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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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8
제23과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마 7:24~25
읽을말씀 : 마 7:24~25 | 외울말씀 : 마 7:24 l 참고 말씀:살전 5:16~18
교육목표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1단계는 성령받아 구원받은 단계요, 믿음의 2단계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라 했습니다. 2단계에서는 말씀을 알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서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때로는 말씀을 어기고 육체의 일을 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것처럼,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는데, 믿음이 자라면서 깨닫게 되니 점차 행할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믿음의 3단계를 '행할 수 있는 믿음', '깨닫게 하는 믿음'이라고도 말합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
하나님 말씀을 안다는 것과 말씀을 깨닫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 말씀이니 의무감으로 무조건 행하는 것과 왜 행해야 하는지를 깨달아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주일을 성수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고 질병이 떠나게 하시며, 영혼이 잘되게 하고 물질도 축복하신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들어서 아는 것만으로는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온전히 마음에 믿어지기 전까지는 환경에 따라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에 말씀이 깨달아지면서 진정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으로 와 닿으면 이때부터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타협하지 않고 주일을 성수하며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 곧 영적 세계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한 주 동안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고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 곧 우리 눈에 보이는 천하 만물의 모든 세계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 드리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시니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즉 모든 수입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중 십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쓸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듣고 배우며 진정 마음 중심에서 깨달아지면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음을 믿게 되지요. 그래서 그동안 행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며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아는 말씀을 깨달아 이렇게 행하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말 3:10).
2.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려면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서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순종이 따르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나갑니다. 반면에 깨달음이 오지 않으면 머리로 아는 지식에 불과하기에 행하려고 해도 온전히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아기가 태어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방치해 두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는 잘 먹고 손짓 발짓하며 움직여야 하고, 부모나 가족을 통해서 보고 듣고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식이 쌓이고 지혜도 발달하며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알고 있는 말씀을 행해 나가려고 노력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깨우쳐지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2단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뜻이니 억지로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기쁘고 감사할 조건이나 환경이 되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 믿음의 반석에 서면 이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지 깨달아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기뻐하고 기도를 쉬지 않으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그러면 우리가 왜 항상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요? 만일 우리가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시험 환난과 근심 걱정이 올 때는 기뻐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땅에 목적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육적으로 기쁘고 즐거울 때만 기뻐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세상이 주는 근심, 걱정,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 손 내밀어 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니 항상 기뻐할 수 있지요.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달으면 기뻐하지 못할 조건에도 기뻐하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도 기도하며 감사하지 못할 조건에도 감사합니다. 그럴 때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시험 환난이 떠나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문제가 척척 해결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염려 근심이 앞선다거나 억지로 기뻐한다면 아직 믿음의 2단계요,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마음 중심에서부터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습으로 변해 간다면 이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가 되면 미움을 버리기 위해 상대를 섬기고 사랑하려고 노력함으로 미움이 떠나고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조금씩 임하게 됩니다. 이는 죄인 된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선만 행하셨고 아무 잘못도 없으셨는데 죄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과 멸시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자기를 조롱하고 비웃는 무리들을 미워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며 생명을 주시는 큰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깨닫기 전에는 나에게 해를 입히거나 공연히 나를 비방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을 미워했지만 이제는 그 죄를 미워할망정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심 내거나 칭찬받는 사람을 보면 시기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내 생각에 맞추어 의심하고 판단하였던 사람도 이제는 마음 문을 열고 모두 믿음으로 받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하나하나 행함으로 나타내는 단계가 바로 믿음의 3단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행하고 있습니까? 결코 아는 것에서 멈추지 마시고 깨달은 것을 행함으로, 더 큰 믿음의 성장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3단계에 해당되는 것 두 개를 고르시오.
① 성결을 이룬 단계이다.
② 하나님 말씀을 중심에서 깨달아 순종하는 단계이다.
③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이다.
④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단계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아는 단계에서 신앙생활 할 때와 깨닫고 신앙생활 할 때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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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십일조'란?
하나님께 드리는 수입의 10분의 1을 말한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의 생산물, 나무와 과일, 소와 양의 10분의 1을 바치라고 명하셨다(레 27:30~32 ; 신 14:22).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으로 저주를 받는 사람이 없도록 십일조를 통해 얼마나 축복이 임하는지 시험해 보라고 하셨다(말 3:10).
교육목표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1단계는 성령받아 구원받은 단계요, 믿음의 2단계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라 했습니다. 2단계에서는 말씀을 알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서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때로는 말씀을 어기고 육체의 일을 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것처럼,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는데, 믿음이 자라면서 깨닫게 되니 점차 행할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믿음의 3단계를 '행할 수 있는 믿음', '깨닫게 하는 믿음'이라고도 말합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
하나님 말씀을 안다는 것과 말씀을 깨닫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 말씀이니 의무감으로 무조건 행하는 것과 왜 행해야 하는지를 깨달아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주일을 성수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고 질병이 떠나게 하시며, 영혼이 잘되게 하고 물질도 축복하신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들어서 아는 것만으로는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온전히 마음에 믿어지기 전까지는 환경에 따라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에 말씀이 깨달아지면서 진정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으로 와 닿으면 이때부터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타협하지 않고 주일을 성수하며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 곧 영적 세계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한 주 동안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고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 곧 우리 눈에 보이는 천하 만물의 모든 세계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 드리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시니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즉 모든 수입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중 십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쓸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듣고 배우며 진정 마음 중심에서 깨달아지면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음을 믿게 되지요. 그래서 그동안 행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며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아는 말씀을 깨달아 이렇게 행하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말 3:10).
2.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려면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서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순종이 따르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나갑니다. 반면에 깨달음이 오지 않으면 머리로 아는 지식에 불과하기에 행하려고 해도 온전히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아기가 태어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방치해 두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는 잘 먹고 손짓 발짓하며 움직여야 하고, 부모나 가족을 통해서 보고 듣고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식이 쌓이고 지혜도 발달하며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알고 있는 말씀을 행해 나가려고 노력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깨우쳐지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2단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뜻이니 억지로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기쁘고 감사할 조건이나 환경이 되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 믿음의 반석에 서면 이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지 깨달아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기뻐하고 기도를 쉬지 않으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그러면 우리가 왜 항상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요? 만일 우리가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시험 환난과 근심 걱정이 올 때는 기뻐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땅에 목적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육적으로 기쁘고 즐거울 때만 기뻐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세상이 주는 근심, 걱정,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 손 내밀어 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니 항상 기뻐할 수 있지요.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달으면 기뻐하지 못할 조건에도 기뻐하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도 기도하며 감사하지 못할 조건에도 감사합니다. 그럴 때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시험 환난이 떠나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문제가 척척 해결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염려 근심이 앞선다거나 억지로 기뻐한다면 아직 믿음의 2단계요,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마음 중심에서부터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습으로 변해 간다면 이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가 되면 미움을 버리기 위해 상대를 섬기고 사랑하려고 노력함으로 미움이 떠나고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조금씩 임하게 됩니다. 이는 죄인 된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선만 행하셨고 아무 잘못도 없으셨는데 죄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과 멸시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자기를 조롱하고 비웃는 무리들을 미워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며 생명을 주시는 큰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깨닫기 전에는 나에게 해를 입히거나 공연히 나를 비방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을 미워했지만 이제는 그 죄를 미워할망정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심 내거나 칭찬받는 사람을 보면 시기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내 생각에 맞추어 의심하고 판단하였던 사람도 이제는 마음 문을 열고 모두 믿음으로 받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하나하나 행함으로 나타내는 단계가 바로 믿음의 3단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행하고 있습니까? 결코 아는 것에서 멈추지 마시고 깨달은 것을 행함으로, 더 큰 믿음의 성장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3단계에 해당되는 것 두 개를 고르시오.
① 성결을 이룬 단계이다.
② 하나님 말씀을 중심에서 깨달아 순종하는 단계이다.
③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이다.
④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단계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아는 단계에서 신앙생활 할 때와 깨닫고 신앙생활 할 때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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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십일조'란?
하나님께 드리는 수입의 10분의 1을 말한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의 생산물, 나무와 과일, 소와 양의 10분의 1을 바치라고 명하셨다(레 27:30~32 ; 신 14:22).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으로 저주를 받는 사람이 없도록 십일조를 통해 얼마나 축복이 임하는지 시험해 보라고 하셨다(말 3:10).
2012-06-01
제22과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
고전 3:1~3
읽을말씀 : 고전 3:1~3 | 외울말씀 : 히 12:6 l 참고 말씀:히 12:6~7
교육목표 :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믿음의 차이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서 성장 과정에 따라 자녀들의 믿음, 아이들의 믿음, 청년들의 믿음, 아비들의 믿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기가 성장하면서 젖을 먹다가 밥을 먹는 것처럼,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믿음의 분량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믿음의 1, 2단계는 젖 먹는 신자
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자녀 관계가 성립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요. 나아가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는,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들은 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으므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지요.
믿음의 1단계에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곤고한 줄을 모르며 성령의 탄식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아직 진리가 무엇이며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죄를 지어도 죄인 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어 진리로 분별할 수 없으니 설령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갓난아기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기어 다니다가 물그릇을 엎고 그릇을 깨어도 야단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부모나 가족들이 그릇을 치우지 않고 주의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 결코 어린아이 탓이라고 여기지 않지요.
그러나 믿음의 2단계에서는 죄를 지을 때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곤고함을 느낍니다.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단계의 믿음도 아닙니다. 이처럼 스스로 행하지 못하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젖 먹는 신자'라고 합니다.
2. 젖 먹는 신자를 양육하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거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징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춰 이해하시고 사랑으로 깨닫게 해 주시지요.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 된 권세는 받았으나 하나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젖을 먹이듯이 부드럽게 권면하며 하나하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젖 먹는 신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반면 말씀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밥 먹는 신자'라 할 수 있지요. 즉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젖 먹는 신자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밥 먹는 신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밥 먹는 신자가 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되지요. 만일 젖을 먹이지 않고 밥을 먹이면 소화불량에 걸려 역효과가 나기 마련입니다.
가령 남편이 겨우 주일을 지키는 사람인데 "왜 당신은 다른 사람처럼 기도 하지 않나요? 왜 구역 모임에는 가지 않으세요. 제발 열심 좀 내보세요." 하며 자꾸 다그친다면 그나마 나오던 주일마저 가고 싶지 않지요.
이런 경우에는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게 이끌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단계 안에서 지혜롭게 믿음을 심어 주며 권면할 수 있어야 하지요. 본인이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스스로 행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조그만 행함에도 잘했다고 칭찬해 줄 때,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3. 밥 먹는 신자가 되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힘쓰면, 시험 환난이 따르지 않도록 지켜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2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어린아이가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다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어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야 부모의 마음이 흐뭇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부지런히 믿음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믿음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3단계로 이끄시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승리함으로 믿음을 성장시켜 축복과 응답으로 갚아 주시지요. 하지만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될 사람이 여전히 믿음의 1, 2단계에 해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축복 주시기 위한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징계하십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깨어나 믿음의 성장을 이루게 하시지요.
자녀가 밥과 함께 영양분이 있는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건강해지는데, 젖만 먹고 있으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만약 그대로 두면 영양실조에 걸려 질병이 생길 수 있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부모는 밥을 잘 먹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행치 못하면 파리해지기 때문에 가만히 놔둘 수가 없지요. 참 자녀를 얻고자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구세주로 주셨는데, 자녀들이 믿음의 진전 없이 멈춰 있다면 너무나 슬플 일이지요.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징계하시며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7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만일 죄를 지었는데도 징계가 임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하나님 사랑에서 떠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징계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이마저도 임하지 않지요. 완전히 원수 마귀 사단에 사로잡혀 어둠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를 짓다가 결국 지옥에 갈 수밖에 없지요.
혹여 죄를 범하였는데 징계가 임하지 않았다고 "그럼 나는 완전히 버림받았구나!" 하며 자포자기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철저히 통회자복하여 죄 사함 받을 때까지 간절히 매달리고 매달려야지요.
그러나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증거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대충 하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통회자복이 나와야 하지요.
통회자복을 하면 반드시 눈물과 콧물과 함께 마음을 찢는 회개가 나옵니다. 이때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헐어지면서 마음이 가벼워지고 마음에 충만함이 임하지요. 통회자복은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하지요.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만일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2단계의 행함을 내보이고 있다면 문제가 있어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위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이 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고 시험 환난도 당하지요. 그러나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돌이키면 믿음의 3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 정체되어 있거나 도태되면 시험 환난이 오고 축복이나 응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혹여 나의 믿음이 지금 젖 먹이 신자에 머물러 있다면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믿음의 3단계인 밥 먹는 신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현재의 믿음 수준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마시고, 최상의 단계를 바라보며 오직 전진해 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으세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젖을 먹이듯 부드럽게 권면하며 말씀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어야 하는 사람을 ( )신자라 하며, 믿음이 성장
하여 스스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을 ( )신자라 한다.
2.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믿음의 분량은 몇 단계일까요?
젖 먹는 신자( ) 밥 먹는 신자 ( )
3. 믿음의 1단계와 2단계의 차이점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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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신이란?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을 말한다.
교육목표 :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믿음의 차이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서 성장 과정에 따라 자녀들의 믿음, 아이들의 믿음, 청년들의 믿음, 아비들의 믿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기가 성장하면서 젖을 먹다가 밥을 먹는 것처럼,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믿음의 분량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믿음의 1, 2단계는 젖 먹는 신자
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자녀 관계가 성립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요. 나아가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는,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들은 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으므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지요.
믿음의 1단계에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곤고한 줄을 모르며 성령의 탄식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아직 진리가 무엇이며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죄를 지어도 죄인 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어 진리로 분별할 수 없으니 설령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갓난아기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기어 다니다가 물그릇을 엎고 그릇을 깨어도 야단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부모나 가족들이 그릇을 치우지 않고 주의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 결코 어린아이 탓이라고 여기지 않지요.
그러나 믿음의 2단계에서는 죄를 지을 때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곤고함을 느낍니다.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단계의 믿음도 아닙니다. 이처럼 스스로 행하지 못하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젖 먹는 신자'라고 합니다.
2. 젖 먹는 신자를 양육하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거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징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춰 이해하시고 사랑으로 깨닫게 해 주시지요.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 된 권세는 받았으나 하나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젖을 먹이듯이 부드럽게 권면하며 하나하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젖 먹는 신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반면 말씀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밥 먹는 신자'라 할 수 있지요. 즉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젖 먹는 신자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밥 먹는 신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밥 먹는 신자가 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되지요. 만일 젖을 먹이지 않고 밥을 먹이면 소화불량에 걸려 역효과가 나기 마련입니다.
가령 남편이 겨우 주일을 지키는 사람인데 "왜 당신은 다른 사람처럼 기도 하지 않나요? 왜 구역 모임에는 가지 않으세요. 제발 열심 좀 내보세요." 하며 자꾸 다그친다면 그나마 나오던 주일마저 가고 싶지 않지요.
이런 경우에는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게 이끌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단계 안에서 지혜롭게 믿음을 심어 주며 권면할 수 있어야 하지요. 본인이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스스로 행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조그만 행함에도 잘했다고 칭찬해 줄 때,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3. 밥 먹는 신자가 되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힘쓰면, 시험 환난이 따르지 않도록 지켜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2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어린아이가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다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어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야 부모의 마음이 흐뭇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부지런히 믿음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믿음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3단계로 이끄시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승리함으로 믿음을 성장시켜 축복과 응답으로 갚아 주시지요. 하지만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될 사람이 여전히 믿음의 1, 2단계에 해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축복 주시기 위한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징계하십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깨어나 믿음의 성장을 이루게 하시지요.
자녀가 밥과 함께 영양분이 있는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건강해지는데, 젖만 먹고 있으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만약 그대로 두면 영양실조에 걸려 질병이 생길 수 있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부모는 밥을 잘 먹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행치 못하면 파리해지기 때문에 가만히 놔둘 수가 없지요. 참 자녀를 얻고자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구세주로 주셨는데, 자녀들이 믿음의 진전 없이 멈춰 있다면 너무나 슬플 일이지요.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징계하시며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7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만일 죄를 지었는데도 징계가 임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하나님 사랑에서 떠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징계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이마저도 임하지 않지요. 완전히 원수 마귀 사단에 사로잡혀 어둠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를 짓다가 결국 지옥에 갈 수밖에 없지요.
혹여 죄를 범하였는데 징계가 임하지 않았다고 "그럼 나는 완전히 버림받았구나!" 하며 자포자기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철저히 통회자복하여 죄 사함 받을 때까지 간절히 매달리고 매달려야지요.
그러나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증거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대충 하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통회자복이 나와야 하지요.
통회자복을 하면 반드시 눈물과 콧물과 함께 마음을 찢는 회개가 나옵니다. 이때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헐어지면서 마음이 가벼워지고 마음에 충만함이 임하지요. 통회자복은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하지요.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만일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2단계의 행함을 내보이고 있다면 문제가 있어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위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이 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고 시험 환난도 당하지요. 그러나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돌이키면 믿음의 3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 정체되어 있거나 도태되면 시험 환난이 오고 축복이나 응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혹여 나의 믿음이 지금 젖 먹이 신자에 머물러 있다면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믿음의 3단계인 밥 먹는 신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현재의 믿음 수준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마시고, 최상의 단계를 바라보며 오직 전진해 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으세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젖을 먹이듯 부드럽게 권면하며 말씀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어야 하는 사람을 ( )신자라 하며, 믿음이 성장
하여 스스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을 ( )신자라 한다.
2.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믿음의 분량은 몇 단계일까요?
젖 먹는 신자( ) 밥 먹는 신자 ( )
3. 믿음의 1단계와 2단계의 차이점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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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신이란?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을 말한다.
2012-05-25
제21과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
롬 7:21~25
읽을말씀 : 롬 7:21~25 | 외울말씀 : 마 7:14 ㅣ 참고 말씀:마 7:13~14, 벧전 5:8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믿음의 2단계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1단계에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 소리를 잘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지 못할뿐더러 진리가 무엇인지, 비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죄에 대한 감각이 없지요.
그러나 여기서 조금 더 성장하면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로 접어듭니다. 이때부터는 말씀을 배워서 알면서도 여전히 죄를 지으면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진리는 이것이 아닌데" 하며 마음의 곤고함을 느끼며 성령의 탄식 소리도 듣게 됩니다.
1.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믿음의 1단계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죄를 지어 놓고도 모릅니다. 이는 갓난아기가 발가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지요. 이때는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진리를 어기면 안 된다는 의식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의 분량이 그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믿음이 조금 더 자라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로 오릅니다. 이때부터는 말씀을 알기 때문에 범죄하면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마음의 곤고함도 느끼지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알았으니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직은 범사에 진리를 좇아 행하지는 못합니다. 때로는 진리대로 행하지만 죄와의 싸움에서 져서 힘들어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라" 하셨기에 그 말씀대로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집안이나 직장에 무슨 일이 있으면 온전히 주일 성수를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려고는 하지만 바쁜 일이 생기면 쉬고 맙니다. 또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합니다. 내 뜻에 맞지 않거나 상대가 큰소리를 내면 참지 못하여 혈기 내고 다투기도 하지요.
믿음의 2단계에서는 이런 모습이 나타나지만 절대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은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한다 해도 계속 노력해 가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단계에 있는 영혼들을 갈무리할 때 주의할 것은 무조건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 믿음의 분량에 맞게 지혜롭게 가르쳐야지요. 아직 술, 담배를 끊지 못한 사람에게 "술, 담배를 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하면, 거부감부터 들고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할 수 있지요. 이때는 "술, 담배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장성해지면 자연히 버려지니 믿고 기도하세요."라고 가르쳐야지요.
또한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가게 문을 연다면 "하나님은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기뻐하십니다. 주일 성수 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주일에 얻는 수입보다 더 큰 수입으로 축복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거예요."라고 믿음을 심어 주면서 부드럽게 권면해 주면 좋지요. 그 영혼이 죄의식을 느끼고 징계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게 할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힘든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에서는 신앙생활이 다소 어렵게 느껴집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배웠지만, 여전히 세상이 좋고 비진리를 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대등하여 팽팽히 싸울 때는 신앙생활이 가장 힘들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심해지면 마음이 곤고해지고 충만함이 떨어져서 신앙생활을 등한시 하거나 아예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으로 향하지요.
로마서 7장 21절 이하를 보면 선과 악이 내 안에서 싸울 때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든지가 잘 나옵니다. 즉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말씀하지요.
어떤 사람은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겠다고 죄를 지적하지 않는 교회를 찾아갑니다. 주일에 일을 해도 책망하지 않고,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교회를 좋다고 여기지요. 그러나 죄를 지적하지 않는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편할지 몰라도 죄를 해결할 수가 없으니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버리지도 않고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불과하며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믿음의 1단계에서 2단계가 되었다면 당연히 3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1단계로 퇴보하고 있으니 원수 마귀 사단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지요.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겨자씨만 한 믿음까지 빼앗기 위해 자꾸 육신의 생각을 불어넣습니다. 어둠의 세력들은 어찌하든 받은바 은혜를 저버리도록 세상을 취하게 미혹하지요.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도 성령의 충만함도 식어, 교회만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성령이 소멸되어 구원조차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말씀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는 "성령을 소멸치 말라"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어도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3.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모세를 따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보았습니다. 애굽에 열 재앙이 임하는 것도 보았고, 홍해에 이르러서는 바닷물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으며, 마라에 이르러서는 쓴물이 단물로 바뀌어 먹을 수 있었고, 신 광야에 이르러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지만 그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모세를 대적하고 원망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했기 때문에 현실에 닥친 모든 상황이 힘들게만 느껴졌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확고했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힘들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도 소망도 없으니 원망하다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지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어떤 마음과 믿음을 소유했느냐에 따라 삶의 판도가 달라집니다. 축복받고 형통한 삶이 될 수도 있고 반면, 시험 환난 속에 힘겨운 삶을 살 수도 있지요. 여러분이 복된 인생이 되고 싶다면 결코 믿음의 진보를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4.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결코 힘들지 않아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다른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밭에서 일하는 소가 주인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면 사랑을 받습니다. 그런데 말을 듣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갈 때는 매를 맞을 수밖에 없지요. 마찬가지로 "미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신앙생활이 쉬울 텐데, 하지 말라는 것을 하니까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하나하나 순종해 가다 보면 이것이 천국을 소유하는 기쁘고 행복한 길임을 깨우치게 되지요. 따라서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쌓는 데 그치지 말고 실천에 옮김으로 신속히 성결되어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2단계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다.
②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다.
③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을 느끼지 못한다.
④ 약속이 생기면 가끔씩 주일을 빠지기도 한다.
2.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초신자인데 주일날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이분에게 어떻게 말해 주는 것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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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출애굽'이란?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모세 선지자의 지도 아래 애굽을 탈출한 사건을 말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믿음의 2단계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1단계에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 소리를 잘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지 못할뿐더러 진리가 무엇인지, 비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죄에 대한 감각이 없지요.
그러나 여기서 조금 더 성장하면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로 접어듭니다. 이때부터는 말씀을 배워서 알면서도 여전히 죄를 지으면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진리는 이것이 아닌데" 하며 마음의 곤고함을 느끼며 성령의 탄식 소리도 듣게 됩니다.
1.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믿음의 1단계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죄를 지어 놓고도 모릅니다. 이는 갓난아기가 발가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지요. 이때는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진리를 어기면 안 된다는 의식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의 분량이 그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믿음이 조금 더 자라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로 오릅니다. 이때부터는 말씀을 알기 때문에 범죄하면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마음의 곤고함도 느끼지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알았으니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직은 범사에 진리를 좇아 행하지는 못합니다. 때로는 진리대로 행하지만 죄와의 싸움에서 져서 힘들어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라" 하셨기에 그 말씀대로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집안이나 직장에 무슨 일이 있으면 온전히 주일 성수를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려고는 하지만 바쁜 일이 생기면 쉬고 맙니다. 또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합니다. 내 뜻에 맞지 않거나 상대가 큰소리를 내면 참지 못하여 혈기 내고 다투기도 하지요.
믿음의 2단계에서는 이런 모습이 나타나지만 절대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은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한다 해도 계속 노력해 가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단계에 있는 영혼들을 갈무리할 때 주의할 것은 무조건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 믿음의 분량에 맞게 지혜롭게 가르쳐야지요. 아직 술, 담배를 끊지 못한 사람에게 "술, 담배를 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하면, 거부감부터 들고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할 수 있지요. 이때는 "술, 담배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장성해지면 자연히 버려지니 믿고 기도하세요."라고 가르쳐야지요.
또한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가게 문을 연다면 "하나님은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기뻐하십니다. 주일 성수 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주일에 얻는 수입보다 더 큰 수입으로 축복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거예요."라고 믿음을 심어 주면서 부드럽게 권면해 주면 좋지요. 그 영혼이 죄의식을 느끼고 징계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게 할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힘든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에서는 신앙생활이 다소 어렵게 느껴집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배웠지만, 여전히 세상이 좋고 비진리를 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대등하여 팽팽히 싸울 때는 신앙생활이 가장 힘들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심해지면 마음이 곤고해지고 충만함이 떨어져서 신앙생활을 등한시 하거나 아예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으로 향하지요.
로마서 7장 21절 이하를 보면 선과 악이 내 안에서 싸울 때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든지가 잘 나옵니다. 즉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말씀하지요.
어떤 사람은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겠다고 죄를 지적하지 않는 교회를 찾아갑니다. 주일에 일을 해도 책망하지 않고,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교회를 좋다고 여기지요. 그러나 죄를 지적하지 않는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편할지 몰라도 죄를 해결할 수가 없으니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버리지도 않고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불과하며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믿음의 1단계에서 2단계가 되었다면 당연히 3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1단계로 퇴보하고 있으니 원수 마귀 사단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지요.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겨자씨만 한 믿음까지 빼앗기 위해 자꾸 육신의 생각을 불어넣습니다. 어둠의 세력들은 어찌하든 받은바 은혜를 저버리도록 세상을 취하게 미혹하지요.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도 성령의 충만함도 식어, 교회만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성령이 소멸되어 구원조차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말씀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는 "성령을 소멸치 말라"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어도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3.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모세를 따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보았습니다. 애굽에 열 재앙이 임하는 것도 보았고, 홍해에 이르러서는 바닷물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으며, 마라에 이르러서는 쓴물이 단물로 바뀌어 먹을 수 있었고, 신 광야에 이르러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지만 그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모세를 대적하고 원망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했기 때문에 현실에 닥친 모든 상황이 힘들게만 느껴졌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확고했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힘들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도 소망도 없으니 원망하다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지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어떤 마음과 믿음을 소유했느냐에 따라 삶의 판도가 달라집니다. 축복받고 형통한 삶이 될 수도 있고 반면, 시험 환난 속에 힘겨운 삶을 살 수도 있지요. 여러분이 복된 인생이 되고 싶다면 결코 믿음의 진보를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4.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결코 힘들지 않아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다른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밭에서 일하는 소가 주인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면 사랑을 받습니다. 그런데 말을 듣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갈 때는 매를 맞을 수밖에 없지요. 마찬가지로 "미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신앙생활이 쉬울 텐데, 하지 말라는 것을 하니까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하나하나 순종해 가다 보면 이것이 천국을 소유하는 기쁘고 행복한 길임을 깨우치게 되지요. 따라서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쌓는 데 그치지 말고 실천에 옮김으로 신속히 성결되어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2단계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다.
②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다.
③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을 느끼지 못한다.
④ 약속이 생기면 가끔씩 주일을 빠지기도 한다.
2.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초신자인데 주일날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이분에게 어떻게 말해 주는 것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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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출애굽'이란?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모세 선지자의 지도 아래 애굽을 탈출한 사건을 말한다.
2012-05-18
제20과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
행 2:38~39
읽을말씀 : 행 2:38~39 | 외울말씀 : 요 1:12 l 참고 말씀:살전 5:19
교육목표 : 믿음의 분량 중 가장 낮은 단계인 구원받기 위한 믿음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에 따라 사후의 세계는 너무나 다릅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극명하게 갈라지기 때문에 구원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같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무조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대충대충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뜻과는 어긋나게 산다면 천국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믿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1. 구원받기 위한 믿음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일생 동안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에게 순종하여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면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나름대로 선하게 산다는 사람도 있지만 진리에 비춰 보면 원죄와 자범죄를 가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신 대로 율법의 의에 비추어 볼 때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밝은 빛으로 방 안을 비춰 보면 미세한 먼지까지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숨겨진 악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혈기, 다툼, 도적질 등 겉으로 드러난 죄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미움, 시기까지도 죄가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죄인들은 반드시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셨지요. 이 사실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여 호적에 이름을 올리듯이,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즉 하늘나라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구원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믿음을 말합니다.
2. 성령받기 위한 믿음
사도행전 19장 1~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지방에서 어떤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세례 요한의 세례도 받았지만 성령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임하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하나님의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욜 2:28, 행 2:17). 오늘날 그대로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은 사람이 모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마음 문을 열어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마음 안에 보내 주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사람에게 보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고 천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아 구원받은 믿음은 아직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죄와 싸워 버린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 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가장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한 편 강도의 믿음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3. 낙원에 들어간 한 편 강도
누가복음 23장 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두 강도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 박혔습니다. 이때 한 편 강도는 악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했지만, 다른 한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지요. 이에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낙원에서 그와 함께 있겠다 하신 것은 강도가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씀한 것이지, 예수님이 낙원에 계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낙원을 포함하여 모든 천국의 주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낙원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에 해당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으로 천국의 가장 변두리에 해당하며 상급이 없습니다. 그 강도는 다만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았을 뿐, 주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낙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한편 강도는 죽기 전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천국 낙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만 믿음의 1단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여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1단계 믿음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믿음이 좋아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육체의 일(행위로 짓는 죄)을 행하면 믿음의 1단계로 떨어져 버리지요.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령 받은 직후에는 성령이 충만하여 가르침 받는 대로 순종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을 바라봄으로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리면 다시 구습을 좇아 세상과 짝하며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이것이 지속되면 성령마저 소멸되어 1단계 믿음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지요.
그러므로 자신이 1단계 믿음에 속한다면 각종 예배와 기도회, 모임에 참석해서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그대로 순종함으로 믿음의 2, 3단계로 신속하게 성장시켜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꾸 죄를 범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려져 구원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어느 성도의 경우
소천한 어느 성도의 경우입니다. 예전에 자신이 병들어 있을 때 기도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였고, 아내도 죽을 고비에서 기도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그 은혜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사명을 감당하며 충성했지요.
그러나 막상 우리 교회에 큰 시험이 왔을 때 교회와 목자를 지키려 한 것이 아니라, 사단에게 생각을 내주며 입술로 낸 말들이 하나님 앞에 담이 되어 큰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충성하며 쌓아왔던 상급이 다 허물어졌지요. 게다가 기도의 능력이 오지 않으니 점점 믿음이 퇴보하여 구원조차 받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나마 예전에 목자를 붙좇으며 섬겼던 행함이 하나님께 기억되어 임종 직전에 회개하고 기도를 받아 간신히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은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이 아니며 오직 그 중심이 얼마나 합당하느냐에 있습니다. 또한 성령을 받고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 해도 말씀대로 행치 않고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쌓아 간다면 점점 성령이 소멸되어(살전 5:19) 결국 구원과는 멀어지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만일 믿음이 성장하다가 퇴보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결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자녀가 세월이 흘러도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부모는 얼마나 걱정이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아 겨자씨만 한 믿음을 소유했다면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우며 믿음의 성장을 이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받은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불같이 기도하며 힘쓰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반석을 지나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오기까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1단계와 관계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낙원 ② 구원받기 위한 믿음 ③ 성령받기 위한 믿음 ④ 자녀들의 믿음 ⑤ 1천층
2. 괄호 안을 채워 보세요.
낙원은 ( )를 영접하여 ( )을 선물로 받은 믿음의 ( )단계가 들어가는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한 것이 없기에 상급은 ( )
3.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구원받았을까요?
구원받았다면 그들의 천국 처소는 어디일까요? (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생명책'이란?
생명책은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한다. "누가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백보좌 대심판 때 하나의 증거 자료로 사용된다. 이 책은 푸른빛이 감도는 밝은 흰빛을 띠고 있다.
교육목표 : 믿음의 분량 중 가장 낮은 단계인 구원받기 위한 믿음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에 따라 사후의 세계는 너무나 다릅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극명하게 갈라지기 때문에 구원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같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무조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대충대충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뜻과는 어긋나게 산다면 천국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믿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1. 구원받기 위한 믿음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일생 동안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에게 순종하여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면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나름대로 선하게 산다는 사람도 있지만 진리에 비춰 보면 원죄와 자범죄를 가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신 대로 율법의 의에 비추어 볼 때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밝은 빛으로 방 안을 비춰 보면 미세한 먼지까지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숨겨진 악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혈기, 다툼, 도적질 등 겉으로 드러난 죄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미움, 시기까지도 죄가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죄인들은 반드시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셨지요. 이 사실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여 호적에 이름을 올리듯이,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즉 하늘나라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구원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믿음을 말합니다.
2. 성령받기 위한 믿음
사도행전 19장 1~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지방에서 어떤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세례 요한의 세례도 받았지만 성령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임하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하나님의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욜 2:28, 행 2:17). 오늘날 그대로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은 사람이 모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마음 문을 열어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마음 안에 보내 주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사람에게 보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고 천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아 구원받은 믿음은 아직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죄와 싸워 버린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 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가장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한 편 강도의 믿음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3. 낙원에 들어간 한 편 강도
누가복음 23장 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두 강도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 박혔습니다. 이때 한 편 강도는 악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했지만, 다른 한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지요. 이에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낙원에서 그와 함께 있겠다 하신 것은 강도가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씀한 것이지, 예수님이 낙원에 계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낙원을 포함하여 모든 천국의 주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낙원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에 해당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으로 천국의 가장 변두리에 해당하며 상급이 없습니다. 그 강도는 다만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았을 뿐, 주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낙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한편 강도는 죽기 전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천국 낙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만 믿음의 1단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여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1단계 믿음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믿음이 좋아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육체의 일(행위로 짓는 죄)을 행하면 믿음의 1단계로 떨어져 버리지요.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령 받은 직후에는 성령이 충만하여 가르침 받는 대로 순종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을 바라봄으로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리면 다시 구습을 좇아 세상과 짝하며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이것이 지속되면 성령마저 소멸되어 1단계 믿음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지요.
그러므로 자신이 1단계 믿음에 속한다면 각종 예배와 기도회, 모임에 참석해서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그대로 순종함으로 믿음의 2, 3단계로 신속하게 성장시켜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꾸 죄를 범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려져 구원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어느 성도의 경우
소천한 어느 성도의 경우입니다. 예전에 자신이 병들어 있을 때 기도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였고, 아내도 죽을 고비에서 기도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그 은혜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사명을 감당하며 충성했지요.
그러나 막상 우리 교회에 큰 시험이 왔을 때 교회와 목자를 지키려 한 것이 아니라, 사단에게 생각을 내주며 입술로 낸 말들이 하나님 앞에 담이 되어 큰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충성하며 쌓아왔던 상급이 다 허물어졌지요. 게다가 기도의 능력이 오지 않으니 점점 믿음이 퇴보하여 구원조차 받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나마 예전에 목자를 붙좇으며 섬겼던 행함이 하나님께 기억되어 임종 직전에 회개하고 기도를 받아 간신히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은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이 아니며 오직 그 중심이 얼마나 합당하느냐에 있습니다. 또한 성령을 받고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 해도 말씀대로 행치 않고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쌓아 간다면 점점 성령이 소멸되어(살전 5:19) 결국 구원과는 멀어지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만일 믿음이 성장하다가 퇴보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결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자녀가 세월이 흘러도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부모는 얼마나 걱정이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아 겨자씨만 한 믿음을 소유했다면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우며 믿음의 성장을 이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받은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불같이 기도하며 힘쓰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반석을 지나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오기까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1단계와 관계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낙원 ② 구원받기 위한 믿음 ③ 성령받기 위한 믿음 ④ 자녀들의 믿음 ⑤ 1천층
2. 괄호 안을 채워 보세요.
낙원은 ( )를 영접하여 ( )을 선물로 받은 믿음의 ( )단계가 들어가는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한 것이 없기에 상급은 ( )
3.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구원받았을까요?
구원받았다면 그들의 천국 처소는 어디일까요? (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생명책'이란?
생명책은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한다. "누가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백보좌 대심판 때 하나의 증거 자료로 사용된다. 이 책은 푸른빛이 감도는 밝은 흰빛을 띠고 있다.
2012-05-11
제19과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
요일 2:12~14, 겔 47:3~5
읽을말씀 : 요일 2:12~14, 겔 47:3~5 | 외울말씀 : 외울 말씀:엡 4:13 l 참고 말씀:롬 12:3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로마서 12장 3절에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말씀했듯이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구원받은 한 편 강도의 믿음과 주님을 위해 생명 다해 헌신한 베드로의 믿음은 천양지차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아주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1.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한 믿음의 단계
요한일서 2장 12~14절에 보면 영적인 믿음의 단계를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말씀하지요.
1) 자녀들의 믿음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습니다(요 1:12). 이렇게 죄 사함 받아 구원받은 믿음이 '자녀들의 믿음'입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상태이지요. 이때는 진리를 잘 모르기에 빛 가운데 살지도 못합니다. 단지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초신자의 믿음에 불과하지요.
자녀들의 믿음은 성령을 받아 거듭났지만 말씀을 행할 힘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과 짝하며 살아가지요. 주일 성수나 십일조 생활도 제대로 못합니다. 시험이나 핍박이 오면 금세 낙심하지요. 그러므로 안전하게 정착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지 않고 늘 관심과 사랑으로 돌아봐 줘야 합니다.
2) 아이들의 믿음
자녀들의 신앙이 자라면 아이들의 믿음이 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자녀가 젖먹이 때를 지나면 사물을 인지하고 부모를 알아보는 것과 같지요. 이때는 부모를 안다 해도 고향, 취향, 학력, 성품 등 깊은 내용까지는 모릅니다. 영적인 성장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막 알게 된 믿음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2장 14절에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말씀한 대로이지요. 아버지를 알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안다는 말입니다.
갓난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면 엄마, 아빠를 알아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말씀을 듣고 배워 나가면 하나님의 뜻과 마음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줄도 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때는 말씀에 순종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으며 시험이 오면 불평하거나 낙심하기도 합니다.
3) 청년들의 믿음
아이가 성장하면 청년이 되듯이, 영적으로도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신앙에 이릅니다. 이때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청년의 때를 맞습니다. 청년의 믿음에 이르면, 하나님 말씀이 그 안에 거하며 악한 자를 이길 정도로 강해집니다.
요한일서 2장 13~14절에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는 말씀대로이지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임해 있으므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천국 소망으로 가득하지요. 뿐만 아니라 악한 자, 곧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려 나가며 미혹을 받지 않지요. 어떠한 시험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으며 쉬지 않고 기도하여 감사함으로 넉넉히 이겨냅니다.
4) 아비들의 믿음
자기주장이 강하여 굽힐 줄 모르는 청년의 때를 지나 장년이 되면, 인생의 경륜이 쌓여 삶의 지혜가 보입니다. 매사에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 가만히 있어야 할 때를 알고,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고 잘 다스릴 수 있는지도 알지요. 청년이나 아이들의 시기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비의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근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4절에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말씀한 것입니다. 즉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이는 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철없는 아이가 자기 수준에서 부모를 이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아비의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근본까지 아는 차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근본을 알았기에 천지 창조를 비롯하여 무수한 비밀을 계시 받아 모세 오경을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도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단계'에 이르렀기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기쁘게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깊은 마음 곧 근본까지 알아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오직 예와 아멘만 할 수 있지요.
2. 에스겔의 이상을 통해 본 믿음의 분량
에스겔 47장 3~5절에 보면 물이 차오르는 높이로써 믿음의 분량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말씀하지요.
여기서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전에서 나온 하나님 말씀이 온 세상에 퍼져가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지요.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다 했는데 이는 장차 백보좌 대심판 때 주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고 그에 따라 심판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손에 줄을 잡은 사람은 주의 사자이며 그가 일천 척을 척량할 때마다 물이 발목에서부터 무릎과 허리, 그 이상으로 차오른다는 것은 바로 믿음의 분량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발목까지 물이 찼다는 것은 자녀의 믿음, 곧 겨우 구원받을 만한 믿음입니다. 무릎까지 찼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 허리까지 찼다는 것은 청년의 믿음을 나타내며 키를 넘을 만큼 창일하다는 것은 장성한 아비의 믿음을 뜻합니다.
일천 척을 척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넓고 큰마음과 한 치 오차도 없는 정확함, 모든 분야를 헤아리는 깊은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실 때 어느 한 면이 아니라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살핀다는 의미지요. 각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마음 깊은 곳까지도 정확히 살핌으로써 어느 누구도 억울하다 할 수 없도록 정확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믿음의 분량에 대해 곳곳에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여 우리가 더 큰 믿음의 분량,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도달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 말씀을 듣고 지식으로 알 뿐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행함으로 온전해질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서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주님과 동행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구원받은 한 편 강도는 어느 단계의 믿음을 소유했을까요? ( )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녀들의 믿음은 성령을 받고 구원받은 초신자의 믿음이다.
② 아이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알아 행한다.
③ 청년들의 믿음은 원수 마귀 사단을 말씀으로 물리친다.
④ 아비들의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근본까지 안다.
3. ( ) 안에 정답을 써넣어 보세요.
자녀들의 믿음 : 성전에서 나온 물이 ( )까지 찼다는 것
아이들의 믿음 : 성전에서 나온 물이 ( )까지 찼다는 것
청년들의 믿음 : 성전에서 나온 물이 ( )까지 찼다는 것
아비들의 믿음 : (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미래의 소망을 이미 소유한 것처럼 확신하니 결국 실상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란 육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실재를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적 믿음과 확신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로마서 12장 3절에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말씀했듯이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구원받은 한 편 강도의 믿음과 주님을 위해 생명 다해 헌신한 베드로의 믿음은 천양지차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아주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1.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한 믿음의 단계
요한일서 2장 12~14절에 보면 영적인 믿음의 단계를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말씀하지요.
1) 자녀들의 믿음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습니다(요 1:12). 이렇게 죄 사함 받아 구원받은 믿음이 '자녀들의 믿음'입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상태이지요. 이때는 진리를 잘 모르기에 빛 가운데 살지도 못합니다. 단지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초신자의 믿음에 불과하지요.
자녀들의 믿음은 성령을 받아 거듭났지만 말씀을 행할 힘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과 짝하며 살아가지요. 주일 성수나 십일조 생활도 제대로 못합니다. 시험이나 핍박이 오면 금세 낙심하지요. 그러므로 안전하게 정착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지 않고 늘 관심과 사랑으로 돌아봐 줘야 합니다.
2) 아이들의 믿음
자녀들의 신앙이 자라면 아이들의 믿음이 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자녀가 젖먹이 때를 지나면 사물을 인지하고 부모를 알아보는 것과 같지요. 이때는 부모를 안다 해도 고향, 취향, 학력, 성품 등 깊은 내용까지는 모릅니다. 영적인 성장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막 알게 된 믿음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2장 14절에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말씀한 대로이지요. 아버지를 알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안다는 말입니다.
갓난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면 엄마, 아빠를 알아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말씀을 듣고 배워 나가면 하나님의 뜻과 마음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줄도 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때는 말씀에 순종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으며 시험이 오면 불평하거나 낙심하기도 합니다.
3) 청년들의 믿음
아이가 성장하면 청년이 되듯이, 영적으로도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신앙에 이릅니다. 이때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청년의 때를 맞습니다. 청년의 믿음에 이르면, 하나님 말씀이 그 안에 거하며 악한 자를 이길 정도로 강해집니다.
요한일서 2장 13~14절에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는 말씀대로이지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임해 있으므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천국 소망으로 가득하지요. 뿐만 아니라 악한 자, 곧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려 나가며 미혹을 받지 않지요. 어떠한 시험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으며 쉬지 않고 기도하여 감사함으로 넉넉히 이겨냅니다.
4) 아비들의 믿음
자기주장이 강하여 굽힐 줄 모르는 청년의 때를 지나 장년이 되면, 인생의 경륜이 쌓여 삶의 지혜가 보입니다. 매사에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 가만히 있어야 할 때를 알고,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고 잘 다스릴 수 있는지도 알지요. 청년이나 아이들의 시기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비의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근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4절에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말씀한 것입니다. 즉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이는 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철없는 아이가 자기 수준에서 부모를 이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아비의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근본까지 아는 차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근본을 알았기에 천지 창조를 비롯하여 무수한 비밀을 계시 받아 모세 오경을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도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단계'에 이르렀기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기쁘게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깊은 마음 곧 근본까지 알아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오직 예와 아멘만 할 수 있지요.
2. 에스겔의 이상을 통해 본 믿음의 분량
에스겔 47장 3~5절에 보면 물이 차오르는 높이로써 믿음의 분량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말씀하지요.
여기서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전에서 나온 하나님 말씀이 온 세상에 퍼져가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지요.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다 했는데 이는 장차 백보좌 대심판 때 주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고 그에 따라 심판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손에 줄을 잡은 사람은 주의 사자이며 그가 일천 척을 척량할 때마다 물이 발목에서부터 무릎과 허리, 그 이상으로 차오른다는 것은 바로 믿음의 분량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발목까지 물이 찼다는 것은 자녀의 믿음, 곧 겨우 구원받을 만한 믿음입니다. 무릎까지 찼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 허리까지 찼다는 것은 청년의 믿음을 나타내며 키를 넘을 만큼 창일하다는 것은 장성한 아비의 믿음을 뜻합니다.
일천 척을 척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넓고 큰마음과 한 치 오차도 없는 정확함, 모든 분야를 헤아리는 깊은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실 때 어느 한 면이 아니라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살핀다는 의미지요. 각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마음 깊은 곳까지도 정확히 살핌으로써 어느 누구도 억울하다 할 수 없도록 정확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믿음의 분량에 대해 곳곳에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여 우리가 더 큰 믿음의 분량,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도달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 말씀을 듣고 지식으로 알 뿐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행함으로 온전해질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서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주님과 동행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구원받은 한 편 강도는 어느 단계의 믿음을 소유했을까요? ( )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녀들의 믿음은 성령을 받고 구원받은 초신자의 믿음이다.
② 아이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알아 행한다.
③ 청년들의 믿음은 원수 마귀 사단을 말씀으로 물리친다.
④ 아비들의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근본까지 안다.
3. ( ) 안에 정답을 써넣어 보세요.
자녀들의 믿음 : 성전에서 나온 물이 ( )까지 찼다는 것
아이들의 믿음 : 성전에서 나온 물이 ( )까지 찼다는 것
청년들의 믿음 : 성전에서 나온 물이 ( )까지 찼다는 것
아비들의 믿음 : (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미래의 소망을 이미 소유한 것처럼 확신하니 결국 실상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란 육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실재를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적 믿음과 확신을 의미한다.
2012-05-04
제18과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히 11:6
읽을말씀 : 히 11:6 | 외울말씀 : 고후 10:5 l 참고 말씀:롬10:17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시험 환난 속에 힘들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시간에 배운 대로 자신의 지식과 생각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 곧 육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이란?
영적인 믿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으로서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사실이 의심 없이 믿어집니다.
영적인 믿음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지요. 그러니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건이 믿어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지켜 행하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행복하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때 하나님께서 참 자녀라 인정하시며 응답과 축복으로 보장해 주십니다.
예를 들어,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똑같은 조건에서 한 사람은 다섯 가마를 소출하고, 다른 한 사람은 한 가마밖에 거두지 못했습니다. 누가 더 인정받고 칭찬을 받겠습니까? 당연히 많이 거둔 사람이지요. 다섯 가마를 수확한 사람은 부지런히 잡초를 뽑고 때를 좇아 물을 주며 땀 흘려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게 거둔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 농사를 게을리했기에 열매가 부실한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자신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베드로가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에는 달라졌지요. 바로 육적인 믿음이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탄없이 복음을 전하는 권능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기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을 갔지요.
이처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지켜 행하며 변함없는 중심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이므로 구원과 영생을 주는 것은 물론, 온전한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또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영육 간에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믿음은 응답의 열쇠요, 보배 중에 보배이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1) 의심을 가져오는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입력된 세상적인 지식은 대부분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 위배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데 큰 방해 요소가 되지요. 특히 진화론은 창조주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이론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진화론처럼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의심을 가져다주는 이론과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이론과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린다 해도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지요. 그러니 구원도, 기도의 응답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육적인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잡아 가두고 핍박했지요.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회심한 후 자신의 쌓아온 모든 지식과 이론과 생각을 깨뜨려 나갔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보면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깨뜨려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니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권능의 종이 되었지요. 따라서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려면 진리에 위배된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고후 10:5).
2)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들으며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가르침 받을 때 하나님에 대해 깊이 알게 되고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기에 많이 알수록 하나님의 마음도 더 밝히 알 수 있지요. 또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깨뜨려 나갈 수 있습니다.
만일 성경을 듣거나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도 모를뿐더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도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배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지만 지식으로만 쌓고 행하지 않으면 교만해질 수 있으므로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을 마치 행하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영적 믿음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교본만 수백 번, 수천 번 읽어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열심히 읽고 들으며 배웠어도 삶 가운데 적용하며 행치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지켜 행할 때 그것이 살아 역사하여 자신에게 생명이 되고, 응답과 축복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심 없이 말씀을 듣고 행하면 마음에 확신이 생기며 영적인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즉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지요.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행함이 더 온전케 되고, 능치 못할 일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1세대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하는데도 믿지 못하고 원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드리며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고백하였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다"고 악평하는가 하면,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하며 한 장관을 세워 돌아가자고까지 하였습니다. 영적인 믿음이 아니라 육적인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땅에 내린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고,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시며,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등 하나님의 역사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여전히 육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었지요. 영적인 믿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지켜 순종할 때 주어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워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것은 물론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
2.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을 원망 불평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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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빈칸을 채워 보세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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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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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여호수아 : 에브라임 지파인 눈의 아들이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모세의 수종자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갈렙과 함께 확고한 믿음의 모본을 보였다.
갈렙 : 유다 지파인 여분네의 아들이다. 가나안을 차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순종함으로 가나안 땅 헤브론에 정착하는 복을 누렸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시험 환난 속에 힘들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시간에 배운 대로 자신의 지식과 생각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 곧 육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이란?
영적인 믿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으로서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사실이 의심 없이 믿어집니다.
영적인 믿음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지요. 그러니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건이 믿어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지켜 행하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행복하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때 하나님께서 참 자녀라 인정하시며 응답과 축복으로 보장해 주십니다.
예를 들어,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똑같은 조건에서 한 사람은 다섯 가마를 소출하고, 다른 한 사람은 한 가마밖에 거두지 못했습니다. 누가 더 인정받고 칭찬을 받겠습니까? 당연히 많이 거둔 사람이지요. 다섯 가마를 수확한 사람은 부지런히 잡초를 뽑고 때를 좇아 물을 주며 땀 흘려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게 거둔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 농사를 게을리했기에 열매가 부실한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자신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베드로가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에는 달라졌지요. 바로 육적인 믿음이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탄없이 복음을 전하는 권능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기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을 갔지요.
이처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지켜 행하며 변함없는 중심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이므로 구원과 영생을 주는 것은 물론, 온전한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또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영육 간에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믿음은 응답의 열쇠요, 보배 중에 보배이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1) 의심을 가져오는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입력된 세상적인 지식은 대부분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 위배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데 큰 방해 요소가 되지요. 특히 진화론은 창조주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이론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진화론처럼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의심을 가져다주는 이론과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이론과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린다 해도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지요. 그러니 구원도, 기도의 응답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육적인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잡아 가두고 핍박했지요.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회심한 후 자신의 쌓아온 모든 지식과 이론과 생각을 깨뜨려 나갔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보면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깨뜨려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니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권능의 종이 되었지요. 따라서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려면 진리에 위배된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고후 10:5).
2)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들으며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가르침 받을 때 하나님에 대해 깊이 알게 되고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기에 많이 알수록 하나님의 마음도 더 밝히 알 수 있지요. 또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깨뜨려 나갈 수 있습니다.
만일 성경을 듣거나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도 모를뿐더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도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배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지만 지식으로만 쌓고 행하지 않으면 교만해질 수 있으므로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을 마치 행하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영적 믿음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교본만 수백 번, 수천 번 읽어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열심히 읽고 들으며 배웠어도 삶 가운데 적용하며 행치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지켜 행할 때 그것이 살아 역사하여 자신에게 생명이 되고, 응답과 축복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심 없이 말씀을 듣고 행하면 마음에 확신이 생기며 영적인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즉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지요.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행함이 더 온전케 되고, 능치 못할 일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1세대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하는데도 믿지 못하고 원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드리며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고백하였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다"고 악평하는가 하면,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하며 한 장관을 세워 돌아가자고까지 하였습니다. 영적인 믿음이 아니라 육적인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땅에 내린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고,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시며,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등 하나님의 역사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여전히 육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었지요. 영적인 믿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지켜 순종할 때 주어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워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것은 물론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
2.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을 원망 불평했던 것일까요?
----------------------------------------------------------------
3.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빈칸을 채워 보세요.
첫째,
----------------------------------------------------------------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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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여호수아 : 에브라임 지파인 눈의 아들이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모세의 수종자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갈렙과 함께 확고한 믿음의 모본을 보였다.
갈렙 : 유다 지파인 여분네의 아들이다. 가나안을 차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순종함으로 가나안 땅 헤브론에 정착하는 복을 누렸다.
2012-04-27
제17과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
히 11:1~3
읽을말씀 : 히 11:1~3 | 외울말씀 : 막 9:23 ㅣ 참고 말씀:약 2:26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과 반대되는 육적인 믿음의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보배 중에 보배요,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어떠한 일이라도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심지어 하늘의 해와 달을 멈추거나 홍해 바다를 가르기도 하며, 전쟁터에서 승리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하는 무수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사람이 질병과 연약함을 고침 받는 것도, 가정과 사업터의 꼬인 문제들을 해결받는 것도 믿음만 있다면 어려울 것이 없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참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입술로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고 "주여 믿습니다" 기도한다 해도, 참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영적인 믿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보면 구원의 확신조차 없이 막연하게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질병과 각종 문제들로 고통 받으며 시험 환난 속에 살아가기 마련이지요.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믿습니다!" 기도했는데도 응답받지 못한다면 자신의 믿음이 참 믿음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하지요.
시편 37편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고,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이는 참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참된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육적인 믿음
1) 자신의 지식과 생각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 믿음
육적인 믿음은 구원이나 신앙의 문제와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령, "이 물수건은 흰색입니다."라고 했을 때, 사실을 확인한 사람들은 누구나 믿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받아들인 지식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옳다고 배운 지식들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너무나 많지요. 나라와 민족, 개인마다 진리라고 생각하는 지식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오래전에는 지구가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고 배웠고 태양이 지구의 주변을 돈다고 배웠지요. 그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진리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이것을 진리로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어떤 것을 진리라고 배우면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지식과 맞지 않으면 진리를 비진리로 간주해 버리지요.
오늘날 복음을 듣고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어릴 때부터 진화론이라는 거짓 이론을 진리라고 배웠기 때문에 창조를 가르쳐 줘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진화론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짜맞춘 잘못된 이론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수천만 년, 수억만 년이 지나도 물고기가 육지 동물이 될 수 없고, 유인원인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면서도 성경을 자기의 지식과 이론에 맞는 부분만 믿습니다. 세상 지식과 이론에 맞추려고 하면, 성경에는 믿을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지요.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권능의 역사들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기사와 표적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상징이나 비유라 여기지요.
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다 하면 얕은 곳을 걸었다고 합니다. 약을 먹고 수술해서 질병이 나았다면 믿어지지만 단지 기도만 받고 치료받았다고 하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요. 이런 믿음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참된 믿음은 자신의 생각과 지식에 상관없이 성경 말씀 전체가 하나님 말씀이요 절대적인 진리임을 믿는 것입니다.
2) 변개하는 믿음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 기도하며 충성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응답이 오지 않자 조급해지고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왜 다른 사람은 금방 응답해 주시고 나는 이렇게 들어주시지 않나?"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점점 은혜가 떨어지고 예전에 응답받은 것이나 다른 사람의 간증까지도 우연의 일치로 돌립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처럼 변개하는 믿음은 응답받을 수 있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줄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질병의 문제도 그러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말씀한 대로, 약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저주를 대속하셨으니 이미 나음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다면 더 이상 힘들고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소망으로 가득차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응답받았다는 믿음에 변개함이 없을 때 온전히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3) 행함이 없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별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으로가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건강이나 물질,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 종의 명령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오랜 가뭄 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양식을 엘리야에게 드렸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면 도무지 드릴 수 없는 생명과 같은 양식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뭄이 끝날 때까지 기름병과 가루통에서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지요(왕상 17장).
그런데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들어서 지식으로는 알지만 막상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면 행하지 못합니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하겠다 싶으면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지 않는가 하면, 각종 예물을 심는 것에도 인색합니다. 하나님께 심는 것마다 축복으로 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인색하게 드리지 않습니다. 지식으로만 알기 때문에 아까워하고 온전한 행함이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사람이라면 질병에 걸렸을 때 어찌 세상 방법을 동원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지식으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방법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 얼마나 서운해하시는 지는 아사 왕이 병들었을 때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다가 죽었다 한 기록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대하 16:12~13).
그 밖에도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섬기라, 화평하라' 말씀하신 것을 줄줄 암송해도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했으니 육적인 믿음은 응답이나 축복은 물론, 자칫하면 구원조차 받을 수 없음을 기억하여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응답의 열쇠요, 보배 중에 보배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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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 안에 육적인 믿음의 특징을 써 넣으시오.
첫째, 자신의 ( )과 ( )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다.
둘째, ( )하는 믿음이다.
셋째, ( )이 없는 믿음이다.
3.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까?"라는 미심쩍은 마음이 자꾸 듭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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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진화론'이란?
각종 동식물은 서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로, 단순한 형태로부터 복잡한 형태로,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완전한 것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생물학 이론이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론과 정반대되는 이론이다. 진화론은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나왔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과 반대되는 육적인 믿음의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보배 중에 보배요,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어떠한 일이라도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심지어 하늘의 해와 달을 멈추거나 홍해 바다를 가르기도 하며, 전쟁터에서 승리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하는 무수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사람이 질병과 연약함을 고침 받는 것도, 가정과 사업터의 꼬인 문제들을 해결받는 것도 믿음만 있다면 어려울 것이 없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참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입술로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고 "주여 믿습니다" 기도한다 해도, 참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영적인 믿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보면 구원의 확신조차 없이 막연하게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질병과 각종 문제들로 고통 받으며 시험 환난 속에 살아가기 마련이지요.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믿습니다!" 기도했는데도 응답받지 못한다면 자신의 믿음이 참 믿음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하지요.
시편 37편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고,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이는 참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참된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육적인 믿음
1) 자신의 지식과 생각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 믿음
육적인 믿음은 구원이나 신앙의 문제와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령, "이 물수건은 흰색입니다."라고 했을 때, 사실을 확인한 사람들은 누구나 믿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받아들인 지식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옳다고 배운 지식들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너무나 많지요. 나라와 민족, 개인마다 진리라고 생각하는 지식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오래전에는 지구가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고 배웠고 태양이 지구의 주변을 돈다고 배웠지요. 그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진리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이것을 진리로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어떤 것을 진리라고 배우면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지식과 맞지 않으면 진리를 비진리로 간주해 버리지요.
오늘날 복음을 듣고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어릴 때부터 진화론이라는 거짓 이론을 진리라고 배웠기 때문에 창조를 가르쳐 줘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진화론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짜맞춘 잘못된 이론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수천만 년, 수억만 년이 지나도 물고기가 육지 동물이 될 수 없고, 유인원인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면서도 성경을 자기의 지식과 이론에 맞는 부분만 믿습니다. 세상 지식과 이론에 맞추려고 하면, 성경에는 믿을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지요.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권능의 역사들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기사와 표적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상징이나 비유라 여기지요.
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다 하면 얕은 곳을 걸었다고 합니다. 약을 먹고 수술해서 질병이 나았다면 믿어지지만 단지 기도만 받고 치료받았다고 하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요. 이런 믿음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참된 믿음은 자신의 생각과 지식에 상관없이 성경 말씀 전체가 하나님 말씀이요 절대적인 진리임을 믿는 것입니다.
2) 변개하는 믿음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 기도하며 충성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응답이 오지 않자 조급해지고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왜 다른 사람은 금방 응답해 주시고 나는 이렇게 들어주시지 않나?"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점점 은혜가 떨어지고 예전에 응답받은 것이나 다른 사람의 간증까지도 우연의 일치로 돌립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처럼 변개하는 믿음은 응답받을 수 있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줄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질병의 문제도 그러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말씀한 대로, 약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저주를 대속하셨으니 이미 나음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다면 더 이상 힘들고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소망으로 가득차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응답받았다는 믿음에 변개함이 없을 때 온전히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3) 행함이 없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별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으로가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건강이나 물질,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 종의 명령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오랜 가뭄 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양식을 엘리야에게 드렸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면 도무지 드릴 수 없는 생명과 같은 양식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뭄이 끝날 때까지 기름병과 가루통에서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지요(왕상 17장).
그런데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들어서 지식으로는 알지만 막상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면 행하지 못합니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하겠다 싶으면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지 않는가 하면, 각종 예물을 심는 것에도 인색합니다. 하나님께 심는 것마다 축복으로 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인색하게 드리지 않습니다. 지식으로만 알기 때문에 아까워하고 온전한 행함이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사람이라면 질병에 걸렸을 때 어찌 세상 방법을 동원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지식으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방법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 얼마나 서운해하시는 지는 아사 왕이 병들었을 때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다가 죽었다 한 기록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대하 16:12~13).
그 밖에도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섬기라, 화평하라' 말씀하신 것을 줄줄 암송해도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했으니 육적인 믿음은 응답이나 축복은 물론, 자칫하면 구원조차 받을 수 없음을 기억하여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응답의 열쇠요, 보배 중에 보배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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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 안에 육적인 믿음의 특징을 써 넣으시오.
첫째, 자신의 ( )과 ( )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다.
둘째, ( )하는 믿음이다.
셋째, ( )이 없는 믿음이다.
3.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까?"라는 미심쩍은 마음이 자꾸 듭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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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진화론'이란?
각종 동식물은 서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로, 단순한 형태로부터 복잡한 형태로,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완전한 것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생물학 이론이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론과 정반대되는 이론이다. 진화론은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나왔다.
2012-04-20
제16과그리스도의 사랑
엡 5:2
읽을말씀 : 엡 5:2 | 외울말씀 : 엡 5:2 ㅣ 참고 말씀:롬 8:35~39
교육목표 : 인류를 위해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본받게 한다.
젊은 수도사가 작은 마을에 부임하여 어려운 이들을 가족처럼 사랑하고 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 처녀가 임신한 사실이 마을에 알려져 죽게 될 위기에 처하자 그만 수도사가 임신시킨 장본인이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분노에 찬 주민들은 수도사를 돌로 쳐 죽이고 맙니다. 피투성이가 된 시신을 추스르다가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던 것입니다. 수도사는 충분히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을 살리기 위해 침묵으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을까요?
1.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영광스런 분이 죄악에 물들어 하나님 형상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또한 참된 양식이 되시기 위해(요 6:51) 짐승의 먹이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대로 주무실 곳이 없어 들에서 몸을 누이며 추위를 견디셨고, 먹을 것이 없어 주리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수님은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첫 표적을 신호탄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지요.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들었습니다. 문둥병자가 고침 받았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었으며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어둠의 세력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죽은 지 나흘이 된 썩은 사람이 무덤에서 걸어 나왔지요(요 11장).
근본 하나님과 하나이며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은 율법 또한 온전히 지키셨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정죄하지도 않으셨지요. 다만 한 영혼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밤낮 진리로 가르치셨습니다.
2.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
성경에는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지 행위로 율법을 지키는 데 그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행하기를 바라시지요.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 마음을 잘 아시기에 친히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한 여인의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께 고소합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당장에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율법대로 하면 예수님을 사랑이 없다 할 것이고, 용서하라 하면 율법을 무시하는 사람이라 정죄할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 없이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군중에게 해당되는 죄목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하나 써내려 가시는 자신의 죄목을 보고 차마 돌을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나하나 그 자리를 떠나고 여인만 남게 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도 여인을 정죄치 않으셨지요. 이처럼 예수님은 여인뿐 아니라, 그녀를 정죄했던 자들이라 할지라도 율법으로 찌르지 않고,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율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말씀했지요.
누군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한다면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알 수 없지만 율법이 있기에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율법을 지키게 되며, 율법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습니다.
3.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 섭리를 이루신 사랑
3년간 공생애가 끝나갈 무렵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는 죄가 전혀 없는 예수님 자신의 피 값으로 모든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생명을 건 절규였습니다. 얼마나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질 정도였습니다(눅 22:42~44).
그날 밤 군병들에게 잡히신 예수님은 심문을 받으신 뒤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침을 뱉고 때리며 처형장으로 끌고 갔습니다(마 27:28~31). 밤새 희롱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아 피로 얼룩진 몸으로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이른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우리를 속량하려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다 쏟으셨습니다.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생각으로 지은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가 손과 발로 지은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용서와 사랑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기도하시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6시간이나 달려 고통당하신 뒤 운명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사랑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허물어지고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대제사장이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대속할 제사를 드렸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직접 죄를 고하며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었지요.
4. 천국 처소를 예비하며 한 영혼이라도 더 이끄시는 사랑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말씀합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바로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지요.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중보 기도를 올리고 계십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간절히 기도하시지요(마 26:29). 우리가 인간 경작을 잘 받아 승리하고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도록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 경작을 마친 후 백보좌 대심판 때에도 주님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십니다. 공의 가운데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한 일들에 대해 심판받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자녀들이 더 좋은 천국의 처소와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변호해 주십니다. 직접 사람들이 겪는 모든 것을 체험하셨기에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상대의 입장에서 대변해 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는 생명 다한 사랑이셨습니다. 과연 이 사랑에서 누가 우리를 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외치심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왜 예수님은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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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이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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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관한 성경 구절을 찾으시오.
① 요한복음 1:12 ② 요한복음 1:14 ③ 사무엘상 15:22 ④ 요한복음 4:24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골고다'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곳이다. '해골'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 많은 시체가 버려져 해골이 많고, 해골 모양의 언덕으로 되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교육목표 : 인류를 위해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본받게 한다.
젊은 수도사가 작은 마을에 부임하여 어려운 이들을 가족처럼 사랑하고 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 처녀가 임신한 사실이 마을에 알려져 죽게 될 위기에 처하자 그만 수도사가 임신시킨 장본인이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분노에 찬 주민들은 수도사를 돌로 쳐 죽이고 맙니다. 피투성이가 된 시신을 추스르다가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던 것입니다. 수도사는 충분히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을 살리기 위해 침묵으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을까요?
1.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영광스런 분이 죄악에 물들어 하나님 형상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또한 참된 양식이 되시기 위해(요 6:51) 짐승의 먹이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대로 주무실 곳이 없어 들에서 몸을 누이며 추위를 견디셨고, 먹을 것이 없어 주리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수님은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첫 표적을 신호탄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지요.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들었습니다. 문둥병자가 고침 받았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었으며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어둠의 세력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죽은 지 나흘이 된 썩은 사람이 무덤에서 걸어 나왔지요(요 11장).
근본 하나님과 하나이며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은 율법 또한 온전히 지키셨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정죄하지도 않으셨지요. 다만 한 영혼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밤낮 진리로 가르치셨습니다.
2.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
성경에는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지 행위로 율법을 지키는 데 그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행하기를 바라시지요.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 마음을 잘 아시기에 친히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한 여인의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께 고소합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당장에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율법대로 하면 예수님을 사랑이 없다 할 것이고, 용서하라 하면 율법을 무시하는 사람이라 정죄할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 없이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군중에게 해당되는 죄목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하나 써내려 가시는 자신의 죄목을 보고 차마 돌을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나하나 그 자리를 떠나고 여인만 남게 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도 여인을 정죄치 않으셨지요. 이처럼 예수님은 여인뿐 아니라, 그녀를 정죄했던 자들이라 할지라도 율법으로 찌르지 않고,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율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말씀했지요.
누군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한다면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알 수 없지만 율법이 있기에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율법을 지키게 되며, 율법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습니다.
3.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 섭리를 이루신 사랑
3년간 공생애가 끝나갈 무렵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는 죄가 전혀 없는 예수님 자신의 피 값으로 모든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생명을 건 절규였습니다. 얼마나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질 정도였습니다(눅 22:42~44).
그날 밤 군병들에게 잡히신 예수님은 심문을 받으신 뒤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침을 뱉고 때리며 처형장으로 끌고 갔습니다(마 27:28~31). 밤새 희롱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아 피로 얼룩진 몸으로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이른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우리를 속량하려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다 쏟으셨습니다.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생각으로 지은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가 손과 발로 지은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용서와 사랑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기도하시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6시간이나 달려 고통당하신 뒤 운명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사랑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허물어지고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대제사장이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대속할 제사를 드렸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직접 죄를 고하며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었지요.
4. 천국 처소를 예비하며 한 영혼이라도 더 이끄시는 사랑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말씀합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바로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지요.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중보 기도를 올리고 계십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간절히 기도하시지요(마 26:29). 우리가 인간 경작을 잘 받아 승리하고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도록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 경작을 마친 후 백보좌 대심판 때에도 주님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십니다. 공의 가운데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한 일들에 대해 심판받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자녀들이 더 좋은 천국의 처소와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변호해 주십니다. 직접 사람들이 겪는 모든 것을 체험하셨기에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상대의 입장에서 대변해 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는 생명 다한 사랑이셨습니다. 과연 이 사랑에서 누가 우리를 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외치심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왜 예수님은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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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이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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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관한 성경 구절을 찾으시오.
① 요한복음 1:12 ② 요한복음 1:14 ③ 사무엘상 15:22 ④ 요한복음 4:24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골고다'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곳이다. '해골'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 많은 시체가 버려져 해골이 많고, 해골 모양의 언덕으로 되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2012-04-13
제15과하나님의 사랑
요일 4:16
읽을말씀 : 요일 4:16 | 외울말씀 : 이 49:15 ㅣ 참고 말씀:롬 8:26~27
교육목표 :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깨닫고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미국에서 9·11 테러로 수많은 사람이 참사를 당했을 때의 일입니다. 구조대원들이 어느 시신의 꽉 움켜쥔 손을 보며 '뭐가 그리 소중하기에 죽어가면서까지 놓지 못했을까?' 궁금하여 굳은 손가락을 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어린아이의 손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식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그 손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떨까요?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1.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신 뒤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그곳은 신비하리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갖가지 꽃과 나무들이 자라고 사랑스러운 동물들이 뛰놀며 어디를 가든지 풍성한 열매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위해 하와라는 사랑스런 배필도 주셨습니다.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홀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미리 헤아려 베푸신 사랑이지요.
첫 사람 아담은 하와와 함께 최상의 환경 속에서 오랜 세월 하나님과 동행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큰 권세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지요. 불행이나 죽음을 느껴 보지 못했기에 그 의미를 몰랐고, 미움을 겪어본 일이 없기에 사랑의 진정한 가치도 몰랐지요. 즉 상대성을 체험해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하셨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지만 아담과 하와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여기에는 인간 경작이라는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눈물, 슬픔, 고통, 사망 등을 체험함으로 장차 천국에 이르러 자신이 누리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에덴동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천국에서 세세토록 사랑을 주고받으며 참된 행복을 누리기 원하신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천하 만물을 호령하던 아담이 권세를 잃으니 그 아래 있던 동식물까지도 저주를 받았지요. 풍요롭고 아름답던 이 땅도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며, 땀 흘려 수고하지 않으면 소산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이지만 에덴동산과 전혀 환경이 다른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그들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혀 이 땅으로 내려 보내셨습니다. 자녀의 장래를 위해 잠시 곁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처럼 애처러우셨지요.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달리 인간 경작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급속도로 죄로 물들어 하나님과 멀어져갔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21~23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말씀합니다.
2.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하나님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특정 시대, 특정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러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빠져 사망으로 달음박질해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범할 것을 아셨기에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지요. 그리고 때가 이르매 예수님의 보혈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죄인들이 치러야 할 죗값을 대신 지불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속량하기 위해 예수님의 보혈을 흘리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한 사랑이셨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아무 죄가 없으셨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고, 이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독생자 아들을 주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는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신 것은 사랑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3.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은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 우리 마음 안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돕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26~27절에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말씀한 대로 성령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돌이키도록 이끄십니다. 믿음이 적은 이에게 믿음을 더하고 소망이 없는 이에게는 천국 소망을 더해 주십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하듯이 넘어질세라, 다칠세라 때에 따라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천국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시지요.
이러한 사랑을 깊이 깨우친다면 누구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되돌려 주십니다. 강건함의 축복뿐만 아니라 범사에 잘되고 형통한 복을 주십니다. 이는 영계의 법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축복과 응답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 갖가지 문제를 해결 받았을 때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셨다."는 사랑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했을 것입니다. 근심 걱정이 없고 질병이나 고통 사망이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가슴 벅찼지요.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장 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까닭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아름다운 면류관과 빛나는 세마포 옷, 황금 보석으로 만들어진 천국 집 등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선물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런 상급과 선물을 준비하고 영원한 영광 중에 함께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심으로 늘 감사가 넘쳐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말씀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이사야 49:15 ② 요한일서 4:16
③ 요한일서 4:9 ④ 고린도후서 5:17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관해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②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다.
③ 참 자녀와 사랑을 나누시기 위해 인간을 경작하셨다.
④ 우리 안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천국까지 인도하고 계신다.
3.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진하게 느껴질 때는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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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선악과'란?
에덴동산 중앙에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이다. 생명과일은 사과와 비슷한 모양에 홍조를 띠지만 선악과는 복숭아와 비슷한 모양이며 분홍빛을 띤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에 대해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고 엄히 경계하셨다. 그런데 하와가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 주어 먹게 함으로 결국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교육목표 :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깨닫고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미국에서 9·11 테러로 수많은 사람이 참사를 당했을 때의 일입니다. 구조대원들이 어느 시신의 꽉 움켜쥔 손을 보며 '뭐가 그리 소중하기에 죽어가면서까지 놓지 못했을까?' 궁금하여 굳은 손가락을 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어린아이의 손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식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그 손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떨까요?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1.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신 뒤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그곳은 신비하리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갖가지 꽃과 나무들이 자라고 사랑스러운 동물들이 뛰놀며 어디를 가든지 풍성한 열매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위해 하와라는 사랑스런 배필도 주셨습니다.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홀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미리 헤아려 베푸신 사랑이지요.
첫 사람 아담은 하와와 함께 최상의 환경 속에서 오랜 세월 하나님과 동행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큰 권세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지요. 불행이나 죽음을 느껴 보지 못했기에 그 의미를 몰랐고, 미움을 겪어본 일이 없기에 사랑의 진정한 가치도 몰랐지요. 즉 상대성을 체험해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하셨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지만 아담과 하와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여기에는 인간 경작이라는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눈물, 슬픔, 고통, 사망 등을 체험함으로 장차 천국에 이르러 자신이 누리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에덴동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천국에서 세세토록 사랑을 주고받으며 참된 행복을 누리기 원하신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천하 만물을 호령하던 아담이 권세를 잃으니 그 아래 있던 동식물까지도 저주를 받았지요. 풍요롭고 아름답던 이 땅도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며, 땀 흘려 수고하지 않으면 소산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이지만 에덴동산과 전혀 환경이 다른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그들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혀 이 땅으로 내려 보내셨습니다. 자녀의 장래를 위해 잠시 곁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처럼 애처러우셨지요.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달리 인간 경작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급속도로 죄로 물들어 하나님과 멀어져갔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21~23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말씀합니다.
2.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하나님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특정 시대, 특정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러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빠져 사망으로 달음박질해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범할 것을 아셨기에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지요. 그리고 때가 이르매 예수님의 보혈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죄인들이 치러야 할 죗값을 대신 지불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속량하기 위해 예수님의 보혈을 흘리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한 사랑이셨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아무 죄가 없으셨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고, 이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독생자 아들을 주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는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신 것은 사랑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3.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은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 우리 마음 안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돕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26~27절에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말씀한 대로 성령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돌이키도록 이끄십니다. 믿음이 적은 이에게 믿음을 더하고 소망이 없는 이에게는 천국 소망을 더해 주십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하듯이 넘어질세라, 다칠세라 때에 따라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천국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시지요.
이러한 사랑을 깊이 깨우친다면 누구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되돌려 주십니다. 강건함의 축복뿐만 아니라 범사에 잘되고 형통한 복을 주십니다. 이는 영계의 법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축복과 응답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 갖가지 문제를 해결 받았을 때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셨다."는 사랑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했을 것입니다. 근심 걱정이 없고 질병이나 고통 사망이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가슴 벅찼지요.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장 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까닭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아름다운 면류관과 빛나는 세마포 옷, 황금 보석으로 만들어진 천국 집 등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선물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런 상급과 선물을 준비하고 영원한 영광 중에 함께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심으로 늘 감사가 넘쳐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말씀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이사야 49:15 ② 요한일서 4:16
③ 요한일서 4:9 ④ 고린도후서 5:17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관해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②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다.
③ 참 자녀와 사랑을 나누시기 위해 인간을 경작하셨다.
④ 우리 안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천국까지 인도하고 계신다.
3.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진하게 느껴질 때는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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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선악과'란?
에덴동산 중앙에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이다. 생명과일은 사과와 비슷한 모양에 홍조를 띠지만 선악과는 복숭아와 비슷한 모양이며 분홍빛을 띤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에 대해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고 엄히 경계하셨다. 그런데 하와가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 주어 먹게 함으로 결국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2012-04-06
제14과부활의 주
행 1:11
읽을말씀 : 행 1:11 | 외울말씀 : 고후 1:19 ㅣ 참고 말씀:빌 2:9~11
교육목표 :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은 하나님께 어떠한 열매로 나오셨는지 알아본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후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과 응답, 영생과 천국을 소유할 수 있도록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탐스런 열매를 맺기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부활의 주님은 순종의 열매를 드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어떤 고난이 따를지 잘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내려오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랐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19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 후 인생들은 점차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갔습니다. 죄를 짓고 불법을 행하며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녀들을 보시며 매우 슬퍼하셨지요.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 마음을 아셨고 그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셨습니다. 이에 죄인들을 구원하여 아버지 하나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자 예수님은 처참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며 구세주의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자신의 핏값으로 원수 마귀 사단에게서 영혼들을 사서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는 말씀대로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순종을 통해 많은 의인을 얻으셨고, 죄가 없으신 주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여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순종하면 축복이니까' 하는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오직 "예"와 "아멘"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좋은 것만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 순종하면 누구든지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부활의 주님은 사랑의 열매를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심으로 보배로운 사랑의 열매로 나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됨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예수님은 이 땅에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어떠한 고난도 달게 받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그리할 수 있었지요. 그 결과 어떤 사랑을 입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최고의 영광을 입혀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참으로 고단한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가난하게 사셨고 마치 종처럼 쉴 틈 없이 일하셨지요. 배고픔과 피곤함도 느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잡히셨을 때는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피조물들에게 멸시 천대를 받으셨지요.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제물로 바쳐진 짐승처럼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공간의 제약 없이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자유롭게 오가셨고, 문이 굳게 닫혀 있는데도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드셨고, 드시지 않아도 상관없는 몸이 되셨지요. 하물며 승천하신 주님은 얼마나 영화로우실까요? 그 영화는 이 세상의 언어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만 아니라 우리도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의 열매로 맺혀 하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려 주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이 땅에 보내셨지요.
물론 육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따릅니다. 온갖 죄악으로 더러워진 마음 가죽을 베어낼 때 그 과정에는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마음밭을 갈아엎고 돌과 가시떨기를 걷어내어 옥토로 개간하는 데에는 많은 수고가 따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서 영혼을 구원하려면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든 감내합니다.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입게 되지요. 그로 인한 영광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육을 입고 육의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다 이해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큰 영광을 입혀 주시지요. 물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날마다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능히 그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기에 주님께서 그 본을 보여 주신 것이지요. 따라서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서 아버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의 주님은 소망의 열매를 드리셨습니다
육의 사람들이 보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깊은 절망 속에 계신 듯 보였습니다. 아무 희망도 없어 보였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에는 소망으로 빛났습니다. 이로 인해 모진 고통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지요. 이 소망대로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셨고 큰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또한 죄인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들에게는 구원의 길과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지요.
마가복음 16장 19절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한 대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요한은 성령의 감동 속에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2~4절에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말씀했지요.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요한이 환상 가운데 보고 기록한 새 예루살렘 성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천국 중에서도 바로 이곳 새 예루살렘 성에 있지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은 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소망하시며 이 땅의 고난을 잘 이기셨습니다. 구속의 사역을 완수하신 후에는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이르셨지요. 하나님의 보좌 곁에는 24장로의 보좌들이 둘려 있습니다. 24장로들도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바라보고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과 주님의 보좌 곁에 앉게 되지요.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 소망을 안겨 주고 가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약속하셨지요. 여러분들이 이 소망을 품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만큼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여 온 영의 사람이 되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지요. 따라서 주님 마음을 온전히 닮아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은 하나님 앞에 어떤 열매로 나오셨을까요?
① 순종의 열매, ② 사랑의 열매, ③________________________
2. 부활의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_______________________
3. 여러분은 다시 오실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간절히 소망하시는지요?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22:13)
▶ 알파와 오메가 - 인류의 모든 지식과 문명을 시작하고 마무리 지으시는 성부 하나님을 표현한다.
▶ 처음과 나중 - 인간 구원을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재림을 통해 구속 사업을 마무리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의미한다.
▶ 시작과 끝 - 인간 경작의 시작과 끝을 감당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뜻한다.
교육목표 :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은 하나님께 어떠한 열매로 나오셨는지 알아본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후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과 응답, 영생과 천국을 소유할 수 있도록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탐스런 열매를 맺기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부활의 주님은 순종의 열매를 드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어떤 고난이 따를지 잘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내려오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랐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19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 후 인생들은 점차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갔습니다. 죄를 짓고 불법을 행하며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녀들을 보시며 매우 슬퍼하셨지요.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 마음을 아셨고 그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셨습니다. 이에 죄인들을 구원하여 아버지 하나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자 예수님은 처참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며 구세주의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자신의 핏값으로 원수 마귀 사단에게서 영혼들을 사서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는 말씀대로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순종을 통해 많은 의인을 얻으셨고, 죄가 없으신 주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여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순종하면 축복이니까' 하는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오직 "예"와 "아멘"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좋은 것만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 순종하면 누구든지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부활의 주님은 사랑의 열매를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심으로 보배로운 사랑의 열매로 나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됨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예수님은 이 땅에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어떠한 고난도 달게 받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그리할 수 있었지요. 그 결과 어떤 사랑을 입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최고의 영광을 입혀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참으로 고단한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가난하게 사셨고 마치 종처럼 쉴 틈 없이 일하셨지요. 배고픔과 피곤함도 느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잡히셨을 때는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피조물들에게 멸시 천대를 받으셨지요.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제물로 바쳐진 짐승처럼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공간의 제약 없이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자유롭게 오가셨고, 문이 굳게 닫혀 있는데도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드셨고, 드시지 않아도 상관없는 몸이 되셨지요. 하물며 승천하신 주님은 얼마나 영화로우실까요? 그 영화는 이 세상의 언어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만 아니라 우리도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의 열매로 맺혀 하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려 주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이 땅에 보내셨지요.
물론 육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따릅니다. 온갖 죄악으로 더러워진 마음 가죽을 베어낼 때 그 과정에는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마음밭을 갈아엎고 돌과 가시떨기를 걷어내어 옥토로 개간하는 데에는 많은 수고가 따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서 영혼을 구원하려면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든 감내합니다.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입게 되지요. 그로 인한 영광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육을 입고 육의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다 이해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큰 영광을 입혀 주시지요. 물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날마다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능히 그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기에 주님께서 그 본을 보여 주신 것이지요. 따라서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서 아버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의 주님은 소망의 열매를 드리셨습니다
육의 사람들이 보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깊은 절망 속에 계신 듯 보였습니다. 아무 희망도 없어 보였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에는 소망으로 빛났습니다. 이로 인해 모진 고통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지요. 이 소망대로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셨고 큰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또한 죄인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들에게는 구원의 길과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지요.
마가복음 16장 19절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한 대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요한은 성령의 감동 속에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2~4절에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말씀했지요.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요한이 환상 가운데 보고 기록한 새 예루살렘 성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천국 중에서도 바로 이곳 새 예루살렘 성에 있지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은 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소망하시며 이 땅의 고난을 잘 이기셨습니다. 구속의 사역을 완수하신 후에는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이르셨지요. 하나님의 보좌 곁에는 24장로의 보좌들이 둘려 있습니다. 24장로들도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바라보고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과 주님의 보좌 곁에 앉게 되지요.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 소망을 안겨 주고 가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약속하셨지요. 여러분들이 이 소망을 품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만큼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여 온 영의 사람이 되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지요. 따라서 주님 마음을 온전히 닮아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은 하나님 앞에 어떤 열매로 나오셨을까요?
① 순종의 열매, ② 사랑의 열매, ③________________________
2. 부활의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_______________________
3. 여러분은 다시 오실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간절히 소망하시는지요?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22:13)
▶ 알파와 오메가 - 인류의 모든 지식과 문명을 시작하고 마무리 지으시는 성부 하나님을 표현한다.
▶ 처음과 나중 - 인간 구원을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재림을 통해 구속 사업을 마무리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의미한다.
▶ 시작과 끝 - 인간 경작의 시작과 끝을 감당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