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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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2
제44과다시 오실 주님
마태복음 24:32~34
읽을말씀 : 마태복음 24:32~34 | 외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4:16 ㅣ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15:20
교육목표 :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공중 강림과 여러 징조들을 조명해 봄으로 더욱 깨어 근신하게 한다.
약 2천 년 전,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아무 흠도 죄도 없으셨기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40일 후에는 하늘로 승천하셨지요.
이때 제자들이 하늘로 승천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자 두 천사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말합니다. 과연 주님은 언제 어떻게 다시 오시는 것일까요?
1. 예언대로 성취될 주님의 공중 강림
구약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의 고난 등 수많은 예언이 나옵니다. 그중 대부분의 예언이 성취되었고 장차 이루어질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 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이 남아 있습니다.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을 버리고 깨어 근신하며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아름다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니 세상의 헛되고 썩어질 것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을 보면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장차 공중에 어떻게 강림하실 것인지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가장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합니다. 이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잠자는 자’라고 하지요(고전 15:20).
무덤에 장사되어 잠자는 자들의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하고 공중에서 영혼과 함께 결합되어 부활체가 됩니다. 이렇게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면, 그다음에는 죽지 않고 이 땅에 살아 있는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즉 휴거되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2. 주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히브리서 10장 37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성경 곳곳에 나오지만,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시험하는 사람도 있지요. 심지어 극단적인 종말론자들로 치부하며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주님의 재림은 속히 성취될 일입니다.
알곡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기에 신부 단장에 힘쓰며 신랑 되신 주님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 준비를 잘한 성도들은 구원받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쭉정이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고 신부 단장을 하지 않다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특별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것이 맞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날과 그때를 안다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예언된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깨어 근신하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하지요. 그런 성도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지만, 세상과 짝하며 어둠에 있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아무리 외쳐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며 세상을 취하다 결국 홍수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독립하였을 때는 곧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임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마 21:18~19)라고 저주하시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립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힐 때가 아니므로 잎사귀만 무성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평소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일까요?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 강조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고백한 대로 그 피는 이스라엘과 그 자손에게 저주로 임했지요(마 27:25). A.D. 70년,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없는 서러움과 멸시 천대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에 의해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을 당하는 등 그들에게 임한 저주와 시련은 참혹하리만큼 무서웠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율법을 지켰습니다.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그날이 바로 1948년 5월 14일이지요. 완전히 멸망하여 없어진 나라가 약 1900년 만에 재건된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설 것을 곳곳에 예언해 놓았습니다. 이사야 49장 8절에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게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에스겔 38장 8절에는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했지요.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 이스라엘은 독립한 후 짧은 시간에 선진국으로 부상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심히 가까웠음을 깨달아 신부 단장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 )라고 표현한다.
2.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 )을 뜻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67~1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바리새인’이란?
신약 시대 유대계파 중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로, 율법을 엄격히 준수했다. 또한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며, 레위기의 청결 의식을 철저히 지켰다.
이들은 장로의 유전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신 것과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행위까지도 안식일을 범했다고 간주했다.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고 겉으로만 거룩한 체하는 이들은 예수님께 ‘회칠한 무덤’과 ‘외식하는 자’라는 엄한 책망을 들었다.
부활과 천사와 영의 존재들을 인정하는 바리새인들은 이를 부인하는 사두개인들과 대립하기도 했다(행 23:6~8).
교육목표 :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공중 강림과 여러 징조들을 조명해 봄으로 더욱 깨어 근신하게 한다.
약 2천 년 전,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아무 흠도 죄도 없으셨기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40일 후에는 하늘로 승천하셨지요.
이때 제자들이 하늘로 승천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자 두 천사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말합니다. 과연 주님은 언제 어떻게 다시 오시는 것일까요?
1. 예언대로 성취될 주님의 공중 강림
구약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의 고난 등 수많은 예언이 나옵니다. 그중 대부분의 예언이 성취되었고 장차 이루어질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 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이 남아 있습니다.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을 버리고 깨어 근신하며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아름다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니 세상의 헛되고 썩어질 것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을 보면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장차 공중에 어떻게 강림하실 것인지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가장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합니다. 이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잠자는 자’라고 하지요(고전 15:20).
무덤에 장사되어 잠자는 자들의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하고 공중에서 영혼과 함께 결합되어 부활체가 됩니다. 이렇게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면, 그다음에는 죽지 않고 이 땅에 살아 있는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즉 휴거되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2. 주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히브리서 10장 37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성경 곳곳에 나오지만,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시험하는 사람도 있지요. 심지어 극단적인 종말론자들로 치부하며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주님의 재림은 속히 성취될 일입니다.
알곡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기에 신부 단장에 힘쓰며 신랑 되신 주님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 준비를 잘한 성도들은 구원받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쭉정이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고 신부 단장을 하지 않다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특별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것이 맞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날과 그때를 안다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예언된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깨어 근신하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하지요. 그런 성도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지만, 세상과 짝하며 어둠에 있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아무리 외쳐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며 세상을 취하다 결국 홍수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독립하였을 때는 곧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임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마 21:18~19)라고 저주하시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립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힐 때가 아니므로 잎사귀만 무성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평소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일까요?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 강조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고백한 대로 그 피는 이스라엘과 그 자손에게 저주로 임했지요(마 27:25). A.D. 70년,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없는 서러움과 멸시 천대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에 의해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을 당하는 등 그들에게 임한 저주와 시련은 참혹하리만큼 무서웠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율법을 지켰습니다.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그날이 바로 1948년 5월 14일이지요. 완전히 멸망하여 없어진 나라가 약 1900년 만에 재건된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설 것을 곳곳에 예언해 놓았습니다. 이사야 49장 8절에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게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에스겔 38장 8절에는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했지요.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 이스라엘은 독립한 후 짧은 시간에 선진국으로 부상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심히 가까웠음을 깨달아 신부 단장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 )라고 표현한다.
2.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 )을 뜻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67~1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바리새인’이란?
신약 시대 유대계파 중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로, 율법을 엄격히 준수했다. 또한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며, 레위기의 청결 의식을 철저히 지켰다.
이들은 장로의 유전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신 것과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행위까지도 안식일을 범했다고 간주했다.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고 겉으로만 거룩한 체하는 이들은 예수님께 ‘회칠한 무덤’과 ‘외식하는 자’라는 엄한 책망을 들었다.
부활과 천사와 영의 존재들을 인정하는 바리새인들은 이를 부인하는 사두개인들과 대립하기도 했다(행 23:6~8).
2018-10-26
제43과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요한계시록 22:12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22:12 | 외울말씀 : 요한계시록 22:12 ㅣ 참고 말씀: 말라기 3:10
교육목표 : 구원의 확신을 가지며 물질의 축복, 천국의 상급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오늘날 “주여, 주여”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 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를 지으면서도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구원받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 가운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1.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1)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먼저,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마음에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마음에 믿어져야 재림도, 천국도 믿어지고 구원의 확신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라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며, 이 믿음이 있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2) 행함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에 불과합니다(약 2:26).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으면 입술로 시인하게 되고, 말씀을 듣고 깨우친 만큼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함이 따릅니다. 행함 있는 믿음을 내보인 만큼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성령을 체험케 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의 할례를 하며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구원에 이릅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 낸다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착각 속에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 아무리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어 나간다면 성령이 소멸되며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집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도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행함 있는 믿음으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의를 이루어 갈 때라야 구원의 확신이 주어집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버리고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고 구원의 문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2.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물질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물질로 심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심지 않은 데서 거둘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씀합니다. 즉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 주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초신자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면 마치 물질에 손해가 갈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가정, 일터, 사업터를 지켜 주십니다. 어떤 사고나 재앙에서도 보호해 주시므로 물질이 낭비되지 않습니다.
감사예물이나 절기예물 등 헌물을 할 때도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되지요(고후 9:6).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는,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공궤하였습니다. 과부가 이렇게 귀한 것을 심었기에 비가 다시 올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요. 이처럼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온전한 십일조는 물론 헌물을 드리되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겨 드려야 합니다(고후 9:7).
3.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에 따라 행함이 각기 다릅니다. 믿음이 큰 만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늘에 상급도 많이 쌓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잘하면 인정을 받고 상을 받아 장래가 보장되고 자신에게 영광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창조주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없어지지 않고 영광이 되는 상을 주십니다. 천국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하고 심은 것에 대한 상급이 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게 하는 분이니 얼마나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시겠습니까.
특히 영혼 구원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며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고, 한 영혼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사랑하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 구원을 위해 모진 핍박과 환난을 받으면서도 감사했고, 영혼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참수를 당하면서도 이 땅에 남겨진 영혼들을 걱정하며 믿음으로 세상을 잘 이기기를 간절히 기도했지요. 이처럼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헌신했던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은 물론 천국에서 높은 서열에 이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하며 상급을 쌓기에 힘쓰게 됩니다. 더구나 주의 종이나 지역장, 조장, 구역장, 연합회장, 선교회장, 기관장이라면 부흥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요. 성가대나 교사, 봉사대, 헌금위원 등 자신의 달란트를 살려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 드리기 위해 충성 봉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심는 것은 모두가 상급이 됩니다.
가령, 교회가 성전 건축을 한다면 벽돌 한 장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심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금식과 기도로 심는 것 또한 상급이 됩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도 잊지 않고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며, 누가 어떤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귀히 여기며 이웃을 섬기는지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늘나라에 많은 상급을 쌓고 이 땅에서도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마음에 믿어지는 ( )이 있어야 한다.
② ( )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2. 주님을 영접하여 ( )을 받았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어 나가면 ( )이 소멸되며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진다.
3.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을 쓰고 외워 보세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56~16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망에 이르는 죄’란?
성령 훼방, 거역, 모독하는 죄를 말한다(마 12:31~32, 눅 12:10).
또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죄와(히 6:4~6),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한다.
(히 10:26~27)
교육목표 : 구원의 확신을 가지며 물질의 축복, 천국의 상급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오늘날 “주여, 주여”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 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를 지으면서도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구원받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 가운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1.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1)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먼저,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마음에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마음에 믿어져야 재림도, 천국도 믿어지고 구원의 확신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라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며, 이 믿음이 있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2) 행함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에 불과합니다(약 2:26).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으면 입술로 시인하게 되고, 말씀을 듣고 깨우친 만큼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함이 따릅니다. 행함 있는 믿음을 내보인 만큼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성령을 체험케 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의 할례를 하며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구원에 이릅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 낸다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착각 속에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 아무리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어 나간다면 성령이 소멸되며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집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도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행함 있는 믿음으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의를 이루어 갈 때라야 구원의 확신이 주어집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버리고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고 구원의 문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2.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물질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물질로 심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심지 않은 데서 거둘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씀합니다. 즉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 주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초신자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면 마치 물질에 손해가 갈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가정, 일터, 사업터를 지켜 주십니다. 어떤 사고나 재앙에서도 보호해 주시므로 물질이 낭비되지 않습니다.
감사예물이나 절기예물 등 헌물을 할 때도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되지요(고후 9:6).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는,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공궤하였습니다. 과부가 이렇게 귀한 것을 심었기에 비가 다시 올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요. 이처럼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온전한 십일조는 물론 헌물을 드리되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겨 드려야 합니다(고후 9:7).
3.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에 따라 행함이 각기 다릅니다. 믿음이 큰 만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늘에 상급도 많이 쌓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잘하면 인정을 받고 상을 받아 장래가 보장되고 자신에게 영광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창조주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없어지지 않고 영광이 되는 상을 주십니다. 천국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하고 심은 것에 대한 상급이 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게 하는 분이니 얼마나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시겠습니까.
특히 영혼 구원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며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고, 한 영혼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사랑하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 구원을 위해 모진 핍박과 환난을 받으면서도 감사했고, 영혼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참수를 당하면서도 이 땅에 남겨진 영혼들을 걱정하며 믿음으로 세상을 잘 이기기를 간절히 기도했지요. 이처럼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헌신했던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은 물론 천국에서 높은 서열에 이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하며 상급을 쌓기에 힘쓰게 됩니다. 더구나 주의 종이나 지역장, 조장, 구역장, 연합회장, 선교회장, 기관장이라면 부흥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요. 성가대나 교사, 봉사대, 헌금위원 등 자신의 달란트를 살려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 드리기 위해 충성 봉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심는 것은 모두가 상급이 됩니다.
가령, 교회가 성전 건축을 한다면 벽돌 한 장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심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금식과 기도로 심는 것 또한 상급이 됩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도 잊지 않고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며, 누가 어떤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귀히 여기며 이웃을 섬기는지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늘나라에 많은 상급을 쌓고 이 땅에서도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마음에 믿어지는 ( )이 있어야 한다.
② ( )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2. 주님을 영접하여 ( )을 받았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어 나가면 ( )이 소멸되며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진다.
3.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을 쓰고 외워 보세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56~16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망에 이르는 죄’란?
성령 훼방, 거역, 모독하는 죄를 말한다(마 12:31~32, 눅 12:10).
또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죄와(히 6:4~6),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한다.
(히 10:26~27)
2018-10-19
제42과열 므나 비유
누가복음 19:11~27
읽을말씀 : 누가복음 19:11~27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5:26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13:44
교육목표 :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인 장사를 잘하여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
흔히 열 므나 비유와 달란트 비유를 동일하게 여기는데, 이 둘의 영적인 의미는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는 영적인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장차 주님께 인정받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열 므나 비유에는 어떤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1.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누가복음 19장 12~13절에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했습니다.
여기서 ‘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므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은 것처럼,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성령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는 사명에 관한 것으로 각기 재능에 따라 다르게 달란트를 나눠 주었지요. 그러나 므나는 성령을 의미하므로 모든 사람이 한 므나씩 공평하게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한 므나씩 나눠 준 뒤 귀인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여기서 ‘먼 나라’란 하나님 계신 천국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천국에 가시기 전에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므나 비유에서는 주님께서 천국에 가시기 전에 므나를 나눠 줬으므로 실제와 다른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8절에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왕권을 얻어 부활체로 나타나실 것을 볼 제자들도 있다는 뜻입니다.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고 부활을 알리신 후, 천국에 가셨다가 그날 저녁 다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이미 하나님께 가서 왕위를 받으셨는데, 왜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가기 전에 한 므나씩 나눠 주었다고 하신 것일까요?
여기서 왕위는 주님 자신을 위한 왕위가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왕위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왕위를 이미 얻으셨지만 성도들은 아직 왕위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이 세상에서 경작을 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차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성도들의 왕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2.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귀인이 먼 나라로 갈 때에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 나눠 주며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부탁합니다. 주님께서 신랑으로 오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부 된 자격으로 주님을 맞이할 때가 곧 주님의 공중 강림의 때요,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장사한 것을 알아보는 때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눠 주고 장사하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장사하라는 것일까요? 달란트 비유에서는 각각 그 재능에 따라 사명을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장사로 표현했지만, 열 므나 비유에서의 장사는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즉 누구나 똑같이 받은 성령으로 장사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그것이 진정 귀한 것임을 안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사야 하지요.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산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비진리에 속한 육신의 생각이나 이론, 육체의 소욕 등을 버리고 깨뜨림으로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진리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는 장사, 곧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되 온전하게 장사하여 마음의 성결을 이루었음을 의미합니다.
3. 한 므나로 장사한 것을 회계하시는 주님
마침내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했는지 알고자 불렀습니다. 한 종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다고 하자,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합니다. 이것이 곧 성결된 사람이 받는 칭찬과 상입니다.
이어서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고만 하고 칭찬은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장사는 하였지만, 열 므나를 남긴 종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므나를 장사도 하지 않고 수건에 싸 두었다가 그대로 내놓은 종에게는 “악한 종아 …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며 책망하지요.
악한 종은 이미 성령을 받고서도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세상 사람과 똑같이 죄악 중에 살았습니다. 그러고는 되려 주인을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이라 판단하지요.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또한 자녀들이 심은 대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로운 분이니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도록 열심히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라고 부탁하셨지요. 그런데 한 므나를 받은 종은 오히려 무섭고 엄한 하나님으로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한 므나를 그대로 수건에 싸 두었던 종은 주인으로부터 악한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한 므나마저 빼앗기고 맙니다. 이는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계속 죄 가운데 살다가 결국 하나님을 떠나 성령이 소멸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계 3:1~6).
4.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열심히 말씀대로 살며 죄를 버리는 사람들은 성령이 충만하니 진리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회개하기는커녕 시험거리를 만들고 악을 행하다가 결국은 구원에 이르지도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왕 됨을 원치 않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하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마 27:23).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시험거리를 만들고 성령 훼방, 모독, 거역하며 주님을 십자가에 현저히 못 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9장 24절 이하에 보면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영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불순종했을 때 영이 죽었던 것처럼 성령으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장사를 하지 않으면 받았던 성령까지 빼앗겨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면 한 므나를 받은 것입니다. 나아가 열 므나를 남기면 칭찬받고 열 고을 다스릴 권세를 차지할 수 있으니, 열심히 장사하여 성결을 이룸으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귀인은 ( )를 의미하고, 므나는 ( )을 의미한다.
2.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은 것처럼,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 )을 받는다.
3.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는 장사, 곧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되 온전하게 장사하여 마음의 ( )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4. 귀인은 누구의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기 위해 먼 나라로 간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48~15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므나
영적으로 성령을 의미하는 므나는 금과 은, 보석 같은 귀금속의 중량을 재는 단위로 사용되었으며 달란트의 60분의 1 에 해당한다.
교육목표 :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인 장사를 잘하여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
흔히 열 므나 비유와 달란트 비유를 동일하게 여기는데, 이 둘의 영적인 의미는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는 영적인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장차 주님께 인정받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열 므나 비유에는 어떤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1.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누가복음 19장 12~13절에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했습니다.
여기서 ‘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므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은 것처럼,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성령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는 사명에 관한 것으로 각기 재능에 따라 다르게 달란트를 나눠 주었지요. 그러나 므나는 성령을 의미하므로 모든 사람이 한 므나씩 공평하게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한 므나씩 나눠 준 뒤 귀인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여기서 ‘먼 나라’란 하나님 계신 천국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천국에 가시기 전에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므나 비유에서는 주님께서 천국에 가시기 전에 므나를 나눠 줬으므로 실제와 다른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8절에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왕권을 얻어 부활체로 나타나실 것을 볼 제자들도 있다는 뜻입니다.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고 부활을 알리신 후, 천국에 가셨다가 그날 저녁 다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이미 하나님께 가서 왕위를 받으셨는데, 왜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가기 전에 한 므나씩 나눠 주었다고 하신 것일까요?
여기서 왕위는 주님 자신을 위한 왕위가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왕위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왕위를 이미 얻으셨지만 성도들은 아직 왕위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이 세상에서 경작을 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차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성도들의 왕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2.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귀인이 먼 나라로 갈 때에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 나눠 주며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부탁합니다. 주님께서 신랑으로 오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부 된 자격으로 주님을 맞이할 때가 곧 주님의 공중 강림의 때요,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장사한 것을 알아보는 때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눠 주고 장사하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장사하라는 것일까요? 달란트 비유에서는 각각 그 재능에 따라 사명을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장사로 표현했지만, 열 므나 비유에서의 장사는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즉 누구나 똑같이 받은 성령으로 장사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그것이 진정 귀한 것임을 안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사야 하지요.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산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비진리에 속한 육신의 생각이나 이론, 육체의 소욕 등을 버리고 깨뜨림으로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진리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는 장사, 곧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되 온전하게 장사하여 마음의 성결을 이루었음을 의미합니다.
3. 한 므나로 장사한 것을 회계하시는 주님
마침내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했는지 알고자 불렀습니다. 한 종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다고 하자,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합니다. 이것이 곧 성결된 사람이 받는 칭찬과 상입니다.
이어서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고만 하고 칭찬은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장사는 하였지만, 열 므나를 남긴 종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므나를 장사도 하지 않고 수건에 싸 두었다가 그대로 내놓은 종에게는 “악한 종아 …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며 책망하지요.
악한 종은 이미 성령을 받고서도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세상 사람과 똑같이 죄악 중에 살았습니다. 그러고는 되려 주인을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이라 판단하지요.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또한 자녀들이 심은 대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로운 분이니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도록 열심히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라고 부탁하셨지요. 그런데 한 므나를 받은 종은 오히려 무섭고 엄한 하나님으로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한 므나를 그대로 수건에 싸 두었던 종은 주인으로부터 악한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한 므나마저 빼앗기고 맙니다. 이는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계속 죄 가운데 살다가 결국 하나님을 떠나 성령이 소멸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계 3:1~6).
4.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열심히 말씀대로 살며 죄를 버리는 사람들은 성령이 충만하니 진리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회개하기는커녕 시험거리를 만들고 악을 행하다가 결국은 구원에 이르지도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왕 됨을 원치 않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하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마 27:23).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시험거리를 만들고 성령 훼방, 모독, 거역하며 주님을 십자가에 현저히 못 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9장 24절 이하에 보면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영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불순종했을 때 영이 죽었던 것처럼 성령으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장사를 하지 않으면 받았던 성령까지 빼앗겨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면 한 므나를 받은 것입니다. 나아가 열 므나를 남기면 칭찬받고 열 고을 다스릴 권세를 차지할 수 있으니, 열심히 장사하여 성결을 이룸으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귀인은 ( )를 의미하고, 므나는 ( )을 의미한다.
2.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은 것처럼,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 )을 받는다.
3.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는 장사, 곧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되 온전하게 장사하여 마음의 ( )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4. 귀인은 누구의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기 위해 먼 나라로 간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48~15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므나
영적으로 성령을 의미하는 므나는 금과 은, 보석 같은 귀금속의 중량을 재는 단위로 사용되었으며 달란트의 60분의 1 에 해당한다.
2018-10-12
제41과달란트 비유
마태복음 25:14~30
읽을말씀 : 마태복음 25:14~30 | 외울말씀 : 마태복음 25:21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25:26
교육목표 :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귀중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는 사명자가 되게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크든 작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소중히 감당하지요. 지옥에 가지 않도록 구원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귀한 사명을 주셔서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마음 다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1.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 14절 이하를 통해 성도들이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시지요.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게 되자 종들을 불러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장사는커녕 땅에 묻어 두었지요.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칭찬합니다. 반면 한 달란트를 받아서 장사하지 않고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하시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타국’은 천국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을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또 ‘자기 소유’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천하 만물과 인생들을 말합니다(요 1:10, 히 1:2).
성경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천하 만물과 인생들이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눅 4:6). 그런데 하나님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 승천하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천국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아직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로 있는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되찾아야 합니다. 주님의 소유로 되찾는 것,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믿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요,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주님께서 천국에 가실 때 ‘자기 소유를 맡기되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고 했는데 여기서 재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재능에는 육적인 재능과 영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찬양이나 무용 등 특별히 어떤 분야를 잘할 수 있는 재주와 능력, 기술, 지혜, 학식 등이 육적인 재능입니다. 하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영적인 재능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재능은 영적인 재능으로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첫째, 각자 믿음의 분량(롬 12:3)에 따라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움과 전도의 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전할 수 있어 믿음대로 전도가 이루어지고 영혼이 구원되지만, 믿음이 적은 사람은 담대히 전하지 못하니 그만큼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둘째, 천국에 대한 소망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큰 사람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여 영혼 구원에 앞장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고자 하지요.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영혼을 구원하며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와도 감사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도, 봉사, 찬양 등 주 안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영혼 구원과 직결되므로 충성되이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얼마큼 있느냐에 따라 달란트가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재능이 많은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약간 적은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아주 적은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이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즐거움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고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은 교회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는 즐거움에 참예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으로 상이 주어지며 천국 잔치에 참예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열심히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자기의 재능 안에서 충성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과 동등하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최선을 다해 감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사랑을 베푸십니다.
4.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은 주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며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 알았기 때문에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에 공의로우신 주님을 굳은 사람이라 자기의 생각에 맞춰 오해했지요.
또한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을 좇아 열심히 수고하여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땅속에 그대로 감추어 두었습니다. 곧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지 않았으니 열매를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은행에 맡겼으면 이자라도 받았을 텐데 변리도 취하지 못하게 했으니 그만큼 주인의 소유에 손해를 입힌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열 달란트 가진 자는 사명이 많아 벅찰 것 같지만 그만큼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기에 그 이상의 것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종에게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마 25:30). 이는 자기의 사명을 감당치 않고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재능인 믿음, 소망, 사랑으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열매 맺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떤 사람은 ( )를 의미하고, 타국은 ( )을 뜻한다.
2.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 ), ( ), ( )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다.
3.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40~14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달란트와 데나리온
무게와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는 달란트는 성경에서 재능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1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6천 일, 약 16년간 품삯에 해당된다.
‘1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화로, 군인이나 품꾼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금액이며, 헬라의 은화 1 드라크마의 가치를 지녔다.
교육목표 :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귀중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는 사명자가 되게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크든 작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소중히 감당하지요. 지옥에 가지 않도록 구원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귀한 사명을 주셔서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마음 다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1.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 14절 이하를 통해 성도들이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시지요.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게 되자 종들을 불러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장사는커녕 땅에 묻어 두었지요.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칭찬합니다. 반면 한 달란트를 받아서 장사하지 않고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하시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타국’은 천국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을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또 ‘자기 소유’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천하 만물과 인생들을 말합니다(요 1:10, 히 1:2).
성경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천하 만물과 인생들이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눅 4:6). 그런데 하나님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 승천하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천국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아직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로 있는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되찾아야 합니다. 주님의 소유로 되찾는 것,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믿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요,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주님께서 천국에 가실 때 ‘자기 소유를 맡기되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고 했는데 여기서 재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재능에는 육적인 재능과 영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찬양이나 무용 등 특별히 어떤 분야를 잘할 수 있는 재주와 능력, 기술, 지혜, 학식 등이 육적인 재능입니다. 하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영적인 재능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재능은 영적인 재능으로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첫째, 각자 믿음의 분량(롬 12:3)에 따라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움과 전도의 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전할 수 있어 믿음대로 전도가 이루어지고 영혼이 구원되지만, 믿음이 적은 사람은 담대히 전하지 못하니 그만큼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둘째, 천국에 대한 소망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큰 사람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여 영혼 구원에 앞장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고자 하지요.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영혼을 구원하며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와도 감사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도, 봉사, 찬양 등 주 안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영혼 구원과 직결되므로 충성되이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얼마큼 있느냐에 따라 달란트가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재능이 많은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약간 적은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아주 적은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이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즐거움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고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은 교회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는 즐거움에 참예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으로 상이 주어지며 천국 잔치에 참예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열심히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자기의 재능 안에서 충성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과 동등하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최선을 다해 감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사랑을 베푸십니다.
4.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은 주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며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 알았기 때문에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에 공의로우신 주님을 굳은 사람이라 자기의 생각에 맞춰 오해했지요.
또한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을 좇아 열심히 수고하여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땅속에 그대로 감추어 두었습니다. 곧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지 않았으니 열매를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은행에 맡겼으면 이자라도 받았을 텐데 변리도 취하지 못하게 했으니 그만큼 주인의 소유에 손해를 입힌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열 달란트 가진 자는 사명이 많아 벅찰 것 같지만 그만큼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기에 그 이상의 것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종에게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마 25:30). 이는 자기의 사명을 감당치 않고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재능인 믿음, 소망, 사랑으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열매 맺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떤 사람은 ( )를 의미하고, 타국은 ( )을 뜻한다.
2.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 ), ( ), ( )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다.
3.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40~14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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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와 데나리온
무게와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는 달란트는 성경에서 재능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1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6천 일, 약 16년간 품삯에 해당된다.
‘1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화로, 군인이나 품꾼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금액이며, 헬라의 은화 1 드라크마의 가치를 지녔다.
2018-10-05
제40과천국의 처소와 면류관
요한계시록 21:1~2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21:1~2 | 외울말씀 : 로마서 12:3 ㅣ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9:25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 예비하신 아름다운 천국의 여러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살펴본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으면 모두가 똑같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세상과 짝하며 죄를 버리지도 않은 채 살다가 겨우 구원받은 사람과, 주님의 마음을 닮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사람이 장차 천국에서 똑같은 영광과 상급을 받는다면 공평하지 않지요.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선악 간에 심판하시며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니 각 사람이 일군 믿음의 분량에 따라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상급, 면류관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낙원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은 신앙생활 하면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낙원에 들어가는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기만 했을 뿐, 죄를 버리거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도 않았고 주를 위해 행한 것도 없습니다. 천국의 아름다운 처소와 빛나는 상급은 주 안에서 믿음으로 행하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충성하고 심은 대로 주어집니다. 하지만 낙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겨우 구원에 이르렀기 때문에 상급이나 면류관, 집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낙원의 삶은 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고 자연환경도 아름답습니다. 낙원에 들어가면 집이 없다고 해서 마냥 잔디밭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생활하기도 하지요. 천국에는 악이 없기에 공동생활을 해도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배려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2.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주어지는 1천층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경주를 하여 1천층에 들어가면 낙원과는 달리 개인 집과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비록 비진리가 많이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노력을,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하여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1천층의 집은 궁전같이 크고 화려한 건물은 아닙니다.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 형태라 할 수 있고, 안에는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이러한 집 외에는 1천층에서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시설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도 없지요. 다만 정원, 골프장, 수영장 등 1천층에 들어온 하나님의 자녀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대시설을 관리하며 시설을 이용할 때 도와주는 천사들만 있습니다.
3.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2천층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는 2천층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독립된 주택이 주어지는데,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단장되어 있습니다.
2천층에 들어온 사람들은 아름다운 호수든, 수영장이든, 산책길이든, 무도회장이든 가장 원하는 부대시설을 한 가지만 가질 수 있습니다. 2천층의 집에는 문패가 달려 있는데 천국의 글씨로 주인의 이름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2천층에 들어가면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 5:4). 이들은 마음에 온전한 할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상급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온전히 성결되지 못한 것에 민망히 여깁니다.
4.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3천층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께서 영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십니다. 이때부터는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자녀라 할 수 있지요. 낙원이나 1천층, 2천층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3천층 이상의 천국에 들어가면 각 사람에게 천사가 주어져 수종을 듭니다. 더 성결을 이루고 행함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에게는 수종 드는 천사가 많습니다. 3천층에서는 교통수단으로 구름 자가용을 이용하게 됩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사람은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지만 3천층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공용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3천층의 집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요? 2천층의 건물은 단층이며 가장 원하는 부대시설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 했습니다. 반면 3천층부터는 집이 복층으로 되어 있으며 산책길, 호수, 골프장, 수영장 등 자신이 원하는 모든 부대시설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3천층에서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들은 순교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했을 뿐 아니라,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렸습니다. 이렇게 성결을 이루고 생명을 다해 죽도록 충성하였기에 아름다운 3천층에 들어가며, 그에 대한 상급으로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5. ‘금면류관’,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새 예루살렘 성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천국 처소로 중앙에는 하나님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들을 위해 예비하신 사랑의 결정체이며, 열두 진주문을 통해 믿음의 5단계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가 들어갑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게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인 정육면체 모양입니다(계 21장). 크고 높은 성곽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벽옥으로 쌓였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마련된 집은 복층이며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져 있고,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원하는 시설은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면 의의 면류관(딤후 4:8)과 금면류관(계 4:4)이 주어지며, 이 외에도 화관, 진주관, 크리스털관, 온갖 보석이 화려하게 장식된 면류관들이 있어 각종 연회에 맞춰 사용합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천사가 그림자처럼 수종 들어 줍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배우고 보고 듣고 즐기며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끝이 없습니다. 영원한 삶의 매 순간마다 새롭고 행복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이곳에서는 항상 연회가 열리는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도 하고 주님과 성령님이 주관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연회가 열리면 각자 최고로 아름답게 단장하고 최상의 것을 먹고 마시며 아름다운 찬양과 춤을 즐기는데 그 행복과 영화로움은 가히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영광을 얻기 위해 죄악을 온전히 벗어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할 뿐 아니라, 마음에 선과 사랑을 가득 채움으로 영광의 성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이렇게 믿음의 경주를 하여 ( )에 들어가면 ( ) 면류관이 주어진다.
2. ( )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게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인 ( ) 모양이다. 크고 높은 성곽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벽옥이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32~13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옷의 문양’
천국에서는 옷의 문양만 보아도 이 땅에서 행한 것을 알 수 있다.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였다면 감사의 문양과 기쁨의 문양이 새겨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중심의 찬양을 올린 사람의 옷에는 찬양의 문양이 새겨진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생명 다해 기도한 사람의 옷에는 기도의 문양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영광 돌린 사람에게는 영광의 문양이 새겨진다. 영광의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으면 천국에서 가장 존귀한 자라 할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 예비하신 아름다운 천국의 여러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살펴본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으면 모두가 똑같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세상과 짝하며 죄를 버리지도 않은 채 살다가 겨우 구원받은 사람과, 주님의 마음을 닮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사람이 장차 천국에서 똑같은 영광과 상급을 받는다면 공평하지 않지요.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선악 간에 심판하시며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니 각 사람이 일군 믿음의 분량에 따라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상급, 면류관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낙원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은 신앙생활 하면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낙원에 들어가는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기만 했을 뿐, 죄를 버리거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도 않았고 주를 위해 행한 것도 없습니다. 천국의 아름다운 처소와 빛나는 상급은 주 안에서 믿음으로 행하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충성하고 심은 대로 주어집니다. 하지만 낙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겨우 구원에 이르렀기 때문에 상급이나 면류관, 집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낙원의 삶은 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고 자연환경도 아름답습니다. 낙원에 들어가면 집이 없다고 해서 마냥 잔디밭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생활하기도 하지요. 천국에는 악이 없기에 공동생활을 해도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배려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2.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주어지는 1천층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경주를 하여 1천층에 들어가면 낙원과는 달리 개인 집과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비록 비진리가 많이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노력을,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하여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1천층의 집은 궁전같이 크고 화려한 건물은 아닙니다.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 형태라 할 수 있고, 안에는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이러한 집 외에는 1천층에서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시설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도 없지요. 다만 정원, 골프장, 수영장 등 1천층에 들어온 하나님의 자녀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대시설을 관리하며 시설을 이용할 때 도와주는 천사들만 있습니다.
3.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2천층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는 2천층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독립된 주택이 주어지는데,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단장되어 있습니다.
2천층에 들어온 사람들은 아름다운 호수든, 수영장이든, 산책길이든, 무도회장이든 가장 원하는 부대시설을 한 가지만 가질 수 있습니다. 2천층의 집에는 문패가 달려 있는데 천국의 글씨로 주인의 이름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2천층에 들어가면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 5:4). 이들은 마음에 온전한 할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상급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온전히 성결되지 못한 것에 민망히 여깁니다.
4.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3천층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께서 영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십니다. 이때부터는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자녀라 할 수 있지요. 낙원이나 1천층, 2천층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3천층 이상의 천국에 들어가면 각 사람에게 천사가 주어져 수종을 듭니다. 더 성결을 이루고 행함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에게는 수종 드는 천사가 많습니다. 3천층에서는 교통수단으로 구름 자가용을 이용하게 됩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사람은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지만 3천층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공용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3천층의 집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요? 2천층의 건물은 단층이며 가장 원하는 부대시설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 했습니다. 반면 3천층부터는 집이 복층으로 되어 있으며 산책길, 호수, 골프장, 수영장 등 자신이 원하는 모든 부대시설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3천층에서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들은 순교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했을 뿐 아니라,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렸습니다. 이렇게 성결을 이루고 생명을 다해 죽도록 충성하였기에 아름다운 3천층에 들어가며, 그에 대한 상급으로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5. ‘금면류관’,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새 예루살렘 성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천국 처소로 중앙에는 하나님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들을 위해 예비하신 사랑의 결정체이며, 열두 진주문을 통해 믿음의 5단계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가 들어갑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게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인 정육면체 모양입니다(계 21장). 크고 높은 성곽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벽옥으로 쌓였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마련된 집은 복층이며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져 있고,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원하는 시설은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면 의의 면류관(딤후 4:8)과 금면류관(계 4:4)이 주어지며, 이 외에도 화관, 진주관, 크리스털관, 온갖 보석이 화려하게 장식된 면류관들이 있어 각종 연회에 맞춰 사용합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천사가 그림자처럼 수종 들어 줍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배우고 보고 듣고 즐기며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끝이 없습니다. 영원한 삶의 매 순간마다 새롭고 행복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이곳에서는 항상 연회가 열리는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도 하고 주님과 성령님이 주관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연회가 열리면 각자 최고로 아름답게 단장하고 최상의 것을 먹고 마시며 아름다운 찬양과 춤을 즐기는데 그 행복과 영화로움은 가히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영광을 얻기 위해 죄악을 온전히 벗어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할 뿐 아니라, 마음에 선과 사랑을 가득 채움으로 영광의 성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이렇게 믿음의 경주를 하여 ( )에 들어가면 ( ) 면류관이 주어진다.
2. ( )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게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인 ( ) 모양이다. 크고 높은 성곽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벽옥이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32~13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옷의 문양’
천국에서는 옷의 문양만 보아도 이 땅에서 행한 것을 알 수 있다.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였다면 감사의 문양과 기쁨의 문양이 새겨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중심의 찬양을 올린 사람의 옷에는 찬양의 문양이 새겨진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생명 다해 기도한 사람의 옷에는 기도의 문양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영광 돌린 사람에게는 영광의 문양이 새겨진다. 영광의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으면 천국에서 가장 존귀한 자라 할 수 있다.
2018-09-28
제39과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마태복음 11:12
읽을말씀 : 마태복음 11:12 | 외울말씀 : 마태복음 11:12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13:31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름다운 천국을 믿음으로 침노하여 소유하게 한다.
올림픽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의 기쁨은 생애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 뼈를 깎는 듯한 고되고 힘든 훈련들을 잘 견디어 낸 눈물과 땀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잠시 잠깐 사는 이 세상에서도 상을 받기 위해 자신을 절제하고 고통을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요. 하물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믿음으로 침노하는 천국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할 수도 없는 빛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는다는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김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 사단은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주님을 믿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라 할지라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어떻게든 죄를 짓도록 미혹합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최후 승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직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성결을 이루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만큼 믿음이 성장하므로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마태복음 11장 12절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침노를 당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역을 이루시도록 그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하지요.
구약 시대는 율법 시대로 율법의 행위로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드시 율법을 지켜 행해야 했고 지키지 못하여 범죄했을 때는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사함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신약 시대는 율법대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인도함 받아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약 시대를 성령 시대, 은혜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는 은혜의 시대이니 죄를 지어도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신약 시대에는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음에 악을 품은 자체로 죄가 성립이 됩니다. 하물며 행위적으로 범죄한다면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현저히 육체의 일을 하는 자’ 곧 음행, 호색, 우상 숭배, 분쟁, 투기, 방탕함 등 행함으로 범죄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날마다 믿음을 성장시켜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의 악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는 구약 시대보다 구원받기가 더 어려울까요? 구약 시대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율법을 지켜야 했다면,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버릴 수 있고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 악을 행하던 사람이 선을 행해 나갑니다.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죄의 성질도 버리며 성결한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버리거나 변화될 수도 없지만, 주님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믿기 전에는 술, 담배를 끊는 것이 힘들었는데,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를 버리고자 노력해 갈 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속에 있는 죄성까지 뽑아 버리게 됩니다. 이처럼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에 믿음으로 구원받고 죄를 버리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3.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면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도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좋은 곳을 사모하여 침노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는 영의 하늘에 속해 있으며 영의 하늘은 이 육의 하늘과 차원이 다른 영역입니다. 영의 하늘도 다시 여러 하늘로 나뉩니다(느 9:6, 왕상 8:27).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는 사도 바울의 영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말합니다. 셋째 하늘이 있으면 첫째, 둘째 하늘도 있고, 그 이상의 하늘도 존재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 하늘 중에서 바울이 말하는 셋째 하늘은 바로 천국이 있는 하늘입니다. 그리고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천국이 있는 셋째 하늘 중에서도 낙원을 보았는데 이를 차마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낙원은 어떤 곳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한 한편 강도와 같이 간신히 구원받은 사람이 가는 천국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 일도 없어 상급이 없는 사람이 가는 곳으로 천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입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사도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 성이 나옵니다. 천국에서 가장 영화로운 처소 곧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마음의 성결을 온전히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천국에는 겨우 구원받은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인 낙원이 있는가 하면, 주님을 닮아 온 영의 마음을 이룬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처소가 있으며,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천국 처소가 결정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만큼 더 좋은 처소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한 성도들의 믿음은 겨자씨처럼 작지만 그 씨를 자신의 마음 밭에 심고 열심히 가꾸면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울창한 나무와 같이 큰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큰 나무에 많은 새가 깃들이듯이 믿음이 큰 사람은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큰 사람은 수많은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영적 성장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며 행복한 것을 상상한다 해도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의 삶과도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과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대해 알수록 이 땅의 것이 헛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삶을 마치는 순간, 자신의 천국 처소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부지런히 천국을 침노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까지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 )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한다.
2.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24~13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늘들’이란?(렘 51:15, 시 68:33)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은 크게 넷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하늘’은 이 땅에 속한 육의 세계를 말한다.
‘둘째 하늘’은 ‘공중’(살전 4:17)으로 표현되며,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으로 나뉜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까지 살았던 에덴동산과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신 후 혼인 잔치 하는 공간이 빛의 영역이라면, 악한 영들이 거하는 곳이 어둠의 영역이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자녀가 들어갈 천국이 있는 곳이다.
낙원에서 새 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처소가 있다.
‘넷째 하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곳이다.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름다운 천국을 믿음으로 침노하여 소유하게 한다.
올림픽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의 기쁨은 생애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 뼈를 깎는 듯한 고되고 힘든 훈련들을 잘 견디어 낸 눈물과 땀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잠시 잠깐 사는 이 세상에서도 상을 받기 위해 자신을 절제하고 고통을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요. 하물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믿음으로 침노하는 천국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할 수도 없는 빛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는다는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김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 사단은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주님을 믿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라 할지라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어떻게든 죄를 짓도록 미혹합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최후 승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직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성결을 이루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만큼 믿음이 성장하므로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마태복음 11장 12절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침노를 당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역을 이루시도록 그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하지요.
구약 시대는 율법 시대로 율법의 행위로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드시 율법을 지켜 행해야 했고 지키지 못하여 범죄했을 때는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사함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신약 시대는 율법대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인도함 받아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약 시대를 성령 시대, 은혜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는 은혜의 시대이니 죄를 지어도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신약 시대에는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음에 악을 품은 자체로 죄가 성립이 됩니다. 하물며 행위적으로 범죄한다면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현저히 육체의 일을 하는 자’ 곧 음행, 호색, 우상 숭배, 분쟁, 투기, 방탕함 등 행함으로 범죄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날마다 믿음을 성장시켜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의 악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는 구약 시대보다 구원받기가 더 어려울까요? 구약 시대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율법을 지켜야 했다면,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버릴 수 있고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 악을 행하던 사람이 선을 행해 나갑니다.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죄의 성질도 버리며 성결한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버리거나 변화될 수도 없지만, 주님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믿기 전에는 술, 담배를 끊는 것이 힘들었는데,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를 버리고자 노력해 갈 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속에 있는 죄성까지 뽑아 버리게 됩니다. 이처럼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에 믿음으로 구원받고 죄를 버리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3.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면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도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좋은 곳을 사모하여 침노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는 영의 하늘에 속해 있으며 영의 하늘은 이 육의 하늘과 차원이 다른 영역입니다. 영의 하늘도 다시 여러 하늘로 나뉩니다(느 9:6, 왕상 8:27).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는 사도 바울의 영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말합니다. 셋째 하늘이 있으면 첫째, 둘째 하늘도 있고, 그 이상의 하늘도 존재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 하늘 중에서 바울이 말하는 셋째 하늘은 바로 천국이 있는 하늘입니다. 그리고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천국이 있는 셋째 하늘 중에서도 낙원을 보았는데 이를 차마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낙원은 어떤 곳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한 한편 강도와 같이 간신히 구원받은 사람이 가는 천국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 일도 없어 상급이 없는 사람이 가는 곳으로 천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입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사도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 성이 나옵니다. 천국에서 가장 영화로운 처소 곧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마음의 성결을 온전히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천국에는 겨우 구원받은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인 낙원이 있는가 하면, 주님을 닮아 온 영의 마음을 이룬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처소가 있으며,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천국 처소가 결정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만큼 더 좋은 처소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한 성도들의 믿음은 겨자씨처럼 작지만 그 씨를 자신의 마음 밭에 심고 열심히 가꾸면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울창한 나무와 같이 큰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큰 나무에 많은 새가 깃들이듯이 믿음이 큰 사람은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큰 사람은 수많은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영적 성장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며 행복한 것을 상상한다 해도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의 삶과도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과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대해 알수록 이 땅의 것이 헛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삶을 마치는 순간, 자신의 천국 처소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부지런히 천국을 침노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까지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 )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한다.
2.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24~13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늘들’이란?(렘 51:15, 시 68:33)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은 크게 넷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하늘’은 이 땅에 속한 육의 세계를 말한다.
‘둘째 하늘’은 ‘공중’(살전 4:17)으로 표현되며,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으로 나뉜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까지 살았던 에덴동산과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신 후 혼인 잔치 하는 공간이 빛의 영역이라면, 악한 영들이 거하는 곳이 어둠의 영역이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자녀가 들어갈 천국이 있는 곳이다.
낙원에서 새 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처소가 있다.
‘넷째 하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곳이다.
2018-09-24
제0과추석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로마서 12:18
읽을말씀 : 로마서 12:18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오늘은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308장 ---------------------- 다 같이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 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2. 추수 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
3. 먼동 틀 때 일어나서 일찍 들에 나아가
황혼 때가 되기까지 추수하게 하소서
4. 거둬 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주가 베풀 잔치 자리 우리 참여 하겠네
후렴
무르 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아멘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18 -------------------- 인도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설 교 ----------------------- 화목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어느 노부부가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지요. 식사 때가 되어 할아버지에게 상은 차려 주었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내가 침묵하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지요. 그러다가 순간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서랍을 뒤지며 열심히 찾는 것이었지요. 할머니는 처음에는 못 본 척 하다가 옷장 속의 옷이며 서랍 안의 물건들까지 다 꺼내 놓으니 왜 그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뭘 찾는데 그래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지 뭐야.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구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이제 화 풀어요.” 하며 사과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이내 마음이 풀어져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다투지 않고 화평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어느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
두 번째로, 자기 의와 틀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는 옳다고 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화평을 깬다.”고 한다면, 정말 상대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내가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지요.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입니다.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올해도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더욱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오늘은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308장 ---------------------- 다 같이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 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2. 추수 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
3. 먼동 틀 때 일어나서 일찍 들에 나아가
황혼 때가 되기까지 추수하게 하소서
4. 거둬 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주가 베풀 잔치 자리 우리 참여 하겠네
후렴
무르 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아멘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18 -------------------- 인도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설 교 ----------------------- 화목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어느 노부부가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지요. 식사 때가 되어 할아버지에게 상은 차려 주었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내가 침묵하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지요. 그러다가 순간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서랍을 뒤지며 열심히 찾는 것이었지요. 할머니는 처음에는 못 본 척 하다가 옷장 속의 옷이며 서랍 안의 물건들까지 다 꺼내 놓으니 왜 그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뭘 찾는데 그래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지 뭐야.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구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이제 화 풀어요.” 하며 사과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이내 마음이 풀어져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다투지 않고 화평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어느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
두 번째로, 자기 의와 틀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는 옳다고 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화평을 깬다.”고 한다면, 정말 상대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내가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지요.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입니다.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올해도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더욱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8-09-21
제38과신부단장을 잘하자
마태복음 25:1~13
읽을말씀 : 마태복음 25:1~13 | 외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23 ㅣ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5:4
교육목표 :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할 신부의 자격에 대해 깨닫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하시며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열 처녀는 하나님을 믿고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재림의 주님을 기다린다 하면서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은 성도가 있는가 하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준비를 잘한 성도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1. 열 처녀 비유
열 처녀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가 있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열 처녀는 모두 등을 들고 신랑을 기다렸지요.
밤은 깊어 가고 신랑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 처녀 모두 꾸벅꾸벅 자고 있을 때, 갑자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열 처녀는 부랴부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등을 챙겨 불을 밝혔지요.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등불이 꺼져갑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 달라” 부탁하지만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합니다. 결국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사러 갔고, 그 사이에 기다리던 신랑이 도착했지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돌아와 아무리 외쳐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무서운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가 내일도 있다.”며 깨어 있지 않고 신부단장에 힘쓰지 않습니다.
신부단장의 기회는 깨어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며 구원의 문은 한 번 닫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은 기름이 떨어져도 느끼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를 통해 항상 깨어 있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온전히 신부단장을 마치라고 당부하십니다.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하셨지요.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세상과 짝하며 쾌락을 즐긴다면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며 구원과도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주님의 신부 된 자격을 갖추려면
성경을 보면 주님을 ‘신랑’, 성도를 ‘신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이 땅에서 시작된 6천 년 인간 경작이 마쳐지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셔서 신부단장에 힘쓴 성도들과 함께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벌입니다.
장차 될 일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19장 9절을 보면 “어린양(곧 주님)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초청받아 들어간다는 것은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뜻이니 복이 있다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 땅에 남아 7년 대환난을 겪게 됩니다. 그러니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깨어 있어 신부단장에 힘쓰며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랑 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부의 자격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어떠한 시험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은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온전히 순종하여 믿음의 행함을 증거로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약속의 씨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육신의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어떻습니까?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을 만들어 다니엘의 세 친구 곧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절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절을 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고 위협하였지요(단 3:15).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 앞에 결코 절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담대히 고백합니다. 결국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 신상에 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무 불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도록 지켜 주셨기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며 크게 영광 돌렸지요.
둘째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흠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교양과 지식으로 겉을 거룩하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했습니다(삼상 16:7).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청결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했습니다. 마음을 더럽게 하는 죄악을 온전히 버려야 마음이 청결해지고 자기 몸과 주변도 청결히 합니다.
성경에서는 마음을 청결케 하는 것을 ‘두루마기를 빤다’고 표현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했습니다. 만일 옷에 오물이 묻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깨끗이 빨아서 입을 것입니다. 마음에 묻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물인 하나님 말씀으로 깨끗이 씻어 내야지요. 다투고 혈기 내던 사람은 혈기를 버려야 하고, 교만한 사람은 낮아지고 섬기며,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결해지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오히려 품게 됩니다.
셋째로, 기름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은 기도와 성령 충만함을 뜻합니다. 기름이 있어야 등에 불을 밝힐 수 있듯이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영혼의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충만함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점차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죄악 가운데 살다가 결국에는 구원에도 이를 수 없지요. 만일 미련한 다섯 처녀가 깨어 있어 신랑이 더디 오는 것을 알았다면 기름을 넉넉히 준비해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주 안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습니다(살전 5:4). 그러나 깨어 있지 않으면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으로 다 멸하기까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은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기름 준비는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믿음도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신부단장을 잘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갖춰야 할 신부 자격은 무엇일까요?
① 어떠한 시험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 )을 가져야 한다.
②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 )이 없어야 한다.
③ 기름 준비하고 ( ) 있어야 한다.
2.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한다. 이때 기름은 ( )와 성령 충만함을 뜻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15~12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계 19:9)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신부의 자격으로 7년 동안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하는 잔치를 가리킨다. 주님이 공중 강림하시면 구원받은 모든 영혼이 신부로서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한다.
이때 구원받은 자녀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7년 동안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베푸신다. 장차 백보좌 대심판을 통해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천국의 처소와 상급으로 갚아 주지만, 그 이전에 혼인 잔치를 베풀어 주님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하신다.
교육목표 :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할 신부의 자격에 대해 깨닫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하시며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열 처녀는 하나님을 믿고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재림의 주님을 기다린다 하면서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은 성도가 있는가 하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준비를 잘한 성도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1. 열 처녀 비유
열 처녀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가 있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열 처녀는 모두 등을 들고 신랑을 기다렸지요.
밤은 깊어 가고 신랑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 처녀 모두 꾸벅꾸벅 자고 있을 때, 갑자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열 처녀는 부랴부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등을 챙겨 불을 밝혔지요.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등불이 꺼져갑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 달라” 부탁하지만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합니다. 결국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사러 갔고, 그 사이에 기다리던 신랑이 도착했지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돌아와 아무리 외쳐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무서운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가 내일도 있다.”며 깨어 있지 않고 신부단장에 힘쓰지 않습니다.
신부단장의 기회는 깨어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며 구원의 문은 한 번 닫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은 기름이 떨어져도 느끼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를 통해 항상 깨어 있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온전히 신부단장을 마치라고 당부하십니다.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하셨지요.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세상과 짝하며 쾌락을 즐긴다면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며 구원과도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주님의 신부 된 자격을 갖추려면
성경을 보면 주님을 ‘신랑’, 성도를 ‘신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이 땅에서 시작된 6천 년 인간 경작이 마쳐지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셔서 신부단장에 힘쓴 성도들과 함께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벌입니다.
장차 될 일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19장 9절을 보면 “어린양(곧 주님)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초청받아 들어간다는 것은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뜻이니 복이 있다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 땅에 남아 7년 대환난을 겪게 됩니다. 그러니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깨어 있어 신부단장에 힘쓰며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랑 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부의 자격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어떠한 시험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은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온전히 순종하여 믿음의 행함을 증거로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약속의 씨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육신의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어떻습니까?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을 만들어 다니엘의 세 친구 곧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절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절을 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고 위협하였지요(단 3:15).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 앞에 결코 절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담대히 고백합니다. 결국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 신상에 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무 불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도록 지켜 주셨기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며 크게 영광 돌렸지요.
둘째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흠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교양과 지식으로 겉을 거룩하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했습니다(삼상 16:7).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청결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했습니다. 마음을 더럽게 하는 죄악을 온전히 버려야 마음이 청결해지고 자기 몸과 주변도 청결히 합니다.
성경에서는 마음을 청결케 하는 것을 ‘두루마기를 빤다’고 표현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했습니다. 만일 옷에 오물이 묻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깨끗이 빨아서 입을 것입니다. 마음에 묻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물인 하나님 말씀으로 깨끗이 씻어 내야지요. 다투고 혈기 내던 사람은 혈기를 버려야 하고, 교만한 사람은 낮아지고 섬기며,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결해지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오히려 품게 됩니다.
셋째로, 기름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은 기도와 성령 충만함을 뜻합니다. 기름이 있어야 등에 불을 밝힐 수 있듯이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영혼의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충만함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점차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죄악 가운데 살다가 결국에는 구원에도 이를 수 없지요. 만일 미련한 다섯 처녀가 깨어 있어 신랑이 더디 오는 것을 알았다면 기름을 넉넉히 준비해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주 안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습니다(살전 5:4). 그러나 깨어 있지 않으면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으로 다 멸하기까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은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기름 준비는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믿음도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신부단장을 잘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갖춰야 할 신부 자격은 무엇일까요?
① 어떠한 시험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 )을 가져야 한다.
②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 )이 없어야 한다.
③ 기름 준비하고 ( ) 있어야 한다.
2.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한다. 이때 기름은 ( )와 성령 충만함을 뜻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15~12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계 19:9)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신부의 자격으로 7년 동안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하는 잔치를 가리킨다. 주님이 공중 강림하시면 구원받은 모든 영혼이 신부로서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한다.
이때 구원받은 자녀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7년 동안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베푸신다. 장차 백보좌 대심판을 통해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천국의 처소와 상급으로 갚아 주지만, 그 이전에 혼인 잔치를 베풀어 주님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하신다.
2018-09-14
제37과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마태복음 13:44
읽을말씀 : 마태복음 13:44 | 외울말씀 : 마태복음 5:3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13:45
교육목표 :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은 천국을 소유하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 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를 살펴본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의 삶에 있을 수 있는 일들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에 담긴 영적 의미와 이를 통해 나타내기 원하시는 천국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1.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
어느 마을에 품을 팔아 그날그날 살아가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웃의 요청으로 밭에 품을 팔러 가게 되었습니다. 밭의 주인은 오랫동안 쓰지 않고 버려 둔 황폐한 땅이 있는데 개간하여 과목이나 심어 볼까 한다는 것이었지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땅을 개간하던 농부는 갑자기 삽 끝에 이상한 물건이 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계속해서 그곳을 파 보았더니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었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내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궁리하였습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바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별 쓸모가 없어 버려진 밭이었기에 주인이 쉽게 팔 것 같았습니다. 농부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모든 소유를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2.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밭’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며, ‘보화’는 천국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보화와 같은 천국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사람의 주인인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과, 영혼이 거할 장막인 육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영장으로 세워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을 다스릴 수 있게 하셨지요.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자 저주가 임하여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지요.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소멸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이 주인 구실을 못하고 혼 속에 갇혀서 전혀 활동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이 죽기 전에는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영이 죽은 후에는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비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었지요.
이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화목제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죽은 영이 살아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은 영이 살아나야 영이 사람의 주인으로서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혼과 육을 다스릴 수 있지요. 또한 사람의 본분을 행하며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죽었던 영이 살아난 것은 곧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것이요,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임한 것이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보화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였다는 것은
농부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있음을 깨닫고 기쁨이 넘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천국이 있다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죽은 영이 살아난 후 얼마나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더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농부가 ‘보화를 발견한 후 숨겨 두었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람의 죽은 영이 살아나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은 생겨나지만 아직 능력이 주어지지 않아 행함 있는 믿음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농부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다고 해서 즉시 캐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가재도구를 팔아 돈을 장만해야 그 밭을 살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천국과 지옥이 있음과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가는지도 알아가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는 즉시 행함이 따르지는 못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모든 비진리의 마음을 팔아 버리고, 진리의 마음을 소유하기 위해 죄를 버리는 만큼 감추어진 보화를 캐내어 천국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열심히 하나님을 의뢰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진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좇아야 하는 것입니다.
4.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소유하려면
농부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죽은 영이 살아나 주인 역할을 하려면 비진리의 혼을 다 깨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죽었던 영이 살아나 마음에 천국이 있음을 깨달았으면 사단의 주관을 받던 비진리의 생각을 모두 깨뜨리고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천국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려면 주인 된 영이 마음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혼이 깨어지고 영이 살아나는 만큼 마음속에 천국이 임하는 것이요, 영혼이 잘되어 위로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임합니다.
그러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의 소유를 판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혼을 깨뜨리는 작업이요, 하나님 말씀에 합당치 못한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버려 나간다는 뜻입니다.
육체의 일이란 마음속의 악이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하고, 육신의 일이란 아직 행함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마음속의 모든 죄성을 말하지요. 철저히 혼을 깨뜨리고 죄악을 버려 나가다 보면 성령의 소욕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되고, 영의 사람이 되어 세상의 빛이 됩니다. 또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며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되지요(벧후 1:4).
이처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 주님이 계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소유하려면 값을 주고 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이 담긴 밭을 사려면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시간과 물질을 드려 헌신하며 자신의 소유를 드릴 때 비로소 천국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셨습니다(마 5:3).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악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다는 것이요, 자기 마음의 소유를 다 팔았다는 것이며, 이럴 때 보화를 캐내어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은 영이 살아나 천국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혹여 천국을 소유하는 데 방해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 거침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신속히 뽑아 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3.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04~11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생명의 씨’란?
생령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이 땅에 왔을 때는 생기가 흔적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은 작은 씨앗과 같은 형태로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 안에 남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씨다.
하나님께서는 태아가 잉태된 후 6개월째 되었을 때 영 안에 생명의 씨를 담아 태아의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 안에 심어 주신다.
사람에게 생명의 씨가 있기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며 천국을 그리워한다.
생명의 씨가 싹이 튼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통회자복한 후 성령으로 거듭나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교육목표 :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은 천국을 소유하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 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를 살펴본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의 삶에 있을 수 있는 일들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에 담긴 영적 의미와 이를 통해 나타내기 원하시는 천국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1.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
어느 마을에 품을 팔아 그날그날 살아가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웃의 요청으로 밭에 품을 팔러 가게 되었습니다. 밭의 주인은 오랫동안 쓰지 않고 버려 둔 황폐한 땅이 있는데 개간하여 과목이나 심어 볼까 한다는 것이었지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땅을 개간하던 농부는 갑자기 삽 끝에 이상한 물건이 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계속해서 그곳을 파 보았더니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었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내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궁리하였습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바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별 쓸모가 없어 버려진 밭이었기에 주인이 쉽게 팔 것 같았습니다. 농부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모든 소유를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2.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밭’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며, ‘보화’는 천국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보화와 같은 천국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사람의 주인인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과, 영혼이 거할 장막인 육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영장으로 세워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을 다스릴 수 있게 하셨지요.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자 저주가 임하여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지요.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소멸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이 주인 구실을 못하고 혼 속에 갇혀서 전혀 활동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이 죽기 전에는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영이 죽은 후에는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비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었지요.
이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화목제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죽은 영이 살아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은 영이 살아나야 영이 사람의 주인으로서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혼과 육을 다스릴 수 있지요. 또한 사람의 본분을 행하며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죽었던 영이 살아난 것은 곧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것이요,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임한 것이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보화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였다는 것은
농부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있음을 깨닫고 기쁨이 넘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천국이 있다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죽은 영이 살아난 후 얼마나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더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농부가 ‘보화를 발견한 후 숨겨 두었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람의 죽은 영이 살아나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은 생겨나지만 아직 능력이 주어지지 않아 행함 있는 믿음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농부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다고 해서 즉시 캐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가재도구를 팔아 돈을 장만해야 그 밭을 살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천국과 지옥이 있음과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가는지도 알아가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는 즉시 행함이 따르지는 못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모든 비진리의 마음을 팔아 버리고, 진리의 마음을 소유하기 위해 죄를 버리는 만큼 감추어진 보화를 캐내어 천국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열심히 하나님을 의뢰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진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좇아야 하는 것입니다.
4.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소유하려면
농부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죽은 영이 살아나 주인 역할을 하려면 비진리의 혼을 다 깨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죽었던 영이 살아나 마음에 천국이 있음을 깨달았으면 사단의 주관을 받던 비진리의 생각을 모두 깨뜨리고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천국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려면 주인 된 영이 마음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혼이 깨어지고 영이 살아나는 만큼 마음속에 천국이 임하는 것이요, 영혼이 잘되어 위로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임합니다.
그러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의 소유를 판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혼을 깨뜨리는 작업이요, 하나님 말씀에 합당치 못한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버려 나간다는 뜻입니다.
육체의 일이란 마음속의 악이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하고, 육신의 일이란 아직 행함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마음속의 모든 죄성을 말하지요. 철저히 혼을 깨뜨리고 죄악을 버려 나가다 보면 성령의 소욕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되고, 영의 사람이 되어 세상의 빛이 됩니다. 또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며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되지요(벧후 1:4).
이처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 주님이 계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소유하려면 값을 주고 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이 담긴 밭을 사려면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시간과 물질을 드려 헌신하며 자신의 소유를 드릴 때 비로소 천국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셨습니다(마 5:3).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악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다는 것이요, 자기 마음의 소유를 다 팔았다는 것이며, 이럴 때 보화를 캐내어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은 영이 살아나 천국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혹여 천국을 소유하는 데 방해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 거침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신속히 뽑아 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3.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04~11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생명의 씨’란?
생령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이 땅에 왔을 때는 생기가 흔적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은 작은 씨앗과 같은 형태로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 안에 남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씨다.
하나님께서는 태아가 잉태된 후 6개월째 되었을 때 영 안에 생명의 씨를 담아 태아의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 안에 심어 주신다.
사람에게 생명의 씨가 있기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며 천국을 그리워한다.
생명의 씨가 싹이 튼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통회자복한 후 성령으로 거듭나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2018-09-07
제36과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
누가복음 14:16~24
읽을말씀 : 누가복음 14:16~24 | 외울말씀 : 갈라디아서 3:13 ㅣ 참고 말씀: 누가복음 6:24~26
교육목표 : 누구든지 주님께서 배설하신 천국 잔치에 들어가 참 평안과 기쁨, 영생복락을 누리게 한다.
예부터 회갑이나 결혼 등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사랑을 주고받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초청받은 사람은 예의를 갖추고 참석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고 진수성찬을 먹으며 축하해 주었지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도 큰 잔치를 배설하시며 사랑하는 자녀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천국을 예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어 영광의 천국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1. 천국 잔치 비유
누가복음 14장에는 천국 잔치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몇 월 며칠에 큰 잔치를 베풀고자 하오니 오셔서 행복하게 즐기시기 바랍니다.”라는 초청장을 많은 사람에게 보냈습니다. 마침내 잔칫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못 간다고 하였지요. 이유인즉슨 밭을 샀으니 가봐야 한다, 소 다섯 겨리를 시험하러 가야 한다, 장가들어서 못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눅 14:16~20).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성스럽게 큰 잔치를 배설한 주인은 초청한 사람들이 못 온다고 하자 크게 노합니다. 그리고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자리가 있다고 하자 주인은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합니다(눅 14:22~24).
예수님은 천국 잔치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셨을까요? 여기서 잔치를 베푼 ‘주인’은 주님을 의미하고, 잔치를 베푼 ‘장소’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교회를 훌륭한 연회장으로 만드시고 생명의 말씀으로 진수성찬을 베푸신 다음에 주의 종들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으로서 진수성찬을 맛있게 먹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 잔치 비유는 주님의 초청에 응하여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2. 주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잔칫날이 되기 오래전에 사람들에게 초청 의사를 밝힌 후 잔칫날이 되면 다시 종을 보내 전에 청했던 손님들을 데려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밭을 사거나 결혼을 하는 일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초청을 거절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지요. 그런데도 이들은 주인이 준비를 다한 후에야 참석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 온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안락 등으로 배부른 사람들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주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향락에 물든 사람들은 이미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로와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국을 소유하거나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눅 6:24~26).
우리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부러워하거나 이에 매이지 말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주님께서 초청하시는 천국 잔치에 기쁘게 응해야 하겠습니다.
3. 천국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주님의 초청에 응한 사람들은 바로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소경, 저는 사람 등 주로 소외되고 버림받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조금도 부끄럽지 아니하며 도리어 복된 사람들이지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인생의 비극을 맛보고 사람의 나약함과 한계를 철저히 깨달은 이들입니다.
물론 선한 양심 가운데 사람의 도리를 좇아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심령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나오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때 부요한 사람보다는 그들에게 전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해하는 사람, 마음이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케 하는 사람,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해야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4. 천국 잔치에 많은 사람을 초청하신 이유
주인은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했습니다(눅 14장). 이처럼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가난한 사람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며 거부였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유하여 영적 승리뿐 아니라 물질의 축복도 받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면 가난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포로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죄의 노예가 되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는 어떤 사람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우리를 죄의 종에서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말씀하셨지요.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죄에서 깨끗게 하실 수 있으며, 우리의 영혼을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으로 인해 우리가 천국 잔치에 참석하여 진리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셋째로,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죽으면 영혼은 지옥으로 끌려가 끝없는 고통을 받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지요. 천국 잔치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하여 천국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면 부활의 소망과 천국 소망이 생겨나며 영생을 얻게 됩니다.
넷째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의 해’란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지키는 희년 곧 노예로 팔려간 가족이나 친지 혹은 빚으로 넘어갔던 땅 등 모든 잃은 것을 회복시켜 주는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은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하게 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모든 권세를 되찾을 수 있지요. 주님은 전 세계 만민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많은 사람이 천국 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더욱 힘써 전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 )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② 포로 된 사람에게 ( )를 주시기 위해서이다.
③ ( )에게 다시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④ 주의 ( )를 전파하기 위해서이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96~10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이 땅에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영혼구원에 힘쓴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달아주신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한 사람에게 경배를 드리기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면류관이요, 영광과 자랑이 되는 것이다.
교육목표 : 누구든지 주님께서 배설하신 천국 잔치에 들어가 참 평안과 기쁨, 영생복락을 누리게 한다.
예부터 회갑이나 결혼 등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사랑을 주고받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초청받은 사람은 예의를 갖추고 참석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고 진수성찬을 먹으며 축하해 주었지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도 큰 잔치를 배설하시며 사랑하는 자녀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천국을 예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어 영광의 천국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1. 천국 잔치 비유
누가복음 14장에는 천국 잔치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몇 월 며칠에 큰 잔치를 베풀고자 하오니 오셔서 행복하게 즐기시기 바랍니다.”라는 초청장을 많은 사람에게 보냈습니다. 마침내 잔칫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못 간다고 하였지요. 이유인즉슨 밭을 샀으니 가봐야 한다, 소 다섯 겨리를 시험하러 가야 한다, 장가들어서 못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눅 14:16~20).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성스럽게 큰 잔치를 배설한 주인은 초청한 사람들이 못 온다고 하자 크게 노합니다. 그리고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자리가 있다고 하자 주인은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합니다(눅 14:22~24).
예수님은 천국 잔치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셨을까요? 여기서 잔치를 베푼 ‘주인’은 주님을 의미하고, 잔치를 베푼 ‘장소’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교회를 훌륭한 연회장으로 만드시고 생명의 말씀으로 진수성찬을 베푸신 다음에 주의 종들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으로서 진수성찬을 맛있게 먹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 잔치 비유는 주님의 초청에 응하여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2. 주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잔칫날이 되기 오래전에 사람들에게 초청 의사를 밝힌 후 잔칫날이 되면 다시 종을 보내 전에 청했던 손님들을 데려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밭을 사거나 결혼을 하는 일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초청을 거절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지요. 그런데도 이들은 주인이 준비를 다한 후에야 참석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 온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안락 등으로 배부른 사람들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주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향락에 물든 사람들은 이미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로와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국을 소유하거나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눅 6:24~26).
우리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부러워하거나 이에 매이지 말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주님께서 초청하시는 천국 잔치에 기쁘게 응해야 하겠습니다.
3. 천국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주님의 초청에 응한 사람들은 바로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소경, 저는 사람 등 주로 소외되고 버림받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조금도 부끄럽지 아니하며 도리어 복된 사람들이지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인생의 비극을 맛보고 사람의 나약함과 한계를 철저히 깨달은 이들입니다.
물론 선한 양심 가운데 사람의 도리를 좇아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심령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나오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때 부요한 사람보다는 그들에게 전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해하는 사람, 마음이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케 하는 사람,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해야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4. 천국 잔치에 많은 사람을 초청하신 이유
주인은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했습니다(눅 14장). 이처럼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가난한 사람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며 거부였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유하여 영적 승리뿐 아니라 물질의 축복도 받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면 가난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포로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죄의 노예가 되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는 어떤 사람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우리를 죄의 종에서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말씀하셨지요.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죄에서 깨끗게 하실 수 있으며, 우리의 영혼을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으로 인해 우리가 천국 잔치에 참석하여 진리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셋째로,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죽으면 영혼은 지옥으로 끌려가 끝없는 고통을 받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지요. 천국 잔치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하여 천국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면 부활의 소망과 천국 소망이 생겨나며 영생을 얻게 됩니다.
넷째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의 해’란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지키는 희년 곧 노예로 팔려간 가족이나 친지 혹은 빚으로 넘어갔던 땅 등 모든 잃은 것을 회복시켜 주는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은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하게 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모든 권세를 되찾을 수 있지요. 주님은 전 세계 만민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많은 사람이 천국 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더욱 힘써 전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 )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② 포로 된 사람에게 ( )를 주시기 위해서이다.
③ ( )에게 다시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④ 주의 ( )를 전파하기 위해서이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96~10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이 땅에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영혼구원에 힘쓴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달아주신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한 사람에게 경배를 드리기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면류관이요, 영광과 자랑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