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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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4
제35과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
눅 14:16~24
읽을말씀 : 눅 14:16~24 | 외울말씀 : 갈 3:13 ㅣ 참고 말씀:눅 6:24~26
교육목표 : 누구든지 주님께서 배설하신 천국 잔치에 들어가 참 평안과 기쁨, 영생복락을 누리게 한다.
예부터 회갑이나 결혼 등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동안 사랑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초청받은 사람은 예의를 갖추고 참석해 함께 기쁨을 나누며 풍성하게 차린 음식들을 먹으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도 큰 잔치를 배설하시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천국을 예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어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국 잔치에 참석하고 계신가요?
1. 천국 잔치 비유
누가복음 14장에는 천국 잔치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몇 월 며칠에 큰 잔치를 베풀고자 하오니 오셔서 행복하게 즐기시기 바랍니다.”라는 초청장을 많은 사람에게 보냈습니다. 마침내 잔칫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못 간다고 하였지요. 이유인즉슨 밭을 샀으니 가봐야 한다, 소 다섯 겨리를 시험하러 가야 한다, 장가든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눅 14:16~20).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성스럽게 큰 잔치를 배설한 주인은 초청한 사람이 다 못 온다는 소식을 듣자 크게 노하였지요. 주인은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얼마 후 종이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하니 주인은 종에게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합니다(눅 14:22~24).
예수님은 이 천국 잔치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서 잔치를 베푼 ‘주인’은 주님을 의미하고, 잔치를 베푼 ‘장소’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교회를 훌륭한 연회장으로 만드시고 생명의 말씀으로 진수성찬을 베푸신 다음에 주의 종들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으로서 진수성찬을 맛있게 먹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 잔치 비유는 주님의 초청에 응하여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2.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
이러한 천국 잔치 비유에서 주인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일까요?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잔칫날이 되기 오래전에 사람들에게 초청 의사를 밝힌 후 잔칫날이 되면 다시 종을 보내어 전에 청했던 손님들을 데려오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러니 밭을 사거나 결혼을 하는 일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초청을 거절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데도 이들은 주인이 준비를 다한 후에야 참석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 온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안락 등으로 배부른 사람들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주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향락에 물든 사람들은 이미 세상의 것으로 만족함을 얻고 하나님의 위로와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천국을 소유하거나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눅 6:24~26).
우리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부러워하거나 이에 매이지 말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천국 잔치에 기쁘게 응해야 하겠습니다.
3. 천국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주님의 초청에 응한 사람들은 바로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소경, 저는 사람 등 주로 소외되고 버림받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조금도 부끄럽지 아니하며 도리어 복된 사람들이지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인생의 비극을 맛보고 사람의 나약함과 한계를 철저히 깨달은 이들입니다.
물론 선한 양심 가운데 사람의 도리를 좇아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심령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나오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때 부요한 사람보다는 그들에게 전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해하는 사람, 마음이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케 하는 사람,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받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해야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4. 천국 잔치에 많은 사람을 초청하신 이유
누가복음 14장 21절 이하를 보면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가난한 사람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며 거부였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유하여 영적 승리뿐 아니라 물질의 축복도 받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면 가난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포로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죄의 노예가 되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는 어떤 사람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우리를 죄의 종에서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말씀하셨지요.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죄에서 깨끗게 하실 수 있으며, 우리의 영혼을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으로 인해 우리가 천국 잔치에 참석하여 진리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셋째로,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죽으면 영혼은 지옥으로 끌려가 끝없는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지요. 천국 잔치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하여 천국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면 부활의 소망과 천국의 소망이 생겨나며 영생을 얻게 됩니다.
넷째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의 해’란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지키는 희년 곧 노예로 팔려간 가족이나 친지 혹은 빚으로 넘어갔던 땅 등 모든 잃은 것을 회복시켜 주는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 주심으로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은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하게 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모든 권세를 되찾을 수 있지요. 주님은 전 세계 만민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주 안에 참 평안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이 천국 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1. 천국 잔치를 베푼 ‘주인’과 ‘장소’가 의미하는 것은무엇일까요?
( )
2. 주인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일까요?
( )
3.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① ( )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② 포로 된 사람에게 ( )를 주시기 위해서이다.
③ ( )에게 다시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④ 주의 ( )를 전파하기 위해서이다.
4.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나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3부 10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하나님께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전도를 하면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브로치 같은 것을 가슴에 달아 주시는데
그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교육목표 : 누구든지 주님께서 배설하신 천국 잔치에 들어가 참 평안과 기쁨, 영생복락을 누리게 한다.
예부터 회갑이나 결혼 등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동안 사랑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초청받은 사람은 예의를 갖추고 참석해 함께 기쁨을 나누며 풍성하게 차린 음식들을 먹으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도 큰 잔치를 배설하시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천국을 예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어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국 잔치에 참석하고 계신가요?
1. 천국 잔치 비유
누가복음 14장에는 천국 잔치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몇 월 며칠에 큰 잔치를 베풀고자 하오니 오셔서 행복하게 즐기시기 바랍니다.”라는 초청장을 많은 사람에게 보냈습니다. 마침내 잔칫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못 간다고 하였지요. 이유인즉슨 밭을 샀으니 가봐야 한다, 소 다섯 겨리를 시험하러 가야 한다, 장가든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눅 14:16~20).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성스럽게 큰 잔치를 배설한 주인은 초청한 사람이 다 못 온다는 소식을 듣자 크게 노하였지요. 주인은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얼마 후 종이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하니 주인은 종에게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합니다(눅 14:22~24).
예수님은 이 천국 잔치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서 잔치를 베푼 ‘주인’은 주님을 의미하고, 잔치를 베푼 ‘장소’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교회를 훌륭한 연회장으로 만드시고 생명의 말씀으로 진수성찬을 베푸신 다음에 주의 종들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으로서 진수성찬을 맛있게 먹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 잔치 비유는 주님의 초청에 응하여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2.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
이러한 천국 잔치 비유에서 주인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일까요?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잔칫날이 되기 오래전에 사람들에게 초청 의사를 밝힌 후 잔칫날이 되면 다시 종을 보내어 전에 청했던 손님들을 데려오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러니 밭을 사거나 결혼을 하는 일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초청을 거절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데도 이들은 주인이 준비를 다한 후에야 참석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 온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안락 등으로 배부른 사람들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주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향락에 물든 사람들은 이미 세상의 것으로 만족함을 얻고 하나님의 위로와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천국을 소유하거나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눅 6:24~26).
우리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부러워하거나 이에 매이지 말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천국 잔치에 기쁘게 응해야 하겠습니다.
3. 천국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주님의 초청에 응한 사람들은 바로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소경, 저는 사람 등 주로 소외되고 버림받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조금도 부끄럽지 아니하며 도리어 복된 사람들이지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인생의 비극을 맛보고 사람의 나약함과 한계를 철저히 깨달은 이들입니다.
물론 선한 양심 가운데 사람의 도리를 좇아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심령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나오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때 부요한 사람보다는 그들에게 전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해하는 사람, 마음이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케 하는 사람,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받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해야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4. 천국 잔치에 많은 사람을 초청하신 이유
누가복음 14장 21절 이하를 보면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가난한 사람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며 거부였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유하여 영적 승리뿐 아니라 물질의 축복도 받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면 가난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포로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죄의 노예가 되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는 어떤 사람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우리를 죄의 종에서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말씀하셨지요.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죄에서 깨끗게 하실 수 있으며, 우리의 영혼을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으로 인해 우리가 천국 잔치에 참석하여 진리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셋째로,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죽으면 영혼은 지옥으로 끌려가 끝없는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지요. 천국 잔치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하여 천국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면 부활의 소망과 천국의 소망이 생겨나며 영생을 얻게 됩니다.
넷째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의 해’란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지키는 희년 곧 노예로 팔려간 가족이나 친지 혹은 빚으로 넘어갔던 땅 등 모든 잃은 것을 회복시켜 주는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 주심으로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은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하게 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모든 권세를 되찾을 수 있지요. 주님은 전 세계 만민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주 안에 참 평안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이 천국 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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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천국 잔치를 베푼 ‘주인’과 ‘장소’가 의미하는 것은무엇일까요?
( )
2. 주인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일까요?
( )
3.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① ( )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② 포로 된 사람에게 ( )를 주시기 위해서이다.
③ ( )에게 다시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④ 주의 ( )를 전파하기 위해서이다.
4.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나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3부 10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하나님께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전도를 하면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브로치 같은 것을 가슴에 달아 주시는데
그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2015-08-28
제34과영원한 것을 위하여
전 1:1~3
읽을말씀 : 전 1:1~3 | 외울말씀 : 전 1:1~3 l 참고 말씀:왕상 9:4
교육목표 :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킴으로 사람의 본분을 행하여 영원한 천국을 얻게 한다.
이스라엘 최대 전성기 때의 왕 솔로몬은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아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며, 주변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을 정도로 부강했고, 백성들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말년에 여호와의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인들이 가지고 온 각종 우상들을 숭배하며 산당까지 지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솔로몬의 아들 대(代)에 가서는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맙니다.
1.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축복받은 솔로몬 왕
다윗을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백성들과 함께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일천 번이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쁘셨던지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했습니다. 이때 솔로몬은 무엇을 구했을까요?
열왕기상 3장을 보면 자신의 장수나 부귀영화를 구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나라의 왕으로서 수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의 구하는 바가 얼마나 하나님 마음에 합하였던지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며 지혜는 물론 구하지도 않은 부귀영화까지 보너스로 주셨습니다.
열왕기상 4장 29∼30절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말씀한 대로 많은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찾아왔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막강한 국력을 기반으로 솔로몬 왕은 주변 지역을 정복해 가고 7년에 걸쳐 하나님의 성전을 완공합니다. 이를 매우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 약속하셨습니다.
열왕기상 9장 4∼5절에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라고 축복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열왕기상 9장 6∼7절에는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며”라고 경계하셨지요.
2.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범죄한 솔로몬 왕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엄청난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강대국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통일 왕국을 다스리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지요.
그런데 솔로몬 왕이 아버지 다윗의 믿음에서 떠나 범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들에게 여인들을 많이 두지 말 것을 말씀하셨지만(신 17장) 솔로몬은 후비와 빈장만 해도 무려 1천 명을 두었습니다(왕상 11장).
솔로몬 왕은 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했기에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따라 섬겼으며 심지어 국고를 털어 곳곳에 이방 신당들을 세우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 다른 신들을 섬겼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1장 11절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외면하시자 사방에서 적들이 쳐들어왔고, 결국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지요.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자기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고, 자기 마음에 즐거운 것이라면 다 취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마음을 채워 주지 못했습니다.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었지만 하나님을 떠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었지요. 그래서 전도서에 ‘마음껏 세상 쾌락을 누려 보았더니 이 세상이 참으로 살 만하더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 곧 인생의 모든 수고가 헛될 뿐이라’ 하였지요. 영혼의 만족은 물질이나 권세, 세상 정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해와 같이 빛나던 솔로몬 왕도 하나님 말씀을 떠나니 인생이 허무해졌습니다. 강물이 끊임없이 흘러도 바다를 채울 수 없듯이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았지요.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것을 취하며 자기 마음을 채우려 해도 소용이 없고, 평생 수고하여 공로를 쌓아도 종국에는 죽음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혜가 있고 학식이 높으며 명성을 날린 사람도 그 이름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결국에는 죽습니다. 평생을 수고하며 쌓은 것들도 죽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 버리면 더 이상 누릴 수가 없으니 헛될 뿐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마치 안개와 같고 그림자와 같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3. 헛된 것을 버리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려면
헛된 것을 체험한 솔로몬 왕은 말년에 이르러서야 인생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깨우치고 철저히 회개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기록한 전도서 12장 13~14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교훈하였지요.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려면 사람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은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셨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요, 헛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원한 하늘의 것을 목표 삼지 않고, 변질되고 소멸되는 이 땅의 정욕과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에 헛되고 헛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여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사람은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에 썩지 않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 안에서 수고하며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들에 하늘의 영원한 것으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여 향락과 물질과 명예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위하여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통해 물질, 세상 위주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 깨우쳐 주셨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시며 생명을 거둔다면 부자가 쌓아 둔 재물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33절에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간과 노력, 지혜와 정성, 모든 관심을 어디에 두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헛되고 헛된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가장 가치 있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힘차게 달려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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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했을 때 무엇을 구했을까요? ( )
2. 솔로몬이 믿음에서 떠나 범죄하게 된 원인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말씀하신 성경 장절을 써 보세요. ( )
4. 여러분은 어디에 관심을 두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3부 9과‘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들에게 명하신 말씀(신 17:16~19)
1. 말(馬)을 많이 두지 말고, 말을 많이 얻으려고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라.
2. 아내를 많이 두어 마음이 미혹되지 않게 하라.
3. 은금을 자신을 위하여 많이 쌓아 두지 말라.
4. 율법서를 평생 옆에 두어 읽고 지켜 행하라.
교육목표 :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킴으로 사람의 본분을 행하여 영원한 천국을 얻게 한다.
이스라엘 최대 전성기 때의 왕 솔로몬은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아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며, 주변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을 정도로 부강했고, 백성들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말년에 여호와의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인들이 가지고 온 각종 우상들을 숭배하며 산당까지 지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솔로몬의 아들 대(代)에 가서는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맙니다.
1.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축복받은 솔로몬 왕
다윗을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백성들과 함께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일천 번이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쁘셨던지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했습니다. 이때 솔로몬은 무엇을 구했을까요?
열왕기상 3장을 보면 자신의 장수나 부귀영화를 구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나라의 왕으로서 수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의 구하는 바가 얼마나 하나님 마음에 합하였던지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며 지혜는 물론 구하지도 않은 부귀영화까지 보너스로 주셨습니다.
열왕기상 4장 29∼30절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말씀한 대로 많은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찾아왔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막강한 국력을 기반으로 솔로몬 왕은 주변 지역을 정복해 가고 7년에 걸쳐 하나님의 성전을 완공합니다. 이를 매우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 약속하셨습니다.
열왕기상 9장 4∼5절에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라고 축복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열왕기상 9장 6∼7절에는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며”라고 경계하셨지요.
2.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범죄한 솔로몬 왕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엄청난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강대국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통일 왕국을 다스리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지요.
그런데 솔로몬 왕이 아버지 다윗의 믿음에서 떠나 범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들에게 여인들을 많이 두지 말 것을 말씀하셨지만(신 17장) 솔로몬은 후비와 빈장만 해도 무려 1천 명을 두었습니다(왕상 11장).
솔로몬 왕은 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했기에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따라 섬겼으며 심지어 국고를 털어 곳곳에 이방 신당들을 세우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 다른 신들을 섬겼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1장 11절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외면하시자 사방에서 적들이 쳐들어왔고, 결국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지요.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자기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고, 자기 마음에 즐거운 것이라면 다 취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마음을 채워 주지 못했습니다.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었지만 하나님을 떠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었지요. 그래서 전도서에 ‘마음껏 세상 쾌락을 누려 보았더니 이 세상이 참으로 살 만하더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 곧 인생의 모든 수고가 헛될 뿐이라’ 하였지요. 영혼의 만족은 물질이나 권세, 세상 정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해와 같이 빛나던 솔로몬 왕도 하나님 말씀을 떠나니 인생이 허무해졌습니다. 강물이 끊임없이 흘러도 바다를 채울 수 없듯이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았지요.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것을 취하며 자기 마음을 채우려 해도 소용이 없고, 평생 수고하여 공로를 쌓아도 종국에는 죽음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혜가 있고 학식이 높으며 명성을 날린 사람도 그 이름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결국에는 죽습니다. 평생을 수고하며 쌓은 것들도 죽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 버리면 더 이상 누릴 수가 없으니 헛될 뿐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마치 안개와 같고 그림자와 같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3. 헛된 것을 버리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려면
헛된 것을 체험한 솔로몬 왕은 말년에 이르러서야 인생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깨우치고 철저히 회개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기록한 전도서 12장 13~14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교훈하였지요.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려면 사람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은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셨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요, 헛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원한 하늘의 것을 목표 삼지 않고, 변질되고 소멸되는 이 땅의 정욕과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에 헛되고 헛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여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사람은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에 썩지 않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 안에서 수고하며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들에 하늘의 영원한 것으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여 향락과 물질과 명예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위하여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통해 물질, 세상 위주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 깨우쳐 주셨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시며 생명을 거둔다면 부자가 쌓아 둔 재물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33절에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간과 노력, 지혜와 정성, 모든 관심을 어디에 두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헛되고 헛된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가장 가치 있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힘차게 달려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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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했을 때 무엇을 구했을까요? ( )
2. 솔로몬이 믿음에서 떠나 범죄하게 된 원인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말씀하신 성경 장절을 써 보세요. ( )
4. 여러분은 어디에 관심을 두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3부 9과‘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들에게 명하신 말씀(신 17:16~19)
1. 말(馬)을 많이 두지 말고, 말을 많이 얻으려고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라.
2. 아내를 많이 두어 마음이 미혹되지 않게 하라.
3. 은금을 자신을 위하여 많이 쌓아 두지 말라.
4. 율법서를 평생 옆에 두어 읽고 지켜 행하라.
2015-08-21
제33과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왕상 18:20~46
읽을말씀 : 왕상 18:20~46 | 외울말씀 : 막 16:20 ㅣ 참고 말씀:왕상 18:39
교육목표 : 우상 숭배에 젖은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 엘리야의 순종과 믿음을 본받게 한다.
이스라엘 역사상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은 백성들을 하나님에게서 등돌리게 만들고, 이방신들을 섬기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들이기까지 하지요. 시돈 왕은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이기도 했는데, 그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으니 이스라엘이 타락의 길로 빠져드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이 극에 달한 시대에 맞춰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나타내며,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 하나님의 사람을 보냅니다. 그가 바로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1. 오직 믿음으로 순종한 엘리야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 전에는 매우 유약한 성품이었습니다. 항상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가 한 시대의 큰 선지자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유약한 성품이 영적으로 담대한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했기에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온 나라를 우상의 소굴로 만들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아합 왕에게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을 전하게 하십니다.
엘리야는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전합니다(왕상 17:1).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합을 피하여 숨을 곳을 지정해 주십니다. 마음이 악하여 하나님을 거역한 아합 왕에게 가뭄의 저주를 선포한다면, 그는 회개하고 돌이키기보다는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비가 내리지 아니하여 그릿 시내가 마르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시돈에 있는 사르밧 과부에게 보냅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떡 한 조각을 공궤받고 가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끊이지 않는 축복을 내려 주기도 하고,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2. 갈멜 산에서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3년 반 동안 지독한 가뭄이 이스라엘 전역을 덮쳤습니다. 열왕기상 1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말씀하십니다.
당시 아합 왕은 엘리야를 잡아 죽이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기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담대히 아합 왕에게 나아갑니다. 엘리야를 보자마자 아합 왕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하며 소리칩니다.
이에 엘리야는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하지요. 즉 3년 반의 가뭄은 왕과 백성의 우상 숭배로 인해 임한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합에게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합니다.
엘리야는 이들과 대결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실 것을 굳건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고 외쳤지요.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알만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며 비, 바람, 폭풍을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이 큰소리로 바알을 부르며 칼과 창으로 피나도록 자기 몸을 상하며 불로 응답해 달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오정이 지나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아무 소리도, 응답도 없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엘리야는 먼저 여호와의 무너진 단을 수축합니다. 그런 다음 번제물 위에 많은 물을 붓게 하지요.
그러면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음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믿도록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3년 반 동안 계속된 가뭄 속에서 무엇보다 귀한 것은 물입니다. 그 귀한 물을 통 넷에 세 번씩이나 제단에 부었습니다. 이는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반드시 행한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불살랐을 때 눈속임 없이,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우상에 불과한 바알은 신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만이 응답하시는 참 신이심을 역력히 보여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부르짖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웠고 도랑의 물을 다 핥았습니다. 이처럼 엘리야가 불의 응답을 받는 놀라운 광경을 지켜본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두려워 떨며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없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기에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도 담대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3. 큰비가 내리기까지 오직 믿음으로 행한 엘리야
엘리야는 오직 믿음으로 거짓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불의 응답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히 회개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바알의 선지자 450명을 하나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여 다 죽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가서 오직 믿음으로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고백한 후, 다시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이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었습니다.
마침내 갈멜 산 정상에 오른 엘리야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지요.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던지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고 허리가 구부러지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엘리야는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간구합니다.
한편 사환에게는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사환이 올라가 바라보고 와서 “아무것도 없나이다” 고백하니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당부합니다. 바다 편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사환에게 무려 일곱 차례나 바라보게 했습니다.
간절한 엘리야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며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는 기도이니 얼마나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했겠습니까. 엘리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오직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리라고 약속하셨어도 구해야 한다는 영계의 법칙을 알았기 때문입니다(겔 36:37). 아무리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다고 언약하셨어도 우리가 구하지 않는다면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믿음의 행함과 함께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끌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만 한 작은 구름만 일어났을 뿐, 아직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 아닌데도 사환에게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합니다. 그러자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고 큰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내보여야 합니다. 기쁨으로 예배드리고 정성껏 예물도 준비하여 드려야 하지요. 또한 의심 없이 끝까지 구하되 입술로 시인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는 못 이루실 일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어떠한 문제도 의심 없이 믿음으로 구할 때 해결사가 되어 주십니다. 엘리야처럼 오직 믿음의 고백하며, 응답받을 때까지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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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스라엘에 3년 반 동안 가뭄이 든 원인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 )
2. 엘리야는 왜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한 것일까요?
3. 엘리야 선지자는 3년 반 동안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기 위해 어떠한 기도를 올렸을까요?
4. 엘리야는 손만 한 작은 구름만 보고도 어떠한 믿음의 고백을 하였나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3부 8과 ‘영원한 것을 위하여’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합 왕’은 어떤 인물일까?
아합은 북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바알을 숭배하는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의 단을 쌓고 섬기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다. 결국 우상 숭배로 인해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가뭄과 기근이 임했다. 또한 궤계를 써서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는 등 수많은 악을 행한다. 마침내 아람과의 전쟁에서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죽어, 그 피를 개들이 핥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교육목표 : 우상 숭배에 젖은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 엘리야의 순종과 믿음을 본받게 한다.
이스라엘 역사상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은 백성들을 하나님에게서 등돌리게 만들고, 이방신들을 섬기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들이기까지 하지요. 시돈 왕은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이기도 했는데, 그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으니 이스라엘이 타락의 길로 빠져드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이 극에 달한 시대에 맞춰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나타내며,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 하나님의 사람을 보냅니다. 그가 바로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1. 오직 믿음으로 순종한 엘리야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 전에는 매우 유약한 성품이었습니다. 항상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가 한 시대의 큰 선지자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유약한 성품이 영적으로 담대한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했기에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온 나라를 우상의 소굴로 만들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아합 왕에게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을 전하게 하십니다.
엘리야는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전합니다(왕상 17:1).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합을 피하여 숨을 곳을 지정해 주십니다. 마음이 악하여 하나님을 거역한 아합 왕에게 가뭄의 저주를 선포한다면, 그는 회개하고 돌이키기보다는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비가 내리지 아니하여 그릿 시내가 마르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시돈에 있는 사르밧 과부에게 보냅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떡 한 조각을 공궤받고 가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끊이지 않는 축복을 내려 주기도 하고,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2. 갈멜 산에서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3년 반 동안 지독한 가뭄이 이스라엘 전역을 덮쳤습니다. 열왕기상 1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말씀하십니다.
당시 아합 왕은 엘리야를 잡아 죽이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기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담대히 아합 왕에게 나아갑니다. 엘리야를 보자마자 아합 왕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하며 소리칩니다.
이에 엘리야는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하지요. 즉 3년 반의 가뭄은 왕과 백성의 우상 숭배로 인해 임한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합에게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합니다.
엘리야는 이들과 대결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실 것을 굳건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고 외쳤지요.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알만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며 비, 바람, 폭풍을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이 큰소리로 바알을 부르며 칼과 창으로 피나도록 자기 몸을 상하며 불로 응답해 달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오정이 지나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아무 소리도, 응답도 없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엘리야는 먼저 여호와의 무너진 단을 수축합니다. 그런 다음 번제물 위에 많은 물을 붓게 하지요.
그러면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음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믿도록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3년 반 동안 계속된 가뭄 속에서 무엇보다 귀한 것은 물입니다. 그 귀한 물을 통 넷에 세 번씩이나 제단에 부었습니다. 이는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반드시 행한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불살랐을 때 눈속임 없이,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우상에 불과한 바알은 신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만이 응답하시는 참 신이심을 역력히 보여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부르짖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웠고 도랑의 물을 다 핥았습니다. 이처럼 엘리야가 불의 응답을 받는 놀라운 광경을 지켜본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두려워 떨며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없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기에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도 담대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3. 큰비가 내리기까지 오직 믿음으로 행한 엘리야
엘리야는 오직 믿음으로 거짓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불의 응답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히 회개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바알의 선지자 450명을 하나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여 다 죽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가서 오직 믿음으로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고백한 후, 다시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이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었습니다.
마침내 갈멜 산 정상에 오른 엘리야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지요.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던지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고 허리가 구부러지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엘리야는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간구합니다.
한편 사환에게는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사환이 올라가 바라보고 와서 “아무것도 없나이다” 고백하니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당부합니다. 바다 편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사환에게 무려 일곱 차례나 바라보게 했습니다.
간절한 엘리야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며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는 기도이니 얼마나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했겠습니까. 엘리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오직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리라고 약속하셨어도 구해야 한다는 영계의 법칙을 알았기 때문입니다(겔 36:37). 아무리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다고 언약하셨어도 우리가 구하지 않는다면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믿음의 행함과 함께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끌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만 한 작은 구름만 일어났을 뿐, 아직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 아닌데도 사환에게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합니다. 그러자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고 큰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내보여야 합니다. 기쁨으로 예배드리고 정성껏 예물도 준비하여 드려야 하지요. 또한 의심 없이 끝까지 구하되 입술로 시인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는 못 이루실 일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어떠한 문제도 의심 없이 믿음으로 구할 때 해결사가 되어 주십니다. 엘리야처럼 오직 믿음의 고백하며, 응답받을 때까지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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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스라엘에 3년 반 동안 가뭄이 든 원인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 )
2. 엘리야는 왜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한 것일까요?
3. 엘리야 선지자는 3년 반 동안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기 위해 어떠한 기도를 올렸을까요?
4. 엘리야는 손만 한 작은 구름만 보고도 어떠한 믿음의 고백을 하였나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3부 8과 ‘영원한 것을 위하여’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합 왕’은 어떤 인물일까?
아합은 북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바알을 숭배하는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의 단을 쌓고 섬기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다. 결국 우상 숭배로 인해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가뭄과 기근이 임했다. 또한 궤계를 써서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는 등 수많은 악을 행한다. 마침내 아람과의 전쟁에서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죽어, 그 피를 개들이 핥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2015-08-14
제32과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막 9:21~29
읽을말씀 : 막 9:21~29 | 외울말씀 : 막 9:23 ㅣ 참고 말씀:겔 36:37
교육목표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깨닫게 한다.
질병이나 자녀, 가정, 직장, 학교, 물질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인생이 힘들고 고달프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난다면 절망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 열쇠는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능치 못할 일이 전혀 없는 하나님께 우리가 믿음을 내보이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문제라 해도 해결해 주십니다.
1.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비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께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간구하지요. 여기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한 것은 믿음의 고백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것은 하실 수 있고, 어떤 것은 못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믿음 없이 요행을 바라고 나왔다는 것을 보여 주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며 그의 믿음 없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이에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합니다.
그렇다면 그 아비는 왜 “내가 믿나이다” 고백하고는 또다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한 것일까요? 만일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을 소유했다면 굳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간청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비가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자신의 믿음이 지식적인 믿음 곧 육적인 믿음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며,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는 등 놀라운 역사를 베푸시는 분임을 소문을 통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머리로 아는 것은 육적인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기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육적인 믿음으로는 응답받을 수 없지만 영적인 믿음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아비는 예수님께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이처럼 아이의 아비가 겸비한 자세로 영적인 믿음을 구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막 9:25)고 명하시니 그 즉시 귀신이 나갔습니다.
2.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한 조건
첫째로, 긍정적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머리로는 믿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없었기에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진실하게 간구하였지요.
이처럼 우리도 응답을 받으려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마음에 온전히 믿어지지 않으면 솔직하게 영적인 믿음을 달라고 간구해야 하지요.
하나님께 구한 후 당장 눈앞에 드러난 것이 없다 해도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하늘에서 응답이 오다가도 공중에서 흩어지고 맙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기 때문에 응답을 받을 수 없지요. 따라서 부정적인 말이나 믿음 없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
둘째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영적인 믿음을 갈망하며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우선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다면 신속히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대로 열심히 행하면서 영적인 믿음을 주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육적인 믿음은 스스로 가질 수 있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은 오직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응답받을 때까지 부르짖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께 부르짖어 구하였기에 마침내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어 주겠다고 하셨어도 우리 편에서는 끝까지 구해야 합니다.
에스겔 36장 37절에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해 놓고 아무 응답이 없다고 중도에 포기해 버립니다. 의심 없이 끝까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의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십니다.
3.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영적인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루실 수 있습니다.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나 자녀, 학교, 직장, 사업터의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이 사람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수없이 행합니다.
홍해를 갈라 사람들을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고, 태양을 중천에 머물게 하거나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가 하면, 먹지 못할 쓴물을 먹을 수 있는 단물로 바꾸고, 반석을 치니 물이 솟아났지요.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각종 질병들을 치료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은 성경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권능의 역사가 멈추지 않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각종 암,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에이즈 등 불치병, 난치병으로 소망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온전케 되었고, 소아마비, 각종 사고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받고 그 자리에서 걷고 뛰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기도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흉터 없이 깨끗해졌습니다. 뇌출혈이나 급체, 연탄가스 중독으로 의식이 없고 경직된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 기도받고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5년, 10년, 20년 동안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 외에도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듣고, 말하지 못하던 사람이 말하는 등 놀라운 권능의 역사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치료의 역사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하면,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즉시 멈추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쬘 때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며,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였습니다. 매년 하계 수련회 때는 전국이 태풍이나 장마로 큰 피해를 입어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무지개는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데 맑은 하늘에서 수없이 보았고, 잠자리 떼가 해 주변에서 눈송이처럼 쏟아져 내려와 모기와 해충을 잡아먹고 성도들 몸에 앉아 즐겁게 해 주는 체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영의 공간을 열어 기사와 표적, 권능을 나타내시며 성경이 참임을 믿을 수 있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과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이러한 권능을 체험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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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보배 중의 보배요,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문제라 할지라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무엇일까요? ( )
2.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의 아비는 왜 예수님께 “내가 믿나이다” 고백하고는 또다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했을까요?
3. 아이의 아비가 요행을 바라며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막 9:23)
4. 부정적인 말이나 믿음이 없는 말은 왜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부 7과‘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육적인 믿음’은?
눈으로 봐서 확인이 되고, 자신이 아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될 때라야 믿는 믿음을 말한다.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으로서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 한다..
교육목표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깨닫게 한다.
질병이나 자녀, 가정, 직장, 학교, 물질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인생이 힘들고 고달프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난다면 절망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 열쇠는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능치 못할 일이 전혀 없는 하나님께 우리가 믿음을 내보이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문제라 해도 해결해 주십니다.
1.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비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께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간구하지요. 여기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한 것은 믿음의 고백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것은 하실 수 있고, 어떤 것은 못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믿음 없이 요행을 바라고 나왔다는 것을 보여 주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며 그의 믿음 없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이에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합니다.
그렇다면 그 아비는 왜 “내가 믿나이다” 고백하고는 또다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한 것일까요? 만일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을 소유했다면 굳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간청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비가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자신의 믿음이 지식적인 믿음 곧 육적인 믿음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며,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는 등 놀라운 역사를 베푸시는 분임을 소문을 통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머리로 아는 것은 육적인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기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육적인 믿음으로는 응답받을 수 없지만 영적인 믿음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아비는 예수님께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이처럼 아이의 아비가 겸비한 자세로 영적인 믿음을 구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막 9:25)고 명하시니 그 즉시 귀신이 나갔습니다.
2.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한 조건
첫째로, 긍정적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머리로는 믿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없었기에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진실하게 간구하였지요.
이처럼 우리도 응답을 받으려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마음에 온전히 믿어지지 않으면 솔직하게 영적인 믿음을 달라고 간구해야 하지요.
하나님께 구한 후 당장 눈앞에 드러난 것이 없다 해도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하늘에서 응답이 오다가도 공중에서 흩어지고 맙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기 때문에 응답을 받을 수 없지요. 따라서 부정적인 말이나 믿음 없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
둘째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영적인 믿음을 갈망하며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우선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다면 신속히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대로 열심히 행하면서 영적인 믿음을 주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육적인 믿음은 스스로 가질 수 있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은 오직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응답받을 때까지 부르짖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께 부르짖어 구하였기에 마침내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어 주겠다고 하셨어도 우리 편에서는 끝까지 구해야 합니다.
에스겔 36장 37절에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해 놓고 아무 응답이 없다고 중도에 포기해 버립니다. 의심 없이 끝까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의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십니다.
3.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영적인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루실 수 있습니다.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나 자녀, 학교, 직장, 사업터의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이 사람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수없이 행합니다.
홍해를 갈라 사람들을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고, 태양을 중천에 머물게 하거나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가 하면, 먹지 못할 쓴물을 먹을 수 있는 단물로 바꾸고, 반석을 치니 물이 솟아났지요.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각종 질병들을 치료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은 성경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권능의 역사가 멈추지 않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각종 암,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에이즈 등 불치병, 난치병으로 소망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온전케 되었고, 소아마비, 각종 사고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받고 그 자리에서 걷고 뛰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기도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흉터 없이 깨끗해졌습니다. 뇌출혈이나 급체, 연탄가스 중독으로 의식이 없고 경직된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 기도받고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5년, 10년, 20년 동안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 외에도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듣고, 말하지 못하던 사람이 말하는 등 놀라운 권능의 역사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치료의 역사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하면,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즉시 멈추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쬘 때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며,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였습니다. 매년 하계 수련회 때는 전국이 태풍이나 장마로 큰 피해를 입어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무지개는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데 맑은 하늘에서 수없이 보았고, 잠자리 떼가 해 주변에서 눈송이처럼 쏟아져 내려와 모기와 해충을 잡아먹고 성도들 몸에 앉아 즐겁게 해 주는 체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영의 공간을 열어 기사와 표적, 권능을 나타내시며 성경이 참임을 믿을 수 있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과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이러한 권능을 체험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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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보배 중의 보배요,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문제라 할지라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무엇일까요? ( )
2.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의 아비는 왜 예수님께 “내가 믿나이다” 고백하고는 또다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했을까요?
3. 아이의 아비가 요행을 바라며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막 9:23)
4. 부정적인 말이나 믿음이 없는 말은 왜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부 7과‘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육적인 믿음’은?
눈으로 봐서 확인이 되고, 자신이 아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될 때라야 믿는 믿음을 말한다.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으로서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 한다..
2015-08-07
제31과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는가
요일 3:21~22
읽을말씀 : 요일 3:21~22 | 외울말씀 : 요일 3:22 l 참고 말씀:막 11:24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와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는 비결을 알려 준다.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 그 뜻대로 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5장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은 어떻게 귀신 들린 딸의 문제를 응답받을 수 있었을까요?
1. 겸비함으로 끝까지 믿음을 내보인 가나안 여인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악귀를 물리치며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귀신 들린 딸을 능히 고쳐 주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예수님께서 어디 계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아가 큰소리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다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답변하십니다.
이에 여인은 예수님께 절하며 다시 한 번 “주여 저를 도우소서” 간청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답변하시지요. 이는 응답받기 원하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해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대부분의 경우 ‘내가 개 취급을 당했다.’며 몹시 자존심이 상해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나거나, ‘나는 응답받을 수 없나 보다.’ 하고 낙심해 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끝까지 믿음을 내보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여인의 딸이 즉시 치료되었습니다. 이처럼 가나안 여인이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인의 마음이 선하고 온유한 데다, 자신을 철저히 낮추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끝까지 예수님께 구하는 믿음을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2.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약속하셨지요. 그런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하고, 기도를 하는데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죄악을 품고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방해하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구할 때라야 기도의 응답이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했습니다. 내가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내 죄를 용서하시지 않으니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부간에, 부모 자녀 간에, 형제간에, 이웃 간에, 동료 간에 불화했다면 먼저 화해를 해야 합니다.
셋째로,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구할 경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영혼 구원하는 데 사용하려는 목적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므로 그 믿음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오락을 위해서나 이웃과의 경쟁 심리 등 악의로 구한다면 그것은 욕심이요, 악한 기도이므로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넷째로,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말씀했습니다. 계명을 지킬 때라야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습니다(요일 3:21∼22). 그러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기에 기도의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여섯째로,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심으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이 임하고, 물질을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또한 봉사를 심으면 강건한 축복이 임하는 등 심은 대로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응답받으려면 믿음으로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3. 신속히 하나님께 응답받으려면
1)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때에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추진력이 있고 빠르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목적 없이 일을 하면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중간에 흐지부지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분명하면 중언부언 기도하지 않습니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더욱 간절히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되지요. 이를 통해 응답을 체험하면서 더욱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 되고 믿음도 성장합니다.
3)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 없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서도 용서와 사랑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망의 길로 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며 간절히 기도하셨지요. 이러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는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고 우리는 값없이 구원의 은총을 입었기에 영혼들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섬기는 목자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만일 우리가 그저 타성에 젖어 기도한다면 사랑의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리는 기도가 진실한 사랑의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할 때 자신의 집을 짓는 것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설계와 법적인 절차, 일꾼과 기술, 날씨 등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기도하지요. 또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주관하여 방해받지 않고 모든 것이 형통하도록 기도하며,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마음에서 놓지 않습니다.
영혼들을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문제를 내 것으로 여기며 그들의 마음이 되어 기도하게 됩니다. 섬기는 목자를 위해 기도할 때도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원하는 간절한 마음과 영혼들이 진리 안에 살기를 바라는 목자의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나는 어떠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 믿음과 사랑으로 응답받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형식적으로 기도하지는 않는지, 자신을 잘 점검하여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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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수로보니게 여인이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2. 우리가 신속히 응답받으려면 어떠한 기도를 올려야 할까요?
① ( )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② ( ) 있는 기도를 해야 한다.
③ ( )의 기도를 해야 한다.
3.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 )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② 형제와 ( )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③ ( )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④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⑤ ( )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⑥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부 6과‘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가나안 여인’ (마 15장)
수로보니게 여인을 말한다. ‘수로보니게’(막 7:26)는 팔레스타인 북부 수리아 지역의 ‘베니게’의 옛 이름이다. 선한 마음을 소유한 수로보니게 여인은 겸비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을 하여 마음의 소원대로 귀신 들린 딸이 치료받았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와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는 비결을 알려 준다.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 그 뜻대로 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5장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은 어떻게 귀신 들린 딸의 문제를 응답받을 수 있었을까요?
1. 겸비함으로 끝까지 믿음을 내보인 가나안 여인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악귀를 물리치며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귀신 들린 딸을 능히 고쳐 주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예수님께서 어디 계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아가 큰소리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다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답변하십니다.
이에 여인은 예수님께 절하며 다시 한 번 “주여 저를 도우소서” 간청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답변하시지요. 이는 응답받기 원하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해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대부분의 경우 ‘내가 개 취급을 당했다.’며 몹시 자존심이 상해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나거나, ‘나는 응답받을 수 없나 보다.’ 하고 낙심해 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끝까지 믿음을 내보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여인의 딸이 즉시 치료되었습니다. 이처럼 가나안 여인이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인의 마음이 선하고 온유한 데다, 자신을 철저히 낮추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끝까지 예수님께 구하는 믿음을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2.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약속하셨지요. 그런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하고, 기도를 하는데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죄악을 품고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방해하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구할 때라야 기도의 응답이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했습니다. 내가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내 죄를 용서하시지 않으니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부간에, 부모 자녀 간에, 형제간에, 이웃 간에, 동료 간에 불화했다면 먼저 화해를 해야 합니다.
셋째로,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구할 경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영혼 구원하는 데 사용하려는 목적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므로 그 믿음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오락을 위해서나 이웃과의 경쟁 심리 등 악의로 구한다면 그것은 욕심이요, 악한 기도이므로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넷째로,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말씀했습니다. 계명을 지킬 때라야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습니다(요일 3:21∼22). 그러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기에 기도의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여섯째로,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심으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이 임하고, 물질을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또한 봉사를 심으면 강건한 축복이 임하는 등 심은 대로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응답받으려면 믿음으로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3. 신속히 하나님께 응답받으려면
1)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때에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추진력이 있고 빠르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목적 없이 일을 하면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중간에 흐지부지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분명하면 중언부언 기도하지 않습니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더욱 간절히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되지요. 이를 통해 응답을 체험하면서 더욱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 되고 믿음도 성장합니다.
3)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 없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서도 용서와 사랑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망의 길로 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며 간절히 기도하셨지요. 이러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는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고 우리는 값없이 구원의 은총을 입었기에 영혼들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섬기는 목자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만일 우리가 그저 타성에 젖어 기도한다면 사랑의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리는 기도가 진실한 사랑의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할 때 자신의 집을 짓는 것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설계와 법적인 절차, 일꾼과 기술, 날씨 등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기도하지요. 또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주관하여 방해받지 않고 모든 것이 형통하도록 기도하며,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마음에서 놓지 않습니다.
영혼들을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문제를 내 것으로 여기며 그들의 마음이 되어 기도하게 됩니다. 섬기는 목자를 위해 기도할 때도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원하는 간절한 마음과 영혼들이 진리 안에 살기를 바라는 목자의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나는 어떠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 믿음과 사랑으로 응답받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형식적으로 기도하지는 않는지, 자신을 잘 점검하여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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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수로보니게 여인이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2. 우리가 신속히 응답받으려면 어떠한 기도를 올려야 할까요?
① ( )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② ( ) 있는 기도를 해야 한다.
③ ( )의 기도를 해야 한다.
3.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 )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② 형제와 ( )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③ ( )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④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⑤ ( )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⑥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부 6과‘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가나안 여인’ (마 15장)
수로보니게 여인을 말한다. ‘수로보니게’(막 7:26)는 팔레스타인 북부 수리아 지역의 ‘베니게’의 옛 이름이다. 선한 마음을 소유한 수로보니게 여인은 겸비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을 하여 마음의 소원대로 귀신 들린 딸이 치료받았다.
2015-07-31
제30과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 7:7~11
읽을말씀 : 마 7:7~11 | 외울말씀 : 마 7:11 l 참고 말씀:요삼 1:4
교육목표 :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지 알아본다.
부모 입장에서는 사랑스런 자녀가 무엇을 구할 때에 당연히 그것을 들어주고자 합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시고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되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9∼11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마태복음 7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받기 원하는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 듬뿍 담겨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능력과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시편 105편 4절에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는 반드시 믿음 곧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30분 기도하는 것도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1시간, 2시간도 충만히 기도할 수 있지요. 세상 사람들이 술, 담배를 끊으려면 힘들지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단번에 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세상을 이기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려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 예배에 참석하며 ‘하나님이 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지’, ‘왜 말씀이 하나님이신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 6:33).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영혼 구원 곧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성결하기를 기도하라는 의미이지요. 우리가 죄를 버리고 진리대로 행하며 성결을 이루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 영혼이 잘된 사람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요삼 1:2).
셋째로, 일꾼이 되기 위해, 사명 감당을 위해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한 뒤에는 일꾼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일꾼 된 사람은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간구해야 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일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세상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승진하여 더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안에서도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 더 큰 사명이 주어지고 많은 상급을 받게 됩니다. 천국에서 받는 상급은 이 땅에서 받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영화로우므로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기 위해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의식주에 관한 것 등 육적인 것을 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의식주, 일터, 사업터, 건강 등 육적인 분야도 하나님께 응답받아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넉넉히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정 잘 아시니까 주시겠지.’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구해도 주시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한 대로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경우입니다. 자칫 욕심이 잉태하고 죄를 지어 사망의 길로 갈 수도 있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찌 응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2.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과연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예수님께서 찾으라고 당부하신 것일까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 받은 생령(살아 있는 영)이었습니다. 악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통하며 에덴동산에서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지음으로 결국 죽게 되었지요. 여기서 죽음이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니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지요. 아담의 영이 죽지 않았을 때는 생령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하였는데, 죄 때문에 영이 죽자 더 이상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범죄한 아담과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은 영이 죽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대로 정욕적이고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지요(전 3:18).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죄악 가운데 살던 우리가 사람답게 살려면 죽은 영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지요. 죽은 영이 살아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 안에 오셔서 죽은 영을 살리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어둠의 일들을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로써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진리대로 행해 나가는 것이 곧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이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3.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의 마음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전도자나 여러 방법을 통해 또는 천하 만물에 담긴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느끼게 해 주심으로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해 주셨지요.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릴 차례입니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라” 하셨는데 이는 ‘하늘 문’ 곧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 문을 어떻게 두드려야 할까요?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삼서 1장 4절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면 부모는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진리 곧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중심에서 통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날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요.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했습니다(시 34:18).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는 단어를 채워 보세요.
1.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 )을 구한다는 의미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는 반드시 믿음 곧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 )이 누구신지 ( ) 노력한다는 뜻이다.
2.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대로 ( ) 것을 말한다.
우리가 진리 곧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
을 주신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중심에서 ( )하는 것이다.
3.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예수님께서는 찾으라고 당부하신 것일까요?
4. 요한삼서 1장 4절을 외워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부 5과 ‘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는가’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이란?
사람의 겉모습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근본인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으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지 알아본다.
부모 입장에서는 사랑스런 자녀가 무엇을 구할 때에 당연히 그것을 들어주고자 합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시고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되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9∼11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마태복음 7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받기 원하는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 듬뿍 담겨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능력과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시편 105편 4절에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는 반드시 믿음 곧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30분 기도하는 것도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1시간, 2시간도 충만히 기도할 수 있지요. 세상 사람들이 술, 담배를 끊으려면 힘들지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단번에 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세상을 이기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려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 예배에 참석하며 ‘하나님이 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지’, ‘왜 말씀이 하나님이신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 6:33).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영혼 구원 곧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성결하기를 기도하라는 의미이지요. 우리가 죄를 버리고 진리대로 행하며 성결을 이루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 영혼이 잘된 사람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요삼 1:2).
셋째로, 일꾼이 되기 위해, 사명 감당을 위해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한 뒤에는 일꾼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일꾼 된 사람은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간구해야 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일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세상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승진하여 더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안에서도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 더 큰 사명이 주어지고 많은 상급을 받게 됩니다. 천국에서 받는 상급은 이 땅에서 받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영화로우므로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기 위해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의식주에 관한 것 등 육적인 것을 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의식주, 일터, 사업터, 건강 등 육적인 분야도 하나님께 응답받아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넉넉히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정 잘 아시니까 주시겠지.’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구해도 주시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한 대로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경우입니다. 자칫 욕심이 잉태하고 죄를 지어 사망의 길로 갈 수도 있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찌 응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2.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과연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예수님께서 찾으라고 당부하신 것일까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 받은 생령(살아 있는 영)이었습니다. 악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통하며 에덴동산에서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지음으로 결국 죽게 되었지요. 여기서 죽음이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니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지요. 아담의 영이 죽지 않았을 때는 생령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하였는데, 죄 때문에 영이 죽자 더 이상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범죄한 아담과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은 영이 죽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대로 정욕적이고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지요(전 3:18).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죄악 가운데 살던 우리가 사람답게 살려면 죽은 영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지요. 죽은 영이 살아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 안에 오셔서 죽은 영을 살리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어둠의 일들을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로써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진리대로 행해 나가는 것이 곧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이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3.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의 마음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전도자나 여러 방법을 통해 또는 천하 만물에 담긴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느끼게 해 주심으로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해 주셨지요.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릴 차례입니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라” 하셨는데 이는 ‘하늘 문’ 곧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 문을 어떻게 두드려야 할까요?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삼서 1장 4절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면 부모는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진리 곧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중심에서 통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날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요.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했습니다(시 34:18).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는 단어를 채워 보세요.
1.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 )을 구한다는 의미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는 반드시 믿음 곧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 )이 누구신지 ( ) 노력한다는 뜻이다.
2.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대로 ( ) 것을 말한다.
우리가 진리 곧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
을 주신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중심에서 ( )하는 것이다.
3.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예수님께서는 찾으라고 당부하신 것일까요?
4. 요한삼서 1장 4절을 외워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부 5과 ‘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는가’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이란?
사람의 겉모습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근본인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으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2015-07-24
제29과참마음과 온전한 믿음
히 10:22
읽을말씀 : 히 10:22 | 외울말씀 : 히 10:22 l 참고 말씀:마 5:28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방법을 알려 준다.
오늘날처럼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악한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나는 죄짓지 않고 산다, 나름대로 선하게 산다’는 사람도 많지만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조명하면 양심의 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양심의 악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해서 버리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참마음을 이루려면
1) 양심의 악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양심의 악을 깨달으려면 욕심과 사심, 간음과 정욕, 변개하는 마음 등 몇 가지 분야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큰 뿌리를 뽑아내면 그 잔뿌리까지 뽑히게 되지요. 즉 욕심과 사심, 간음과 정욕, 변개함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 나오는 것입니다.
먼저, 욕심과 사심에 관한 분야를 살펴볼까요?
여기에는 물질, 명예, 권세에 대한 욕심도 포함됩니다. 자존심, 자신이 높임 받고 인정받으려는 마음, 자기를 고집하고 내 것과 내 가족을 더 중요시하는 사사로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과 사심으로 인해 파생되는 악이 얼마나 많은지요? 욕심을 채우려다 남을 속이게 되고, 원하는 대로 욕심을 채우지 못하면 시기, 질투, 미움, 살인, 분냄, 다툼이 나오지요.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4~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욕심과 사심을 얼마나 버렸습니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노력 없이 취하려는 마음, 남의 것이 내 것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없었는지, ‘하나님 나라보다 내 유익을 앞세우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간음과 정욕에 대한 분야입니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너무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요즘은 광고나 화보를 통해 민망할 정도로 몸을 드러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TV나 인터넷도 선정적인 것들을 부추기므로 특히 미성년자나 학생들이 좋지 않은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의 정욕을 자극하면서 죄를 범하도록 이끄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했습니다(마 5:28). 그러므로 정욕의 근본 뿌리까지 벗어 버려야 합니다. 간음의 속성이 있으면 언젠가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므로 순간 스치는 생각이나 눈빛에 담긴 마음도 아십니다. 그러니 “내 마음과 행실에 부끄러울 만한 것이 전혀 없다.”고 담대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3단계만 돼도 행위적인 간음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죄성까지도 온전히 버려야 깨끗하다 인정하실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2절에는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했습니다. 이처럼 이성을 대할 때 어떤 정욕도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변개하는 마음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투기하여 죽이려고 집요하게 추적했습니다. 아무 죄 없이 쫓겨 다니던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사울을 해칠 마음이 없다.”며 감동적인 고백을 합니다. 사울은 그 말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합니다(삼상 24:19).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변개하여 미움과 시기가 불일 듯 일어나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선한 것에 감동을 받았지만 마음을 지키지는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육의 사람은 변개하는 마음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제 육이 무익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으로 들어가기로 결단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결단했던 것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 “작정해서 기도한다, 금식한다.” 해 놓고도 마음이 변해 그만둡니다. 뜨거운 마음에 서원을 하고서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그런 서원을 했나.’ 고민하기도 하지요.
이런 변개함은 다 악에서 나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악이 요동하므로 선을 이루기 원하는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변개하면 성결을 이루는 데도 많은 지장을 받습니다. 들은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며 육을 좇으려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므로 영으로 속히 들어가지 못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마음에 정하고 입으로 낸 것은 그대로 지키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2) 몸을 맑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자신의 악을 벗어 버리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 하면 버리고, “하지 말라” 하면 하지 않고, “지키라” 하면 지키고, “하라” 하면 하는 것이 곧 맑은 물로 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의 분량이 성장하는 과정은 무엇일까요?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양심의 악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자신을 씻어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한 것처럼 날마다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의 악을 씻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 부모를 통해 유전된 원죄와 자라면서 듣고 보고 배우고, 입력된 죄악들로 ‘나’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런 ‘자기’는 쓸데없는 것입니다. 비진리로 만들어진 자기를 버리고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내 안에 그리스도만 계시도록 진리로만 채워야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 해서 모두가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면서도 “사람이 성결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지 죄의 속성 자체를 벗을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하고 온전하라 하셨습니다(벧전 1:16 \\\; 마 5:48).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기 위해서는 죄의 속성을 당연히 버려야 합니다. 육이 얼마나 헛된지를 마음 중심에서 깨우쳐야 배설물처럼 버릴 수가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 가운데 부지런히 양심의 악을 깨닫고 마음을 맑은 물로 씻고 또 씻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참마음을 신속히 이루시기 바랍니다.
2.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온전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닙니다. 간절히 사모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양심의 악을 하나하나 발견해야 합니다. 또 발견하고 깨우쳤으면 불같이 기도하며, 명심하여 근신함으로 자기를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열심히 힘쓰고 애써 어느 정도 악을 버린 것 같은데, 또다시 악의 모습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양파를 벗기고 벗겨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지만 결국엔 다 벗겨지듯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악을 버려 나가면 성결에 이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할 때마다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성결을 향해 한걸음 더 가까이 가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악의 뿌리를 온전히 뽑을 때까지 영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결코 늦춰서는 안 됩니다. 양심의 악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으로 날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함으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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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히브리서 10장 22절에 ‘몸을 맑은 물로 씻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우리가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다.
② 육의 사람은 변개하는 마음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③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④ 사람이 성결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3. 사람이 죄의 속성을 버리고 성결될 수 있을까요?
베드로전서 1장 16절과 마태복음 5장 48절을 외워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부 4과‘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양심’이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이다. 이는 타고난 근본 마음과 각자의 성장 환경이나 배움 속에서 나름대로 ‘이것이 옳다’라고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르며 대부분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되어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방법을 알려 준다.
오늘날처럼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악한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나는 죄짓지 않고 산다, 나름대로 선하게 산다’는 사람도 많지만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조명하면 양심의 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양심의 악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해서 버리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참마음을 이루려면
1) 양심의 악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양심의 악을 깨달으려면 욕심과 사심, 간음과 정욕, 변개하는 마음 등 몇 가지 분야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큰 뿌리를 뽑아내면 그 잔뿌리까지 뽑히게 되지요. 즉 욕심과 사심, 간음과 정욕, 변개함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 나오는 것입니다.
먼저, 욕심과 사심에 관한 분야를 살펴볼까요?
여기에는 물질, 명예, 권세에 대한 욕심도 포함됩니다. 자존심, 자신이 높임 받고 인정받으려는 마음, 자기를 고집하고 내 것과 내 가족을 더 중요시하는 사사로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과 사심으로 인해 파생되는 악이 얼마나 많은지요? 욕심을 채우려다 남을 속이게 되고, 원하는 대로 욕심을 채우지 못하면 시기, 질투, 미움, 살인, 분냄, 다툼이 나오지요.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4~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욕심과 사심을 얼마나 버렸습니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노력 없이 취하려는 마음, 남의 것이 내 것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없었는지, ‘하나님 나라보다 내 유익을 앞세우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간음과 정욕에 대한 분야입니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너무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요즘은 광고나 화보를 통해 민망할 정도로 몸을 드러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TV나 인터넷도 선정적인 것들을 부추기므로 특히 미성년자나 학생들이 좋지 않은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의 정욕을 자극하면서 죄를 범하도록 이끄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했습니다(마 5:28). 그러므로 정욕의 근본 뿌리까지 벗어 버려야 합니다. 간음의 속성이 있으면 언젠가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므로 순간 스치는 생각이나 눈빛에 담긴 마음도 아십니다. 그러니 “내 마음과 행실에 부끄러울 만한 것이 전혀 없다.”고 담대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3단계만 돼도 행위적인 간음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죄성까지도 온전히 버려야 깨끗하다 인정하실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2절에는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했습니다. 이처럼 이성을 대할 때 어떤 정욕도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변개하는 마음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투기하여 죽이려고 집요하게 추적했습니다. 아무 죄 없이 쫓겨 다니던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사울을 해칠 마음이 없다.”며 감동적인 고백을 합니다. 사울은 그 말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합니다(삼상 24:19).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변개하여 미움과 시기가 불일 듯 일어나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선한 것에 감동을 받았지만 마음을 지키지는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육의 사람은 변개하는 마음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제 육이 무익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으로 들어가기로 결단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결단했던 것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 “작정해서 기도한다, 금식한다.” 해 놓고도 마음이 변해 그만둡니다. 뜨거운 마음에 서원을 하고서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그런 서원을 했나.’ 고민하기도 하지요.
이런 변개함은 다 악에서 나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악이 요동하므로 선을 이루기 원하는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변개하면 성결을 이루는 데도 많은 지장을 받습니다. 들은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며 육을 좇으려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므로 영으로 속히 들어가지 못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마음에 정하고 입으로 낸 것은 그대로 지키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2) 몸을 맑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자신의 악을 벗어 버리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 하면 버리고, “하지 말라” 하면 하지 않고, “지키라” 하면 지키고, “하라” 하면 하는 것이 곧 맑은 물로 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의 분량이 성장하는 과정은 무엇일까요?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양심의 악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자신을 씻어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한 것처럼 날마다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의 악을 씻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 부모를 통해 유전된 원죄와 자라면서 듣고 보고 배우고, 입력된 죄악들로 ‘나’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런 ‘자기’는 쓸데없는 것입니다. 비진리로 만들어진 자기를 버리고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내 안에 그리스도만 계시도록 진리로만 채워야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 해서 모두가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면서도 “사람이 성결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지 죄의 속성 자체를 벗을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하고 온전하라 하셨습니다(벧전 1:16 \\\; 마 5:48).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기 위해서는 죄의 속성을 당연히 버려야 합니다. 육이 얼마나 헛된지를 마음 중심에서 깨우쳐야 배설물처럼 버릴 수가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 가운데 부지런히 양심의 악을 깨닫고 마음을 맑은 물로 씻고 또 씻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참마음을 신속히 이루시기 바랍니다.
2.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온전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닙니다. 간절히 사모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양심의 악을 하나하나 발견해야 합니다. 또 발견하고 깨우쳤으면 불같이 기도하며, 명심하여 근신함으로 자기를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열심히 힘쓰고 애써 어느 정도 악을 버린 것 같은데, 또다시 악의 모습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양파를 벗기고 벗겨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지만 결국엔 다 벗겨지듯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악을 버려 나가면 성결에 이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할 때마다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성결을 향해 한걸음 더 가까이 가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악의 뿌리를 온전히 뽑을 때까지 영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결코 늦춰서는 안 됩니다. 양심의 악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으로 날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함으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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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히브리서 10장 22절에 ‘몸을 맑은 물로 씻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우리가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다.
② 육의 사람은 변개하는 마음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③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④ 사람이 성결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3. 사람이 죄의 속성을 버리고 성결될 수 있을까요?
베드로전서 1장 16절과 마태복음 5장 48절을 외워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부 4과‘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양심’이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이다. 이는 타고난 근본 마음과 각자의 성장 환경이나 배움 속에서 나름대로 ‘이것이 옳다’라고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르며 대부분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되어 있다.
2015-07-17
제28과믿음의 씨앗을 심자
갈 6:7~9
읽을말씀 : 갈 6:7~9 | 외울말씀 : 갈 6:9 l 참고 말씀:요 14:21
교육목표 : 사람의 마음 밭을 개간하여 믿음의 씨앗을 심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방법을 깨닫게 한다.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땅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기 마련이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사랑하는 자녀들이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를 원하십니다. 과연 어떻게 심고 거두어야 할까요?
1.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
두 사람이 똑같은 환경 속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추수 때 한 사람은 풍성한 소출을 거둔 반면, 한 사람은 소출이 아주 미미했지요. 알고 보니 소출이 적은 사람은 농사짓는 법칙대로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해야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축복받지 못하고, 일이 꼬이며 어려움을 겪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눈에 띄는 축복이나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 하며 심었는데도 받지 못했다면 이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 앞에 심었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육을 좇아 육으로 심은 것은 육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역사를 좇아 영으로 심은 것은 영의 열매로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영계의 법칙이지요.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핵심은 마음을 변화시켜 옥토로 만드는 것입니다. 즉 마음의 악을 버리고 빛으로, 선으로, 진리로 채워 하나님 형상을 닮아야 하지요. 이것이 곧 축복의 비결입니다. 아무리 “주님을 믿습니다,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합니다.” 해도 마음 밭을 개간하지 않고 여전히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의 송사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이 있으니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지요.
2.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1) 마음 밭을 개간해야 합니다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 좋은 씨앗을 많이 뿌려도 토질이 나쁘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가령, 단단한 길가에 씨를 뿌린다면 싹이 나기 어렵지요. 새가 날아와 씨를 먹기도 하고, 햇볕에 타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밭에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로 풍성하게 소출을 거둘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밭과 같은 우리 마음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미움, 시기, 질투, 교만, 간음 등 더러운 비진리를 버리고 사랑과 덕이 있는 온유한 마음으로 경작해야지요. 그럴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탐스럽게 맺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가 자신의 마음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여 옥토와 같은 마음을 만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심은 것에 비해 열매가 저조하기 마련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하라, 지키라” 했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하지 말라, 버리라” 하셨습니다. “버리라, 하지 말라”는 말씀들은 마음 밭을 개간하는 작업과도 같습니다. 이처럼 마음 밭을 개간하여 좋은 땅으로 만드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2) 씨앗을 심듯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 밭을 개간함과 동시에 씨 뿌리는 일을 병행해야 합니다. 옥토로 만든 다음에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같이 진행되어야 하지요.
여기서 ‘씨를 심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성경에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도하라, 심방하라, 사랑하라, 섬기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십일조 하라, 충성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이런 것에 순종하는 행함이 다 심는 작업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열심히 믿음의 씨앗을 심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고 하늘의 큰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농부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철에 따라 다양한 씨를 뿌립니다. 우리도 천국에 갈 때까지 마음 밭을 개간하는 동시에 계속 씨를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라, 지키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3) 인내로 가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만일 심기만 하고 가꾸지 않으면 추수 때가 되어도 거둘 것이 별로 없습니다. 부지런히 벌레도 잡아 주고, 비료도 주고, 물도 대 주고 인내하며 가꾸어야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지요. 그러면 인내로 가꾸는 작업이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심고 거두는 법을 잘 깨우쳐서 영적인 일류 농부가 될 수 있지요. 또한 성도들과 교제하며 은혜를 나누면서 믿음이 성장해 나갑니다.
둘째로, 성령 충만하게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찬송과 기도를 통해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입고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힘이 없고 연약하면 어떻게 농사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으로도 힘이 있어야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할 수 있고 계속 심고 가꿀 수 있습니다. 만일 성령 충만함을 입지 못하면 매사에 피곤하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을 지킬 수도, 세상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의 미혹을 받고, 시험 환난에 빠지게 됩니다.
반면 종일 일해서 몸이 곤한 사람이라도 찬송과 기도 속에 성령 충만함을 입으면 위로부터 새 힘이 주어집니다. 이 힘으로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길 수 있고, 마음 밭을 옥토로 열심히 개간하고 씨를 심으며 가꿀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씨를 심는 것마다 천국에서는 영광과 상급이요, 이 땅에서는 축복의 열매로 거둘 줄을 믿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로 수고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추수할 소망이 가득한 농부는 기쁘고 행복하게 일을 합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부지런히 벌레를 잡고 잡초를 뽑아 주지요. 마음이 즐거우니 고된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틈타지 못하고 물러갑니다. 그러니 낙심하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없이 천국까지 힘차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4) 꽃이 피고 열매를 거두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면 그 향기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행복해집니다. 우리 마음도 예수 그리스도로 꽃이 피면 주변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회 다니는 사람이 다 당신 같으면 나도 예수 믿겠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니 더 쉽게 전도되고 가정복음화도 이루어지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심은 것이 꽃이 피면 마침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사랑장의 열매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 빛의 열매들이 갈수록 풍성하게 여물어 갑니다. 이처럼 마음에 영적인 열매들이 맺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신 대로이지요(요 14:21).
우리가 마음 밭을 개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고 가꾸는 것은 영육 간에 모든 축복을 거두는 기본 원리입니다. “버리라, 하지 말라” 하신 대로 순종하여 마음 밭을 개간함과 동시에 “지키라, 하라” 하신 말씀의 씨앗을 열심히 심고 가꾸어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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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마음 밭을 ( )해야 한다.
② 씨앗을 심듯이 하나님 말씀에 ( )해야 한다.
③ ( )로 가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④ 꽃이 피고 ( )를 거두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2. 인내로 가꾸는 작업이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① 신령과 진정으로 ( )하는 것이다.
② 성령 충만하게 찬송하고 ( )하는 것이다.
③ 항상 ( )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3. 성경에 “하지 말라”, “버리라”는 말씀은 영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 )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부 3과‘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빛의 열매’란?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여기서 ‘착함’이란 악이 없는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다. ‘의로움’이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다. 마음에 믿어야 순종의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말씀했다(롬 10:10). ‘진실함’이란 거짓되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어떤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말한다.
교육목표 : 사람의 마음 밭을 개간하여 믿음의 씨앗을 심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방법을 깨닫게 한다.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땅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기 마련이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사랑하는 자녀들이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를 원하십니다. 과연 어떻게 심고 거두어야 할까요?
1.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
두 사람이 똑같은 환경 속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추수 때 한 사람은 풍성한 소출을 거둔 반면, 한 사람은 소출이 아주 미미했지요. 알고 보니 소출이 적은 사람은 농사짓는 법칙대로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해야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축복받지 못하고, 일이 꼬이며 어려움을 겪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눈에 띄는 축복이나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 하며 심었는데도 받지 못했다면 이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 앞에 심었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육을 좇아 육으로 심은 것은 육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역사를 좇아 영으로 심은 것은 영의 열매로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영계의 법칙이지요.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핵심은 마음을 변화시켜 옥토로 만드는 것입니다. 즉 마음의 악을 버리고 빛으로, 선으로, 진리로 채워 하나님 형상을 닮아야 하지요. 이것이 곧 축복의 비결입니다. 아무리 “주님을 믿습니다,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합니다.” 해도 마음 밭을 개간하지 않고 여전히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의 송사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이 있으니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지요.
2.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1) 마음 밭을 개간해야 합니다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 좋은 씨앗을 많이 뿌려도 토질이 나쁘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가령, 단단한 길가에 씨를 뿌린다면 싹이 나기 어렵지요. 새가 날아와 씨를 먹기도 하고, 햇볕에 타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밭에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로 풍성하게 소출을 거둘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밭과 같은 우리 마음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미움, 시기, 질투, 교만, 간음 등 더러운 비진리를 버리고 사랑과 덕이 있는 온유한 마음으로 경작해야지요. 그럴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탐스럽게 맺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가 자신의 마음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여 옥토와 같은 마음을 만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심은 것에 비해 열매가 저조하기 마련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하라, 지키라” 했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하지 말라, 버리라” 하셨습니다. “버리라, 하지 말라”는 말씀들은 마음 밭을 개간하는 작업과도 같습니다. 이처럼 마음 밭을 개간하여 좋은 땅으로 만드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2) 씨앗을 심듯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 밭을 개간함과 동시에 씨 뿌리는 일을 병행해야 합니다. 옥토로 만든 다음에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같이 진행되어야 하지요.
여기서 ‘씨를 심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성경에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도하라, 심방하라, 사랑하라, 섬기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십일조 하라, 충성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이런 것에 순종하는 행함이 다 심는 작업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열심히 믿음의 씨앗을 심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고 하늘의 큰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농부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철에 따라 다양한 씨를 뿌립니다. 우리도 천국에 갈 때까지 마음 밭을 개간하는 동시에 계속 씨를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라, 지키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3) 인내로 가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만일 심기만 하고 가꾸지 않으면 추수 때가 되어도 거둘 것이 별로 없습니다. 부지런히 벌레도 잡아 주고, 비료도 주고, 물도 대 주고 인내하며 가꾸어야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지요. 그러면 인내로 가꾸는 작업이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심고 거두는 법을 잘 깨우쳐서 영적인 일류 농부가 될 수 있지요. 또한 성도들과 교제하며 은혜를 나누면서 믿음이 성장해 나갑니다.
둘째로, 성령 충만하게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찬송과 기도를 통해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입고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힘이 없고 연약하면 어떻게 농사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으로도 힘이 있어야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할 수 있고 계속 심고 가꿀 수 있습니다. 만일 성령 충만함을 입지 못하면 매사에 피곤하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을 지킬 수도, 세상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의 미혹을 받고, 시험 환난에 빠지게 됩니다.
반면 종일 일해서 몸이 곤한 사람이라도 찬송과 기도 속에 성령 충만함을 입으면 위로부터 새 힘이 주어집니다. 이 힘으로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길 수 있고, 마음 밭을 옥토로 열심히 개간하고 씨를 심으며 가꿀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씨를 심는 것마다 천국에서는 영광과 상급이요, 이 땅에서는 축복의 열매로 거둘 줄을 믿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로 수고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추수할 소망이 가득한 농부는 기쁘고 행복하게 일을 합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부지런히 벌레를 잡고 잡초를 뽑아 주지요. 마음이 즐거우니 고된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틈타지 못하고 물러갑니다. 그러니 낙심하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없이 천국까지 힘차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4) 꽃이 피고 열매를 거두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면 그 향기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행복해집니다. 우리 마음도 예수 그리스도로 꽃이 피면 주변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회 다니는 사람이 다 당신 같으면 나도 예수 믿겠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니 더 쉽게 전도되고 가정복음화도 이루어지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심은 것이 꽃이 피면 마침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사랑장의 열매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 빛의 열매들이 갈수록 풍성하게 여물어 갑니다. 이처럼 마음에 영적인 열매들이 맺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신 대로이지요(요 14:21).
우리가 마음 밭을 개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고 가꾸는 것은 영육 간에 모든 축복을 거두는 기본 원리입니다. “버리라, 하지 말라” 하신 대로 순종하여 마음 밭을 개간함과 동시에 “지키라, 하라” 하신 말씀의 씨앗을 열심히 심고 가꾸어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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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마음 밭을 ( )해야 한다.
② 씨앗을 심듯이 하나님 말씀에 ( )해야 한다.
③ ( )로 가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④ 꽃이 피고 ( )를 거두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2. 인내로 가꾸는 작업이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① 신령과 진정으로 ( )하는 것이다.
② 성령 충만하게 찬송하고 ( )하는 것이다.
③ 항상 ( )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3. 성경에 “하지 말라”, “버리라”는 말씀은 영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 )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부 3과‘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빛의 열매’란?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여기서 ‘착함’이란 악이 없는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다. ‘의로움’이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다. 마음에 믿어야 순종의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말씀했다(롬 10:10). ‘진실함’이란 거짓되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어떤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말한다.
2015-07-10
제27과모든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자
롬 8:6~7
읽을말씀 : 롬 8:6~7 | 외울말씀 : 고후 10:5 ㅣ 참고 말씀:사 55:8~9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항상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뿐 아니라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으니 부러울 것이 전혀 없지요. 반면에 “주여 주여” 하면서도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믿는다 하면서도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며 그 방해 요인은 무엇일까요?
1. 믿음을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
사람은 태어나 보고 듣고 배운 지식을 머릿속에 입력합니다. 이렇게 머리에 입력된 지식을 재생하여 떠올리는 것이 생각입니다. 생각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입니다.
로마서 8장 8절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성경에서는 육신이 사람의 몸이 아닌 영적인 의미로 쓰인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으로 ‘육신’이란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말합니다. 미움, 혈기, 판단, 정죄, 시기, 교만 등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지요.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비진리의 생각이지요. 이와 반대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리의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을 말합니다. 곧 진리의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에게 무례히 행하거나 애매히 비난하는 경우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한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불편한 마음을 상대에게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러지는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거나 마음이 요동하며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섬기라, 낮아지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하셨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손해라고 여겨지면 이 역시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말씀에 순종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진리의 지식만 있다면 당연히 영의 생각만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의 생각을 하려 해도 진리와 비진리를 잘 분별하지 못하여 자기도 모르게 비진리의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책에는 부모의 원수를 갚는 것이 의롭다고 나옵니다. 그 책을 읽으면 그러한 가치관을 진리로 받아들이기 쉽지요.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지요(마 18:22).
이러한 진리의 지식이 있으면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을 보아도 ‘용서해야지, 사랑해야지.’ 하면서 영의 생각을 하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과 반대되는 비진리의 지식을 지닌 사람은 ‘저 사람은 악하기 때문에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며 자기 가치관을 따라 살아갑니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을 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으므로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이론
이론이란 어떤 지식을 바탕으로 사물의 이치나 현상 등에 대해 정립해 놓은 논리 체계입니다. 그중에는 하나님 말씀과 상반된 것이 있어서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 방해 요인이 됩니다. 이론과 지식은 인류 문명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지만 그렇다 해서 그것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이론은 사람의 인식과 관념으로 세운 논리일 뿐입니다.
그러니 한 가지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이 있기도 하고, 예전에 옳다 하던 이론이 시간이 지나면 그르다 하는 일도 생깁니다. 이처럼 이론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진리도 있지만 비진리도 많습니다. 그러한 지식과 이론에 집착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어렵고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지만 학교에서는 사람이 유인원에서 진화되었다고 가르칩니다. 만일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경험을 앞세우는 사람이 어떻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이론에다 하나님 말씀을 맞추려 하면 온전한 믿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진리와 비진리를 바로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명백한 비진리에 속하는 육신의 생각은 물론, 세상의 잘못된 지식으로 정립된 모든 이론까지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3. 육신의 생각과 모든 이론을 깨뜨리려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9~40). 이런 하나님 말씀은 육신의 생각이나 모든 이론을 깨뜨리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모든 이론을 파하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령 ‘싫다, 밉다, 서럽다, 힘들다.’는 육신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때 ‘아니야,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어!’ 하고 우선 멈춰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면 할수록 자신만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다음에는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의 뿌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싫다, 밉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내 안에 ‘미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무시하는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자존심’이나 ‘교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행동이나 마음을 자세히 해부하여 그 뿌리에 해당하는 악을 발견해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을 비롯해 모든 이론을 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마음에 양식 삼고 행해야 합니다. 마음 안에 있는 ‘미움, 혈기, 시기, 판단, 교만’ 등 비진리인 어둠을 빼내고 ‘사랑, 이해, 용서, 섬김, 화평’ 등 진리인 빛으로 채워 나가야 하지요.
가령 형제를 미워하던 사람이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안다고 해서 ‘미움’이 버려지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미움이라는 비진리를 빼내기 위해서는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나를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지요. 상대에게 먼저 웃어 주고 선물을 하는 등 적극적인 사랑의 행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기도하고 금식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미움의 속성이 뽑히고 대신 사랑이 채워집니다.
이런 방법으로 비진리를 하나하나 다 버리고 진리로 채워 나가면 더 이상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자신이 옳다 하는 이론을 깨뜨리면 하나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론을 깨뜨린다는 것은 세상에서 배운 지식이나 이론이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면 철저히 무(無)로 돌린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이기에 그에 맞지 않는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기 위해 불같이 기도하면 보혜사 성령께서 도와주시니 능히 깨뜨리고 버릴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인 육신의 생각과 모든 이론을 온전히 깨뜨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며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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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 )이란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말한다.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다.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 )이다.
반대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 )을 되살려 내는 것을 말한다.
2.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요?
( )
3. 싫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영적으로 사랑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부 2과 ‘믿음의 씨앗을 심자&\#700\;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단의 역사&\#700\;와 ‘육신의 생각&\#700\;
사단은 자신이 권세 잡고 있는 공중에 악한 마음과 어둠의 일을 행하게 하는 능력을 퍼트려 놓는다. 이때 마음에 비진리가 있는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통해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육신의 생각이 많으면 그만큼 사단의 역사를 받기 쉽다.
사단이 육신의 생각을 부추겨서 마음의 비진리를 자극하고 육체의 소욕을 요동케 하면 결국 범죄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사단의 역사를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항상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뿐 아니라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으니 부러울 것이 전혀 없지요. 반면에 “주여 주여” 하면서도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믿는다 하면서도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며 그 방해 요인은 무엇일까요?
1. 믿음을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
사람은 태어나 보고 듣고 배운 지식을 머릿속에 입력합니다. 이렇게 머리에 입력된 지식을 재생하여 떠올리는 것이 생각입니다. 생각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입니다.
로마서 8장 8절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성경에서는 육신이 사람의 몸이 아닌 영적인 의미로 쓰인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으로 ‘육신’이란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말합니다. 미움, 혈기, 판단, 정죄, 시기, 교만 등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지요.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비진리의 생각이지요. 이와 반대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리의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을 말합니다. 곧 진리의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에게 무례히 행하거나 애매히 비난하는 경우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한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불편한 마음을 상대에게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러지는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거나 마음이 요동하며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섬기라, 낮아지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하셨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손해라고 여겨지면 이 역시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말씀에 순종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진리의 지식만 있다면 당연히 영의 생각만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의 생각을 하려 해도 진리와 비진리를 잘 분별하지 못하여 자기도 모르게 비진리의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책에는 부모의 원수를 갚는 것이 의롭다고 나옵니다. 그 책을 읽으면 그러한 가치관을 진리로 받아들이기 쉽지요.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지요(마 18:22).
이러한 진리의 지식이 있으면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을 보아도 ‘용서해야지, 사랑해야지.’ 하면서 영의 생각을 하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과 반대되는 비진리의 지식을 지닌 사람은 ‘저 사람은 악하기 때문에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며 자기 가치관을 따라 살아갑니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을 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으므로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이론
이론이란 어떤 지식을 바탕으로 사물의 이치나 현상 등에 대해 정립해 놓은 논리 체계입니다. 그중에는 하나님 말씀과 상반된 것이 있어서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 방해 요인이 됩니다. 이론과 지식은 인류 문명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지만 그렇다 해서 그것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이론은 사람의 인식과 관념으로 세운 논리일 뿐입니다.
그러니 한 가지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이 있기도 하고, 예전에 옳다 하던 이론이 시간이 지나면 그르다 하는 일도 생깁니다. 이처럼 이론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진리도 있지만 비진리도 많습니다. 그러한 지식과 이론에 집착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어렵고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지만 학교에서는 사람이 유인원에서 진화되었다고 가르칩니다. 만일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경험을 앞세우는 사람이 어떻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이론에다 하나님 말씀을 맞추려 하면 온전한 믿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진리와 비진리를 바로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명백한 비진리에 속하는 육신의 생각은 물론, 세상의 잘못된 지식으로 정립된 모든 이론까지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3. 육신의 생각과 모든 이론을 깨뜨리려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9~40). 이런 하나님 말씀은 육신의 생각이나 모든 이론을 깨뜨리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모든 이론을 파하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령 ‘싫다, 밉다, 서럽다, 힘들다.’는 육신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때 ‘아니야,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어!’ 하고 우선 멈춰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면 할수록 자신만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다음에는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의 뿌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싫다, 밉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내 안에 ‘미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무시하는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자존심’이나 ‘교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행동이나 마음을 자세히 해부하여 그 뿌리에 해당하는 악을 발견해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을 비롯해 모든 이론을 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마음에 양식 삼고 행해야 합니다. 마음 안에 있는 ‘미움, 혈기, 시기, 판단, 교만’ 등 비진리인 어둠을 빼내고 ‘사랑, 이해, 용서, 섬김, 화평’ 등 진리인 빛으로 채워 나가야 하지요.
가령 형제를 미워하던 사람이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안다고 해서 ‘미움’이 버려지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미움이라는 비진리를 빼내기 위해서는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나를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지요. 상대에게 먼저 웃어 주고 선물을 하는 등 적극적인 사랑의 행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기도하고 금식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미움의 속성이 뽑히고 대신 사랑이 채워집니다.
이런 방법으로 비진리를 하나하나 다 버리고 진리로 채워 나가면 더 이상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자신이 옳다 하는 이론을 깨뜨리면 하나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론을 깨뜨린다는 것은 세상에서 배운 지식이나 이론이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면 철저히 무(無)로 돌린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이기에 그에 맞지 않는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기 위해 불같이 기도하면 보혜사 성령께서 도와주시니 능히 깨뜨리고 버릴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인 육신의 생각과 모든 이론을 온전히 깨뜨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며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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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 )이란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말한다.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다.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 )이다.
반대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 )을 되살려 내는 것을 말한다.
2.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요?
( )
3. 싫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영적으로 사랑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부 2과 ‘믿음의 씨앗을 심자&\#700\;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단의 역사&\#700\;와 ‘육신의 생각&\#700\;
사단은 자신이 권세 잡고 있는 공중에 악한 마음과 어둠의 일을 행하게 하는 능력을 퍼트려 놓는다. 이때 마음에 비진리가 있는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통해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육신의 생각이 많으면 그만큼 사단의 역사를 받기 쉽다.
사단이 육신의 생각을 부추겨서 마음의 비진리를 자극하고 육체의 소욕을 요동케 하면 결국 범죄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사단의 역사를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2015-07-03
제26과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4~18
읽을말씀 : 출 23:14~18 | 외울말씀 : 살전 5:16~18 ㅣ 참고 말씀:신 16:10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맥추절을 지키게 한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 40년 동안 광활한 광야의 모래밭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누렇게 익은 밀밭 풍경을 볼 때 참으로 가슴이 벅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씨를 심고 그 열매를 수확할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훗날의 일을 미리 아셨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이르기도 전에 그곳에 들어가면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1. 맥추절의 유래와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3대 절기 중 하나로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둔 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보리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 밀 추수가 시작됩니다. 맥추절은 이렇게 밀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이지요. 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으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부릅니다. 칠칠절은 그 시점이 유월절로부터 7주 후라 붙여진 이름이고, 오순절은 50일째 되는 날이므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오순절에 성령강림 사건이 있었으므로 유대 전통의 오순절을 성령강림주일로 지키고 있으며, 후반기 첫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전반기 동안 은혜 주시며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월 첫 주일에 지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매년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것들을 찾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깊이 느끼고 마음에 새길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하는 자녀들이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절기를 맞아 모든 감사의 조건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음을 인정하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풍성하게 부어 주시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2. 맥추절을 지키는 방법과 영적 의미
민수기 28장 26~31절에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했습니다.
칠칠절 곧 맥추절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축제와 같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했습니다. 이때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첫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을 소제로 드렸습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는데 이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뜻합니다. 나아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해져야 함을 나타내지요.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곡식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시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 다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고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3. 맥추감사제
신명기 16장 16~17절에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즉 빈손으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마음의 향을 받으신다고 하셨는데 왜 여기서는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행함’으로 표현할 때 온전해지고 그 향이 더 진해집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한 대로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약 2:22).
예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감사의 조건을 주셨습니다.”라고 참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신 대로 예물을 드림으로써 자신의 감사가 마음에서 우러난 참 감사임을 아버지 하나님 앞에 보여드리게 되지요.
또한 말로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할 때보다 마음을 자신의 소중한 것에 담아 드릴 때 그 향이 더욱 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여 귀한 것을 드림으로써 그 감사의 고백에 진액이 담기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사랑하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 12:3)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려 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마리아 가정을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말씀도 가르쳐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으로 참 믿음과 천국 소망을 심어 주셨지요.
그래서 베다니 마리아는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 곧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어 드렸습니다. 그 향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마리아의 행함을 못마땅히 여기는 가룟 유다에게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요 12:7~8) 하시며 장래 일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 역시 마리아에 비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에 진정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심기를 즐겨 합니다. 그런데 혹여 나는 늘 하나님께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은 너무 적은 것 같아서 민망한 마음은 아니십니까? 또는 은혜를 받은 순간에는 “감사합니다.” 하고 입술로만 고백하고 그 은혜를 곧 잊지는 않으셨는지요? 아니면 한결같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감사의 조건으로 여겨 정성 다한 예물을 드리고 계신지요?
다음으로, 감사를 드릴 때 마음과 더불어 예물을 드리라 하시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감사예물을 즐겨 드리는 것은 결국 밭에서 풍성한 소산을 거둔 후 또다시 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수확을 많이 했어도 금년에 또 심지 않으면 내년에 거둘 수가 없습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고 감사로 심고 또 심을 때, 갈수록 더 큰 감사의 조건으로 이어집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한 대로 많이 심을수록 많이 거두는 것이 영계의 법칙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범사에 즐겨 감사를 표현하는 분들은 심은 대로 거두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며 30배, 60배, 100배로 주시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절기는 물론, 자신의 모든 삶 속에서 즐겨 감사를 표현하심으로 더욱 감사가 넘치는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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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 )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이다. 이를 칠칠절 또는 ( )이라고도 부른다. 칠칠절은 그 시점이 유월절로부터 7주 후이고, ( )은 50일째 되는 날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2.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였을까요?
3.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마음의 향을 받으신다고 하셨는데 왜 신명기 16장 16절 이하에서는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부 1과 ‘모든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자’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하신 말씀대로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예배를 드릴 때에 그동안 지켜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맥추절을 지키게 한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 40년 동안 광활한 광야의 모래밭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누렇게 익은 밀밭 풍경을 볼 때 참으로 가슴이 벅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씨를 심고 그 열매를 수확할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훗날의 일을 미리 아셨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이르기도 전에 그곳에 들어가면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1. 맥추절의 유래와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3대 절기 중 하나로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둔 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보리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 밀 추수가 시작됩니다. 맥추절은 이렇게 밀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이지요. 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으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부릅니다. 칠칠절은 그 시점이 유월절로부터 7주 후라 붙여진 이름이고, 오순절은 50일째 되는 날이므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오순절에 성령강림 사건이 있었으므로 유대 전통의 오순절을 성령강림주일로 지키고 있으며, 후반기 첫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전반기 동안 은혜 주시며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월 첫 주일에 지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매년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것들을 찾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깊이 느끼고 마음에 새길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하는 자녀들이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절기를 맞아 모든 감사의 조건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음을 인정하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풍성하게 부어 주시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2. 맥추절을 지키는 방법과 영적 의미
민수기 28장 26~31절에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했습니다.
칠칠절 곧 맥추절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축제와 같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했습니다. 이때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첫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을 소제로 드렸습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는데 이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뜻합니다. 나아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해져야 함을 나타내지요.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곡식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시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 다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고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3. 맥추감사제
신명기 16장 16~17절에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즉 빈손으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마음의 향을 받으신다고 하셨는데 왜 여기서는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행함’으로 표현할 때 온전해지고 그 향이 더 진해집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한 대로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약 2:22).
예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감사의 조건을 주셨습니다.”라고 참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신 대로 예물을 드림으로써 자신의 감사가 마음에서 우러난 참 감사임을 아버지 하나님 앞에 보여드리게 되지요.
또한 말로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할 때보다 마음을 자신의 소중한 것에 담아 드릴 때 그 향이 더욱 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여 귀한 것을 드림으로써 그 감사의 고백에 진액이 담기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사랑하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 12:3)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려 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마리아 가정을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말씀도 가르쳐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으로 참 믿음과 천국 소망을 심어 주셨지요.
그래서 베다니 마리아는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 곧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어 드렸습니다. 그 향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마리아의 행함을 못마땅히 여기는 가룟 유다에게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요 12:7~8) 하시며 장래 일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 역시 마리아에 비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에 진정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심기를 즐겨 합니다. 그런데 혹여 나는 늘 하나님께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은 너무 적은 것 같아서 민망한 마음은 아니십니까? 또는 은혜를 받은 순간에는 “감사합니다.” 하고 입술로만 고백하고 그 은혜를 곧 잊지는 않으셨는지요? 아니면 한결같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감사의 조건으로 여겨 정성 다한 예물을 드리고 계신지요?
다음으로, 감사를 드릴 때 마음과 더불어 예물을 드리라 하시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감사예물을 즐겨 드리는 것은 결국 밭에서 풍성한 소산을 거둔 후 또다시 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수확을 많이 했어도 금년에 또 심지 않으면 내년에 거둘 수가 없습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고 감사로 심고 또 심을 때, 갈수록 더 큰 감사의 조건으로 이어집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한 대로 많이 심을수록 많이 거두는 것이 영계의 법칙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범사에 즐겨 감사를 표현하는 분들은 심은 대로 거두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며 30배, 60배, 100배로 주시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절기는 물론, 자신의 모든 삶 속에서 즐겨 감사를 표현하심으로 더욱 감사가 넘치는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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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 )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이다. 이를 칠칠절 또는 ( )이라고도 부른다. 칠칠절은 그 시점이 유월절로부터 7주 후이고, ( )은 50일째 되는 날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2.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였을까요?
3.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마음의 향을 받으신다고 하셨는데 왜 신명기 16장 16절 이하에서는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부 1과 ‘모든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자’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하신 말씀대로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예배를 드릴 때에 그동안 지켜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