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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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4
제40과사람의 근본
요 1:1
읽을말씀 : 요 1:1 | 외울말씀 : 창 2:7 l 참고 말씀:롬 1:20
교육목표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임을 깨달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한다.
많은 사람이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깊이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성인이라고 불리는 공자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도 근본적인 해답을 찾고자 힘썼습니다.
공자는 인을 정치, 윤리사상의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설파하며 많은 제자를 양성했고, 석가모니는 생로병사의 번뇌에서 해탈하고자 스스로 고행의 길을 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나름대로 진리를 추구하며 참다운 지식을 탐구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근본적인 해답을 찾지 못하여 참된 진리에 이르지 못했으며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었습니다. 창세 전부터 감추어진 진리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우칠 때라야 비로소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사람의 근본
세상에서는 "닭이 먼저다! 달걀이 먼저다!" 하며 갑론을박을 하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그 해답이 명확히 나와 있지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장성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다음에 정자와 난자를 주어 잉태하게 하신 것을 보면 무엇이 먼저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장 7절에 사람의 근본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되어진 일이지요. 다시 말해, 아담은 어린 아이의 상태가 아니라 성인으로 지음을 받은 후 생령이 되었고 하나님을 통해 영의 지식들을 하나하나 배워 나갔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진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사람은 진화된 것이 아니지요.
우리 사람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한낱 하등한 생물에서 진화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 존재로 지어졌지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고 생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에 영육간의 모든 것이 근본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위로부터 난 신령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동물들보다 좀 더 진화된 고등동물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진화의 증거로 내세우는 화석을 살펴보아도 종과 종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형태의 화석이 없으니 과학적으로도 타당성이 없습니다. 오히려 창조의 증거는 매우 많습니다.
한 예로,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는 눈, 코, 입 등의 구조와 위치가 같습니다. 각종 동물도 무리의 법칙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역시 사람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창조주 한 분에 의해 설계되고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 외에도 태양계 안의 모든 것이 한 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운행되는 사실 자체가 창조의 증거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이 진화되어 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왜 이 땅에서 살아가는지 깨닫지 못하지요.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은 거룩한 존재임을 깨달으면 우리의 아버지가 누구신지 바로 알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그분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내 아버지는 분명히 나를 낳아 주신 분인데….' 하며 혈연으로 이어진 아버지만을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조상을 찾아 올라가면 첫 사람 아담이 나오지요. 그러니 우리의 참 아버지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씨인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도구로 빌려 드린 것뿐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씨와 잉태
이처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남자에게는 정자, 여자에게는 난자를 주고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근본 생명의 씨를 주신 것입니다. 생명의 씨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의 모든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지만, 부모의 성격이나 외모, 습관 등 모든 기(氣)가 한 군데로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태어나면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부모를 닮습니다. 만약 사람에게 능력이 있어서 자녀를 낳을 수 있다면 왜 많은 사람이 잉태하지 못해서 고통을 받겠습니까?
잉태는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영역으로서 하나님만이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병원에서 인공수정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정자와 난자를 창조해서 잉태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조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뿐 아니라, 해외의 수많은 성도가 이러한 사실을 체험했지요. 결혼하여 수년이나 십여 년 이상, 또는 20년이 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여 병원에서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아도 소용이 없던 부부들이 기도를 받은 후, 잉태하여 건강한 자녀를 낳은 경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일례로, 수년 전에 일본에 사는 한 부부가 부흥성회에 오셔서 제게 기도를 받은 후 질병을 치료받음은 물론 잉태의 축복까지 받았지요. 그러한 사실이 주변에 전해지면서 일본에 계시는 많은 분이 기도받기 위해 찾아오셨고, 그분들의 믿음대로 잉태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성도들의 요청에 의해 그곳에 지교회가 세워지기까지 했습니다.
3. 불가능이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
오늘날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다지만 생명을 창조하는 것은 오직 생명의 주관자인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잉태뿐만이 아닙니다.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나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며, 인간의 과학과 의학으로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불치병, 난치병이 깨끗이 치료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근본의 소리만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며, 불가능이 없는 권능의 역사를 펼쳐내지요.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한 대로 만물을 보아도 그 속에서 우리는 만물의 근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 깨닫고자 한다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또 믿는다면서도 성경 말씀을 백 퍼센트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수많은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심으로써 선포되는 말씀이 참임을 증거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마음에서 믿고 전적으로 의뢰할 때에 어떠한 문제나 질병도 해결됩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며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가 발하여질 때 눈먼 사람이 보며, 지팡이와 목발과 휠체어를 버리고 일어나 걷고 뛰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가 발하여질 때 믿고 순종함으로 모든 간구와 소원에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진화론의 허구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아래와 같은 일을 본 적이 있나요?
□ 단 한 번이라도 생물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저절로 생기는 것을 보았나요?
(콩을 심지도 않았는데 콩이 땅에서 나올 리는 없다.)
□ 단 한 번이라도 돌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무생물이 생명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단 한 번이라도 원숭이가 사람을 낳은 것을 본 적이 있나요?
□ 원숭이가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을 본 적 있나요?
(종(種)에서 다른 종으로 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단 하나라도 양심이 있는 돌을 본 적이 있나요?
(양심이 없는 무생물이 지적인, 인격적인, 도덕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세상에서 단 하나라도 만든 이가 없이 저절로 된 것이 있나요?
(비행기, 자동차, 핸드폰 등)
● 금주 과제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 책자 35~5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진화론의 허구
진화론에서는 사람이 원숭이와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동일 조상으로부터 사람에 이르는 중간 단계 유사화석조각에 수많은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 근거가 상당히 미약하여 상상에 불과한 중간 단계 화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숭이가 아니면 사람이지, 중간 동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진화론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이론으로서 상상에 기초한 가설일 뿐이다.
교육목표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임을 깨달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한다.
많은 사람이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깊이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성인이라고 불리는 공자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도 근본적인 해답을 찾고자 힘썼습니다.
공자는 인을 정치, 윤리사상의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설파하며 많은 제자를 양성했고, 석가모니는 생로병사의 번뇌에서 해탈하고자 스스로 고행의 길을 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나름대로 진리를 추구하며 참다운 지식을 탐구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근본적인 해답을 찾지 못하여 참된 진리에 이르지 못했으며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었습니다. 창세 전부터 감추어진 진리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우칠 때라야 비로소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사람의 근본
세상에서는 "닭이 먼저다! 달걀이 먼저다!" 하며 갑론을박을 하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그 해답이 명확히 나와 있지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장성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다음에 정자와 난자를 주어 잉태하게 하신 것을 보면 무엇이 먼저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장 7절에 사람의 근본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되어진 일이지요. 다시 말해, 아담은 어린 아이의 상태가 아니라 성인으로 지음을 받은 후 생령이 되었고 하나님을 통해 영의 지식들을 하나하나 배워 나갔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진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사람은 진화된 것이 아니지요.
우리 사람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한낱 하등한 생물에서 진화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 존재로 지어졌지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고 생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에 영육간의 모든 것이 근본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위로부터 난 신령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동물들보다 좀 더 진화된 고등동물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진화의 증거로 내세우는 화석을 살펴보아도 종과 종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형태의 화석이 없으니 과학적으로도 타당성이 없습니다. 오히려 창조의 증거는 매우 많습니다.
한 예로,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는 눈, 코, 입 등의 구조와 위치가 같습니다. 각종 동물도 무리의 법칙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역시 사람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창조주 한 분에 의해 설계되고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 외에도 태양계 안의 모든 것이 한 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운행되는 사실 자체가 창조의 증거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이 진화되어 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왜 이 땅에서 살아가는지 깨닫지 못하지요.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은 거룩한 존재임을 깨달으면 우리의 아버지가 누구신지 바로 알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그분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내 아버지는 분명히 나를 낳아 주신 분인데….' 하며 혈연으로 이어진 아버지만을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조상을 찾아 올라가면 첫 사람 아담이 나오지요. 그러니 우리의 참 아버지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씨인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도구로 빌려 드린 것뿐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씨와 잉태
이처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남자에게는 정자, 여자에게는 난자를 주고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근본 생명의 씨를 주신 것입니다. 생명의 씨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의 모든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지만, 부모의 성격이나 외모, 습관 등 모든 기(氣)가 한 군데로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태어나면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부모를 닮습니다. 만약 사람에게 능력이 있어서 자녀를 낳을 수 있다면 왜 많은 사람이 잉태하지 못해서 고통을 받겠습니까?
잉태는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영역으로서 하나님만이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병원에서 인공수정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정자와 난자를 창조해서 잉태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조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뿐 아니라, 해외의 수많은 성도가 이러한 사실을 체험했지요. 결혼하여 수년이나 십여 년 이상, 또는 20년이 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여 병원에서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아도 소용이 없던 부부들이 기도를 받은 후, 잉태하여 건강한 자녀를 낳은 경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일례로, 수년 전에 일본에 사는 한 부부가 부흥성회에 오셔서 제게 기도를 받은 후 질병을 치료받음은 물론 잉태의 축복까지 받았지요. 그러한 사실이 주변에 전해지면서 일본에 계시는 많은 분이 기도받기 위해 찾아오셨고, 그분들의 믿음대로 잉태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성도들의 요청에 의해 그곳에 지교회가 세워지기까지 했습니다.
3. 불가능이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
오늘날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다지만 생명을 창조하는 것은 오직 생명의 주관자인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잉태뿐만이 아닙니다.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나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며, 인간의 과학과 의학으로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불치병, 난치병이 깨끗이 치료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근본의 소리만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며, 불가능이 없는 권능의 역사를 펼쳐내지요.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한 대로 만물을 보아도 그 속에서 우리는 만물의 근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 깨닫고자 한다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또 믿는다면서도 성경 말씀을 백 퍼센트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수많은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심으로써 선포되는 말씀이 참임을 증거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마음에서 믿고 전적으로 의뢰할 때에 어떠한 문제나 질병도 해결됩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며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가 발하여질 때 눈먼 사람이 보며, 지팡이와 목발과 휠체어를 버리고 일어나 걷고 뛰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가 발하여질 때 믿고 순종함으로 모든 간구와 소원에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진화론의 허구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아래와 같은 일을 본 적이 있나요?
□ 단 한 번이라도 생물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저절로 생기는 것을 보았나요?
(콩을 심지도 않았는데 콩이 땅에서 나올 리는 없다.)
□ 단 한 번이라도 돌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무생물이 생명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단 한 번이라도 원숭이가 사람을 낳은 것을 본 적이 있나요?
□ 원숭이가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을 본 적 있나요?
(종(種)에서 다른 종으로 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단 하나라도 양심이 있는 돌을 본 적이 있나요?
(양심이 없는 무생물이 지적인, 인격적인, 도덕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세상에서 단 하나라도 만든 이가 없이 저절로 된 것이 있나요?
(비행기, 자동차, 핸드폰 등)
● 금주 과제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 책자 35~5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진화론의 허구
진화론에서는 사람이 원숭이와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동일 조상으로부터 사람에 이르는 중간 단계 유사화석조각에 수많은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 근거가 상당히 미약하여 상상에 불과한 중간 단계 화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숭이가 아니면 사람이지, 중간 동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진화론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이론으로서 상상에 기초한 가설일 뿐이다.
2013-09-27
제39과하나님의 근본
요 1:1
읽을말씀 : 요 1:1 | 외울말씀 : 요 1:1 l 참고 말씀:요일 1:5, 창 1:1
교육목표 :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의 근본을 바로 알아 아비의 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천지 만물이 어떻게 생겨났고 광활한 우주 공간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며, 참 신이 누구신지를 모르기 때문에 헛된 것을 좇아 방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이 땅에 살고 있는지, 참된 삶의 목적과 가치를 모르니 자신의 뜻대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마치 뿌리 없는 나무같이 사람의 근본에 대해 모른 채 하루 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을 알고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깨우친다면 누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사람의 본분을 좇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의 근본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면 태초의 하나님 곧 하나님의 근본에 대해 알려 줍니다. 태초란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영원 전을 의미하며, 우주 모든 공간 속에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 계실 때를 말합니다. 여기서 우주 모든 공간이란 우리가 아는 거대한 우주 공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 공간 외에 이보다 크고 넓은 공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에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이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이 유한하며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은 영원 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태초에 하나님이 계시니라" 해도 되는데 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하신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계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질적인 형상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우상을 만드는 등 늘 형상화된 신을 찾지요. 하지만 어찌 사람이 만든 우상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는 신이 될 수 있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며 인류 역사를 주관할 수 있겠습니까.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러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과연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존재하셨을까요? 어떤 이름이나 형상도 필요 없는 아름다운 빛과 소리로 존재하셨습니다. 바로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시면서 모든 우주 공간을 다스리셨지요.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말씀하신 대로 빛으로 모든 우주 공간을 두르고 그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으셨습니다. 그 소리가 바로 '말씀'입니다.
2. 인간 경작을 계획하신 근본 하나님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자 한 가지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경작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 땅에 인간을 창조하고 번성하게 하셔서 그들 중에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아름다운 천국으로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사시려는 계획'입니다.
이처럼 인간 경작의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준비 작업을 하나하나 이루십니다. 첫 번째가 공간을 나누는 것이었지요. 본디 모든 공간이 하나였는데 인간 경작을 위해 필요에 따라 여럿으로 나누신 것입니다. 그런데 공간을 분리한 뒤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태초에 근본의 빛과 소리로 존재하시던 근본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게 된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낳으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 또는 독생자라 표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5절에도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말씀했지요.
이처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근본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나오셨고 마음도, 능력도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빌립보서 2장 6~7절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말씀합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
태초에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고 계셨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과연 어떠한 형상을 입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며,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말씀을 통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떤 형상을 입고 계신지도 능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씀이 단지 겉모습만 그대로 본떴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사람의 근본 마음까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진리가 충만한 영적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의 죄로 인해 사람은 창조될 때의 형상을 잃고 점점 죄와 악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 형상에 따라 지음받은 존재임을 안다면 잃어 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4. 참 자녀를 얻고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분리하신 공간 안에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창조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태초에 빛과 소리로 계실 때에는 처소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형상을 입은 뒤에는 처소를 비롯하여 수종드는 천군과 천사 등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영의 공간 안에 우선 영의 존재들을 창조하고 루시퍼 배반 이후에 비로소 지구를 창조하시고 우리가 사는 우주 공간 안에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천군 천사들이 영의 공간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세월을 함께 지낸 뒤 마침내 육의 공간에도 천지창조가 이루어졌습니다(창세기 강해 참조).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드신 뒤 맨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있는데도 굳이 사람을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참 자녀'란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서 하나님과 참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천군과 천사는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로봇과 같이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복종하고 섬기는 존재입니다. 반면에 사람은 자유 의지 가운데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순종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이지요. 아무리 자신의 뜻대로 움직인다 해도 자녀보다 로봇을 더 좋아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진정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녀가 더 사랑스럽고 좋지요. 사람은 자유 의지 가운데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물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라면서 온갖 삶을 체험하며 오직 참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누가 시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유 의지 가운데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그러면서도 변함이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마음에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인간 경작을 계획하고, 이를 위해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인간을 경작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근본을 밝히 깨닫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참 자녀로 나와 아버지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창세기 1:1의 '태초'는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시작하신 시점이다.
② 요한복음 1:1의 '태초'는 천지 창조 이전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득히 오래전의 시점을 말한다.
③ 하나님은 홀로 완전하신 분이기에 누가 하나님을 낳은 것이 아니며 원래부터 스스로 계셨다.
④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계셨다.
2.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기 전, 근본의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계셨을까요?
( )
3. 근본의 소리와 근본의 빛을 통해 응답받고 치료받은 간증을 나눠 보세요.
● 금주 과제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 책자 17~2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근본의 소리'
창조주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소리이다. 시편 68편 33절에 보면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했는데, 주께서 발하시는 이 웅장한 소리가 근본의 소리이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 자체로서 이 소리가 발하여질 때 천하 모든 우주 만물이 순종하며 발해진 소리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명하시자 그 말씀대로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는데 이때 발하셨던 하나님의 소리가 창조의 근본의 소리이다.
교육목표 :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의 근본을 바로 알아 아비의 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천지 만물이 어떻게 생겨났고 광활한 우주 공간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며, 참 신이 누구신지를 모르기 때문에 헛된 것을 좇아 방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이 땅에 살고 있는지, 참된 삶의 목적과 가치를 모르니 자신의 뜻대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마치 뿌리 없는 나무같이 사람의 근본에 대해 모른 채 하루 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을 알고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깨우친다면 누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사람의 본분을 좇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의 근본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면 태초의 하나님 곧 하나님의 근본에 대해 알려 줍니다. 태초란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영원 전을 의미하며, 우주 모든 공간 속에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 계실 때를 말합니다. 여기서 우주 모든 공간이란 우리가 아는 거대한 우주 공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 공간 외에 이보다 크고 넓은 공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에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이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이 유한하며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은 영원 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태초에 하나님이 계시니라" 해도 되는데 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하신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계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질적인 형상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우상을 만드는 등 늘 형상화된 신을 찾지요. 하지만 어찌 사람이 만든 우상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는 신이 될 수 있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며 인류 역사를 주관할 수 있겠습니까.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러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과연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존재하셨을까요? 어떤 이름이나 형상도 필요 없는 아름다운 빛과 소리로 존재하셨습니다. 바로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시면서 모든 우주 공간을 다스리셨지요.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말씀하신 대로 빛으로 모든 우주 공간을 두르고 그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으셨습니다. 그 소리가 바로 '말씀'입니다.
2. 인간 경작을 계획하신 근본 하나님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자 한 가지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경작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 땅에 인간을 창조하고 번성하게 하셔서 그들 중에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아름다운 천국으로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사시려는 계획'입니다.
이처럼 인간 경작의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준비 작업을 하나하나 이루십니다. 첫 번째가 공간을 나누는 것이었지요. 본디 모든 공간이 하나였는데 인간 경작을 위해 필요에 따라 여럿으로 나누신 것입니다. 그런데 공간을 분리한 뒤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태초에 근본의 빛과 소리로 존재하시던 근본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게 된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낳으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 또는 독생자라 표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5절에도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말씀했지요.
이처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근본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나오셨고 마음도, 능력도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빌립보서 2장 6~7절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말씀합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
태초에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고 계셨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과연 어떠한 형상을 입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며,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말씀을 통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떤 형상을 입고 계신지도 능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씀이 단지 겉모습만 그대로 본떴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사람의 근본 마음까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진리가 충만한 영적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의 죄로 인해 사람은 창조될 때의 형상을 잃고 점점 죄와 악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 형상에 따라 지음받은 존재임을 안다면 잃어 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4. 참 자녀를 얻고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분리하신 공간 안에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창조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태초에 빛과 소리로 계실 때에는 처소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형상을 입은 뒤에는 처소를 비롯하여 수종드는 천군과 천사 등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영의 공간 안에 우선 영의 존재들을 창조하고 루시퍼 배반 이후에 비로소 지구를 창조하시고 우리가 사는 우주 공간 안에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천군 천사들이 영의 공간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세월을 함께 지낸 뒤 마침내 육의 공간에도 천지창조가 이루어졌습니다(창세기 강해 참조).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드신 뒤 맨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있는데도 굳이 사람을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참 자녀'란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서 하나님과 참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천군과 천사는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로봇과 같이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복종하고 섬기는 존재입니다. 반면에 사람은 자유 의지 가운데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순종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이지요. 아무리 자신의 뜻대로 움직인다 해도 자녀보다 로봇을 더 좋아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진정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녀가 더 사랑스럽고 좋지요. 사람은 자유 의지 가운데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물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라면서 온갖 삶을 체험하며 오직 참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누가 시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유 의지 가운데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그러면서도 변함이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마음에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인간 경작을 계획하고, 이를 위해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인간을 경작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근본을 밝히 깨닫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참 자녀로 나와 아버지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창세기 1:1의 '태초'는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시작하신 시점이다.
② 요한복음 1:1의 '태초'는 천지 창조 이전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득히 오래전의 시점을 말한다.
③ 하나님은 홀로 완전하신 분이기에 누가 하나님을 낳은 것이 아니며 원래부터 스스로 계셨다.
④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계셨다.
2.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기 전, 근본의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계셨을까요?
( )
3. 근본의 소리와 근본의 빛을 통해 응답받고 치료받은 간증을 나눠 보세요.
● 금주 과제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 책자 17~2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근본의 소리'
창조주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소리이다. 시편 68편 33절에 보면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했는데, 주께서 발하시는 이 웅장한 소리가 근본의 소리이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 자체로서 이 소리가 발하여질 때 천하 모든 우주 만물이 순종하며 발해진 소리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명하시자 그 말씀대로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는데 이때 발하셨던 하나님의 소리가 창조의 근본의 소리이다.
2013-09-19
제38과추석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305장 ---------------------------- 다 같이
1.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2.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 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3.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 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기 도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데살로니가전서 5:18 ------------------- 인도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설 교 ------------------------------ 감 사 -------------------------- 설교자
2. 설교 예문
사람들은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가 저절로 나옵니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어려운 일을 당면하면 힘들어하기도 하고, 짜증과 불평을 쏟아내기도 하지요. 혹여 사는 것이 지치고 힘이 든다고 생각된다면 아주 작은 것부터 찾아 감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입니까? 산소 호흡기 없이 숨쉴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욱 감사할 수 있는 것들로 채워 주십니다.
장밋빛 꿈을 가지고 결혼생활을 시작한 여 성도님의 간증입니다. 신혼 초부터 남편은 술에 취해 귀가하더니 1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남편을 보니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처량하고 서글퍼져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불현듯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범사에 감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라는 말씀이었지요. 감사의 조건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데 찾으려고 애쓰니 몇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이런 남편이라도 살아 있으니 감사합니다. 술에 만취하여 정신이 없어도 신기하게 집을 잘 찾아오니 감사합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니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꼭 주님을 영접할 것이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장로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할 것이니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하는 감사기도였는데 계속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리자, 점점 진심에서 감사가 우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마침내는 회개가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남편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 속으로 남편을 무시했던 것, 다른 남편들과 비교했던 것, 잘 섬기지 못했던 것" 등을 회개하였지요. 그러고 나자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때 한참을 자던 남편이 눈을 떴는데 아내가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왜 그러느냐?"고 묻자, "여보! 그동안 나같이 부족한 사람하고 살아 줘서 너무나 감사해요. 밖에서 고생하고 온 당신을 따뜻하게 맞아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트집 잡고 힘들게 했어요. 그러면서도 제가 잘하는 줄 알았어요. 너무나 미안해요. 앞으로 더 잘할게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눈시울을 붉히면서 "여보! 당신이 그렇게 술 좀 적당히 먹으라고 했건만 듣지 않고 당신을 힘들게 했는데 오히려 나 같은 사람과 사는 것에 감사하다고 하니 민망하고 부끄럽구려. 이제부터는 술을 끊겠소. 그리고 내가 교회 가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라면 당장 내일부터 가겠소." 하는 것이었습니다. 10년을 기도해도 꿈쩍 않던 남편이 아내가 중심에서 회개하며 감사했을 때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감사'는 응답을 끌어내리는 통로가 됩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 하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이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기쁘고 행복한 일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불통하여 괴로운 일 앞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당회장이신 이재록 목사님은 숨조차 쉬기 힘든 절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7년 동안 온갖 질병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성전에 가서 무릎을 꿇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모든 질병을 단번에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오직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으로 부르시고 무수한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천국은 눈물, 슬픔, 고통, 질병이 없고 영원토록 행복과 기쁨만 있는 곳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4차원의 영의 세계이므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지요. 더구나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예비하신 최고의 선물이니 얼마나 행복과 기쁨, 감사가 넘쳐나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의 삶이 고달파도 죽으면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라 여기지요.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육이 있어서 육은 썩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소멸되지 않고 천국과 지옥 둘 중에 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즉 주님을 믿은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떨어지지요.
우리 조상들도 사후 세계를 믿고 인정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해도, 사후 세계를 알았기에 추석이나 명절이 되면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면 마치 조상의 영혼이 와서 제사상을 받을 것이라 여겼지요. 그러나 죽으면 영혼이 이 땅에 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며 절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예수가 우리 구세주 되심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을 믿습니다. 혹여 그동안 진리를 몰라 제사를 드렸다 해도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았으니 천국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고 응답하시며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풍성한 열매와 우리에게 늘 감사의 조건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향을 올려드리심으로, 항상 웃음꽃이 피어나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 도 -------------------------------------------------------------- 설교자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305장 ---------------------------- 다 같이
1.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2.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 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3.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 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기 도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데살로니가전서 5:18 ------------------- 인도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설 교 ------------------------------ 감 사 -------------------------- 설교자
2. 설교 예문
사람들은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가 저절로 나옵니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어려운 일을 당면하면 힘들어하기도 하고, 짜증과 불평을 쏟아내기도 하지요. 혹여 사는 것이 지치고 힘이 든다고 생각된다면 아주 작은 것부터 찾아 감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입니까? 산소 호흡기 없이 숨쉴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욱 감사할 수 있는 것들로 채워 주십니다.
장밋빛 꿈을 가지고 결혼생활을 시작한 여 성도님의 간증입니다. 신혼 초부터 남편은 술에 취해 귀가하더니 1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남편을 보니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처량하고 서글퍼져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불현듯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범사에 감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라는 말씀이었지요. 감사의 조건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데 찾으려고 애쓰니 몇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이런 남편이라도 살아 있으니 감사합니다. 술에 만취하여 정신이 없어도 신기하게 집을 잘 찾아오니 감사합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니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꼭 주님을 영접할 것이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장로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할 것이니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하는 감사기도였는데 계속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리자, 점점 진심에서 감사가 우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마침내는 회개가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남편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 속으로 남편을 무시했던 것, 다른 남편들과 비교했던 것, 잘 섬기지 못했던 것" 등을 회개하였지요. 그러고 나자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때 한참을 자던 남편이 눈을 떴는데 아내가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왜 그러느냐?"고 묻자, "여보! 그동안 나같이 부족한 사람하고 살아 줘서 너무나 감사해요. 밖에서 고생하고 온 당신을 따뜻하게 맞아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트집 잡고 힘들게 했어요. 그러면서도 제가 잘하는 줄 알았어요. 너무나 미안해요. 앞으로 더 잘할게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눈시울을 붉히면서 "여보! 당신이 그렇게 술 좀 적당히 먹으라고 했건만 듣지 않고 당신을 힘들게 했는데 오히려 나 같은 사람과 사는 것에 감사하다고 하니 민망하고 부끄럽구려. 이제부터는 술을 끊겠소. 그리고 내가 교회 가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라면 당장 내일부터 가겠소." 하는 것이었습니다. 10년을 기도해도 꿈쩍 않던 남편이 아내가 중심에서 회개하며 감사했을 때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감사'는 응답을 끌어내리는 통로가 됩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 하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이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기쁘고 행복한 일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불통하여 괴로운 일 앞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당회장이신 이재록 목사님은 숨조차 쉬기 힘든 절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7년 동안 온갖 질병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성전에 가서 무릎을 꿇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모든 질병을 단번에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오직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으로 부르시고 무수한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천국은 눈물, 슬픔, 고통, 질병이 없고 영원토록 행복과 기쁨만 있는 곳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4차원의 영의 세계이므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지요. 더구나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예비하신 최고의 선물이니 얼마나 행복과 기쁨, 감사가 넘쳐나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의 삶이 고달파도 죽으면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라 여기지요.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육이 있어서 육은 썩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소멸되지 않고 천국과 지옥 둘 중에 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즉 주님을 믿은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떨어지지요.
우리 조상들도 사후 세계를 믿고 인정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해도, 사후 세계를 알았기에 추석이나 명절이 되면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면 마치 조상의 영혼이 와서 제사상을 받을 것이라 여겼지요. 그러나 죽으면 영혼이 이 땅에 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며 절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예수가 우리 구세주 되심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을 믿습니다. 혹여 그동안 진리를 몰라 제사를 드렸다 해도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았으니 천국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고 응답하시며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풍성한 열매와 우리에게 늘 감사의 조건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향을 올려드리심으로, 항상 웃음꽃이 피어나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 도 -------------------------------------------------------------- 설교자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3-09-13
제37과하나님의 섭리는 변함이 없나니
신 26:16~19
읽을말씀 : 신 26:16~19 | 외울말씀 : 신 26:16 ㅣ 참고 말씀:요복음 4:48, 딤후 3:1~5
교육목표 : 성경상에 나타난 마지막 때 징조들을 정확히 알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신부단장을 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늘이 흐리면 비가 올 것을 알 수 있듯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지막 때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는 마지막 때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모든 영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베드로후서 3장 3~4절에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했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를 알려 주어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때가 있으면 반드시 죽는 때가 오듯이, 인류 역사도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이 세상도 종말을 맞이합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산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전도를 받고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거나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악 중에 산 사람들은 지옥으로 갑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자 마음이 급하신 것이지요. 오늘날 하나님께서 권능을 나타내시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주어 어찌하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대로 죄악이 관영하고 지식이 더하는 오늘날은 더더욱 권능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2. 마지막 때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간 경작의 역사는 이미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구원받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아직도 핍박과 억압으로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나라들이 많습니다.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지요. 또한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참된 신앙을 가진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하신 대로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 사람과 별다를 바 없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핍박이 심한 곳도 권능을 체험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고 복음이 불같이 확산됩니다.
참 믿음을 갖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던 사람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면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법적으로 복음 전파를 금지하고 우상을 섬기며 교회를 핍박하는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힘써 선교해 왔습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은 이슬람교가 왕성한 파키스탄과 두바이, 대부분이 힌두교인인 인도 등지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권능을 체험하고 개신교로 개종하였지요.
농부가 추수 때에 곡식을 거둬들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마지막 때 전 세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3.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과 하나님의 섭리
성경은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도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예언한 내용들은 대부분 그대로 이루어졌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나타날 일들입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내용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남북 관계에 관한 예언입니다
개척 당시부터 남북 관계에 대한 말씀을 많이 주신 것은 마지막 때 본 제단에 북한 선교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해 왔고 주변 정세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정치, 경제가 불안정하고 우방이라 믿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개방의 물결을 타고 급속히 변하고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북한이 일시적으로 개방할 것과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문을 닫게 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미국의 압력으로 개방하지만 그 후로 중국과 러시아의 권력을 힘입어 다시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러니 북한이 개방되어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주의 종을 통해 북한 선교가 이루어지면 많은 영혼이 놀라운 치료와 응답의 역사를 체험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 세계 선교의 사명에 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수만, 수십만, 수백만 명이 모이는 해외 성회를 예비하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CNN을 통해 보도된 바 있는 우간다 연합대성회를 시작으로 중동 선교의 문을 연 파키스탄 연합대성회, 에이즈(AIDS) 등 수많은 질병들이 치료된 케냐 연합대성회를 통해 놀랍게 역사하셨지요.
하나님의 권능이 폭발적으로 나타난 필리핀 연합대성회와 중남미에 성령의 회오리 바람을 일으킨 온두라스 연합대성회, 인도 기독교 사상 최대 최다 최고인 연인원 3백만 명 이상이 참석한 인도 연합대성회를 허락하시고 두바이 선교를 통해 본격적인 중동 선교의 발판을 마련하게 하셨지요. 그 이후에도 러시아, 독일, 페루, 콩고민주공화국, 미국 뉴욕, 이스라엘, 에스토니아에서 해외성회를 통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그중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마지막 때가 되면 그곳에 우리가 들어가 선교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에 2007년 7월 선교를 시작하여 2009년 9월까지 3년 동안 예수가 우리 구세주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큰 결실은 기독교 단체인 크리스털 포럼이 결성되어 복음을 전파하며, 부부 세미나 청소년 캠프, 찬양 페스티벌 등 활발한 사역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복음의 근원지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으로 복음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기에 마지막 때에 성령의 권능으로 기사와 표적, 권능을 펼치시며 복음이 전파되도록 섭리하였습니다. 마지막 때 성령의 불같은 역사로 그들의 마음 문이 열리고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여 인간 경작의 섭리가 완성될 것입니다.
3) 대성전 건축과 관련된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지막 때 섭리를 알려 주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대성전 건축이라는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대성전을 건축하여 마지막 때 전 세계 무수한 영혼이 구원받을 방주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노아 당시와 같이 죄악이 관영한 마지막 때이지만 대성전을 건축하면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 영광과 권능의 소문을 듣고 사모함으로 성전에 나올 것입니다. 무수한 하나님의 증거들을 보고 영계의 비밀을 배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한 참 자녀를 얻는 데 있음을 알고 신부단장에 힘쓰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처럼 대성전은 복음 전파의 마무리 작업을 위한 중추 기지가 될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대성전을 지을 때 하나님의 권능을 사모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도울 수 있도록 주관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과 섭리들을 하나님께서는 개척 당시부터 알려 주시며 그 말씀들을 이루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명한 모든 사명을 다 이루게 하시며 온 세계에 주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마태복음 24장 ② 데살로니가전서 5:16
③ 누가복음 21장 ④ 디모데후서 3:1~5
2. 당회장님께서 2000년 이후 수많은 영혼들을 개종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했던
해외성회입니다. 밑줄 친 곳에 나라 이름을 넣으세요.
_____________(2000.7)⇒ 나고야(2000.9)⇒ 파키스탄(2000.10)⇒ 케냐(2001.6)
⇒ 필리핀(2001.9)⇒ 온두라스(2002.7)⇒ _____________(2002.10)⇒ 러시아(2003.11)
⇒ 독일(2004.10)⇒ 페루(2004.12)⇒ 콩고민주공화국(2006.2)⇒ 미국 뉴욕(2006.7)
⇒ _____________(2009.9)⇒ 에스토니아(2010.10)
● 금주 과제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 책자 17~2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대성전 기둥
지름 600미터에 높이가 70미터의 거대한 건축물인 대성전은 열두 개의 큰 기둥들이 있다. 이 큰 기둥들 사이로 일곱 개씩 작은 기둥이 세워진다. 기둥의 수를 합하면 총 96개가 된다. 12개의 큰 기둥은 우윳빛 나는 맑고 아름다운 대리석이며, 기둥 맨 위에는 다섯 꽃잎이 둘러가며 장식된다. 특히 꽃술 중심부는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 해당하는 보석들이 박힌다. 첫 번째 기둥에는 벽옥, 두 번째 기둥에는 남보석, 세 번째 기둥에는 옥수 이렇게 차례대로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정의 보석들이 꽃들의 중앙에 박힌다. 조명을 받을 때 오색 찬란한 광채를 발하며 천국의 아름다움을 한껏 더해 준다.
교육목표 : 성경상에 나타난 마지막 때 징조들을 정확히 알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신부단장을 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늘이 흐리면 비가 올 것을 알 수 있듯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지막 때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는 마지막 때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모든 영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베드로후서 3장 3~4절에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했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를 알려 주어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때가 있으면 반드시 죽는 때가 오듯이, 인류 역사도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이 세상도 종말을 맞이합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산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전도를 받고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거나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악 중에 산 사람들은 지옥으로 갑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자 마음이 급하신 것이지요. 오늘날 하나님께서 권능을 나타내시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주어 어찌하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대로 죄악이 관영하고 지식이 더하는 오늘날은 더더욱 권능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2. 마지막 때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간 경작의 역사는 이미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구원받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아직도 핍박과 억압으로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나라들이 많습니다.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지요. 또한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참된 신앙을 가진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하신 대로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 사람과 별다를 바 없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핍박이 심한 곳도 권능을 체험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고 복음이 불같이 확산됩니다.
참 믿음을 갖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던 사람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면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법적으로 복음 전파를 금지하고 우상을 섬기며 교회를 핍박하는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힘써 선교해 왔습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은 이슬람교가 왕성한 파키스탄과 두바이, 대부분이 힌두교인인 인도 등지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권능을 체험하고 개신교로 개종하였지요.
농부가 추수 때에 곡식을 거둬들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마지막 때 전 세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3.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과 하나님의 섭리
성경은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도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예언한 내용들은 대부분 그대로 이루어졌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나타날 일들입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내용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남북 관계에 관한 예언입니다
개척 당시부터 남북 관계에 대한 말씀을 많이 주신 것은 마지막 때 본 제단에 북한 선교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해 왔고 주변 정세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정치, 경제가 불안정하고 우방이라 믿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개방의 물결을 타고 급속히 변하고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북한이 일시적으로 개방할 것과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문을 닫게 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미국의 압력으로 개방하지만 그 후로 중국과 러시아의 권력을 힘입어 다시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러니 북한이 개방되어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주의 종을 통해 북한 선교가 이루어지면 많은 영혼이 놀라운 치료와 응답의 역사를 체험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 세계 선교의 사명에 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수만, 수십만, 수백만 명이 모이는 해외 성회를 예비하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CNN을 통해 보도된 바 있는 우간다 연합대성회를 시작으로 중동 선교의 문을 연 파키스탄 연합대성회, 에이즈(AIDS) 등 수많은 질병들이 치료된 케냐 연합대성회를 통해 놀랍게 역사하셨지요.
하나님의 권능이 폭발적으로 나타난 필리핀 연합대성회와 중남미에 성령의 회오리 바람을 일으킨 온두라스 연합대성회, 인도 기독교 사상 최대 최다 최고인 연인원 3백만 명 이상이 참석한 인도 연합대성회를 허락하시고 두바이 선교를 통해 본격적인 중동 선교의 발판을 마련하게 하셨지요. 그 이후에도 러시아, 독일, 페루, 콩고민주공화국, 미국 뉴욕, 이스라엘, 에스토니아에서 해외성회를 통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그중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마지막 때가 되면 그곳에 우리가 들어가 선교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에 2007년 7월 선교를 시작하여 2009년 9월까지 3년 동안 예수가 우리 구세주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큰 결실은 기독교 단체인 크리스털 포럼이 결성되어 복음을 전파하며, 부부 세미나 청소년 캠프, 찬양 페스티벌 등 활발한 사역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복음의 근원지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으로 복음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기에 마지막 때에 성령의 권능으로 기사와 표적, 권능을 펼치시며 복음이 전파되도록 섭리하였습니다. 마지막 때 성령의 불같은 역사로 그들의 마음 문이 열리고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여 인간 경작의 섭리가 완성될 것입니다.
3) 대성전 건축과 관련된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지막 때 섭리를 알려 주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대성전 건축이라는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대성전을 건축하여 마지막 때 전 세계 무수한 영혼이 구원받을 방주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노아 당시와 같이 죄악이 관영한 마지막 때이지만 대성전을 건축하면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 영광과 권능의 소문을 듣고 사모함으로 성전에 나올 것입니다. 무수한 하나님의 증거들을 보고 영계의 비밀을 배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한 참 자녀를 얻는 데 있음을 알고 신부단장에 힘쓰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처럼 대성전은 복음 전파의 마무리 작업을 위한 중추 기지가 될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대성전을 지을 때 하나님의 권능을 사모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도울 수 있도록 주관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과 섭리들을 하나님께서는 개척 당시부터 알려 주시며 그 말씀들을 이루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명한 모든 사명을 다 이루게 하시며 온 세계에 주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마태복음 24장 ② 데살로니가전서 5:16
③ 누가복음 21장 ④ 디모데후서 3:1~5
2. 당회장님께서 2000년 이후 수많은 영혼들을 개종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했던
해외성회입니다. 밑줄 친 곳에 나라 이름을 넣으세요.
_____________(2000.7)⇒ 나고야(2000.9)⇒ 파키스탄(2000.10)⇒ 케냐(2001.6)
⇒ 필리핀(2001.9)⇒ 온두라스(2002.7)⇒ _____________(2002.10)⇒ 러시아(2003.11)
⇒ 독일(2004.10)⇒ 페루(2004.12)⇒ 콩고민주공화국(2006.2)⇒ 미국 뉴욕(2006.7)
⇒ _____________(2009.9)⇒ 에스토니아(2010.10)
● 금주 과제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 책자 17~2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대성전 기둥
지름 600미터에 높이가 70미터의 거대한 건축물인 대성전은 열두 개의 큰 기둥들이 있다. 이 큰 기둥들 사이로 일곱 개씩 작은 기둥이 세워진다. 기둥의 수를 합하면 총 96개가 된다. 12개의 큰 기둥은 우윳빛 나는 맑고 아름다운 대리석이며, 기둥 맨 위에는 다섯 꽃잎이 둘러가며 장식된다. 특히 꽃술 중심부는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 해당하는 보석들이 박힌다. 첫 번째 기둥에는 벽옥, 두 번째 기둥에는 남보석, 세 번째 기둥에는 옥수 이렇게 차례대로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정의 보석들이 꽃들의 중앙에 박힌다. 조명을 받을 때 오색 찬란한 광채를 발하며 천국의 아름다움을 한껏 더해 준다.
2013-09-06
제36과기뻐 춤추며 노래하며
막 7:31~37
읽을말씀 : 막 7:31~37 | 외울말씀 : 엡 4:13 ㅣ 참고 말씀:히 13:8
교육목표 : 자신을 돌아보아 빛 가운데 행함으로 건강은 물론 범사에 형통함을 받아 기뻐 춤추며 노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각색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약한 자들을 고치심으로 전하신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24절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1. 귀먹고 어눌한 자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시고 다시 갈릴리 지역으로 돌아오셨을 때입니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쳐 주기를 청하였지요.
예수님은 그를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때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을 하게 되었지요. 예수님께서 창조의 근본의 소리로 명하시자 곧바로 듣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에바다"라고 명하기 전에 그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느낌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청력을 잃은 사람은 말씀을 듣지 못하니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귀먹고 어눌한 사람은 말씀을 듣지 못했으니 믿음이 들어가지 못했지요. 그러니 스스로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를 위해 귀에 직접 손가락을 넣어 주셔서 느낌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근본 하나님 본체로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셨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믿음이 장성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구하면 성경상의 역사가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셨고, 에베소서 4장 13절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체 조직의 일부가 퇴화되었거나 신경 세포가 죽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지 신유의 은사만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른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권세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 뜻에 맞춰 믿음으로 기도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2. 지금도 나타나는 청각장애 치료 사례들
우리 성도님들은 난청이 치료되는 것은 물론, 태어날 때부터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듣게 되는 경우도 무수히 보아 왔습니다. 심지어는 50년이 넘도록 들리지 않던 귀가 당회장님께 기도 받고 듣게 된 사람도 있지요.
2000년 9월 14~15일에 열렸던 일본 나고야 신유 대성회 때는 13명의 청각장애인들이 당회장님의 단 한 번의 기도로 한꺼번에 치료받았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역사가 국내 청각장애인들에게도 알려져 2001년 5월 본교회 2주 연속 특별부흥성회 시에는 국내의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참석하여 치료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해가 갈수록 권능의 역사는 더 크게 나타나 듣지 못하던 많은 사람이 치료받았습니다. 해외 연합대성회 때마다 수많은 난청 환자들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온두라스 성회 때는 귀머거리와 벙어리 된 많은 사람이 듣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성회 안전총책임자였던 분의 딸도 나면서부터 들리지 않던 귀가 치료되었지요.
비트릭 메헤르만이라는 여자분은 평소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아 고통을 받았는데 독일 연합대성회 참석하여 첫날 기도 시간에 '뻥' 하는 소리가 나면서 듣게 되었습니다. 진찰 결과 얇았던 고막이 두꺼워져 잘 듣게 된 것이라며 담당 의사도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였습니다.
본 교회 한 권사님은 신경이 죽어 4~5년 동안 들리지 않았는데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고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은 후 평소에 귀 가까이에 대고 큰소리로 말을 해야만 들을 수 있었는데, 보청기를 빼고도 평소의 대화 소리가 잘 들리게 되었습니다.
한 성도님은 60여 년 전, 열여섯 살 때 심한 고문으로 인해 양쪽 귀 고막이 터져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전혀 들리지 않아 상대와 대화를 하려면 입 모양이나 눈치로 판단해서 대충 소통을 해야만 했었는데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고 나서는 소리가 또렷이 들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지금도 당회장님을 통해 이명이나 난청은 물론 태어날 때부터 전혀 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받으려면
1)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로만 전해도 믿음을 갖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증거를 보여 줘야 합니다. 예수님이 치료하신 귀 먹고 어눌한 사람의 경우에는 듣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손가락을 귀에 넣으심으로 믿음을 갖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무언가 감각적으로 와닿을 때 사람들이 믿음을 갖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치료받을 당사자가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예수님 당시와 달리 문명이 발달하여 청각장애가 있더라도 복음을 접할 수 있는 매체들이 많습니다. 수화로 하나님 말씀을 배울 수도 있고 비디오나 점자책 등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매체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비록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할지라도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치료받을 수 있는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었다 빼신 후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영적으로 물세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죄 사함을 베풀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맑은 물과 같은 하나님 말씀으로 죄를 씻어 버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반드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다만 이 사람의 경우 주변에 물이 없어 물 대신에 침으로써 죄 사함의 의미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1~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한 대로 죄악이 하나님과 담을 만들어서 기도해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외면해 버리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자백'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온전히 돌이키는 것입니다. 회개한 후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그 죄성까지 뽑아 버리는 것이지요. 만일 회개했다 하고 또 죄를 지으면 이는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눕는 것과 같습니다. 중심에서 자백하는 사람은 마음을 찢는 애통과 회개가 따릅니다. 여러분은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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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어눌한 자를 말씀만으로도 능히 치료하실 수 있는데, 왜 양 귀에 손가락을 넣고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셨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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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회장님을 통해 나타나는 권능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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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83~19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회당'
유대인들의 모임 장소를 말한다. 회당제도는 포로생활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없게 되면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유대인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회당이 세워졌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외에도 회당에 자주 모였는데 남녀가 따로 떨어져 앉았다.
예수님은 여러 회당에 들어가셔서 예배도 드리시고 말씀을 전하셨으며 병도 고치시고 귀신도 쫓아내셨다. 나사렛 회당에서는 이사야서를 통해 자신이 메시아임을 가르치셨지만 배척받으셨다(눅 4:16~30). 회당은 율법 교육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눅 13:10) 법정 용도로도 쓰였다(마 10:17, 23:34 ; 막 13:9).
교육목표 : 자신을 돌아보아 빛 가운데 행함으로 건강은 물론 범사에 형통함을 받아 기뻐 춤추며 노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각색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약한 자들을 고치심으로 전하신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24절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1. 귀먹고 어눌한 자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시고 다시 갈릴리 지역으로 돌아오셨을 때입니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쳐 주기를 청하였지요.
예수님은 그를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때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을 하게 되었지요. 예수님께서 창조의 근본의 소리로 명하시자 곧바로 듣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에바다"라고 명하기 전에 그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느낌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청력을 잃은 사람은 말씀을 듣지 못하니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귀먹고 어눌한 사람은 말씀을 듣지 못했으니 믿음이 들어가지 못했지요. 그러니 스스로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를 위해 귀에 직접 손가락을 넣어 주셔서 느낌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근본 하나님 본체로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셨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믿음이 장성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구하면 성경상의 역사가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셨고, 에베소서 4장 13절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체 조직의 일부가 퇴화되었거나 신경 세포가 죽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지 신유의 은사만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른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권세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 뜻에 맞춰 믿음으로 기도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2. 지금도 나타나는 청각장애 치료 사례들
우리 성도님들은 난청이 치료되는 것은 물론, 태어날 때부터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듣게 되는 경우도 무수히 보아 왔습니다. 심지어는 50년이 넘도록 들리지 않던 귀가 당회장님께 기도 받고 듣게 된 사람도 있지요.
2000년 9월 14~15일에 열렸던 일본 나고야 신유 대성회 때는 13명의 청각장애인들이 당회장님의 단 한 번의 기도로 한꺼번에 치료받았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역사가 국내 청각장애인들에게도 알려져 2001년 5월 본교회 2주 연속 특별부흥성회 시에는 국내의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참석하여 치료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해가 갈수록 권능의 역사는 더 크게 나타나 듣지 못하던 많은 사람이 치료받았습니다. 해외 연합대성회 때마다 수많은 난청 환자들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온두라스 성회 때는 귀머거리와 벙어리 된 많은 사람이 듣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성회 안전총책임자였던 분의 딸도 나면서부터 들리지 않던 귀가 치료되었지요.
비트릭 메헤르만이라는 여자분은 평소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아 고통을 받았는데 독일 연합대성회 참석하여 첫날 기도 시간에 '뻥' 하는 소리가 나면서 듣게 되었습니다. 진찰 결과 얇았던 고막이 두꺼워져 잘 듣게 된 것이라며 담당 의사도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였습니다.
본 교회 한 권사님은 신경이 죽어 4~5년 동안 들리지 않았는데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고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은 후 평소에 귀 가까이에 대고 큰소리로 말을 해야만 들을 수 있었는데, 보청기를 빼고도 평소의 대화 소리가 잘 들리게 되었습니다.
한 성도님은 60여 년 전, 열여섯 살 때 심한 고문으로 인해 양쪽 귀 고막이 터져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전혀 들리지 않아 상대와 대화를 하려면 입 모양이나 눈치로 판단해서 대충 소통을 해야만 했었는데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고 나서는 소리가 또렷이 들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지금도 당회장님을 통해 이명이나 난청은 물론 태어날 때부터 전혀 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받으려면
1)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로만 전해도 믿음을 갖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증거를 보여 줘야 합니다. 예수님이 치료하신 귀 먹고 어눌한 사람의 경우에는 듣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손가락을 귀에 넣으심으로 믿음을 갖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무언가 감각적으로 와닿을 때 사람들이 믿음을 갖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치료받을 당사자가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예수님 당시와 달리 문명이 발달하여 청각장애가 있더라도 복음을 접할 수 있는 매체들이 많습니다. 수화로 하나님 말씀을 배울 수도 있고 비디오나 점자책 등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매체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비록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할지라도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치료받을 수 있는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었다 빼신 후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영적으로 물세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죄 사함을 베풀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맑은 물과 같은 하나님 말씀으로 죄를 씻어 버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반드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다만 이 사람의 경우 주변에 물이 없어 물 대신에 침으로써 죄 사함의 의미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1~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한 대로 죄악이 하나님과 담을 만들어서 기도해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외면해 버리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자백'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온전히 돌이키는 것입니다. 회개한 후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그 죄성까지 뽑아 버리는 것이지요. 만일 회개했다 하고 또 죄를 지으면 이는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눕는 것과 같습니다. 중심에서 자백하는 사람은 마음을 찢는 애통과 회개가 따릅니다. 여러분은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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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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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어눌한 자를 말씀만으로도 능히 치료하실 수 있는데, 왜 양 귀에 손가락을 넣고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셨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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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회장님을 통해 나타나는 권능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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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83~19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회당'
유대인들의 모임 장소를 말한다. 회당제도는 포로생활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없게 되면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유대인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회당이 세워졌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외에도 회당에 자주 모였는데 남녀가 따로 떨어져 앉았다.
예수님은 여러 회당에 들어가셔서 예배도 드리시고 말씀을 전하셨으며 병도 고치시고 귀신도 쫓아내셨다. 나사렛 회당에서는 이사야서를 통해 자신이 메시아임을 가르치셨지만 배척받으셨다(눅 4:16~30). 회당은 율법 교육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눅 13:10) 법정 용도로도 쓰였다(마 10:17, 23:34 ; 막 13:9).
2013-08-30
제35과일어나 뛰고 걸으며
막 2:3~12
읽을말씀 : 막 2:3~12 | 외울말씀 : 요 14:12 ㅣ 참고 말씀:출 15:26
교육목표 :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방법을 알아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여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성경 곳곳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으로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통해서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었지요(행 3:1~10, 14:8~10).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주님의 이름으로 역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를 통해 어떻게 해야 일어나 걷고 뛰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 앞에 나온 중풍병자와 친구들
가버나움에 한 중풍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풍이 심해 남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날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분이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키고 귀신을 쫓아내며 각색 병든 사람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나도 그분을 만나 치료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친구들에게 자신을 예수님 앞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의 친구들도 예수님의 권능의 소식을 듣고 잘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허락합니다. 그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이 계신 집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용신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그 인파를 뚫고 예수님 앞까지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지요.
만일 그들의 믿음이 부족했다면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며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뵐 수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좋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계신 집의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달아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전통 가옥은 집 옆으로 계단이 있어 지붕에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지붕은 갈대나 종려나무 가지로 덮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지붕을 벗겨낼 수 있었지요.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중풍병자는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행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겸비함으로 자신을 낮출 때 믿음의 행함을 내보일 수 있습니다. 만일 중풍병자가 집 안에 누워서 "주여, 제가 움직일 수가 없어 예수님께 나가지 못하는 거 아시지요? 그러니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했다면 이것이 믿음을 내보인 것일까요? 아니지요.
중풍병자는 치료받기 위해 요행을 바라거나 안일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믿음의 행함으로 내보였지요.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 역시 믿음이 있었기에 중풍병자를 위해 남의 집 지붕을 뜯어 가면서까지 도와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응답받을 수 있어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며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질병을 치료받으려면 먼저 죄 사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질병이 왔기에 중풍병자에게 먼저 죄 사함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세상 정욕을 좇아 죄를 지어 나갔기 때문에 몸에 병이 온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이란, 이 세상의 모든 질병을 총칭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 말씀대로 살면 이 세상의 어떠한 질병도 틈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장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지켜 행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며,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지킴받을 수 없을뿐더러 저주가 임하리라 말씀하셨지요.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후에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당부하십니다. 또다시 죄를 짓는다면 더 심한 병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사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불의를 행하던 사람이 불의를 행치 않는 사람으로, 거짓말하던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미워하던 사람이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돌이켜야 하지요.
이렇게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입술로만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오면 자연히 주님의 보혈이 죄를 씻어 깨끗게 해 주십니다(요일 1:7).
3.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어나 걷게 된 중풍병자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자 거기 있던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하며 판단합니다(막 2:7). 그들이 가진 율법의 틀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막 2:8~10) 하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신 증거를 표적으로 나타내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명하시자 그가 즉시 일어나 자신의 침상을 가지고 걸어나갔습니다. 이에 모든 사람이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요. 중풍병자가 치료받았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의미이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확실히 보장해 주신 것을 말합니다.
4. 믿음으로 일어나 걷고 뛰는 권능의 역사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말씀하셨습니다(요 14:11).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으로만 명하셨는데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걸은 것만 보더라도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일들은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믿고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들도 행할 수 있고, 이보다 큰 일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하고 주님을 영접했기에 성경 66권 말씀을 100% 믿었습니다. 또한 주의 종으로 부름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기 위해 무수한 금식과 기도를 쌓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개척 때부터 놀라운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며 보이지 않던 눈이 잘 보이고 앉은뱅이가 즉시 일어나 걷고 뛰는 등 놀라운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은 끝이 없습니다.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상 의학이나 과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도 치료할 수 있고 그 밖에도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늘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며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
2. 질병은 왜 오는 것일까요?
( )
3.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지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써보세요(출애굽기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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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61~17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가버나움'
갈릴리 호수 북쪽 끝에 있는 가버나움은 성경에 '본 동네'라고도 불렸다(마 9:1 ; 막 2:1).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이곳을 근거지로 사역하셨으며 이곳에는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여기서 근무하던 백부장의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하인의 병을 즉시 고쳐 주셨다. 또 열병으로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과 중풍병자와 많은 병자를 치료하셨다. 이 외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등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베푸셨지만 가버나움 사람들은 회개치 않으므로 소돔 땅이 이곳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는 심판을 받았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방법을 알아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여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성경 곳곳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으로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통해서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었지요(행 3:1~10, 14:8~10).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주님의 이름으로 역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를 통해 어떻게 해야 일어나 걷고 뛰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 앞에 나온 중풍병자와 친구들
가버나움에 한 중풍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풍이 심해 남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날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분이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키고 귀신을 쫓아내며 각색 병든 사람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나도 그분을 만나 치료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친구들에게 자신을 예수님 앞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의 친구들도 예수님의 권능의 소식을 듣고 잘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허락합니다. 그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이 계신 집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용신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그 인파를 뚫고 예수님 앞까지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지요.
만일 그들의 믿음이 부족했다면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며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뵐 수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좋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계신 집의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달아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전통 가옥은 집 옆으로 계단이 있어 지붕에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지붕은 갈대나 종려나무 가지로 덮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지붕을 벗겨낼 수 있었지요.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중풍병자는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행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겸비함으로 자신을 낮출 때 믿음의 행함을 내보일 수 있습니다. 만일 중풍병자가 집 안에 누워서 "주여, 제가 움직일 수가 없어 예수님께 나가지 못하는 거 아시지요? 그러니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했다면 이것이 믿음을 내보인 것일까요? 아니지요.
중풍병자는 치료받기 위해 요행을 바라거나 안일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믿음의 행함으로 내보였지요.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 역시 믿음이 있었기에 중풍병자를 위해 남의 집 지붕을 뜯어 가면서까지 도와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응답받을 수 있어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며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질병을 치료받으려면 먼저 죄 사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질병이 왔기에 중풍병자에게 먼저 죄 사함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세상 정욕을 좇아 죄를 지어 나갔기 때문에 몸에 병이 온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이란, 이 세상의 모든 질병을 총칭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 말씀대로 살면 이 세상의 어떠한 질병도 틈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장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지켜 행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며,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지킴받을 수 없을뿐더러 저주가 임하리라 말씀하셨지요.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후에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당부하십니다. 또다시 죄를 짓는다면 더 심한 병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사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불의를 행하던 사람이 불의를 행치 않는 사람으로, 거짓말하던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미워하던 사람이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돌이켜야 하지요.
이렇게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입술로만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오면 자연히 주님의 보혈이 죄를 씻어 깨끗게 해 주십니다(요일 1:7).
3.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어나 걷게 된 중풍병자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자 거기 있던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하며 판단합니다(막 2:7). 그들이 가진 율법의 틀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막 2:8~10) 하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신 증거를 표적으로 나타내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명하시자 그가 즉시 일어나 자신의 침상을 가지고 걸어나갔습니다. 이에 모든 사람이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요. 중풍병자가 치료받았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의미이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확실히 보장해 주신 것을 말합니다.
4. 믿음으로 일어나 걷고 뛰는 권능의 역사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말씀하셨습니다(요 14:11).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으로만 명하셨는데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걸은 것만 보더라도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일들은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믿고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들도 행할 수 있고, 이보다 큰 일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하고 주님을 영접했기에 성경 66권 말씀을 100% 믿었습니다. 또한 주의 종으로 부름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기 위해 무수한 금식과 기도를 쌓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개척 때부터 놀라운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며 보이지 않던 눈이 잘 보이고 앉은뱅이가 즉시 일어나 걷고 뛰는 등 놀라운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은 끝이 없습니다.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상 의학이나 과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도 치료할 수 있고 그 밖에도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늘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며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
2. 질병은 왜 오는 것일까요?
( )
3.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지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써보세요(출애굽기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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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61~17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가버나움'
갈릴리 호수 북쪽 끝에 있는 가버나움은 성경에 '본 동네'라고도 불렸다(마 9:1 ; 막 2:1).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이곳을 근거지로 사역하셨으며 이곳에는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여기서 근무하던 백부장의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하인의 병을 즉시 고쳐 주셨다. 또 열병으로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과 중풍병자와 많은 병자를 치료하셨다. 이 외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등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베푸셨지만 가버나움 사람들은 회개치 않으므로 소돔 땅이 이곳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는 심판을 받았다.
2013-08-23
제34과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요 9:32~33
읽을말씀 : 요 9:32~33 | 외울말씀 : 요 9:31 l 참고 말씀:시 66:18
교육목표 : 태어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의 눈이 밝아진 이유를 깨달아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 권능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라고 여쭙지요. 이에 예수님은 누구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른 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시지요. 그가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져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소경이 예수님께 찾아와 "내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한 것도 아닌데,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만나 주시고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진흙을 눈에 바른 후 물로 씻는다고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게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더구나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말을 듣는다면 자신을 놀린다고 화를 낼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물가로 가서 눈을 씻었습니다. 이렇게 순종했을 때 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눈이 밝아져 세상을 또렷이 보게 되었지요.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혹여 하나님 말씀이 내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다 해도 소경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은혜가 임하며 소경이 눈을 뜬 것처럼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사람이 치료받은 후 유대인들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거짓이 없고 선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진리를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참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과 다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장로의 유전에 매여 안식일날 소경을 치료해 주었다고 예수님을 힐책할 빌미를 찾고자 했지요. 예수님께서 진흙을 눈에 발라 치료해 주셨다고 소경 되었던 자가 말해도 믿지 못하고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라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그가 "선지자니이다"라고 대답하지요. 자신의 눈을 고쳐 줄 수 있는 분이라면 분명 하나님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그의 부모까지 불러 아들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재차 확인합니다. 하지만 부모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유대인들이 출교(회당에서 쫓아냄. 당시 유대 공동체 사회에서는 매우 큰 형벌)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무서워서 직접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다시 소경 되었던 사람을 불러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하며 어리석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신 대로이지요. 더구나 죄인에게 권능을 주셔서 영광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진실을 보아도 믿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경 되었던 사람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진실을 말하였습니다. 요한복음 9장 31~33절을 보면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했지요.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사람이 눈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보통 사람 같으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시시비비하며 안식일날 치료하는 것은 율법을 어긴 악행이라며 예수님을 책잡으려 했지요. 그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고 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나타내신 것인데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분은 누구일까요?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시편 146편 8절에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35장 5절에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했는데, 이는 곧 그리스도가 오시면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틀과 악함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죄인으로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소경되었던 사람은 율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어도 선한 양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알았습니다.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깨우친 것이지요.
셋째, 은혜를 받은 후 새로운 삶을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질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치료받고 인생의 갖가지 문제를 해결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은혜를 입고도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아플 때는 "치료해 주시면 주만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해놓고 막상 치료받아 건강을 회복하면 자기 유익을 좇아 은혜를 저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질병의 문제는 해결받았을지라도 구원의 길에서 떠나 버렸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소경 되었던 사람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예수님을 만나 눈을 떴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구원의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9장 35~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물으실 때 그는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는 지체하지 않고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며 절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며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마음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질병을 치료해 주고 축복을 주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진정 구주로 영접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입술로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어둠의 일을 벗고 날마다 빛 가운데 행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면 어찌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약속하신 대로 무엇이나 응답해 주십니다. 아무리 중한 질병이나 얽히고설킨 문제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는 중심의 고백과 함께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질병의 치료는 물론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불통을 형통으로 바꿔 주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려면 소경 되었던 사람처럼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 역사를 인정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응답받을 수 있는 그릇을 얼마나 준비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시편 18편 25~26절에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말씀합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행함으로 권능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넣으세요.
날 때부터 소경 되었던 사람이 예수님께 큰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 ( )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 )를 분별할 수 있는 ( )인 ( )이 열렸기 때문이다.
셋째, ( )를 받은 후 새로운 삶을 ( )했기 때문이다.
2.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죄인이라 정죄
했을 때 소경되었던 사람이 당당히 진리로 분별하여 말한 내용을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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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31~33)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43~15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예수님께서 소경에게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신 이유'
상대의 믿음에 대한 배려이다. 어떤 사람은 말로만 해도 믿음을 갖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소경은 예수님이 나타낸 표적을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갖기 어려운 처지였다. 이를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가 더 온전한 믿음을 갖고 순종하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비록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눈에 무언가 감각적으로 와 닿을 때 '볼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목표 : 태어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의 눈이 밝아진 이유를 깨달아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 권능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라고 여쭙지요. 이에 예수님은 누구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른 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시지요. 그가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져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소경이 예수님께 찾아와 "내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한 것도 아닌데,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만나 주시고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진흙을 눈에 바른 후 물로 씻는다고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게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더구나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말을 듣는다면 자신을 놀린다고 화를 낼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물가로 가서 눈을 씻었습니다. 이렇게 순종했을 때 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눈이 밝아져 세상을 또렷이 보게 되었지요.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혹여 하나님 말씀이 내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다 해도 소경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은혜가 임하며 소경이 눈을 뜬 것처럼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사람이 치료받은 후 유대인들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거짓이 없고 선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진리를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참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과 다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장로의 유전에 매여 안식일날 소경을 치료해 주었다고 예수님을 힐책할 빌미를 찾고자 했지요. 예수님께서 진흙을 눈에 발라 치료해 주셨다고 소경 되었던 자가 말해도 믿지 못하고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라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그가 "선지자니이다"라고 대답하지요. 자신의 눈을 고쳐 줄 수 있는 분이라면 분명 하나님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그의 부모까지 불러 아들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재차 확인합니다. 하지만 부모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유대인들이 출교(회당에서 쫓아냄. 당시 유대 공동체 사회에서는 매우 큰 형벌)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무서워서 직접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다시 소경 되었던 사람을 불러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하며 어리석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신 대로이지요. 더구나 죄인에게 권능을 주셔서 영광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진실을 보아도 믿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경 되었던 사람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진실을 말하였습니다. 요한복음 9장 31~33절을 보면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했지요.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사람이 눈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보통 사람 같으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시시비비하며 안식일날 치료하는 것은 율법을 어긴 악행이라며 예수님을 책잡으려 했지요. 그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고 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나타내신 것인데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분은 누구일까요?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시편 146편 8절에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35장 5절에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했는데, 이는 곧 그리스도가 오시면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틀과 악함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죄인으로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소경되었던 사람은 율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어도 선한 양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알았습니다.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깨우친 것이지요.
셋째, 은혜를 받은 후 새로운 삶을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질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치료받고 인생의 갖가지 문제를 해결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은혜를 입고도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아플 때는 "치료해 주시면 주만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해놓고 막상 치료받아 건강을 회복하면 자기 유익을 좇아 은혜를 저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질병의 문제는 해결받았을지라도 구원의 길에서 떠나 버렸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소경 되었던 사람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예수님을 만나 눈을 떴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구원의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9장 35~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물으실 때 그는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는 지체하지 않고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며 절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며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마음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질병을 치료해 주고 축복을 주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진정 구주로 영접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입술로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어둠의 일을 벗고 날마다 빛 가운데 행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면 어찌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약속하신 대로 무엇이나 응답해 주십니다. 아무리 중한 질병이나 얽히고설킨 문제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는 중심의 고백과 함께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질병의 치료는 물론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불통을 형통으로 바꿔 주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려면 소경 되었던 사람처럼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 역사를 인정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응답받을 수 있는 그릇을 얼마나 준비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시편 18편 25~26절에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말씀합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행함으로 권능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넣으세요.
날 때부터 소경 되었던 사람이 예수님께 큰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 ( )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 )를 분별할 수 있는 ( )인 ( )이 열렸기 때문이다.
셋째, ( )를 받은 후 새로운 삶을 ( )했기 때문이다.
2.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죄인이라 정죄
했을 때 소경되었던 사람이 당당히 진리로 분별하여 말한 내용을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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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31~33)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43~15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예수님께서 소경에게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신 이유'
상대의 믿음에 대한 배려이다. 어떤 사람은 말로만 해도 믿음을 갖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소경은 예수님이 나타낸 표적을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갖기 어려운 처지였다. 이를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가 더 온전한 믿음을 갖고 순종하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비록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눈에 무언가 감각적으로 와 닿을 때 '볼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2013-08-16
제33과빛의 권능
요일 1:5
읽을말씀 : 요일 1:5 | 외울말씀 : 행 1:8 l 참고 말씀:시 62:11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이신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밝히 알아 이를 사모하며 권능으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게 한다.
시편 62편 11절에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누군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을 행한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권능의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의 어두운 세력들이 떠날 수밖에 없으며 갖가지 인생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지요. 이러한 권능은 각 단계별로 빛이 다르고 역사도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권능의 차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권능을 동일하게 생각하지만 각각 의미가 다릅니다. 먼저, 능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또한 권세란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 있고 영광스러운 힘을 나타냅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입니다. 따라서 성결한 하나님 자녀들에게는 영적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러면 권능이란 무엇일까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한 사람에게 입혀 주는 권세 있는 하나님 능력을 말합니다. 가령, 운전자가 차를 몰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교통 경찰관은 차를 세울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권세와 능력은 다르며 이 두 가지를 겸한 경우를 권능이라 말합니다.
2. 신유의 은사와 권능의 차이점
그렇다면 신유의 은사와 권능의 역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병 고치는 은사 곧 신유의 은사는 주로 균에 의해 생긴 질병을 치료합니다. 신체가 퇴화되었거나 신경 세포가 손상되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치료할 수 없지요. 하지만 권능을 받으면 이 모든 것을 능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권능은 한번 받으면 항상 나타나지만 신유의 은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유의 은사는 온전히 성결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영혼을 사랑하여 많은 기도를 쌓았거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며 합당치 않게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거두시게 됩니다.
반면 권능은 성결을 이루고 불같은 기도를 쌓은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에 한번 받으면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악이 없으니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기 유익을 좇아 사용하지 않지요. 성결을 이루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힘쓰며 주님의 마음을 더욱 닮아가기 때문에 큰 역사도 베푸는 것입니다.
3. 빛이신 하나님의 권능 4단계
1단계 : 성령의 불로 태우는 붉은 빛의 권능입니다.
성령의 불은 온갖 병균이나 바이러스, 세균 등에 의해 생긴 갖가지 질병들을 태워서 치료합니다. 암, 폐병, 당뇨병, 백혈병, 신장병, 관절염, 심장병, 에이즈와 같은 질병을 치료하지요.
그러나 암 말기나 폐병 말기처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생명 선을 넘어버리면 권능의 1단계에서 나오는 성령의 불로는 치료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의 기능을 상실했을 경우는 새롭게 창조를 해야 하므로 더 큰 권능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이런 경우라 해도 환자가 얼마나 믿음을 내보이고 가족들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믿음을 내보이느냐에 따라 하나님 역사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2단계 : 푸른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는 역사가 나타나는 권능입니다.
권능의 2단계에서 나오는 푸른 빛을 통해서는 주로 귀신 들린 사람, 사단의 역사를 받는 사람에게서 어둠을 물리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어둠의 세력으로 인한 자폐증이나 정신이상, 노이로제, 신경쇠약 등 각종 신경성 질병이 치료되지요.
표적이 따르기도 하는데 이는 질병이나 약한 것이 귀신이나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비롯된 경우입니다. 약한 것이란 농아인이나 시각장애인과 같이 보지 못하고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경우, 소아마비 등과 같이 신체 기능이 마비되거나 퇴화된 것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니 그 아이가 온전케 되었지요.
또한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 뜻 가운데 다시 불러오거나 반대로 산 사람의 영혼을 거두어 가는 것도 권능의 2단계에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이 죽은 유두고를 살리고, 베드로가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저주하자 혼이 떠나며, 엘리사가 저주하니 42명의 악한 아이들이 곰에게 죽임 당한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행 20장, 5장 ; 왕하 2장).
3단계 : 흰빛(무색)으로 창조의 역사가 따르는 권능입니다.
권능의 3단계에서 나오는 흰빛을 통해서는 모든 종류의 표적과 함께 창조의 역사가 따릅니다. 여기서 표적이란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소아마비나 뇌성마비가 온전해지는 등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외에도 나면서부터 기형이나 불구가 된 신체나 완전히 퇴화된 부분이 온전케 되는 것, 그리고 부스러진 뼈가 붙어서 정상이 되거나 없던 뼈가 생겨나고 끊어진 힘줄이 붙는 것 등도 권능의 3단계에서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따라서 권능의 3단계에서는 표적과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에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며, 썩었거나 완전히 기능을 잃었던 오장육부가 새롭게 창조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4단계 : 황금빛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가 따르는 권능의 완성입니다.
권능의 4단계에서 나오는 황금빛으로는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기에 천기를 움직이는 기사가 나타납니다. 무생물도 명하는 대로 순종하는 단계이므로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케 되었습니다. 바람과 바다와 같은 자연이나 무생물이라 해도 예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였지요(마 8장).
또한 권능의 4단계에서는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가 따릅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여인이 집에 돌아가 보니 이미 아이에게서 귀신이 나갔지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것도 만물이 예수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권능의 4단계 역사가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할 때 순식간에 멎고 연탄 가스에 중독된 사람도 연탄 가스가 물러가 후유증 없이 온전케 되었습니다. 전신 3도 화상도 "화기야, 물러가라." 명하니 즉시 물러갔지요. 파키스탄에 있는 신시아는 셀리악 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시공을 초월하여 당회장님께 사진기도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4. 창조의 최상의 권능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일들은 권능의 4단계보다 더 윗단계로 곧 창조주가 가지고 계신 창조의 최상의 권능입니다.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받은 권능의 차원이 아닌, 태초에 하나님께서 홀로 계실 때 발하던 근본의 빛으로부터 나오는 권능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경우이지요(요 11장).
우리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하나님 마음을 닮은 온 영으로서 무한한 영의 지식들을 채우면 권능의 4단계를 넘어선, 신의 차원에서 베풀어지는 권능 곧 창조의 최상의 권능의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온전히 이루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와 같이 놀라운 창조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일어나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라." 명하면 그 즉시 일어나 걷고 뛰며, 이미 썩어서 냄새나는 상처 부위도 순간에 새롭게 소생하지요. 이는 태초에 홀로 계시던 하나님의 빛과 소리로 역사되기 때문입니다. 빛 안에 담긴 무한한 창조의 능력을 소리로 발하는 순간에, 이미 생명선을 넘어 버린 경우나 권능의 4단계 빛으로 치료받지 못한 경우도 치료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권능의 단계를 써넣으세요.
① 황금빛으로 역사되며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천기를 움직인다.
( )
② 흰빛(무색)으로 역사되며 모든 표적과 창조의 역사가 따른다.( )
③ 성령의 불로 역사하며 병균, 바이러스에 생긴 질병을 치료한다.( )
④ 푸른 빛으로 역사하며 어둠의 세력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한다.( )
2. 창조의 최상의 권능이란 무엇인지 설명해 보세요.
( )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23~13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도 바울'
신약 시대 예수님 다음으로 큰 권능을 행했다.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참 신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 구세주이심을 증거했다. 사도행전 14장을 보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향해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명하자 곧 그가 뛰고 걸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가리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오셨다고 할 정도였다. 멜리데라는 섬에서는 독사에 물려도 아무 이상이 없자 원주민들이 사도 바울을 신으로 여겼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사도 바울이 온전한 선과 사랑을 이루게 되자 사람들이 신이라고 할 정도로 놀라운 권능을 행하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이신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밝히 알아 이를 사모하며 권능으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게 한다.
시편 62편 11절에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누군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을 행한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권능의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의 어두운 세력들이 떠날 수밖에 없으며 갖가지 인생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지요. 이러한 권능은 각 단계별로 빛이 다르고 역사도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권능의 차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권능을 동일하게 생각하지만 각각 의미가 다릅니다. 먼저, 능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또한 권세란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 있고 영광스러운 힘을 나타냅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입니다. 따라서 성결한 하나님 자녀들에게는 영적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러면 권능이란 무엇일까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한 사람에게 입혀 주는 권세 있는 하나님 능력을 말합니다. 가령, 운전자가 차를 몰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교통 경찰관은 차를 세울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권세와 능력은 다르며 이 두 가지를 겸한 경우를 권능이라 말합니다.
2. 신유의 은사와 권능의 차이점
그렇다면 신유의 은사와 권능의 역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병 고치는 은사 곧 신유의 은사는 주로 균에 의해 생긴 질병을 치료합니다. 신체가 퇴화되었거나 신경 세포가 손상되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치료할 수 없지요. 하지만 권능을 받으면 이 모든 것을 능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권능은 한번 받으면 항상 나타나지만 신유의 은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유의 은사는 온전히 성결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영혼을 사랑하여 많은 기도를 쌓았거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며 합당치 않게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거두시게 됩니다.
반면 권능은 성결을 이루고 불같은 기도를 쌓은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에 한번 받으면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악이 없으니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기 유익을 좇아 사용하지 않지요. 성결을 이루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힘쓰며 주님의 마음을 더욱 닮아가기 때문에 큰 역사도 베푸는 것입니다.
3. 빛이신 하나님의 권능 4단계
1단계 : 성령의 불로 태우는 붉은 빛의 권능입니다.
성령의 불은 온갖 병균이나 바이러스, 세균 등에 의해 생긴 갖가지 질병들을 태워서 치료합니다. 암, 폐병, 당뇨병, 백혈병, 신장병, 관절염, 심장병, 에이즈와 같은 질병을 치료하지요.
그러나 암 말기나 폐병 말기처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생명 선을 넘어버리면 권능의 1단계에서 나오는 성령의 불로는 치료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의 기능을 상실했을 경우는 새롭게 창조를 해야 하므로 더 큰 권능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이런 경우라 해도 환자가 얼마나 믿음을 내보이고 가족들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믿음을 내보이느냐에 따라 하나님 역사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2단계 : 푸른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는 역사가 나타나는 권능입니다.
권능의 2단계에서 나오는 푸른 빛을 통해서는 주로 귀신 들린 사람, 사단의 역사를 받는 사람에게서 어둠을 물리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어둠의 세력으로 인한 자폐증이나 정신이상, 노이로제, 신경쇠약 등 각종 신경성 질병이 치료되지요.
표적이 따르기도 하는데 이는 질병이나 약한 것이 귀신이나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비롯된 경우입니다. 약한 것이란 농아인이나 시각장애인과 같이 보지 못하고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경우, 소아마비 등과 같이 신체 기능이 마비되거나 퇴화된 것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니 그 아이가 온전케 되었지요.
또한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 뜻 가운데 다시 불러오거나 반대로 산 사람의 영혼을 거두어 가는 것도 권능의 2단계에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이 죽은 유두고를 살리고, 베드로가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저주하자 혼이 떠나며, 엘리사가 저주하니 42명의 악한 아이들이 곰에게 죽임 당한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행 20장, 5장 ; 왕하 2장).
3단계 : 흰빛(무색)으로 창조의 역사가 따르는 권능입니다.
권능의 3단계에서 나오는 흰빛을 통해서는 모든 종류의 표적과 함께 창조의 역사가 따릅니다. 여기서 표적이란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소아마비나 뇌성마비가 온전해지는 등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외에도 나면서부터 기형이나 불구가 된 신체나 완전히 퇴화된 부분이 온전케 되는 것, 그리고 부스러진 뼈가 붙어서 정상이 되거나 없던 뼈가 생겨나고 끊어진 힘줄이 붙는 것 등도 권능의 3단계에서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따라서 권능의 3단계에서는 표적과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에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며, 썩었거나 완전히 기능을 잃었던 오장육부가 새롭게 창조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4단계 : 황금빛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가 따르는 권능의 완성입니다.
권능의 4단계에서 나오는 황금빛으로는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기에 천기를 움직이는 기사가 나타납니다. 무생물도 명하는 대로 순종하는 단계이므로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케 되었습니다. 바람과 바다와 같은 자연이나 무생물이라 해도 예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였지요(마 8장).
또한 권능의 4단계에서는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가 따릅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여인이 집에 돌아가 보니 이미 아이에게서 귀신이 나갔지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것도 만물이 예수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권능의 4단계 역사가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할 때 순식간에 멎고 연탄 가스에 중독된 사람도 연탄 가스가 물러가 후유증 없이 온전케 되었습니다. 전신 3도 화상도 "화기야, 물러가라." 명하니 즉시 물러갔지요. 파키스탄에 있는 신시아는 셀리악 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시공을 초월하여 당회장님께 사진기도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4. 창조의 최상의 권능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일들은 권능의 4단계보다 더 윗단계로 곧 창조주가 가지고 계신 창조의 최상의 권능입니다.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받은 권능의 차원이 아닌, 태초에 하나님께서 홀로 계실 때 발하던 근본의 빛으로부터 나오는 권능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경우이지요(요 11장).
우리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하나님 마음을 닮은 온 영으로서 무한한 영의 지식들을 채우면 권능의 4단계를 넘어선, 신의 차원에서 베풀어지는 권능 곧 창조의 최상의 권능의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온전히 이루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와 같이 놀라운 창조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일어나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라." 명하면 그 즉시 일어나 걷고 뛰며, 이미 썩어서 냄새나는 상처 부위도 순간에 새롭게 소생하지요. 이는 태초에 홀로 계시던 하나님의 빛과 소리로 역사되기 때문입니다. 빛 안에 담긴 무한한 창조의 능력을 소리로 발하는 순간에, 이미 생명선을 넘어 버린 경우나 권능의 4단계 빛으로 치료받지 못한 경우도 치료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권능의 단계를 써넣으세요.
① 황금빛으로 역사되며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천기를 움직인다.
( )
② 흰빛(무색)으로 역사되며 모든 표적과 창조의 역사가 따른다.( )
③ 성령의 불로 역사하며 병균, 바이러스에 생긴 질병을 치료한다.( )
④ 푸른 빛으로 역사하며 어둠의 세력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한다.( )
2. 창조의 최상의 권능이란 무엇인지 설명해 보세요.
( )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23~13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도 바울'
신약 시대 예수님 다음으로 큰 권능을 행했다.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참 신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 구세주이심을 증거했다. 사도행전 14장을 보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향해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명하자 곧 그가 뛰고 걸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가리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오셨다고 할 정도였다. 멜리데라는 섬에서는 독사에 물려도 아무 이상이 없자 원주민들이 사도 바울을 신으로 여겼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사도 바울이 온전한 선과 사랑을 이루게 되자 사람들이 신이라고 할 정도로 놀라운 권능을 행하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었다.
2013-08-09
제32과빛
요일 1:5
읽을말씀 : 요일 1:5 | 외울말씀 : 요일 1:5 ㅣ 참고 말씀:요 1:1
교육목표 : 영적인 빛이 무엇인지 알아 어둠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한다.
빛에는 참으로 신비한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어둠을 밝혀 주며 따뜻하게 하고 몸에 해로운 세균과 곰팡이를 소멸시키며,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여 생명을 유지하도록 돕지요. 이처럼 우리가 볼 수 있는 육적인 빛이 존재하는가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빛도 실존합니다. 영적인 빛에서는 무한한 능력이 나타나지요.
캄캄한 밤에 빛이 비취면 어둠이 순간에 사라지듯이, 영적인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한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임합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습니다.
1. 영적인 빛이란?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했고,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셨습니다. 바로 빛은 하나님 자체요, 진리, 선,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하셨습니다. 이때에는 어떤 형상을 입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빛과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에서 모든 우주를 품고 계셨지요.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이 온 우주를 감싸고 그 빛으로부터 청아하고 우렁찬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빛과 소리로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형상을 입으신 후 창조 사역을 시작하셨지요. 비록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고 계시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긴 빛과 소리로 존재하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빛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빛이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소리로 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란 성경에 기록된 선과 의, 사랑에 관한 모든 진리의 말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만나려면 빛 가운데 행해야
성경에는 사랑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 등 "하라" 하신 것들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등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또한 미워하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등 "하지 말라"는 말씀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등 "버리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며, 주님과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지키라" 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은 어둠에 거한다는 증거입니다.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지만 어둠의 세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므로 어둠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신속히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하신 대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3.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사귐이 있는 것이 당연하듯이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만일 어둠에 있으면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거짓말입니다(요일 1:6).
여기서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 편에서 누구를 안다고 해서 그와 사귐이 있다 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서로 믿고 대화할 수 있는 친밀한 사이를 말합니다. 아무리 내 편에서 대통령에 대해 잘 안다 해도 대통령이 나를 모른다면 사귐이 있다 할 수 없습니다. 사귐에도 얼굴만 아는 정도와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있고, 나아가 깊은 비밀까지 나누는 친밀한 관계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사귐이 되려면 하나님 편에서도 나를 알고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다면 병들고 연약하거나 가난할 리 없고 응답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실 정도로 하나님과 사귐이 깊었습니다. 다윗은 범사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였지요. 사울 왕에게 쫓겨다닐 때나 전쟁에 나가 싸울 때도 "올라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하며 일일이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상세히 알려 주심으로 전쟁마다 승승장구했지요. 다윗이 하나님과 아름다운 사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4.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해 주셨지만 어두움을 좇는 사람들은 원수 마귀에 속하므로 빛을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빛을 싫어하고 대적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감으로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 행하며, 이러한 사람은 설령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란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빛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고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받아 나감으로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고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미줄같이 얽히고설킨 문제라 해도 성령께서 친히 갈 길을 알려 주시니 막힐 것이 없고, 혹 장애물이 있더라도 능히 피해 갈 수 있지요.
우리가 성결을 이루고 빛으로 들어가면 하늘로서 지혜와 명철이 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늘 마음에 평강이 넘치고 기쁨이 샘솟지요. 어떤 사람과도 다투거나 불목하지 않고 사랑과 은혜가 넘쳐납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지요(요삼 1:2). 나아가 만사형통의 축복은 물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권능까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5. 과연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신속히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어느 정도 악의 모양을 버렸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지요.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성장하여 장성한 아비의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있는 세세한 악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발견하여 뽑아 버려야 합니다. 윗사람이 되고 권세가 생길수록 더욱 마음을 낮추며 소자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겸손히 귀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상대가 나에게 악을 행한다 해도 감정을 품지 않고 덕과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요. 더구나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신의 의 가운데 화평을 깨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스스로 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고한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며 그들이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더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여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입기 마련입니다. 범사에 형통함과 축복을 받고 온전히 성결되어 하나님 마음에 합하면 권능까지 받아 크게 쓰이게 되지요. 따라서 나는 얼마나 빛 가운데 행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는 참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쓰세요.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 )이시라 그에게는 ( )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한일서 1:5)
"태초에 ( )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 )이시니라"(요한복음 1:1)
2. 다음 설명 중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은 빛이시요, 진리, 선, 사랑 자체가 되신다.
②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빛과 소리로 계셨다.
③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
④ 요한복음 1장 2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하고 있다.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97~11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말씀과 하나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다(요 1:1). 여기서 '태초에 계셨던 말씀'은 바로 근본의 빛 속에서 울려나오는 근본의 소리를 뜻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소리'라는 형태보다 소리의 본질인 '말씀'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말씀이 내용이라면, 하나님은 그 내용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말씀이요, 그 말씀은 빛과 소리라는 형태로 근본의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교육목표 : 영적인 빛이 무엇인지 알아 어둠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한다.
빛에는 참으로 신비한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어둠을 밝혀 주며 따뜻하게 하고 몸에 해로운 세균과 곰팡이를 소멸시키며,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여 생명을 유지하도록 돕지요. 이처럼 우리가 볼 수 있는 육적인 빛이 존재하는가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빛도 실존합니다. 영적인 빛에서는 무한한 능력이 나타나지요.
캄캄한 밤에 빛이 비취면 어둠이 순간에 사라지듯이, 영적인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한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임합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습니다.
1. 영적인 빛이란?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했고,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셨습니다. 바로 빛은 하나님 자체요, 진리, 선,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하셨습니다. 이때에는 어떤 형상을 입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빛과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에서 모든 우주를 품고 계셨지요.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이 온 우주를 감싸고 그 빛으로부터 청아하고 우렁찬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빛과 소리로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형상을 입으신 후 창조 사역을 시작하셨지요. 비록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고 계시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긴 빛과 소리로 존재하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빛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빛이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소리로 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란 성경에 기록된 선과 의, 사랑에 관한 모든 진리의 말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만나려면 빛 가운데 행해야
성경에는 사랑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 등 "하라" 하신 것들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등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또한 미워하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등 "하지 말라"는 말씀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등 "버리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며, 주님과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지키라" 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은 어둠에 거한다는 증거입니다.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지만 어둠의 세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므로 어둠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신속히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하신 대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3.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사귐이 있는 것이 당연하듯이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만일 어둠에 있으면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거짓말입니다(요일 1:6).
여기서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 편에서 누구를 안다고 해서 그와 사귐이 있다 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서로 믿고 대화할 수 있는 친밀한 사이를 말합니다. 아무리 내 편에서 대통령에 대해 잘 안다 해도 대통령이 나를 모른다면 사귐이 있다 할 수 없습니다. 사귐에도 얼굴만 아는 정도와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있고, 나아가 깊은 비밀까지 나누는 친밀한 관계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사귐이 되려면 하나님 편에서도 나를 알고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다면 병들고 연약하거나 가난할 리 없고 응답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실 정도로 하나님과 사귐이 깊었습니다. 다윗은 범사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였지요. 사울 왕에게 쫓겨다닐 때나 전쟁에 나가 싸울 때도 "올라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하며 일일이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상세히 알려 주심으로 전쟁마다 승승장구했지요. 다윗이 하나님과 아름다운 사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4.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해 주셨지만 어두움을 좇는 사람들은 원수 마귀에 속하므로 빛을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빛을 싫어하고 대적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감으로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 행하며, 이러한 사람은 설령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란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빛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고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받아 나감으로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고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미줄같이 얽히고설킨 문제라 해도 성령께서 친히 갈 길을 알려 주시니 막힐 것이 없고, 혹 장애물이 있더라도 능히 피해 갈 수 있지요.
우리가 성결을 이루고 빛으로 들어가면 하늘로서 지혜와 명철이 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늘 마음에 평강이 넘치고 기쁨이 샘솟지요. 어떤 사람과도 다투거나 불목하지 않고 사랑과 은혜가 넘쳐납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지요(요삼 1:2). 나아가 만사형통의 축복은 물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권능까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5. 과연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신속히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어느 정도 악의 모양을 버렸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지요.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성장하여 장성한 아비의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있는 세세한 악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발견하여 뽑아 버려야 합니다. 윗사람이 되고 권세가 생길수록 더욱 마음을 낮추며 소자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겸손히 귀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상대가 나에게 악을 행한다 해도 감정을 품지 않고 덕과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요. 더구나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신의 의 가운데 화평을 깨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스스로 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고한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며 그들이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더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여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입기 마련입니다. 범사에 형통함과 축복을 받고 온전히 성결되어 하나님 마음에 합하면 권능까지 받아 크게 쓰이게 되지요. 따라서 나는 얼마나 빛 가운데 행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는 참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쓰세요.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 )이시라 그에게는 ( )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한일서 1:5)
"태초에 ( )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 )이시니라"(요한복음 1:1)
2. 다음 설명 중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은 빛이시요, 진리, 선, 사랑 자체가 되신다.
②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빛과 소리로 계셨다.
③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
④ 요한복음 1장 2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하고 있다.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97~11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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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하나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다(요 1:1). 여기서 '태초에 계셨던 말씀'은 바로 근본의 빛 속에서 울려나오는 근본의 소리를 뜻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소리'라는 형태보다 소리의 본질인 '말씀'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말씀이 내용이라면, 하나님은 그 내용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말씀이요, 그 말씀은 빛과 소리라는 형태로 근본의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2013-08-02
제31과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
딤후 2:20~21
읽을말씀 : 딤후 2:20~21 | 외울말씀 : 딤후 2:20~21 ㅣ 참고 말씀:렘 17:9, 요일 5:3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사랑받고 귀히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원래 그릇의 용도는 무언가를 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하신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진리의 말씀을 담을 수 있고, 나아가 하나님 능력과 권세와 권능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받아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아무리 많은 돌무더기 속에서도 보석은 반짝반짝 빛을 발하므로 금방 눈에 띕니다. 영적으로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하나님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발견하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그에게 예비하신 각양 좋은 은사들과 축복을 주실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고', '귀히 여기시며', '아름답다고 인정하시는 그릇'의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입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그릇이란 어떠한 사람을 말할까요?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큰 사명을 맡았으되 온전히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가령, 주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모세와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는 그릇은 보통 사람과는 달리 정직하고 진실하며 정한 마음과 곧은 절개로 품격과 품위가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강대국의 총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요셉과 다니엘과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그릇은 마음이 선하여 아무 일에든지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오직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을 구한 에스더나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린 아브라함과 같은 분들이지요.
2.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1) 마음을 깨끗게 하여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그릇이라 해도 냄새나는 오물이 묻어 있다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깨끗이 씻은 후에야 사용이 가능하지요. 우리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각양의 은사들과 물질, 건강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고, 마태복음 15장 18~19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과 행동이 악으로 나오지 않으려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씻는 것은 영적인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0장 22절에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성경 66권 말씀 가운데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곧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성들과 악성들이 버려지니 자연히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이처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면 자연히 몸의 행실도 거룩해지고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혹여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계명을 다 지켜 행할 수 있을까?' 하고 힘들다 어렵다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결코 힘들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하는 일은 마냥 즐겁고 행복합니다. 힘들거나 어렵고 짜증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며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 뜻을 위배하는 것이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2) 연단을 잘 받아 영적 빛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지나 목걸이를 만드는 원석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손에 연마된 후에는 아름답고 찬란한 보석으로 탄생하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육 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 때때로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무슨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즉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시련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과정을 잘 통과해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고 큰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19~20절에 보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어 시험 환난을 당한다면 이것은 축복을 위한 연단이 아닙니다. 죄로 인한 것이기에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깨우쳐 신속히 회개해야 어려움이 사라집니다.
이와는 반대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이미 깨끗한 그릇이 되었다 할지라도 때를 좇아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흠도 티도 없으신 거룩한 빛 자체이시니 사랑하는 자녀들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빛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단련하십니다. 이러한 축복의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선과 사랑으로 채우면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빛의 강도가 커짐에 따라 그 권세와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나지요.
3.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때 임하는 축복
마가복음 9장 1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내쫓지 못한 귀신을 아이에게서 내쫓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라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니 즉시 나가고 아이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한 것은 그들의 영적 빛과 예수님의 영적 빛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밝은 영적 빛의 차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악으로 악을 갚지 말며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연단 가운데서도 믿음과 선, 사랑과 의가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 귀신도 제어할 수 있고 어떠한 질병이나 연약함도 고칠 수 있습니다.
당회장님은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참으로 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랑으로 간구했습니다. 학업에 전념하는 학생이 시험을 통해 비로소 실력을 인정받듯이 연단을 통해 믿음과 사랑이 확증되자 하나님께서는 예전보다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연단이 끝난 후에는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여시고 수만, 수십만 혹은 수백만이 넘는 인파가 모인 가운데 시공간을 초월한 권능으로 함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둘러 주시는 영적 빛은 이 세상의 어떤 빛보다도 찬란하고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영적 빛으로 둘러싸인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성결을 이루며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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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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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 말씀 구절들의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를 쓰시오.
①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 )이라"
② 마태복음 15:18~19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 )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③ 마태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 )도 있느니라"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79~9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에스더'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에 귀환하지 않고 바사에 머물던 베냐민 지파 아비하일의 딸이다. 일찍 부모를 잃어 사촌 모르드개가 딸처럼 키웠다. 에스더는 와스디가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자 왕의 사랑과 은총을 입어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아각 사람 하만은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존경을 표하는데 모르드개만 거부하자 여기에 분을 품고 유다인들을 멸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때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가 하만의 음모를 수포로 돌아가게 하여 민족을 구한다.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사랑받고 귀히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원래 그릇의 용도는 무언가를 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하신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진리의 말씀을 담을 수 있고, 나아가 하나님 능력과 권세와 권능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받아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아무리 많은 돌무더기 속에서도 보석은 반짝반짝 빛을 발하므로 금방 눈에 띕니다. 영적으로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하나님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발견하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그에게 예비하신 각양 좋은 은사들과 축복을 주실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고', '귀히 여기시며', '아름답다고 인정하시는 그릇'의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입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그릇이란 어떠한 사람을 말할까요?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큰 사명을 맡았으되 온전히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가령, 주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모세와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는 그릇은 보통 사람과는 달리 정직하고 진실하며 정한 마음과 곧은 절개로 품격과 품위가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강대국의 총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요셉과 다니엘과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그릇은 마음이 선하여 아무 일에든지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오직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을 구한 에스더나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린 아브라함과 같은 분들이지요.
2.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1) 마음을 깨끗게 하여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그릇이라 해도 냄새나는 오물이 묻어 있다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깨끗이 씻은 후에야 사용이 가능하지요. 우리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각양의 은사들과 물질, 건강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고, 마태복음 15장 18~19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과 행동이 악으로 나오지 않으려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씻는 것은 영적인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0장 22절에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성경 66권 말씀 가운데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곧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성들과 악성들이 버려지니 자연히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이처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면 자연히 몸의 행실도 거룩해지고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혹여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계명을 다 지켜 행할 수 있을까?' 하고 힘들다 어렵다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결코 힘들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하는 일은 마냥 즐겁고 행복합니다. 힘들거나 어렵고 짜증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며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 뜻을 위배하는 것이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2) 연단을 잘 받아 영적 빛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지나 목걸이를 만드는 원석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손에 연마된 후에는 아름답고 찬란한 보석으로 탄생하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육 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 때때로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무슨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즉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시련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과정을 잘 통과해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고 큰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19~20절에 보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어 시험 환난을 당한다면 이것은 축복을 위한 연단이 아닙니다. 죄로 인한 것이기에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깨우쳐 신속히 회개해야 어려움이 사라집니다.
이와는 반대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이미 깨끗한 그릇이 되었다 할지라도 때를 좇아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흠도 티도 없으신 거룩한 빛 자체이시니 사랑하는 자녀들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빛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단련하십니다. 이러한 축복의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선과 사랑으로 채우면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빛의 강도가 커짐에 따라 그 권세와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나지요.
3.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때 임하는 축복
마가복음 9장 1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내쫓지 못한 귀신을 아이에게서 내쫓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라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니 즉시 나가고 아이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한 것은 그들의 영적 빛과 예수님의 영적 빛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밝은 영적 빛의 차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악으로 악을 갚지 말며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연단 가운데서도 믿음과 선, 사랑과 의가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 귀신도 제어할 수 있고 어떠한 질병이나 연약함도 고칠 수 있습니다.
당회장님은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참으로 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랑으로 간구했습니다. 학업에 전념하는 학생이 시험을 통해 비로소 실력을 인정받듯이 연단을 통해 믿음과 사랑이 확증되자 하나님께서는 예전보다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연단이 끝난 후에는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여시고 수만, 수십만 혹은 수백만이 넘는 인파가 모인 가운데 시공간을 초월한 권능으로 함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둘러 주시는 영적 빛은 이 세상의 어떤 빛보다도 찬란하고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영적 빛으로 둘러싸인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성결을 이루며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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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 말씀 구절들의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를 쓰시오.
①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 )이라"
② 마태복음 15:18~19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 )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③ 마태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 )도 있느니라"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79~9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에스더'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에 귀환하지 않고 바사에 머물던 베냐민 지파 아비하일의 딸이다. 일찍 부모를 잃어 사촌 모르드개가 딸처럼 키웠다. 에스더는 와스디가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자 왕의 사랑과 은총을 입어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아각 사람 하만은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존경을 표하는데 모르드개만 거부하자 여기에 분을 품고 유다인들을 멸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때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가 하만의 음모를 수포로 돌아가게 하여 민족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