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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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3
제24과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마 5:10~12
읽을말씀 : 마 5:10~12 | 외울말씀 : 마 5:10 ㅣ 참고 말씀:딤후 3:12
교육목표 :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승리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핍박이란 ‘상대를 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인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핍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핍박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더 잘할 것 같지만 오히려 신앙이 나태해지고 미지근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역사를 보아도 믿음의 선진들이 의를 위해 핍박받고 순교할 때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기까지
로마제국 당시 수많은 성도가 주를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원형극장에서 사자밥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덤벼들어도 믿음 있는 성도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하며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로마 시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찬송하며 죽어 갈까?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기에 죽음도 불사하고 믿음을 지키는가?’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차츰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로마 황제의 어머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마침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이처럼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아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는 피 흘림이 있었기에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전 세계에 신속하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교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천국에서 큰 상으로 갚아 주시며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2.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받는 경우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적당히 신앙생활하면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고 주일을 지키고자 하니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핍박을 통해 자신의 신앙이 점검되고 더욱 견고해지기 때문에 진리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하면서 어떠한 경우에 핍박을 받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 일을 이루어 갈 때 시기 질투로 인해 핍박이 오기도 합니다.
누가 잘되는 것을 보면 시기가 일어나 왜곡하여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거나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해 보지도 않은 채 ‘정말 그런가?’ 하며 동조하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지요.
예전에 우리 교회도 크게 부흥하니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거짓 소문을 퍼뜨리며 훼방하였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교회를 몹시 핍박했지만 미워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지요. 끝까지 의를 지키고 선 가운데 행하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선한 방법으로 해결하시며 오히려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44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합니다. 그러니 믿음의 형제끼리 시기하고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미워하고 감정을 품는 것은 자신을 힘들게 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마음에 평안이 임하고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허락하신 핍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십니다. 가령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하기 위해 핍박을 허락하시기도 하지요. 핍박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한 꾀를 동원하여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정도를 좇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불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선한 지혜를 주시므로 세상의 악한 지혜를 이기고 오히려 더 크게 영광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런가 하면 큰그릇을 만들어 축복을 주시기 위해 핍박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의 시기 질투로 인해 곳곳으로 고달프게 피해 다니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요.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울 왕을 피해 다녔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큰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지요.
이 외에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 핍박을 허락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때 사도 외에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곳곳으로 피해 흩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널리 전파된 것을 볼 수 있지요.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당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이루며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뜻에 따라 허락하신 핍박을 잘 받으면 더 훌륭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크게 펼치는 것을 봅니다.
셋째로,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집안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식사 준비도 적당히 한다면 가족들이 싫어할 것입니다. 또 직장에 다니면서 교회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회사일은 소홀히 한다면 직장 상사나 동료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 다니면서도 덕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가락질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받지 않아도 될 핍박을 자초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왜 저러냐?” 하며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여 핍박받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3. 핍박을 이기고 축복을 받으려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을 받는 사람은 왜 핍박을 받는지 깨우쳐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잘못으로 핍박이 왔다면 당연히 부족한 부분을 고쳐 나가야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는데도 핍박이 온다면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한 다음에는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핍박을 받아 불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로 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끝까지 선으로 대할 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지요. 악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일을 이루는 과정에 이런저런 분야에서 핍박을 받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진리 가운데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자신을 심히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기도하며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라도 사랑하고 용서하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지요(눅 23:34). 우리도 선 가운데 용서하며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기 감정에 치우쳐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핍박 받는 일이 없도록 자기의 본분을 다하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핍박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통과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승리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핍박이란 ‘상대를 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인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핍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핍박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더 잘할 것 같지만 오히려 신앙이 나태해지고 미지근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역사를 보아도 믿음의 선진들이 의를 위해 핍박받고 순교할 때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기까지
로마제국 당시 수많은 성도가 주를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원형극장에서 사자밥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덤벼들어도 믿음 있는 성도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하며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로마 시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찬송하며 죽어 갈까?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기에 죽음도 불사하고 믿음을 지키는가?’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차츰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되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로마 황제의 어머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마침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이처럼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아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는 피 흘림이 있었기에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전 세계에 신속하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교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천국에서 큰 상으로 갚아 주시며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2.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받는 경우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적당히 신앙생활하면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고 주일을 지키고자 하니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핍박을 통해 자신의 신앙이 점검되고 더욱 견고해지기 때문에 진리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하면서 어떠한 경우에 핍박을 받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 일을 이루어 갈 때 시기 질투로 인해 핍박이 오기도 합니다.
누가 잘되는 것을 보면 시기가 일어나 왜곡하여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거나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해 보지도 않은 채 ‘정말 그런가?’ 하며 동조하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지요.
예전에 우리 교회도 크게 부흥하니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거짓 소문을 퍼뜨리며 훼방하였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교회를 몹시 핍박했지만 미워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지요. 끝까지 의를 지키고 선 가운데 행하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선한 방법으로 해결하시며 오히려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44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합니다. 그러니 믿음의 형제끼리 시기하고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미워하고 감정을 품는 것은 자신을 힘들게 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마음에 평안이 임하고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허락하신 핍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십니다. 가령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하기 위해 핍박을 허락하시기도 하지요. 핍박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한 꾀를 동원하여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정도를 좇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불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선한 지혜를 주시므로 세상의 악한 지혜를 이기고 오히려 더 크게 영광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런가 하면 큰그릇을 만들어 축복을 주시기 위해 핍박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의 시기 질투로 인해 곳곳으로 고달프게 피해 다니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요.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울 왕을 피해 다녔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큰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지요.
이 외에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 핍박을 허락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때 사도 외에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곳곳으로 피해 흩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널리 전파된 것을 볼 수 있지요.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당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이루며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뜻에 따라 허락하신 핍박을 잘 받으면 더 훌륭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크게 펼치는 것을 봅니다.
셋째로,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집안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식사 준비도 적당히 한다면 가족들이 싫어할 것입니다. 또 직장에 다니면서 교회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회사일은 소홀히 한다면 직장 상사나 동료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 다니면서도 덕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가락질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받지 않아도 될 핍박을 자초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왜 저러냐?” 하며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여 핍박받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3. 핍박을 이기고 축복을 받으려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을 받는 사람은 왜 핍박을 받는지 깨우쳐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잘못으로 핍박이 왔다면 당연히 부족한 부분을 고쳐 나가야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는데도 핍박이 온다면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한 다음에는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핍박을 받아 불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로 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끝까지 선으로 대할 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지요. 악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일을 이루는 과정에 이런저런 분야에서 핍박을 받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진리 가운데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자신을 심히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기도하며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라도 사랑하고 용서하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지요(눅 23:34). 우리도 선 가운데 용서하며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기 감정에 치우쳐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핍박 받는 일이 없도록 자기의 본분을 다하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핍박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통과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14-06-06
제23과당세에 완전한 자
창 6:5~12
읽을말씀 : 창 6:5~12 | 외울말씀 : 창 6:5 l 참고 말씀:벧전 2:1~2
교육목표 : 의인 노아처럼 믿음으로 세상의 헛된 욕심과 모든 죄악을 버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게 한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좋을 대로 살며 우상을 숭배하며 방탕한 삶으로 심히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며 사람의 가치와 본분을 잃어버렸지요.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당세에 완전한 자라 인정받은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 남았습니다. 과연 의인 노아는 어떠한 사람이었을까요?
1. 당세에 완전한 의인 노아
창세기 6장 5~6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말씀합니다. 이는 땅에 있는 모든 혈육 있는 사람의 행위가 패괴하였고 강포가 땅에 가득하였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패괴하다는 것은 부수어지고 무너짐, 즉 타락한 것을 말하고, 강포는 완강하고 포악한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패괴한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지요. 세상의 패괴와 강포가 한계를 넘어서면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시며 심판하십니다. 노아 때는 이 세상을 물로, 아브라함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셨지요. 앞으로는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알곡은 천국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노아 때 심판을 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세에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뿐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의인으로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기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지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들도 의인이어서 심판을 면했던 것일까요? 노아처럼 온전해서가 아니라 의인 노아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아의 가족이라 해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거나 세상을 사랑하여 갔다면 그들도 멸망에 이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했기에 구원의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떤 사람이 노아와 같은 의인일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해 보일 수 있으나 진실하게 법을 준수하고 정직하게 살며 모든 삶에 성실한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잠시잠깐 이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방탕하게 살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을 소유하였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내를 내 몸과 같이, 남편을 그리스도와 같이 섬기며, 주 안에서 자녀를 잘 양육하고 자녀로서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인이 되면 결국 노아같이 당세에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노아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여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설령 어려움을 당했다 해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피할 길을 열어 주시지요.
2. 의인을 지키며 구원하시는 하나님
성경에는 의로운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구원과 축복을 받은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범사에 형통하였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형통했지요. 오히려 합력해 선을 이룸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큰 지진을 일으켜 감옥 문을 여시고 착고도 풀어 주셨습니다.
이방인 고넬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제에 힘쓰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니 그와 가족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동일하게 환상을 보여 주고 성령의 역사로 서로 만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을 받아 구원에 이르도록 축복해 주셨지요.
하나님은 이렇게 의로운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오늘날도 노아 시대처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포하고 패괴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 모든 계획이 얼마나 악합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 사람과 다름 없는 행동을 합니다. 결코 지어서는 안 될 죄들을 짓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만들지요.
세상 풍조를 버리지 않으면 악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믿음의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피 흘리신 것도 죄인 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고 의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죄악이 가득 차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해도 우리는 의인이 되어 구원은 물론 영원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첫째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말씀했습니다.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고 깨닫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며 귀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선에 속하고 악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선에 속하려면 그와 반대되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악독한 것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바른 소리를 듣고 마음에 담아 심비에 새기고 믿음으로 행해야만 생명이 되고 승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각종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는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썩어지고 결국에는 무로 돌아가지만, 하나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의 떡을 떼며, 구제하고 서로 돌아보아 고아나 과부를 살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즉 외모를 단장하려 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도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했고, 디모데전서 6장 8절에도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먹는 것, 입는 것, 꾸미는 것 모든 것이 흠이 되지 않을 정도이면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각종 현란한 것들이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탐심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에 물들게 하여 사망의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말씀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온전하신 것처럼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거룩하고 온전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고 온전하면 하나님 성품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맺히지요. 성령의 열매가 맺힌 정도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는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의 헛된 욕심과 모든 죄악을 버림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의인이 되어 세세토록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둘째,( )
셋째,( )
2. 노아 때 홍수 심판을 면한 사람들은 누구였나요?
( )
3. 노아는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짓는 자신을 조롱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며 죄악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여러분은 금번 전도대회를 맞이하여 영혼들을 위해 얼마나 눈물 뿌려 기도하며 전도하고 있는지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65~7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노아의 방주 (창세기 6:14~16)
노아의 방주는 길이 150미터, 폭 25미터, 높이 15미터 정도의 거대한 규모로 지금부터 4,4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에덴동산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해 당시의 기술이나 지식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대로 설계되었기에 노아의 여덟 식구와 수많은 종류의 동물이 40일간의 홍수를 견뎌내고 1년 이상 방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방주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의인 노아처럼 믿음으로 세상의 헛된 욕심과 모든 죄악을 버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게 한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좋을 대로 살며 우상을 숭배하며 방탕한 삶으로 심히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며 사람의 가치와 본분을 잃어버렸지요.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당세에 완전한 자라 인정받은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 남았습니다. 과연 의인 노아는 어떠한 사람이었을까요?
1. 당세에 완전한 의인 노아
창세기 6장 5~6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말씀합니다. 이는 땅에 있는 모든 혈육 있는 사람의 행위가 패괴하였고 강포가 땅에 가득하였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패괴하다는 것은 부수어지고 무너짐, 즉 타락한 것을 말하고, 강포는 완강하고 포악한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패괴한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지요. 세상의 패괴와 강포가 한계를 넘어서면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시며 심판하십니다. 노아 때는 이 세상을 물로, 아브라함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셨지요. 앞으로는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알곡은 천국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노아 때 심판을 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세에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뿐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의인으로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기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지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들도 의인이어서 심판을 면했던 것일까요? 노아처럼 온전해서가 아니라 의인 노아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아의 가족이라 해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거나 세상을 사랑하여 갔다면 그들도 멸망에 이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했기에 구원의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떤 사람이 노아와 같은 의인일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해 보일 수 있으나 진실하게 법을 준수하고 정직하게 살며 모든 삶에 성실한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잠시잠깐 이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방탕하게 살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을 소유하였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내를 내 몸과 같이, 남편을 그리스도와 같이 섬기며, 주 안에서 자녀를 잘 양육하고 자녀로서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인이 되면 결국 노아같이 당세에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노아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여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설령 어려움을 당했다 해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피할 길을 열어 주시지요.
2. 의인을 지키며 구원하시는 하나님
성경에는 의로운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구원과 축복을 받은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범사에 형통하였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형통했지요. 오히려 합력해 선을 이룸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큰 지진을 일으켜 감옥 문을 여시고 착고도 풀어 주셨습니다.
이방인 고넬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제에 힘쓰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니 그와 가족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동일하게 환상을 보여 주고 성령의 역사로 서로 만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을 받아 구원에 이르도록 축복해 주셨지요.
하나님은 이렇게 의로운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오늘날도 노아 시대처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포하고 패괴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 모든 계획이 얼마나 악합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 사람과 다름 없는 행동을 합니다. 결코 지어서는 안 될 죄들을 짓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만들지요.
세상 풍조를 버리지 않으면 악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믿음의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피 흘리신 것도 죄인 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고 의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죄악이 가득 차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해도 우리는 의인이 되어 구원은 물론 영원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첫째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말씀했습니다.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고 깨닫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며 귀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선에 속하고 악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선에 속하려면 그와 반대되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악독한 것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바른 소리를 듣고 마음에 담아 심비에 새기고 믿음으로 행해야만 생명이 되고 승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각종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는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썩어지고 결국에는 무로 돌아가지만, 하나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의 떡을 떼며, 구제하고 서로 돌아보아 고아나 과부를 살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즉 외모를 단장하려 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도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했고, 디모데전서 6장 8절에도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먹는 것, 입는 것, 꾸미는 것 모든 것이 흠이 되지 않을 정도이면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각종 현란한 것들이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탐심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에 물들게 하여 사망의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말씀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온전하신 것처럼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거룩하고 온전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고 온전하면 하나님 성품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맺히지요. 성령의 열매가 맺힌 정도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는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의 헛된 욕심과 모든 죄악을 버림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의인이 되어 세세토록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둘째,( )
셋째,( )
2. 노아 때 홍수 심판을 면한 사람들은 누구였나요?
( )
3. 노아는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짓는 자신을 조롱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며 죄악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여러분은 금번 전도대회를 맞이하여 영혼들을 위해 얼마나 눈물 뿌려 기도하며 전도하고 있는지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65~7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노아의 방주 (창세기 6:14~16)
노아의 방주는 길이 150미터, 폭 25미터, 높이 15미터 정도의 거대한 규모로 지금부터 4,4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에덴동산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해 당시의 기술이나 지식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대로 설계되었기에 노아의 여덟 식구와 수많은 종류의 동물이 40일간의 홍수를 견뎌내고 1년 이상 방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방주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의미한다.
2014-05-30
제22과요동하지 말라
삿 9:7~15
읽을말씀 : 삿 9:7~15 | 외울말씀 : 잠언 4:27 ㅣ 참고 말씀:엡 6:5~7
교육목표 : 오직 믿음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자기 분수와 위치를 지키며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약방의 감초는 뿌리에 단맛이 있어서 다른 한약재와 달리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단맛이 비위를 돕고 다른 약재의 작용을 부드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초라도 환자의 증상에 따라 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감초는 체내에 염분과 수분을 축적시켜서 고혈압이나 심장병에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이처럼 흔히 사용하는 한약재 중에도 들어가야 할 곳과 들어가서는 안 될 곳이 있습니다. 들어가야 할 곳에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얻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부작용이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요동하지 않은 나무들과 가시나무의 비유
사사기 9장에는 기드온의 아들 요담이 세겜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왜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의 비유를 들어 외치고 있는지 먼저 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미디안 족속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3백 명의 군사로 수많은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쳐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자신들을 다스려 줄 것을 요청합니다.
기드온은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며 거절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은 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는 욕심으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아비멜렉은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 사람들을 회유하여 자금을 마련한 후 그 돈으로 불량한 사람들을 모아 아버지의 아들들, 곧 자신의 이복형제 칠십 명을 한꺼번에 몰살하였습니다. 다행히 막내아들 요담만 몰래 숨어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등에 업고 왕이 되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요담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세겜 남쪽에 있는 그리심 산꼭대기로 올라가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가시나무를 비유하여 세겜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나무들이 그들의 왕을 뽑으려고 할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요동하지 않고 전부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였지만, 아무 쓸모없는 가시나무만 자기 분수도 모른 채 교만하여 왕이 되고자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곧 기드온과 그의 아들들은 백성의 요청에도 왕위를 탐내지 않았지만 오히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악한 방법으로 왕이 된 것을 비유한 것이지요. 물론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의 보응이 임하여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은 도리어 아비멜렉의 손에 진멸되었고, 아비멜렉 역시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아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데 이에서 벗어나니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2. 각자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일과 도리가 있습니다.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길을 말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나이 어린 사람은 웃어른을 공경하는 등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 길을 갈 때 도리를 좇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해야 할 도리가 있고 남편 혹은 아내로서의 도리가 있습니다. 또한 주의 종으로서 도리가 있고, 양 떼로서의 도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의 종이라면 성도들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전히 진리 안에 살도록 깨우쳐 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범사에 천국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양 떼 편에서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변화되어 의롭고 정결한 사람이 되며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이 도리이지요.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진리 안에서 바르게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 역시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머리로 섬기며 가정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고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해야 하지요.
상하 관계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도리일까요? 에베소서 6장 5~7절을 보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윗사람의 도리도 알려 주셨지요.
골로새서 4장 1절에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도리가 있으며 참된 의인이 되려면 자신의 도리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3. 요동하지 않는 신앙생활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지체 중에 어떤 것은 소중하고 어떤 것은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각자 위치에서 다 소중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줄 알아 서로 소중히 여기며 결코 상대를 힘들게 하거나 미워하며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명을 잘 감당할 때,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고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본분을 소중히 여길뿐더러 서로 귀히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보기에는 저것이 좋으니 나는 저것을 하리라.” 하고 자기 일을 그만 둔다면 어찌 하나님 앞에 합당하겠습니까.
앞서 언급한 감람나무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왕이 되는 것을 마다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했고, 포도나무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면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왕이 되라는 요청에 쉽게 요동하였지요.
이처럼 자신의 분수와 위치를 알고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 안에서는 모든 분야가 소중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각자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감당했느냐에 따라 행한 대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요동하는 가시나무의 교훈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요동하지 않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신앙생활을 하면서 요동하지 말아야 할 분야들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어떤 시험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곧장 그 길을 가므로 원수 마귀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고 항상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도 습관을 좇아 기도함으로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무릎을 꿇고 습관을 좇아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 달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지요.
사랑함에 있어서도 요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을 끝까지 변치 말고 사랑하며, 그 사랑이 더욱 승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 목자를 사랑하는 마음, 믿음의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사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변함 없어야 합니다.
이 외에 충성 봉사하는 것, 전도하는 것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복된 삶을 살게 해 준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흐뭇해하시겠습니까? 그러니 마음과 뜻을 다해 충성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말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여 아름다운 열매 맺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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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요동하여 자기 형제를 죽이고 악한 방법으로 왕 위에 오른 아비멜렉을 요담은 무엇에 비유하고 있나요? ( )
2.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왜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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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9: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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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혹여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함으로 상대에게 해를 끼치거나 분수에 지나 치게 행동하여 남을 어렵게 하는 일은 없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55~6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기드온’
이스라엘 다섯 번째 사사인 기드온은 ‘베는 자’, ‘자르는 자’를 뜻하며, 므낫세 지파 요아스의 마지막 아들이다. 후에 바알 신상을 훼파하여 ‘ 바알과 다툰다’라는 뜻의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얻는다.
그는 농장과 과수원을 가진 순수한 농부였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곳도 타작마당이었다. 기드온은 3만 2천 명 중에서 3백 명을 선발하여 항아리와 횃불을 이용해 미디안 족속을 격파하고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태평을 누리게 했다(삿 8:28).
교육목표 : 오직 믿음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자기 분수와 위치를 지키며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약방의 감초는 뿌리에 단맛이 있어서 다른 한약재와 달리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단맛이 비위를 돕고 다른 약재의 작용을 부드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초라도 환자의 증상에 따라 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감초는 체내에 염분과 수분을 축적시켜서 고혈압이나 심장병에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이처럼 흔히 사용하는 한약재 중에도 들어가야 할 곳과 들어가서는 안 될 곳이 있습니다. 들어가야 할 곳에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얻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부작용이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요동하지 않은 나무들과 가시나무의 비유
사사기 9장에는 기드온의 아들 요담이 세겜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왜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의 비유를 들어 외치고 있는지 먼저 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미디안 족속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3백 명의 군사로 수많은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쳐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자신들을 다스려 줄 것을 요청합니다.
기드온은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며 거절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은 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는 욕심으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아비멜렉은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 사람들을 회유하여 자금을 마련한 후 그 돈으로 불량한 사람들을 모아 아버지의 아들들, 곧 자신의 이복형제 칠십 명을 한꺼번에 몰살하였습니다. 다행히 막내아들 요담만 몰래 숨어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등에 업고 왕이 되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요담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세겜 남쪽에 있는 그리심 산꼭대기로 올라가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가시나무를 비유하여 세겜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나무들이 그들의 왕을 뽑으려고 할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요동하지 않고 전부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였지만, 아무 쓸모없는 가시나무만 자기 분수도 모른 채 교만하여 왕이 되고자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곧 기드온과 그의 아들들은 백성의 요청에도 왕위를 탐내지 않았지만 오히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악한 방법으로 왕이 된 것을 비유한 것이지요. 물론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의 보응이 임하여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은 도리어 아비멜렉의 손에 진멸되었고, 아비멜렉 역시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아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데 이에서 벗어나니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2. 각자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일과 도리가 있습니다.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길을 말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나이 어린 사람은 웃어른을 공경하는 등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 길을 갈 때 도리를 좇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해야 할 도리가 있고 남편 혹은 아내로서의 도리가 있습니다. 또한 주의 종으로서 도리가 있고, 양 떼로서의 도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의 종이라면 성도들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전히 진리 안에 살도록 깨우쳐 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범사에 천국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양 떼 편에서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변화되어 의롭고 정결한 사람이 되며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이 도리이지요.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진리 안에서 바르게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 역시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머리로 섬기며 가정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고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해야 하지요.
상하 관계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도리일까요? 에베소서 6장 5~7절을 보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윗사람의 도리도 알려 주셨지요.
골로새서 4장 1절에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도리가 있으며 참된 의인이 되려면 자신의 도리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3. 요동하지 않는 신앙생활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지체 중에 어떤 것은 소중하고 어떤 것은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각자 위치에서 다 소중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줄 알아 서로 소중히 여기며 결코 상대를 힘들게 하거나 미워하며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명을 잘 감당할 때,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고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본분을 소중히 여길뿐더러 서로 귀히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보기에는 저것이 좋으니 나는 저것을 하리라.” 하고 자기 일을 그만 둔다면 어찌 하나님 앞에 합당하겠습니까.
앞서 언급한 감람나무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왕이 되는 것을 마다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했고, 포도나무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면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왕이 되라는 요청에 쉽게 요동하였지요.
이처럼 자신의 분수와 위치를 알고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 안에서는 모든 분야가 소중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각자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감당했느냐에 따라 행한 대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요동하는 가시나무의 교훈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요동하지 않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신앙생활을 하면서 요동하지 말아야 할 분야들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어떤 시험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곧장 그 길을 가므로 원수 마귀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고 항상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도 습관을 좇아 기도함으로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무릎을 꿇고 습관을 좇아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 달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지요.
사랑함에 있어서도 요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을 끝까지 변치 말고 사랑하며, 그 사랑이 더욱 승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 목자를 사랑하는 마음, 믿음의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사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변함 없어야 합니다.
이 외에 충성 봉사하는 것, 전도하는 것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복된 삶을 살게 해 준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흐뭇해하시겠습니까? 그러니 마음과 뜻을 다해 충성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말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여 아름다운 열매 맺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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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요동하여 자기 형제를 죽이고 악한 방법으로 왕 위에 오른 아비멜렉을 요담은 무엇에 비유하고 있나요? ( )
2.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왜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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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9: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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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혹여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함으로 상대에게 해를 끼치거나 분수에 지나 치게 행동하여 남을 어렵게 하는 일은 없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55~6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기드온’
이스라엘 다섯 번째 사사인 기드온은 ‘베는 자’, ‘자르는 자’를 뜻하며, 므낫세 지파 요아스의 마지막 아들이다. 후에 바알 신상을 훼파하여 ‘ 바알과 다툰다’라는 뜻의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얻는다.
그는 농장과 과수원을 가진 순수한 농부였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곳도 타작마당이었다. 기드온은 3만 2천 명 중에서 3백 명을 선발하여 항아리와 횃불을 이용해 미디안 족속을 격파하고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태평을 누리게 했다(삿 8:28).
2014-05-23
제21과순 종
삼상 15:22~23
읽을말씀 : 삼상 15:22~23 | 외울말씀 : 삼상 15:22 ㅣ 참고 말씀:롬 10:10, 8:7~8
교육목표 : 믿음을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기쁨으로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끌어내리는 힘이 바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은 마지못해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명령을 기쁨으로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순종하는 차원이 되면 사람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행하게 되고 어떠한 환경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참된 의인은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 순종은 의인이 되기 위한 관문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는데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람이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의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마음을 할례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버리라’, ‘하지 말라’ 말씀하신 것은 버리고 하지 않으며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을 지켜 행하니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의에 이르는 것이지요. 즉 성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믿는 사람이 입술로 시인할 때 그것이 참이 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도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했습니다.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때라야 의인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미워하지 말라’ 하셨으니 미움을 버리고, ‘시기하지 말라’ 하셨으니 시기하지 않으며,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원수도 사랑하며 하나님 말씀을 행함으로 순종하는 만큼 의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으로 믿어 순종이 온전히 이루어질수록 참된 의인의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2. 질서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때 축복
세상에는 주종 관계나 조직 사회와 같이 순종이 잘 이루어져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질서 안에서 얼마나 순종이 잘 되느냐에 따라 결과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부모는 자녀를 주 안에서 올바르고 지혜롭게 잘 자라도록 가르쳐야 하고, 자녀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여 빗나가지 않아야 하지요. 만일 자녀가 부모님 말씀도 듣지 않고 늘 사고만 친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 가정은 불행과 슬픔,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자녀가 주 안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사회에서도 귀히 쓰임을 받는다면 부모는 더할 나위없이 기쁠 것입니다.
사제지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깍듯이 스승을 존중하며 배운 것을 바로 깨우치고, 잘 양식 삼아 활용하며 타의 모범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회사 사장 역시 잘 순종하며, 성실하고 진실하며 지혜로워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는 유능한 직원을 좋아하지요.
이처럼 질서를 좇아 순종할 때 모든 것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데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이 좋아하는 비진리를 좇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 나가는 모습을 보실 때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였을 때,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기쁘게 순종하는 아브라함이 무척 사랑스러우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반면 사울 왕처럼 불순종을 거듭하여 하나님께 싫어버린 바 된 사람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그는 자기 생각 가운데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도 불순종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아말렉의 아각 왕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고, 기름진 양과 소는 남기고 가치 없고 천한 것만 멸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으로 인해 사울 왕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 받아 왕위가 다윗에게 넘어가고 말지요.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며 사울 왕을 엄히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상 15:22~23).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자기의 생각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과는 반대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낮아져라 그러면 높아진다, 죽어져라 그러면 산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어 줘라 등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 생각과는 너무나 맞지 않지요.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즉 내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마음도 맞춰 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따라서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자신의 생각에 맞추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4. 순종하는 의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집안에 큰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아이구, 내 집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가나?’ 하고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 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작정했으니 가자.’ 하고 순종하면 그 뒷일은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룰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자기 생각이 앞서게 되면 불순종이 나올뿐더러 부부나 가족,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은 하나님 마음을 어찌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로마서 8장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지만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므로 순종치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오직 순종함으로 의인이 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지요.
사르밧 과부의 경우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가뭄이 매우 심하여 한 번 먹을 양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것으로 자기를 위해 떡 한 조각을 만들어 오라고 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합니다(왕상 17:14). 엘리야의 요청은 보통 사람이 순종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르밧 과부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엘리야가 약속한 대로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양식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순종의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적인 생각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참된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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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보세요.
“여호와께서 ( )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 )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 )이 제사보다 낫고 ( ) 것이 수양의 기름 보다 나으니”(삼상 15:22)
2. 마지막 양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공궤하여 가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축복받았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 )
3.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모든 소유물을 진멸하라 하셨는데도 불순종하여 아말렉 왕과 보기에 좋은 짐승을 살려서 끌어온 왕은 누구일까요? ( )
4. 야고보서 2장 22절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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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41~5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 순종의 네 가지 유형>
첫 번째 : 징계가 두려워 명령에 억지로 순종한다.
두 번째 :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한다.
지시나 명령이 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한다.
세 번째 : 무조건 순종한다.
자신이 할 수 있나 없나, 자기 생각에 맞나 틀리나를 따지지 않으며 자기 의사 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네 번째 : 명령하시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한다.
순종할 때 이루어질 일의 결과도 대략 마음에 그려진다.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교육목표 : 믿음을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기쁨으로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끌어내리는 힘이 바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은 마지못해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명령을 기쁨으로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순종하는 차원이 되면 사람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행하게 되고 어떠한 환경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참된 의인은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 순종은 의인이 되기 위한 관문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는데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람이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의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마음을 할례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버리라’, ‘하지 말라’ 말씀하신 것은 버리고 하지 않으며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을 지켜 행하니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의에 이르는 것이지요. 즉 성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믿는 사람이 입술로 시인할 때 그것이 참이 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도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했습니다.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때라야 의인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미워하지 말라’ 하셨으니 미움을 버리고, ‘시기하지 말라’ 하셨으니 시기하지 않으며,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원수도 사랑하며 하나님 말씀을 행함으로 순종하는 만큼 의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으로 믿어 순종이 온전히 이루어질수록 참된 의인의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2. 질서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때 축복
세상에는 주종 관계나 조직 사회와 같이 순종이 잘 이루어져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질서 안에서 얼마나 순종이 잘 되느냐에 따라 결과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부모는 자녀를 주 안에서 올바르고 지혜롭게 잘 자라도록 가르쳐야 하고, 자녀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여 빗나가지 않아야 하지요. 만일 자녀가 부모님 말씀도 듣지 않고 늘 사고만 친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 가정은 불행과 슬픔,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자녀가 주 안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사회에서도 귀히 쓰임을 받는다면 부모는 더할 나위없이 기쁠 것입니다.
사제지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깍듯이 스승을 존중하며 배운 것을 바로 깨우치고, 잘 양식 삼아 활용하며 타의 모범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회사 사장 역시 잘 순종하며, 성실하고 진실하며 지혜로워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는 유능한 직원을 좋아하지요.
이처럼 질서를 좇아 순종할 때 모든 것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데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이 좋아하는 비진리를 좇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 나가는 모습을 보실 때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였을 때,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기쁘게 순종하는 아브라함이 무척 사랑스러우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반면 사울 왕처럼 불순종을 거듭하여 하나님께 싫어버린 바 된 사람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그는 자기 생각 가운데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도 불순종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아말렉의 아각 왕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고, 기름진 양과 소는 남기고 가치 없고 천한 것만 멸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으로 인해 사울 왕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 받아 왕위가 다윗에게 넘어가고 말지요.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며 사울 왕을 엄히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상 15:22~23).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자기의 생각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과는 반대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낮아져라 그러면 높아진다, 죽어져라 그러면 산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어 줘라 등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 생각과는 너무나 맞지 않지요.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즉 내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마음도 맞춰 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따라서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자신의 생각에 맞추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4. 순종하는 의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집안에 큰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아이구, 내 집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가나?’ 하고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 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작정했으니 가자.’ 하고 순종하면 그 뒷일은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룰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자기 생각이 앞서게 되면 불순종이 나올뿐더러 부부나 가족,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은 하나님 마음을 어찌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로마서 8장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지만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므로 순종치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오직 순종함으로 의인이 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지요.
사르밧 과부의 경우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가뭄이 매우 심하여 한 번 먹을 양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것으로 자기를 위해 떡 한 조각을 만들어 오라고 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합니다(왕상 17:14). 엘리야의 요청은 보통 사람이 순종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르밧 과부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엘리야가 약속한 대로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양식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순종의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적인 생각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참된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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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보세요.
“여호와께서 ( )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 )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 )이 제사보다 낫고 ( ) 것이 수양의 기름 보다 나으니”(삼상 15:22)
2. 마지막 양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공궤하여 가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축복받았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 )
3.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모든 소유물을 진멸하라 하셨는데도 불순종하여 아말렉 왕과 보기에 좋은 짐승을 살려서 끌어온 왕은 누구일까요? ( )
4. 야고보서 2장 22절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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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41~5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 순종의 네 가지 유형>
첫 번째 : 징계가 두려워 명령에 억지로 순종한다.
두 번째 :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한다.
지시나 명령이 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한다.
세 번째 : 무조건 순종한다.
자신이 할 수 있나 없나, 자기 생각에 맞나 틀리나를 따지지 않으며 자기 의사 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네 번째 : 명령하시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한다.
순종할 때 이루어질 일의 결과도 대략 마음에 그려진다.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2014-05-16
제20과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창 22:1~13
읽을말씀 : 창 22:1~13 | 외울말씀 : 히 11:19 l 참고 말씀:에 4:16
교육목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현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상대를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눈빛이나 몸짓만 보아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설령 이해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해도 오해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불신하는 경우는 친한 것 같아도 사소한 일로도 감정이 쉽게 상하고 결국 갈라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자녀와의 관계도 얼마나 진실함으로 신뢰를 쌓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1. 자신의 생명도 내어줄 수 있는 신뢰 관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남에게 무엇을 부탁해야 할 때도 있고, 부탁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만일 그 일이 악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니 결코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달리 선한 일을 부탁받았을 때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도 아끼지 않고 도와주며 해결해 준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 인물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유다인으로서 페르시아 왕후가 된 에스더에게 사촌 모르드개가 부탁을 합니다. 악한 하만이 자기 민족(유다)을 말살하려고 하니 왕에게 나가 간청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선뜻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왕 앞에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30일이나 되었고, 누구든지 왕이 부르기 전에 나가면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다시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하며 왕 앞에 나가기를 권면합니다.
이에 에스더는 삼일 금식을 하고 민족을 살리고자 죽을 각오로 왕 앞에 나가 결국 멸절 위기의 민족을 구했습니다. 에스더가 선 가운데 자기 유익이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 주었기에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으며 그 결과도 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신뢰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야 합니다. 모르드개는 부모 없는 에스더를 딸처럼 양육했고, 에스더 역시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신뢰했기에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는 부탁까지 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던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중심을 소유한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더 온전케 하시기 위해 시험을 하십니다. 그 과정을 보면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돈독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십니다. 목적지를 알려 주지 않고 앞으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만 명하시지요. 아브라함은 갈 바를 몰랐지만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어떤 이유도 대지 않고 지시하신 땅으로 떠났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보니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은 의심없이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신 약속이 무색하리만큼 그 땅에 심한 기근이 들어 이주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묵묵히 믿음으로 그때를 기다렸습니다.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왔건만 설상가상으로 애굽 왕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했을 법도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애굽 왕에게 큰 재앙을 내려 사라를 즉시 돌려보내고 육축과 노비와 은 천 개를 주며, 아브라함에게 좋은 땅을 골라 거하도록 선처를 베풀게 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 행하는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3.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어드린 아브라함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니 함께한 조카 롯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의 가축이 어찌나 많았던지 목초지와 물을 얻기 위해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지요. 이에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줍니다. 그 후에도 롯이 포로로 잡혀가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롯을 구해 오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양육한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고자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며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처럼 네 자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미 자신이나 아내가 나이 많아 자식을 낳을 수 없지만 결코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기뻐하시며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10년이 되도록 후사가 생기지 않자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자녀를 얻도록 요구한 결과 하갈과 사이에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이 99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 해에 아들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약속의 씨인 이삭을 100세에 얻었습니다. 어느 날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요구하지요.
이에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므로 너무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라의 말대로 하라 하시며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정과 욕심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면 오직 순종했던 것입니다.
4.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명령이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히 11:19).
아브라함은 바로 순종하여 아침 일찍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산으로 갔습니다. 모든 번제 준비를 마치고 이삭을 결박하여 칼로 내리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다급히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는 것이었지요.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이때를 기다리고 대답한 건 아닐까?”라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데 결코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멈추라고 하시지는 않을까?”라는 생각 자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에 순종하여 칼로 내리치려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을 내보임으로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며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경외함을 온전히 인정해 주셨습니다.
예지예정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시험을 통과할지도 다 아셨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시험하신 것은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송사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원수 마귀 사단 앞에서도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아브라함의 신앙이 분명히 증명되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인이 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며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모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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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상관이 없는 것을 고르시오.
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갔다.
②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유다 민족을 구했다.
③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대로 순종했다.
④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냈다.
2.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어떠한 마음으로 순종하였을까요? (히브리서 11:19)
( )
3. 사라가 하나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함으로 훗날 큰 풍파를 일으키게 된 일은 무엇이었나요?
( )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33~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의인(義人)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된다. 이처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으면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의인이 되려면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죄를 버리는 것은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교육목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현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상대를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눈빛이나 몸짓만 보아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설령 이해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해도 오해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불신하는 경우는 친한 것 같아도 사소한 일로도 감정이 쉽게 상하고 결국 갈라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자녀와의 관계도 얼마나 진실함으로 신뢰를 쌓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1. 자신의 생명도 내어줄 수 있는 신뢰 관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남에게 무엇을 부탁해야 할 때도 있고, 부탁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만일 그 일이 악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니 결코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달리 선한 일을 부탁받았을 때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도 아끼지 않고 도와주며 해결해 준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 인물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유다인으로서 페르시아 왕후가 된 에스더에게 사촌 모르드개가 부탁을 합니다. 악한 하만이 자기 민족(유다)을 말살하려고 하니 왕에게 나가 간청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선뜻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왕 앞에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30일이나 되었고, 누구든지 왕이 부르기 전에 나가면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다시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하며 왕 앞에 나가기를 권면합니다.
이에 에스더는 삼일 금식을 하고 민족을 살리고자 죽을 각오로 왕 앞에 나가 결국 멸절 위기의 민족을 구했습니다. 에스더가 선 가운데 자기 유익이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 주었기에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으며 그 결과도 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신뢰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야 합니다. 모르드개는 부모 없는 에스더를 딸처럼 양육했고, 에스더 역시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신뢰했기에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는 부탁까지 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던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중심을 소유한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더 온전케 하시기 위해 시험을 하십니다. 그 과정을 보면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돈독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십니다. 목적지를 알려 주지 않고 앞으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만 명하시지요. 아브라함은 갈 바를 몰랐지만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어떤 이유도 대지 않고 지시하신 땅으로 떠났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보니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은 의심없이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신 약속이 무색하리만큼 그 땅에 심한 기근이 들어 이주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묵묵히 믿음으로 그때를 기다렸습니다.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왔건만 설상가상으로 애굽 왕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했을 법도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애굽 왕에게 큰 재앙을 내려 사라를 즉시 돌려보내고 육축과 노비와 은 천 개를 주며, 아브라함에게 좋은 땅을 골라 거하도록 선처를 베풀게 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 행하는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3.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어드린 아브라함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니 함께한 조카 롯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의 가축이 어찌나 많았던지 목초지와 물을 얻기 위해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지요. 이에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줍니다. 그 후에도 롯이 포로로 잡혀가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롯을 구해 오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양육한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고자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며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처럼 네 자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미 자신이나 아내가 나이 많아 자식을 낳을 수 없지만 결코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기뻐하시며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10년이 되도록 후사가 생기지 않자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자녀를 얻도록 요구한 결과 하갈과 사이에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이 99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 해에 아들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약속의 씨인 이삭을 100세에 얻었습니다. 어느 날 사라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요구하지요.
이에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므로 너무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라의 말대로 하라 하시며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정과 욕심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면 오직 순종했던 것입니다.
4.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명령이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히 11:19).
아브라함은 바로 순종하여 아침 일찍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산으로 갔습니다. 모든 번제 준비를 마치고 이삭을 결박하여 칼로 내리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다급히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는 것이었지요.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이때를 기다리고 대답한 건 아닐까?”라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데 결코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멈추라고 하시지는 않을까?”라는 생각 자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에 순종하여 칼로 내리치려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을 내보임으로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며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경외함을 온전히 인정해 주셨습니다.
예지예정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시험을 통과할지도 다 아셨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시험하신 것은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송사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원수 마귀 사단 앞에서도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아브라함의 신앙이 분명히 증명되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인이 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며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모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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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상관이 없는 것을 고르시오.
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갔다.
②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유다 민족을 구했다.
③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대로 순종했다.
④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냈다.
2.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어떠한 마음으로 순종하였을까요? (히브리서 11:19)
( )
3. 사라가 하나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함으로 훗날 큰 풍파를 일으키게 된 일은 무엇이었나요?
( )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33~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의인(義人)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된다. 이처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으면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의인이 되려면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죄를 버리는 것은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2014-05-09
제19과지혜롭게 살자
약 3:17~18
읽을말씀 : 약 3:17~18 | 외울말씀 : 눅 6:45 ㅣ 참고 말씀:잠 3:14~18, 11:30
교육목표 :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음으로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기에 전문가나 지혜로운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여 답을 얻고자 하지요. 개인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데, 하물며 크고 작은 단체의 지도자라면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선한 지혜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할 수 있습니다.
1. 지혜의 귀중성
사전에는 지혜를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시비와 선악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혜는 쌓은 지식을 활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뇌세포에는 기억장치가 있어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억하는 역할을 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보고 들은 것이 없기에 기억장치에 아무런 지식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자라면서 부모나 형제, 선생님,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지식을 쌓아가지요.
이러한 지식을 잘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즉 지식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대인 관계나 사리 분별,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나지요. 반면 지혜가 부족하면 잘 될 수 있는 일도 그르치고 어렵게 만듭니다. 따라서 지혜는 개인뿐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 나라에서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지혜의 유무에 따라 사람의 생사가 달리기도 하고, 나라의 존폐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 3장 14~18절에 보면 지혜의 귀중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시지요.
2. 선의 지혜와 악의 지혜
지혜라고 해서 모두가 선한 것만은 아닙니다. 선한 사람의 마음에서는 선한 지혜가 나오고, 악한 사람의 마음에서는 악한 지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선한 지혜가 있으면 나라가 태평성대하고 가정이 화목하며 사람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반면 악한 지혜는 자기 유익을 구하고 궤계를 부리므로 결국 일이 허사로 돌아가거나 망하며 죽음을 면치 못하지요.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할 때 그는 자기 유익을 좇아 다윗을 배신하고 말지요. 오랫동안 다윗의 수족으로 함께했기에 다윗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다윗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방법도 눈에 환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에게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지금 다윗을 기습하면 분명 승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다윗의 충신 후새의 모략을 채택하지요. 아히도벨의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악인의 지혜를 파하시니 압살롬이 그의 모략을 채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후새는 다윗의 명을 받아 압살롬을 지지하는 척 하면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깨고 자신의 모략을 받아들이게 함으로 큰 공을 세우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의 손을 들어 주시니 악한 자가 아무리 뛰어난 모략을 베푼다 할지라도 허사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삼하 17:14). 아히도벨은 자신의 모략이 파해지자 압살롬의 패망을 직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지요. 결국 압살롬은 참패를 당하고 요압 장군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이와는 달리 선한 지혜가 있었던 기생 라합은 어떻습니까?
라합은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온 두 정탐꾼이 위험에 처했을 때 자기 집에 숨기며 도와주지요. 라합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크고 놀라운 권능을 듣고 믿었기에 정탐꾼들을 도울 수 있는 선한 지혜를 베풀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에 그녀와 함께한 모든 가족이 구원을 받았지요. 이처럼 선한 지혜를 좇으면 생명을 구원하고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선의 지혜로 하셨습니다. 상대를 찌르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쳐 변화될 수 있도록 이끄셨지요. 악한 사람은 악한 지혜가 나오기 때문에 상대를 찌르고 무안하게 하며 무시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시험하려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더는 시험하지 못하도록 깨우쳐 주셨습니다(요 8장). 이것이 선 속에서 나오는 지혜인 것입니다.
솔로몬 역시 하나님의 지혜로 판결의 진수를 보여준 유명한 재판 일화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가 어미라고 주장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았는데 그만 한 여인이 실수로 아기를 깔고 자므로 죽고 말지요. 그녀는 다른 여인이 자고 있는 사이 자신의 죽은 아기와 바꿔 놓습니다. 잠에서 깬 여인은 깜짝 놀라 아기를 보니 자신의 아기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다투고 있는 여인들을 향해 솔로몬은 섬뜩한 제안을 합니다. 아기를 칼로 나눠서 반씩 가지라는 것이었지요. 친어머니라면 아기를 그냥 죽게 놔 두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진짜 어미는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 제발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로써 진짜와 가짜가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선한 지혜가 있으면 사람들의 억울함과 누명을 벗겨 주고, 악한 자들의 간계를 무너뜨려 선이 악을 이기게 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혜에 두려워 떨며 굴복하게 만들지요.
3. 선한 지혜를 받으려면
마음에 악이 없고 성결하면 선한 방법론이 나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눅 6:45) 하신 대로 선한 마음에서는 선한 생각이 나오기 때문에 방법론 역시 선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일이 얽히고설켰을 때 생각을 짜내어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봅니다. 하지만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방법론은 반드시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되었을 때라야 선한 지혜가 나옵니다. 마음에 악이 없으면 선한 생각과 말을 하고 행동 역시 선합니다. 이러한 말과 행동, 생각이 지혜와 겸비되어 합력해서 선을 이루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큰 해를 끼친 악한 사람이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이때 마음에 악이 있는 사람은 그를 몹쓸 사람이라고 욕하며 문전박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악이 없는 선한 사람은 죄는 밉지만 그 사람이 불쌍해서 어찌하든 돌이킬 수 있도록 사랑으로 권면합니다. 그를 찌르고 윽박지르기보다는 그가 변화되어 새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한 지혜를 베풀지요.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어려운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 계속해서 몰아붙이며 악을 지적하면 더욱 악을 발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악이 발동하지 않도록 선한 말과 행함으로 그를 감동시키고 깨우침을 주는 선한 지혜가 필요하지요.
야고보서 3장 17~18절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성결한 마음을 이루면 하늘로부터 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결한 마음이 되면 지혜를 받는 방법론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더 차원이 높은 지혜도 배우고 활용해 갈 수 있어야 하지요. 가령, ‘1+1=2’라는 것을 배워서 안다면 다음에 그러한 문제가 나오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2’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곱하기와 나누기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분야를 배워야 다른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의 지혜를 배워 삶에 적용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각 사건들에 대한 지혜를 잘 배워서 양식 삼으면 비슷한 일이 닥쳤을 때 성령께서 떠올려 주심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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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어 보세요.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 )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 )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 )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 )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18)
2. 누가복음 6장 45절 말씀을 외워서 쓸 수 있나요?
( )
3. 지혜가 부족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성경 어디에 나올까요?
① 야고보서 1:12 ② 야고보서 3:17 ③ 야고보서 4:17 ④ 야고보서 1:5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21~3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후새’
다윗의 모사이다. 탁월한 지혜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재 중에 인재이다. 아히도벨의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지혜와 같을 정도로 한 치 오차가 없었는데 이를 파하게 만들었다. 다윗은 압살롬이 반역하자 후새에게 압살롬 편을 들어 그의 계획을 무산시키게 한다. 압살롬의 모사인 아히도벨이 군사 12,000명을 뽑아 다윗의 뒤를 바로 추격하자고 제의했을 때 후새는 가슴이 철렁한다.
이에 후새는 다윗이 노련한 군사이므로 이미 동굴 속에 숨었을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압살롬에게 직접 싸움터로 가자고 제안을 한다. 압살롬은 후새의 모략을 따른다. 결전의 날에 다윗의 군대는 압살롬의 군대를 격파하고 압살롬은 도망하다가 상수리 나무에 머리카락이 걸려 요압 장군에 의해 죽게 된다.
교육목표 :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음으로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기에 전문가나 지혜로운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여 답을 얻고자 하지요. 개인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데, 하물며 크고 작은 단체의 지도자라면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선한 지혜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할 수 있습니다.
1. 지혜의 귀중성
사전에는 지혜를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시비와 선악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혜는 쌓은 지식을 활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뇌세포에는 기억장치가 있어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기억하는 역할을 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보고 들은 것이 없기에 기억장치에 아무런 지식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자라면서 부모나 형제, 선생님,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지식을 쌓아가지요.
이러한 지식을 잘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즉 지식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대인 관계나 사리 분별,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나지요. 반면 지혜가 부족하면 잘 될 수 있는 일도 그르치고 어렵게 만듭니다. 따라서 지혜는 개인뿐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 나라에서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지혜의 유무에 따라 사람의 생사가 달리기도 하고, 나라의 존폐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 3장 14~18절에 보면 지혜의 귀중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시지요.
2. 선의 지혜와 악의 지혜
지혜라고 해서 모두가 선한 것만은 아닙니다. 선한 사람의 마음에서는 선한 지혜가 나오고, 악한 사람의 마음에서는 악한 지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선한 지혜가 있으면 나라가 태평성대하고 가정이 화목하며 사람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반면 악한 지혜는 자기 유익을 구하고 궤계를 부리므로 결국 일이 허사로 돌아가거나 망하며 죽음을 면치 못하지요.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할 때 그는 자기 유익을 좇아 다윗을 배신하고 말지요. 오랫동안 다윗의 수족으로 함께했기에 다윗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다윗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방법도 눈에 환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에게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지금 다윗을 기습하면 분명 승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다윗의 충신 후새의 모략을 채택하지요. 아히도벨의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악인의 지혜를 파하시니 압살롬이 그의 모략을 채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후새는 다윗의 명을 받아 압살롬을 지지하는 척 하면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깨고 자신의 모략을 받아들이게 함으로 큰 공을 세우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의 손을 들어 주시니 악한 자가 아무리 뛰어난 모략을 베푼다 할지라도 허사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삼하 17:14). 아히도벨은 자신의 모략이 파해지자 압살롬의 패망을 직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지요. 결국 압살롬은 참패를 당하고 요압 장군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이와는 달리 선한 지혜가 있었던 기생 라합은 어떻습니까?
라합은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온 두 정탐꾼이 위험에 처했을 때 자기 집에 숨기며 도와주지요. 라합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크고 놀라운 권능을 듣고 믿었기에 정탐꾼들을 도울 수 있는 선한 지혜를 베풀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에 그녀와 함께한 모든 가족이 구원을 받았지요. 이처럼 선한 지혜를 좇으면 생명을 구원하고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선의 지혜로 하셨습니다. 상대를 찌르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쳐 변화될 수 있도록 이끄셨지요. 악한 사람은 악한 지혜가 나오기 때문에 상대를 찌르고 무안하게 하며 무시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시험하려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더는 시험하지 못하도록 깨우쳐 주셨습니다(요 8장). 이것이 선 속에서 나오는 지혜인 것입니다.
솔로몬 역시 하나님의 지혜로 판결의 진수를 보여준 유명한 재판 일화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가 어미라고 주장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았는데 그만 한 여인이 실수로 아기를 깔고 자므로 죽고 말지요. 그녀는 다른 여인이 자고 있는 사이 자신의 죽은 아기와 바꿔 놓습니다. 잠에서 깬 여인은 깜짝 놀라 아기를 보니 자신의 아기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다투고 있는 여인들을 향해 솔로몬은 섬뜩한 제안을 합니다. 아기를 칼로 나눠서 반씩 가지라는 것이었지요. 친어머니라면 아기를 그냥 죽게 놔 두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진짜 어미는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 제발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로써 진짜와 가짜가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선한 지혜가 있으면 사람들의 억울함과 누명을 벗겨 주고, 악한 자들의 간계를 무너뜨려 선이 악을 이기게 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혜에 두려워 떨며 굴복하게 만들지요.
3. 선한 지혜를 받으려면
마음에 악이 없고 성결하면 선한 방법론이 나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눅 6:45) 하신 대로 선한 마음에서는 선한 생각이 나오기 때문에 방법론 역시 선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일이 얽히고설켰을 때 생각을 짜내어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봅니다. 하지만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방법론은 반드시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되었을 때라야 선한 지혜가 나옵니다. 마음에 악이 없으면 선한 생각과 말을 하고 행동 역시 선합니다. 이러한 말과 행동, 생각이 지혜와 겸비되어 합력해서 선을 이루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큰 해를 끼친 악한 사람이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이때 마음에 악이 있는 사람은 그를 몹쓸 사람이라고 욕하며 문전박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악이 없는 선한 사람은 죄는 밉지만 그 사람이 불쌍해서 어찌하든 돌이킬 수 있도록 사랑으로 권면합니다. 그를 찌르고 윽박지르기보다는 그가 변화되어 새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한 지혜를 베풀지요.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어려운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 계속해서 몰아붙이며 악을 지적하면 더욱 악을 발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악이 발동하지 않도록 선한 말과 행함으로 그를 감동시키고 깨우침을 주는 선한 지혜가 필요하지요.
야고보서 3장 17~18절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성결한 마음을 이루면 하늘로부터 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결한 마음이 되면 지혜를 받는 방법론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더 차원이 높은 지혜도 배우고 활용해 갈 수 있어야 하지요. 가령, ‘1+1=2’라는 것을 배워서 안다면 다음에 그러한 문제가 나오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2’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곱하기와 나누기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분야를 배워야 다른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의 지혜를 배워 삶에 적용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각 사건들에 대한 지혜를 잘 배워서 양식 삼으면 비슷한 일이 닥쳤을 때 성령께서 떠올려 주심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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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어 보세요.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 )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 )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 )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 )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18)
2. 누가복음 6장 45절 말씀을 외워서 쓸 수 있나요?
( )
3. 지혜가 부족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성경 어디에 나올까요?
① 야고보서 1:12 ② 야고보서 3:17 ③ 야고보서 4:17 ④ 야고보서 1:5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21~3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후새’
다윗의 모사이다. 탁월한 지혜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재 중에 인재이다. 아히도벨의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지혜와 같을 정도로 한 치 오차가 없었는데 이를 파하게 만들었다. 다윗은 압살롬이 반역하자 후새에게 압살롬 편을 들어 그의 계획을 무산시키게 한다. 압살롬의 모사인 아히도벨이 군사 12,000명을 뽑아 다윗의 뒤를 바로 추격하자고 제의했을 때 후새는 가슴이 철렁한다.
이에 후새는 다윗이 노련한 군사이므로 이미 동굴 속에 숨었을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압살롬에게 직접 싸움터로 가자고 제안을 한다. 압살롬은 후새의 모략을 따른다. 결전의 날에 다윗의 군대는 압살롬의 군대를 격파하고 압살롬은 도망하다가 상수리 나무에 머리카락이 걸려 요압 장군에 의해 죽게 된다.
2014-05-02
제18과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창 31:7~13
읽을말씀 : 창 31:7~13 | 외울말씀 : 히 11:1 l 참고 말씀:창 27:27~29, 30:43
교육목표 :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모든 삶에 형통함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과 인류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대로 행하면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며 축복을 내려 주시지요. 그러니 하나님을 만나면 아무리 불행했던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고,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도 명쾌하게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 근심 걱정된 일로 인해 힘이 드십니까?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1.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의 아들로서, 형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에서는 들로 다니며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아버지 이삭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조용한 성품으로 집 안에 있으면서 어머니 일을 도우니 자연히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지혜로운 반면 간교한 성품이 있었고, 꿈과 야심이 있어서 형이 가진 장자의 축복을 자신이 받고 싶어했습니다.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와 몹시 배고파할 때에 팥죽 한 그릇을 줄 테니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합니다.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소홀히 여기고 아무 생각 없이 팔아버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들자 죽기 전에 장자 에서를 불러 축복을 빌어 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면 축복해 주겠노라고 하지요. 이것을 엿들은 어머니 리브가는 자기가 사랑하는 야곱에게 그 축복을 받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에서인 척 위장하고 들어가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야곱은 에서처럼 꾸미고 어머니가 만들어 준 별미를 갖고 들어갑니다. 눈이 어두운 이삭은 변장한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마음껏 축복해 줍니다(창 27장).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에서가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들어오지요. 깜짝 놀란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을 다 해 주었으므로 더 이상 축복해 줄 것이 없다고 하지요.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리라 결심합니다. 이 일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피하게 됩니다.
2. 축복의 비결을 터득한 야곱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기반을 닦으며 성실히 일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라반은 그에게 품삯을 정하라고 합니다. 이때 야곱은 7년을 봉사하는 조건으로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요청하지요.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7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기쁘게 일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어떠한 연단이나 핍박이 와도 기쁨으로 이겨 나갑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면 이 세상 어떠한 것도 부럽지 않지요.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더 상급을 쌓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더 충성할까 하며 힘쓰게 됩니다.
야곱도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 7년을 길다 여기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마침내 7년이 지나 결혼식을 올렸는데 정작 신부는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라반에게 속은 야곱이 분을 내자 외삼촌은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이 지방 풍속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7일을 기다리면 라헬을 아내로 줄 테니 다시 7년을 더 봉사하라는 조건을 내겁니다. 야곱은 억울했지만 그렇게 따르지요.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 봐야 할 점은, 자기 형편과 처지를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울하다, 비위가 상한다, 나와 맞지 않는다.” 하며 불평하며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하면 가정이나 직장은 물론 어디에서도 사랑과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다 할지라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긍정적인 마음과 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과 이익을 따지기보다는 내가 손해를 보고 희생한다 해도 선을 택하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요. 이런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그 위치가 견고히 서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야곱이 여러 자녀를 낳고 요셉을 낳은 때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라반에게 말합니다. 라반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시고 자기에게 복 주신 것을 잘 알았습니다(창 30:27). 야곱이 오기 전에는 소유가 적었는데 그가 온 후로는 재산이 크게 불어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을 놓치고 싶지 않은 라반은 야곱에게 품삯을 정하라고 합니다. 여러 번 외삼촌에게 속은 야곱은 지혜를 씁니다.
즉 외삼촌의 양 떼 중에서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 그리고 염소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 있으면 자기에게 품삯으로 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양들은 드물었기에 라반은 쾌히 승낙합니다. 그때부터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군데군데 껍질을 벗겨 알록달록한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양 떼가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다 세워 놓습니다.
야곱은 튼튼한 양이 새끼를 밸 때에는 알록달록한 가지를 놓았다가 약한 양이면 가지를 치웠습니다.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물을 마신 튼튼한 양들은 교미하여 잉태한 후 아롱지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새끼를 많이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한 양들은 다 야곱의 것이 되고 약한 양들은 라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이 라반에게 기묘한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4년간 봉사하면서 어떻게 해야 양이 새끼를 잘 낳고 잘 자라는지 전문가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야곱은 바라보는 대로 이루어지는 믿음의 법칙을 터득하였지요(히 11:1). 누구든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야곱처럼 성실하며,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가령, 음식점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음식 맛 외에도 장소와 손님들에게 편안한 인테리어를 생각합니다. 또한 친절한 서비스와 메뉴도 개발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게끔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3.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야곱은 20년간 같이 살던 라반으로부터 도주하듯이 고향을 향해 떠났습니다. 라반은 이 사실을 삼 일 후에야 알고 황급히 뒤쫓아 가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현몽하여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십니다. 이에 라반은 갈르엣에서 야곱과 약조를 맺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또다시 어려움이 닥칩니다.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형 에서가 사백 명을 이끌고 온다는 것입니다. 야곱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빼앗겼으니 그동안 얼마나 억울해하며 살았겠습니까. 조금만 어렵고 힘들어도 야곱이 자신의 축복을 가로챘기 때문이라고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오랜 세월 야곱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쌓였겠습니까.
야곱은 에서가 쫓아온다는 소리에 너무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이에 자신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자기와 함께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눕니다.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할 수 있겠다는 만약의 경우까지 대비한 것이지요. 그리고 형의 감정을 누그러뜨려 보고자 많은 예물을 앞서 준비했습니다.
야곱은 라반과 약조했으니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형 에서 앞에 나아갈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야곱은 자신의 모든 지혜를 내려놓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너무나 절박했기에 얍복 강가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밤새 천사와 씨름했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끌어내렸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하니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눈녹듯이 녹이심으로 환영을 받으며 고향에 돌아왔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에 형통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만 온전히 순종하면 야곱처럼 남한테 속거나 우여곡절을 겪지 않습니다. 가정이나 직장, 사업터에 축복을 받고 형통함을 받고 싶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가 옳다라고 하는 의와 지혜를 철저히 내려놓음으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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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곱은 형 에서에게 팥죽을 주고 무엇을 샀나요?
( )
2. 야곱은 얍복 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하나님께 얻은 새 이름은 무엇인가요?
( )
3. 야곱이 자신의 지혜를 의지했을 때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 )
4. 야곱이 바라봄의 법칙을 터득하여 바라본 대로 그 실상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 해당하는 내용을 간략하게 써 보세요.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207~21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환도뼈란?
현대 의학 용어로 대퇴골이라 하며, 허리 아래에 있는 넓적다리뼈를 말한다.
교육목표 :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모든 삶에 형통함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과 인류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대로 행하면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며 축복을 내려 주시지요. 그러니 하나님을 만나면 아무리 불행했던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고,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도 명쾌하게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 근심 걱정된 일로 인해 힘이 드십니까?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1.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의 아들로서, 형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에서는 들로 다니며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아버지 이삭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조용한 성품으로 집 안에 있으면서 어머니 일을 도우니 자연히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지혜로운 반면 간교한 성품이 있었고, 꿈과 야심이 있어서 형이 가진 장자의 축복을 자신이 받고 싶어했습니다.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와 몹시 배고파할 때에 팥죽 한 그릇을 줄 테니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합니다.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소홀히 여기고 아무 생각 없이 팔아버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들자 죽기 전에 장자 에서를 불러 축복을 빌어 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면 축복해 주겠노라고 하지요. 이것을 엿들은 어머니 리브가는 자기가 사랑하는 야곱에게 그 축복을 받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에서인 척 위장하고 들어가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야곱은 에서처럼 꾸미고 어머니가 만들어 준 별미를 갖고 들어갑니다. 눈이 어두운 이삭은 변장한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마음껏 축복해 줍니다(창 27장).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에서가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들어오지요. 깜짝 놀란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을 다 해 주었으므로 더 이상 축복해 줄 것이 없다고 하지요.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리라 결심합니다. 이 일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피하게 됩니다.
2. 축복의 비결을 터득한 야곱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기반을 닦으며 성실히 일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라반은 그에게 품삯을 정하라고 합니다. 이때 야곱은 7년을 봉사하는 조건으로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요청하지요.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7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기쁘게 일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어떠한 연단이나 핍박이 와도 기쁨으로 이겨 나갑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면 이 세상 어떠한 것도 부럽지 않지요.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더 상급을 쌓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더 충성할까 하며 힘쓰게 됩니다.
야곱도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 7년을 길다 여기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마침내 7년이 지나 결혼식을 올렸는데 정작 신부는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라반에게 속은 야곱이 분을 내자 외삼촌은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이 지방 풍속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7일을 기다리면 라헬을 아내로 줄 테니 다시 7년을 더 봉사하라는 조건을 내겁니다. 야곱은 억울했지만 그렇게 따르지요.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 봐야 할 점은, 자기 형편과 처지를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울하다, 비위가 상한다, 나와 맞지 않는다.” 하며 불평하며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하면 가정이나 직장은 물론 어디에서도 사랑과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다 할지라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긍정적인 마음과 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과 이익을 따지기보다는 내가 손해를 보고 희생한다 해도 선을 택하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요. 이런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그 위치가 견고히 서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야곱이 여러 자녀를 낳고 요셉을 낳은 때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라반에게 말합니다. 라반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시고 자기에게 복 주신 것을 잘 알았습니다(창 30:27). 야곱이 오기 전에는 소유가 적었는데 그가 온 후로는 재산이 크게 불어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을 놓치고 싶지 않은 라반은 야곱에게 품삯을 정하라고 합니다. 여러 번 외삼촌에게 속은 야곱은 지혜를 씁니다.
즉 외삼촌의 양 떼 중에서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 그리고 염소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 있으면 자기에게 품삯으로 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양들은 드물었기에 라반은 쾌히 승낙합니다. 그때부터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군데군데 껍질을 벗겨 알록달록한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양 떼가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다 세워 놓습니다.
야곱은 튼튼한 양이 새끼를 밸 때에는 알록달록한 가지를 놓았다가 약한 양이면 가지를 치웠습니다.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물을 마신 튼튼한 양들은 교미하여 잉태한 후 아롱지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새끼를 많이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한 양들은 다 야곱의 것이 되고 약한 양들은 라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이 라반에게 기묘한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4년간 봉사하면서 어떻게 해야 양이 새끼를 잘 낳고 잘 자라는지 전문가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야곱은 바라보는 대로 이루어지는 믿음의 법칙을 터득하였지요(히 11:1). 누구든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야곱처럼 성실하며,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가령, 음식점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음식 맛 외에도 장소와 손님들에게 편안한 인테리어를 생각합니다. 또한 친절한 서비스와 메뉴도 개발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게끔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3.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야곱은 20년간 같이 살던 라반으로부터 도주하듯이 고향을 향해 떠났습니다. 라반은 이 사실을 삼 일 후에야 알고 황급히 뒤쫓아 가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현몽하여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십니다. 이에 라반은 갈르엣에서 야곱과 약조를 맺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또다시 어려움이 닥칩니다.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형 에서가 사백 명을 이끌고 온다는 것입니다. 야곱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빼앗겼으니 그동안 얼마나 억울해하며 살았겠습니까. 조금만 어렵고 힘들어도 야곱이 자신의 축복을 가로챘기 때문이라고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오랜 세월 야곱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쌓였겠습니까.
야곱은 에서가 쫓아온다는 소리에 너무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이에 자신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자기와 함께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눕니다.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할 수 있겠다는 만약의 경우까지 대비한 것이지요. 그리고 형의 감정을 누그러뜨려 보고자 많은 예물을 앞서 준비했습니다.
야곱은 라반과 약조했으니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형 에서 앞에 나아갈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야곱은 자신의 모든 지혜를 내려놓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너무나 절박했기에 얍복 강가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밤새 천사와 씨름했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끌어내렸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하니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눈녹듯이 녹이심으로 환영을 받으며 고향에 돌아왔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에 형통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만 온전히 순종하면 야곱처럼 남한테 속거나 우여곡절을 겪지 않습니다. 가정이나 직장, 사업터에 축복을 받고 형통함을 받고 싶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가 옳다라고 하는 의와 지혜를 철저히 내려놓음으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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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곱은 형 에서에게 팥죽을 주고 무엇을 샀나요?
( )
2. 야곱은 얍복 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하나님께 얻은 새 이름은 무엇인가요?
( )
3. 야곱이 자신의 지혜를 의지했을 때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 )
4. 야곱이 바라봄의 법칙을 터득하여 바라본 대로 그 실상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 해당하는 내용을 간략하게 써 보세요.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207~21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환도뼈란?
현대 의학 용어로 대퇴골이라 하며, 허리 아래에 있는 넓적다리뼈를 말한다.
2014-04-25
제17과순종의 축복
삼상 15:22~23
읽을말씀 : 삼상 15:22~23 | 외울말씀 : 막 9:23 ㅣ 참고 말씀:히 11:8
교육목표 :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함으로 기사와 표적이 따르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순종할 수 있는 것을 명하시고 행함으로 나타낼 때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시지요.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 성을 7일 동안 돌라고 명하셨습니다. 여리고 성은 사람이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을 명하시고 하나님께서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오늘은 순종의 축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를 대며 순종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맞지 않은 일이라면 어찌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하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행할 때 진정한 순종이라고 여기십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순종할 때 의로 여기시고 순종의 축복을 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행함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따르도록 역사하십니다.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도 순종함으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 말씀대로 7일 동안 그 성을 돌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이나 지식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보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하나하나를 순종할 때 믿음이 성장하고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순종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사람 편에서 그렇지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과 경험, 사고방식으로 한계를 짓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자신도 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시고 불가능이 없으신 분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적어 행함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며 사람의 생각 속에서 한계를 깨뜨리면 능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변함없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한 대로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과 사이에서 낳은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본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대로 하면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해 엄청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100세에 낳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창 22:1~2).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다면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칭할 것이라’ 하셨고(창 21:12), ‘자손이 심히 번성케 되며 나라들과 열왕들이 나오리라’(창 17:6)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시니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어떤 이유도 대지 않고 곧바로 순종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갔지요(창 22:3).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히 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히 11:17~19). 아버지 하나님께서 결코 선하지 않은 일을 지시하실 리가 없다는 믿음이 확고부동했지요. 아브라함은 이런 일을 명하신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알았던 것입니다.
3. 순종의 복과 불순종의 고통
아브라함이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기에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며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다른 나라 왕들조차도 그 권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고, 주변에 물이 없을 때에도 그에게는 물이 있었습니다. 소돔에 살던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집에서 길린 가신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출할 정도로 많은 종이 있었으며,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앞일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 주실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습니다(창 18:17). 우리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통해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시며 축복하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사람은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것일까요? 바로 자기 생각과 자기 유익에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자세를 가진 사람은 자기 유익이나 현실을 보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순종해 드릴까?”를 생각하며 행하고자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한계를 깨뜨림으로 순종하여 결국 놀라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게 되지요. 그러나 현실을 보고 여전히 자기 생각을 동원하면 불순종을 낳기 마련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시험 환난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하나님께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함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 속에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동생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피의 제사를 드렸지요. 이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흠향하셨습니다. 이에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여 쳐 죽이고 말지요. 즉 불순종이 살인을 불러오고 결국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어떠하였습니까?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 선지자가 정한 기한에 오지 않자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를 자기가 드리는 만용을 부렸습니다. 이는 율법을 어기는 행위였기에 사무엘이 책망하자 오히려 핑계만 대지요. 사울은 자기 생각이 앞서니 불순종하여 월권한 줄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 하셨는데도 가장 좋은 것은 살려 두지요.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책망하지요(삼상 15:22~23).
사울 왕처럼 거듭거듭 불순종하면 멸망으로 치닫거나 각종 시험 환난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순종하면 놀라운 역사가 따릅니다. 사르밧 과부만 봐도 알 수 있지요(왕상 17장). 그녀는 아들과 먹을 마지막 양식을 엘리야가 자신에게 공궤하라고 했을 때 그대로 순종함으로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의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육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말씀을 믿었기에 오직 순종함으로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순종하면 놀라운 역사와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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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순종은 물론 어떠한 차원까지 순종하기를 원하실까요?
( )
2. 순종하면 축복인 줄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
3. 어떻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 )
4. 다음 중 순종하여 축복받은 사람이 아닌 것은?
① 사르밧 과부 ② 나아만 장군 ③ 아브라함 ④ 사울 왕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97~20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번제란?
구약 시대 제사법 중에 하나로서 제물이 되는 짐승을 불에 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이다(레 1:6~9). 희생되는 짐승은 흠이 없는 수컷에만 한하여 주로 소·양·염소 등을 드렸으며, 가난한 이들은 산비둘기·집비둘기 등을 바치기도 했다(레 5:7). 짐승을 잡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우리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번제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 온전히 거하여 거룩하게 살며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함으로 기사와 표적이 따르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순종할 수 있는 것을 명하시고 행함으로 나타낼 때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시지요.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 성을 7일 동안 돌라고 명하셨습니다. 여리고 성은 사람이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을 명하시고 하나님께서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오늘은 순종의 축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를 대며 순종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맞지 않은 일이라면 어찌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하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행할 때 진정한 순종이라고 여기십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순종할 때 의로 여기시고 순종의 축복을 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행함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따르도록 역사하십니다.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도 순종함으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 말씀대로 7일 동안 그 성을 돌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이나 지식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보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하나하나를 순종할 때 믿음이 성장하고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순종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사람 편에서 그렇지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과 경험, 사고방식으로 한계를 짓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자신도 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시고 불가능이 없으신 분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적어 행함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며 사람의 생각 속에서 한계를 깨뜨리면 능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변함없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한 대로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과 사이에서 낳은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본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대로 하면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해 엄청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100세에 낳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창 22:1~2).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다면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칭할 것이라’ 하셨고(창 21:12), ‘자손이 심히 번성케 되며 나라들과 열왕들이 나오리라’(창 17:6)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시니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어떤 이유도 대지 않고 곧바로 순종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갔지요(창 22:3).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히 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히 11:17~19). 아버지 하나님께서 결코 선하지 않은 일을 지시하실 리가 없다는 믿음이 확고부동했지요. 아브라함은 이런 일을 명하신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알았던 것입니다.
3. 순종의 복과 불순종의 고통
아브라함이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기에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며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다른 나라 왕들조차도 그 권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고, 주변에 물이 없을 때에도 그에게는 물이 있었습니다. 소돔에 살던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집에서 길린 가신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출할 정도로 많은 종이 있었으며,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앞일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 주실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습니다(창 18:17). 우리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통해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시며 축복하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사람은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것일까요? 바로 자기 생각과 자기 유익에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자세를 가진 사람은 자기 유익이나 현실을 보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순종해 드릴까?”를 생각하며 행하고자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한계를 깨뜨림으로 순종하여 결국 놀라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게 되지요. 그러나 현실을 보고 여전히 자기 생각을 동원하면 불순종을 낳기 마련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시험 환난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하나님께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함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 속에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동생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피의 제사를 드렸지요. 이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흠향하셨습니다. 이에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여 쳐 죽이고 말지요. 즉 불순종이 살인을 불러오고 결국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어떠하였습니까?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 선지자가 정한 기한에 오지 않자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를 자기가 드리는 만용을 부렸습니다. 이는 율법을 어기는 행위였기에 사무엘이 책망하자 오히려 핑계만 대지요. 사울은 자기 생각이 앞서니 불순종하여 월권한 줄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 하셨는데도 가장 좋은 것은 살려 두지요.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책망하지요(삼상 15:22~23).
사울 왕처럼 거듭거듭 불순종하면 멸망으로 치닫거나 각종 시험 환난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순종하면 놀라운 역사가 따릅니다. 사르밧 과부만 봐도 알 수 있지요(왕상 17장). 그녀는 아들과 먹을 마지막 양식을 엘리야가 자신에게 공궤하라고 했을 때 그대로 순종함으로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의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육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말씀을 믿었기에 오직 순종함으로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순종하면 놀라운 역사와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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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순종은 물론 어떠한 차원까지 순종하기를 원하실까요?
( )
2. 순종하면 축복인 줄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
3. 어떻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 )
4. 다음 중 순종하여 축복받은 사람이 아닌 것은?
① 사르밧 과부 ② 나아만 장군 ③ 아브라함 ④ 사울 왕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97~20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번제란?
구약 시대 제사법 중에 하나로서 제물이 되는 짐승을 불에 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이다(레 1:6~9). 희생되는 짐승은 흠이 없는 수컷에만 한하여 주로 소·양·염소 등을 드렸으며, 가난한 이들은 산비둘기·집비둘기 등을 바치기도 했다(레 5:7). 짐승을 잡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우리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번제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 온전히 거하여 거룩하게 살며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2014-04-18
제16과부활의 의미
요 14:6
읽을말씀 : 요 14:6 | 외울말씀 : 고전 15:20 l 참고 말씀:살전 4:16~17
교육목표 : 예수님의 공의를 뛰어넘는 십자가의 사랑과 주님의 부활을 마음 깊이 새김으로 부활의 소망이 넘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시종 가난한 길을 가셨고, 마침내 채찍에 맞고 가시면류관을 쓰며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히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흠도 티도 없으신 예수님이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공의를 뛰어넘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온 인류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으셨기에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깨달음으로 부활의 소망이 가득하기 바랍니다. 오늘은 부활의 영적인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부활은 ‘참 생명’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했습니다. 즉 죄를 지으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이기에 죄의 성질을 물려받아 태어난 후 이런저런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건져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이 저주받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신 대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땅의 삶이 전부인 줄 알고 있지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출세와 부와 만족을 위해 살아갈 뿐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당할 사망은 육의 사망 곧 몸의 죽음만이 아닙니다. 몸의 죽음과 함께 영적인 사망 곧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망 앞에 놓여 있던 우리에게 주님께서 참 생명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에서 세세토록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은 성도 중에도 많은 사람이 수명을 다하고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들이 ‘죽었다’ 하지 않고, ‘잔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지요. 여기서 ‘잠자는 자들’이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믿다가 육의 수명이 다해 장사된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실 때 살아서 주를 맞는 성도들보다 앞서 부활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하신 대로, 죽어 장사되었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해 영혼과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7절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곧 육의 죽음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변화되어 공중으로 들려 오릅니다. 이때 입는 몸은 영원히 죽지 않을 신령한 몸인 부활체입니다.
2.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영생과 천국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행하심으로 보여 주셨지요. 주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죄가 전혀 없으셨기에 사망에 전혀 매이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아무 죄도 없으면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시기도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아담은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육의 사람이 되었고, 죄인인 아담에게서 난 모든 후손들 또한 죄인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만세 전에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지극히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죄인들의 손에 내주어 죽게 하셨습니다. 비록 인생들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독생자를 희생시켜 죄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실 만큼 인생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두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나눌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천국과 영생을 주시고 참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때가 되자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을 이루심으로 그 사랑을 분명히 나타내셨지요.
이러한 참사랑은 약 2천 년이 흐른 지금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베풀고 계신 참사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성령이 오십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지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점차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사랑은 상대를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확증하셨지요.
3. 부활은 ‘참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기쁨으로 순종하셨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때로는 애매히 핍박을 받고, 생명의 위협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니 철저히 혼자가 되시기도 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죄인의 신분으로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셨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한 후에는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과 함께 큰 영광을 누리실 것을 믿으셨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부활을 허락하시고 천국을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잠시 잠깐 머물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기에 날마다 죄를 벗으며 성결을 이루기 위해 힘씁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며, 그 충성이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혹여 고난과 핍박이 올 때에도 우리를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하실 하나님을 굳게 믿으시고, 그날에 주실 영광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죄 없이 고난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해 축복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시기까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시고 결코 잊지 않으시지요. 그 크신 아버지의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마음 깊이 새김으로 부활의 소망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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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에 담긴 영적인 의미 세 가지를 써 보세요.
첫째, 부활은 ( )을 의미한다.
둘째,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한다.
셋째, 부활은 ( )을 의미한다.
2.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분은 누구실까요?
( )
3.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목숨이 다하여 죽었을 때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표현했나요? ( )
● 금주 과제
다음 주일은 부활 주일입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욱 뜨겁게 전하는 한 주간 되세요.
● 알고 넘어 갑시다!
‘부활체’란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성도들이 입게 되는 썩지도 죽지도 않는 신령한 몸이다. 성도들은 이 부활체를 입고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공중에서 7년 혼인 잔치를 한다. 부활체는 영혼과 신령한 몸이 결합한 상태로서 손에 만져지고 숨도 쉬며 음식도 먹고 마실 수 있다. 신령한 몸이기에 부활하신 주님처럼 어떤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교육목표 : 예수님의 공의를 뛰어넘는 십자가의 사랑과 주님의 부활을 마음 깊이 새김으로 부활의 소망이 넘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시종 가난한 길을 가셨고, 마침내 채찍에 맞고 가시면류관을 쓰며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히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흠도 티도 없으신 예수님이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공의를 뛰어넘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온 인류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으셨기에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깨달음으로 부활의 소망이 가득하기 바랍니다. 오늘은 부활의 영적인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부활은 ‘참 생명’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했습니다. 즉 죄를 지으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이기에 죄의 성질을 물려받아 태어난 후 이런저런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건져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이 저주받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신 대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땅의 삶이 전부인 줄 알고 있지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출세와 부와 만족을 위해 살아갈 뿐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당할 사망은 육의 사망 곧 몸의 죽음만이 아닙니다. 몸의 죽음과 함께 영적인 사망 곧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망 앞에 놓여 있던 우리에게 주님께서 참 생명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에서 세세토록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은 성도 중에도 많은 사람이 수명을 다하고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들이 ‘죽었다’ 하지 않고, ‘잔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지요. 여기서 ‘잠자는 자들’이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믿다가 육의 수명이 다해 장사된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실 때 살아서 주를 맞는 성도들보다 앞서 부활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하신 대로, 죽어 장사되었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해 영혼과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7절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곧 육의 죽음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변화되어 공중으로 들려 오릅니다. 이때 입는 몸은 영원히 죽지 않을 신령한 몸인 부활체입니다.
2.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영생과 천국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행하심으로 보여 주셨지요. 주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죄가 전혀 없으셨기에 사망에 전혀 매이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아무 죄도 없으면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시기도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아담은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육의 사람이 되었고, 죄인인 아담에게서 난 모든 후손들 또한 죄인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만세 전에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지극히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죄인들의 손에 내주어 죽게 하셨습니다. 비록 인생들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독생자를 희생시켜 죄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실 만큼 인생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두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나눌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천국과 영생을 주시고 참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때가 되자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을 이루심으로 그 사랑을 분명히 나타내셨지요.
이러한 참사랑은 약 2천 년이 흐른 지금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베풀고 계신 참사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성령이 오십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지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점차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사랑은 상대를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확증하셨지요.
3. 부활은 ‘참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기쁨으로 순종하셨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때로는 애매히 핍박을 받고, 생명의 위협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니 철저히 혼자가 되시기도 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죄인의 신분으로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셨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한 후에는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과 함께 큰 영광을 누리실 것을 믿으셨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부활을 허락하시고 천국을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잠시 잠깐 머물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기에 날마다 죄를 벗으며 성결을 이루기 위해 힘씁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며, 그 충성이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혹여 고난과 핍박이 올 때에도 우리를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하실 하나님을 굳게 믿으시고, 그날에 주실 영광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죄 없이 고난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해 축복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시기까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시고 결코 잊지 않으시지요. 그 크신 아버지의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마음 깊이 새김으로 부활의 소망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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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에 담긴 영적인 의미 세 가지를 써 보세요.
첫째, 부활은 ( )을 의미한다.
둘째,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한다.
셋째, 부활은 ( )을 의미한다.
2.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분은 누구실까요?
( )
3.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목숨이 다하여 죽었을 때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표현했나요? ( )
● 금주 과제
다음 주일은 부활 주일입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욱 뜨겁게 전하는 한 주간 되세요.
● 알고 넘어 갑시다!
‘부활체’란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성도들이 입게 되는 썩지도 죽지도 않는 신령한 몸이다. 성도들은 이 부활체를 입고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공중에서 7년 혼인 잔치를 한다. 부활체는 영혼과 신령한 몸이 결합한 상태로서 손에 만져지고 숨도 쉬며 음식도 먹고 마실 수 있다. 신령한 몸이기에 부활하신 주님처럼 어떤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2014-04-11
제15과순전
마 12:18~21
읽을말씀 : 마 12:18~21 | 외울말씀 : 마 12:20 ㅣ 참고 말씀:욥 1:20~21
교육목표 :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 예수님처럼 순전한 마음을 이루어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게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마음이 순전치 못하여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마음이 순전한 사람은 허탄한 것을 좇지 않고 자기 마음을 지키며 거룩함을 좇아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감당합니다. 따라서 순전한 자가 되면 하늘로부터 지혜를 받을 뿐 아니라, 모든 일에 만사형통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순전의 영적인 의미
사람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는 분이므로 누가 선한지 악한지 정확하게 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욥의 중심을 보시니 순전하였지요(욥 1:1).
순전의 사전적 의미는 ‘순수하고 완전함’입니다. 순전한 사람은 온화하고 유순하여 말이나 행동에 덕이 있습니다. 설령 해로운 일을 만나도 악으로 갚지 않고 모든 것을 선으로 수용합니다. 따라서 순전의 영적인 의미는 ‘행함으로 온유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욥은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 불릴 정도로 물질과 명예, 자녀와 건강 등 많은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난으로 인해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합니다(욥 1:20).
이렇게 욥은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으며 순전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런 욥이었기에 하나님께서도 그를 인정하여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말씀합니다(욥 2:3). 그런데 욥기를 읽다보면 욥이 악창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자 자기 생일을 저주하며 친구들과 변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악의 모습이 있는 욥을 순전하다고 하셨을까요?
당시는 성령이 오시기 전인 구약 시대이므로 율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욥은 행위로 죄를 짓지 않았고,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선행을 많이 쌓았기에 ‘순전하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행위로만 죄를 짓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죄성까지 온전히 버리길 원하십니다. 즉 마음에 할례하여 본성 속의 악까지 버려야 영적인 의미의 순전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마태복음 12장 19~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순전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말씀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아야 합니다.
나무나 화초를 키울 때 상한 잎사귀나 가지가 있으면 잘라내 버립니다. 이처럼 사람들도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거나 꺾어 버리려고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상한 갈대와 같은 영혼이라 할지라도 꺾지 않으시고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바로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행하시는 선을 보고도 악을 품고 나오는 사람들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도 버리지 않고 진리로 깨우쳐 주시며 변화되기까지 인내하셨습니다. 또한 병들고 불쌍한 영혼들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구원하려 하셨지요. 순전한 사람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며 어찌하든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말아야 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마음이 악으로 심하게 물들어서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없고 모든 것이 포기 상태에 이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려 내고자 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함께하며 변화되기를 오래 참아 기다려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한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대신 용서의 간구를 올리셨습니다.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한 사람들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셨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할 수 있는 오래 참음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마음은 곧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오래 참음의 열매와 같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바라보며 끝까지 오래 참으며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부모나 자녀라 해도 자신에게 크나큰 해를 입히고 수치를 당하게 하면 꺼져 가는 심지를 끄듯 꺼 버립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나가는 것이 순전한 마음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마음입니다.
셋째로, 다투거나 들레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만나도 다투거나 들레지 않으셨습니다. 악한 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하며 온갖 일로 모함하고 죽이려 하였지만 맞서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선한 지혜로 그들을 일깨워 주고 피해야 할 자리는 피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심문받으실 때도 잠잠하셨지요.
우리가 믿음이 적을 때는 자기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은 일이 생기면 혈기내고 언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만일 다툼이 일어났다면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를 품지 못한 작은 그릇이고 부딪히면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자기적인 의와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악을 빨리 벗어야 하지요.
예수님은 들레지도 않고 모든 행함이 참으로 거룩하고 깨끗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베푸셨기 때문에 얼마든지 들레고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가 알아 주기를 바라지도 않으셨습니다. 들레지 않고 오직 겸손히 행하시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일을 누가 알아 주기 원하며 들레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 좋은 일을 드러나도록 역사하십니다.
3. 순전한 사람이 받는 축복
아브라함은 마음이 순전하고 모든 행함이 온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거나 악으로 갚지도 않았지요. 모든 것을 선 속에서 해결하면서 참고 인내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소유가 많아져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다툴 때도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삼촌이지만 조카에게 양보하고 자기의 유익을 좇아 더 좋은 쪽을 취한 조카에게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또한 롯이 포로로 잡혀 가자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으며 하나님 앞에 순전하게 행하니 손해 보기는커녕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일컬음을 받았지요.
우리도 마음이 순전하여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며, 다투거나 들레지 않으면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고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라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천국에서 큰 자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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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으로 상한 갈대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 )
2. 영적으로 꺼져가는 심지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 )
3.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떠한 마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첫째, ( )를 꺾지 않아야 한다.
둘째, ( )를 끄지 말아야 한다.
셋째, 다투거나 ( ) 않아야 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83~19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오래 참음’
영적인 오래 참음은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는 것이다.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으면 어떠한 사람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한다든지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다. 선으로 참을 때는 힘든 일도 소망 중에 감사함으로 이겨내며 결과적으로 더 넓고 큰 마음이 된다. 반면 악으로 참을 때는 감정이 쌓여 병이 되거나 점점 심성이 거칠어진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 나오는 오래 참음은 ‘사랑을 이루기 위한 오래 참음’을 말한다. 나아가 갈라디아서 5장 성령의 열매에 나오는 오래 참음은 ‘모든 것에 대한 오래 참음’으로 고린도전서 13장의 오래 참음보다 차원이 더 높다.
교육목표 :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 예수님처럼 순전한 마음을 이루어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게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마음이 순전치 못하여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마음이 순전한 사람은 허탄한 것을 좇지 않고 자기 마음을 지키며 거룩함을 좇아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감당합니다. 따라서 순전한 자가 되면 하늘로부터 지혜를 받을 뿐 아니라, 모든 일에 만사형통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순전의 영적인 의미
사람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는 분이므로 누가 선한지 악한지 정확하게 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욥의 중심을 보시니 순전하였지요(욥 1:1).
순전의 사전적 의미는 ‘순수하고 완전함’입니다. 순전한 사람은 온화하고 유순하여 말이나 행동에 덕이 있습니다. 설령 해로운 일을 만나도 악으로 갚지 않고 모든 것을 선으로 수용합니다. 따라서 순전의 영적인 의미는 ‘행함으로 온유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욥은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 불릴 정도로 물질과 명예, 자녀와 건강 등 많은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난으로 인해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합니다(욥 1:20).
이렇게 욥은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으며 순전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런 욥이었기에 하나님께서도 그를 인정하여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말씀합니다(욥 2:3). 그런데 욥기를 읽다보면 욥이 악창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자 자기 생일을 저주하며 친구들과 변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악의 모습이 있는 욥을 순전하다고 하셨을까요?
당시는 성령이 오시기 전인 구약 시대이므로 율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욥은 행위로 죄를 짓지 않았고,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선행을 많이 쌓았기에 ‘순전하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행위로만 죄를 짓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죄성까지 온전히 버리길 원하십니다. 즉 마음에 할례하여 본성 속의 악까지 버려야 영적인 의미의 순전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마태복음 12장 19~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순전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말씀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아야 합니다.
나무나 화초를 키울 때 상한 잎사귀나 가지가 있으면 잘라내 버립니다. 이처럼 사람들도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거나 꺾어 버리려고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상한 갈대와 같은 영혼이라 할지라도 꺾지 않으시고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바로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행하시는 선을 보고도 악을 품고 나오는 사람들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도 버리지 않고 진리로 깨우쳐 주시며 변화되기까지 인내하셨습니다. 또한 병들고 불쌍한 영혼들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구원하려 하셨지요. 순전한 사람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며 어찌하든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말아야 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마음이 악으로 심하게 물들어서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없고 모든 것이 포기 상태에 이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려 내고자 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함께하며 변화되기를 오래 참아 기다려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한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대신 용서의 간구를 올리셨습니다.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한 사람들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셨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할 수 있는 오래 참음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마음은 곧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오래 참음의 열매와 같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바라보며 끝까지 오래 참으며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부모나 자녀라 해도 자신에게 크나큰 해를 입히고 수치를 당하게 하면 꺼져 가는 심지를 끄듯 꺼 버립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나가는 것이 순전한 마음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마음입니다.
셋째로, 다투거나 들레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만나도 다투거나 들레지 않으셨습니다. 악한 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하며 온갖 일로 모함하고 죽이려 하였지만 맞서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선한 지혜로 그들을 일깨워 주고 피해야 할 자리는 피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심문받으실 때도 잠잠하셨지요.
우리가 믿음이 적을 때는 자기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은 일이 생기면 혈기내고 언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만일 다툼이 일어났다면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를 품지 못한 작은 그릇이고 부딪히면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자기적인 의와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악을 빨리 벗어야 하지요.
예수님은 들레지도 않고 모든 행함이 참으로 거룩하고 깨끗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베푸셨기 때문에 얼마든지 들레고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가 알아 주기를 바라지도 않으셨습니다. 들레지 않고 오직 겸손히 행하시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일을 누가 알아 주기 원하며 들레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 좋은 일을 드러나도록 역사하십니다.
3. 순전한 사람이 받는 축복
아브라함은 마음이 순전하고 모든 행함이 온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거나 악으로 갚지도 않았지요. 모든 것을 선 속에서 해결하면서 참고 인내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소유가 많아져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다툴 때도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삼촌이지만 조카에게 양보하고 자기의 유익을 좇아 더 좋은 쪽을 취한 조카에게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또한 롯이 포로로 잡혀 가자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으며 하나님 앞에 순전하게 행하니 손해 보기는커녕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일컬음을 받았지요.
우리도 마음이 순전하여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며, 다투거나 들레지 않으면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고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라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천국에서 큰 자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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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으로 상한 갈대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 )
2. 영적으로 꺼져가는 심지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 )
3.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떠한 마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첫째, ( )를 꺾지 않아야 한다.
둘째, ( )를 끄지 말아야 한다.
셋째, 다투거나 ( ) 않아야 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83~19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오래 참음’
영적인 오래 참음은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는 것이다.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으면 어떠한 사람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한다든지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다. 선으로 참을 때는 힘든 일도 소망 중에 감사함으로 이겨내며 결과적으로 더 넓고 큰 마음이 된다. 반면 악으로 참을 때는 감정이 쌓여 병이 되거나 점점 심성이 거칠어진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 나오는 오래 참음은 ‘사랑을 이루기 위한 오래 참음’을 말한다. 나아가 갈라디아서 5장 성령의 열매에 나오는 오래 참음은 ‘모든 것에 대한 오래 참음’으로 고린도전서 13장의 오래 참음보다 차원이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