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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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5
제3과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
렘 33:3
읽을말씀 : 렘 33:3 | 외울말씀 : 렘 33:3 ㅣ 참고 말씀:히 11:6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을 잘 숙지하여 중심 바쳐 불같이 기도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신 모습을 통해 마음을 집중하는 기도는 자세에서부터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도하는 자세만 봐도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엘리야는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로 힘써 기도함으로 3년 반 동안 오지 않던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기도를 올려드린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중심을 바쳐 기도해야 합니다
중심이란 마음이 굳어진 것으로서, 중심 바쳐 기도한다는 것은 마음과 뜻, 힘과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세 또한 바른 모습으로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지요. 꼭 오랜 시간 기도한다고 해서 중심의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집중하여 충만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고 내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졸거나 중언부언할 수가 없지요. 또한 기도할 때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주관 아래 하나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기도하기에 힘써야 하지요. 뿐만 아니라, 억지가 아닌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할 때 중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중심의 기도는 진심이 하나님 앞에 그대로 전달됩니다. 사랑 자체이시며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중심을 다해 믿음으로 구한다면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중심 기도를 드리며,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결코 조용히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 6장 6절 말씀을 인용하여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말합니다. 또 “하나님은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는데 부르짖어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라고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동산이나 빈 들에서 기도하셨습니다(눅 6:12 \; 막 1:35).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였고(행 10:9), 사도 바울은 기도처를 찾아 기도하였습니다(행 16:13).
따라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중심 기도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외부와 차단되기 때문에 조용하고 집중하여 기도할 수 있지요. 이는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생각과 잡념, 세상의 근심 걱정을 버리고 마음 중심을 모아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고 조용히 묵상 기도를 하면 중심 바쳐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밤에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다 보면 피곤이 밀려와 졸음으로 빠지기 쉽고, 세상 근심 걱정, 잡념과 싸우다가 지쳐 잠이 들기도 하지요.
공중 권세 잡은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뚫고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간절한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 충만하고 시험 환난이 물러가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3.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 차츰 주일성수와 기도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각 사람의 믿음대로 응답하십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고 더 큰 응답으로 함께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힘써 기도를 쌓아가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받아 죄악을 더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함으로 주님을 닮아 가는 만큼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한 믿음을 갖는 데에는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영적 믿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갖고자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믿어지는 산 믿음, 영적 믿음을 주십니다.
이처럼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믿음이 합치될 때 즉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응답의 확신이 불일듯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적 믿음이며 그러한 능력 있는 믿음이 임하면 이미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 하신 말씀처럼,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는 복된 사람(마 21:22)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일을 더욱 힘있게 추진하며 더 빨리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목적이 불분명하면 일의 방향을 잡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이 와도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고 주저앉아 버리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할 때에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일 3:21~22).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더욱 간절함과 인내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책망할 것이 없는 우리 중심을 보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5.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나라에 상급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기도하는 것이 피곤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구할 수 있지요.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면 자신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요, 섬기는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도도 어떠한 마음을 품고 하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려드리는 것이 진실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즉 영적인 사랑이 임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인 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를 할 때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는 것보다 더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간구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일꾼과 기술력 등 성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조목조목 간절히 구하게 되지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입었으니 주님을 닮은 선과 사랑을 마음에 이루어 항상 아름다운 기도의 향으로 올려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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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에 대해 써 보세요.
1) 중심을 바쳐 기도한다.
2) ( )
3)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4) ( )
5)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한다.
2.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3. 어떻게 해야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을까요?
4. 히브리서 11장 6절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10~11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영적인 믿음’이란?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믿음이다. 영적인 믿음은 자신이 배운 지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으며, 한 번 믿은 것은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고 믿는 믿음이다. 또한 알고 있는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증거를 보이는 믿음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을 잘 숙지하여 중심 바쳐 불같이 기도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신 모습을 통해 마음을 집중하는 기도는 자세에서부터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도하는 자세만 봐도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엘리야는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로 힘써 기도함으로 3년 반 동안 오지 않던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기도를 올려드린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중심을 바쳐 기도해야 합니다
중심이란 마음이 굳어진 것으로서, 중심 바쳐 기도한다는 것은 마음과 뜻, 힘과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세 또한 바른 모습으로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지요. 꼭 오랜 시간 기도한다고 해서 중심의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집중하여 충만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고 내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졸거나 중언부언할 수가 없지요. 또한 기도할 때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주관 아래 하나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기도하기에 힘써야 하지요. 뿐만 아니라, 억지가 아닌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할 때 중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중심의 기도는 진심이 하나님 앞에 그대로 전달됩니다. 사랑 자체이시며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중심을 다해 믿음으로 구한다면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중심 기도를 드리며,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결코 조용히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 6장 6절 말씀을 인용하여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말합니다. 또 “하나님은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는데 부르짖어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라고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동산이나 빈 들에서 기도하셨습니다(눅 6:12 \; 막 1:35).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였고(행 10:9), 사도 바울은 기도처를 찾아 기도하였습니다(행 16:13).
따라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중심 기도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외부와 차단되기 때문에 조용하고 집중하여 기도할 수 있지요. 이는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생각과 잡념, 세상의 근심 걱정을 버리고 마음 중심을 모아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고 조용히 묵상 기도를 하면 중심 바쳐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밤에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다 보면 피곤이 밀려와 졸음으로 빠지기 쉽고, 세상 근심 걱정, 잡념과 싸우다가 지쳐 잠이 들기도 하지요.
공중 권세 잡은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뚫고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간절한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 충만하고 시험 환난이 물러가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3.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 차츰 주일성수와 기도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각 사람의 믿음대로 응답하십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고 더 큰 응답으로 함께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힘써 기도를 쌓아가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받아 죄악을 더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함으로 주님을 닮아 가는 만큼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한 믿음을 갖는 데에는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영적 믿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갖고자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믿어지는 산 믿음, 영적 믿음을 주십니다.
이처럼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믿음이 합치될 때 즉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응답의 확신이 불일듯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적 믿음이며 그러한 능력 있는 믿음이 임하면 이미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 하신 말씀처럼,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는 복된 사람(마 21:22)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일을 더욱 힘있게 추진하며 더 빨리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목적이 불분명하면 일의 방향을 잡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이 와도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고 주저앉아 버리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할 때에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일 3:21~22).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더욱 간절함과 인내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책망할 것이 없는 우리 중심을 보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5.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나라에 상급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기도하는 것이 피곤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구할 수 있지요.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면 자신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요, 섬기는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도도 어떠한 마음을 품고 하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려드리는 것이 진실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즉 영적인 사랑이 임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인 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를 할 때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는 것보다 더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간구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일꾼과 기술력 등 성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조목조목 간절히 구하게 되지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입었으니 주님을 닮은 선과 사랑을 마음에 이루어 항상 아름다운 기도의 향으로 올려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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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에 대해 써 보세요.
1) 중심을 바쳐 기도한다.
2) ( )
3)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4) ( )
5)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한다.
2.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3. 어떻게 해야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을까요?
4. 히브리서 11장 6절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10~11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영적인 믿음’이란?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믿음이다. 영적인 믿음은 자신이 배운 지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으며, 한 번 믿은 것은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고 믿는 믿음이다. 또한 알고 있는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증거를 보이는 믿음이다.
2016-01-08
제2과올바른 기도의 순서
마 6:31~33
읽을말씀 : 마 6:31~33 | 외울말씀 : 마 6:33 l 참고 말씀:시 66:18, 마 6:26~28
교육목표 :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알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기도를 올려드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천사가 기도의 향을 금그릇에 받아 갑니다. 이 그릇은 바닥이 넓고 속이 깊지 않은 모양이며, 크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각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믿음의 분량이 크냐에 따라 기도 향의 굵기와 농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폭포수처럼 굵은 향으로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가느다랗게 올라갑니다.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중심으로 기도하면 향이 굵고 진하여 그만큼 채워지는 속도도 빠르니 응답도 신속합니다. 반면 마음에 악이 있는 사람의 기도는 향이 가늘기 때문에 응답이 더디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선한 기도의 향을 끊임없이 올려드려야 합니다. 올바른 기도의 순서는 무엇이며 어떻게 기도해야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1.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무엇보다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먼저 해야 합니다. 혹여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한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며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 기도하면 그 향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하루를 돌아보면서 혹여 누구에게 혈기는 내지 않았는지, 거짓말하거나 수군거리지는 않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치 않은 생각이나 행실은 없었는지 돌아보아 회개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기도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원수 마귀 사단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수 마귀 사단아, 물러가라. 하늘 공중 권세 잡은 악의 영들과 그의 사자들아 물러가라! 아버지 하나님, 천군 천사와 성령의 불담으로 지키시며 주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런 뒤에 감사기도를 합니다. 하루를 지켜 주신 것, 좋은 일을 주신 것, 궂은일을 당했을 때도 피할 길을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신 것 등 감사의 조건을 찾아 기도하지요. 이렇게 회개기도, 원수 마귀 사단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해야 더 신속히 하나님 앞에 상달이 됩니다.
2.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
마태복음 6장 31~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곧 자신의 의식주나 가족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의식주는 물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마음의 소원도 신속히 응답해 주시지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는 무엇일까요?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확장하기 위한 기도를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천국과 지옥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의 대표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가는 목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선지자가 있었기에 출애굽 할 수 있었고, 여호수아가 있었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를 치리하며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매우 중요하므로 마음 중심으로 목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야 성도가 모이고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전 터와 건축에 필요한 재정은 물론 주변 환경과 법적인 절차 등 제반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셋째, 목자를 도와 사역하는 주의 종, 장로, 권사, 일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양 떼를 갈무리하는 목사, 전도사 등 주의 종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장로와 권사, 그리고 교회 직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넷째, 교회 부흥 발전을 위해 수고하는 일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구의 지역장, 조장, 구역장, 각 선교회의 회장, 조장, 기관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지요.
다섯째, 국내 지교회가 있는 경우에는 지교회 담임교역자와 성도들을 위해, 세계 선교를 위해서는 해외 선교사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 등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그다음에 부모, 형제, 일가친척, 직장, 일터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왕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사람은 교회와 목자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합니다. 나아가 어찌하면 더 충성하고 봉사하며 정성 다해 예물을 드리는 등 축복의 씨앗을 믿음으로 심습니다.
3. 하나님의 의를 위한 기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가 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치게 됩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며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잘되기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하고 온전한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시지요(마 5:48, 벧전 1:16, 살전 5:23, 요삼 2). 그런데 어떤 성도는 “여러 사명을 감당하느라 바빴으니 이젠 성결을 이루기 위해 기도만 해야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의 변화, 곧 하나님의 의만 구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힘쓸 때에 힘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도 더 빨리 이룰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며 더 많은 영혼을 섬기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러니 주님의 마음을 닮기 위해 더욱 기도에 힘쓰게 되고, 결국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4.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의식주 문제를 먼저 염려한다면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마태복음 6장 26~28절에 보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자라게 하십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의 기도에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가정, 일터, 물질 등 생활에 필요한 분야를 기도하면 됩니다. 이러한 순종의 행함을 보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의식주는 물론 모든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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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 앞에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써보세요.
첫째,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한다.
둘째, ( )
셋째, 하나님의 의를 위한 기도를 한다.
넷째, ( )
2.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3.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50~5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마음의 기도’ & ‘영의 기도’
‘마음의 기도’ 란 우리의 일상 언어로 마음의 소원을 구하는 기도를 말한다. 반면 ‘영의 기도’ 란 우리 영이 성령의 주관을 따라 하는 기도로서 방언 기도도 여기에 속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4~15절에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말씀한 대로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마음의 소원은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마음의 기도와 함께 영의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
교육목표 :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알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기도를 올려드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천사가 기도의 향을 금그릇에 받아 갑니다. 이 그릇은 바닥이 넓고 속이 깊지 않은 모양이며, 크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각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믿음의 분량이 크냐에 따라 기도 향의 굵기와 농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폭포수처럼 굵은 향으로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가느다랗게 올라갑니다.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중심으로 기도하면 향이 굵고 진하여 그만큼 채워지는 속도도 빠르니 응답도 신속합니다. 반면 마음에 악이 있는 사람의 기도는 향이 가늘기 때문에 응답이 더디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선한 기도의 향을 끊임없이 올려드려야 합니다. 올바른 기도의 순서는 무엇이며 어떻게 기도해야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1.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무엇보다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먼저 해야 합니다. 혹여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한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며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 기도하면 그 향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하루를 돌아보면서 혹여 누구에게 혈기는 내지 않았는지, 거짓말하거나 수군거리지는 않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치 않은 생각이나 행실은 없었는지 돌아보아 회개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기도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원수 마귀 사단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수 마귀 사단아, 물러가라. 하늘 공중 권세 잡은 악의 영들과 그의 사자들아 물러가라! 아버지 하나님, 천군 천사와 성령의 불담으로 지키시며 주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런 뒤에 감사기도를 합니다. 하루를 지켜 주신 것, 좋은 일을 주신 것, 궂은일을 당했을 때도 피할 길을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신 것 등 감사의 조건을 찾아 기도하지요. 이렇게 회개기도, 원수 마귀 사단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해야 더 신속히 하나님 앞에 상달이 됩니다.
2.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
마태복음 6장 31~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곧 자신의 의식주나 가족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의식주는 물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마음의 소원도 신속히 응답해 주시지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는 무엇일까요?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확장하기 위한 기도를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천국과 지옥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의 대표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가는 목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선지자가 있었기에 출애굽 할 수 있었고, 여호수아가 있었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를 치리하며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매우 중요하므로 마음 중심으로 목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야 성도가 모이고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전 터와 건축에 필요한 재정은 물론 주변 환경과 법적인 절차 등 제반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셋째, 목자를 도와 사역하는 주의 종, 장로, 권사, 일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양 떼를 갈무리하는 목사, 전도사 등 주의 종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장로와 권사, 그리고 교회 직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넷째, 교회 부흥 발전을 위해 수고하는 일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구의 지역장, 조장, 구역장, 각 선교회의 회장, 조장, 기관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지요.
다섯째, 국내 지교회가 있는 경우에는 지교회 담임교역자와 성도들을 위해, 세계 선교를 위해서는 해외 선교사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 등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그다음에 부모, 형제, 일가친척, 직장, 일터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왕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사람은 교회와 목자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합니다. 나아가 어찌하면 더 충성하고 봉사하며 정성 다해 예물을 드리는 등 축복의 씨앗을 믿음으로 심습니다.
3. 하나님의 의를 위한 기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가 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치게 됩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며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잘되기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하고 온전한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시지요(마 5:48, 벧전 1:16, 살전 5:23, 요삼 2). 그런데 어떤 성도는 “여러 사명을 감당하느라 바빴으니 이젠 성결을 이루기 위해 기도만 해야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의 변화, 곧 하나님의 의만 구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힘쓸 때에 힘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도 더 빨리 이룰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며 더 많은 영혼을 섬기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러니 주님의 마음을 닮기 위해 더욱 기도에 힘쓰게 되고, 결국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4.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의식주 문제를 먼저 염려한다면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마태복음 6장 26~28절에 보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자라게 하십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의 기도에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가정, 일터, 물질 등 생활에 필요한 분야를 기도하면 됩니다. 이러한 순종의 행함을 보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의식주는 물론 모든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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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 앞에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써보세요.
첫째,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한다.
둘째, ( )
셋째, 하나님의 의를 위한 기도를 한다.
넷째, ( )
2.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3.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50~5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마음의 기도’ & ‘영의 기도’
‘마음의 기도’ 란 우리의 일상 언어로 마음의 소원을 구하는 기도를 말한다. 반면 ‘영의 기도’ 란 우리 영이 성령의 주관을 따라 하는 기도로서 방언 기도도 여기에 속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4~15절에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말씀한 대로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마음의 소원은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마음의 기도와 함께 영의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
2016-01-01
제1과새롭게 하소서
눅 5:38
읽을말씀 : 눅 5:38 | 외울말씀 : 엡 5:9 ㅣ 참고 말씀:롬 2:13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성결을 사모하며 주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해가 되면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새롭게 마음을 결단합니다. 특히 성결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리라.” 고백하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힘쓰게 됩니다. 하루에 성경을 한 장 이상 읽고 성구를 외우며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은 물론,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연초에 결심하고 고백한 것을 변개치 않으며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며 사람의 깊은 곳까지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피조물인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속이려 합니다. 즉 진실하지 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당시 하나님을 속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욕심이 틈타자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던 재산 중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 앞에 내놓았지요.
그때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책망합니다. 그러자 남편 아나니아의 혼이 떠나 죽고 말았습니다. 세 시간쯤 후에 그 영문을 모르고 들어온 아내 삽비라도 남편과 똑같이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임으로 혼이 떠나 죽고 맙니다. 결국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을 속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의 종을 속이는 것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서 사모하는 척하고,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 외식하지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 자신까지 속이게 됩니다. 자신이 외식하고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충성하는 일꾼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자기 공적을 내세우기 위해 하나님 나라에 무익한 일을 추진하기도 하고, 누가 지켜볼 때는 성실하게 하고 혼자 있을 때는 불성실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요. 에베소서 5장 9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충성함으로 진실한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섬김이란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섬기기 위해 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여 희생할 때가 많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많은 것을 주고 상대를 위해 희생했다고 하더라도 먼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직원에게 어떤 일을 부탁했더니 열심히 일은 하는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무뚝뚝하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다음에 일을 부탁하기가 망설여지니 아무리 일을 잘해도 “저 사람은 섬기며 일한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무섭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으니 자신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까지 섬김의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서로 간에 얼마나 사랑과 희생으로 섬기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가령, 교회 안에는 여러 부서 사람들이 함께 쓰는 화장실이나 복도, 계단 등의 공용 장소가 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아무리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내 업무가 아니니까.’ 하고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치 나의 일처럼 깨끗이 청소합니다. 같은 부서 안에서도 누가 아침에 일찍 와서 책상을 닦아 주는지, 쓰레기통을 비우며 청소를 도와주는지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지 낱낱이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 업무도 아닌데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나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많은데, 이런 사소한 일들은 업무가 적은 사람들이나 직분이 낮은 사람들이 해 줘야 하지 않나?’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일했다면 비록 행함으로는 섬겼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상급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일을 해서 결과만 내면 인정을 받지만, 교회에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할 때 상급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받는 만큼 자기의 업무만 하면 되지만, 교회에서는 보직에 해당되는 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하나님의 일이 모두 자신의 업무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겨우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씀씀이를 넓혀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하지요. 세상에서는 낮은 사람이 섬기고 높은 사람이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셨습니다.
누구를 대하든지 행위적으로만 섬길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섬길 때 큰 자가 되어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천국에서도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흘려버리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처음부터 진리대로만 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쉼 없이 노력해 가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다소 부족하다 할지라도 순종하여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다듬어 일꾼으로 쓰시지요.
가령, 사람들이 처음 사명을 받았을 때는 사명 감당을 위해서 반드시 성결되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이 높아지면서 마음의 할례에 대한 간절함이 식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는 진리를 지식으로만 알고 행치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악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덮어 놓고 있기에 크게 악을 행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은 없습니다. 본인이 할 일은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잘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혹여 나는 이러한 모습은 있지 않나 항상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배나 기도회에 습관적으로 참석하거나 마지못해 앉아 있는지 하나하나 돌아보아야 하지요. 그 상태가 지속되면 신앙이 정체되어 성령의 충만함이 식어지고, 자칫 구원받기 힘든 육체의 일까지 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제단에서 겨우 구원에 연연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지요.
주님을 영접하여 첫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하나님 나라에 열심히 충성 봉사합니다. 예배나 기도에 늦지 않기 위해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사모함으로 단숨에 달려오지요. 생명의 말씀을 송이꿀처럼 달게 들으며 하나라도 깨우치고 변화되기 위해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멈춰 있으니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죽은 믿음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 진실한 행함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시지요.
누가복음 5장 38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만들고 계시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묵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진실한 마음과 행함으로 섬길 뿐 아니라 서로 화평하며 질서를 좇아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루는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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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1.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충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해야 한다.
② ( )이 있어야 한다.
③ ( )이 있어야 한다.
2. ( )이란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 상대를 섬기기 위해 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여 희생할 때가 많은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가 없다.
3. ( )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흘려버리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00~10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은 부부이며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 신자이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이들은 땅을 팔아 일부는 감추고 나머지를 전부라고 속여 사도들 앞에 내놓는다. 결국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 죄로 혼이 떠나 죽게 된다.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성결을 사모하며 주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해가 되면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새롭게 마음을 결단합니다. 특히 성결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리라.” 고백하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힘쓰게 됩니다. 하루에 성경을 한 장 이상 읽고 성구를 외우며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은 물론,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연초에 결심하고 고백한 것을 변개치 않으며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며 사람의 깊은 곳까지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피조물인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속이려 합니다. 즉 진실하지 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당시 하나님을 속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욕심이 틈타자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던 재산 중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 앞에 내놓았지요.
그때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책망합니다. 그러자 남편 아나니아의 혼이 떠나 죽고 말았습니다. 세 시간쯤 후에 그 영문을 모르고 들어온 아내 삽비라도 남편과 똑같이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임으로 혼이 떠나 죽고 맙니다. 결국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을 속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의 종을 속이는 것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서 사모하는 척하고,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 외식하지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 자신까지 속이게 됩니다. 자신이 외식하고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충성하는 일꾼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자기 공적을 내세우기 위해 하나님 나라에 무익한 일을 추진하기도 하고, 누가 지켜볼 때는 성실하게 하고 혼자 있을 때는 불성실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요. 에베소서 5장 9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충성함으로 진실한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섬김이란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섬기기 위해 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여 희생할 때가 많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많은 것을 주고 상대를 위해 희생했다고 하더라도 먼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직원에게 어떤 일을 부탁했더니 열심히 일은 하는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무뚝뚝하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다음에 일을 부탁하기가 망설여지니 아무리 일을 잘해도 “저 사람은 섬기며 일한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무섭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으니 자신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까지 섬김의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서로 간에 얼마나 사랑과 희생으로 섬기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가령, 교회 안에는 여러 부서 사람들이 함께 쓰는 화장실이나 복도, 계단 등의 공용 장소가 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아무리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내 업무가 아니니까.’ 하고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치 나의 일처럼 깨끗이 청소합니다. 같은 부서 안에서도 누가 아침에 일찍 와서 책상을 닦아 주는지, 쓰레기통을 비우며 청소를 도와주는지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지 낱낱이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 업무도 아닌데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나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많은데, 이런 사소한 일들은 업무가 적은 사람들이나 직분이 낮은 사람들이 해 줘야 하지 않나?’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일했다면 비록 행함으로는 섬겼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상급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일을 해서 결과만 내면 인정을 받지만, 교회에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할 때 상급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받는 만큼 자기의 업무만 하면 되지만, 교회에서는 보직에 해당되는 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하나님의 일이 모두 자신의 업무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겨우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씀씀이를 넓혀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하지요. 세상에서는 낮은 사람이 섬기고 높은 사람이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셨습니다.
누구를 대하든지 행위적으로만 섬길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섬길 때 큰 자가 되어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천국에서도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흘려버리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처음부터 진리대로만 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쉼 없이 노력해 가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다소 부족하다 할지라도 순종하여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다듬어 일꾼으로 쓰시지요.
가령, 사람들이 처음 사명을 받았을 때는 사명 감당을 위해서 반드시 성결되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이 높아지면서 마음의 할례에 대한 간절함이 식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는 진리를 지식으로만 알고 행치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악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덮어 놓고 있기에 크게 악을 행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은 없습니다. 본인이 할 일은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잘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혹여 나는 이러한 모습은 있지 않나 항상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배나 기도회에 습관적으로 참석하거나 마지못해 앉아 있는지 하나하나 돌아보아야 하지요. 그 상태가 지속되면 신앙이 정체되어 성령의 충만함이 식어지고, 자칫 구원받기 힘든 육체의 일까지 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제단에서 겨우 구원에 연연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지요.
주님을 영접하여 첫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하나님 나라에 열심히 충성 봉사합니다. 예배나 기도에 늦지 않기 위해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사모함으로 단숨에 달려오지요. 생명의 말씀을 송이꿀처럼 달게 들으며 하나라도 깨우치고 변화되기 위해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멈춰 있으니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죽은 믿음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 진실한 행함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시지요.
누가복음 5장 38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만들고 계시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묵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진실한 마음과 행함으로 섬길 뿐 아니라 서로 화평하며 질서를 좇아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루는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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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1.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충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해야 한다.
② ( )이 있어야 한다.
③ ( )이 있어야 한다.
2. ( )이란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 상대를 섬기기 위해 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여 희생할 때가 많은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가 없다.
3. ( )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흘려버리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00~10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은 부부이며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 신자이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이들은 땅을 팔아 일부는 감추고 나머지를 전부라고 속여 사도들 앞에 내놓는다. 결국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 죄로 혼이 떠나 죽게 된다.
2015-12-25
제51과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
마 2:1~12
읽을말씀 : 마 2:1~12 | 외울말씀 : 눅 2:14 ㅣ 참고 말씀:마 1:21
교육목표 :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에 담긴 영적 의미를 알아본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인 것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전 3:18).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고 죄 가운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하셨습니다(요 6:51~5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장 1절 이하를 보면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이 소식을 듣고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 왕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쳐 준 대로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를 찾거든 알려 달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경배하고자 함이 아니라 죽이고자 함이었지요.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을 찾아가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박사들의 꿈에 헤롯 왕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하시니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의 육의 부친인 요셉도 꿈을 통해 지시를 받아 온 가족이 헤롯 왕을 피해 애굽으로 떠났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고 경배한 사람은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8~20절에,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께 찬송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안나’라는 여 선지자는 어떻습니까? 나이 많아 늙었는데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눅 2:25~38).
3. 세 가지 예물의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지요. 이 예물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예물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1) 황금의 영적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합니다. 그런데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신 대로 황금은 또한 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그의 후손들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친히 가난한 길을 가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신 것입니다(고후 8:9). 부의 상징인 황금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셨을까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 유향의 영적 의미
유향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 의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악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고, 마태복음 15장 11절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여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3) 몰약의 영적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장사 지낼 때 시체를 썩지 않게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 즉 변함없는 믿음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4. 성탄절의 영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경배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조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지요.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우리도 영원한 천국을 주신 주님께 귀한 예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 가지 예물의 영적 의미를 깨달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고백하며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는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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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 )은 재물과 부귀를 뜻하기도 하고,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신 대로 ( )을 뜻하기도 한다.
2. ( )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준다. 이것을 드리는 영적 의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악을 버리고 ( )를 발한다는 것이다.
3. ( )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소독 등에 쓰이고 장사 지낼 때 시체를 썩지 않게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 즉 ( )을 드린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주님의 생신을 축하드리며,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주신 주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베들레헴’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 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서 5장 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되어 있다.
교육목표 :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에 담긴 영적 의미를 알아본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인 것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전 3:18).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고 죄 가운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하셨습니다(요 6:51~5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장 1절 이하를 보면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이 소식을 듣고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 왕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쳐 준 대로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를 찾거든 알려 달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경배하고자 함이 아니라 죽이고자 함이었지요.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을 찾아가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박사들의 꿈에 헤롯 왕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하시니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의 육의 부친인 요셉도 꿈을 통해 지시를 받아 온 가족이 헤롯 왕을 피해 애굽으로 떠났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고 경배한 사람은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8~20절에,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께 찬송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안나’라는 여 선지자는 어떻습니까? 나이 많아 늙었는데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눅 2:25~38).
3. 세 가지 예물의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지요. 이 예물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예물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1) 황금의 영적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합니다. 그런데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신 대로 황금은 또한 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그의 후손들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친히 가난한 길을 가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신 것입니다(고후 8:9). 부의 상징인 황금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셨을까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 유향의 영적 의미
유향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 의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악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고, 마태복음 15장 11절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여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3) 몰약의 영적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장사 지낼 때 시체를 썩지 않게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 즉 변함없는 믿음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4. 성탄절의 영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경배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조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지요.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우리도 영원한 천국을 주신 주님께 귀한 예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 가지 예물의 영적 의미를 깨달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고백하며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는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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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 )은 재물과 부귀를 뜻하기도 하고,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신 대로 ( )을 뜻하기도 한다.
2. ( )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준다. 이것을 드리는 영적 의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악을 버리고 ( )를 발한다는 것이다.
3. ( )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소독 등에 쓰이고 장사 지낼 때 시체를 썩지 않게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 즉 ( )을 드린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주님의 생신을 축하드리며,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주신 주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베들레헴’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 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서 5장 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되어 있다.
2015-12-18
제50과의를 위해 핍박받은 사도 바울
고후 11:23~27
읽을말씀 : 고후 11:23~27 | 외울말씀 : 딤후 4:8 ㅣ 참고 말씀:롬 9:3
교육목표 : 이방인의 사도로서 세계 선교의 초석이 된 사도 바울을 통해 참 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진해졌지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권능을 베풀며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 주님을 만나 회심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그는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자기 의가 아주 강하여 자신이 가진 지식과 의로써 변론하며 지지 않으려는 성품이었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했지요. 마치 모세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 같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느 날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서 빛이 바울을 둘러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시지요. 사울은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그 후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안수하자 볼 수 있었지요. 그는 아나니아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해 선택된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결박하고 잔해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삶으로 온전히 바뀌었지요.
2. 숱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직 감사했던 사도 바울
바울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자 자신이 마치 ‘죄인 중에 괴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귀한 사명까지 주신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했지요. 복음을 전하면서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해도 주를 향한 마음이 변함이 없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감옥에 갇혔다 해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앞의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겼지요. 또한 영혼을 구원하며 하늘에 많은 상급을 쌓을 뿐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습니다.
혹여 여러분은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려움에도 이내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충성하고 모든 것을 드리기까지 헌신했는데 원하는 대로 축복이 임하지 않을 때 슬퍼하지는 않았는지요? 스스로 실망하여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육신의 생각으로 많은 분야에서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어떠한 상황에 처했다 할지라도 사도 바울처럼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하며 작은 사명이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3. 영혼 사랑이 승했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면서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도 모진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성도들이 진리 안에 살도록 눈물로 훈계하며 간구하였지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 9장 1~3절에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자기와 같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 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했지요.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며 자신이 지옥에 떨어져도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누구보다 지옥의 참담함과 무서움을 잘 알면서도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승했기 때문입니다.
4. 천국 소망으로 가득 찼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장차 주님을 뵈올 수 있다는 천국 소망으로 넘쳐났습니다. 이 세상 무엇도 주님과는 비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주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에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했지요.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하신 대로 오직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한 번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고 종국에는 순교에 이를 때도 오직 감사뿐이었습니다.
‘내 생애가 이렇게 마감되는구나!’ 하고 착잡한 마음이나 회한이 든 것이 아니었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한 경직된 심정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도 보고 싶었던 주님을 이제 곧 뵈올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기에 천국 소망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감사했기에 연단을 통해 권능을 받고 대사도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은혜와 감사가 변치 않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죽도록 충성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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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1.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으로 주님을 만나 이방인의 사도가 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2. 사도 바울이 말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3.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지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읽으면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6부 26과 ‘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인 편지들로 신약 성경 27권 중 14권이 이에 해당한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특히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서 기록하였다하여 옥중서신이라 한다.
교육목표 : 이방인의 사도로서 세계 선교의 초석이 된 사도 바울을 통해 참 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진해졌지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권능을 베풀며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 주님을 만나 회심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그는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자기 의가 아주 강하여 자신이 가진 지식과 의로써 변론하며 지지 않으려는 성품이었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했지요. 마치 모세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 같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느 날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서 빛이 바울을 둘러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시지요. 사울은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그 후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안수하자 볼 수 있었지요. 그는 아나니아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해 선택된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결박하고 잔해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삶으로 온전히 바뀌었지요.
2. 숱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직 감사했던 사도 바울
바울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자 자신이 마치 ‘죄인 중에 괴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귀한 사명까지 주신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했지요. 복음을 전하면서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해도 주를 향한 마음이 변함이 없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감옥에 갇혔다 해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앞의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겼지요. 또한 영혼을 구원하며 하늘에 많은 상급을 쌓을 뿐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습니다.
혹여 여러분은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려움에도 이내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충성하고 모든 것을 드리기까지 헌신했는데 원하는 대로 축복이 임하지 않을 때 슬퍼하지는 않았는지요? 스스로 실망하여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육신의 생각으로 많은 분야에서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어떠한 상황에 처했다 할지라도 사도 바울처럼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하며 작은 사명이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3. 영혼 사랑이 승했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면서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도 모진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성도들이 진리 안에 살도록 눈물로 훈계하며 간구하였지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 9장 1~3절에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자기와 같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 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했지요.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며 자신이 지옥에 떨어져도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누구보다 지옥의 참담함과 무서움을 잘 알면서도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승했기 때문입니다.
4. 천국 소망으로 가득 찼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장차 주님을 뵈올 수 있다는 천국 소망으로 넘쳐났습니다. 이 세상 무엇도 주님과는 비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주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에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했지요.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하신 대로 오직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한 번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고 종국에는 순교에 이를 때도 오직 감사뿐이었습니다.
‘내 생애가 이렇게 마감되는구나!’ 하고 착잡한 마음이나 회한이 든 것이 아니었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한 경직된 심정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도 보고 싶었던 주님을 이제 곧 뵈올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기에 천국 소망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감사했기에 연단을 통해 권능을 받고 대사도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은혜와 감사가 변치 않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죽도록 충성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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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1.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으로 주님을 만나 이방인의 사도가 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2. 사도 바울이 말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3.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지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읽으면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6부 26과 ‘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인 편지들로 신약 성경 27권 중 14권이 이에 해당한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특히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서 기록하였다하여 옥중서신이라 한다.
2015-12-11
제49과온 집에 충성한 모세
민 12:3, 7
읽을말씀 : 민 12:3, 7 | 외울말씀 : 민 12:7 l 참고 말씀:출 32:32
교육목표 :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처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낸 출애굽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을 일삼고 원망하는 백성들을 아비의 심정으로 늘 마음에 품고 놓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백성이기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모세는 이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습니다.
1. 모세의 출생과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거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과 그의 일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거기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어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주 당시 70명에 불과했던 야곱의 혈속은 갈수록 번성해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고 요셉을 모르는 사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출애굽기 1장을 보면 새 왕은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로 부리며 심히 학대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더욱 번성하니 새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태어나는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는 이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석 달간 모세를 숨겨 키우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웁니다. 마침 목욕하러 나온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상자 속의 아이를 불쌍히 여겨 양자로 삼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 추천되고, 공주는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며 키우게 합니다.
모세는 어린 시절 친어머니에게 히브리 민족과 하나님에 대해 배웠고, 애굽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친어머니로부터 들은 하나님과 애굽에서 고통 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지요.
2.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세월을 보낸 모세
출애굽기 2장을 보면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그를 쳐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 날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모세가 잘못한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며 말렸더니 오히려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합니다.
모세는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났다는 사실을 알고 애굽에서 도망쳐 나옵니다. 만일 모세가 자기 안일만 생각했다면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봐 모른 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민족인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5). 모세는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양 무리를 치면서 살게 됩니다.
왕자로서의 자존심이나 자신감도 사라지고 점점 평범한 양치기의 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광야생활이 적응되자 마음의 연단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졌지요.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니라 철저히 낮아진 모세를 원하셨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온전히 비운 모세를 불러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고 큰 사명을 주십니다.
3.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모세
온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합니다.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아도 품어 주지요.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발하는 사람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변화될 것을 바라며 기다려 줍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시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원망 불평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범죄함으로 마침내 멸망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모세의 온유함이 얼마나 승하였는지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서 더디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며 방탕히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던지 백성들을 진멸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때 모세는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중보 기도를 올립니다(출 32:31~32).
모세는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즉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멸망당할 위기에 처한 백성을 구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모세의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의 간구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지요. 모세는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으로 품었습니다.
4. 온 집에 충성한 모세
‘충성’이란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은 물론이요, 맡겨진 직무 이상을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이란 자기가 속한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일터, 사업터 등 주어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정성, 시간과 물질까지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5절에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자신을 낮추어 맡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당시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대드는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백성의 지도자가 되면 그만큼 져야 할 짐도 많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모세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난관을 뚫어 나갔습니다.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품었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날부터 생명이 다하기까지 모세는 단 한순간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로 인해 흘린 눈물과 그들을 위해 올렸던 애통의 기도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지요. 이 백성들을 저버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해 주시라고 늘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여 ‘사명이 무겁고 너무 힘들다. 사명을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부터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했던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온 집에 충성하고도 열매가 적다며 민망히 여기는 모세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충성된 영의 일꾼으로 나와야 하겠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애굽에서 노예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낸 출애굽의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 )
2. 하나님께서는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닌 어떠한 모습의 모세를 원하셨을까요?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신을 만들어 섬기며 방탕하게 먹고 마셨을 때 진멸하고자 하십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께 뭐라고 중보 기도했나요?
4. 모세가 생명 다하기까지 백성들을 위해 흘린 눈물과 애통의 기도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영혼들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며 중보 기도를 올리십니까?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5부 23과 ‘의를 위해 핍박받은 사도 바울’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모세의 선’
1.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는 것을 택했다.
2. 연단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에 중심에서 감사했다.
3.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했다.
4. 온 집에 충성했다.
교육목표 :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처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낸 출애굽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을 일삼고 원망하는 백성들을 아비의 심정으로 늘 마음에 품고 놓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백성이기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모세는 이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습니다.
1. 모세의 출생과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거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과 그의 일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거기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어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주 당시 70명에 불과했던 야곱의 혈속은 갈수록 번성해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고 요셉을 모르는 사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출애굽기 1장을 보면 새 왕은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로 부리며 심히 학대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더욱 번성하니 새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태어나는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는 이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석 달간 모세를 숨겨 키우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웁니다. 마침 목욕하러 나온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상자 속의 아이를 불쌍히 여겨 양자로 삼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 추천되고, 공주는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며 키우게 합니다.
모세는 어린 시절 친어머니에게 히브리 민족과 하나님에 대해 배웠고, 애굽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친어머니로부터 들은 하나님과 애굽에서 고통 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지요.
2.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세월을 보낸 모세
출애굽기 2장을 보면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그를 쳐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 날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모세가 잘못한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며 말렸더니 오히려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합니다.
모세는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났다는 사실을 알고 애굽에서 도망쳐 나옵니다. 만일 모세가 자기 안일만 생각했다면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봐 모른 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민족인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5). 모세는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양 무리를 치면서 살게 됩니다.
왕자로서의 자존심이나 자신감도 사라지고 점점 평범한 양치기의 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광야생활이 적응되자 마음의 연단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졌지요.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니라 철저히 낮아진 모세를 원하셨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온전히 비운 모세를 불러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고 큰 사명을 주십니다.
3.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모세
온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합니다.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아도 품어 주지요.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발하는 사람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변화될 것을 바라며 기다려 줍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시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원망 불평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범죄함으로 마침내 멸망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모세의 온유함이 얼마나 승하였는지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서 더디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며 방탕히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던지 백성들을 진멸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때 모세는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중보 기도를 올립니다(출 32:31~32).
모세는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즉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멸망당할 위기에 처한 백성을 구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모세의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의 간구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지요. 모세는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으로 품었습니다.
4. 온 집에 충성한 모세
‘충성’이란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은 물론이요, 맡겨진 직무 이상을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이란 자기가 속한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일터, 사업터 등 주어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정성, 시간과 물질까지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5절에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자신을 낮추어 맡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당시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대드는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백성의 지도자가 되면 그만큼 져야 할 짐도 많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모세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난관을 뚫어 나갔습니다.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품었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날부터 생명이 다하기까지 모세는 단 한순간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로 인해 흘린 눈물과 그들을 위해 올렸던 애통의 기도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지요. 이 백성들을 저버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해 주시라고 늘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여 ‘사명이 무겁고 너무 힘들다. 사명을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부터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했던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온 집에 충성하고도 열매가 적다며 민망히 여기는 모세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충성된 영의 일꾼으로 나와야 하겠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애굽에서 노예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낸 출애굽의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 )
2. 하나님께서는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닌 어떠한 모습의 모세를 원하셨을까요?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신을 만들어 섬기며 방탕하게 먹고 마셨을 때 진멸하고자 하십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께 뭐라고 중보 기도했나요?
4. 모세가 생명 다하기까지 백성들을 위해 흘린 눈물과 애통의 기도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영혼들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며 중보 기도를 올리십니까?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5부 23과 ‘의를 위해 핍박받은 사도 바울’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모세의 선’
1.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는 것을 택했다.
2. 연단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에 중심에서 감사했다.
3.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했다.
4. 온 집에 충성했다.
2015-12-04
제48과성령의 열매를 맺자
갈 5:16~26
읽을말씀 : 갈 5:16~26 | 외울말씀 : 갈 5:22~23 l 참고 말씀:히 12:14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신앙의 최종 목적지인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게 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거나 성경을 지식적으로 많이 안다고 해서 믿음이 크다 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었는지,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닮았는지에 따라 믿음의 분량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크고 작음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사랑,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닮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열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열매란 씨를 심었을 때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운 후 맺는 결과물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 성장을 통해 맺어가는 열매로서 아홉 가지가 있습니다.
1. 사랑의 열매
사랑에는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언젠가는 변질되는 사랑입니다. 반면 영적인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에 나오는 ‘사랑’은 이보다 차원이 높습니다. 예수님처럼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나를 미워하는 원수를 위해서도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2. 희락의 열매
희락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지금 내가 중심에서 기뻐하고 있는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희락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지 알 수 있지요.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은혜만 해도 항상 기뻐하기에 충분합니다.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행복 가득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항상 희락이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3. 화평의 열매
화평이란 내가 옳아도 상대에게 맞춰 주고,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으며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화평의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진리대로 행하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므로 담대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사람들과 화평하기 위해 하나님과 화평을 깹니다. 우상 앞에 절을 하거나 주일에 결혼식에 가서 먹고 마시며 즐깁니다. 이는 잠시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죄의 담을 만들어 화평을 깨뜨린 것입니다.
다음은 자신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릴 때, 진리를 좇아갈 때 자신과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자신과 화평이 이루어지면 모든 사람과도 화평할 수 있습니다.
4. 오래 참음의 열매
영적인 오래 참음은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는 것이며,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 없는 참음을 말합니다. 애매히 욕을 받았을 때,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하지만 ‘하나님 말씀이니까 참아야지.’ 하면서 억지로 참는다면 영적인 오래 참음이 아닙니다.
영적인 오래 참음에는 먼저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구기 위해 오래 참으며 악을 버려 나가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는 상대가 내 생각,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항상 선으로 이해하고 참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의 사이에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는 응답받기 위한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 응답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참는 것입니다.
5. 자비의 열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자비의 마음이 임하면 중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죄하기보다는 긍휼의 마음이 앞섭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해 주며 어찌하든 그를 살리고자 하지요.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아셨지만 아낌없이 사랑을 주셨습니다. 끝까지 그를 곁에 두시고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대하셨습니다.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계속 기회를 주셨지요. 이처럼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능히 용서하는 마음이 자비입니다.
6. 양선의 열매
양선은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입니다. 즉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지요. 그런데 선을 추구하는 마음만 간절하다고 양선의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선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 마음이 행함으로 드러나야 ‘열매’가 맺혔다 할 수 있지요.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말씀한 대로 진정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외면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선이 배어 나옵니다.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양선한 사람에게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마치 누군가가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것처럼 선을 택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기에 범사에 선한 것을 택해 나갑니다.
7. 충성의 열매
급여를 받는 직원이 자신의 업무를 완수했다고 해서 충성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않고 사랑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넘치도록 했다면 충성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영적인 충성, 곧 ‘마음의 할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 했는데, 이는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충성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루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충성을 겸해야 합니다.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두루 충성할 때 온 집에 충성했다고 인정을 받지요. 가정, 직장, 학교, 교회 구성원으로서, 사명자로서 본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8. 온유의 열매
영적인 온유함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이 겸해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으면 항상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듯하고 위엄이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솜털같이 포근합니다. 상대가 부딪쳐 와도 혈기를 내거나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쉼을 얻습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했습니다(마 5:5). 이는 이 세상에서 땅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천국에서 넓은 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자기 안에 깃들였던 모든 영혼들을 초청하여 함께할 만큼 큰 처소를 상급으로 받게 되지요. 천국에서 큰 처소를 얻었다면 그만큼 영화로운 지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9. 절제의 열매
절제는 마음에 임한 덕목들이 겉으로 드러날 때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 안에서 무엇이든 풍성해야 좋을 것 같지만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할 수도 있지요. 절제의 열매가 맺히면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않고 질서를 좇아 가장 적당한 선에서 절제를 합니다. 절제의 열매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을 아름답게 조절해 줍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온전히 맺음으로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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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을 채워 보세요.
1. ( )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다.
2. ( )은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이다. 즉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3. ( )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한다.
4. ( )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이 겸해져 있는 것을 말한다.
( )이 있으면 항상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듯하고 위엄이 있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5부 22과 ‘온 집에 충성한 모세’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절제의 열매’가 맺힐 때 나타나는 증거
1.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한다.
2. 진리를 행할 때 대상과 시기, 장소를 고려할 줄 안다.
3.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신앙의 최종 목적지인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게 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거나 성경을 지식적으로 많이 안다고 해서 믿음이 크다 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었는지,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닮았는지에 따라 믿음의 분량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크고 작음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사랑,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닮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열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열매란 씨를 심었을 때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운 후 맺는 결과물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 성장을 통해 맺어가는 열매로서 아홉 가지가 있습니다.
1. 사랑의 열매
사랑에는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언젠가는 변질되는 사랑입니다. 반면 영적인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에 나오는 ‘사랑’은 이보다 차원이 높습니다. 예수님처럼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나를 미워하는 원수를 위해서도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2. 희락의 열매
희락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지금 내가 중심에서 기뻐하고 있는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희락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지 알 수 있지요.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은혜만 해도 항상 기뻐하기에 충분합니다.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행복 가득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항상 희락이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3. 화평의 열매
화평이란 내가 옳아도 상대에게 맞춰 주고,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으며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화평의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진리대로 행하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므로 담대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사람들과 화평하기 위해 하나님과 화평을 깹니다. 우상 앞에 절을 하거나 주일에 결혼식에 가서 먹고 마시며 즐깁니다. 이는 잠시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죄의 담을 만들어 화평을 깨뜨린 것입니다.
다음은 자신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릴 때, 진리를 좇아갈 때 자신과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자신과 화평이 이루어지면 모든 사람과도 화평할 수 있습니다.
4. 오래 참음의 열매
영적인 오래 참음은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는 것이며,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 없는 참음을 말합니다. 애매히 욕을 받았을 때,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하지만 ‘하나님 말씀이니까 참아야지.’ 하면서 억지로 참는다면 영적인 오래 참음이 아닙니다.
영적인 오래 참음에는 먼저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구기 위해 오래 참으며 악을 버려 나가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는 상대가 내 생각,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항상 선으로 이해하고 참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의 사이에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는 응답받기 위한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 응답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참는 것입니다.
5. 자비의 열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자비의 마음이 임하면 중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죄하기보다는 긍휼의 마음이 앞섭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해 주며 어찌하든 그를 살리고자 하지요.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아셨지만 아낌없이 사랑을 주셨습니다. 끝까지 그를 곁에 두시고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대하셨습니다.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계속 기회를 주셨지요. 이처럼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능히 용서하는 마음이 자비입니다.
6. 양선의 열매
양선은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입니다. 즉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지요. 그런데 선을 추구하는 마음만 간절하다고 양선의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선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 마음이 행함으로 드러나야 ‘열매’가 맺혔다 할 수 있지요.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말씀한 대로 진정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외면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선이 배어 나옵니다.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양선한 사람에게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마치 누군가가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것처럼 선을 택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기에 범사에 선한 것을 택해 나갑니다.
7. 충성의 열매
급여를 받는 직원이 자신의 업무를 완수했다고 해서 충성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않고 사랑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넘치도록 했다면 충성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영적인 충성, 곧 ‘마음의 할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 했는데, 이는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충성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루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충성을 겸해야 합니다.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두루 충성할 때 온 집에 충성했다고 인정을 받지요. 가정, 직장, 학교, 교회 구성원으로서, 사명자로서 본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8. 온유의 열매
영적인 온유함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이 겸해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으면 항상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듯하고 위엄이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솜털같이 포근합니다. 상대가 부딪쳐 와도 혈기를 내거나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쉼을 얻습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했습니다(마 5:5). 이는 이 세상에서 땅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천국에서 넓은 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자기 안에 깃들였던 모든 영혼들을 초청하여 함께할 만큼 큰 처소를 상급으로 받게 되지요. 천국에서 큰 처소를 얻었다면 그만큼 영화로운 지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9. 절제의 열매
절제는 마음에 임한 덕목들이 겉으로 드러날 때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 안에서 무엇이든 풍성해야 좋을 것 같지만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할 수도 있지요. 절제의 열매가 맺히면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않고 질서를 좇아 가장 적당한 선에서 절제를 합니다. 절제의 열매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을 아름답게 조절해 줍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온전히 맺음으로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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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을 채워 보세요.
1. ( )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다.
2. ( )은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이다. 즉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3. ( )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한다.
4. ( )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이 겸해져 있는 것을 말한다.
( )이 있으면 항상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듯하고 위엄이 있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5부 22과 ‘온 집에 충성한 모세’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절제의 열매’가 맺힐 때 나타나는 증거
1.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한다.
2. 진리를 행할 때 대상과 시기, 장소를 고려할 줄 안다.
3.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한다.
2015-11-27
제47과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5~17
읽을말씀 : 요 21:15~17 | 외울말씀 : 요 6:53 l 참고 말씀:요 1:29
교육목표 : 주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대로 영혼 구원에 힘쓰는 일꾼이 되게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이지만 성령 받기 전에 죽음의 위협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마 26:69~70, 막 14:66~68 , 눅 22:55~57, 요 18:17~18).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에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후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의심하지 않고 믿으며, 담대히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사랑의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신 사건이 나오는데, 다시 만난 주님과 베드로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있었을까요?
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일곱 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함께 맞는 아침은 어느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예전에는 베드로에게 두려움이 있었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마음에서부터 믿음이 오고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침 식사를 한 후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는 시몬에게 질문한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선 모든 사람들,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많은 주의 종들과 일꾼들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에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모른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 경고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미 회개하고 돌이킨 일로 상대의 마음을 찌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시지만 입술로 고백하게 함으로 온전히 마음에 새기게 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2. 내 어린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베드로가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답변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어린양을 먹이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어린양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혹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양이라고 표현하셨으니 어린양은 초신자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양은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표현했지요. 레위기에는 어린양을 제물로 드리는 장면이 곳곳에 나옵니다. 어린양은 영적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오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장 1~11절에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어린양을 취하여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장 51~5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했습니다.
바로 어린양인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만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요 1:14). 따라서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신 것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지요.
3. 내 양을 치라
주님께서는 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도 베드로는 동일하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대답하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하며 죄를 싸워 버리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꾼이 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양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5장 2~3절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양이란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입니다. 맡겨진 양 떼에게 꼴을 잘 먹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밝히 알고 믿음이 성장하도록 해 주며 또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알려 주고 기도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교회라는 특정한 건물이나 양 떼가 없었으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고 양 떼를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날은 교회를 세워 양 무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면서 정성껏 갈무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의 종뿐 아니라 장로, 집사, 교사 등 직분을 받아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함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넘어진 양 떼를 일으켜 주고 치료해 주는 등 바른길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과 의욕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최선을 다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곧 양을 치는 것입니다.
4. 내 양을 먹이라
주님께서 세 번째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셨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똑같은 질문에 근심하여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 부탁하십니다.
베드로가 근심한 것은 어떤 악한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아시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당부하셨는데 무슨 뜻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 중에는 믿음이 잘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이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병들고 상한 양을 치료하여 건강한 양으로 만들고, 길 잃은 양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지요. 진리 안에서 바로 서지 못하고 당을 짓고 시기 질투를 일삼는 등 목자를 시험하는 양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생명의 양식을 먹임으로 순한 양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양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하늘로부터 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양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후,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시며 그 중요성을 명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베드로처럼 주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더욱 믿음과 순종, 겸손과 섬김으로 주어진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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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 )는 말씀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이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다.
2. ( )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이다.
3. ( )는 말씀은, 병들고 상한 양을 치료하여 건강한 양으로 만들고, 길 잃은 양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5부 21과 ‘성령의 열매를 맺자’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을 의로 여기고 그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며 천국 열쇠를 주셨다(마 16:19).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생명 다해 주님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다.
교육목표 : 주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대로 영혼 구원에 힘쓰는 일꾼이 되게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이지만 성령 받기 전에 죽음의 위협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마 26:69~70, 막 14:66~68 , 눅 22:55~57, 요 18:17~18).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에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후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의심하지 않고 믿으며, 담대히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사랑의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신 사건이 나오는데, 다시 만난 주님과 베드로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있었을까요?
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일곱 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함께 맞는 아침은 어느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예전에는 베드로에게 두려움이 있었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마음에서부터 믿음이 오고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침 식사를 한 후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는 시몬에게 질문한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선 모든 사람들,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많은 주의 종들과 일꾼들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에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모른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 경고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미 회개하고 돌이킨 일로 상대의 마음을 찌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시지만 입술로 고백하게 함으로 온전히 마음에 새기게 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2. 내 어린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베드로가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답변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어린양을 먹이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어린양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혹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양이라고 표현하셨으니 어린양은 초신자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양은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표현했지요. 레위기에는 어린양을 제물로 드리는 장면이 곳곳에 나옵니다. 어린양은 영적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오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장 1~11절에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어린양을 취하여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장 51~5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했습니다.
바로 어린양인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만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요 1:14). 따라서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신 것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지요.
3. 내 양을 치라
주님께서는 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도 베드로는 동일하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대답하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하며 죄를 싸워 버리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꾼이 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양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5장 2~3절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양이란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입니다. 맡겨진 양 떼에게 꼴을 잘 먹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밝히 알고 믿음이 성장하도록 해 주며 또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알려 주고 기도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교회라는 특정한 건물이나 양 떼가 없었으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고 양 떼를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날은 교회를 세워 양 무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면서 정성껏 갈무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의 종뿐 아니라 장로, 집사, 교사 등 직분을 받아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함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넘어진 양 떼를 일으켜 주고 치료해 주는 등 바른길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과 의욕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최선을 다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곧 양을 치는 것입니다.
4. 내 양을 먹이라
주님께서 세 번째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셨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똑같은 질문에 근심하여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 부탁하십니다.
베드로가 근심한 것은 어떤 악한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아시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당부하셨는데 무슨 뜻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 중에는 믿음이 잘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이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병들고 상한 양을 치료하여 건강한 양으로 만들고, 길 잃은 양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지요. 진리 안에서 바로 서지 못하고 당을 짓고 시기 질투를 일삼는 등 목자를 시험하는 양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생명의 양식을 먹임으로 순한 양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양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하늘로부터 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양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후,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시며 그 중요성을 명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베드로처럼 주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더욱 믿음과 순종, 겸손과 섬김으로 주어진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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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 )는 말씀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이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다.
2. ( )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이다.
3. ( )는 말씀은, 병들고 상한 양을 치료하여 건강한 양으로 만들고, 길 잃은 양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5부 21과 ‘성령의 열매를 맺자’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을 의로 여기고 그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며 천국 열쇠를 주셨다(마 16:19).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생명 다해 주님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다.
2015-11-20
제46과죽어지는 밀알이 되자
요 12:24~26
읽을말씀 : 요 12:24~26 | 외울말씀 : 요 12:24 l 참고 말씀:히 12:2
교육목표 : 예수님처럼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에 이르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 맺는 과정을 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죽어져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비록 형체는 없어져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죽어지는 한 알의 밀이 되셨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피조물에 의해 수치와 모욕을 당하시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며 가시관을 쓰시고 온갖 조롱을 받으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부끄러움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망의 길로 가는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예수님처럼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철저히 죽어진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1)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들으며 경험을 쌓아갑니다. 이렇게 쌓은 지식과 교양으로 자아를 형성하게 되지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죄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자아를 형성했던 것들은 대부분 진리에 위배되므로 부딪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해야 자아가 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생각과 이론을 철저히 깨뜨려야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고후 10:5).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4절에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해야 버릴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대충 회개한다고 해서 벗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기도 하시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마음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며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진리가 아닌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만일 남편이 주님을 믿지 않고 아내만 주님을 믿는 가정이라면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고 섬기며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죽어지는 밀알이 되면 남편이 변화를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남편만 주님을 믿는 가정이라 해도 그렇게 하면 되지요.
가족복음화를 온전히 이루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가정이 되려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먼저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기 때문에 본이 되지 못하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죽어지려면 자신의 ‘구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구습’이란 하나님을 믿기 전 옛사람일 때 자신의 몸에 밴 좋지 않은 습관을 말합니다.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하는 것, 또 방이 지저분해도 치우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것 등입니다. 이런 나쁜 구습들을 버리고 성실히 본이 되어 가족들을 섬긴다면 가정복음화는 물론 항상 웃음꽃이 피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갈 가족입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성도의 허물을 들추며 남에게 전하는 것이 합당할까요?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고 상대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 불편해하고 용서하기가 어렵지요.
자신이 얼마나 죽어졌는지는 ‘화평’의 분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의를 주장하고 자기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히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기 마련이지요. 만일 ‘김 집사’와는 잘 지내는데 ‘최 집사’와는 불편하다면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지요.
교회 직분의 상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지요(행 1:8).
이처럼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며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할 때 하나님 나라가 크게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을 전도하는 데도 많은 사랑의 수고가 따릅니다.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그들이 은혜를 받고 빛이신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합니다. 전도된 영혼을 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이러한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많은 영혼이 영적인 성장을 이루며 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우친 사람은 이 사랑에 빚진 심정으로 전도와 영혼 갈무리하는 일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며 자원함으로 헌신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로마서 8장 17절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말씀대로 우리도 주님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죽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죽어가는 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까지 이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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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1.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 )을 의미한다.
2. 우리가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가 죽어져야 한다.
② 가정에서 죽어져야 한다.
③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한다.
④ ( )를 위해 죽어져야 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5부 20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옛사람’ vs ‘새사람’(골 3:9, 엡 4:24)
옛사람이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주 안에서 거듭나지 않아 비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 새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옛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3~24).
교육목표 : 예수님처럼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에 이르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 맺는 과정을 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죽어져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비록 형체는 없어져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죽어지는 한 알의 밀이 되셨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피조물에 의해 수치와 모욕을 당하시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며 가시관을 쓰시고 온갖 조롱을 받으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부끄러움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망의 길로 가는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예수님처럼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철저히 죽어진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1)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들으며 경험을 쌓아갑니다. 이렇게 쌓은 지식과 교양으로 자아를 형성하게 되지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죄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자아를 형성했던 것들은 대부분 진리에 위배되므로 부딪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해야 자아가 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생각과 이론을 철저히 깨뜨려야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고후 10:5).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4절에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해야 버릴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대충 회개한다고 해서 벗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기도 하시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마음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며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진리가 아닌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만일 남편이 주님을 믿지 않고 아내만 주님을 믿는 가정이라면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고 섬기며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죽어지는 밀알이 되면 남편이 변화를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남편만 주님을 믿는 가정이라 해도 그렇게 하면 되지요.
가족복음화를 온전히 이루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가정이 되려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먼저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기 때문에 본이 되지 못하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죽어지려면 자신의 ‘구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구습’이란 하나님을 믿기 전 옛사람일 때 자신의 몸에 밴 좋지 않은 습관을 말합니다.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하는 것, 또 방이 지저분해도 치우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것 등입니다. 이런 나쁜 구습들을 버리고 성실히 본이 되어 가족들을 섬긴다면 가정복음화는 물론 항상 웃음꽃이 피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갈 가족입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성도의 허물을 들추며 남에게 전하는 것이 합당할까요?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고 상대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 불편해하고 용서하기가 어렵지요.
자신이 얼마나 죽어졌는지는 ‘화평’의 분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의를 주장하고 자기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히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기 마련이지요. 만일 ‘김 집사’와는 잘 지내는데 ‘최 집사’와는 불편하다면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지요.
교회 직분의 상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지요(행 1:8).
이처럼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며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할 때 하나님 나라가 크게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을 전도하는 데도 많은 사랑의 수고가 따릅니다.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그들이 은혜를 받고 빛이신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합니다. 전도된 영혼을 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이러한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많은 영혼이 영적인 성장을 이루며 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우친 사람은 이 사랑에 빚진 심정으로 전도와 영혼 갈무리하는 일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며 자원함으로 헌신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로마서 8장 17절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말씀대로 우리도 주님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죽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죽어가는 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까지 이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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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1.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 )을 의미한다.
2. 우리가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가 죽어져야 한다.
② 가정에서 죽어져야 한다.
③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한다.
④ ( )를 위해 죽어져야 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5부 20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옛사람’ vs ‘새사람’(골 3:9, 엡 4:24)
옛사람이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주 안에서 거듭나지 않아 비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 새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옛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3~24).
2015-11-13
제45과하나님께 감사
출 23:16
읽을말씀 : 출 23:16 | 외울말씀 : 시 17:8 l 참고 말씀:레 23:42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할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2~43절에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지요.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명명된 병만 해도 약 1억 2천 개가 넘습니다. 이중에는 세상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습니다.
여 성도 한 분은 ‘양수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시편 17편 8절에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다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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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3.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감사의 조건들을 조목조목 써 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 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할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2~43절에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지요.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명명된 병만 해도 약 1억 2천 개가 넘습니다. 이중에는 세상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습니다.
여 성도 한 분은 ‘양수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시편 17편 8절에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다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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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3.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감사의 조건들을 조목조목 써 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 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