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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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1
제35과일어나 뛰고 걸으며
마가복음 2:3~12
읽을말씀 : 마가복음 2:3~12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12 | 참고 말씀: 출애굽기 15:26
교육목표 :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방법을 알아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여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성경 곳곳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으로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론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통해서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었지요(행 3:1~10, 14:8~10).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주님의 이름으로 역사 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중풍 병자를 통해 어떻게 해야 일어나 걷고 뛰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 앞에 나온 중풍 병자와 친구들
가버나움에 한 중풍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풍이 심해 남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날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분이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키고 귀신을 쫓아내며 각색 병든 사람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나도 그분을 만나 치료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친구들에게 자신을 예수님 앞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의 친구들도 예수님의 권능의 소식을 듣고 잘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허락합니다. 그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께서 계신 집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용신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그 인파를 뚫고 예수님 앞까지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지요.
만일 그들의 믿음이 부족했다면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며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뵐 수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좋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계신 집의 지붕을 뜯고 중풍 병자를 달아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전통 가옥은 집 옆으로 계단이 있어서 지붕에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지붕은 갈대나 종려나무 가지로 덮은 것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지붕을 벗겨낼 수 있었지요.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중풍 병자는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행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겸비함으로 자신을 낮출 때 믿음의 행함을 내보일 수 있습니다. 만일 중풍 병자가 집 안에 누워서 “주여, 제가 움직일 수가 없어서 예수님께 나가지 못하는 거 아시지요? 그러니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했다면 이것이 믿음을 내보인 것일까요? 아니지요.
중풍 병자는 치료받기 위해 요행을 바라거나 안일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믿음의 행함으로 내보였지요.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 역시 믿음이 있었기에 중풍 병자를 위해 남의 집 지붕을 뜯어 가면서까지 도와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응답받을 수 있어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며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막 2:5).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질병을 치료받으려면 먼저 죄 사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질병이 왔기에 중풍 병자에게 먼저 죄 사함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세상 정욕을 좇아 죄를 지어 나갔기 때문에 몸에 병이 온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이란, 이 세상의 모든 질병을 총칭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 말씀대로 살면 이 세상의 어떠한 질병도 틈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장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지켜 행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며,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지킴 받을 수 없을뿐더러 저주가 임하리라 말씀했지요.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후에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당부하십니다. 또다시 죄를 짓는다면 더 심한 병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사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불의를 행하던 사람이 불의를 행치 않는 사람으로, 거짓말하던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미워하던 사람이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돌이켜야 하지요.
이렇게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입술로만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오면 자연히 주님의 보혈이 죄를 씻어 깨끗게 해 주십니다(요일 1:7).
3.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어나 걷게 된 중풍 병자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자 거기 있던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하며 판단합니다(막 2:7). 그들이 가진 율법의 틀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며(막 2:8~10),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신 증거를 표적으로 나타내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명하시자, 그가 즉시 일어나 자신의 침상을 가지고 걸어 나간 것입니다. 이에 모든 사람이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요. 중풍 병자가 치료받았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의미이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보장해 주신 것을 말합니다.
4. 믿음으로 일어나 걷고 뛰는 권능의 역사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11)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으로만 명하셨는데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걸은 것만 보더라도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일들은 예수님께서 구세주 되심을 믿고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들도 행할 수 있고, 이보다 큰일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 예수님께서는 “…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하고 주님을 영접했기에 성경 66권 말씀을 100% 믿으셨습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기 위해 무수한 금식과 기도를 쌓으셨지요. 그래서 교회 개척 때부터 놀라운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며,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는 등 놀라운 일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은 끝이 없습니다.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상 의학이나 과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도 치료할 수 있고 그 밖에도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늘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며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지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써보세요(출애굽기 15:26).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가버나움
갈릴리 호수 북쪽 끝에 있는 가버나움은 성경에 ‘본 동네’라고도 불렸다(마 9:1 ; 막 2: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초기에 이곳을 근거지로 사역하셨으며 이곳에는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여기서 근무하던 백부장의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하인의 병을 즉시 고쳐 주셨다. 또 열병으로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과 중풍 병자와 많은 병자를 치료하셨다.
이 외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등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베푸셨지만, 가버나움 사람들은 회개치 않으므로 소돔 땅이 이곳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는 심판을 받았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방법을 알아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여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성경 곳곳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으로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론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통해서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었지요(행 3:1~10, 14:8~10).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주님의 이름으로 역사 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중풍 병자를 통해 어떻게 해야 일어나 걷고 뛰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 앞에 나온 중풍 병자와 친구들
가버나움에 한 중풍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풍이 심해 남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날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분이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키고 귀신을 쫓아내며 각색 병든 사람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나도 그분을 만나 치료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친구들에게 자신을 예수님 앞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의 친구들도 예수님의 권능의 소식을 듣고 잘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허락합니다. 그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께서 계신 집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용신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그 인파를 뚫고 예수님 앞까지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지요.
만일 그들의 믿음이 부족했다면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며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뵐 수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좋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계신 집의 지붕을 뜯고 중풍 병자를 달아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전통 가옥은 집 옆으로 계단이 있어서 지붕에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지붕은 갈대나 종려나무 가지로 덮은 것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지붕을 벗겨낼 수 있었지요.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중풍 병자는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행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겸비함으로 자신을 낮출 때 믿음의 행함을 내보일 수 있습니다. 만일 중풍 병자가 집 안에 누워서 “주여, 제가 움직일 수가 없어서 예수님께 나가지 못하는 거 아시지요? 그러니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했다면 이것이 믿음을 내보인 것일까요? 아니지요.
중풍 병자는 치료받기 위해 요행을 바라거나 안일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믿음의 행함으로 내보였지요.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 역시 믿음이 있었기에 중풍 병자를 위해 남의 집 지붕을 뜯어 가면서까지 도와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응답받을 수 있어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며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막 2:5).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질병을 치료받으려면 먼저 죄 사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질병이 왔기에 중풍 병자에게 먼저 죄 사함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세상 정욕을 좇아 죄를 지어 나갔기 때문에 몸에 병이 온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이란, 이 세상의 모든 질병을 총칭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 말씀대로 살면 이 세상의 어떠한 질병도 틈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장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지켜 행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며,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지킴 받을 수 없을뿐더러 저주가 임하리라 말씀했지요.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후에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당부하십니다. 또다시 죄를 짓는다면 더 심한 병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사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불의를 행하던 사람이 불의를 행치 않는 사람으로, 거짓말하던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미워하던 사람이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돌이켜야 하지요.
이렇게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입술로만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오면 자연히 주님의 보혈이 죄를 씻어 깨끗게 해 주십니다(요일 1:7).
3.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어나 걷게 된 중풍 병자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자 거기 있던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하며 판단합니다(막 2:7). 그들이 가진 율법의 틀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며(막 2:8~10),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신 증거를 표적으로 나타내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명하시자, 그가 즉시 일어나 자신의 침상을 가지고 걸어 나간 것입니다. 이에 모든 사람이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요. 중풍 병자가 치료받았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의미이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보장해 주신 것을 말합니다.
4. 믿음으로 일어나 걷고 뛰는 권능의 역사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11)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으로만 명하셨는데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걸은 것만 보더라도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일들은 예수님께서 구세주 되심을 믿고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들도 행할 수 있고, 이보다 큰일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 예수님께서는 “…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하고 주님을 영접했기에 성경 66권 말씀을 100% 믿으셨습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기 위해 무수한 금식과 기도를 쌓으셨지요. 그래서 교회 개척 때부터 놀라운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며,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는 등 놀라운 일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은 끝이 없습니다.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상 의학이나 과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도 치료할 수 있고 그 밖에도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늘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며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지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써보세요(출애굽기 15:26).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가버나움
갈릴리 호수 북쪽 끝에 있는 가버나움은 성경에 ‘본 동네’라고도 불렸다(마 9:1 ; 막 2: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초기에 이곳을 근거지로 사역하셨으며 이곳에는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여기서 근무하던 백부장의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하인의 병을 즉시 고쳐 주셨다. 또 열병으로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과 중풍 병자와 많은 병자를 치료하셨다.
이 외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등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베푸셨지만, 가버나움 사람들은 회개치 않으므로 소돔 땅이 이곳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는 심판을 받았다.
2023-08-25
제34과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요한복음 9:32~33
읽을말씀 : 요한복음 9:32~33 | 외울말씀 : 요한복음 9:31 | 참고 말씀: 시편 66:18
교육목표 : 태어나면서부터 소경 된 사람의 눈이 밝아진 이유를 깨달아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 권능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라고 여쭙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른 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시지요. 그가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져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소경이 예수님께 찾아와 “내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한 것도 아닌데,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만나 주시고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진흙을 눈에 바른 후 물로 씻는다고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게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더구나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말을 듣는다면 자신을 놀린다고 화를 낼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물가로 가서 눈을 씻었습니다. 이렇게 순종했을 때 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눈이 밝아져 세상을 또렷이 보게 되었지요.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혹여 하나님 말씀이 내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는다 해도 소경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은혜가 임하며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사람이 치료받은 후 유대인들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거짓이 없고 선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진리를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참 빛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 영적으로 눈먼 사람과 다름없었습니다. 오히려 장로의 유전에 매여 안식일에 소경을 치료해 주었다고 예수님을 힐책할 빌미를 찾고자 했지요. 예수님께서 진흙을 눈에 발라 치료해 주셨다고 소경 되었던 자가 말해도 믿지 못하고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라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그가 “선지자니이다”라고 대답하지요. 자기 눈을 고쳐 줄 수 있는 분이라면 분명 하나님의 사람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그의 부모까지 불러 아들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재차 확인합니다. 하지만 부모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유대인들이 출교(회당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당시 유대 공동체 사회에서는 매우 큰 형벌임)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무서워서 직접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지요.
이에 유대인들이 다시 소경 되었던 사람을 불러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하며 어리석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시편 66장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한 대로이지요. 더구나 죄인에게 권능을 주셔서 영광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진실을 보아도 믿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경 되었던 사람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진실을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 31~33절에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했지요.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사람이 눈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보통 사람 같으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시시비비하며 안식일에 치료하는 것은 율법을 어긴 악행이라며 예수님을 책잡으려 했지요. 그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고 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나타내신 것인데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시편 146장 8절에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했고, 이사야 35장 5절에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했지요. 이는 곧 그리스도가 오시면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틀과 악함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죄인으로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사람은 율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어도 선한 양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알았지요.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깨우친 것입니다.
셋째, 은혜를 받은 후 새로운 삶을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질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치료받고 인생의 갖가지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은혜를 입고도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아플 때는 “치료해 주시면 주만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해놓고 막상 치료받아 건강을 회복하면 자기 유익을 좇아 은혜를 저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질병의 문제는 해결 받았어도 구원의 길에서 떠났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소경 되었던 사람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예수님을 만나 눈을 떴습니다. 가장 중요한 구원의 축복까지 받았지요. 예수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물으실 때 그는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는 지체하지 않고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며 절을 하였습니다(요 9:35~38).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며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마음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질병을 치료해 주고 축복을 주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진정 구주로 영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입술로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어둠의 일을 벗고 날마다 빛 가운데 행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면 어찌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약속하신 대로 무엇이나 응답해 주십니다. 아무리 중한 질병이나 얽히고설킨 문제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는 중심의 고백과 함께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질병의 치료는 물론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불통을 형통으로 바꿔 주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려면 소경 되었던 사람처럼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 역사를 인정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응답받을 수 있는 그릇을 얼마나 준비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시편 18장 25~26절에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말씀합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행함으로 권능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보세요.
날 때부터 소경 되었던 사람이 예수님께 큰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 ( )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 )를 분별할 수 있는 ( )인 ( )이 열렸기 때문이다.
셋째, ( )를 받은 후 새로운 삶을 ( )했기 때문이다.
2.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죄인이라 정죄했을 때 소경 되었던 사람이 당당히 진리로 분별하여 말한 내용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예수님께서 소경에게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신 이유
상대의 믿음에 대한 배려이다. 어떤 사람은 말로만 해도 믿음을 갖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증거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소경은 예수님께서 나타낸 표적을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갖기 어려운 처지였다. 이를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가 더 온전한 믿음을 갖고 순종하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비록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눈에 무언가 감각적으로 와 닿을 때 ‘볼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목표 : 태어나면서부터 소경 된 사람의 눈이 밝아진 이유를 깨달아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 권능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라고 여쭙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른 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시지요. 그가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져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소경이 예수님께 찾아와 “내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한 것도 아닌데,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만나 주시고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진흙을 눈에 바른 후 물로 씻는다고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게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더구나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말을 듣는다면 자신을 놀린다고 화를 낼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물가로 가서 눈을 씻었습니다. 이렇게 순종했을 때 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눈이 밝아져 세상을 또렷이 보게 되었지요.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혹여 하나님 말씀이 내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는다 해도 소경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은혜가 임하며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사람이 치료받은 후 유대인들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거짓이 없고 선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진리를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참 빛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 영적으로 눈먼 사람과 다름없었습니다. 오히려 장로의 유전에 매여 안식일에 소경을 치료해 주었다고 예수님을 힐책할 빌미를 찾고자 했지요. 예수님께서 진흙을 눈에 발라 치료해 주셨다고 소경 되었던 자가 말해도 믿지 못하고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라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그가 “선지자니이다”라고 대답하지요. 자기 눈을 고쳐 줄 수 있는 분이라면 분명 하나님의 사람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그의 부모까지 불러 아들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재차 확인합니다. 하지만 부모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유대인들이 출교(회당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당시 유대 공동체 사회에서는 매우 큰 형벌임)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무서워서 직접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지요.
이에 유대인들이 다시 소경 되었던 사람을 불러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하며 어리석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시편 66장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한 대로이지요. 더구나 죄인에게 권능을 주셔서 영광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진실을 보아도 믿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경 되었던 사람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진실을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 31~33절에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했지요.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사람이 눈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보통 사람 같으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시시비비하며 안식일에 치료하는 것은 율법을 어긴 악행이라며 예수님을 책잡으려 했지요. 그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고 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나타내신 것인데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시편 146장 8절에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했고, 이사야 35장 5절에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했지요. 이는 곧 그리스도가 오시면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틀과 악함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죄인으로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사람은 율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어도 선한 양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알았지요.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깨우친 것입니다.
셋째, 은혜를 받은 후 새로운 삶을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질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치료받고 인생의 갖가지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은혜를 입고도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아플 때는 “치료해 주시면 주만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해놓고 막상 치료받아 건강을 회복하면 자기 유익을 좇아 은혜를 저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질병의 문제는 해결 받았어도 구원의 길에서 떠났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소경 되었던 사람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예수님을 만나 눈을 떴습니다. 가장 중요한 구원의 축복까지 받았지요. 예수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물으실 때 그는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는 지체하지 않고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며 절을 하였습니다(요 9:35~38).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며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마음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질병을 치료해 주고 축복을 주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진정 구주로 영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입술로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어둠의 일을 벗고 날마다 빛 가운데 행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면 어찌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약속하신 대로 무엇이나 응답해 주십니다. 아무리 중한 질병이나 얽히고설킨 문제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는 중심의 고백과 함께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질병의 치료는 물론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불통을 형통으로 바꿔 주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려면 소경 되었던 사람처럼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 역사를 인정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응답받을 수 있는 그릇을 얼마나 준비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시편 18장 25~26절에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말씀합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행함으로 권능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보세요.
날 때부터 소경 되었던 사람이 예수님께 큰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 ( )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 )를 분별할 수 있는 ( )인 ( )이 열렸기 때문이다.
셋째, ( )를 받은 후 새로운 삶을 ( )했기 때문이다.
2.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죄인이라 정죄했을 때 소경 되었던 사람이 당당히 진리로 분별하여 말한 내용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예수님께서 소경에게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신 이유
상대의 믿음에 대한 배려이다. 어떤 사람은 말로만 해도 믿음을 갖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증거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소경은 예수님께서 나타낸 표적을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갖기 어려운 처지였다. 이를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가 더 온전한 믿음을 갖고 순종하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비록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눈에 무언가 감각적으로 와 닿을 때 ‘볼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2023-08-18
제33과빛의 권능
요한일서 1:5
읽을말씀 : 요한일서 1:5 | 외울말씀 : 사도행전 1:8 | 참고 말씀: 시편 62:11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이신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밝히 알아 이를 사모하며 권능으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게 한다.
시편 62편 11절에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말씀합니다. 누군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을 행한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권능의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의 어두운 세력들이 떠날 수밖에 없으며 갖가지 인생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지요. 이러한 권능은 단계별로 빛이 다르고 역사도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권능의 차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권능을 동일하게 생각하지만 각각 그 의미가 다릅니다. 먼저, 능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권세란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 있고 영광스러운 힘을 나타내지요.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입니다. 따라서 성결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적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러면 권능이란 무엇일까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한 사람에게 입혀 주는 권세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가령, 운전자가 차를 몰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교통 경찰관은 차를 세울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처럼 권세와 능력은 다르며 이 두 가지를 겸한 경우를 권능이라 말합니다.
2. 신유의 은사와 권능의 차이점
신유의 은사와 권능의 역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병 고치는 은사, 곧 신유의 은사는 주로 균에 의해 생긴 질병을 치료합니다. 신체가 퇴화했거나 신경 세포가 손상되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치료할 수 없지요. 하지만 권능을 받으면 이 모든 것을 능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권능은 한 번 받으면 항상 나타나지만, 신유의 은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유의 은사는 온전히 성결되지 않았다 해도 영혼을 사랑해 많은 기도를 쌓았거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영광을 위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며 합당치 않게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거두시지요.
반면 권능은 성결을 이루고 불같은 기도를 쌓은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에 한번 받으면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악이 없으니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기 유익을 좇아 사용하지 않지요. 성결을 이루면 오직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힘쓰며 주님의 마음을 더욱 닮아가기에 큰 역사도 베푸는 것입니다.
3. 빛이신 하나님의 권능 4단계
1단계 : 붉은빛으로, 성령의 불로 태우는 역사가 나타나는 권능입니다.
성령의 불은 온갖 병균이나 바이러스, 세균 등에 의해 생긴 갖가지 질병들을 태워서 치료합니다. 암, 폐병, 당뇨병, 백혈병, 신장병, 관절염, 심장병, 에이즈와 같은 질병을 치료하지요.
그러나 암 말기나 폐병 말기처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생명선을 넘어버리면 권능의 1단계에서 나오는 성령의 불로는 치료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의 기능을 상실했을 경우는 새롭게 창조해야 하므로 더 큰 권능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이런 경우라 해도 환자가 얼마나 믿음을 내보이고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믿음을 내보이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2단계 : 푸른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는 역사가 나타나는 권능입니다.
권능의 2단계에서 나오는 푸른 빛을 통해서는 주로 귀신 들린 사람, 사단의 역사를 받는 사람에게서 어둠을 물리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어둠의 세력으로 인한 자폐증이나 정신이상, 노이로제, 신경쇠약 등 신경성 질병이 치료되지요.
표적이 따르기도 하는데, 이는 질병이나 약한 것이 귀신이나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비롯된 경우입니다. 약한 것이란 농아인이나 시각장애인과 같이 보지 못하고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경우, 소아마비 등과 같이 신체 기능이 마비되거나 퇴화한 것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니 그 아이가 온전케 되었지요.
또한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 뜻 가운데 다시 불러오거나 반대로 산 사람의 영혼을 거두어 가는 것도 권능의 2단계에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이 죽은 유두고를 살리고, 베드로가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저주하자 혼이 떠나며, 엘리사가 저주하니 42명의 악한 아이가 곰에게 죽임당한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행 20장, 5장 ; 왕하 2장).
3단계 : 흰빛(무색)으로, 창조의 역사가 따르는 권능입니다.
권능의 3단계에서 나오는 흰빛을 통해서는 모든 종류의 표적과 함께 창조의 역사가 따릅니다. 여기서 표적이란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소아마비나 뇌성마비가 온전해지는 등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외에도 나면서부터 기형이나 불구가 된 신체나 완전히 퇴화한 부분이 온전케 되는 것, 그리고 부스러진 뼈가 붙어서 정상이 되거나 없던 뼈가 생기고 끊어진 힘줄이 붙는 것 등도 권능의 3단계에서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따라서 권능의 3단계에서는 표적과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에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며, 썩었거나 완전히 기능을 잃었던 오장육부가 새롭게 창조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4단계 : 황금빛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가 따르는 권능의 완성입니다.
권능의 4단계에서 나오는 황금빛으로는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기에 천기를 움직이는 기사가 나타납니다. 무생물도 명하는 대로 순종하는 단계이므로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잔잔케 되었습니다. 바람과 바다와 같은 자연이나 무생물이라 해도 예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였지요(마 8장).
또한 권능의 4단계에서는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가 따릅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여인이 집에 돌아가 보니 이미 아이에게서 귀신이 나갔지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것도 만물이 예수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권능의 4단계 역사가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할 때 순식간에 멎었고, 연탄가스에 중독된 사람도 연탄가스가 물러가 후유증 없이 온전케 되었지요. 전신 3도 화상도 “화기야, 물러가라!” 명하니 즉시 물러갔고, 파키스탄에 있는 신시아는 셀리악 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시공을 초월하여 사진 기도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4. 창조의 최상의 권능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일들은 권능의 4단계보다 더 윗단계로 곧 창조주가 가지고 계신 창조의 최상의 권능입니다.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받은 권능의 차원이 아닌 태초에 하나님께서 홀로 계실 때 발하던 근본의 빛으로부터 나오는 권능이지요.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경우입니다(요 11장).
우리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온 영으로서 무한한 영의 지식을 채우면 권능의 4단계를 넘어선 신의 차원에서 베풀어지는 권능, 곧 창조의 최상의 권능의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온전히 이루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와 같이 놀라운 창조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일어나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라!” 명하면 그 즉시 일어나 걷고 뛰며, 이미 썩어서 냄새나는 상처 부위도 순간에 새롭게 소생하지요. 이는 태초에 홀로 계시던 하나님의 빛과 소리로 역사 되기 때문입니다.
빛 안에 담긴 무한한 창조의 능력을 소리로 발하는 순간에 이미 생명선을 넘어 버린 경우나 권능의 4단계 빛으로 치료받지 못한 경우도 치료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권능의 단계를 써넣으세요.
① 황금빛으로 역사하며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천기를 움직인다.
( )
② 흰빛(무색)으로 역사하며 모든 표적과 창조의 역사가 따른다.
( )
③ 성령의 불로 역사하며 병균, 바이러스에 의해 생긴 질병을 치료한다.
( )
④ 푸른 빛으로 역사하며 어둠의 세력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한다.
( )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사도 바울
신약시대 예수님 다음으로 큰 권능을 행했다.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앉은뱅이를 향해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명하자, 그가 뛰고 걸었다(행 14장). 이를 본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가리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멜리데 섬에서는 독사에게 물려도 아무 이상이 없자 원주민들이 그를 신으로 여겼다. 성결된 사도 바울이 온전한 선과 사랑을 이루니 사람들이 신이라고 할 정도로 놀라운 권능을 행하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이신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밝히 알아 이를 사모하며 권능으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게 한다.
시편 62편 11절에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말씀합니다. 누군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을 행한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권능의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의 어두운 세력들이 떠날 수밖에 없으며 갖가지 인생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지요. 이러한 권능은 단계별로 빛이 다르고 역사도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권능의 차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권능을 동일하게 생각하지만 각각 그 의미가 다릅니다. 먼저, 능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권세란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 있고 영광스러운 힘을 나타내지요.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입니다. 따라서 성결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적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러면 권능이란 무엇일까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한 사람에게 입혀 주는 권세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가령, 운전자가 차를 몰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교통 경찰관은 차를 세울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처럼 권세와 능력은 다르며 이 두 가지를 겸한 경우를 권능이라 말합니다.
2. 신유의 은사와 권능의 차이점
신유의 은사와 권능의 역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병 고치는 은사, 곧 신유의 은사는 주로 균에 의해 생긴 질병을 치료합니다. 신체가 퇴화했거나 신경 세포가 손상되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치료할 수 없지요. 하지만 권능을 받으면 이 모든 것을 능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권능은 한 번 받으면 항상 나타나지만, 신유의 은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유의 은사는 온전히 성결되지 않았다 해도 영혼을 사랑해 많은 기도를 쌓았거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영광을 위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며 합당치 않게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거두시지요.
반면 권능은 성결을 이루고 불같은 기도를 쌓은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에 한번 받으면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악이 없으니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기 유익을 좇아 사용하지 않지요. 성결을 이루면 오직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힘쓰며 주님의 마음을 더욱 닮아가기에 큰 역사도 베푸는 것입니다.
3. 빛이신 하나님의 권능 4단계
1단계 : 붉은빛으로, 성령의 불로 태우는 역사가 나타나는 권능입니다.
성령의 불은 온갖 병균이나 바이러스, 세균 등에 의해 생긴 갖가지 질병들을 태워서 치료합니다. 암, 폐병, 당뇨병, 백혈병, 신장병, 관절염, 심장병, 에이즈와 같은 질병을 치료하지요.
그러나 암 말기나 폐병 말기처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생명선을 넘어버리면 권능의 1단계에서 나오는 성령의 불로는 치료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의 기능을 상실했을 경우는 새롭게 창조해야 하므로 더 큰 권능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이런 경우라 해도 환자가 얼마나 믿음을 내보이고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믿음을 내보이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2단계 : 푸른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는 역사가 나타나는 권능입니다.
권능의 2단계에서 나오는 푸른 빛을 통해서는 주로 귀신 들린 사람, 사단의 역사를 받는 사람에게서 어둠을 물리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어둠의 세력으로 인한 자폐증이나 정신이상, 노이로제, 신경쇠약 등 신경성 질병이 치료되지요.
표적이 따르기도 하는데, 이는 질병이나 약한 것이 귀신이나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비롯된 경우입니다. 약한 것이란 농아인이나 시각장애인과 같이 보지 못하고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경우, 소아마비 등과 같이 신체 기능이 마비되거나 퇴화한 것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니 그 아이가 온전케 되었지요.
또한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 뜻 가운데 다시 불러오거나 반대로 산 사람의 영혼을 거두어 가는 것도 권능의 2단계에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이 죽은 유두고를 살리고, 베드로가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저주하자 혼이 떠나며, 엘리사가 저주하니 42명의 악한 아이가 곰에게 죽임당한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행 20장, 5장 ; 왕하 2장).
3단계 : 흰빛(무색)으로, 창조의 역사가 따르는 권능입니다.
권능의 3단계에서 나오는 흰빛을 통해서는 모든 종류의 표적과 함께 창조의 역사가 따릅니다. 여기서 표적이란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소아마비나 뇌성마비가 온전해지는 등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외에도 나면서부터 기형이나 불구가 된 신체나 완전히 퇴화한 부분이 온전케 되는 것, 그리고 부스러진 뼈가 붙어서 정상이 되거나 없던 뼈가 생기고 끊어진 힘줄이 붙는 것 등도 권능의 3단계에서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따라서 권능의 3단계에서는 표적과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에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며, 썩었거나 완전히 기능을 잃었던 오장육부가 새롭게 창조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4단계 : 황금빛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가 따르는 권능의 완성입니다.
권능의 4단계에서 나오는 황금빛으로는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기에 천기를 움직이는 기사가 나타납니다. 무생물도 명하는 대로 순종하는 단계이므로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잔잔케 되었습니다. 바람과 바다와 같은 자연이나 무생물이라 해도 예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였지요(마 8장).
또한 권능의 4단계에서는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가 따릅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여인이 집에 돌아가 보니 이미 아이에게서 귀신이 나갔지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것도 만물이 예수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권능의 4단계 역사가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할 때 순식간에 멎었고, 연탄가스에 중독된 사람도 연탄가스가 물러가 후유증 없이 온전케 되었지요. 전신 3도 화상도 “화기야, 물러가라!” 명하니 즉시 물러갔고, 파키스탄에 있는 신시아는 셀리악 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시공을 초월하여 사진 기도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4. 창조의 최상의 권능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일들은 권능의 4단계보다 더 윗단계로 곧 창조주가 가지고 계신 창조의 최상의 권능입니다.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받은 권능의 차원이 아닌 태초에 하나님께서 홀로 계실 때 발하던 근본의 빛으로부터 나오는 권능이지요.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경우입니다(요 11장).
우리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온 영으로서 무한한 영의 지식을 채우면 권능의 4단계를 넘어선 신의 차원에서 베풀어지는 권능, 곧 창조의 최상의 권능의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온전히 이루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와 같이 놀라운 창조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일어나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라!” 명하면 그 즉시 일어나 걷고 뛰며, 이미 썩어서 냄새나는 상처 부위도 순간에 새롭게 소생하지요. 이는 태초에 홀로 계시던 하나님의 빛과 소리로 역사 되기 때문입니다.
빛 안에 담긴 무한한 창조의 능력을 소리로 발하는 순간에 이미 생명선을 넘어 버린 경우나 권능의 4단계 빛으로 치료받지 못한 경우도 치료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권능의 단계를 써넣으세요.
① 황금빛으로 역사하며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천기를 움직인다.
( )
② 흰빛(무색)으로 역사하며 모든 표적과 창조의 역사가 따른다.
( )
③ 성령의 불로 역사하며 병균, 바이러스에 의해 생긴 질병을 치료한다.
( )
④ 푸른 빛으로 역사하며 어둠의 세력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한다.
( )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사도 바울
신약시대 예수님 다음으로 큰 권능을 행했다.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앉은뱅이를 향해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명하자, 그가 뛰고 걸었다(행 14장). 이를 본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가리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멜리데 섬에서는 독사에게 물려도 아무 이상이 없자 원주민들이 그를 신으로 여겼다. 성결된 사도 바울이 온전한 선과 사랑을 이루니 사람들이 신이라고 할 정도로 놀라운 권능을 행하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었다.
2023-08-11
제32과빛
요한일서 1:5
읽을말씀 : 요한일서 1:5 | 외울말씀 : 요한일서 1:5 | 참고 말씀: 요한복음 1:1
교육목표 : 영적인 빛이 무엇인지 알아 어둠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한다.
빛에는 신비한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어둠을 밝혀 주며 따뜻하게 하고 몸에 해로운 세균과 곰팡이를 소멸시키며,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여 생명을 유지하도록 돕지요. 이처럼 우리가 볼 수 있는 육적인 빛이 존재하는가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빛도 실존합니다.
영적인 빛에서는 무한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캄캄한 밤에 빛이 비취면 어둠이 순간에 사라지듯이, 영적인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한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임하지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습니다.
1. 영적인 빛이란?
요한일서 1장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했고,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습니다. 바로 빛은 하나님 자체요, 진리, 선, 사랑 자체인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하셨습니다. 이때에는 어떤 형상을 입고 있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빛과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에서 우주를 품고 계셨지요.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이 온 우주를 감싸고 그 빛으로부터 청아하고 우렁찬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빛과 소리로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형상을 입으신 후 창조 사역을 시작하셨지요.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고 있으시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긴 빛과 소리로 존재하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빛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 선과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빛이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소리로 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란 성경에 기록된 선과 의, 사랑에 관한 모든 진리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만나려면 빛 가운데 행해야
성경에는 사랑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 등 “하라” 하신 것들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등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또한 미워하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등 “하지 말라”는 말씀들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등 “버리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며, 주님과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지키라” 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은 어둠에 거한다는 증거입니다.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지만 어둠의 세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므로 어둠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으려면 신속히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말씀한 대로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3.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사귐이 있는 것이 당연하듯이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만일 어둠에 있으면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거짓말입니다(요일 1:6).
여기서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 편에서 누구를 안다고 해서 그와 사귐이 있다 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서로 알고 서로 믿고 대화할 수 있는 친밀한 사이를 말합니다. 아무리 내 편에서 대통령에 대해 잘 안다 해도 대통령이 나를 모른다면 사귐이 있다 할 수 없지요. 사귐에도 얼굴만 아는 정도와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있고, 깊은 비밀까지 나누는 친밀한 관계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사귐이 되려면 하나님 편에서도 나를 알고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다면 병들고 연약하거나 가난할 리 없고 응답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실 정도로 하나님과 사귐이 깊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했지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나 전쟁에 나가 싸울 때도 “올라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하며 일일이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상세히 알려 주심으로 전쟁마다 승승장구했지요. 다윗이 하나님과 아름다운 사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4.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해 주셨지만 어두움을 좇는 사람들은 원수 마귀에 속하므로 빛을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빛을 싫어하고 대적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통해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지요.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감으로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 행하며, 설령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란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빛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고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받아 나감으로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고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미줄같이 얽히고설킨 문제라 해도 성령께서 친히 갈 길을 알려 주시니 막힐 것이 없고, 혹 장애물이 있더라도 능히 피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결을 이루고 빛으로 들어가면 하늘로서 지혜와 명철이 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늘 마음에 평강이 넘치고 기쁨이 샘솟지요. 어떤 사람과도 다투거나 불목하지 않고 사랑과 은혜가 넘칩니다. 영혼이 잘되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요삼 1:2), 나아가 만사형통의 축복은 물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권능까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5. 과연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신속히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어느 정도 악의 모양을 버렸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지요.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성장하여 장성한 아비의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있는 세세한 악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발견해 뽑아 버려야 합니다. 윗사람이 되고 권세가 생길수록 더욱 마음을 낮추며 소자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겸손히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하지요.
설령 상대가 내게 악을 행한다 해도 감정을 품지 않고 덕과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기 의 가운데 화평을 깨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스스로 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고한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며 그들이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더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여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입기 마련입니다. 범사에 형통함과 축복받고 온전히 성결되어 하나님 마음에 합하면 권능까지 받아 크게 쓰이게 되지요. 따라서 나는 얼마나 빛 가운데 행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는 참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쓰세요.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 )이시라 그에게는 ( )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한일서 1:5) “태초에 ( )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 )이시니라”(요한복음 1:1)
2. 다음 설명 중 맞지 않은 것을 고르세요.
① 하나님은 빛이시요, 진리, 선, 사랑 자체가 되신다.
②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면서 광활한 우주 공간에 빛과 소리로 계셨다.
③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말씀과 하나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다(요 1:1).
여기서 ‘태초에 계셨던 말씀’은 바로 근본의 빛 속에서 울려 나오는 근본의 소리를 뜻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소리’라는 형태보다 소리의 본질인 ‘말씀’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말씀이 내용이라면, 하나님은 그 내용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말씀이요, 그 말씀은 빛과 소리라는 형태로 근본의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교육목표 : 영적인 빛이 무엇인지 알아 어둠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한다.
빛에는 신비한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어둠을 밝혀 주며 따뜻하게 하고 몸에 해로운 세균과 곰팡이를 소멸시키며,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여 생명을 유지하도록 돕지요. 이처럼 우리가 볼 수 있는 육적인 빛이 존재하는가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빛도 실존합니다.
영적인 빛에서는 무한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캄캄한 밤에 빛이 비취면 어둠이 순간에 사라지듯이, 영적인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한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임하지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습니다.
1. 영적인 빛이란?
요한일서 1장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했고,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습니다. 바로 빛은 하나님 자체요, 진리, 선, 사랑 자체인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하셨습니다. 이때에는 어떤 형상을 입고 있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빛과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에서 우주를 품고 계셨지요.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이 온 우주를 감싸고 그 빛으로부터 청아하고 우렁찬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빛과 소리로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형상을 입으신 후 창조 사역을 시작하셨지요.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고 있으시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긴 빛과 소리로 존재하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빛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 선과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빛이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소리로 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란 성경에 기록된 선과 의, 사랑에 관한 모든 진리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만나려면 빛 가운데 행해야
성경에는 사랑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 등 “하라” 하신 것들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등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또한 미워하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등 “하지 말라”는 말씀들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등 “버리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며, 주님과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지키라” 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은 어둠에 거한다는 증거입니다.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지만 어둠의 세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므로 어둠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으려면 신속히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말씀한 대로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3.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사귐이 있는 것이 당연하듯이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만일 어둠에 있으면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거짓말입니다(요일 1:6).
여기서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 편에서 누구를 안다고 해서 그와 사귐이 있다 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서로 알고 서로 믿고 대화할 수 있는 친밀한 사이를 말합니다. 아무리 내 편에서 대통령에 대해 잘 안다 해도 대통령이 나를 모른다면 사귐이 있다 할 수 없지요. 사귐에도 얼굴만 아는 정도와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있고, 깊은 비밀까지 나누는 친밀한 관계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사귐이 되려면 하나님 편에서도 나를 알고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다면 병들고 연약하거나 가난할 리 없고 응답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실 정도로 하나님과 사귐이 깊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했지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나 전쟁에 나가 싸울 때도 “올라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하며 일일이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상세히 알려 주심으로 전쟁마다 승승장구했지요. 다윗이 하나님과 아름다운 사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4.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해 주셨지만 어두움을 좇는 사람들은 원수 마귀에 속하므로 빛을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빛을 싫어하고 대적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통해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지요.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감으로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 행하며, 설령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란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빛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고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받아 나감으로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고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미줄같이 얽히고설킨 문제라 해도 성령께서 친히 갈 길을 알려 주시니 막힐 것이 없고, 혹 장애물이 있더라도 능히 피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결을 이루고 빛으로 들어가면 하늘로서 지혜와 명철이 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늘 마음에 평강이 넘치고 기쁨이 샘솟지요. 어떤 사람과도 다투거나 불목하지 않고 사랑과 은혜가 넘칩니다. 영혼이 잘되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요삼 1:2), 나아가 만사형통의 축복은 물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권능까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5. 과연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신속히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어느 정도 악의 모양을 버렸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지요.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성장하여 장성한 아비의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있는 세세한 악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발견해 뽑아 버려야 합니다. 윗사람이 되고 권세가 생길수록 더욱 마음을 낮추며 소자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겸손히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하지요.
설령 상대가 내게 악을 행한다 해도 감정을 품지 않고 덕과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기 의 가운데 화평을 깨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스스로 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고한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며 그들이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더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여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입기 마련입니다. 범사에 형통함과 축복받고 온전히 성결되어 하나님 마음에 합하면 권능까지 받아 크게 쓰이게 되지요. 따라서 나는 얼마나 빛 가운데 행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는 참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쓰세요.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 )이시라 그에게는 ( )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한일서 1:5) “태초에 ( )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 )이시니라”(요한복음 1:1)
2. 다음 설명 중 맞지 않은 것을 고르세요.
① 하나님은 빛이시요, 진리, 선, 사랑 자체가 되신다.
②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면서 광활한 우주 공간에 빛과 소리로 계셨다.
③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말씀과 하나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다(요 1:1).
여기서 ‘태초에 계셨던 말씀’은 바로 근본의 빛 속에서 울려 나오는 근본의 소리를 뜻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소리’라는 형태보다 소리의 본질인 ‘말씀’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말씀이 내용이라면, 하나님은 그 내용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말씀이요, 그 말씀은 빛과 소리라는 형태로 근본의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2023-08-04
제31과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
디모데후서 2:20~21
읽을말씀 : 디모데후서 2:20~21 | 외울말씀 : 디모데후서 2:20~21 | 참고 말씀:예레미야 17:9 ; 요한일서 5:3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사랑받고 귀히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원래 그릇의 용도는 무언가를 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하신 것은 그 안에 하나님 사랑과 은혜, 진리의 말씀을 담을 수 있고 나아가 하나님 능력과 권세, 권능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 축복을 받아 영광 돌릴 수 있을까요?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아무리 많은 돌무더기 속에서도 보석은 반짝반짝 빛을 발하므로 금방 눈에 띕니다. 영적으로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하나님 눈에 띄기 마련이지요.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발견하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그에게 예비하신 각양 좋은 은사들과 축복을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고’, ‘귀히 여기시며’, ‘아름답다’고 인정하시는 그릇의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입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그릇이란 어떠한 사람을 말할까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큰 사명을 맡았으되 온전히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가령, 주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모세와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는 그릇은 보통 사람과 달리 정직하고 진실하며 정한 마음과 곧은 절개로 품격과 품위가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강대국 총리로 하나님 영광을 드러낸 요셉과 다니엘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그릇은 마음이 선해 아무 일에든지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을 구한 에스더나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린 아브라함과 같은 분들이지요.
2.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1) 마음을 깨끗게 하여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그릇이라고 해도 냄새나는 오물이 묻어 있으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깨끗이 씻은 후에야 가능하지요. 우리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각양의 은사들과 물질, 건강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고, 마태복음 15장 18~19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과 행동이 악으로 나오지 않으려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씻는 것은 영적인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했지요. 히브리서 10장 22절에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성경 66권 가운데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곧 “하지 말라”, “버리라” 한 대로 행하면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성들과 악성들이 버려지니 자연히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이처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면 자연히 몸의 행실도 거룩해지고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혹여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계명을 다 지켜 행할 수 있을까?’ 하고 힘들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절대 힘들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하는 일은 마냥 즐겁고 행복합니다. 힘들거나 어렵고 짜증 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 뜻을 위배하는 것이 더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2) 연단을 잘 받아 영적 빛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지나 목걸이를 만드는 원석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손에 연마된 후에는 아름답고 찬란한 보석으로 탄생하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육 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 때때로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무슨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즉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시련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과정을 잘 통과해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고 큰 축복이 임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19~20절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어 시험 환난을 겪는다면 이것은 축복을 위한 연단이 아닙니다. 죄로 인한 것이기에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깨우쳐 신속히 회개해야 어려움이 사라집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이미 깨끗한 그릇이 되었다 할지라도 때를 좇아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흠도 티도 없으신 거룩한 빛 자체이니 사랑하는 자녀들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빛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단련하십니다. 이러한 축복의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선과 사랑으로 채우면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빛의 강도가 커짐에 따라 그 권세와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납니다.
3.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때 임하는 축복
마가복음 9장 1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내쫓지 못한 귀신을 내쫓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라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니 즉시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한 것은 그들의 영적 빛과 예수님의 영적 빛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밝은 영적 빛의 차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악으로 악을 갚지 말며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연단 가운데서도 믿음과 선, 사랑과 의가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 귀신도 제어할 수 있고 어떠한 질병이나 연약함도 고칠 수 있습니다.
당회장님께서는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참으로 많은 연단을 받으셨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오해받아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랑으로 간구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통해 당회장님의 믿음과 사랑이 확증되자 예전보다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연단이 끝난 후 세계 선교의 문을 활짝 여시고 수만, 수십만 혹은 수백만이 넘는 인파가 모인 가운데 시공간을 초월한 권능으로 함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둘러 주시는 영적 빛은 이 세상의 어떤 빛보다 찬란하고 아름답습니다. 이 영적 빛으로 둘러싸인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성결을 이루며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2)
2. 다음 말씀 구절들의 공통으로 들어가는 단어를 쓰세요.
①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 )이라…”
② 마태복음 15:18~19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 )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③ 마태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 )도 있느니라”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에스더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에 귀환하지 않고 바사에 머물던 베냐민 지파 아비하일의 딸이다. 일찍 부모를 잃어 사촌 모르드개가 딸처럼 키웠다.
에스더는 와스디가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자 왕의 사랑과 은총을 입어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아각 사람 하만은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존경을표하는데 모르드개만 거부하자 여기에 분을 품고 유다인들을 멸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때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가 하만의 음모를 수포가 되게 하여 민족을 구한다.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사랑받고 귀히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원래 그릇의 용도는 무언가를 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하신 것은 그 안에 하나님 사랑과 은혜, 진리의 말씀을 담을 수 있고 나아가 하나님 능력과 권세, 권능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 축복을 받아 영광 돌릴 수 있을까요?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아무리 많은 돌무더기 속에서도 보석은 반짝반짝 빛을 발하므로 금방 눈에 띕니다. 영적으로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하나님 눈에 띄기 마련이지요.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발견하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그에게 예비하신 각양 좋은 은사들과 축복을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고’, ‘귀히 여기시며’, ‘아름답다’고 인정하시는 그릇의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입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그릇이란 어떠한 사람을 말할까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큰 사명을 맡았으되 온전히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가령, 주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모세와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는 그릇은 보통 사람과 달리 정직하고 진실하며 정한 마음과 곧은 절개로 품격과 품위가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강대국 총리로 하나님 영광을 드러낸 요셉과 다니엘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그릇은 마음이 선해 아무 일에든지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을 구한 에스더나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린 아브라함과 같은 분들이지요.
2.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1) 마음을 깨끗게 하여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그릇이라고 해도 냄새나는 오물이 묻어 있으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깨끗이 씻은 후에야 가능하지요. 우리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각양의 은사들과 물질, 건강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고, 마태복음 15장 18~19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과 행동이 악으로 나오지 않으려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씻는 것은 영적인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했지요. 히브리서 10장 22절에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성경 66권 가운데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곧 “하지 말라”, “버리라” 한 대로 행하면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성들과 악성들이 버려지니 자연히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이처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면 자연히 몸의 행실도 거룩해지고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혹여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계명을 다 지켜 행할 수 있을까?’ 하고 힘들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절대 힘들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하는 일은 마냥 즐겁고 행복합니다. 힘들거나 어렵고 짜증 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 뜻을 위배하는 것이 더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2) 연단을 잘 받아 영적 빛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지나 목걸이를 만드는 원석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손에 연마된 후에는 아름답고 찬란한 보석으로 탄생하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육 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 때때로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무슨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즉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시련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과정을 잘 통과해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고 큰 축복이 임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19~20절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어 시험 환난을 겪는다면 이것은 축복을 위한 연단이 아닙니다. 죄로 인한 것이기에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깨우쳐 신속히 회개해야 어려움이 사라집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이미 깨끗한 그릇이 되었다 할지라도 때를 좇아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흠도 티도 없으신 거룩한 빛 자체이니 사랑하는 자녀들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빛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단련하십니다. 이러한 축복의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선과 사랑으로 채우면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빛의 강도가 커짐에 따라 그 권세와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납니다.
3.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때 임하는 축복
마가복음 9장 1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내쫓지 못한 귀신을 내쫓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라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니 즉시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한 것은 그들의 영적 빛과 예수님의 영적 빛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밝은 영적 빛의 차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악으로 악을 갚지 말며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연단 가운데서도 믿음과 선, 사랑과 의가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 귀신도 제어할 수 있고 어떠한 질병이나 연약함도 고칠 수 있습니다.
당회장님께서는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참으로 많은 연단을 받으셨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오해받아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랑으로 간구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통해 당회장님의 믿음과 사랑이 확증되자 예전보다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연단이 끝난 후 세계 선교의 문을 활짝 여시고 수만, 수십만 혹은 수백만이 넘는 인파가 모인 가운데 시공간을 초월한 권능으로 함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둘러 주시는 영적 빛은 이 세상의 어떤 빛보다 찬란하고 아름답습니다. 이 영적 빛으로 둘러싸인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성결을 이루며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2)
2. 다음 말씀 구절들의 공통으로 들어가는 단어를 쓰세요.
①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 )이라…”
② 마태복음 15:18~19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 )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③ 마태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 )도 있느니라”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에스더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에 귀환하지 않고 바사에 머물던 베냐민 지파 아비하일의 딸이다. 일찍 부모를 잃어 사촌 모르드개가 딸처럼 키웠다.
에스더는 와스디가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자 왕의 사랑과 은총을 입어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아각 사람 하만은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존경을표하는데 모르드개만 거부하자 여기에 분을 품고 유다인들을 멸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때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가 하만의 음모를 수포가 되게 하여 민족을 구한다.
2023-07-28
제30과주님을 믿는다는 것
히브리서 12:1~2
읽을말씀 : 히브리서 12:1~2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2:2 | 참고 말씀: 레위기 25:23~28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구세주 되시는 자격 조건과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참된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고 하지만 왜 예수님만이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구원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인데도 사람들이 그 영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참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중 한 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결코 사람과 동격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흘러 이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원수 마귀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을 받아 그만 그 실과를 먹고 말았지요. 그리하여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 하신 대로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에 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원수 마귀에 속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롬 6:16).
이처럼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죄를 범했으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후손인 모든 인류가 죄성을 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했으니, 영계에서도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망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요, 이 죽음은 영원한 형벌 곧 지옥을 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이 헐리고 누구든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되었지요.
2.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아 첫 사람 아담이 누렸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의 토지 무르기 법칙입니다. 이는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어도 근족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레 25:23~28). 천하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아담에게 넘겨받은 권세를 원수 마귀 사단이 영영히 소유할 수는 없었지요. 아담의 죄를 대속할 만한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되돌려 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예수님을 만세 전에 예비하시고 비밀스럽게 감추어 두셨습니다. 그러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넘겨준 권세를 토지 무르기 법에 따라 어떻게 되돌려 받을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구세주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람이어야 합니다. 레위기 25장 25절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했습니다. 아담이 넘겨준 권세를 되찾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하지요.
고린도전서 15장 21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했습니다. 즉 사망이 사람인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니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합니다(요 1:14).
둘째,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죄를 대속하려면 죄인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예는 구세주의 조건에 합당치 않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남녀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마 1:18). 그러니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죄가 없으십니다.
셋째, 힘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가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을 때 그것을 무르려면 부요해 무를 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레 25:26~27). 아무리 마음은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빚을 갚아 줄 수가 없습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므로 원죄가 없고 말씀대로 사셨기에 자범죄도 없으셨습니다. 이처럼 죄가 없기 때문에 어둠의 권세를 굴복시키며 사망까지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넷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의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춰도 사랑이 없으면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형이 아무리 대부호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빚더미에 앉은 동생을 도와주지 않지요. 만일 예수님께서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을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이 있으셨기에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므로 저주받아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율법의 저주에서 놓이게 하려면 예수님께서 대신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지요.
또한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습니다. 피는 생명과 일체요,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기에 예수님께서 흠 없는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3.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진리로 변화되는 것
주님의 십자가 고난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질병, 연약함, 가난 등 온갖 저주에서도 놓인 바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셔서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쓰셔서 우리 생각을 통해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셔서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 섭리를 바로 알고 마음 중심에서 믿는 사람이라면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응답받지 못하고 시험 환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믿는다고 하지만 참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죄를 버리지 않고 진리로 변화되지 않지요.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락을 즐기는가 하면 아예 지키지 않습니다. 또 십일조가 아까워 일부만 드리거나 아예 드리지 않지요. 이는 하나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니(말 3:8) 어찌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남의 잘못을 용서치 않고 되갚아 주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원망하고 탄식하지요.
주님을 진정 믿는다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악한 말을 내던 입술에서 선한 말로, 불평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며 주변에 은혜를 끼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악을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지요. 따라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참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주님만 바라보심으로 증인 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을 쓰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힘이 있어야 한다.)
넷째, ( )
2. 죄인은 지옥으로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다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롬 6:23)
3. 주님을 믿고 진리로 변화된 자기 모습을 적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십일조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식 규례로 드리기 시작한 것은 출애굽 이후부터이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정식 규례로 정해지기 전 미리 주관 받아 하나님께 드렸다. 십일조는 하나님 일에, 영혼 구원하는 데 쓰였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며, 구원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분야이다.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구세주 되시는 자격 조건과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참된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고 하지만 왜 예수님만이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구원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인데도 사람들이 그 영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참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중 한 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결코 사람과 동격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흘러 이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원수 마귀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을 받아 그만 그 실과를 먹고 말았지요. 그리하여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 하신 대로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에 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원수 마귀에 속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롬 6:16).
이처럼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죄를 범했으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후손인 모든 인류가 죄성을 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했으니, 영계에서도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망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요, 이 죽음은 영원한 형벌 곧 지옥을 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이 헐리고 누구든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되었지요.
2.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아 첫 사람 아담이 누렸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의 토지 무르기 법칙입니다. 이는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어도 근족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레 25:23~28). 천하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아담에게 넘겨받은 권세를 원수 마귀 사단이 영영히 소유할 수는 없었지요. 아담의 죄를 대속할 만한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되돌려 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예수님을 만세 전에 예비하시고 비밀스럽게 감추어 두셨습니다. 그러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넘겨준 권세를 토지 무르기 법에 따라 어떻게 되돌려 받을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구세주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람이어야 합니다. 레위기 25장 25절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했습니다. 아담이 넘겨준 권세를 되찾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하지요.
고린도전서 15장 21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했습니다. 즉 사망이 사람인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니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합니다(요 1:14).
둘째,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죄를 대속하려면 죄인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예는 구세주의 조건에 합당치 않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남녀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마 1:18). 그러니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죄가 없으십니다.
셋째, 힘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가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을 때 그것을 무르려면 부요해 무를 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레 25:26~27). 아무리 마음은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빚을 갚아 줄 수가 없습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므로 원죄가 없고 말씀대로 사셨기에 자범죄도 없으셨습니다. 이처럼 죄가 없기 때문에 어둠의 권세를 굴복시키며 사망까지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넷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의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춰도 사랑이 없으면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형이 아무리 대부호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빚더미에 앉은 동생을 도와주지 않지요. 만일 예수님께서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을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이 있으셨기에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므로 저주받아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율법의 저주에서 놓이게 하려면 예수님께서 대신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지요.
또한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습니다. 피는 생명과 일체요,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기에 예수님께서 흠 없는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3.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진리로 변화되는 것
주님의 십자가 고난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질병, 연약함, 가난 등 온갖 저주에서도 놓인 바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셔서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쓰셔서 우리 생각을 통해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셔서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 섭리를 바로 알고 마음 중심에서 믿는 사람이라면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응답받지 못하고 시험 환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믿는다고 하지만 참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죄를 버리지 않고 진리로 변화되지 않지요.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락을 즐기는가 하면 아예 지키지 않습니다. 또 십일조가 아까워 일부만 드리거나 아예 드리지 않지요. 이는 하나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니(말 3:8) 어찌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남의 잘못을 용서치 않고 되갚아 주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원망하고 탄식하지요.
주님을 진정 믿는다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악한 말을 내던 입술에서 선한 말로, 불평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며 주변에 은혜를 끼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악을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지요. 따라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참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주님만 바라보심으로 증인 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을 쓰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힘이 있어야 한다.)
넷째, ( )
2. 죄인은 지옥으로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다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롬 6:23)
3. 주님을 믿고 진리로 변화된 자기 모습을 적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십일조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식 규례로 드리기 시작한 것은 출애굽 이후부터이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정식 규례로 정해지기 전 미리 주관 받아 하나님께 드렸다. 십일조는 하나님 일에, 영혼 구원하는 데 쓰였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며, 구원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분야이다.
2023-07-21
제29과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히브리서 11:3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3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1:3 | 참고 말씀: 마가복음 9:23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 삶 속에서도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어느 날 벙어리 귀신 들려 고통받는 아들을 둔 아비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하실 수 있거든” 귀신을 쫓아달라고 간청했지요. 이때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며 참믿음을 깨우쳐 주십니다(막 9:23). 우리가 참믿음을 소유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으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인가?
먼저,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의 저자이십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했습니다.
66권으로 이루어진 성경은 약 1,600년간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에 의해 쓰였는데도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짝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시대마다 합당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직접 계시하신 것이므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마다 약속하신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만들어진 시점이 있고 역사도 그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어떻게 존재하게 되셨는지 시작이 있어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시작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상상으로 지어내거나 손으로 조각한 우상과는 달리 영원 전부터 계신 참 신이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출 3:14). 만일 누군가 하나님을 낳거나 지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완전한 분이 되실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요 1:1 ; 창 1:1).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무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지요. 사람 역시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음 받았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이 땅에서 경작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시대마다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기사와 표적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증거가 있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권능의 역사입니다.
2. 성경 상의 하나님 권능이 오늘날도 나타나
성경을 보면 놀라운 권능의 역사가 수없이 나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태양이 운행을 멈추거나 뒤로 물러가기도 하지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먹지 못할 쓴물이 먹을 수 있는 단물로 바뀌며, 반석을 치니 물이 솟아났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각종 질병이 치료되며,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승리하기도 했지요.
권능의 역사는 성경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의 역사를 합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그대로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1982년 개척 이래 하나님 권능의 역사가 무수히 나타났습니다. 각종 암을 비롯해 결핵, 당뇨병, 뇌성마비, 디스크, 에이즈, 문둥병, 백혈병 등 불치, 난치병이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온전케 되고, 소아마비나 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기도 받고 그 자리에서 걷고 뛰었습니다. 또한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기도 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흉터 없이 깨끗해졌지요. 뇌출혈이나 혹은 급체, 연탄가스 중독으로 의식이 없고 경직된 사람들이 기도 받은 즉시 깨어나고 회복하였습니다.
이미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 기도 받고 살아나며,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 받고 잉태해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무수합니다. 더구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온전해져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한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고, 강렬한 햇볕을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고,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믿음으로 움직여지는 것을 개척 후 지금까지 체험했습니다. 매년 7, 8월 전국에 태풍이나 장마로 많은 비가 내려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고 맑았지요.
하늘에서 수많은 잠자리가 내려와 모기를 소탕해 주고,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맑은 하늘에서 지금도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원형 무지개를 비롯해 각종 희한한 무지개로 그 모양도 다양하지요. 또한 여러 가지 오로라 형상이 휴대폰에 찍히도록 하심으로 천국 소망을 더해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갔던 것처럼, 당회장님께서 기도해 주신 권능의 손수건을 통해서도 수많은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시공을 초월해 사진이나 이름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도 치료와 응답받는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지요.
3. 권능을 체험하려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만, 누구나 권능을 체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믿음의 행함을 내보여야 가능하지요.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입니다. 그런데 권능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소문을 듣고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이스라엘로 찾아와 마침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지요.
나아만은 아람 왕의 신임을 받는 권세 있는 장관입니다. 그는 엘리사에게 치료받기 위해 귀한 예물을 가득 싣고 찾아왔지요.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만 전합니다. 순간 나아만은 기분이 상해 돌아가려 했지만, 그의 종들이 권면하여 결국 요단강물에 일곱 번 몸을 잠갔지요. 그러자 문둥병이 발한 몸이 이내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해졌습니다.
여기서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요단강물에 몸을 잠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죄를 씻음 받았다는 의미이지요. 또한 일곱은 완전수이므로 일곱 번 잠갔다는 것은 온전히 죄 사함 받은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응답받고자 한다면 나아만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은 것처럼 죄악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단순히 입술로만 “잘못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통회자복 해야 하지요(욜 2:13). 그럴 때 마음에 기쁨이 샘솟으며 질병이나 어떤 문제든지 해결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나아만처럼 치료와 응답을 받으려면 끝까지 믿음을 내보여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응답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 직접 나와야 하지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져야 권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 정신이상자나 귀신 들린 경우는 부모나 가족이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대신 나오면 됩니다.
응답받을 만한 사람들에게서는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가득합니다. 입술의 말도 믿음의 고백을 하며 현실을 보고 낙망하지 않지요.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한 대로 응답받은 줄 믿고 기뻐하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응답받을 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니 빛 가운데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변화되고자 힘쓰지요.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며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해 주십니다.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의 저자이시다.
②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③ 나아만은 이스라엘 군대 장관이다.
④ 나아만이 요단강에 일곱 번 잠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죄를 온전히 씻음 받았다는 의미이다.
2. 우리 교회에서는 어떠한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는지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아람
구약시대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 북동쪽에 있던 근접 국가이다.
아람 사람들은 셈족으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작은 도시 국가를 이루며 널리 퍼져 살았다. 사사시대에 아람은 이스라엘을 학대하며 괴롭혔다(삿 10:8). 아람의 수도였던 다메섹은 다윗 왕 때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으며, 솔로몬 왕 때에는 아람 왕국 성읍 중 하나인 아람소바의 르손에게 정복당했다. 그리고 르손이 죽은 후 앗수르, 바벨론, 바사, 로마 제국 등에 의해 정복당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 삶 속에서도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어느 날 벙어리 귀신 들려 고통받는 아들을 둔 아비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하실 수 있거든” 귀신을 쫓아달라고 간청했지요. 이때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며 참믿음을 깨우쳐 주십니다(막 9:23). 우리가 참믿음을 소유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으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인가?
먼저,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의 저자이십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했습니다.
66권으로 이루어진 성경은 약 1,600년간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에 의해 쓰였는데도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짝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시대마다 합당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직접 계시하신 것이므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마다 약속하신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만들어진 시점이 있고 역사도 그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어떻게 존재하게 되셨는지 시작이 있어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시작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상상으로 지어내거나 손으로 조각한 우상과는 달리 영원 전부터 계신 참 신이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출 3:14). 만일 누군가 하나님을 낳거나 지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완전한 분이 되실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요 1:1 ; 창 1:1).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무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지요. 사람 역시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음 받았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이 땅에서 경작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시대마다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기사와 표적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증거가 있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권능의 역사입니다.
2. 성경 상의 하나님 권능이 오늘날도 나타나
성경을 보면 놀라운 권능의 역사가 수없이 나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태양이 운행을 멈추거나 뒤로 물러가기도 하지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먹지 못할 쓴물이 먹을 수 있는 단물로 바뀌며, 반석을 치니 물이 솟아났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각종 질병이 치료되며,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승리하기도 했지요.
권능의 역사는 성경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의 역사를 합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그대로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1982년 개척 이래 하나님 권능의 역사가 무수히 나타났습니다. 각종 암을 비롯해 결핵, 당뇨병, 뇌성마비, 디스크, 에이즈, 문둥병, 백혈병 등 불치, 난치병이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온전케 되고, 소아마비나 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기도 받고 그 자리에서 걷고 뛰었습니다. 또한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기도 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흉터 없이 깨끗해졌지요. 뇌출혈이나 혹은 급체, 연탄가스 중독으로 의식이 없고 경직된 사람들이 기도 받은 즉시 깨어나고 회복하였습니다.
이미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 기도 받고 살아나며,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 받고 잉태해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무수합니다. 더구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온전해져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한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고, 강렬한 햇볕을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고,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믿음으로 움직여지는 것을 개척 후 지금까지 체험했습니다. 매년 7, 8월 전국에 태풍이나 장마로 많은 비가 내려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고 맑았지요.
하늘에서 수많은 잠자리가 내려와 모기를 소탕해 주고,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맑은 하늘에서 지금도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원형 무지개를 비롯해 각종 희한한 무지개로 그 모양도 다양하지요. 또한 여러 가지 오로라 형상이 휴대폰에 찍히도록 하심으로 천국 소망을 더해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갔던 것처럼, 당회장님께서 기도해 주신 권능의 손수건을 통해서도 수많은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시공을 초월해 사진이나 이름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도 치료와 응답받는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지요.
3. 권능을 체험하려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만, 누구나 권능을 체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믿음의 행함을 내보여야 가능하지요.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입니다. 그런데 권능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소문을 듣고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이스라엘로 찾아와 마침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지요.
나아만은 아람 왕의 신임을 받는 권세 있는 장관입니다. 그는 엘리사에게 치료받기 위해 귀한 예물을 가득 싣고 찾아왔지요.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만 전합니다. 순간 나아만은 기분이 상해 돌아가려 했지만, 그의 종들이 권면하여 결국 요단강물에 일곱 번 몸을 잠갔지요. 그러자 문둥병이 발한 몸이 이내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해졌습니다.
여기서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요단강물에 몸을 잠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죄를 씻음 받았다는 의미이지요. 또한 일곱은 완전수이므로 일곱 번 잠갔다는 것은 온전히 죄 사함 받은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응답받고자 한다면 나아만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은 것처럼 죄악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단순히 입술로만 “잘못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통회자복 해야 하지요(욜 2:13). 그럴 때 마음에 기쁨이 샘솟으며 질병이나 어떤 문제든지 해결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나아만처럼 치료와 응답을 받으려면 끝까지 믿음을 내보여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응답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 직접 나와야 하지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져야 권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 정신이상자나 귀신 들린 경우는 부모나 가족이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대신 나오면 됩니다.
응답받을 만한 사람들에게서는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가득합니다. 입술의 말도 믿음의 고백을 하며 현실을 보고 낙망하지 않지요.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한 대로 응답받은 줄 믿고 기뻐하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응답받을 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니 빛 가운데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변화되고자 힘쓰지요.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며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해 주십니다.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의 저자이시다.
②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③ 나아만은 이스라엘 군대 장관이다.
④ 나아만이 요단강에 일곱 번 잠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죄를 온전히 씻음 받았다는 의미이다.
2. 우리 교회에서는 어떠한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는지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아람
구약시대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 북동쪽에 있던 근접 국가이다.
아람 사람들은 셈족으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작은 도시 국가를 이루며 널리 퍼져 살았다. 사사시대에 아람은 이스라엘을 학대하며 괴롭혔다(삿 10:8). 아람의 수도였던 다메섹은 다윗 왕 때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으며, 솔로몬 왕 때에는 아람 왕국 성읍 중 하나인 아람소바의 르손에게 정복당했다. 그리고 르손이 죽은 후 앗수르, 바벨론, 바사, 로마 제국 등에 의해 정복당했다.
2023-07-14
제28과나의 믿음은
히브리서 11:1~3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1~3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1:1 | 참고 말씀: 로마서 9:3
교육목표 : 참믿음을 소유하여 항상 입술에 선한 말을 내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들을 사랑하며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이 있으면 천국과 지옥을 보지 않고도 마치 보고 만진 듯이 확신 가운데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큰 믿음이 있으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권능을 나타내어 영광 돌릴 수 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순전한 정금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믿음인지요, 아니면 도금된 금속처럼 겉으로만 그럴듯한 믿음인지요? 세 가지 분야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1. 입술을 지키는 분야
다윗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위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자기 허물을 가리기 위해 충성스러운 부하를 의도적으로 죽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아들 압살롬의 반역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아들을 피해 도망할 때의 일입니다. 시므이라는 백성이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하며 다윗에게 심한 저주와 모욕을 하였습니다(삼하 16:7~8).
이러한 시므이의 말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사울 왕의 죽음은 자기 죄악 때문이었지 다윗과는 상관없습니다. 또한 다윗이 겪는 어려움은 하나님께 저주나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었지요. 잘못은 이미 회개하여 용서받았지만, 공의 가운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이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을 저주한 것은 사형감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많은 백성과 용사들이 있어서 얼마든지 시므이를 처치할 수 있었지만,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는 용사들을 만류했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그가 저주하게 그냥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주신 연단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낮아진 것입니다.
반면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는 전혀 달랐습니다. 베냐민 지파 사울 왕의 일족으로 사울이 죽자 마치 다윗의 탓처럼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여호와의 이름까지 망령되이 일컬으며 다윗에게 분풀이했지요. 남의 고통을 보고 긍휼히 여기기는커녕 온갖 악을 쏟아냈습니다. 그의 근본이 얼마나 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입술을 가졌습니까? 시므이처럼 누가 애매한 말로 비난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데 이 사람까지 왜 이러나!” 하며 짜증을 내거나 독한 말로 상대를 찌르지는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믿음이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더구나 시므이처럼 자기 악 속에서 상대를 판단 정죄하고 저주하는 입술이라면 믿음이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지요. 정녕 참믿음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2. 영혼 사랑의 분야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받아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치고 귀부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냈지요. 전쟁이나 사람의 생사화복도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이뤄졌습니다. 그 밖에도 독이 든 음식을 해독하기도 하고 물에 빠진 도끼가 떠오르게 하는 등 참으로 신기한 일들을 많이 행했습니다. 이는 엘리사가 스스로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승인 엘리야를 통해 받은 권능이지요. 그래서 큰 권능을 행하기는 했지만, 엘리사의 마음은 사도 바울의 마음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길을 가는데 수많은 아이가 엘리사를 쫓아다니며 조롱하고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이에 견디다 못한 엘리사가 저주하자 수풀에서 암곰이 나와 악한 아이 중 42명을 죽였지요(왕하 2:24). 엘리사도 자기 입술의 권세가 크다는 사실을 알기에 처음에는 못 들은 척 피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십 명이 계속 쫓아다니며 심하게 괴롭히자 견디지 못하고 저주하고 만 것입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라면 이런 상황에 어찌했을까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은 엘리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40여 명의 유대인들이 있는가 하면, 복음을 전파하는 곳마다 훼방하며 죽이려고 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어느 때는 죽었다 할 정도로 돌에 맞기도 했고 매도 수없이 맞았으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요.
이처럼 숱한 고난과 위협을 받을 때도 바울은 그들에게 한 마디 저주의 말을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했지요. 유대인들이 아무리 자신을 핍박해도 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지옥에 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혼을 향한 사랑은 어떤지요? 어떠한 마음으로 양 떼들을 대하며 사명을 감당했는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마음 중심에서 영혼들을 사랑하며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참된 일꾼이라 인정해 주시며 기뻐하십니다.
3. 순종의 분야
요셉은 17세에 이복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 13년간 갖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으로 있을 때도 정직과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했고, 죄없이 감옥에 갇혀서도 억울하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렸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과 섭리에 한결같은 믿음으로 순종했지요.
자신을 죽이려 하고 타국에 종으로 팔았던 형님들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을 좇아 선대 했습니다. 복수하고 싶은데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어쩔 수 없이 용서한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용서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가령, 교구에서 행사가 있는데 한 지역이 양보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에 처음에는 순순히 양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행사 때마다 자기 지역이 양보해 줘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지역만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졌지요. 나름대로 열심히 섬기고 낮아지려고 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니 힘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일꾼이라면 일시적으로 행함으로만 섬기고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리의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처음에 순종하려던 마음이 시간이 흐르자, 자기 생각에 안 맞고 힘드니까 변질하였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다고도 볼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과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으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으십니다.
사울 왕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거듭 불순종해 결국 버림받고 말았지요.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해 사람은 물론 짐승들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좋은 짐승과 왕을 살려 끌고 온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지요. 자신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공격했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을 사로잡아 온 것에 대해 사무엘 선지자가 지적할 때도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하지요(삼상 15:1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조금은 내 생각에 맞춰 바꾸고 약간은 내 유익에 맞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요셉과 같은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사울 왕처럼 내 생각에 맞춰 변질시켜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가는 마음은 없는지 자신을 면밀히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나는 누구일까요? ( ) 안에 정답을 쓰세요.
①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갔으나 낙심하지 않고 정직과 성실로 행했습니다. 죄없이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섭리에 한결같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 )
②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해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나 보기에 좋은 짐승과 왕을 살려서 끌고 왔습니다. ( )
③ 아이들이 쫓아다니며 너무 심하게 조롱하므로 저주의 말을 내자 수풀에서 암곰이 나와 42명의 아이를 죽였습니다. ( )
④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도망갈 때 일개 백성인 시므이가 심하게 저주와 모욕을 했어도 결코 악한 말을 내지 않았습니다. ( )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압살롬
다윗의 아들인 그에 대해 성경은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했다(삼하 14:25).
압살롬은 누이 다말을 범한 이복형제 암논을 살해한 후 다윗을 피해 도피 생활을 했다. 요압 장군의 중재로 아버지 다윗과 화해했지만, 나중에 대적해 반란을 일으켰다(삼하 15:1~12). 후에 압살롬은 다윗 군과 싸우다가 도망하던 중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요압에게 죽임을 당한다(삼하 18장).
교육목표 : 참믿음을 소유하여 항상 입술에 선한 말을 내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들을 사랑하며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이 있으면 천국과 지옥을 보지 않고도 마치 보고 만진 듯이 확신 가운데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큰 믿음이 있으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권능을 나타내어 영광 돌릴 수 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순전한 정금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믿음인지요, 아니면 도금된 금속처럼 겉으로만 그럴듯한 믿음인지요? 세 가지 분야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1. 입술을 지키는 분야
다윗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위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자기 허물을 가리기 위해 충성스러운 부하를 의도적으로 죽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아들 압살롬의 반역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아들을 피해 도망할 때의 일입니다. 시므이라는 백성이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하며 다윗에게 심한 저주와 모욕을 하였습니다(삼하 16:7~8).
이러한 시므이의 말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사울 왕의 죽음은 자기 죄악 때문이었지 다윗과는 상관없습니다. 또한 다윗이 겪는 어려움은 하나님께 저주나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었지요. 잘못은 이미 회개하여 용서받았지만, 공의 가운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이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을 저주한 것은 사형감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많은 백성과 용사들이 있어서 얼마든지 시므이를 처치할 수 있었지만,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는 용사들을 만류했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그가 저주하게 그냥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주신 연단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낮아진 것입니다.
반면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는 전혀 달랐습니다. 베냐민 지파 사울 왕의 일족으로 사울이 죽자 마치 다윗의 탓처럼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여호와의 이름까지 망령되이 일컬으며 다윗에게 분풀이했지요. 남의 고통을 보고 긍휼히 여기기는커녕 온갖 악을 쏟아냈습니다. 그의 근본이 얼마나 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입술을 가졌습니까? 시므이처럼 누가 애매한 말로 비난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데 이 사람까지 왜 이러나!” 하며 짜증을 내거나 독한 말로 상대를 찌르지는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믿음이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더구나 시므이처럼 자기 악 속에서 상대를 판단 정죄하고 저주하는 입술이라면 믿음이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지요. 정녕 참믿음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2. 영혼 사랑의 분야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받아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치고 귀부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냈지요. 전쟁이나 사람의 생사화복도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이뤄졌습니다. 그 밖에도 독이 든 음식을 해독하기도 하고 물에 빠진 도끼가 떠오르게 하는 등 참으로 신기한 일들을 많이 행했습니다. 이는 엘리사가 스스로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승인 엘리야를 통해 받은 권능이지요. 그래서 큰 권능을 행하기는 했지만, 엘리사의 마음은 사도 바울의 마음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길을 가는데 수많은 아이가 엘리사를 쫓아다니며 조롱하고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이에 견디다 못한 엘리사가 저주하자 수풀에서 암곰이 나와 악한 아이 중 42명을 죽였지요(왕하 2:24). 엘리사도 자기 입술의 권세가 크다는 사실을 알기에 처음에는 못 들은 척 피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십 명이 계속 쫓아다니며 심하게 괴롭히자 견디지 못하고 저주하고 만 것입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라면 이런 상황에 어찌했을까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은 엘리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40여 명의 유대인들이 있는가 하면, 복음을 전파하는 곳마다 훼방하며 죽이려고 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어느 때는 죽었다 할 정도로 돌에 맞기도 했고 매도 수없이 맞았으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요.
이처럼 숱한 고난과 위협을 받을 때도 바울은 그들에게 한 마디 저주의 말을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했지요. 유대인들이 아무리 자신을 핍박해도 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지옥에 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혼을 향한 사랑은 어떤지요? 어떠한 마음으로 양 떼들을 대하며 사명을 감당했는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마음 중심에서 영혼들을 사랑하며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참된 일꾼이라 인정해 주시며 기뻐하십니다.
3. 순종의 분야
요셉은 17세에 이복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 13년간 갖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으로 있을 때도 정직과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했고, 죄없이 감옥에 갇혀서도 억울하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렸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과 섭리에 한결같은 믿음으로 순종했지요.
자신을 죽이려 하고 타국에 종으로 팔았던 형님들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을 좇아 선대 했습니다. 복수하고 싶은데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어쩔 수 없이 용서한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용서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가령, 교구에서 행사가 있는데 한 지역이 양보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에 처음에는 순순히 양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행사 때마다 자기 지역이 양보해 줘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지역만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졌지요. 나름대로 열심히 섬기고 낮아지려고 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니 힘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일꾼이라면 일시적으로 행함으로만 섬기고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리의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처음에 순종하려던 마음이 시간이 흐르자, 자기 생각에 안 맞고 힘드니까 변질하였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다고도 볼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과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으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으십니다.
사울 왕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거듭 불순종해 결국 버림받고 말았지요.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해 사람은 물론 짐승들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좋은 짐승과 왕을 살려 끌고 온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지요. 자신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공격했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을 사로잡아 온 것에 대해 사무엘 선지자가 지적할 때도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하지요(삼상 15:1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조금은 내 생각에 맞춰 바꾸고 약간은 내 유익에 맞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요셉과 같은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사울 왕처럼 내 생각에 맞춰 변질시켜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가는 마음은 없는지 자신을 면밀히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나는 누구일까요? ( ) 안에 정답을 쓰세요.
①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갔으나 낙심하지 않고 정직과 성실로 행했습니다. 죄없이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섭리에 한결같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 )
②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해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나 보기에 좋은 짐승과 왕을 살려서 끌고 왔습니다. ( )
③ 아이들이 쫓아다니며 너무 심하게 조롱하므로 저주의 말을 내자 수풀에서 암곰이 나와 42명의 아이를 죽였습니다. ( )
④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도망갈 때 일개 백성인 시므이가 심하게 저주와 모욕을 했어도 결코 악한 말을 내지 않았습니다. ( )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압살롬
다윗의 아들인 그에 대해 성경은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했다(삼하 14:25).
압살롬은 누이 다말을 범한 이복형제 암논을 살해한 후 다윗을 피해 도피 생활을 했다. 요압 장군의 중재로 아버지 다윗과 화해했지만, 나중에 대적해 반란을 일으켰다(삼하 15:1~12). 후에 압살롬은 다윗 군과 싸우다가 도망하던 중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요압에게 죽임을 당한다(삼하 18장).
2023-07-07
제27과교회의 이상적인 모델, 초대교회
사도행전 2:42~47
읽을말씀 : 사도행전 2:42~47 | 외울말씀 : 사도행전 2:46 | 참고 말씀: 요한복음 4:48 ; 고린도전서 4:20
교육목표 : 어떤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한 초대교회 성도들을 본받게 한다.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 약 2천 년 동안, 이 땅에는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중에 주님의 뜻에 가장 합당하게 사역한 교회가 바로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 받은 제자들과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초대교회입니다. 당시 큰 핍박 속에서도 폭발적인 부흥을 이뤄 온 초대교회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전 세계를 복음화하는 데 초석이 됐습니다. 오늘날에도 초대교회를 닮은 교회가 있다면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초대교회 특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절에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했습니다. 기사와 표적이란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일들로서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일어날 수 있는 역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오랜 가뭄 중에 비를 오게 하고 태풍의 진로를 바꾸거나 소멸시키는 일입니다. 또 죽은 자를 살리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을 듣게 하며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는 등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기사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만인에게 증거할 수 있지요. 그럴 때 불신자나 믿음이 적은 사람도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과 지식이 발달하고 죄와 불법이 성한 시대에는 더욱 이러한 기사와 표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한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당시에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당시 성도들은 늘 성령 충만함 가운데 살았으며, 오직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날 수 있었지요. 더욱이 당시에는 사도들이 친히 치리했습니다.
‘사도’란 영적으로 자기 의사가 없고 마음을 다해 오직 주인의 뜻을 받들어 순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사도’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성결되어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을 받아 위로부터 능력 받고 권능도 행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 날로 믿음이 성장했고, 주의 종이 아닐지라도 스데반, 빌립 집사처럼 권능을 행하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자신이 체험한 성령의 역사를 널리 전파했고, 교회는 부흥에 부흥을 거듭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능력은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여러분도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주님의 사도로서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나누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했습니다. 이는 성도 간에 얼마나 영적인 사랑이 풍성했는지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형제자매이기에 그들은 내 것, 네 것 없이 주님의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목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천국 소망으로 뜨거웠고 이 땅에 물질을 쌓아 두려는 욕심이 없었기에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며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오늘날은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그러니 초대교회와 같은 성도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면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 안에서 한 형제라는 가족 의식이 돈독해지고 물질에 대한 욕심도 쉽게 버릴 수가 있지요. 삶 속에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면 많은 영혼이 그 행함을 보고 주님 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재산과 소유를 서로 나누며 통용했다는 것은 단지 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내 의견만 옳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교회 안에 어떤 대립이나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지 않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상대의 형편을 돌아보아 서로 섬기고 나누며 화평을 이룰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3.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했습니다. 여기서 떡이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떡을 뗀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서 마음에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로부터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이를 위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지요. 이렇게 모이기에 힘쓰며 불같이 기도해 능력을 받으니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도하고 충성 봉사해 이 땅에서 축복받고 하늘나라에도 상급을 쌓아갔습니다.
오늘날은 많은 교회가 점점 모이기를 폐하고 있습니다. 새벽예배가 사라진 교회도 있지요. 히브리서 10장 24~25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한 말씀처럼 교회는 모이고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고 기도의 불이 항상 활활 타오를 때 성령이 운행하는 교회, 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의 칭송을 받으므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했다는 것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천국 소망이 가득함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니 주변 사람에게 칭송받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많은 영혼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때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인이야. 나도 하나님을 믿고 싶다.” 하며 칭송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많은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하나님 뜻을 좇아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부흥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한 대로 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썼지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도 지극히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므로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영혼의 축복, 건강이나 물질, 가정의 축복 등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와 같이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불같이 기도하며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권능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초대교회의 특징을 써 보세요.
2.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적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스데반 집사’와 ‘빌립 집사’
스데반 집사
: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 교회에서 구제 사역을 맡을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민간에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으며 공회 앞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악한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하는데, 이때 자신을 돌로 치는 이들을 위해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기도를 올렸다.
빌립 집사
: 스데반 집사와 마찬가지로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다.
스데반 순교 이후 교회에 큰 박해가 있자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많은 표적과 능력을 행했으며,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다. 네 명의 예언하는 딸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신실하며 자녀를 진리 안에서 잘 양육했는지를 말해 준다.
교육목표 : 어떤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한 초대교회 성도들을 본받게 한다.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 약 2천 년 동안, 이 땅에는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중에 주님의 뜻에 가장 합당하게 사역한 교회가 바로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 받은 제자들과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초대교회입니다. 당시 큰 핍박 속에서도 폭발적인 부흥을 이뤄 온 초대교회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전 세계를 복음화하는 데 초석이 됐습니다. 오늘날에도 초대교회를 닮은 교회가 있다면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초대교회 특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절에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했습니다. 기사와 표적이란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일들로서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일어날 수 있는 역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오랜 가뭄 중에 비를 오게 하고 태풍의 진로를 바꾸거나 소멸시키는 일입니다. 또 죽은 자를 살리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을 듣게 하며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는 등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기사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만인에게 증거할 수 있지요. 그럴 때 불신자나 믿음이 적은 사람도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과 지식이 발달하고 죄와 불법이 성한 시대에는 더욱 이러한 기사와 표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한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당시에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당시 성도들은 늘 성령 충만함 가운데 살았으며, 오직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날 수 있었지요. 더욱이 당시에는 사도들이 친히 치리했습니다.
‘사도’란 영적으로 자기 의사가 없고 마음을 다해 오직 주인의 뜻을 받들어 순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사도’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성결되어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을 받아 위로부터 능력 받고 권능도 행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 날로 믿음이 성장했고, 주의 종이 아닐지라도 스데반, 빌립 집사처럼 권능을 행하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자신이 체험한 성령의 역사를 널리 전파했고, 교회는 부흥에 부흥을 거듭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능력은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여러분도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주님의 사도로서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나누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했습니다. 이는 성도 간에 얼마나 영적인 사랑이 풍성했는지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형제자매이기에 그들은 내 것, 네 것 없이 주님의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목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천국 소망으로 뜨거웠고 이 땅에 물질을 쌓아 두려는 욕심이 없었기에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며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오늘날은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그러니 초대교회와 같은 성도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면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 안에서 한 형제라는 가족 의식이 돈독해지고 물질에 대한 욕심도 쉽게 버릴 수가 있지요. 삶 속에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면 많은 영혼이 그 행함을 보고 주님 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재산과 소유를 서로 나누며 통용했다는 것은 단지 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내 의견만 옳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교회 안에 어떤 대립이나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지 않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상대의 형편을 돌아보아 서로 섬기고 나누며 화평을 이룰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3.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했습니다. 여기서 떡이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떡을 뗀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서 마음에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로부터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이를 위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지요. 이렇게 모이기에 힘쓰며 불같이 기도해 능력을 받으니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도하고 충성 봉사해 이 땅에서 축복받고 하늘나라에도 상급을 쌓아갔습니다.
오늘날은 많은 교회가 점점 모이기를 폐하고 있습니다. 새벽예배가 사라진 교회도 있지요. 히브리서 10장 24~25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한 말씀처럼 교회는 모이고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고 기도의 불이 항상 활활 타오를 때 성령이 운행하는 교회, 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의 칭송을 받으므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했다는 것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천국 소망이 가득함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니 주변 사람에게 칭송받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많은 영혼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때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인이야. 나도 하나님을 믿고 싶다.” 하며 칭송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많은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하나님 뜻을 좇아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부흥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한 대로 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썼지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도 지극히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므로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영혼의 축복, 건강이나 물질, 가정의 축복 등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와 같이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불같이 기도하며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권능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초대교회의 특징을 써 보세요.
2.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적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스데반 집사’와 ‘빌립 집사’
스데반 집사
: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 교회에서 구제 사역을 맡을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민간에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으며 공회 앞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악한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하는데, 이때 자신을 돌로 치는 이들을 위해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기도를 올렸다.
빌립 집사
: 스데반 집사와 마찬가지로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다.
스데반 순교 이후 교회에 큰 박해가 있자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많은 표적과 능력을 행했으며,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다. 네 명의 예언하는 딸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신실하며 자녀를 진리 안에서 잘 양육했는지를 말해 준다.
2023-06-30
제26과맥추절을 지키라
출애굽기 23:14~18
읽을말씀 : 출애굽기 23:14~18 | 외울말씀 : 출애굽기 23:16 | 참고 말씀: 신명기 16:9~12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해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지요.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첫 열매는 밀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보리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 밀 추수가 시작되지요.
맥추(麥秋)절은 이렇게 밀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으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부릅니다(출 34:22).
칠칠절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므로 붙여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 강림 역사가 나타났으므로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후반기 첫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그동안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월 첫 주일에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에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 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민수기 28장 26~31절에는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 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 분지 이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십 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했습니다.
특별히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첫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을 소제로(레 23:17) 드렸습니다. 이와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렸지요.
여기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뜻합니다. 나아가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해져야 함을 나타내지요.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곡식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심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됨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 다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고 구원과 영생을 얻었지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 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 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 분지 일을 섞어서 드림 : 민 28:5~6)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습니다(민 28:26~3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감사예물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해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6~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지요.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말씀하셨지요(막 12:44).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립니다. 때로는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며,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하지요.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지요.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했습니다. 따라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해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며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에 감사하며 특별히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천국을 소망하며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하며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도의 응답은 물론 아름다운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혹여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그 사랑 하나만으로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호흡하고 걸을 수 있으며 심지어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며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때로 고난과 연단을 만난다 해도 진정 감사함으로 받으면 자신을 발견하고 영으로 변화되는 축복의 시간이 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습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 보며 더욱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맥추절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 )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이다.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이므로 ( )이라고도 하며,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 )이라 불리기도 한다.
2. 항상 ( )하라 쉬지 말고 ( )하라 범사에 ( )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 )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3. 여러분은 맥추절을 어떠한 정성과 마음으로 준비하고 계시는지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하신 말씀대로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주일 예배를 드릴 때 한 주간 지켜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예물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해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지요.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첫 열매는 밀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보리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 밀 추수가 시작되지요.
맥추(麥秋)절은 이렇게 밀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으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부릅니다(출 34:22).
칠칠절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므로 붙여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 강림 역사가 나타났으므로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후반기 첫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그동안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월 첫 주일에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에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 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민수기 28장 26~31절에는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 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 분지 이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십 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했습니다.
특별히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첫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을 소제로(레 23:17) 드렸습니다. 이와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렸지요.
여기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뜻합니다. 나아가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해져야 함을 나타내지요.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곡식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심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됨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 다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고 구원과 영생을 얻었지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 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 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 분지 일을 섞어서 드림 : 민 28:5~6)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습니다(민 28:26~3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감사예물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해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6~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지요.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말씀하셨지요(막 12:44).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립니다. 때로는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며,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하지요.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지요.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했습니다. 따라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해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며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에 감사하며 특별히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천국을 소망하며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하며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도의 응답은 물론 아름다운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혹여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그 사랑 하나만으로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호흡하고 걸을 수 있으며 심지어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며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때로 고난과 연단을 만난다 해도 진정 감사함으로 받으면 자신을 발견하고 영으로 변화되는 축복의 시간이 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습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 보며 더욱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맥추절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 )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이다.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이므로 ( )이라고도 하며,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 )이라 불리기도 한다.
2. 항상 ( )하라 쉬지 말고 ( )하라 범사에 ( )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 )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3. 여러분은 맥추절을 어떠한 정성과 마음으로 준비하고 계시는지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하신 말씀대로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주일 예배를 드릴 때 한 주간 지켜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예물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