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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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0
제3과영적인 사랑의 중요성
고전 13:1~3
읽을말씀 : 고전 13:1~3 | 외울말씀 : 골 3:23 ㅣ 참고 말씀:고린도전서 2:6~8
교육목표 : 영적인 사랑의 중요성과 어떻게 하면 마음 안에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는지 알아본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께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고 묻습니다. 만일 율법대로 하면 예수님을 사랑이 없다 할 것이고, 용서하라 하면 율법을 무시한다고 정죄할 것이 뻔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바닥에 그들에게 해당되는 죄목을 하나하나 써내려 갔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목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 자리를 떠났고 여인만 남았지요. 예수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영적인 사랑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영적인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여기서 '사람의 방언'이란 방언의 은사가 아닌 영어, 일어, 불어 등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의미합니다. 또한 '천사의 말'이란 매우 아름다운 말을 뜻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고운 말을 할 때 "천사같이 말한다."고 하지요.
영적인 사랑이 담긴 말에는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지만 사랑이 없는 말은 아무리 유창하고 아름답게 해도 참 기쁨과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가볍고 속이 비어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리나 꽹과리처럼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묵직한 쇠나 구리는 두드려도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구리나 꽹과리가 소리를 낸다면 속이 비었거나 가볍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영적인 사랑이 없으면 쭉정이와 같습니다.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 차서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가 될 때라야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알곡으로서 가치가 있지요. "무슨 말로 상대에게 힘이 될까?", "어떻게 하면 진리로 나오게 할까?" 기도하며, 한마디를 해도 상대에게 생명을 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씀으로 무조건 상대를 설득시키려 하거나 지적하여 자기 생각에 맞지 않고 거슬리는 부분을 고치려 듭니다. 설령 그 말이 백 번 옳아도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상대를 변화시키거나 참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 내 의와 틀 속에 하지는 않는지, 그 말이 생명을 살리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 어떤 유창한 말보다 영적인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가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예언'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받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은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말하는 것이지요.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여기서 '예언하는 능'이란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은사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진리 안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장차 일어날 일을 알아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주님께서 강림하시면 구원받은 사람은 휴거되어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7년 환난을 겪고 백보좌 대심판 후 지옥에 갈 것을 알고 선포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예언하는 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비밀'이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의 도'를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섭리로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비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하여 사망으로 갈 것을 아시고 만세 전에 구세주가 되실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섭리를 성취하기까지 하나님은 비밀로 붙이셨습니다. 구원의 섭리가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이 방해하여 성취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2:6∼8).
원수 마귀 사단은 예수님을 죽이면 아담의 범죄로 넘겨받은 권세를 영원히 가질 줄 알고 악한 사람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임으로 도리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만들었지요. 이처럼 놀라운 비밀을 알아도 사랑이 없어 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지식'이란 단지 학문적인 것만이 아니라, 성경에 담긴 진리의 지식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알았다면 만나고 체험하여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는 데 그칠 뿐, 그 지식이 남을 판단 정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니 영적인 사랑이 없는 지식 역시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실 때 잠시 따라 걸었습니다. 당시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것도, 죄를 버리고 마음의 할례를 한 것도 아니므로 영적인 사랑이 임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생명의 위협이 오자 예수님을 부인하였지요.
이처럼 체험적인 신앙으로 믿음은 성장할 수 있지만 영적인 사랑은 죄를 버리려는 노력과 헌신, 희생이 따를 때 임합니다. 그렇다고 믿음과 사랑이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기에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지요. 그러나 사랑을 이루려는 행함이 없으면 아무리 충성해도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형식적으로 구제하는 사람은 칭찬받을수록 마음이 높아지게 마련입니다. 자신을 의롭다 착각하여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니 결국 아무 유익이 없으며 자신에게 해만 되지요. 그러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구제는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마 6:3~4).
희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는 것은 완전히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생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만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습니다. 즉 실컷 수고해 놓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과 정성, 시간, 물질을 다해 일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합니다. 열심 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어쩜 저럴 수 있지?" 판단합니다. 이런 마음이면 자신도 힘들고 주변 사람과 화평을 깨니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있는데 어떻게 사랑 없는 희생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이는 중심에서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하나님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농부가 자기 밭의 일을 할 때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남의 일을 할 때는 그 마음가짐이 다르지요.
마찬가지로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처럼 형식적으로 일하고, 당장 대가를 받지 못하면 불평이 나옵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영적인 사랑이 없는 사람이 구제하고 희생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니 상급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참된 희생을 하려면 무엇보다 마음에 영적인 사랑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알아주든 몰라주든 묵묵히 헌신합니다. 마치 초가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듯 아낌없이 자신을 내줍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도 참사랑으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 생명이 다하기까지 그분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에도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올리셨지요.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어떤 욕심이나 거짓이 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영광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사랑에 관한 말씀을 고르시오.
① 고린도전서 13:1~3 ② 골로새서 3:23~24 ③ 사도행전 13:3 ④ 누가복음 17:10
2. 믿음은 있는데 어떻게 사랑 없는 희생이 나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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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믿음과 사랑은 비례할까요? 다르다면 왜 그런지 이유를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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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계시'와 '예언'의 차이는?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앞으로 되어질 일을 받은 것을 말한다. 예언은 계시받은 내용을 선포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목표 : 영적인 사랑의 중요성과 어떻게 하면 마음 안에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는지 알아본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께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고 묻습니다. 만일 율법대로 하면 예수님을 사랑이 없다 할 것이고, 용서하라 하면 율법을 무시한다고 정죄할 것이 뻔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바닥에 그들에게 해당되는 죄목을 하나하나 써내려 갔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목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 자리를 떠났고 여인만 남았지요. 예수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영적인 사랑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영적인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여기서 '사람의 방언'이란 방언의 은사가 아닌 영어, 일어, 불어 등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의미합니다. 또한 '천사의 말'이란 매우 아름다운 말을 뜻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고운 말을 할 때 "천사같이 말한다."고 하지요.
영적인 사랑이 담긴 말에는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지만 사랑이 없는 말은 아무리 유창하고 아름답게 해도 참 기쁨과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가볍고 속이 비어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리나 꽹과리처럼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묵직한 쇠나 구리는 두드려도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구리나 꽹과리가 소리를 낸다면 속이 비었거나 가볍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영적인 사랑이 없으면 쭉정이와 같습니다.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 차서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가 될 때라야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알곡으로서 가치가 있지요. "무슨 말로 상대에게 힘이 될까?", "어떻게 하면 진리로 나오게 할까?" 기도하며, 한마디를 해도 상대에게 생명을 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씀으로 무조건 상대를 설득시키려 하거나 지적하여 자기 생각에 맞지 않고 거슬리는 부분을 고치려 듭니다. 설령 그 말이 백 번 옳아도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상대를 변화시키거나 참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 내 의와 틀 속에 하지는 않는지, 그 말이 생명을 살리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 어떤 유창한 말보다 영적인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가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예언'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받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은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말하는 것이지요.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여기서 '예언하는 능'이란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은사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진리 안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장차 일어날 일을 알아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주님께서 강림하시면 구원받은 사람은 휴거되어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7년 환난을 겪고 백보좌 대심판 후 지옥에 갈 것을 알고 선포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예언하는 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비밀'이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의 도'를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섭리로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비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하여 사망으로 갈 것을 아시고 만세 전에 구세주가 되실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섭리를 성취하기까지 하나님은 비밀로 붙이셨습니다. 구원의 섭리가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이 방해하여 성취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2:6∼8).
원수 마귀 사단은 예수님을 죽이면 아담의 범죄로 넘겨받은 권세를 영원히 가질 줄 알고 악한 사람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임으로 도리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만들었지요. 이처럼 놀라운 비밀을 알아도 사랑이 없어 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지식'이란 단지 학문적인 것만이 아니라, 성경에 담긴 진리의 지식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알았다면 만나고 체험하여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는 데 그칠 뿐, 그 지식이 남을 판단 정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니 영적인 사랑이 없는 지식 역시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실 때 잠시 따라 걸었습니다. 당시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것도, 죄를 버리고 마음의 할례를 한 것도 아니므로 영적인 사랑이 임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생명의 위협이 오자 예수님을 부인하였지요.
이처럼 체험적인 신앙으로 믿음은 성장할 수 있지만 영적인 사랑은 죄를 버리려는 노력과 헌신, 희생이 따를 때 임합니다. 그렇다고 믿음과 사랑이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기에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지요. 그러나 사랑을 이루려는 행함이 없으면 아무리 충성해도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형식적으로 구제하는 사람은 칭찬받을수록 마음이 높아지게 마련입니다. 자신을 의롭다 착각하여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니 결국 아무 유익이 없으며 자신에게 해만 되지요. 그러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구제는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마 6:3~4).
희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는 것은 완전히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생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만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습니다. 즉 실컷 수고해 놓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과 정성, 시간, 물질을 다해 일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합니다. 열심 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어쩜 저럴 수 있지?" 판단합니다. 이런 마음이면 자신도 힘들고 주변 사람과 화평을 깨니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있는데 어떻게 사랑 없는 희생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이는 중심에서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하나님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농부가 자기 밭의 일을 할 때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남의 일을 할 때는 그 마음가짐이 다르지요.
마찬가지로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처럼 형식적으로 일하고, 당장 대가를 받지 못하면 불평이 나옵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영적인 사랑이 없는 사람이 구제하고 희생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니 상급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참된 희생을 하려면 무엇보다 마음에 영적인 사랑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알아주든 몰라주든 묵묵히 헌신합니다. 마치 초가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듯 아낌없이 자신을 내줍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도 참사랑으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 생명이 다하기까지 그분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에도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올리셨지요.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어떤 욕심이나 거짓이 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영광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사랑에 관한 말씀을 고르시오.
① 고린도전서 13:1~3 ② 골로새서 3:23~24 ③ 사도행전 13:3 ④ 누가복음 17:10
2. 믿음은 있는데 어떻게 사랑 없는 희생이 나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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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믿음과 사랑은 비례할까요? 다르다면 왜 그런지 이유를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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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계시'와 '예언'의 차이는?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앞으로 되어질 일을 받은 것을 말한다. 예언은 계시받은 내용을 선포하는 것을 말한다.
2012-01-13
제2과영적인 사랑과 육적인 사랑
고전 13:4~7
읽을말씀 : 고전 13:4~7 | 외울말씀 : 고전 13:13 ㅣ 참고 말씀:삼상 18:1~4
교육목표 :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사랑과 자기 유익에 따라 변질되는 육적인 사랑에 대해 알아본다.
한 케이블 방송에서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만약 결혼을 다시 한다면 지금의 배우자를 다시 선택하겠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결과는 다시 결혼하겠다는 사람은 겨우 4%에 불과했습니다.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을 텐데 왜 그 마음이 변한 것일까요? 바로 영적인 사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사랑이란 무엇인지 육적인 사랑과 비교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영적인 사랑이란?
사전에 보면 '사랑'을 아끼고 위하며 한없이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을 말한다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더 차원 높은 영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곧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기쁨과 소망과 생명을 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함이 없는 사랑이지요.
성경에 보면 다윗과 요나단이 이런 영적인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아들입니다. 그는 다윗이 물맷돌로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신이 임한 용사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자신도 군대를 이끄는 장수였기에 그의 용맹함이 흠모되었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아끼고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어떠한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지요.
그래서 사무엘상 18장 1~4절에 보면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했지요.
요나단은 사울 왕의 장남으로서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후계자였지만 그는 사심이나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왕이라는 직책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이 왕위를 지키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을 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구해 주었지요. 이러한 사랑이 죽을 때까지 한결같았습니다.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자 다윗은 식음을 폐하고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왕위에 오른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사울의 재산을 모두 돌려주고 왕궁에서 자신의 아들처럼 돌봐 주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사랑은 비록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해가 될지라도 생명이 다하기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나에게 잘해 준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조건 없이 순수하게 자기를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한결같이 줄 수 있는 사랑입니다.
2. 우리를 향한 하나님과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
혹여 여러분은 영적인 사랑과 반대되는 육적인 사랑 때문에 마음의 괴로움을 겪어 본 적이 있습니까? 쉽게 변하고 마는 사랑에 아파하고 외로워할 때 우리를 위로하고 친구가 되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시지요. 주님은 아무 죄와 허물이 없는데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멸시를 받으셨기에 누구보다 우리 마음을 잘 아십니다. 하늘 영광을 뒤로 하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의 길을 가심으로 우리의 참된 위로자가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참된 사랑을 주셨지요.
우리는 가까이에 계신 당회장님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회장님은 하나님을 영접하기 전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가난한 삶을 사셨습니다. 7년간 계속된 투병생활 끝에 남은 것이라고는 병든 몸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뿐이었지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고, 철저히 외면당하고 멸시받은 인생이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이 죽음의 문턱에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회장님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단번에 모든 질병을 치료받아 새 생명을 얻었지요. 그 후 주님은 당회장님의 전부가 되셨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사역에 전념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은 값없는 사랑이지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와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잘 나와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요한일서 4장 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갖 아름답고 값진 것들로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시고 하루를 천 년같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지요. 조금만 마음을 열어도 하나님의 섬세하고 풍성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육적인 사랑
자신에게 잘해 주고, 유익이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악한 사람도 그렇게 합니다. 겉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나 실제로는 참이 아닌 가짜 사랑을 하는 것이지요. 이는 시간이 흐르면 변질되어 조그만 일에도 쉽게 깨지는 육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세월이 흐르고 상황과 조건이 달라지면 변해 버립니다.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쉽게 변하지요. 상대에게 내가 먼저 받아야 주고 자신에게 유익이 되어야 베풀게 됩니다.
이처럼 내가 준 만큼 상대에게서 받기 원하고, 상대가 주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모두 육적인 사랑이지요.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정성을 다해 자녀를 뒷바라지하면서도 힘들다 하지 않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먹고 입는 것보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 한편에는 대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깔려 있지요. 진정 사랑한다면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녀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유익과 영광을 위해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거나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자녀를 이끌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가 진로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부모의 뜻과 다르면 반대하며 서운해하지요. 결국 자녀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 대가를 바라는 조건적인 사랑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떨까요?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부모가 늙고 병들면 무시하고 귀찮아합니다.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떨어져 계신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한 번 여쭙는 것도 어렵습니다. 내 자녀, 내 생활이 중심적이고 점점 부모님에게서는 무관심해집니다. 더구나 재산이나 돈을 요구해서 거절당하면 미워하고 심하면 부모를 죽이는 패륜적인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친구 간에 사랑은 어떻습니까?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급히 돈이 필요하다며 친구에게 목돈을 부탁하거나 담보를 서 달라고 합니다. 만일 친구가 거절하면 배신감을 느끼며 사이가 소원해지고 말지요.
정말 사랑하는 친구였다면 상대에게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만약 부도가 나면 담보를 서 준 친구와 가족들은 고통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 말씀에 믿음의 형제간에 돈거래나 담보, 보증 서는 일을 금하셨는데 불순종할 경우 사단의 역사가 따르고 망하기 십상이지요. 이렇게 육적인 사랑은 자신의 실리를 따지고 유익이 없으면 멀리하고 맙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육적인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
2. 육적인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
3. 여러분은 부모와 자녀, 형제, 친구, 성도 간에 영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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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물맷돌'이란?
가죽이나 천 조각에 돌멩이를 넣고 돌리다가 과녁을 향해 돌이 날아가게 하는 기구다. 물매는 목자들이나 군인들의 무기로 사용하였다. 다윗은 물매로 골리앗을 물리쳤으며 베냐민 지파 중에서 택한 700명의 왼손잡이 병사들은 물매 사용에 능한 자들이었다(삿 20:16).
교육목표 :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사랑과 자기 유익에 따라 변질되는 육적인 사랑에 대해 알아본다.
한 케이블 방송에서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만약 결혼을 다시 한다면 지금의 배우자를 다시 선택하겠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결과는 다시 결혼하겠다는 사람은 겨우 4%에 불과했습니다.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을 텐데 왜 그 마음이 변한 것일까요? 바로 영적인 사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사랑이란 무엇인지 육적인 사랑과 비교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영적인 사랑이란?
사전에 보면 '사랑'을 아끼고 위하며 한없이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을 말한다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더 차원 높은 영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곧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기쁨과 소망과 생명을 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함이 없는 사랑이지요.
성경에 보면 다윗과 요나단이 이런 영적인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아들입니다. 그는 다윗이 물맷돌로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신이 임한 용사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자신도 군대를 이끄는 장수였기에 그의 용맹함이 흠모되었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아끼고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어떠한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지요.
그래서 사무엘상 18장 1~4절에 보면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했지요.
요나단은 사울 왕의 장남으로서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후계자였지만 그는 사심이나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왕이라는 직책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이 왕위를 지키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을 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구해 주었지요. 이러한 사랑이 죽을 때까지 한결같았습니다.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자 다윗은 식음을 폐하고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왕위에 오른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사울의 재산을 모두 돌려주고 왕궁에서 자신의 아들처럼 돌봐 주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사랑은 비록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해가 될지라도 생명이 다하기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나에게 잘해 준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조건 없이 순수하게 자기를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한결같이 줄 수 있는 사랑입니다.
2. 우리를 향한 하나님과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
혹여 여러분은 영적인 사랑과 반대되는 육적인 사랑 때문에 마음의 괴로움을 겪어 본 적이 있습니까? 쉽게 변하고 마는 사랑에 아파하고 외로워할 때 우리를 위로하고 친구가 되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시지요. 주님은 아무 죄와 허물이 없는데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멸시를 받으셨기에 누구보다 우리 마음을 잘 아십니다. 하늘 영광을 뒤로 하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의 길을 가심으로 우리의 참된 위로자가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참된 사랑을 주셨지요.
우리는 가까이에 계신 당회장님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회장님은 하나님을 영접하기 전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가난한 삶을 사셨습니다. 7년간 계속된 투병생활 끝에 남은 것이라고는 병든 몸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뿐이었지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고, 철저히 외면당하고 멸시받은 인생이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이 죽음의 문턱에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회장님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단번에 모든 질병을 치료받아 새 생명을 얻었지요. 그 후 주님은 당회장님의 전부가 되셨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사역에 전념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은 값없는 사랑이지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와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잘 나와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요한일서 4장 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갖 아름답고 값진 것들로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시고 하루를 천 년같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지요. 조금만 마음을 열어도 하나님의 섬세하고 풍성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육적인 사랑
자신에게 잘해 주고, 유익이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악한 사람도 그렇게 합니다. 겉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나 실제로는 참이 아닌 가짜 사랑을 하는 것이지요. 이는 시간이 흐르면 변질되어 조그만 일에도 쉽게 깨지는 육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세월이 흐르고 상황과 조건이 달라지면 변해 버립니다.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쉽게 변하지요. 상대에게 내가 먼저 받아야 주고 자신에게 유익이 되어야 베풀게 됩니다.
이처럼 내가 준 만큼 상대에게서 받기 원하고, 상대가 주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모두 육적인 사랑이지요.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정성을 다해 자녀를 뒷바라지하면서도 힘들다 하지 않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먹고 입는 것보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 한편에는 대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깔려 있지요. 진정 사랑한다면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녀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유익과 영광을 위해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거나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자녀를 이끌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가 진로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부모의 뜻과 다르면 반대하며 서운해하지요. 결국 자녀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 대가를 바라는 조건적인 사랑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떨까요?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부모가 늙고 병들면 무시하고 귀찮아합니다.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떨어져 계신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한 번 여쭙는 것도 어렵습니다. 내 자녀, 내 생활이 중심적이고 점점 부모님에게서는 무관심해집니다. 더구나 재산이나 돈을 요구해서 거절당하면 미워하고 심하면 부모를 죽이는 패륜적인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친구 간에 사랑은 어떻습니까?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급히 돈이 필요하다며 친구에게 목돈을 부탁하거나 담보를 서 달라고 합니다. 만일 친구가 거절하면 배신감을 느끼며 사이가 소원해지고 말지요.
정말 사랑하는 친구였다면 상대에게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만약 부도가 나면 담보를 서 준 친구와 가족들은 고통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 말씀에 믿음의 형제간에 돈거래나 담보, 보증 서는 일을 금하셨는데 불순종할 경우 사단의 역사가 따르고 망하기 십상이지요. 이렇게 육적인 사랑은 자신의 실리를 따지고 유익이 없으면 멀리하고 맙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육적인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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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적인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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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러분은 부모와 자녀, 형제, 친구, 성도 간에 영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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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물맷돌'이란?
가죽이나 천 조각에 돌멩이를 넣고 돌리다가 과녁을 향해 돌이 날아가게 하는 기구다. 물매는 목자들이나 군인들의 무기로 사용하였다. 다윗은 물매로 골리앗을 물리쳤으며 베냐민 지파 중에서 택한 700명의 왼손잡이 병사들은 물매 사용에 능한 자들이었다(삿 20:16).
2012-01-06
제1과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눅 5:36~39
읽을말씀 : 눅 5:36~39 | 외울말씀 : 엡 4:24 l 참고 말씀:고후 5:17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새 포도주와 새 부대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의 마음을 닮게 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용으로서 주 안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뜻을 잘 모른 채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해를 맞아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물론, 마음의 할례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새 포도주'와 '묵은 포도주'의 영적 의미
누가복음 5장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말씀합니다. 낡고 오래된 가죽은 신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여 결국 터지고 맙니다. 하지만 새 부대는 신축성이 좋기 때문에 그럴 염려가 없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무엇을 깨우쳐 주시고자 하신 것일까요? 그 의미를 알기 위해 먼저, 새 포도주와 묵은 포도주가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 예수님은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고 말씀하시지요. 예수님이 포도나무라면 그 열매는 예수님이 이 땅에 사역하시면서 맺힌 모든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기사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신 모든 일들이 곧 포도나무의 열매들이지요. 또한 포도즙은 포도 열매를 짜낸 액으로, 영적으로는 예수님의 보혈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열매를 내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주시는 사랑으로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셨지요.
따라서 주님께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 신약이며, '새 포도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묵은 포도주'란 구약의 율법적인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기 전, 율법에 매인 삶의 방식이지요. 히브리서 10장 1절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신약은 본체요,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2. 새 포도주와 묵은 포도주의 차이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범죄하여 사함을 받으려면 짐승을 잡아 그 피로 행위적인 제사를 드렸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약의 율법적인 삶의 방식이 바로 묵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신 신약 시대에는 우리가 그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즉 새 포도주를 마심으로 구원받을 수가 있었지요.
그러면 구약의 묵은 포도주와 신약의 새 포도주의 차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이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었으니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셨냐고 반문하지요. 이에 예수님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하여 변함없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하시지 헤어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율법에 이혼을 규정하신 것은 인간의 변질되고 악한 마음 때문이셨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음행한 사실을 남편이 알고 도저히 용서가 안 되고 괴롭습니다. 이러한 상황일 때 함께 삶으로 인해 더 불행해져서는 안 되겠기에 모세의 율법에는 이혼해도 가하다고 규정해 놓았지요.
따라서 묵은 포도주는 하나님의 근본 뜻인 사랑보다는 율법적인 틀에 매인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남편이 아내의 허물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 안았다면 새 포도주를 마신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3. 묵은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들
누가복음 5장 39절에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가치가 높습니다. 수십 년, 수백 년 묵은 것일수록 비싸고 등급이 높은 상품으로 인정받지요. 세상에서 묵은 포도주를 귀히 여기는 것처럼 구약의 율법을 신약의 새 법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 당시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 외에도 다른 규칙까지 만들어 지켰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율법에다 부수적인 규칙들을 만들어 지켰지요. 즉 안식일에는 음식을 만들 불도 피워서도 안 되고, 몇 킬로미터 이상은 여행하면 안 되며, 무거운 물건을 운반해도 안 된다는 등 여러 규례들을 만들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뜻은 뒤로 하고 자신들이 안식일에 대해 만든 규정들을 지키며 안식일을 지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새 법이 옛 율법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배척했습니다. 마치 묵은 포도주에 길든 사람들이 새 포도주를 싫어하는 것처럼, 자기적인 율법의 틀에 얽매인 이들은 예수님의 새 교훈을 싫어했습니다.
이런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말씀합니다(마 23:23). 아무리 구약의 율법을 좇아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하며 기도와 금식을 드린다 해도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고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십니다. 드러나는 행위만 옳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될 수 있습니다.
4. 낡은 부대를 새 부대로 만들려면
에베소서 4장 22~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말씀합니다. 세상 것을 취하고 남을 판단 정죄하며 미워하는 등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마음은 낡은 부대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욕심, 잘못된 지식과 틀 등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모든 것을 버리고 심령을 새롭게 해야 하지요. 그럴 때라야 우리 마음이 새 부대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말씀을 들어도 변화되지 않으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묵은 포도주를 고집하지요. 하나님 뜻이 아닌 육신의 생각 속에 틀을 만들고 사랑보다는 율법에 매여 판단 정죄합니다.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면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가 쏟아져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생각과 구습을 고집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결국 멸망의 길로 가고 말지요.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죄악을 신속히 벗고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아야 합니다. 진리와 선으로 마음을 변화시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말씀과 기도로 부지런히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켜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말씀하신 대로 거룩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서로 맞는 것끼리 연결해 보세요.
새 포도주 ■ ■ 의와 진리로 새롭게 변화된 마음
묵은 포도주 ■ ■ 자기 생각과 구습을 고집하는 마음
새 부대 ■ ■ 구약의 율법적인 생활방식
낡은 부대 ■ ■ 주님이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한 '신약'
2. 우리의 마음을 새 가죽 부대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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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
예수님은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여기서 물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뜻하며, 포도주는 죄인을 구원한 예수님의 보혈을 의미한다. 따라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사람들에게 마시게 한 것은 곧 예수님께서 때가 되면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리실 것을 나타내며 이를 믿는 사람은 죄 용서를 받고 구원에 이를 것을 뜻한다.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새 포도주와 새 부대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의 마음을 닮게 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용으로서 주 안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뜻을 잘 모른 채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해를 맞아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물론, 마음의 할례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새 포도주'와 '묵은 포도주'의 영적 의미
누가복음 5장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말씀합니다. 낡고 오래된 가죽은 신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여 결국 터지고 맙니다. 하지만 새 부대는 신축성이 좋기 때문에 그럴 염려가 없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무엇을 깨우쳐 주시고자 하신 것일까요? 그 의미를 알기 위해 먼저, 새 포도주와 묵은 포도주가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 예수님은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고 말씀하시지요. 예수님이 포도나무라면 그 열매는 예수님이 이 땅에 사역하시면서 맺힌 모든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기사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신 모든 일들이 곧 포도나무의 열매들이지요. 또한 포도즙은 포도 열매를 짜낸 액으로, 영적으로는 예수님의 보혈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열매를 내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주시는 사랑으로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셨지요.
따라서 주님께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 신약이며, '새 포도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묵은 포도주'란 구약의 율법적인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기 전, 율법에 매인 삶의 방식이지요. 히브리서 10장 1절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신약은 본체요,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2. 새 포도주와 묵은 포도주의 차이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범죄하여 사함을 받으려면 짐승을 잡아 그 피로 행위적인 제사를 드렸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약의 율법적인 삶의 방식이 바로 묵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신 신약 시대에는 우리가 그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즉 새 포도주를 마심으로 구원받을 수가 있었지요.
그러면 구약의 묵은 포도주와 신약의 새 포도주의 차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이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었으니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셨냐고 반문하지요. 이에 예수님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하여 변함없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하시지 헤어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율법에 이혼을 규정하신 것은 인간의 변질되고 악한 마음 때문이셨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음행한 사실을 남편이 알고 도저히 용서가 안 되고 괴롭습니다. 이러한 상황일 때 함께 삶으로 인해 더 불행해져서는 안 되겠기에 모세의 율법에는 이혼해도 가하다고 규정해 놓았지요.
따라서 묵은 포도주는 하나님의 근본 뜻인 사랑보다는 율법적인 틀에 매인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남편이 아내의 허물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 안았다면 새 포도주를 마신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3. 묵은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들
누가복음 5장 39절에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가치가 높습니다. 수십 년, 수백 년 묵은 것일수록 비싸고 등급이 높은 상품으로 인정받지요. 세상에서 묵은 포도주를 귀히 여기는 것처럼 구약의 율법을 신약의 새 법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 당시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 외에도 다른 규칙까지 만들어 지켰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율법에다 부수적인 규칙들을 만들어 지켰지요. 즉 안식일에는 음식을 만들 불도 피워서도 안 되고, 몇 킬로미터 이상은 여행하면 안 되며, 무거운 물건을 운반해도 안 된다는 등 여러 규례들을 만들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뜻은 뒤로 하고 자신들이 안식일에 대해 만든 규정들을 지키며 안식일을 지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새 법이 옛 율법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배척했습니다. 마치 묵은 포도주에 길든 사람들이 새 포도주를 싫어하는 것처럼, 자기적인 율법의 틀에 얽매인 이들은 예수님의 새 교훈을 싫어했습니다.
이런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말씀합니다(마 23:23). 아무리 구약의 율법을 좇아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하며 기도와 금식을 드린다 해도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고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십니다. 드러나는 행위만 옳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될 수 있습니다.
4. 낡은 부대를 새 부대로 만들려면
에베소서 4장 22~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말씀합니다. 세상 것을 취하고 남을 판단 정죄하며 미워하는 등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마음은 낡은 부대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욕심, 잘못된 지식과 틀 등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모든 것을 버리고 심령을 새롭게 해야 하지요. 그럴 때라야 우리 마음이 새 부대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말씀을 들어도 변화되지 않으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묵은 포도주를 고집하지요. 하나님 뜻이 아닌 육신의 생각 속에 틀을 만들고 사랑보다는 율법에 매여 판단 정죄합니다.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면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가 쏟아져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생각과 구습을 고집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결국 멸망의 길로 가고 말지요.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죄악을 신속히 벗고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아야 합니다. 진리와 선으로 마음을 변화시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말씀과 기도로 부지런히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켜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말씀하신 대로 거룩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서로 맞는 것끼리 연결해 보세요.
새 포도주 ■ ■ 의와 진리로 새롭게 변화된 마음
묵은 포도주 ■ ■ 자기 생각과 구습을 고집하는 마음
새 부대 ■ ■ 구약의 율법적인 생활방식
낡은 부대 ■ ■ 주님이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한 '신약'
2. 우리의 마음을 새 가죽 부대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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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
예수님은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여기서 물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뜻하며, 포도주는 죄인을 구원한 예수님의 보혈을 의미한다. 따라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사람들에게 마시게 한 것은 곧 예수님께서 때가 되면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리실 것을 나타내며 이를 믿는 사람은 죄 용서를 받고 구원에 이를 것을 뜻한다.
2012-01-04
제1과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 60:1
읽을말씀 : 사 60:1 | 외울말씀 : 사 60:1 l 참고 말씀:요일 1:5, 엡 5:8
교육목표 :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서 일어나 빛을 발함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 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그 가치는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서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빛은 그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영의 사람이 되어 더욱 찬란히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새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하며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악에 악을 더해 갔습니다.
더구나 앗수르를 비롯한 주변 국가의 위협이 도사리고 국력은 쇠퇴해질 대로 쇠퇴해졌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심판을 받을 것과 이스라엘에 다시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 당당히 일어나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무엇으로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곧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여 주어야 믿는다는 것이지요.
참된 진리가 없어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섭리와 뜻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닫게 해 줄 생명의 말씀을 전하되, 따르는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증해야 합니다. 따라서 값없이 구원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천국을 소망하는 거룩한 성도들이라면 자원하는 심령으로 이러한 하나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고, 요한복음 8장 12절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고 권면하는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엡 5:9)을 좇아 행해야 하지요.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비추이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 들어오면 들어오는 만큼 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각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분명한 것은 빛이 임하면 임하는 만큼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사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 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권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어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며(요 11장), 하나님의 권능을 받았던 사도 바울에게는 희한한 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으며(행 19:12),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만 스쳐도 병든 사람이 낫고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뿐 아니라, 빌립 집사나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도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나아오도록 놀라운 역사를 나타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종이 아니라, 성도들이라 해도 권능을 받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어야 합니다.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온전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가며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눈으로 목격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하는 자들이 없다면 들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른 성도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생명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여 가정과 직장 등을 복음화시켜야 합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다 깨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게 되지요. 이제는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생명 다해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도 된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비록 옥에 갇혀 매인 몸이 되었어도 편지로 성도들을 깨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 성도들이 박해를 넉넉히 이겨내고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은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증인된 우리도 어찌하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어느 곳에 있든지 '일어나 빛을 발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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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②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유다의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유다가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교육목표 :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서 일어나 빛을 발함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 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그 가치는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서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빛은 그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영의 사람이 되어 더욱 찬란히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새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하며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악에 악을 더해 갔습니다.
더구나 앗수르를 비롯한 주변 국가의 위협이 도사리고 국력은 쇠퇴해질 대로 쇠퇴해졌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심판을 받을 것과 이스라엘에 다시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 당당히 일어나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무엇으로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곧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여 주어야 믿는다는 것이지요.
참된 진리가 없어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섭리와 뜻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닫게 해 줄 생명의 말씀을 전하되, 따르는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증해야 합니다. 따라서 값없이 구원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천국을 소망하는 거룩한 성도들이라면 자원하는 심령으로 이러한 하나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고, 요한복음 8장 12절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고 권면하는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엡 5:9)을 좇아 행해야 하지요.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비추이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 들어오면 들어오는 만큼 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각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분명한 것은 빛이 임하면 임하는 만큼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사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 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권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어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며(요 11장), 하나님의 권능을 받았던 사도 바울에게는 희한한 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으며(행 19:12),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만 스쳐도 병든 사람이 낫고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뿐 아니라, 빌립 집사나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도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나아오도록 놀라운 역사를 나타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종이 아니라, 성도들이라 해도 권능을 받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어야 합니다.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온전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가며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눈으로 목격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하는 자들이 없다면 들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른 성도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생명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여 가정과 직장 등을 복음화시켜야 합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다 깨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게 되지요. 이제는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생명 다해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도 된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비록 옥에 갇혀 매인 몸이 되었어도 편지로 성도들을 깨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 성도들이 박해를 넉넉히 이겨내고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은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증인된 우리도 어찌하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어느 곳에 있든지 '일어나 빛을 발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
2.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②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유다의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유다가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2011-12-30
제52과후회 없는 삶
전 12:13~14
읽을말씀 : 전 12:13~14 | 외울말씀 : 전 12:13 l 참고 말씀:딤후 4:7~8, 전 1:3
교육목표 : 단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참으로 가치 있게 살아 가는 길이 과연 무엇인지 알려 준다.
사람에게는 단 한 번의 삶이 주어집니다.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살아온 삶에 대해서는 각자가 책임을 지게 되지요. 많은 사람들이 지난 일들을 회고할 때 "내가 참으로 값진 인생을 살았다" 하기보다는 "내가 왜 그랬던고" 하며 후회막급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은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삶으로 하나님께도 잘 살았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삶이라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인생이며 복된 인생이라 할 수 있지요.
1.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은 솔로몬 왕
솔로몬은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아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며, 주변 나라들이 조공을 바칠 정도로 부강했고, 백성들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누리고 싶은 모든 부귀영화를 취해 보았습니다. 호화로운 궁전을 짓고 노래하는 남녀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많이 두어 쾌락도 즐겼습니다. 자기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고, 자기 마음에 즐거운 것이라면 다 취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마음을 만족하게 채워 주지는 못했습니다. 인생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었지만 하나님을 떠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었지요.
그래서 그는 "마음껏 세상 것을 누려 보았더니 참으로 좋더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 곧 인생의 모든 수고가 헛될 뿐이라"고 전도서에 강조하고 또 강조해 놓았지요. 진정한 영혼의 만족은 물질이나 권세나 쾌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뒤늦게야 인생의 참된 가치를 깨우친 솔로몬 왕은 전도서 12장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고백하지요.
하나님을 경외하여 사람의 본분을 지킨 사람은 세상에서 수고하는 모든 것들이 헛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믿음으로 쌓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천국에 상급으로 쌓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영원한 하늘의 것을 목표 삼지 않고 이 땅에서의 쾌락과 정욕과 행복만을 바라보았기에 헛될 뿐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후회 없는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헛되지 않은 삶을 영위하려면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여 뜨겁게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에서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라 해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드리고도 "무엇 더 드릴 것이 없나?" 하고 또 찾습니다.
신약 시대 최고 권능의 사도인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볼 때도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했고, 강대국 로마의 시민권자였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가문이나 지위, 학문, 지식 등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주님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했기에 이러한 모든 것은 배설물에 불과했습니다. 다만 구원의 길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하고 귀했기에 이 복음을 전하며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와 같았던 자신을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 주심에 감사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데 생명을 다했습니다. 아무리 극심한 핍박과 고난도 오직 감사함으로 이겨냈지요. 그러니 하나님께 큰 권능을 받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헌신과 주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을 기뻐 받으시고 천국 새 예루살렘에 상급으로 다 갚아 주시며 존귀한 위치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쌓은 것은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여 충성함으로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세세토록 영광을 누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마음의 온전함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의 온전함을 이룬다는 것은 모든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온전한 사람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입술의 말이 온전한 것입니다. 마음에 진리가 채워지면 그 입술에서도 오직 진리의 말만 나오고 마음이 거룩하면 입술도 거룩해지지요.
잠언 22장 11절에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했습니다. 무익하고 헛된 말이나 불평하는 말이 나오는 부끄러운 입술이 아니라, 늘 감사의 고백과 찬송, 믿음의 말로 단물을 내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당회장님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은 온전히 버리셨으며, 하라, 지키라 하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심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며 큰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세계 곳곳에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크게 이루게 하셨지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은 사람의 열심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기에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마음에 진리를 채워 온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능력을 주셔서 맡은 분야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지요.
셋째, 화평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 하셨듯이 주님을 사랑한다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나만 옳다."고 하는 독단적인 마음이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항상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 줘야지요.
우리 교회는 개척하여 지금까지 직원회나 사무연회, 원로회 등 회의를 하면서 한 번도 화평이 깨진 적이 없습니다. 누구도 "아니요!"라고 발언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화평을 이루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당회장님께서 친히 그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하시면서 상식적으로 이해 못할 일들을 무수히 겪으셨지만 결코 화평을 깨뜨리지 않으셨습니다. 불순종하는 양 떼나 애매히 비난하는 사람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며 중보기도하셨지요.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도록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사랑과 선으로 하셨기에 그들이 결국에는 녹아나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어려움을 축복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이처럼 아비의 마음으로 화평을 좇으며 모든 영혼들을 섬기고 희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맡겨진 사명도 잘 감당하게 하시고 부흥하도록 축복해 주시지요. 신약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했습니다(딤후 4:7~8).
사도 바울은 주님을 영접하여 최선을 다해 믿음의 싸움을 싸운 후 천국에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루하루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결코 허탄한 데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 세상에서 가치 있고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보세요.
① ( )을 사랑하여 뜨겁게 달려가야 한다.
② 마음의 ( )을 이뤄야 한다.
③ ( )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고 태평성대를 누렸던 솔로몬 왕이 왜 말년에 와서 해 아래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했을까요?
---------------------------------------------------------------------------------
3. 여러분은 한 해를 보내면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새해의 각오를 한번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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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로마 시민권
재산, 직업, 신앙, 사상 등의 자유가 보장되는 로마 시민의 여러 권리를 말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붙잡혀 채찍질 당하게 되었을 때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혀 위기를 모면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은 부모에 의해 세습되었고 돈으로 살 수도 있었다(행 22:28). 로마 시민권자를 재판하지 않고 감금시키거나, 매질할 수는 없었다(행 16:37~39).
교육목표 : 단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참으로 가치 있게 살아 가는 길이 과연 무엇인지 알려 준다.
사람에게는 단 한 번의 삶이 주어집니다.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살아온 삶에 대해서는 각자가 책임을 지게 되지요. 많은 사람들이 지난 일들을 회고할 때 "내가 참으로 값진 인생을 살았다" 하기보다는 "내가 왜 그랬던고" 하며 후회막급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은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삶으로 하나님께도 잘 살았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삶이라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인생이며 복된 인생이라 할 수 있지요.
1.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은 솔로몬 왕
솔로몬은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아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며, 주변 나라들이 조공을 바칠 정도로 부강했고, 백성들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누리고 싶은 모든 부귀영화를 취해 보았습니다. 호화로운 궁전을 짓고 노래하는 남녀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많이 두어 쾌락도 즐겼습니다. 자기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고, 자기 마음에 즐거운 것이라면 다 취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마음을 만족하게 채워 주지는 못했습니다. 인생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었지만 하나님을 떠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었지요.
그래서 그는 "마음껏 세상 것을 누려 보았더니 참으로 좋더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 곧 인생의 모든 수고가 헛될 뿐이라"고 전도서에 강조하고 또 강조해 놓았지요. 진정한 영혼의 만족은 물질이나 권세나 쾌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뒤늦게야 인생의 참된 가치를 깨우친 솔로몬 왕은 전도서 12장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고백하지요.
하나님을 경외하여 사람의 본분을 지킨 사람은 세상에서 수고하는 모든 것들이 헛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믿음으로 쌓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천국에 상급으로 쌓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영원한 하늘의 것을 목표 삼지 않고 이 땅에서의 쾌락과 정욕과 행복만을 바라보았기에 헛될 뿐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후회 없는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헛되지 않은 삶을 영위하려면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여 뜨겁게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에서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라 해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드리고도 "무엇 더 드릴 것이 없나?" 하고 또 찾습니다.
신약 시대 최고 권능의 사도인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볼 때도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했고, 강대국 로마의 시민권자였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가문이나 지위, 학문, 지식 등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주님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했기에 이러한 모든 것은 배설물에 불과했습니다. 다만 구원의 길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하고 귀했기에 이 복음을 전하며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와 같았던 자신을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 주심에 감사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데 생명을 다했습니다. 아무리 극심한 핍박과 고난도 오직 감사함으로 이겨냈지요. 그러니 하나님께 큰 권능을 받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헌신과 주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을 기뻐 받으시고 천국 새 예루살렘에 상급으로 다 갚아 주시며 존귀한 위치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쌓은 것은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여 충성함으로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세세토록 영광을 누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마음의 온전함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의 온전함을 이룬다는 것은 모든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온전한 사람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입술의 말이 온전한 것입니다. 마음에 진리가 채워지면 그 입술에서도 오직 진리의 말만 나오고 마음이 거룩하면 입술도 거룩해지지요.
잠언 22장 11절에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했습니다. 무익하고 헛된 말이나 불평하는 말이 나오는 부끄러운 입술이 아니라, 늘 감사의 고백과 찬송, 믿음의 말로 단물을 내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당회장님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은 온전히 버리셨으며, 하라, 지키라 하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심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며 큰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세계 곳곳에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크게 이루게 하셨지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은 사람의 열심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기에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마음에 진리를 채워 온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능력을 주셔서 맡은 분야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지요.
셋째, 화평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 하셨듯이 주님을 사랑한다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나만 옳다."고 하는 독단적인 마음이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항상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 줘야지요.
우리 교회는 개척하여 지금까지 직원회나 사무연회, 원로회 등 회의를 하면서 한 번도 화평이 깨진 적이 없습니다. 누구도 "아니요!"라고 발언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화평을 이루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당회장님께서 친히 그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하시면서 상식적으로 이해 못할 일들을 무수히 겪으셨지만 결코 화평을 깨뜨리지 않으셨습니다. 불순종하는 양 떼나 애매히 비난하는 사람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며 중보기도하셨지요.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도록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사랑과 선으로 하셨기에 그들이 결국에는 녹아나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어려움을 축복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이처럼 아비의 마음으로 화평을 좇으며 모든 영혼들을 섬기고 희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맡겨진 사명도 잘 감당하게 하시고 부흥하도록 축복해 주시지요. 신약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했습니다(딤후 4:7~8).
사도 바울은 주님을 영접하여 최선을 다해 믿음의 싸움을 싸운 후 천국에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루하루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결코 허탄한 데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 세상에서 가치 있고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보세요.
① ( )을 사랑하여 뜨겁게 달려가야 한다.
② 마음의 ( )을 이뤄야 한다.
③ ( )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고 태평성대를 누렸던 솔로몬 왕이 왜 말년에 와서 해 아래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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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러분은 한 해를 보내면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새해의 각오를 한번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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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로마 시민권
재산, 직업, 신앙, 사상 등의 자유가 보장되는 로마 시민의 여러 권리를 말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붙잡혀 채찍질 당하게 되었을 때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혀 위기를 모면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은 부모에 의해 세습되었고 돈으로 살 수도 있었다(행 22:28). 로마 시민권자를 재판하지 않고 감금시키거나, 매질할 수는 없었다(행 16:37~39).
2011-12-23
제51과포근한 사랑
눅 2:13~14
읽을말씀 : 눅 2:13~14 | 외울말씀 : 눅 2:14 ㅣ 참고 말씀:요 14:13~14, 요일 2:15
교육목표 : 성탄절을 앞두고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시고 인간 구원의 섭리를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포근한 사랑에 대해 알아본다.
매섭고 차가운 바람이 불던 한겨울이 지나면 온 세상은 포근한 봄기운에 만물이 약동합니다. 죽은 것처럼 보였던 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겨우내 꽁꽁 얼었던 흙을 뚫고 돋아난 새싹들이 따사로운 봄 햇살에 생동감이 넘치지요. 죄악에 물들어 얼어붙은 우리 영혼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 성령님의 사랑이 임할 때 삶의 생기가 넘치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따스하고 포근한 사랑을 마음 깊이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1. 아버지 하나님, 주님, 성령님의 포근한 사랑
성탄절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사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부터 이미 큰 희생을 치르신 것입니다.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빛의 공간에 계셨던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죄로 관영한 이 세상에 내려오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예수님은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인생들의 추함과 거짓과 더러움을 다 겪으시고, 종국에는 저주받은 자들이 달린 나무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속죄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지요.
예수님은 전혀 죄도 흠도 없으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지 3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주님을 중심에서 믿으면 부활에 참예하여 이 땅에서 육의 생명이 다해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무수한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지요(눅 2:14). 인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구원과 영생은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처절한 희생의 결과요,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열매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에게 구원뿐 아니라 많은 응답과 축복도 약속해 주셨습니다. 질병, 가난, 가정, 일터, 학교, 사업터 등 이런저런 문제로 고통받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지요.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시며 두드리면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되,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을 믿음의 자녀들을 통해 이뤄 주심으로 영광받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3~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통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영으로 변화되어야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는 원수 마귀 사단은 굶주린 이리처럼 성도들을 미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시기 위해 성령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포근한 사랑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고 계십니다. 찬양과 기도 중에, 말씀을 대할 때에, 우리 마음을 감동케 하시고 천국 소망으로 넘치게 하시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 주님, 성령님의 포근한 사랑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사랑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며 이제는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참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2. 포근한 사랑에 보답하려면
첫째, 헛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하신 말씀대로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아버지의 사랑에서 멀어져 갑니다. 죄를 지으면 두렵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취해 나간다면 그보다 더한 고통이 뒤따를 수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골로새서 3장 2~3절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말씀합니다. 세상의 죄악 가운데 살았던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생각지도, 바라보지도 않아야 하지요. 천국의 좋은 처소에 들어가기 위해 마음을 영으로, 선으로 채워 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새깁니다. 성경은 물론 생명의 말씀이 담긴 책자도 즐겨 읽으며 영의 양식을 쌓아 가지요. 또한 불같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고 성령의 도우심 속에 선으로 영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면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이 시시해지고 재미를 못 느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103편 2~5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악을 사해 주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며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여러분의 소원을 만족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사람으로서 얻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포근한 사랑으로 채워 주셨지요.
이 사랑의 감동을 잊지 않으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예쁘고 고운 마음이 되면 그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함에 속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헌신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요.
우리가 중심에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의 향을 올려드리면 성령이 충만해지고, 하는 일이 형통하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니 매일매일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많은 영혼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고나 질병으로, 배신과 사기를 당해 물질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지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요. 주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면 주님께서 포근한 사랑으로 안아 주실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지요.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체험해 간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따라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외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과 혀로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지요.
복음을 전할 때 핍박을 받더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사랑의 전달자가 되어 복음으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과 주님, 성령님께 받은 사랑을 보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안에 답을 써보세요.
첫째, 헛된 ( )을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 ) 안 된다.
셋째, 하나님의 ( )을 많은 영혼들에게 ( ) 한다.
2. '12월 25일'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여러분에게 '12월 25일'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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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크리스마스와 예루살렘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언제인지 정확한 날짜도 모르는 유대인들이 많다. 최근 들어 외국인이 많이 사는 텔아비브에서는 간혹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트리를 장식해 놓기도 한다. 안식일과 음식 정결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유대교인이 70%가 넘는 예루살렘에서는 이런 풍경이 아직까지는 먼나라 얘기일 뿐이다.
교육목표 : 성탄절을 앞두고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시고 인간 구원의 섭리를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포근한 사랑에 대해 알아본다.
매섭고 차가운 바람이 불던 한겨울이 지나면 온 세상은 포근한 봄기운에 만물이 약동합니다. 죽은 것처럼 보였던 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겨우내 꽁꽁 얼었던 흙을 뚫고 돋아난 새싹들이 따사로운 봄 햇살에 생동감이 넘치지요. 죄악에 물들어 얼어붙은 우리 영혼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 성령님의 사랑이 임할 때 삶의 생기가 넘치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따스하고 포근한 사랑을 마음 깊이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1. 아버지 하나님, 주님, 성령님의 포근한 사랑
성탄절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사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부터 이미 큰 희생을 치르신 것입니다.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빛의 공간에 계셨던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죄로 관영한 이 세상에 내려오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예수님은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인생들의 추함과 거짓과 더러움을 다 겪으시고, 종국에는 저주받은 자들이 달린 나무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속죄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지요.
예수님은 전혀 죄도 흠도 없으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지 3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주님을 중심에서 믿으면 부활에 참예하여 이 땅에서 육의 생명이 다해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무수한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지요(눅 2:14). 인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구원과 영생은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처절한 희생의 결과요,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열매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에게 구원뿐 아니라 많은 응답과 축복도 약속해 주셨습니다. 질병, 가난, 가정, 일터, 학교, 사업터 등 이런저런 문제로 고통받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지요.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시며 두드리면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되,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을 믿음의 자녀들을 통해 이뤄 주심으로 영광받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3~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통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영으로 변화되어야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는 원수 마귀 사단은 굶주린 이리처럼 성도들을 미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시기 위해 성령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포근한 사랑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고 계십니다. 찬양과 기도 중에, 말씀을 대할 때에, 우리 마음을 감동케 하시고 천국 소망으로 넘치게 하시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 주님, 성령님의 포근한 사랑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사랑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며 이제는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참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2. 포근한 사랑에 보답하려면
첫째, 헛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하신 말씀대로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아버지의 사랑에서 멀어져 갑니다. 죄를 지으면 두렵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취해 나간다면 그보다 더한 고통이 뒤따를 수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골로새서 3장 2~3절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말씀합니다. 세상의 죄악 가운데 살았던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생각지도, 바라보지도 않아야 하지요. 천국의 좋은 처소에 들어가기 위해 마음을 영으로, 선으로 채워 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새깁니다. 성경은 물론 생명의 말씀이 담긴 책자도 즐겨 읽으며 영의 양식을 쌓아 가지요. 또한 불같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고 성령의 도우심 속에 선으로 영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면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이 시시해지고 재미를 못 느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103편 2~5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악을 사해 주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며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여러분의 소원을 만족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사람으로서 얻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포근한 사랑으로 채워 주셨지요.
이 사랑의 감동을 잊지 않으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예쁘고 고운 마음이 되면 그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함에 속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헌신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요.
우리가 중심에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의 향을 올려드리면 성령이 충만해지고, 하는 일이 형통하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니 매일매일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많은 영혼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고나 질병으로, 배신과 사기를 당해 물질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지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요. 주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면 주님께서 포근한 사랑으로 안아 주실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지요.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체험해 간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따라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외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과 혀로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지요.
복음을 전할 때 핍박을 받더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사랑의 전달자가 되어 복음으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과 주님, 성령님께 받은 사랑을 보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안에 답을 써보세요.
첫째, 헛된 ( )을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 ) 안 된다.
셋째, 하나님의 ( )을 많은 영혼들에게 ( ) 한다.
2. '12월 25일'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여러분에게 '12월 25일'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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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크리스마스와 예루살렘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언제인지 정확한 날짜도 모르는 유대인들이 많다. 최근 들어 외국인이 많이 사는 텔아비브에서는 간혹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트리를 장식해 놓기도 한다. 안식일과 음식 정결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유대교인이 70%가 넘는 예루살렘에서는 이런 풍경이 아직까지는 먼나라 얘기일 뿐이다.
2011-12-16
제50과의를 위해 핍박받은 바울
고후 11:23~27
읽을말씀 : 고후 11:23~27 | 외울말씀 : 외울 말씀/ 딤후 4:8 ㅣ 참고 말씀:롬 9:1~3
교육목표 : 숱한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주를 사랑하며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의 생애를 통해 참 믿음을 갖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하지 않았습니다.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진해질 뿐이었지요. 그러니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습니다.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권능을 베풀며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순교에까지 이르렀던 사도 바울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주님을 만나 회심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그는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의가 아주 강하여 자신이 가진 지식과 의로써 변론하며 지지 않으려는 성품이었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했지요. 마치 모세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 같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잔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느 날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살기등등하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서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시지요. 사울은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그 후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와서 안수하자 볼 수 있었지요.
그는 아나니아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선택된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결박하고 잔해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삶으로 온전히 바뀌었지요.
2. 숱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직 감사했던 사도 바울
바울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자 자신이 마치 '죄인 중에 괴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귀한 사명까지 주신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했지요. 그 어떤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해도 주를 향한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지가 잘 나옵니다. 즉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했지요.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주님의 은혜와 사랑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깊은 감옥이나 파선의 위험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을 향해 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겼지요. 또한 많은 상급을 쌓고 주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습니다.
혹여 여러분은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려움에도 이내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충성하고 모든 것을 드리기까지 헌신했는데 원하는 대로 축복이 임하지 않을 때 슬퍼하지는 않았는지요? 스스로 실망하여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육신의 생각으로 많은 분야에서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사도 바울처럼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어떤 고난도 감사해하며 작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3. 생명 다한 영혼 사랑이 승했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면서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모진 핍박과 환난을 당할 때도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성도들이 진리 안에 살도록 눈물로 훈계하며 간구하였지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 9장 1~3절에 보면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였지요.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 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은 구원받기를 원했지요.
또한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며 자신이 저주를 받아 지옥에 떨어져도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누구보다 지옥의 참담함과 무서움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생명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승하였기에 담대히 고백했던 것입니다.
4. 천국 소망으로 가득 찼던 사도 바울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사도 바울은 주를 이제 뵈올 수 있다는 천국 소망으로 넘쳐났습니다. 이 세상 무엇과도 주님과는 비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주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그는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고백하지요.
사도 바울은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기에 죽도록 충성하며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말씀대로 오직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이후로 한 번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고 종국에는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도 오직 감사뿐이었습니다. '내 생애가 이렇게 마감되는구나!' 하고 착잡한 마음이나 회한이 들지 않았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한 경직된 심정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앞두고 너무도 보고 싶었던 주님을 이제 곧 뵈올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기에 천국 소망으로 오히려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이를 통해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마음껏 연단하실 수 있었고 결국 대사도로서 권능을 받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주님께 대한 은혜와 감사가 변치 않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죽도록 충성하면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도 바울에 대한 설명으로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소아시아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했다.
② 온전히 성결되어 3천층에 들어갔다.
③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다.
④ 로마의 시민권이 있었다.
2. 디모데후서 4장 7~8절입니다.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보세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 )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 )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 )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3,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강한 의를 온전히 깨뜨렸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의와 틀을 깨뜨리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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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여진 편지들로 신약성경 27권 중 14권이 이에 해당된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이 중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서 기록하였다 하여 옥중서신이라 한다.
교육목표 : 숱한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주를 사랑하며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의 생애를 통해 참 믿음을 갖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하지 않았습니다.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진해질 뿐이었지요. 그러니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습니다.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권능을 베풀며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순교에까지 이르렀던 사도 바울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주님을 만나 회심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그는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의가 아주 강하여 자신이 가진 지식과 의로써 변론하며 지지 않으려는 성품이었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했지요. 마치 모세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 같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잔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느 날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살기등등하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서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시지요. 사울은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그 후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와서 안수하자 볼 수 있었지요.
그는 아나니아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선택된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결박하고 잔해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삶으로 온전히 바뀌었지요.
2. 숱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직 감사했던 사도 바울
바울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자 자신이 마치 '죄인 중에 괴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귀한 사명까지 주신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했지요. 그 어떤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해도 주를 향한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지가 잘 나옵니다. 즉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했지요.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주님의 은혜와 사랑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깊은 감옥이나 파선의 위험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을 향해 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겼지요. 또한 많은 상급을 쌓고 주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습니다.
혹여 여러분은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려움에도 이내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충성하고 모든 것을 드리기까지 헌신했는데 원하는 대로 축복이 임하지 않을 때 슬퍼하지는 않았는지요? 스스로 실망하여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육신의 생각으로 많은 분야에서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사도 바울처럼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어떤 고난도 감사해하며 작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3. 생명 다한 영혼 사랑이 승했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면서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모진 핍박과 환난을 당할 때도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성도들이 진리 안에 살도록 눈물로 훈계하며 간구하였지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 9장 1~3절에 보면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였지요.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 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은 구원받기를 원했지요.
또한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며 자신이 저주를 받아 지옥에 떨어져도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누구보다 지옥의 참담함과 무서움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생명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승하였기에 담대히 고백했던 것입니다.
4. 천국 소망으로 가득 찼던 사도 바울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사도 바울은 주를 이제 뵈올 수 있다는 천국 소망으로 넘쳐났습니다. 이 세상 무엇과도 주님과는 비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주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그는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고백하지요.
사도 바울은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기에 죽도록 충성하며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말씀대로 오직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이후로 한 번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고 종국에는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도 오직 감사뿐이었습니다. '내 생애가 이렇게 마감되는구나!' 하고 착잡한 마음이나 회한이 들지 않았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한 경직된 심정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앞두고 너무도 보고 싶었던 주님을 이제 곧 뵈올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기에 천국 소망으로 오히려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이를 통해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마음껏 연단하실 수 있었고 결국 대사도로서 권능을 받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주님께 대한 은혜와 감사가 변치 않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죽도록 충성하면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도 바울에 대한 설명으로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소아시아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했다.
② 온전히 성결되어 3천층에 들어갔다.
③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다.
④ 로마의 시민권이 있었다.
2. 디모데후서 4장 7~8절입니다.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보세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 )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 )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 )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3,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강한 의를 온전히 깨뜨렸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의와 틀을 깨뜨리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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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여진 편지들로 신약성경 27권 중 14권이 이에 해당된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이 중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서 기록하였다 하여 옥중서신이라 한다.
2011-12-09
제49과온 집에 충성한 모세
민 12:3, 7
읽을말씀 : 민 12:3, 7 | 외울말씀 : 민 12:3 l 참고 말씀:출 32:31~32
교육목표 :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고, 사환처럼 온 집에 충성한 모세 선지자에 대해 알아본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낸 지도자입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을 일삼고, 원망했던 백성들을 그는 아비의 심정으로 늘 마음에 품고 놓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백성이기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모세는 이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하나님 나라의 사환으로 온 집에 충성하였습니다.
1. 모세의 출생과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거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과 일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거기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어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주 당시 70여 명에 불과했던 야곱의 혈속은 갈수록 번성해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고 요셉을 모르는 사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강성해지자 위협을 느껴 백성들을 노예로 부리며 학대했지요.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번성하자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태어나는 사내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는 이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석 달간 모세를 숨겨 키우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웁니다. 마침 목욕하러 나온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지요. 공주는 아이를 불쌍히 여겨 양자로 키우기 위해 데려갑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모세의 친어머니를 유모로 추천하지요.
그래서 모세는 친어머니에게 민족과 하나님에 대해 배우며, 애굽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가 왕궁에서 공주의 양아들로 있는 한, 일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모세의 마음 한 편에는 항상 친어머니로부터 들은 하나님과 애굽 땅에서 고통 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2.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세월을 보낸 모세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 날 동족인 히브리인들이 싸워서 말리게 되지요. 그중에 그른 자가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발설함으로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나지요. 모세는 애굽을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모세가 자기 안일만 생각했다면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봐 모른 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았지요. 모세는 애굽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양 무리를 치면서 살았지요.
왕자로서의 자존심이나 자신감도 사라지고 점점 평범한 양치기의 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광야생활이 적응되자 이제 마음의 연단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졌지요. 하지만 모세는 인생의 허무함을 통해 하나님께 더 깊은 감사가 나왔습니다.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 연단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지요.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서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니라 철저히 낮아진 모세를 원하셨습니다.
3.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모세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온전히 비운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큰 사명을 주셨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말씀한 대로 모세는 영적인 온유함이 승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합니다.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아도 품어 주지요.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발하는 사람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변화될 것을 바라며 기다려 줍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시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불평하고 원망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범죄하였으며 마침내 멸망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모세의 온유함이 얼마나 승하였는지가 성경에 잘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자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며 방탕히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던지 백성들을 진멸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는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중보 기도를 올립니다(출 32:11~13, 32).
모세는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즉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멸망당할 위기에 처한 백성을 구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모세의 공의를 뛰어넘는 그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지요. 모세는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으로 백성들을 품었습니다.
4. 온 집에 충성한 모세
'충성'이란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은 물론이요, 맡겨진 직무 이상을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이란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일터, 사업터 등 자기가 속한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정성, 시간과 물질까지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5절에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자신을 낮추어 맡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대드는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백성의 지도자가 되면 그만큼 져야 할 짐도 많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모세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난관을 뚫어 나갔습니다.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품었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갔습니다.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날부터 생명을 다하기까지 모세는 단 한순간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로 인해 흘린 눈물과 그들을 위해 절규하며 올렸던 애통의 기도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지요. 모세는 하나님께 늘 "이 백성들을 저버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해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혹여 여러분 중에는 '사명이 무겁고 너무 힘들다. 사명을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부터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마음 졸이며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던 모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온 집에 충성하고도 열매가 적다며 민망히 여기는 모세의 마음, 목자의 마음을 느껴 보심으로 진정 충성된 영의 일꾼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모세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출애굽의 지도자이다.
②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했다.
③ 하나님의 온 집에 사환처럼 충성했다.
④ 베냐민 지파 사람이다.
2. 모세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한순간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사명이 힘들다.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까?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모세'에 대해
'건져내다', '들어 올리다'는 뜻을 가진 모세는 레위의 후손으로 아버지 아므람과 어머니 요게벳 사이에서 아론과 미리암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애굽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며 태어나는 사내아이들은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의 부모는 갈대상자에 모세를 담아 나일 강에 띄어 보냈는데 바로의 공주에게 발견되어 그녀의 양자로 자라게 되었다.
교육목표 :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고, 사환처럼 온 집에 충성한 모세 선지자에 대해 알아본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낸 지도자입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을 일삼고, 원망했던 백성들을 그는 아비의 심정으로 늘 마음에 품고 놓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백성이기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모세는 이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하나님 나라의 사환으로 온 집에 충성하였습니다.
1. 모세의 출생과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거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과 일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거기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어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주 당시 70여 명에 불과했던 야곱의 혈속은 갈수록 번성해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고 요셉을 모르는 사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강성해지자 위협을 느껴 백성들을 노예로 부리며 학대했지요.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번성하자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태어나는 사내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는 이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석 달간 모세를 숨겨 키우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웁니다. 마침 목욕하러 나온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지요. 공주는 아이를 불쌍히 여겨 양자로 키우기 위해 데려갑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모세의 친어머니를 유모로 추천하지요.
그래서 모세는 친어머니에게 민족과 하나님에 대해 배우며, 애굽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가 왕궁에서 공주의 양아들로 있는 한, 일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모세의 마음 한 편에는 항상 친어머니로부터 들은 하나님과 애굽 땅에서 고통 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2.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세월을 보낸 모세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 날 동족인 히브리인들이 싸워서 말리게 되지요. 그중에 그른 자가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발설함으로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나지요. 모세는 애굽을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모세가 자기 안일만 생각했다면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봐 모른 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았지요. 모세는 애굽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양 무리를 치면서 살았지요.
왕자로서의 자존심이나 자신감도 사라지고 점점 평범한 양치기의 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광야생활이 적응되자 이제 마음의 연단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졌지요. 하지만 모세는 인생의 허무함을 통해 하나님께 더 깊은 감사가 나왔습니다.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 연단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지요.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서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니라 철저히 낮아진 모세를 원하셨습니다.
3.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모세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온전히 비운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큰 사명을 주셨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말씀한 대로 모세는 영적인 온유함이 승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합니다.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아도 품어 주지요.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발하는 사람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변화될 것을 바라며 기다려 줍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시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불평하고 원망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범죄하였으며 마침내 멸망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모세의 온유함이 얼마나 승하였는지가 성경에 잘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자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며 방탕히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던지 백성들을 진멸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는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중보 기도를 올립니다(출 32:11~13, 32).
모세는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즉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멸망당할 위기에 처한 백성을 구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모세의 공의를 뛰어넘는 그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지요. 모세는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으로 백성들을 품었습니다.
4. 온 집에 충성한 모세
'충성'이란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은 물론이요, 맡겨진 직무 이상을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이란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일터, 사업터 등 자기가 속한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정성, 시간과 물질까지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5절에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자신을 낮추어 맡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대드는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백성의 지도자가 되면 그만큼 져야 할 짐도 많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모세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난관을 뚫어 나갔습니다.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품었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갔습니다.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날부터 생명을 다하기까지 모세는 단 한순간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로 인해 흘린 눈물과 그들을 위해 절규하며 올렸던 애통의 기도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지요. 모세는 하나님께 늘 "이 백성들을 저버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해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혹여 여러분 중에는 '사명이 무겁고 너무 힘들다. 사명을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부터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마음 졸이며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던 모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온 집에 충성하고도 열매가 적다며 민망히 여기는 모세의 마음, 목자의 마음을 느껴 보심으로 진정 충성된 영의 일꾼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모세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출애굽의 지도자이다.
②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했다.
③ 하나님의 온 집에 사환처럼 충성했다.
④ 베냐민 지파 사람이다.
2. 모세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한순간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사명이 힘들다.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까?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모세'에 대해
'건져내다', '들어 올리다'는 뜻을 가진 모세는 레위의 후손으로 아버지 아므람과 어머니 요게벳 사이에서 아론과 미리암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애굽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며 태어나는 사내아이들은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의 부모는 갈대상자에 모세를 담아 나일 강에 띄어 보냈는데 바로의 공주에게 발견되어 그녀의 양자로 자라게 되었다.
2011-12-02
제48과성령의 열매를 맺자
갈 5:16~26
읽을말씀 : 갈 5:16~26 | 외울말씀 : 갈 5:22~23 ㅣ참고 말씀:히 12:14, 살전 5:16~18
교육목표 :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영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후에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만큼 주님의 마음을 닮은 영의 사람이라 인정받을 수 있고,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1. 사 랑
사랑에는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변질되는 반면, 영적인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영적인 사랑이 잘 나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했지요(고전 13:4~7).
그러면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속한 '사랑'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성령의 열매의 '사랑'은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것으로, 고린도전서 '사랑'보다 차원이 높은 사랑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사랑이 임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위해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습니다.
2. 희 락
희락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지금 내가 중심에서 기뻐하고 있는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모습이 바로 희락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지를 여실히 보여 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은 은혜만 해도 항상 기뻐하기에 충분합니다.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행복과 평안이 가득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항상 마음에 희락이 넘쳐야 하지요.
3. 화 평
화평이란 설령 내가 옳아도 상대에게 맞춰 주고,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이 있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으며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지요.
우리가 화평의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화평을 깹니다. 즉 제사 때 우상 앞에 절을 한다거나 주일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않고 결혼식에 가지요. 이는 잠시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만들어 화평을 깨뜨린 결과를 낳고 맙니다.
다음은 자신과의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릴 때, 진리의 마음을 좇아 나갈 때 자신과도 화평을 이루지요. 이처럼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자신과의 화평이 이루어지면 모든 사람과도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지요.
4. 오래 참음
영적인 오래 참음은 애매히 욕을 받았을 때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하지만 "하나님 말씀이니까 참아야지." 하면서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오래 참음에는 먼저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구기 위해 오래 참으며 악을 버려나가지요. 다음은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는 상대가 내 생각,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항상 선으로 이해하고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는 응답받기 위한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 응답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참는 것입니다 .
5. 자 비
자비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자비의 마음이 임하면 중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죄하기보다는 긍휼의 마음이 앞섭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해 주며 어찌하든 그를 살리고자 하지요.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을 처음부터 아셨지만 아낌없이 사랑을 주셨습니다. 끝까지 그를 곁에 두시고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대하셨습니다.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계속 기회를 주셨지요. 이처럼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능히 용서하는 마음이 자비입니다.
6. 양 선
양선(良善)은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입니다. 양선의 열매가 맺히면 내 생각과 성품에 안 맞는 일에도 마음과 뜻을 모아 줍니다. 겸손하여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거나 인정받으려는 허영심도 없습니다. 누가 애매히 괴롭혀도 긍휼히 여기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며 섬기기 때문에 모든 사람과 화평함을 이룹니다.
마태복음 12장 19~20절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 12:19~20) 말씀한 것처럼 양선의 마음은 분냄이 없는 마음이요, 거룩한 마음입니다.
7. 충 성
급여를 받는 직원이 자신의 업무를 완수했다고 해서 '충성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삯을 받은 만큼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않고 사랑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넘치도록 했다면 충성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영적인 충성입니다. 영적인 충성은 '마음의 할례'를 말합니다. 즉 마음의 두루마기를 빨아야 하지요.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 했는데, 이는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충성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마음의 죄악을 벗는 영적인 충성이 함께 병행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자신이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두루 충성할 때 온 집에 충성했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즉 가정, 직장, 학교,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명자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8. 온 유
영적인 온유함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德)이 겸해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으면 항상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듯하게 치리해야 할 때는 위엄을 가지고 치리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솜털같이 포근합니다. 상대가 부딪혀 와도 혈기를 내거나 불편해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이해해 주지요. 그러니 많은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고 쉼을 얻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했습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 땅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국에서 넓은 땅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자기 안에 깃들였던 영혼들을 초청하여 함께할 만큼 큰 처소를 상급으로 받는다는 뜻이지요. 천국에서 큰 처소를 얻었다면 그만큼 영화로운 지위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9. 절 제
절제는 마음에 임한 덕목들이 겉으로 드러날 때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 안에서 무엇이든 풍성한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할 수도 있지요. 절제의 열매가 맺히면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않고 질서를 좇아 가장 적당한 선에서 절제를 합니다. 이처럼 절제의 열매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을 아름답게 조절해 줍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맺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보기에서 알맞은 답을 찾아 넣어 보세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①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하고 이해한다( )
②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영적인 사랑이다( )
③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
④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
⑤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넘치도록 사명을 감당했다(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절제의 열매가 맺힐 때 나타나는 증거'
하나,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한다.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가만히 있어야 할 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것을 안다.)
둘, 진리를 행할 때 대상과 시기, 장소를 고려할 줄 안다.
(아무 데서나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고, 심방할 때도 대상에 따라 분별하여 전한다.)
셋,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한다.
(조급하여 상대의 말을 파악하지 못 하고 섣불리 판단 정죄하지 않는다.)
교육목표 :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영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후에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만큼 주님의 마음을 닮은 영의 사람이라 인정받을 수 있고,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1. 사 랑
사랑에는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변질되는 반면, 영적인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영적인 사랑이 잘 나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했지요(고전 13:4~7).
그러면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속한 '사랑'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성령의 열매의 '사랑'은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것으로, 고린도전서 '사랑'보다 차원이 높은 사랑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사랑이 임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위해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습니다.
2. 희 락
희락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지금 내가 중심에서 기뻐하고 있는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모습이 바로 희락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지를 여실히 보여 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은 은혜만 해도 항상 기뻐하기에 충분합니다.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행복과 평안이 가득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항상 마음에 희락이 넘쳐야 하지요.
3. 화 평
화평이란 설령 내가 옳아도 상대에게 맞춰 주고,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이 있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으며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지요.
우리가 화평의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화평을 깹니다. 즉 제사 때 우상 앞에 절을 한다거나 주일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않고 결혼식에 가지요. 이는 잠시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만들어 화평을 깨뜨린 결과를 낳고 맙니다.
다음은 자신과의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릴 때, 진리의 마음을 좇아 나갈 때 자신과도 화평을 이루지요. 이처럼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자신과의 화평이 이루어지면 모든 사람과도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지요.
4. 오래 참음
영적인 오래 참음은 애매히 욕을 받았을 때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하지만 "하나님 말씀이니까 참아야지." 하면서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오래 참음에는 먼저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구기 위해 오래 참으며 악을 버려나가지요. 다음은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는 상대가 내 생각,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항상 선으로 이해하고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는 응답받기 위한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 응답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참는 것입니다 .
5. 자 비
자비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자비의 마음이 임하면 중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죄하기보다는 긍휼의 마음이 앞섭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해 주며 어찌하든 그를 살리고자 하지요.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을 처음부터 아셨지만 아낌없이 사랑을 주셨습니다. 끝까지 그를 곁에 두시고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대하셨습니다.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계속 기회를 주셨지요. 이처럼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능히 용서하는 마음이 자비입니다.
6. 양 선
양선(良善)은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입니다. 양선의 열매가 맺히면 내 생각과 성품에 안 맞는 일에도 마음과 뜻을 모아 줍니다. 겸손하여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거나 인정받으려는 허영심도 없습니다. 누가 애매히 괴롭혀도 긍휼히 여기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며 섬기기 때문에 모든 사람과 화평함을 이룹니다.
마태복음 12장 19~20절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 12:19~20) 말씀한 것처럼 양선의 마음은 분냄이 없는 마음이요, 거룩한 마음입니다.
7. 충 성
급여를 받는 직원이 자신의 업무를 완수했다고 해서 '충성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삯을 받은 만큼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않고 사랑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넘치도록 했다면 충성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영적인 충성입니다. 영적인 충성은 '마음의 할례'를 말합니다. 즉 마음의 두루마기를 빨아야 하지요.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 했는데, 이는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충성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마음의 죄악을 벗는 영적인 충성이 함께 병행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자신이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두루 충성할 때 온 집에 충성했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즉 가정, 직장, 학교,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명자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8. 온 유
영적인 온유함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德)이 겸해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으면 항상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듯하게 치리해야 할 때는 위엄을 가지고 치리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솜털같이 포근합니다. 상대가 부딪혀 와도 혈기를 내거나 불편해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이해해 주지요. 그러니 많은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고 쉼을 얻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했습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 땅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국에서 넓은 땅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자기 안에 깃들였던 영혼들을 초청하여 함께할 만큼 큰 처소를 상급으로 받는다는 뜻이지요. 천국에서 큰 처소를 얻었다면 그만큼 영화로운 지위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9. 절 제
절제는 마음에 임한 덕목들이 겉으로 드러날 때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 안에서 무엇이든 풍성한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할 수도 있지요. 절제의 열매가 맺히면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않고 질서를 좇아 가장 적당한 선에서 절제를 합니다. 이처럼 절제의 열매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을 아름답게 조절해 줍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맺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보기에서 알맞은 답을 찾아 넣어 보세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①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하고 이해한다( )
②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영적인 사랑이다( )
③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
④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
⑤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넘치도록 사명을 감당했다(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절제의 열매가 맺힐 때 나타나는 증거'
하나,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한다.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가만히 있어야 할 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것을 안다.)
둘, 진리를 행할 때 대상과 시기, 장소를 고려할 줄 안다.
(아무 데서나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고, 심방할 때도 대상에 따라 분별하여 전한다.)
셋,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한다.
(조급하여 상대의 말을 파악하지 못 하고 섣불리 판단 정죄하지 않는다.)
2011-11-25
제47과죽어지는 밀알이 되자
요 12:24~26
읽을말씀 : 요 12:24~26 | 외울말씀 : 요 12:24 l 참고 말씀:히 12:2, 엡 4:22~4
교육목표 : 가정과 학교, 직장, 교회 등 자신이 있는 곳곳에서 죽어지는 밀알이 되는 방법을 알려 준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 맺는 과정을 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죽어져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비록 형체는 없어져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씨앗이 스스로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의 말씀을 통해 영적인 설명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하시며 많은 열매를 맺는 비결을 알려 주십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을 의미하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죽어지는 밀알이 되셨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수치와 모욕을 당하시고 많은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시고 발길로 채이시며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시며, 손발에 못 박히시고 온갖 조롱을 받으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며 철저히 죽어지셨던 것은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던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또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이러한 즐거움을 위해 예수님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것처럼 모세 선지자나 사도 바울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도 하늘의 소망이 있었기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철저히 죽어졌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어떠한 일을 당한다 해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철저히 죽어진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1) 자아가 죽어져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하며 지식과 교양을 쌓아 갑니다. 이렇게 쌓은 지식과 교양이 자아를 형성하게 되지요.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 형성된 것들은 대부분 비진리에 속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진리가 마음 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죄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자아를 형성했던 것은 진리에 위배되므로 부딪침이 생기지요. 이럴 때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할 때 자아가 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철저히 깨뜨려야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죄 곧 진리에 위배되는 것은 대충 회개한다고 해서 벗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노력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기도 하시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요. 또한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며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밀알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진리가 아닌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진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7장 14절에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말씀한 대로 믿음 있는 사람이 가정에서 죽어지면 가정이 복음화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남편이 주님을 믿지 않고 아내가 주님을 믿는 가정이라면 아내는 어떻게 할까요?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은 물론, 복음을 전하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고 섬기며 사랑할 것입니다. 이처럼 아내가 남편을 위해 죽어지는 밀알이 되면 남편이 변화를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내가 주님을 믿지 않고 남편이 주님을 믿는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가족복음화를 온전히 이루고 더욱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가정이 되려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먼저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보기 때문에 본이 되지 못하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가족이 보기에도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죽어지려면 자신의 '구습'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구습이란 하나님을 믿기 전 '옛사람'일 때 자신의 몸에 배인 좋지 않은 습관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합니다. 또 자기 방이 지저분해도 치우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지 않은 구습들을 버리고 성실하며 본이 되어 가족들을 섬긴다면 가정복음화를 이루는 것은 물론, 늘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이 땅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가족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허물을 들추며 남에게 전한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기뻐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지요.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고 상대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면 용서하지 않지요. 자신이 얼마나 죽어졌는지는 '화평'의 분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의를 주장하고 자기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치고 부딪치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기 마련이지요.
만일 '김 집사'와는 잘 지내는데 '최 집사'와는 불편하다면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러지 못한 사람과도 모두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지요. 직분의 상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루며, 하나님께서는 화평을 좇는 사람을 통해 열매를 맺으십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승천하시면서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셨지요.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되어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면 착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야 합니다. 또한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지요. 전도된 영혼들을 갈무리함에 있어서도 사랑과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의 분량에 맞게 이끌어 주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 줘야 주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영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체험해 가게 됩니다.
만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전도와 영혼 갈무리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자원함으로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죽어지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입니다. ( ) 안에 알맞은 낱말을 넣어 보세요.
"한 알의 ( )이 땅에 떨어져 ( )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 ) 많은 ( )를 맺느니라"
2. 자신의 삶 가운데서 구습을 버리고 새사람이 된 증거를 체크해 보세요.
□ 예배 때 자리를 잡아두지 않고 먼저 오는 사람이 앉도록 배려한다.
□ 집 안에서 정리정돈을 잘하고 지저분한 것은 바로바로 치운다.
□ 교회 옆 도로에 이중 주차 하지 않고 반드시 주차장에 주차한다.
□ 선정적인 드라마나 게임, 오락 등을 끊고 성경을 읽는다.
□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를 쉬지 않는다.
□ 전도에 힘쓰며 교회 행사가 있다면 동참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옛사람 vs 새사람이란? (골 3:9 / 엡 4:24)
옛사람이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주 안에서 거듭나지 않아 비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 새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옛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3~24).
교육목표 : 가정과 학교, 직장, 교회 등 자신이 있는 곳곳에서 죽어지는 밀알이 되는 방법을 알려 준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 맺는 과정을 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죽어져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비록 형체는 없어져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씨앗이 스스로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의 말씀을 통해 영적인 설명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하시며 많은 열매를 맺는 비결을 알려 주십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을 의미하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죽어지는 밀알이 되셨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수치와 모욕을 당하시고 많은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시고 발길로 채이시며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시며, 손발에 못 박히시고 온갖 조롱을 받으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며 철저히 죽어지셨던 것은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던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또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이러한 즐거움을 위해 예수님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것처럼 모세 선지자나 사도 바울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도 하늘의 소망이 있었기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철저히 죽어졌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어떠한 일을 당한다 해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철저히 죽어진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1) 자아가 죽어져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하며 지식과 교양을 쌓아 갑니다. 이렇게 쌓은 지식과 교양이 자아를 형성하게 되지요.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 형성된 것들은 대부분 비진리에 속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진리가 마음 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죄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자아를 형성했던 것은 진리에 위배되므로 부딪침이 생기지요. 이럴 때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할 때 자아가 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철저히 깨뜨려야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죄 곧 진리에 위배되는 것은 대충 회개한다고 해서 벗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노력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기도 하시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요. 또한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며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밀알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진리가 아닌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진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7장 14절에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말씀한 대로 믿음 있는 사람이 가정에서 죽어지면 가정이 복음화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남편이 주님을 믿지 않고 아내가 주님을 믿는 가정이라면 아내는 어떻게 할까요?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은 물론, 복음을 전하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고 섬기며 사랑할 것입니다. 이처럼 아내가 남편을 위해 죽어지는 밀알이 되면 남편이 변화를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내가 주님을 믿지 않고 남편이 주님을 믿는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가족복음화를 온전히 이루고 더욱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가정이 되려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먼저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보기 때문에 본이 되지 못하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가족이 보기에도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죽어지려면 자신의 '구습'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구습이란 하나님을 믿기 전 '옛사람'일 때 자신의 몸에 배인 좋지 않은 습관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합니다. 또 자기 방이 지저분해도 치우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지 않은 구습들을 버리고 성실하며 본이 되어 가족들을 섬긴다면 가정복음화를 이루는 것은 물론, 늘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이 땅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가족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허물을 들추며 남에게 전한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기뻐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지요.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고 상대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면 용서하지 않지요. 자신이 얼마나 죽어졌는지는 '화평'의 분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의를 주장하고 자기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치고 부딪치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기 마련이지요.
만일 '김 집사'와는 잘 지내는데 '최 집사'와는 불편하다면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러지 못한 사람과도 모두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지요. 직분의 상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루며, 하나님께서는 화평을 좇는 사람을 통해 열매를 맺으십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승천하시면서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셨지요.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되어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면 착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야 합니다. 또한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지요. 전도된 영혼들을 갈무리함에 있어서도 사랑과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의 분량에 맞게 이끌어 주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 줘야 주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영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체험해 가게 됩니다.
만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전도와 영혼 갈무리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자원함으로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죽어지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입니다. ( ) 안에 알맞은 낱말을 넣어 보세요.
"한 알의 ( )이 땅에 떨어져 ( )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 ) 많은 ( )를 맺느니라"
2. 자신의 삶 가운데서 구습을 버리고 새사람이 된 증거를 체크해 보세요.
□ 예배 때 자리를 잡아두지 않고 먼저 오는 사람이 앉도록 배려한다.
□ 집 안에서 정리정돈을 잘하고 지저분한 것은 바로바로 치운다.
□ 교회 옆 도로에 이중 주차 하지 않고 반드시 주차장에 주차한다.
□ 선정적인 드라마나 게임, 오락 등을 끊고 성경을 읽는다.
□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를 쉬지 않는다.
□ 전도에 힘쓰며 교회 행사가 있다면 동참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옛사람 vs 새사람이란? (골 3:9 / 엡 4:24)
옛사람이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주 안에서 거듭나지 않아 비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 새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옛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