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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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4
제17과오직 하나님을 의뢰한 다니엘 (2)
다니엘 6:21~23
읽을말씀 : 다니엘 6:21~23 | 외울말씀 : 사무엘상 12:23 l 참고 말씀: 다니엘 6장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피할 길을 주시며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한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다니엘이 어떠한 믿음과 행함을 내보였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1. 사자 굴에 던져졌으나 지킴 받은 다니엘
다리오왕은 다니엘이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합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사랑을 받자 이를 시기한 무리들은 국사에 대하여 그를 고소할 틈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틈, 아무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단 6:4).
이에 악한 무리들은 계략을 꾸며 왕에게 금령을 정하도록 합니다. 바로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이는 다니엘이 하루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모르는 왕은 단지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일로 여겨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렸습니다.
다니엘은 이를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단 6:10). 금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다니엘을 고소하려는 무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를 발견하고 왕에게 알렸습니다. 그제야 왕은 놀라며 금령을 제정한 일이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한 모략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인을 찍은 금령이 반포된 후이니 왕으로서도 번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왕은 어찌하든 다니엘을 구하려고 종일 근심하며 애를 썼지요. 왕이 머뭇거리자 악한 무리들은 또다시 그 앞에 나아와 신속히 규례대로 시행할 것을 종용합니다.
왕은 할 수 없이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 명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르기를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합니다. 왕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다니엘이 평소에 왕에게 얼마나 하나님을 잘 알려 드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매사에 믿음직한 행실을 보였기에 그가 하나님에 대해 전하면 왕도 그의 말을 심중에 담아 두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진 그날, 왕은 밤이 다하도록 금식하고 기악을 그쳤으며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왕은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라고 슬피 외칩니다. 상식대로라면 그는 이미 생명을 잃고 그 시신마저 갈기갈기 찢겨 사자의 밥이 되었을 상황입니다. 왕이 이렇게 외친 것은 다니엘이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절로 그런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왕에 대한 어떠한 원망이나 서운함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사자 굴에 던져진 뒤, 왕이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슬퍼할까를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새벽같이 달려온 왕에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여 먼저는 왕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2.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 다니엘
다리오왕은 심히 기뻐하며 그를 굴에서 올리라 명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밥이 되기는커녕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다니엘의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뢰한 그는 사자 굴에서 살아나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왕은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무리들을 끌어와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움켜서 뼈까지도 부서뜨렸습니다. 왕은 조서를 내려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을 명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렸습니다(단 6:26~27).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승리입니까. 그가 얼마나 참되고 진실했는지가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시험을 통해 확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금령에 어인이 찍힌 사실을 알고도 평소와 같이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할 때 얼마나 감동하시고 그 기도의 향을 기쁘게 받으셨겠는지요?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 놓인다 해도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며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사자 굴에 던짐 받은 다니엘은 어떠한 믿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축복의 기회로 삼았을까요?
첫째,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은 나라의 금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람의 생각이나 지혜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모함하는 무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생각을 동원하면 30일 동안 내려진 금령이니 잠시 기도를 쉬거나 몰래 기도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켰습니다.
둘째, 기도하는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이는 기도 쉬는 죄(삼상 12:23)를 범치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니 쉬지 않고 해야 하며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눅 22:40). 이처럼 다니엘은 쉬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믿음의 선진이 한결같이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와 같이 어떠한 상황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법을 좇다가 사자 굴에 던져졌다면 이는 승리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켰으니 감사하고, 설령 사자 밥이 된다 해도 영원히 하나님 품에 안겨 살 것이니 감사할 수 있습니다.
넷째,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믿음을 지녔습니다.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 함도, 허물도 없었기 때문에 국사에 대하여 고소할 틈을 얻을 수 없었다 했으니 얼마나 정결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선한 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이 왕에게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있으니 악한 무리의 궤계를 알려 그 계략을 분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에게 알리지 않고 악한 무리에게 대항하지도 않았습니다. 설령 자신을 모함하는 이들로 인해 생명을 잃을지언정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자기를 사자 굴에 던진 왕에게 조금도 서운해하거나 감정을 품지 않는 충성된 신하였습니다. 죄로 인하여 찾아온 시험이라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지만 다니엘은 이처럼 죄가 없었기에 하나님께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섯째,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폭적으로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다니엘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으며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축복을 더하여 마음껏 영광 돌리게 하셨지요. 여러분도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영의 호흡이니 쉬지 않고 해야 한다.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 )해야 한다. 다니엘은 쉬지 않고 ( )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다.
2. 다니엘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 )했기에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으며 하나님께 구했다.
3.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 )을 지녔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5~12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셨던 다니엘의 선’
① 자기를 모함하여 죽이려는 상대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마음이었다.
②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③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피할 길을 주시며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한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다니엘이 어떠한 믿음과 행함을 내보였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1. 사자 굴에 던져졌으나 지킴 받은 다니엘
다리오왕은 다니엘이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합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사랑을 받자 이를 시기한 무리들은 국사에 대하여 그를 고소할 틈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틈, 아무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단 6:4).
이에 악한 무리들은 계략을 꾸며 왕에게 금령을 정하도록 합니다. 바로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이는 다니엘이 하루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모르는 왕은 단지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일로 여겨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렸습니다.
다니엘은 이를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단 6:10). 금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다니엘을 고소하려는 무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를 발견하고 왕에게 알렸습니다. 그제야 왕은 놀라며 금령을 제정한 일이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한 모략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인을 찍은 금령이 반포된 후이니 왕으로서도 번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왕은 어찌하든 다니엘을 구하려고 종일 근심하며 애를 썼지요. 왕이 머뭇거리자 악한 무리들은 또다시 그 앞에 나아와 신속히 규례대로 시행할 것을 종용합니다.
왕은 할 수 없이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 명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르기를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합니다. 왕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다니엘이 평소에 왕에게 얼마나 하나님을 잘 알려 드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매사에 믿음직한 행실을 보였기에 그가 하나님에 대해 전하면 왕도 그의 말을 심중에 담아 두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진 그날, 왕은 밤이 다하도록 금식하고 기악을 그쳤으며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왕은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라고 슬피 외칩니다. 상식대로라면 그는 이미 생명을 잃고 그 시신마저 갈기갈기 찢겨 사자의 밥이 되었을 상황입니다. 왕이 이렇게 외친 것은 다니엘이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절로 그런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왕에 대한 어떠한 원망이나 서운함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사자 굴에 던져진 뒤, 왕이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슬퍼할까를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새벽같이 달려온 왕에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여 먼저는 왕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2.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 다니엘
다리오왕은 심히 기뻐하며 그를 굴에서 올리라 명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밥이 되기는커녕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다니엘의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뢰한 그는 사자 굴에서 살아나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왕은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무리들을 끌어와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움켜서 뼈까지도 부서뜨렸습니다. 왕은 조서를 내려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을 명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렸습니다(단 6:26~27).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승리입니까. 그가 얼마나 참되고 진실했는지가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시험을 통해 확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금령에 어인이 찍힌 사실을 알고도 평소와 같이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할 때 얼마나 감동하시고 그 기도의 향을 기쁘게 받으셨겠는지요?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 놓인다 해도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며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사자 굴에 던짐 받은 다니엘은 어떠한 믿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축복의 기회로 삼았을까요?
첫째,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은 나라의 금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람의 생각이나 지혜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모함하는 무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생각을 동원하면 30일 동안 내려진 금령이니 잠시 기도를 쉬거나 몰래 기도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켰습니다.
둘째, 기도하는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이는 기도 쉬는 죄(삼상 12:23)를 범치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니 쉬지 않고 해야 하며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눅 22:40). 이처럼 다니엘은 쉬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믿음의 선진이 한결같이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와 같이 어떠한 상황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법을 좇다가 사자 굴에 던져졌다면 이는 승리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켰으니 감사하고, 설령 사자 밥이 된다 해도 영원히 하나님 품에 안겨 살 것이니 감사할 수 있습니다.
넷째,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믿음을 지녔습니다.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 함도, 허물도 없었기 때문에 국사에 대하여 고소할 틈을 얻을 수 없었다 했으니 얼마나 정결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선한 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이 왕에게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있으니 악한 무리의 궤계를 알려 그 계략을 분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에게 알리지 않고 악한 무리에게 대항하지도 않았습니다. 설령 자신을 모함하는 이들로 인해 생명을 잃을지언정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자기를 사자 굴에 던진 왕에게 조금도 서운해하거나 감정을 품지 않는 충성된 신하였습니다. 죄로 인하여 찾아온 시험이라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지만 다니엘은 이처럼 죄가 없었기에 하나님께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섯째,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폭적으로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다니엘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으며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축복을 더하여 마음껏 영광 돌리게 하셨지요. 여러분도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영의 호흡이니 쉬지 않고 해야 한다.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 )해야 한다. 다니엘은 쉬지 않고 ( )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다.
2. 다니엘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 )했기에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으며 하나님께 구했다.
3.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 )을 지녔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5~12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셨던 다니엘의 선’
① 자기를 모함하여 죽이려는 상대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마음이었다.
②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③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2020-04-17
제16과오직 하나님을 의뢰한 다니엘 (1)
다니엘 1:8~20
읽을말씀 : 다니엘 1:8~20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1 l 참고 말씀: 레위기 11장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하며 세상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다니엘은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침략했을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포로의 신분과 상관없이 이방 족속 가운데 뛰어난 자가 되어 왕의 신임과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마음을 가졌고, 그 선을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결과였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어떠한 마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의뢰하였기에 포로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왕의 신임을 받아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요?
1.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한 다니엘
느부갓네살왕은 점령한 속국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을 바벨론으로 데려가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이때 발탁된 소년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흠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들로, 왕은 이들에게 갈대아 학문을 배우며 왕의 진미를 먹게 하였습니다. 포로의 신분으로 이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 우려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진미에 우상의 제물로 드려진 음식이나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으로 만든 음식들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레위기나 성경 곳곳에 보면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스러운 짐승들은 먹지 못하게 금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행위적인 율법의 준행이 중요했기에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한 식물(食物)을 먹으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범죄함이 되었지요.
이에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대신에 채식을 할 수 있도록 환관장에게 청하였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적으로 채식을 할 수 있게 해 보고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과 얼굴빛을 비교하여 보라 했지요.
과연 다니엘의 제안대로 하였을 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은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도 계속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2. 왕의 총애를 받는 총리가 된 다니엘
하나님을 경외하여 계명을 좇아 자신들을 지키고자 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 1장 17절에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하신 대로이지요. 그 결과 이들은 소년들 중에서 왕을 모시는 자들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이들은 왕에게도 인정받았는데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했습니다(단 1:20).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지식에 지식을 더하게 하심으로, 배도 아니고 십 배나 나았으니 얼마나 뛰어납니까?
여러분이 다니엘이라면 포로의 신분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왕의 진미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겠는지요? 이는 당시 상황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포로 신세이니 이것저것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며, 더구나 왕이 지정해 주는 음식을 내 뜻에 맞지 않다고 해서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 선하신 뜻 가운데 우상의 제물과 가증한 식물을 금하셨습니다. 우상의 제물은 당연히 취하면 안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들 안에는 악한 기가 담겨 있어서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되지요. 예를 들어, 한방에서는 몸에 상처가 나고 곪았을 때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합니다. 더 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온전히 행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선한 사람입니다.
3.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없어야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 중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신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여기며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상 숭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성경 곳곳에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도 못하고 결국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적인 선을 앞세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완전히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 평화와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한다며 무수한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으로 이끌며 우상과 타협하게 만들지요.
혹여 여러분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선을 거스르는 일은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하지 말라’, ‘버리라’ 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선의 잣대로 판단하여 ‘너무 매정하지 않은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지는 않았는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할 때에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요, 법이요, 명령입니다.
4. 교회 안에서 지켜야 할 분야
교회 안에서 남녀 간에 지켜야 할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안 된다 했고, 남녀 간에 악수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하고 있지요. 사람이 영의 마음을 이루기 전 육의 속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는 그 육이 발동하여 범죄할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철저히 금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분야에서도 얼마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마음으로 깨달아 준행하고 있는지요?
또한 기관이나 각 부서의 회계는 개인 사정이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의 재정을 임의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쓰고 채워 넣었다 할지라도, 아무리 소액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재정에 손을 대었다면 이는 도적질할 수 있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면 구원과도 상관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분야에서 하나님께서 엄히 경계하신 것들을 얼마나 선한 마음으로 준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말씀을 준행한다 할지라도 속마음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마음으로 깨달아 기쁨과 감사함으로 준행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만 마음 한 편에는 두려움이 있어서 의무감으로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 못한 채 억지로 지키려 하니 너무나 힘들게 지켜 나가는 사람도 있지요. 더구나 아예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선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포로의 신분인데도 좋은 대우를 마다하고 굳이 채식을 했던 그 중심의 선을 깨달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철저히 싫어하고, 기뻐하시는 것만 지켜 행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을 알면서도‘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다.
2. 하나님께서“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 )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간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통일왕국은 르호보암왕 때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왕상 11:26~36). 이후 북이스라엘은 B.C. 721년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사마리아가 함락되어 멸망하였고, 남유다는 B.C. 586년 바벨론 제국 느부갓네살왕의 3차 침공 때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멸망했다.
느부갓네살왕은 여호야김이 유다 왕국을 통치하던 때에 1차 침공을 하였는데(B.C. 605년) 그때에 성전 보물과 함께 왕족과 귀족 일부를 바벨론으로 데려갔다. 다니엘은 이때 잡혀간 포로 중의 한 사람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하며 세상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다니엘은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침략했을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포로의 신분과 상관없이 이방 족속 가운데 뛰어난 자가 되어 왕의 신임과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마음을 가졌고, 그 선을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결과였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어떠한 마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의뢰하였기에 포로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왕의 신임을 받아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요?
1.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한 다니엘
느부갓네살왕은 점령한 속국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을 바벨론으로 데려가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이때 발탁된 소년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흠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들로, 왕은 이들에게 갈대아 학문을 배우며 왕의 진미를 먹게 하였습니다. 포로의 신분으로 이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 우려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진미에 우상의 제물로 드려진 음식이나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으로 만든 음식들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레위기나 성경 곳곳에 보면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스러운 짐승들은 먹지 못하게 금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행위적인 율법의 준행이 중요했기에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한 식물(食物)을 먹으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범죄함이 되었지요.
이에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대신에 채식을 할 수 있도록 환관장에게 청하였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적으로 채식을 할 수 있게 해 보고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과 얼굴빛을 비교하여 보라 했지요.
과연 다니엘의 제안대로 하였을 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은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도 계속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2. 왕의 총애를 받는 총리가 된 다니엘
하나님을 경외하여 계명을 좇아 자신들을 지키고자 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 1장 17절에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하신 대로이지요. 그 결과 이들은 소년들 중에서 왕을 모시는 자들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이들은 왕에게도 인정받았는데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했습니다(단 1:20).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지식에 지식을 더하게 하심으로, 배도 아니고 십 배나 나았으니 얼마나 뛰어납니까?
여러분이 다니엘이라면 포로의 신분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왕의 진미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겠는지요? 이는 당시 상황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포로 신세이니 이것저것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며, 더구나 왕이 지정해 주는 음식을 내 뜻에 맞지 않다고 해서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 선하신 뜻 가운데 우상의 제물과 가증한 식물을 금하셨습니다. 우상의 제물은 당연히 취하면 안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들 안에는 악한 기가 담겨 있어서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되지요. 예를 들어, 한방에서는 몸에 상처가 나고 곪았을 때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합니다. 더 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온전히 행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선한 사람입니다.
3.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없어야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 중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신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여기며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상 숭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성경 곳곳에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도 못하고 결국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적인 선을 앞세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완전히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 평화와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한다며 무수한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으로 이끌며 우상과 타협하게 만들지요.
혹여 여러분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선을 거스르는 일은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하지 말라’, ‘버리라’ 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선의 잣대로 판단하여 ‘너무 매정하지 않은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지는 않았는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할 때에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요, 법이요, 명령입니다.
4. 교회 안에서 지켜야 할 분야
교회 안에서 남녀 간에 지켜야 할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안 된다 했고, 남녀 간에 악수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하고 있지요. 사람이 영의 마음을 이루기 전 육의 속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는 그 육이 발동하여 범죄할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철저히 금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분야에서도 얼마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마음으로 깨달아 준행하고 있는지요?
또한 기관이나 각 부서의 회계는 개인 사정이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의 재정을 임의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쓰고 채워 넣었다 할지라도, 아무리 소액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재정에 손을 대었다면 이는 도적질할 수 있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면 구원과도 상관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분야에서 하나님께서 엄히 경계하신 것들을 얼마나 선한 마음으로 준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말씀을 준행한다 할지라도 속마음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마음으로 깨달아 기쁨과 감사함으로 준행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만 마음 한 편에는 두려움이 있어서 의무감으로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 못한 채 억지로 지키려 하니 너무나 힘들게 지켜 나가는 사람도 있지요. 더구나 아예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선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포로의 신분인데도 좋은 대우를 마다하고 굳이 채식을 했던 그 중심의 선을 깨달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철저히 싫어하고, 기뻐하시는 것만 지켜 행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을 알면서도‘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다.
2. 하나님께서“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 )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간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통일왕국은 르호보암왕 때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왕상 11:26~36). 이후 북이스라엘은 B.C. 721년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사마리아가 함락되어 멸망하였고, 남유다는 B.C. 586년 바벨론 제국 느부갓네살왕의 3차 침공 때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멸망했다.
느부갓네살왕은 여호야김이 유다 왕국을 통치하던 때에 1차 침공을 하였는데(B.C. 605년) 그때에 성전 보물과 함께 왕족과 귀족 일부를 바벨론으로 데려갔다. 다니엘은 이때 잡혀간 포로 중의 한 사람이다.
2020-04-10
제15과부활
사도행전 1:11
읽을말씀 : 사도행전 1:11 | 외울말씀 : 로마서 10:9 l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16~17
교육목표 :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에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게 한다.
주님의 부활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부활을 마음에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굳건한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그날을 더욱 사모하며 성결과 충성에 힘쓸 수도 있지요. 부활이 마음에 믿어지는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며, 주님의 부활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도한 제자들도 담대히 주님의 증인 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온전히 믿을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요. 그러면 부활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활이 희생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주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사건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했습니다(고전 15:19).
이 말씀대로 만약 부활이 없고 이 땅의 삶으로 끝난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반드시 있고 내세는 분명히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 가운데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복 받은 사람들이지요. 이처럼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죽음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도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시기 위해 먼저 죽음에 이르셔야 했지요. 더욱이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을 맞으셔야 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을 사셨지요.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자체부터가 피조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이셨습니다.
또한 사역을 이루시는 동안에는 제대로 주무실 시간도, 잡수실 시간도, 잠시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도 없으셨습니다. 결국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다 내어주시며 자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셨지요.
이처럼 영광의 부활이 있기까지 그 이면에는 엄청난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이러한 주님의 희생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럴 때 부활의 의미와 가치 또한 더욱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취할 것 다 취하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산다면 무엇을 희생했다 말할 수 있겠는지요? 주님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힘들게 억지로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희생하는 만큼 장차 영원한 삶이 주어지는 천국에서는 우리가 희생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상급과 영광이 주어집니다.
둘째, 부활로 인해 영원한 삶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제자들이 며칠 전에 뵈었던 예수님은 극악무도한 자들의 채찍질에 살갗이 엉망이 되고, 머리에는 날카롭고 뾰쪽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에는 큰 못이 박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제대로 주무시지도 드시지도 못한 야윈 몸은, 앙상한 뼈에 가죽만 덮인 듯하였지요.
이러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으시다가 결국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럼에도 한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에 싸여 새로 판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도무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는 완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고 제자들 앞에 부활체의 몸을 입고 나타나 대화를 나누셨지요.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는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 보라 하셨고, 제자들과 구운 생선도 함께 드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본 제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단 하나뿐인 목숨을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다 바쳤습니다. 영생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이제 자연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지요. 제자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확신 가운데 전하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 역시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을 따랐지요.
맹수의 밥이 되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품에 꼭 안긴 어린 자녀에게 “우리 곧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을 피해 평생 햇빛을 직접 보지 못하고 지하 묘지 카타콤에 숨어 살면서도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먼저 잠든 가족을 그 지하 무덤에 장사하면서도 영원히 이별이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다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대로 우리는 살아서 주님을 맞을 소망 가운데 오늘도 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섭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을 찍은 사건입니다. 이 부활이 기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3~14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원의 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구원의 도가 완성될 수 없었고, 우리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채로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아무 죄 없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요.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고는 결코 구원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기 시작할 당시를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의 중요한 핵심이 바로 ‘부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선택할 때 제자 된 자의 사명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지요. 사도행전 1장 22절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부활에 대한 믿음의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진 부활의 종교입니다. 만약 주를 믿는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서 영원히 천국 영광을 누릴 소망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게 말씀대로 살겠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기때문에 세상에 미련 두지 않고, 어떤 핍박이나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생명 다해 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지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통해 얻기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장차 새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하며 마음에 품으신 섭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가심으로 영광스러운 부활의 열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주님의 부활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① 부활이 ( )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② 부활로 인해 ( ) 삶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③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 )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목격한 후 제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위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영적인 부활’이란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목표 :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에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게 한다.
주님의 부활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부활을 마음에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굳건한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그날을 더욱 사모하며 성결과 충성에 힘쓸 수도 있지요. 부활이 마음에 믿어지는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며, 주님의 부활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도한 제자들도 담대히 주님의 증인 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온전히 믿을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요. 그러면 부활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활이 희생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주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사건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했습니다(고전 15:19).
이 말씀대로 만약 부활이 없고 이 땅의 삶으로 끝난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반드시 있고 내세는 분명히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 가운데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복 받은 사람들이지요. 이처럼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죽음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도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시기 위해 먼저 죽음에 이르셔야 했지요. 더욱이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을 맞으셔야 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을 사셨지요.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자체부터가 피조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이셨습니다.
또한 사역을 이루시는 동안에는 제대로 주무실 시간도, 잡수실 시간도, 잠시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도 없으셨습니다. 결국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다 내어주시며 자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셨지요.
이처럼 영광의 부활이 있기까지 그 이면에는 엄청난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이러한 주님의 희생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럴 때 부활의 의미와 가치 또한 더욱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취할 것 다 취하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산다면 무엇을 희생했다 말할 수 있겠는지요? 주님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힘들게 억지로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희생하는 만큼 장차 영원한 삶이 주어지는 천국에서는 우리가 희생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상급과 영광이 주어집니다.
둘째, 부활로 인해 영원한 삶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제자들이 며칠 전에 뵈었던 예수님은 극악무도한 자들의 채찍질에 살갗이 엉망이 되고, 머리에는 날카롭고 뾰쪽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에는 큰 못이 박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제대로 주무시지도 드시지도 못한 야윈 몸은, 앙상한 뼈에 가죽만 덮인 듯하였지요.
이러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으시다가 결국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럼에도 한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에 싸여 새로 판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도무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는 완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고 제자들 앞에 부활체의 몸을 입고 나타나 대화를 나누셨지요.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는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 보라 하셨고, 제자들과 구운 생선도 함께 드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본 제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단 하나뿐인 목숨을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다 바쳤습니다. 영생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이제 자연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지요. 제자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확신 가운데 전하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 역시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을 따랐지요.
맹수의 밥이 되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품에 꼭 안긴 어린 자녀에게 “우리 곧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을 피해 평생 햇빛을 직접 보지 못하고 지하 묘지 카타콤에 숨어 살면서도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먼저 잠든 가족을 그 지하 무덤에 장사하면서도 영원히 이별이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다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대로 우리는 살아서 주님을 맞을 소망 가운데 오늘도 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섭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을 찍은 사건입니다. 이 부활이 기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3~14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원의 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구원의 도가 완성될 수 없었고, 우리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채로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아무 죄 없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요.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고는 결코 구원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기 시작할 당시를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의 중요한 핵심이 바로 ‘부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선택할 때 제자 된 자의 사명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지요. 사도행전 1장 22절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부활에 대한 믿음의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진 부활의 종교입니다. 만약 주를 믿는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서 영원히 천국 영광을 누릴 소망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게 말씀대로 살겠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기때문에 세상에 미련 두지 않고, 어떤 핍박이나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생명 다해 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지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통해 얻기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장차 새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하며 마음에 품으신 섭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가심으로 영광스러운 부활의 열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주님의 부활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① 부활이 ( )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② 부활로 인해 ( ) 삶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③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 )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목격한 후 제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위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영적인 부활’이란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2020-04-03
제14과꿈을 이루실 줄 믿음으로 (2)
창세기 37:5~9
읽을말씀 : 창세기 37:5~9 | 외울말씀 : 로마서 5:3 l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22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으로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며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셋째, 참 믿음은 세상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요셉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인이나 주위 사람들을 항상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요셉을 축복하심으로 그는 가는 곳마다 인정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뿐 아니라 감옥에서도 인정받아 옥중의 제반 사무를 감당하게 되었지요.
이처럼 끝까지 믿음으로 행한 결과 마침내 요셉의 꿈이 현실로 이뤄집니다. 어느 날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범죄하여 그가 있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각 꿈을 꿉니다.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그대로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하고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애굽 왕 바로가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고 있는데, 그 뒤에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어 버렸지요.
이어서 바로는 다시 꿈을 꿉니다. 이번에는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습니다. 왕은 술객과 박사들을 모두 불러 해석하도록 해 보았으나 아무도 풀지 못했습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장의 머릿속에 불현듯 과거에 자신의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이 떠올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왕에게 간 요셉은 아무도 풀지 못한 꿈을 시원스럽게 해석해 줍니다. 즉 일곱 좋은 암소와 좋은 이삭은 일곱 해의 풍년이며, 파리한 일곱 암소와 마른 일곱 이삭은 풍년 다음에 이어질 일곱 해의 흉년을 의미함을 알려 주지요. 그리고 흉년이 너무 심해 이전의 풍작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이며, 꿈을 두 번 꿨으니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 합니다.
이처럼 명쾌하게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은 대처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먼저 지혜로운 사람을 뽑아 책임자로 세우고, 나라에 여러 관리를 두어 일곱 해 풍년 동안 수확한 곡물의 5분의 1을 거두어 저장해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막연히 풍년에 곡식을 거두어 흉년에 대비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곡물을 얼마나 저장해야 할지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하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지요.
왕은 요셉에게 임한 하나님의 지혜에 감탄하며 그를 왕 다음가는 권세자로 세웠습니다. 이는 그가 종으로 팔려온 지 13년 만의 일입니다.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성실히 행했기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온전히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넷째, 고난 중에도 기뻐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아 혹 범죄한 것이 있다면 이에서 돌이켜야 하나님께서 고난에서 건져 주십니다.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아도 회개할 것이 없다면 감사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면 됩니다. 반드시 그 연단을 통해 축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경우 정도를 좇아 성실하게 살았지만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종으로 팔려가고 다시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당한다면 대부분 기쁨도 사라지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불평불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죄수의 신세였을 때에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갔지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요셉이 겪은 고난의 시간이 그 꿈을 가장 단기간에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만인 앞에 존귀한 자가 되리라는 요셉의 꿈은 믿음이 있다 해서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서는 큰 장관의 가정사를 총괄하는 가운데 경제와 인사(人事)에 대한 실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애굽 전체의 재정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했습니다.
또한 왕의 감옥에서는 함께 갇힌 사람들을 통해 총리로서 필요한 정치적 자질을 닦을 수 있었지요. 머리가 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 심지어 악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알아서 다스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낮은 자리를 거치면서 요셉은 더욱 겸비하고 덕과 사랑이 있는 큰마음이 되어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되었고, 연단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통하면서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연단을 거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온 가족의 생명까지 구합니다.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켜 기근을 피하게 하였지요.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꿈을 믿음으로 온전히 이뤄 냈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 때부터 자기 민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 역시 굳게 믿었습니다. 곧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지요. 그래서 “그때가 오면 내 해골을 메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임종 시에 유언하였던 것입니다(창 50:25, 히 11:22). 이를 통해 그가 평생에 얼마나 믿음으로 소망하며 꿈을 이뤄 가는 사람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2.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의 중요성
우리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요셉처럼 꿈이 있어야 하며 기도와 더불어 반드시 응답받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질서의 하나님이므로 순리를 좇아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대기업의 회장이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했다고 합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즉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관련된 분야의 낮은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전문 지식을 익히고 능력을 계발하게 하며 사람의 마음과 세상 이치를 깨닫게 하시지요.
또한 많은 경험과 지혜를 쌓게 하면서 대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가십니다. 때로는 어려운 고비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꿈과 거리가 먼 자리에서 별 진보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믿음으로 견뎌내는 사람은 마침내 크고 아름다운 그릇이 됩니다. 합당한 그릇 만드는 과정이 답답하고 곤고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응답을 받고 열매 맺는 과정인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고 고난이 와도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손에 응답이 쥐어지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질병을 치료받으려는 사람 중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나은 줄로 믿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로 빛나는 얼굴입니다.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즉시 치료하시기도 하고 혹은 하룻밤 자는 사이에 온전케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응답받으려면 믿음을 더 크게 내보여야 하는 경우라도 우선 병세를 크게 호전시켜 주거나 영적인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도 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때가 이르면 반드시 치료해 주십니다. 그러니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요셉의 믿음을 생각하며 모든 곳에서 성실히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여러분은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③ ( )은 세상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④ 고난 중에도 ( )하는 것이 참 믿음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자마자 요셉을 감옥에서 꺼내 주었다면?
히브리 노예에 불과한 요셉은 왕 앞에 나갈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냥 감옥에서 풀려 나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애굽에서 보낸 긴 연단의 시간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채 허송세월한 것이 되고 만다.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될 수 있는 시점이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고 2년이 지난 후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그 시간을 감옥에서 더 지내도록 두신 것이다.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으로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며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셋째, 참 믿음은 세상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요셉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인이나 주위 사람들을 항상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요셉을 축복하심으로 그는 가는 곳마다 인정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뿐 아니라 감옥에서도 인정받아 옥중의 제반 사무를 감당하게 되었지요.
이처럼 끝까지 믿음으로 행한 결과 마침내 요셉의 꿈이 현실로 이뤄집니다. 어느 날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범죄하여 그가 있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각 꿈을 꿉니다.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그대로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하고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애굽 왕 바로가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고 있는데, 그 뒤에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어 버렸지요.
이어서 바로는 다시 꿈을 꿉니다. 이번에는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습니다. 왕은 술객과 박사들을 모두 불러 해석하도록 해 보았으나 아무도 풀지 못했습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장의 머릿속에 불현듯 과거에 자신의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이 떠올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왕에게 간 요셉은 아무도 풀지 못한 꿈을 시원스럽게 해석해 줍니다. 즉 일곱 좋은 암소와 좋은 이삭은 일곱 해의 풍년이며, 파리한 일곱 암소와 마른 일곱 이삭은 풍년 다음에 이어질 일곱 해의 흉년을 의미함을 알려 주지요. 그리고 흉년이 너무 심해 이전의 풍작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이며, 꿈을 두 번 꿨으니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 합니다.
이처럼 명쾌하게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은 대처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먼저 지혜로운 사람을 뽑아 책임자로 세우고, 나라에 여러 관리를 두어 일곱 해 풍년 동안 수확한 곡물의 5분의 1을 거두어 저장해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막연히 풍년에 곡식을 거두어 흉년에 대비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곡물을 얼마나 저장해야 할지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하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지요.
왕은 요셉에게 임한 하나님의 지혜에 감탄하며 그를 왕 다음가는 권세자로 세웠습니다. 이는 그가 종으로 팔려온 지 13년 만의 일입니다.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성실히 행했기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온전히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넷째, 고난 중에도 기뻐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아 혹 범죄한 것이 있다면 이에서 돌이켜야 하나님께서 고난에서 건져 주십니다.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아도 회개할 것이 없다면 감사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면 됩니다. 반드시 그 연단을 통해 축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경우 정도를 좇아 성실하게 살았지만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종으로 팔려가고 다시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당한다면 대부분 기쁨도 사라지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불평불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죄수의 신세였을 때에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갔지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요셉이 겪은 고난의 시간이 그 꿈을 가장 단기간에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만인 앞에 존귀한 자가 되리라는 요셉의 꿈은 믿음이 있다 해서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서는 큰 장관의 가정사를 총괄하는 가운데 경제와 인사(人事)에 대한 실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애굽 전체의 재정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했습니다.
또한 왕의 감옥에서는 함께 갇힌 사람들을 통해 총리로서 필요한 정치적 자질을 닦을 수 있었지요. 머리가 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 심지어 악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알아서 다스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낮은 자리를 거치면서 요셉은 더욱 겸비하고 덕과 사랑이 있는 큰마음이 되어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되었고, 연단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통하면서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연단을 거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온 가족의 생명까지 구합니다.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켜 기근을 피하게 하였지요.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꿈을 믿음으로 온전히 이뤄 냈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 때부터 자기 민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 역시 굳게 믿었습니다. 곧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지요. 그래서 “그때가 오면 내 해골을 메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임종 시에 유언하였던 것입니다(창 50:25, 히 11:22). 이를 통해 그가 평생에 얼마나 믿음으로 소망하며 꿈을 이뤄 가는 사람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2.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의 중요성
우리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요셉처럼 꿈이 있어야 하며 기도와 더불어 반드시 응답받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질서의 하나님이므로 순리를 좇아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대기업의 회장이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했다고 합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즉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관련된 분야의 낮은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전문 지식을 익히고 능력을 계발하게 하며 사람의 마음과 세상 이치를 깨닫게 하시지요.
또한 많은 경험과 지혜를 쌓게 하면서 대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가십니다. 때로는 어려운 고비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꿈과 거리가 먼 자리에서 별 진보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믿음으로 견뎌내는 사람은 마침내 크고 아름다운 그릇이 됩니다. 합당한 그릇 만드는 과정이 답답하고 곤고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응답을 받고 열매 맺는 과정인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고 고난이 와도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손에 응답이 쥐어지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질병을 치료받으려는 사람 중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나은 줄로 믿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로 빛나는 얼굴입니다.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즉시 치료하시기도 하고 혹은 하룻밤 자는 사이에 온전케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응답받으려면 믿음을 더 크게 내보여야 하는 경우라도 우선 병세를 크게 호전시켜 주거나 영적인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도 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때가 이르면 반드시 치료해 주십니다. 그러니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요셉의 믿음을 생각하며 모든 곳에서 성실히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여러분은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③ ( )은 세상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④ 고난 중에도 ( )하는 것이 참 믿음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자마자 요셉을 감옥에서 꺼내 주었다면?
히브리 노예에 불과한 요셉은 왕 앞에 나갈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냥 감옥에서 풀려 나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애굽에서 보낸 긴 연단의 시간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채 허송세월한 것이 되고 만다.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될 수 있는 시점이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고 2년이 지난 후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그 시간을 감옥에서 더 지내도록 두신 것이다.
2020-03-27
제13과꿈을 이루실 줄 믿음으로 (1)
창세기 37:5~9
읽을말씀 : 창세기 37:5~9 | 외울말씀 : 요한일서 5:18 l 참고 말씀: 마가복음 11:24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신속하게 응답받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금식과 철야를 하면서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기도해도 당장 손에 잡히는 열매가 없거나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절망하며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구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요동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어떠하든지 변치 않는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킬 때 마침내 응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증손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열두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열한 번째인 요셉을 더 깊이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귀여움을 받고 자란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어린 나이에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 죄 없이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도 요셉은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으며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와,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귀하게 자란 요셉이 하루아침에 노예 신세가 되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지요. 이러한 과정은 요셉이 자기적인 의와 틀을 철저히 깨뜨리고 변화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연단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연단 속에서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는가?’ 하며 원망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가온 모든 상황을 잠잠히 받아들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파는 형들을 보면서 ‘형들이 그동안 얼마나 나를 미워했으며, 왜 그렇게 미워하게 되었는지.’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내가 형들의 허물을 전하고 꿈 자랑을 할 때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 내 편에서는 옳다 생각했지만 형들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철저히 회개했지요.
또한 요셉은 모든 인생사가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을 깊이 인식했기에 자신의 상황을 풀어 주실 분도 오직 하나님뿐임을 깨닫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요셉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함께하며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기 의가 남아 있었지만 늘 하나님 말씀을 청종했고 말씀대로 행하고자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비록 노예 신세라 해도 또한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니 평안할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커다란 악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들은 바를 명심하여 지켜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자기 의를 깨뜨리며 장차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큰 그릇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내 어려움 가운데서도 오직 믿음으로 행한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2.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더구나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여러 형제 중에서 유달리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사랑했던지 그에게만 채색옷을 입혔고, 다른 아들들은 일하러 나갈 때도 자기 곁에 남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형들은 불평하며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알리기까지 하니 더욱 감정이 상하였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옳지 않은 일을 그냥 넘기지 못하여 그런 것이지만 사랑이 아니었지요. 그뿐 아니라 요셉이 자기가 꾼 꿈을 말하는데, 그 또한 형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을 묶는데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단을 향해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창 37:7). 또 얼마 후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합니다. 이 꿈들은 장차 요셉이 존귀하게 되어 부모와 형제들까지도 그를 높이게 되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형들이 보기에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동생이 갈수록 더 얄미운 말만 합니다. 물론 그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꿈이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실제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더 지혜롭고 겸손했더라면 공연히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여 시기 나게 하지 않고 잠잠히 마음에 담아 두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주변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덕과 지혜가 부족하여 형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을 미워하던 형들은 마침내 그를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 버리고 맙니다. 물론 형들이 악하기 때문에 요셉을 팔아넘겼지만 그에게 자랑하는 마음이 없고 낮은 마음으로 형들을 섬겼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모습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자신의 건강이나 가정, 일터, 사업터 등에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이는 남의 탓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선하고 의롭게 산다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질병이 틈타거나 삶 가운데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생길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어떤 응답을 받기 원할 때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거나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는지 돌아보며 미움, 시기, 간음, 판단 등 마음 안에 비진리가 있다면 회개하여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갔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시리라는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꿈대로 자신이 존귀한 자리에 이르게 되리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종으로 팔려간 곳은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주인은 요셉의 성실함과,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자기 온 집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로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형편이 나아졌는가 했는데, 얼마 후에 요셉은 이전보다 더 비천한 자리로 떨어지고 맙니다.
주인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다가 거절당하자 오히려 자신을 희롱했다는 누명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셉은 수치스러운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수용하는 깊은 감옥에 갇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때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반드시 꿈을 이루어 주실 줄 믿으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처럼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자신이 하나님께 구한 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어도 이미 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결코 낙심하지 않으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니 때가 이르면 그 고백대로 반드시 응답과 축복을 받습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 )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 )하지 않는다.
2.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요셉이 범사에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
만일 죄의 담으로 인해 오는 보응이나 마음에 큰 악이 있어서 빼내도록 허락하신 연단이라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 철저히 홀로 연단을 받아야만 단단히 굳어진 악이 버려지고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연단의 과정도 힘들다. 그러기에 악이 많은 사람은 연단 중에도 악을 발함으로 더 큰 고통과 어려움을 자초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큰 악이 없었고, 연단 중에 악을 발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겸비함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연단 중에도 형통케 하셨다.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신속하게 응답받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금식과 철야를 하면서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기도해도 당장 손에 잡히는 열매가 없거나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절망하며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구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요동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어떠하든지 변치 않는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킬 때 마침내 응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증손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열두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열한 번째인 요셉을 더 깊이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귀여움을 받고 자란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어린 나이에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 죄 없이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도 요셉은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으며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와,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귀하게 자란 요셉이 하루아침에 노예 신세가 되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지요. 이러한 과정은 요셉이 자기적인 의와 틀을 철저히 깨뜨리고 변화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연단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연단 속에서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는가?’ 하며 원망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가온 모든 상황을 잠잠히 받아들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파는 형들을 보면서 ‘형들이 그동안 얼마나 나를 미워했으며, 왜 그렇게 미워하게 되었는지.’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내가 형들의 허물을 전하고 꿈 자랑을 할 때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 내 편에서는 옳다 생각했지만 형들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철저히 회개했지요.
또한 요셉은 모든 인생사가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을 깊이 인식했기에 자신의 상황을 풀어 주실 분도 오직 하나님뿐임을 깨닫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요셉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함께하며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기 의가 남아 있었지만 늘 하나님 말씀을 청종했고 말씀대로 행하고자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비록 노예 신세라 해도 또한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니 평안할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커다란 악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들은 바를 명심하여 지켜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자기 의를 깨뜨리며 장차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큰 그릇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내 어려움 가운데서도 오직 믿음으로 행한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2.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더구나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여러 형제 중에서 유달리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사랑했던지 그에게만 채색옷을 입혔고, 다른 아들들은 일하러 나갈 때도 자기 곁에 남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형들은 불평하며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알리기까지 하니 더욱 감정이 상하였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옳지 않은 일을 그냥 넘기지 못하여 그런 것이지만 사랑이 아니었지요. 그뿐 아니라 요셉이 자기가 꾼 꿈을 말하는데, 그 또한 형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을 묶는데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단을 향해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창 37:7). 또 얼마 후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합니다. 이 꿈들은 장차 요셉이 존귀하게 되어 부모와 형제들까지도 그를 높이게 되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형들이 보기에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동생이 갈수록 더 얄미운 말만 합니다. 물론 그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꿈이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실제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더 지혜롭고 겸손했더라면 공연히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여 시기 나게 하지 않고 잠잠히 마음에 담아 두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주변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덕과 지혜가 부족하여 형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을 미워하던 형들은 마침내 그를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 버리고 맙니다. 물론 형들이 악하기 때문에 요셉을 팔아넘겼지만 그에게 자랑하는 마음이 없고 낮은 마음으로 형들을 섬겼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모습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자신의 건강이나 가정, 일터, 사업터 등에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이는 남의 탓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선하고 의롭게 산다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질병이 틈타거나 삶 가운데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생길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어떤 응답을 받기 원할 때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거나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는지 돌아보며 미움, 시기, 간음, 판단 등 마음 안에 비진리가 있다면 회개하여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갔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시리라는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꿈대로 자신이 존귀한 자리에 이르게 되리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종으로 팔려간 곳은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주인은 요셉의 성실함과,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자기 온 집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로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형편이 나아졌는가 했는데, 얼마 후에 요셉은 이전보다 더 비천한 자리로 떨어지고 맙니다.
주인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다가 거절당하자 오히려 자신을 희롱했다는 누명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셉은 수치스러운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수용하는 깊은 감옥에 갇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때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반드시 꿈을 이루어 주실 줄 믿으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처럼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자신이 하나님께 구한 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어도 이미 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결코 낙심하지 않으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니 때가 이르면 그 고백대로 반드시 응답과 축복을 받습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 )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 )하지 않는다.
2.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요셉이 범사에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
만일 죄의 담으로 인해 오는 보응이나 마음에 큰 악이 있어서 빼내도록 허락하신 연단이라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 철저히 홀로 연단을 받아야만 단단히 굳어진 악이 버려지고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연단의 과정도 힘들다. 그러기에 악이 많은 사람은 연단 중에도 악을 발함으로 더 큰 고통과 어려움을 자초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큰 악이 없었고, 연단 중에 악을 발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겸비함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연단 중에도 형통케 하셨다.
2020-03-20
제12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2)
히브리서 11:6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6 | 외울말씀 : 요한일서 2:12~14 l 참고 말씀 / 마태복음 23:23
교육목표 : 변개함이 없는 중심과 행함으로 믿음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결코 제자리걸음 하거나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 있다면 부모가 얼마나 고통을 받겠습니까.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믿음이 계속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1. 성장하는 믿음
요한일서 2장 12~14절에는 믿음의 성장을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였습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자녀, 아이, 청년, 아비라 하는 것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영적인 믿음의 분량을 나타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 믿음은 겨우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으로서 자녀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성령 받아 자녀의 믿음에 들어선 사람은 속히 성장하여 아이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믿음이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청년의 믿음, 그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진리로 행하는 아비의 믿음으로 계속해서 진보해 가야 합니다.
믿음은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말씀을 깨우치고자 노력하고 기도하며 순종해 나갈 때 믿음이 성장합니다.
물론 사람의 중심과 마음 밭에 따라 더딘 사람도 있고 빠른 사람도 있지만 노력해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영적인 것을 사모하지 않고 불같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성결되기 원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악을 버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고 진정한 결단이 없었다는 사실을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아직 믿음이 크지 않을 때는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다 해도 온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명심하고 지키기 위해 마음에 다지고 또 다지면서 불같이 기도해 나가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2. 열매를 내는 믿음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은 숨겨진 수고와 헌신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기억하시며 반드시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상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으로 수고와 헌신을 해야 하며, 그 믿음은 열매를 통해 증명됩니다. 변개함 없는 중심과 행함으로 믿음이 성장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열매가 맺힙니다.
열심히 충성하는 것 같아도 정작 마음의 악을 버리지 않고 자기 생각과 열심 속에 행한다면 육적인 충성에 불과합니다. 이런 행함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열매가 조금 맺히다가도 익기 전에 떨어져 버립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의(義)’란 옳은 것을 좇는 것, 바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며, ‘인(仁)’이란 사랑과 덕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信)’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계명을 지킬 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마음의 악을 버리고 계명을 지켜 행하며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의와 인과 신이란 마음의 악을 버려 거룩해지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충성뿐 아니라 마음까지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는 가운데 충성하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충성에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열매가 맺히면 우리의 수고와 충성을 축복과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면 이런 소망 가운데 감사함으로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청소하여 성전이 깨끗해졌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중한 열매를 낸 것입니다. 교통정리를 잘하여 차량 소통이 잘되고 성도들이 편안하게 길을 건너게 한 일도, 감동스런 찬양을 올려 성도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구원으로 인도한 것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영혼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어 알곡으로 만든 것도, 주일에 성도들이 행복하게 식사하도록 정성스럽게 준비한 일도 귀한 열매입니다.
그러니 ‘이런 열매는 누가 알아주지 않으며 너무 작아서 티도 안 난다. 나는 언제쯤 큰 열매를 낼까?’ 생각하며 낙심하거나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지금은 작은 열매에 불과하지만 감사하며 그 행함이 쌓이면 큰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분야뿐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 학교 등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 사랑하는 가족,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며 매 순간 다가오는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며 열매를 낼 때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들로 풍성히 채워 주십니다.
때로는 열심히 충성하는데 당장 보이는 열매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도의 경우 열매를 따기까지 많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쉬고 싶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어도 마음을 접고 전도하러 나갑니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여 전도하러 나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험한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정성 다해 전도하고 많은 기도를 쌓았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한 영혼을 교회에 데리고 왔으나 알곡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갈 6:9). 다른 선한 영혼을 만나게 하여 헌신에 대한 열매를 맺게 하기도 하십니다. 전도할 능력과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더해 주셔서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도록 축복하기도 하시지요. 이렇게 맺어진 열매들이 있을 때 그동안 행한 수고와 노력이 하늘의 상급으로도 쌓입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 집에 이르러 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상하심에 감격하여 한동안 눈물만 흘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행한 작은 일 하나까지도 전부 상으로 갚아 주신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해도 상이 되는데, 하나님을 위해 믿음으로 행한 것을 어찌 상으로 갚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설령 자신이 잊어버린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과연 내가 이런 상을 받을 만한 일을 했는가?’ 생각하고 의아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땅에서 행한 장면을 보여 주실 수도 있습니다. 궂은일도 찬송을 부르며 기쁨으로 한 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섬기며 수고한 일, 교회와 양 떼, 성전 건축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한 일 등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기억하고 값진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상급을 바라보며 변개함 없이 달려가되 이전보다 더한 믿음으로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풍성한 열매를 냄으로 이 땅에서 축복을 받음은 물론 천국에서 큰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녀, 아이, 청년, 아비라 하는 것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영적인 ( )을 나타낸다.
2. ( )란 옳은 것을 좇는 것, 바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3. ( )이란 사랑과 덕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4. ( )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계명을 지킬 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분량’(요한일서 2:12~14)
◆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성령을 받아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
◆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
◆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4, 5단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믿음
교육목표 : 변개함이 없는 중심과 행함으로 믿음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결코 제자리걸음 하거나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 있다면 부모가 얼마나 고통을 받겠습니까.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믿음이 계속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1. 성장하는 믿음
요한일서 2장 12~14절에는 믿음의 성장을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였습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자녀, 아이, 청년, 아비라 하는 것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영적인 믿음의 분량을 나타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 믿음은 겨우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으로서 자녀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성령 받아 자녀의 믿음에 들어선 사람은 속히 성장하여 아이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믿음이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청년의 믿음, 그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진리로 행하는 아비의 믿음으로 계속해서 진보해 가야 합니다.
믿음은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말씀을 깨우치고자 노력하고 기도하며 순종해 나갈 때 믿음이 성장합니다.
물론 사람의 중심과 마음 밭에 따라 더딘 사람도 있고 빠른 사람도 있지만 노력해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영적인 것을 사모하지 않고 불같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성결되기 원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악을 버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고 진정한 결단이 없었다는 사실을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아직 믿음이 크지 않을 때는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다 해도 온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명심하고 지키기 위해 마음에 다지고 또 다지면서 불같이 기도해 나가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2. 열매를 내는 믿음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은 숨겨진 수고와 헌신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기억하시며 반드시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상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으로 수고와 헌신을 해야 하며, 그 믿음은 열매를 통해 증명됩니다. 변개함 없는 중심과 행함으로 믿음이 성장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열매가 맺힙니다.
열심히 충성하는 것 같아도 정작 마음의 악을 버리지 않고 자기 생각과 열심 속에 행한다면 육적인 충성에 불과합니다. 이런 행함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열매가 조금 맺히다가도 익기 전에 떨어져 버립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의(義)’란 옳은 것을 좇는 것, 바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며, ‘인(仁)’이란 사랑과 덕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信)’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계명을 지킬 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마음의 악을 버리고 계명을 지켜 행하며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의와 인과 신이란 마음의 악을 버려 거룩해지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충성뿐 아니라 마음까지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는 가운데 충성하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충성에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열매가 맺히면 우리의 수고와 충성을 축복과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면 이런 소망 가운데 감사함으로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청소하여 성전이 깨끗해졌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중한 열매를 낸 것입니다. 교통정리를 잘하여 차량 소통이 잘되고 성도들이 편안하게 길을 건너게 한 일도, 감동스런 찬양을 올려 성도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구원으로 인도한 것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영혼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어 알곡으로 만든 것도, 주일에 성도들이 행복하게 식사하도록 정성스럽게 준비한 일도 귀한 열매입니다.
그러니 ‘이런 열매는 누가 알아주지 않으며 너무 작아서 티도 안 난다. 나는 언제쯤 큰 열매를 낼까?’ 생각하며 낙심하거나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지금은 작은 열매에 불과하지만 감사하며 그 행함이 쌓이면 큰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분야뿐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 학교 등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 사랑하는 가족,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며 매 순간 다가오는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며 열매를 낼 때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들로 풍성히 채워 주십니다.
때로는 열심히 충성하는데 당장 보이는 열매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도의 경우 열매를 따기까지 많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쉬고 싶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어도 마음을 접고 전도하러 나갑니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여 전도하러 나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험한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정성 다해 전도하고 많은 기도를 쌓았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한 영혼을 교회에 데리고 왔으나 알곡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갈 6:9). 다른 선한 영혼을 만나게 하여 헌신에 대한 열매를 맺게 하기도 하십니다. 전도할 능력과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더해 주셔서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도록 축복하기도 하시지요. 이렇게 맺어진 열매들이 있을 때 그동안 행한 수고와 노력이 하늘의 상급으로도 쌓입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 집에 이르러 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상하심에 감격하여 한동안 눈물만 흘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행한 작은 일 하나까지도 전부 상으로 갚아 주신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해도 상이 되는데, 하나님을 위해 믿음으로 행한 것을 어찌 상으로 갚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설령 자신이 잊어버린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과연 내가 이런 상을 받을 만한 일을 했는가?’ 생각하고 의아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땅에서 행한 장면을 보여 주실 수도 있습니다. 궂은일도 찬송을 부르며 기쁨으로 한 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섬기며 수고한 일, 교회와 양 떼, 성전 건축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한 일 등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기억하고 값진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상급을 바라보며 변개함 없이 달려가되 이전보다 더한 믿음으로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풍성한 열매를 냄으로 이 땅에서 축복을 받음은 물론 천국에서 큰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녀, 아이, 청년, 아비라 하는 것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영적인 ( )을 나타낸다.
2. ( )란 옳은 것을 좇는 것, 바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3. ( )이란 사랑과 덕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4. ( )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계명을 지킬 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분량’(요한일서 2:12~14)
◆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성령을 받아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
◆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
◆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4, 5단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믿음
2020-03-13
제11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 1 )
히브리서 11:6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6 | 외울말씀 : 야고보서 1:6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17:24~27
교육목표 :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변개함이 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 응답하시며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에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믿음이 응답과 축복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보다는 ‘얼마나 참된 믿음으로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해도 단지 자기 열심과 성실로써 하는 사람과 믿음을 가지고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는 사람은 그 열매가 다릅니다. 같은 충성을 해도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했느냐에 따라 하늘의 상급이 다르며, 이 땅에서 받는 응답과 축복도 다르지요.
1.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주신 이름입니다. 그는 본래 야고보, 요한과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밤새 수고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고기잡는 일에 전문가였지만 자기의 생각과 이론을 앞세우지 않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바다로 나갔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지요.
마태복음 17장 24~27절에도 그가 예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성전세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을 위해 베드로에게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동원했다면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에 따른 축복을 체험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이루어야 할 일에는 꼭 베드로를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맞은편 마을로 가서 매어 있는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 명하십니다. 그는 그때에도 아무 이의를 달지 않고 온전히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늘 순종하는 자세였기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실 때에 잠시나마 물 위를 걷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하니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모든 제자들이 자기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잡히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새벽 무렵 닭이 울자 그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였지요.
그 후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실수와 허물을 기억지 않고 그에게 많은 영혼을 구원할 귀한 사명을 주셨지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삼천 명이나 회개시키는 힘 있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며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걷고 뛰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그는 큰 권능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갔습니다.
베드로는 핍박 속에서도 요한과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세 번이나 투옥되었으며,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실수가 많았던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로, 초대교회의 용기 있는 지도자로 변화된 것은 진실한 회개와 순종의 행함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처럼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루며 열매를 맺으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2. 변개함이 없는 믿음
변개함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처음과 나중이 똑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보다 믿음이 커지고 더 온전해질 때라야 변개함이 없다 할 수 있지요. 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행복해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풀 한 포기, 작은 돌 하나도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여깁니다. 늘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하는가 하면 만나는 이마다 자신이 아는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 전합니다. 변개하지 않는 믿음으로 이렇게 계속 달려간다면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또는 이런저런 연단을 겪다 보니 믿음이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위한 충성과 열정도 식어집니다. 오히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개함에 대해 ‘누가 이래서, 상황이 저래서’ 등 외적인 데 원인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원인은 바로 자기 안에 있으며 이는 내 안에 그만큼 진리가 임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곧 진실하지 않다는 말로서 이런 사람은 자기 유익을 좇아 수시로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계약을 맺었는데 얼마 후에 더 큰 유익이 되는 제안이 왔습니다. 이때 망설임 없이 그 편을 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알기 때문에 선뜻 바꾸지는 않아도 변개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이럴까 저럴까’ 계속 갈등을 합니다. 그러다 결국 더 유익이 되는 쪽으로 변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야 하나님 나라에 더 유익이니까, 이렇게 하면 모두에게 더 좋으니까’라는 이유를 대면서 합리화합니다. 물론 처음에 정한 것을 바꿈으로써 더 유익이 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 보기에 유익이 되고 좋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설령 불이익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분명하다 해도 한번 정한 마음을 변개치 않고 지키는 사람을 기뻐하며 합력하여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변개함은 여러 분야에서 드러납니다. “더 기도해야지, 더 공부해야지” 하며 마음에 결심했던 일이라도 얼마나 신실하게 지켰는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것쯤이야’ 하며 변개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마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기대하는 만큼 열매가 나오지 않으면 낙심하는 마음도 변개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말씀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변개함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변개함이 없는 마음은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데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서 악의 모양이 드러나면 충만함을 잃고 낙심합니다. 입으로는 ‘자신을 발견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변화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지만 막상 악이 발견되면 힘을 잃습니다. 성결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악이 발견될 때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버리기 위해 변함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습니다. 결국 변개함이라는 속성을 버리는 만큼 신속히 진리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려면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변개하려는 속성을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굳게 지키고, 변개함을 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변함없는 믿음으로 날이 갈수록 더 뜨겁게 노력해 갈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신속히 변개함을 버릴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 )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받을 수 있다. 변개함이 없는 마음은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데에 도 매우 중요하다.
2. 성결한 마음을 이루려면 자신의 악이 발견될 때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버리기 위해 ( )없이 ( )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65~79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변개하는 주된 원인’
사람들이 한번 정한 일이나 처음 가졌던 마음을 변개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하는 간사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물질이나 더 큰 권세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변개한다. 간사함으로 인해 작게는 약속 시간을 어기는 일에서 크게는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일까지 있다.
자기 유익에 따라 작은 약속을 어기는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지만 작은 것을 내주다 보면 그것이 큰 것으로 자랄 수도 있기에 변개함의 속성을 온전히 버려야 한다.
교육목표 :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변개함이 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 응답하시며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에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믿음이 응답과 축복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보다는 ‘얼마나 참된 믿음으로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해도 단지 자기 열심과 성실로써 하는 사람과 믿음을 가지고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는 사람은 그 열매가 다릅니다. 같은 충성을 해도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했느냐에 따라 하늘의 상급이 다르며, 이 땅에서 받는 응답과 축복도 다르지요.
1.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주신 이름입니다. 그는 본래 야고보, 요한과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밤새 수고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고기잡는 일에 전문가였지만 자기의 생각과 이론을 앞세우지 않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바다로 나갔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지요.
마태복음 17장 24~27절에도 그가 예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성전세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을 위해 베드로에게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동원했다면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에 따른 축복을 체험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이루어야 할 일에는 꼭 베드로를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맞은편 마을로 가서 매어 있는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 명하십니다. 그는 그때에도 아무 이의를 달지 않고 온전히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늘 순종하는 자세였기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실 때에 잠시나마 물 위를 걷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하니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모든 제자들이 자기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잡히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새벽 무렵 닭이 울자 그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였지요.
그 후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실수와 허물을 기억지 않고 그에게 많은 영혼을 구원할 귀한 사명을 주셨지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삼천 명이나 회개시키는 힘 있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며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걷고 뛰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그는 큰 권능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갔습니다.
베드로는 핍박 속에서도 요한과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세 번이나 투옥되었으며,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실수가 많았던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로, 초대교회의 용기 있는 지도자로 변화된 것은 진실한 회개와 순종의 행함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처럼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루며 열매를 맺으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2. 변개함이 없는 믿음
변개함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처음과 나중이 똑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보다 믿음이 커지고 더 온전해질 때라야 변개함이 없다 할 수 있지요. 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행복해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풀 한 포기, 작은 돌 하나도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여깁니다. 늘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하는가 하면 만나는 이마다 자신이 아는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 전합니다. 변개하지 않는 믿음으로 이렇게 계속 달려간다면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또는 이런저런 연단을 겪다 보니 믿음이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위한 충성과 열정도 식어집니다. 오히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개함에 대해 ‘누가 이래서, 상황이 저래서’ 등 외적인 데 원인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원인은 바로 자기 안에 있으며 이는 내 안에 그만큼 진리가 임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곧 진실하지 않다는 말로서 이런 사람은 자기 유익을 좇아 수시로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계약을 맺었는데 얼마 후에 더 큰 유익이 되는 제안이 왔습니다. 이때 망설임 없이 그 편을 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알기 때문에 선뜻 바꾸지는 않아도 변개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이럴까 저럴까’ 계속 갈등을 합니다. 그러다 결국 더 유익이 되는 쪽으로 변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야 하나님 나라에 더 유익이니까, 이렇게 하면 모두에게 더 좋으니까’라는 이유를 대면서 합리화합니다. 물론 처음에 정한 것을 바꿈으로써 더 유익이 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 보기에 유익이 되고 좋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설령 불이익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분명하다 해도 한번 정한 마음을 변개치 않고 지키는 사람을 기뻐하며 합력하여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변개함은 여러 분야에서 드러납니다. “더 기도해야지, 더 공부해야지” 하며 마음에 결심했던 일이라도 얼마나 신실하게 지켰는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것쯤이야’ 하며 변개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마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기대하는 만큼 열매가 나오지 않으면 낙심하는 마음도 변개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말씀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변개함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변개함이 없는 마음은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데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서 악의 모양이 드러나면 충만함을 잃고 낙심합니다. 입으로는 ‘자신을 발견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변화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지만 막상 악이 발견되면 힘을 잃습니다. 성결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악이 발견될 때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버리기 위해 변함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습니다. 결국 변개함이라는 속성을 버리는 만큼 신속히 진리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려면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변개하려는 속성을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굳게 지키고, 변개함을 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변함없는 믿음으로 날이 갈수록 더 뜨겁게 노력해 갈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신속히 변개함을 버릴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 )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받을 수 있다. 변개함이 없는 마음은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데에 도 매우 중요하다.
2. 성결한 마음을 이루려면 자신의 악이 발견될 때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버리기 위해 ( )없이 ( )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65~79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변개하는 주된 원인’
사람들이 한번 정한 일이나 처음 가졌던 마음을 변개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하는 간사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물질이나 더 큰 권세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변개한다. 간사함으로 인해 작게는 약속 시간을 어기는 일에서 크게는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일까지 있다.
자기 유익에 따라 작은 약속을 어기는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지만 작은 것을 내주다 보면 그것이 큰 것으로 자랄 수도 있기에 변개함의 속성을 온전히 버려야 한다.
2020-03-06
제10과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2)
마가복음 9:14~29
읽을말씀 : 마가복음 9:14~29 | 외울말씀 : 마가복음 11:24 l 참고 말씀: 예레미야 33:3
교육목표 : 중심에서 믿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긍정적인 고백과 부르짖는 기도를 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보배와 같아서 참 믿음을 소유하면 빛을 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어떠한 난관에 부딪힌다 해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설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지키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받는 데에 꼭 필요한 과정을 마가복음 9장 14~29절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는 과정
첫째, 긍정적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들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아왔던 아버지는 영적인 믿음이 없이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자 즉시 “내가 믿나이다” 하며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물론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으로 고백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분이라는 소문을 들어 머리로 알고 있는 믿음을 고백한 것에 불과합니다. 비록 그에게 영적인 믿음은 없었지만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의 촉진제가 되어 응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고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설령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이미 이루어진 줄로 믿고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또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기 편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행하기 때문에 결국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당회장님께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긍정적인 사고와 믿음의 고백으로 승리하셨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 당회장님은 ‘좋다,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 쉽다, 어렵다’ 등 긍정적인 말들과 부정적인 말들을 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아무래도 긍정적인 일보다는 부정적인 일들이 더 많이 다가오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 성경 말씀을 통해 부정적인 사고나 고백이 얼마나 무익하고 허망하며, 모든 일이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역사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주 안에서 긍정적인 말만 하였으며, 그 입술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보장하시고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신학교 4학년 때 교회 개척을 준비할 무렵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개척하여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운지 아느냐?”며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중심에서 믿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인도하실 것이고 축복받아 부흥하여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였지요. 혹여 누가 부정적인 말을 해도 그 말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으로 기도하며 믿음의 고백을 했더니 과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며 전 세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주셨지요. 이처럼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둘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갈망하며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앞서 “믿나이다” 고백했지만 중심에서 믿지는 않았기에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아는 만큼 스스로 가질 수 있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만큼 마음의 성결을 이루게 되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마음에 믿어지는 참 믿음을 주십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 예수님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의 진실된 성품, 마음을 다한 간구와 행함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믿어지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렇게 영적인 믿음이 주어지니 그 믿음대로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며 아이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소리 지르며 나갔지요(막 9:25~27).
셋째,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의 선지자들도, 예수님도, 신약의 사도들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만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오고 응답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응답이 오지 않는다 해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했듯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하지요.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설령 응답이 좀 더디 온다 해도 실망하지 않으며 응답될 때까지 변함없는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과 정성을 보고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부르짖었기에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는 데서 그치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중심에서 믿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긍정적인 고백과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불치병이나 가정, 직장, 사업터의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단,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적인 믿음을 갖고 나올 때라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수없이 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성경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삶 속에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성도들 중에는 암,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등 불치, 난치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다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온전케 되고 소아마비나 교통사고 등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받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뛰었습니다.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기도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빠른 시간 내에 흉터 없이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뇌출혈이나 연탄가스 중독 등으로 의식이 없고 몸이 굳은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후유증 없이 온전해졌습니다. 5년, 10년, 20년 동안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 외에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온전해져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은 단지 치료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쬘 때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고,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였습니다. 하계수련회 때는 전국이 태풍이나 장마로 큰 피해를 입어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았지요. 그런가 하면 일반적으로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맑은 하늘에서 수없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성경이 참임을 보이심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참 믿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항상 체험하여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 고백이 있어야 한다.
② 영적인 ( )을 소유해야 한다.
③ ( ) 기도가 있어야 한다.
2.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영적 믿음은 없었지만 ( ) 입술의 고백이 마음에 믿어지는 ( )의 촉진제가 되어 응답으로 이어졌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65~79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긍정적인 입술의 말’
긍정적인 입술의 말은 삶을 변화시킨다. 사람의 뇌에 있는 언어 중추신경은 우리 몸의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고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는 점점 약해지고 있어.”라는 말을 하면 언어 중추신경의 작용으로 다른 몸의 신경조직들도 약해지도록 조절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말은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격 형성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인격이 변화되고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교육목표 : 중심에서 믿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긍정적인 고백과 부르짖는 기도를 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보배와 같아서 참 믿음을 소유하면 빛을 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어떠한 난관에 부딪힌다 해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설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지키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받는 데에 꼭 필요한 과정을 마가복음 9장 14~29절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는 과정
첫째, 긍정적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들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아왔던 아버지는 영적인 믿음이 없이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자 즉시 “내가 믿나이다” 하며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물론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으로 고백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분이라는 소문을 들어 머리로 알고 있는 믿음을 고백한 것에 불과합니다. 비록 그에게 영적인 믿음은 없었지만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의 촉진제가 되어 응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고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설령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이미 이루어진 줄로 믿고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또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기 편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행하기 때문에 결국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당회장님께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긍정적인 사고와 믿음의 고백으로 승리하셨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 당회장님은 ‘좋다,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 쉽다, 어렵다’ 등 긍정적인 말들과 부정적인 말들을 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아무래도 긍정적인 일보다는 부정적인 일들이 더 많이 다가오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 성경 말씀을 통해 부정적인 사고나 고백이 얼마나 무익하고 허망하며, 모든 일이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역사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주 안에서 긍정적인 말만 하였으며, 그 입술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보장하시고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신학교 4학년 때 교회 개척을 준비할 무렵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개척하여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운지 아느냐?”며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중심에서 믿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인도하실 것이고 축복받아 부흥하여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였지요. 혹여 누가 부정적인 말을 해도 그 말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으로 기도하며 믿음의 고백을 했더니 과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며 전 세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주셨지요. 이처럼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둘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갈망하며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앞서 “믿나이다” 고백했지만 중심에서 믿지는 않았기에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아는 만큼 스스로 가질 수 있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만큼 마음의 성결을 이루게 되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마음에 믿어지는 참 믿음을 주십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 예수님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의 진실된 성품, 마음을 다한 간구와 행함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믿어지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렇게 영적인 믿음이 주어지니 그 믿음대로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며 아이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소리 지르며 나갔지요(막 9:25~27).
셋째,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의 선지자들도, 예수님도, 신약의 사도들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만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오고 응답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응답이 오지 않는다 해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했듯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하지요.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설령 응답이 좀 더디 온다 해도 실망하지 않으며 응답될 때까지 변함없는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과 정성을 보고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부르짖었기에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는 데서 그치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중심에서 믿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긍정적인 고백과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불치병이나 가정, 직장, 사업터의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단,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적인 믿음을 갖고 나올 때라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수없이 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성경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삶 속에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성도들 중에는 암,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등 불치, 난치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다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온전케 되고 소아마비나 교통사고 등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받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뛰었습니다.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기도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빠른 시간 내에 흉터 없이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뇌출혈이나 연탄가스 중독 등으로 의식이 없고 몸이 굳은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후유증 없이 온전해졌습니다. 5년, 10년, 20년 동안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 외에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온전해져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은 단지 치료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쬘 때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고,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였습니다. 하계수련회 때는 전국이 태풍이나 장마로 큰 피해를 입어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았지요. 그런가 하면 일반적으로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맑은 하늘에서 수없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성경이 참임을 보이심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참 믿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항상 체험하여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 고백이 있어야 한다.
② 영적인 ( )을 소유해야 한다.
③ ( ) 기도가 있어야 한다.
2.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영적 믿음은 없었지만 ( ) 입술의 고백이 마음에 믿어지는 ( )의 촉진제가 되어 응답으로 이어졌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65~79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긍정적인 입술의 말’
긍정적인 입술의 말은 삶을 변화시킨다. 사람의 뇌에 있는 언어 중추신경은 우리 몸의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고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는 점점 약해지고 있어.”라는 말을 하면 언어 중추신경의 작용으로 다른 몸의 신경조직들도 약해지도록 조절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말은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격 형성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인격이 변화되고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2020-02-28
제9과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1)
마가복음 9:23~27
읽을말씀 : 마가복음 9:23~27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1 l 참고 말씀: 요한일서 5:3
교육목표 :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 위한 초석이요, 최소한의 행함인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인생의 어떠한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기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슬프고 마음 아픈 일, 주변으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막막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불치, 난치병으로 고통받거나 사업터, 일터의 문제로 한 가닥 희망조차 없어 보일 때도 있지요.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자녀 문제, 부부간의 갈등 등 말 못할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문제 앞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형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해야
본문을 보면 한 아버지가 아들의 문제로 예수님께 나와 단번에 문제를 해결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다가 내려오셨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가 아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지요.
그 아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심한 발작을 하고 땅에 넘어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신에 들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간질까지 하는 상황이었지요. 한번 발작이 일어나면 불과 물에 넘어져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이런 아들로 인해 아비는 항상 불안과 근심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지요. “예수라는 분이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소경의 눈도 뜨게 하며,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귀신을 내쫓아 주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문은 이 아비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능력 있는 분이라면 내 아들을 고쳐 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지요. 아비는 예수님께 “귀신이 저를(아이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때 그가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라고 말한 것은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것은 하실 수 있고, 어떤 것은 하실 수 없는 분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믿음 없이 요행을 바라고 나왔음을 보여 주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를 깨우쳐 주기 위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비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이의 아버지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는 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했을까요? 정말 믿는다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처음에 “내가 믿나이다” 한 것은 육적인 믿음으로 자신이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 놀라운 역사를 베푸는 분임을 들었지요. 이렇게 들어서 알고 있는 지식적인 믿음으로 “믿는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아니었기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막상 아들의 문제를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이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고,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라고 간구했지요. 이처럼 겸비한 자세로 간구하자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명하시자 즉시 귀신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자기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면 다 믿으며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점은 응답에 대한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는다 해서 무조건 입술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응답받을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위로부터 주십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믿음으로 응답받으려면
첫째,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이 조금도 없는 빛 자체이십니다. 죄는 빛과 반대되는 어둠입니다. 행함으로 짓는 죄뿐 아니라 생각이나 마음으로 짓는 모든 죄도 어둠에 속합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둠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으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어둠인 죄를 버리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하지요. 죄를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할 때 성령께서 도와주시고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므로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다 뽑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죄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집니다. 자연히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살게 되며, 마음에서 어둠이 사라지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뜻을 좇는 것이 당연합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 지혜와 물질 등 자신이 가진 것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해도 하나님의 뜻이면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의 계명 곧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과 함께해 주십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는 믿어지는 믿음이 주어지고 “네 믿음대로 되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여호와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자기 유익에 맞는 일이 생겼을 때 육적인 감정 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누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도 그 기쁨을 돌려 주심으로 참된 기쁨이 임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대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행과 중심에서 드린 예물을 기뻐하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그 밖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할 때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모든 분야에 충성해 나갈 때라야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좀 부족하다 해도 자신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께서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마음의 소원이나 어떤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 하나님과 죄의 담이 있다면 속히 헐어 버리고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과 빛 가운데 행함으로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이의 아버지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는 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을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과 ( )이 없어야 한다.
② 하나님의 ( )을 좇아야 한다.
③ 하나님을 ( ) 해 드려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49~6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힘
① 긍정적인 말은 삶을 변화시킨다.
② 긍정적인 고백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③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교육목표 :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 위한 초석이요, 최소한의 행함인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인생의 어떠한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기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슬프고 마음 아픈 일, 주변으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막막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불치, 난치병으로 고통받거나 사업터, 일터의 문제로 한 가닥 희망조차 없어 보일 때도 있지요.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자녀 문제, 부부간의 갈등 등 말 못할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문제 앞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형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해야
본문을 보면 한 아버지가 아들의 문제로 예수님께 나와 단번에 문제를 해결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다가 내려오셨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가 아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지요.
그 아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심한 발작을 하고 땅에 넘어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신에 들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간질까지 하는 상황이었지요. 한번 발작이 일어나면 불과 물에 넘어져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이런 아들로 인해 아비는 항상 불안과 근심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지요. “예수라는 분이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소경의 눈도 뜨게 하며,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귀신을 내쫓아 주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문은 이 아비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능력 있는 분이라면 내 아들을 고쳐 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지요. 아비는 예수님께 “귀신이 저를(아이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때 그가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라고 말한 것은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것은 하실 수 있고, 어떤 것은 하실 수 없는 분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믿음 없이 요행을 바라고 나왔음을 보여 주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를 깨우쳐 주기 위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비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이의 아버지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는 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했을까요? 정말 믿는다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처음에 “내가 믿나이다” 한 것은 육적인 믿음으로 자신이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 놀라운 역사를 베푸는 분임을 들었지요. 이렇게 들어서 알고 있는 지식적인 믿음으로 “믿는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아니었기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막상 아들의 문제를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이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고,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라고 간구했지요. 이처럼 겸비한 자세로 간구하자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명하시자 즉시 귀신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자기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면 다 믿으며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점은 응답에 대한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는다 해서 무조건 입술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응답받을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위로부터 주십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믿음으로 응답받으려면
첫째,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이 조금도 없는 빛 자체이십니다. 죄는 빛과 반대되는 어둠입니다. 행함으로 짓는 죄뿐 아니라 생각이나 마음으로 짓는 모든 죄도 어둠에 속합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둠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으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어둠인 죄를 버리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하지요. 죄를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할 때 성령께서 도와주시고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므로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다 뽑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죄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집니다. 자연히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살게 되며, 마음에서 어둠이 사라지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뜻을 좇는 것이 당연합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 지혜와 물질 등 자신이 가진 것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해도 하나님의 뜻이면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의 계명 곧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과 함께해 주십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는 믿어지는 믿음이 주어지고 “네 믿음대로 되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여호와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자기 유익에 맞는 일이 생겼을 때 육적인 감정 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누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도 그 기쁨을 돌려 주심으로 참된 기쁨이 임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대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행과 중심에서 드린 예물을 기뻐하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그 밖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할 때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모든 분야에 충성해 나갈 때라야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좀 부족하다 해도 자신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께서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마음의 소원이나 어떤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 하나님과 죄의 담이 있다면 속히 헐어 버리고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과 빛 가운데 행함으로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이의 아버지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는 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을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과 ( )이 없어야 한다.
② 하나님의 ( )을 좇아야 한다.
③ 하나님을 ( ) 해 드려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49~6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힘
① 긍정적인 말은 삶을 변화시킨다.
② 긍정적인 고백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③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2020-02-21
제8과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2)
로마서 8:5~8
읽을말씀 : 로마서 8:5~8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2:10 ㅣ 참고 말씀/ 이사야 55:8~9
교육목표 :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매 순간 진리의 생각을 채움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한다.
영적인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을 명하실 때 순종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리라고 약속하셨다 해도 사람 편에서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불순종한다면 약속의 열매를 얻을 수가 없지요. 비진리의 지식이 있는 만큼 사단의 역사를 받아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며 그런 만큼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1. 영적인 믿음과 순종의 관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떠나라 명하시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주셨으면 그대로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좇아가면 됩니다. 믿으면 순종할 수 있고 그럴 때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1세대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불순종했습니다. 원망 불평하며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대적하여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지요. 반면 어려서부터 말씀으로 양육받은 이스라엘 2세대는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요단강을 밟으라, 여리고성을 돌라’ 할 때도 그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으며 마침내 하나님 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영적인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육신의 생각을 온전히 버린 사람이라야 하나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중심에서 순복하며 말씀을 보장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한 나라에 여러 왕자가 있는데 그중에 맏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것이 관례라고 합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막내 왕자는 아직 어리지만 훌륭한 왕의 자질을 타고났기에 그가 새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 맏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아버지를 신뢰하지 않고 존중하지도 않는다면 그 말씀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혹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왕위를 양보한다 해도 한편으로는 불편함과 서운함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진정 아버지를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아버지가 한 판단을 믿어 드리며 기꺼이 왕위를 양보할 것입니다. 또한 어찌하든 막내의 부족함을 채워 주어 그가 훌륭한 왕이 되도록 돕겠지요. 아버지를 신뢰하며 사랑하기에 ‘어떻게 하면 온전히 순종하여 그 말씀을 보장하여 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떠오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명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순종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떠올리게 되고 설령 순종한다 해도 그저 겉모양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육신의 생각을 버린 사람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명하시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방법론까지 깨우쳐 온전한 순종의 열매를 내놓을 수 있지요. 이처럼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이 오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육신의 생각을 버리려면
첫째, 모든 죄와 악을 버리고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싫다. 밉다. 서럽다. 힘들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육신의 생각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떠오를 때에 ‘아니야,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어!’ 하고 거기서 멈춰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신만 더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그 생각을 진전시키지 않고 일단 멈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처음에 떠올랐던 육신의 생각의 뿌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싫다. 밉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내 안에 아직 ‘미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무시하는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자존심이나 교만이 있는 것이므로 이렇게 뿌리에 해당하는 악을 발견하여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악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마음에 양식 삼고 행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 안에 있는 미움, 혈기, 시기, 판단, 정죄, 교만 등의 비진리를 빼내고 선, 사랑, 섬김, 화평 등의 진리로 채워가야 하지요. 물론 이 과정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하던 사람이 ‘원수도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 말씀을 듣고 알았다 해서 곧바로 미움이 버려지고 진리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원수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만 한다 해서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미움이라는 비진리를 빼내기 위해서는 먼저 비진리 가운데 살았던 예전 모습을 버리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악함을 철저히 뉘우치고 결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굳은 각오와 노력이 있어야 하지요. 그러면서 기도하고 금식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미움이라는 속성이 뽑아지고 대신 사랑이 채워집니다. 그 밖에도 여러 진리의 지식을 배워 마음을 진리로 채워 가는 만큼 미움, 다툼, 시기, 교만, 혈기, 간음 등 각종 비진리가 버려집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만큼 비진리가 신속히 버려지며, 비진리를 온전히 벗어 버린 사람에게는 육신의 생각이 전혀 동원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오직 영의 생각만 하며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좇아 순종하므로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 자신의 생각을 매 순간 진리의 생각으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사람을 대하거나 어떤 일을 보고 들을 때에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며 판단, 정죄하지 말고 항상 진리로 대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말을 듣거나 사람을 대할 때 내가 선과 사랑, 진실함으로 대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변화될 수 있지요.
만일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책망을 들었다면 어떤 생각을 합니까? 내가 잘못하여 책망받았다면 당연히 감사함으로 받고 즉시 돌이켜야 하지요. 애매히 책망을 받았다 해도 하나님은 모든 일을 아시니 상대에게 서운해하거나 감정을 품을 이유가 없습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며 하나님 앞에 맡기면 혹여 오해가 있었다 해도 풀어지고 어떤 해를 입었다 해도 축복으로 바뀔 것이니 마음이 평안하고 기쁩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이 있는 사람은 책망을 들은 그 자체로 심히 마음이 요동하고 고통을 받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에 낙심하여 기운을 잃기도 하고 책망한 상대에게 감정을 품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이런 비진리의 생각이 있다면 즉시 영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긍정적인 생각만 함으로 육신의 생각이 내 안에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해야 하지요. 이처럼 매 순간 진리의 생각으로만 자신을 채워 나가면 육신의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만 하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통달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려 주십니다(고전 2:10). 그러니 성령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가 먼저 주를 믿고, 누가 더 말씀을 많이 알며 직분이 높은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악을 벗고 성결되며 영의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척도가 됩니다.
이사야 55장 8~9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했습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데 방해되는 육신의 생각을 온전히 버림으로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모든 소원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모든 죄와 악을 버리고 ( )이 되어야 한다.
② 자신의 생각을 매 순간 ( )의 생각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2.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 )이 오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49~6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 받은 증거’
①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② 하나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고 싶어진다.
③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한다.
④ 믿음의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⑤ 세상을 믿음으로 이겨 나간다.
⑥ 구원의 확신이 생긴다.
⑦ 기도에 대한 응답의 확신이 생긴다.
⑧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간다.
교육목표 :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매 순간 진리의 생각을 채움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한다.
영적인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을 명하실 때 순종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리라고 약속하셨다 해도 사람 편에서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불순종한다면 약속의 열매를 얻을 수가 없지요. 비진리의 지식이 있는 만큼 사단의 역사를 받아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며 그런 만큼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1. 영적인 믿음과 순종의 관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떠나라 명하시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주셨으면 그대로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좇아가면 됩니다. 믿으면 순종할 수 있고 그럴 때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1세대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불순종했습니다. 원망 불평하며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대적하여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지요. 반면 어려서부터 말씀으로 양육받은 이스라엘 2세대는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요단강을 밟으라, 여리고성을 돌라’ 할 때도 그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으며 마침내 하나님 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영적인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육신의 생각을 온전히 버린 사람이라야 하나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중심에서 순복하며 말씀을 보장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한 나라에 여러 왕자가 있는데 그중에 맏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것이 관례라고 합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막내 왕자는 아직 어리지만 훌륭한 왕의 자질을 타고났기에 그가 새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 맏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아버지를 신뢰하지 않고 존중하지도 않는다면 그 말씀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혹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왕위를 양보한다 해도 한편으로는 불편함과 서운함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진정 아버지를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아버지가 한 판단을 믿어 드리며 기꺼이 왕위를 양보할 것입니다. 또한 어찌하든 막내의 부족함을 채워 주어 그가 훌륭한 왕이 되도록 돕겠지요. 아버지를 신뢰하며 사랑하기에 ‘어떻게 하면 온전히 순종하여 그 말씀을 보장하여 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떠오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명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순종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떠올리게 되고 설령 순종한다 해도 그저 겉모양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육신의 생각을 버린 사람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명하시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방법론까지 깨우쳐 온전한 순종의 열매를 내놓을 수 있지요. 이처럼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이 오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육신의 생각을 버리려면
첫째, 모든 죄와 악을 버리고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싫다. 밉다. 서럽다. 힘들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육신의 생각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떠오를 때에 ‘아니야,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어!’ 하고 거기서 멈춰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신만 더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그 생각을 진전시키지 않고 일단 멈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처음에 떠올랐던 육신의 생각의 뿌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싫다. 밉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내 안에 아직 ‘미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무시하는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자존심이나 교만이 있는 것이므로 이렇게 뿌리에 해당하는 악을 발견하여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악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마음에 양식 삼고 행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 안에 있는 미움, 혈기, 시기, 판단, 정죄, 교만 등의 비진리를 빼내고 선, 사랑, 섬김, 화평 등의 진리로 채워가야 하지요. 물론 이 과정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하던 사람이 ‘원수도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 말씀을 듣고 알았다 해서 곧바로 미움이 버려지고 진리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원수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만 한다 해서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미움이라는 비진리를 빼내기 위해서는 먼저 비진리 가운데 살았던 예전 모습을 버리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악함을 철저히 뉘우치고 결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굳은 각오와 노력이 있어야 하지요. 그러면서 기도하고 금식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미움이라는 속성이 뽑아지고 대신 사랑이 채워집니다. 그 밖에도 여러 진리의 지식을 배워 마음을 진리로 채워 가는 만큼 미움, 다툼, 시기, 교만, 혈기, 간음 등 각종 비진리가 버려집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만큼 비진리가 신속히 버려지며, 비진리를 온전히 벗어 버린 사람에게는 육신의 생각이 전혀 동원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오직 영의 생각만 하며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좇아 순종하므로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 자신의 생각을 매 순간 진리의 생각으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사람을 대하거나 어떤 일을 보고 들을 때에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며 판단, 정죄하지 말고 항상 진리로 대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말을 듣거나 사람을 대할 때 내가 선과 사랑, 진실함으로 대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변화될 수 있지요.
만일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책망을 들었다면 어떤 생각을 합니까? 내가 잘못하여 책망받았다면 당연히 감사함으로 받고 즉시 돌이켜야 하지요. 애매히 책망을 받았다 해도 하나님은 모든 일을 아시니 상대에게 서운해하거나 감정을 품을 이유가 없습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며 하나님 앞에 맡기면 혹여 오해가 있었다 해도 풀어지고 어떤 해를 입었다 해도 축복으로 바뀔 것이니 마음이 평안하고 기쁩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이 있는 사람은 책망을 들은 그 자체로 심히 마음이 요동하고 고통을 받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에 낙심하여 기운을 잃기도 하고 책망한 상대에게 감정을 품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이런 비진리의 생각이 있다면 즉시 영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긍정적인 생각만 함으로 육신의 생각이 내 안에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해야 하지요. 이처럼 매 순간 진리의 생각으로만 자신을 채워 나가면 육신의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만 하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통달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려 주십니다(고전 2:10). 그러니 성령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가 먼저 주를 믿고, 누가 더 말씀을 많이 알며 직분이 높은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악을 벗고 성결되며 영의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척도가 됩니다.
이사야 55장 8~9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했습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데 방해되는 육신의 생각을 온전히 버림으로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모든 소원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모든 죄와 악을 버리고 ( )이 되어야 한다.
② 자신의 생각을 매 순간 ( )의 생각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2.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 )이 오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49~6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 받은 증거’
①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② 하나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고 싶어진다.
③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한다.
④ 믿음의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⑤ 세상을 믿음으로 이겨 나간다.
⑥ 구원의 확신이 생긴다.
⑦ 기도에 대한 응답의 확신이 생긴다.
⑧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