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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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6
제30과주님을 믿는다는 것
히 12:1~2
읽을말씀 : 히 12:1~2 | 외울말씀 : 히 12:2 l 참고 말씀:레 25:23~28
교육목표 : 예수님이 구세주 되시는 자격 조건과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참된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고 하지만 '왜 예수님만이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구원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인데도 사람들이 그 영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참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중에 한 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예수님은 결코 사람과 동격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흘러 이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원수 마귀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을 받아 그만 그 실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 하신 대로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에 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원수 마귀에 속한 자가 되고 말았지요(롬 6:16).
이처럼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후손인 모든 인류가 죄성을 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으니 영계에서도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망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요, 이 죽음은 영원한 형벌 곧 지옥을 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이 헐어지고 누구든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되었지요.
2.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아 첫 사람 아담이 누렸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의 토지 무르기법칙입니다. 이는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어도 근족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레 25:23~28). 천하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아담에게 넘겨받은 권세를 원수 마귀 사단이 영영히 소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담의 죄를 대속할 만한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되돌려 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예수님을 만세 전에 예비하고 비밀한 가운데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러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넘겨준 권세를 토지 무르기 법에 따라 어떻게 되돌려 받을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구세주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레위기 25장 25절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했습니다. 아담이 넘겨준 권세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하지요.
고린도전서 15장 21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했습니다. 즉 사망이 사람인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니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합니다(요 1:14).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죄를 대속하려면 죄인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예는 구세주의 조건에 합당치 않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남녀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마 1:18). 그러니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죄가 없으십니다.
셋째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가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을 때에 그것을 무르려면 부요하여 무를 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레 25:26~27). 아무리 마음은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빚을 갚아 줄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므로 원죄가 없고 말씀대로 사셨기에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없으셨습니다. 이처럼 죄가 없기 때문에 어둠의 권세를 굴복시키며 사망까지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의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도 사랑이 없으면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형이 아무리 대부호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빚더미에 앉은 동생을 도와주지 않지요. 만일 예수님께서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을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이 있으셨기에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므로 저주를 받아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율법의 저주에서 놓이게 하려면 예수님이 대신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지요.
또한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습니다. 피는 생명과 일체요,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기에 예수님이 흠없는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3.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진리로 변화되는 것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질병, 연약함, 가난 등 온갖 저주에서도 놓인 바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셔서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쓰셔서 우리 생각을 통해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셔서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 섭리를 바로 알고 마음 중심에서 믿는 사람이라면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응답받지 못하고 시험 환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믿는다고 하지만 참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죄를 버리지 않고 진리로 변화되지 않지요. 주일날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락을 즐기는가 하면 아예 지키지 않습니다. 또 십일조가 아까워 일부만 드리거나 아예 드리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니(말 3:8) 어찌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남의 잘못을 용서치 않고 되갚아 주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원망하고 탄식하지요.
주님을 진정 믿는다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악한 말을 내던 입술에서 선한 말로, 불평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고 주변에 은혜를 끼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악을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지요. 따라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참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주님만 바라보심으로 증인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을 써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힘이 있어야 한다.)
넷째, ( )
2. 죄인은 지옥으로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다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 롬 6:23)
3. 주님을 믿고 진리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적어 보세요.
( )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59~7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십일조'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식 규례로 드리기 시작한 것은 출애굽 이후부터이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정식 규례로 정해지기 전에 미리 주관을 받아 하나님께 드렸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일에, 영혼 구원하는 데 쓰여졌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며, 구원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분야이다.
교육목표 : 예수님이 구세주 되시는 자격 조건과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참된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고 하지만 '왜 예수님만이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구원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인데도 사람들이 그 영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참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중에 한 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예수님은 결코 사람과 동격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흘러 이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원수 마귀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을 받아 그만 그 실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 하신 대로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에 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원수 마귀에 속한 자가 되고 말았지요(롬 6:16).
이처럼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후손인 모든 인류가 죄성을 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으니 영계에서도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망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요, 이 죽음은 영원한 형벌 곧 지옥을 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이 헐어지고 누구든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되었지요.
2.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아 첫 사람 아담이 누렸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의 토지 무르기법칙입니다. 이는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어도 근족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레 25:23~28). 천하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아담에게 넘겨받은 권세를 원수 마귀 사단이 영영히 소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담의 죄를 대속할 만한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되돌려 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예수님을 만세 전에 예비하고 비밀한 가운데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러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넘겨준 권세를 토지 무르기 법에 따라 어떻게 되돌려 받을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구세주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레위기 25장 25절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했습니다. 아담이 넘겨준 권세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하지요.
고린도전서 15장 21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했습니다. 즉 사망이 사람인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니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합니다(요 1:14).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죄를 대속하려면 죄인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예는 구세주의 조건에 합당치 않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남녀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마 1:18). 그러니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죄가 없으십니다.
셋째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가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을 때에 그것을 무르려면 부요하여 무를 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레 25:26~27). 아무리 마음은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빚을 갚아 줄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므로 원죄가 없고 말씀대로 사셨기에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없으셨습니다. 이처럼 죄가 없기 때문에 어둠의 권세를 굴복시키며 사망까지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의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도 사랑이 없으면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형이 아무리 대부호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빚더미에 앉은 동생을 도와주지 않지요. 만일 예수님께서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을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이 있으셨기에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므로 저주를 받아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율법의 저주에서 놓이게 하려면 예수님이 대신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지요.
또한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습니다. 피는 생명과 일체요,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기에 예수님이 흠없는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3.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진리로 변화되는 것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질병, 연약함, 가난 등 온갖 저주에서도 놓인 바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셔서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쓰셔서 우리 생각을 통해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셔서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 섭리를 바로 알고 마음 중심에서 믿는 사람이라면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응답받지 못하고 시험 환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믿는다고 하지만 참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죄를 버리지 않고 진리로 변화되지 않지요. 주일날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락을 즐기는가 하면 아예 지키지 않습니다. 또 십일조가 아까워 일부만 드리거나 아예 드리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니(말 3:8) 어찌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남의 잘못을 용서치 않고 되갚아 주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원망하고 탄식하지요.
주님을 진정 믿는다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악한 말을 내던 입술에서 선한 말로, 불평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고 주변에 은혜를 끼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악을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지요. 따라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참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주님만 바라보심으로 증인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을 써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힘이 있어야 한다.)
넷째, ( )
2. 죄인은 지옥으로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다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 롬 6:23)
3. 주님을 믿고 진리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적어 보세요.
( )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59~7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십일조'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식 규례로 드리기 시작한 것은 출애굽 이후부터이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정식 규례로 정해지기 전에 미리 주관을 받아 하나님께 드렸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일에, 영혼 구원하는 데 쓰여졌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며, 구원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분야이다.
2013-07-19
제29과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히 11:3
읽을말씀 : 히 11:3 | 외울말씀 : 히 11:3 l 참고 말씀:막 9:23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 삶 속에서도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어느 날 벙어리 귀신 들려 고통받는 아들을 둔 아비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하실 수 있거든" 귀신을 쫓아달라고 간청했지요. 이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하시며 참 믿음을 깨우쳐 주셨지요. 우리가 참 믿음을 소유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므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먼저, 하나님은 성경 66권의 저자이십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했습니다. 66권으로 이루어진 성경은 약 1,600년간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는데도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짝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시대마다 합당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직접 계시하신 것이므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마다 약속하신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만들어진 시점이 있고 역사도 그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어떻게 존재하게 되셨는지 시작이 있어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시작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상상으로 지어내거나 손으로 조각한 우상과는 달리 영원 전부터 계신 참 신이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출 3:14). 만일 누군가 하나님을 낳거나 지었다면 하나님은 결코 완전한 분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요 1:1, 창 1:1).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무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 역시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음 받았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이 땅에서 경작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각 시대마다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권능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기사와 표적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증거가 있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들입니다.
2. 성경상에 하나님의 권능이 오늘날도 나타나
성경을 보면 놀라운 권능의 역사가 수없이 나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태양이 운행을 멈추거나 뒤로 물러가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먹지 못할 쓴물이 먹을 수 있는 단물로 바뀌며, 반석을 치니 물이 솟아났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각종 질병들이 치료되며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권능의 역사는 성경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의 역사들을 합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하여 그대로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1982년 개척 이래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무수히 나타났습니다. 각종 암을 비롯하여 결핵, 당뇨병, 뇌성마비, 디스크, 에이즈, 문둥병, 백혈병 등 불치, 난치병이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온전케 되고, 소아마비, 교통사고나 각종 사고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받고 그 자리에서 걷고 뛰었습니다. 또한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흉터 없이 깨끗해졌습니다. 뇌출혈이나 혹은 급체, 연탄가스 중독으로 의식이 없고 경직된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회복하였습니다.
이미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 기도받고 살아나고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무수합니다. 더구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온전해져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한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고, 강렬한 햇볕을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고,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믿음으로 움직여지는 것을 개척 후 지금까지 체험했습니다. 매년 7, 8월 전국에 태풍이나 장마로 많은 비가 내려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고 맑았지요.
하늘에서 수많은 잠자리가 내려와 모기를 소탕해 주고,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맑은 하늘에서 지금도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원형 무지개를 비롯하여 각종 희한한 무지개로 그 모양도 다양하지요.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까지 변화시키는 근본의 빛으로 역사하셔서 성결을 사모하는 성도들을 더욱 신속히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오로라 형상이 핸드폰에 찍히도록 하심으로 천국 소망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던 것처럼, 당회장님께서 기도해 주신 권능의 손수건을 통해서도 수많은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시공을 초월하여 사진이나 이름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도 치료와 응답받는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지요.
3. 권능을 체험하려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만 누구나 권능을 체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 믿음의 행함을 내보여야 가능하지요.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입니다. 그런데 권능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소문을 듣고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이스라엘로 찾아와 마침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지요.
나아만은 아람 왕의 신임을 받는 권세 있는 장관입니다. 엘리사에게 치료받기 위해 귀한 예물을 가득 싣고 찾아왔지요.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만 전하지요. 순간 나아만은 기분이 상해 돌아가려 했지만 그의 종들이 권면하여 결국 요단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잠갔습니다. 그러자 문둥병이 발한 몸이 이내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해졌지요.
여기서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요단 강물에 몸을 잠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죄를 씻음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일곱은 완전수이므로 일곱 번 잠갔다는 것은 온전히 죄 사함 받은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응답받고자 한다면 나아만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은 것처럼 죄악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단순히 입술로만 "잘못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통회자복 해야 하지요(욜 2:13). 그럴 때 마음에 기쁨이 샘솟으며 질병이나 어떤 문제든지 해결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나아만처럼 치료와 응답을 받으려면 끝까지 믿음을 내보여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응답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 직접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져야 권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단, 정신이상자나 귀신 들린 경우는 부모나 가족이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대신 나오면 됩니다.
응답받을 만한 사람들에게서는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가득합니다. 입술의 말도 믿음의 고백을 하며 현실을 보고 낙망하지 않지요.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응답받은 줄 믿고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응답 받을 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니 빛 가운데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변화되고자 힘쓰지요.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며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과연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은 성경 66권의 저자이시다.
②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③ 나아만은 이스라엘 군대 장관이다.
④ 나아만이 요단강에 일곱 번 잠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죄를 온전히 씻음
받았다는 의미이다.
2. 우리 교회에서는 어떠한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는지 써 보세요.
( )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39~5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람'
구약 시대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던 근접 국가이다. 아람 사람들은 셈 족으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작은 도시 국가를 이루며 널리 퍼져 살았다. 사사 시대에 아람은 이스라엘을 학대하며 괴롭혔다(삿 10:8). 아람의 수도였던 다메섹은 다윗 왕 때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으며, 솔로몬 왕 때에는 아람 왕국 성읍 중 하나인 아람소바의 르손에게 정복당했다. 그리고 르손이 죽은 후 앗수르, 바벨론, 바사, 로마 제국 등에 의해 정복당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 삶 속에서도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어느 날 벙어리 귀신 들려 고통받는 아들을 둔 아비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하실 수 있거든" 귀신을 쫓아달라고 간청했지요. 이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하시며 참 믿음을 깨우쳐 주셨지요. 우리가 참 믿음을 소유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므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먼저, 하나님은 성경 66권의 저자이십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했습니다. 66권으로 이루어진 성경은 약 1,600년간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는데도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짝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시대마다 합당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직접 계시하신 것이므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마다 약속하신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만들어진 시점이 있고 역사도 그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어떻게 존재하게 되셨는지 시작이 있어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시작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상상으로 지어내거나 손으로 조각한 우상과는 달리 영원 전부터 계신 참 신이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출 3:14). 만일 누군가 하나님을 낳거나 지었다면 하나님은 결코 완전한 분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요 1:1, 창 1:1).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무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 역시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음 받았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이 땅에서 경작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각 시대마다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권능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기사와 표적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증거가 있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들입니다.
2. 성경상에 하나님의 권능이 오늘날도 나타나
성경을 보면 놀라운 권능의 역사가 수없이 나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태양이 운행을 멈추거나 뒤로 물러가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먹지 못할 쓴물이 먹을 수 있는 단물로 바뀌며, 반석을 치니 물이 솟아났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각종 질병들이 치료되며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권능의 역사는 성경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의 역사들을 합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하여 그대로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1982년 개척 이래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무수히 나타났습니다. 각종 암을 비롯하여 결핵, 당뇨병, 뇌성마비, 디스크, 에이즈, 문둥병, 백혈병 등 불치, 난치병이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온전케 되고, 소아마비, 교통사고나 각종 사고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받고 그 자리에서 걷고 뛰었습니다. 또한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흉터 없이 깨끗해졌습니다. 뇌출혈이나 혹은 급체, 연탄가스 중독으로 의식이 없고 경직된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회복하였습니다.
이미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 기도받고 살아나고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무수합니다. 더구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온전해져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한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고, 강렬한 햇볕을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고,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믿음으로 움직여지는 것을 개척 후 지금까지 체험했습니다. 매년 7, 8월 전국에 태풍이나 장마로 많은 비가 내려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고 맑았지요.
하늘에서 수많은 잠자리가 내려와 모기를 소탕해 주고,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맑은 하늘에서 지금도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원형 무지개를 비롯하여 각종 희한한 무지개로 그 모양도 다양하지요.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까지 변화시키는 근본의 빛으로 역사하셔서 성결을 사모하는 성도들을 더욱 신속히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오로라 형상이 핸드폰에 찍히도록 하심으로 천국 소망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던 것처럼, 당회장님께서 기도해 주신 권능의 손수건을 통해서도 수많은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시공을 초월하여 사진이나 이름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도 치료와 응답받는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지요.
3. 권능을 체험하려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만 누구나 권능을 체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 믿음의 행함을 내보여야 가능하지요.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입니다. 그런데 권능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소문을 듣고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이스라엘로 찾아와 마침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지요.
나아만은 아람 왕의 신임을 받는 권세 있는 장관입니다. 엘리사에게 치료받기 위해 귀한 예물을 가득 싣고 찾아왔지요.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만 전하지요. 순간 나아만은 기분이 상해 돌아가려 했지만 그의 종들이 권면하여 결국 요단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잠갔습니다. 그러자 문둥병이 발한 몸이 이내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해졌지요.
여기서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요단 강물에 몸을 잠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죄를 씻음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일곱은 완전수이므로 일곱 번 잠갔다는 것은 온전히 죄 사함 받은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응답받고자 한다면 나아만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은 것처럼 죄악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단순히 입술로만 "잘못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통회자복 해야 하지요(욜 2:13). 그럴 때 마음에 기쁨이 샘솟으며 질병이나 어떤 문제든지 해결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나아만처럼 치료와 응답을 받으려면 끝까지 믿음을 내보여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응답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 직접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져야 권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단, 정신이상자나 귀신 들린 경우는 부모나 가족이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대신 나오면 됩니다.
응답받을 만한 사람들에게서는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가득합니다. 입술의 말도 믿음의 고백을 하며 현실을 보고 낙망하지 않지요.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응답받은 줄 믿고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응답 받을 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니 빛 가운데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변화되고자 힘쓰지요.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며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과연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은 성경 66권의 저자이시다.
②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③ 나아만은 이스라엘 군대 장관이다.
④ 나아만이 요단강에 일곱 번 잠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죄를 온전히 씻음
받았다는 의미이다.
2. 우리 교회에서는 어떠한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는지 써 보세요.
( )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39~5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람'
구약 시대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던 근접 국가이다. 아람 사람들은 셈 족으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작은 도시 국가를 이루며 널리 퍼져 살았다. 사사 시대에 아람은 이스라엘을 학대하며 괴롭혔다(삿 10:8). 아람의 수도였던 다메섹은 다윗 왕 때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으며, 솔로몬 왕 때에는 아람 왕국 성읍 중 하나인 아람소바의 르손에게 정복당했다. 그리고 르손이 죽은 후 앗수르, 바벨론, 바사, 로마 제국 등에 의해 정복당했다.
2013-07-12
제28과나의 믿음은
히 11:1~3
읽을말씀 : 히 11:1~3 | 외울말씀 : 히 11:1 ㅣ 참고 말씀:롬 9:3
교육목표 : 참 믿음을 소유하여 항상 입술에 선한 말을 내고, 하나님이 맡기신 영혼들을 사랑하며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이 있으면 천국과 지옥을 보지 않고도 마치 보고 만진 듯이 확신 가운데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큰 믿음이 있으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권능을 나타내어 영광 돌릴 수 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순전한 정금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믿음인지요? 아니면 도금된 금속처럼 겉으로만 그럴 듯한 믿음인지요? 세 가지 분야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입술을 지키는 분야
먼저 입술을 지키는 분야에서 조명해 볼 성경 인물은 다윗과 시므이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위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자기 허물을 가리기 위해 충성스런 부하를 의도적으로 죽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아들 압살롬의 반역이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아들을 피해 도망할 때의 일입니다. 시므이라는 백성이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하며 다윗에게 심한 저주와 모욕을 하였습니다(삼하 16:7~8).
이러한 시므이의 말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사울 왕의 죽음은 자기 죄악 때문이었지 다윗과는 상관없습니다. 또한 다윗이 겪는 어려움은 하나님께 저주나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었지요. 잘못은 이미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지만 공의 가운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이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을 저주한 것은 사형감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많은 백성과 용사들이 있어서 얼마든지 시므이를 처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는 용사들을 만류하였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그가 저주하게 그냥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주신 연단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낮아졌지요.
반면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는 전혀 달랐습니다. 베냐민 지파 사울 왕의 일족으로 사울이 죽자 마치 다윗의 탓처럼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여호와의 이름까지 망령되이 일컬으며 다윗에게 분풀이했습니다. 남의 고통을 보고 긍휼히 여기기는커녕 온갖 악을 쏟아냈습니다. 이를 통해 그의 근본이 얼마나 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입술을 가졌습니까? 시므이처럼 누가 애매한 말로 비난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데 이 사람까지 왜 이러나?" 하며 짜증을 내거나 독한 말로 상대를 찌르지는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믿음이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더구나 시므이처럼 자기 악 속에서 상대를 판단 정죄하고 저주하는 입술이라면 믿음이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지요. 정녕 참 믿음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2. 영혼 사랑의 분야
여기서 조명해 볼 성경 인물은 엘리사와 사도 바울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받아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치고 귀부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냈지요. 전쟁이나 사람의 생사화복도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이뤄졌습니다. 그 밖에도 독이 든 음식을 해독하기도 하고 물에 빠진 도끼가 떠오르게 하는 등 참으로 신기한 일들을 많이 행했습니다.
이는 엘리사가 스스로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승인 엘리야를 통해 받은 권능입니다. 그래서 큰 권능을 행하기는 했지만 엘리사의 마음은 사도 바울의 마음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길을 가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쫓아다니며 조롱하고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이에 견디다 못한 엘리사가 저주하자 수풀에서 암곰이 나와 악한 아이들 중 42명을 죽였지요(왕하 2:24). 엘리사도 자기 입술의 권세가 크다는 사실을 알기에 처음에는 못들은 척 피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십 명이 계속 쫓아다니며 심하게 괴롭히자 견디지 못하고 저주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라면 이런 상황에 어찌했을까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은 엘리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40여 명의 유대인들이 있는가 하면,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곳마다 훼방하며 죽이려고 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어느 때는 죽었다 할 정도로 돌에 맞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았으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요. 이처럼 숱한 고난과 위협을 받을 때도 바울은 그들에게 한 마디 저주의 말을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했지요(롬 9:3). 유대인들이 아무리 자신을 핍박해도 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지옥에 가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혼들을 향한 사랑은 어떻습니까? 어떠한 마음으로 양 떼들을 대하며 사명을 감당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 중심에서 영혼들을 사랑하며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참된 일꾼이라 인정해 주시며 기뻐하십니다.
3. 순종의 분야
여기서 조명해 볼 인물은 요셉과 사울 왕입니다. 요셉은 17세에 이복 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 13년간 갖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으로 있을 때도 정직과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했고, 죄없이 감옥에 갇혀서도 억울하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렸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과 섭리에 한결같은 믿음으로 순종했지요. 자신을 죽이려 하고 타국에 종으로 팔았던 형님들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을 좇아 선대했습니다. 복수하고 싶은데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어쩔 수 없이 용서한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용서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가령, 교구에서 행사가 있는데 한 지역이 양보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에 처음에는 순순히 양보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행사 때마다 자기 지역이 양보를 해 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지역만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졌지요. 나름 열심히 섬기고 낮아지려고 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니 힘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일꾼이라면 일시적인 행함으로만 섬기고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리의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처음에 순종하려던 마음이 시간이 흐르자 자기 생각에 안 맞고 힘드니까 변질되었다면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다고도 볼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과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으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으십니다.
사울 왕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거듭 불순종하여 결국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하여 사람은 물론 짐승들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좋은 짐승과 왕을 살려 끌고 왔지요. 그러면서도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공격했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을 사로잡아 온 것에 대해 사무엘 선지자가 지적할 때도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하지요(삼상 15:1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조금은 내 생각에 맞춰 바꾸고 약간은 내 유익에 맞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명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요셉과 같은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사울 왕처럼 내 생각에 맞춰 변질시켜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가는 마음은 없는지 자신을 면밀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나는 누구일까요? ( ) 안에 정답을 써보세요.
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으나 낙심하지 않고 정직과 성실로 행했습니다. 죄없이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섭리에 한결같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 )
②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하여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나 보기에 좋은 짐승과 왕을 살려서 끌고 왔습니다.( )
③ 아이들이 쫓아다니며 너무 심하게 조롱하므로 저주의 말을 내자 수풀에서 암곰이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
④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도망갈 때에 일개 백성인 시므이가 심하게 저주와 모욕을 했어도 결코 악한 말을 내지 않았습니다.( )
2. 여러분은 순전한 정금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믿음인지, 아니면 도금된 금속처럼 겉으로만 그럴듯한 믿음인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7~3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압살롬'
다윗의 아들로 그에 대해 성경은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했다(삼하 14:25). 압살롬은 누이 다말을 범한 이복 형제 암논을 살해한 후 다윗을 피해 도피생활을 했다. 요압 장군의 중재로 아버지 다윗과 화해했지만 나중에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삼하 15:1~12). 후에 압살롬은 다윗 군과 싸우다가 도망하던 중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요압에게 죽임을 당한다(삼하 18장).
교육목표 : 참 믿음을 소유하여 항상 입술에 선한 말을 내고, 하나님이 맡기신 영혼들을 사랑하며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이 있으면 천국과 지옥을 보지 않고도 마치 보고 만진 듯이 확신 가운데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큰 믿음이 있으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권능을 나타내어 영광 돌릴 수 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순전한 정금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믿음인지요? 아니면 도금된 금속처럼 겉으로만 그럴 듯한 믿음인지요? 세 가지 분야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입술을 지키는 분야
먼저 입술을 지키는 분야에서 조명해 볼 성경 인물은 다윗과 시므이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위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자기 허물을 가리기 위해 충성스런 부하를 의도적으로 죽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아들 압살롬의 반역이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아들을 피해 도망할 때의 일입니다. 시므이라는 백성이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하며 다윗에게 심한 저주와 모욕을 하였습니다(삼하 16:7~8).
이러한 시므이의 말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사울 왕의 죽음은 자기 죄악 때문이었지 다윗과는 상관없습니다. 또한 다윗이 겪는 어려움은 하나님께 저주나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었지요. 잘못은 이미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지만 공의 가운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이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을 저주한 것은 사형감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많은 백성과 용사들이 있어서 얼마든지 시므이를 처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는 용사들을 만류하였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그가 저주하게 그냥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주신 연단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낮아졌지요.
반면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는 전혀 달랐습니다. 베냐민 지파 사울 왕의 일족으로 사울이 죽자 마치 다윗의 탓처럼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여호와의 이름까지 망령되이 일컬으며 다윗에게 분풀이했습니다. 남의 고통을 보고 긍휼히 여기기는커녕 온갖 악을 쏟아냈습니다. 이를 통해 그의 근본이 얼마나 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입술을 가졌습니까? 시므이처럼 누가 애매한 말로 비난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데 이 사람까지 왜 이러나?" 하며 짜증을 내거나 독한 말로 상대를 찌르지는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믿음이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더구나 시므이처럼 자기 악 속에서 상대를 판단 정죄하고 저주하는 입술이라면 믿음이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지요. 정녕 참 믿음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2. 영혼 사랑의 분야
여기서 조명해 볼 성경 인물은 엘리사와 사도 바울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받아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치고 귀부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냈지요. 전쟁이나 사람의 생사화복도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이뤄졌습니다. 그 밖에도 독이 든 음식을 해독하기도 하고 물에 빠진 도끼가 떠오르게 하는 등 참으로 신기한 일들을 많이 행했습니다.
이는 엘리사가 스스로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승인 엘리야를 통해 받은 권능입니다. 그래서 큰 권능을 행하기는 했지만 엘리사의 마음은 사도 바울의 마음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길을 가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쫓아다니며 조롱하고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이에 견디다 못한 엘리사가 저주하자 수풀에서 암곰이 나와 악한 아이들 중 42명을 죽였지요(왕하 2:24). 엘리사도 자기 입술의 권세가 크다는 사실을 알기에 처음에는 못들은 척 피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십 명이 계속 쫓아다니며 심하게 괴롭히자 견디지 못하고 저주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라면 이런 상황에 어찌했을까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은 엘리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40여 명의 유대인들이 있는가 하면,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곳마다 훼방하며 죽이려고 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어느 때는 죽었다 할 정도로 돌에 맞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았으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요. 이처럼 숱한 고난과 위협을 받을 때도 바울은 그들에게 한 마디 저주의 말을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했지요(롬 9:3). 유대인들이 아무리 자신을 핍박해도 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지옥에 가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혼들을 향한 사랑은 어떻습니까? 어떠한 마음으로 양 떼들을 대하며 사명을 감당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 중심에서 영혼들을 사랑하며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참된 일꾼이라 인정해 주시며 기뻐하십니다.
3. 순종의 분야
여기서 조명해 볼 인물은 요셉과 사울 왕입니다. 요셉은 17세에 이복 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 13년간 갖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으로 있을 때도 정직과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했고, 죄없이 감옥에 갇혀서도 억울하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렸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과 섭리에 한결같은 믿음으로 순종했지요. 자신을 죽이려 하고 타국에 종으로 팔았던 형님들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을 좇아 선대했습니다. 복수하고 싶은데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어쩔 수 없이 용서한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용서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가령, 교구에서 행사가 있는데 한 지역이 양보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에 처음에는 순순히 양보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행사 때마다 자기 지역이 양보를 해 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지역만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졌지요. 나름 열심히 섬기고 낮아지려고 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니 힘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일꾼이라면 일시적인 행함으로만 섬기고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리의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처음에 순종하려던 마음이 시간이 흐르자 자기 생각에 안 맞고 힘드니까 변질되었다면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다고도 볼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과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으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으십니다.
사울 왕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거듭 불순종하여 결국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하여 사람은 물론 짐승들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좋은 짐승과 왕을 살려 끌고 왔지요. 그러면서도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공격했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을 사로잡아 온 것에 대해 사무엘 선지자가 지적할 때도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하지요(삼상 15:1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조금은 내 생각에 맞춰 바꾸고 약간은 내 유익에 맞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명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요셉과 같은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사울 왕처럼 내 생각에 맞춰 변질시켜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가는 마음은 없는지 자신을 면밀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나는 누구일까요? ( ) 안에 정답을 써보세요.
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으나 낙심하지 않고 정직과 성실로 행했습니다. 죄없이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섭리에 한결같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 )
②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하여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나 보기에 좋은 짐승과 왕을 살려서 끌고 왔습니다.( )
③ 아이들이 쫓아다니며 너무 심하게 조롱하므로 저주의 말을 내자 수풀에서 암곰이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
④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도망갈 때에 일개 백성인 시므이가 심하게 저주와 모욕을 했어도 결코 악한 말을 내지 않았습니다.( )
2. 여러분은 순전한 정금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믿음인지, 아니면 도금된 금속처럼 겉으로만 그럴듯한 믿음인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7~3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압살롬'
다윗의 아들로 그에 대해 성경은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했다(삼하 14:25). 압살롬은 누이 다말을 범한 이복 형제 암논을 살해한 후 다윗을 피해 도피생활을 했다. 요압 장군의 중재로 아버지 다윗과 화해했지만 나중에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삼하 15:1~12). 후에 압살롬은 다윗 군과 싸우다가 도망하던 중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요압에게 죽임을 당한다(삼하 18장).
2013-07-05
제27과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4~18
읽을말씀 : 출 23:14~18 | 외울말씀 : 출 23:16 l 참고 말씀:신 16:9~12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지요.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1.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첫 열매는 밀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보리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 밀 추수가 시작됩니다. 맥추(麥秋)절은 이렇게 밀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이지요. 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으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부릅니다(출 34:22).
칠칠절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므로 붙여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 강림 역사가 나타났으므로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후반기 첫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그동안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월 첫 주일에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을 보면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또 민수기 28장 26~31절에는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특별히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첫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을 소제로(레 23:17) 드렸습니다. 이와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렸지요.
여기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뜻합니다. 나아가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해져야 함을 나타내지요.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곡식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심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됨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 다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고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 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어서 드림: 민 28:5~6)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습니다(민 28:26~3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감사예물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하여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6~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 12:44)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립니다. 때로는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며,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지요.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며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에 감사하며 특별히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천국을 소망하며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하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도의 응답은 물론 아름다운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혹여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그 사랑 하나만으로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호흡하고 걸을 수 있으며 심지어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며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때로 고난과 연단의 시간을 만난다 해도 진정 감사함으로 받으면 자신을 발견하고 영으로 변화되는 축복의 시간이 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 보며 더욱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1~2번).
1.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 )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이다.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이므로 ( )이라고도 하며,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 )이라 불리기도 한다.
2. 항상 ( )하라 쉬지 말고 ( )하라 범사에 ( )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 )이니라(살전 5:16~18)
3. 여러분은 맥추절을 어떠한 정성과 마음으로 준비하고 계신지요?
( )
●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하신 말씀대로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한 주간 지켜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지요.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1.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첫 열매는 밀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보리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 밀 추수가 시작됩니다. 맥추(麥秋)절은 이렇게 밀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이지요. 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으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부릅니다(출 34:22).
칠칠절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므로 붙여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 강림 역사가 나타났으므로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후반기 첫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그동안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월 첫 주일에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을 보면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또 민수기 28장 26~31절에는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특별히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첫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을 소제로(레 23:17) 드렸습니다. 이와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렸지요.
여기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뜻합니다. 나아가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해져야 함을 나타내지요.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곡식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심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됨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 다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고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 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어서 드림: 민 28:5~6)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습니다(민 28:26~3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감사예물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하여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6~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 12:44)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립니다. 때로는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며,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지요.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며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에 감사하며 특별히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천국을 소망하며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하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도의 응답은 물론 아름다운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혹여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그 사랑 하나만으로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호흡하고 걸을 수 있으며 심지어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며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때로 고난과 연단의 시간을 만난다 해도 진정 감사함으로 받으면 자신을 발견하고 영으로 변화되는 축복의 시간이 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 보며 더욱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1~2번).
1.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 )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이다.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이므로 ( )이라고도 하며,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 )이라 불리기도 한다.
2. 항상 ( )하라 쉬지 말고 ( )하라 범사에 ( )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 )이니라(살전 5:16~18)
3. 여러분은 맥추절을 어떠한 정성과 마음으로 준비하고 계신지요?
( )
●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하신 말씀대로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한 주간 지켜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의미한다.
2013-06-28
제26과교회의 이상적인 모델, 초대교회
행 2:42~47
읽을말씀 : 행 2:42~47 | 외울말씀 : 행 2:46 l 참고 말씀:요 4:48, 고전 4:20
교육목표 : 어떤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한 초대교회 성도들을 본받게 한다.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 약 2천 년 동안 이 땅에는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중에 주님의 뜻에 가장 합당하게 사역한 교회가 바로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 받은 제자들과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초대교회입니다. 당시 큰 핍박 속에서도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어 온 초대교회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전 세계를 복음화하는 데 초석이 됐습니다. 오늘날에도 초대교회를 닮은 교회가 있다면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초대교회 특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했습니다. 기사와 표적이란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일들로서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일어날 수 있는 역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오랜 가뭄 중에 비를 오게 하고 태풍의 진로를 바꾸거나 소멸시키는 일입니다. 또 죽은 자를 살리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을 듣게 하며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는 등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기사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만인에게 증거해 줄 수 있지요. 그럴 때 불신자나 믿음이 적은 사람도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과 지식이 발달하고 죄와 불법이 성한 시대에는 더욱 이러한 기사와 표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당시에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당시 성도들은 늘 성령 충만함 가운데 살았으며, 오직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날 수 있었지요. 더욱이 당시에는 사도들이 친히 치리했습니다.
'사도'란 영적으로 자기 의사가 없고 마음을 다해 오직 주인의 뜻을 받들어 순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사도'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성결되어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을 받아 위로부터 능력을 받고 권능도 행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 날로 믿음이 성장했고, 주의 종이 아닐지라도 스데반, 빌립 집사처럼 권능을 행하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자신이 체험한 성령의 역사를 널리 전파했고 교회는 부흥에 부흥을 거듭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능력은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여러분도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주님의 사도로서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기 바랍니다.
2.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나누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성도 간에 얼마나 영적인 사랑이 풍성했는지 보여 주지요.
성도는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형제자매이기에 그들은 내 것, 네 것 없이 주님의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목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천국 소망으로 뜨거웠고 이 땅에 물질을 쌓아 두려는 욕심이 없었기에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며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오늘날은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그러니 초대교회와 같은 성도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 안에서 한 형제라는 가족의식이 돈독해지고 물질에 대한 욕심도 쉽게 버릴 수가 있지요. 여러분이 삶 속에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면 많은 영혼이 그 행함을 보고 주님 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재산과 소유를 서로 나누며 통용했다는 것은 단지 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내 의견만 옳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교회 안에 어떤 대립이나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지 않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상대의 형편을 돌아보아 서로 섬기고 나누며 화평을 이룰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3.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했습니다. 여기서 떡이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떡을 뗀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서 마음에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로부터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이를 위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지요. 이렇게 모이기에 힘쓰며 불같이 기도해 능력을 받으니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도하고 충성 봉사해 이 땅에서 축복받고 하늘나라에도 상급을 쌓아갔습니다.
오늘날은 많은 교회가 점점 모이기를 폐하고 있습니다. 새벽예배가 사라진 교회도 있지요. 히브리서 10장 24~25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신 말씀처럼 교회는 모이고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고 기도의 불이 항상 활활 타오를 때 성령께서 운행하시는 교회, 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의 칭송을 받으므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했다는 것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천국 소망이 가득함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니 주변 사람에게 칭송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많은 영혼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때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인이야. 나도 하나님을 믿고 싶다." 하며 칭송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많은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하나님 뜻을 좇아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부흥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한 대로 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썼지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도 지극히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므로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영혼의 축복, 건강이나 물질, 가정의 축복 등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여러분도 초대교회 성도와 같이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불같이 기도하며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초대교회의 특징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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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적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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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상반기 동안도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스데반 집사'와 '빌립 집사'
스데반 집사 -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교회에서 구제 사역을 맡을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민간에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으며 공회 앞에서 복음을 전하다 악한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한다. 자신을 돌로 치는 이들을 위해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기도를 올렸다.
빌립 집사 - 스데반 집사와 마찬가지로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다. 스데반 순교 이후 교회에 큰 박해가 있자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많은 표적과 능력을 행했으며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다. 네 명의 예언하는 딸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신실하며 자녀를 진리 안에서 잘 양육했는지를 말해 준다.
교육목표 : 어떤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한 초대교회 성도들을 본받게 한다.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 약 2천 년 동안 이 땅에는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중에 주님의 뜻에 가장 합당하게 사역한 교회가 바로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 받은 제자들과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초대교회입니다. 당시 큰 핍박 속에서도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어 온 초대교회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전 세계를 복음화하는 데 초석이 됐습니다. 오늘날에도 초대교회를 닮은 교회가 있다면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초대교회 특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했습니다. 기사와 표적이란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일들로서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일어날 수 있는 역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오랜 가뭄 중에 비를 오게 하고 태풍의 진로를 바꾸거나 소멸시키는 일입니다. 또 죽은 자를 살리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을 듣게 하며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는 등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기사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만인에게 증거해 줄 수 있지요. 그럴 때 불신자나 믿음이 적은 사람도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과 지식이 발달하고 죄와 불법이 성한 시대에는 더욱 이러한 기사와 표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당시에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당시 성도들은 늘 성령 충만함 가운데 살았으며, 오직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날 수 있었지요. 더욱이 당시에는 사도들이 친히 치리했습니다.
'사도'란 영적으로 자기 의사가 없고 마음을 다해 오직 주인의 뜻을 받들어 순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사도'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성결되어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을 받아 위로부터 능력을 받고 권능도 행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 날로 믿음이 성장했고, 주의 종이 아닐지라도 스데반, 빌립 집사처럼 권능을 행하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자신이 체험한 성령의 역사를 널리 전파했고 교회는 부흥에 부흥을 거듭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능력은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여러분도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주님의 사도로서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기 바랍니다.
2.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나누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성도 간에 얼마나 영적인 사랑이 풍성했는지 보여 주지요.
성도는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형제자매이기에 그들은 내 것, 네 것 없이 주님의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목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천국 소망으로 뜨거웠고 이 땅에 물질을 쌓아 두려는 욕심이 없었기에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며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오늘날은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그러니 초대교회와 같은 성도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 안에서 한 형제라는 가족의식이 돈독해지고 물질에 대한 욕심도 쉽게 버릴 수가 있지요. 여러분이 삶 속에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면 많은 영혼이 그 행함을 보고 주님 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재산과 소유를 서로 나누며 통용했다는 것은 단지 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내 의견만 옳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교회 안에 어떤 대립이나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지 않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상대의 형편을 돌아보아 서로 섬기고 나누며 화평을 이룰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3.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했습니다. 여기서 떡이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떡을 뗀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서 마음에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로부터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이를 위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지요. 이렇게 모이기에 힘쓰며 불같이 기도해 능력을 받으니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도하고 충성 봉사해 이 땅에서 축복받고 하늘나라에도 상급을 쌓아갔습니다.
오늘날은 많은 교회가 점점 모이기를 폐하고 있습니다. 새벽예배가 사라진 교회도 있지요. 히브리서 10장 24~25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신 말씀처럼 교회는 모이고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고 기도의 불이 항상 활활 타오를 때 성령께서 운행하시는 교회, 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의 칭송을 받으므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했다는 것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천국 소망이 가득함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니 주변 사람에게 칭송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많은 영혼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때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인이야. 나도 하나님을 믿고 싶다." 하며 칭송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많은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하나님 뜻을 좇아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부흥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한 대로 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썼지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도 지극히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므로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영혼의 축복, 건강이나 물질, 가정의 축복 등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여러분도 초대교회 성도와 같이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불같이 기도하며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초대교회의 특징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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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적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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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상반기 동안도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스데반 집사'와 '빌립 집사'
스데반 집사 -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교회에서 구제 사역을 맡을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민간에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으며 공회 앞에서 복음을 전하다 악한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한다. 자신을 돌로 치는 이들을 위해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기도를 올렸다.
빌립 집사 - 스데반 집사와 마찬가지로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다. 스데반 순교 이후 교회에 큰 박해가 있자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많은 표적과 능력을 행했으며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다. 네 명의 예언하는 딸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신실하며 자녀를 진리 안에서 잘 양육했는지를 말해 준다.
2013-06-21
제25과사망에 이르는 죄
마 12:31~32
읽을말씀 : 마 12:31~32 | 외울말씀 : 히 10:26 l 참고 말씀:히 6:4~6
교육목표 :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에 대해 밝히 알아 구원받지 못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결코 짓지 않게 한다.
공장 폐수나 쓰레기, 농약 같은 독극물이나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된 땅은 회복되는 데에 오랜 세월이 걸리거나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밭도 이와 비슷합니다. 독한 폐수와 같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심히 오염되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기가 어렵고 구원에 이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황폐한 마음밭도 소생시키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얼마나 철저히 통회자복하며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힘쓰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지요. 혹여 지난날 마음밭을 개간하지 않고 더럽혀 왔다면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1. 구원과 상관 있는 죄는 결코 짓지 말아야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거스르고 육체의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았다 해도 다시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일단 구원받았다고 해도 너무 중한 죄를 짓거나 계속 범죄하여 어느 한계선을 넘어 버리면 원수 마귀 사단이 저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원수 마귀 사단이 영계의 법을 근거로 송사하면 이를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지요. 그러므로 어떤 죄든 지어서는 안 되지만 특히 구원과 상관 있는 죄는 결코 짓지 말아야 합니다. 혹여 지었다면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죄라고 해서 다 같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된 죄 중에는 회개하면 바로 용서받을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죄가 있는가 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신 무거운 죄들도 있습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이단을 비롯하여 현저한 육체의 일에 속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말씀하신 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다 해도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죄에서 돌이키면 구원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라도 이단에서 나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처럼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기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회개의 영이 오지 않아서 회개할 수가 없는 죄도 있습니다. 이런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합니다. 죄가 너무 중하기 때문에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에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용서해 달라고 구하지 말아야 할 '사망에 이르는 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 보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진리를 알면서 짐짓 즉 고의로 거듭 죄를 범하는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성령을 훼방, 거역, 모독하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이단이라고 정죄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 부활, 재림, 심판, 천국 등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다면 결코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나 목회자를 함부로 정죄하면 성령 훼방, 거역, 성령 모독이 되어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12:31~32).
그러면 성령 훼방, 거역, 모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먼저 '성령 훼방'이란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인데도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므로 악으로 하나님 일에 훼방을 놓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를 이단이라 정죄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거짓 문서를 조작하여 집회를 방해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합니다. 진리를 몰라서 그런 경우라면 돌이켜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알면서도 시기 질투하여 악한 마음으로 훼방한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성령 거역'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거나 성령의 역사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여 교단에 알리고 축출하는 등 상대를 해롭게 하는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자'를 거역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단지 사람으로만 알고 거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죄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을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오늘날에도 진리를 모르거나 성령을 받기 전에 이러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도 회개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주님을 훼방하고 거역한다면 이는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하는 것과 같으므로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모독'이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욕되게 하거나 그 신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눅 12:10). 만일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비방하거나 반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욕되게 하는 죄입니다. 또한 진리를 비진리라고 거짓으로 전하거나 사실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과거에 잘 알지 못하여 성령을 훼방하거나 거역, 모독했다면 지금이라도 철저히 통회자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나열해 보세요.
( )
2. 사망에 이르는 죄에 관한 성경구절로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마태복음 12:31~32 ② 히브리서 6:4~6
③ 히브리서 10:26~27 ④ 잠언 8:17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94~19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을 쉽게 구분하는 법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은 의미가 비슷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의 차이점에 비유할 수 있다. 육신의 일이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라면, 육체의 일은 육신의 일이 구체적인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성령 훼방이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막는 것이라면, 성령 거역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을 적극적으로 궤사를 꾸며 거역하고 상대를 해롭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교육목표 :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에 대해 밝히 알아 구원받지 못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결코 짓지 않게 한다.
공장 폐수나 쓰레기, 농약 같은 독극물이나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된 땅은 회복되는 데에 오랜 세월이 걸리거나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밭도 이와 비슷합니다. 독한 폐수와 같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심히 오염되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기가 어렵고 구원에 이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황폐한 마음밭도 소생시키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얼마나 철저히 통회자복하며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힘쓰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지요. 혹여 지난날 마음밭을 개간하지 않고 더럽혀 왔다면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1. 구원과 상관 있는 죄는 결코 짓지 말아야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거스르고 육체의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았다 해도 다시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일단 구원받았다고 해도 너무 중한 죄를 짓거나 계속 범죄하여 어느 한계선을 넘어 버리면 원수 마귀 사단이 저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원수 마귀 사단이 영계의 법을 근거로 송사하면 이를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지요. 그러므로 어떤 죄든 지어서는 안 되지만 특히 구원과 상관 있는 죄는 결코 짓지 말아야 합니다. 혹여 지었다면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죄라고 해서 다 같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된 죄 중에는 회개하면 바로 용서받을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죄가 있는가 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신 무거운 죄들도 있습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이단을 비롯하여 현저한 육체의 일에 속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말씀하신 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다 해도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죄에서 돌이키면 구원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라도 이단에서 나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처럼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기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회개의 영이 오지 않아서 회개할 수가 없는 죄도 있습니다. 이런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합니다. 죄가 너무 중하기 때문에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에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용서해 달라고 구하지 말아야 할 '사망에 이르는 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 보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진리를 알면서 짐짓 즉 고의로 거듭 죄를 범하는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성령을 훼방, 거역, 모독하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이단이라고 정죄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 부활, 재림, 심판, 천국 등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다면 결코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나 목회자를 함부로 정죄하면 성령 훼방, 거역, 성령 모독이 되어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12:31~32).
그러면 성령 훼방, 거역, 모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먼저 '성령 훼방'이란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인데도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므로 악으로 하나님 일에 훼방을 놓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를 이단이라 정죄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거짓 문서를 조작하여 집회를 방해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합니다. 진리를 몰라서 그런 경우라면 돌이켜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알면서도 시기 질투하여 악한 마음으로 훼방한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성령 거역'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거나 성령의 역사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여 교단에 알리고 축출하는 등 상대를 해롭게 하는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자'를 거역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단지 사람으로만 알고 거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죄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을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오늘날에도 진리를 모르거나 성령을 받기 전에 이러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도 회개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주님을 훼방하고 거역한다면 이는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하는 것과 같으므로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모독'이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욕되게 하거나 그 신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눅 12:10). 만일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비방하거나 반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욕되게 하는 죄입니다. 또한 진리를 비진리라고 거짓으로 전하거나 사실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과거에 잘 알지 못하여 성령을 훼방하거나 거역, 모독했다면 지금이라도 철저히 통회자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나열해 보세요.
( )
2. 사망에 이르는 죄에 관한 성경구절로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마태복음 12:31~32 ② 히브리서 6:4~6
③ 히브리서 10:26~27 ④ 잠언 8:17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94~19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을 쉽게 구분하는 법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은 의미가 비슷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의 차이점에 비유할 수 있다. 육신의 일이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라면, 육체의 일은 육신의 일이 구체적인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성령 훼방이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막는 것이라면, 성령 거역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을 적극적으로 궤사를 꾸며 거역하고 상대를 해롭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2013-06-14
제24과이단의 특징과 적그리스도의 영
벧후 2:2~3
읽을말씀 : 벧후 2:2~3 | 외울말씀 : 벧전 5:8 ㅣ 참고 말씀:요일 4:1~6
교육목표 : 이단의 특징과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 바로 알아 미혹받지 않고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사소한 교리 차이를 놓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을 부인하지도 않고 신앙고백을 할 뿐 아니라,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은데도 이단이라고 판단해 버리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과 부활과 재림, 심판을 가르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결코 이단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단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1. 이단의 특징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 있으면 도덕적으로 살지 않아도 되고,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므로 육체로 죄를 지어도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부인했지요.
이처럼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 외에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이들은 대부분 호색하므로 진리의 도, 곧 하나님 말씀을 훼방합니다. 또 탐심으로 인해 거짓말을 지어내어 자기 이익을 취해 나갑니다. 천국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사람일뿐 결코 하나님과 하나일 수 없다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지요.
예컨대,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습니다. 영혼은 죽음과 함께 소멸되고 지옥이 없다 주장하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육체는 썩고 영만 부활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통일교라 불리는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협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인류 구원에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다른 구세주가 필요한데 바로 그들의 교주가 구세주라고 했지요. 이들은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며 성경 외에 '원리강론'이라는 경전을 만들어 가르칩니다.
이처럼 이단들은 자기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시키고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에게는 성경 66권 외에 어떤 경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구속 외에는 죄 사함과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그 어떤 길도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대적하는 가짜 복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2.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들에게 미혹받지 않으려면
디도서 3장 10절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한두 번 말해서 상대가 듣지 않을 때는 계속 변론해도 소용 없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이단과 변론하다 보면 오히려 미혹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 1:10)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에게 미혹받지 않으려면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단번에 꺾어 버리겠다고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 접근해 오면 자신의 경험에 의지하여 물리치려고 하지 말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해야지요. "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은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3. 적그리스도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장차 될 일들을 자세히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 4:1)라고 권면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했기 때문입니다.
영에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선한 영과 미혹하여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한 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입니다(요일 4:2~3). 이는 단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만 믿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오셔야만 했던 이유와 구원의 섭리 전체를 믿는다는 의미이지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진리대로 행해 나갑니다.
반면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부인합니다. 특히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교묘히 미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 것은 곧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요이 1:7).
적그리스도의 영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사로잡은 경우와 적그리스도의 영이 생각을 통해 미혹하는 경우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영들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과 정반대로 나가도록 사로잡거나 생각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미혹되도록 역사합니다(요일 4:5~6).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 중에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과연 그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 말씀에 비춰 합당한지 점검해 보라는 뜻입니다.
4.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려면
요한일서 3장 7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미혹의 영은 세상의 영으로서 믿음에서 떠나도록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혹 믿는다 하면서 악한 궤계를 부리고 하나님 나라를 훼파하려고 한다면 이는 미혹의 영에게 역사를 받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리의 영 곧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또 자의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의 일을 알려 주십니다. 따라서 진리의 영을 받으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고 확장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믿는다 하면서 교회만 왔다갔다 할 뿐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서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을 받지 못하면 미혹의 영에 이끌려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딤전 4:1~2).
만약 믿음의 형제를 중상모략하거나 수군수군하는 등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며 훼방한다면 이는 진리의 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행함이 충성스럽게 보여도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의 열매, 불법의 열매가 맺혔다면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영이 아님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렇다고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이라 해서 다 적그리스도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믿고 십자가 구원의 도를 시인한다면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지요.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은 고의적으로 성경을 변질시키고 성령을 정면으로 대적하여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을 해 나갑니다. 따라서 진리에 굳게 서서 영들을 밝히 분별하여 미혹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단에 대한 특징으로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므로 육체로 죄를 지어도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②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부인한다.
③ 성경을 왜곡하고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④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한다.
2.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 )
3. ( ) 안에 알맞은 답을 쓰시오.
진리의 영 곧 ( )은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 ) 가운데로 인도한다. 또 자의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씀하시며 ( )의 ( )을 알려 주신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87~1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도 요한'
예수님의 제자로 아버지 세베대와 어머니 살로메 사이에서 야고보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그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성격이 급했다. 예수님을 매우 사랑한 그는 최후의 만찬상에서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울 정도로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요한은 곁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때 동정녀 마리아를 돌보아 달라는 예수님의 부탁을 받는다.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1,2,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교육목표 : 이단의 특징과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 바로 알아 미혹받지 않고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사소한 교리 차이를 놓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을 부인하지도 않고 신앙고백을 할 뿐 아니라,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은데도 이단이라고 판단해 버리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과 부활과 재림, 심판을 가르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결코 이단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단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1. 이단의 특징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 있으면 도덕적으로 살지 않아도 되고,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므로 육체로 죄를 지어도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부인했지요.
이처럼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 외에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이들은 대부분 호색하므로 진리의 도, 곧 하나님 말씀을 훼방합니다. 또 탐심으로 인해 거짓말을 지어내어 자기 이익을 취해 나갑니다. 천국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사람일뿐 결코 하나님과 하나일 수 없다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지요.
예컨대,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습니다. 영혼은 죽음과 함께 소멸되고 지옥이 없다 주장하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육체는 썩고 영만 부활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통일교라 불리는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협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인류 구원에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다른 구세주가 필요한데 바로 그들의 교주가 구세주라고 했지요. 이들은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며 성경 외에 '원리강론'이라는 경전을 만들어 가르칩니다.
이처럼 이단들은 자기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시키고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에게는 성경 66권 외에 어떤 경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구속 외에는 죄 사함과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그 어떤 길도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대적하는 가짜 복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2.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들에게 미혹받지 않으려면
디도서 3장 10절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한두 번 말해서 상대가 듣지 않을 때는 계속 변론해도 소용 없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이단과 변론하다 보면 오히려 미혹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 1:10)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에게 미혹받지 않으려면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단번에 꺾어 버리겠다고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 접근해 오면 자신의 경험에 의지하여 물리치려고 하지 말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해야지요. "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은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3. 적그리스도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장차 될 일들을 자세히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 4:1)라고 권면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했기 때문입니다.
영에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선한 영과 미혹하여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한 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입니다(요일 4:2~3). 이는 단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만 믿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오셔야만 했던 이유와 구원의 섭리 전체를 믿는다는 의미이지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진리대로 행해 나갑니다.
반면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부인합니다. 특히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교묘히 미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 것은 곧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요이 1:7).
적그리스도의 영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사로잡은 경우와 적그리스도의 영이 생각을 통해 미혹하는 경우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영들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과 정반대로 나가도록 사로잡거나 생각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미혹되도록 역사합니다(요일 4:5~6).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 중에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과연 그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 말씀에 비춰 합당한지 점검해 보라는 뜻입니다.
4.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려면
요한일서 3장 7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미혹의 영은 세상의 영으로서 믿음에서 떠나도록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혹 믿는다 하면서 악한 궤계를 부리고 하나님 나라를 훼파하려고 한다면 이는 미혹의 영에게 역사를 받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리의 영 곧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또 자의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의 일을 알려 주십니다. 따라서 진리의 영을 받으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고 확장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믿는다 하면서 교회만 왔다갔다 할 뿐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서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을 받지 못하면 미혹의 영에 이끌려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딤전 4:1~2).
만약 믿음의 형제를 중상모략하거나 수군수군하는 등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며 훼방한다면 이는 진리의 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행함이 충성스럽게 보여도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의 열매, 불법의 열매가 맺혔다면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영이 아님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렇다고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이라 해서 다 적그리스도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믿고 십자가 구원의 도를 시인한다면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지요.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은 고의적으로 성경을 변질시키고 성령을 정면으로 대적하여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을 해 나갑니다. 따라서 진리에 굳게 서서 영들을 밝히 분별하여 미혹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단에 대한 특징으로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므로 육체로 죄를 지어도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②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부인한다.
③ 성경을 왜곡하고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④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한다.
2.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 )
3. ( ) 안에 알맞은 답을 쓰시오.
진리의 영 곧 ( )은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 ) 가운데로 인도한다. 또 자의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씀하시며 ( )의 ( )을 알려 주신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87~1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도 요한'
예수님의 제자로 아버지 세베대와 어머니 살로메 사이에서 야고보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그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성격이 급했다. 예수님을 매우 사랑한 그는 최후의 만찬상에서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울 정도로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요한은 곁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때 동정녀 마리아를 돌보아 달라는 예수님의 부탁을 받는다.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1,2,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2013-06-02
제23과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이단
벧후 2:1
읽을말씀 : 벧후 2:1 | 외울말씀 : 벧후 2:1 ㅣ 참고 말씀:요일 2:22~23
교육목표 :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임을 알아 함부로 판단 정죄하거나 미혹당하지 않도록 한다.
세월이 갈수록 허황된 이론이 세상을 혼란케 하고 사람들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여 미혹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이 보기에 옳다고 인정해 온 이론이나 지식 때문에 잘못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도 여러 오류를 범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단에 관한 인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 때문에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날과 같이 이단 사상이 난무하는 마지막 때에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이단에 관한 인식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이단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 때 미혹당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1. 사도 바울을 이단의 괴수라 송사한 유대인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의 일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뛰어난 지식을 가진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하나님만 믿는 유대교 신자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메시아, 곧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면서 사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할 때에도 사울은 마땅하다고 여겼으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옥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신앙에 대전환점을 맞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4~5)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는 뒤 그는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후 사울은 일변하여 큰 권능을 행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다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으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요. 그런데 사도행전 24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단의 괴수'라고 고소를 당합니다.
이때 총독 앞에 선 바울은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4~16)라고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고백하였습니다.
이단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 옳지 않은 도,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설 또는 이론"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 바울을 이단이라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이단
오늘날도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를 믿는다고 해서,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이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단을 분별할 때는 반드시 성경의 기준에 근거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이단'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오는데, 그 정의는 한 군데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나 아담의 불순종 이후 죄인이 되어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피 값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죄로 인하여 원수 마귀에게 속해 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생명을 얻고 다시 하나님께 속하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피 값을 주고 우리를 사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자기들을 사신 주'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핍박했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등 누구도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자기들을 사신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 곧 이단이 등장하였지요.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한 번도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며 심한 고난과 모진 핍박을 받아도 오직 기쁨으로 이겨냈습니다. 순교하는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큰 권능을 나타내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믿으면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사람들 곧 '적그리스도'가 이단임을 알아 결코 미혹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처럼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을 널리 전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3. 이단의 정의를 바로 알고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어야
요한일서 2장 22~23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와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라는 말씀이지요.
어떤 이들은 성령의 역사가 활발한 교회를 이단이라 하거나 적그리스도라 정죄합니다. 이는 자신들의 영적인 무지함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가령,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이단이라 하고, 주기도문에 '대개'라는 단어를 안 넣었다고 이단이라 합니다. 방언이나 환상, 예언 등의 은사가 나타나고 치료의 역사나 표적이 일어나니까 이단이라 정죄합니다. 이 외에도 찬양할 때 박수 치고 예배 때 특송으로 무용을 하니까 이단이라고 하지요.
이는 성경에 근거한 이단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고,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함부로 이단이라 한다면 곧 성령을 정죄하며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단의 정의를 올바로 아는 사람은 쉽게 상대를 이단이라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내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고자 했지요. 이때 바리새인이었던 교법사 가말리엘은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면 굳이 사람이 나서서 무너뜨리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행 5:38~39).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인데 악한 마음으로 반대하고 훼방한다면 상대를 무너뜨리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므로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성경을 근거로 이단을 분별해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단의 정의를 써 보세요.
( )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②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③ 가말리엘은 사도 바울의 제자이다.
④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74~18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가말리엘'
그는 바리새인이자 위대한 율법학자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았다. 사도 바울의 스승이기도 하다(행 22:3). 산헤드린 공회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죽이려고 할 때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그는 이 일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뜨릴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여 사도들을 변증해 주었다(행 5:33~40).
교육목표 :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임을 알아 함부로 판단 정죄하거나 미혹당하지 않도록 한다.
세월이 갈수록 허황된 이론이 세상을 혼란케 하고 사람들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여 미혹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이 보기에 옳다고 인정해 온 이론이나 지식 때문에 잘못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도 여러 오류를 범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단에 관한 인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 때문에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날과 같이 이단 사상이 난무하는 마지막 때에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이단에 관한 인식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이단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 때 미혹당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1. 사도 바울을 이단의 괴수라 송사한 유대인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의 일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뛰어난 지식을 가진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하나님만 믿는 유대교 신자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메시아, 곧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면서 사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할 때에도 사울은 마땅하다고 여겼으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옥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신앙에 대전환점을 맞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4~5)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는 뒤 그는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후 사울은 일변하여 큰 권능을 행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다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으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요. 그런데 사도행전 24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단의 괴수'라고 고소를 당합니다.
이때 총독 앞에 선 바울은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4~16)라고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고백하였습니다.
이단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 옳지 않은 도,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설 또는 이론"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 바울을 이단이라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이단
오늘날도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를 믿는다고 해서,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이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단을 분별할 때는 반드시 성경의 기준에 근거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이단'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오는데, 그 정의는 한 군데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나 아담의 불순종 이후 죄인이 되어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피 값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죄로 인하여 원수 마귀에게 속해 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생명을 얻고 다시 하나님께 속하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피 값을 주고 우리를 사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자기들을 사신 주'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핍박했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등 누구도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자기들을 사신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 곧 이단이 등장하였지요.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한 번도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며 심한 고난과 모진 핍박을 받아도 오직 기쁨으로 이겨냈습니다. 순교하는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큰 권능을 나타내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믿으면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사람들 곧 '적그리스도'가 이단임을 알아 결코 미혹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처럼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을 널리 전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3. 이단의 정의를 바로 알고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어야
요한일서 2장 22~23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와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라는 말씀이지요.
어떤 이들은 성령의 역사가 활발한 교회를 이단이라 하거나 적그리스도라 정죄합니다. 이는 자신들의 영적인 무지함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가령,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이단이라 하고, 주기도문에 '대개'라는 단어를 안 넣었다고 이단이라 합니다. 방언이나 환상, 예언 등의 은사가 나타나고 치료의 역사나 표적이 일어나니까 이단이라 정죄합니다. 이 외에도 찬양할 때 박수 치고 예배 때 특송으로 무용을 하니까 이단이라고 하지요.
이는 성경에 근거한 이단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고,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함부로 이단이라 한다면 곧 성령을 정죄하며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단의 정의를 올바로 아는 사람은 쉽게 상대를 이단이라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내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고자 했지요. 이때 바리새인이었던 교법사 가말리엘은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면 굳이 사람이 나서서 무너뜨리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행 5:38~39).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인데 악한 마음으로 반대하고 훼방한다면 상대를 무너뜨리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므로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성경을 근거로 이단을 분별해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단의 정의를 써 보세요.
( )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②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③ 가말리엘은 사도 바울의 제자이다.
④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74~18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가말리엘'
그는 바리새인이자 위대한 율법학자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았다. 사도 바울의 스승이기도 하다(행 22:3). 산헤드린 공회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죽이려고 할 때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그는 이 일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뜨릴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여 사도들을 변증해 주었다(행 5:33~40).
2013-05-31
제22과응답받기 위한 하나님의 측정 기준-일곱 영(2)
계 5:6
읽을말씀 : 계 5:6 | 외울말씀 : 요 14:21 l 참고 말씀:잠 8:17, 출 20:6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하나님은 모든 응답과 축복을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 공의에 따라 주십니다. 여기에 적용되는 공의의 법칙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행실 등 모든 분야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일곱 가지 측면에서 측정하지요. 지난주에는 세 가지 측면 곧 믿음, 기쁨,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일곱 영의 측정 기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넷째로, 감사를 측정합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값없이 주신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고,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중심에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지요.
더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한 걸음씩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특별한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성장할수록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의 조건도 점점 많아집니다. 하루에도 감사의 조건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건 사고 많은 세상에서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니 염려 걱정할 것이 전혀 없지요. 또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세상에 무수한 질병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 범죄만 하지 않는다면 한 가지도 걸리지 않게 지켜 주시니 참으로 감사하지요. 이 외에도 세어 보면 감사의 조건이 무궁무진합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지요? 당장 눈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하여 일곱 영의 기준에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는 원망 불평한다면 일곱 영이 측정할 때 불합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의 행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측정합니다.
성경을 보면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그중에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함축하고 있는 열 가지 항목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도들이 십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잘 지킨 성도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계명을 잘 지키는지'가 왜 기도 응답의 조건에 들어갈까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며, 아무에게나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계명을 지키고 공의 가운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을 주시지요(출 20:6). 그래서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기쁘고 행복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하지만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계명대로 사는 것을 힘들게 느끼기도 하고 온전히 지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믿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계명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기셔서 응답해 주시지요.
여섯째로, 충성을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되이 감당하는지 측정합니다. 이때 충성은 교회에서 받은 사명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의 충성을 포함하여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 일 중에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믿음 있는 성도는 주의 일을 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리 안에서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때때로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고 직분 있는 일꾼인데도 지킴받지 못하고 큰 문제를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전에는 뜨겁게 사명 감당하며 충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명을 놓고 미지근해졌다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가령, 사업터를 확장하는 데 마음을 빼앗겨 주의 일을 소홀히 합니다. 또 생활이 어렵거나 가족의 핍박을 피해 보고자 타협하다 보니 사명에 대한 충성이 식어졌지요. 결국 사명을 억지로 힘들게 감당하는가 하면, 자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겨우 자리만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때는 충성했는데 왜 마음이 변개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열심을 냈다고 하지만 영적인 충성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충성은 꾸준히 마음의 할례, 곧 마음의 악을 버리는 작업입니다. 영적인 충성을 한 사람은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도 변함없이 해 나가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사명을 놓지 않지요.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면 육적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 자신의 마음에 남아 있는 육의 속성, 악의 모양이 발동되어 스스로 마음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변함없이 온전한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충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로, 사랑을 측정합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섯 가지 전체를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곧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을 사랑이 하나로 엮어서 온전하게 하지요.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사랑이 없는 믿음이나 기도, 감사, 충성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면 이 얼마나 악한 마음입니까? 기도할 때도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사랑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 향으로 상달되기 어렵습니다. 사랑 없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즐거이 지키는 것이 참입니다. 충성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이처럼 사랑이 다른 여섯 가지를 온전하게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랑이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우리가 모든 것을 행할 때 얼마나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지를 두루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여 일곱 영의 측정에 온전히 합격함으로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들은 전자제품의 부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부품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스위치를 켜도 작동하지 않지요. 이처럼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기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셔서 각각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합격 기준을 정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과하지 못할 높은 기준을 정해 놓고 응답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하여 그 수준에 맞게 합격 기준을 정하고 그에 합당하면 응답하시고자 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 영을 통해 세밀하게 기도 응답의 기준을 정하신 것은 어찌하든 더 많은 응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는 일곱 영의 기준에 모두 합격하셔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순서대로 써보세요.
( 믿음 ) → ( ) → ( 기도 ) → ( ) → ( 계명 지킴 )→ ( ) → ( 사랑 )
2. 다음 설명 중 옳은 것을 고르시오.
① 일곱 영이 마지막으로 측정하는 것은 충성이다.
② 일곱 영은 믿음, 기쁨, 기도, 감사, 충성, 온유, 절제를 측정한다.
③ 일곱 영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다.
④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맞게 구하도록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준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63~17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
육적인 사랑-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질되는 사랑이다.
영적인 사랑-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고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하나님은 모든 응답과 축복을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 공의에 따라 주십니다. 여기에 적용되는 공의의 법칙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행실 등 모든 분야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일곱 가지 측면에서 측정하지요. 지난주에는 세 가지 측면 곧 믿음, 기쁨,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일곱 영의 측정 기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넷째로, 감사를 측정합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값없이 주신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고,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중심에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지요.
더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한 걸음씩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특별한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성장할수록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의 조건도 점점 많아집니다. 하루에도 감사의 조건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건 사고 많은 세상에서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니 염려 걱정할 것이 전혀 없지요. 또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세상에 무수한 질병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 범죄만 하지 않는다면 한 가지도 걸리지 않게 지켜 주시니 참으로 감사하지요. 이 외에도 세어 보면 감사의 조건이 무궁무진합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지요? 당장 눈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하여 일곱 영의 기준에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는 원망 불평한다면 일곱 영이 측정할 때 불합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의 행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측정합니다.
성경을 보면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그중에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함축하고 있는 열 가지 항목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도들이 십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잘 지킨 성도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계명을 잘 지키는지'가 왜 기도 응답의 조건에 들어갈까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며, 아무에게나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계명을 지키고 공의 가운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을 주시지요(출 20:6). 그래서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기쁘고 행복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하지만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계명대로 사는 것을 힘들게 느끼기도 하고 온전히 지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믿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계명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기셔서 응답해 주시지요.
여섯째로, 충성을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되이 감당하는지 측정합니다. 이때 충성은 교회에서 받은 사명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의 충성을 포함하여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 일 중에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믿음 있는 성도는 주의 일을 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리 안에서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때때로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고 직분 있는 일꾼인데도 지킴받지 못하고 큰 문제를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전에는 뜨겁게 사명 감당하며 충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명을 놓고 미지근해졌다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가령, 사업터를 확장하는 데 마음을 빼앗겨 주의 일을 소홀히 합니다. 또 생활이 어렵거나 가족의 핍박을 피해 보고자 타협하다 보니 사명에 대한 충성이 식어졌지요. 결국 사명을 억지로 힘들게 감당하는가 하면, 자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겨우 자리만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때는 충성했는데 왜 마음이 변개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열심을 냈다고 하지만 영적인 충성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충성은 꾸준히 마음의 할례, 곧 마음의 악을 버리는 작업입니다. 영적인 충성을 한 사람은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도 변함없이 해 나가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사명을 놓지 않지요.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면 육적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 자신의 마음에 남아 있는 육의 속성, 악의 모양이 발동되어 스스로 마음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변함없이 온전한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충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로, 사랑을 측정합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섯 가지 전체를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곧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을 사랑이 하나로 엮어서 온전하게 하지요.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사랑이 없는 믿음이나 기도, 감사, 충성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면 이 얼마나 악한 마음입니까? 기도할 때도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사랑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 향으로 상달되기 어렵습니다. 사랑 없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즐거이 지키는 것이 참입니다. 충성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이처럼 사랑이 다른 여섯 가지를 온전하게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랑이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우리가 모든 것을 행할 때 얼마나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지를 두루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여 일곱 영의 측정에 온전히 합격함으로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들은 전자제품의 부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부품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스위치를 켜도 작동하지 않지요. 이처럼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기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셔서 각각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합격 기준을 정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과하지 못할 높은 기준을 정해 놓고 응답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하여 그 수준에 맞게 합격 기준을 정하고 그에 합당하면 응답하시고자 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 영을 통해 세밀하게 기도 응답의 기준을 정하신 것은 어찌하든 더 많은 응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는 일곱 영의 기준에 모두 합격하셔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순서대로 써보세요.
( 믿음 ) → ( ) → ( 기도 ) → ( ) → ( 계명 지킴 )→ ( ) → ( 사랑 )
2. 다음 설명 중 옳은 것을 고르시오.
① 일곱 영이 마지막으로 측정하는 것은 충성이다.
② 일곱 영은 믿음, 기쁨, 기도, 감사, 충성, 온유, 절제를 측정한다.
③ 일곱 영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다.
④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맞게 구하도록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준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63~17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
육적인 사랑-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질되는 사랑이다.
영적인 사랑-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고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다.
2013-05-24
제21과응답받기 위한 하나님의 측정기준 - 일곱 영(1)
계 5:6
읽을말씀 : 계 5:6 | 외울말씀 : 요 4:24 ㅣ참고 말씀:약 4:2~3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말합니다(요 4:24). 우리가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마음을 알아서 그 뜻에 맞게 구해야 하는데, 이러한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여기서 '일곱'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로서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인생들을 두루 감찰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계 5:6). 일곱 영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핌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에게 공의에 맞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요. 가령, 고기나 야채를 살 때 저울의 무게만큼 값을 치르듯이 일곱 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을 주시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면 마음에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아는 육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입술로 고백한다고 해서 믿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은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없이 믿는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은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을 버리고 성결되는 만큼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계명을 지키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은 하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버리라" 하신 것은 버리고 "지키라" 하신 것은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대로 준행할 때 하나님 앞에 책망할 것이 없으니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영적인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죄를 짓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해도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이 오지 않지요.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행할 때만이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일곱 영이 가장 먼저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기준으로 다른 분야도 측정되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춰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각각 다르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먼저 믿음을 측정한 후 나머지 여섯 가지 분야도 그 믿음의 분량에 맞는 기준을 적용하시지요. 그런데 큰 문제를 응답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뛰어 넘는 행함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믿음도 한층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지요. 주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의 온갖 문제로 인해 눈물, 슬픔, 근심, 걱정 가운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사랑과 은혜를 입었으니 날마다 천국 소망과 기쁨이 넘쳐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고백하지만, 이는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한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오면 슬퍼하고 이내 마음에서 기쁨이 사라져 버리지요. 내 유익에 맞고 나 보기에 좋을 때 나오는 조건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신앙 안에서 영적인 기쁨이 임한 사람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영생을 얻었고, 천국이 마음 가득하기에 중심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때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위해 애통할 때도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은 끊이지 않지요. 이런 영적인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은 곧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과 응답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은 비록 현실은 어려워도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찾아 행하지요. 그러니 하나님과 화평하고 주변 사람들과는 물론 자신과도 화평을 이룸으로 기쁨이 샘솟아 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기도를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는지" 등을 측정합니다. 무조건 많이 기도한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기도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하나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어떤 시험에도 들지 않습니다. 설령 시험이 와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지요.
또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뢴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음으로, 내 뜻대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22장 42절에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듯이, 기도는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맞춰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하신 대로, 욕심이나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하셨듯이 자신의 유익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기도는 힘쓰고 애써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습니다(눅 22:44). 우리는 핏방울까지는 아니더라도 땀이 날 정도로 힘써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적으로도 땀 흘리며 일을 해야 양식을 얻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땀 흘리는 수고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을 기록해 두셨습니다(렘 29:12, 33:3).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아셨기에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부르셨지요.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했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늘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중심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 기도란 마음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를 입술로 내어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모습으로, 유창한 말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의 진실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반드시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정말 응답받을 수 있을까? 안 되면 어떡하지?"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정녕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기뻐 받으시지요.
만일 기도할 때 믿음과 사랑이 없이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만한 향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짧은 시간을 기도한다 해도 반드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마음 중심을 다해 기도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보세요.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 )의 ( )을 말한다. 우리가 응답받는 데 있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 )이다.
2. 일곱 영이 첫 번째로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
3. 일곱 영이 두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
4. 일곱 영이 세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56~15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공의'란
선악 간에 공평하게 상벌(賞罰)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또는 속성을 일컫는다. 이때 '선악'을 가르는 기준은 진리 자체인 성경 66권 말씀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우시기에 불법, 불의, 편벽, 거짓, 어둠이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은 태초에 정하신 법과 질서에 따라 공의롭게 세상을 다스리신다. 인간을 경작하실 때도 인생들을 선악 간에 공정하게 심판하여 각 사람에게 상벌을 주신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말합니다(요 4:24). 우리가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마음을 알아서 그 뜻에 맞게 구해야 하는데, 이러한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여기서 '일곱'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로서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인생들을 두루 감찰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계 5:6). 일곱 영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핌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에게 공의에 맞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요. 가령, 고기나 야채를 살 때 저울의 무게만큼 값을 치르듯이 일곱 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을 주시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면 마음에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아는 육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입술로 고백한다고 해서 믿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은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없이 믿는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은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을 버리고 성결되는 만큼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계명을 지키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은 하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버리라" 하신 것은 버리고 "지키라" 하신 것은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대로 준행할 때 하나님 앞에 책망할 것이 없으니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영적인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죄를 짓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해도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이 오지 않지요.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행할 때만이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일곱 영이 가장 먼저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기준으로 다른 분야도 측정되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춰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각각 다르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먼저 믿음을 측정한 후 나머지 여섯 가지 분야도 그 믿음의 분량에 맞는 기준을 적용하시지요. 그런데 큰 문제를 응답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뛰어 넘는 행함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믿음도 한층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지요. 주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의 온갖 문제로 인해 눈물, 슬픔, 근심, 걱정 가운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사랑과 은혜를 입었으니 날마다 천국 소망과 기쁨이 넘쳐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고백하지만, 이는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한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오면 슬퍼하고 이내 마음에서 기쁨이 사라져 버리지요. 내 유익에 맞고 나 보기에 좋을 때 나오는 조건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신앙 안에서 영적인 기쁨이 임한 사람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영생을 얻었고, 천국이 마음 가득하기에 중심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때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위해 애통할 때도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은 끊이지 않지요. 이런 영적인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은 곧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과 응답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은 비록 현실은 어려워도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찾아 행하지요. 그러니 하나님과 화평하고 주변 사람들과는 물론 자신과도 화평을 이룸으로 기쁨이 샘솟아 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기도를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는지" 등을 측정합니다. 무조건 많이 기도한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기도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하나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어떤 시험에도 들지 않습니다. 설령 시험이 와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지요.
또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뢴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음으로, 내 뜻대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22장 42절에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듯이, 기도는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맞춰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하신 대로, 욕심이나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하셨듯이 자신의 유익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기도는 힘쓰고 애써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습니다(눅 22:44). 우리는 핏방울까지는 아니더라도 땀이 날 정도로 힘써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적으로도 땀 흘리며 일을 해야 양식을 얻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땀 흘리는 수고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을 기록해 두셨습니다(렘 29:12, 33:3).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아셨기에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부르셨지요.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했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늘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중심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 기도란 마음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를 입술로 내어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모습으로, 유창한 말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의 진실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반드시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정말 응답받을 수 있을까? 안 되면 어떡하지?"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정녕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기뻐 받으시지요.
만일 기도할 때 믿음과 사랑이 없이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만한 향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짧은 시간을 기도한다 해도 반드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마음 중심을 다해 기도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보세요.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 )의 ( )을 말한다. 우리가 응답받는 데 있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 )이다.
2. 일곱 영이 첫 번째로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
3. 일곱 영이 두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
4. 일곱 영이 세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56~15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공의'란
선악 간에 공평하게 상벌(賞罰)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또는 속성을 일컫는다. 이때 '선악'을 가르는 기준은 진리 자체인 성경 66권 말씀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우시기에 불법, 불의, 편벽, 거짓, 어둠이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은 태초에 정하신 법과 질서에 따라 공의롭게 세상을 다스리신다. 인간을 경작하실 때도 인생들을 선악 간에 공정하게 심판하여 각 사람에게 상벌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