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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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9
제13과부활의 영적인 의미
요한복음 11:25~2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1:25~2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1:25 |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16~17
교육목표 :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을 맞아 부활이 갖는 영적인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부활절은 성도들이 주님의 부활을 서로 축하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참으로 복된 절기입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과학과 의학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사람의 삶과 죽음까지도 주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사람의 호흡이 끊어졌다가 소생될 수는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의술이나 최첨단 장비로도 완전히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명하시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나왔지요. 이미 부패하여 소생할 수 없는 세포 하나하나를 재생시키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는 더 놀라운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구원받은 성도 중 수명이 다해 죽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창세 이래 구원받은 성도 중에는 수백,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죽은 지 몇십 년만 지나도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부패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에는 마른 뼈도 아니고, 완전히 썩어 분해된 몸이 다시 살아납니다. 몸의 형체가 복원되어 몸의 주인인 영혼과 결합하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때 소생되는 몸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갈 수도 있고, 7년 혼인 잔치가 베풀어지는 영의 공간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즉 흙으로 지어진 몸이 영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신령한 몸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권능으로 모든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또한 이 권능으로 살리셨지요.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행적을 성경에 기록하심으로 신령한 부활체의 성질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날 일임을 확실히 믿도록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권능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3도 화상으로 완전히 익어버린 피부도 새롭게 만드시고, 완전히 죽어버린 신경도 살려 주시지요. 수많은 사람이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고, 심지어 호흡이 완전히 끊어지고 몸이 뻣뻣하게 굳은 사람도 살아났습니다. 이 외에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도록 분명한 증거들을 수없이 나타내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의 공간에 거하시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이 영광을 홀로 누리기보다 자녀들과 함께 누리기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고 아름다운 빛의 공간에 거할 수 있도록 인간을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우선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시고 영의 공간, 곧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온전한 영광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빛의 공간에 아담이 함께 거하며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셨지요.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살 동안 상대성을 모르기 때문에 풍요로운 그곳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후 이 땅으로 쫓겨나 눈물, 슬픔, 질병, 고통을 겪어본 뒤에야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게 되었지요. 즉 상대성을 체험한 후에야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담은 이처럼 범죄 후 상대성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녀로 나온 후에는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에덴동산과는 차원이 다른 곳으로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처소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입니다. 우리를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에 들이기 원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도 아끼지 않고 보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속량 되고 주님을 믿음으로 영원히 죽지 않게 되었지요. 설령 수명이 다해 죽어도 다시 사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이런 영광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빛, 곧 진리 안에 거하는 만큼 빛의 공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깨닫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도록 역사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자녀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요 13:32). 이 땅에서뿐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 거하기를 우리 자신보다 더 간절히 바라시지요.
3.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아름답고 영원한 천국에서 산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질 운명이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대신 사망에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인 예수님께서는 육을 입으실 이유도, 죽음을 겪으실 이유도 없었는데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시려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처참하게 죽임당하셨지만 죄가 전혀 없기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셨지요.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몸이 죽지 않도록, 죽어도 다시 살도록 대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심으로 장차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게 하셨지요.
이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들을 그 아들의 피로 깨끗이 씻겨 주시고, 참으로 위대하고 아름다우시며 선하신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셨지요.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천국 처소까지 예비하셨습니다.
장차 공중 강림하신 주님과 7년 혼인 잔치가 있을 영의 공간과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천국은 참으로 신비롭고 영화로운 곳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켜 세마포를 입히시고 공중에서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하실 것입니다. 그 후 지상 재림하신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다가 백보좌 대심판 후 정성껏 예비하신 천국의 처소로 들어가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사랑에 보답하려면 더 이상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없어야 하며 거룩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에 가장 빛나는 부활체로 변화되어 그 품에 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 )을 나타낸다.
②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 )을 나타낸다.
③ 하나님의 크신 ( )을 나타낸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누구를 말할까요?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데 이것을 ‘영적인 부활’이라고 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목표 :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을 맞아 부활이 갖는 영적인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부활절은 성도들이 주님의 부활을 서로 축하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참으로 복된 절기입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과학과 의학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사람의 삶과 죽음까지도 주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사람의 호흡이 끊어졌다가 소생될 수는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의술이나 최첨단 장비로도 완전히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명하시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나왔지요. 이미 부패하여 소생할 수 없는 세포 하나하나를 재생시키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는 더 놀라운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구원받은 성도 중 수명이 다해 죽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창세 이래 구원받은 성도 중에는 수백,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죽은 지 몇십 년만 지나도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부패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에는 마른 뼈도 아니고, 완전히 썩어 분해된 몸이 다시 살아납니다. 몸의 형체가 복원되어 몸의 주인인 영혼과 결합하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때 소생되는 몸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갈 수도 있고, 7년 혼인 잔치가 베풀어지는 영의 공간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즉 흙으로 지어진 몸이 영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신령한 몸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권능으로 모든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또한 이 권능으로 살리셨지요.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행적을 성경에 기록하심으로 신령한 부활체의 성질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날 일임을 확실히 믿도록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권능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3도 화상으로 완전히 익어버린 피부도 새롭게 만드시고, 완전히 죽어버린 신경도 살려 주시지요. 수많은 사람이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고, 심지어 호흡이 완전히 끊어지고 몸이 뻣뻣하게 굳은 사람도 살아났습니다. 이 외에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도록 분명한 증거들을 수없이 나타내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의 공간에 거하시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이 영광을 홀로 누리기보다 자녀들과 함께 누리기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고 아름다운 빛의 공간에 거할 수 있도록 인간을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우선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시고 영의 공간, 곧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온전한 영광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빛의 공간에 아담이 함께 거하며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셨지요.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살 동안 상대성을 모르기 때문에 풍요로운 그곳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후 이 땅으로 쫓겨나 눈물, 슬픔, 질병, 고통을 겪어본 뒤에야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게 되었지요. 즉 상대성을 체험한 후에야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담은 이처럼 범죄 후 상대성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녀로 나온 후에는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에덴동산과는 차원이 다른 곳으로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처소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입니다. 우리를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에 들이기 원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도 아끼지 않고 보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속량 되고 주님을 믿음으로 영원히 죽지 않게 되었지요. 설령 수명이 다해 죽어도 다시 사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이런 영광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빛, 곧 진리 안에 거하는 만큼 빛의 공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깨닫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도록 역사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자녀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요 13:32). 이 땅에서뿐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 거하기를 우리 자신보다 더 간절히 바라시지요.
3.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아름답고 영원한 천국에서 산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질 운명이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대신 사망에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인 예수님께서는 육을 입으실 이유도, 죽음을 겪으실 이유도 없었는데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시려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처참하게 죽임당하셨지만 죄가 전혀 없기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셨지요.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몸이 죽지 않도록, 죽어도 다시 살도록 대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심으로 장차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게 하셨지요.
이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들을 그 아들의 피로 깨끗이 씻겨 주시고, 참으로 위대하고 아름다우시며 선하신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셨지요.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천국 처소까지 예비하셨습니다.
장차 공중 강림하신 주님과 7년 혼인 잔치가 있을 영의 공간과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천국은 참으로 신비롭고 영화로운 곳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켜 세마포를 입히시고 공중에서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하실 것입니다. 그 후 지상 재림하신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다가 백보좌 대심판 후 정성껏 예비하신 천국의 처소로 들어가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사랑에 보답하려면 더 이상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없어야 하며 거룩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에 가장 빛나는 부활체로 변화되어 그 품에 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 )을 나타낸다.
②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 )을 나타낸다.
③ 하나님의 크신 ( )을 나타낸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누구를 말할까요?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데 이것을 ‘영적인 부활’이라고 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2024-03-22
제12과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1)
요한복음 14:21
읽을말씀 : 요한복음 14:21 | 외울말씀 : 요한일서 5:3 | 참고 말씀: 요한일서 3:21~22, 잠언 8:17
교육목표 :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마음에 악이 없는 성결한 믿음의 4단계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성령 받고 구원받은 믿음의 1단계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를 거쳐 계속 노력하면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마음에 있는 죄성 자체도 벗어버리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 4단계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너무나 바라시는 영의 사람으로 입문하게 됩니다.
1. 믿음의 단계에 따른 행함의 차이
어떤 목적지를 향해 계단을 오를 때 첫 번째 계단을 오르고 나면 두 번째 계단, 세 번째 계단을 계속 밟아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믿음도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계속 단계를 밟아 성장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는데 믿음의 2단계에서는 이 말씀을 들어서는 알지만, 시험 환난을 만나면 기뻐하지 못하고 불평하며 기도를 쉬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는 어려운 일을 만나도 말씀대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지요.
물론 3단계 초입에서는 연단이 심히 어렵게 여겨질 때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때로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하며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곧 이런 생각을 물리치고 말씀대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3단계이지요. 그러다가 3단계 중반 이상이 되면 이런 생각은 거의 들지 않고 마음에서부터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4단계의 믿음이 되면 심히 고난을 겪고 죽을 고비를 맞는다고 해도 중심에서 기쁨이 샘솟지요.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현실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막막하다고 해도 마음은 항상 기쁘고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체가 행복하고 하나님 뜻을 행하는 자체가 즐거운 것이지요. 믿음의 3단계가 말씀대로 기뻐하고 감사한다고 해도 4단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하고 섬김이 승해서 상대의 마음을 편케 하기 원하며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면 다 들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할 때는 원하는 대로 들어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상대를 지극히 사랑할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아무리 어려운 입장이라고 해도 전혀 힘들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상대를 기쁘게 해 주려는 마음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하나님 말씀을 기쁨으로 행하는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야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말할 수 있으며 이때부터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4단계 특징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2, 3단계에 속한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고백과 믿음의 4단계가 고백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을 적당히 사랑하는 마음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했습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습니다.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믿음의 선진들은 설령 아무 잘못 없이 애매히 고난받아도 마음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나님 뜻을 지키려고 하니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고 근심하며 슬픔의 기도를 올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안하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하나님을 사랑해 그 뜻을 행할 뿐 결과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께 맡기므로 이처럼 사나 죽으나 감사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단 6:10~27).
다니엘의 세 친구도 그러했습니다.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지겠다는 왕의 위협 앞에서도 그들은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들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했지요(단 3:17~18). 불 가운데서도 건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신뢰할 뿐 아니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상관없이, 곧 사나 죽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따름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도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매를 맞고 차꼬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으나 조금의 원망이나 불평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찌 될까 염려와 근심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동 속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렸지요. 이것이 바로 믿음의 4단계에 이른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모습입니다. 그러니 이 감동의 찬양이 울려 퍼질 때 하나님 역사로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벗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그 마음에 변함이 없다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데, 주님을 사랑하니 모든 계명을 기쁨으로 지키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을 어떻게 측량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말씀한 대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하지만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니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없고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기 때문에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이 되면 계명을 온전히 지키게 됩니다. 계명들을 알기 때문에 마지못해 지키거나 깨달았으므로 힘들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3)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고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믿음입니다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했으니(살전 5:21~22) 진리에 온전히 순종해 성결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림은 물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 주실까요?
바로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며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서 범죄치 아니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 곧 영의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 곧 주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악한 원수 마귀가 만지지도 못하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며 죄를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으니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식언치 않으시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분입니다(민 23:19).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여 성결을 이루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일서 5장 3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부모님이 위독해 거액이 필요한데 마침 길에서 돈가방을 주웠다고 할 때 각 사람의 마음이 믿음의 몇 단계에 해당하는지 ( ) 안에 써 보세요.
■ 보는 사람이 없으면 얼른 돈가방을 가지고 집으로 향하려는 마음( )
■ 선과 악이 치열하게 싸우다가 결국 돈가방을 가지고 가려는 마음( )
■ 잠시 유혹이 틈타지만 선한 양심을 좇아 주인에게 돌려주려는 마음( )
■ 남의 것을 취하려는 마음 전혀 없이 오히려 주인을 생각하는 마음( )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실라’에 대해
예루살렘 교회 교인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 회의의 결정을 안디옥 교회에 전하기 위해 선임한 한 사람이다(행 15:22).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 동행했으며, 바울이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을 치료해 준 것 때문에 빌립보 감옥에 함께 투옥된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함으로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한다.
교육목표 :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마음에 악이 없는 성결한 믿음의 4단계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성령 받고 구원받은 믿음의 1단계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를 거쳐 계속 노력하면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마음에 있는 죄성 자체도 벗어버리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 4단계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너무나 바라시는 영의 사람으로 입문하게 됩니다.
1. 믿음의 단계에 따른 행함의 차이
어떤 목적지를 향해 계단을 오를 때 첫 번째 계단을 오르고 나면 두 번째 계단, 세 번째 계단을 계속 밟아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믿음도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계속 단계를 밟아 성장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는데 믿음의 2단계에서는 이 말씀을 들어서는 알지만, 시험 환난을 만나면 기뻐하지 못하고 불평하며 기도를 쉬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는 어려운 일을 만나도 말씀대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지요.
물론 3단계 초입에서는 연단이 심히 어렵게 여겨질 때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때로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하며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곧 이런 생각을 물리치고 말씀대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3단계이지요. 그러다가 3단계 중반 이상이 되면 이런 생각은 거의 들지 않고 마음에서부터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4단계의 믿음이 되면 심히 고난을 겪고 죽을 고비를 맞는다고 해도 중심에서 기쁨이 샘솟지요.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현실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막막하다고 해도 마음은 항상 기쁘고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체가 행복하고 하나님 뜻을 행하는 자체가 즐거운 것이지요. 믿음의 3단계가 말씀대로 기뻐하고 감사한다고 해도 4단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하고 섬김이 승해서 상대의 마음을 편케 하기 원하며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면 다 들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할 때는 원하는 대로 들어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상대를 지극히 사랑할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아무리 어려운 입장이라고 해도 전혀 힘들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상대를 기쁘게 해 주려는 마음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하나님 말씀을 기쁨으로 행하는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야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말할 수 있으며 이때부터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4단계 특징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2, 3단계에 속한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고백과 믿음의 4단계가 고백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을 적당히 사랑하는 마음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했습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습니다.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믿음의 선진들은 설령 아무 잘못 없이 애매히 고난받아도 마음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나님 뜻을 지키려고 하니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고 근심하며 슬픔의 기도를 올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안하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하나님을 사랑해 그 뜻을 행할 뿐 결과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께 맡기므로 이처럼 사나 죽으나 감사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단 6:10~27).
다니엘의 세 친구도 그러했습니다.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지겠다는 왕의 위협 앞에서도 그들은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들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했지요(단 3:17~18). 불 가운데서도 건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신뢰할 뿐 아니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상관없이, 곧 사나 죽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따름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도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매를 맞고 차꼬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으나 조금의 원망이나 불평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찌 될까 염려와 근심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동 속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렸지요. 이것이 바로 믿음의 4단계에 이른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모습입니다. 그러니 이 감동의 찬양이 울려 퍼질 때 하나님 역사로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벗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그 마음에 변함이 없다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데, 주님을 사랑하니 모든 계명을 기쁨으로 지키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을 어떻게 측량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말씀한 대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하지만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니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없고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기 때문에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이 되면 계명을 온전히 지키게 됩니다. 계명들을 알기 때문에 마지못해 지키거나 깨달았으므로 힘들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3)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고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믿음입니다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했으니(살전 5:21~22) 진리에 온전히 순종해 성결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림은 물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 주실까요?
바로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며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서 범죄치 아니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 곧 영의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 곧 주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악한 원수 마귀가 만지지도 못하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며 죄를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으니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식언치 않으시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분입니다(민 23:19).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여 성결을 이루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일서 5장 3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부모님이 위독해 거액이 필요한데 마침 길에서 돈가방을 주웠다고 할 때 각 사람의 마음이 믿음의 몇 단계에 해당하는지 ( ) 안에 써 보세요.
■ 보는 사람이 없으면 얼른 돈가방을 가지고 집으로 향하려는 마음( )
■ 선과 악이 치열하게 싸우다가 결국 돈가방을 가지고 가려는 마음( )
■ 잠시 유혹이 틈타지만 선한 양심을 좇아 주인에게 돌려주려는 마음( )
■ 남의 것을 취하려는 마음 전혀 없이 오히려 주인을 생각하는 마음( )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실라’에 대해
예루살렘 교회 교인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 회의의 결정을 안디옥 교회에 전하기 위해 선임한 한 사람이다(행 15:22).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 동행했으며, 바울이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을 치료해 준 것 때문에 빌립보 감옥에 함께 투옥된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함으로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한다.
2024-03-15
제11과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
마태복음 7:24~25
읽을말씀 : 마태복음 7:24~25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2:4 | 참고 말씀: 마가복음 9:29
교육목표 :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 차이에 대해 분명히 알려 주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고 배우는 대로 죄를 버리고자 노력합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기 시작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마음 안에 하나님 말씀과 다른 비진리가 많아 성령의 소욕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진리인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단계가(히 12:4) 바로 믿음의 3단계입니다.
1. 죄를 싸워 버리기 시작하는 믿음의 3단계 초입
믿음의 3단계가 되면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버리라’는 것들을 열심히 버려 나가고, ‘행하라’는 것들은 열심히 행해 나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모두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의 종이나 다른 성도의 눈치를 보거나 시험 환난이 따를까 두려워서 할 수 없이 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마음은 세상에 빼앗기고 몸만 성전에 와서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온전한 주일 성수라 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설령 십일조 생활을 해도 여전히 믿음의 2단계에 속하지요.
그런데 같은 믿음의 단계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가령 믿음의 2단계를 100으로 나눠 믿음의 분량을 측정한다면 10%, 20%, 50% 성장해 100%에 가까울수록 믿음의 3단계에 가깝고, 100%가 되어야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기 위해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한 대로(막 9:29) 먼저 불같은 기도와 금식을 통한 나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을 이루는 믿음의 반석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을 이루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 7:24~25).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고전 10:4), 믿음의 반석이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단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반석에 서면 시험과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 따라 정도(正道)를 걸으며 하나님 뜻이라면 순종하기에 원수 마귀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고 항상 승리하며 영광 돌립니다. 또한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가 우러나오며 변함없이 기도함으로 평강을 잃지 않습니다. 설령 자녀가 교통사고를 당했어도 믿음이 있기에 진정 마음에서 감사하며 하나님께 “왜 지켜 주시지 않았느냐!”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에는 행할 수 있는 마음은 가졌으되 온전한 성결은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기쁨으로 순종할 때도 있지만 아직 남아 있는 비진리의 마음이 진리의 마음과 갈등하다가 마지못해 순종할 때도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기에 상대를 미워하지 않고 섬기려 하지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행함이 아니기에 온전치 않으며 마음도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반석에 선 사람은 성령의 소욕을 좇는 진리의 마음이 강하므로 원수 마귀가 틈타거나 엿보지 못하며, 또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 가운데 행해 나가니 이런 믿음만 있다면 어떤 시험 환난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해결사가 되어 주시니 조금도 힘든 일이 없는 것입니다.
3. 성령을 받고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의 과정
성령을 받고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의 과정은 권투 선수가 세계 챔피언이 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부단한 노력과 인내와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실력이 없어 맞다가 열심히 노력하고 인내해서 실력이 향상되면 지는 경우보다는 이기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고 그만큼 자신감이 넘치게 됩니다. 원수 마귀와의 영적 싸움도 마찬가지이지요.
믿음의 2단계에서는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두 마음이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도 하지만 패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성령의 소욕이 점점 강해져 믿음의 3단계를 향해서 계속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오면 육신의 소욕이 점점 약해져 신앙생활이 차츰 수월해집니다. 예전에는 10분 기도했는데 20분, 30분, 1시간으로 점점 늘고 두세 시간도 거뜬히 하게 되지요. 이렇게 기도하면서 믿음의 3단계에 깊숙이 들어가면 진리 안에 굳건히 서게 되므로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는 믿음이 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기도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받습니다. 또한 말씀대로 지켜 행하니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며,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항상 깨어 기도하게 됩니다. 물론 반드시 믿음의 반석에 서야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초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해 가는 사람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렇게 순종해 가는 사람들은 믿음의 1단계에서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습니다.
4.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노력의 중요성
믿음의 2단계는 성령의 소욕을 좇는 마음과 육신의 소욕을 좇는 마음이 서로 싸우는 단계이지만 믿음의 3단계는 성령의 소욕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여 승리해 나가는 단계입니다. 이미 행함으로 죄를 짓는 육체의 일을 버렸으므로 신앙생활이 수월하지만, 몸과 결합해 있는 죄의 성질 곧 육신의 일을 벗기 위해 죄를 피 흘리기까지 버리는 싸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서 믿음의 3단계에 깊이 들어가면 육신의 일을 깨뜨려 버렸으므로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지 않고 온전히 순종만 있으며 진리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 믿음의 3단계로 들어가는 시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노력하기만 한다면 절대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녀도 말씀대로 행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여전히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알아 지켜 행할 때 영이 자라기 때문에 비록 힘이 들어도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해야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2단계에서 3단계로 들어가기까지는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진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나무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또한 새들이 깃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같지요. 66권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면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하는데, 온전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이 짧은 기간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곧바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검정고시를 통해 조기 진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수, 삼수를 거쳐 늦게 진학하기도 하는 것처럼 믿음도 자신이 얼마큼 노력하느냐에 따라 4단계에 신속히 들어갈 수도 있고 더디 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 그릇됨의 차이입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아무리 알고 깨우쳐 믿음과 소망이 있다고 할지라도 노력하는 것이 적습니다. 하지만 마음 그릇이 큰 사람은 그것이 옳다는 것을 깨닫고 한 번 하겠다고 결심하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성취해 내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러므로 신속히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단한 노력,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노력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신속히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히브리서 12장 4절을 외워 보세요.
2. 믿음의 1단계는 성령 받아 구원받은 단계요, 믿음의 2단계는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3단계는 어떤 단계일까요?
3. 현재 자신의 믿음은 다음 중 어디에 속할까요?
믿음의 1단계/ 믿음의 2단계/ 믿음의 3단계 초입/ 믿음의 반석/ 그 이상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육신의 일’이란?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인 육신을 낱낱이 분리해 놓은 것을 말한다. 즉 미움, 시기, 질투, 거짓됨, 간사함, 교만, 혈기, 판단, 정죄, 간음, 욕심 등을 말한다.
교육목표 :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 차이에 대해 분명히 알려 주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고 배우는 대로 죄를 버리고자 노력합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기 시작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마음 안에 하나님 말씀과 다른 비진리가 많아 성령의 소욕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진리인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단계가(히 12:4) 바로 믿음의 3단계입니다.
1. 죄를 싸워 버리기 시작하는 믿음의 3단계 초입
믿음의 3단계가 되면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버리라’는 것들을 열심히 버려 나가고, ‘행하라’는 것들은 열심히 행해 나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모두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의 종이나 다른 성도의 눈치를 보거나 시험 환난이 따를까 두려워서 할 수 없이 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마음은 세상에 빼앗기고 몸만 성전에 와서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온전한 주일 성수라 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설령 십일조 생활을 해도 여전히 믿음의 2단계에 속하지요.
그런데 같은 믿음의 단계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가령 믿음의 2단계를 100으로 나눠 믿음의 분량을 측정한다면 10%, 20%, 50% 성장해 100%에 가까울수록 믿음의 3단계에 가깝고, 100%가 되어야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기 위해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한 대로(막 9:29) 먼저 불같은 기도와 금식을 통한 나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을 이루는 믿음의 반석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을 이루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 7:24~25).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고전 10:4), 믿음의 반석이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단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반석에 서면 시험과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 따라 정도(正道)를 걸으며 하나님 뜻이라면 순종하기에 원수 마귀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고 항상 승리하며 영광 돌립니다. 또한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가 우러나오며 변함없이 기도함으로 평강을 잃지 않습니다. 설령 자녀가 교통사고를 당했어도 믿음이 있기에 진정 마음에서 감사하며 하나님께 “왜 지켜 주시지 않았느냐!”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에는 행할 수 있는 마음은 가졌으되 온전한 성결은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기쁨으로 순종할 때도 있지만 아직 남아 있는 비진리의 마음이 진리의 마음과 갈등하다가 마지못해 순종할 때도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기에 상대를 미워하지 않고 섬기려 하지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행함이 아니기에 온전치 않으며 마음도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반석에 선 사람은 성령의 소욕을 좇는 진리의 마음이 강하므로 원수 마귀가 틈타거나 엿보지 못하며, 또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 가운데 행해 나가니 이런 믿음만 있다면 어떤 시험 환난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해결사가 되어 주시니 조금도 힘든 일이 없는 것입니다.
3. 성령을 받고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의 과정
성령을 받고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의 과정은 권투 선수가 세계 챔피언이 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부단한 노력과 인내와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실력이 없어 맞다가 열심히 노력하고 인내해서 실력이 향상되면 지는 경우보다는 이기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고 그만큼 자신감이 넘치게 됩니다. 원수 마귀와의 영적 싸움도 마찬가지이지요.
믿음의 2단계에서는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두 마음이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도 하지만 패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성령의 소욕이 점점 강해져 믿음의 3단계를 향해서 계속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오면 육신의 소욕이 점점 약해져 신앙생활이 차츰 수월해집니다. 예전에는 10분 기도했는데 20분, 30분, 1시간으로 점점 늘고 두세 시간도 거뜬히 하게 되지요. 이렇게 기도하면서 믿음의 3단계에 깊숙이 들어가면 진리 안에 굳건히 서게 되므로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는 믿음이 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기도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받습니다. 또한 말씀대로 지켜 행하니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며,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항상 깨어 기도하게 됩니다. 물론 반드시 믿음의 반석에 서야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초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해 가는 사람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렇게 순종해 가는 사람들은 믿음의 1단계에서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습니다.
4.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노력의 중요성
믿음의 2단계는 성령의 소욕을 좇는 마음과 육신의 소욕을 좇는 마음이 서로 싸우는 단계이지만 믿음의 3단계는 성령의 소욕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여 승리해 나가는 단계입니다. 이미 행함으로 죄를 짓는 육체의 일을 버렸으므로 신앙생활이 수월하지만, 몸과 결합해 있는 죄의 성질 곧 육신의 일을 벗기 위해 죄를 피 흘리기까지 버리는 싸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서 믿음의 3단계에 깊이 들어가면 육신의 일을 깨뜨려 버렸으므로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지 않고 온전히 순종만 있으며 진리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 믿음의 3단계로 들어가는 시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노력하기만 한다면 절대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녀도 말씀대로 행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여전히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알아 지켜 행할 때 영이 자라기 때문에 비록 힘이 들어도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해야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2단계에서 3단계로 들어가기까지는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진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나무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또한 새들이 깃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같지요. 66권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면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하는데, 온전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이 짧은 기간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곧바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검정고시를 통해 조기 진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수, 삼수를 거쳐 늦게 진학하기도 하는 것처럼 믿음도 자신이 얼마큼 노력하느냐에 따라 4단계에 신속히 들어갈 수도 있고 더디 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 그릇됨의 차이입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아무리 알고 깨우쳐 믿음과 소망이 있다고 할지라도 노력하는 것이 적습니다. 하지만 마음 그릇이 큰 사람은 그것이 옳다는 것을 깨닫고 한 번 하겠다고 결심하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성취해 내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러므로 신속히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단한 노력,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노력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신속히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히브리서 12장 4절을 외워 보세요.
2. 믿음의 1단계는 성령 받아 구원받은 단계요, 믿음의 2단계는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3단계는 어떤 단계일까요?
3. 현재 자신의 믿음은 다음 중 어디에 속할까요?
믿음의 1단계/ 믿음의 2단계/ 믿음의 3단계 초입/ 믿음의 반석/ 그 이상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육신의 일’이란?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인 육신을 낱낱이 분리해 놓은 것을 말한다. 즉 미움, 시기, 질투, 거짓됨, 간사함, 교만, 혈기, 판단, 정죄, 간음, 욕심 등을 말한다.
2024-03-08
제10과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마태복음 7:24~25
읽을말씀 : 마태복음 7:24~25 | 외울말씀 : 마태복음 7:24 |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5:16~18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는 어떻게 소유하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1단계는 성령 받아 구원받은 단계요, 믿음의 2단계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라 했습니다. 2단계는 말씀을 알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때로는 말씀을 어기고 육체의 일을 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걷는 것처럼,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는데 믿음이 자라면서 깨닫게 되니 점차 행할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믿음의 3단계를 ‘행할 수 있는 믿음’, ‘깨닫게 하는 믿음’이라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1.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
하나님 말씀을 안다는 것과 말씀을 깨닫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 말씀이니 의무감으로 무조건 행하는 것과 왜 행해야 하는지를 깨달아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주일을 성수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고 질병이 떠나게 하시며, 영혼이 잘되게 하고 물질도 축복하신다는 것을 들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아는 것만으로는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온전히 마음에 믿어지기 전까지는 환경에 따라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에 말씀이 깨달아지면서 진정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으로 와 닿으면 이때부터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타협하지 않고 주일을 성수하며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 곧 영적 세계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한 주 동안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고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 곧 우리 눈에 보이는 천하 만물의 모든 세계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 드리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시니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즉 모든 수입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중 십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쓸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듣고 배우며 진정 마음 중심에서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는 사실이 깨달아져야 그동안 행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며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말 3:10).
2.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려면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서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순종이 따르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나갑니다. 하지만 깨달음이 오지 않으면 머리로 아는 지식에 불과하기에 행하려고 해도 온전히 행해지지 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아기가 태어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방치해 두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는 잘 먹고 손짓발짓하며 움직여야 하고, 부모나 가족을 통해서 보고 듣고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식이 쌓이고 지혜도 발달하며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알고 있는 말씀을 행해 나가려고 노력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깨우쳐지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2단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뜻이니 억지로라도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기쁘고 감사할 조건이나 환경이 되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 반석의 믿음을 소유하면 이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지 깨달아 어떤 환경 조건에 처하든지 마음 중심에서 기뻐하며 기도하며 감사하지요.
3.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우리는 왜 항상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요? 만일 우리가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시험 환난과 근심 걱정이 올 때는 기뻐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땅에 목적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육적으로 기쁘고 즐거울 때만 기뻐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세상이 주는 근심, 걱정, 슬픔과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 만물과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 근심, 걱정이 없으며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니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달으면 기뻐하지 못할 조건에도 기뻐하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도 기도하며 감사하지 못할 조건에도 감사합니다. 그럴 때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시험 환난이 떠나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문제가 척척 해결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염려 근심이 앞선다거나 억지로 기뻐한다면 아직 믿음의 2단계요,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마음 중심에서부터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습으로 변해 간다면 이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가 되면 미움을 버리기 위해 상대를 섬기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니 미움이 떠나고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조금씩 임하는데, 이는 죄인 된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선만 행하셨고 아무 잘못도 없으신 분이었는데 오히려 죄인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과 멸시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자기를 조롱하고 비웃는 무리를 미워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으며 생명을 주시는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지요.
이러한 사랑을 깨닫기 전에는 나에게 해를 입히거나 공연히 나를 비방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을 미워했지만, 이제는 그 죄를 미워할망정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심 내거나 칭찬받는 사람을 보면 시기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사랑하게 되지요.
또한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내 생각에 맞추어 의심하고 판단하였던 사람도 이제는 마음 문을 열고 모두 믿음으로 받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하나하나 행함으로 나타내는 단계가 바로 믿음의 3단계인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깨달아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더욱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마음 중심에서 깨달아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7장 24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하는 두 개를 고르세요.
① 성결을 이룬 단계다.
② 하나님 말씀을 중심에서 깨달아 순종하는 단계다.
③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다.
④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단계이다.
3. 믿음의 3단계에 들어 온 증거는 무엇인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십일조’란?
하나님께 드리는 수입의 10분의 1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의 생산물, 나무와 과일, 소와 양의 10분의 1을 바치라고 명하셨다(레 27:30~32 ; 신 14:22).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으로 저주받는 사람이 없도록 십일조를 통해 얼마나 축복이 임하는지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셨다(말 3:10).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는 어떻게 소유하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1단계는 성령 받아 구원받은 단계요, 믿음의 2단계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라 했습니다. 2단계는 말씀을 알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때로는 말씀을 어기고 육체의 일을 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걷는 것처럼,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는데 믿음이 자라면서 깨닫게 되니 점차 행할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믿음의 3단계를 ‘행할 수 있는 믿음’, ‘깨닫게 하는 믿음’이라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1.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
하나님 말씀을 안다는 것과 말씀을 깨닫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 말씀이니 의무감으로 무조건 행하는 것과 왜 행해야 하는지를 깨달아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주일을 성수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고 질병이 떠나게 하시며, 영혼이 잘되게 하고 물질도 축복하신다는 것을 들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아는 것만으로는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온전히 마음에 믿어지기 전까지는 환경에 따라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에 말씀이 깨달아지면서 진정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으로 와 닿으면 이때부터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타협하지 않고 주일을 성수하며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 곧 영적 세계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한 주 동안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고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 곧 우리 눈에 보이는 천하 만물의 모든 세계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 드리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시니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즉 모든 수입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중 십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쓸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듣고 배우며 진정 마음 중심에서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는 사실이 깨달아져야 그동안 행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며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말 3:10).
2.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려면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서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순종이 따르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나갑니다. 하지만 깨달음이 오지 않으면 머리로 아는 지식에 불과하기에 행하려고 해도 온전히 행해지지 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아기가 태어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방치해 두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는 잘 먹고 손짓발짓하며 움직여야 하고, 부모나 가족을 통해서 보고 듣고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식이 쌓이고 지혜도 발달하며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알고 있는 말씀을 행해 나가려고 노력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깨우쳐지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2단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뜻이니 억지로라도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기쁘고 감사할 조건이나 환경이 되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 반석의 믿음을 소유하면 이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지 깨달아 어떤 환경 조건에 처하든지 마음 중심에서 기뻐하며 기도하며 감사하지요.
3.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우리는 왜 항상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요? 만일 우리가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시험 환난과 근심 걱정이 올 때는 기뻐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땅에 목적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육적으로 기쁘고 즐거울 때만 기뻐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세상이 주는 근심, 걱정, 슬픔과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 만물과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 근심, 걱정이 없으며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니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달으면 기뻐하지 못할 조건에도 기뻐하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도 기도하며 감사하지 못할 조건에도 감사합니다. 그럴 때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시험 환난이 떠나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문제가 척척 해결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염려 근심이 앞선다거나 억지로 기뻐한다면 아직 믿음의 2단계요,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마음 중심에서부터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습으로 변해 간다면 이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가 되면 미움을 버리기 위해 상대를 섬기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니 미움이 떠나고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조금씩 임하는데, 이는 죄인 된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선만 행하셨고 아무 잘못도 없으신 분이었는데 오히려 죄인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과 멸시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자기를 조롱하고 비웃는 무리를 미워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으며 생명을 주시는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지요.
이러한 사랑을 깨닫기 전에는 나에게 해를 입히거나 공연히 나를 비방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을 미워했지만, 이제는 그 죄를 미워할망정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심 내거나 칭찬받는 사람을 보면 시기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사랑하게 되지요.
또한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내 생각에 맞추어 의심하고 판단하였던 사람도 이제는 마음 문을 열고 모두 믿음으로 받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하나하나 행함으로 나타내는 단계가 바로 믿음의 3단계인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깨달아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더욱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마음 중심에서 깨달아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7장 24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하는 두 개를 고르세요.
① 성결을 이룬 단계다.
② 하나님 말씀을 중심에서 깨달아 순종하는 단계다.
③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다.
④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단계이다.
3. 믿음의 3단계에 들어 온 증거는 무엇인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십일조’란?
하나님께 드리는 수입의 10분의 1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의 생산물, 나무와 과일, 소와 양의 10분의 1을 바치라고 명하셨다(레 27:30~32 ; 신 14:22).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으로 저주받는 사람이 없도록 십일조를 통해 얼마나 축복이 임하는지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셨다(말 3:10).
2024-03-01
제9과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
고린도전서 3:1~3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3:1~3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2:6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2:6~7
교육목표 : 믿음의 분량을 통해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가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고 날로 믿음이 성장하여 밥 먹는 신자가 되게 한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서 성장 과정에 따라 자녀들의 믿음, 아이들의 믿음, 청년들의 믿음, 아비들의 믿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기가 성장하는 중에 젖을 먹다가 밥을 먹는 것처럼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는 무엇이 다를까요?
1. 믿음의 1, 2단계는 젖 먹는 신자
앞서 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는 성령을 받고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며 하나님과 자녀 관계가 성립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는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들은 대로 행하려고 하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으므로 응답받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단계라고 했지요.
믿음의 1단계에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곤고한 줄을 모르며 성령의 탄식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아직 진리가 무엇이며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 죄를 지어도 죄인 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도 없어 진리로 분별할 수 없으니 설령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갓난아기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기어다니다가 물그릇을 엎고 그릇을 깨도 야단치지 않는 것과 같지요. 오히려 부모나 가족이 그릇을 치우지 않고 주의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 결코 어린아이 탓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2단계에 이르면 죄를 지을 때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곤고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단계의 믿음도 아니지요.
이처럼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을 지니지 못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젖 먹는 신자’라고 말합니다.
2. 젖 먹는 신자를 양육하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거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고 해서 징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시고 그것에 맞게 사랑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는 받았으나 아직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편지로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 마치 젖을 먹이듯 부드럽게 권면하며 말씀을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이끌어 줘야 하므로 ‘젖 먹는 신자’라고 말하는 것이요, 믿음이 성장해 하나님 말씀을 이해할 뿐 아니라 스스로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 되면 ‘밥 먹는 신자’라고 말합니다.
젖 먹는 신자는 신속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밥 먹는 신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하지만 무조건 밥 먹는 신자가 되도록 다그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젖을 먹이지 않고 밥을 먹도록 강요한다면 소화불량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작은 아내나 남편, 자녀를 인도할 때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마음이 강퍅해서 믿지 않는다고 하거나 행함이 부족하다고 책망할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려 주며 믿음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3. 밥 먹는 신자가 되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힘쓰면 시험 환난이 따르지 않도록 지켜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2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어린아이가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다면 얼마나 부모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어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야 부모의 마음이 흐뭇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부지런히 믿음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면 믿음의 3단계로 이끌어 주시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시고 승리할 때 믿음을 성장시켜 주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시험으로 인해 연단이 얼마나 컸느냐에 따라서 축복이 더 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직도 믿음의 1, 2단계에 해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축복 주시기 위한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징계하십니다.
밥과 여러 가지 영양분이 있는 음식물을 골고루 섭취해 건강하게 자라야 할 자녀가 젖만 먹고 있으니 그대로 두면 영양이 결핍되어 병이 생길 수 있고 점점 여위어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밥을 먹이려고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치 못하면 참 자녀를 얻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신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징계하시며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7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한 대로 시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행했는데도 징계가 임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아들이 아니라면 그 영혼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으니 비극 중의 비극인 것이지요. 그러나 죄를 범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증거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죄를 범했는데도 징계가 임하지 않았다면 버림받았다며 체념하지 말고 더욱 힘써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입술로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정녕 마음 중심에서 통회자복을 해야 죄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회자복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통회자복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고 간절히 매달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을 하면 반드시 눈물과 콧물이 나오며 마음을 찢는 회개가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헐리면 마음이 가볍고 시원함을 느끼며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성령 충만함을 입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했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2단계의 행함을 내보이고 있다면 각종 문제가 쌓여도 해결할 믿음조차 오지 않습니다. 믿어지는 믿음 자체가 오지 않기 때문에 질병도 치료되지 않는 것이며, 결국 세상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돌이키면 믿음의 3단계에 있었던 사람이므로 다시금 믿어지는 믿음이 오게 됩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았다면 우리는 결코 현재의 믿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다음 단계인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혹은 그 이상의 교육 과정을 거쳐 더욱 발전적인 삶을 살기 원하듯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힘쓰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2단계는 겨자씨만 한 믿음이 심어져 싹이 난 단계로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금방 자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며 하나님 말씀을 무장하고 기도에 힘쓰면 신속히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히브리서 12장 6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괄호 안에 알맞은 답을 써넣으세요.
■ 마치 젖을 먹이듯 부드럽게 권면하며 하나님 말씀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어야 하는 신자를 ( )라고 하며, 믿음이 성장해 스스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신자는 ( )라고 말한다.
■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사랑의 매로 ( )를 가하시기도 한다.
■ 하나님의 자녀들은 ( )과 ( )를 통해 믿음을 성장시켜야 한다(딤전 4:5).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생명책’이란?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한다. 이 책에 기록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
혹여라도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흐려지는 일이 없도록 깨어 있는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교육목표 : 믿음의 분량을 통해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가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고 날로 믿음이 성장하여 밥 먹는 신자가 되게 한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서 성장 과정에 따라 자녀들의 믿음, 아이들의 믿음, 청년들의 믿음, 아비들의 믿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기가 성장하는 중에 젖을 먹다가 밥을 먹는 것처럼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는 무엇이 다를까요?
1. 믿음의 1, 2단계는 젖 먹는 신자
앞서 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는 성령을 받고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며 하나님과 자녀 관계가 성립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는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들은 대로 행하려고 하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으므로 응답받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단계라고 했지요.
믿음의 1단계에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곤고한 줄을 모르며 성령의 탄식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아직 진리가 무엇이며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 죄를 지어도 죄인 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도 없어 진리로 분별할 수 없으니 설령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갓난아기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기어다니다가 물그릇을 엎고 그릇을 깨도 야단치지 않는 것과 같지요. 오히려 부모나 가족이 그릇을 치우지 않고 주의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 결코 어린아이 탓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2단계에 이르면 죄를 지을 때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곤고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단계의 믿음도 아니지요.
이처럼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을 지니지 못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젖 먹는 신자’라고 말합니다.
2. 젖 먹는 신자를 양육하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거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고 해서 징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시고 그것에 맞게 사랑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는 받았으나 아직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편지로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 마치 젖을 먹이듯 부드럽게 권면하며 말씀을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이끌어 줘야 하므로 ‘젖 먹는 신자’라고 말하는 것이요, 믿음이 성장해 하나님 말씀을 이해할 뿐 아니라 스스로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 되면 ‘밥 먹는 신자’라고 말합니다.
젖 먹는 신자는 신속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밥 먹는 신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하지만 무조건 밥 먹는 신자가 되도록 다그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젖을 먹이지 않고 밥을 먹도록 강요한다면 소화불량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작은 아내나 남편, 자녀를 인도할 때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마음이 강퍅해서 믿지 않는다고 하거나 행함이 부족하다고 책망할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려 주며 믿음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3. 밥 먹는 신자가 되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힘쓰면 시험 환난이 따르지 않도록 지켜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2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어린아이가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다면 얼마나 부모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어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야 부모의 마음이 흐뭇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부지런히 믿음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면 믿음의 3단계로 이끌어 주시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시고 승리할 때 믿음을 성장시켜 주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시험으로 인해 연단이 얼마나 컸느냐에 따라서 축복이 더 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직도 믿음의 1, 2단계에 해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축복 주시기 위한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징계하십니다.
밥과 여러 가지 영양분이 있는 음식물을 골고루 섭취해 건강하게 자라야 할 자녀가 젖만 먹고 있으니 그대로 두면 영양이 결핍되어 병이 생길 수 있고 점점 여위어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밥을 먹이려고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치 못하면 참 자녀를 얻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신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징계하시며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7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한 대로 시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행했는데도 징계가 임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아들이 아니라면 그 영혼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으니 비극 중의 비극인 것이지요. 그러나 죄를 범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증거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죄를 범했는데도 징계가 임하지 않았다면 버림받았다며 체념하지 말고 더욱 힘써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입술로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정녕 마음 중심에서 통회자복을 해야 죄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회자복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통회자복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고 간절히 매달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을 하면 반드시 눈물과 콧물이 나오며 마음을 찢는 회개가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헐리면 마음이 가볍고 시원함을 느끼며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성령 충만함을 입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했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2단계의 행함을 내보이고 있다면 각종 문제가 쌓여도 해결할 믿음조차 오지 않습니다. 믿어지는 믿음 자체가 오지 않기 때문에 질병도 치료되지 않는 것이며, 결국 세상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돌이키면 믿음의 3단계에 있었던 사람이므로 다시금 믿어지는 믿음이 오게 됩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았다면 우리는 결코 현재의 믿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다음 단계인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혹은 그 이상의 교육 과정을 거쳐 더욱 발전적인 삶을 살기 원하듯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힘쓰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2단계는 겨자씨만 한 믿음이 심어져 싹이 난 단계로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금방 자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며 하나님 말씀을 무장하고 기도에 힘쓰면 신속히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히브리서 12장 6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괄호 안에 알맞은 답을 써넣으세요.
■ 마치 젖을 먹이듯 부드럽게 권면하며 하나님 말씀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어야 하는 신자를 ( )라고 하며, 믿음이 성장해 스스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신자는 ( )라고 말한다.
■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사랑의 매로 ( )를 가하시기도 한다.
■ 하나님의 자녀들은 ( )과 ( )를 통해 믿음을 성장시켜야 한다(딤전 4:5).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생명책’이란?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한다. 이 책에 기록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
혹여라도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흐려지는 일이 없도록 깨어 있는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2024-02-23
제8과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
로마서 7:21~25
읽을말씀 : 로마서 7:21~25 | 외울말씀 : 마태복음 7:14 | 참고 말씀: 마태복음 7:13~14, 요한계시록 3:15~16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뜻대로 되지 않는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믿음의 2단계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1단계란 구원받기 위한 믿음이며 성령 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성령을 받음으로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은 상태이지요.
성령을 받으면 마음에 구원의 확신과 죄 사함의 은혜로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쁨과 행복이 충만해질 뿐만 아니라, 방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를 받기도 하며 찬양이 끊이지 않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즐겁습니다.
반면 믿음이 성장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을 때는 성령이 탄식하므로 충만함이 떨어지고 곤고해지지요. 따라서 기쁨을 잃지 않으려면 믿음의 1단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2단계, 3단계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1.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는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단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믿음의 1단계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설령 죄를 지어도 잘 알지 못합니다. 이는 갓난아기가 발가벗고 있어도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생명을 느끼면 교회에 나와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을 사모하게 되고 기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하면 나도 기도를 잘할 수 있을까?’ 궁구하게 됩니다. 또한 앞서가는 일꾼들을 보면 ‘어떻게 하면 나도 저렇게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하며 사모하지요.
그래서 세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교회로 향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기에 힘쓰며, 전에는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거워했는데 이제는 믿음의 형제들과 교제하는 것을 더 즐겁게 생각합니다. 이는 육을 좇았던 마음이 영을 좇고자 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가 되면 자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음의 형제들 간증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따라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요. 또한 미움, 시기, 판단, 정죄 등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며 주님 마음을 닮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각오가 생깁니다.
2.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힘든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는 진리를 알기 때문에 그대로 행하려고 무던히 힘쓰기는 하지만 정작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신앙생활을 가장 힘들게 느끼는 단계입니다. 아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임하지 않아 믿음으로 승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일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어떤 모임이나 약속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로 인해 온전히 지키지 못합니다. 오전 예배만 드린 후 오후엔 다른 볼일을 보거나,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니 아예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다른 곳에 가기도 하지요. 십일조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씀을 알지만 때로는 순종하지 못하기도 하고,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 보지만 여전히 미움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직 마음속에 간음이 있기 때문에(마 5:28)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면 마음이 요동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온전히 주어지지 않았지만 어찌하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합니다. 판단, 시기, 질투, 간음 등 진리에 위배되는 죄를 싸워 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요. 로마서 7장 21절 이하에 믿음의 2단계 신앙생활이 힘든 이유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그러므로 영혼을 갈무리하는 사람들은 지혜롭게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아직 술, 담배를 끊지 못한 사람에게 “술, 담배를 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라고 책망하면 교회에 오기를 꺼리며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으니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쉽게 끊을 수 있고, 믿음이 장성해지면 자연히 버려지니 믿고 기도하세요.”라고 권면해야 합니다. 상대가 징계의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죄의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끼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린 후 가게 문을 열면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기뻐하십니다. 주일 성수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주일에 얻는 수입보다 더 큰 수입으로 축복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지혜롭게 권면해 주어야 합니다.
3.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
400여 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모세를 따라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 중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았습니다. 애굽에 열 재앙이 임하는 것도 보았고, 홍해에 이르러서는 바닷물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으며, 마라에 이르러서는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어 먹을 수 있었고, 신 광야에 이르러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지요.
이처럼 수없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지만, 그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기보다는 불평하며 원망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이 그들과 함께하시며 인도해 주셨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힘들어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을까요? 이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서라기보다 마음에서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이를 힘들게 여기지 않고 거뜬히 통과해 가나안 땅에 이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똑같은 환경에서도 어떤 믿음을 소유하고,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비슷한 조건 속에 살더라도 어떤 사람은 늘 불행하게 살며, 어떤 사람은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지요.
우리가 천국에 대한 소망과 변치 않는 믿음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힘들다 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쁘고 즐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절대 힘들지 않아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다른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농촌에서 소가 논을 가는 것을 보면 주인을 위해서 힘들게 일해 주면서도 매를 맞는 일이 있습니다. 주인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다른 곳으로 가려고 고집을 부리니 주인은 매를 들기도 하고 고삐를 잡아당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도적질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도적질을 안 하면 될 텐데 도적질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기 위해 버리라는 것을 버리지 않으니 고통받지요.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했습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계속 순종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이것이 천국을 소유하는 길이요, 진정 기쁘고 행복한 길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쌓는 데 그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7장 14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믿음의 2단계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다.
②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다.
③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④ 약속이 생기면 가끔 주일에 빠지기도 한다.
3.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 )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 )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 7:21)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출애굽’이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로 생활하고 있던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모세의 지도아래 탈출을 시도해 승리한 사건을 말한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믿음을 소유하기까지 40년의 광야 생활을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뜻대로 되지 않는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믿음의 2단계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1단계란 구원받기 위한 믿음이며 성령 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성령을 받음으로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은 상태이지요.
성령을 받으면 마음에 구원의 확신과 죄 사함의 은혜로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쁨과 행복이 충만해질 뿐만 아니라, 방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를 받기도 하며 찬양이 끊이지 않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즐겁습니다.
반면 믿음이 성장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을 때는 성령이 탄식하므로 충만함이 떨어지고 곤고해지지요. 따라서 기쁨을 잃지 않으려면 믿음의 1단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2단계, 3단계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1.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는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단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믿음의 1단계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설령 죄를 지어도 잘 알지 못합니다. 이는 갓난아기가 발가벗고 있어도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생명을 느끼면 교회에 나와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을 사모하게 되고 기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하면 나도 기도를 잘할 수 있을까?’ 궁구하게 됩니다. 또한 앞서가는 일꾼들을 보면 ‘어떻게 하면 나도 저렇게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하며 사모하지요.
그래서 세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교회로 향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기에 힘쓰며, 전에는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거워했는데 이제는 믿음의 형제들과 교제하는 것을 더 즐겁게 생각합니다. 이는 육을 좇았던 마음이 영을 좇고자 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의 2단계가 되면 자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음의 형제들 간증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따라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요. 또한 미움, 시기, 판단, 정죄 등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며 주님 마음을 닮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각오가 생깁니다.
2.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힘든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는 진리를 알기 때문에 그대로 행하려고 무던히 힘쓰기는 하지만 정작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신앙생활을 가장 힘들게 느끼는 단계입니다. 아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임하지 않아 믿음으로 승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일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어떤 모임이나 약속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로 인해 온전히 지키지 못합니다. 오전 예배만 드린 후 오후엔 다른 볼일을 보거나,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니 아예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다른 곳에 가기도 하지요. 십일조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씀을 알지만 때로는 순종하지 못하기도 하고,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 보지만 여전히 미움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직 마음속에 간음이 있기 때문에(마 5:28)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면 마음이 요동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온전히 주어지지 않았지만 어찌하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합니다. 판단, 시기, 질투, 간음 등 진리에 위배되는 죄를 싸워 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요. 로마서 7장 21절 이하에 믿음의 2단계 신앙생활이 힘든 이유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그러므로 영혼을 갈무리하는 사람들은 지혜롭게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아직 술, 담배를 끊지 못한 사람에게 “술, 담배를 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라고 책망하면 교회에 오기를 꺼리며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으니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쉽게 끊을 수 있고, 믿음이 장성해지면 자연히 버려지니 믿고 기도하세요.”라고 권면해야 합니다. 상대가 징계의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죄의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끼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린 후 가게 문을 열면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기뻐하십니다. 주일 성수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주일에 얻는 수입보다 더 큰 수입으로 축복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지혜롭게 권면해 주어야 합니다.
3.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
400여 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모세를 따라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 중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았습니다. 애굽에 열 재앙이 임하는 것도 보았고, 홍해에 이르러서는 바닷물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으며, 마라에 이르러서는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어 먹을 수 있었고, 신 광야에 이르러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지요.
이처럼 수없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지만, 그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기보다는 불평하며 원망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이 그들과 함께하시며 인도해 주셨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힘들어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을까요? 이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서라기보다 마음에서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이를 힘들게 여기지 않고 거뜬히 통과해 가나안 땅에 이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똑같은 환경에서도 어떤 믿음을 소유하고,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비슷한 조건 속에 살더라도 어떤 사람은 늘 불행하게 살며, 어떤 사람은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지요.
우리가 천국에 대한 소망과 변치 않는 믿음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힘들다 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쁘고 즐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절대 힘들지 않아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다른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농촌에서 소가 논을 가는 것을 보면 주인을 위해서 힘들게 일해 주면서도 매를 맞는 일이 있습니다. 주인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다른 곳으로 가려고 고집을 부리니 주인은 매를 들기도 하고 고삐를 잡아당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도적질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도적질을 안 하면 될 텐데 도적질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기 위해 버리라는 것을 버리지 않으니 고통받지요.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했습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계속 순종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이것이 천국을 소유하는 길이요, 진정 기쁘고 행복한 길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쌓는 데 그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7장 14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믿음의 2단계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다.
②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다.
③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④ 약속이 생기면 가끔 주일에 빠지기도 한다.
3.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 )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 )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 7:21)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출애굽’이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로 생활하고 있던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모세의 지도아래 탈출을 시도해 승리한 사건을 말한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믿음을 소유하기까지 40년의 광야 생활을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2024-02-16
제7과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
사도행전 2:38~39
읽을말씀 : 사도행전 2:38~39 | 외울말씀 : 사도행전 2:38 | 참고 말씀: 요한일서 2:12, 요한복음 1:12
교육목표 : 믿음의 1단계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인지 알아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길을 여행하면서 이정표를 만나면 안심이 되고 반갑습니다.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고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아 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천국 가는 길에도 이정표와 같이 신앙생활의 현주소를 알려 주며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축복된 사람입니까? 믿음의 분량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먼저 오늘은 믿음의 1단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받기 위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무엇이 죄인 줄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런데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한 대로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모든 사람이 마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람 보기에 선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죄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없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흠도 점도 없는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셨지요.
이러한 구원의 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하셨지요.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여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고 하늘나라 시민권이 주어집니다.
이처럼 구원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요일 2:12)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갈 4:6).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알지 못해도 성령을 받은 자체만으로 기쁘고 즐거워 세상 만물을 보고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앞서 배운 ‘자녀들의 믿음’에 속하며 또한 ‘풀의 믿음’으로서 시험이 오면 불에 활활 타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2. 성령 받기 위한 믿음
사도행전 19장 1~2절을 보면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 전파에 힘썼던 바울이 에베소 지방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대답하지요. 이들은 세례 요한이 베푸는 물세례는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어 성령을 선물로 받지는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하나님의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욜 2:28 ; 행 2:17). 오늘날 그대로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에베소 제자들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이 무엇이며 성령 세례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자에게 보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39절에는 성령 받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믿으면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니 고넬료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던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했고 방언으로 말했지요(행 10장).
믿음의 1단계는 성령 받기 위한 믿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았지만, 죄를 싸워 버린 것도 아니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한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도 아니므로 부끄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한 편 강도의 믿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3. 낙원에 들어간 한편 강도의 믿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두 사람의 강도가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 박혔습니다. 이때 한 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였으나 다른 편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었을 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시며 그가 구원받았음을 알려 주시지요(눅 23:43).
낙원은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의 1단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으로 천국의 가장 변두리에 해당하며 상급이 없습니다. 한편 강도는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았을 뿐 이 땅에서 예수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낙원에 들어갔지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을지라도 겨자씨만 한 믿음을 소유했을 뿐, 더 이상 믿음의 성장 과정을 거치지 못한 사람들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아 아무런 상급이 없는 낙원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갓 주님을 영접한 초신자들만 믿음의 1단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집사, 장로의 직분을 받았다고 해도 불같은 시험이 왔을 때 그동안 쌓은 공력이 불타는 풀 같은 믿음이라면 겨우 구원밖에 이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 받은 후에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꾸 죄를 범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려져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4. 성령을 받은 후 소멸치 말아야
이미 소천한 성도 한 분의 경우를 통해 불같은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분은 예전에 병들어 있을 때 당회장님께 기도 받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의 아내도 죽을 고비에서 당회장님 기도를 받고 살아났지요. 이후로 그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 일꾼으로 성장해 나름대로 사명을 감당하며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 교회에 큰 시험이 왔을 때 교회와 목자를 지키려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단에게 생각을 내어 주며 입술로 낸 말들이 하나님 앞에 담이 되어 지킴 받지 못하고 큰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충성하며 쌓아왔던 상급이 다 허물어지고, 기도의 능력이 오지 않으니 점점 믿음이 퇴보하여 구원받기조차 힘든 상태에 이르렀지요. 그나마 예전에 목자를 붙좇으며 섬겼던 행함이 하나님께 기억되어 임종 직전에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고 간신히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은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이 아니며 오직 그 중심이 얼마나 합당하느냐에 있습니다. 성령을 받고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말씀대로 행치 않고 하나님 앞에 자꾸 죄의 담을 쌓아간다면 점점 성령이 소멸하여(살전 5:19) 결국 겨자씨만 한 믿음마저 없어지니 구원받을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히 10:38). 만일 믿음이 성장하다가 뒤로 물러난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그러니 결코 시험에 들거나 신앙생활이 퇴보하는 일이 없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자라지 않고 어린아이 상태 그대로 있다면 부모는 얼마나 근심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아 겨자씨만 한 믿음을 소유했다면 열심히 말씀을 듣고 보고 배우며 날로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받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여 마음껏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도행전 2장 38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믿음의 1단계와 관계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낙원 ② 구원받기 위한 믿음 ③ 성령받기 위한 믿음
④ 자녀들의 믿음 ⑤ 1천층
3. 괄호 안을 채워 보세요.
낙원은 ( )를 영접하여 ( )을 선물로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이 들어가는 ( )이며 ( )이 없습니다.
4.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고 범죄함으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구원받았을까요? 구원받았다면 그들의 천국 처소는 어디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고넬료’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으로서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에 힘쓰며 식민지 백성에게 구제를 많이 하여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온 가족이 구원에 이르렀다.
교육목표 : 믿음의 1단계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인지 알아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길을 여행하면서 이정표를 만나면 안심이 되고 반갑습니다.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고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아 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천국 가는 길에도 이정표와 같이 신앙생활의 현주소를 알려 주며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축복된 사람입니까? 믿음의 분량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먼저 오늘은 믿음의 1단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받기 위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무엇이 죄인 줄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런데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한 대로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모든 사람이 마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람 보기에 선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죄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없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흠도 점도 없는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셨지요.
이러한 구원의 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하셨지요.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여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고 하늘나라 시민권이 주어집니다.
이처럼 구원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요일 2:12)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갈 4:6).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알지 못해도 성령을 받은 자체만으로 기쁘고 즐거워 세상 만물을 보고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앞서 배운 ‘자녀들의 믿음’에 속하며 또한 ‘풀의 믿음’으로서 시험이 오면 불에 활활 타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2. 성령 받기 위한 믿음
사도행전 19장 1~2절을 보면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 전파에 힘썼던 바울이 에베소 지방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대답하지요. 이들은 세례 요한이 베푸는 물세례는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어 성령을 선물로 받지는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하나님의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욜 2:28 ; 행 2:17). 오늘날 그대로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에베소 제자들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이 무엇이며 성령 세례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자에게 보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39절에는 성령 받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믿으면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니 고넬료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던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했고 방언으로 말했지요(행 10장).
믿음의 1단계는 성령 받기 위한 믿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았지만, 죄를 싸워 버린 것도 아니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한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도 아니므로 부끄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한 편 강도의 믿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3. 낙원에 들어간 한편 강도의 믿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두 사람의 강도가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 박혔습니다. 이때 한 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였으나 다른 편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었을 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시며 그가 구원받았음을 알려 주시지요(눅 23:43).
낙원은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의 1단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으로 천국의 가장 변두리에 해당하며 상급이 없습니다. 한편 강도는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았을 뿐 이 땅에서 예수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낙원에 들어갔지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을지라도 겨자씨만 한 믿음을 소유했을 뿐, 더 이상 믿음의 성장 과정을 거치지 못한 사람들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아 아무런 상급이 없는 낙원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갓 주님을 영접한 초신자들만 믿음의 1단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집사, 장로의 직분을 받았다고 해도 불같은 시험이 왔을 때 그동안 쌓은 공력이 불타는 풀 같은 믿음이라면 겨우 구원밖에 이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 받은 후에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꾸 죄를 범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려져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4. 성령을 받은 후 소멸치 말아야
이미 소천한 성도 한 분의 경우를 통해 불같은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분은 예전에 병들어 있을 때 당회장님께 기도 받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의 아내도 죽을 고비에서 당회장님 기도를 받고 살아났지요. 이후로 그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 일꾼으로 성장해 나름대로 사명을 감당하며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 교회에 큰 시험이 왔을 때 교회와 목자를 지키려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단에게 생각을 내어 주며 입술로 낸 말들이 하나님 앞에 담이 되어 지킴 받지 못하고 큰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충성하며 쌓아왔던 상급이 다 허물어지고, 기도의 능력이 오지 않으니 점점 믿음이 퇴보하여 구원받기조차 힘든 상태에 이르렀지요. 그나마 예전에 목자를 붙좇으며 섬겼던 행함이 하나님께 기억되어 임종 직전에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고 간신히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은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이 아니며 오직 그 중심이 얼마나 합당하느냐에 있습니다. 성령을 받고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말씀대로 행치 않고 하나님 앞에 자꾸 죄의 담을 쌓아간다면 점점 성령이 소멸하여(살전 5:19) 결국 겨자씨만 한 믿음마저 없어지니 구원받을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히 10:38). 만일 믿음이 성장하다가 뒤로 물러난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그러니 결코 시험에 들거나 신앙생활이 퇴보하는 일이 없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자라지 않고 어린아이 상태 그대로 있다면 부모는 얼마나 근심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아 겨자씨만 한 믿음을 소유했다면 열심히 말씀을 듣고 보고 배우며 날로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받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여 마음껏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도행전 2장 38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믿음의 1단계와 관계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낙원 ② 구원받기 위한 믿음 ③ 성령받기 위한 믿음
④ 자녀들의 믿음 ⑤ 1천층
3. 괄호 안을 채워 보세요.
낙원은 ( )를 영접하여 ( )을 선물로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이 들어가는 ( )이며 ( )이 없습니다.
4.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고 범죄함으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구원받았을까요? 구원받았다면 그들의 천국 처소는 어디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고넬료’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으로서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에 힘쓰며 식민지 백성에게 구제를 많이 하여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온 가족이 구원에 이르렀다.
2024-02-09
제6과각 사람의 공력에 따른 믿음의 분량
고린도전서 3:12~15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3:12~15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3:14~15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6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을 각 사람의 공력에 따라 구분한 이유를 깨닫고 스스로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기를 소망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행함이 없는 육적인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따르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믿음에도 분량이 있어서 요한일서 2장에 나오는 성장 과정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고 불같은 시험을 통해 나타나는 공력으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고린도전서 3장을 중심으로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의 믿음으로 구분해 보겠습니다.
1. 각 사람의 공력이 나타나는 시기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했는데 ‘터’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건축하는데 어떤 사람은 금이나 은, 보석으로 세우고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 짚으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3절 전반 절에는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했습니다.
그러면 공력(功力)이란 무엇일까요? 힘을 들여서 쌓아 놓은 정성, 곧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모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정성을 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정성을 다하여 신앙생활을 했으며 얼마나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았느냐에 따라 여섯 가지의 믿음으로 분류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날’이란 언제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각 사람의 공력을 밝히 나타내실까요?
먼저, 주어진 직분을 얼마나 잘 감당했는지를 평가할 때입니다. 매년 주어지는 직분에 있어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바로 공력이 나타나는 날이 되지요. 다음으로는, 불의 시험이 올 때 공력이 나타납니다. 불같은 시험이나 환난이 와도 변함이 없으며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는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재림 이후 하나님께서 백보좌 심판하실 때 공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살면서 얼마큼 충성하고 성결되었는지를 정확히 측정하시고, 그들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을 상으로 주십니다.
2. 불같은 시험을 통해 나타나는 공력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무엇으로 건축했느냐에 따라 공력이 달라집니다. 만일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으로 지은 집이 있는데 동시에 불이 났다고 합시다. 그러면 금이나 은, 보석으로 지은 집과는 달리 나무나 풀, 짚으로 지은 집은 쉽게 불타서 없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불같은 시험을 통해 어떤 사람은 금의 믿음, 어떤 사람은 그보다 못한 은의 믿음, 또 어떤 사람은 그보다 못한 보석의 믿음, 어떤 사람은 그보다 못한 나무의 믿음, 풀의 믿음, 짚의 믿음 등으로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짚의 공력을 들여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란 짚에는 생명이 없으므로 가치가 없듯이 쓸데없음을 의미합니다. 풀의 공력을 들여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영적인 생명은 있지만 열매가 없는 상태의 사람을 지칭하지요. 또 나무의 공력을 들였다는 것은 그만큼 믿음이 성장했다는 것이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신앙 상태입니다.
다음으로 보석과 같은 공력을 들인 사람은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단계로서 보석이 빛을 발하듯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또한 은과 같은 공력을 들였다면 은빛의 순결함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성결을 이룬 마음을 말하지요. 마지막으로 금과 같은 공력을 들였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4~15절에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금, 은, 보석, 나무, 풀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지만, 생명이 없는 마른 풀에 불과한 짚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죽은 믿음이므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또한 금이나 은, 보석은 불에 타지 아니하듯이 이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불같은 시험에도 승리할 수 있지만 나무나 풀과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승리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3. 금 같은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금은 불활성 금속으로 다른 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아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처럼 금은 변함이 없어 귀히 여기지요.
은의 경우는 금 다음으로 화폐, 장식품 외에도 공업용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보석보다는 단단하지만, 금에 비하면 약하고 가벼우며 아름다운 빛과 광택도 덜하여 금 다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 에메랄드 같은 보석은 빛깔이나 광택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금이나 은과 같이 다양하게 이용할 수 없으며 흠이 생기거나 한 번 깨지면 가치가 떨어지고 쓸모없어집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값지고 귀한 것부터 불에 견디는 강도와 다양한 용도를 살펴 구분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정금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믿음의 선진들이 많이 나옵니다. 어떠한 시험이 와도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으며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엘리야, 에녹, 모세, 바울, 베드로, 동정녀 마리아 등 정금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들은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되는 축복을 받아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그중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앞장섰던 사도 바울은 주님을 한 번 만난 뒤 어떤 시험 환난이 닥쳐와도 변함없는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며 믿음의 길을 끝까지 달려갔습니다. 그는 실라와 함께 복음을 증거하다가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지요(행 16:25). 오히려 천국의 소망 가운데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고 주의 일에 힘썼습니다.
우리도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면 불타지 않는 공력으로 인해 영원토록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시며 공의 가운데 정확하게 평가하십니다. 과연 누가 금의 공력을 나타냈으며 누가 은, 보석, 나무, 풀에 해당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어떨까요?
금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보다는 못하지만, 불에 깨지고 부서지는 보석과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보석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은혜가 충만하거나 어떤 병을 치료받았을 때는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짐합니다. 어떤 기도가 응답되면 “이제는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겠다.” 고백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충만함이 떨어졌을 때는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변질되어 깨지고 산산조각납니다.
이처럼 보석의 믿음은 일시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믿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불 속에서도 어느 정도 보석의 형체가 보존되어 있듯이 불같은 시험에도 그 공력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나 풀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불같은 시험이 오면 공력이 없어지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같은 시험을 통해 자신의 영적인 믿음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 상 주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믿고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더욱 힘쓰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무엇으로 집을 세우고 있나요?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 중에 하나를 골라 보세요.
2. 믿음의 분량에 맞는 것끼리 연결해 보세요.
▒ 짚의 공력 · · 생명이 없어 구원받지 못한 믿음
▒ 풀의 공력 · ·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4단계의 믿음
▒ 나무의 공력 ·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5단계의 믿음
▒ 보석의 공력 · ·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2단계의 믿음
▒ 은의 공력 ·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3단계의 믿음
▒ 금의 공력 · · 생명은 있지만 열매가 없는 1단계의 믿음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백보좌 대심판’이란?
요한계시록 20장 11절에 나오는 ‘크고 흰 보좌’를 백보좌라고 하며 그 주변에 구분된 공간까지도 포함한다.
장차 이 땅에서의 인간 경작이 마쳐지면 하나님께서는 백보좌에 앉아 창세 이래 모든 영혼을 각자의 행함에 따라 심판하시는데 이를 백보좌 대심판이라고 한다.
설 명절 감사 예배 순서와 예문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서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설날은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2024년, 새해에도 늘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1. 설 명절 감사 예배 순서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458장 ---------------------- 다 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 봉독 ---------------- 고린도후서 5:18~19 ---------------- 인도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설 교 ----------------------- 화 목 ----------------------- 설교자
2. 설교 예문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지요. 이유인즉슨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시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서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지요. 또 시어머니는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며느리를 감싸 주었습니다.
가족 중에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집은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것도 봅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낫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늘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지요.
야고보서 3장 5~6절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어나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지요.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새해에는 말 한마디도 심사숙고하여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격려하는 말,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했습니다. 이처럼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남편에게 한 만큼 받지 못한다면 서운해하고 삐치는 아내가 있다고 합시다. 더구나 남편은 자존심이 강하여 아내에게 져주기보다는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섬김’이란 겸손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는 것과 같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합니다. 또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섬긴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뿐 아니라 사랑으로 더욱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주시고 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출 20:6). 만일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비진리, 악들을 행한다면 형통하지 않은 것을 봅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과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또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냈지요.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 다해 차례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출 20:4~5).
사람이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믿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신을 찾고 기도하였지요.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 참 신으로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새해에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을 각 사람의 공력에 따라 구분한 이유를 깨닫고 스스로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기를 소망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행함이 없는 육적인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따르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믿음에도 분량이 있어서 요한일서 2장에 나오는 성장 과정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고 불같은 시험을 통해 나타나는 공력으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고린도전서 3장을 중심으로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의 믿음으로 구분해 보겠습니다.
1. 각 사람의 공력이 나타나는 시기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했는데 ‘터’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건축하는데 어떤 사람은 금이나 은, 보석으로 세우고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 짚으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3절 전반 절에는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했습니다.
그러면 공력(功力)이란 무엇일까요? 힘을 들여서 쌓아 놓은 정성, 곧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모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정성을 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정성을 다하여 신앙생활을 했으며 얼마나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았느냐에 따라 여섯 가지의 믿음으로 분류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날’이란 언제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각 사람의 공력을 밝히 나타내실까요?
먼저, 주어진 직분을 얼마나 잘 감당했는지를 평가할 때입니다. 매년 주어지는 직분에 있어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바로 공력이 나타나는 날이 되지요. 다음으로는, 불의 시험이 올 때 공력이 나타납니다. 불같은 시험이나 환난이 와도 변함이 없으며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는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재림 이후 하나님께서 백보좌 심판하실 때 공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살면서 얼마큼 충성하고 성결되었는지를 정확히 측정하시고, 그들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을 상으로 주십니다.
2. 불같은 시험을 통해 나타나는 공력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무엇으로 건축했느냐에 따라 공력이 달라집니다. 만일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으로 지은 집이 있는데 동시에 불이 났다고 합시다. 그러면 금이나 은, 보석으로 지은 집과는 달리 나무나 풀, 짚으로 지은 집은 쉽게 불타서 없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불같은 시험을 통해 어떤 사람은 금의 믿음, 어떤 사람은 그보다 못한 은의 믿음, 또 어떤 사람은 그보다 못한 보석의 믿음, 어떤 사람은 그보다 못한 나무의 믿음, 풀의 믿음, 짚의 믿음 등으로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짚의 공력을 들여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란 짚에는 생명이 없으므로 가치가 없듯이 쓸데없음을 의미합니다. 풀의 공력을 들여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영적인 생명은 있지만 열매가 없는 상태의 사람을 지칭하지요. 또 나무의 공력을 들였다는 것은 그만큼 믿음이 성장했다는 것이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신앙 상태입니다.
다음으로 보석과 같은 공력을 들인 사람은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단계로서 보석이 빛을 발하듯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또한 은과 같은 공력을 들였다면 은빛의 순결함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성결을 이룬 마음을 말하지요. 마지막으로 금과 같은 공력을 들였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4~15절에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금, 은, 보석, 나무, 풀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지만, 생명이 없는 마른 풀에 불과한 짚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죽은 믿음이므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또한 금이나 은, 보석은 불에 타지 아니하듯이 이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불같은 시험에도 승리할 수 있지만 나무나 풀과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승리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3. 금 같은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금은 불활성 금속으로 다른 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아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처럼 금은 변함이 없어 귀히 여기지요.
은의 경우는 금 다음으로 화폐, 장식품 외에도 공업용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보석보다는 단단하지만, 금에 비하면 약하고 가벼우며 아름다운 빛과 광택도 덜하여 금 다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 에메랄드 같은 보석은 빛깔이나 광택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금이나 은과 같이 다양하게 이용할 수 없으며 흠이 생기거나 한 번 깨지면 가치가 떨어지고 쓸모없어집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값지고 귀한 것부터 불에 견디는 강도와 다양한 용도를 살펴 구분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정금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믿음의 선진들이 많이 나옵니다. 어떠한 시험이 와도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으며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엘리야, 에녹, 모세, 바울, 베드로, 동정녀 마리아 등 정금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들은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되는 축복을 받아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그중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앞장섰던 사도 바울은 주님을 한 번 만난 뒤 어떤 시험 환난이 닥쳐와도 변함없는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며 믿음의 길을 끝까지 달려갔습니다. 그는 실라와 함께 복음을 증거하다가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지요(행 16:25). 오히려 천국의 소망 가운데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고 주의 일에 힘썼습니다.
우리도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면 불타지 않는 공력으로 인해 영원토록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시며 공의 가운데 정확하게 평가하십니다. 과연 누가 금의 공력을 나타냈으며 누가 은, 보석, 나무, 풀에 해당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어떨까요?
금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보다는 못하지만, 불에 깨지고 부서지는 보석과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보석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은혜가 충만하거나 어떤 병을 치료받았을 때는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짐합니다. 어떤 기도가 응답되면 “이제는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겠다.” 고백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충만함이 떨어졌을 때는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변질되어 깨지고 산산조각납니다.
이처럼 보석의 믿음은 일시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믿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불 속에서도 어느 정도 보석의 형체가 보존되어 있듯이 불같은 시험에도 그 공력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나 풀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불같은 시험이 오면 공력이 없어지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같은 시험을 통해 자신의 영적인 믿음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 상 주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믿고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더욱 힘쓰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무엇으로 집을 세우고 있나요?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 중에 하나를 골라 보세요.
2. 믿음의 분량에 맞는 것끼리 연결해 보세요.
▒ 짚의 공력 · · 생명이 없어 구원받지 못한 믿음
▒ 풀의 공력 · ·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4단계의 믿음
▒ 나무의 공력 ·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5단계의 믿음
▒ 보석의 공력 · ·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2단계의 믿음
▒ 은의 공력 ·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3단계의 믿음
▒ 금의 공력 · · 생명은 있지만 열매가 없는 1단계의 믿음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백보좌 대심판’이란?
요한계시록 20장 11절에 나오는 ‘크고 흰 보좌’를 백보좌라고 하며 그 주변에 구분된 공간까지도 포함한다.
장차 이 땅에서의 인간 경작이 마쳐지면 하나님께서는 백보좌에 앉아 창세 이래 모든 영혼을 각자의 행함에 따라 심판하시는데 이를 백보좌 대심판이라고 한다.
설 명절 감사 예배 순서와 예문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서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설날은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2024년, 새해에도 늘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1. 설 명절 감사 예배 순서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458장 ---------------------- 다 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 봉독 ---------------- 고린도후서 5:18~19 ---------------- 인도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설 교 ----------------------- 화 목 ----------------------- 설교자
2. 설교 예문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지요. 이유인즉슨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시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서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지요. 또 시어머니는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며느리를 감싸 주었습니다.
가족 중에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집은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것도 봅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낫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늘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지요.
야고보서 3장 5~6절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어나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지요.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새해에는 말 한마디도 심사숙고하여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격려하는 말,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했습니다. 이처럼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남편에게 한 만큼 받지 못한다면 서운해하고 삐치는 아내가 있다고 합시다. 더구나 남편은 자존심이 강하여 아내에게 져주기보다는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섬김’이란 겸손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는 것과 같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합니다. 또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섬긴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뿐 아니라 사랑으로 더욱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주시고 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출 20:6). 만일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비진리, 악들을 행한다면 형통하지 않은 것을 봅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과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또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냈지요.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 다해 차례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출 20:4~5).
사람이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믿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신을 찾고 기도하였지요.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 참 신으로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새해에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24-02-02
제5과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
에스겔 47:3~5
읽을말씀 : 에스겔 47:3~5 | 외울말씀 : 로마서 12:3 | 참고 말씀: 마태복음 15장, 17장
교육목표 : 에스겔서 47장에 나오는 믿음의 분량 비유를 통해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가득한지를 점검하며 자신의 믿음을 측정케 한다.
일반적으로 분량이란 무게, 부피, 수량 등의 많고 적음과 크고 작은 정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는 영적인 믿음에도 분량이 있어서 각 사람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믿음이 큰 사람은 마음에 품기만 해도 응답받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하루를 금식하거나 간절히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고 이보다 믿음이 작은 사람은 몇 달간 혹은 수년간 기도해야 겨우 응답받게 됩니다.
1. 사람마다 다른 믿음의 분량
만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 “저를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혹은 “미운 사람이 있으니 그를 징계해 주세요. 믿습니다.”라고 기도해서 응답받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하는 사람만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가 있지요. 그래서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버리라고 말씀하신 미움, 다툼, 시기, 질투, 간음 등을 철저히 버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만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시며 즉시 응답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가나안 지방의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시고자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이 여인은 조금도 불편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께 절하며 다시 간청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거절하시지요.
이런 경우, 대부분 사람은 심한 수치심을 느끼며 자존심이 상하거나 낙심하여 응답받기를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절대 실망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변함없이 겸손한 고백을 합니다. 자신을 개에 비유하며 끝까지 믿음으로 강청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고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말씀하셨고, 그 시로 가나안 여인의 딸이 낫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마태복음 17장 14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간질로 심히 고생하고 있는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고 그 즉시 귀신을 쫓아내고 치료해 주셨지요.
이때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물으니, 예수님께서는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답하시고는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권면하십니다. 영적인 믿음은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이라도 차츰 성장해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에스겔 47장에 나오는 믿음의 분량
성경에는 요한일서 2장 외에도 영적인 믿음의 성장 과정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에스겔 47장에는 물이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솟아 나와 동으로 흐르다가 성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흐르고 다시 북문을 지나 바깥문을 통해 성전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서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며(요 4:14), 물이 성전 안을 두루 흐르고 난 뒤 성전 밖으로 흘러나간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성전 안에서 선포될 뿐 아니라 성전 밖인 세상으로 널리 퍼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47장 3~5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성전에서 나온 물이 사람의 몸에 차오르는 높이를 측량하여 물을 건너게 합니다. 이는 장차 백보좌 대심판 때 주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시고 그에 따른 준엄한 심판을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물을 건너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넓고 크신 마음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하심과 모든 분야를 헤아리시는 깊은 마음으로 각 사람의 믿음을 종합적으로 측정하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손에 줄을 잡고 측량하는 사람은 주의 사자를 의미하며, 그가 손에 줄을 갖고 있다는 것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것을 뜻하지요. 또한 주의 사자가 일천 척을 척량할 때마다 물이 발목에서부터 점점 무릎과 허리, 그리고 그 이상으로 차오른다는 것은 바로 영적인 믿음의 성장 과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면 성전에서 나온 물이 사람의 몸에 차오르는 높이와 믿음의 분량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3절에 성전에서 나온 물이 사람의 ‘발목’까지 찼다는 것은 자녀들의 믿음, 곧 겨우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한 상태를 말합니다. 믿음의 분량을 사람의 키에 비유하면 발목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4절에 성전에서 나온 물이 ‘무릎’까지 찼다는 것은 아이들의 믿음을 의미하며, ‘허리’까지 찼다는 것은 청년들의 믿음을 소유한 상태를 말하지요. 5절에 사람의 키를 넘을 만큼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했는데, 이는 장성한 아비들의 믿음을 뜻합니다.
3.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생각해야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권면하십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깊은 바다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물이 발목까지 차는 곳에서는 헤엄을 칠 수 없으니 ‘걸어가거나 뛰어가야지.’ 할 것입니다. 또한 물이 허리를 지나 가슴까지 차는 곳이라면 당연히 걸어가거나 뛰어가려고 하지 않고 ‘헤엄을 쳐야지.’ 생각할 것입니다.
이처럼 물이 차오르는 높이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듯이 영적으로도 아이들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과 아비들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아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약속의 씨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십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씨로 주신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시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도 약속을 어기시는 분인가?’ 고민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는 식언치 않으시는 분이니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 하고 지혜롭게 생각하지요.
결국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겸비한 자세로 독자 이삭을 결박해 단 나무 위에 놓고 번제로 드리고자 했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멈추게 하시고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며 독자 이삭을 살려 주십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더욱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믿음의 조상, 하나님의 벗이 되는 놀라운 축복도 받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축복과 응답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 날로 영적인 믿음을 성장시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에스겔서 47장에 나오는 믿음의 분량 비유를 통해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가득한지를 점검하며 자신의 믿음을 측정케 한다.
일반적으로 분량이란 무게, 부피, 수량 등의 많고 적음과 크고 작은 정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는 영적인 믿음에도 분량이 있어서 각 사람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믿음이 큰 사람은 마음에 품기만 해도 응답받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하루를 금식하거나 간절히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고 이보다 믿음이 작은 사람은 몇 달간 혹은 수년간 기도해야 겨우 응답받게 됩니다.
1. 사람마다 다른 믿음의 분량
만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 “저를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혹은 “미운 사람이 있으니 그를 징계해 주세요. 믿습니다.”라고 기도해서 응답받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하는 사람만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가 있지요. 그래서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버리라고 말씀하신 미움, 다툼, 시기, 질투, 간음 등을 철저히 버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만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시며 즉시 응답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가나안 지방의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시고자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이 여인은 조금도 불편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께 절하며 다시 간청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거절하시지요.
이런 경우, 대부분 사람은 심한 수치심을 느끼며 자존심이 상하거나 낙심하여 응답받기를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절대 실망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변함없이 겸손한 고백을 합니다. 자신을 개에 비유하며 끝까지 믿음으로 강청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고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말씀하셨고, 그 시로 가나안 여인의 딸이 낫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마태복음 17장 14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간질로 심히 고생하고 있는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고 그 즉시 귀신을 쫓아내고 치료해 주셨지요.
이때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물으니, 예수님께서는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답하시고는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권면하십니다. 영적인 믿음은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이라도 차츰 성장해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에스겔 47장에 나오는 믿음의 분량
성경에는 요한일서 2장 외에도 영적인 믿음의 성장 과정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에스겔 47장에는 물이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솟아 나와 동으로 흐르다가 성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흐르고 다시 북문을 지나 바깥문을 통해 성전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서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며(요 4:14), 물이 성전 안을 두루 흐르고 난 뒤 성전 밖으로 흘러나간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성전 안에서 선포될 뿐 아니라 성전 밖인 세상으로 널리 퍼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47장 3~5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성전에서 나온 물이 사람의 몸에 차오르는 높이를 측량하여 물을 건너게 합니다. 이는 장차 백보좌 대심판 때 주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시고 그에 따른 준엄한 심판을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물을 건너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넓고 크신 마음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하심과 모든 분야를 헤아리시는 깊은 마음으로 각 사람의 믿음을 종합적으로 측정하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손에 줄을 잡고 측량하는 사람은 주의 사자를 의미하며, 그가 손에 줄을 갖고 있다는 것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것을 뜻하지요. 또한 주의 사자가 일천 척을 척량할 때마다 물이 발목에서부터 점점 무릎과 허리, 그리고 그 이상으로 차오른다는 것은 바로 영적인 믿음의 성장 과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면 성전에서 나온 물이 사람의 몸에 차오르는 높이와 믿음의 분량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3절에 성전에서 나온 물이 사람의 ‘발목’까지 찼다는 것은 자녀들의 믿음, 곧 겨우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한 상태를 말합니다. 믿음의 분량을 사람의 키에 비유하면 발목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4절에 성전에서 나온 물이 ‘무릎’까지 찼다는 것은 아이들의 믿음을 의미하며, ‘허리’까지 찼다는 것은 청년들의 믿음을 소유한 상태를 말하지요. 5절에 사람의 키를 넘을 만큼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했는데, 이는 장성한 아비들의 믿음을 뜻합니다.
3.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생각해야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권면하십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깊은 바다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물이 발목까지 차는 곳에서는 헤엄을 칠 수 없으니 ‘걸어가거나 뛰어가야지.’ 할 것입니다. 또한 물이 허리를 지나 가슴까지 차는 곳이라면 당연히 걸어가거나 뛰어가려고 하지 않고 ‘헤엄을 쳐야지.’ 생각할 것입니다.
이처럼 물이 차오르는 높이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듯이 영적으로도 아이들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과 아비들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아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약속의 씨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십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씨로 주신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시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도 약속을 어기시는 분인가?’ 고민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는 식언치 않으시는 분이니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 하고 지혜롭게 생각하지요.
결국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겸비한 자세로 독자 이삭을 결박해 단 나무 위에 놓고 번제로 드리고자 했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멈추게 하시고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며 독자 이삭을 살려 주십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더욱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믿음의 조상, 하나님의 벗이 되는 놀라운 축복도 받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축복과 응답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 날로 영적인 믿음을 성장시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2024-01-26
제4과영적인 믿음의 성장 과정
요한일서 2:12~17
읽을말씀 : 요한일서 2:12~17 | 외울말씀 : 요한일서 2:15 | 참고 말씀: 요한복음 1:12 ; 빌립보서 2:5~8
교육목표 : 영적인 믿음의 성장 과정에 대해 알아보고 말씀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측정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영적인 믿음이 자라나야 아이, 청년의 때를 지나 아비의 믿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갓 태어난 자녀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장성한 아비의 믿음에 이르는 것일까요?
1. 죄 사함을 받은 ‘자녀들의 믿음’
요한일서 2장 12절에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요 1:12).
우리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으며 그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야만 비로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했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사하여 줄 능력과 사랑이 있으며, 원죄와 자범죄가 없으신 분이므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셨을 때, 좌우편에 달린 행악자 중 한편 강도는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받고 낙원을 허락받았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 안에서 갓 태어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아” 하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해야 호적에 오르듯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천국 시민권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습니다. 따라서 자녀들의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죄 사함을 받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상태의 믿음으로서 믿음의 1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아이들의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은 점점 믿음이 성장해 ‘아이들’로 자라게 됩니다. 젖먹이 때를 지난 아이는 부모를 알아보고 어느 정도 사물을 알아보지만 아직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는 것이 별로 없고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성장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와 이제 막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된 초신자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4절에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말씀하지요. 여기서 아버지를 알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뜻입니다.
갓난아기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엄마, 아빠를 알아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말씀을 듣고 배우며 신앙생활을 해 나가다 보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작을 때는 듣고 배운 대로 지켜 행하지 못하지요. 따라서 ‘아이들의 믿음’이란 진리를 알고 체험하지만,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있고 행치 못하는 것도 있어 아직은 온전하지 못한 믿음의 단계를 말합니다. 이때를 믿음의 2단계라 할 수 있지요.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습니다(요 8:1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자녀 된 자가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한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서운하시겠습니까? 더욱이 육의 아버지는 이 땅에서만 필요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 것이니 하나님과 영적으로 바르고 친밀한 부자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3. 악한 자를 이기는 강하고 담대한 ‘청년들의 믿음’
아이들이 성장하면 청년이 되듯이 영적으로도 아이들의 믿음이 성장하면 청년들의 신앙을 소유하게 됩니다. 즉 영적인 아이들의 때를 지나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죄가 무엇이며,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 청년의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힘이 세고 혈기 방장하여 범죄하기 쉬운 나이이며, 또한 무엇이든지 보고 배우고 체험하고 싶어 합니다. 모든 분야에 호기심이 많을 때이며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강함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청년의 때가 되면 강한 믿음이 있기에 세상의 헛된 것들을 취하지 않고 성령 충만하여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며, 말씀을 듣는 대로 죄악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 거하므로 어떠한 시험 환난이 와도 굽힐 줄 모르는 담대함을 얻고 죄악 된 세상과 원수 마귀를 이기고 항상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하고 담대한 청년들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무엇으로 죄악 된 세상과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으니 진리 안에서 능히 악한 자를 이길 수 있습니다. 원수 마귀도 능력이 있으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 앞에서는 감히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3절에 “…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할 때 능히 악한 자를 이길 수 있으므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고 말씀대로 지켜 행하기 위해 죄악들을 버리며 진리 안에 살아야 하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며 지배할 수 있는 단계가 바로 청년들의 믿음입니다. 곧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있지요(요일 2:14).
4.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아비들의 믿음’
자기주장이 강하여 굽힐 줄 모르는 청년의 때를 지나 장년이 되면 인생의 경륜을 통해 상황판단을 잘해 때에 따라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지혜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아비 된 사람들은 하나님 근본에 대해 자세히 태초부터 앎으로 하나님 섭리를 깨닫는 깊고 높은 차원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육적으로 청년의 때와 아비의 때를 비교해 보면 많은 차이가 납니다. 청년의 때에는 듣고 배워 아는 것이라도 실제로 체험하지 못하여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비가 되면 세세한 분야를 체험하며 이해하게 됩니다. 나를 낳아 준 아버지의 고향은 어디이며, 어머니와 어떻게 만나서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나를 낳으셨고, 내가 가문의 몇 대 자손인가 하는 근본을 알게 되지요.
‘자녀를 낳아 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하듯이 영적으로도 아비들의 믿음이 되어야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말씀한 것입니다(요일 2:14). 또한 아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본이 되고 마음 중심이 겸손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포용하며,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이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됩니다. 아비들의 신앙은 한 해 농사로 말하면 열매를 잘 맺은 결실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열매를 맺기는 하였으나 아직 알곡으로 익지 못하여 자기 생각이나 주관이 옳다고 생각하는 청년의 때와는 달리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며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처럼 행함으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나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마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빌 2:5~8)을 품은 사람들을 아비의 믿음 곧 믿음의 4단계, 5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신속히 주님의 마음을 소유해 덕과 사랑을 갖추고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숙한 아비의 믿음이 되어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일서 2장 15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영적인 믿음의 단계를 맞는 것끼리 연결해 보세요.
■ 자녀들의 믿음 · ·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심을 아는 단계
■ 아이들의 믿음 · · 원수 마귀 사단을 말씀으로 물리치는 단계
■ 청년들의 믿음 · ·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근본까지 아는 단계
■ 아비들의 믿음 · · 성령을 받고 구원받은 초신자의 믿음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미래의 소망을 이미 소유한 것처럼 확신하니 결국 실상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것의 실재를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적 믿음과 확신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영적인 믿음의 성장 과정에 대해 알아보고 말씀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측정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영적인 믿음이 자라나야 아이, 청년의 때를 지나 아비의 믿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갓 태어난 자녀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장성한 아비의 믿음에 이르는 것일까요?
1. 죄 사함을 받은 ‘자녀들의 믿음’
요한일서 2장 12절에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요 1:12).
우리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으며 그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야만 비로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했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사하여 줄 능력과 사랑이 있으며, 원죄와 자범죄가 없으신 분이므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셨을 때, 좌우편에 달린 행악자 중 한편 강도는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받고 낙원을 허락받았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 안에서 갓 태어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아” 하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해야 호적에 오르듯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천국 시민권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습니다. 따라서 자녀들의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죄 사함을 받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상태의 믿음으로서 믿음의 1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아이들의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은 점점 믿음이 성장해 ‘아이들’로 자라게 됩니다. 젖먹이 때를 지난 아이는 부모를 알아보고 어느 정도 사물을 알아보지만 아직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는 것이 별로 없고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성장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와 이제 막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된 초신자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4절에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말씀하지요. 여기서 아버지를 알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뜻입니다.
갓난아기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엄마, 아빠를 알아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말씀을 듣고 배우며 신앙생활을 해 나가다 보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작을 때는 듣고 배운 대로 지켜 행하지 못하지요. 따라서 ‘아이들의 믿음’이란 진리를 알고 체험하지만,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있고 행치 못하는 것도 있어 아직은 온전하지 못한 믿음의 단계를 말합니다. 이때를 믿음의 2단계라 할 수 있지요.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습니다(요 8:1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자녀 된 자가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한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서운하시겠습니까? 더욱이 육의 아버지는 이 땅에서만 필요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 것이니 하나님과 영적으로 바르고 친밀한 부자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3. 악한 자를 이기는 강하고 담대한 ‘청년들의 믿음’
아이들이 성장하면 청년이 되듯이 영적으로도 아이들의 믿음이 성장하면 청년들의 신앙을 소유하게 됩니다. 즉 영적인 아이들의 때를 지나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죄가 무엇이며,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 청년의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힘이 세고 혈기 방장하여 범죄하기 쉬운 나이이며, 또한 무엇이든지 보고 배우고 체험하고 싶어 합니다. 모든 분야에 호기심이 많을 때이며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강함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청년의 때가 되면 강한 믿음이 있기에 세상의 헛된 것들을 취하지 않고 성령 충만하여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며, 말씀을 듣는 대로 죄악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 거하므로 어떠한 시험 환난이 와도 굽힐 줄 모르는 담대함을 얻고 죄악 된 세상과 원수 마귀를 이기고 항상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하고 담대한 청년들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무엇으로 죄악 된 세상과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으니 진리 안에서 능히 악한 자를 이길 수 있습니다. 원수 마귀도 능력이 있으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 앞에서는 감히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3절에 “…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할 때 능히 악한 자를 이길 수 있으므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고 말씀대로 지켜 행하기 위해 죄악들을 버리며 진리 안에 살아야 하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며 지배할 수 있는 단계가 바로 청년들의 믿음입니다. 곧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있지요(요일 2:14).
4.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아비들의 믿음’
자기주장이 강하여 굽힐 줄 모르는 청년의 때를 지나 장년이 되면 인생의 경륜을 통해 상황판단을 잘해 때에 따라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지혜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아비 된 사람들은 하나님 근본에 대해 자세히 태초부터 앎으로 하나님 섭리를 깨닫는 깊고 높은 차원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육적으로 청년의 때와 아비의 때를 비교해 보면 많은 차이가 납니다. 청년의 때에는 듣고 배워 아는 것이라도 실제로 체험하지 못하여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비가 되면 세세한 분야를 체험하며 이해하게 됩니다. 나를 낳아 준 아버지의 고향은 어디이며, 어머니와 어떻게 만나서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나를 낳으셨고, 내가 가문의 몇 대 자손인가 하는 근본을 알게 되지요.
‘자녀를 낳아 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하듯이 영적으로도 아비들의 믿음이 되어야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말씀한 것입니다(요일 2:14). 또한 아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본이 되고 마음 중심이 겸손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포용하며,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이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됩니다. 아비들의 신앙은 한 해 농사로 말하면 열매를 잘 맺은 결실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열매를 맺기는 하였으나 아직 알곡으로 익지 못하여 자기 생각이나 주관이 옳다고 생각하는 청년의 때와는 달리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며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처럼 행함으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나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마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빌 2:5~8)을 품은 사람들을 아비의 믿음 곧 믿음의 4단계, 5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신속히 주님의 마음을 소유해 덕과 사랑을 갖추고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숙한 아비의 믿음이 되어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일서 2장 15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영적인 믿음의 단계를 맞는 것끼리 연결해 보세요.
■ 자녀들의 믿음 · ·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심을 아는 단계
■ 아이들의 믿음 · · 원수 마귀 사단을 말씀으로 물리치는 단계
■ 청년들의 믿음 · ·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근본까지 아는 단계
■ 아비들의 믿음 · · 성령을 받고 구원받은 초신자의 믿음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미래의 소망을 이미 소유한 것처럼 확신하니 결국 실상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것의 실재를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적 믿음과 확신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