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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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4
제14과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룻 1:16
읽을말씀 : 룻 1:16 | 외울말씀 : 갈 6:9 ㅣ 참고 말씀:고전 13:4~7
교육목표 : 변함없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음으로 룻과 같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매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영계의 법칙 또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거두게 마련입니다. 오늘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므로 결국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은 여인 룻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끝까지 선을 행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니실 때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충성하며 어떻게 순교할지, 누가 자신을 팔 자인지 이미 그들의 마음 중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수제자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고백했을 때에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고백했지만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마 26장).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계셨지만 그를 버리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든 깨닫고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알려 주며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하셨지요(요 6:64, 70~71). 자기를 팔거나 죽일 자인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와 동행하며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영의 마음을 이루지 못하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도 열매가 보이지 않으니 ‘내가 괜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고 항상 변함없는 마음으로 끝까지 선을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며 축복하십니다.
2. 정한 마음을 소유한 룻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죽자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져들고 맙니다. 그 결과 주변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흉년이 들어 많은 어려움을 겪지요. 이때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는 두 아들을 데리고 기근을 피해 모압 지방으로 이주합니다. 그런데 이주한 뒤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고 말지요. 과부가 된 나오미는 모압 여인인 오르바와 룻을 며느리로 맞아들입니다. 10년쯤 되었을 때에 두 아들마저 죽고 맙니다.
온 가족이 기근을 피해 왔건만 집안의 모든 남자가 죽고 과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구한 삶입니까. 이를 통해 우리가 깨우칠 점은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영적으로 하나님 품인데 나오미 가정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으로 갔으니 이는 세상을 바라본 것이지요. 그러니 더 큰 어려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가세는 기울고 몹시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합니다. 그런데 남편도 없는 두 며느리가 마음에 걸려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하지요. 아무 희망도 없이 과부로 살아야 할 며느리들을 생각하니 마음 아팠기 때문입니다.
이에 오르바는 울며 친정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습니다. 나오미가 돌아가라고 강권하자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 1:16~17)라고 단호히 말하지요.
3. 변함없이 선을 행하여 축복을 받은 룻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은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처음과 동일한 마음으로 변함없이 시어머니를 섬겼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삭을 주워 정성껏 시어머니를 봉양하였고, 시어머니의 말씀에도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으며 마땅한 도리로 여기고 부지런히 섬겼습니다.
요즘은 부모를 모시는 문제로 형제간에 불화하거나 고부간의 갈등으로 고통받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룻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도리를 좇는 선을 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룻의 효성이 이처럼 지극했기에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 지역의 부유하고 신망을 받는 보아스도 룻에 대해 익히 알고 호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보리와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배려해 주었지요. 그는 나오미 남편의 친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기 집안의 기업 무를 사람 중에 하나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보아스에게 부탁을 하지요. 모세의 율법에는 기업 무르기 법이 있습니다. 팔았던 토지를 원래 소유자에게 회복시키거나 자녀없이 죽은 사람의 대를 잇도록 하기 위해 그의 미망인을 죽은 사람의 친척이 취하여 대를 잇게 하는 법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성읍 사람들이 다 아는 정숙한 여인임을 알고 있었기에 룻에게 기업 무를 사람의 책임을 행하기로 맹세했습니다. 기업 무를 사람으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지만 그는 사랑이 없으므로 거절하였고, 그 다음 차례인 보아스는 사랑이 있으므로 허락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삼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바로 다윗의 조부 오벳입니다. 결국 룻은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어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4.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룻의 마음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베들레헴에 온 이방 여인 룻이 어떻게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그녀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 앞에 합하였기 때문입니다. 룻은 자기 앞날에 아무런 희망이 없는데도 인내하며 선을 좇아 나갔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투기라든가 자랑하는 마음, 교만하거나 무례한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거나 악한 것을 생각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견뎠습니다. 룻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중심을 보시고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룻기 말씀을 통해 깨달을 점은 수많은 여인 중에서 룻에 대한 기록이 성경 66권 중 한 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룻의 마음을 본받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다. 룻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데도 나오미의 집안에 시집온 후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도 룻처럼 정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한 번 하나님을 믿었으면 변함이 없어야 하지요. 룻은 효성이 지극하며 사람의 도리를 다하여 홀로 된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자유와 젊음 등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시어머니를 붙좇아 끝까지 봉양하였으니 참으로 아름답고 정한 마음이지요.
오늘날 이러한 마음을 지닌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자기 생각이나 마음에 맞지 않아도 함께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룻처럼 절망적인 상황이 되면 누가 그 길을 가려 하겠습니까. 룻은 시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경했기에 그 길이 고생임을 알면서도 마땅한 도리로 여기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행복이나 불행은 환경이나 조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선한 마음에 달려 있지요. 룻이 대가를 바라고 선을 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갚아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으면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중심이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할 때 몇 번 하다가 그치지 않습니다.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사람으로서 바른 도리를 좇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변함없이 선을 행하지요.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행하여 간구와 기도에 응답받으며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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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그의 변함없는 사랑을 어떻게 고백했나요? (룻 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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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 안에 알맞은 이름을 써 넣으세요. (룻 4:18~22)
베레스 → 헤스론 → 람 → 암미나답 → 나손 → 살몬 → ( ) → 오벳 → 이새 →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73~18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베들레헴’
‘떡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예수님의 탄생지다.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라고 예언했다(미 5:2). 그 예언은 메시아가 그곳에서 탄생하심으로 성취되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며,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은 곳이기도 하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모압 땅으로 이주했다가 룻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교육목표 : 변함없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음으로 룻과 같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매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영계의 법칙 또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거두게 마련입니다. 오늘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므로 결국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은 여인 룻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끝까지 선을 행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니실 때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충성하며 어떻게 순교할지, 누가 자신을 팔 자인지 이미 그들의 마음 중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수제자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고백했을 때에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고백했지만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마 26장).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계셨지만 그를 버리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든 깨닫고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알려 주며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하셨지요(요 6:64, 70~71). 자기를 팔거나 죽일 자인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와 동행하며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영의 마음을 이루지 못하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도 열매가 보이지 않으니 ‘내가 괜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고 항상 변함없는 마음으로 끝까지 선을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며 축복하십니다.
2. 정한 마음을 소유한 룻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죽자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져들고 맙니다. 그 결과 주변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흉년이 들어 많은 어려움을 겪지요. 이때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는 두 아들을 데리고 기근을 피해 모압 지방으로 이주합니다. 그런데 이주한 뒤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고 말지요. 과부가 된 나오미는 모압 여인인 오르바와 룻을 며느리로 맞아들입니다. 10년쯤 되었을 때에 두 아들마저 죽고 맙니다.
온 가족이 기근을 피해 왔건만 집안의 모든 남자가 죽고 과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구한 삶입니까. 이를 통해 우리가 깨우칠 점은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영적으로 하나님 품인데 나오미 가정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으로 갔으니 이는 세상을 바라본 것이지요. 그러니 더 큰 어려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가세는 기울고 몹시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합니다. 그런데 남편도 없는 두 며느리가 마음에 걸려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하지요. 아무 희망도 없이 과부로 살아야 할 며느리들을 생각하니 마음 아팠기 때문입니다.
이에 오르바는 울며 친정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습니다. 나오미가 돌아가라고 강권하자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 1:16~17)라고 단호히 말하지요.
3. 변함없이 선을 행하여 축복을 받은 룻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은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처음과 동일한 마음으로 변함없이 시어머니를 섬겼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삭을 주워 정성껏 시어머니를 봉양하였고, 시어머니의 말씀에도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으며 마땅한 도리로 여기고 부지런히 섬겼습니다.
요즘은 부모를 모시는 문제로 형제간에 불화하거나 고부간의 갈등으로 고통받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룻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도리를 좇는 선을 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룻의 효성이 이처럼 지극했기에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 지역의 부유하고 신망을 받는 보아스도 룻에 대해 익히 알고 호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보리와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배려해 주었지요. 그는 나오미 남편의 친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기 집안의 기업 무를 사람 중에 하나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보아스에게 부탁을 하지요. 모세의 율법에는 기업 무르기 법이 있습니다. 팔았던 토지를 원래 소유자에게 회복시키거나 자녀없이 죽은 사람의 대를 잇도록 하기 위해 그의 미망인을 죽은 사람의 친척이 취하여 대를 잇게 하는 법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성읍 사람들이 다 아는 정숙한 여인임을 알고 있었기에 룻에게 기업 무를 사람의 책임을 행하기로 맹세했습니다. 기업 무를 사람으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지만 그는 사랑이 없으므로 거절하였고, 그 다음 차례인 보아스는 사랑이 있으므로 허락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삼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바로 다윗의 조부 오벳입니다. 결국 룻은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어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4.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룻의 마음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베들레헴에 온 이방 여인 룻이 어떻게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그녀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 앞에 합하였기 때문입니다. 룻은 자기 앞날에 아무런 희망이 없는데도 인내하며 선을 좇아 나갔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투기라든가 자랑하는 마음, 교만하거나 무례한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거나 악한 것을 생각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견뎠습니다. 룻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중심을 보시고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룻기 말씀을 통해 깨달을 점은 수많은 여인 중에서 룻에 대한 기록이 성경 66권 중 한 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룻의 마음을 본받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다. 룻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데도 나오미의 집안에 시집온 후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도 룻처럼 정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한 번 하나님을 믿었으면 변함이 없어야 하지요. 룻은 효성이 지극하며 사람의 도리를 다하여 홀로 된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자유와 젊음 등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시어머니를 붙좇아 끝까지 봉양하였으니 참으로 아름답고 정한 마음이지요.
오늘날 이러한 마음을 지닌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자기 생각이나 마음에 맞지 않아도 함께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룻처럼 절망적인 상황이 되면 누가 그 길을 가려 하겠습니까. 룻은 시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경했기에 그 길이 고생임을 알면서도 마땅한 도리로 여기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행복이나 불행은 환경이나 조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선한 마음에 달려 있지요. 룻이 대가를 바라고 선을 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갚아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으면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중심이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할 때 몇 번 하다가 그치지 않습니다.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사람으로서 바른 도리를 좇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변함없이 선을 행하지요.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행하여 간구와 기도에 응답받으며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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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그의 변함없는 사랑을 어떻게 고백했나요? (룻 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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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 안에 알맞은 이름을 써 넣으세요. (룻 4:18~22)
베레스 → 헤스론 → 람 → 암미나답 → 나손 → 살몬 → ( ) → 오벳 → 이새 →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73~18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베들레헴’
‘떡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예수님의 탄생지다.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라고 예언했다(미 5:2). 그 예언은 메시아가 그곳에서 탄생하심으로 성취되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며,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은 곳이기도 하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모압 땅으로 이주했다가 룻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2014-03-28
제13과믿음의 행함
수 3:7~13
읽을말씀 : 수 3:7~13 | 외울말씀 : 막 9:23 ㅣ 참고 말씀:히 11:1
교육목표 :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림으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늘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이 세상의 어떤 권세나 명예, 부로도 얻을 수 없는 구원과 천국, 영생복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이 있으면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여 응답받을 수 있으니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막 9:23). 따라서 믿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응답의 열쇠로 신앙생활은 물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
믿음은 크게 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육적인 믿음은 눈으로 보아 확인이 되고 자신의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하기 때문에 믿는 믿음입니다. 가령 나무로 책상을 만드는 것을 이미 보아서 아는 사람은 누가 나무로 책상을 만들었다고 하면 의심 없이 믿습니다. 이것은 유에서 유의 창조, 즉 있는 것에서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에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을 영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육적인 믿음과 반대되는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의 창조, 즉 없는 것에서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천지 만물이 하나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믿으며,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이지요.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응답과 축복을 받으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믿음은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을 보면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즉 각 사람의 그릇에 따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나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영적인 믿음을 주실까요?
바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간음 등 비진리의 마음을 버리고 원수라도 사랑하며 계명을 준행하는 만큼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만일 스스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응답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주여,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믿습니다.” 할 것이고, 미운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을 징계하여 주옵소서.” 하면 될 것입니다. 그 기도대로 응답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고 진리로 변화된 만큼 마음으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응답받으려면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이란 비진리의 모든 생각을 말하며, 이 생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지 않고 자꾸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쌓은 지식, 경험, 생각을 옳다 여기지만 그중에는 진리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 잘못 입력된 지식이 육신의 생각을 불러일으켜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육신의 생각이 많은 사람은 자기 지혜를 동원하므로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은 못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입력된 지식 가운데 잘못된 것은 빼내어 영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행함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무렵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해마다 보리를 거두는 그맘때면 요단강이 범람하여 언덕에 넘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말씀하십니다(수 3:8).
여호수아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백성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하지요.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진했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멘 열두 제사장을 앞세운 행렬이 드디어 요단 강가에 다다랐습니다. 선두에 선 제사장들이 거세게 흘러내리는 강물에 발을 딛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강물이 멈추더니 멀리 있는 아담읍 변방에 물이 쌓이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흐르던 강물이 완전히 끊어졌습니다(수 3:15~17).
이 외에도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고, 모세가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니 쓴 물이 단물이 되며, 만나가 하늘에서 내리고,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오는 일 등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행했을 때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3.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1)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모세가 마음속으로 ‘지팡이 든 손을 내민다고 해서 과연 홍해가 갈라질까? 안 되면 어떻게 하나?’ 의심했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겠습니까? 의심치 않고 온전히 믿었기에 믿음대로 역사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영적인 믿음을 갖기까지에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라 명하셨을 때(출 3~4장) 모세는 백성이 자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증거로 표적을 보여 주십니다. 모세가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던졌더니 지팡이가 뱀이 되고 손을 내밀어 꼬리를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지요. 또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니 문둥병이 생겼고 다시 품에 넣으니 정상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모세가 순종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열 재앙 등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나타내 주시니 그의 믿음이 온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까지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받아 믿음으로 행군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체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체험이 없는 사람은 체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하나님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나 문제가 있는 사람은 이를 해결받기 위해 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필요한 것들을 기도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것, 믿음으로 죄 사함 받는 것,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재능을 계발하는 것, 순종하는 것 등을 구해야 하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3)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과 목표를 세웠다면 그것을 응답받기 위해 믿음의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가령,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손 놓고 마냥 기도와 금식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영혼을 갈무리하는 이들이 심방하고 전도하는 등 구체적인 행함이 따라야 하지요.
물질의 축복을 받아 선교하고 구제하기 원한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약속하셨습니다(말 3:10).
따라서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만히 때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기도와 금식은 물론, 적극적인 믿음의 행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 하신 대로 바라던 것이 실제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응답의 열매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심으로 항상 믿음의 행군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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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육적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 )
2.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 )
3.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4.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 말씀을 듣고 ( )해야 한다.
둘째, 믿음의 체험을 얻기 위해 ( )해야 한다.
셋째,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 )이 있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59~16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여호수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이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모세의 수종자로 함께 시내산에 올라갔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 중 한 사람으로 악평하는 10명의 장탐꾼과는 달리 갈렙과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임을 확신에 찬 믿음의 고백을 하였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 가나안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하였고, 110세에 죽어 자신이 기업으로 받은 땅 딤낫세라에 장사되었다(수 24:29~30).
교육목표 :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림으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늘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이 세상의 어떤 권세나 명예, 부로도 얻을 수 없는 구원과 천국, 영생복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이 있으면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여 응답받을 수 있으니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막 9:23). 따라서 믿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응답의 열쇠로 신앙생활은 물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
믿음은 크게 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육적인 믿음은 눈으로 보아 확인이 되고 자신의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하기 때문에 믿는 믿음입니다. 가령 나무로 책상을 만드는 것을 이미 보아서 아는 사람은 누가 나무로 책상을 만들었다고 하면 의심 없이 믿습니다. 이것은 유에서 유의 창조, 즉 있는 것에서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에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을 영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육적인 믿음과 반대되는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의 창조, 즉 없는 것에서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천지 만물이 하나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믿으며,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이지요.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응답과 축복을 받으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믿음은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을 보면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즉 각 사람의 그릇에 따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나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영적인 믿음을 주실까요?
바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간음 등 비진리의 마음을 버리고 원수라도 사랑하며 계명을 준행하는 만큼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만일 스스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응답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주여,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믿습니다.” 할 것이고, 미운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을 징계하여 주옵소서.” 하면 될 것입니다. 그 기도대로 응답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고 진리로 변화된 만큼 마음으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응답받으려면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이란 비진리의 모든 생각을 말하며, 이 생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지 않고 자꾸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쌓은 지식, 경험, 생각을 옳다 여기지만 그중에는 진리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 잘못 입력된 지식이 육신의 생각을 불러일으켜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육신의 생각이 많은 사람은 자기 지혜를 동원하므로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은 못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입력된 지식 가운데 잘못된 것은 빼내어 영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행함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무렵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해마다 보리를 거두는 그맘때면 요단강이 범람하여 언덕에 넘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말씀하십니다(수 3:8).
여호수아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백성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하지요.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진했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멘 열두 제사장을 앞세운 행렬이 드디어 요단 강가에 다다랐습니다. 선두에 선 제사장들이 거세게 흘러내리는 강물에 발을 딛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강물이 멈추더니 멀리 있는 아담읍 변방에 물이 쌓이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흐르던 강물이 완전히 끊어졌습니다(수 3:15~17).
이 외에도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고, 모세가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니 쓴 물이 단물이 되며, 만나가 하늘에서 내리고,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오는 일 등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행했을 때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3.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1)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모세가 마음속으로 ‘지팡이 든 손을 내민다고 해서 과연 홍해가 갈라질까? 안 되면 어떻게 하나?’ 의심했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겠습니까? 의심치 않고 온전히 믿었기에 믿음대로 역사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영적인 믿음을 갖기까지에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라 명하셨을 때(출 3~4장) 모세는 백성이 자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증거로 표적을 보여 주십니다. 모세가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던졌더니 지팡이가 뱀이 되고 손을 내밀어 꼬리를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지요. 또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니 문둥병이 생겼고 다시 품에 넣으니 정상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모세가 순종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열 재앙 등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나타내 주시니 그의 믿음이 온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까지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받아 믿음으로 행군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체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체험이 없는 사람은 체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하나님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나 문제가 있는 사람은 이를 해결받기 위해 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필요한 것들을 기도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것, 믿음으로 죄 사함 받는 것,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재능을 계발하는 것, 순종하는 것 등을 구해야 하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3)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과 목표를 세웠다면 그것을 응답받기 위해 믿음의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가령,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손 놓고 마냥 기도와 금식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영혼을 갈무리하는 이들이 심방하고 전도하는 등 구체적인 행함이 따라야 하지요.
물질의 축복을 받아 선교하고 구제하기 원한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약속하셨습니다(말 3:10).
따라서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만히 때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기도와 금식은 물론, 적극적인 믿음의 행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 하신 대로 바라던 것이 실제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응답의 열매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심으로 항상 믿음의 행군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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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육적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 )
2.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 )
3.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4.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 말씀을 듣고 ( )해야 한다.
둘째, 믿음의 체험을 얻기 위해 ( )해야 한다.
셋째,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 )이 있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59~16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여호수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이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모세의 수종자로 함께 시내산에 올라갔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 중 한 사람으로 악평하는 10명의 장탐꾼과는 달리 갈렙과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임을 확신에 찬 믿음의 고백을 하였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 가나안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하였고, 110세에 죽어 자신이 기업으로 받은 땅 딤낫세라에 장사되었다(수 24:29~30).
2014-03-21
제12과감정을 제어하라
롬 12:19~21
읽을말씀 : 롬 12:19~21 | 외울말씀 : 롬 12:21 ㅣ 참고 말씀:시 37:7~9
교육목표 :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며 감정을 제어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게 한다.
사람들은 감정 때문에 중요한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여기서 감정이란 사랑이나 기쁨과 같은 좋은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망하거나 성내는 등 좋지 않은 마음입니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므로 서로 상처를 주고, 원수를 갚기 위해 악을 행하기도 하지요. 사소한 감정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길을 내주고 하나님과 죄의 담을 만듭니다. 이처럼 감정은 백해무익하므로 에베소서 4장 26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말씀합니다.
1. 직접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는 이유
사람들은 부모나 스승 또는 친구의 원수를 갚는 것을 의로운 행동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직접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했지요.
또한 하나님이 심판하는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니(요 5:27) 오직 우리 주님 외에는 어떤 사람에게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재판장이 되어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수군거리지 말라, 비방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하셨지요.
그러니 주님을 믿는 사람은 서로 섬겨야 합니다. 섬기는 것은 나보다 상대를 더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되면 누구를 얕잡아 볼 수 없고 판단 정죄하거나 수군거리는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성도 중에는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정죄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1절을 보면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말씀합니다. 율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우리가 재판장이 되어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교만이요, 큰 죄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심판해서도, 원수를 갚아서도 안 됩니다.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갚아 주심을 믿기에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활 속에서 감정 상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살다 보면 개인적으로나 형제간에, 혹은 가족 간에, 동료나 이웃 간에 감정 상할 일들이 수없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39~42)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말씀하셨지요. 이러한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면 감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의지하여 서로 이해하며 포용하려고 노력한다면 다툼, 원망, 불평, 불만, 탄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상대의 마음을 녹인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수 있지요.
2. 감정을 제어하지 않으면
사람이 살다 보면 큰 문제는 물론 사소한 일로도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만일 감정이 일어날 때 제어하지 않고 감정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엇보다 자신이 힘들며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안겨줍니다.
성경에는 시기라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여 인생을 망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 왕입니다. 그는 신하 다윗을 시기했습니다. 매번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왕인 사울보다 더 칭송하고 사랑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용모가 준수했고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그러한 자신 외에 감히 누가 칭송을 받는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자칫 왕위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다윗이 백성의 힘을 등에 업는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질투라는 감정은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낳았고 평생 불안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심지어 다윗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합니다. 결국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많은 군사를 이끌고 다윗의 뒤를 쫓았던 사울에게 과연 평안이 있었겠습니까? 나라는 또한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한 사람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므로 자신과 가족, 나라 전체가 고통받았던 것입니다.
3. 감정을 제어하고 하나님께 맡겨야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선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십니다. 구약 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악한 하만에 대한 심판이 그 예입니다. 바사 제국의 신하 하만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몹시 노하여 감정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물론 그의 민족까지 말살하려고 흉계를 꾸며 왕의 조서까지 받아냅니다. 이를 안 모르드개와 사촌 누이 에스더는 금식하며 이 일을 하나님께 의뢰하였습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탄원하지요. 이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직접 심판하셨습니다. 악한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세워 놓은 나무에 오히려 자신이 달려 죽은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롯 왕이 교회를 핍박하면서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겼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쇠사슬에 매인 베드로를 풀어 밖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을 핍박하고 악을 행한 헤롯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2장 21~23절에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신 것입니다.
4. 선으로 악을 이겨야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조금도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역사를 보아도 감정 싸움으로 많은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지요. 부부 간에도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생기면 다툼으로 이어지고 심하면 별거나 이혼까지 갑니다. 형제 간에도 감정 대립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원수 맺는 일도 생기지요. 그러나 모든 일에 감정으로 대하지 않고 오직 선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상대가 감정이 나서 악을 행해도 선으로 대한다면 이런 사람은 누구와도 화목할 수 있습니다. 화목하니 뼈가 상하는 고통을 받지도 않습니다. 상대가 비방하고 악으로 대해도 오히려 사랑으로 이해하고 기도해 주므로 고통받을 이유가 없지요.
그러니 가족이나 이웃 또는 일터 등에서 감정으로 부딪히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감정을 제어하고 다만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범사에 형통한 복을 주시고 사랑과 인정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선한 중심을 찾으십니다. 혹여 누가 기분 나쁘게 하면 그 자리에서 얼굴을 붉히거나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감정으로 원수 맺은 것은 없는지, 내 눈에는 들보가 있으면서 재판장이 되어 남을 판단하거나 형제의 티를 빼려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시편 37편 7~9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했습니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길 뿐만 아니라, 감정을 제어하고 오직 사랑의 마음으로 선을 행하여 범사에 복된 길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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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상대와 부딪히거나 감정 상할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5:39~44을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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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들은 원수 갚는 것이 의롭다고 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직접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롬 12:19 \; 요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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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49~15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들보’란?
건물을 지을 때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가로질러서 얹는 지지대로서, 오늘날 건설 현장에서 들보는 보통 목재, 쇠,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본다’(마 7:5)는 말은 자신의 커다란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허물이나 잘못만을 책잡고 나무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교육목표 :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며 감정을 제어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게 한다.
사람들은 감정 때문에 중요한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여기서 감정이란 사랑이나 기쁨과 같은 좋은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망하거나 성내는 등 좋지 않은 마음입니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므로 서로 상처를 주고, 원수를 갚기 위해 악을 행하기도 하지요. 사소한 감정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길을 내주고 하나님과 죄의 담을 만듭니다. 이처럼 감정은 백해무익하므로 에베소서 4장 26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말씀합니다.
1. 직접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는 이유
사람들은 부모나 스승 또는 친구의 원수를 갚는 것을 의로운 행동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직접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했지요.
또한 하나님이 심판하는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니(요 5:27) 오직 우리 주님 외에는 어떤 사람에게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재판장이 되어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수군거리지 말라, 비방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하셨지요.
그러니 주님을 믿는 사람은 서로 섬겨야 합니다. 섬기는 것은 나보다 상대를 더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되면 누구를 얕잡아 볼 수 없고 판단 정죄하거나 수군거리는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성도 중에는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정죄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1절을 보면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말씀합니다. 율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우리가 재판장이 되어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교만이요, 큰 죄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심판해서도, 원수를 갚아서도 안 됩니다.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갚아 주심을 믿기에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활 속에서 감정 상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살다 보면 개인적으로나 형제간에, 혹은 가족 간에, 동료나 이웃 간에 감정 상할 일들이 수없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39~42)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말씀하셨지요. 이러한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면 감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의지하여 서로 이해하며 포용하려고 노력한다면 다툼, 원망, 불평, 불만, 탄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상대의 마음을 녹인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수 있지요.
2. 감정을 제어하지 않으면
사람이 살다 보면 큰 문제는 물론 사소한 일로도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만일 감정이 일어날 때 제어하지 않고 감정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엇보다 자신이 힘들며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안겨줍니다.
성경에는 시기라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여 인생을 망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 왕입니다. 그는 신하 다윗을 시기했습니다. 매번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왕인 사울보다 더 칭송하고 사랑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용모가 준수했고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그러한 자신 외에 감히 누가 칭송을 받는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자칫 왕위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다윗이 백성의 힘을 등에 업는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질투라는 감정은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낳았고 평생 불안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심지어 다윗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합니다. 결국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많은 군사를 이끌고 다윗의 뒤를 쫓았던 사울에게 과연 평안이 있었겠습니까? 나라는 또한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한 사람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므로 자신과 가족, 나라 전체가 고통받았던 것입니다.
3. 감정을 제어하고 하나님께 맡겨야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선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십니다. 구약 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악한 하만에 대한 심판이 그 예입니다. 바사 제국의 신하 하만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몹시 노하여 감정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물론 그의 민족까지 말살하려고 흉계를 꾸며 왕의 조서까지 받아냅니다. 이를 안 모르드개와 사촌 누이 에스더는 금식하며 이 일을 하나님께 의뢰하였습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탄원하지요. 이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직접 심판하셨습니다. 악한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세워 놓은 나무에 오히려 자신이 달려 죽은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롯 왕이 교회를 핍박하면서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겼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쇠사슬에 매인 베드로를 풀어 밖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을 핍박하고 악을 행한 헤롯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2장 21~23절에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신 것입니다.
4. 선으로 악을 이겨야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조금도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역사를 보아도 감정 싸움으로 많은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지요. 부부 간에도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생기면 다툼으로 이어지고 심하면 별거나 이혼까지 갑니다. 형제 간에도 감정 대립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원수 맺는 일도 생기지요. 그러나 모든 일에 감정으로 대하지 않고 오직 선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상대가 감정이 나서 악을 행해도 선으로 대한다면 이런 사람은 누구와도 화목할 수 있습니다. 화목하니 뼈가 상하는 고통을 받지도 않습니다. 상대가 비방하고 악으로 대해도 오히려 사랑으로 이해하고 기도해 주므로 고통받을 이유가 없지요.
그러니 가족이나 이웃 또는 일터 등에서 감정으로 부딪히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감정을 제어하고 다만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범사에 형통한 복을 주시고 사랑과 인정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선한 중심을 찾으십니다. 혹여 누가 기분 나쁘게 하면 그 자리에서 얼굴을 붉히거나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감정으로 원수 맺은 것은 없는지, 내 눈에는 들보가 있으면서 재판장이 되어 남을 판단하거나 형제의 티를 빼려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시편 37편 7~9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했습니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길 뿐만 아니라, 감정을 제어하고 오직 사랑의 마음으로 선을 행하여 범사에 복된 길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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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상대와 부딪히거나 감정 상할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5:39~44을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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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들은 원수 갚는 것이 의롭다고 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직접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롬 12:19 \; 요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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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49~15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들보’란?
건물을 지을 때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가로질러서 얹는 지지대로서, 오늘날 건설 현장에서 들보는 보통 목재, 쇠,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본다’(마 7:5)는 말은 자신의 커다란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허물이나 잘못만을 책잡고 나무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2014-03-14
제11과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마 20:20~23
읽을말씀 : 마 20:20~23 | 외울말씀 : 막 11:24 ㅣ 참고 말씀:약 1:6~8
교육목표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구하여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자녀들의 소원에 응답하시며 자녀들과 참된 사랑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자녀에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며 그 소원을 들어주기를 기뻐하시지요.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려운 일이 닥쳐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응답
마태복음 20장 20~21절을 보면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느뇨?”라고 물으시지요. 그러자 여인은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간청합니다. 그만한 권한을 가진 분이라고 믿었기에 높은 자리를 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들은 예수님의 어떠한 면을 보았기에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과 진실한 행하심을 보았고 또한 예수님이 베푸신 기사와 표적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요 2장),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요 9장), 간질을 하며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막 9장). 또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 속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시기도 하셨습니다(요 11장).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기도 하시고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마 14장).
그렇다면 예수님이 기사와 표적을 행하신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모든 사람에게 영생, 곧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누누이 천국에 대해 듣고 배웠으며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권세가 천국에서 얼마나 큰지도 알았고 예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받을 줄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나아가 두 아들이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 약속을 받고자 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답변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앉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아버지 뜻대로 행하여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무엇을 구하든지 믿음으로 구해야 응답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 의지합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갈급하여 나오는가 하면 각종 질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치료받고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도를 받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므로 주님께서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면 각자 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기를 구하는 사람도 있고 “질병을 치료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고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증거를 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사기 6장을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족속에게 약탈을 당하고 고통을 받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주십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이 무서워 몰래 밀 타작을 하던 자였는데 자신이 그러한 사명을 맡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워 하나님께 두 가지 표징을 구합니다.
먼저 “양털 한 뭉치를 땅에다 두겠으니 밤새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주위 땅은 말라 있다면 믿을 수 있겠나이다” 기도하였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과연 양털에만 이슬이 내렸습니다. 기드온은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이번에는 반대로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과연 양털만 말라 있고 주변 땅은 다 이슬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며 참 신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각종 문제로 하나님을 찾는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선 모세는 완전무장한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돌격해 오자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더니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므로 그의 자녀들이 믿음을 내보이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역사해 주십니다.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경우로는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침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백부장(마 8장),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찾아 나온 여인(마 9장), 자기 딸에게 들린 흉악한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수로보니게 여인(막 7장)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어 그 즉시 응답을 받았는데 백부장은 믿음의 고백만으로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하인을 사랑하는 백부장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시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하시자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9) 하지요.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그 앞에 순종하려는 믿음을 지닌 백부장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하인이 그 시로 나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을 받습니다.
3. 무엇을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두 마음을 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내보여야 하며, 어떠한 일을 만난다 해도 오직 하나님 뜻대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어떤 시험 환난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인하고 탄식하면서, 끝까지 믿음을 내보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고 금식해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해 주시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지 응답해 주시면 내가 왜 원망하고 탄식하며 불평하겠느냐?”고 변명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한 출애굽 1세대들은 믿음을 내보이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적어 보이는데도 응답을 받습니다. 그것은 응답해 주어도 그 마음이 변치 않을 중심인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배신할 줄 알면서도 응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훗날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내가 너에게 이렇게 응답을 주었지만 너는 이러한 응답을 보고도 나를 부인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며 공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따라 응답을 주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번에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씩 주십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단번에 응답해 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도록 변화된 만큼 조금씩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가는 만큼 믿음대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단지 응답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중심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참된 믿음을 가지고 행함을 나타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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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믿음을 내보여 하나님 역사를 나타낸 성경 인물의 이름을 ( ) 안에 쓰세요.
1. 자신이 개 취급을 당해도 끝까지 겸비한 마음과 믿음을 내보임으로 마침내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이 치료받았다.( )
2. 3백 명 군사로 메뚜기의 중다함과 같고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 미디안과 아말렉 연합군과 싸워 승리한 사사이다.( )
3. 예수님께 다만 말씀으로 명하기만 해도 하인이 낫겠다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하여 중풍에 걸린 하인이 치료를 받았다.(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33~14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기드온’
미디안은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을 7년 동안 압제했던 민족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서 몰래 밀 타작을 하고 있던 기드온을 불러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하신다. 이에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르셨다는 표징을 두 번에 걸쳐 받고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그의 3백 명 군사로 하여금 메뚜기의 중다함과 같고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의 연합군을 쳐 승리케 하셨다.
교육목표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구하여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자녀들의 소원에 응답하시며 자녀들과 참된 사랑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자녀에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며 그 소원을 들어주기를 기뻐하시지요.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려운 일이 닥쳐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응답
마태복음 20장 20~21절을 보면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느뇨?”라고 물으시지요. 그러자 여인은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간청합니다. 그만한 권한을 가진 분이라고 믿었기에 높은 자리를 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들은 예수님의 어떠한 면을 보았기에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과 진실한 행하심을 보았고 또한 예수님이 베푸신 기사와 표적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요 2장),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요 9장), 간질을 하며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막 9장). 또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 속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시기도 하셨습니다(요 11장).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기도 하시고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마 14장).
그렇다면 예수님이 기사와 표적을 행하신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모든 사람에게 영생, 곧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누누이 천국에 대해 듣고 배웠으며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권세가 천국에서 얼마나 큰지도 알았고 예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받을 줄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나아가 두 아들이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 약속을 받고자 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답변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앉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아버지 뜻대로 행하여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무엇을 구하든지 믿음으로 구해야 응답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 의지합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갈급하여 나오는가 하면 각종 질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치료받고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도를 받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므로 주님께서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면 각자 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기를 구하는 사람도 있고 “질병을 치료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고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증거를 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사기 6장을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족속에게 약탈을 당하고 고통을 받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주십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이 무서워 몰래 밀 타작을 하던 자였는데 자신이 그러한 사명을 맡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워 하나님께 두 가지 표징을 구합니다.
먼저 “양털 한 뭉치를 땅에다 두겠으니 밤새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주위 땅은 말라 있다면 믿을 수 있겠나이다” 기도하였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과연 양털에만 이슬이 내렸습니다. 기드온은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이번에는 반대로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과연 양털만 말라 있고 주변 땅은 다 이슬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며 참 신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각종 문제로 하나님을 찾는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선 모세는 완전무장한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돌격해 오자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더니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므로 그의 자녀들이 믿음을 내보이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역사해 주십니다.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경우로는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침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백부장(마 8장),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찾아 나온 여인(마 9장), 자기 딸에게 들린 흉악한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수로보니게 여인(막 7장)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어 그 즉시 응답을 받았는데 백부장은 믿음의 고백만으로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하인을 사랑하는 백부장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시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하시자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9) 하지요.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그 앞에 순종하려는 믿음을 지닌 백부장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하인이 그 시로 나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을 받습니다.
3. 무엇을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두 마음을 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내보여야 하며, 어떠한 일을 만난다 해도 오직 하나님 뜻대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어떤 시험 환난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인하고 탄식하면서, 끝까지 믿음을 내보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고 금식해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해 주시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지 응답해 주시면 내가 왜 원망하고 탄식하며 불평하겠느냐?”고 변명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한 출애굽 1세대들은 믿음을 내보이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적어 보이는데도 응답을 받습니다. 그것은 응답해 주어도 그 마음이 변치 않을 중심인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배신할 줄 알면서도 응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훗날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내가 너에게 이렇게 응답을 주었지만 너는 이러한 응답을 보고도 나를 부인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며 공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따라 응답을 주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번에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씩 주십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단번에 응답해 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도록 변화된 만큼 조금씩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가는 만큼 믿음대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단지 응답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중심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참된 믿음을 가지고 행함을 나타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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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믿음을 내보여 하나님 역사를 나타낸 성경 인물의 이름을 ( ) 안에 쓰세요.
1. 자신이 개 취급을 당해도 끝까지 겸비한 마음과 믿음을 내보임으로 마침내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이 치료받았다.( )
2. 3백 명 군사로 메뚜기의 중다함과 같고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 미디안과 아말렉 연합군과 싸워 승리한 사사이다.( )
3. 예수님께 다만 말씀으로 명하기만 해도 하인이 낫겠다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하여 중풍에 걸린 하인이 치료를 받았다.(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33~14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기드온’
미디안은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을 7년 동안 압제했던 민족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서 몰래 밀 타작을 하고 있던 기드온을 불러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하신다. 이에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르셨다는 표징을 두 번에 걸쳐 받고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그의 3백 명 군사로 하여금 메뚜기의 중다함과 같고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의 연합군을 쳐 승리케 하셨다.
2014-03-07
제10과심고 거두는 법칙
고후 9:6~8
읽을말씀 : 고후 9:6~8 | 외울말씀 : 고후 9:7 ㅣ 참고 말씀:갈 6:7~9
교육목표 : 마음밭을 옥토로 개간하여 심는 것마다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농부는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씨를 뿌리고 수고하며 열심히 경작합니다. 그런데 농부가 농사 짓는 법을 몰라서 어느 때 심고 어느 때 거둬들여야 하는지 모른다면 아무리 열심히 수고한다 해도 좋은 수확을 기대하기가 어렵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잘 알아야 구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기 위해서는 먼저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거친 황무지라 할지라도 열심히 땀 흘리며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단단한 밭이면 갈아엎고 거름을 주어 부드럽게 해 주고, 돌멩이가 있으면 주워 내며, 가시떨기가 있으면 뽑아 내고 정성스럽게 가꾸면 비옥한 밭으로 바뀌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밭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않고, ‘버리라’고 하신 것을 열심히 버려 나가면 개간이 됩니다. 나아가 ‘하라’, ‘지키라’ 하신 것들을 지키고 행하면 영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혀 가지요. 마태복음 13장에는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는 네 가지 밭의 비유가 나옵니다.
첫째, ‘길가밭’입니다. 길가는 사람들이 늘 밟고 지나다니기 때문에 단단하지요. 씨앗이 이 길가에 떨어지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흙 속에 묻히지도 못하기 때문에 아예 싹이 나지 않지요. 새들이 와서 그 씨앗을 먹어 버리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길가밭’은 바로 단단한 마음, 강퍅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이지요. 분명히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주는데도 의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둘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도 돌멩이 때문에 잘 성장하지 못하는 ‘돌밭’입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마음밭입니다. 믿음의 확신이 없기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리지요. 은혜를 받았을 때는 마음이 뜨거워서 아멘 하다가도 금방 사단의 역사를 받아 의심하며 배신하기도 하는 마음입니다.
셋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서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아 잘 자라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입니다. 즉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이런 밭의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않고 육신의 생각 가운데 행합니다. 예들 들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집안 일, 사업터 걱정, 내일 출근할 걱정 등 육의 일들에 대한 염려가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그러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축복을 온전히 받지 못합니다.
넷째,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며 열매를 맺되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옥토밭’입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밭입니다. 그래서 옥토밭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그분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씨를 뿌리고 가꾼다 해도 마음밭이 옥토가 아니라면 수고한 것에 비해 수확이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먼저는 마음밭을 개간하는 작업, 곧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성결된 깨끗한 마음을 이뤄야 하지요. 옥토 곧 선한 마음, 사랑과 덕과 온유한 마음을 이루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앞에 다양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밭을 개간하는 농부는 계절에 따라 그 밭에 다양한 씨앗을 뿌립니다. 콩, 팥, 무씨, 배추씨, 호박씨 등 여러 씨앗을 심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밭을 개간하는 작업과 함께 씨를 뿌리는 것도 동시에 해야 합니다.
‘미움’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사랑’의 씨를 심으면 신속히 미움을 버리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밭을 개간해 나가면 점점 옥토가 되는데, 우리가 비진리를 버린다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상급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심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에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이 바로 심는 작업입니다. 성경 66권에 “기뻐하라, 전도하라, 계명을 지키라, 안식을 지키라”는 말씀들을 열심히 지켜 행하는 것이 바로 다양한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릴 때 가을에 추수할 것을 믿고 뿌리듯이, 하나님 앞에 심을 때도 30배, 60배, 100배로 넘치게 축복해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심어야 합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심는 것이 아니라 즐겨 심을 때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고후 9:7).
3. 주 안에서 인내와 정성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농부는 밭에 씨를 심은 다음에 물과 거름을 주고 풀을 뽑고 벌레를 잡아 주며 인내와 정성으로 잘 가꿉니다. 이러한 노력이 없으면 싹이 나서 자라다가 파리해지거나 열매를 맺기 전에 병충해를 입어 죽기도 합니다. 열매가 잘 자라기까지 땀 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무럭무럭 자라나 아름답게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중심을 바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못하고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며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우쳐야 자신을 발견하고 영적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 환난을 막을 수 없고, 원수 마귀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항상 깨어 기도하되 하나님 말씀대로 부르짖으며 중심을 다한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식물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꾸어 주어야 싱싱하게 잘 자라는 것과 같이 내 마음이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쳐야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틈타지 못합니다.
넷째는, 인내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종자마다 그 열매 맺는 기간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 앞에 심은 것도 금방 응답받아 열매를 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인내하며 가꾸다 보면 마음 안에 영적인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가 맺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4.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씨를 심어 열매가 맺히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처럼 영계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를 하면 연약함이 떠나가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으며,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물질로 열심히 드리면 물질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수넴에 사는 귀부인은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정성으로 대접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여인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오래도록 아이가 없던 여인에게 아들을 축복해 주셨지요.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여 병들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마음밭을 옥토로 개간하여 다양한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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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내 마음은 어떤 유형의 밭일까요? 다음 보기에서 골라 ( ) 안에 쓰세요.
보기: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
1.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고, 믿음의 확신이 없기 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린다.( )
2. 단단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줘도 의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다.( )
3.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밭으로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마음밭이다.( )
4.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로 말씀대로 온전히 행치 못하고, 육신의 생각을 좇으며 하나님을 중심에서 의뢰하지 못한다.(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25~13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교육목표 : 마음밭을 옥토로 개간하여 심는 것마다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농부는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씨를 뿌리고 수고하며 열심히 경작합니다. 그런데 농부가 농사 짓는 법을 몰라서 어느 때 심고 어느 때 거둬들여야 하는지 모른다면 아무리 열심히 수고한다 해도 좋은 수확을 기대하기가 어렵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잘 알아야 구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기 위해서는 먼저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거친 황무지라 할지라도 열심히 땀 흘리며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단단한 밭이면 갈아엎고 거름을 주어 부드럽게 해 주고, 돌멩이가 있으면 주워 내며, 가시떨기가 있으면 뽑아 내고 정성스럽게 가꾸면 비옥한 밭으로 바뀌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밭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않고, ‘버리라’고 하신 것을 열심히 버려 나가면 개간이 됩니다. 나아가 ‘하라’, ‘지키라’ 하신 것들을 지키고 행하면 영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혀 가지요. 마태복음 13장에는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는 네 가지 밭의 비유가 나옵니다.
첫째, ‘길가밭’입니다. 길가는 사람들이 늘 밟고 지나다니기 때문에 단단하지요. 씨앗이 이 길가에 떨어지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흙 속에 묻히지도 못하기 때문에 아예 싹이 나지 않지요. 새들이 와서 그 씨앗을 먹어 버리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길가밭’은 바로 단단한 마음, 강퍅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이지요. 분명히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주는데도 의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둘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도 돌멩이 때문에 잘 성장하지 못하는 ‘돌밭’입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마음밭입니다. 믿음의 확신이 없기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리지요. 은혜를 받았을 때는 마음이 뜨거워서 아멘 하다가도 금방 사단의 역사를 받아 의심하며 배신하기도 하는 마음입니다.
셋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서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아 잘 자라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입니다. 즉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이런 밭의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않고 육신의 생각 가운데 행합니다. 예들 들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집안 일, 사업터 걱정, 내일 출근할 걱정 등 육의 일들에 대한 염려가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그러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축복을 온전히 받지 못합니다.
넷째,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며 열매를 맺되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옥토밭’입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밭입니다. 그래서 옥토밭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그분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씨를 뿌리고 가꾼다 해도 마음밭이 옥토가 아니라면 수고한 것에 비해 수확이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먼저는 마음밭을 개간하는 작업, 곧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성결된 깨끗한 마음을 이뤄야 하지요. 옥토 곧 선한 마음, 사랑과 덕과 온유한 마음을 이루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앞에 다양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밭을 개간하는 농부는 계절에 따라 그 밭에 다양한 씨앗을 뿌립니다. 콩, 팥, 무씨, 배추씨, 호박씨 등 여러 씨앗을 심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밭을 개간하는 작업과 함께 씨를 뿌리는 것도 동시에 해야 합니다.
‘미움’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사랑’의 씨를 심으면 신속히 미움을 버리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밭을 개간해 나가면 점점 옥토가 되는데, 우리가 비진리를 버린다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상급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심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에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이 바로 심는 작업입니다. 성경 66권에 “기뻐하라, 전도하라, 계명을 지키라, 안식을 지키라”는 말씀들을 열심히 지켜 행하는 것이 바로 다양한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릴 때 가을에 추수할 것을 믿고 뿌리듯이, 하나님 앞에 심을 때도 30배, 60배, 100배로 넘치게 축복해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심어야 합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심는 것이 아니라 즐겨 심을 때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고후 9:7).
3. 주 안에서 인내와 정성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농부는 밭에 씨를 심은 다음에 물과 거름을 주고 풀을 뽑고 벌레를 잡아 주며 인내와 정성으로 잘 가꿉니다. 이러한 노력이 없으면 싹이 나서 자라다가 파리해지거나 열매를 맺기 전에 병충해를 입어 죽기도 합니다. 열매가 잘 자라기까지 땀 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무럭무럭 자라나 아름답게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중심을 바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못하고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며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우쳐야 자신을 발견하고 영적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 환난을 막을 수 없고, 원수 마귀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항상 깨어 기도하되 하나님 말씀대로 부르짖으며 중심을 다한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식물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꾸어 주어야 싱싱하게 잘 자라는 것과 같이 내 마음이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쳐야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틈타지 못합니다.
넷째는, 인내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종자마다 그 열매 맺는 기간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 앞에 심은 것도 금방 응답받아 열매를 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인내하며 가꾸다 보면 마음 안에 영적인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가 맺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4.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씨를 심어 열매가 맺히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처럼 영계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를 하면 연약함이 떠나가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으며,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물질로 열심히 드리면 물질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수넴에 사는 귀부인은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정성으로 대접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여인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오래도록 아이가 없던 여인에게 아들을 축복해 주셨지요.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여 병들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마음밭을 옥토로 개간하여 다양한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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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내 마음은 어떤 유형의 밭일까요? 다음 보기에서 골라 ( ) 안에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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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고, 믿음의 확신이 없기 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린다.( )
2. 단단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줘도 의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다.( )
3.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밭으로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마음밭이다.( )
4.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로 말씀대로 온전히 행치 못하고, 육신의 생각을 좇으며 하나님을 중심에서 의뢰하지 못한다.(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25~13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2014-02-28
제9과금식과 기도의 위력
욘 3:1~10
읽을말씀 : 욘 3:1~10 | 외울말씀 : 렘 33:3 ㅣ 참고 말씀:사 58:3~9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금식과 기도를 통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도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하며 구할 때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그 응답의 비결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금식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1. 금식과 기도로 응답받은 니느웨 백성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뜻을 외치라고 명하시지요. 요나는 주전 785년을 전후하여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국 앗수르가 망하기를 원했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배를 타고 갑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대풍을 내리셨고, 요나가 탄 배는 거의 난파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지요. 그러자 놀랍게도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였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방 민족인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어른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하나님께 회개했지요.
그 소문을 들은 왕 또한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니느웨 백성에게 선포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였습니다(욘 3:7~8).
이처럼 금식으로 정성을 내보이며, 악한 행실에서 떠나 힘써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릴 재앙을 거두셨지요. 그만큼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큰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니느웨 백성이 왕과 함께 회개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금식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금식은 한 끼에서 하루, 이틀, 사흘을 할 수도 있고 오 일, 칠 일 또는 그 이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금식을 잘 못하는 사람은 한 끼 혹은 하루, 이틀 등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장기 금식은 먼저 많은 기도를 쌓은 후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정확히 주관받아 해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6~7절에 보면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했습니다.
이사야 58장 4~5절에는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무조건 굶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하면서 기운이 없다며 잠만 자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금식 중이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으면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금식할 때에는 오락을 금하고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사 58:3).
이러한 금식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8~9) 약속하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
금식뿐 아니라 기도도 하나님께 합당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리고 응답받은 사례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고(눅 22:39),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행 3:1). 청소도 매일 하면 간단히 끝낼 수 있으나 오래 묵혀 두면 먼지가 쌓이고 때가 찌들어 한참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평소에 습관을 좇아서 하면 시험 환난이 오지 않고, 설령 오더라도 가볍게 물러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시험 환난을 당하고 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둘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고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대통령 앞에서도 삼가 조심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눅 22:41)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셋째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렘 29:12~13, 33:3). 사도행전 4장을 보면 교회 역사상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났던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고 많은 기사와 표적이 따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도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출 15:22~25).
4. 하나님께 응답받은 사람들의 행함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 갈멜 산에 올라가 기도하여 비를 내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어찌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였던지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으로 배가 당기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지 70년 가까이 되어 나이가 많은데도 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며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회개하고 간구하였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온 가브리엘 천사장은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고 크고 놀라운 계시를 주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과 세상 끝 날에 될 일을 알려 준 것입니다.
예수님도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하신 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에 응답받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자기 욕심을 좇아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 믿음과 직분과 위치에 맞춰 필요한 것을 구하되 욕심을 좇아 구한다면 응답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약 4:2~3).
또한 믿고 구한 것은 응답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하지요(약 1:6~7).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과 하늘 보좌를 울리는 기도를 통해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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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이란 어떤 것인지 이사야 58:6~7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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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인지 써 보세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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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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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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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식도 하나님께 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금식할 때 얼마나 부르짖어 기도하시는지요? 혹여 기운이 없다고 누워 있거나 잠을 자지는 않나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09~11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금식과 보호식’
금식기도는 어떤 목적을 갖고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보호식은 금식이 끝난 후 빠진 기를 보충하고 약해진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도록 먹는 음식을 말하며, 금식한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이 된다. 보호식 하는 중에는 무리가 가거나 힘든 일은 피해야 한다. 식사는 미음이나 죽으로 하고, 반찬은 주로 채식을 하되 양념은 하지 않으며, 육류나 기름기 있는 음식, 맵거나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 화학조미료와 향신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보호식을 잘하면 붓지 않고 피부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금식과 기도를 통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도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하며 구할 때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그 응답의 비결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금식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1. 금식과 기도로 응답받은 니느웨 백성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뜻을 외치라고 명하시지요. 요나는 주전 785년을 전후하여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국 앗수르가 망하기를 원했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배를 타고 갑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대풍을 내리셨고, 요나가 탄 배는 거의 난파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지요. 그러자 놀랍게도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였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방 민족인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어른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하나님께 회개했지요.
그 소문을 들은 왕 또한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니느웨 백성에게 선포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였습니다(욘 3:7~8).
이처럼 금식으로 정성을 내보이며, 악한 행실에서 떠나 힘써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릴 재앙을 거두셨지요. 그만큼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큰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니느웨 백성이 왕과 함께 회개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금식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금식은 한 끼에서 하루, 이틀, 사흘을 할 수도 있고 오 일, 칠 일 또는 그 이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금식을 잘 못하는 사람은 한 끼 혹은 하루, 이틀 등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장기 금식은 먼저 많은 기도를 쌓은 후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정확히 주관받아 해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6~7절에 보면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했습니다.
이사야 58장 4~5절에는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무조건 굶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하면서 기운이 없다며 잠만 자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금식 중이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으면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금식할 때에는 오락을 금하고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사 58:3).
이러한 금식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8~9) 약속하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
금식뿐 아니라 기도도 하나님께 합당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리고 응답받은 사례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고(눅 22:39),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행 3:1). 청소도 매일 하면 간단히 끝낼 수 있으나 오래 묵혀 두면 먼지가 쌓이고 때가 찌들어 한참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평소에 습관을 좇아서 하면 시험 환난이 오지 않고, 설령 오더라도 가볍게 물러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시험 환난을 당하고 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둘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고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대통령 앞에서도 삼가 조심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눅 22:41)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셋째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렘 29:12~13, 33:3). 사도행전 4장을 보면 교회 역사상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났던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고 많은 기사와 표적이 따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도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출 15:22~25).
4. 하나님께 응답받은 사람들의 행함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 갈멜 산에 올라가 기도하여 비를 내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어찌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였던지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으로 배가 당기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지 70년 가까이 되어 나이가 많은데도 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며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회개하고 간구하였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온 가브리엘 천사장은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고 크고 놀라운 계시를 주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과 세상 끝 날에 될 일을 알려 준 것입니다.
예수님도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하신 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에 응답받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자기 욕심을 좇아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 믿음과 직분과 위치에 맞춰 필요한 것을 구하되 욕심을 좇아 구한다면 응답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약 4:2~3).
또한 믿고 구한 것은 응답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하지요(약 1:6~7).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과 하늘 보좌를 울리는 기도를 통해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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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이란 어떤 것인지 이사야 58:6~7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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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인지 써 보세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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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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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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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식도 하나님께 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금식할 때 얼마나 부르짖어 기도하시는지요? 혹여 기운이 없다고 누워 있거나 잠을 자지는 않나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09~11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금식과 보호식’
금식기도는 어떤 목적을 갖고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보호식은 금식이 끝난 후 빠진 기를 보충하고 약해진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도록 먹는 음식을 말하며, 금식한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이 된다. 보호식 하는 중에는 무리가 가거나 힘든 일은 피해야 한다. 식사는 미음이나 죽으로 하고, 반찬은 주로 채식을 하되 양념은 하지 않으며, 육류나 기름기 있는 음식, 맵거나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 화학조미료와 향신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보호식을 잘하면 붓지 않고 피부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된다.
2014-02-21
제8과모든 것에 화목하라
잠 16:7
읽을말씀 : 잠 16:7 | 외울말씀 : 히 12:14 l 참고 말씀:마 5:9, 잠 8:17
교육목표 : 어느 누구와도 불화하지 않고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화목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며 서로 부딪히지 않고 화평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대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안해서 화목을 이루기가 쉬울 뿐아니라 자신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1. 화목의 중요성
사람들 사이에 종종 다툼이 일어나고 화목하지 못한 모습을 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부분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하고 옳은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며,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이 진리입니다(요 14:6).
사람이 태어나 진리로만 가르침 받고 진리 안에 산다면 주님의 마음을 닮아 모두와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나 스승, 이웃이나 친구들로부터 배웠고 그중에는 진리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정립한 이론이나 사고방식과 양심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화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빌 3:8) 고백한 것과 같이 자신이 옳다 여기는 것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셨고,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하셨습니다. 따라서 화평이 얼마나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화목하지 못할 때의 고통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서로 섬기며 사랑하면 화목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 내 이론, 내 방식만이 옳다 고집하면 화목할 수 없고 서로 고통을 받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10년이 넘도록 사라에게는 잉태의 소식이 없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주지요. 하갈이 잉태하자 여 주인 사라를 멸시합니다. 이에 사라가 아브라함을 원망하며 하갈을 학대하니 그녀는 도망가 버리지요.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다시 돌아와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14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마침내 아들 이삭을 낳았지요. 그런데 이삭이 태어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사라가 참지 못하고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지요.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하지요. 비록 약속의 아들은 아니지만 이스마엘을 떠나 보내야 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처럼 사라가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결과 이러한 많은 고통이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의 경우입니다. 두 사람은 자매이지만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투기하지요. 레아가 아들을 네 명이나 낳는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 라헬은 자신의 여종을 야곱에게 첩으로 줍니다. 언니 레아도 지지 않고 자신의 여종을 첩으로 주지요.
이러한 관계가 그의 아들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에게서 얻은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소생으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알리곤 하여 형들은 그가 눈엣가시였지요. 결국 이복 형들에 의해 요셉은 타국으로 팔려가고 맙니다. 나를 주장하고 시기 질투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화목하지 못하며 불행이 따르는 것을 봅니다. 진정한 행복은 진리 안에 살 때 누릴 수 있습니다.
3. 진정한 행복을 얻는 길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누군가와 화목하지 못하여 고통당한다면 여호와를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으로는 솔로몬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게 해드렸던지 하나님으로부터 전무후무한 지혜를 응답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도 덤으로 받았습니다.
다음으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 제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에 의해 자기 민족이 몰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사촌 모르드개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때 왕과 자기 백성 유다인 사이에 화목을 이루기 위해 에스더는 먼저 여호와를 기쁘시게 했습니다. 수도인 수산 성에 사는 모든 유다인들과 함께 3일을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호소하였습니다. 이에 왕의 은총을 입지요.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기뻐하시고 민족을 구원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모압 여인 룻 역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축복을 받은 주인공입니다. 룻은 이스라엘 족속의 남편에게 시집을 왔으나 불행하게도 집안의 모든 남자가 죽고 말았습니다.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날 수도 있었지만 정한 마음으로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모시며 며느리의 도리를 다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그 지역의 부유한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결국 아들 오벳을 낳아 다윗의 족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4. 모든 것에 화목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그러면 우리가 모든 것에 화목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솔로몬처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번제 곧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깨끗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며 선을 행하고 열심히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행함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함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는 고넬료와 다비다를 들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온 가족이 성령을 받았고, 다비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10장).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종들과 화목을 이루며, 믿음의 형제들과도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 자녀 간에, 부부간에, 형제간에, 이웃 간에, 친구 간에 그리고 직장 동료나 상사 사이 등 모든 사람과 화목해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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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 ) 안에 공통으로 들어갈 단어를 써보세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 )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 )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2. 다음 중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화목을 이룬 사람이 아닌 것은?
① 솔로몬 ② 룻
③ 에스더 ④ 사라
3. 사라, 하갈, 라헬, 레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 여러분은 모든 사람과 화평하기 위해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하고 있는지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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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99~10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하만’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로 아하수에로 왕의 대신이었다. 왕이 그의 지위를 높이자 왕의 모든 신복들이 꿇어 절하는데 유다 민족인 모르드개만 거부하자 이에 분을 품고 모르드개를 포함한 유다 민족을 멸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하만의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다. 결국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던 나무에 하만과 그의 아들들이 달려 죽게 된다.
교육목표 : 어느 누구와도 불화하지 않고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화목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며 서로 부딪히지 않고 화평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대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안해서 화목을 이루기가 쉬울 뿐아니라 자신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1. 화목의 중요성
사람들 사이에 종종 다툼이 일어나고 화목하지 못한 모습을 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부분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하고 옳은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며,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이 진리입니다(요 14:6).
사람이 태어나 진리로만 가르침 받고 진리 안에 산다면 주님의 마음을 닮아 모두와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나 스승, 이웃이나 친구들로부터 배웠고 그중에는 진리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정립한 이론이나 사고방식과 양심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화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빌 3:8) 고백한 것과 같이 자신이 옳다 여기는 것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셨고,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하셨습니다. 따라서 화평이 얼마나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화목하지 못할 때의 고통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서로 섬기며 사랑하면 화목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 내 이론, 내 방식만이 옳다 고집하면 화목할 수 없고 서로 고통을 받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10년이 넘도록 사라에게는 잉태의 소식이 없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주지요. 하갈이 잉태하자 여 주인 사라를 멸시합니다. 이에 사라가 아브라함을 원망하며 하갈을 학대하니 그녀는 도망가 버리지요.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다시 돌아와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14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마침내 아들 이삭을 낳았지요. 그런데 이삭이 태어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사라가 참지 못하고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지요.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하지요. 비록 약속의 아들은 아니지만 이스마엘을 떠나 보내야 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처럼 사라가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결과 이러한 많은 고통이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의 경우입니다. 두 사람은 자매이지만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투기하지요. 레아가 아들을 네 명이나 낳는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 라헬은 자신의 여종을 야곱에게 첩으로 줍니다. 언니 레아도 지지 않고 자신의 여종을 첩으로 주지요.
이러한 관계가 그의 아들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에게서 얻은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소생으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알리곤 하여 형들은 그가 눈엣가시였지요. 결국 이복 형들에 의해 요셉은 타국으로 팔려가고 맙니다. 나를 주장하고 시기 질투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화목하지 못하며 불행이 따르는 것을 봅니다. 진정한 행복은 진리 안에 살 때 누릴 수 있습니다.
3. 진정한 행복을 얻는 길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누군가와 화목하지 못하여 고통당한다면 여호와를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으로는 솔로몬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게 해드렸던지 하나님으로부터 전무후무한 지혜를 응답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도 덤으로 받았습니다.
다음으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 제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에 의해 자기 민족이 몰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사촌 모르드개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때 왕과 자기 백성 유다인 사이에 화목을 이루기 위해 에스더는 먼저 여호와를 기쁘시게 했습니다. 수도인 수산 성에 사는 모든 유다인들과 함께 3일을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호소하였습니다. 이에 왕의 은총을 입지요.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기뻐하시고 민족을 구원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모압 여인 룻 역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축복을 받은 주인공입니다. 룻은 이스라엘 족속의 남편에게 시집을 왔으나 불행하게도 집안의 모든 남자가 죽고 말았습니다.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날 수도 있었지만 정한 마음으로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모시며 며느리의 도리를 다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그 지역의 부유한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결국 아들 오벳을 낳아 다윗의 족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4. 모든 것에 화목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그러면 우리가 모든 것에 화목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솔로몬처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번제 곧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깨끗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며 선을 행하고 열심히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행함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함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는 고넬료와 다비다를 들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온 가족이 성령을 받았고, 다비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10장).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종들과 화목을 이루며, 믿음의 형제들과도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 자녀 간에, 부부간에, 형제간에, 이웃 간에, 친구 간에 그리고 직장 동료나 상사 사이 등 모든 사람과 화목해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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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 ) 안에 공통으로 들어갈 단어를 써보세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 )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 )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2. 다음 중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화목을 이룬 사람이 아닌 것은?
① 솔로몬 ② 룻
③ 에스더 ④ 사라
3. 사라, 하갈, 라헬, 레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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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러분은 모든 사람과 화평하기 위해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하고 있는지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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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99~10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하만’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로 아하수에로 왕의 대신이었다. 왕이 그의 지위를 높이자 왕의 모든 신복들이 꿇어 절하는데 유다 민족인 모르드개만 거부하자 이에 분을 품고 모르드개를 포함한 유다 민족을 멸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하만의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다. 결국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던 나무에 하만과 그의 아들들이 달려 죽게 된다.
2014-02-14
제7과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왕하 5:23~27
읽을말씀 : 왕하 5:23~27 | 외울말씀 : 마 10:26 l 참고 말씀:창 18:9~15, 요 1:47
교육목표 :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 거짓됨 없이 정직하게 행함으로 범사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세상의 죄악을 보면 심령이 감각(感覺)되어 애통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책망할 것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그랬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온 나아만 장군
이스라엘과 인접한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은 부귀와 명예, 권세가 있었지만 커다란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온 여자 아이에게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서 스승을 끝까지 붙좇아 갑절의 영감을 얻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나아만은 포로로 잡아온 아이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의 허락을 받아 은 열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값비싼 의복 열 벌을 준비해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드디어 나아만은 엘리사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사환이 나오더니 엘리사의 말씀이라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면 깨끗이 회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은 기가 막혔습니다. 먼 곳에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왔건만 나오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 말만 전하니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요. 더구나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니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람에는 요단강보다 더 좋은 강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아만은 너무 분하였습니다. 잔뜩 부푼 기대가 일시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비참한 심경으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그에게 종들이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이에 나아만은 돌이켜 순종하지요. 종들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모습에서 그의 겸손과 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에 몸을 잠갔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일곱 번 몸을 잠갔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문둥병으로 흉측했던 피부가 어린아이 살같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요단강은 영적으로 구원을,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즉 말씀으로 깨끗이 씻고, 온전히 진리 가운데 살면 어떠한 병이라도 치료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 일곱은 완전수이므로 일곱 번 씻는 것은 완전하게 씻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찾아가 준비해 온 예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내 받지 않습니다.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린 나아만은 이제부터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고백한 후 자기 나라로 향했습니다.
2. 엘리사를 속이다가 문둥병에 걸린 사환 게하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나아만이 가져 온 예물이 너무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뒤쫓아가 엘리사가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달라고 했다며 거짓말을 합니다. 이에 나아만이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자 자기 집에 감추어 두었지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시치미를 떼지요.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感覺)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는 무서운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게하시의 범죄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회개할 수 있도록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고 또 거짓말을 했지요. 이처럼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게하시는 문둥병이 들어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게하시는 아무도 자기의 행동을 모르리라 여겼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심령을 감각시켜 알려 주시니 게하시가 행한 일을 훤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3.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이 사람들 몰래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사건이 나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는 경수도 이미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에 아들을 주겠다고 하시니 뒤편 장막문에서 듣고 있던 사라가 속으로 웃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셨지요.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 역시 누가 어디서 무슨 말과 생각을 한지도 다 아셨고, 모든 일들이 어떻게 돌아갈지도 다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7절에 빌립을 따라 예수님께 나온 나다나엘을 향해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칭찬하십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자기를 아시느냐고 하자 예수님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를 직접 본 것이 아닌데도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선지자라 할지라도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가만히 앉아서도 아람 왕이 그 심복들과 어떤 작전을 펼치는지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알려 아람을 잘 방비하게 하였지요. 이에 아람 왕은 자기 신하들 중에 첩자가 있어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주는 줄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왕하 6:8~12).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했는데 막상 돈을 쥐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얼마를 감추고 전부인양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한 일이었지만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을 속이려 한 아니니아를 엄히 책망하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삽비라 역시 베드로를 속이므로 죽고 말지요. 아무리 은밀히 행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이들 부부에 대해 성경에 기록하신 것도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의 종을 속이면 그만큼 화가 미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4. 정직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응답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과연 가르침대로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잘 드리는지, 믿음으로 행하는지, 기도하고 순종하는지 등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하니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속일 수 없습니다. 부모 형제나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하나님을 속이는 것에는 거짓말뿐 아니라 과장하고 보태는 것과 도적질도 포함됩니다. 또한 십일조, 감사예물 등을 마음에 작정하고 하지 않는 것, 기도하는 척하는 것, 중심으로 행하지 않는 것, 기도하라는 성령의 주관에 순종하지 않는 것, 금식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 그 밖에도 많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속이거나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정직한 길로 갈 수 있고, 온전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연단받을 때에는 두렵고 어려운 것 같지만 값진 연단의 시기가 있기에 결국 응답받는 형통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부모가 책망하거나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사랑이듯이, 연단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모든 것이 생각의 차이이므로 범사에 정직한 길로 행하되 결코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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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의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바치고자 했는데 왜 혼이 떠나 죽게 되었을까요?
( )
2. 게하시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던 것일까요?
( )
3. 사람의 의학으로는 결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인 문둥병을 어떻게 이방인인 나아만 장군이 치료받을 수 있었을까요?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85~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 부부는 초대교회 신자로, 하나님의 종과 성령을 속이는 자들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엄중히 시사해 주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자발적으로 교회에 드렸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친다고 했지만 사단이 마음에 가득하니 돈의 일부를 감추고 마치 전액인 것처럼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인다. 이에 베드로가 책망하자 혼이 떠나 죽게 된다.
교육목표 :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 거짓됨 없이 정직하게 행함으로 범사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세상의 죄악을 보면 심령이 감각(感覺)되어 애통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책망할 것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그랬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온 나아만 장군
이스라엘과 인접한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은 부귀와 명예, 권세가 있었지만 커다란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온 여자 아이에게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서 스승을 끝까지 붙좇아 갑절의 영감을 얻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나아만은 포로로 잡아온 아이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의 허락을 받아 은 열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값비싼 의복 열 벌을 준비해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드디어 나아만은 엘리사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사환이 나오더니 엘리사의 말씀이라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면 깨끗이 회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은 기가 막혔습니다. 먼 곳에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왔건만 나오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 말만 전하니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요. 더구나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니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람에는 요단강보다 더 좋은 강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아만은 너무 분하였습니다. 잔뜩 부푼 기대가 일시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비참한 심경으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그에게 종들이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이에 나아만은 돌이켜 순종하지요. 종들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모습에서 그의 겸손과 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에 몸을 잠갔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일곱 번 몸을 잠갔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문둥병으로 흉측했던 피부가 어린아이 살같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요단강은 영적으로 구원을,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즉 말씀으로 깨끗이 씻고, 온전히 진리 가운데 살면 어떠한 병이라도 치료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 일곱은 완전수이므로 일곱 번 씻는 것은 완전하게 씻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찾아가 준비해 온 예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내 받지 않습니다.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린 나아만은 이제부터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고백한 후 자기 나라로 향했습니다.
2. 엘리사를 속이다가 문둥병에 걸린 사환 게하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나아만이 가져 온 예물이 너무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뒤쫓아가 엘리사가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달라고 했다며 거짓말을 합니다. 이에 나아만이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자 자기 집에 감추어 두었지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시치미를 떼지요.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感覺)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는 무서운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게하시의 범죄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회개할 수 있도록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고 또 거짓말을 했지요. 이처럼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게하시는 문둥병이 들어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게하시는 아무도 자기의 행동을 모르리라 여겼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심령을 감각시켜 알려 주시니 게하시가 행한 일을 훤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3.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이 사람들 몰래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사건이 나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는 경수도 이미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에 아들을 주겠다고 하시니 뒤편 장막문에서 듣고 있던 사라가 속으로 웃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셨지요.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 역시 누가 어디서 무슨 말과 생각을 한지도 다 아셨고, 모든 일들이 어떻게 돌아갈지도 다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7절에 빌립을 따라 예수님께 나온 나다나엘을 향해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칭찬하십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자기를 아시느냐고 하자 예수님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를 직접 본 것이 아닌데도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선지자라 할지라도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가만히 앉아서도 아람 왕이 그 심복들과 어떤 작전을 펼치는지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알려 아람을 잘 방비하게 하였지요. 이에 아람 왕은 자기 신하들 중에 첩자가 있어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주는 줄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왕하 6:8~12).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했는데 막상 돈을 쥐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얼마를 감추고 전부인양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한 일이었지만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을 속이려 한 아니니아를 엄히 책망하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삽비라 역시 베드로를 속이므로 죽고 말지요. 아무리 은밀히 행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이들 부부에 대해 성경에 기록하신 것도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의 종을 속이면 그만큼 화가 미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4. 정직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응답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과연 가르침대로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잘 드리는지, 믿음으로 행하는지, 기도하고 순종하는지 등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하니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속일 수 없습니다. 부모 형제나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하나님을 속이는 것에는 거짓말뿐 아니라 과장하고 보태는 것과 도적질도 포함됩니다. 또한 십일조, 감사예물 등을 마음에 작정하고 하지 않는 것, 기도하는 척하는 것, 중심으로 행하지 않는 것, 기도하라는 성령의 주관에 순종하지 않는 것, 금식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 그 밖에도 많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속이거나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정직한 길로 갈 수 있고, 온전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연단받을 때에는 두렵고 어려운 것 같지만 값진 연단의 시기가 있기에 결국 응답받는 형통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부모가 책망하거나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사랑이듯이, 연단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모든 것이 생각의 차이이므로 범사에 정직한 길로 행하되 결코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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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의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바치고자 했는데 왜 혼이 떠나 죽게 되었을까요?
( )
2. 게하시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던 것일까요?
( )
3. 사람의 의학으로는 결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인 문둥병을 어떻게 이방인인 나아만 장군이 치료받을 수 있었을까요?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85~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 부부는 초대교회 신자로, 하나님의 종과 성령을 속이는 자들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엄중히 시사해 주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자발적으로 교회에 드렸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친다고 했지만 사단이 마음에 가득하니 돈의 일부를 감추고 마치 전액인 것처럼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인다. 이에 베드로가 책망하자 혼이 떠나 죽게 된다.
2014-02-07
제6과용서하는 마음
겔 18:21~24
읽을말씀 : 겔 18:21~24 | 외울말씀 : 마 5:23~24 l 참고 말씀:시 103:12~14
교육목표 : 어느 누구와도 원수 맺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도 멸하는 것을 즐거워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멸하시는 장면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악인을 멸하실 수밖에 없는 공의와 끊임없이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 어찌하든 용서하시려는 사랑의 하나님
창세기 18~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심히 극에 달한 도시였습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멸하시지 않고 마지막 최후까지 살릴 수 있는 증거를 찾고자 천사들을 보내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 마음을 잘 알았던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하고 조심스레 여쭙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의인 오십을 찾으면 용서하시겠다고 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고 의인 40인, 30인, 20인, 10인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겠냐고 여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돔 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살피러 온 천사들에게까지 해를 가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죄가 돌이킬 수 없는 한계에 달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성을 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으로 인해 염려할 것을 아시고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을 멸하실 것이라는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사위들은 소돔 성에 남아 있다가 죽었고,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돌아보았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기회를 주어 살리고자 하시지만 돌이키지 않고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2. 죄악이 가득 차서 돌이킬 수 없으니 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진멸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 오래도록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사백 년 동안이나 참으셨지요(창 15:13~16). 그런데도 그들은 돌이키지 않고 더 악을 쌓아갔습니다. 마침내 죄악이 가득 차서 돌이킬 가능성이 없으니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라 할지라도 돌이키면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에스겔 18장 21~22절에 잘 나타나 있지요.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말씀합니다.
그러면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을 남김없이 진멸하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행위를 따라 우상을 섬기고 사술을 행하며 음란하고 패역한 것을 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에서도 여리고 성에 살았던 라합과 그 친족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놀라운 일들을 전해 듣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였으며,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 주는 선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수 2장).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고 용서하실 뿐 아니라, 의로운 사람은 멸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시며,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만나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지요.
3.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어떠한 사랑과 용서를 베푸셨습니까?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의 수도였는데, 얼마나 부패했던지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였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멸하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요나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랐기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그러다가 대풍을 만나 파선할 위기에 놓이자 선원들이 누구 때문인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결국 요나가 뽑혔고 그는 바다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요나는 불순종을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용서하시고 물고기를 주관하여 육지에 토해내게 하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칩니다. 이는 그들의 죄악이 너무 커서 도저히 용서가 불가능한 상태임을 뜻합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은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멸하지 않으시지요. 이처럼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
4.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죄과를 옮기시는 하나님
어떤 이는 “왜 저런 악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지 않을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달라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원하십니다(딤전 2:4).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까닭에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다윗도 큰 죄를 범하고 나서 깨달은 즉시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도 우상 숭배와 악을 행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회개하였더니 다시 왕위를 회복시켜 주셨지요.
시편 103편 12절에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는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다’ 했습니다. 무조건 용서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시지요. 사람들은 상대의 허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죄를 미워할 뿐, 사람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누구든지 죄에서 돌이키면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양 일백 마리를 가진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을 때까지 두루 찾아다니지요. 애타게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쁜지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기자”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하기에 누가복음 15장 7절에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니 자녀 된 우리도 원수 맺는 일이나 미움 등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을 버리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화목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5. 사랑과 용서로 화목을 이루어야 응답
마태복음 5장 23~24절을 보면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였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돌이킨 후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축복하시지요.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내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이나 애매한 일을 당하여 원수 맺거나 미워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허물이나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셨으니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는 사랑을 베푸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입었기에 모두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해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아 미움, 시기, 판단, 정죄 등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서로 용서하며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넘쳐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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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왜 아모리 족속과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 )
2.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며 도저히 용서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람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 )
3. 요나는 자기 조국을 짓밟는 니느웨가 멸망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가서 그들을 회개시켜 구원에 이르도록 메시지를 전하라고 합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을 하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77~8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니느웨’란?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이다. 사방 둘레가 13km 대규모의 성읍으로,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 3일이나 걸렸다. 30미터가 넘는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였다. 맨 꼭대기 성벽 위로는 3대의 마차가 달릴 정도로 성벽이 두꺼웠다. 앗수르 사람들은 건축술, 호전적인 태도, 군사력과 악독하기로 유명했다. 특히 포로에게 잔인하기로 악명 높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의, 무절제, 우상 숭배, 잔인한 폭력성 등을 묵인하지 않고 심판하려 하시는데 그에 앞서 요나를 보내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이에 그들이 돌이킴으로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교육목표 : 어느 누구와도 원수 맺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도 멸하는 것을 즐거워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멸하시는 장면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악인을 멸하실 수밖에 없는 공의와 끊임없이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 어찌하든 용서하시려는 사랑의 하나님
창세기 18~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심히 극에 달한 도시였습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멸하시지 않고 마지막 최후까지 살릴 수 있는 증거를 찾고자 천사들을 보내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 마음을 잘 알았던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하고 조심스레 여쭙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의인 오십을 찾으면 용서하시겠다고 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고 의인 40인, 30인, 20인, 10인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겠냐고 여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돔 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살피러 온 천사들에게까지 해를 가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죄가 돌이킬 수 없는 한계에 달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성을 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으로 인해 염려할 것을 아시고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을 멸하실 것이라는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사위들은 소돔 성에 남아 있다가 죽었고,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돌아보았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기회를 주어 살리고자 하시지만 돌이키지 않고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2. 죄악이 가득 차서 돌이킬 수 없으니 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진멸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 오래도록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사백 년 동안이나 참으셨지요(창 15:13~16). 그런데도 그들은 돌이키지 않고 더 악을 쌓아갔습니다. 마침내 죄악이 가득 차서 돌이킬 가능성이 없으니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라 할지라도 돌이키면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에스겔 18장 21~22절에 잘 나타나 있지요.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말씀합니다.
그러면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을 남김없이 진멸하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행위를 따라 우상을 섬기고 사술을 행하며 음란하고 패역한 것을 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에서도 여리고 성에 살았던 라합과 그 친족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놀라운 일들을 전해 듣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였으며,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 주는 선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수 2장).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고 용서하실 뿐 아니라, 의로운 사람은 멸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시며,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만나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지요.
3.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어떠한 사랑과 용서를 베푸셨습니까?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의 수도였는데, 얼마나 부패했던지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였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멸하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요나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랐기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그러다가 대풍을 만나 파선할 위기에 놓이자 선원들이 누구 때문인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결국 요나가 뽑혔고 그는 바다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요나는 불순종을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용서하시고 물고기를 주관하여 육지에 토해내게 하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칩니다. 이는 그들의 죄악이 너무 커서 도저히 용서가 불가능한 상태임을 뜻합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은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멸하지 않으시지요. 이처럼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
4.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죄과를 옮기시는 하나님
어떤 이는 “왜 저런 악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지 않을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달라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원하십니다(딤전 2:4).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까닭에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다윗도 큰 죄를 범하고 나서 깨달은 즉시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도 우상 숭배와 악을 행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회개하였더니 다시 왕위를 회복시켜 주셨지요.
시편 103편 12절에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는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다’ 했습니다. 무조건 용서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시지요. 사람들은 상대의 허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죄를 미워할 뿐, 사람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누구든지 죄에서 돌이키면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양 일백 마리를 가진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을 때까지 두루 찾아다니지요. 애타게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쁜지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기자”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하기에 누가복음 15장 7절에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니 자녀 된 우리도 원수 맺는 일이나 미움 등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을 버리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화목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5. 사랑과 용서로 화목을 이루어야 응답
마태복음 5장 23~24절을 보면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였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돌이킨 후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축복하시지요.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내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이나 애매한 일을 당하여 원수 맺거나 미워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허물이나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셨으니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는 사랑을 베푸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입었기에 모두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해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아 미움, 시기, 판단, 정죄 등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서로 용서하며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넘쳐나시기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왜 아모리 족속과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 )
2.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며 도저히 용서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람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 )
3. 요나는 자기 조국을 짓밟는 니느웨가 멸망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가서 그들을 회개시켜 구원에 이르도록 메시지를 전하라고 합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을 하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77~8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니느웨’란?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이다. 사방 둘레가 13km 대규모의 성읍으로,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 3일이나 걸렸다. 30미터가 넘는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였다. 맨 꼭대기 성벽 위로는 3대의 마차가 달릴 정도로 성벽이 두꺼웠다. 앗수르 사람들은 건축술, 호전적인 태도, 군사력과 악독하기로 유명했다. 특히 포로에게 잔인하기로 악명 높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의, 무절제, 우상 숭배, 잔인한 폭력성 등을 묵인하지 않고 심판하려 하시는데 그에 앞서 요나를 보내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이에 그들이 돌이킴으로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2014-01-30
제5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대망의 새해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지난 한 해도 지키시고 풍성한 것들로 채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지난 한 해 동안도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_____________________ 사도신경 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_________________________ 458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_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__________________ 고린도후서 5:18~19 ___________________ 사회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설 교 ___________________________ 화 목 ________________________ 설교자
2. 설교 예문
가정에 싸움과 다툼이 없고 사랑이 넘친다면 항상 웃음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가족간에 화기애애하고 서로 사랑하니 안 보면 보고 싶고, 늘 함께하고 싶어지지요. 행복한 가정의 예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지요. 이유인즉슨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의 위로에 아내는 감격해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시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시어머니는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며느리를 감싸 주었지요.
가족들 중 어느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다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어떤 집은 화목을 중요시하여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것도 봅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기 때문입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말씀합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항상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 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지요. 야고보서 3장 5~6절에 보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의 말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습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한마디 말도 항상 심사숙고하여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지요. 오직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고, 격려하며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는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한 만큼 받지 못하면 서운해하고 삐칩니다. 자존심 강한 남편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내에게 져주기보다는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지요. 그러니 티격태격 싸우고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섬김’이란 겸손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에게 유익을 주고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아지는 것과 같지요.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고 그의 유익을 구해 줍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하지요.
이렇게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지요.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했습니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섬기면 화평할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더욱 하나 될 수 있지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주시고 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비진리, 악들을 행할 때는 하는 일마다 꼬이고 불통하는 것을 봅니다. 안 될 것은 당연히 안 되고, 될 일도 안 되지요.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장 4~5절에 보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말씀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과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또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냈지요.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다해 차례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신을 찾고 기도를 하였지요.
하나님은 살아 계신 참 신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여러분이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주기도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대망의 새해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지난 한 해도 지키시고 풍성한 것들로 채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지난 한 해 동안도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_____________________ 사도신경 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_________________________ 458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_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__________________ 고린도후서 5:18~19 ___________________ 사회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설 교 ___________________________ 화 목 ________________________ 설교자
2. 설교 예문
가정에 싸움과 다툼이 없고 사랑이 넘친다면 항상 웃음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가족간에 화기애애하고 서로 사랑하니 안 보면 보고 싶고, 늘 함께하고 싶어지지요. 행복한 가정의 예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지요. 이유인즉슨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의 위로에 아내는 감격해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시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시어머니는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며느리를 감싸 주었지요.
가족들 중 어느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다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어떤 집은 화목을 중요시하여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것도 봅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기 때문입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말씀합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항상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 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지요. 야고보서 3장 5~6절에 보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의 말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습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한마디 말도 항상 심사숙고하여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지요. 오직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고, 격려하며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는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한 만큼 받지 못하면 서운해하고 삐칩니다. 자존심 강한 남편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내에게 져주기보다는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지요. 그러니 티격태격 싸우고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섬김’이란 겸손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에게 유익을 주고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아지는 것과 같지요.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고 그의 유익을 구해 줍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하지요.
이렇게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지요.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했습니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섬기면 화평할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더욱 하나 될 수 있지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주시고 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비진리, 악들을 행할 때는 하는 일마다 꼬이고 불통하는 것을 봅니다. 안 될 것은 당연히 안 되고, 될 일도 안 되지요.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장 4~5절에 보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말씀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과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또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냈지요.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다해 차례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신을 찾고 기도를 하였지요.
하나님은 살아 계신 참 신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여러분이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주기도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