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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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5
제11과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2)
에베소서 6:10~18
읽을말씀 : 에베소서 6:10~18 | 외울말씀 : 에베소서 6:14 ㅣ 참고 말씀: 골로새서 3:8~10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힘 있게 확장시켜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13절)
앞서 에베소서 6장 10~12절을 통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지는 13절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악한 날에 원수 마귀 사단을 능히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악한 날’이란 원수 마귀 사단이 권세를 잡고 이 땅에서 어두움을 주관해 가는 날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어두움의 세력들이 공중 권세 잡은 그날부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자신들이 주관하는 악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더욱 악을 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더욱 깨어 근신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모든 일’이란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고 이기며 행하는 일들을 의미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죄와 싸워 이김으로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고, 교회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어두움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며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생명 다해 감당해야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어떻게 취해 나가야 할까요?
2.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라(14절)
먼저, 에베소서 6장 14절 전반절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 하십니다. 여기서 ‘허리’는 우리 인체에 있어서 몸을 지탱해 주는 주축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허리에 띠를 하면 허리를 든든히 받쳐 주고 붙잡아 주므로 모든 행동이나 힘을 쓰는 일을 할 때 안정감을 주지요. 그러므로 허리에 띠를 한다는 것은 마치 육중한 집을 떠받쳐 줄 주초를 든든히 놓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요 14:6),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반석 위에 굳게 서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서서 진리의 허리띠를 띤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임과 동시에 모든 신앙생활에 활력을 공급하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반석 위에 굳게 서는 것일까요? 바로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으면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함에 있어 우선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능력을 받으며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인 힘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에베소서 6장 14절 후반절에 “의의 흉배를 붙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흉배’란 가슴 부위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가슴에는 생명과 직결되는 심장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주의가 필요하지요.
그러면 의로써 흉배를 삼으라고 하셨는데 과연 ‘의’는 무엇일까요? ‘의’란 하나님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했습니다(롬 10:10).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마음에 할례하여 죄악을 벗고 진리로 채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행할 때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롬 2:13).
따라서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마음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 마음에 의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를 행해야 하지요.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같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의가 없이는 자신을 지킬 수도, 어두움을 물리칠 수도 없습니다.
‘의의 흉배’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는 말씀과도 짝을 이룹니다(잠 4:23).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것인데, 가슴은 곧 마음을 나타냅니다. 온몸에 생명과 일체인 피를 공급해 주는 것이 심장이고, 이 심장은 가슴에 있지요. 따라서 흉배로 가슴을 지킨다는 것은 영적으로 생명의 근원이 있는 마음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며,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의 마음 안에는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때 영에 속한 진리의 마음을 좇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반면, 어두움에 속한 비진리를 좇는 사람은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롬 6:23). 여기서 생명의 근원이 나는 마음이란 영의 마음 곧 진리에 속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비진리의 마음을 벗고 마음을 영으로 일궈 어두움의 세력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겉으로 행함이 있어도 정작 마음에 할례하지 않고 영으로 변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사단과의 싸움에서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마치 전쟁에 나가는 장수가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또다시 흉배를 대어 가슴을 보호하듯이 우리 역시 의의 흉배를 가슴에 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3.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15절)
출애굽기 3장 5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그 땅은 거룩하니 신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은 온갖 악이 들어 있는 인생의 마음이지만, 행위적으로 볼 때는 각종 더러운 것을 밟고 다니는 우리의 발이요, 신발이지요.
하나님께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신을 신고는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므로,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깨끗하고 거룩해야 함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즉 마음의 할례를 받아 진리 안에 거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는 말씀에 앞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설명한 것은, 세상에 있을 때 신었던 죄악의 더러운 신을 벗어 버려야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하는데(골 3:8~10) 이것이 곧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을 신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이는 주일을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로서 안식일이라 한 것처럼 복음 역시 우리들에게 평안을 준다는 의미에서 평안의 복음이라 한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역경과 어려움이 따르는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신을 신은 사람, 즉 진리 안에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길을 갈 수 있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안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세상적인 평안함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 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어야 합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될 것 없지요. 가시나 돌이 해할 수 없고 어떠한 길이든 힘차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평안의 복음은 자신의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예비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안의 복음의 예비된 것으로 신을 신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서 그들도 함께 신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마음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 마음에 ( )를 이루라는 것이다.
2.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말씀은 곧 ( )를 상징하는 반석 위에 굳게 서라는 뜻이다.
3.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반석’
이스라엘 지역에서 반석은 종종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거나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된다. 구약에서는 피난처요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하기도 했다(신 32:4, 시 18:2, 71:3).
신약에서는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칭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말씀이시며(요 1:14), 마태복음 7장 24~25절에서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그 주초를 반석 위에 지은 사람이라고 비유하신 내용도 결국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믿음의 분량이 3단계 60% 이상에 이르면 반석에 섰다 할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힘 있게 확장시켜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13절)
앞서 에베소서 6장 10~12절을 통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지는 13절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악한 날에 원수 마귀 사단을 능히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악한 날’이란 원수 마귀 사단이 권세를 잡고 이 땅에서 어두움을 주관해 가는 날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어두움의 세력들이 공중 권세 잡은 그날부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자신들이 주관하는 악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더욱 악을 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더욱 깨어 근신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모든 일’이란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고 이기며 행하는 일들을 의미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죄와 싸워 이김으로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고, 교회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어두움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며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생명 다해 감당해야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어떻게 취해 나가야 할까요?
2.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라(14절)
먼저, 에베소서 6장 14절 전반절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 하십니다. 여기서 ‘허리’는 우리 인체에 있어서 몸을 지탱해 주는 주축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허리에 띠를 하면 허리를 든든히 받쳐 주고 붙잡아 주므로 모든 행동이나 힘을 쓰는 일을 할 때 안정감을 주지요. 그러므로 허리에 띠를 한다는 것은 마치 육중한 집을 떠받쳐 줄 주초를 든든히 놓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요 14:6),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반석 위에 굳게 서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서서 진리의 허리띠를 띤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임과 동시에 모든 신앙생활에 활력을 공급하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반석 위에 굳게 서는 것일까요? 바로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으면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함에 있어 우선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능력을 받으며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인 힘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에베소서 6장 14절 후반절에 “의의 흉배를 붙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흉배’란 가슴 부위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가슴에는 생명과 직결되는 심장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주의가 필요하지요.
그러면 의로써 흉배를 삼으라고 하셨는데 과연 ‘의’는 무엇일까요? ‘의’란 하나님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했습니다(롬 10:10).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마음에 할례하여 죄악을 벗고 진리로 채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행할 때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롬 2:13).
따라서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마음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 마음에 의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를 행해야 하지요.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같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의가 없이는 자신을 지킬 수도, 어두움을 물리칠 수도 없습니다.
‘의의 흉배’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는 말씀과도 짝을 이룹니다(잠 4:23).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것인데, 가슴은 곧 마음을 나타냅니다. 온몸에 생명과 일체인 피를 공급해 주는 것이 심장이고, 이 심장은 가슴에 있지요. 따라서 흉배로 가슴을 지킨다는 것은 영적으로 생명의 근원이 있는 마음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며,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의 마음 안에는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때 영에 속한 진리의 마음을 좇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반면, 어두움에 속한 비진리를 좇는 사람은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롬 6:23). 여기서 생명의 근원이 나는 마음이란 영의 마음 곧 진리에 속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비진리의 마음을 벗고 마음을 영으로 일궈 어두움의 세력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겉으로 행함이 있어도 정작 마음에 할례하지 않고 영으로 변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사단과의 싸움에서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마치 전쟁에 나가는 장수가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또다시 흉배를 대어 가슴을 보호하듯이 우리 역시 의의 흉배를 가슴에 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3.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15절)
출애굽기 3장 5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그 땅은 거룩하니 신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은 온갖 악이 들어 있는 인생의 마음이지만, 행위적으로 볼 때는 각종 더러운 것을 밟고 다니는 우리의 발이요, 신발이지요.
하나님께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신을 신고는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므로,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깨끗하고 거룩해야 함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즉 마음의 할례를 받아 진리 안에 거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는 말씀에 앞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설명한 것은, 세상에 있을 때 신었던 죄악의 더러운 신을 벗어 버려야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하는데(골 3:8~10) 이것이 곧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을 신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이는 주일을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로서 안식일이라 한 것처럼 복음 역시 우리들에게 평안을 준다는 의미에서 평안의 복음이라 한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역경과 어려움이 따르는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신을 신은 사람, 즉 진리 안에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길을 갈 수 있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안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세상적인 평안함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 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어야 합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될 것 없지요. 가시나 돌이 해할 수 없고 어떠한 길이든 힘차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평안의 복음은 자신의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예비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안의 복음의 예비된 것으로 신을 신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서 그들도 함께 신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마음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 마음에 ( )를 이루라는 것이다.
2.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말씀은 곧 ( )를 상징하는 반석 위에 굳게 서라는 뜻이다.
3.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반석’
이스라엘 지역에서 반석은 종종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거나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된다. 구약에서는 피난처요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하기도 했다(신 32:4, 시 18:2, 71:3).
신약에서는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칭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말씀이시며(요 1:14), 마태복음 7장 24~25절에서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그 주초를 반석 위에 지은 사람이라고 비유하신 내용도 결국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믿음의 분량이 3단계 60% 이상에 이르면 반석에 섰다 할 수 있다.
2019-03-08
제10과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 1 )
에베소서 6:10~18
읽을말씀 : 에베소서 6:10~18 | 외울말씀 : 에베소서 6:11 ㅣ 참고 말씀: 로마서 12:21
교육목표 :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자신을 지킴은 물론, 영적 장수로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한다.
1.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기록한 에베소서
성경 66권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전에 기록된 구약 성경 39권과 성령 강림 이후에 기록된 신약 성경 27권으로 구분합니다.
에베소서는 신약 성경 27권 중에 하나로서, 이방인 선교를 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옥중서신이라고도 부르는 에베소서는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에베소 성도들과 신실한 믿음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엡 1:1).
그러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방인 선교를 위해 그는 유대인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를 포함해해 소아시아 교회들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돼야 함을 알려 주고자 기록한 것입니다.
6장으로 구성된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한 후,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신갑주란 온몸에 두른 갑옷과 투구를 뜻하며, 넓은 의미로는 전투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일컫습니다.
2.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10~11절)
그러면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에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원수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원수 마귀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한 영혼이라도 더 사망으로 이끌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더욱 원수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합니다. 10~11절에 구체적인 이유가 나오는데 먼저는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10절) 했습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를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주 안에서 성경에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 대로 살아가면 능력을 받아 영육 간에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강건하다’는 것은 영혼이 잘되었다는 뜻입니다.
원래 사람은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을 다스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로 인해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주님을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대로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가정, 일터, 사업터, 자녀 등 전반에 걸쳐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 행함으로 주 안에 거하면 하나님께서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주셔서 우리의 길을 평탄하고 형통케 하십니다.
다음으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11절) 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세상을 점점 더 죄악으로 관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갖가지 궤계를 부리며 아직 버리지 못한 죄의 속성들을 통해 역사하거나, 주변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지 못하게 방해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진리 안에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중도에 넘어지거나 자칫 세상으로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많이 배워 진리를 안다고 했지만, 막상 원수 마귀의 궤계에 승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십니다(살전 5:23).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만일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지 않는다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의 세력들과 맞서서 자신을 지킴은 물론, 세상의 빛이 되어 많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먼저 하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무엇을 이루실 때에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이루셨지요.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으면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십자가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일을 기도로 준비하며 기도로 이뤄 가야 합니다. 특히 전도할 때, 입을 열기 전에,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먼저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들을 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 구원하는 것을 잃은 양을 찾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닙니다. 깊고 험한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고 때로는 가파른 바위 산도 올라가야 합니다.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가시덤불 속도 들어가야 하며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속도 들어가야 합니다. 오직 양을 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어디든지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잃은 양들을 찾고 계실까요? 어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전도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되찾아오기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신 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된 입술과 아름다운 발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3. 영적인 전쟁의 구체적인 대상(12절)
그러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으로 씨름해야 할 대상은 무엇일까요?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혈과 육이란 이 땅에서 썩어지고 사라질 모든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물질이나 의식주에 관련된 모든 것, 명예와 권세와 지위 등을 말합니다. 혈이란 피 곧 생명을 뜻하지요(레 17:11). 오늘날 사람이 피 곧 생명처럼 여기는 것은 물질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의식주에 관련된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세상의 혈과 육을 취하려는 씨름입니다. 그렇다면 혈과 육에 대해 열심히 씨름하고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최고의 부귀 영화를 누린 솔로몬왕도 모든 것이 헛되다 고백했습니다(전 1:2). 혈과 육은 취하고 욕심 부리면 한이 없고, 설령 원하는 것을 취해도 결국 헛된 것입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도 없습니다(고전 15:50).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인 씨름을 해야 할 대상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아가는 길을 막는 정사(정치적인 일)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앞장서서 예수님을 핍박하고 비난하며 성도들을 탄압했던 이들은 대부분 정사와 권세를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였지만 정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잡아 죽이는 데 자신들의 정사나 권세를 악용하였지요.
오늘날도 주님을 믿는 자들을 애매히 핍박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훼방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갖은 궤계와 술수를 쓰는 모든 것이 이 세상을 주관하는 어두움의 세력에 속한 정사와 권세에 의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씨름할 대상이 정사와 권세라고 해서 정사와 권세 잡은 사람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어야 하지요. 누가 핍박한다고 해서 그 사람과 대항하여 똑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롬 12:21).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정사와 권세 위에 어두움의 실질적인 세력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지요.
먼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로는 루시퍼와 용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의 위치를 나라에 비유하면 왕과 군대장관이라 할 수 있지요. 이들은 나라나 세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흐름에 관계되는 일을 하며, 그 아래에 부리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지휘하여 이 세상의 어두움을 주관해 갑니다.
가장 머리격인 루시퍼는 사단과 마귀를 주관하지요. 사단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 조종합니다. 생각 속에 비진리를 불어넣어 진리에 위배되게 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이며, 그것을 행함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실제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지시하여 이 땅에 갖가지 어두움의 일들을 행해 가는 것은 군대장관격인 용이며, 이 용의 지시를 받은 그의 사자들이 사람들에게 역사하지요. 또한 귀신, 악신, 더러운 영, 미혹의 영, 거짓 영 등 온갖 악의 영들도 각각 그 역할에 따라 사람들에게 역사하여 악한 일들을 행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러한 영의 세계가 있음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영의 세계에서 승리해야 육의 세계에서도 승리할 수 있으니 더욱 주 안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영적으로 혈과 육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3.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으로 씨름해야 할 대상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에베소’
오늘날 터키의 서해안에 위치한 에베소는초대교회 당시 상업의 중심지로서 각지에서 몰려온 상인들과 시민들을 위한 각종 시설이 즐비한 풍요로운 도시였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제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 2년간 머물며 복음을 전했다(행 19장).
그는 이곳을 소아시아 지역의 전도 중심지로 삼았고 그가 에베소를 떠난 후에는 디모데가 이어 사역하였다.
에베소는 사도 요한의 활동 중심지이기도 하였다(계 2:1~7).
교육목표 :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자신을 지킴은 물론, 영적 장수로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한다.
1.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기록한 에베소서
성경 66권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전에 기록된 구약 성경 39권과 성령 강림 이후에 기록된 신약 성경 27권으로 구분합니다.
에베소서는 신약 성경 27권 중에 하나로서, 이방인 선교를 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옥중서신이라고도 부르는 에베소서는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에베소 성도들과 신실한 믿음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엡 1:1).
그러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방인 선교를 위해 그는 유대인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를 포함해해 소아시아 교회들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돼야 함을 알려 주고자 기록한 것입니다.
6장으로 구성된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한 후,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신갑주란 온몸에 두른 갑옷과 투구를 뜻하며, 넓은 의미로는 전투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일컫습니다.
2.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10~11절)
그러면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에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원수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원수 마귀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한 영혼이라도 더 사망으로 이끌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더욱 원수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합니다. 10~11절에 구체적인 이유가 나오는데 먼저는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10절) 했습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를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주 안에서 성경에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 대로 살아가면 능력을 받아 영육 간에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강건하다’는 것은 영혼이 잘되었다는 뜻입니다.
원래 사람은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을 다스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로 인해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주님을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대로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가정, 일터, 사업터, 자녀 등 전반에 걸쳐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 행함으로 주 안에 거하면 하나님께서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주셔서 우리의 길을 평탄하고 형통케 하십니다.
다음으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11절) 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세상을 점점 더 죄악으로 관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갖가지 궤계를 부리며 아직 버리지 못한 죄의 속성들을 통해 역사하거나, 주변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지 못하게 방해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진리 안에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중도에 넘어지거나 자칫 세상으로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많이 배워 진리를 안다고 했지만, 막상 원수 마귀의 궤계에 승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십니다(살전 5:23).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만일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지 않는다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의 세력들과 맞서서 자신을 지킴은 물론, 세상의 빛이 되어 많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먼저 하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무엇을 이루실 때에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이루셨지요.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으면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십자가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일을 기도로 준비하며 기도로 이뤄 가야 합니다. 특히 전도할 때, 입을 열기 전에,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먼저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들을 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 구원하는 것을 잃은 양을 찾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닙니다. 깊고 험한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고 때로는 가파른 바위 산도 올라가야 합니다.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가시덤불 속도 들어가야 하며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속도 들어가야 합니다. 오직 양을 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어디든지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잃은 양들을 찾고 계실까요? 어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전도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되찾아오기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신 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된 입술과 아름다운 발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3. 영적인 전쟁의 구체적인 대상(12절)
그러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으로 씨름해야 할 대상은 무엇일까요?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혈과 육이란 이 땅에서 썩어지고 사라질 모든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물질이나 의식주에 관련된 모든 것, 명예와 권세와 지위 등을 말합니다. 혈이란 피 곧 생명을 뜻하지요(레 17:11). 오늘날 사람이 피 곧 생명처럼 여기는 것은 물질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의식주에 관련된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세상의 혈과 육을 취하려는 씨름입니다. 그렇다면 혈과 육에 대해 열심히 씨름하고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최고의 부귀 영화를 누린 솔로몬왕도 모든 것이 헛되다 고백했습니다(전 1:2). 혈과 육은 취하고 욕심 부리면 한이 없고, 설령 원하는 것을 취해도 결국 헛된 것입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도 없습니다(고전 15:50).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인 씨름을 해야 할 대상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아가는 길을 막는 정사(정치적인 일)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앞장서서 예수님을 핍박하고 비난하며 성도들을 탄압했던 이들은 대부분 정사와 권세를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였지만 정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잡아 죽이는 데 자신들의 정사나 권세를 악용하였지요.
오늘날도 주님을 믿는 자들을 애매히 핍박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훼방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갖은 궤계와 술수를 쓰는 모든 것이 이 세상을 주관하는 어두움의 세력에 속한 정사와 권세에 의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씨름할 대상이 정사와 권세라고 해서 정사와 권세 잡은 사람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어야 하지요. 누가 핍박한다고 해서 그 사람과 대항하여 똑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롬 12:21).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정사와 권세 위에 어두움의 실질적인 세력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지요.
먼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로는 루시퍼와 용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의 위치를 나라에 비유하면 왕과 군대장관이라 할 수 있지요. 이들은 나라나 세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흐름에 관계되는 일을 하며, 그 아래에 부리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지휘하여 이 세상의 어두움을 주관해 갑니다.
가장 머리격인 루시퍼는 사단과 마귀를 주관하지요. 사단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 조종합니다. 생각 속에 비진리를 불어넣어 진리에 위배되게 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이며, 그것을 행함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실제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지시하여 이 땅에 갖가지 어두움의 일들을 행해 가는 것은 군대장관격인 용이며, 이 용의 지시를 받은 그의 사자들이 사람들에게 역사하지요. 또한 귀신, 악신, 더러운 영, 미혹의 영, 거짓 영 등 온갖 악의 영들도 각각 그 역할에 따라 사람들에게 역사하여 악한 일들을 행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러한 영의 세계가 있음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영의 세계에서 승리해야 육의 세계에서도 승리할 수 있으니 더욱 주 안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영적으로 혈과 육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3.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으로 씨름해야 할 대상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에베소’
오늘날 터키의 서해안에 위치한 에베소는초대교회 당시 상업의 중심지로서 각지에서 몰려온 상인들과 시민들을 위한 각종 시설이 즐비한 풍요로운 도시였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제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 2년간 머물며 복음을 전했다(행 19장).
그는 이곳을 소아시아 지역의 전도 중심지로 삼았고 그가 에베소를 떠난 후에는 디모데가 이어 사역하였다.
에베소는 사도 요한의 활동 중심지이기도 하였다(계 2:1~7).
2019-03-01
제9과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면
마태복음 5:13~16
읽을말씀 : 마태복음 5:13~16 | 외울말씀 : 마태복음 5:13 ㅣ 참고 말씀: 잠언 8:17
교육목표 :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은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달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한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며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죄악이 관영하여 영적으로 짙은 어둠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밝은 빛으로 인도하려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자신을 온전히 녹여서 맛을 내듯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을 낮추고 진실한 사랑과 섬김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빛이 되어 착한 행실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까요?
1. 말과 행동에 온전함이 있어야 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타인에게 가장 먼저 비쳐지는 부분입니다. 말과 행동이 온전해야 많은 사람들 앞에 빛이 될 수 있으며 그들을 깨우쳐 줄 수 있습니다. 잠언 15장 4절에도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영적으로 ‘온량’이란, ‘모든 면에 있어서 선한 것으로 온전한 양이 채워진 것’을 뜻하지요. 나무로 비유하면 선으로 온전히 맺혀진 잘 익은 열매와도 같습니다. 따라서 ‘온량한 혀’란, ‘선 속에서 잘 익어 맺혀진 말을 하는 혀’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선하고 말도 온전하면 어느 누구도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의 주위에는 악한 것이 사라지니 평안해지며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이는 빛이 임하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온량한 혀를 가졌다면 그에게서 나오는 빛으로 인해 전도 대상자의 마음과 생각, 환경에서 어둠이 물러갑니다. 그리하여 복음을 듣고 영생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빛’이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어둠은 사라지고 주위에 생명이 됩니다. ‘온량한 혀’, ‘온량한 말’이 바로 이런 빛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여러분도 거하는 곳곳에서 온량함의 빛을 비추면 자연히 주위의 어둠은 물러가고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차츰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습니다.
반면에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패려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고 사나운 것’을 말합니다. 정도를 넘는 부도덕한 말이나 행동, 곧 패려한 말이나 행동은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에 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전도하다가 혹여 상대가 마음 상할 말이나 행동이 나오지 않았는지요? 절제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인해 전도의 문이 막힌다거나 많은 분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전도할 때뿐 아니라 평소에 자신의 모습 속에서도 상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내 입장만 강하게 고집하지는 않았는지요? 험악한 말이나 은연중에 상대를 하대(下待)하는 교만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요? 이런 사람은 누구를 생명으로 인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말과 행동이 온전함으로 인하여서 많은 사람에게 칭송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다. 저 사람을 보니 나도 교회 가고 싶다.” 또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볼 때도 “참 은혜가 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면 어떤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유익이 되는 말인지, 내가 꼭 해야 하는 말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 어떤 것을 행할 때도 많은 사람에게 은혜가 되는 행실로 나와야 하지요. 말과 행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 영의 마음이 되는 만큼 영의 말, 영의 행실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 감정적으로 떠오르는 대로 말을 하며 거친 행동이 나온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기도 어렵습니다. 선한 영의 마음을 소유하여 여러분의 입술을 통해 나온 선한 말이 상대에게도 감동을 주며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라 함은 하나님을 만나 축복받은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기 전에는 가난하고 질병으로 고통받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유해지고 건강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얽히고설킨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니 형통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증거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자신이 주님을 믿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사랑받는 증거들이 나타나야 믿지 않는 사람뿐만 아니라 믿음이 적은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는 매우 중요합니다.
정작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얼굴에 우울함과 근심이 있다면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받는다, 교회 다니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지요. 가난과 어려움에 찌들어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받는다.”고 전할 수 있겠는지요?
하나님을 믿음으로 사랑받고 축복받은 증거들이 있어야 담대하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있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하신 대로 먼저는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라고 인정할 만큼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영혼이 잘된 사람은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고, 성령의 소욕대로 살아가는 영의 사람이지요. 자기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을 정도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무엇이든지 담대하게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요일 3:21~22).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받는 방법들이 잘 나와 있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도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셨지요. 그러므로 계명들을 지키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여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되어야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넘쳐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3. 서로 간에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하셨지요. 또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요 13:14~15, 35).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이 여러분 안에 사랑이 넘치고,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 중의 하나인 서로 섬기는 모습이 보여지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고 외치는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를 대신해서 죽게 하시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셨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 안에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다툼과 분쟁, 불편함이 있다면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어찌 저럴까?”라는 비난의 말을 들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서로 살펴 주고 섬기는 사랑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항상 정도를 걷되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 되어야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어떠한 모습이 돼야 할까요?
① 말과 행동에 ( )이 있어야 한다.
② 하나님의 사랑받는 ( )가 있어야 한다.
③ 서로 간에 ( )이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있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리로 이끌어 가시는 성령의 욕구를 말한다(갈 5:16~17).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이렇게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 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하시므로 마음에 평안함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
교육목표 :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은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달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한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며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죄악이 관영하여 영적으로 짙은 어둠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밝은 빛으로 인도하려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자신을 온전히 녹여서 맛을 내듯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을 낮추고 진실한 사랑과 섬김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빛이 되어 착한 행실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까요?
1. 말과 행동에 온전함이 있어야 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타인에게 가장 먼저 비쳐지는 부분입니다. 말과 행동이 온전해야 많은 사람들 앞에 빛이 될 수 있으며 그들을 깨우쳐 줄 수 있습니다. 잠언 15장 4절에도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영적으로 ‘온량’이란, ‘모든 면에 있어서 선한 것으로 온전한 양이 채워진 것’을 뜻하지요. 나무로 비유하면 선으로 온전히 맺혀진 잘 익은 열매와도 같습니다. 따라서 ‘온량한 혀’란, ‘선 속에서 잘 익어 맺혀진 말을 하는 혀’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선하고 말도 온전하면 어느 누구도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의 주위에는 악한 것이 사라지니 평안해지며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이는 빛이 임하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온량한 혀를 가졌다면 그에게서 나오는 빛으로 인해 전도 대상자의 마음과 생각, 환경에서 어둠이 물러갑니다. 그리하여 복음을 듣고 영생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빛’이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어둠은 사라지고 주위에 생명이 됩니다. ‘온량한 혀’, ‘온량한 말’이 바로 이런 빛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여러분도 거하는 곳곳에서 온량함의 빛을 비추면 자연히 주위의 어둠은 물러가고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차츰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습니다.
반면에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패려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고 사나운 것’을 말합니다. 정도를 넘는 부도덕한 말이나 행동, 곧 패려한 말이나 행동은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에 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전도하다가 혹여 상대가 마음 상할 말이나 행동이 나오지 않았는지요? 절제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인해 전도의 문이 막힌다거나 많은 분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전도할 때뿐 아니라 평소에 자신의 모습 속에서도 상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내 입장만 강하게 고집하지는 않았는지요? 험악한 말이나 은연중에 상대를 하대(下待)하는 교만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요? 이런 사람은 누구를 생명으로 인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말과 행동이 온전함으로 인하여서 많은 사람에게 칭송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다. 저 사람을 보니 나도 교회 가고 싶다.” 또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볼 때도 “참 은혜가 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면 어떤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유익이 되는 말인지, 내가 꼭 해야 하는 말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 어떤 것을 행할 때도 많은 사람에게 은혜가 되는 행실로 나와야 하지요. 말과 행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 영의 마음이 되는 만큼 영의 말, 영의 행실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 감정적으로 떠오르는 대로 말을 하며 거친 행동이 나온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기도 어렵습니다. 선한 영의 마음을 소유하여 여러분의 입술을 통해 나온 선한 말이 상대에게도 감동을 주며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라 함은 하나님을 만나 축복받은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기 전에는 가난하고 질병으로 고통받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유해지고 건강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얽히고설킨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니 형통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증거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자신이 주님을 믿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사랑받는 증거들이 나타나야 믿지 않는 사람뿐만 아니라 믿음이 적은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는 매우 중요합니다.
정작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얼굴에 우울함과 근심이 있다면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받는다, 교회 다니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지요. 가난과 어려움에 찌들어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받는다.”고 전할 수 있겠는지요?
하나님을 믿음으로 사랑받고 축복받은 증거들이 있어야 담대하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있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하신 대로 먼저는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라고 인정할 만큼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영혼이 잘된 사람은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고, 성령의 소욕대로 살아가는 영의 사람이지요. 자기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을 정도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무엇이든지 담대하게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요일 3:21~22).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받는 방법들이 잘 나와 있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도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셨지요. 그러므로 계명들을 지키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여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되어야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넘쳐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3. 서로 간에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하셨지요. 또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요 13:14~15, 35).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이 여러분 안에 사랑이 넘치고,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 중의 하나인 서로 섬기는 모습이 보여지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고 외치는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를 대신해서 죽게 하시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셨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 안에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다툼과 분쟁, 불편함이 있다면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어찌 저럴까?”라는 비난의 말을 들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서로 살펴 주고 섬기는 사랑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항상 정도를 걷되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 되어야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어떠한 모습이 돼야 할까요?
① 말과 행동에 ( )이 있어야 한다.
② 하나님의 사랑받는 ( )가 있어야 한다.
③ 서로 간에 ( )이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있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리로 이끌어 가시는 성령의 욕구를 말한다(갈 5:16~17).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이렇게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 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하시므로 마음에 평안함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
2019-02-22
제8과복음을 전하는 자
로마서 10:14~15
읽을말씀 : 로마서 10:14~15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5:5 ㅣ 참고 말씀: 골로새서 4:2~3
교육목표 : 복음을 전하는 자는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무엇보다 불같이 기도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한다.
시편 126편 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말씀했듯이 전도의 씨를 뿌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는 수고와 헌신과 눈물이 필요하지만, 그 씨앗이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로 맺히는 것을 볼 때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지 않고, 성령이 충만하여 믿음도 신속히 자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책임져 주시고 응답과 축복의 간증이 넘쳐 나지요. 그러면 복음을 전하는 자는 어떻게 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1.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영적인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5절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라야 물과 양분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때를 좇아 풍성히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생명의 근원이 되신 주님과 영적으로 늘 교통하며,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포도나무 되신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여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 것이지요.
우리가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과 천국에 대하여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또한 주님 안에 거하여 영으로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되지요. 바로 이러한 삶 자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기에 전도의 열매도 자연히 맺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 얼마나 거하고 계십니까? 전도의 열매가 얼마나 맺혀지고 있는지 살펴보면 스스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명이 많고 바빠서 전도할 시간이 없는데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포도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주렁주렁 맺듯이, 주님 안에 거하는 만큼 살아 계신 하나님이 증거되며 전도의 열매도 아름답게 맺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되 먼저는 전도자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되어 나가는 영적인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깁니다. 이처럼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가족, 친구, 동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때 전도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 이하를 보면 안드레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며 전도함으로 장차 시몬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되지요. 안드레는 정확하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전도할 때 그 열매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열매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요. 그래서 마음에 성령의 충만함이 오고 항상 기쁨이 넘치며 감사가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아름다운 마음의 향이 올라가고 보는 이들에게 은혜를 끼치니 이방인들도 “저 사람을 보니 하나님을 믿고 싶다.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하신 대로 믿는 자에게는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지요. 이렇게 믿음의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말로만 전도하는 것보다 힘 있고 권세 있는 말씀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얼마나 주님 안에 거하느냐에 따라 맺혀지는 전도의 열매가 다르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다르며 상급으로 쌓이는 것이 다릅니다. 포도나무에 든든히 붙은 가지와 같이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분명한 마음의 확신과 믿음의 증거들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 영혼 구원을 위한 불같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은 영계의 싸움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은 자기의 소유인 영혼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때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막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끌어내리는 것이 바로 기도이지요.
골로새서 4장 2~3절에 사도 바울은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했지요. 즉 전도는 기도를 통해 전도의 문이 열려야 십자가에 담긴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할 수 있고 영혼들을 구원해 낼 수 있습니다. 기도가 너무 중요하기에 수많은 교회를 세운 복음의 전도자 사도 바울이라 할지라도 옥중서신을 통해 영혼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계의 법칙을 잘 모르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전도해 보다가 당장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실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은 한두 번 전도하다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이 영혼은 안 되나 보다.” 하고 포기해 버리지요. 그러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순종함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되 무엇보다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다 해도 기도 없이는 참된 열매를 맺지 못하지요. 불같은 기도가 없이 내 생각 속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먼저 하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무엇을 이루실 때에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이루셨지요.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으면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십자가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일을 기도로 준비하며 기도로 이뤄 가야 합니다. 특히 전도할 때, 입을 열기 전에,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먼저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들을 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 구원하는 것을 잃은 양을 찾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닙니다. 깊고 험한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고 때로는 가파른 바위 산도 올라가야 합니다.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가시덤불 속도 들어가야 하며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속도 들어가야 합니다. 오직 양을 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어디든지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잃은 양들을 찾고 계실까요? 어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전도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되찾아오기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신 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된 입술과 아름다운 발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② 영혼 구원을 위한 ( ) 기도가 있어야 한다.
2. 요한복음 15장 5절을 쓰고 외워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포도나무’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요 15:5).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를 흔히 볼 수 있고, 포도나무에서 난 포도즙이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한 열매를 많이 맺는 특성 때문에 포도나무에 비유하셨다.
포도나무 가지에 포도송이가 맺히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결되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 사랑장, 팔복, 빛의 열매와 같은 영적인 열매들이 맺힌다.
이처럼 주님 안에 거할 때라야 생명을 얻고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교육목표 : 복음을 전하는 자는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무엇보다 불같이 기도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한다.
시편 126편 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말씀했듯이 전도의 씨를 뿌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는 수고와 헌신과 눈물이 필요하지만, 그 씨앗이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로 맺히는 것을 볼 때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지 않고, 성령이 충만하여 믿음도 신속히 자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책임져 주시고 응답과 축복의 간증이 넘쳐 나지요. 그러면 복음을 전하는 자는 어떻게 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1.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영적인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5절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라야 물과 양분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때를 좇아 풍성히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생명의 근원이 되신 주님과 영적으로 늘 교통하며,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포도나무 되신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여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 것이지요.
우리가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과 천국에 대하여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또한 주님 안에 거하여 영으로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되지요. 바로 이러한 삶 자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기에 전도의 열매도 자연히 맺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 얼마나 거하고 계십니까? 전도의 열매가 얼마나 맺혀지고 있는지 살펴보면 스스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명이 많고 바빠서 전도할 시간이 없는데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포도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주렁주렁 맺듯이, 주님 안에 거하는 만큼 살아 계신 하나님이 증거되며 전도의 열매도 아름답게 맺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되 먼저는 전도자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되어 나가는 영적인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깁니다. 이처럼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가족, 친구, 동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때 전도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 이하를 보면 안드레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며 전도함으로 장차 시몬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되지요. 안드레는 정확하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전도할 때 그 열매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열매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요. 그래서 마음에 성령의 충만함이 오고 항상 기쁨이 넘치며 감사가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아름다운 마음의 향이 올라가고 보는 이들에게 은혜를 끼치니 이방인들도 “저 사람을 보니 하나님을 믿고 싶다.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하신 대로 믿는 자에게는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지요. 이렇게 믿음의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말로만 전도하는 것보다 힘 있고 권세 있는 말씀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얼마나 주님 안에 거하느냐에 따라 맺혀지는 전도의 열매가 다르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다르며 상급으로 쌓이는 것이 다릅니다. 포도나무에 든든히 붙은 가지와 같이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분명한 마음의 확신과 믿음의 증거들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 영혼 구원을 위한 불같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은 영계의 싸움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은 자기의 소유인 영혼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때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막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끌어내리는 것이 바로 기도이지요.
골로새서 4장 2~3절에 사도 바울은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했지요. 즉 전도는 기도를 통해 전도의 문이 열려야 십자가에 담긴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할 수 있고 영혼들을 구원해 낼 수 있습니다. 기도가 너무 중요하기에 수많은 교회를 세운 복음의 전도자 사도 바울이라 할지라도 옥중서신을 통해 영혼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계의 법칙을 잘 모르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전도해 보다가 당장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실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은 한두 번 전도하다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이 영혼은 안 되나 보다.” 하고 포기해 버리지요. 그러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순종함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되 무엇보다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다 해도 기도 없이는 참된 열매를 맺지 못하지요. 불같은 기도가 없이 내 생각 속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먼저 하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무엇을 이루실 때에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이루셨지요.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으면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십자가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일을 기도로 준비하며 기도로 이뤄 가야 합니다. 특히 전도할 때, 입을 열기 전에,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먼저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들을 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 구원하는 것을 잃은 양을 찾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닙니다. 깊고 험한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고 때로는 가파른 바위 산도 올라가야 합니다.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가시덤불 속도 들어가야 하며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속도 들어가야 합니다. 오직 양을 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어디든지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잃은 양들을 찾고 계실까요? 어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전도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되찾아오기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신 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된 입술과 아름다운 발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② 영혼 구원을 위한 ( ) 기도가 있어야 한다.
2. 요한복음 15장 5절을 쓰고 외워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포도나무’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요 15:5).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를 흔히 볼 수 있고, 포도나무에서 난 포도즙이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한 열매를 많이 맺는 특성 때문에 포도나무에 비유하셨다.
포도나무 가지에 포도송이가 맺히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결되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 사랑장, 팔복, 빛의 열매와 같은 영적인 열매들이 맺힌다.
이처럼 주님 안에 거할 때라야 생명을 얻고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2019-02-15
제7과와 보라
요한복음 1:45~49
읽을말씀 : 요한복음 1:45~49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1:17 ㅣ 참고 말씀: 디모데후서 4:2
교육목표 : 온 천하보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전도에 힘씀으로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한다.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권능을 받아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요,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행 1:8).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간곡한 뜻인 줄 알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 하며 전도를 어려운 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구원코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전도할 마음만 있으면 ‘와 보라’고 담대히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거나 인간의 지혜와 방법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전도가 힘든 것이지, 믿음이 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불타는 사람이라면 전도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1. 빌립이 전도한 나다나엘
요한복음 1장 45절을 보면 예수님을 만난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앞으로 오실 메시아 곧 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예수님을 만난 후 나다나엘에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한 것입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는데 이는 좋지 않은 의미로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나다나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는 사람이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평소에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하게 오실 메시아를 사모하고 있는데 바로 그분이 목수인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하니 자신이 아는 지식과 상식에는 맞지 않아서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자 빌립은 질문하는 친구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말합니다. 자기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직접 그분을 찾아와서 들어 보라는 것이지요. 우리도 전도할 때 “와 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 전달하는 사람이 얼마큼 신뢰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말만 듣고도 상대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마음이 선한 사람이라면 “와 보라”고 할 때에 그 전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요동하게 됩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으로부터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말을 들었지만 선하기 때문에 친히 들어 보고자 예수님 앞에 나왔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며 칭찬하셨지요.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믿는다고 하면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너무 놀라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고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답하십니다.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눈으로 보셨다는 뜻이 아니라 보지 않으셨어도 이미 알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나다나엘은 자기를 처음 만났는데도 밝히 아시는 예수님께 이내 순복했습니다. 자기 중심을 아시고 더구나 자신을 직접 보신 것이 아니라,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이미 자신을 알아본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지요. 그러니 감동함을 입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중심의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빌립이 전도할 때에 “와 보라”고 권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빌립은 고대하던 메시아를 만난 기쁜 소식을 혼자만 간직할 수 없었지요.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 역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도,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고 사자밥이 되며 칼에 목 베임을 당해도 복음 전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지요. 우리도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전도의 세 가지 유형
1)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넘치는 은혜와 뜨거움 속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고전 1:17).
전도는 말의 지혜나 능함에 있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과 그 능력을 힘입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말에는 능치 못해도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전도하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고 지속적인 전도의 열심 가운데 하나하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하여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전하니 성령의 역사를 받아 결국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2)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소망 가운데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불타는 마음으로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아 조리있게 전하지는 못하지만, 전도에 열심과 영혼을 사랑함이 눈물나도록 헌신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정에 못 이겨 점점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사랑하며, 아래로는 영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에 입각해서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자기 영혼에 참된 쉼을 줄 수 있는 주님을 만나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니 많은 영혼을 구원함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하여 나름대로 말씀을 정립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즉 말씀에 입각하여 분명한 뜻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니 영혼들이 그 말씀에 이끌리어 교회를 찾게 되지요.
이처럼 열정적으로 전도하며 무시로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즐거움이요, 교회의 보배이며 성도들의 소중한 본보기가 됩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복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행하고 심은 것이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되어 축복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면 천국의 축복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1) 천국의 처소 :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얼마나 영혼이 잘되었는가에 따라 천국의 처소가 달라집니다. 얼마나 죄를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느냐에 따라서 천국의 처소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 천국 집 : 얼마나 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했고, 하나님 앞에 각종 예물을 심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에 따라서 천국 집이 지어집니다. 영원한 천국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시지만, 오직 한 가지 우리 손으로 지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각 사람이 영원히 거할 천국 집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영혼 구원과 각종 예물이 재료가 되어 천국 집의 크기가 결정되고 우리 마음에 맞춰 아름답게 건축되지요.
3) 천국의 상급 :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이 모두 천국의 상급으로 주어집니다. 몸에 장식품이나 천국 집의 장식들로 아름답게 꾸며지지요.
이처럼 장차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실 축복이 예비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우리가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는 것과, 영혼을 사랑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성전 건축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지요.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전도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얼마나 영혼이 잘되었는가에 따라 ( )가 달라진다.
2.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했고 하나님 앞에 각종 예물을 심었느냐에 따라 ( )이 지어진다.
3.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이 ( )으로 주어진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이 땅에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영혼 구원에 힘쓴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달아 주신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한 사람에게 경배를 드리기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면류관이요, 영광과 자랑이 되는 것이다.
교육목표 : 온 천하보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전도에 힘씀으로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한다.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권능을 받아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요,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행 1:8).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간곡한 뜻인 줄 알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 하며 전도를 어려운 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구원코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전도할 마음만 있으면 ‘와 보라’고 담대히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거나 인간의 지혜와 방법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전도가 힘든 것이지, 믿음이 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불타는 사람이라면 전도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1. 빌립이 전도한 나다나엘
요한복음 1장 45절을 보면 예수님을 만난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앞으로 오실 메시아 곧 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예수님을 만난 후 나다나엘에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한 것입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는데 이는 좋지 않은 의미로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나다나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는 사람이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평소에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하게 오실 메시아를 사모하고 있는데 바로 그분이 목수인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하니 자신이 아는 지식과 상식에는 맞지 않아서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자 빌립은 질문하는 친구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말합니다. 자기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직접 그분을 찾아와서 들어 보라는 것이지요. 우리도 전도할 때 “와 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 전달하는 사람이 얼마큼 신뢰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말만 듣고도 상대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마음이 선한 사람이라면 “와 보라”고 할 때에 그 전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요동하게 됩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으로부터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말을 들었지만 선하기 때문에 친히 들어 보고자 예수님 앞에 나왔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며 칭찬하셨지요.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믿는다고 하면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너무 놀라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고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답하십니다.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눈으로 보셨다는 뜻이 아니라 보지 않으셨어도 이미 알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나다나엘은 자기를 처음 만났는데도 밝히 아시는 예수님께 이내 순복했습니다. 자기 중심을 아시고 더구나 자신을 직접 보신 것이 아니라,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이미 자신을 알아본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지요. 그러니 감동함을 입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중심의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빌립이 전도할 때에 “와 보라”고 권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빌립은 고대하던 메시아를 만난 기쁜 소식을 혼자만 간직할 수 없었지요.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 역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도,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고 사자밥이 되며 칼에 목 베임을 당해도 복음 전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지요. 우리도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전도의 세 가지 유형
1)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넘치는 은혜와 뜨거움 속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고전 1:17).
전도는 말의 지혜나 능함에 있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과 그 능력을 힘입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말에는 능치 못해도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전도하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고 지속적인 전도의 열심 가운데 하나하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하여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전하니 성령의 역사를 받아 결국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2)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소망 가운데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불타는 마음으로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아 조리있게 전하지는 못하지만, 전도에 열심과 영혼을 사랑함이 눈물나도록 헌신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정에 못 이겨 점점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사랑하며, 아래로는 영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에 입각해서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자기 영혼에 참된 쉼을 줄 수 있는 주님을 만나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니 많은 영혼을 구원함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하여 나름대로 말씀을 정립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즉 말씀에 입각하여 분명한 뜻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니 영혼들이 그 말씀에 이끌리어 교회를 찾게 되지요.
이처럼 열정적으로 전도하며 무시로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즐거움이요, 교회의 보배이며 성도들의 소중한 본보기가 됩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복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행하고 심은 것이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되어 축복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면 천국의 축복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1) 천국의 처소 :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얼마나 영혼이 잘되었는가에 따라 천국의 처소가 달라집니다. 얼마나 죄를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느냐에 따라서 천국의 처소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 천국 집 : 얼마나 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했고, 하나님 앞에 각종 예물을 심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에 따라서 천국 집이 지어집니다. 영원한 천국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시지만, 오직 한 가지 우리 손으로 지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각 사람이 영원히 거할 천국 집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영혼 구원과 각종 예물이 재료가 되어 천국 집의 크기가 결정되고 우리 마음에 맞춰 아름답게 건축되지요.
3) 천국의 상급 :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이 모두 천국의 상급으로 주어집니다. 몸에 장식품이나 천국 집의 장식들로 아름답게 꾸며지지요.
이처럼 장차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실 축복이 예비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우리가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는 것과, 영혼을 사랑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성전 건축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지요.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전도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얼마나 영혼이 잘되었는가에 따라 ( )가 달라진다.
2.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했고 하나님 앞에 각종 예물을 심었느냐에 따라 ( )이 지어진다.
3.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이 ( )으로 주어진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이 땅에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영혼 구원에 힘쓴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달아 주신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한 사람에게 경배를 드리기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면류관이요, 영광과 자랑이 되는 것이다.
2019-02-08
제6과전도(3) 복음을 전파하는 방법
디모데후서 4:2~5
읽을말씀 : 디모데후서 4:2~5 | 외울말씀 : 디모데후서 4:2 ㅣ 참고 말씀: 디모데후서 1:8
교육목표 :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 대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한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8장에 나오는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후, 네로 황제 치하에서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기록한 서신이 바로 에베소 교회를 치리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로서 디모데후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치 유언과 같은 마지막 당부를 합니다.
1. 복음 전파에 힘쓸 것을 강조한 사도 바울
디모데후서 4장 2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전도자가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의 할 일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전도인의 일을 하며 직무를 다하는 것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예나 지금이나 복음을 전파하려 할 때는 원수 마귀가 갖가지 궤계로 방해하며, 죄악이 관영할수록 그 방법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말을 들었듯이, 때로는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고난과 핍박이 더할수록 복음은 더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초대교회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목 베임을 당하고 사자 밥이 되는 등 순교를 당하기까지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했기에 오늘날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7~8절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전도에는 꼭 이것만이 정도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영혼들을 대하면서 하나하나 체험해 가는 것이 자신만의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방법을 모방하여 시작하지만 차츰 자신만의 방법이 터득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의 능력을 받기 원한다면 먼저는 전도를 잘하는 분들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요.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하는구나.” 하면서 배우고 익힌 후에 스스로 해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담대함과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고 항상 배운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 될 때도 결코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도전하다 보면 나름대로 방법이 생기고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 어떤 사람의 말은 믿는 반면, 어떤 사람의 말은 흘려 넘기고 믿지 않기도 합니다. 평소에 농담이나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복음을 전파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신뢰를 쌓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복음을 전할 때는 마음의 문을 열고 믿으려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직후나 초신자 때는 복음을 전파하기에 더욱 쉽고 좋은 시기입니다. 직접 하나님을 만났고 또 초신자라 해도 은혜받고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함이 생기며 누구에게든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뜨거워지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전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초신자 때 전도하기 쉬운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삶이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수심이 가득했던 사람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악한 말을 내던 입술이 선하고 아름답게 변하며, 섬기는 모습이 되는 등 매사에 성령의 충만함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변 사람들이 변화된 모습을 느끼고 있을 때 “당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행복하고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어요.”라고 권면하면 상대의 마음이 끌리고 마음 문도 쉽게 열려 전도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누구나 초신자 때가 전도하기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성경 말씀을 깨닫고 하늘로부터 지혜를 얻어 말씀의 권세도 커지며 상대에게 필요한 내용 또한 정확하게 성령의 주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초신자 때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을 전도할 때 무조건 “하나님만이 참 신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복을 받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생명의 지식이 부족함으로 인해서, 또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밝히 알지 못함으로 인해 서로 변론이 되어질 수 있지요.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은 만큼 상대의 잘못된 생각을 깨뜨릴 수 있고, 믿음과 생명을 심어 주어 전도할 수 있으니 초신자 때보다도 훨씬 전도하기가 수월해지는 것입니다.
3. 복음 전도자들의 실제적인 사례
그러면 실제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는 분들은 어떻게 전도하는 것일까요? 한 분은 본 교회에 와서 후두염을 치료받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자신을 만나 주신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출근길에는 집집마다 만민뉴스를 돌렸고, 퇴근길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 전했지요.
토요일 하루를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린 것은 물론, 결혼 후에도 집집마다 방문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으며 임신한 몸으로도 부침개를 들고 다니면서 쉬지 않고 전도를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이를 업은 채 전도하면서 옷이 없는 사람에게는 옷을 사 주고, 물질이 없는 사람에게는 물질로 구제했지요.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여 수차례 전도상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물질로도 축복해 주셨고 지금은 교구장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본 교회로 인도받아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서 이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도에 힘쓰기 시작하셨지요. 특히 전도를 잘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지혜를 받아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에 관한 자료를 스크랩하여 전도에 활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든 자신의 시간을 아껴서 하루에 100 가정, 많게는 200 가정씩 방문하며 전도에 힘쓴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변에 소외된 청소년들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서 열심히 물질로도 섬기니 그들 중에서도 많은 영혼을 전도할 수 있었지요.
다른 한 분은 참으로 바쁜 직업을 가졌지만, 시간을 쪼개어 오직 영혼 구원에 앞장섰습니다. 토요일, 휴일에는 시간만 있으면 성도들을 모아 노방전도를 하며, 직장이나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지요.
이처럼 전도에 힘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기의 유익을 희생하고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먼 곳에서 상(喪)이 나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생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는 꼭 기억해서 챙겨 주지요. 정성을 들이면서 전도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교회에 잘 정착하여 알곡이 된다고 합니다.
타 교회에도 생명 다해 전도에 힘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수년 동안 질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닦아 주고 아이들을 보살펴 주며 청소나 빨래를 해 주면서 전도하는 분, 선물로 가져간 과일 바구니가 내던져지고 몇 차례 물벼락을 맞는 문전박대에도 불구하고 전도의 열매를 거둔 분, 수십 번이라도 방문하고 수년이 걸려도 포기하지 않아 결국 성공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아파트 한 단지를 목표로 전도하는 분, 노인정의 노인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분 등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대상을 목표로 전도하고 있지만, 모두 영혼 구원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실감하여 열심히 전도하며 풍성한 열매를 거둠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너는 ( )을 전파하라 ( )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2. 여러분은 복음 전파를 위해 얼마나 힘쓰고 계신가요?
3. 자신의 구원받은 기쁨과 전도의 열매를 간증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디모데’ (뜻: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루스드라 출신으로,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기도 하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신실한 믿음을 지닌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우며 성장했다.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 루스드라를 방문했을 때 디모데는 주님을 영접했고, 동역자가 되어 2차 전도 여행을 함께했다.
디모데는 아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지에서 사역을 하며 사도 바울의 신임을 받는 신실한 목회자였다.
전승에 따르면, 바울의 순교 이후 에베소 감독으로 지내다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교육목표 :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 대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한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8장에 나오는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후, 네로 황제 치하에서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기록한 서신이 바로 에베소 교회를 치리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로서 디모데후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치 유언과 같은 마지막 당부를 합니다.
1. 복음 전파에 힘쓸 것을 강조한 사도 바울
디모데후서 4장 2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전도자가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의 할 일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전도인의 일을 하며 직무를 다하는 것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예나 지금이나 복음을 전파하려 할 때는 원수 마귀가 갖가지 궤계로 방해하며, 죄악이 관영할수록 그 방법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말을 들었듯이, 때로는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고난과 핍박이 더할수록 복음은 더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초대교회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목 베임을 당하고 사자 밥이 되는 등 순교를 당하기까지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했기에 오늘날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7~8절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전도에는 꼭 이것만이 정도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영혼들을 대하면서 하나하나 체험해 가는 것이 자신만의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방법을 모방하여 시작하지만 차츰 자신만의 방법이 터득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의 능력을 받기 원한다면 먼저는 전도를 잘하는 분들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요.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하는구나.” 하면서 배우고 익힌 후에 스스로 해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담대함과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고 항상 배운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 될 때도 결코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도전하다 보면 나름대로 방법이 생기고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 어떤 사람의 말은 믿는 반면, 어떤 사람의 말은 흘려 넘기고 믿지 않기도 합니다. 평소에 농담이나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복음을 전파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신뢰를 쌓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복음을 전할 때는 마음의 문을 열고 믿으려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직후나 초신자 때는 복음을 전파하기에 더욱 쉽고 좋은 시기입니다. 직접 하나님을 만났고 또 초신자라 해도 은혜받고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함이 생기며 누구에게든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뜨거워지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전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초신자 때 전도하기 쉬운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삶이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수심이 가득했던 사람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악한 말을 내던 입술이 선하고 아름답게 변하며, 섬기는 모습이 되는 등 매사에 성령의 충만함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변 사람들이 변화된 모습을 느끼고 있을 때 “당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행복하고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어요.”라고 권면하면 상대의 마음이 끌리고 마음 문도 쉽게 열려 전도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누구나 초신자 때가 전도하기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성경 말씀을 깨닫고 하늘로부터 지혜를 얻어 말씀의 권세도 커지며 상대에게 필요한 내용 또한 정확하게 성령의 주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초신자 때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을 전도할 때 무조건 “하나님만이 참 신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복을 받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생명의 지식이 부족함으로 인해서, 또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밝히 알지 못함으로 인해 서로 변론이 되어질 수 있지요.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은 만큼 상대의 잘못된 생각을 깨뜨릴 수 있고, 믿음과 생명을 심어 주어 전도할 수 있으니 초신자 때보다도 훨씬 전도하기가 수월해지는 것입니다.
3. 복음 전도자들의 실제적인 사례
그러면 실제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는 분들은 어떻게 전도하는 것일까요? 한 분은 본 교회에 와서 후두염을 치료받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자신을 만나 주신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출근길에는 집집마다 만민뉴스를 돌렸고, 퇴근길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 전했지요.
토요일 하루를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린 것은 물론, 결혼 후에도 집집마다 방문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으며 임신한 몸으로도 부침개를 들고 다니면서 쉬지 않고 전도를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이를 업은 채 전도하면서 옷이 없는 사람에게는 옷을 사 주고, 물질이 없는 사람에게는 물질로 구제했지요.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여 수차례 전도상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물질로도 축복해 주셨고 지금은 교구장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본 교회로 인도받아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서 이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도에 힘쓰기 시작하셨지요. 특히 전도를 잘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지혜를 받아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에 관한 자료를 스크랩하여 전도에 활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든 자신의 시간을 아껴서 하루에 100 가정, 많게는 200 가정씩 방문하며 전도에 힘쓴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변에 소외된 청소년들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서 열심히 물질로도 섬기니 그들 중에서도 많은 영혼을 전도할 수 있었지요.
다른 한 분은 참으로 바쁜 직업을 가졌지만, 시간을 쪼개어 오직 영혼 구원에 앞장섰습니다. 토요일, 휴일에는 시간만 있으면 성도들을 모아 노방전도를 하며, 직장이나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지요.
이처럼 전도에 힘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기의 유익을 희생하고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먼 곳에서 상(喪)이 나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생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는 꼭 기억해서 챙겨 주지요. 정성을 들이면서 전도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교회에 잘 정착하여 알곡이 된다고 합니다.
타 교회에도 생명 다해 전도에 힘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수년 동안 질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닦아 주고 아이들을 보살펴 주며 청소나 빨래를 해 주면서 전도하는 분, 선물로 가져간 과일 바구니가 내던져지고 몇 차례 물벼락을 맞는 문전박대에도 불구하고 전도의 열매를 거둔 분, 수십 번이라도 방문하고 수년이 걸려도 포기하지 않아 결국 성공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아파트 한 단지를 목표로 전도하는 분, 노인정의 노인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분 등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대상을 목표로 전도하고 있지만, 모두 영혼 구원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실감하여 열심히 전도하며 풍성한 열매를 거둠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너는 ( )을 전파하라 ( )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2. 여러분은 복음 전파를 위해 얼마나 힘쓰고 계신가요?
3. 자신의 구원받은 기쁨과 전도의 열매를 간증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디모데’ (뜻: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루스드라 출신으로,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기도 하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신실한 믿음을 지닌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우며 성장했다.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 루스드라를 방문했을 때 디모데는 주님을 영접했고, 동역자가 되어 2차 전도 여행을 함께했다.
디모데는 아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지에서 사역을 하며 사도 바울의 신임을 받는 신실한 목회자였다.
전승에 따르면, 바울의 순교 이후 에베소 감독으로 지내다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9-02-05
제0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해의 머리’라는 의미가 있지요. 지난 한 해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욱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늘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하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458장 ----------------------- 다 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고린도후서 5:17~19 ---------------- 인도자
설 교 ------------------------ 화 목 ------------------------ 설교자
2. 설교 예문
가정에 싸움과 다툼이 없고 사랑이 넘친다면 항상 웃음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행복한 가정의 예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지요. 이러한 남편의 위로를 들은 아내는 감격해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께서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지요. 자초지종을 들으신 후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니까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시어머니께서도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며느리를 감싸 주었습니다.
가족 중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보다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집도 볼 수 있는데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기 때문입니다.
삶의 지혜가 기록된 잠언 17장 1절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는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늘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 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5~6절에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어나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습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했으니 새해를 맞아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격려하는 말,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쳐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만일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남편에게 행한 만큼 돌려 받지 못하면 서운해하고 삐치는 아내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남편의 자존심이 강하여 아내를 품지 못하고 자기 의견만 강하게 내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부간에도 서로 섬기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섬김’이란 겸손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합니다. 또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 34절을 통해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고 섬긴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뿐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며 모든 명령을 그대로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축복을 주실까요? 신명기 28장 1~14절에 나오는 대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며, 모든 복이 임하게 하실 뿐 아니라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도록 만사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며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는 일마다 꼬이고 형통하지 않은 것을 봅니다. 안 될 것은 당연히 안 되고, 잘될 수 있는 일도 안 되는 것이지요.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신 28:15~68).
그래서 출애굽기 20장 4~6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차례를 지내기도 했지요.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들어갑니다. 비록 우리 조상들은 천국과 지옥은 밝히 알지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기에 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 주신 하나님 만이 참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믿고 순종함으로 더욱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해의 머리’라는 의미가 있지요. 지난 한 해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욱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늘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하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458장 ----------------------- 다 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고린도후서 5:17~19 ---------------- 인도자
설 교 ------------------------ 화 목 ------------------------ 설교자
2. 설교 예문
가정에 싸움과 다툼이 없고 사랑이 넘친다면 항상 웃음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행복한 가정의 예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지요. 이러한 남편의 위로를 들은 아내는 감격해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께서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지요. 자초지종을 들으신 후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니까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시어머니께서도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며느리를 감싸 주었습니다.
가족 중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보다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집도 볼 수 있는데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기 때문입니다.
삶의 지혜가 기록된 잠언 17장 1절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는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늘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 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5~6절에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어나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습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했으니 새해를 맞아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격려하는 말,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쳐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만일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남편에게 행한 만큼 돌려 받지 못하면 서운해하고 삐치는 아내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남편의 자존심이 강하여 아내를 품지 못하고 자기 의견만 강하게 내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부간에도 서로 섬기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섬김’이란 겸손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합니다. 또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 34절을 통해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고 섬긴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뿐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며 모든 명령을 그대로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축복을 주실까요? 신명기 28장 1~14절에 나오는 대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며, 모든 복이 임하게 하실 뿐 아니라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도록 만사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며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는 일마다 꼬이고 형통하지 않은 것을 봅니다. 안 될 것은 당연히 안 되고, 잘될 수 있는 일도 안 되는 것이지요.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신 28:15~68).
그래서 출애굽기 20장 4~6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차례를 지내기도 했지요.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들어갑니다. 비록 우리 조상들은 천국과 지옥은 밝히 알지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기에 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 주신 하나님 만이 참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믿고 순종함으로 더욱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9-02-01
제5과전도(2) 하나님의 지혜
고린도전서 1:21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21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4:20 ㅣ 참고 말씀: 사도행전 1:8
교육목표 :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 사망으로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여 참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이 몇 차례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통해, 어떤 사람은 직업을 통해, 어떤 사람은 학교나 전공 선택에 따라 그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처럼 선택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1.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복된 소식, 곧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전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니 오히려 미련하게 생각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도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곧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찌하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가 어떻게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 지금까지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고, 지금도 인도하고 계십니다.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자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대상자를 선택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기도하여 성령의 주관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주관받기보다 처음으로 전도해야 할 경우 누구를 전도 대상자로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1) 가까운 가족, 일가친척, 친한 친구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행 1:8).
복음 전파의 첫 번째 대상인 예루살렘은 영적으로 내가 속한 가정, 학교, 직장, 일터 등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가장 가깝게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을 우선 전도 대상자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깝기 때문에 더 전도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사랑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2) 마음이 선한 사람들
마음 중심이 선한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면서 복음을 전할 때 쉽게 감동을 받아 교회에 나오고 싶어 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교회에 가고 싶은데, 누군가 이끌어 주지 않아서 가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마음이 선한 사람뿐 아니라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받아야 합니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해져 있을 때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강해 보이는 사람도 막상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의지할 곳을 찾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들을 찾아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복음을 전할 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4) 교회에 다니다가 시험 환난으로 다시 세상을 좇은 사람들
예전에 신앙생활을 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지 못하여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는 이들이 다시 주님의 사랑 안에 깃들일 수 있도록 인도해 줘야 합니다. 마음이 강퍅해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도 순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으니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3. 복음을 전하는 구체적인 방법
1) 사랑과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듣고 배운 사랑과 희생과 헌신을 실제 행할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이 없다면 한 영혼도 구원의 길로 이끌 수 없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아무리 마음 문을 굳게 닫은 사람이라 해도 관심을 가지고 진실된 사랑을 실천하며 희생하고 헌신하면 결국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분들은 무언가 나눠 주기를 좋아해서 자신보다 주변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니 상대가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리고 상대의 집안일에 관심을 갖고 애경사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달려가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힘이 되어 줍니다. 특히 궂은일에 앞장서서 도와주면 고마움을 느끼고 감동을 받아 복음을 전할 때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병상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위안이 되어 주고 돌봐 주는 것도 전도의 좋은 방법입니다.
2) 간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각종 문제로 인해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로 해결받은 사례들을 간증해 줄 때 관심을 보일 수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표적과 희한한 능과 기이한 일들을 적극 활용하면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간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른 사람의 간증보다 직접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것을 전할 때 사실을 입증시키기가 쉬워 더욱 효과적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큰 사람은 자기 자신이 전도의 도구이니 만큼 더 열심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3)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따른다면 자연히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우리가 전도 대상자를 찾아가서 기도해 줄 때 문제가 해결되고 질병이 치료된다면 이보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이 따르지 않는다 해도 성령의 역사를 받으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전도 대상자를 위해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전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켜 마음 문을 열어 주십니다. 또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담대함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많이 뿌려야 추수 때 많은 열매를 거두듯이 전도할 때도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즉 전도지나 간증 책자로 노방전도를 하거나 가두 방문하는 경우가 있지요. 비록 전도지 한 장을 건네주었을 뿐인데 나중에 그 전도지를 보고 은혜를 받아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분들은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망의 길로 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전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즉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찌하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는 것이다.
2. 전도 대상자를 선택한 후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전도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권능’이란?
권세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하셨다.
여기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쫓아낼 수 있는 힘은 권세에서 비롯되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힘은 능력의 역사다.
그러므로 권세와 능력을 받아야 권능을 나타낼 수 있다.
권능을 받으려면 온 영의 마음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야 한다.
교육목표 :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 사망으로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여 참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이 몇 차례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통해, 어떤 사람은 직업을 통해, 어떤 사람은 학교나 전공 선택에 따라 그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처럼 선택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1.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복된 소식, 곧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전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니 오히려 미련하게 생각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도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곧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찌하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가 어떻게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 지금까지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고, 지금도 인도하고 계십니다.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자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대상자를 선택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기도하여 성령의 주관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주관받기보다 처음으로 전도해야 할 경우 누구를 전도 대상자로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1) 가까운 가족, 일가친척, 친한 친구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행 1:8).
복음 전파의 첫 번째 대상인 예루살렘은 영적으로 내가 속한 가정, 학교, 직장, 일터 등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가장 가깝게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을 우선 전도 대상자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깝기 때문에 더 전도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사랑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2) 마음이 선한 사람들
마음 중심이 선한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면서 복음을 전할 때 쉽게 감동을 받아 교회에 나오고 싶어 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교회에 가고 싶은데, 누군가 이끌어 주지 않아서 가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마음이 선한 사람뿐 아니라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받아야 합니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해져 있을 때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강해 보이는 사람도 막상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의지할 곳을 찾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들을 찾아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복음을 전할 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4) 교회에 다니다가 시험 환난으로 다시 세상을 좇은 사람들
예전에 신앙생활을 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지 못하여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는 이들이 다시 주님의 사랑 안에 깃들일 수 있도록 인도해 줘야 합니다. 마음이 강퍅해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도 순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으니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3. 복음을 전하는 구체적인 방법
1) 사랑과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듣고 배운 사랑과 희생과 헌신을 실제 행할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이 없다면 한 영혼도 구원의 길로 이끌 수 없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아무리 마음 문을 굳게 닫은 사람이라 해도 관심을 가지고 진실된 사랑을 실천하며 희생하고 헌신하면 결국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분들은 무언가 나눠 주기를 좋아해서 자신보다 주변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니 상대가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리고 상대의 집안일에 관심을 갖고 애경사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달려가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힘이 되어 줍니다. 특히 궂은일에 앞장서서 도와주면 고마움을 느끼고 감동을 받아 복음을 전할 때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병상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위안이 되어 주고 돌봐 주는 것도 전도의 좋은 방법입니다.
2) 간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각종 문제로 인해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로 해결받은 사례들을 간증해 줄 때 관심을 보일 수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표적과 희한한 능과 기이한 일들을 적극 활용하면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간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른 사람의 간증보다 직접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것을 전할 때 사실을 입증시키기가 쉬워 더욱 효과적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큰 사람은 자기 자신이 전도의 도구이니 만큼 더 열심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3)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따른다면 자연히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우리가 전도 대상자를 찾아가서 기도해 줄 때 문제가 해결되고 질병이 치료된다면 이보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이 따르지 않는다 해도 성령의 역사를 받으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전도 대상자를 위해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전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켜 마음 문을 열어 주십니다. 또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담대함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많이 뿌려야 추수 때 많은 열매를 거두듯이 전도할 때도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즉 전도지나 간증 책자로 노방전도를 하거나 가두 방문하는 경우가 있지요. 비록 전도지 한 장을 건네주었을 뿐인데 나중에 그 전도지를 보고 은혜를 받아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분들은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망의 길로 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전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즉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찌하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는 것이다.
2. 전도 대상자를 선택한 후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전도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권능’이란?
권세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하셨다.
여기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쫓아낼 수 있는 힘은 권세에서 비롯되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힘은 능력의 역사다.
그러므로 권세와 능력을 받아야 권능을 나타낼 수 있다.
권능을 받으려면 온 영의 마음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야 한다.
2019-01-25
제4과전도(1) 복음을 전하는 사명
사도행전 20:24
읽을말씀 : 사도행전 20:24 | 외울말씀 : 로마서 10:10 ㅣ 참고 말씀: 로마서 1:14
교육목표 :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에 더욱 힘써 주님의 목마름을 시원케 해 드리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사도행전 8장 이하를 보면 주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주님을 만나 회개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 전하는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나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했지요.
이처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순교하기까지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죽도록 충성한 것입니다.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해야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롬 10:9~10). 하지만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은 죄인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말한다면 상대가 마음 문을 닫아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생각을 깨뜨려 줘야 합니다. 우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나님 한 분만이 참 신이시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 하지요.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게 만든 후에 내세 즉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설명해 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가 있으며 죄인은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말해 줘야 하지요. 천국과 지옥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적당히 살다 끝나면 그만이지.” 하며 전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믿을 수 있도록 알려 준 후에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부활 승천하신 것, 때가 이르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것 등을 전하면 되지요. 이처럼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알았으면 실제로 복음을 전하면 되는데 막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이요, 주님을 닮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생활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더 넓은 차원의 신앙생활이 바로 전도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구원받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전도하며 충성하는 것이 온전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
1) 전도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위험에 빠져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보았다면, 최선을 다해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구원에 대해 알지 못하여 지옥 불로 들어가고 있다면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라도 구원해 주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여 구원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는 영원한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건져내는 일이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어떤 형태로든 복음을 들었기에 구원의 은혜를 받아 영원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으니 전도는 매우 중요하며 전 성도가 함께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로마서 1장 14~1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께 구원이라고 하는 큰 은혜를 입어 복음에 대해 빚진 자임을 깨닫는다면 사도 바울처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죗값으로 인해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의 사명을 게을리하므로 구원받을 수 있는 영혼이 지옥으로 간다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기억하여(롬 10:13~14) 사도 바울처럼 불붙는 심정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당연한 모습입니다.
2) 주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을 보면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명령이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일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승천을 앞두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마지막으로 남기신 주님의 유언으로서 모든 하나님 자녀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6~18절을 통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에 시간이 없거나 직분이 많아서 전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시며 때로는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지만 기회만 있으면 전도에 힘쓰셨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닮기 원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한다면 사도 바울처럼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3)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와 구속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섭리 곧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범죄함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점차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때가 이르매 성자 하나님께서는 인간 구속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의 삯으로 인해 사망으로 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류 구속의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인생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의 도’이지요(고전 1:18).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널리 전파하여 인간 경작의 섭리와 구속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릴레이 경주의 마지막 주자와 같이 마지막 때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뛰어 주느냐에 따라 인간 경작의 마무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도’에 담긴 비밀을 모든 사람이 알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더 나아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 줄 귀한 일꾼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듯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때에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는 귀한 도구로 부름받았음을 깨달아 사도 바울처럼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전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전도는 ( )을 구하는 일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 )이기 때문이다.
② 주님의 ( )이기 때문이다.
③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 )의 섭리와 ( )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 )을 깨뜨려 줘야 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인간 경작’이란?
원래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라는 열매를 얻고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를 심으셨고,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을 경작해 오고 계신다.
따라서 이 땅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역사를 주관하는 과정을 농사 경작에 비유한 표현이다.
교육목표 :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에 더욱 힘써 주님의 목마름을 시원케 해 드리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사도행전 8장 이하를 보면 주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주님을 만나 회개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 전하는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나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했지요.
이처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순교하기까지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죽도록 충성한 것입니다.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해야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롬 10:9~10). 하지만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은 죄인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말한다면 상대가 마음 문을 닫아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생각을 깨뜨려 줘야 합니다. 우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나님 한 분만이 참 신이시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 하지요.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게 만든 후에 내세 즉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설명해 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가 있으며 죄인은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말해 줘야 하지요. 천국과 지옥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적당히 살다 끝나면 그만이지.” 하며 전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믿을 수 있도록 알려 준 후에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부활 승천하신 것, 때가 이르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것 등을 전하면 되지요. 이처럼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알았으면 실제로 복음을 전하면 되는데 막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이요, 주님을 닮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생활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더 넓은 차원의 신앙생활이 바로 전도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구원받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전도하며 충성하는 것이 온전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
1) 전도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위험에 빠져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보았다면, 최선을 다해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구원에 대해 알지 못하여 지옥 불로 들어가고 있다면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라도 구원해 주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여 구원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는 영원한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건져내는 일이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어떤 형태로든 복음을 들었기에 구원의 은혜를 받아 영원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으니 전도는 매우 중요하며 전 성도가 함께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로마서 1장 14~1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께 구원이라고 하는 큰 은혜를 입어 복음에 대해 빚진 자임을 깨닫는다면 사도 바울처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죗값으로 인해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의 사명을 게을리하므로 구원받을 수 있는 영혼이 지옥으로 간다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기억하여(롬 10:13~14) 사도 바울처럼 불붙는 심정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당연한 모습입니다.
2) 주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을 보면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명령이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일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승천을 앞두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마지막으로 남기신 주님의 유언으로서 모든 하나님 자녀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6~18절을 통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에 시간이 없거나 직분이 많아서 전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시며 때로는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지만 기회만 있으면 전도에 힘쓰셨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닮기 원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한다면 사도 바울처럼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3)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와 구속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섭리 곧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범죄함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점차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때가 이르매 성자 하나님께서는 인간 구속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의 삯으로 인해 사망으로 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류 구속의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인생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의 도’이지요(고전 1:18).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널리 전파하여 인간 경작의 섭리와 구속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릴레이 경주의 마지막 주자와 같이 마지막 때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뛰어 주느냐에 따라 인간 경작의 마무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도’에 담긴 비밀을 모든 사람이 알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더 나아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 줄 귀한 일꾼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듯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때에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는 귀한 도구로 부름받았음을 깨달아 사도 바울처럼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전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전도는 ( )을 구하는 일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 )이기 때문이다.
② 주님의 ( )이기 때문이다.
③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 )의 섭리와 ( )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 )을 깨뜨려 줘야 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인간 경작’이란?
원래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라는 열매를 얻고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를 심으셨고,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을 경작해 오고 계신다.
따라서 이 땅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역사를 주관하는 과정을 농사 경작에 비유한 표현이다.
2019-01-18
제3과해산하는 수고와 기쁨
요한복음 16:20~22
읽을말씀 : 요한복음 16:20~22 | 외울말씀 : 갈라디아서 4:19 ㅣ 참고 말씀: 이사야 66:9
교육목표 : 인류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생명을 낳는 복된 일에 동참하여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게 한다.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자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근심으로 가득하였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하시며 제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시자 제자들은 울며 애통했지만 세상은 기뻐하였습니다. 즉 빛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니 어두움이 좋아한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 제자들은 근심이 변하여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1. 엄청난 해산의 수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로하신 후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 16:21) 하시며 해산의 수고와 기쁨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여자가 잉태하면 열달이 지나야 해산하게 됩니다. 임산부는 그 열달 동안 몸가짐이나 음식물에 주의해야 하고 입덧을 하는 등 평소보다 자유롭지 못하고 수고로움을 겪게 됩니다. 마침내 해산할 때는 큰 고통을 겪으며 아기를 낳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해산의 기쁨과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흠뻑 빠져 모든 해산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며 믿음의 후사를 얻기 위해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인류를 위해 짐승의 우리에 태어나셨으며,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해 일생 동안 가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대속해 주시고자 채찍에 맞아 피 흘려 주셨고, 우리의 생각으로 짓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셨지요.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양손과 발에 못박히셨습니다. 모든 불의와 불법을 대속하기 위해 온갖 멸시 천대와 핍박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해산의 수고가 엄청났기에 죄인 된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는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되었지요. 그래서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행 20:28).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핏값을 주시며 희생하신 대가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건물 즉 예배당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에는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엄청난 해산의 수고를 하신 것은 오늘날 주 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우리를 낳기 위함이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2. 영적인 자녀를 낳기 위한 해산의 수고와 기쁨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각색 병든 자를치료하며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하셨지요.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 해산의 수고에 동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도 대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매일같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며 금식기도나 철야기도도 하지요. 나를 반겨 주지 않아도 사랑을 가지고 웃는 얼굴로 찾아가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해산의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태어난 아기를 보면 모든 고통을 잊듯이 우리가 전도한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 상급으로 쌓이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만삭이 되어 태어나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전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도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영혼은 빨리 적응하고 은혜도 받으며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청하여 억지로 등록한 경우는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어렵지요.
그러면 영적으로 만삭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교회에 등록하기 전에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식들을 알 수 있도록 전도자가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 천국과 지옥 등에 대해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전도받은 사람이 신앙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 간증을 듣고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고 성령을 받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태어난 성도들은 설교자를 통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고 신앙이 쑥쑥 자라 가며 열매도 잘 맺게 됩니다.
그러나 만삭이 되어 태어난 아이라도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성도라 할지라도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일꾼들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젖 먹는 신자에서 밥 먹는 신자가 되고, 굳건한 믿음으로 영적인 자녀를 낳을 수 있기까지 수고하고 애쓰며 돌봐야 합니다. 즉 직분을 받아 스스로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까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며 부모의 심정이 되어 사랑으로 보살펴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해산의 수고를 기뻐 받으시고 이 땅에서의 축복은 물론 하늘나라에서 귀한 상급으로 넘치도록 갚아 주십니다(단 12:3).
또한 이사야 66장 9절 후반절에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전도의 능력을 주시며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해산의 기쁨도 주십니다.
3. 권능 받은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부흥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시기에 부활 승천하셨고,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은 더 이상 근심과 두려움에 싸인 나약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확신 가운데 담대히 전파했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이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았지요.
심지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삼천 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나 초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자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지요.
그리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집에서는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이에 성도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고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도록 큰 부흥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행 2:46~47).
사도 바울이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고백한 대로, 여러분도 생명을 낳는 복된 일에 동참하여 하늘의 상급을 쌓으며 해산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도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며 ( )를 얻기 위해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맛보셔야 했다.
2. 만삭이 되어 태어난 아이라도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성도라 할지라도 ( )에 서기까지는 ( )들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
젖 먹는 신자 : 믿음의 성장 과정 중 갓난아기나 어린아이와 같은 시기, 곧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신자를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고전 3:1~2).
밥 먹는 신자 : 믿음의 성장 과정 중 청년과 같은 시기, 곧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하는 신자를 일컫는다(고전 3:1~2).
이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말씀에 따라 행할 수 있다.
교육목표 : 인류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생명을 낳는 복된 일에 동참하여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게 한다.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자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근심으로 가득하였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하시며 제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시자 제자들은 울며 애통했지만 세상은 기뻐하였습니다. 즉 빛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니 어두움이 좋아한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 제자들은 근심이 변하여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1. 엄청난 해산의 수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로하신 후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 16:21) 하시며 해산의 수고와 기쁨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여자가 잉태하면 열달이 지나야 해산하게 됩니다. 임산부는 그 열달 동안 몸가짐이나 음식물에 주의해야 하고 입덧을 하는 등 평소보다 자유롭지 못하고 수고로움을 겪게 됩니다. 마침내 해산할 때는 큰 고통을 겪으며 아기를 낳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해산의 기쁨과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흠뻑 빠져 모든 해산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며 믿음의 후사를 얻기 위해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인류를 위해 짐승의 우리에 태어나셨으며,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해 일생 동안 가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대속해 주시고자 채찍에 맞아 피 흘려 주셨고, 우리의 생각으로 짓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셨지요.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양손과 발에 못박히셨습니다. 모든 불의와 불법을 대속하기 위해 온갖 멸시 천대와 핍박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해산의 수고가 엄청났기에 죄인 된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는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되었지요. 그래서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행 20:28).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핏값을 주시며 희생하신 대가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건물 즉 예배당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에는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엄청난 해산의 수고를 하신 것은 오늘날 주 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우리를 낳기 위함이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2. 영적인 자녀를 낳기 위한 해산의 수고와 기쁨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각색 병든 자를치료하며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하셨지요.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 해산의 수고에 동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도 대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매일같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며 금식기도나 철야기도도 하지요. 나를 반겨 주지 않아도 사랑을 가지고 웃는 얼굴로 찾아가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해산의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태어난 아기를 보면 모든 고통을 잊듯이 우리가 전도한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 상급으로 쌓이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만삭이 되어 태어나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전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도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영혼은 빨리 적응하고 은혜도 받으며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청하여 억지로 등록한 경우는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어렵지요.
그러면 영적으로 만삭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교회에 등록하기 전에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식들을 알 수 있도록 전도자가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 천국과 지옥 등에 대해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전도받은 사람이 신앙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 간증을 듣고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고 성령을 받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태어난 성도들은 설교자를 통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고 신앙이 쑥쑥 자라 가며 열매도 잘 맺게 됩니다.
그러나 만삭이 되어 태어난 아이라도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성도라 할지라도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일꾼들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젖 먹는 신자에서 밥 먹는 신자가 되고, 굳건한 믿음으로 영적인 자녀를 낳을 수 있기까지 수고하고 애쓰며 돌봐야 합니다. 즉 직분을 받아 스스로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까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며 부모의 심정이 되어 사랑으로 보살펴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해산의 수고를 기뻐 받으시고 이 땅에서의 축복은 물론 하늘나라에서 귀한 상급으로 넘치도록 갚아 주십니다(단 12:3).
또한 이사야 66장 9절 후반절에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전도의 능력을 주시며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해산의 기쁨도 주십니다.
3. 권능 받은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부흥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시기에 부활 승천하셨고,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은 더 이상 근심과 두려움에 싸인 나약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확신 가운데 담대히 전파했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이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았지요.
심지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삼천 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나 초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자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지요.
그리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집에서는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이에 성도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고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도록 큰 부흥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행 2:46~47).
사도 바울이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고백한 대로, 여러분도 생명을 낳는 복된 일에 동참하여 하늘의 상급을 쌓으며 해산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도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며 ( )를 얻기 위해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맛보셔야 했다.
2. 만삭이 되어 태어난 아이라도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성도라 할지라도 ( )에 서기까지는 ( )들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
젖 먹는 신자 : 믿음의 성장 과정 중 갓난아기나 어린아이와 같은 시기, 곧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신자를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고전 3:1~2).
밥 먹는 신자 : 믿음의 성장 과정 중 청년과 같은 시기, 곧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하는 신자를 일컫는다(고전 3:1~2).
이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말씀에 따라 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