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TOTAL : 1473 PAGE : 81/105
2009-08-28
제35과지혜롭게 살자
약 3:17~18
읽을말씀 : 약 3:17~18 | 외울말씀 : 눅 6:45 ㅣ 참고 말씀: 잠 3:14~18, 11:30
교육목표 : 선의 지혜와 악의 지혜를 살펴봄으로 선의 지혜의 귀중성을 알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지혜로운 사람은 어려운 일을 훨씬 적게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며 이 땅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때문에 지혜는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지혜의 귀중성
사전에는 지혜를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시비와 선악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뇌세포에 기억장치를 만들어 주시고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아직 보고 들은 것이 없기 때문에 기억장치에 아무런 지식도 들어 있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빨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라면서 부모나 형제, 선생님과 같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갑니다.
이러한 지식을 적절히 배합하여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식을 얼마나 잘 배합해서 활용하느냐에 따라 '지혜롭다', 혹은 '지혜롭지 못하다' 말하게 됩니다. 지혜는 개인뿐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 나아가 나라에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지혜가 어떠한지에 따라 사람이 죽고 살기도 하며, 한 나라가 흥하고 쇠하기도 합니다. 지혜는 크게 나누어 선한 지혜와 악한 지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한 지혜는 선한 마음에서, 악한 지혜는 악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선한 지혜를 쓰면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고, 가정도 흥하며 모든 곳에서 형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더해 줍니다. 반대로 악한 지혜를 쓰면 당장에는 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 망하거나 죽습니다. 그래서 잠언 3장 14~18절에는 선한 지혜의 귀중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2. 선의 지혜와 악의 지혜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자기 유익을 좇아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신속하게 멸망시킬 수 있는 악한 지혜를 압살롬에게 말해 줍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모략이 아닌 다윗의 충신 후새의 모략이 채택되었습니다.
후새는 다윗의 밀명을 받고 예루살렘에 들어온 사람으로서 그는 먼저 압살롬이 자신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아히도벨의 모략을 깨고 자기의 모략을 받아들이게 하여 다윗 일행의 생명을 구해 주는 큰 공을 세웁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에 선으로 악을 이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하 17:14).
아히도벨은 자기의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자기의 모략대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모략대로 하면 압살롬이 다윗에게 패하고, 다윗을 배신한 자기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을 알고 일찌감치 자살을 한 것입니다.
반면에 선한 지혜가 있었던 기생 라합은 어떻습니까? 여호수아 2장을 보면 라합 이라는 기생은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온 이스라엘 정탐꾼 두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자기 집에 유숙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왕이 정탐꾼들을 잡으려고 사람들을 보내자 지혜로운 말로 그들을 따돌려서 정탐꾼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것입니다. 라합은 이러한 선의 지혜로 인해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에 자신뿐 아니라 부모 형제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았습니다. 이처럼 선한 지혜를 좇으면 실패를 면하며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선의 지혜로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하면서 가슴 깊이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지요. 악한 사람은 악 속에서 지혜가 나오기 때문에 상대를 찌르고 무안 주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상대를 무시하거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더는 시험하지 못하도록 지혜롭게 하셨던 것입니다(눅 10:25~37). 이것이 선 속에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 나오는 한 아기를 둘러싼 두 여인의 싸움에 대한 솔로몬의 명판결은 널리 알려져 있는 놀라운 지혜입니다.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는 두 엄마에게 아기를 반으로 갈라 나누어 갖도록 명하여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 확연히 드러나도록 재판하였습니다.
이렇게 선의 지혜가 있으면 억울함을 면할 수도 있고, 간악한 사람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으며, 현명한 판단으로 상대가 고개를 숙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솔로몬 임금처럼 만천하에 놀라운 권위를 나타내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3. 선한 지혜를 받으려면
마음이 성결하면 모든 생각하는 방법론이 진리로 나옵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하신 말씀처럼 선한 마음에서는 선한 생각이 나오고 선한 방법 진리의 방법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꾀를 써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방법론은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듭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리고 성결을 이루었을 때에 선한 지혜가 나옵니다. 하지만 성결하다고 해서 무조건 지혜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성결한 마음이 되면 선한 생각과 말을 하고 선의 행동을 보입니다. 이러한 말과 행동, 생각이 지혜와 겸비되어 합력해서 선을 이루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잘못을 범한 사람이 찾아왔다고 합시다. 만일 마음속에 악이 있다면 그를 책망하거나 몹쓸 사람이라 욕하며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 벗어 버린 선한 마음이라면 미운 감정이 앞서지 않고 상대가 돌이키고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선도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잘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선의 가르침을 베풀고자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선으로 깨우침을 주어야 한다는 지혜가 옵니다.
또한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쥐가 돌아서서 고양이를 물듯이 너무 어려운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이 그런 악이 발동하지 않도록 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지혜가 오지요. 그러한 선의 지혜를 통해 그가 선에 감동되어 더 이상 악을 발전시키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결한 마음이 되면 성결한 방법론이 나오고 또 그에 필요한 지혜가 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장 17~18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성결한 마음을 이루고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결과 지혜가 다르다고 했으니 성결한 마음이 되었다면 지혜를 받는 방법론이 나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1+1=2'라는 것을 배워서 안다면 다음에 그러한 문제가 나왔을 때에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2'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곱하기와 나누기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또 배워야 다른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도 믿음의 선진들의 지혜를 배워 삶에 적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각 사건들에 대한 지혜를 잘 배워 양식을 삼으면 비슷한 일이 닥쳤을 때 성령께서 떠올려 주셔서 그대로 대처하게 하시니 항상 승리의 삶,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누가복음 6장 45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지혜란 쌓은 ( )을 적절히 잘 배합해서 ( )하는 것입니다.
3. 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 )해야 합니다. 마음이 ( )하면 모든 생각하는 방법론이 ( )로 나옵니다.
4. 한 아기를 둘러싼 두 여인의 싸움에 대한 솔로몬의 명판결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5. 우리 삶 속에서 선한 지혜로 축복받은 간증들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1편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읽어 오기
● '지혜 관련 성구' 알고 넘어갑시다!
잠언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4: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잠언 16:16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교육목표 : 선의 지혜와 악의 지혜를 살펴봄으로 선의 지혜의 귀중성을 알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지혜로운 사람은 어려운 일을 훨씬 적게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며 이 땅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때문에 지혜는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지혜의 귀중성
사전에는 지혜를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시비와 선악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뇌세포에 기억장치를 만들어 주시고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아직 보고 들은 것이 없기 때문에 기억장치에 아무런 지식도 들어 있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빨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라면서 부모나 형제, 선생님과 같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갑니다.
이러한 지식을 적절히 배합하여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식을 얼마나 잘 배합해서 활용하느냐에 따라 '지혜롭다', 혹은 '지혜롭지 못하다' 말하게 됩니다. 지혜는 개인뿐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 나아가 나라에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지혜가 어떠한지에 따라 사람이 죽고 살기도 하며, 한 나라가 흥하고 쇠하기도 합니다. 지혜는 크게 나누어 선한 지혜와 악한 지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한 지혜는 선한 마음에서, 악한 지혜는 악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선한 지혜를 쓰면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고, 가정도 흥하며 모든 곳에서 형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더해 줍니다. 반대로 악한 지혜를 쓰면 당장에는 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 망하거나 죽습니다. 그래서 잠언 3장 14~18절에는 선한 지혜의 귀중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2. 선의 지혜와 악의 지혜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자기 유익을 좇아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신속하게 멸망시킬 수 있는 악한 지혜를 압살롬에게 말해 줍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모략이 아닌 다윗의 충신 후새의 모략이 채택되었습니다.
후새는 다윗의 밀명을 받고 예루살렘에 들어온 사람으로서 그는 먼저 압살롬이 자신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아히도벨의 모략을 깨고 자기의 모략을 받아들이게 하여 다윗 일행의 생명을 구해 주는 큰 공을 세웁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에 선으로 악을 이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하 17:14).
아히도벨은 자기의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자기의 모략대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모략대로 하면 압살롬이 다윗에게 패하고, 다윗을 배신한 자기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을 알고 일찌감치 자살을 한 것입니다.
반면에 선한 지혜가 있었던 기생 라합은 어떻습니까? 여호수아 2장을 보면 라합 이라는 기생은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온 이스라엘 정탐꾼 두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자기 집에 유숙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왕이 정탐꾼들을 잡으려고 사람들을 보내자 지혜로운 말로 그들을 따돌려서 정탐꾼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것입니다. 라합은 이러한 선의 지혜로 인해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에 자신뿐 아니라 부모 형제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았습니다. 이처럼 선한 지혜를 좇으면 실패를 면하며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선의 지혜로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하면서 가슴 깊이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지요. 악한 사람은 악 속에서 지혜가 나오기 때문에 상대를 찌르고 무안 주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상대를 무시하거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더는 시험하지 못하도록 지혜롭게 하셨던 것입니다(눅 10:25~37). 이것이 선 속에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 나오는 한 아기를 둘러싼 두 여인의 싸움에 대한 솔로몬의 명판결은 널리 알려져 있는 놀라운 지혜입니다.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는 두 엄마에게 아기를 반으로 갈라 나누어 갖도록 명하여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 확연히 드러나도록 재판하였습니다.
이렇게 선의 지혜가 있으면 억울함을 면할 수도 있고, 간악한 사람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으며, 현명한 판단으로 상대가 고개를 숙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솔로몬 임금처럼 만천하에 놀라운 권위를 나타내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3. 선한 지혜를 받으려면
마음이 성결하면 모든 생각하는 방법론이 진리로 나옵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하신 말씀처럼 선한 마음에서는 선한 생각이 나오고 선한 방법 진리의 방법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꾀를 써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방법론은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듭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리고 성결을 이루었을 때에 선한 지혜가 나옵니다. 하지만 성결하다고 해서 무조건 지혜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성결한 마음이 되면 선한 생각과 말을 하고 선의 행동을 보입니다. 이러한 말과 행동, 생각이 지혜와 겸비되어 합력해서 선을 이루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잘못을 범한 사람이 찾아왔다고 합시다. 만일 마음속에 악이 있다면 그를 책망하거나 몹쓸 사람이라 욕하며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 벗어 버린 선한 마음이라면 미운 감정이 앞서지 않고 상대가 돌이키고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선도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잘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선의 가르침을 베풀고자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선으로 깨우침을 주어야 한다는 지혜가 옵니다.
또한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쥐가 돌아서서 고양이를 물듯이 너무 어려운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이 그런 악이 발동하지 않도록 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지혜가 오지요. 그러한 선의 지혜를 통해 그가 선에 감동되어 더 이상 악을 발전시키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결한 마음이 되면 성결한 방법론이 나오고 또 그에 필요한 지혜가 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장 17~18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성결한 마음을 이루고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결과 지혜가 다르다고 했으니 성결한 마음이 되었다면 지혜를 받는 방법론이 나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1+1=2'라는 것을 배워서 안다면 다음에 그러한 문제가 나왔을 때에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2'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곱하기와 나누기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또 배워야 다른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도 믿음의 선진들의 지혜를 배워 삶에 적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각 사건들에 대한 지혜를 잘 배워 양식을 삼으면 비슷한 일이 닥쳤을 때 성령께서 떠올려 주셔서 그대로 대처하게 하시니 항상 승리의 삶,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누가복음 6장 45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지혜란 쌓은 ( )을 적절히 잘 배합해서 ( )하는 것입니다.
3. 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 )해야 합니다. 마음이 ( )하면 모든 생각하는 방법론이 ( )로 나옵니다.
4. 한 아기를 둘러싼 두 여인의 싸움에 대한 솔로몬의 명판결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5. 우리 삶 속에서 선한 지혜로 축복받은 간증들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1편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읽어 오기
● '지혜 관련 성구' 알고 넘어갑시다!
잠언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4: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잠언 16:16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2009-08-21
제34과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창 31:7~13
읽을말씀 : 창 31:7~13 | 외울말씀 : 창 27:28 l 참고 말씀:창 27:27~29, 30:43
교육목표 : 야곱을 통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축복을 받는지 살펴보고 참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과 인류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그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면 어떠한 불행한 삶이라도 행복한 삶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1. 축복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여 축복받았다고 간증하며 영광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응답받지 못했다고 원망 불평하고 탄식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응답하시며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을 보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만난 사람들은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에도 친히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서 감옥에까지 갇히는 신세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이 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어 국무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결국 요셉 통해 애굽을 구원하셨으며, 부모와 형제들도 기근에서 구원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마음껏 축복 주시기 원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깨우쳐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2.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야곱의 하나님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의 아들로서, 형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형 에서는 몸에 털이 많이 나 있고 사냥을 좋아하였으며 아버지 이삭의 사랑을 받았던 반면 동생 야곱은 매끈매끈한 사람이었고 집안 일을 도와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야곱은 간교한 사람으로 지혜도 많았고, 꿈과 야심이 있어서 형에게 있는 장자의 권리도 갖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와서 몹시 배고파 할 때에 팥죽 한 그릇을 주고 형에게서 장자권을 얻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들자 죽기 전에 장자인 에서를 불러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면 축복해 주겠다고 합니다. 이를 엿들은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인 척 위장하고 들어가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 에서처럼 꾸미고 어머니가 만들어 준 별미를 갖고 들어가 아비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므로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마음껏 축복해 줍니다(창 27:27~29).
그런데 이 일이 곧 탄로가 납니다. 야곱이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형 에서가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아버지 방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삭은 깜짝 놀라 크게 떨며 야곱에게 다 축복해 주었으니 더 이상 축복해 줄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에서는 야곱에게 모든 축복을 빼앗긴 것을 알고 방성대곡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격분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만 하면 야곱을 죽이겠다고 결심합니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일단 몸을 피할 것을 권합니다.
야곱은 하는 수 없이 혈혈단신으로 부모 곁을 떠나 어머니 고향인 하란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기거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기반이 없는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 그저 봉사하는 사람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헌신적으로 한 달 정도 일을 하니 외삼촌 라반이 그에게 일한 대가로 무엇을 보수로 주면 좋을지 묻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을 위해 7년을 봉사하겠으니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7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기쁘게 일하였습니다.
드디어 7년이 지나 결혼 잔치를 치르고 아침에 보니 자기와 결혼한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외삼촌이 야곱을 속이고 라헬의 언니인 레아를 시집보낸 것입니다. 야곱은 어찌된 일이냐고 외삼촌에게 따지자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이 지방 풍속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7일을 기다리면 라헬까지 아내로 줄 테니 다시 7년을 더 봉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야곱은 억울했지만 도망자의 신분으로 감히 원망 불평도 못하고 순순히 승복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칠 수 있습니까? 항상 자기 형편과 처지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울하다, 비위가 상한다' 하여 이것저것 따지거나 자기 분수에 넘치게 행하면 반듯하게 서지 못하고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 제반 상황이 어느 정도 갖추어질 때에 자기 위치가 견고히 서는 것입니다.
마침내 야곱은 라반의 사위가 되어 인척관계가 확실해지고 또 아내도 얻고 자녀도 많이 낳아 이제는 자기 소유물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제 당당히 서기 위해 지혜를 펼치기 시작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외삼촌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합니다. 외삼촌 라반은 여호와께서 야곱으로 인해 자기에게 복을 주신 줄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창 30:27) 복덩어리 야곱을 놓치고 싶지 않아 품삯 이야기를 꺼냅니다.
야곱은 이미 여러 번 품삯을 변개했던 외삼촌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지혜를 써서 외삼촌의 양 떼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 그리고 염소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들을 자기 품삯으로 달라고 합니다. 외삼촌은 자신에게 유리한 제안이라 생각하며 쾌히 승낙하지만, 지혜로운 야곱은 이미 바라봄의 법칙을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군데군데 껍질을 벗겨내어 무늬가 생기게 하고 그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양 떼가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다 세워 놓았습니다. 실한 양, 즉 튼튼한 양이 새끼를 밸 때에는 그렇게 하고, 약한 양이면 가지를 거기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물을 마신 실한 양들은 교미하여 잉태한 후 아롱지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새끼를 많이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한 새끼들은 다 야곱의 것이 되고 약한 것들은 라반의 것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14년간 봉사하면서 어떻게 해야 양이 새끼를 잘 낳고 잘 자라는지 완전히 터득하여 양치는 달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대로 이루어지는 믿음의 법칙 또한 터득하였던 것입니다. 야곱의 소유가 심히 많아지자 라반의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의 것을 착취해서 거부가 되었다 하고 라반의 태도도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3.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 야곱의 축복
그러한 상황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야곱에게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창 31:13). 이 말에 순종하여 야곱은 삼촌 몰래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모든 소유물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출발했습니다. 3일 후에 라반이 이 사실을 알고 자기 형제들을 거느리고 야곱을 뒤쫓아 갑니다. 그러나 밤에 하나님께서 현몽하여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 하시자 라반은 결국 야곱을 해하지 않고 갈르엣에서 약조를 맺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형 에서가 400인을 이끌고 야곱을 만나러 오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장자권을 빼앗기고 복수심에 불타는 형을 생각하니 야곱은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삼촌 라반과 약조했으니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에는 형 에서가 죽이려고 기다리니 전진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시니 형 에서의 마음이 녹아 야곱을 반겨 맞았고, 야곱은 고향에 돌아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야곱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우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은 야곱처럼 고생할 필요가 없고, 아브라함처럼 쉽게 인도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생각, 자기 방법대로 나갈 때는 실패하는 것이 많지만 아브라함처럼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친히 인도하심을 받아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곱은 사냥 갔다 돌아와서 심히 곤비해 있는 형 에서에게 팥죽을 주고 무엇을 샀나요?
2. 야곱은 얍복 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하나님께 얻은 새 이름은 무엇이며, 그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요?
3. 야곱처럼 환난과 고난을 통해 깨어진 후 축복받은 경험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4.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6편 '지혜롭게 살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환도뼈란?
현대 의학 용어로 대퇴골이라 하며, 허리 아래에 있는 넓적다리뼈를 말한다.
교육목표 : 야곱을 통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축복을 받는지 살펴보고 참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과 인류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그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면 어떠한 불행한 삶이라도 행복한 삶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1. 축복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여 축복받았다고 간증하며 영광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응답받지 못했다고 원망 불평하고 탄식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응답하시며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을 보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만난 사람들은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에도 친히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서 감옥에까지 갇히는 신세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이 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어 국무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결국 요셉 통해 애굽을 구원하셨으며, 부모와 형제들도 기근에서 구원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마음껏 축복 주시기 원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깨우쳐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2.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야곱의 하나님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의 아들로서, 형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형 에서는 몸에 털이 많이 나 있고 사냥을 좋아하였으며 아버지 이삭의 사랑을 받았던 반면 동생 야곱은 매끈매끈한 사람이었고 집안 일을 도와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야곱은 간교한 사람으로 지혜도 많았고, 꿈과 야심이 있어서 형에게 있는 장자의 권리도 갖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와서 몹시 배고파 할 때에 팥죽 한 그릇을 주고 형에게서 장자권을 얻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들자 죽기 전에 장자인 에서를 불러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면 축복해 주겠다고 합니다. 이를 엿들은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인 척 위장하고 들어가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 에서처럼 꾸미고 어머니가 만들어 준 별미를 갖고 들어가 아비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므로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마음껏 축복해 줍니다(창 27:27~29).
그런데 이 일이 곧 탄로가 납니다. 야곱이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형 에서가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아버지 방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삭은 깜짝 놀라 크게 떨며 야곱에게 다 축복해 주었으니 더 이상 축복해 줄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에서는 야곱에게 모든 축복을 빼앗긴 것을 알고 방성대곡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격분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만 하면 야곱을 죽이겠다고 결심합니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일단 몸을 피할 것을 권합니다.
야곱은 하는 수 없이 혈혈단신으로 부모 곁을 떠나 어머니 고향인 하란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기거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기반이 없는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 그저 봉사하는 사람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헌신적으로 한 달 정도 일을 하니 외삼촌 라반이 그에게 일한 대가로 무엇을 보수로 주면 좋을지 묻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을 위해 7년을 봉사하겠으니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7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기쁘게 일하였습니다.
드디어 7년이 지나 결혼 잔치를 치르고 아침에 보니 자기와 결혼한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외삼촌이 야곱을 속이고 라헬의 언니인 레아를 시집보낸 것입니다. 야곱은 어찌된 일이냐고 외삼촌에게 따지자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이 지방 풍속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7일을 기다리면 라헬까지 아내로 줄 테니 다시 7년을 더 봉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야곱은 억울했지만 도망자의 신분으로 감히 원망 불평도 못하고 순순히 승복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칠 수 있습니까? 항상 자기 형편과 처지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울하다, 비위가 상한다' 하여 이것저것 따지거나 자기 분수에 넘치게 행하면 반듯하게 서지 못하고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 제반 상황이 어느 정도 갖추어질 때에 자기 위치가 견고히 서는 것입니다.
마침내 야곱은 라반의 사위가 되어 인척관계가 확실해지고 또 아내도 얻고 자녀도 많이 낳아 이제는 자기 소유물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제 당당히 서기 위해 지혜를 펼치기 시작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외삼촌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합니다. 외삼촌 라반은 여호와께서 야곱으로 인해 자기에게 복을 주신 줄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창 30:27) 복덩어리 야곱을 놓치고 싶지 않아 품삯 이야기를 꺼냅니다.
야곱은 이미 여러 번 품삯을 변개했던 외삼촌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지혜를 써서 외삼촌의 양 떼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 그리고 염소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들을 자기 품삯으로 달라고 합니다. 외삼촌은 자신에게 유리한 제안이라 생각하며 쾌히 승낙하지만, 지혜로운 야곱은 이미 바라봄의 법칙을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군데군데 껍질을 벗겨내어 무늬가 생기게 하고 그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양 떼가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다 세워 놓았습니다. 실한 양, 즉 튼튼한 양이 새끼를 밸 때에는 그렇게 하고, 약한 양이면 가지를 거기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물을 마신 실한 양들은 교미하여 잉태한 후 아롱지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새끼를 많이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한 새끼들은 다 야곱의 것이 되고 약한 것들은 라반의 것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14년간 봉사하면서 어떻게 해야 양이 새끼를 잘 낳고 잘 자라는지 완전히 터득하여 양치는 달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대로 이루어지는 믿음의 법칙 또한 터득하였던 것입니다. 야곱의 소유가 심히 많아지자 라반의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의 것을 착취해서 거부가 되었다 하고 라반의 태도도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3.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 야곱의 축복
그러한 상황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야곱에게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창 31:13). 이 말에 순종하여 야곱은 삼촌 몰래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모든 소유물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출발했습니다. 3일 후에 라반이 이 사실을 알고 자기 형제들을 거느리고 야곱을 뒤쫓아 갑니다. 그러나 밤에 하나님께서 현몽하여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 하시자 라반은 결국 야곱을 해하지 않고 갈르엣에서 약조를 맺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형 에서가 400인을 이끌고 야곱을 만나러 오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장자권을 빼앗기고 복수심에 불타는 형을 생각하니 야곱은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삼촌 라반과 약조했으니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에는 형 에서가 죽이려고 기다리니 전진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시니 형 에서의 마음이 녹아 야곱을 반겨 맞았고, 야곱은 고향에 돌아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야곱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우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은 야곱처럼 고생할 필요가 없고, 아브라함처럼 쉽게 인도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생각, 자기 방법대로 나갈 때는 실패하는 것이 많지만 아브라함처럼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친히 인도하심을 받아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곱은 사냥 갔다 돌아와서 심히 곤비해 있는 형 에서에게 팥죽을 주고 무엇을 샀나요?
2. 야곱은 얍복 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하나님께 얻은 새 이름은 무엇이며, 그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요?
3. 야곱처럼 환난과 고난을 통해 깨어진 후 축복받은 경험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4.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6편 '지혜롭게 살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환도뼈란?
현대 의학 용어로 대퇴골이라 하며, 허리 아래에 있는 넓적다리뼈를 말한다.
2009-08-14
제33과순종의 축복
삼상 15:22~23
읽을말씀 : 삼상 15:22~23 | 외울말씀 : 막 9:23 ㅣ 참고 말씀:히 11:8
교육목표 :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과 그 축복을 알게 한다.
어떤 조직과 단체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면 그 안의 질서와 규칙을 잘 지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려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얼토당토 않는 일은 당연히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앙 안에서는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하고, 할 수 없는 것에 순종할 때 그것을 진정한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할 수 없는 것을 행할 때에 의로 여기고 순종의 축복을 주시며 기사와 표적이 따르도록 역사하십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7일 동안 성을 돌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이나 지식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일입니다. 어떻게 성 주변을 돌면서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해서 성이 무너지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이니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보고 무너뜨려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순종의 결과를 통해 믿음이 성장하고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순종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사람 편에서 그런 것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과 경험, 사고방식이 세상으로부터 입력되어 그 한계가 머리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자신도 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 편에서는 한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믿음이 적기 때문이며, 생각 속에서 사람과 과학, 의학적 한계를 깨뜨리면 능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변함없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한 대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에도 그러합니다. 첩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본처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희롱하므로 사라는 이스마엘을 내쫓을 것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근심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지시하고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엄청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100세에 낳아서 애지중지 기르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짐승처럼 잡아 나무 위에 올려 놓고 불로 태워 번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창 22:1~2). 사실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다면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칭할 것이라' 하셨고(창 21:12), '자손이 심히 번성케 되며 나라들과 열왕들이 나오리라'(창 17:6)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바친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런 이유를 대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갑니다(창 22:3).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히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고(히 11:17~19), 결코 선하지 않은 일을 지시하실 리가 없다는 것을 확고부동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3.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고통
아브라함은 이런 믿음을 갖고 순종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며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참으로 컸지요. 권세로는 왕들이 그를 영접할 정도였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그러했고, 블레셋 산악 도시 그랄의 왕 아비멜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고, 주변에 물이 없을 때에도 그에게는 물이 있었습니다. 소돔에 살던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집에서 연습한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출할 정도로 많은 종이 있었으며,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신이 앞으로 하실 일을 자상하게 설명해 주실 정도로 영적인 축복까지 받았지요(창 18:17).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며 그에게 축복하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힘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각과 마음, 자기 계산에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순종할 자세를 가진 사람은 자기 유익이나 지금 상황을 따지지 않고 '내가 어찌하면 순종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깨뜨리고 순종할 때 놀라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얼마나 싫어하며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통을 가져다주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함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땅의 소산으로 드렸지만 동생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만 기뻐 받으셨지요. 가인은 이를 시기하여 아우를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불순종이 살인을 낳고 저주받은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울 왕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해야 하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정해 준 기한까지 오지 않자 그를 대신하여 자기가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사무엘은 사울 왕을 책망하였으나 그래도 사울은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불순종의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셨지만 좋은 것들은 남기고 다 멸하지 않았지요. 사무엘은 다시 사울 왕을 책망하여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하였습니다.
이처럼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사울 왕처럼 자신의 지위를 잃고 멸망으로 치닫거나 각종 환난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나 나아만 장군처럼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죽을 고비도 넘기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으려고 했던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아무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곳마다 놀라운 축복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오직 믿음으로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은 물론, 자녀의 축복,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등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9장 23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진정한 순종은 무엇이며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와 불순종할 때의 열매들이 어떠했는지 말해 봅시다.
4. 우리 삶 속에서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하여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것이 있나요?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께 맡기며 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5편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번제란?
구약시대 제사법 중에 하나로서 제물이 되는 짐승을 불에 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이다(레 1:6~9). 희생되는 짐승은 흠이 없는 수컷에만 한하여 주로 소·양·염소 등을 드렸으며, 가난한 이들은 산비둘기·집비둘기 등을 바치기도 했다(레 5:7). 짐승을 잡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우리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번제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 온전히 거하여 거룩하게 살며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오늘날 번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주일 예배를 말한다.
교육목표 :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과 그 축복을 알게 한다.
어떤 조직과 단체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면 그 안의 질서와 규칙을 잘 지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려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얼토당토 않는 일은 당연히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앙 안에서는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하고, 할 수 없는 것에 순종할 때 그것을 진정한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할 수 없는 것을 행할 때에 의로 여기고 순종의 축복을 주시며 기사와 표적이 따르도록 역사하십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7일 동안 성을 돌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이나 지식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일입니다. 어떻게 성 주변을 돌면서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해서 성이 무너지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이니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보고 무너뜨려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순종의 결과를 통해 믿음이 성장하고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순종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사람 편에서 그런 것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과 경험, 사고방식이 세상으로부터 입력되어 그 한계가 머리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자신도 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 편에서는 한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믿음이 적기 때문이며, 생각 속에서 사람과 과학, 의학적 한계를 깨뜨리면 능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변함없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한 대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에도 그러합니다. 첩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본처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희롱하므로 사라는 이스마엘을 내쫓을 것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근심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지시하고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엄청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100세에 낳아서 애지중지 기르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짐승처럼 잡아 나무 위에 올려 놓고 불로 태워 번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창 22:1~2). 사실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다면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칭할 것이라' 하셨고(창 21:12), '자손이 심히 번성케 되며 나라들과 열왕들이 나오리라'(창 17:6)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바친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런 이유를 대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갑니다(창 22:3).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히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고(히 11:17~19), 결코 선하지 않은 일을 지시하실 리가 없다는 것을 확고부동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3.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고통
아브라함은 이런 믿음을 갖고 순종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며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참으로 컸지요. 권세로는 왕들이 그를 영접할 정도였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그러했고, 블레셋 산악 도시 그랄의 왕 아비멜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고, 주변에 물이 없을 때에도 그에게는 물이 있었습니다. 소돔에 살던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집에서 연습한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출할 정도로 많은 종이 있었으며,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신이 앞으로 하실 일을 자상하게 설명해 주실 정도로 영적인 축복까지 받았지요(창 18:17).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며 그에게 축복하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힘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각과 마음, 자기 계산에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순종할 자세를 가진 사람은 자기 유익이나 지금 상황을 따지지 않고 '내가 어찌하면 순종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깨뜨리고 순종할 때 놀라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얼마나 싫어하며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통을 가져다주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함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땅의 소산으로 드렸지만 동생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만 기뻐 받으셨지요. 가인은 이를 시기하여 아우를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불순종이 살인을 낳고 저주받은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울 왕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해야 하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정해 준 기한까지 오지 않자 그를 대신하여 자기가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사무엘은 사울 왕을 책망하였으나 그래도 사울은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불순종의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셨지만 좋은 것들은 남기고 다 멸하지 않았지요. 사무엘은 다시 사울 왕을 책망하여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하였습니다.
이처럼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사울 왕처럼 자신의 지위를 잃고 멸망으로 치닫거나 각종 환난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나 나아만 장군처럼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죽을 고비도 넘기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으려고 했던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아무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곳마다 놀라운 축복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오직 믿음으로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은 물론, 자녀의 축복,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등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9장 23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진정한 순종은 무엇이며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와 불순종할 때의 열매들이 어떠했는지 말해 봅시다.
4. 우리 삶 속에서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하여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것이 있나요?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께 맡기며 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5편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번제란?
구약시대 제사법 중에 하나로서 제물이 되는 짐승을 불에 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이다(레 1:6~9). 희생되는 짐승은 흠이 없는 수컷에만 한하여 주로 소·양·염소 등을 드렸으며, 가난한 이들은 산비둘기·집비둘기 등을 바치기도 했다(레 5:7). 짐승을 잡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우리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번제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 온전히 거하여 거룩하게 살며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오늘날 번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주일 예배를 말한다.
2009-08-07
제32과순 전
마 12:18-21
읽을말씀 : 마 12:18-21 | 외울말씀 : 마 12:20 l 참고 말씀:욥 1:20~21
교육목표 : 순전의 영적인 의미와 순전한 사람이 받는 축복에 대해 살펴보고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마음이 순전치 못하여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이 순전한 사람은 허탄한 것을 좇지 않고 자기 마음을 지키며 거룩함을 좇아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순전한 자가 되면 하늘로부터 지혜를 받고 명철의 길이 보여서 모든 일에 형통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순전의 의미와 순전한 사람
사전에 '순전' 이란 '순수하고 완전함'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순전한 사람'이란 일반적으로 '덕행이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순전한 사람은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령 해로운 일을 만나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생각하며 마음에 수용하고 모든 면에서 자숙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난으로 인해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이렇게 욥은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으며 순전을 굳게 지켰습니다.
욥기 2장 3절에는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죄악이 가득 찬 세상에서 각박하게 살며 덕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본래의 사람에게 주신 것은 거룩함과 진실함, 아름다움과 깨끗함, 화평함과 덕스러움인데 이러한 본연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잃어버린 하나님 형상을 되찾아 사람의 본분을 다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미 성장 과정에서부터 그러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맹목적으로 주어진 삶을 이어 갑니다. 나름대로 세상에서 입력한 자기 생각에 맞추어 살아가기 때문에 진정 깨끗한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지요.
2.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마태복음 12장 19-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순전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말씀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보통 나무나 화초의 잎이 상하면 잘라 내거나 가지치기를 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외면하고 꺾어 버리려고 합니다. 이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상한 것이라도 꺾지 않고 다시 살리려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예수님 마음을 본받아 설령 내게 불이익을 끼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항상 선한 마음으로 대하며 진리를 좇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즉 상한 갈대도 꺾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에 해당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이 선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도 악을 품고 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도 버리지 않고 진리로 깨우쳐 주며 인내하셨습니다. 또한 병들고 불쌍한 영혼들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구원하려 하셨지요. 이처럼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부족하고 병들고 연약하여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사랑하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말아야 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가능성이 없고 모든 것이 포기 상태에 이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살려 내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할 수 있는 오래 참음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것이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바로 오래 참음의 열매와 같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바라보며 끝까지 참아 주고 이끌어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함께하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르치며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메시아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며 비웃었으나 오히려 그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대신 용서의 간구를 올리셨습니다.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한 사람들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설령 자기 부모나 자녀라 해도 수용할 수 있는 어떤 한도를 넘어서면 꺼져 가는 심지를 끄듯 꺼 버립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나가는 것이 순전한 마음이며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입니다.
셋째로, 다투지도 않고 들레지도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만나도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선의 지혜와 진리 말씀으로 그 모든 것들을 수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시기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일로 모함하고 다투며 각종 악을 동원하여 다가오곤 했으나 결코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직 선한 마음으로 그들을 일깨워 주고 피해야 할 자리는 피하면서 화평을 이루었습니다(눅 4장, 9장).
오늘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자기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으면 큰 소리가 나고 상대에게 고통과 아픔, 슬픔을 주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에서 돌이켜 평화와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들레지도 않고 모든 행함이 참으로 거룩하고 깨끗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넘치는 위엄과 권세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을 내세우지 않고, 그저 마땅히 행할 본분을 행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일을 누가 알아 주기 원하며 들레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 좋은 일을 드러나도록 역사하십니다.
3. 순전한 사람이 받는 축복
아브라함은 마음이 순전하고 모든 행함이 온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도 않고, 악으로 갚지도 않았으며, 모든 것을 선 속에서 해결하면서 참고 인내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소유가 많아져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다툴 때에도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삼촌이지만 조카에게 양보하고 자기의 유익을 좇아 더 좋은 쪽을 취한 조카에게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롯이 포로로 잡혀 가자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 구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결코 다투거나 들레는 일이 없이 모든 것을 양보하며 살았지만 손해 보기는커녕 오히려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으로 합당하게 행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으로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모든 복을 누렸으며 하나님의 벗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이 순전하여 예수님처럼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며, 다투거나 들레는 일도 없이 화평하고 평안하게 살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12장 20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떠한 마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먼저, 상한 ( )를 꺾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꺼져 가는 ( )를 끄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다투지 않고 ( )도 않아야 합니다.
3. 최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던 일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내 탓으로 돌렸던 일이 있었다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4편 '순종의 축복'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오래 참음이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23) 중에 하나로, 이해하고 용서하여 진리 안에서 참는 것을 말한다. 이는 화가 나고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분냄, 혈기 등 악을 버리고 선과 진리로 채우는 것이다.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으면 어떠한 사람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한다든지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다.
교육목표 : 순전의 영적인 의미와 순전한 사람이 받는 축복에 대해 살펴보고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마음이 순전치 못하여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이 순전한 사람은 허탄한 것을 좇지 않고 자기 마음을 지키며 거룩함을 좇아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순전한 자가 되면 하늘로부터 지혜를 받고 명철의 길이 보여서 모든 일에 형통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순전의 의미와 순전한 사람
사전에 '순전' 이란 '순수하고 완전함'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순전한 사람'이란 일반적으로 '덕행이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순전한 사람은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령 해로운 일을 만나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생각하며 마음에 수용하고 모든 면에서 자숙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난으로 인해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이렇게 욥은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으며 순전을 굳게 지켰습니다.
욥기 2장 3절에는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죄악이 가득 찬 세상에서 각박하게 살며 덕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본래의 사람에게 주신 것은 거룩함과 진실함, 아름다움과 깨끗함, 화평함과 덕스러움인데 이러한 본연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잃어버린 하나님 형상을 되찾아 사람의 본분을 다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미 성장 과정에서부터 그러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맹목적으로 주어진 삶을 이어 갑니다. 나름대로 세상에서 입력한 자기 생각에 맞추어 살아가기 때문에 진정 깨끗한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지요.
2.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마태복음 12장 19-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순전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말씀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보통 나무나 화초의 잎이 상하면 잘라 내거나 가지치기를 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외면하고 꺾어 버리려고 합니다. 이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상한 것이라도 꺾지 않고 다시 살리려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예수님 마음을 본받아 설령 내게 불이익을 끼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항상 선한 마음으로 대하며 진리를 좇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즉 상한 갈대도 꺾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에 해당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이 선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도 악을 품고 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도 버리지 않고 진리로 깨우쳐 주며 인내하셨습니다. 또한 병들고 불쌍한 영혼들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구원하려 하셨지요. 이처럼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부족하고 병들고 연약하여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사랑하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말아야 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가능성이 없고 모든 것이 포기 상태에 이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살려 내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할 수 있는 오래 참음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것이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바로 오래 참음의 열매와 같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바라보며 끝까지 참아 주고 이끌어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함께하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르치며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메시아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며 비웃었으나 오히려 그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대신 용서의 간구를 올리셨습니다.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한 사람들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설령 자기 부모나 자녀라 해도 수용할 수 있는 어떤 한도를 넘어서면 꺼져 가는 심지를 끄듯 꺼 버립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나가는 것이 순전한 마음이며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입니다.
셋째로, 다투지도 않고 들레지도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만나도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선의 지혜와 진리 말씀으로 그 모든 것들을 수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시기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일로 모함하고 다투며 각종 악을 동원하여 다가오곤 했으나 결코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직 선한 마음으로 그들을 일깨워 주고 피해야 할 자리는 피하면서 화평을 이루었습니다(눅 4장, 9장).
오늘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자기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으면 큰 소리가 나고 상대에게 고통과 아픔, 슬픔을 주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에서 돌이켜 평화와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들레지도 않고 모든 행함이 참으로 거룩하고 깨끗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넘치는 위엄과 권세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을 내세우지 않고, 그저 마땅히 행할 본분을 행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일을 누가 알아 주기 원하며 들레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 좋은 일을 드러나도록 역사하십니다.
3. 순전한 사람이 받는 축복
아브라함은 마음이 순전하고 모든 행함이 온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도 않고, 악으로 갚지도 않았으며, 모든 것을 선 속에서 해결하면서 참고 인내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소유가 많아져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다툴 때에도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삼촌이지만 조카에게 양보하고 자기의 유익을 좇아 더 좋은 쪽을 취한 조카에게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롯이 포로로 잡혀 가자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 구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결코 다투거나 들레는 일이 없이 모든 것을 양보하며 살았지만 손해 보기는커녕 오히려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으로 합당하게 행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으로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모든 복을 누렸으며 하나님의 벗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이 순전하여 예수님처럼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며, 다투거나 들레는 일도 없이 화평하고 평안하게 살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12장 20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떠한 마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먼저, 상한 ( )를 꺾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꺼져 가는 ( )를 끄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다투지 않고 ( )도 않아야 합니다.
3. 최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던 일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내 탓으로 돌렸던 일이 있었다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4편 '순종의 축복'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오래 참음이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23) 중에 하나로, 이해하고 용서하여 진리 안에서 참는 것을 말한다. 이는 화가 나고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분냄, 혈기 등 악을 버리고 선과 진리로 채우는 것이다.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으면 어떠한 사람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한다든지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다.
2009-07-31
제31과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룻 1:16
읽을말씀 : 룻 1:16 | 외울말씀 : 갈 6:9 ㅣ 참고 말씀:고전 13:4
교육목표 : 룻처럼 변함없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매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영계의 법칙 또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됩니다. 오늘은 룻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비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끝까지 선을 행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니실 때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충성하며 어떻게 순교할 것인지, 누가 자신을 팔 자인지 이미 그들의 마음 중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수제자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고백했을 때에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재차 고백했지만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마 26:33-35).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계셨지만 그를 버리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든 깨닫고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알려 주며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하셨지요(요 6:64, 70-71). 자기를 팔거나 죽일 자인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와 동행하며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영의 마음을 이루지 못하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도 열매가 보이지 않으니 '내가 괜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함없는 마음으로 끝까지 선을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2. 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룻
룻은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사사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치리하던 때에 살던 여인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가 죽으니 이스라엘은 이방인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자 우상 숭배가 틈탔고 이로 인해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해졌습니다. 이때 유다 땅 베들레헴에 살던 나오미 가정은 온 가족이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 지방으로 이주합니다.
모압은 이스라엘 동편에 있는 오늘날의 요르단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는 환난이 그치지 않아 가정의 기둥인 남편과, 이미 결혼한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습니다. 기근이라는 환난을 피해 온 가족이 고향까지 떠났는데 더 큰 환난을 만났으니 나오미는 얼마나 기구한 인생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자녀가 하나님 품을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영적으로 하나님 품인데 나오미 가정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인의 나라 모압 지방으로 갔으니 세상을 바라본 것이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분명히 하나님 품 안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데도 어려움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시험 환난을 통하여 연단하는 것이며,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축복받는 하나님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 품을 떠나지 말고 변함없이 하나님 품 안에서 견디며 이겨내야 시험 환난이 물러가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침내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땅, 곧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고자 모압 땅을 떠나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도중에 나오미는 남편도 없는 두 며느리를 불쌍히 여겨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 평안히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큰며느리 오르바는 울며 친정으로 돌아가고 작은며느리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붙좇습니다.
또 다시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강권하자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하면서 자신의 굳은 결심을 표명합니다. 나오미는 더 이상 권면하지 못하고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룻은 원래 모압 여인이었으나 나오미의 가정에 시집온 이후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남편이 죽었으니 젊은 나이에 자유를 누릴 수도 있었지만 정한 마음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홀로 된 시모를 끝까지 봉양하였습니다. 이러한 룻에 대한 기록이 성경 66권 가운데 한 권을 차지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진정 아름다운 룻의 마음을 본받아 하나님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룻이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위대한 행함을 보였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3. 끝까지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룻
룻은 시모를 공양하기 위해 이삭줍기를 하였습니다. 이 효성을 전해 들은 보아스라는 사람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부유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룻에게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자기의 밭에서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세 율법에 기업 무르기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팔았던 토지를 원래의 소유권대로 회복시키거나 자식 없이 죽은 사람의 대를 잇도록 해 주기 위해 죽은 사람의 미망인을 그 사망자의 친척이 취하여 대를 이을 수 있게 하는 법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바로 그 집안에 기업 무를 자 중의 하나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안식할 곳을 구하여 줌으로 복된 삶을 살게 하려고 룻에게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고 지시합니다.
룻이 시모 나오미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자 보아스는 룻에게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하기로 맹세합니다. 결국 보아스는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아들 오벳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룻은 참으로 변함없는 중심으로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기에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고,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4.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우리는 룻의 삶을 통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때가 이르매 거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룻이 어떤 결과를 바라고 선을 행한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니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듯이 우리도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축복을 받습니다. 룻은 영적인 사랑(고전 13장)이나 성령의 9가지 열매(갈 5:22-23)가 그대로 맺혀 있었던 여인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축복의 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떠한 불이익을 당해도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혀도, 매를 맞아도, 사자밥이 되고 풀무불에 던져져도 결코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마음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내보이니 원수 마귀가 역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복음이 더 크게 전파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이처럼 목적을 두어 나가는 곳에 우리가 피곤치 않으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고 믿음으로 행군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응답받은 줄 믿고 룻과 같은 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붙좇는 사람이 된다면 어찌 응답받지 못하겠습니까? 끝까지 믿음으로 행군하여 간구와 기도에 응답받으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룻은 시모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을 때 무엇이라고 했나요?
3. 룻기 4장 18절 이하를 보고 ( ) 안에 알맞은 이름을 써 넣으세요.
베레스-헤스론-람-암미나답-나손-살몬-( )-( )-( )-다윗
4. 룻의 고백을 활용하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결단해 봅시다(룻 1:16-17).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3편 '순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사사(士師)란?
사사란 히브리어로 '재판한다', '다스린다', '구원한다'는 의미이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부터 왕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한 정치, 군사적 지도자를 말한다. 평상시에는 재판을 하며(삿 4:5), 백성을 정치적으로 다스렸고, 비상시에는 군사적인 지도자로 활동했다. 사사들의 신분과 직업은 아주 다양했으며 임무가 끝나면 대부분 제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사사는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기보다 지역적으로 다스렸으며 세습되지 않았다.
교육목표 : 룻처럼 변함없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매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영계의 법칙 또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됩니다. 오늘은 룻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비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끝까지 선을 행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니실 때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충성하며 어떻게 순교할 것인지, 누가 자신을 팔 자인지 이미 그들의 마음 중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수제자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고백했을 때에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재차 고백했지만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마 26:33-35).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계셨지만 그를 버리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든 깨닫고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알려 주며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하셨지요(요 6:64, 70-71). 자기를 팔거나 죽일 자인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와 동행하며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영의 마음을 이루지 못하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도 열매가 보이지 않으니 '내가 괜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함없는 마음으로 끝까지 선을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2. 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룻
룻은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사사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치리하던 때에 살던 여인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가 죽으니 이스라엘은 이방인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자 우상 숭배가 틈탔고 이로 인해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해졌습니다. 이때 유다 땅 베들레헴에 살던 나오미 가정은 온 가족이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 지방으로 이주합니다.
모압은 이스라엘 동편에 있는 오늘날의 요르단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는 환난이 그치지 않아 가정의 기둥인 남편과, 이미 결혼한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습니다. 기근이라는 환난을 피해 온 가족이 고향까지 떠났는데 더 큰 환난을 만났으니 나오미는 얼마나 기구한 인생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자녀가 하나님 품을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영적으로 하나님 품인데 나오미 가정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인의 나라 모압 지방으로 갔으니 세상을 바라본 것이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분명히 하나님 품 안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데도 어려움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시험 환난을 통하여 연단하는 것이며,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축복받는 하나님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 품을 떠나지 말고 변함없이 하나님 품 안에서 견디며 이겨내야 시험 환난이 물러가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침내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땅, 곧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고자 모압 땅을 떠나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도중에 나오미는 남편도 없는 두 며느리를 불쌍히 여겨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 평안히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큰며느리 오르바는 울며 친정으로 돌아가고 작은며느리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붙좇습니다.
또 다시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강권하자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하면서 자신의 굳은 결심을 표명합니다. 나오미는 더 이상 권면하지 못하고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룻은 원래 모압 여인이었으나 나오미의 가정에 시집온 이후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남편이 죽었으니 젊은 나이에 자유를 누릴 수도 있었지만 정한 마음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홀로 된 시모를 끝까지 봉양하였습니다. 이러한 룻에 대한 기록이 성경 66권 가운데 한 권을 차지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진정 아름다운 룻의 마음을 본받아 하나님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룻이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위대한 행함을 보였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3. 끝까지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룻
룻은 시모를 공양하기 위해 이삭줍기를 하였습니다. 이 효성을 전해 들은 보아스라는 사람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부유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룻에게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자기의 밭에서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세 율법에 기업 무르기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팔았던 토지를 원래의 소유권대로 회복시키거나 자식 없이 죽은 사람의 대를 잇도록 해 주기 위해 죽은 사람의 미망인을 그 사망자의 친척이 취하여 대를 이을 수 있게 하는 법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바로 그 집안에 기업 무를 자 중의 하나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안식할 곳을 구하여 줌으로 복된 삶을 살게 하려고 룻에게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고 지시합니다.
룻이 시모 나오미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자 보아스는 룻에게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하기로 맹세합니다. 결국 보아스는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아들 오벳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룻은 참으로 변함없는 중심으로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기에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고,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4.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우리는 룻의 삶을 통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때가 이르매 거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룻이 어떤 결과를 바라고 선을 행한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니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듯이 우리도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축복을 받습니다. 룻은 영적인 사랑(고전 13장)이나 성령의 9가지 열매(갈 5:22-23)가 그대로 맺혀 있었던 여인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축복의 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떠한 불이익을 당해도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혀도, 매를 맞아도, 사자밥이 되고 풀무불에 던져져도 결코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마음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내보이니 원수 마귀가 역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복음이 더 크게 전파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이처럼 목적을 두어 나가는 곳에 우리가 피곤치 않으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고 믿음으로 행군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응답받은 줄 믿고 룻과 같은 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붙좇는 사람이 된다면 어찌 응답받지 못하겠습니까? 끝까지 믿음으로 행군하여 간구와 기도에 응답받으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룻은 시모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을 때 무엇이라고 했나요?
3. 룻기 4장 18절 이하를 보고 ( ) 안에 알맞은 이름을 써 넣으세요.
베레스-헤스론-람-암미나답-나손-살몬-( )-( )-( )-다윗
4. 룻의 고백을 활용하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결단해 봅시다(룻 1:16-17).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3편 '순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사사(士師)란?
사사란 히브리어로 '재판한다', '다스린다', '구원한다'는 의미이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부터 왕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한 정치, 군사적 지도자를 말한다. 평상시에는 재판을 하며(삿 4:5), 백성을 정치적으로 다스렸고, 비상시에는 군사적인 지도자로 활동했다. 사사들의 신분과 직업은 아주 다양했으며 임무가 끝나면 대부분 제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사사는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기보다 지역적으로 다스렸으며 세습되지 않았다.
2009-07-24
제30과믿음의 행함
수 3:7~13
읽을말씀 : 수 3:7~13 | 외울말씀 : 막 9:23 l 참고 말씀:히 11:1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소유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
믿음은 참으로 귀한 보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 세상의 어떤 권세나 명예, 부로도 얻을 수 없는 구원과 천국, 영생복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이 있으면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구하여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으니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구원의 지름길로서 신앙생활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응답의 열쇠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믿음
신앙 안에서의 믿음은 크게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적 믿음은 지식적 믿음이라고도 하는데, 내 눈으로 보아서 확인이 되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로 종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이미 들었거나 보아서 알고 있다면 그것을 의심 없이 믿습니다. 이것은 유(有)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에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을 영적 믿음이라고 합니다. 영적 믿음은 육적 믿음과는 정반대가 되는 것으로서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즉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다 해도 하나님께서 깨끗이 치료해 주실 것을 마음에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영적 믿음이 바로 참 믿음이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이며,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영적 믿음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영적 믿음은 나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그릇에 따라 적당한 분량의 믿음을 나눠 주시되(롬 12:3)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간음 등의 악한 마음을 버리고 원수까지라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등 계명을 준행하는 사람에게 영적 믿음을 주십니다. 또 영적 믿음을 소유해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기적을 체험하려면 육적 믿음을 영적 믿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머리에 입력된, 진리와 어긋난 세상적인 지식은 오히려 영적 믿음을 소유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모든 이론을 파하고 의심을 가져오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믿음은 현격히 달라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될 수 없는 일들도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에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2. 믿음의 행함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연단을 받는 동안 하나님께 불순종한 출애굽 1세들은 죽고, 영적 믿음을 소유한 출애굽 2세들은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 과정 중에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수 3:14~17)
해마다 모맥을 거두는 때면 요단 강물이 언덕에 넘칠 정도입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말씀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전적으로 믿었기에 믿음으로 행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물에 들어가 발을 디딘 채로 멈추어 서니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강물이 멈추고 멀리 있는 아담 읍 변방에 물이 쌓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흐르던 강물이 완전히 끊어지고 백성은 요단강의 마른 땅바닥으로 걸어서 여리고 성 쪽으로 건너갔습니다(수 3:1~17).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까?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참으로 기이한 일들이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 든 손을 바다를 향해 내어민다고 해서 어찌 홍해가 갈라지고 그 사이로 마른 땅이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어찌 반석을 친다고 해서 물이 나올 수 있겠으며, 나뭇가지를 던져 넣는다고 해서 쓴물이 단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행하였을 때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인간의 생각을 깨뜨리고 영적 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1)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모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할 때 '지팡이 든 손을 내어민다고 해서 과연 홍해가 갈라질 수 있을까? 혹시 안 되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의심했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어 드렸기 때문에 그 믿음대로 역사를 받았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마음에서 믿어지는 믿음을 갖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 믿음을 소유하고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까지는 금식하며, 기도하며, 열심히 말씀을 듣고 순종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순종하라" 하면 순종하고, "기도하라" 할 때 기도하고, "금식하라" 할 때 금식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해 나가면 하늘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믿음의 행함이 따르는 것이며, 믿음으로 행군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체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믿음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체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 믿을 수 있도록 체험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하나님을 더 밝히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치료해 주시라고 구해야 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응답받기 위해 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것, 그리고 주어진 달란트를 개발하는 것 등 여러 가지를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하나님을 향해 은혜를 구하며 나가는 자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체험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3)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목표를 세워 응답받기 위해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목표가 있다면, 이 일과 관계된 사람들이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때로는 금식도 하면서, 아울러 행함으로 열심히 전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전도할 때에도 막연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론이 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믿고 기도하며 행함으로 보일 때에 전도가 되고 부흥합니다.
신앙 안에서 다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꿈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 이 원하는 방향을 좇아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의 행함을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그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구하면서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 하신 대로 믿음으로 바라던 것이 실제로 주어집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의 행군을 해야 합니다. 항상 믿음의 행함을 보임으로 더 뜨겁고 충만한 삶으로 빛과 소금이 되며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9장 23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의 차이는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3. 영적 믿음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4.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을 만나 그 말씀을 듣고 ( )해야 합니다.
둘째, 믿음의 체험이 없는 사람들은 체험을 달라고 ( )해야 합니다.
셋째,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 )이 있어야 합니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2편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요단강
이스라엘에서 가장 길고 큰 강으로 실제 길이는 무려 320Km나 된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시리아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며 갈릴리 호수를 지나 사해로 흘러들어 간다. 현재 강폭은 8~15m로 비교적 좁은 편이나 고대 요단강은 매우 크고 자주 범람하였다(수 3:15). 강 양편 요단 계곡은 무성한 수목으로 경치가 아름답다. 성경을 보면 이곳에서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치료받았으며,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소유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
믿음은 참으로 귀한 보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 세상의 어떤 권세나 명예, 부로도 얻을 수 없는 구원과 천국, 영생복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이 있으면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구하여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으니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구원의 지름길로서 신앙생활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응답의 열쇠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믿음
신앙 안에서의 믿음은 크게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적 믿음은 지식적 믿음이라고도 하는데, 내 눈으로 보아서 확인이 되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로 종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이미 들었거나 보아서 알고 있다면 그것을 의심 없이 믿습니다. 이것은 유(有)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에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을 영적 믿음이라고 합니다. 영적 믿음은 육적 믿음과는 정반대가 되는 것으로서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즉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다 해도 하나님께서 깨끗이 치료해 주실 것을 마음에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영적 믿음이 바로 참 믿음이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이며,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영적 믿음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영적 믿음은 나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그릇에 따라 적당한 분량의 믿음을 나눠 주시되(롬 12:3)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간음 등의 악한 마음을 버리고 원수까지라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등 계명을 준행하는 사람에게 영적 믿음을 주십니다. 또 영적 믿음을 소유해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기적을 체험하려면 육적 믿음을 영적 믿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머리에 입력된, 진리와 어긋난 세상적인 지식은 오히려 영적 믿음을 소유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모든 이론을 파하고 의심을 가져오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믿음은 현격히 달라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될 수 없는 일들도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에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2. 믿음의 행함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연단을 받는 동안 하나님께 불순종한 출애굽 1세들은 죽고, 영적 믿음을 소유한 출애굽 2세들은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 과정 중에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수 3:14~17)
해마다 모맥을 거두는 때면 요단 강물이 언덕에 넘칠 정도입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말씀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전적으로 믿었기에 믿음으로 행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물에 들어가 발을 디딘 채로 멈추어 서니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강물이 멈추고 멀리 있는 아담 읍 변방에 물이 쌓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흐르던 강물이 완전히 끊어지고 백성은 요단강의 마른 땅바닥으로 걸어서 여리고 성 쪽으로 건너갔습니다(수 3:1~17).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까?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참으로 기이한 일들이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 든 손을 바다를 향해 내어민다고 해서 어찌 홍해가 갈라지고 그 사이로 마른 땅이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어찌 반석을 친다고 해서 물이 나올 수 있겠으며, 나뭇가지를 던져 넣는다고 해서 쓴물이 단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행하였을 때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인간의 생각을 깨뜨리고 영적 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1)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모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할 때 '지팡이 든 손을 내어민다고 해서 과연 홍해가 갈라질 수 있을까? 혹시 안 되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의심했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어 드렸기 때문에 그 믿음대로 역사를 받았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마음에서 믿어지는 믿음을 갖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 믿음을 소유하고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까지는 금식하며, 기도하며, 열심히 말씀을 듣고 순종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순종하라" 하면 순종하고, "기도하라" 할 때 기도하고, "금식하라" 할 때 금식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해 나가면 하늘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믿음의 행함이 따르는 것이며, 믿음으로 행군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체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믿음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체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 믿을 수 있도록 체험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하나님을 더 밝히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치료해 주시라고 구해야 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응답받기 위해 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것, 그리고 주어진 달란트를 개발하는 것 등 여러 가지를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하나님을 향해 은혜를 구하며 나가는 자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체험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3)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목표를 세워 응답받기 위해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목표가 있다면, 이 일과 관계된 사람들이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때로는 금식도 하면서, 아울러 행함으로 열심히 전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전도할 때에도 막연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론이 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믿고 기도하며 행함으로 보일 때에 전도가 되고 부흥합니다.
신앙 안에서 다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꿈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 이 원하는 방향을 좇아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의 행함을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그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구하면서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 하신 대로 믿음으로 바라던 것이 실제로 주어집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의 행군을 해야 합니다. 항상 믿음의 행함을 보임으로 더 뜨겁고 충만한 삶으로 빛과 소금이 되며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9장 23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의 차이는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3. 영적 믿음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4.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을 만나 그 말씀을 듣고 ( )해야 합니다.
둘째, 믿음의 체험이 없는 사람들은 체험을 달라고 ( )해야 합니다.
셋째,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 )이 있어야 합니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2편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요단강
이스라엘에서 가장 길고 큰 강으로 실제 길이는 무려 320Km나 된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시리아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며 갈릴리 호수를 지나 사해로 흘러들어 간다. 현재 강폭은 8~15m로 비교적 좁은 편이나 고대 요단강은 매우 크고 자주 범람하였다(수 3:15). 강 양편 요단 계곡은 무성한 수목으로 경치가 아름답다. 성경을 보면 이곳에서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치료받았으며,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다.
2009-07-17
제29과감정을 제어하라
롬 12:19~21
읽을말씀 : 롬 12:19~21 | 외울말씀 : 롬 12:21 ㅣ 참고 말씀:시 37:8
교육목표 : 우리가 감정을 제어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께 심판을 맡겨야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감정(憾情)이란 원망하거나 성내는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서로 언짢게 여기거나 성을 내기도 하고 원수를 맺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원수를 갚기 위해 악을 행하며 서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혹여 여러분은 감정 때문에 부모와 자녀, 형제와 친구, 동료와 이웃 간에 서로 대립되어 있지는 않은가요?
1. 친히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는 이유
로마서 12장 19~20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는 권세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니(요 5:27) 오직 주님 외에는 이 세상 어떤 사람에게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5절에도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말씀하셨고,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롬 3:10) 우리는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정죄하는 일이 종종 있지요.
율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므로 우리가 재판장이 되어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교만이요 큰 죄입니다(약 4:11~12). 심판하는 권세는 흠도 티도 없고 죄가 전혀 없으신 주님에게만 있으니 우리는 누구를 심판해서도, 원수를 갚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친히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심판 날에 주님께서 갚아 주심을 믿기에 다만 주님께 부탁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는 것뿐입니다.
2. 감정을 제어하고 모든 일을 주께 맡겨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감정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5장 39~4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이해하며 포용하고 수용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감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진리 말씀에 의지해서 오로지 이해와 포용과 수용 속에 나아가면 다툼이나 원망, 탄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12장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말씀한 대로 상대가 악으로 나올 때 악으로 되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말하고 행하면 능히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져 다투거나 미워하고 슬퍼하지 말고 감정을 제어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 왕이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피난 가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사울 왕의 집 족속 중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 일행을 따라오면서 계속 저주하고 티끌을 날리며 돌을 던졌습니다. 한 나라의 왕에게 이렇게 행동하였으니 죽어 마땅한 일이었으나 다윗은 자기가 잘못하여 하나님 앞에 징계와 연단을 받고 있는 처지임을 알았기에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후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겨 결국 그를 죽이게 합니다(왕상 2:9). 다윗 왕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시므이는 악을 쌓은 악한 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악으로 멸망할 사람이었기에 신약시대에는 그런 것조차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즉, 원수를 친히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부탁하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사울 왕의 경우는 어떠하였습니까?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나와 노래하며 춤추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며 창화하였습니다(삼상 18:6~8). 이 말을 듣고 사울 왕은 불쾌하여 매우 노하였지요. 마음속에 다윗에 대한 시기가 일어나서 악이 나오고, 그것이 감정이 되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경우와는 달리 성경 곳곳에는 자기가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일들이 나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경우가 바로 그 예입니다. 바사 제국의 대신 하만은 모르드개라는 유다 사람이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여 유다인들을 몰살시키려고 흉계를 꾸며 왕의 조서까지 받아 냅니다. 그러자 모르드개와 유다인으로서 왕비가 된 에스더는 오직 금식하며 이 일을 하나님께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왕 앞에 나아가 침착하고도 지혜롭게 이 일을 탄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모두 심판하셨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자기 집에 세워 놓은 나무에 자기 자신이 달려 죽었고, 유다인들을 진멸하려 하던 대적들이 오히려 진멸을 당한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롯 왕이 교회를 핍박하면서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또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으나 교회는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천사가 옥중으로 찾아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고 있던 베드로를 깨워 옥 밖으로 내보내 준 것입니다. 날이 새어 베드로가 탈옥했다는 사실을 안 헤롯은 파수꾼들을 전부 죽이라 명합니다. 헤롯이 이렇게 악을 발한 결과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 곧 벌레가 먹어 죽었습니다(행 12:23).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더니 직접 심판하신 것입니다.
3. 선으로 악을 이겨야
감정으로 처리하는 일은 진정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성도 간에도 감정 대립이 되었을 때 참지 못하면 엄청난 오해와 다툼을 불러일으키고 심하면 원수를 맺게 됩니다. 정치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이든, 이웃이나 일터에서든 여러 가지 분야 속에서 상대가 나에게 해를 끼칠 때에 감정으로 맞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선을 행하면 그 결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또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선을 행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형통케 하며 머리가 되게 하고 높이 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 자녀인 우리는 진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감정을 제어하고 다만 기도와 간구로, 또한 금식으로 하나님 앞에 아뢰어 그분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악한 상대가 무릎을 꿇게 하십니다(시 37:7~9, 62:12).
따라서 선악 간에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는 것이니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원수 갚을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로 부탁하셨으며(벧전 2:22~23), 예수님 제자들도 핍박을 받을 때에 다만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7:60).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가 기분 나쁘게 하면 얼굴을 붉히며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감정을 제어하고 오직 기도로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어디서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으며 가정, 일터, 사업터 등 모든 곳에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혹은 모든 사람 사이에 감정으로 원수를 맺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내 눈에는 들보가 있으면서 재판장이 되어 판단하거나 형제의 티를 빼려 한다면 교만하고 하나님께 무례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공의로운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사랑의 마음으로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로마서 12장 21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우리 삶 속에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힘들었던 일과 영의 생각으로 평안함을 느꼈던 일들을 찾아봅시다.
그리고 앞으로 감정을 제어하고 영의 생각만 하리라 스스로 다짐해 봅시다.
3. 감정을 버려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나는 대로 한 가지 이상씩 적어 봅시다.
그리고 그것을 버릴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1편 '믿음의 행함'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들보란?
건물을 지을 때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가로질러서 얹는 지지대로서, 오늘날 건설 현장에서 들보는 보통 목재, 쇠,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본다'(마 7:5)는 말은 자신의 커다란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잘못만을 책잡고 나무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교육목표 : 우리가 감정을 제어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께 심판을 맡겨야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감정(憾情)이란 원망하거나 성내는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서로 언짢게 여기거나 성을 내기도 하고 원수를 맺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원수를 갚기 위해 악을 행하며 서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혹여 여러분은 감정 때문에 부모와 자녀, 형제와 친구, 동료와 이웃 간에 서로 대립되어 있지는 않은가요?
1. 친히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는 이유
로마서 12장 19~20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는 권세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니(요 5:27) 오직 주님 외에는 이 세상 어떤 사람에게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5절에도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말씀하셨고,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롬 3:10) 우리는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정죄하는 일이 종종 있지요.
율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므로 우리가 재판장이 되어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교만이요 큰 죄입니다(약 4:11~12). 심판하는 권세는 흠도 티도 없고 죄가 전혀 없으신 주님에게만 있으니 우리는 누구를 심판해서도, 원수를 갚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친히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심판 날에 주님께서 갚아 주심을 믿기에 다만 주님께 부탁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는 것뿐입니다.
2. 감정을 제어하고 모든 일을 주께 맡겨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감정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5장 39~4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이해하며 포용하고 수용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감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진리 말씀에 의지해서 오로지 이해와 포용과 수용 속에 나아가면 다툼이나 원망, 탄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12장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말씀한 대로 상대가 악으로 나올 때 악으로 되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말하고 행하면 능히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져 다투거나 미워하고 슬퍼하지 말고 감정을 제어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 왕이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피난 가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사울 왕의 집 족속 중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 일행을 따라오면서 계속 저주하고 티끌을 날리며 돌을 던졌습니다. 한 나라의 왕에게 이렇게 행동하였으니 죽어 마땅한 일이었으나 다윗은 자기가 잘못하여 하나님 앞에 징계와 연단을 받고 있는 처지임을 알았기에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후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겨 결국 그를 죽이게 합니다(왕상 2:9). 다윗 왕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시므이는 악을 쌓은 악한 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악으로 멸망할 사람이었기에 신약시대에는 그런 것조차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즉, 원수를 친히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부탁하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사울 왕의 경우는 어떠하였습니까?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나와 노래하며 춤추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며 창화하였습니다(삼상 18:6~8). 이 말을 듣고 사울 왕은 불쾌하여 매우 노하였지요. 마음속에 다윗에 대한 시기가 일어나서 악이 나오고, 그것이 감정이 되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경우와는 달리 성경 곳곳에는 자기가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일들이 나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경우가 바로 그 예입니다. 바사 제국의 대신 하만은 모르드개라는 유다 사람이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여 유다인들을 몰살시키려고 흉계를 꾸며 왕의 조서까지 받아 냅니다. 그러자 모르드개와 유다인으로서 왕비가 된 에스더는 오직 금식하며 이 일을 하나님께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왕 앞에 나아가 침착하고도 지혜롭게 이 일을 탄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모두 심판하셨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자기 집에 세워 놓은 나무에 자기 자신이 달려 죽었고, 유다인들을 진멸하려 하던 대적들이 오히려 진멸을 당한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롯 왕이 교회를 핍박하면서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또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으나 교회는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천사가 옥중으로 찾아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고 있던 베드로를 깨워 옥 밖으로 내보내 준 것입니다. 날이 새어 베드로가 탈옥했다는 사실을 안 헤롯은 파수꾼들을 전부 죽이라 명합니다. 헤롯이 이렇게 악을 발한 결과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 곧 벌레가 먹어 죽었습니다(행 12:23).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더니 직접 심판하신 것입니다.
3. 선으로 악을 이겨야
감정으로 처리하는 일은 진정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성도 간에도 감정 대립이 되었을 때 참지 못하면 엄청난 오해와 다툼을 불러일으키고 심하면 원수를 맺게 됩니다. 정치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이든, 이웃이나 일터에서든 여러 가지 분야 속에서 상대가 나에게 해를 끼칠 때에 감정으로 맞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선을 행하면 그 결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또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선을 행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형통케 하며 머리가 되게 하고 높이 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 자녀인 우리는 진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감정을 제어하고 다만 기도와 간구로, 또한 금식으로 하나님 앞에 아뢰어 그분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악한 상대가 무릎을 꿇게 하십니다(시 37:7~9, 62:12).
따라서 선악 간에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는 것이니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원수 갚을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로 부탁하셨으며(벧전 2:22~23), 예수님 제자들도 핍박을 받을 때에 다만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7:60).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가 기분 나쁘게 하면 얼굴을 붉히며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감정을 제어하고 오직 기도로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어디서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으며 가정, 일터, 사업터 등 모든 곳에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혹은 모든 사람 사이에 감정으로 원수를 맺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내 눈에는 들보가 있으면서 재판장이 되어 판단하거나 형제의 티를 빼려 한다면 교만하고 하나님께 무례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공의로운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사랑의 마음으로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로마서 12장 21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우리 삶 속에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힘들었던 일과 영의 생각으로 평안함을 느꼈던 일들을 찾아봅시다.
그리고 앞으로 감정을 제어하고 영의 생각만 하리라 스스로 다짐해 봅시다.
3. 감정을 버려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나는 대로 한 가지 이상씩 적어 봅시다.
그리고 그것을 버릴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1편 '믿음의 행함'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들보란?
건물을 지을 때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가로질러서 얹는 지지대로서, 오늘날 건설 현장에서 들보는 보통 목재, 쇠,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본다'(마 7:5)는 말은 자신의 커다란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잘못만을 책잡고 나무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2009-07-10
제28과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마 20:20-23
읽을말씀 : 마 20:20-23 | 외울말씀 : 막 11:24 ㅣ 참고 말씀 : 약 1:6-8
교육목표 :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는 경우와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를 살펴봄으로 합당한 것을 구하여 응답받게 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자녀들의 소원을 응답해 주며 사랑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고 응답으로 축복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구하느냐에 따라 응답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의 응답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응답
마태복음 20장 20-21절을 보면 제자였던 요한과 야고보가 어머니와 함께 무엇인가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가니 "무엇을 원하느뇨"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간청합니다. 그만한 권한을 가진 분이라고 믿었기에 높은 자리를 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들은 예수님의 어떠한 면을 보았기에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과 진실한 행하심을 보았고 또한 예수님이 베푸신 기사와 표적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참으로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많이 베푸셨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요 2장),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요 9장), 간질을 하며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막 9장). 또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 속에 장사되어 있는 나사로를 살리시기도 하셨습니다(요 11장).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기도 하시고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마 14장).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러한 일들을 행하신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모든 사람에게 영생, 곧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누누이 천국에 대해 듣고 배웠으며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권세가 천국에서 얼마나 큰지도 알았고 예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받을 줄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 약속을 받고자 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답변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앉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아버지 뜻대로 행하여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을 찾아 나옵니다. 자기 스스로가 어찌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나오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참 신인 것 같다.'고 인정되어 찾아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질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 치료받고자 하나님을 찾아 나오기도 하며, 그냥 전도를 받고서 좋다고 생각이 되어 하나님을 찾아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경우에 속하며 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요?
2. 무엇을 구하든지 믿음으로 구해야 응답
사사기 6장을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족속에게 약탈을 당하고 고통을 받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주십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이 무서워 몰래 밀타작을 하던 자였는데 자신이 그러한 사명을 맡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워 하나님께 두 가지 표징을 구합니다. 먼저 "양털 한 뭉치를 땅에다 두겠으니 밤새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주위 땅은 말라 있다면 믿을 수 있겠나이다" 기도하였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과연 양털에만 이슬이 내렸습니다. 기드온은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한 번 더 하나님께 구합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과연 양털만 말라 있고 주변 땅은 다 이슬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며 참 신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각종 문제로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선 모세는 완전무장한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돌격해 오자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더니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므로 그의 자녀들이 믿음을 내보이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역사해 주십니다.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경우로는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침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백부장(마 8장),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찾아 나온 여인(마 9장), 자기 딸에게 들린 흉악한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수로보니게 여인(막 7장)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어 그 즉시 응답을 받았는데 백부장은 믿음의 고백만으로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을 사랑하는 백부장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시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9)
이처럼 철저히 신뢰하여 그 앞에 순종하려는 믿음을 지닌 백부장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하인이 그 시로 나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을 만나 응답을 받습니다.
3. 무엇을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두 마음을 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내보여야 하며, 어떠한 일을 만난다 해도 오직 하나님 뜻대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어떤 시험 환난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인하고 탄식하면서, 끝까지 믿는 믿음을 내보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고 금식해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해 주시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지 응답해 주시면 내가 왜 원망하고 탄식하며 불평하겠느냐?"고 변명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한 출애굽 1세대들은 믿음을 내보이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별로 믿음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어리석은 것 같아 보이는데도 응답을 받습니다. 그것은 응답해 주어도 그 사람 마음이 변치 않을 중심인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배신할 줄 알면서도 응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훗날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내가 너에게 이렇게 응답을 주었지만 너는 이러한 응답을 보고도 나를 부인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며 공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따라 응답을 주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번에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씩 주십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단번에 응답해 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도록 변화된 만큼 조금씩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가는 만큼 믿음대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단지 응답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중심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참된 믿음을 가지고 행함을 나타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오직 □□으로 구하고 조금도 □□하지 말라 □□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을 품어 모든 일에 □□이 없는 자로다"(약 1:6-8)
4. 단물이나 전화음성사서함, 권능의 손수건 기도를 믿음으로 받고 또 사용하였을 때 응답받은 체험을 서로 간증하며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0편 '감정을 제어하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혈루증이란?
자궁의 만성 하혈증상으로 자궁 안에 종기가 생기거나 어떤 이상이 생겨 불규칙적으로 피가 흐르는 증세이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이 병을 문둥병과 같이 천벌로 생각하여 부정하게 취급했고, 혈루증 환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는 경우와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를 살펴봄으로 합당한 것을 구하여 응답받게 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자녀들의 소원을 응답해 주며 사랑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고 응답으로 축복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구하느냐에 따라 응답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의 응답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응답
마태복음 20장 20-21절을 보면 제자였던 요한과 야고보가 어머니와 함께 무엇인가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가니 "무엇을 원하느뇨"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간청합니다. 그만한 권한을 가진 분이라고 믿었기에 높은 자리를 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들은 예수님의 어떠한 면을 보았기에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과 진실한 행하심을 보았고 또한 예수님이 베푸신 기사와 표적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참으로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많이 베푸셨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요 2장),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요 9장), 간질을 하며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막 9장). 또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 속에 장사되어 있는 나사로를 살리시기도 하셨습니다(요 11장).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기도 하시고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마 14장).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러한 일들을 행하신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모든 사람에게 영생, 곧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누누이 천국에 대해 듣고 배웠으며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권세가 천국에서 얼마나 큰지도 알았고 예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받을 줄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 약속을 받고자 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답변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앉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아버지 뜻대로 행하여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을 찾아 나옵니다. 자기 스스로가 어찌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나오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참 신인 것 같다.'고 인정되어 찾아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질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 치료받고자 하나님을 찾아 나오기도 하며, 그냥 전도를 받고서 좋다고 생각이 되어 하나님을 찾아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경우에 속하며 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요?
2. 무엇을 구하든지 믿음으로 구해야 응답
사사기 6장을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족속에게 약탈을 당하고 고통을 받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주십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이 무서워 몰래 밀타작을 하던 자였는데 자신이 그러한 사명을 맡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워 하나님께 두 가지 표징을 구합니다. 먼저 "양털 한 뭉치를 땅에다 두겠으니 밤새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주위 땅은 말라 있다면 믿을 수 있겠나이다" 기도하였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과연 양털에만 이슬이 내렸습니다. 기드온은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한 번 더 하나님께 구합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과연 양털만 말라 있고 주변 땅은 다 이슬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며 참 신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각종 문제로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선 모세는 완전무장한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돌격해 오자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더니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므로 그의 자녀들이 믿음을 내보이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역사해 주십니다.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경우로는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침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백부장(마 8장),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찾아 나온 여인(마 9장), 자기 딸에게 들린 흉악한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수로보니게 여인(막 7장)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어 그 즉시 응답을 받았는데 백부장은 믿음의 고백만으로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을 사랑하는 백부장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시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9)
이처럼 철저히 신뢰하여 그 앞에 순종하려는 믿음을 지닌 백부장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하인이 그 시로 나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을 만나 응답을 받습니다.
3. 무엇을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두 마음을 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내보여야 하며, 어떠한 일을 만난다 해도 오직 하나님 뜻대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어떤 시험 환난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인하고 탄식하면서, 끝까지 믿는 믿음을 내보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고 금식해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해 주시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지 응답해 주시면 내가 왜 원망하고 탄식하며 불평하겠느냐?"고 변명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한 출애굽 1세대들은 믿음을 내보이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별로 믿음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어리석은 것 같아 보이는데도 응답을 받습니다. 그것은 응답해 주어도 그 사람 마음이 변치 않을 중심인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배신할 줄 알면서도 응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훗날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내가 너에게 이렇게 응답을 주었지만 너는 이러한 응답을 보고도 나를 부인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며 공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따라 응답을 주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번에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씩 주십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단번에 응답해 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도록 변화된 만큼 조금씩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가는 만큼 믿음대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단지 응답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중심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참된 믿음을 가지고 행함을 나타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오직 □□으로 구하고 조금도 □□하지 말라 □□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을 품어 모든 일에 □□이 없는 자로다"(약 1:6-8)
4. 단물이나 전화음성사서함, 권능의 손수건 기도를 믿음으로 받고 또 사용하였을 때 응답받은 체험을 서로 간증하며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0편 '감정을 제어하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혈루증이란?
자궁의 만성 하혈증상으로 자궁 안에 종기가 생기거나 어떤 이상이 생겨 불규칙적으로 피가 흐르는 증세이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이 병을 문둥병과 같이 천벌로 생각하여 부정하게 취급했고, 혈루증 환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2009-07-03
제27과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4~18
읽을말씀 : 출 23:14~18 | 외울말씀 : 출 23:16 l 참고 말씀:신 16:9~12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보리가 익는 철을 맞아 하나님께 곡물의 첫 열매를 드리며 전반기에 은혜 주심에 감사할 뿐 아니라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1. 맥추절(麥秋節)의 유래와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밭에 뿌린 보리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는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합니다. 칠칠절이란 명칭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이란 명칭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맥추절은 맥추감사절로 구별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을 보면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민수기 28장 26~31절에도 맥추절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 양 일곱에는 매 어린 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새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이 소제로서(레 23:17) 특별히 드려집니다. 또한 이것과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이 지난 후 첫날에 처음 익은 곡식 단을 하나님께 바친 것은 유월절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 후 50일 되는 날 곧 맥추절에 새 곡식가루로 만든 떡 두 덩이는 예수님의 부활 후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로 새로워지고 구원에 이른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하게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두게 됨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날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을 감사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영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 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은 가루: 민 28:5~6)와 전제(독주: 민 28:7)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으니(민 28:26~31)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예물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하여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6~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며, 마찬가지로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막 12:44).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리는데, 때로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거나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성전 청소 등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며 영혼이 잘되어 진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지요.
그러므로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말씀하신 대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준비하고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을 주셔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하시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버리며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하며,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천국을 약속해 주셨으니 소망이 넘칩니다. 비록 눈물, 슬픔, 질병, 고통이 있는 이 땅에 살면서 갖가지 일들을 겪는다 해도 하나님 나라가 있으니 언제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원히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고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가 되어 늘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20~23절을 보면 암몬, 모압, 세일산 세 거민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여호사밧 왕은 맨 앞에 거룩한 옷을 입힌 찬양대를 내보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적들이 자기들끼리 싸워 자멸하게 만들고 그들의 재물과 양식들을 취하게 하셨습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가 깨닫고 전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 보며 더욱 감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출애굽기 23장 16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맥추절의 영적 의미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3. 하나님 앞에 감사예물을 드릴 때 어떠한 중심으로 드리고 있나요?
4. 어떤 일에 대한 열매를 거둘 때 혹 자신이 수고한 대가로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나요? 스스로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9편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소제는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로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말한다. 소제는 반드시 곡식의 고운 가루이어야 하며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향기로운 유향을 놓아야 한다. 소제를 드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고운 가루를 그냥 불살라 드리는 것과 기름을 넣고 반죽하여 화덕에 굽거나 번철에 구워 드리는 것, 솥에 삶아 드리는 방법이 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제목으로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라 해도 정성과 중심으로 드려야 함을 뜻한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보리가 익는 철을 맞아 하나님께 곡물의 첫 열매를 드리며 전반기에 은혜 주심에 감사할 뿐 아니라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1. 맥추절(麥秋節)의 유래와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밭에 뿌린 보리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는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합니다. 칠칠절이란 명칭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이란 명칭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맥추절은 맥추감사절로 구별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을 보면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민수기 28장 26~31절에도 맥추절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 양 일곱에는 매 어린 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새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이 소제로서(레 23:17) 특별히 드려집니다. 또한 이것과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이 지난 후 첫날에 처음 익은 곡식 단을 하나님께 바친 것은 유월절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 후 50일 되는 날 곧 맥추절에 새 곡식가루로 만든 떡 두 덩이는 예수님의 부활 후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로 새로워지고 구원에 이른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하게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두게 됨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날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을 감사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영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 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은 가루: 민 28:5~6)와 전제(독주: 민 28:7)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으니(민 28:26~31)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예물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하여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6~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며, 마찬가지로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막 12:44).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리는데, 때로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거나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성전 청소 등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며 영혼이 잘되어 진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지요.
그러므로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말씀하신 대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준비하고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을 주셔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하시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버리며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하며,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천국을 약속해 주셨으니 소망이 넘칩니다. 비록 눈물, 슬픔, 질병, 고통이 있는 이 땅에 살면서 갖가지 일들을 겪는다 해도 하나님 나라가 있으니 언제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원히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고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가 되어 늘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20~23절을 보면 암몬, 모압, 세일산 세 거민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여호사밧 왕은 맨 앞에 거룩한 옷을 입힌 찬양대를 내보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적들이 자기들끼리 싸워 자멸하게 만들고 그들의 재물과 양식들을 취하게 하셨습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가 깨닫고 전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 보며 더욱 감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출애굽기 23장 16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맥추절의 영적 의미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3. 하나님 앞에 감사예물을 드릴 때 어떠한 중심으로 드리고 있나요?
4. 어떤 일에 대한 열매를 거둘 때 혹 자신이 수고한 대가로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나요? 스스로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9편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소제는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로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말한다. 소제는 반드시 곡식의 고운 가루이어야 하며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향기로운 유향을 놓아야 한다. 소제를 드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고운 가루를 그냥 불살라 드리는 것과 기름을 넣고 반죽하여 화덕에 굽거나 번철에 구워 드리는 것, 솥에 삶아 드리는 방법이 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제목으로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라 해도 정성과 중심으로 드려야 함을 뜻한다.
2009-06-26
제26과심고 거두는 법칙
고후 9:6~8
읽을말씀 : 고후 9:6~8 | 외울말씀 : 갈 6:7 l 참고 말씀:갈 6:8~9
교육목표 : 영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심고 거두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가을이 되면 우리는 들판에 누렇게 익은 벼들이 황금 물결을 이루는 풍요로움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벼가 추수의 손길을 기다리기까지는, 씨를 심고 비료를 주며 열심히 가꾸어 준 농부들의 땀 흘리는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는 분명히 그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인내하며 열심히 경작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심고 거두는 법칙과 그 방법에 대하여 잘 알면 많은 소출을 거두지만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수고해도 소출이 많지 않거나 좋은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어느 때 무슨 씨를 심고, 어느 때 거둘 것이며, 얼마를 심고 어떻게 가꾸고 작업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심고 거두는 법칙을 깨우치지 못하여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을까요?
1.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기 위해서는 먼저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밭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땀 흘리며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단단한 흙이면 갈아엎고, 돌멩이가 있으면 주워 내며, 가시떨기가 있으면 뽑아내 버리고, 또 비료를 주어 비옥하게 하면 좋은 밭으로 개조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않으며, '버리라'고 하신 것은 열심히 버리고, 또한 '하라', '지키라' 하신 것은 그대로 행하며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개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네 가지 밭의 비유가 나오는데 밭은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첫째, 단단한 흙으로 굳어 있는 길가밭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므로 하나님 말씀을 듣긴 들어도 깨우치지 못하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음도 가지지 못합니다.
둘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도 돌멩이들 때문에 잘 성장할 수 없는 돌밭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마음밭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확신이 없기 때문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리고 맙니다.
셋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서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아 잘 자라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이 있습니다. 즉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육신의 소욕을 좇아 엉뚱하게 행하며, 기도를 해도 하나님을 진정 의뢰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능력을 체험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는 뒷전에 서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넷째,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며 열매를 맺되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옥토밭입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밭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옥토밭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그분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크게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깨닫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히 12:4),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는(살전 5:22) 것이 바로 자기의 마음밭을 열심히 개간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 힘으로 부족한 것은 불같이 기도하여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아서 신속히 마음밭을 개간해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2. 다양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농부는 밭을 개간하는 작업이 끝나면 다양한 씨앗을 뿌립니다.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하듯이 농부도 자기 밭에 여러 종류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밭을 개간하는 작업과 함께 씨 뿌리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움'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해 나가면서 '사랑'의 씨를 심으면 신속히 미움을 버리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밭을 개간해 나가면 점점 옥토가 되는데 이것은 당연히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린 것뿐이므로 하나님 앞에 상급이 되지는 않습니다. 씨는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이므로, 씨를 심는다는 것은 '하라' 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뻐하라 하셨으면 기뻐함으로 심고, 전도하라 하셨으면 전도를 열심히 하며, 사랑하라, 충성하라, 감사하라, 기도하라 하는 말씀들을 열심히 행하면 그것이 바로 다양한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릴 때 가을에 추수할 것을 믿고 뿌리듯이, 하나님 앞에 심을 때도 30배, 60배, 100배로 넘치게 축복해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심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심을 때에도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한다면 결코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3. 인내와 정성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씨를 심은 다음에는 인내와 정성으로 잘 가꾸어야 합니다. 병충해를 입지 않도록 벌레를 잡아 주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비료도 주며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힘쓰고 애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씨는 열매를 맺기 전에 병들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중심을 바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못하고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며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우쳐야 자신을 발견하고 영적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 환난을 막을 수 없고, 원수 마귀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항상 깨어 기도하되 하나님 말씀대로 부르짖으며 중심을 다한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식물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꾸어 주어야 싱싱하게 잘 자라는 것과 같이 내 마음이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쳐야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틈타지 못합니다.
넷째는, 인내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종자마다 그 열매 맺는 기간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 앞에 심은 것도 금방 응답받아 열매를 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내하면서 가꾸다 보면 마음 안에 영적인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가 맺히고,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어 모든 기도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잠 8:17 ; 시 37:4).
4.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씨를 심어 열매가 맺히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처럼 영계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를 하면 연약함이 떠나가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으며, 물질로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열심히 드리면 물질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승천을 목격하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쓴 결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행하게 됩니다. 또한 초대교회가 큰 부흥을 이루어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에 바빠지자 일곱 집사를 세웠는데 주의 일에 충성한 스데반이나 빌립 집사는 사도처럼 권능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아 병들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36~40). 이처럼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밝히 깨달아 우리 마음밭을 개간할 뿐 아니라 다양한 믿음의 씨앗을 심어 많은 열매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항상 성령을 위하여 심고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며 넘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네 가지 마음밭은 무엇이며, 자신의 마음밭은 어디에 해당하는지 점검해 봅시다.
2. 갈라디아서 6장 7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3. 내가 가장 신속히 심어야 할 말씀의 씨앗은 무엇일까요? 함께 예배를 드린 사람들에게 한 가지씩 부탁해 보세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가요? 아니면 많이 다른가요?
4. 이제 내 마음에 말씀의 씨앗을 심고 가꾸어 보세요. 신속히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맥추절을 맞아 전반기를 지켜 주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육 간에 얼마나 열매를 맺었는지 점검해 봅시다.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66권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것을 말한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예배드리는 것을 말한다.
교육목표 : 영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심고 거두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가을이 되면 우리는 들판에 누렇게 익은 벼들이 황금 물결을 이루는 풍요로움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벼가 추수의 손길을 기다리기까지는, 씨를 심고 비료를 주며 열심히 가꾸어 준 농부들의 땀 흘리는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는 분명히 그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인내하며 열심히 경작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심고 거두는 법칙과 그 방법에 대하여 잘 알면 많은 소출을 거두지만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수고해도 소출이 많지 않거나 좋은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어느 때 무슨 씨를 심고, 어느 때 거둘 것이며, 얼마를 심고 어떻게 가꾸고 작업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심고 거두는 법칙을 깨우치지 못하여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을까요?
1.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기 위해서는 먼저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밭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땀 흘리며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단단한 흙이면 갈아엎고, 돌멩이가 있으면 주워 내며, 가시떨기가 있으면 뽑아내 버리고, 또 비료를 주어 비옥하게 하면 좋은 밭으로 개조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않으며, '버리라'고 하신 것은 열심히 버리고, 또한 '하라', '지키라' 하신 것은 그대로 행하며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개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네 가지 밭의 비유가 나오는데 밭은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첫째, 단단한 흙으로 굳어 있는 길가밭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므로 하나님 말씀을 듣긴 들어도 깨우치지 못하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음도 가지지 못합니다.
둘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도 돌멩이들 때문에 잘 성장할 수 없는 돌밭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마음밭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확신이 없기 때문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리고 맙니다.
셋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서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아 잘 자라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이 있습니다. 즉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육신의 소욕을 좇아 엉뚱하게 행하며, 기도를 해도 하나님을 진정 의뢰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능력을 체험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는 뒷전에 서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넷째,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며 열매를 맺되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옥토밭입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밭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옥토밭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그분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크게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깨닫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히 12:4),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는(살전 5:22) 것이 바로 자기의 마음밭을 열심히 개간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 힘으로 부족한 것은 불같이 기도하여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아서 신속히 마음밭을 개간해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2. 다양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농부는 밭을 개간하는 작업이 끝나면 다양한 씨앗을 뿌립니다.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하듯이 농부도 자기 밭에 여러 종류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밭을 개간하는 작업과 함께 씨 뿌리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움'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해 나가면서 '사랑'의 씨를 심으면 신속히 미움을 버리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밭을 개간해 나가면 점점 옥토가 되는데 이것은 당연히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린 것뿐이므로 하나님 앞에 상급이 되지는 않습니다. 씨는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이므로, 씨를 심는다는 것은 '하라' 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뻐하라 하셨으면 기뻐함으로 심고, 전도하라 하셨으면 전도를 열심히 하며, 사랑하라, 충성하라, 감사하라, 기도하라 하는 말씀들을 열심히 행하면 그것이 바로 다양한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릴 때 가을에 추수할 것을 믿고 뿌리듯이, 하나님 앞에 심을 때도 30배, 60배, 100배로 넘치게 축복해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심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심을 때에도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한다면 결코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3. 인내와 정성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씨를 심은 다음에는 인내와 정성으로 잘 가꾸어야 합니다. 병충해를 입지 않도록 벌레를 잡아 주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비료도 주며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힘쓰고 애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씨는 열매를 맺기 전에 병들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중심을 바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못하고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며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우쳐야 자신을 발견하고 영적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 환난을 막을 수 없고, 원수 마귀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항상 깨어 기도하되 하나님 말씀대로 부르짖으며 중심을 다한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식물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꾸어 주어야 싱싱하게 잘 자라는 것과 같이 내 마음이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쳐야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틈타지 못합니다.
넷째는, 인내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종자마다 그 열매 맺는 기간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 앞에 심은 것도 금방 응답받아 열매를 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내하면서 가꾸다 보면 마음 안에 영적인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가 맺히고,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어 모든 기도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잠 8:17 ; 시 37:4).
4.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씨를 심어 열매가 맺히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처럼 영계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를 하면 연약함이 떠나가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으며, 물질로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열심히 드리면 물질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승천을 목격하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쓴 결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행하게 됩니다. 또한 초대교회가 큰 부흥을 이루어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에 바빠지자 일곱 집사를 세웠는데 주의 일에 충성한 스데반이나 빌립 집사는 사도처럼 권능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아 병들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36~40). 이처럼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밝히 깨달아 우리 마음밭을 개간할 뿐 아니라 다양한 믿음의 씨앗을 심어 많은 열매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항상 성령을 위하여 심고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며 넘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네 가지 마음밭은 무엇이며, 자신의 마음밭은 어디에 해당하는지 점검해 봅시다.
2. 갈라디아서 6장 7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3. 내가 가장 신속히 심어야 할 말씀의 씨앗은 무엇일까요? 함께 예배를 드린 사람들에게 한 가지씩 부탁해 보세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가요? 아니면 많이 다른가요?
4. 이제 내 마음에 말씀의 씨앗을 심고 가꾸어 보세요. 신속히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맥추절을 맞아 전반기를 지켜 주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육 간에 얼마나 열매를 맺었는지 점검해 봅시다.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66권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것을 말한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예배드리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