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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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5
제23과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는가 (1)
요한일서 3:18~22
읽을말씀 : 요한일서 3:18~22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5:7 l 참고 말씀: 요한복음 14:13
교육목표 :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 뜻대로 무엇을 구할 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자녀들의 기도와 간구에 응답하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신속한 응답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아버지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죄악에 빠져 지옥으로 달음박질해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지요.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녀는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끝이 없는 사랑의 극치였습니다. 예수님 역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을 주시는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는 생명 다한 사랑을 주셨지요. 이처럼 크신 사랑을 우리는 받았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어둠의 일들을 모두 벗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혹여 어머니가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잊지 않으시며 어떤 부모보다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육의 부모는 자녀에게 어려운 문제나 고민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며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자 힘씁니다. 또한 자녀가 질병에 걸렸다면 아무리 많은 돈이 든다 해도 아끼지 않고 고쳐 주고자 하지요. 하물며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영혼들이 온갖 질병과 재앙으로 고통당하며 혹은 원수 마귀 사단의 조롱거리가 될 때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나 하실 수 있으며 또한 해 주기를 기뻐하시지요.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질병이나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받을 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당하는 것 이상으로 아픔과 슬픔을 겪으시며 한시라도 빨리 응답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영위하며 성결을 이루어 모든 기도와 간구에 신속하게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믿음으로 구하여 응답받은 가나안 여인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큰 기쁨 중의 하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사람은 소원을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합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곧 믿음과 진리 가운데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 살면서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응답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흉악한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이 즉시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가나안 여인은 그분을 만나 뵙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그 지방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딸을 치료해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은 절하며 다시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거절하십니다. 여인의 믿음을 시험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말에 몹시 낙심하거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믿음을 내보인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고백을 하니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자 즉시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응답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끝까지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우리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13절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으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계산적이고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하지요. 계산적이고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모든 면에서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산적인 면이 강한 사람들은 하나를 받았으면 하나를 주고, 하나를 주었으면 하나를 받으려 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한 보답이 오지 않으면 서운해하지요.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만큼 심고 노력했으니 하나님도 이러이러한 은혜를 주셔야 한다고 기대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은혜가 임한다고 느끼지 못하면 마음이 상하고 곤고해집니다. 물론 받은바 은혜는 마땅히 갚아야 하며 하나님 앞에 무엇을 심을 때도 상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 갚음의 마음이나 상 주심을 바라보는 믿음과는 달리 준 만큼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줄 수 없는 계산적인 마음은 믿음이 아니지요.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범죄하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이라 해도 회개하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고 또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들이나 구원받을 사람들만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도 죽으셨으며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중보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감히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벅차며 우리 모든 소유와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은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내가 이만큼 충성했는데 왜 나한테는 이만큼 은혜가 입혀지지 않는가?’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과 감사 속에 ‘어찌하면 더 드릴까?’ 하며, 받은 은혜를 항상 기억함으로 감사와 찬송이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넉넉하고 풍성한 사랑으로 다 드릴 수 있는 마음이 되면, 그만큼 영적인 믿음을 얻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흉악한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이 즉시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 )대로 구했기 때문이다.
2.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으려면 하나님의 ( )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 )이고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2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구원의 길이 되신 주님’
예수님께서 혹독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신 것은 오로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나무에 달려 피를 흘려야만 죄가 속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도록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도 이런 고난의 길을 기쁨으로 가셨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
교육목표 :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 뜻대로 무엇을 구할 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자녀들의 기도와 간구에 응답하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신속한 응답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아버지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죄악에 빠져 지옥으로 달음박질해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지요.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녀는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끝이 없는 사랑의 극치였습니다. 예수님 역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을 주시는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는 생명 다한 사랑을 주셨지요. 이처럼 크신 사랑을 우리는 받았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어둠의 일들을 모두 벗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혹여 어머니가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잊지 않으시며 어떤 부모보다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육의 부모는 자녀에게 어려운 문제나 고민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며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자 힘씁니다. 또한 자녀가 질병에 걸렸다면 아무리 많은 돈이 든다 해도 아끼지 않고 고쳐 주고자 하지요. 하물며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영혼들이 온갖 질병과 재앙으로 고통당하며 혹은 원수 마귀 사단의 조롱거리가 될 때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나 하실 수 있으며 또한 해 주기를 기뻐하시지요.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질병이나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받을 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당하는 것 이상으로 아픔과 슬픔을 겪으시며 한시라도 빨리 응답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영위하며 성결을 이루어 모든 기도와 간구에 신속하게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믿음으로 구하여 응답받은 가나안 여인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큰 기쁨 중의 하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사람은 소원을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합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곧 믿음과 진리 가운데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 살면서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응답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흉악한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이 즉시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가나안 여인은 그분을 만나 뵙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그 지방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딸을 치료해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은 절하며 다시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거절하십니다. 여인의 믿음을 시험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말에 몹시 낙심하거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믿음을 내보인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고백을 하니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자 즉시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응답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끝까지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우리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13절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으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계산적이고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하지요. 계산적이고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모든 면에서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산적인 면이 강한 사람들은 하나를 받았으면 하나를 주고, 하나를 주었으면 하나를 받으려 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한 보답이 오지 않으면 서운해하지요.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만큼 심고 노력했으니 하나님도 이러이러한 은혜를 주셔야 한다고 기대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은혜가 임한다고 느끼지 못하면 마음이 상하고 곤고해집니다. 물론 받은바 은혜는 마땅히 갚아야 하며 하나님 앞에 무엇을 심을 때도 상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 갚음의 마음이나 상 주심을 바라보는 믿음과는 달리 준 만큼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줄 수 없는 계산적인 마음은 믿음이 아니지요.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범죄하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이라 해도 회개하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고 또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들이나 구원받을 사람들만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도 죽으셨으며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중보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감히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벅차며 우리 모든 소유와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은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내가 이만큼 충성했는데 왜 나한테는 이만큼 은혜가 입혀지지 않는가?’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과 감사 속에 ‘어찌하면 더 드릴까?’ 하며, 받은 은혜를 항상 기억함으로 감사와 찬송이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넉넉하고 풍성한 사랑으로 다 드릴 수 있는 마음이 되면, 그만큼 영적인 믿음을 얻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흉악한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이 즉시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 )대로 구했기 때문이다.
2.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으려면 하나님의 ( )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 )이고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2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구원의 길이 되신 주님’
예수님께서 혹독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신 것은 오로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나무에 달려 피를 흘려야만 죄가 속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도록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도 이런 고난의 길을 기쁨으로 가셨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
2020-05-29
제22과성령
요한복음 14:2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4:2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6 l 참고 말씀: 요한복음 14:16~18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영의 세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성령을 항상 의지함으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령강림주일은 바로 이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하시며 성령을 보내 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요 14:16~17).
또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약속하셨지요(요 14:18).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영접하신다는 의미이며, 주님과 하나이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이 약속은 예수님과 하나이신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 고백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를 잊지 않으셨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아담과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끌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다 때가 되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어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하여 인생들과 다시 함께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고 하늘로 돌아가시자, 이번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가는 길은 열어 주셨지만, 우리가 스스로 그 길을 끝까지 잘 가기에는 역부족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도우실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다시 한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그 자체’입니다.
2. 성령이 하시는 일
1)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비진리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해야 성결을 이룰 수 있고, 죽도록 충성하여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기 때문에 악에 물이 들기 쉽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둠의 세상에 살아가면서 육을 벗는 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을 끊고 육을 벗어 버리기 원해도 스스로는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 능히 세상을 끊고 육을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도록 어떻게 도우실까요?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 것을 취하면 마음에 경종을 울려 주십니다. 먼저, 말씀으로 책망하시며 썩어 없어질 육의 것, 사망에 이르는 죄 등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마음 안에서 탄식하심으로 곤고함을 주시지요.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을 취하다가도 성령의 탄식을 느끼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를 뿌리 뽑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세상 것을 어찌하든 버리기 위해 기도하면,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의 능력을 주십니다.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함이 입혀져서 세상 것을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자녀들을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끊어라’, ‘버려라’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 살 때의 기쁨을 맛보게 하심으로써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 세상 오락을 끊고자 노력하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물질, 건강의 축복 등 눈에 보이는 축복은 물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십니다. 어떤 유혹이 올 때 진한 사랑의 눈빛으로 항상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 하나님을 떠올리면, 성령의 역사 가운데 ‘내가 이렇게 세상을 취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실 텐데, 마음을 지켜야지.’ 하며 물리칠 힘이 오지요. 이처럼 자상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세상을 이기며 행복하게 살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저 멀리 천국 보좌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항상 내 곁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 우리의 영혼과 육을 지으신 영과 육의 아버지이십니다(고후 6:18). 다만 아담의 범죄 이후 인생들이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가 되면서 하나님과 멀어짐으로 이것을 실감할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 이러한 사실 곧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깨우쳐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롬 8:14~16). 그런데 그동안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으니 처음에는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어색합니다. 하지만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하던 구습을 벗고 하나님을 닮은 만큼, 어색함이 사라지고 친밀해집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자녀 사이가 친밀해지도록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면, 성령님은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십니다.
쉽게 말해, 성령님은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한 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끊임없이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통달하시므로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깨달아 행하는 만큼,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 변화되지요. 그러면 내 안에서 늘 나와 함께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영의 세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는 이 육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알려 주십니다. 기사와 표적, 희한한 능, 기이한 일 등은 모두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육의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심으로, 성령님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천사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거하는 영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지요. 이처럼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 자체이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 자체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사도들도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을 함께 나타내셨습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천국의 존재를 믿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육의 세상에서 육을 입고 사는 사람들도 영의 세계를 본 듯, 만진 듯 느낄 수 있지요.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더욱 놀랍게 펼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 하셨듯이, 복음을 들어도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가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는 옛날보다 이러한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혼들이라도 영의 눈을 떠서, 영의 세계를 보고 믿게 하시려고 성령의 역사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가 확실히 믿어진다면 천국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 제단에 “영의 공간”을 느낄 수 있는 성령의 역사를 무수히 보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영의 세계를 확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의 세계에는 차원이 다른 여러 공간이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의 감동 속에 주신 말씀을 통해, 천국은 단일한 공간이 아니라 여러 처소로 구분되었다는 것도 알게 하셨습니다. 이는 자녀들이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여 더 큰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여 세상의 비진리를 온전히 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을 부지런히 침노해 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어떠한 일을 하실까요?
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 )을 부어 주신다.
② 하나님의 ( )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신다.
③ ( )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2.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도록 어떻게 도우실까요?
● 금주 과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충만히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보혜사 성령을 더욱 사랑하고 의지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보혜사 성령’
보혜사(保惠師)란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분을 지칭한다.
성령은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맺은 복음의 열매들 곧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임했다. 약 120명쯤 되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보혜사 성령이 오셨다.
성령이 임한 후 성도들은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초대교회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활발하게 전했기 때문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영의 세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성령을 항상 의지함으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령강림주일은 바로 이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하시며 성령을 보내 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요 14:16~17).
또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약속하셨지요(요 14:18).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영접하신다는 의미이며, 주님과 하나이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이 약속은 예수님과 하나이신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 고백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를 잊지 않으셨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아담과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끌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다 때가 되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어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하여 인생들과 다시 함께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고 하늘로 돌아가시자, 이번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가는 길은 열어 주셨지만, 우리가 스스로 그 길을 끝까지 잘 가기에는 역부족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도우실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다시 한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그 자체’입니다.
2. 성령이 하시는 일
1)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비진리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해야 성결을 이룰 수 있고, 죽도록 충성하여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기 때문에 악에 물이 들기 쉽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둠의 세상에 살아가면서 육을 벗는 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을 끊고 육을 벗어 버리기 원해도 스스로는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 능히 세상을 끊고 육을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도록 어떻게 도우실까요?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 것을 취하면 마음에 경종을 울려 주십니다. 먼저, 말씀으로 책망하시며 썩어 없어질 육의 것, 사망에 이르는 죄 등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마음 안에서 탄식하심으로 곤고함을 주시지요.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을 취하다가도 성령의 탄식을 느끼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를 뿌리 뽑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세상 것을 어찌하든 버리기 위해 기도하면,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의 능력을 주십니다.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함이 입혀져서 세상 것을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자녀들을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끊어라’, ‘버려라’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 살 때의 기쁨을 맛보게 하심으로써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 세상 오락을 끊고자 노력하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물질, 건강의 축복 등 눈에 보이는 축복은 물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십니다. 어떤 유혹이 올 때 진한 사랑의 눈빛으로 항상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 하나님을 떠올리면, 성령의 역사 가운데 ‘내가 이렇게 세상을 취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실 텐데, 마음을 지켜야지.’ 하며 물리칠 힘이 오지요. 이처럼 자상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세상을 이기며 행복하게 살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저 멀리 천국 보좌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항상 내 곁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 우리의 영혼과 육을 지으신 영과 육의 아버지이십니다(고후 6:18). 다만 아담의 범죄 이후 인생들이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가 되면서 하나님과 멀어짐으로 이것을 실감할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 이러한 사실 곧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깨우쳐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롬 8:14~16). 그런데 그동안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으니 처음에는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어색합니다. 하지만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하던 구습을 벗고 하나님을 닮은 만큼, 어색함이 사라지고 친밀해집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자녀 사이가 친밀해지도록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면, 성령님은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십니다.
쉽게 말해, 성령님은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한 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끊임없이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통달하시므로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깨달아 행하는 만큼,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 변화되지요. 그러면 내 안에서 늘 나와 함께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영의 세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는 이 육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알려 주십니다. 기사와 표적, 희한한 능, 기이한 일 등은 모두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육의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심으로, 성령님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천사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거하는 영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지요. 이처럼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 자체이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 자체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사도들도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을 함께 나타내셨습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천국의 존재를 믿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육의 세상에서 육을 입고 사는 사람들도 영의 세계를 본 듯, 만진 듯 느낄 수 있지요.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더욱 놀랍게 펼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 하셨듯이, 복음을 들어도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가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는 옛날보다 이러한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혼들이라도 영의 눈을 떠서, 영의 세계를 보고 믿게 하시려고 성령의 역사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가 확실히 믿어진다면 천국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 제단에 “영의 공간”을 느낄 수 있는 성령의 역사를 무수히 보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영의 세계를 확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의 세계에는 차원이 다른 여러 공간이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의 감동 속에 주신 말씀을 통해, 천국은 단일한 공간이 아니라 여러 처소로 구분되었다는 것도 알게 하셨습니다. 이는 자녀들이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여 더 큰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여 세상의 비진리를 온전히 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을 부지런히 침노해 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어떠한 일을 하실까요?
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 )을 부어 주신다.
② 하나님의 ( )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신다.
③ ( )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2.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도록 어떻게 도우실까요?
● 금주 과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충만히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보혜사 성령을 더욱 사랑하고 의지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보혜사 성령’
보혜사(保惠師)란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분을 지칭한다.
성령은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맺은 복음의 열매들 곧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임했다. 약 120명쯤 되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보혜사 성령이 오셨다.
성령이 임한 후 성도들은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초대교회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활발하게 전했기 때문이다.
2020-05-22
제21과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2)
히브리서 10:22
읽을말씀 : 히브리서 10:22 | 외울말씀 : 마가복음 16:17~18 l 참고 말씀: 야고보서 4:11~12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으로 양심의 악을 깨달아 벗어 버리고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우선 자신이 얼마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뿌리째 뽑아 버렸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나무의 큰 뿌리를 뽑으면 잔뿌리까지 뽑히듯이, 9가지 대표적인 죄성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 나오지요.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9가지 대표적인 죄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④ 거짓과 속이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보고하기도 하고 실적을 보태어 보고하기도 합니다. 또는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줄이거나 없는 것처럼 보고하지요. 이는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꾸중을 듣더라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더구나 교회와 목자를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당장은 속아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게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속이려 하고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⑤ 판단입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사람의 겉으로 보이는 행위는 같아도 각 사람마다 중심은 다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므로 판단 정죄는 교만임을 알아야 합니다(약 4:11~12). 더욱이 판단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상대 앞에서는 잘 대해 준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에 대해 안 좋은 말을 전하거나 비방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중적인 모습이지요.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일도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거나 남의 이야기나 소문만 듣고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큰 악의 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⑥ 변개함입니다.
한 번 정한 일은 변개함 없이 지키는 것이 진리입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도 마음에 정하고 입으로 낸 것은 그대로 지키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⑦ 간음입니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요즘은 선정적인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정숙하고 깨끗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정욕을 자극하면서 아름답다고 여기는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환경에 접할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감찰하며 순간 스치는 생각이나 눈빛 하나에 담긴 마음도 아십니다. 마음과 행실에 부끄러운 모습이 없어야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하셨으니 이성을 대할 때 깨끗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⑧ 욕심, 사심, 탐심입니다.
여기에는 물질, 명예, 권세에 대한 욕심도 포함됩니다. 자존심, 인정받으려는 마음, 자기를 고집하고 내 것과 내 가족을 더 중요시하는 사사로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심과 욕심으로 인해 많은 악이 나옵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속이고, 원하는 대로 채우지 못하면 미움, 시기, 살인, 분냄이 나오지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취하려는 마음이나 남의 것이 내 것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없는지, 하나님 나라보다 내 유익을 앞세우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⑨ 배신입니다.
배신은 변개함이나 간사한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을 배신한 사람과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과 끝까지 함께한 사람이 각각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잘 나옵니다. 한 예로, 다윗이 연단받는 중에도 그와 끝까지 함께한 사람이 받은 축복과, 그를 배신하고 떠난 사람의 비참한 결말이 잘 기록되어 있지요. 이러한 성경적인 교훈이 아니라도 배신은 너무나 추한 행위임을 알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양심의 악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했습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해서 버리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둘째로, 몸을 맑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물은 하나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 하시면 버리고 ‘하지 말라’ 하시면 하지 않으며, ‘지키라’ 하시면 지키고 ‘하라’ 하시면 하는 것이 바로 맑은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씻는 것입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기 위해서는 이런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미움, 음욕, 탐심, 거짓, 시기, 혈기 등 자신에게 있는 악을 깨달아 부지런히 버려야 합니다. 다투고 혈기 내던 사람은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사심과 욕심 가운데 높아지고 섬김 받으려는 사람은 낮아지고 섬기며,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그런데 죄를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은 사람의 힘과 의지로만 되는 일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말씀했습니다(딤전 4:5). 따라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자 힘쓰고 애쓰며, 동시에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진리를 좇아 나갈 때 마음에 있는 죄성이 버려지고 그 행위가 거룩해집니다.
양파를 벗기고 벗겨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지만 계속 벗기면 결국 다 벗겨집니다. 마찬가지로 계속 악을 버리고 진리를 행해 나가면 결국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온전케 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불같은 기도의 향을 올리며 말씀대로 행해 나가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을 때 어떠한 축복이 임할까요?
능치 못할 일이 없고 무엇이나 응답받습니다.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가정, 일터, 사업터는 물론 주변에서 함께하는 사람까지 복을 받습니다(신 28:2~6). 따르는 표적으로 성경이 참임을 증거하며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뱀을 집으며 각색 질병을 치료하는 등 표적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참임을 확증하여 무수한 사람을 구원하게 되지요(막 16:17~20).
뿐만 아니라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요일 5:18). 질병이 틈타지 않으며, 영적인 권세가 있기에 어떤 어둠의 세력도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만한 죄악이 없으니 시험이나 환난을 가져다줄 수 없지요.
성령의 주관을 정확히 받으며 그에 온전히 순종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므로(고전 2:10)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인정과 사랑을 받는 위치에 오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귀한 축복은 천국의 가장 영화로운 처소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집에서 수많은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영화로운 삶을 누립니다. 항상 각종 연회가 열리며 새롭고 행복한 일로 가득한 그곳에서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살아가지요.
그러므로 신속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으며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대표적인 죄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혈기 ② 감정 ③ 미움, 시기, 질투 ④ ( )
⑤ ( ) ⑥ 변개함 ⑦ 간음 ⑧ 욕심, 사심, 탐심 ⑨ 배신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먼저 ( )의 악을 깨달아 철저히 버려야 한다. 다음으로는 몸을 ( )로 씻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2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 ‘뱀을 집는다’는 의미
뱀은 영적인 의미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의미한다.
믿는 자가 ‘뱀을 집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 발생하는 ‘사단의 회’를 영적으로 훼파하는 것을 말한다(계 2:9).
예를 들어, 두 사람 이상이 모여 불평, 불만의 말을 내고 판단, 정죄, 이간질로 문제를 일으키는 등, 교회 안에서 분리하여 당을 짓는 것이 사단의 회다. 교회 안에 이러한 사단의 회가 생기면 사랑이 식어 버리며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진다. 5단계의 믿음에 이른 사람은 이러한 사단의 회를 꿰뚫어 보고 말씀의 권세로 깨뜨릴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으로 양심의 악을 깨달아 벗어 버리고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우선 자신이 얼마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뿌리째 뽑아 버렸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나무의 큰 뿌리를 뽑으면 잔뿌리까지 뽑히듯이, 9가지 대표적인 죄성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 나오지요.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9가지 대표적인 죄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④ 거짓과 속이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보고하기도 하고 실적을 보태어 보고하기도 합니다. 또는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줄이거나 없는 것처럼 보고하지요. 이는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꾸중을 듣더라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더구나 교회와 목자를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당장은 속아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게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속이려 하고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⑤ 판단입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사람의 겉으로 보이는 행위는 같아도 각 사람마다 중심은 다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므로 판단 정죄는 교만임을 알아야 합니다(약 4:11~12). 더욱이 판단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상대 앞에서는 잘 대해 준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에 대해 안 좋은 말을 전하거나 비방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중적인 모습이지요.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일도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거나 남의 이야기나 소문만 듣고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큰 악의 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⑥ 변개함입니다.
한 번 정한 일은 변개함 없이 지키는 것이 진리입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도 마음에 정하고 입으로 낸 것은 그대로 지키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⑦ 간음입니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요즘은 선정적인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정숙하고 깨끗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정욕을 자극하면서 아름답다고 여기는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환경에 접할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감찰하며 순간 스치는 생각이나 눈빛 하나에 담긴 마음도 아십니다. 마음과 행실에 부끄러운 모습이 없어야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하셨으니 이성을 대할 때 깨끗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⑧ 욕심, 사심, 탐심입니다.
여기에는 물질, 명예, 권세에 대한 욕심도 포함됩니다. 자존심, 인정받으려는 마음, 자기를 고집하고 내 것과 내 가족을 더 중요시하는 사사로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심과 욕심으로 인해 많은 악이 나옵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속이고, 원하는 대로 채우지 못하면 미움, 시기, 살인, 분냄이 나오지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취하려는 마음이나 남의 것이 내 것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없는지, 하나님 나라보다 내 유익을 앞세우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⑨ 배신입니다.
배신은 변개함이나 간사한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을 배신한 사람과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과 끝까지 함께한 사람이 각각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잘 나옵니다. 한 예로, 다윗이 연단받는 중에도 그와 끝까지 함께한 사람이 받은 축복과, 그를 배신하고 떠난 사람의 비참한 결말이 잘 기록되어 있지요. 이러한 성경적인 교훈이 아니라도 배신은 너무나 추한 행위임을 알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양심의 악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했습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해서 버리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둘째로, 몸을 맑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물은 하나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 하시면 버리고 ‘하지 말라’ 하시면 하지 않으며, ‘지키라’ 하시면 지키고 ‘하라’ 하시면 하는 것이 바로 맑은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씻는 것입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기 위해서는 이런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미움, 음욕, 탐심, 거짓, 시기, 혈기 등 자신에게 있는 악을 깨달아 부지런히 버려야 합니다. 다투고 혈기 내던 사람은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사심과 욕심 가운데 높아지고 섬김 받으려는 사람은 낮아지고 섬기며,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그런데 죄를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은 사람의 힘과 의지로만 되는 일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말씀했습니다(딤전 4:5). 따라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자 힘쓰고 애쓰며, 동시에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진리를 좇아 나갈 때 마음에 있는 죄성이 버려지고 그 행위가 거룩해집니다.
양파를 벗기고 벗겨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지만 계속 벗기면 결국 다 벗겨집니다. 마찬가지로 계속 악을 버리고 진리를 행해 나가면 결국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온전케 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불같은 기도의 향을 올리며 말씀대로 행해 나가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을 때 어떠한 축복이 임할까요?
능치 못할 일이 없고 무엇이나 응답받습니다.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가정, 일터, 사업터는 물론 주변에서 함께하는 사람까지 복을 받습니다(신 28:2~6). 따르는 표적으로 성경이 참임을 증거하며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뱀을 집으며 각색 질병을 치료하는 등 표적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참임을 확증하여 무수한 사람을 구원하게 되지요(막 16:17~20).
뿐만 아니라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요일 5:18). 질병이 틈타지 않으며, 영적인 권세가 있기에 어떤 어둠의 세력도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만한 죄악이 없으니 시험이나 환난을 가져다줄 수 없지요.
성령의 주관을 정확히 받으며 그에 온전히 순종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므로(고전 2:10)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인정과 사랑을 받는 위치에 오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귀한 축복은 천국의 가장 영화로운 처소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집에서 수많은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영화로운 삶을 누립니다. 항상 각종 연회가 열리며 새롭고 행복한 일로 가득한 그곳에서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살아가지요.
그러므로 신속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으며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대표적인 죄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혈기 ② 감정 ③ 미움, 시기, 질투 ④ ( )
⑤ ( ) ⑥ 변개함 ⑦ 간음 ⑧ 욕심, 사심, 탐심 ⑨ 배신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먼저 ( )의 악을 깨달아 철저히 버려야 한다. 다음으로는 몸을 ( )로 씻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2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 ‘뱀을 집는다’는 의미
뱀은 영적인 의미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의미한다.
믿는 자가 ‘뱀을 집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 발생하는 ‘사단의 회’를 영적으로 훼파하는 것을 말한다(계 2:9).
예를 들어, 두 사람 이상이 모여 불평, 불만의 말을 내고 판단, 정죄, 이간질로 문제를 일으키는 등, 교회 안에서 분리하여 당을 짓는 것이 사단의 회다. 교회 안에 이러한 사단의 회가 생기면 사랑이 식어 버리며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진다. 5단계의 믿음에 이른 사람은 이러한 사단의 회를 꿰뚫어 보고 말씀의 권세로 깨뜨릴 수 있다.
2020-05-15
제20과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1)
히브리서 10:22
읽을말씀 : 히브리서 10:22 | 외울말씀 : 요한일서 3:15 l 참고 말씀: 마태복음 5:39~41
교육목표 : 아홉 가지의 대표적인 죄성을 벗어 버림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마음 곧 거짓이 없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이란
참마음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 선과 빛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의 마음입니다. 악이나 거짓이 없고 간사하지 않으며 변개하거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이지요. 비진리와 악이 조금도 없고 선, 사랑, 섬김, 화평 등 진리로 채워진 마음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성령의 역사 속에 자신의 악을 깨닫게 됩니다. 맑은 물인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을 씻어 악을 버리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만큼, 곧 참마음을 이루는 만큼 온전한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온전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지켜 행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으로서 완전한 영의 믿음이며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계속하여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면 마음뿐 아니라 생활 속에도 진리가 온전히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이 되면 주어진 사명을 넘치게 감당하며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기꺼이 버릴 수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권능을 행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의가 아주 강한 사람으로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영웅, 곧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 목수의 아들 예수를 메시아라고 추종하는 데에 분노하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여겼기에 그토록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 바울은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부와 명예, 지식 등 자신의 삶 속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 곧 영원히 변치 않는 천국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오직 복음 전파에 생명을 다했습니다.
그가 순교하기까지의 삶은 줄곧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발이 닳도록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지만 한 번도 힘들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생각했으며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영광의 도구로 쓰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고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았고 깊은 감옥이나 파선의 위험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을 향해 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기고, 많은 상급을 쌓게 하시며 주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마침내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는 너무도 뵙고 싶던 주님을 곧 뵐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 앞에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사도 바울은 소망으로 가득하여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그가 이처럼 어떠한 고난을 받아도, 심지어 생명을 잃는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곱고 선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큰 권능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무수한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하였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치료되고 악귀가 나갔습니다. 삼 층 누각에서 떨어져 죽은 청년 유두고를 살리기도 했고 맹렬한 독을 가진 독사에 물리고도 죽지 않자 사람들이 신이라 여길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큰 권능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교회를 세워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초석을 쌓았습니다. 이로 인해 장차로마가 복음화되었고 아시아와 유럽에도 복음이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하나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은 단번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처럼 믿음의 성장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심의 악을 깨달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뿌리째 뽑아 버렸는지 점검해 봐야 하지요. 나무의 큰 뿌리를 뽑으면 잔뿌리까지 뽑히듯이, 9가지 대표적인 죄성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져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버려야 할 대표적인 9가지 죄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혈기입니다.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이렇게 행함이나 말로 쏟아내는 혈기는 당연히 버려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마음에 혈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거나 이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혈기를 내고도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해 그런 것이다, 의분이다.”라고 변명합니다. 진정 참마음을 이루기 원한다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솔직해야 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해 겉으로 드러내기까지 하면서 ‘나는 아니다.’라고 덮는다면 어떻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평소 자기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이나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던지는 모습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② 감정(憾情)입니다.
감정은 혈기보다 더 넓은 개념입니다.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 감정이지요. 대표적으로 불편함과 서운함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을 했을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가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마태복음 5장 39~41절에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7장 7~10절에는 무익한 종의 마음에 대해 나옵니다. 넘치게 수고하고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고백하는 마음이지요. 이러한 마음이 되면 상대가 자기 마음에 맞춰 주지 않거나 원하는 대로 섬겨 주지 않는다 해서 불편해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③ 미움, 시기, 질투입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말씀한 대로 미움은 큰 악이며 죄입니다. 설령 겉으로 드러내어 미워하지는 않는다 해도 마음에서 계속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기, 질투 역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했습니다(잠 14:30).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으면 마음이 어떠하십니까?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선한 마음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나머지 6가지 대표적인 죄성에 대해서는 다음 과에서 다루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대표적인 죄성들을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 선과 빛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의 마음이다.
2. ( )이란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지켜 행하는 믿음이다.
3. ( )은 혈기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불편함과 ( )을 들 수 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33~14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양심’이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이다.
이는 타고난 근본 마음과 각자의 성장 환경이나 배움 속에서 나름대로 ‘이것이 옳다’라고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르며 대부분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되어 있다.
교육목표 : 아홉 가지의 대표적인 죄성을 벗어 버림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마음 곧 거짓이 없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이란
참마음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 선과 빛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의 마음입니다. 악이나 거짓이 없고 간사하지 않으며 변개하거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이지요. 비진리와 악이 조금도 없고 선, 사랑, 섬김, 화평 등 진리로 채워진 마음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성령의 역사 속에 자신의 악을 깨닫게 됩니다. 맑은 물인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을 씻어 악을 버리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만큼, 곧 참마음을 이루는 만큼 온전한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온전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지켜 행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으로서 완전한 영의 믿음이며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계속하여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면 마음뿐 아니라 생활 속에도 진리가 온전히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이 되면 주어진 사명을 넘치게 감당하며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기꺼이 버릴 수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권능을 행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의가 아주 강한 사람으로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영웅, 곧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 목수의 아들 예수를 메시아라고 추종하는 데에 분노하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여겼기에 그토록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 바울은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부와 명예, 지식 등 자신의 삶 속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 곧 영원히 변치 않는 천국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오직 복음 전파에 생명을 다했습니다.
그가 순교하기까지의 삶은 줄곧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발이 닳도록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지만 한 번도 힘들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생각했으며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영광의 도구로 쓰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고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았고 깊은 감옥이나 파선의 위험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을 향해 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기고, 많은 상급을 쌓게 하시며 주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마침내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는 너무도 뵙고 싶던 주님을 곧 뵐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 앞에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사도 바울은 소망으로 가득하여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그가 이처럼 어떠한 고난을 받아도, 심지어 생명을 잃는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곱고 선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큰 권능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무수한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하였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치료되고 악귀가 나갔습니다. 삼 층 누각에서 떨어져 죽은 청년 유두고를 살리기도 했고 맹렬한 독을 가진 독사에 물리고도 죽지 않자 사람들이 신이라 여길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큰 권능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교회를 세워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초석을 쌓았습니다. 이로 인해 장차로마가 복음화되었고 아시아와 유럽에도 복음이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하나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은 단번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처럼 믿음의 성장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심의 악을 깨달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뿌리째 뽑아 버렸는지 점검해 봐야 하지요. 나무의 큰 뿌리를 뽑으면 잔뿌리까지 뽑히듯이, 9가지 대표적인 죄성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져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버려야 할 대표적인 9가지 죄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혈기입니다.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이렇게 행함이나 말로 쏟아내는 혈기는 당연히 버려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마음에 혈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거나 이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혈기를 내고도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해 그런 것이다, 의분이다.”라고 변명합니다. 진정 참마음을 이루기 원한다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솔직해야 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해 겉으로 드러내기까지 하면서 ‘나는 아니다.’라고 덮는다면 어떻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평소 자기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이나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던지는 모습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② 감정(憾情)입니다.
감정은 혈기보다 더 넓은 개념입니다.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 감정이지요. 대표적으로 불편함과 서운함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을 했을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가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마태복음 5장 39~41절에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7장 7~10절에는 무익한 종의 마음에 대해 나옵니다. 넘치게 수고하고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고백하는 마음이지요. 이러한 마음이 되면 상대가 자기 마음에 맞춰 주지 않거나 원하는 대로 섬겨 주지 않는다 해서 불편해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③ 미움, 시기, 질투입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말씀한 대로 미움은 큰 악이며 죄입니다. 설령 겉으로 드러내어 미워하지는 않는다 해도 마음에서 계속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기, 질투 역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했습니다(잠 14:30).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으면 마음이 어떠하십니까?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선한 마음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나머지 6가지 대표적인 죄성에 대해서는 다음 과에서 다루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대표적인 죄성들을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 선과 빛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의 마음이다.
2. ( )이란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지켜 행하는 믿음이다.
3. ( )은 혈기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불편함과 ( )을 들 수 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33~14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양심’이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이다.
이는 타고난 근본 마음과 각자의 성장 환경이나 배움 속에서 나름대로 ‘이것이 옳다’라고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르며 대부분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되어 있다.
2020-05-08
제19과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 (2)
창세기 13:8~9
읽을말씀 : 창세기 13:8~9 | 외울말씀 : 창세기 13:9 l 참고 말씀: 시편 37:11
교육목표 :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함으로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기며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오직 “예”만 있었고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아 하나님께 사랑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1.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은 아브라함
①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조카 롯도 함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둘의 소유가 불어나 물과 목초지가 부족하자 더는 동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지요. 이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말합니다. 삼촌으로서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선택권을 조카에게 양보하였지요.
롯이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하여 떠났는데도 아브라함은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중심에서 상대를 섬김으로 소자에게도 자신이 누릴 권리를 내줄 수 있었고, 더 달라 해도 기꺼이 줄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윗사람이면서도 화평을 좇기 위하여 조카 롯에게 기쁨으로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이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영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늑탈했을 때
그랄 왕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자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자신이 알았으면 막았을 텐데 모르는 사이에 생긴 일이니 너그러이 넘어가 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마음을 풀어 주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를 책망한 것은 다툼이나 분쟁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은 지적하되 결과적으로는 화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자 이내 먼저 손을 내밀어 화평을 이루어 가지요. 오히려 피해를 입은 자신 편에서 양과 소를 아비멜렉에게 주고 우물로 인해 다시금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둘 사이에 언약의 증거를 삼았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늘 화평하기 원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려는 넓은 마음이었습니다. 온유함으로 주변 사람을 품어 풍부한 화평 가운데 자신의 기반을 다져 나갔지요(시 37:11).
③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을 때와 사라의 매장지를 구입할 때
아브라함은 소돔 땅에 살던 조카 롯이 전쟁 중에 사로잡혀 갔을 때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쫓아가서 적들을 쳐부수고 빼앗겼던 재물과 사람들을 모두 찾아왔습니다(창 14:12~16).
이러한 활약은 롯이 속한 소돔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고 왕은 감사의 뜻으로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을 취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며, 소돔 왕의 은인으로서 전리품을 얼마든지 취할 수도 있지만 사사로운 유익을 취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창 14:23).
또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 때에는 헷 족속이 장사할 굴을 거저 주겠다고 해도 굳이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렀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것은 받지 않는 정직과 성실한 마음을 보여 줍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화평함뿐만 아니라 거룩함을 좇아 행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은 그였기에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할 때 따르는 축복
①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 된 아브라함
히브리서 11장 17~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순종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넘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벗이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게 하시고 물질의 축복과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복도 누리게 하셨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라 하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을 진정 믿는다면 내 생각과 맞지 않아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한 분이시니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종을 내보일 때 상상치 못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거나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만 “예” 할 수 있다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 순종한다면 온전한 순종이 나올 수 없지요.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낮아지고 섬기라” 등등 하나님 말씀은 사람의 생각과 다른 것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때라야 말씀대로 순종하여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② 세계선교를 창대히 이루어가는 본 제단
당회장님은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오직 믿음으로 행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1982년 7월 25일, 어린이를 포함하여 13명이 10평 남짓한 성전에서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세계선교를 창대히 이루며 만민 위에 뛰어난 교회가 되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셨지요.
당회장님은 이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매 순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뜻을 좇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선교와 구제에 힘쓰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하시든지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은 모든 일들을 실상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해외 연합대성회를 통해 전 세계를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 깨우게 하셨습니다.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인도, 러시아, 독일, 미국 등에서 대형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인파가 운집했지요.
기독교를 엄격히 금지하는 국가에서도 담대히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수많은 영혼이 치유받고 귀신이 나가며 우상이 깨어지고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성령의 불은 마침내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3년간의 이스라엘 사역을 통해 극정통 유대인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 크고 작은 규모의 권능의 손수건 집회(행 19:11~12)가 열려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써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세계 기독방송 네트워크(GCN), 세계 기독의사 네트워크(WCDN), 만민국제신학교(MIS) 등을 통해 세계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많은 책자를 발간하고, 각국어로 번역하여 우리가 직접 찾아가지 못한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성결의 복음과 권능의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베풀어집니다.
혹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막상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염려, 근심, 걱정에 싸이지는 않습니까? 참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며 기쁨과 감사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함으로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은 윗사람이면서도 ( )을 좇기 위하여 조카 롯에게 기쁨으로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했다. 이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영적인 ( )이 있었기 때문이다.
2.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 )을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 )할 수 있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33~149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아브라함의 선’
1. 관용과 양순한 마음이었다.
관용과 양순은 마음이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임하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에서 나온다.
2. 사심이 없고 정직하며 성실했다.
3. 하나님을 믿음으로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였다.
교육목표 :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함으로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기며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오직 “예”만 있었고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아 하나님께 사랑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1.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은 아브라함
①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조카 롯도 함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둘의 소유가 불어나 물과 목초지가 부족하자 더는 동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지요. 이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말합니다. 삼촌으로서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선택권을 조카에게 양보하였지요.
롯이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하여 떠났는데도 아브라함은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중심에서 상대를 섬김으로 소자에게도 자신이 누릴 권리를 내줄 수 있었고, 더 달라 해도 기꺼이 줄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윗사람이면서도 화평을 좇기 위하여 조카 롯에게 기쁨으로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이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영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늑탈했을 때
그랄 왕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자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자신이 알았으면 막았을 텐데 모르는 사이에 생긴 일이니 너그러이 넘어가 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마음을 풀어 주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를 책망한 것은 다툼이나 분쟁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은 지적하되 결과적으로는 화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자 이내 먼저 손을 내밀어 화평을 이루어 가지요. 오히려 피해를 입은 자신 편에서 양과 소를 아비멜렉에게 주고 우물로 인해 다시금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둘 사이에 언약의 증거를 삼았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늘 화평하기 원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려는 넓은 마음이었습니다. 온유함으로 주변 사람을 품어 풍부한 화평 가운데 자신의 기반을 다져 나갔지요(시 37:11).
③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을 때와 사라의 매장지를 구입할 때
아브라함은 소돔 땅에 살던 조카 롯이 전쟁 중에 사로잡혀 갔을 때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쫓아가서 적들을 쳐부수고 빼앗겼던 재물과 사람들을 모두 찾아왔습니다(창 14:12~16).
이러한 활약은 롯이 속한 소돔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고 왕은 감사의 뜻으로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을 취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며, 소돔 왕의 은인으로서 전리품을 얼마든지 취할 수도 있지만 사사로운 유익을 취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창 14:23).
또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 때에는 헷 족속이 장사할 굴을 거저 주겠다고 해도 굳이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렀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것은 받지 않는 정직과 성실한 마음을 보여 줍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화평함뿐만 아니라 거룩함을 좇아 행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은 그였기에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할 때 따르는 축복
①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 된 아브라함
히브리서 11장 17~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순종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넘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벗이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게 하시고 물질의 축복과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복도 누리게 하셨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라 하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을 진정 믿는다면 내 생각과 맞지 않아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한 분이시니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종을 내보일 때 상상치 못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거나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만 “예” 할 수 있다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 순종한다면 온전한 순종이 나올 수 없지요.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낮아지고 섬기라” 등등 하나님 말씀은 사람의 생각과 다른 것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때라야 말씀대로 순종하여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② 세계선교를 창대히 이루어가는 본 제단
당회장님은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오직 믿음으로 행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1982년 7월 25일, 어린이를 포함하여 13명이 10평 남짓한 성전에서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세계선교를 창대히 이루며 만민 위에 뛰어난 교회가 되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셨지요.
당회장님은 이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매 순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뜻을 좇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선교와 구제에 힘쓰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하시든지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은 모든 일들을 실상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해외 연합대성회를 통해 전 세계를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 깨우게 하셨습니다.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인도, 러시아, 독일, 미국 등에서 대형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인파가 운집했지요.
기독교를 엄격히 금지하는 국가에서도 담대히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수많은 영혼이 치유받고 귀신이 나가며 우상이 깨어지고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성령의 불은 마침내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3년간의 이스라엘 사역을 통해 극정통 유대인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 크고 작은 규모의 권능의 손수건 집회(행 19:11~12)가 열려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써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세계 기독방송 네트워크(GCN), 세계 기독의사 네트워크(WCDN), 만민국제신학교(MIS) 등을 통해 세계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많은 책자를 발간하고, 각국어로 번역하여 우리가 직접 찾아가지 못한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성결의 복음과 권능의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베풀어집니다.
혹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막상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염려, 근심, 걱정에 싸이지는 않습니까? 참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며 기쁨과 감사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함으로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은 윗사람이면서도 ( )을 좇기 위하여 조카 롯에게 기쁨으로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했다. 이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영적인 ( )이 있었기 때문이다.
2.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 )을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 )할 수 있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33~149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아브라함의 선’
1. 관용과 양순한 마음이었다.
관용과 양순은 마음이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임하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에서 나온다.
2. 사심이 없고 정직하며 성실했다.
3. 하나님을 믿음으로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였다.
2020-05-01
제18과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 (1)
창세기 22:11~14
읽을말씀 : 창세기 22:11~14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1:19 ㅣ 참고 말씀: 창세기 12:1~2
교육목표 : 나의 생각이 앞서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오직 예만 함으로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이레’란 히브리어로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앞서 행하고 준비하며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의미하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던 것은 그만큼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첫째로 섬겼으며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겨 즉시 순종하는 중심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기며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미리 준비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긴 아브라함
1)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말씀하셨습니다(창 12:1~2).
이에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합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나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고백할지 모르나 막상 그러한 상황이 되면 순종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에도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물며 모든 삶의 터전과 경제적인 기반, 그리고 가족들과의 관계까지 다 뒤로하고 목적지도 모른 채 무작정 떠나는 것이 가능할까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첫째로 여겼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뜻을 좇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좇아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그 땅에 기근이 심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창 12:10). 그때 그는 아내에게 그의 누이라 말하게 합니다. 애굽 사람이 아내 사라를 취하기 위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으니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말의 동기가 자기 나름의 지혜를 동원하여 위기를 피해 보려는 생각이었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 지혜대로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 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아내를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은 번민에 싸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의뢰하였습니다. 항상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되었지만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연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즉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자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셨습니다. 애굽 왕과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지요. 그러니 아내를 되찾아 순간에 문제가 해결되고 애굽에 들어갈 때보다 더 많은 소유를 얻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애굽 왕이 사라를 취하려고 아브라함을 후대하여 주었던 양과 소, 노비, 암수 나귀와 약대까지 가지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순종할 마음이 없어서 받는 연단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순종해 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의 생각 때문에 받는 연단은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연단을 통해 더 온전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2) 이스마엘을 내보내라 했을 때
아브라함이 첩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이 본처인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희롱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라는 즉시 이스마엘을 내쫓도록 아브라함에게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똑같이 사랑했기에 그 말에 깊이 근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주인은 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세를 갖고 있었는데, 하갈은 사라에게 속한 여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사라를 잘 타이르고 이해시켜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 머물게 하는 것이 더 선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겼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골육의 정을 생각하면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순종하니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2. 순종을 넘어선 순복의 행함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아브라함은 연단을 통해 오직 “예”만 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명하십니다. 번제란 짐승을 제단 위에 올려 전부 불태워 그 냄새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약 시대 제사법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 세에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니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잠시 망설이거나 고민하지도 않고 즉시 순종했습니다(창 22:3).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순종의 행함이 나왔지요.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마지못해 이삭을 바친 것처럼 말합니다. 그가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사흘 길을 가면서 고민하며 괴로워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결코 슬퍼하거나 번민하지 않았습니다. 삼 일 길을 갈 때도 얼굴에 수심이 차거나 이삭을 보면서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2장 9~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육적인 정에 이끌려 마음이 요동하거나 ‘내 아들을 어떻게 죽일꼬!’ 하며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생각을 동원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입니다(히 11:17~19).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잡으려는 순간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셨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마음과 행함을 아름다운 향으로 받으신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할 어린 양을 미리 준비하시고 이삭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셨지요. 아브라함은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으며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고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축복하셨습니다(창 22:12~18).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예”만 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 ) 여겼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뜻을 좇았다.
2.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 )만 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5~12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복종, 순종, 순복의 차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자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순종이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행함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함은 같아 보여도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차원이 달라진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거나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복종’이라면 ‘순종’이란 설령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100% 따르는 것이다. 나아가 ‘순복’이란 왜 그 일을 명하는지 의중을 헤아려 그 이상으로 이뤄 드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친 사건은 순종 이상의 차원이었다.
하나님이 명하시니 의무감에서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마음 중심으로 온전히 순복한 것이다.
교육목표 : 나의 생각이 앞서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오직 예만 함으로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이레’란 히브리어로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앞서 행하고 준비하며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의미하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던 것은 그만큼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첫째로 섬겼으며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겨 즉시 순종하는 중심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기며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미리 준비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긴 아브라함
1)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말씀하셨습니다(창 12:1~2).
이에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합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나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고백할지 모르나 막상 그러한 상황이 되면 순종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에도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물며 모든 삶의 터전과 경제적인 기반, 그리고 가족들과의 관계까지 다 뒤로하고 목적지도 모른 채 무작정 떠나는 것이 가능할까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첫째로 여겼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뜻을 좇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좇아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그 땅에 기근이 심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창 12:10). 그때 그는 아내에게 그의 누이라 말하게 합니다. 애굽 사람이 아내 사라를 취하기 위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으니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말의 동기가 자기 나름의 지혜를 동원하여 위기를 피해 보려는 생각이었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 지혜대로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 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아내를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은 번민에 싸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의뢰하였습니다. 항상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되었지만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연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즉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자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셨습니다. 애굽 왕과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지요. 그러니 아내를 되찾아 순간에 문제가 해결되고 애굽에 들어갈 때보다 더 많은 소유를 얻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애굽 왕이 사라를 취하려고 아브라함을 후대하여 주었던 양과 소, 노비, 암수 나귀와 약대까지 가지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순종할 마음이 없어서 받는 연단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순종해 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의 생각 때문에 받는 연단은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연단을 통해 더 온전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2) 이스마엘을 내보내라 했을 때
아브라함이 첩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이 본처인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희롱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라는 즉시 이스마엘을 내쫓도록 아브라함에게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똑같이 사랑했기에 그 말에 깊이 근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주인은 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세를 갖고 있었는데, 하갈은 사라에게 속한 여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사라를 잘 타이르고 이해시켜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 머물게 하는 것이 더 선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겼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골육의 정을 생각하면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순종하니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2. 순종을 넘어선 순복의 행함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아브라함은 연단을 통해 오직 “예”만 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명하십니다. 번제란 짐승을 제단 위에 올려 전부 불태워 그 냄새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약 시대 제사법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 세에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니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잠시 망설이거나 고민하지도 않고 즉시 순종했습니다(창 22:3).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순종의 행함이 나왔지요.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마지못해 이삭을 바친 것처럼 말합니다. 그가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사흘 길을 가면서 고민하며 괴로워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결코 슬퍼하거나 번민하지 않았습니다. 삼 일 길을 갈 때도 얼굴에 수심이 차거나 이삭을 보면서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2장 9~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육적인 정에 이끌려 마음이 요동하거나 ‘내 아들을 어떻게 죽일꼬!’ 하며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생각을 동원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입니다(히 11:17~19).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잡으려는 순간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셨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마음과 행함을 아름다운 향으로 받으신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할 어린 양을 미리 준비하시고 이삭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셨지요. 아브라함은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으며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고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축복하셨습니다(창 22:12~18).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예”만 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 ) 여겼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뜻을 좇았다.
2.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 )만 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5~12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복종, 순종, 순복의 차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자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순종이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행함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함은 같아 보여도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차원이 달라진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거나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복종’이라면 ‘순종’이란 설령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100% 따르는 것이다. 나아가 ‘순복’이란 왜 그 일을 명하는지 의중을 헤아려 그 이상으로 이뤄 드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친 사건은 순종 이상의 차원이었다.
하나님이 명하시니 의무감에서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마음 중심으로 온전히 순복한 것이다.
2020-04-24
제17과오직 하나님을 의뢰한 다니엘 (2)
다니엘 6:21~23
읽을말씀 : 다니엘 6:21~23 | 외울말씀 : 사무엘상 12:23 l 참고 말씀: 다니엘 6장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피할 길을 주시며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한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다니엘이 어떠한 믿음과 행함을 내보였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1. 사자 굴에 던져졌으나 지킴 받은 다니엘
다리오왕은 다니엘이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합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사랑을 받자 이를 시기한 무리들은 국사에 대하여 그를 고소할 틈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틈, 아무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단 6:4).
이에 악한 무리들은 계략을 꾸며 왕에게 금령을 정하도록 합니다. 바로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이는 다니엘이 하루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모르는 왕은 단지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일로 여겨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렸습니다.
다니엘은 이를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단 6:10). 금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다니엘을 고소하려는 무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를 발견하고 왕에게 알렸습니다. 그제야 왕은 놀라며 금령을 제정한 일이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한 모략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인을 찍은 금령이 반포된 후이니 왕으로서도 번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왕은 어찌하든 다니엘을 구하려고 종일 근심하며 애를 썼지요. 왕이 머뭇거리자 악한 무리들은 또다시 그 앞에 나아와 신속히 규례대로 시행할 것을 종용합니다.
왕은 할 수 없이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 명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르기를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합니다. 왕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다니엘이 평소에 왕에게 얼마나 하나님을 잘 알려 드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매사에 믿음직한 행실을 보였기에 그가 하나님에 대해 전하면 왕도 그의 말을 심중에 담아 두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진 그날, 왕은 밤이 다하도록 금식하고 기악을 그쳤으며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왕은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라고 슬피 외칩니다. 상식대로라면 그는 이미 생명을 잃고 그 시신마저 갈기갈기 찢겨 사자의 밥이 되었을 상황입니다. 왕이 이렇게 외친 것은 다니엘이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절로 그런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왕에 대한 어떠한 원망이나 서운함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사자 굴에 던져진 뒤, 왕이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슬퍼할까를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새벽같이 달려온 왕에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여 먼저는 왕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2.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 다니엘
다리오왕은 심히 기뻐하며 그를 굴에서 올리라 명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밥이 되기는커녕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다니엘의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뢰한 그는 사자 굴에서 살아나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왕은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무리들을 끌어와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움켜서 뼈까지도 부서뜨렸습니다. 왕은 조서를 내려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을 명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렸습니다(단 6:26~27).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승리입니까. 그가 얼마나 참되고 진실했는지가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시험을 통해 확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금령에 어인이 찍힌 사실을 알고도 평소와 같이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할 때 얼마나 감동하시고 그 기도의 향을 기쁘게 받으셨겠는지요?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 놓인다 해도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며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사자 굴에 던짐 받은 다니엘은 어떠한 믿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축복의 기회로 삼았을까요?
첫째,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은 나라의 금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람의 생각이나 지혜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모함하는 무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생각을 동원하면 30일 동안 내려진 금령이니 잠시 기도를 쉬거나 몰래 기도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켰습니다.
둘째, 기도하는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이는 기도 쉬는 죄(삼상 12:23)를 범치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니 쉬지 않고 해야 하며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눅 22:40). 이처럼 다니엘은 쉬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믿음의 선진이 한결같이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와 같이 어떠한 상황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법을 좇다가 사자 굴에 던져졌다면 이는 승리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켰으니 감사하고, 설령 사자 밥이 된다 해도 영원히 하나님 품에 안겨 살 것이니 감사할 수 있습니다.
넷째,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믿음을 지녔습니다.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 함도, 허물도 없었기 때문에 국사에 대하여 고소할 틈을 얻을 수 없었다 했으니 얼마나 정결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선한 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이 왕에게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있으니 악한 무리의 궤계를 알려 그 계략을 분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에게 알리지 않고 악한 무리에게 대항하지도 않았습니다. 설령 자신을 모함하는 이들로 인해 생명을 잃을지언정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자기를 사자 굴에 던진 왕에게 조금도 서운해하거나 감정을 품지 않는 충성된 신하였습니다. 죄로 인하여 찾아온 시험이라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지만 다니엘은 이처럼 죄가 없었기에 하나님께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섯째,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폭적으로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다니엘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으며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축복을 더하여 마음껏 영광 돌리게 하셨지요. 여러분도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영의 호흡이니 쉬지 않고 해야 한다.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 )해야 한다. 다니엘은 쉬지 않고 ( )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다.
2. 다니엘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 )했기에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으며 하나님께 구했다.
3.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 )을 지녔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5~12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셨던 다니엘의 선’
① 자기를 모함하여 죽이려는 상대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마음이었다.
②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③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피할 길을 주시며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한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다니엘이 어떠한 믿음과 행함을 내보였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1. 사자 굴에 던져졌으나 지킴 받은 다니엘
다리오왕은 다니엘이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합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사랑을 받자 이를 시기한 무리들은 국사에 대하여 그를 고소할 틈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틈, 아무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단 6:4).
이에 악한 무리들은 계략을 꾸며 왕에게 금령을 정하도록 합니다. 바로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이는 다니엘이 하루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모르는 왕은 단지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일로 여겨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렸습니다.
다니엘은 이를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단 6:10). 금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다니엘을 고소하려는 무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를 발견하고 왕에게 알렸습니다. 그제야 왕은 놀라며 금령을 제정한 일이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한 모략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인을 찍은 금령이 반포된 후이니 왕으로서도 번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왕은 어찌하든 다니엘을 구하려고 종일 근심하며 애를 썼지요. 왕이 머뭇거리자 악한 무리들은 또다시 그 앞에 나아와 신속히 규례대로 시행할 것을 종용합니다.
왕은 할 수 없이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 명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르기를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합니다. 왕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다니엘이 평소에 왕에게 얼마나 하나님을 잘 알려 드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매사에 믿음직한 행실을 보였기에 그가 하나님에 대해 전하면 왕도 그의 말을 심중에 담아 두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진 그날, 왕은 밤이 다하도록 금식하고 기악을 그쳤으며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왕은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라고 슬피 외칩니다. 상식대로라면 그는 이미 생명을 잃고 그 시신마저 갈기갈기 찢겨 사자의 밥이 되었을 상황입니다. 왕이 이렇게 외친 것은 다니엘이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절로 그런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왕에 대한 어떠한 원망이나 서운함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사자 굴에 던져진 뒤, 왕이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슬퍼할까를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새벽같이 달려온 왕에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여 먼저는 왕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2.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 다니엘
다리오왕은 심히 기뻐하며 그를 굴에서 올리라 명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밥이 되기는커녕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다니엘의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뢰한 그는 사자 굴에서 살아나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왕은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무리들을 끌어와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움켜서 뼈까지도 부서뜨렸습니다. 왕은 조서를 내려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을 명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렸습니다(단 6:26~27).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승리입니까. 그가 얼마나 참되고 진실했는지가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시험을 통해 확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금령에 어인이 찍힌 사실을 알고도 평소와 같이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할 때 얼마나 감동하시고 그 기도의 향을 기쁘게 받으셨겠는지요?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 놓인다 해도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며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사자 굴에 던짐 받은 다니엘은 어떠한 믿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축복의 기회로 삼았을까요?
첫째,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은 나라의 금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람의 생각이나 지혜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모함하는 무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생각을 동원하면 30일 동안 내려진 금령이니 잠시 기도를 쉬거나 몰래 기도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켰습니다.
둘째, 기도하는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이는 기도 쉬는 죄(삼상 12:23)를 범치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니 쉬지 않고 해야 하며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눅 22:40). 이처럼 다니엘은 쉬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믿음의 선진이 한결같이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와 같이 어떠한 상황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법을 좇다가 사자 굴에 던져졌다면 이는 승리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켰으니 감사하고, 설령 사자 밥이 된다 해도 영원히 하나님 품에 안겨 살 것이니 감사할 수 있습니다.
넷째,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믿음을 지녔습니다.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 함도, 허물도 없었기 때문에 국사에 대하여 고소할 틈을 얻을 수 없었다 했으니 얼마나 정결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선한 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이 왕에게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있으니 악한 무리의 궤계를 알려 그 계략을 분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에게 알리지 않고 악한 무리에게 대항하지도 않았습니다. 설령 자신을 모함하는 이들로 인해 생명을 잃을지언정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자기를 사자 굴에 던진 왕에게 조금도 서운해하거나 감정을 품지 않는 충성된 신하였습니다. 죄로 인하여 찾아온 시험이라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지만 다니엘은 이처럼 죄가 없었기에 하나님께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섯째,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폭적으로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다니엘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으며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축복을 더하여 마음껏 영광 돌리게 하셨지요. 여러분도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영의 호흡이니 쉬지 않고 해야 한다.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 )해야 한다. 다니엘은 쉬지 않고 ( )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다.
2. 다니엘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 )했기에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으며 하나님께 구했다.
3.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 )을 지녔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5~12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셨던 다니엘의 선’
① 자기를 모함하여 죽이려는 상대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마음이었다.
②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③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2020-04-17
제16과오직 하나님을 의뢰한 다니엘 (1)
다니엘 1:8~20
읽을말씀 : 다니엘 1:8~20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1 l 참고 말씀: 레위기 11장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하며 세상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다니엘은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침략했을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포로의 신분과 상관없이 이방 족속 가운데 뛰어난 자가 되어 왕의 신임과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마음을 가졌고, 그 선을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결과였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어떠한 마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의뢰하였기에 포로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왕의 신임을 받아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요?
1.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한 다니엘
느부갓네살왕은 점령한 속국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을 바벨론으로 데려가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이때 발탁된 소년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흠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들로, 왕은 이들에게 갈대아 학문을 배우며 왕의 진미를 먹게 하였습니다. 포로의 신분으로 이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 우려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진미에 우상의 제물로 드려진 음식이나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으로 만든 음식들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레위기나 성경 곳곳에 보면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스러운 짐승들은 먹지 못하게 금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행위적인 율법의 준행이 중요했기에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한 식물(食物)을 먹으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범죄함이 되었지요.
이에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대신에 채식을 할 수 있도록 환관장에게 청하였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적으로 채식을 할 수 있게 해 보고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과 얼굴빛을 비교하여 보라 했지요.
과연 다니엘의 제안대로 하였을 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은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도 계속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2. 왕의 총애를 받는 총리가 된 다니엘
하나님을 경외하여 계명을 좇아 자신들을 지키고자 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 1장 17절에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하신 대로이지요. 그 결과 이들은 소년들 중에서 왕을 모시는 자들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이들은 왕에게도 인정받았는데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했습니다(단 1:20).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지식에 지식을 더하게 하심으로, 배도 아니고 십 배나 나았으니 얼마나 뛰어납니까?
여러분이 다니엘이라면 포로의 신분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왕의 진미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겠는지요? 이는 당시 상황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포로 신세이니 이것저것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며, 더구나 왕이 지정해 주는 음식을 내 뜻에 맞지 않다고 해서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 선하신 뜻 가운데 우상의 제물과 가증한 식물을 금하셨습니다. 우상의 제물은 당연히 취하면 안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들 안에는 악한 기가 담겨 있어서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되지요. 예를 들어, 한방에서는 몸에 상처가 나고 곪았을 때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합니다. 더 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온전히 행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선한 사람입니다.
3.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없어야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 중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신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여기며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상 숭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성경 곳곳에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도 못하고 결국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적인 선을 앞세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완전히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 평화와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한다며 무수한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으로 이끌며 우상과 타협하게 만들지요.
혹여 여러분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선을 거스르는 일은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하지 말라’, ‘버리라’ 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선의 잣대로 판단하여 ‘너무 매정하지 않은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지는 않았는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할 때에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요, 법이요, 명령입니다.
4. 교회 안에서 지켜야 할 분야
교회 안에서 남녀 간에 지켜야 할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안 된다 했고, 남녀 간에 악수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하고 있지요. 사람이 영의 마음을 이루기 전 육의 속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는 그 육이 발동하여 범죄할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철저히 금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분야에서도 얼마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마음으로 깨달아 준행하고 있는지요?
또한 기관이나 각 부서의 회계는 개인 사정이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의 재정을 임의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쓰고 채워 넣었다 할지라도, 아무리 소액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재정에 손을 대었다면 이는 도적질할 수 있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면 구원과도 상관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분야에서 하나님께서 엄히 경계하신 것들을 얼마나 선한 마음으로 준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말씀을 준행한다 할지라도 속마음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마음으로 깨달아 기쁨과 감사함으로 준행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만 마음 한 편에는 두려움이 있어서 의무감으로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 못한 채 억지로 지키려 하니 너무나 힘들게 지켜 나가는 사람도 있지요. 더구나 아예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선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포로의 신분인데도 좋은 대우를 마다하고 굳이 채식을 했던 그 중심의 선을 깨달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철저히 싫어하고, 기뻐하시는 것만 지켜 행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을 알면서도‘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다.
2. 하나님께서“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 )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간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통일왕국은 르호보암왕 때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왕상 11:26~36). 이후 북이스라엘은 B.C. 721년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사마리아가 함락되어 멸망하였고, 남유다는 B.C. 586년 바벨론 제국 느부갓네살왕의 3차 침공 때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멸망했다.
느부갓네살왕은 여호야김이 유다 왕국을 통치하던 때에 1차 침공을 하였는데(B.C. 605년) 그때에 성전 보물과 함께 왕족과 귀족 일부를 바벨론으로 데려갔다. 다니엘은 이때 잡혀간 포로 중의 한 사람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하며 세상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다니엘은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침략했을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포로의 신분과 상관없이 이방 족속 가운데 뛰어난 자가 되어 왕의 신임과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마음을 가졌고, 그 선을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결과였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어떠한 마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의뢰하였기에 포로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왕의 신임을 받아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요?
1.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한 다니엘
느부갓네살왕은 점령한 속국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을 바벨론으로 데려가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이때 발탁된 소년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흠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들로, 왕은 이들에게 갈대아 학문을 배우며 왕의 진미를 먹게 하였습니다. 포로의 신분으로 이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 우려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진미에 우상의 제물로 드려진 음식이나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으로 만든 음식들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레위기나 성경 곳곳에 보면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스러운 짐승들은 먹지 못하게 금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행위적인 율법의 준행이 중요했기에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한 식물(食物)을 먹으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범죄함이 되었지요.
이에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대신에 채식을 할 수 있도록 환관장에게 청하였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적으로 채식을 할 수 있게 해 보고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과 얼굴빛을 비교하여 보라 했지요.
과연 다니엘의 제안대로 하였을 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은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도 계속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2. 왕의 총애를 받는 총리가 된 다니엘
하나님을 경외하여 계명을 좇아 자신들을 지키고자 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 1장 17절에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하신 대로이지요. 그 결과 이들은 소년들 중에서 왕을 모시는 자들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이들은 왕에게도 인정받았는데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했습니다(단 1:20).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지식에 지식을 더하게 하심으로, 배도 아니고 십 배나 나았으니 얼마나 뛰어납니까?
여러분이 다니엘이라면 포로의 신분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왕의 진미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겠는지요? 이는 당시 상황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포로 신세이니 이것저것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며, 더구나 왕이 지정해 주는 음식을 내 뜻에 맞지 않다고 해서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 선하신 뜻 가운데 우상의 제물과 가증한 식물을 금하셨습니다. 우상의 제물은 당연히 취하면 안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들 안에는 악한 기가 담겨 있어서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되지요. 예를 들어, 한방에서는 몸에 상처가 나고 곪았을 때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합니다. 더 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온전히 행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선한 사람입니다.
3.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없어야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 중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신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여기며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상 숭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성경 곳곳에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도 못하고 결국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적인 선을 앞세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완전히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 평화와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한다며 무수한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으로 이끌며 우상과 타협하게 만들지요.
혹여 여러분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선을 거스르는 일은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하지 말라’, ‘버리라’ 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선의 잣대로 판단하여 ‘너무 매정하지 않은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지는 않았는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할 때에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요, 법이요, 명령입니다.
4. 교회 안에서 지켜야 할 분야
교회 안에서 남녀 간에 지켜야 할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안 된다 했고, 남녀 간에 악수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하고 있지요. 사람이 영의 마음을 이루기 전 육의 속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는 그 육이 발동하여 범죄할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철저히 금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분야에서도 얼마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마음으로 깨달아 준행하고 있는지요?
또한 기관이나 각 부서의 회계는 개인 사정이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의 재정을 임의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쓰고 채워 넣었다 할지라도, 아무리 소액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재정에 손을 대었다면 이는 도적질할 수 있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면 구원과도 상관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분야에서 하나님께서 엄히 경계하신 것들을 얼마나 선한 마음으로 준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말씀을 준행한다 할지라도 속마음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마음으로 깨달아 기쁨과 감사함으로 준행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만 마음 한 편에는 두려움이 있어서 의무감으로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 못한 채 억지로 지키려 하니 너무나 힘들게 지켜 나가는 사람도 있지요. 더구나 아예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선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포로의 신분인데도 좋은 대우를 마다하고 굳이 채식을 했던 그 중심의 선을 깨달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철저히 싫어하고, 기뻐하시는 것만 지켜 행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을 알면서도‘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다.
2. 하나님께서“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 )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간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통일왕국은 르호보암왕 때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왕상 11:26~36). 이후 북이스라엘은 B.C. 721년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사마리아가 함락되어 멸망하였고, 남유다는 B.C. 586년 바벨론 제국 느부갓네살왕의 3차 침공 때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멸망했다.
느부갓네살왕은 여호야김이 유다 왕국을 통치하던 때에 1차 침공을 하였는데(B.C. 605년) 그때에 성전 보물과 함께 왕족과 귀족 일부를 바벨론으로 데려갔다. 다니엘은 이때 잡혀간 포로 중의 한 사람이다.
2020-04-10
제15과부활
사도행전 1:11
읽을말씀 : 사도행전 1:11 | 외울말씀 : 로마서 10:9 l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16~17
교육목표 :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에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게 한다.
주님의 부활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부활을 마음에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굳건한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그날을 더욱 사모하며 성결과 충성에 힘쓸 수도 있지요. 부활이 마음에 믿어지는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며, 주님의 부활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도한 제자들도 담대히 주님의 증인 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온전히 믿을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요. 그러면 부활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활이 희생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주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사건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했습니다(고전 15:19).
이 말씀대로 만약 부활이 없고 이 땅의 삶으로 끝난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반드시 있고 내세는 분명히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 가운데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복 받은 사람들이지요. 이처럼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죽음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도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시기 위해 먼저 죽음에 이르셔야 했지요. 더욱이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을 맞으셔야 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을 사셨지요.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자체부터가 피조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이셨습니다.
또한 사역을 이루시는 동안에는 제대로 주무실 시간도, 잡수실 시간도, 잠시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도 없으셨습니다. 결국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다 내어주시며 자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셨지요.
이처럼 영광의 부활이 있기까지 그 이면에는 엄청난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이러한 주님의 희생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럴 때 부활의 의미와 가치 또한 더욱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취할 것 다 취하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산다면 무엇을 희생했다 말할 수 있겠는지요? 주님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힘들게 억지로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희생하는 만큼 장차 영원한 삶이 주어지는 천국에서는 우리가 희생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상급과 영광이 주어집니다.
둘째, 부활로 인해 영원한 삶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제자들이 며칠 전에 뵈었던 예수님은 극악무도한 자들의 채찍질에 살갗이 엉망이 되고, 머리에는 날카롭고 뾰쪽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에는 큰 못이 박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제대로 주무시지도 드시지도 못한 야윈 몸은, 앙상한 뼈에 가죽만 덮인 듯하였지요.
이러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으시다가 결국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럼에도 한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에 싸여 새로 판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도무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는 완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고 제자들 앞에 부활체의 몸을 입고 나타나 대화를 나누셨지요.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는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 보라 하셨고, 제자들과 구운 생선도 함께 드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본 제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단 하나뿐인 목숨을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다 바쳤습니다. 영생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이제 자연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지요. 제자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확신 가운데 전하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 역시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을 따랐지요.
맹수의 밥이 되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품에 꼭 안긴 어린 자녀에게 “우리 곧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을 피해 평생 햇빛을 직접 보지 못하고 지하 묘지 카타콤에 숨어 살면서도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먼저 잠든 가족을 그 지하 무덤에 장사하면서도 영원히 이별이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다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대로 우리는 살아서 주님을 맞을 소망 가운데 오늘도 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섭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을 찍은 사건입니다. 이 부활이 기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3~14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원의 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구원의 도가 완성될 수 없었고, 우리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채로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아무 죄 없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요.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고는 결코 구원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기 시작할 당시를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의 중요한 핵심이 바로 ‘부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선택할 때 제자 된 자의 사명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지요. 사도행전 1장 22절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부활에 대한 믿음의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진 부활의 종교입니다. 만약 주를 믿는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서 영원히 천국 영광을 누릴 소망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게 말씀대로 살겠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기때문에 세상에 미련 두지 않고, 어떤 핍박이나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생명 다해 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지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통해 얻기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장차 새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하며 마음에 품으신 섭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가심으로 영광스러운 부활의 열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주님의 부활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① 부활이 ( )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② 부활로 인해 ( ) 삶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③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 )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목격한 후 제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위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영적인 부활’이란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목표 :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에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게 한다.
주님의 부활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부활을 마음에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굳건한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그날을 더욱 사모하며 성결과 충성에 힘쓸 수도 있지요. 부활이 마음에 믿어지는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며, 주님의 부활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도한 제자들도 담대히 주님의 증인 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온전히 믿을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요. 그러면 부활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활이 희생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주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사건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했습니다(고전 15:19).
이 말씀대로 만약 부활이 없고 이 땅의 삶으로 끝난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반드시 있고 내세는 분명히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 가운데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복 받은 사람들이지요. 이처럼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죽음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도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시기 위해 먼저 죽음에 이르셔야 했지요. 더욱이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을 맞으셔야 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을 사셨지요.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자체부터가 피조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이셨습니다.
또한 사역을 이루시는 동안에는 제대로 주무실 시간도, 잡수실 시간도, 잠시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도 없으셨습니다. 결국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다 내어주시며 자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셨지요.
이처럼 영광의 부활이 있기까지 그 이면에는 엄청난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이러한 주님의 희생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럴 때 부활의 의미와 가치 또한 더욱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취할 것 다 취하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산다면 무엇을 희생했다 말할 수 있겠는지요? 주님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힘들게 억지로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희생하는 만큼 장차 영원한 삶이 주어지는 천국에서는 우리가 희생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상급과 영광이 주어집니다.
둘째, 부활로 인해 영원한 삶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제자들이 며칠 전에 뵈었던 예수님은 극악무도한 자들의 채찍질에 살갗이 엉망이 되고, 머리에는 날카롭고 뾰쪽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에는 큰 못이 박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제대로 주무시지도 드시지도 못한 야윈 몸은, 앙상한 뼈에 가죽만 덮인 듯하였지요.
이러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으시다가 결국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럼에도 한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에 싸여 새로 판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도무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는 완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고 제자들 앞에 부활체의 몸을 입고 나타나 대화를 나누셨지요.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는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 보라 하셨고, 제자들과 구운 생선도 함께 드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본 제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단 하나뿐인 목숨을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다 바쳤습니다. 영생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이제 자연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지요. 제자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확신 가운데 전하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 역시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을 따랐지요.
맹수의 밥이 되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품에 꼭 안긴 어린 자녀에게 “우리 곧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을 피해 평생 햇빛을 직접 보지 못하고 지하 묘지 카타콤에 숨어 살면서도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먼저 잠든 가족을 그 지하 무덤에 장사하면서도 영원히 이별이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다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대로 우리는 살아서 주님을 맞을 소망 가운데 오늘도 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섭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을 찍은 사건입니다. 이 부활이 기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3~14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원의 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구원의 도가 완성될 수 없었고, 우리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채로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아무 죄 없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요.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고는 결코 구원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기 시작할 당시를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의 중요한 핵심이 바로 ‘부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선택할 때 제자 된 자의 사명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지요. 사도행전 1장 22절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부활에 대한 믿음의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진 부활의 종교입니다. 만약 주를 믿는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서 영원히 천국 영광을 누릴 소망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게 말씀대로 살겠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기때문에 세상에 미련 두지 않고, 어떤 핍박이나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생명 다해 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지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통해 얻기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장차 새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하며 마음에 품으신 섭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가심으로 영광스러운 부활의 열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주님의 부활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① 부활이 ( )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② 부활로 인해 ( ) 삶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③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 )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목격한 후 제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위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영적인 부활’이란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2020-04-03
제14과꿈을 이루실 줄 믿음으로 (2)
창세기 37:5~9
읽을말씀 : 창세기 37:5~9 | 외울말씀 : 로마서 5:3 l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22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으로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며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셋째, 참 믿음은 세상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요셉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인이나 주위 사람들을 항상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요셉을 축복하심으로 그는 가는 곳마다 인정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뿐 아니라 감옥에서도 인정받아 옥중의 제반 사무를 감당하게 되었지요.
이처럼 끝까지 믿음으로 행한 결과 마침내 요셉의 꿈이 현실로 이뤄집니다. 어느 날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범죄하여 그가 있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각 꿈을 꿉니다.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그대로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하고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애굽 왕 바로가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고 있는데, 그 뒤에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어 버렸지요.
이어서 바로는 다시 꿈을 꿉니다. 이번에는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습니다. 왕은 술객과 박사들을 모두 불러 해석하도록 해 보았으나 아무도 풀지 못했습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장의 머릿속에 불현듯 과거에 자신의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이 떠올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왕에게 간 요셉은 아무도 풀지 못한 꿈을 시원스럽게 해석해 줍니다. 즉 일곱 좋은 암소와 좋은 이삭은 일곱 해의 풍년이며, 파리한 일곱 암소와 마른 일곱 이삭은 풍년 다음에 이어질 일곱 해의 흉년을 의미함을 알려 주지요. 그리고 흉년이 너무 심해 이전의 풍작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이며, 꿈을 두 번 꿨으니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 합니다.
이처럼 명쾌하게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은 대처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먼저 지혜로운 사람을 뽑아 책임자로 세우고, 나라에 여러 관리를 두어 일곱 해 풍년 동안 수확한 곡물의 5분의 1을 거두어 저장해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막연히 풍년에 곡식을 거두어 흉년에 대비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곡물을 얼마나 저장해야 할지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하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지요.
왕은 요셉에게 임한 하나님의 지혜에 감탄하며 그를 왕 다음가는 권세자로 세웠습니다. 이는 그가 종으로 팔려온 지 13년 만의 일입니다.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성실히 행했기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온전히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넷째, 고난 중에도 기뻐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아 혹 범죄한 것이 있다면 이에서 돌이켜야 하나님께서 고난에서 건져 주십니다.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아도 회개할 것이 없다면 감사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면 됩니다. 반드시 그 연단을 통해 축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경우 정도를 좇아 성실하게 살았지만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종으로 팔려가고 다시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당한다면 대부분 기쁨도 사라지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불평불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죄수의 신세였을 때에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갔지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요셉이 겪은 고난의 시간이 그 꿈을 가장 단기간에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만인 앞에 존귀한 자가 되리라는 요셉의 꿈은 믿음이 있다 해서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서는 큰 장관의 가정사를 총괄하는 가운데 경제와 인사(人事)에 대한 실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애굽 전체의 재정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했습니다.
또한 왕의 감옥에서는 함께 갇힌 사람들을 통해 총리로서 필요한 정치적 자질을 닦을 수 있었지요. 머리가 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 심지어 악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알아서 다스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낮은 자리를 거치면서 요셉은 더욱 겸비하고 덕과 사랑이 있는 큰마음이 되어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되었고, 연단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통하면서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연단을 거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온 가족의 생명까지 구합니다.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켜 기근을 피하게 하였지요.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꿈을 믿음으로 온전히 이뤄 냈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 때부터 자기 민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 역시 굳게 믿었습니다. 곧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지요. 그래서 “그때가 오면 내 해골을 메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임종 시에 유언하였던 것입니다(창 50:25, 히 11:22). 이를 통해 그가 평생에 얼마나 믿음으로 소망하며 꿈을 이뤄 가는 사람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2.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의 중요성
우리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요셉처럼 꿈이 있어야 하며 기도와 더불어 반드시 응답받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질서의 하나님이므로 순리를 좇아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대기업의 회장이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했다고 합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즉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관련된 분야의 낮은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전문 지식을 익히고 능력을 계발하게 하며 사람의 마음과 세상 이치를 깨닫게 하시지요.
또한 많은 경험과 지혜를 쌓게 하면서 대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가십니다. 때로는 어려운 고비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꿈과 거리가 먼 자리에서 별 진보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믿음으로 견뎌내는 사람은 마침내 크고 아름다운 그릇이 됩니다. 합당한 그릇 만드는 과정이 답답하고 곤고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응답을 받고 열매 맺는 과정인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고 고난이 와도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손에 응답이 쥐어지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질병을 치료받으려는 사람 중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나은 줄로 믿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로 빛나는 얼굴입니다.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즉시 치료하시기도 하고 혹은 하룻밤 자는 사이에 온전케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응답받으려면 믿음을 더 크게 내보여야 하는 경우라도 우선 병세를 크게 호전시켜 주거나 영적인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도 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때가 이르면 반드시 치료해 주십니다. 그러니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요셉의 믿음을 생각하며 모든 곳에서 성실히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여러분은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③ ( )은 세상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④ 고난 중에도 ( )하는 것이 참 믿음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자마자 요셉을 감옥에서 꺼내 주었다면?
히브리 노예에 불과한 요셉은 왕 앞에 나갈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냥 감옥에서 풀려 나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애굽에서 보낸 긴 연단의 시간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채 허송세월한 것이 되고 만다.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될 수 있는 시점이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고 2년이 지난 후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그 시간을 감옥에서 더 지내도록 두신 것이다.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으로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며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셋째, 참 믿음은 세상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요셉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인이나 주위 사람들을 항상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요셉을 축복하심으로 그는 가는 곳마다 인정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뿐 아니라 감옥에서도 인정받아 옥중의 제반 사무를 감당하게 되었지요.
이처럼 끝까지 믿음으로 행한 결과 마침내 요셉의 꿈이 현실로 이뤄집니다. 어느 날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범죄하여 그가 있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각 꿈을 꿉니다.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그대로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하고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애굽 왕 바로가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고 있는데, 그 뒤에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어 버렸지요.
이어서 바로는 다시 꿈을 꿉니다. 이번에는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습니다. 왕은 술객과 박사들을 모두 불러 해석하도록 해 보았으나 아무도 풀지 못했습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장의 머릿속에 불현듯 과거에 자신의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이 떠올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왕에게 간 요셉은 아무도 풀지 못한 꿈을 시원스럽게 해석해 줍니다. 즉 일곱 좋은 암소와 좋은 이삭은 일곱 해의 풍년이며, 파리한 일곱 암소와 마른 일곱 이삭은 풍년 다음에 이어질 일곱 해의 흉년을 의미함을 알려 주지요. 그리고 흉년이 너무 심해 이전의 풍작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이며, 꿈을 두 번 꿨으니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 합니다.
이처럼 명쾌하게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은 대처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먼저 지혜로운 사람을 뽑아 책임자로 세우고, 나라에 여러 관리를 두어 일곱 해 풍년 동안 수확한 곡물의 5분의 1을 거두어 저장해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막연히 풍년에 곡식을 거두어 흉년에 대비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곡물을 얼마나 저장해야 할지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하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지요.
왕은 요셉에게 임한 하나님의 지혜에 감탄하며 그를 왕 다음가는 권세자로 세웠습니다. 이는 그가 종으로 팔려온 지 13년 만의 일입니다.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성실히 행했기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온전히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넷째, 고난 중에도 기뻐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아 혹 범죄한 것이 있다면 이에서 돌이켜야 하나님께서 고난에서 건져 주십니다.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아도 회개할 것이 없다면 감사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면 됩니다. 반드시 그 연단을 통해 축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경우 정도를 좇아 성실하게 살았지만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종으로 팔려가고 다시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당한다면 대부분 기쁨도 사라지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불평불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죄수의 신세였을 때에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갔지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요셉이 겪은 고난의 시간이 그 꿈을 가장 단기간에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만인 앞에 존귀한 자가 되리라는 요셉의 꿈은 믿음이 있다 해서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서는 큰 장관의 가정사를 총괄하는 가운데 경제와 인사(人事)에 대한 실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애굽 전체의 재정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했습니다.
또한 왕의 감옥에서는 함께 갇힌 사람들을 통해 총리로서 필요한 정치적 자질을 닦을 수 있었지요. 머리가 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 심지어 악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알아서 다스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낮은 자리를 거치면서 요셉은 더욱 겸비하고 덕과 사랑이 있는 큰마음이 되어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되었고, 연단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통하면서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연단을 거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온 가족의 생명까지 구합니다.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켜 기근을 피하게 하였지요.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꿈을 믿음으로 온전히 이뤄 냈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 때부터 자기 민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 역시 굳게 믿었습니다. 곧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지요. 그래서 “그때가 오면 내 해골을 메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임종 시에 유언하였던 것입니다(창 50:25, 히 11:22). 이를 통해 그가 평생에 얼마나 믿음으로 소망하며 꿈을 이뤄 가는 사람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2.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의 중요성
우리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요셉처럼 꿈이 있어야 하며 기도와 더불어 반드시 응답받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질서의 하나님이므로 순리를 좇아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대기업의 회장이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했다고 합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즉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관련된 분야의 낮은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전문 지식을 익히고 능력을 계발하게 하며 사람의 마음과 세상 이치를 깨닫게 하시지요.
또한 많은 경험과 지혜를 쌓게 하면서 대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가십니다. 때로는 어려운 고비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꿈과 거리가 먼 자리에서 별 진보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믿음으로 견뎌내는 사람은 마침내 크고 아름다운 그릇이 됩니다. 합당한 그릇 만드는 과정이 답답하고 곤고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응답을 받고 열매 맺는 과정인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고 고난이 와도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손에 응답이 쥐어지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질병을 치료받으려는 사람 중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나은 줄로 믿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로 빛나는 얼굴입니다.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즉시 치료하시기도 하고 혹은 하룻밤 자는 사이에 온전케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응답받으려면 믿음을 더 크게 내보여야 하는 경우라도 우선 병세를 크게 호전시켜 주거나 영적인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도 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때가 이르면 반드시 치료해 주십니다. 그러니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요셉의 믿음을 생각하며 모든 곳에서 성실히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여러분은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③ ( )은 세상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④ 고난 중에도 ( )하는 것이 참 믿음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자마자 요셉을 감옥에서 꺼내 주었다면?
히브리 노예에 불과한 요셉은 왕 앞에 나갈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냥 감옥에서 풀려 나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애굽에서 보낸 긴 연단의 시간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채 허송세월한 것이 되고 만다.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될 수 있는 시점이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고 2년이 지난 후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그 시간을 감옥에서 더 지내도록 두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