 기억하시고 베드로를 보내 그와 그 자리에 참석한 일가친척, 친구까지도 모두 성령 받고 구원받으며 방언의 은사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행 10장).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정성껏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고 그에게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솔로몬처럼 축복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년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고 믿음을 내보임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로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물맷돌로 쓰러뜨린 것입니다(삼상 17:32-49). 골리앗의 죽음을 본 블레셋 군대는 놀라서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하였고, 이스라엘은 이 싸움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일개 소년 목동에 지나지 않던 다윗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이렇게 엄청나게 컸기에 하나님께 응답받아 영광도 돌리고 위기에 처한 나라도 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 큰 문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가 있다 해도 다윗처럼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신속히 만나는 사람들의 중심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침한 적이 없으니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찌 하였습니까? 마태복음 1장 19절을 보면,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했습니다. 그 여인을 위해서 끝까지 선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착하고 의로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마 1:20). 참으로 비참한 심경이 될 수도 있었던 그가 오히려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하나님을 신뢰하였기에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하나님 뜻이 자기에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한 마리아의 중심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하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엘리사벳이나 사가랴 같은 이들은 어떠하였습니까? 누가복음 1장 6절을 보면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하였습니다. 이들은 늙도록 자식이 없었으나 하나님 앞에 그 기도가 상달되어 세례 요한을 낳는 큰 축복을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나는 하나님 앞에 서원을 갚는 마음 중심이었으므로 응답을 받을 수 있었지요. 소원대로 아들을 얻은 후 아이의 젖을 떼자 곧 그를 데리고 여호와의 집이 있는 실로로 나아가 엘리 제사장에게 그 아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한나는 서원을 지켰으므로 그 이후로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을 수 있었고, 또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대선지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 기적을 베푸시고 능치 못하실 것이 없는 하나님을 만나기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니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막힌 죄의 담을 헐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선한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7장 7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신다고 했는데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나는 얼마나 갈급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응답받기 위해 늘 자신을 점검해 보고 즉시 행하는 성도가 됩시다.
4. 실생활에서 하나님께 응답받은 간증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2편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되리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만나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던 도중, 광야에서 먹을 음식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음식. 작고 둥글며 희고 모양은 깟씨(고수씨) 또는 진주와 같았다.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맛은 꿀이나 기름 섞은 과자 같았다.
2009-05-01
제18과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요 16:7~11
읽을말씀 : 요 16:7~11 | 외울말씀 : 요 16:8 ㅣ 참고 말씀:벧후 2:3
교육목표 :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인이 되어 앞으로 임할 심판을 면하고 영원히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말씀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또한 진리 안에 살게 하여 온전히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등 많은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우치고 진리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1.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
성령께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이유는 바로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시작과 끝에 대한 분명한 계획 속에 인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성경상의 흐름을 보면 선악 간에 분명히 구분하여 죄는 사망으로, 의는 영생으로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함께하시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멸망의 길로 갑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나 아브라함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 등 죄악이 관영해졌을 때에는 심판이 그대로 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애굽 왕 바로에게 열 재앙을 내리신 것도 그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또한 약 2천 년 전 폼페이가 극도의 음란과 퇴폐로 타락하였을 때 화산폭발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심판을 받았지요. 신약 시대에도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를 일곱 번이나 되풀이 하며 책망하셨습니다. 심판을 면하여 지옥으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책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죄에 대한 심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과 제자들이 장차 받게 될 환난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활 승천한 뒤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이 얻게 될 유익을 가르치며 격려하셨지요(요 16:7~8). 예수님의 승천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요한복음 16장 9절에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이며 이러한 사람은 결국 심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될까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구원의 문을 여시고 유일한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바로 죄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지 않은 사람은 죄 사함을 받지 못했으니 여전히 죄인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천하 만물을 보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몰라서 믿지 못했다고 핑계 댈 수는 없습니다(롬 1:20). 더구나 오늘날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십니다. 또한 누구나 한 번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전도를 받아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죄에 대하여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3. 의에 대한 심판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원죄와 자범죄도 없이 의롭게 사셨기 때문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여 승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0절에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함이요" 했는데 여기에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기 때문에 사망에 매이지 않고 부활하여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로서 천국을 소유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가셨으므로 이것을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 자녀에서 거룩한 하나님 자녀로 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얻은 것이니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야 하나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의롭게 살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조차도 조롱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술 담배를 하나? 죄만 짓고 다니면서 예수쟁이라고 하다니!" 하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믿는 사람으로서 성령을 받았지만 의롭게 살지 못하여 정죄 받는 것을 '의에 대한 심판'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가 죄에 머물지 않도록 성령을 통하여 책망하고 징계하십니다. 자신이나 가정, 일터, 사업터에 갖가지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바로 의인된 삶을 영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을 잘 알고 지켰기 때문에 스스로 의롭게 산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진리 안에 사는 우리의 의가 그들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마 5:20). 왜냐하면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마 7:21). 마음 중심으로 주님을 믿어 죄를 버리며 의 가운데 거할 때라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4. 심판을 면하려면
요한복음 16장 11절에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세상 임금이란 원수 마귀 사단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의를 이루시고 마지막 심판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심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지옥으로 갈 것이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8~19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했지요.
그러면 우리는 심판을 면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깨어 있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으며(고전 15:34),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살전 5:22).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겉으로 드러난 죄는 물론, 아무리 작은 악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악을 미워하며 선에 속하고자 결심하면 모두 버릴 수 있습니다. 더러는 '한 가지도 버리기 쉽지 않은데 어떻게 다 버릴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그러나 나무뿌리를 하나씩 캐내려고 하면 힘들지만 원뿌리를 뽑으면 잔뿌리는 저절로 따라 나옵니다. 이처럼 가장 버리기 힘든 죄를 중점적으로 버리기 위해 때를 따라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른 죄성들도 함께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고 온전한 자가 되기 원하십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할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요, 보혜사 성령께서 돕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버리고 의인된 삶을 살아야 심판을 면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13~14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했습니다. 사람의 본분을 행하는 알곡 성도가 되어 심판의 때에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6장 8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성령께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 ) 안에 알맞은 단어는 무엇일까요?
성령께서는 성령 받은 사람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 )라고 알리시며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또한 믿는 자로서 성령을 받았지만 의인답게 살지 못하면 ( )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편 '응답의 하나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보혜사(保惠師, Counselor)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성령을 지칭한다. 사람의 마음 안에 내주하면서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성령의 사역을 드러내는 말로 사용된다(요 14:16, 26, 15:26, 16:7). 보혜사로 번역된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도록 곁에 부름받은 자'로 '변호사, 조력자, 위로자, 상담자, 친구'를 뜻한다.
교육목표 :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인이 되어 앞으로 임할 심판을 면하고 영원히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말씀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또한 진리 안에 살게 하여 온전히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등 많은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우치고 진리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1.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
성령께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이유는 바로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시작과 끝에 대한 분명한 계획 속에 인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성경상의 흐름을 보면 선악 간에 분명히 구분하여 죄는 사망으로, 의는 영생으로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함께하시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멸망의 길로 갑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나 아브라함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 등 죄악이 관영해졌을 때에는 심판이 그대로 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애굽 왕 바로에게 열 재앙을 내리신 것도 그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또한 약 2천 년 전 폼페이가 극도의 음란과 퇴폐로 타락하였을 때 화산폭발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심판을 받았지요. 신약 시대에도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를 일곱 번이나 되풀이 하며 책망하셨습니다. 심판을 면하여 지옥으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책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죄에 대한 심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과 제자들이 장차 받게 될 환난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활 승천한 뒤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이 얻게 될 유익을 가르치며 격려하셨지요(요 16:7~8). 예수님의 승천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요한복음 16장 9절에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이며 이러한 사람은 결국 심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될까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구원의 문을 여시고 유일한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바로 죄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지 않은 사람은 죄 사함을 받지 못했으니 여전히 죄인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천하 만물을 보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몰라서 믿지 못했다고 핑계 댈 수는 없습니다(롬 1:20). 더구나 오늘날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십니다. 또한 누구나 한 번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전도를 받아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죄에 대하여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3. 의에 대한 심판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원죄와 자범죄도 없이 의롭게 사셨기 때문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여 승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0절에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함이요" 했는데 여기에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기 때문에 사망에 매이지 않고 부활하여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로서 천국을 소유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가셨으므로 이것을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 자녀에서 거룩한 하나님 자녀로 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얻은 것이니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야 하나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의롭게 살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조차도 조롱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술 담배를 하나? 죄만 짓고 다니면서 예수쟁이라고 하다니!" 하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믿는 사람으로서 성령을 받았지만 의롭게 살지 못하여 정죄 받는 것을 '의에 대한 심판'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가 죄에 머물지 않도록 성령을 통하여 책망하고 징계하십니다. 자신이나 가정, 일터, 사업터에 갖가지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바로 의인된 삶을 영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을 잘 알고 지켰기 때문에 스스로 의롭게 산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진리 안에 사는 우리의 의가 그들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마 5:20). 왜냐하면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마 7:21). 마음 중심으로 주님을 믿어 죄를 버리며 의 가운데 거할 때라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4. 심판을 면하려면
요한복음 16장 11절에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세상 임금이란 원수 마귀 사단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의를 이루시고 마지막 심판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심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지옥으로 갈 것이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8~19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했지요.
그러면 우리는 심판을 면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깨어 있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으며(고전 15:34),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살전 5:22).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겉으로 드러난 죄는 물론, 아무리 작은 악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악을 미워하며 선에 속하고자 결심하면 모두 버릴 수 있습니다. 더러는 '한 가지도 버리기 쉽지 않은데 어떻게 다 버릴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그러나 나무뿌리를 하나씩 캐내려고 하면 힘들지만 원뿌리를 뽑으면 잔뿌리는 저절로 따라 나옵니다. 이처럼 가장 버리기 힘든 죄를 중점적으로 버리기 위해 때를 따라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른 죄성들도 함께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고 온전한 자가 되기 원하십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할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요, 보혜사 성령께서 돕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버리고 의인된 삶을 살아야 심판을 면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13~14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했습니다. 사람의 본분을 행하는 알곡 성도가 되어 심판의 때에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6장 8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성령께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 ) 안에 알맞은 단어는 무엇일까요?
성령께서는 성령 받은 사람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 )라고 알리시며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또한 믿는 자로서 성령을 받았지만 의인답게 살지 못하면 ( )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편 '응답의 하나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보혜사(保惠師, Counselor)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성령을 지칭한다. 사람의 마음 안에 내주하면서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성령의 사역을 드러내는 말로 사용된다(요 14:16, 26, 15:26, 16:7). 보혜사로 번역된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도록 곁에 부름받은 자'로 '변호사, 조력자, 위로자, 상담자, 친구'를 뜻한다.
2009-04-24
제17과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말 4:1~3
읽을말씀 : 말 4:1~3 | 외울말씀 : 말 4:2 l 참고 말씀 : 딤전 6:3
교육목표 : 치료되고 응답받을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십니다(전 12:14). 이는 인류 역사만 살펴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유익을 구하며 상대를 무시하고 악을 쌓아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패망으로 끝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한 사람은 어리석게 보이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축복과 만인의 존중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말라기 4장 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했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선한 일에 쓰느냐, 악한 일에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엄청나게 다릅니다. 예를 들어, 다윗 왕은 하나님 뜻을 좇아 나라를 부강케 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할 것인지 궁구하며 겸손하게 구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욕심에 치우쳐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다윗을 죽이려고 오랜 세월을 허비했습니다. 교만이 극에 달하니 선지자의 지적도 무시하다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전쟁터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을 어떻게 심판하시는지 잘 깨우쳐 교만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셨으니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으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교만을 싫어하시는지 교만한 사람과 손잡고 일을 해도 함께 벌을 받습니다(잠 16:5). 악인은 악인끼리 선인은 선인끼리 모이게 되듯 그 역시 교만하기 때문에 손을 잡는 것입니다.
1) 히스기야 왕의 교만
남왕국 유다의 13대 왕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에 순종을 잘하다가 교만해져 하나님 뜻을 거스르게 됩니다. 처음엔 이방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는 등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을 철저히 배격하였습니다(대하 29:3~30:27). 그러나 문란했던 선대 왕의 과오로 정치적인 어려움과 외세의 압력을 받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접한 애굽, 블레셋, 시돈, 모압, 암몬 등과 동맹을 맺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를 거역하는 무모한 짓이라고 수차 견책하지만(사 30:1~17, 31:1, 3) 교만에 빠진 히스기야 왕은 그 말을 무시해 버리지요. 그러니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받아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간데다가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자 히스기야는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성전 기물과 왕궁의 장식품과 국가의 보고를 털기까지 합니다.
산헤립이 막대한 배상금을 받고도 협박을 계속하자 히스기야는 결국 인간의 계산이나 생각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앗수르를 물리쳐 주십니다. 가정, 일터, 사업터, 이웃, 형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사랑받지 못할 뿐 아니라 어려운 일들을 만나도 도움을 얻지 못합니다.
2) 믿는 사람들의 교만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대로 행치 않는 것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만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업신여겼다(삼하 12:10) 하시며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못하는 것, 사랑하지 못하는 것, 순종하지 못하는 것, 자기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상대의 티를 지적하는 것, 판단 정죄하며 상대를 무시하는 것 등도 모두 교만입니다. 교만하면 섬김을 받고 높아지려 하며 자기 유익과 명예를 위해 악을 쌓아갑니다. 이러한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하신 것입니다.
3) 거짓 선지자들의 교만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북이스라엘 7대 왕인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길르앗 라못을 아람 왕의 손에서 다시 되찾자는 제의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던 여호사밧 왕은 먼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자고 하지만 아합 왕은 아첨하는 거짓 선지자를 사백 명쯤 불러 묻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언하지만 참 선지자 미가야만은 아합 왕에게 화가 있을 것을 말합니다.
끝내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아람과 전쟁을 하지만 전쟁은 무승부로 끝나고 궁지에 몰려 병사로 가장한 아합 왕은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음을 맞습니다. 이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들은 결과입니다. 이러한 거짓 선지자나 거짓 선생은 심판을 받아 지옥의 불못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유황못에 던져집니다(계 21:8).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참 선지자는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합한 중심이기 때문에 올바른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식하는 선지자들은 자기의 생각을 예언처럼 말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거나 그릇된 길로 이끌지요. 가정이든 국가든 교회든 선하고 진실한 사람의 말을 들으면 화목하지만 악한 사람의 길을 좇으면 반드시 고통과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2.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 받는 심판
디모데전서 6장 3~4절에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시고 선하시기 때문에 그 말씀 안에는 모든 선이 들어 있어 다른 교훈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다른 교훈을 말하며 스스로 잘났다고 변론할 뿐 아니라 언쟁과 투기, 분쟁 등이 생깁니다. 이렇게 교만하면 마음이 부패하여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육체의 일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이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고 심판을 받습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부르며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교만을 버리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심판 날에 쭉정이와 같이 지옥불에 던져집니다.
3. 교만을 깨뜨리고 악을 버려야 축복
정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교만을 깨뜨리고 악을 버려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악을 미워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면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 구원과 응답, 축복을 주십니다. 곧 말라기 4장 2~3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사람의 본분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으로 축복해 주시니(잠 22:4)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기뻐 뛰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정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도 치료받고 건강한 삶을 누리며 천국에서 세세토록 영광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아 교만과 악의 모습이 있다면 돌이켜 회개함으로써 겸손과 섬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말라기 4장 2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북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로,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아람과 전쟁을 하다가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은 북이스라엘 7대 왕은 누구일까요?
3. 우리에게 흔히 있는 교만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는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5편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풀무와 초개
풀무란 돌이나 흙으로 만든 도가니 또는 쇠로 만들어져 금속 등을 용해하여 제련하는 용광로를 말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연단이나 심판, 지옥 등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에 던져지는 극형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죽지 않았다(단 3장).
초개란 바짝 마른 지푸라기나 검불을 가리키며 매우 하찮은 것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치료되고 응답받을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십니다(전 12:14). 이는 인류 역사만 살펴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유익을 구하며 상대를 무시하고 악을 쌓아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패망으로 끝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한 사람은 어리석게 보이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축복과 만인의 존중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말라기 4장 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했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선한 일에 쓰느냐, 악한 일에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엄청나게 다릅니다. 예를 들어, 다윗 왕은 하나님 뜻을 좇아 나라를 부강케 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할 것인지 궁구하며 겸손하게 구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욕심에 치우쳐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다윗을 죽이려고 오랜 세월을 허비했습니다. 교만이 극에 달하니 선지자의 지적도 무시하다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전쟁터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을 어떻게 심판하시는지 잘 깨우쳐 교만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셨으니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으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교만을 싫어하시는지 교만한 사람과 손잡고 일을 해도 함께 벌을 받습니다(잠 16:5). 악인은 악인끼리 선인은 선인끼리 모이게 되듯 그 역시 교만하기 때문에 손을 잡는 것입니다.
1) 히스기야 왕의 교만
남왕국 유다의 13대 왕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에 순종을 잘하다가 교만해져 하나님 뜻을 거스르게 됩니다. 처음엔 이방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는 등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을 철저히 배격하였습니다(대하 29:3~30:27). 그러나 문란했던 선대 왕의 과오로 정치적인 어려움과 외세의 압력을 받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접한 애굽, 블레셋, 시돈, 모압, 암몬 등과 동맹을 맺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를 거역하는 무모한 짓이라고 수차 견책하지만(사 30:1~17, 31:1, 3) 교만에 빠진 히스기야 왕은 그 말을 무시해 버리지요. 그러니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받아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간데다가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자 히스기야는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성전 기물과 왕궁의 장식품과 국가의 보고를 털기까지 합니다.
산헤립이 막대한 배상금을 받고도 협박을 계속하자 히스기야는 결국 인간의 계산이나 생각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앗수르를 물리쳐 주십니다. 가정, 일터, 사업터, 이웃, 형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사랑받지 못할 뿐 아니라 어려운 일들을 만나도 도움을 얻지 못합니다.
2) 믿는 사람들의 교만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대로 행치 않는 것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만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업신여겼다(삼하 12:10) 하시며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못하는 것, 사랑하지 못하는 것, 순종하지 못하는 것, 자기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상대의 티를 지적하는 것, 판단 정죄하며 상대를 무시하는 것 등도 모두 교만입니다. 교만하면 섬김을 받고 높아지려 하며 자기 유익과 명예를 위해 악을 쌓아갑니다. 이러한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하신 것입니다.
3) 거짓 선지자들의 교만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북이스라엘 7대 왕인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길르앗 라못을 아람 왕의 손에서 다시 되찾자는 제의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던 여호사밧 왕은 먼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자고 하지만 아합 왕은 아첨하는 거짓 선지자를 사백 명쯤 불러 묻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언하지만 참 선지자 미가야만은 아합 왕에게 화가 있을 것을 말합니다.
끝내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아람과 전쟁을 하지만 전쟁은 무승부로 끝나고 궁지에 몰려 병사로 가장한 아합 왕은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음을 맞습니다. 이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들은 결과입니다. 이러한 거짓 선지자나 거짓 선생은 심판을 받아 지옥의 불못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유황못에 던져집니다(계 21:8).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참 선지자는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합한 중심이기 때문에 올바른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식하는 선지자들은 자기의 생각을 예언처럼 말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거나 그릇된 길로 이끌지요. 가정이든 국가든 교회든 선하고 진실한 사람의 말을 들으면 화목하지만 악한 사람의 길을 좇으면 반드시 고통과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2.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 받는 심판
디모데전서 6장 3~4절에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시고 선하시기 때문에 그 말씀 안에는 모든 선이 들어 있어 다른 교훈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다른 교훈을 말하며 스스로 잘났다고 변론할 뿐 아니라 언쟁과 투기, 분쟁 등이 생깁니다. 이렇게 교만하면 마음이 부패하여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육체의 일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이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고 심판을 받습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부르며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교만을 버리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심판 날에 쭉정이와 같이 지옥불에 던져집니다.
3. 교만을 깨뜨리고 악을 버려야 축복
정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교만을 깨뜨리고 악을 버려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악을 미워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면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 구원과 응답, 축복을 주십니다. 곧 말라기 4장 2~3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사람의 본분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으로 축복해 주시니(잠 22:4)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기뻐 뛰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정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도 치료받고 건강한 삶을 누리며 천국에서 세세토록 영광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아 교만과 악의 모습이 있다면 돌이켜 회개함으로써 겸손과 섬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말라기 4장 2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북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로,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아람과 전쟁을 하다가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은 북이스라엘 7대 왕은 누구일까요?
3. 우리에게 흔히 있는 교만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는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5편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풀무와 초개
풀무란 돌이나 흙으로 만든 도가니 또는 쇠로 만들어져 금속 등을 용해하여 제련하는 용광로를 말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연단이나 심판, 지옥 등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에 던져지는 극형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죽지 않았다(단 3장).
초개란 바짝 마른 지푸라기나 검불을 가리키며 매우 하찮은 것을 의미한다.
2009-04-17
제16과뜻을 거스르지 말라
민 16:1~3, 31~35
읽을말씀 : 민 16:1~3, 31~35 | 외울말씀 : 출 20:5 l 참고 말씀 : 출 32:21~28
교육목표 :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 심판이 임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 법도를 지키며 정도를 걷는 자녀에게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도록 만사형통한 축복을 주십니다. 반면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 뜻을 거스르면 저주와 재앙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 행하는 참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심판이 임해
민수기 16장 1~3절을 보면 출애굽 당시 고라와 다단과 온은 당을 짓고 이스라엘의 유력한 족장 250인과 함께 하나님 뜻을 거슬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들의 지도자입니다. 모세와 함께 모든 사람이 일치단결하여 광야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상황에서 가슴 아픈 일이 생긴 것입니다. 결국 고라와 다단과 온은 가족들과 함께 땅이 갈라지면서 산 채로 그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또 그들과 함께한 족장 250인도 여호와의 불에 의해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2장에도 모세의 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이 모세를 거역한 일이 나옵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을 때 미리암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면서 비방한 것입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아론과 미리암에게 진노하시니 즉시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책망하십니다(민 12:6~8). 이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은 허다하게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하시는데도 자신의 생각과 뜻에 맞지 않으면 이를 거역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에 맞추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되니 더 이상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행하므로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사람들
1)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내린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는 등 갖가지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며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으러 40일 동안 금식하며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경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삼고 그들에게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가르쳤는데도 그 뜻을 거스른 것입니다. 그 결과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했습니다(출 32:21~28). 우리 주변을 보면 우상을 섬겨온 가정에는 유난히 우환질고가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는 죄는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에 이르게 할 만큼 큰 죄임을 깨달아(출 20:4~5) 결단코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지 않은 애굽 왕 바로
출애굽기 7~12장을 보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에서 나오려 할 때 애굽 왕 바로가 순순히 놓아 주지 않아 큰 화를 당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하나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는 것인데 마음이 강퍅한 바로 왕이 이를 방해한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열 재앙을 내리셨고 그 사이 온 나라가 피폐해졌습니다. 출애굽을 허락한 바로 왕은 너무나 억울하여 갈라진 홍해 속까지 뒤쫓다가 결국 온 군대가 수장되고 말았지요.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다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믿는다 하면서도 사소한 감정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것, 직분자들이 시기나 욕심 때문에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훼방하는 것 등도 바로 왕의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빛 가운데 살기 원하는 하나님 뜻을 알면서도 계속 어둠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갖가지 우환질고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차 경고하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세상을 향하여 그 뜻을 거스른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뜻 가운데 살면 질병이나 시험 환난은 저절로 떠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질서에 어긋난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
사무엘상 2장에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릴 음식에 먼저 손을 대는가 하면 하나님 전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행음할 정도로 불량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인 엘리 제사장은 권면만 할 뿐 어떤 조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임을 당했고, 엘리 제사장은 그 소식을 듣다가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들들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죄로 목이 부러져 죽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로 행음하거나 하나님 재정을 임의로 유용하거나 다른 목적에 쓰는 등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들을 용납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바로 엘리 제사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4) 엘리사를 조롱한 아이들과 게하시
엘리사는 하나님과 교통하며 보장받은 능력의 종입니다. 열왕기하 2장에 보면 수십 명의 아이들이 떼 지어 엘리사를 따라다니며 대머리라고 조롱하며 괴롭힙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엘리사가 저희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니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 아이들 중에 42명을 물어 죽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종의 저주와 축복은 그대로 임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사람을 비방하거나 험담하며 조롱하는 일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지요.
또한 엘리사를 수종 들던 게하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사가 아람 군대장관이었던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하나님 능력으로 치료해 준 적이 있습니다. 몹시 감격한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큰 선물을 하고자 했으나 엘리사는 한사코 거절합니다.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주인의 뜻도 모르고 물질에 눈이 어두워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서 그를 속이고 선물을 받아와 은밀히 감추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끝내 회개하지 않고 시치미를 뗐습니다. 그 결과 저주를 받으니 나아만의 문둥병이 게하시에게 옮겨왔습니다(왕하 5:20~27). 그는 엘리사의 뜻을 거스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뜻을 거스른 것입니다.
5)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초대교회 교인으로서 자기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였지만 막상 돈을 손에 쥐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는 전부라고 속였다가 죽었습니다(행 5:1-11). 이는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하고 성령을 속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므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몇 가지 예를 소개하였는데 이 외에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징계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아 혹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있었다면 즉시 돌이켜서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출애굽기 20장 5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서 법도를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3.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고라와 다단과 온 일행 그리고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나요?
4. 우리 삶 속에서 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에 대한 간증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4편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읽어 오기
● '성경상의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엘리 대제사장 : 사사시대 말기의 대제사장(삼상1:9).
사무엘을 맡아 양육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자기 아들 교육에는 실패하였다. (삼상 2:11~12).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하여 언약궤를 빼앗기고 두 아들은 전사하였다(삼상 4:17). 두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엘리는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으며, 그의 며느리도 놀라 아이를 해산하고 죽는 등 멸문의 화를 당했다. 그 와중에 낳은 아들 고아 이가봇이 있을 뿐이다(삼상 4:18~22). 그의 자손은 솔로몬 왕에게 쫓겨난 아비아달을 최후로 제사장직에서 물러났다(왕상 2:27).
교육목표 :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 심판이 임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 법도를 지키며 정도를 걷는 자녀에게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도록 만사형통한 축복을 주십니다. 반면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 뜻을 거스르면 저주와 재앙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 행하는 참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심판이 임해
민수기 16장 1~3절을 보면 출애굽 당시 고라와 다단과 온은 당을 짓고 이스라엘의 유력한 족장 250인과 함께 하나님 뜻을 거슬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들의 지도자입니다. 모세와 함께 모든 사람이 일치단결하여 광야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상황에서 가슴 아픈 일이 생긴 것입니다. 결국 고라와 다단과 온은 가족들과 함께 땅이 갈라지면서 산 채로 그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또 그들과 함께한 족장 250인도 여호와의 불에 의해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2장에도 모세의 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이 모세를 거역한 일이 나옵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을 때 미리암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면서 비방한 것입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아론과 미리암에게 진노하시니 즉시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책망하십니다(민 12:6~8). 이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은 허다하게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하시는데도 자신의 생각과 뜻에 맞지 않으면 이를 거역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에 맞추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되니 더 이상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행하므로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사람들
1)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내린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는 등 갖가지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며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으러 40일 동안 금식하며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경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삼고 그들에게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가르쳤는데도 그 뜻을 거스른 것입니다. 그 결과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했습니다(출 32:21~28). 우리 주변을 보면 우상을 섬겨온 가정에는 유난히 우환질고가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는 죄는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에 이르게 할 만큼 큰 죄임을 깨달아(출 20:4~5) 결단코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지 않은 애굽 왕 바로
출애굽기 7~12장을 보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에서 나오려 할 때 애굽 왕 바로가 순순히 놓아 주지 않아 큰 화를 당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하나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는 것인데 마음이 강퍅한 바로 왕이 이를 방해한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열 재앙을 내리셨고 그 사이 온 나라가 피폐해졌습니다. 출애굽을 허락한 바로 왕은 너무나 억울하여 갈라진 홍해 속까지 뒤쫓다가 결국 온 군대가 수장되고 말았지요.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다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믿는다 하면서도 사소한 감정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것, 직분자들이 시기나 욕심 때문에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훼방하는 것 등도 바로 왕의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빛 가운데 살기 원하는 하나님 뜻을 알면서도 계속 어둠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갖가지 우환질고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차 경고하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세상을 향하여 그 뜻을 거스른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뜻 가운데 살면 질병이나 시험 환난은 저절로 떠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질서에 어긋난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
사무엘상 2장에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릴 음식에 먼저 손을 대는가 하면 하나님 전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행음할 정도로 불량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인 엘리 제사장은 권면만 할 뿐 어떤 조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임을 당했고, 엘리 제사장은 그 소식을 듣다가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들들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죄로 목이 부러져 죽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로 행음하거나 하나님 재정을 임의로 유용하거나 다른 목적에 쓰는 등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들을 용납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바로 엘리 제사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4) 엘리사를 조롱한 아이들과 게하시
엘리사는 하나님과 교통하며 보장받은 능력의 종입니다. 열왕기하 2장에 보면 수십 명의 아이들이 떼 지어 엘리사를 따라다니며 대머리라고 조롱하며 괴롭힙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엘리사가 저희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니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 아이들 중에 42명을 물어 죽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종의 저주와 축복은 그대로 임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사람을 비방하거나 험담하며 조롱하는 일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지요.
또한 엘리사를 수종 들던 게하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사가 아람 군대장관이었던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하나님 능력으로 치료해 준 적이 있습니다. 몹시 감격한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큰 선물을 하고자 했으나 엘리사는 한사코 거절합니다.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주인의 뜻도 모르고 물질에 눈이 어두워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서 그를 속이고 선물을 받아와 은밀히 감추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끝내 회개하지 않고 시치미를 뗐습니다. 그 결과 저주를 받으니 나아만의 문둥병이 게하시에게 옮겨왔습니다(왕하 5:20~27). 그는 엘리사의 뜻을 거스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뜻을 거스른 것입니다.
5)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초대교회 교인으로서 자기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였지만 막상 돈을 손에 쥐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는 전부라고 속였다가 죽었습니다(행 5:1-11). 이는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하고 성령을 속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므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몇 가지 예를 소개하였는데 이 외에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징계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아 혹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있었다면 즉시 돌이켜서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출애굽기 20장 5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서 법도를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3.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고라와 다단과 온 일행 그리고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나요?
4. 우리 삶 속에서 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에 대한 간증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4편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읽어 오기
● '성경상의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엘리 대제사장 : 사사시대 말기의 대제사장(삼상1:9).
사무엘을 맡아 양육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자기 아들 교육에는 실패하였다. (삼상 2:11~12).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하여 언약궤를 빼앗기고 두 아들은 전사하였다(삼상 4:17). 두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엘리는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으며, 그의 며느리도 놀라 아이를 해산하고 죽는 등 멸문의 화를 당했다. 그 와중에 낳은 아들 고아 이가봇이 있을 뿐이다(삼상 4:18~22). 그의 자손은 솔로몬 왕에게 쫓겨난 아비아달을 최후로 제사장직에서 물러났다(왕상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