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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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6
제17과빛
요한일서 1:5
읽을말씀 : 요한일서 1:5 | 외울말씀 : 요한일서 1:5 ㅣ 참고 말씀: 요한복음 1:1
교육목표 : 영적인 빛이 무엇인지 알아 어둠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한다.
빛에는 참으로 신비한 능력들이 담겨 있습니다. 어둠을 밝혀 주고 따뜻하게 해 주며 세균, 곰팡이를 죽이기도 합니다.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빛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만약 세상에 빛이 없다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들도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빛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육적인 빛도 있지만 영적인 빛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육적인 빛이 여러 가지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영적인 빛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겨 있지요.
캄캄한 방 안에 불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우리 삶에 영적인 빛이 임하면 영적인 어둠이 물러갑니다. 영적인 어둠이 있으면 질병이나 가족, 사업터, 일터, 사람과의 문제 등으로 참된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빛이 임하여 어둠이 물러가면 이러한 문제와 어려움이 다 사라지게 되지요. 사람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다 풀어지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1. 영적인 빛과 어둠이란?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했고,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셨습니다. 빛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진리이고, 선이며 사랑이지요. 반대로 어둠은 영적으로 비진리, 불의, 불법, 악 등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와 선과 반대되는 모든 것이 다 어둠이지요.
그러면 성경에서는 빛과 어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성경에 보면 “하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상대를 섬기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는 것들이지요.
다음은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는 것들이 있지요.
또한 “하지 말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분쟁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자기 유익을 구치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시기 질투하지 말라, 수군거리지 말라”는 말씀들이지요.
마지막으로 “버리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시기 질투를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는 것들이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라’ 하신 것을 하고, ‘지키라’ 하신 것을 지키며, ‘하지 말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는 것이 빛이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지키라’ 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은 어둠입니다. 빛이신 하나님 말씀에 벗어나 어둠 안에 거하는 것이지요.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지만 어둠의 세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므로 어둠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지요. 따라서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둠의 세계에서 나와 빛의 세계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2. 빛 가운데 행할 때의 축복
여러분은 지금 빛과 어둠 중 어느 세계에 속해 계십니까?
만일 시험과 환난이 끊이지 않는다면 ‘내가 어둠 가운데 있지는 않은가?’ 하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법을 어기면 그 대가를 받는 것처럼 영계에서도 어둠에 거하는 것이 곧 죄요, 불법이기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즉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 주는 갖가지 시험 환난과 질병과 재앙과 문제들을 만나게 되지요. 그리고 결국에는 무서운 지옥에서 세세토록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거하면 이때부터는 원수 마귀 사단이 건드리지 못합니다. 바로 빛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빛 가운데 거하여 영혼이 잘된 사람에게는 모든 저주가 떠나게 하시고 강건함은 물론 만사형통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빛 가운데 거할 때 모든 저주가 떠나고 축복이 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영적인 빛이 임해 역사하던 어둠의 세력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고 해서 어둠이 물러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둠에 있는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면 어둠의 세력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어둠이 어둠을 물리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둠을 물리치고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반드시 빛 가운데 거해야 하지요. 그럴 때 원수 마귀 사단도 두려워 물러가면서 문제가 해결되고 응답을 받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빛 가운데 거하는 만큼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빛의 권세와 능력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등을 하나 켰을 때와 열 개를 켰을 때의 빛의 밝기는 전혀 다릅니다. 태양 빛이 다르고 달빛이 다르며 별과 별들의 빛도 서로 다르지요. 아무리 많은 별들이 있다 해도 태양 빛 하나만큼은 못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만큼 즉, 빛이신 하나님을 닮아 가는 만큼 우리의 빛도 밝아지게 되지요. 빛이 밝을수록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는 권세와 능력도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의 권세와 능력이 큰 사람이 기도할 때는 자신의 문제만 해결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제까지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그의 기도를 통해 어둠이 물러가기 때문이지요. 또한 어둠이 물러가면서 빛이 임하게 되니 하나님의 축복도 임하는 것입니다.
3. 과연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말씀대로 산다’, ‘빛 가운데 거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나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분명히 그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물론 사귐에도 깊이가 다 다릅니다. 단지 얼굴만 아는 정도에서 시작해서 서로 깊은 비밀까지도 대화할 수 있는 사이가 있지요. 우리가 새신자나 어린아이의 신앙의 단계가 아니라면 당연히 하나님과의 사귐도 더욱 깊은 관계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어린아이 때는 부모가 무조건 돌봐 주지만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 가면 당연히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부모 자녀 간의 사귐도 더 깊어지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자녀 된 우리 사이에도 세월이 더해질수록 더 깊은 사귐의 단계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신앙생활을 오래했고 직분은 있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어려움과 시험 가운데 있다면, ‘내가 과연 빛 가운데 바르게 살고 있는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설령 어떤 문제는 없다 해도 오랫동안 정체되어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며 성령의 음성과 주관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요. 그리고 어느 정도 악의 모양을 버렸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성장하여 장성한 아비의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있는 세세한 악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발견하여 뽑아 버려야 하겠습니다. 윗사람이 되고 권세가 생길수록 더욱 마음을 낮추며 소자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겸손히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상대가 나에게 악을 행한다 해도 감정을 품지 않고 덕과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요. 더구나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신의 의 가운데 화평을 깨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여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됩니다. 범사에 형통함과 축복을 받고 온전히 성결되어 하나님 마음에 합하면 권능까지 받아 크게 쓰임 받게 되지요. 따라서 빛 가운데 행하여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진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는 참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으로 빛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2. 영적으로 어둠은 무엇을 말할까요?
3.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95~11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분량’(요한일서 2:12~14)
1.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 성령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
2.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3.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
4.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4, 5단계) - 장성한 믿음의 분량으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믿음
교육목표 : 영적인 빛이 무엇인지 알아 어둠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한다.
빛에는 참으로 신비한 능력들이 담겨 있습니다. 어둠을 밝혀 주고 따뜻하게 해 주며 세균, 곰팡이를 죽이기도 합니다.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빛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만약 세상에 빛이 없다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들도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빛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육적인 빛도 있지만 영적인 빛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육적인 빛이 여러 가지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영적인 빛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겨 있지요.
캄캄한 방 안에 불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우리 삶에 영적인 빛이 임하면 영적인 어둠이 물러갑니다. 영적인 어둠이 있으면 질병이나 가족, 사업터, 일터, 사람과의 문제 등으로 참된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빛이 임하여 어둠이 물러가면 이러한 문제와 어려움이 다 사라지게 되지요. 사람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다 풀어지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1. 영적인 빛과 어둠이란?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했고,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셨습니다. 빛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진리이고, 선이며 사랑이지요. 반대로 어둠은 영적으로 비진리, 불의, 불법, 악 등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와 선과 반대되는 모든 것이 다 어둠이지요.
그러면 성경에서는 빛과 어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성경에 보면 “하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상대를 섬기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는 것들이지요.
다음은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는 것들이 있지요.
또한 “하지 말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분쟁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자기 유익을 구치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시기 질투하지 말라, 수군거리지 말라”는 말씀들이지요.
마지막으로 “버리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시기 질투를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는 것들이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라’ 하신 것을 하고, ‘지키라’ 하신 것을 지키며, ‘하지 말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는 것이 빛이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지키라’ 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은 어둠입니다. 빛이신 하나님 말씀에 벗어나 어둠 안에 거하는 것이지요.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지만 어둠의 세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므로 어둠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지요. 따라서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둠의 세계에서 나와 빛의 세계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2. 빛 가운데 행할 때의 축복
여러분은 지금 빛과 어둠 중 어느 세계에 속해 계십니까?
만일 시험과 환난이 끊이지 않는다면 ‘내가 어둠 가운데 있지는 않은가?’ 하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법을 어기면 그 대가를 받는 것처럼 영계에서도 어둠에 거하는 것이 곧 죄요, 불법이기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즉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 주는 갖가지 시험 환난과 질병과 재앙과 문제들을 만나게 되지요. 그리고 결국에는 무서운 지옥에서 세세토록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거하면 이때부터는 원수 마귀 사단이 건드리지 못합니다. 바로 빛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빛 가운데 거하여 영혼이 잘된 사람에게는 모든 저주가 떠나게 하시고 강건함은 물론 만사형통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빛 가운데 거할 때 모든 저주가 떠나고 축복이 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영적인 빛이 임해 역사하던 어둠의 세력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고 해서 어둠이 물러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둠에 있는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면 어둠의 세력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어둠이 어둠을 물리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둠을 물리치고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반드시 빛 가운데 거해야 하지요. 그럴 때 원수 마귀 사단도 두려워 물러가면서 문제가 해결되고 응답을 받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빛 가운데 거하는 만큼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빛의 권세와 능력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등을 하나 켰을 때와 열 개를 켰을 때의 빛의 밝기는 전혀 다릅니다. 태양 빛이 다르고 달빛이 다르며 별과 별들의 빛도 서로 다르지요. 아무리 많은 별들이 있다 해도 태양 빛 하나만큼은 못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만큼 즉, 빛이신 하나님을 닮아 가는 만큼 우리의 빛도 밝아지게 되지요. 빛이 밝을수록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는 권세와 능력도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의 권세와 능력이 큰 사람이 기도할 때는 자신의 문제만 해결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제까지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그의 기도를 통해 어둠이 물러가기 때문이지요. 또한 어둠이 물러가면서 빛이 임하게 되니 하나님의 축복도 임하는 것입니다.
3. 과연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말씀대로 산다’, ‘빛 가운데 거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나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분명히 그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물론 사귐에도 깊이가 다 다릅니다. 단지 얼굴만 아는 정도에서 시작해서 서로 깊은 비밀까지도 대화할 수 있는 사이가 있지요. 우리가 새신자나 어린아이의 신앙의 단계가 아니라면 당연히 하나님과의 사귐도 더욱 깊은 관계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어린아이 때는 부모가 무조건 돌봐 주지만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 가면 당연히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부모 자녀 간의 사귐도 더 깊어지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자녀 된 우리 사이에도 세월이 더해질수록 더 깊은 사귐의 단계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신앙생활을 오래했고 직분은 있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어려움과 시험 가운데 있다면, ‘내가 과연 빛 가운데 바르게 살고 있는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설령 어떤 문제는 없다 해도 오랫동안 정체되어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며 성령의 음성과 주관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요. 그리고 어느 정도 악의 모양을 버렸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성장하여 장성한 아비의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있는 세세한 악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발견하여 뽑아 버려야 하겠습니다. 윗사람이 되고 권세가 생길수록 더욱 마음을 낮추며 소자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겸손히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상대가 나에게 악을 행한다 해도 감정을 품지 않고 덕과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요. 더구나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신의 의 가운데 화평을 깨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여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됩니다. 범사에 형통함과 축복을 받고 온전히 성결되어 하나님 마음에 합하면 권능까지 받아 크게 쓰임 받게 되지요. 따라서 빛 가운데 행하여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진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는 참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으로 빛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2. 영적으로 어둠은 무엇을 말할까요?
3.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95~11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분량’(요한일서 2:12~14)
1.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 성령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
2.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3.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
4.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4, 5단계) - 장성한 믿음의 분량으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믿음
2019-04-19
제16과부활의 영적인 의미
요한복음 11:25~2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1:25~2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1:25 ㅣ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16~17
교육목표 :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크신 희생과 사랑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부활절은 주님의 부활을 서로 축하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참으로 복된 절기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부활과 영생,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을 나타냅니다
오늘날은 과학과 의학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사람의 삶과 죽음까지도 주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사람의 호흡이 끊어졌다가 소생될 수는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의술이나 최첨단 장비로도 완전히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지는 못합니다.
반면,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큰 소리로 명하시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나왔지요. 이미 부패되어 소생할 수 없는 세포 하나하나를 재생시키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지만 창조주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다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는 이보다 더 놀라운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구원받은 성도들 중 수명이 다해 죽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창세 이래 구원받은 성도 중에는 수백,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죽은 지 몇십 년만 지나도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부패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는 마른 뼈도 아니고, 완전히 썩어 분해된 몸이 다시 살아납니다. 몸의 형체가 복원되어 몸의 주인인 영혼과 결합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때 소생되는 몸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갈 수도 있고, 7년 혼인 잔치가 베풀어지는 영의 공간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즉 흙으로 지어진 몸이 영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신령한 몸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권능으로 모든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또한 이 권능으로 살리셨지요.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행적을 성경에 기록하심으로 신령한 부활체의 성질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날 일임을 확실히 믿도록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권능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3도 화상으로 완전히 익어버린 피부도 새롭게 만드시며, 완전히 죽어 버린 신경도 살려 주셨지요. 수많은 사람이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고, 심지어 호흡이 완전히 끊어지고 몸이 뻣뻣하게 굳은 사람도 살아났습니다. 이 외에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도록 분명한 증거들을 수없이 나타내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을 나타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영의 공간에 거하시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이 영광을 홀로 누리기보다 자녀들과 함께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고 아름다운 빛의 공간에 거할 수 있도록 인간을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우선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시고 영의 공간 곧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온전한 영광은 아니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빛의 공간에 아담이 함께 거하며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지요.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살 동안 상대성을 모르기 때문에 풍요로운 그곳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후 이 땅으로 쫓겨나 눈물, 슬픔, 질병, 고통을 겪어본 뒤에야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즉 상대성을 체험한 후에야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담은 이처럼 범죄한 후 상대성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녀로 거듭나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에덴동산과는 차원이 다른 곳입니다.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처소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입니다. 우리를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에 들이기 원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도 아끼지 않고 보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속량되고 주님을 믿음으로 영원히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설령 수명이 다해 죽어도 다시 사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이런 영광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빛 곧 진리 안에 거하는 만큼 빛의 공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깨닫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도록 역사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자녀들과 함께 나누기 원하십니다(요 13:32).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 거하기를 우리 자신보다 더 간절히 바라십니다.
3.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나타냅니다
모든 사람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서 아름답고 영원한 천국에서 산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질 운명이었지요.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대속물로 내어주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육신을 입으실 이유도, 십자가 처형으로 죽음을 겪으실 이유도 없었지만, 온 인류를 사망에서 건지시려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셨지만 죄가 전혀 없기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셨지요.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몸이 죽지 않도록, 죽어도 다시 살도록 대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심으로 장차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들을 그 아들의 피로 깨끗이 씻겨 주시고, 참으로 위대하고 아름다우시며 선하신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천국 처소까지 예비하셨습니다. 장차 공중 강림하신 주님과 7년 혼인 잔치가 있을 영의 공간과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천국은 참으로 신비롭고 영화로운 곳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켜 세마포를 입히시고 공중에서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하실 것입니다. 그 후 지상 재림하신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다가 백보좌 대심판 후 정성껏 예비하신 천국의 처소로 들어가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보답하려면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더 이상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없도록 신부단장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에 가장 빛나는 부활체로 변화되어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 )을 나타낸다.
②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 )을 나타낸다.
③ 하나님의 크신 ( )을 나타낸다.
2.‘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누구를 말할까요?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한 끼 이상 금식과 감사 기도드리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목표 :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크신 희생과 사랑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부활절은 주님의 부활을 서로 축하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참으로 복된 절기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부활과 영생,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을 나타냅니다
오늘날은 과학과 의학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사람의 삶과 죽음까지도 주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사람의 호흡이 끊어졌다가 소생될 수는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의술이나 최첨단 장비로도 완전히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지는 못합니다.
반면,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큰 소리로 명하시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나왔지요. 이미 부패되어 소생할 수 없는 세포 하나하나를 재생시키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지만 창조주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다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는 이보다 더 놀라운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구원받은 성도들 중 수명이 다해 죽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창세 이래 구원받은 성도 중에는 수백,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죽은 지 몇십 년만 지나도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부패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는 마른 뼈도 아니고, 완전히 썩어 분해된 몸이 다시 살아납니다. 몸의 형체가 복원되어 몸의 주인인 영혼과 결합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때 소생되는 몸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갈 수도 있고, 7년 혼인 잔치가 베풀어지는 영의 공간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즉 흙으로 지어진 몸이 영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신령한 몸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권능으로 모든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또한 이 권능으로 살리셨지요.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행적을 성경에 기록하심으로 신령한 부활체의 성질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날 일임을 확실히 믿도록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권능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3도 화상으로 완전히 익어버린 피부도 새롭게 만드시며, 완전히 죽어 버린 신경도 살려 주셨지요. 수많은 사람이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고, 심지어 호흡이 완전히 끊어지고 몸이 뻣뻣하게 굳은 사람도 살아났습니다. 이 외에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도록 분명한 증거들을 수없이 나타내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을 나타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영의 공간에 거하시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이 영광을 홀로 누리기보다 자녀들과 함께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고 아름다운 빛의 공간에 거할 수 있도록 인간을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우선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시고 영의 공간 곧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온전한 영광은 아니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빛의 공간에 아담이 함께 거하며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지요.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살 동안 상대성을 모르기 때문에 풍요로운 그곳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후 이 땅으로 쫓겨나 눈물, 슬픔, 질병, 고통을 겪어본 뒤에야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즉 상대성을 체험한 후에야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담은 이처럼 범죄한 후 상대성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녀로 거듭나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에덴동산과는 차원이 다른 곳입니다.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처소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입니다. 우리를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에 들이기 원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도 아끼지 않고 보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속량되고 주님을 믿음으로 영원히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설령 수명이 다해 죽어도 다시 사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이런 영광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빛 곧 진리 안에 거하는 만큼 빛의 공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깨닫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도록 역사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자녀들과 함께 나누기 원하십니다(요 13:32).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 거하기를 우리 자신보다 더 간절히 바라십니다.
3.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나타냅니다
모든 사람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서 아름답고 영원한 천국에서 산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질 운명이었지요.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대속물로 내어주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육신을 입으실 이유도, 십자가 처형으로 죽음을 겪으실 이유도 없었지만, 온 인류를 사망에서 건지시려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셨지만 죄가 전혀 없기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셨지요.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몸이 죽지 않도록, 죽어도 다시 살도록 대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심으로 장차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들을 그 아들의 피로 깨끗이 씻겨 주시고, 참으로 위대하고 아름다우시며 선하신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천국 처소까지 예비하셨습니다. 장차 공중 강림하신 주님과 7년 혼인 잔치가 있을 영의 공간과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천국은 참으로 신비롭고 영화로운 곳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켜 세마포를 입히시고 공중에서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하실 것입니다. 그 후 지상 재림하신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다가 백보좌 대심판 후 정성껏 예비하신 천국의 처소로 들어가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보답하려면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더 이상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없도록 신부단장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에 가장 빛나는 부활체로 변화되어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 )을 나타낸다.
②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 )을 나타낸다.
③ 하나님의 크신 ( )을 나타낸다.
2.‘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누구를 말할까요?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한 끼 이상 금식과 감사 기도드리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2019-04-12
제15과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
디모데후서 2:20~21
읽을말씀 : 디모데후서 2:20~21 | 외울말씀 : 디모데후서 2:20~21 ㅣ 참고 말씀: 예레미야 17:9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사랑받고 귀히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사랑하는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한 이유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했습니다.
그릇의 원래 용도는 무엇인가를 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릇으로 비유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 담을 수 있고,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하나님의 권능도 담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그릇을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각양 좋은 은사들과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큰 집에는 그릇도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할지라도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영혼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입은 빛나는 영혼을 발견하면 너무 기뻐하시며 그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고 더욱 많은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이와 같은 참된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한다면 바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을까요?
2.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1)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을 깨끗게 하여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값비싼 금그릇이 보기에는 좋다 해도 만약 더럽고 냄새나는 오물이 묻어 있다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물로 씻어 모든 더러움을 제거한 후에야 그릇으로서 사용할 수 있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응답받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은혜와 각양의 은사들, 그리고 물질의 복, 건강의 복 등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시기 위해 예비해 놓으셨는데 이러한 모든 복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지요.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고, 마태복음 15장 18~19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야 하나님 앞에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씻는 것은 바로 영적인 물인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하지요.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 말씀에는 씻는 작용을 하는 말씀이 있으니 우리가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곧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성들과 악성들이 버려지니 자연히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면 몸의 행실도 거룩해지고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게 되지요.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혈기 부리던 사람이 혈기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속이던 사람이 속이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지요. 남을 때리던 사람이 때리지 않는 사람으로, 도적질하던 사람이 도적질하지 않고 도리어 값없이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겨지면 겉도 깨끗한 진리의 행함이 나옵니다.
혹여 ‘어떻게 성경의 그 많은 계명을 다 지켜 행할 수 있을까?’ 하며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했습니다(요일 5:3).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하는 일은 즐겁고 행복하지 힘들거나 짜증스럽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며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지 않지요. 오히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 뜻을 위배했을 때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2) 연단을 잘 받아 영적 빛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지나 목걸이를 만드는 원석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손에 연마된 후에는 아름답고 찬란한 보석으로 탄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육 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 때때로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무슨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즉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시련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과정을 잘 통과해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고 큰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이에 죄의 담이 있어 시험 환난을 당한다면 축복을 위한 연단이 아닙니다. 이때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깨우쳐 신속히 회개해야 어려움이 사라집니다.
반대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깨끗한 그릇이 되었다 해도 때를 좇아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흠 없으신 거룩한 빛 자체이시니 사랑하는 자녀들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빛의 차원에 이르도록 단련하십니다. 이러한 축복의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선과 사랑으로 채우면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빛의 강도가 커짐에 따라 그 권세와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나지요.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내쫓지 못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자 즉시 나가고 아이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한 것은 그들의 영적 빛과 예수님의 영적 빛의 차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밝은 영적 빛의 차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악으로 악을 갚지 말며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연단 가운데서도 믿음과 선, 사랑과 의가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 귀신도 제어할 수 있고 어떠한 질병이나 연약함도 고칠 수 있습니다.
당회장님의 경우를 보면, 지금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참으로 많은 연단과 고통의 시간을 지냈습니다. 특히 목회자로서 죽음과 같은 시련을 겪어야 했지요. 가족처럼 대해 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했고 아무 잘못이 없는 데도 큰 죄를 범한 죄인인 양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교회를 심히 어렵게 만들고 떠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당회장님은 마음에서 조금도 그들에 대해 싫어버린 바 되지 않았고, 어찌하든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습니다. 일꾼들에게는 악으로 갚지 말라고 누누이 당부하시며, 어떠한 악을 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선과 사랑으로만 대하셨습니다.
이러한 당회장님의 믿음과 선과 사랑과 의가 연단을 통해 하나님 앞에, 원수 마귀 앞에 확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더 크고 놀라운 권능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여시고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넘는 인파가 모인 가운데 집회를 인도하시며, 시공간을 초월한 권능을 베푸셨지요.
영적인 빛으로 둘러싸인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성결을 이룸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진리인 하나님 ( )으로 마음을 깨끗게 하여 ( )을 이루어야 한다.
② ( )을 잘 받아 영적 ( )을 낼 수 있어야 한다.
2.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77~9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참마음이란?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는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을 말한다.
이는 곧 온 영을 이루었을 때의 마음이다.
온전한 믿음이란?
참마음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말한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즉 하나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이다.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사랑받고 귀히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사랑하는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한 이유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했습니다.
그릇의 원래 용도는 무엇인가를 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릇으로 비유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 담을 수 있고,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하나님의 권능도 담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그릇을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각양 좋은 은사들과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큰 집에는 그릇도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할지라도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영혼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입은 빛나는 영혼을 발견하면 너무 기뻐하시며 그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고 더욱 많은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이와 같은 참된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한다면 바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을까요?
2.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1)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을 깨끗게 하여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값비싼 금그릇이 보기에는 좋다 해도 만약 더럽고 냄새나는 오물이 묻어 있다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물로 씻어 모든 더러움을 제거한 후에야 그릇으로서 사용할 수 있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응답받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은혜와 각양의 은사들, 그리고 물질의 복, 건강의 복 등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시기 위해 예비해 놓으셨는데 이러한 모든 복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지요.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고, 마태복음 15장 18~19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야 하나님 앞에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씻는 것은 바로 영적인 물인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하지요.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 말씀에는 씻는 작용을 하는 말씀이 있으니 우리가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곧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성들과 악성들이 버려지니 자연히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면 몸의 행실도 거룩해지고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게 되지요.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혈기 부리던 사람이 혈기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속이던 사람이 속이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지요. 남을 때리던 사람이 때리지 않는 사람으로, 도적질하던 사람이 도적질하지 않고 도리어 값없이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겨지면 겉도 깨끗한 진리의 행함이 나옵니다.
혹여 ‘어떻게 성경의 그 많은 계명을 다 지켜 행할 수 있을까?’ 하며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했습니다(요일 5:3).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하는 일은 즐겁고 행복하지 힘들거나 짜증스럽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며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지 않지요. 오히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 뜻을 위배했을 때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2) 연단을 잘 받아 영적 빛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지나 목걸이를 만드는 원석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손에 연마된 후에는 아름답고 찬란한 보석으로 탄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육 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 때때로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무슨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즉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시련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과정을 잘 통과해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고 큰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이에 죄의 담이 있어 시험 환난을 당한다면 축복을 위한 연단이 아닙니다. 이때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깨우쳐 신속히 회개해야 어려움이 사라집니다.
반대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깨끗한 그릇이 되었다 해도 때를 좇아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흠 없으신 거룩한 빛 자체이시니 사랑하는 자녀들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빛의 차원에 이르도록 단련하십니다. 이러한 축복의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선과 사랑으로 채우면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빛의 강도가 커짐에 따라 그 권세와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나지요.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내쫓지 못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자 즉시 나가고 아이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한 것은 그들의 영적 빛과 예수님의 영적 빛의 차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밝은 영적 빛의 차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악으로 악을 갚지 말며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연단 가운데서도 믿음과 선, 사랑과 의가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 귀신도 제어할 수 있고 어떠한 질병이나 연약함도 고칠 수 있습니다.
당회장님의 경우를 보면, 지금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참으로 많은 연단과 고통의 시간을 지냈습니다. 특히 목회자로서 죽음과 같은 시련을 겪어야 했지요. 가족처럼 대해 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했고 아무 잘못이 없는 데도 큰 죄를 범한 죄인인 양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교회를 심히 어렵게 만들고 떠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당회장님은 마음에서 조금도 그들에 대해 싫어버린 바 되지 않았고, 어찌하든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습니다. 일꾼들에게는 악으로 갚지 말라고 누누이 당부하시며, 어떠한 악을 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선과 사랑으로만 대하셨습니다.
이러한 당회장님의 믿음과 선과 사랑과 의가 연단을 통해 하나님 앞에, 원수 마귀 앞에 확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더 크고 놀라운 권능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여시고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넘는 인파가 모인 가운데 집회를 인도하시며, 시공간을 초월한 권능을 베푸셨지요.
영적인 빛으로 둘러싸인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성결을 이룸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진리인 하나님 ( )으로 마음을 깨끗게 하여 ( )을 이루어야 한다.
② ( )을 잘 받아 영적 ( )을 낼 수 있어야 한다.
2.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77~9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참마음이란?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는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을 말한다.
이는 곧 온 영을 이루었을 때의 마음이다.
온전한 믿음이란?
참마음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말한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즉 하나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이다.
2019-04-05
제14과주님을 믿는다는 것
히브리서 12:1~2
읽을말씀 : 히브리서 12:1~2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15:21 ㅣ 참고 말씀: 레위기 25:23~28
교육목표 :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는 자격 조건과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참된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만세 전에 감추어진 인간 구원의 섭리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을 좇아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죄가 들어왔고 아담의 죄성을 이어받은 모든 인류 역시 죄로 인해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는데 바로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세주의 자격을 갖춘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2.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항상 사랑과 공의 가운데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인류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십니다. 한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이라 해도 국가의 법을 따르듯이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도 성경에 기록된 영계의 법칙에 따라 다스리십니다.
영계의 법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법 곧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용서하는 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원수 마귀에게 넘어간 권세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령 아담에게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지만(창 1:28), 그의 불순종으로 그가 가진 모든 권세와 영광이 마귀에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눅 4:6~7). 이렇게 사망에 이르게 된 모든 사람이 죄를 용서받고 아담이 누렸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 토지 무르기 법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레 25:23~28). 즉 토지는 영영히 팔지 말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할지라도 그 근족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게 하는 법이지요. 다시 말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격을 규정하여 그대로 행하면 토지를 되돌려 받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 법에 의하면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사람이 영영히 팔 수 없습니다.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나타나면 물러 주어야 하지요. 이처럼 천하 만물도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아담에게 넘겨받은 권세를 마귀가 영영히 소유할 수는 없지요. 아담의 죄를 대속할 만한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그 권세를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토지 무르기 법에 따라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어떻게 되돌려 받을 수 있을까요? 다음 네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레위기 25장 25절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했습니다. 아담이 넘겨준 권세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하지요.
고린도전서 15장 21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했습니다. 즉 사망이 사람인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니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합니다(요 1:14).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죄를 대속하려면 죄인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예는 구세주의 조건에 합당치 않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남녀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마 1:18). 그러니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죄가 없으십니다.
셋째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가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을 때 그것을 무르려면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은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빚을 갚아 줄 수 없지요.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므로 원죄가 없고 말씀대로 사셨기에 자범죄도 없지요. 이처럼 죄가 없기 때문에 어둠의 권세를 굴복시키며 사망까지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토지 무르기가 온전히 이루어지려면 위의 세 가지 조건 외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형이 아무리 부자여도 사랑이 없으면 빚더미에 오른 동생을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었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려 죽으셨지요. 이로 인해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3.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진리로 변화되는 것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질병, 연약함, 가난 등 온갖 저주에서도 놓인 바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셔서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쓰셔서 우리 생각을 통해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셔서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응답받지 못하고 시험 환난 가운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참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죄를 버리지 않고 진리로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을 알면서도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락을 즐기는가 하면 아예 지키지 않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을 알면서도 아까워 일부만 드리거나 아예 드리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니(말 3:8) 어찌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치 않고 혈기를 내며 되갚아 주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원망하고 탄식하지요.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 뜻대로 행하고자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해야지요.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악한 말을 내던 입술이 선한 말을 하는 입술로, 매사에 불평하던 사람이 범사에 감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을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지고 있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심으로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인생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며, 가정, 일터, 사업터에 축복이 넘쳐 나가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을 써보세요.
① ( )이어야 한다.
②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한다.
③ ( )이 있어야 한다.
④ 사랑이 있어야 한다.
2. 사망에 이르게 된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아 첫 사람 아담이 누렸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57~7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의 중요성’
주일 성수는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한다는 믿음의 표현이며,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함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를 내보일 때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지 못하며 구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마음껏 축복해 주실 수 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십일조와 주일 성수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며, 구원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분야이다.
교육목표 :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는 자격 조건과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참된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만세 전에 감추어진 인간 구원의 섭리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을 좇아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죄가 들어왔고 아담의 죄성을 이어받은 모든 인류 역시 죄로 인해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는데 바로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세주의 자격을 갖춘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2.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항상 사랑과 공의 가운데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인류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십니다. 한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이라 해도 국가의 법을 따르듯이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도 성경에 기록된 영계의 법칙에 따라 다스리십니다.
영계의 법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법 곧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용서하는 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원수 마귀에게 넘어간 권세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령 아담에게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지만(창 1:28), 그의 불순종으로 그가 가진 모든 권세와 영광이 마귀에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눅 4:6~7). 이렇게 사망에 이르게 된 모든 사람이 죄를 용서받고 아담이 누렸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 토지 무르기 법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레 25:23~28). 즉 토지는 영영히 팔지 말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할지라도 그 근족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게 하는 법이지요. 다시 말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격을 규정하여 그대로 행하면 토지를 되돌려 받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 법에 의하면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사람이 영영히 팔 수 없습니다.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나타나면 물러 주어야 하지요. 이처럼 천하 만물도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아담에게 넘겨받은 권세를 마귀가 영영히 소유할 수는 없지요. 아담의 죄를 대속할 만한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그 권세를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토지 무르기 법에 따라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어떻게 되돌려 받을 수 있을까요? 다음 네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레위기 25장 25절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했습니다. 아담이 넘겨준 권세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하지요.
고린도전서 15장 21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했습니다. 즉 사망이 사람인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니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합니다(요 1:14).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죄를 대속하려면 죄인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예는 구세주의 조건에 합당치 않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남녀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마 1:18). 그러니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죄가 없으십니다.
셋째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가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을 때 그것을 무르려면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은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빚을 갚아 줄 수 없지요.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므로 원죄가 없고 말씀대로 사셨기에 자범죄도 없지요. 이처럼 죄가 없기 때문에 어둠의 권세를 굴복시키며 사망까지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토지 무르기가 온전히 이루어지려면 위의 세 가지 조건 외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형이 아무리 부자여도 사랑이 없으면 빚더미에 오른 동생을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었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려 죽으셨지요. 이로 인해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3.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진리로 변화되는 것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질병, 연약함, 가난 등 온갖 저주에서도 놓인 바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셔서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쓰셔서 우리 생각을 통해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셔서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응답받지 못하고 시험 환난 가운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참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죄를 버리지 않고 진리로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을 알면서도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락을 즐기는가 하면 아예 지키지 않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을 알면서도 아까워 일부만 드리거나 아예 드리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니(말 3:8) 어찌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치 않고 혈기를 내며 되갚아 주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원망하고 탄식하지요.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 뜻대로 행하고자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해야지요.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악한 말을 내던 입술이 선한 말을 하는 입술로, 매사에 불평하던 사람이 범사에 감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을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지고 있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심으로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인생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며, 가정, 일터, 사업터에 축복이 넘쳐 나가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을 써보세요.
① ( )이어야 한다.
②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한다.
③ ( )이 있어야 한다.
④ 사랑이 있어야 한다.
2. 사망에 이르게 된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아 첫 사람 아담이 누렸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57~7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의 중요성’
주일 성수는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한다는 믿음의 표현이며,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함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를 내보일 때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지 못하며 구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마음껏 축복해 주실 수 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십일조와 주일 성수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며, 구원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분야이다.
2019-03-29
제13과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히브리서 11:3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3 | 외울말씀 : 로마서 1:20 ㅣ 참고 말씀: 창세기 1:1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믿음으로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피조물인 사람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한하신 분입니다. 사람 편에서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한정된 사람의 식견으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요?
1) 하나님은 성경 66권의 저자가 되십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했습니다. 66권으로 이루어진 성경은 약 1600년간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는데도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짝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시대마다 합당한 사람들에게 성령의 감동함을 주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직접 계시하신 것이므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마다 약속하신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만들어진 시점이 있고 역사도 그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도 어떻게 존재하게 되셨는지 시작이 있어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시작이 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상상력이나 손으로 조각한 우상과는 달리 영원 전부터 계신 참 신이며 스스로 존재하는 분입니다. 누군가 하나님을 낳거나 지었다면 하나님은 결코 완전한 분이 될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요 1:1, 창 1:1).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무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지요. 사람 역시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음 받았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이 땅에서 경작받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각 시대마다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나타났으며,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나타내 보이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지 못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했고, 히브리서 11장 3절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맨 처음 아무것도 없는 무(無)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 풀과 나무, 새와 각종 짐승과 물고기는 물론 사람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까닭은 창조라는 것이 세상에서 배운 지식이나 경험과 너무나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생물체가 저절로 발생하고 진화되어 오늘날과 같이 번성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이론과 지식의 틀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면 성경을 믿지 못하지요.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창조의 증거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있습니다. 백인, 흑인, 황인 모든 사람의 눈과 귀는 두 개에, 코 하나에 콧구멍은 두 개이지요. 육지의 짐승, 하늘을 나는 새, 바다의 물고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종(種)들의 구조나 각각의 위치가 약간 다를 수는 있지만 대동소이하지요.
이러한 사실이 어찌 우연의 일치이겠습니까? 수많은 동물이 동일한 구조를 가진 것은 이를 설계하고 지은 창조주가 한 분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만일 신이 여럿이라면 각 생물들의 생김새나 구조를 얼마든지 다양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에 모든 생명체가 동일한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밖에도 자연과 우주를 살펴보면 그 안에는 수많은 창조의 증거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신 말씀대로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지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자연 속에 아무리 많은 증거들이 있어도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더욱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 증거가 바로 권능의 역사들이지요. 즉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기사와 표적들을 나타내심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3.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
성경을 보면 신기하고 놀라운 권능의 역사가 수없이 나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태양이 운행을 멈추거나 뒤로 물러가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먹지 못할 쓴물이 먹을 수 있는 단물로 바뀌며, 반석을 치니 물이 솟아났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각종 질병들이 치료되며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의 역사들을 합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는 1982년 개척 이후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을 통해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가 무수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각종 암을 비롯하여 결핵, 당뇨병, 뇌성마비, 디스크, 에이즈, 문둥병, 백혈병 등 불치, 난치병이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온전케 되고, 소아마비, 교통사고나 각종 사고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받고 그 자리에서 걷고 뛰었습니다.
또한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흉터 없이 깨끗해졌습니다. 이미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 기도받고 살아나며,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무수합니다. 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온전해졌습니다.
이 외에도 비가 멈추고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믿음으로 움직여지는 것을 항상 체험하고 있습니다. 매년 7, 8월 전국에 태풍이나 장마로 많은 비가 내려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고 맑았지요. 하늘에서 수많은 잠자리가 내려와 모기를 소탕해 주고,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맑은 하늘에서 지금도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던 것처럼, 당회장님께서 기도해 주신 권능의 손수건을 통해 수많은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사진이나 이름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도 치료와 응답받는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지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누구나 권능을 체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믿는구나.” 하고 인정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듣고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참 믿음의 시작입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행함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마음의 소원에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2.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창조의 증거들은 무엇일까요?
3. 자신이 체험한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를 전하고 있나요?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37~5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된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를 말한다. 즉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이다.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믿음으로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피조물인 사람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한하신 분입니다. 사람 편에서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한정된 사람의 식견으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요?
1) 하나님은 성경 66권의 저자가 되십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했습니다. 66권으로 이루어진 성경은 약 1600년간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는데도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짝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시대마다 합당한 사람들에게 성령의 감동함을 주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직접 계시하신 것이므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마다 약속하신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만들어진 시점이 있고 역사도 그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도 어떻게 존재하게 되셨는지 시작이 있어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시작이 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상상력이나 손으로 조각한 우상과는 달리 영원 전부터 계신 참 신이며 스스로 존재하는 분입니다. 누군가 하나님을 낳거나 지었다면 하나님은 결코 완전한 분이 될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요 1:1, 창 1:1).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무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지요. 사람 역시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음 받았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이 땅에서 경작받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각 시대마다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나타났으며,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나타내 보이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지 못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했고, 히브리서 11장 3절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맨 처음 아무것도 없는 무(無)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 풀과 나무, 새와 각종 짐승과 물고기는 물론 사람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까닭은 창조라는 것이 세상에서 배운 지식이나 경험과 너무나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생물체가 저절로 발생하고 진화되어 오늘날과 같이 번성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이론과 지식의 틀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면 성경을 믿지 못하지요.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창조의 증거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있습니다. 백인, 흑인, 황인 모든 사람의 눈과 귀는 두 개에, 코 하나에 콧구멍은 두 개이지요. 육지의 짐승, 하늘을 나는 새, 바다의 물고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종(種)들의 구조나 각각의 위치가 약간 다를 수는 있지만 대동소이하지요.
이러한 사실이 어찌 우연의 일치이겠습니까? 수많은 동물이 동일한 구조를 가진 것은 이를 설계하고 지은 창조주가 한 분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만일 신이 여럿이라면 각 생물들의 생김새나 구조를 얼마든지 다양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에 모든 생명체가 동일한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밖에도 자연과 우주를 살펴보면 그 안에는 수많은 창조의 증거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신 말씀대로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지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자연 속에 아무리 많은 증거들이 있어도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더욱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 증거가 바로 권능의 역사들이지요. 즉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기사와 표적들을 나타내심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3.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
성경을 보면 신기하고 놀라운 권능의 역사가 수없이 나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태양이 운행을 멈추거나 뒤로 물러가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먹지 못할 쓴물이 먹을 수 있는 단물로 바뀌며, 반석을 치니 물이 솟아났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각종 질병들이 치료되며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의 역사들을 합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는 1982년 개척 이후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을 통해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가 무수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각종 암을 비롯하여 결핵, 당뇨병, 뇌성마비, 디스크, 에이즈, 문둥병, 백혈병 등 불치, 난치병이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온전케 되고, 소아마비, 교통사고나 각종 사고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받고 그 자리에서 걷고 뛰었습니다.
또한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흉터 없이 깨끗해졌습니다. 이미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 기도받고 살아나며,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무수합니다. 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온전해졌습니다.
이 외에도 비가 멈추고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믿음으로 움직여지는 것을 항상 체험하고 있습니다. 매년 7, 8월 전국에 태풍이나 장마로 많은 비가 내려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고 맑았지요. 하늘에서 수많은 잠자리가 내려와 모기를 소탕해 주고,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맑은 하늘에서 지금도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던 것처럼, 당회장님께서 기도해 주신 권능의 손수건을 통해 수많은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사진이나 이름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도 치료와 응답받는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지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누구나 권능을 체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믿는구나.” 하고 인정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듣고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참 믿음의 시작입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행함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마음의 소원에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2.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창조의 증거들은 무엇일까요?
3. 자신이 체험한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를 전하고 있나요?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37~5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된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를 말한다. 즉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이다.
2019-03-22
제12과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3)
에베소서 6:10~18
읽을말씀 : 에베소서 6:10~18 | 외울말씀 : 에베소서 6:18 ㅣ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6
교육목표 :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으로 무장한 영적 장수가 되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고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한다.
1.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모든 화전을 소멸하라(16절)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려면 16절에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했습니다. 아무리 단단한 갑옷을 입고 그 위에 허리띠와 흉배와 신을 갖추었다 해도 적이 칼이나 창으로 공격할 때 막아낼 방패가 없다면 어찌되겠습니까.
방패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도구입니다. 또한 화전이란 화살 끝에 불을 붙인 불화살을 말하는데 일단 불붙은 화살이 몸에 닿게 되면 아무리 갑옷을 입었다 해도 큰 화를 당하지요. 이러한 상황들을 대비하기 위해서 반드시 방패가 있어야 하는데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불같은 공격을 막아내려면 영적인 방패가 있어야 하지요.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은 후, 믿음으로써 방패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이 그만큼 중요함을 강조해 주고 있는 것이며, 믿음으로만이 구원받을 수 있고, 믿음이 있을 때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히 11:6),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합니다(시 37:4).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죽음 앞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을 내보였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우글거리는 사자 굴 속에 들어간다 해도,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들어간다 해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지요. 이들이 가진 믿음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벼랑 끝까지 밀려가는 상황에서 ‘이 정도면 이제 하나님께서 구해 주시겠지.’ 하는 조건부적인 믿음이 아니었지요.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질 때쯤 되면 하나님이 구해 주실 거야.’ 하지 않았습니다. 번연히 죽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좇았지요. 이는 벼랑 끝에서 떨어지면서도 변함없는 참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자신에게 맞춰 한계선을 그어 놓고 그 선까지는 믿음을 지키는 것처럼 하다가도 그 한계를 넘는 상황이 발생하면 결국 세상을 의지합니다. 벼랑 끝까지 밀려간 것도 아닌데 이러다가는 정말 떨어지겠다 싶은 상황이 되면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지요.
참 믿음은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떨어져야 한다면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믿음으로 벼랑에서 떨어지면서도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할 때 참으로 ‘믿음이 있다.’ 인정하시지요. 이 믿음만 가진다면 응답받지 못할 것이 없고 어떤 마귀의 궤계라도 이기지 못할 것이 없지요. 이런 믿음으로 방패를 삼을 때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할 능력이 주어집니다.
이처럼 중요한 믿음의 방패를 가지려면 반드시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믿음이란 당장 현실로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믿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면 순종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순종이요, 이렇게 순종할 때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친히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여호사밧왕은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유다를 공격해 왔을 때 백성들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하며, 거룩한 예복을 입힌 성가대를 군대 앞에 앞세워 하나님을 찬송케 했습니다(대하 20장).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즉 믿음의 방패가 있었기에 순종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적군 안에 내분이 일어나 서로 살육하여 자멸되도록 역사하셨고, 이 일을 통해 모든 이방 나라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가능케 하는 힘이 되며, 원수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는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2.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17절)
이어지는 17절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기 위하여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투구란 머리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머리는 사람의 몸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구원으로써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를 삼으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능력을 행하고 많은 하나님의 일들을 했다 해도 구원받지 못하면 모든 것이 아무 소용없게 되지요.
우리가 몸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투구를 쓰듯이, 참된 구원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구원에 대한 감사와 기쁨 역시 변함없이 간직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구원에 이르고,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구원에 대한 감사와 소망이 있는 사람의 눈은 기쁨으로 빛날 것이고,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가득하며, 입술은 찬양이 넘쳐나고, 그 귀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소식들을 듣기 즐거워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즐겨하며 주를 사랑하여 생명 다해 충성할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으로 인해 우리 삶 속에 변화되어지는 것이 구원의 투구를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히 4:12) 성령의 검을 삼게 되면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단번에 분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을 마치시고 마귀에게 세 차례 시험을 받으실 때,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검처럼 사용하셔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물리치셨습니다(마 4:1~11). 바로 이 말씀의 검만이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리고 분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믿음의 반석에 서게 되면 원수 마귀의 어떠한 궤계라도 말씀으로 분별하여 결코 흔들리거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검으로 가지면 그들의 궤계를 물리치며 사단의 진을 분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온전히 양식이 되어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자재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의 겉모습만 보고 대화하면 내 생각이나 지식 가운데서 말씀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이 내 안에 양식이 된 상태에서 성령의 감동함으로 역사되면 상대의 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권세 있는 말씀이 나오지요. 바로 이렇게 할 때 상대의 비진리의 마음을 통해 역사하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쳐 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영으로 온전히 양식되어 활용된다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는 무기가 되는 것이지요.
3.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깨어 구하라(18절)
18절에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듣고 알았다 해도 이를 취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항상 깨어 구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결국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는 마지막 단계는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는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전신갑주를 취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지요. 또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있다 해도 잠들어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항상 깨어 준비된 상태로 유지해 줍니다. 따라서 영적 장수가 되려면 무시로 성령 안에서 항상 힘써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으로 무장하여 불같이 기도해 나갈 때 하나님 나라는 힘 있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 성도가 불같이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아 항상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악한 세력들과 싸워 이기며, 하나님의 나라에 기둥과 같이 쓰임 받는 영적 장수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원수 마귀 사단의 불같은 공격을 막아내려면 영적인 방패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 )으로써 방패를 삼으라 말씀하신다.
2. 하나님께서는 ( )으로써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를 삼으라 하셨다.
3.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하나님의 ( )으로 성령의 ( )을 삼게 되면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단번에 분쇄할 수 있다.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5~3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세 차례 시험이 주는 교훈’(마 4:1~11)
예수님께서는 40일 금식을 마치시고 마귀에게 세 차례 시험을 받으셨는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세 차례의 시험은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대표적인 시험의 유형이라 할 수 있다.
1.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는 시험 : 탐심 곧 탐욕에 대한 것이다.
2.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 : 교만함에 대한 것이다.
3. 천하 만국과 영광을 보이며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라는 시험 : 세상의 영광에 대한 것이다.
교육목표 :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으로 무장한 영적 장수가 되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고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한다.
1.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모든 화전을 소멸하라(16절)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려면 16절에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했습니다. 아무리 단단한 갑옷을 입고 그 위에 허리띠와 흉배와 신을 갖추었다 해도 적이 칼이나 창으로 공격할 때 막아낼 방패가 없다면 어찌되겠습니까.
방패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도구입니다. 또한 화전이란 화살 끝에 불을 붙인 불화살을 말하는데 일단 불붙은 화살이 몸에 닿게 되면 아무리 갑옷을 입었다 해도 큰 화를 당하지요. 이러한 상황들을 대비하기 위해서 반드시 방패가 있어야 하는데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불같은 공격을 막아내려면 영적인 방패가 있어야 하지요.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은 후, 믿음으로써 방패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이 그만큼 중요함을 강조해 주고 있는 것이며, 믿음으로만이 구원받을 수 있고, 믿음이 있을 때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히 11:6),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합니다(시 37:4).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죽음 앞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을 내보였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우글거리는 사자 굴 속에 들어간다 해도,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들어간다 해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지요. 이들이 가진 믿음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벼랑 끝까지 밀려가는 상황에서 ‘이 정도면 이제 하나님께서 구해 주시겠지.’ 하는 조건부적인 믿음이 아니었지요.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질 때쯤 되면 하나님이 구해 주실 거야.’ 하지 않았습니다. 번연히 죽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좇았지요. 이는 벼랑 끝에서 떨어지면서도 변함없는 참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자신에게 맞춰 한계선을 그어 놓고 그 선까지는 믿음을 지키는 것처럼 하다가도 그 한계를 넘는 상황이 발생하면 결국 세상을 의지합니다. 벼랑 끝까지 밀려간 것도 아닌데 이러다가는 정말 떨어지겠다 싶은 상황이 되면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지요.
참 믿음은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떨어져야 한다면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믿음으로 벼랑에서 떨어지면서도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할 때 참으로 ‘믿음이 있다.’ 인정하시지요. 이 믿음만 가진다면 응답받지 못할 것이 없고 어떤 마귀의 궤계라도 이기지 못할 것이 없지요. 이런 믿음으로 방패를 삼을 때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할 능력이 주어집니다.
이처럼 중요한 믿음의 방패를 가지려면 반드시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믿음이란 당장 현실로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믿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면 순종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순종이요, 이렇게 순종할 때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친히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여호사밧왕은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유다를 공격해 왔을 때 백성들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하며, 거룩한 예복을 입힌 성가대를 군대 앞에 앞세워 하나님을 찬송케 했습니다(대하 20장).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즉 믿음의 방패가 있었기에 순종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적군 안에 내분이 일어나 서로 살육하여 자멸되도록 역사하셨고, 이 일을 통해 모든 이방 나라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가능케 하는 힘이 되며, 원수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는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2.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17절)
이어지는 17절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기 위하여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투구란 머리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머리는 사람의 몸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구원으로써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를 삼으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능력을 행하고 많은 하나님의 일들을 했다 해도 구원받지 못하면 모든 것이 아무 소용없게 되지요.
우리가 몸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투구를 쓰듯이, 참된 구원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구원에 대한 감사와 기쁨 역시 변함없이 간직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구원에 이르고,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구원에 대한 감사와 소망이 있는 사람의 눈은 기쁨으로 빛날 것이고,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가득하며, 입술은 찬양이 넘쳐나고, 그 귀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소식들을 듣기 즐거워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즐겨하며 주를 사랑하여 생명 다해 충성할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으로 인해 우리 삶 속에 변화되어지는 것이 구원의 투구를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히 4:12) 성령의 검을 삼게 되면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단번에 분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을 마치시고 마귀에게 세 차례 시험을 받으실 때,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검처럼 사용하셔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물리치셨습니다(마 4:1~11). 바로 이 말씀의 검만이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리고 분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믿음의 반석에 서게 되면 원수 마귀의 어떠한 궤계라도 말씀으로 분별하여 결코 흔들리거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검으로 가지면 그들의 궤계를 물리치며 사단의 진을 분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온전히 양식이 되어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자재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의 겉모습만 보고 대화하면 내 생각이나 지식 가운데서 말씀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이 내 안에 양식이 된 상태에서 성령의 감동함으로 역사되면 상대의 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권세 있는 말씀이 나오지요. 바로 이렇게 할 때 상대의 비진리의 마음을 통해 역사하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쳐 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영으로 온전히 양식되어 활용된다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는 무기가 되는 것이지요.
3.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깨어 구하라(18절)
18절에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듣고 알았다 해도 이를 취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항상 깨어 구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결국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는 마지막 단계는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는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전신갑주를 취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지요. 또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있다 해도 잠들어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항상 깨어 준비된 상태로 유지해 줍니다. 따라서 영적 장수가 되려면 무시로 성령 안에서 항상 힘써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으로 무장하여 불같이 기도해 나갈 때 하나님 나라는 힘 있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 성도가 불같이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아 항상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악한 세력들과 싸워 이기며, 하나님의 나라에 기둥과 같이 쓰임 받는 영적 장수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원수 마귀 사단의 불같은 공격을 막아내려면 영적인 방패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 )으로써 방패를 삼으라 말씀하신다.
2. 하나님께서는 ( )으로써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를 삼으라 하셨다.
3.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하나님의 ( )으로 성령의 ( )을 삼게 되면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단번에 분쇄할 수 있다.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5~3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세 차례 시험이 주는 교훈’(마 4:1~11)
예수님께서는 40일 금식을 마치시고 마귀에게 세 차례 시험을 받으셨는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세 차례의 시험은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대표적인 시험의 유형이라 할 수 있다.
1.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는 시험 : 탐심 곧 탐욕에 대한 것이다.
2.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 : 교만함에 대한 것이다.
3. 천하 만국과 영광을 보이며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라는 시험 : 세상의 영광에 대한 것이다.
2019-03-15
제11과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2)
에베소서 6:10~18
읽을말씀 : 에베소서 6:10~18 | 외울말씀 : 에베소서 6:14 ㅣ 참고 말씀: 골로새서 3:8~10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힘 있게 확장시켜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13절)
앞서 에베소서 6장 10~12절을 통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지는 13절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악한 날에 원수 마귀 사단을 능히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악한 날’이란 원수 마귀 사단이 권세를 잡고 이 땅에서 어두움을 주관해 가는 날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어두움의 세력들이 공중 권세 잡은 그날부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자신들이 주관하는 악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더욱 악을 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더욱 깨어 근신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모든 일’이란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고 이기며 행하는 일들을 의미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죄와 싸워 이김으로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고, 교회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어두움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며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생명 다해 감당해야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어떻게 취해 나가야 할까요?
2.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라(14절)
먼저, 에베소서 6장 14절 전반절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 하십니다. 여기서 ‘허리’는 우리 인체에 있어서 몸을 지탱해 주는 주축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허리에 띠를 하면 허리를 든든히 받쳐 주고 붙잡아 주므로 모든 행동이나 힘을 쓰는 일을 할 때 안정감을 주지요. 그러므로 허리에 띠를 한다는 것은 마치 육중한 집을 떠받쳐 줄 주초를 든든히 놓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요 14:6),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반석 위에 굳게 서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서서 진리의 허리띠를 띤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임과 동시에 모든 신앙생활에 활력을 공급하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반석 위에 굳게 서는 것일까요? 바로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으면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함에 있어 우선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능력을 받으며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인 힘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에베소서 6장 14절 후반절에 “의의 흉배를 붙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흉배’란 가슴 부위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가슴에는 생명과 직결되는 심장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주의가 필요하지요.
그러면 의로써 흉배를 삼으라고 하셨는데 과연 ‘의’는 무엇일까요? ‘의’란 하나님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했습니다(롬 10:10).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마음에 할례하여 죄악을 벗고 진리로 채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행할 때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롬 2:13).
따라서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마음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 마음에 의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를 행해야 하지요.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같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의가 없이는 자신을 지킬 수도, 어두움을 물리칠 수도 없습니다.
‘의의 흉배’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는 말씀과도 짝을 이룹니다(잠 4:23).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것인데, 가슴은 곧 마음을 나타냅니다. 온몸에 생명과 일체인 피를 공급해 주는 것이 심장이고, 이 심장은 가슴에 있지요. 따라서 흉배로 가슴을 지킨다는 것은 영적으로 생명의 근원이 있는 마음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며,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의 마음 안에는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때 영에 속한 진리의 마음을 좇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반면, 어두움에 속한 비진리를 좇는 사람은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롬 6:23). 여기서 생명의 근원이 나는 마음이란 영의 마음 곧 진리에 속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비진리의 마음을 벗고 마음을 영으로 일궈 어두움의 세력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겉으로 행함이 있어도 정작 마음에 할례하지 않고 영으로 변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사단과의 싸움에서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마치 전쟁에 나가는 장수가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또다시 흉배를 대어 가슴을 보호하듯이 우리 역시 의의 흉배를 가슴에 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3.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15절)
출애굽기 3장 5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그 땅은 거룩하니 신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은 온갖 악이 들어 있는 인생의 마음이지만, 행위적으로 볼 때는 각종 더러운 것을 밟고 다니는 우리의 발이요, 신발이지요.
하나님께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신을 신고는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므로,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깨끗하고 거룩해야 함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즉 마음의 할례를 받아 진리 안에 거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는 말씀에 앞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설명한 것은, 세상에 있을 때 신었던 죄악의 더러운 신을 벗어 버려야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하는데(골 3:8~10) 이것이 곧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을 신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이는 주일을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로서 안식일이라 한 것처럼 복음 역시 우리들에게 평안을 준다는 의미에서 평안의 복음이라 한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역경과 어려움이 따르는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신을 신은 사람, 즉 진리 안에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길을 갈 수 있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안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세상적인 평안함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 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어야 합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될 것 없지요. 가시나 돌이 해할 수 없고 어떠한 길이든 힘차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평안의 복음은 자신의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예비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안의 복음의 예비된 것으로 신을 신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서 그들도 함께 신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마음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 마음에 ( )를 이루라는 것이다.
2.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말씀은 곧 ( )를 상징하는 반석 위에 굳게 서라는 뜻이다.
3.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반석’
이스라엘 지역에서 반석은 종종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거나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된다. 구약에서는 피난처요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하기도 했다(신 32:4, 시 18:2, 71:3).
신약에서는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칭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말씀이시며(요 1:14), 마태복음 7장 24~25절에서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그 주초를 반석 위에 지은 사람이라고 비유하신 내용도 결국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믿음의 분량이 3단계 60% 이상에 이르면 반석에 섰다 할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힘 있게 확장시켜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13절)
앞서 에베소서 6장 10~12절을 통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지는 13절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악한 날에 원수 마귀 사단을 능히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악한 날’이란 원수 마귀 사단이 권세를 잡고 이 땅에서 어두움을 주관해 가는 날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어두움의 세력들이 공중 권세 잡은 그날부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자신들이 주관하는 악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더욱 악을 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더욱 깨어 근신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모든 일’이란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고 이기며 행하는 일들을 의미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죄와 싸워 이김으로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고, 교회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어두움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며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생명 다해 감당해야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어떻게 취해 나가야 할까요?
2.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라(14절)
먼저, 에베소서 6장 14절 전반절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 하십니다. 여기서 ‘허리’는 우리 인체에 있어서 몸을 지탱해 주는 주축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허리에 띠를 하면 허리를 든든히 받쳐 주고 붙잡아 주므로 모든 행동이나 힘을 쓰는 일을 할 때 안정감을 주지요. 그러므로 허리에 띠를 한다는 것은 마치 육중한 집을 떠받쳐 줄 주초를 든든히 놓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요 14:6),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반석 위에 굳게 서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서서 진리의 허리띠를 띤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임과 동시에 모든 신앙생활에 활력을 공급하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반석 위에 굳게 서는 것일까요? 바로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으면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함에 있어 우선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능력을 받으며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인 힘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에베소서 6장 14절 후반절에 “의의 흉배를 붙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흉배’란 가슴 부위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가슴에는 생명과 직결되는 심장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주의가 필요하지요.
그러면 의로써 흉배를 삼으라고 하셨는데 과연 ‘의’는 무엇일까요? ‘의’란 하나님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했습니다(롬 10:10).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마음에 할례하여 죄악을 벗고 진리로 채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행할 때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롬 2:13).
따라서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마음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 마음에 의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를 행해야 하지요.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같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의가 없이는 자신을 지킬 수도, 어두움을 물리칠 수도 없습니다.
‘의의 흉배’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는 말씀과도 짝을 이룹니다(잠 4:23).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것인데, 가슴은 곧 마음을 나타냅니다. 온몸에 생명과 일체인 피를 공급해 주는 것이 심장이고, 이 심장은 가슴에 있지요. 따라서 흉배로 가슴을 지킨다는 것은 영적으로 생명의 근원이 있는 마음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며,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의 마음 안에는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때 영에 속한 진리의 마음을 좇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반면, 어두움에 속한 비진리를 좇는 사람은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롬 6:23). 여기서 생명의 근원이 나는 마음이란 영의 마음 곧 진리에 속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비진리의 마음을 벗고 마음을 영으로 일궈 어두움의 세력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겉으로 행함이 있어도 정작 마음에 할례하지 않고 영으로 변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사단과의 싸움에서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마치 전쟁에 나가는 장수가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또다시 흉배를 대어 가슴을 보호하듯이 우리 역시 의의 흉배를 가슴에 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3.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15절)
출애굽기 3장 5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그 땅은 거룩하니 신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은 온갖 악이 들어 있는 인생의 마음이지만, 행위적으로 볼 때는 각종 더러운 것을 밟고 다니는 우리의 발이요, 신발이지요.
하나님께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신을 신고는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므로,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깨끗하고 거룩해야 함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즉 마음의 할례를 받아 진리 안에 거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는 말씀에 앞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설명한 것은, 세상에 있을 때 신었던 죄악의 더러운 신을 벗어 버려야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하는데(골 3:8~10) 이것이 곧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을 신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이는 주일을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로서 안식일이라 한 것처럼 복음 역시 우리들에게 평안을 준다는 의미에서 평안의 복음이라 한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역경과 어려움이 따르는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신을 신은 사람, 즉 진리 안에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길을 갈 수 있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안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세상적인 평안함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 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어야 합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될 것 없지요. 가시나 돌이 해할 수 없고 어떠한 길이든 힘차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평안의 복음은 자신의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예비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안의 복음의 예비된 것으로 신을 신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서 그들도 함께 신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마음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 마음에 ( )를 이루라는 것이다.
2.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말씀은 곧 ( )를 상징하는 반석 위에 굳게 서라는 뜻이다.
3.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반석’
이스라엘 지역에서 반석은 종종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거나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된다. 구약에서는 피난처요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하기도 했다(신 32:4, 시 18:2, 71:3).
신약에서는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칭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말씀이시며(요 1:14), 마태복음 7장 24~25절에서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그 주초를 반석 위에 지은 사람이라고 비유하신 내용도 결국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믿음의 분량이 3단계 60% 이상에 이르면 반석에 섰다 할 수 있다.
2019-03-08
제10과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 1 )
에베소서 6:10~18
읽을말씀 : 에베소서 6:10~18 | 외울말씀 : 에베소서 6:11 ㅣ 참고 말씀: 로마서 12:21
교육목표 :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자신을 지킴은 물론, 영적 장수로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한다.
1.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기록한 에베소서
성경 66권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전에 기록된 구약 성경 39권과 성령 강림 이후에 기록된 신약 성경 27권으로 구분합니다.
에베소서는 신약 성경 27권 중에 하나로서, 이방인 선교를 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옥중서신이라고도 부르는 에베소서는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에베소 성도들과 신실한 믿음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엡 1:1).
그러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방인 선교를 위해 그는 유대인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를 포함해해 소아시아 교회들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돼야 함을 알려 주고자 기록한 것입니다.
6장으로 구성된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한 후,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신갑주란 온몸에 두른 갑옷과 투구를 뜻하며, 넓은 의미로는 전투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일컫습니다.
2.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10~11절)
그러면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에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원수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원수 마귀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한 영혼이라도 더 사망으로 이끌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더욱 원수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합니다. 10~11절에 구체적인 이유가 나오는데 먼저는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10절) 했습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를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주 안에서 성경에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 대로 살아가면 능력을 받아 영육 간에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강건하다’는 것은 영혼이 잘되었다는 뜻입니다.
원래 사람은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을 다스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로 인해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주님을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대로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가정, 일터, 사업터, 자녀 등 전반에 걸쳐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 행함으로 주 안에 거하면 하나님께서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주셔서 우리의 길을 평탄하고 형통케 하십니다.
다음으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11절) 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세상을 점점 더 죄악으로 관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갖가지 궤계를 부리며 아직 버리지 못한 죄의 속성들을 통해 역사하거나, 주변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지 못하게 방해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진리 안에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중도에 넘어지거나 자칫 세상으로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많이 배워 진리를 안다고 했지만, 막상 원수 마귀의 궤계에 승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십니다(살전 5:23).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만일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지 않는다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의 세력들과 맞서서 자신을 지킴은 물론, 세상의 빛이 되어 많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먼저 하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무엇을 이루실 때에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이루셨지요.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으면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십자가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일을 기도로 준비하며 기도로 이뤄 가야 합니다. 특히 전도할 때, 입을 열기 전에,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먼저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들을 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 구원하는 것을 잃은 양을 찾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닙니다. 깊고 험한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고 때로는 가파른 바위 산도 올라가야 합니다.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가시덤불 속도 들어가야 하며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속도 들어가야 합니다. 오직 양을 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어디든지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잃은 양들을 찾고 계실까요? 어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전도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되찾아오기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신 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된 입술과 아름다운 발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3. 영적인 전쟁의 구체적인 대상(12절)
그러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으로 씨름해야 할 대상은 무엇일까요?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혈과 육이란 이 땅에서 썩어지고 사라질 모든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물질이나 의식주에 관련된 모든 것, 명예와 권세와 지위 등을 말합니다. 혈이란 피 곧 생명을 뜻하지요(레 17:11). 오늘날 사람이 피 곧 생명처럼 여기는 것은 물질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의식주에 관련된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세상의 혈과 육을 취하려는 씨름입니다. 그렇다면 혈과 육에 대해 열심히 씨름하고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최고의 부귀 영화를 누린 솔로몬왕도 모든 것이 헛되다 고백했습니다(전 1:2). 혈과 육은 취하고 욕심 부리면 한이 없고, 설령 원하는 것을 취해도 결국 헛된 것입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도 없습니다(고전 15:50).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인 씨름을 해야 할 대상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아가는 길을 막는 정사(정치적인 일)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앞장서서 예수님을 핍박하고 비난하며 성도들을 탄압했던 이들은 대부분 정사와 권세를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였지만 정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잡아 죽이는 데 자신들의 정사나 권세를 악용하였지요.
오늘날도 주님을 믿는 자들을 애매히 핍박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훼방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갖은 궤계와 술수를 쓰는 모든 것이 이 세상을 주관하는 어두움의 세력에 속한 정사와 권세에 의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씨름할 대상이 정사와 권세라고 해서 정사와 권세 잡은 사람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어야 하지요. 누가 핍박한다고 해서 그 사람과 대항하여 똑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롬 12:21).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정사와 권세 위에 어두움의 실질적인 세력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지요.
먼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로는 루시퍼와 용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의 위치를 나라에 비유하면 왕과 군대장관이라 할 수 있지요. 이들은 나라나 세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흐름에 관계되는 일을 하며, 그 아래에 부리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지휘하여 이 세상의 어두움을 주관해 갑니다.
가장 머리격인 루시퍼는 사단과 마귀를 주관하지요. 사단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 조종합니다. 생각 속에 비진리를 불어넣어 진리에 위배되게 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이며, 그것을 행함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실제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지시하여 이 땅에 갖가지 어두움의 일들을 행해 가는 것은 군대장관격인 용이며, 이 용의 지시를 받은 그의 사자들이 사람들에게 역사하지요. 또한 귀신, 악신, 더러운 영, 미혹의 영, 거짓 영 등 온갖 악의 영들도 각각 그 역할에 따라 사람들에게 역사하여 악한 일들을 행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러한 영의 세계가 있음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영의 세계에서 승리해야 육의 세계에서도 승리할 수 있으니 더욱 주 안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영적으로 혈과 육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3.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으로 씨름해야 할 대상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에베소’
오늘날 터키의 서해안에 위치한 에베소는초대교회 당시 상업의 중심지로서 각지에서 몰려온 상인들과 시민들을 위한 각종 시설이 즐비한 풍요로운 도시였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제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 2년간 머물며 복음을 전했다(행 19장).
그는 이곳을 소아시아 지역의 전도 중심지로 삼았고 그가 에베소를 떠난 후에는 디모데가 이어 사역하였다.
에베소는 사도 요한의 활동 중심지이기도 하였다(계 2:1~7).
교육목표 :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자신을 지킴은 물론, 영적 장수로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한다.
1.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기록한 에베소서
성경 66권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전에 기록된 구약 성경 39권과 성령 강림 이후에 기록된 신약 성경 27권으로 구분합니다.
에베소서는 신약 성경 27권 중에 하나로서, 이방인 선교를 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옥중서신이라고도 부르는 에베소서는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에베소 성도들과 신실한 믿음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엡 1:1).
그러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방인 선교를 위해 그는 유대인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를 포함해해 소아시아 교회들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돼야 함을 알려 주고자 기록한 것입니다.
6장으로 구성된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한 후,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신갑주란 온몸에 두른 갑옷과 투구를 뜻하며, 넓은 의미로는 전투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일컫습니다.
2.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10~11절)
그러면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에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원수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원수 마귀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한 영혼이라도 더 사망으로 이끌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더욱 원수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합니다. 10~11절에 구체적인 이유가 나오는데 먼저는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10절) 했습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를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주 안에서 성경에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 대로 살아가면 능력을 받아 영육 간에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강건하다’는 것은 영혼이 잘되었다는 뜻입니다.
원래 사람은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을 다스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로 인해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주님을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대로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가정, 일터, 사업터, 자녀 등 전반에 걸쳐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 행함으로 주 안에 거하면 하나님께서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주셔서 우리의 길을 평탄하고 형통케 하십니다.
다음으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11절) 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세상을 점점 더 죄악으로 관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갖가지 궤계를 부리며 아직 버리지 못한 죄의 속성들을 통해 역사하거나, 주변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지 못하게 방해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진리 안에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중도에 넘어지거나 자칫 세상으로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많이 배워 진리를 안다고 했지만, 막상 원수 마귀의 궤계에 승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십니다(살전 5:23).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만일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지 않는다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의 세력들과 맞서서 자신을 지킴은 물론, 세상의 빛이 되어 많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먼저 하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무엇을 이루실 때에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이루셨지요.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으면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십자가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일을 기도로 준비하며 기도로 이뤄 가야 합니다. 특히 전도할 때, 입을 열기 전에,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먼저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들을 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 구원하는 것을 잃은 양을 찾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닙니다. 깊고 험한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고 때로는 가파른 바위 산도 올라가야 합니다.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가시덤불 속도 들어가야 하며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속도 들어가야 합니다. 오직 양을 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어디든지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잃은 양들을 찾고 계실까요? 어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전도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되찾아오기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신 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된 입술과 아름다운 발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3. 영적인 전쟁의 구체적인 대상(12절)
그러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으로 씨름해야 할 대상은 무엇일까요?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혈과 육이란 이 땅에서 썩어지고 사라질 모든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물질이나 의식주에 관련된 모든 것, 명예와 권세와 지위 등을 말합니다. 혈이란 피 곧 생명을 뜻하지요(레 17:11). 오늘날 사람이 피 곧 생명처럼 여기는 것은 물질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의식주에 관련된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세상의 혈과 육을 취하려는 씨름입니다. 그렇다면 혈과 육에 대해 열심히 씨름하고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최고의 부귀 영화를 누린 솔로몬왕도 모든 것이 헛되다 고백했습니다(전 1:2). 혈과 육은 취하고 욕심 부리면 한이 없고, 설령 원하는 것을 취해도 결국 헛된 것입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도 없습니다(고전 15:50).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인 씨름을 해야 할 대상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아가는 길을 막는 정사(정치적인 일)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앞장서서 예수님을 핍박하고 비난하며 성도들을 탄압했던 이들은 대부분 정사와 권세를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였지만 정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잡아 죽이는 데 자신들의 정사나 권세를 악용하였지요.
오늘날도 주님을 믿는 자들을 애매히 핍박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훼방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갖은 궤계와 술수를 쓰는 모든 것이 이 세상을 주관하는 어두움의 세력에 속한 정사와 권세에 의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씨름할 대상이 정사와 권세라고 해서 정사와 권세 잡은 사람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어야 하지요. 누가 핍박한다고 해서 그 사람과 대항하여 똑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롬 12:21).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정사와 권세 위에 어두움의 실질적인 세력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지요.
먼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로는 루시퍼와 용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의 위치를 나라에 비유하면 왕과 군대장관이라 할 수 있지요. 이들은 나라나 세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흐름에 관계되는 일을 하며, 그 아래에 부리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지휘하여 이 세상의 어두움을 주관해 갑니다.
가장 머리격인 루시퍼는 사단과 마귀를 주관하지요. 사단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 조종합니다. 생각 속에 비진리를 불어넣어 진리에 위배되게 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이며, 그것을 행함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실제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지시하여 이 땅에 갖가지 어두움의 일들을 행해 가는 것은 군대장관격인 용이며, 이 용의 지시를 받은 그의 사자들이 사람들에게 역사하지요. 또한 귀신, 악신, 더러운 영, 미혹의 영, 거짓 영 등 온갖 악의 영들도 각각 그 역할에 따라 사람들에게 역사하여 악한 일들을 행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러한 영의 세계가 있음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영의 세계에서 승리해야 육의 세계에서도 승리할 수 있으니 더욱 주 안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영적으로 혈과 육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3.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으로 씨름해야 할 대상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에베소’
오늘날 터키의 서해안에 위치한 에베소는초대교회 당시 상업의 중심지로서 각지에서 몰려온 상인들과 시민들을 위한 각종 시설이 즐비한 풍요로운 도시였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제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 2년간 머물며 복음을 전했다(행 19장).
그는 이곳을 소아시아 지역의 전도 중심지로 삼았고 그가 에베소를 떠난 후에는 디모데가 이어 사역하였다.
에베소는 사도 요한의 활동 중심지이기도 하였다(계 2:1~7).
2019-03-01
제9과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면
마태복음 5:13~16
읽을말씀 : 마태복음 5:13~16 | 외울말씀 : 마태복음 5:13 ㅣ 참고 말씀: 잠언 8:17
교육목표 :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은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달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한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며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죄악이 관영하여 영적으로 짙은 어둠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밝은 빛으로 인도하려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자신을 온전히 녹여서 맛을 내듯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을 낮추고 진실한 사랑과 섬김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빛이 되어 착한 행실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까요?
1. 말과 행동에 온전함이 있어야 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타인에게 가장 먼저 비쳐지는 부분입니다. 말과 행동이 온전해야 많은 사람들 앞에 빛이 될 수 있으며 그들을 깨우쳐 줄 수 있습니다. 잠언 15장 4절에도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영적으로 ‘온량’이란, ‘모든 면에 있어서 선한 것으로 온전한 양이 채워진 것’을 뜻하지요. 나무로 비유하면 선으로 온전히 맺혀진 잘 익은 열매와도 같습니다. 따라서 ‘온량한 혀’란, ‘선 속에서 잘 익어 맺혀진 말을 하는 혀’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선하고 말도 온전하면 어느 누구도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의 주위에는 악한 것이 사라지니 평안해지며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이는 빛이 임하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온량한 혀를 가졌다면 그에게서 나오는 빛으로 인해 전도 대상자의 마음과 생각, 환경에서 어둠이 물러갑니다. 그리하여 복음을 듣고 영생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빛’이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어둠은 사라지고 주위에 생명이 됩니다. ‘온량한 혀’, ‘온량한 말’이 바로 이런 빛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여러분도 거하는 곳곳에서 온량함의 빛을 비추면 자연히 주위의 어둠은 물러가고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차츰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습니다.
반면에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패려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고 사나운 것’을 말합니다. 정도를 넘는 부도덕한 말이나 행동, 곧 패려한 말이나 행동은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에 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전도하다가 혹여 상대가 마음 상할 말이나 행동이 나오지 않았는지요? 절제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인해 전도의 문이 막힌다거나 많은 분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전도할 때뿐 아니라 평소에 자신의 모습 속에서도 상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내 입장만 강하게 고집하지는 않았는지요? 험악한 말이나 은연중에 상대를 하대(下待)하는 교만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요? 이런 사람은 누구를 생명으로 인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말과 행동이 온전함으로 인하여서 많은 사람에게 칭송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다. 저 사람을 보니 나도 교회 가고 싶다.” 또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볼 때도 “참 은혜가 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면 어떤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유익이 되는 말인지, 내가 꼭 해야 하는 말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 어떤 것을 행할 때도 많은 사람에게 은혜가 되는 행실로 나와야 하지요. 말과 행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 영의 마음이 되는 만큼 영의 말, 영의 행실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 감정적으로 떠오르는 대로 말을 하며 거친 행동이 나온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기도 어렵습니다. 선한 영의 마음을 소유하여 여러분의 입술을 통해 나온 선한 말이 상대에게도 감동을 주며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라 함은 하나님을 만나 축복받은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기 전에는 가난하고 질병으로 고통받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유해지고 건강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얽히고설킨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니 형통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증거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자신이 주님을 믿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사랑받는 증거들이 나타나야 믿지 않는 사람뿐만 아니라 믿음이 적은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는 매우 중요합니다.
정작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얼굴에 우울함과 근심이 있다면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받는다, 교회 다니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지요. 가난과 어려움에 찌들어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받는다.”고 전할 수 있겠는지요?
하나님을 믿음으로 사랑받고 축복받은 증거들이 있어야 담대하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있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하신 대로 먼저는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라고 인정할 만큼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영혼이 잘된 사람은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고, 성령의 소욕대로 살아가는 영의 사람이지요. 자기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을 정도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무엇이든지 담대하게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요일 3:21~22).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받는 방법들이 잘 나와 있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도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셨지요. 그러므로 계명들을 지키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여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되어야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넘쳐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3. 서로 간에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하셨지요. 또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요 13:14~15, 35).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이 여러분 안에 사랑이 넘치고,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 중의 하나인 서로 섬기는 모습이 보여지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고 외치는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를 대신해서 죽게 하시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셨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 안에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다툼과 분쟁, 불편함이 있다면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어찌 저럴까?”라는 비난의 말을 들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서로 살펴 주고 섬기는 사랑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항상 정도를 걷되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 되어야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어떠한 모습이 돼야 할까요?
① 말과 행동에 ( )이 있어야 한다.
② 하나님의 사랑받는 ( )가 있어야 한다.
③ 서로 간에 ( )이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있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리로 이끌어 가시는 성령의 욕구를 말한다(갈 5:16~17).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이렇게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 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하시므로 마음에 평안함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
교육목표 :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은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달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한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며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죄악이 관영하여 영적으로 짙은 어둠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밝은 빛으로 인도하려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자신을 온전히 녹여서 맛을 내듯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을 낮추고 진실한 사랑과 섬김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빛이 되어 착한 행실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까요?
1. 말과 행동에 온전함이 있어야 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타인에게 가장 먼저 비쳐지는 부분입니다. 말과 행동이 온전해야 많은 사람들 앞에 빛이 될 수 있으며 그들을 깨우쳐 줄 수 있습니다. 잠언 15장 4절에도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영적으로 ‘온량’이란, ‘모든 면에 있어서 선한 것으로 온전한 양이 채워진 것’을 뜻하지요. 나무로 비유하면 선으로 온전히 맺혀진 잘 익은 열매와도 같습니다. 따라서 ‘온량한 혀’란, ‘선 속에서 잘 익어 맺혀진 말을 하는 혀’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선하고 말도 온전하면 어느 누구도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의 주위에는 악한 것이 사라지니 평안해지며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이는 빛이 임하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온량한 혀를 가졌다면 그에게서 나오는 빛으로 인해 전도 대상자의 마음과 생각, 환경에서 어둠이 물러갑니다. 그리하여 복음을 듣고 영생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빛’이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어둠은 사라지고 주위에 생명이 됩니다. ‘온량한 혀’, ‘온량한 말’이 바로 이런 빛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여러분도 거하는 곳곳에서 온량함의 빛을 비추면 자연히 주위의 어둠은 물러가고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차츰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습니다.
반면에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패려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고 사나운 것’을 말합니다. 정도를 넘는 부도덕한 말이나 행동, 곧 패려한 말이나 행동은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에 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전도하다가 혹여 상대가 마음 상할 말이나 행동이 나오지 않았는지요? 절제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인해 전도의 문이 막힌다거나 많은 분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전도할 때뿐 아니라 평소에 자신의 모습 속에서도 상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내 입장만 강하게 고집하지는 않았는지요? 험악한 말이나 은연중에 상대를 하대(下待)하는 교만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요? 이런 사람은 누구를 생명으로 인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말과 행동이 온전함으로 인하여서 많은 사람에게 칭송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다. 저 사람을 보니 나도 교회 가고 싶다.” 또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볼 때도 “참 은혜가 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면 어떤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유익이 되는 말인지, 내가 꼭 해야 하는 말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 어떤 것을 행할 때도 많은 사람에게 은혜가 되는 행실로 나와야 하지요. 말과 행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 영의 마음이 되는 만큼 영의 말, 영의 행실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 감정적으로 떠오르는 대로 말을 하며 거친 행동이 나온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기도 어렵습니다. 선한 영의 마음을 소유하여 여러분의 입술을 통해 나온 선한 말이 상대에게도 감동을 주며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라 함은 하나님을 만나 축복받은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기 전에는 가난하고 질병으로 고통받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유해지고 건강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얽히고설킨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니 형통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증거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자신이 주님을 믿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사랑받는 증거들이 나타나야 믿지 않는 사람뿐만 아니라 믿음이 적은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는 매우 중요합니다.
정작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얼굴에 우울함과 근심이 있다면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받는다, 교회 다니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지요. 가난과 어려움에 찌들어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받는다.”고 전할 수 있겠는지요?
하나님을 믿음으로 사랑받고 축복받은 증거들이 있어야 담대하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있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하신 대로 먼저는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라고 인정할 만큼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영혼이 잘된 사람은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고, 성령의 소욕대로 살아가는 영의 사람이지요. 자기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을 정도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무엇이든지 담대하게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요일 3:21~22).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받는 방법들이 잘 나와 있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도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셨지요. 그러므로 계명들을 지키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여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되어야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넘쳐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3. 서로 간에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하셨지요. 또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요 13:14~15, 35).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이 여러분 안에 사랑이 넘치고,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 중의 하나인 서로 섬기는 모습이 보여지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고 외치는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를 대신해서 죽게 하시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셨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 안에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다툼과 분쟁, 불편함이 있다면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어찌 저럴까?”라는 비난의 말을 들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서로 살펴 주고 섬기는 사랑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항상 정도를 걷되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 되어야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어떠한 모습이 돼야 할까요?
① 말과 행동에 ( )이 있어야 한다.
② 하나님의 사랑받는 ( )가 있어야 한다.
③ 서로 간에 ( )이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있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리로 이끌어 가시는 성령의 욕구를 말한다(갈 5:16~17).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이렇게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 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하시므로 마음에 평안함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
2019-02-22
제8과복음을 전하는 자
로마서 10:14~15
읽을말씀 : 로마서 10:14~15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5:5 ㅣ 참고 말씀: 골로새서 4:2~3
교육목표 : 복음을 전하는 자는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무엇보다 불같이 기도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한다.
시편 126편 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말씀했듯이 전도의 씨를 뿌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는 수고와 헌신과 눈물이 필요하지만, 그 씨앗이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로 맺히는 것을 볼 때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지 않고, 성령이 충만하여 믿음도 신속히 자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책임져 주시고 응답과 축복의 간증이 넘쳐 나지요. 그러면 복음을 전하는 자는 어떻게 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1.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영적인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5절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라야 물과 양분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때를 좇아 풍성히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생명의 근원이 되신 주님과 영적으로 늘 교통하며,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포도나무 되신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여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 것이지요.
우리가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과 천국에 대하여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또한 주님 안에 거하여 영으로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되지요. 바로 이러한 삶 자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기에 전도의 열매도 자연히 맺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 얼마나 거하고 계십니까? 전도의 열매가 얼마나 맺혀지고 있는지 살펴보면 스스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명이 많고 바빠서 전도할 시간이 없는데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포도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주렁주렁 맺듯이, 주님 안에 거하는 만큼 살아 계신 하나님이 증거되며 전도의 열매도 아름답게 맺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되 먼저는 전도자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되어 나가는 영적인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깁니다. 이처럼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가족, 친구, 동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때 전도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 이하를 보면 안드레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며 전도함으로 장차 시몬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되지요. 안드레는 정확하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전도할 때 그 열매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열매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요. 그래서 마음에 성령의 충만함이 오고 항상 기쁨이 넘치며 감사가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아름다운 마음의 향이 올라가고 보는 이들에게 은혜를 끼치니 이방인들도 “저 사람을 보니 하나님을 믿고 싶다.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하신 대로 믿는 자에게는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지요. 이렇게 믿음의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말로만 전도하는 것보다 힘 있고 권세 있는 말씀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얼마나 주님 안에 거하느냐에 따라 맺혀지는 전도의 열매가 다르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다르며 상급으로 쌓이는 것이 다릅니다. 포도나무에 든든히 붙은 가지와 같이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분명한 마음의 확신과 믿음의 증거들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 영혼 구원을 위한 불같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은 영계의 싸움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은 자기의 소유인 영혼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때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막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끌어내리는 것이 바로 기도이지요.
골로새서 4장 2~3절에 사도 바울은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했지요. 즉 전도는 기도를 통해 전도의 문이 열려야 십자가에 담긴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할 수 있고 영혼들을 구원해 낼 수 있습니다. 기도가 너무 중요하기에 수많은 교회를 세운 복음의 전도자 사도 바울이라 할지라도 옥중서신을 통해 영혼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계의 법칙을 잘 모르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전도해 보다가 당장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실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은 한두 번 전도하다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이 영혼은 안 되나 보다.” 하고 포기해 버리지요. 그러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순종함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되 무엇보다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다 해도 기도 없이는 참된 열매를 맺지 못하지요. 불같은 기도가 없이 내 생각 속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먼저 하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무엇을 이루실 때에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이루셨지요.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으면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십자가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일을 기도로 준비하며 기도로 이뤄 가야 합니다. 특히 전도할 때, 입을 열기 전에,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먼저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들을 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 구원하는 것을 잃은 양을 찾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닙니다. 깊고 험한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고 때로는 가파른 바위 산도 올라가야 합니다.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가시덤불 속도 들어가야 하며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속도 들어가야 합니다. 오직 양을 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어디든지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잃은 양들을 찾고 계실까요? 어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전도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되찾아오기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신 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된 입술과 아름다운 발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② 영혼 구원을 위한 ( ) 기도가 있어야 한다.
2. 요한복음 15장 5절을 쓰고 외워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포도나무’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요 15:5).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를 흔히 볼 수 있고, 포도나무에서 난 포도즙이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한 열매를 많이 맺는 특성 때문에 포도나무에 비유하셨다.
포도나무 가지에 포도송이가 맺히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결되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 사랑장, 팔복, 빛의 열매와 같은 영적인 열매들이 맺힌다.
이처럼 주님 안에 거할 때라야 생명을 얻고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교육목표 : 복음을 전하는 자는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무엇보다 불같이 기도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한다.
시편 126편 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말씀했듯이 전도의 씨를 뿌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는 수고와 헌신과 눈물이 필요하지만, 그 씨앗이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로 맺히는 것을 볼 때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지 않고, 성령이 충만하여 믿음도 신속히 자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책임져 주시고 응답과 축복의 간증이 넘쳐 나지요. 그러면 복음을 전하는 자는 어떻게 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1.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영적인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5절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라야 물과 양분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때를 좇아 풍성히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생명의 근원이 되신 주님과 영적으로 늘 교통하며,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포도나무 되신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여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 것이지요.
우리가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과 천국에 대하여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또한 주님 안에 거하여 영으로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되지요. 바로 이러한 삶 자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기에 전도의 열매도 자연히 맺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 얼마나 거하고 계십니까? 전도의 열매가 얼마나 맺혀지고 있는지 살펴보면 스스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명이 많고 바빠서 전도할 시간이 없는데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포도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주렁주렁 맺듯이, 주님 안에 거하는 만큼 살아 계신 하나님이 증거되며 전도의 열매도 아름답게 맺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되 먼저는 전도자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되어 나가는 영적인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깁니다. 이처럼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가족, 친구, 동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때 전도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 이하를 보면 안드레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며 전도함으로 장차 시몬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되지요. 안드레는 정확하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전도할 때 그 열매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열매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요. 그래서 마음에 성령의 충만함이 오고 항상 기쁨이 넘치며 감사가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아름다운 마음의 향이 올라가고 보는 이들에게 은혜를 끼치니 이방인들도 “저 사람을 보니 하나님을 믿고 싶다.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하신 대로 믿는 자에게는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지요. 이렇게 믿음의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말로만 전도하는 것보다 힘 있고 권세 있는 말씀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얼마나 주님 안에 거하느냐에 따라 맺혀지는 전도의 열매가 다르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다르며 상급으로 쌓이는 것이 다릅니다. 포도나무에 든든히 붙은 가지와 같이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분명한 마음의 확신과 믿음의 증거들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 영혼 구원을 위한 불같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은 영계의 싸움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은 자기의 소유인 영혼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때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막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끌어내리는 것이 바로 기도이지요.
골로새서 4장 2~3절에 사도 바울은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했지요. 즉 전도는 기도를 통해 전도의 문이 열려야 십자가에 담긴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할 수 있고 영혼들을 구원해 낼 수 있습니다. 기도가 너무 중요하기에 수많은 교회를 세운 복음의 전도자 사도 바울이라 할지라도 옥중서신을 통해 영혼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계의 법칙을 잘 모르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전도해 보다가 당장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실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은 한두 번 전도하다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이 영혼은 안 되나 보다.” 하고 포기해 버리지요. 그러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순종함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되 무엇보다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다 해도 기도 없이는 참된 열매를 맺지 못하지요. 불같은 기도가 없이 내 생각 속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먼저 하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무엇을 이루실 때에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이루셨지요.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으면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십자가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일을 기도로 준비하며 기도로 이뤄 가야 합니다. 특히 전도할 때, 입을 열기 전에,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먼저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들을 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 구원하는 것을 잃은 양을 찾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닙니다. 깊고 험한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고 때로는 가파른 바위 산도 올라가야 합니다.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가시덤불 속도 들어가야 하며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속도 들어가야 합니다. 오직 양을 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어디든지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잃은 양들을 찾고 계실까요? 어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전도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되찾아오기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신 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된 입술과 아름다운 발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② 영혼 구원을 위한 ( ) 기도가 있어야 한다.
2. 요한복음 15장 5절을 쓰고 외워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포도나무’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요 15:5).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를 흔히 볼 수 있고, 포도나무에서 난 포도즙이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한 열매를 많이 맺는 특성 때문에 포도나무에 비유하셨다.
포도나무 가지에 포도송이가 맺히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결되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 사랑장, 팔복, 빛의 열매와 같은 영적인 열매들이 맺힌다.
이처럼 주님 안에 거할 때라야 생명을 얻고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