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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청년

제목
우리의 충만은 청년, 가나안, 빛소금, 학생 헌신예배 [고후 6:2]
설교자
강사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4.05.0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4년 4개 연합 헌신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여러분 모두 충만하십니까? 날마다 행복하신지요? 요 7:38-39에 보면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 마음에 마치 생수의 강이 흘러나는 것처럼 충만함이 넘친다는 말씀이지요.

성령이 충만하면 어떤 고난과 역경을 만나도 기쁨과 감사로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천국 소망이 가득하고, 주님의 사랑이 깊이 느껴집니다. 죄를 버리고 변화될 수 있는 능력이 임하고요.

그러나 “주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어둠 가운데 거할 때는 충만함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만들고, 성령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행한다면 성령께서 충만함을 주실 수가 없지요.

2010년 이전에는 여러분 중에도 충만함을 입지 못하여 마음이 눌리며 곤고한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지요. 무거운 죄의 짐에서 풀려남으로 그것만으로도 기쁨이 넘쳤습니다. 세상 어둠과 결별하고 어찌하면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할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달려가지요. 그런 만큼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여 얼굴에는 빛이 납니다. 이 충만함은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지요.

이 시간 헌신예배를 통해, 여러분의 이 충만함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다시 한 번 깨우치고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 목숨과 뜻과 정성을 다해 아버지 앞에 참된 헌신을 드리는 여러분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우리의 충만은 첫째, 아버지의 눈물로부터 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인생의 의미를 압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참된 자녀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중심에서 사랑하며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리기 원하셨지요.

그런데 참 자녀를 얻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상대성을 체험해야만 참 사랑을 알 수 있기에 우리는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사망도 겪어야 했지요. 인생들만 아픔을 겪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비할 수 없는 더 큰 아픔을 아버지 하나님도 겪으셨지요.

루시퍼의 반란과 아담의 배신을 비롯하여 인간 경작의 역사 안에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 구약을 통독하면서도 많이 느끼셨을 것입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얼마나 원망하고 불평하며 하나님을 서운케 합니까?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백성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하지요.

이스라엘의 열왕들은 또 얼마나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렸습니까? 바벨론에 포로되었다 돌아온 백성들 역시 잠시는 하나님께 회개한 듯 했지만 결국 변질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항상 선과 진리를 알려 주셨고 사랑으로 좋은 것만 주셨습니다. 백성들이 배신하여 고난을 자초할 때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차마 외면하지 못하셨습니다. 다시 구원의 손길을 펼쳐 주셨지요.

그런데도 인생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끊임없이 거역하고, 배신하며 대적했지요. 아버지는 무수한 아픔을 겪으시면서도 경작을 계속 이루셨고, 결국 독생자의 생명까지 내어주셨지요.

지금도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십니다. 너무나 사랑스럽게 창조하셨고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셨는데, 소중한 독생자의 생명까지 내어주셨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사망의 길로만 가는 영혼들로 인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계시지요.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이 애절한 아버지의 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아버지여, 내가 아버지의 눈물을 아나이다. 내가 아버지를 진정 사랑하나이다. 내가 그 눈물의 보상이 되어 반드시 참된 자녀로 나오겠나이다” 이러한 고백을 중심으로 드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우리의 충만은 둘째, 주님의 눈물로부터 왔습니다.

여러분이 어둠 가운데 살아갈 때, 악에 물들어 있었을 때 그때는 충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빛으로 나오기까지는 예수님의 큰 희생이 있어야만 했지요.

사복음서 곳곳에 예수님께서 눈물 흘리신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으면서도 사단에게 종노릇하는 인생들을 볼 때 불쌍하고 민망하여 눈물 흘리셨지요. 남겨 두고 갈 사랑하는 제자들을 보고 장차 그들이 겪을 고난을 생각할 때도 눈물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홀로 기도하다가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또 아버지가 그립고 그리워서 눈물이 납니다.

히 5:7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하신 대로 예수님은 참혹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심한 통곡과 눈물로 부르짖으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생명을 내어주셔도 결국 사망으로 갈 인생들을 생각할 때면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지요.

벧전 1:8 전반절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고난을 아는 우리는 직접 보지 못했다 해도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족할 것이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가난과 배고픔과 피곤을 당하셨습니다. 비단옷이 아니라 거칠고 초라한 옷을 입으셨고 기름진 음식이 아니라 박한 음식을 드셨지요. 존경과 영광만을 받으셔야 하는데 오히려 멸시 천대와 모욕을 겪으셨습니다.

우리의 충만함을 위해 예수님께서 흘려주신 눈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 머리에 가시관을 썼어야 하는데 범죄한 내가 채찍에 맞아야 하는데, 귀하신 예수님께서 당하셨구나 범죄한 내가 손과 발에 못 박혀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 박히셨구나 내가 수치스럽게 벌거벗고 매달려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그 고초를 겪으셨구나, 그래서 나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셨고 나에게는 존귀한 하나님의 아들. 딸로 영화를 누리게 하셨구나” 이런 사실을 항상 기억하며 더욱더 깊이 새길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우리의 충만은 셋째, 목자의 눈물로부터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눈물로 고난의 길을 가셨듯이 주의 종들도 영혼들을 위해 눈물과 희생으로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목자장이신 우리 주님처럼 양 떼를 위해 생명을 줄 수 있는 참 목자라면 그 눈에서 눈물이 마를 수가 없습니다. 행 20:31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하는 사도 바울의 당부가 나오지요.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3년의 기간 동안 바울은 밤낮 눈물로 진리를 가르치며 사역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개척 이후 지금까지 눈물로 아버지의 나라를 이뤄왔습니다. 32년의 세월 밤낮으로 영혼들을 위한 간구가 마음에서 그친 날이 없습니다. 어찌하면 성도들에게 믿음을 갖게 해 줄까 어찌하면 천국 소망을 심어 주어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할까 어찌하면 기도하게 하고 어찌하면 진리로 변화될 능력을 받게 해 줄까 어찌하면 더 충만하게 해 줄까. 이런 소원을 아버지 앞에 아뢰며 생명 다해 간구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적인 연단이 있을 때 아직 일꾼들의 믿음이 연약하여 저 혼자 감당하며 흘린 눈물도 무수합니다. 혼자 기도할 때면 아버지와 주님이 그리워서 눈물 흘린 나날도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눈물은 영혼들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힘을 다해 진리를 가르쳐도 여전히 범죄하는 영혼들을 볼 때, 결국은 죄로 인해 재앙을 당한 영혼들이 기도를 요청하며 살려달라고 매달릴 때, 제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회개 편지들을 읽으며 그 영혼들의 얼굴을 떠올릴 때는 제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차마 용서를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들을 살려야만 하기에 아버지 앞에 머리를 조아릴 때는 또 어떤 마음이었는지, 참으로 아버지만 아시고 주님만 아십니다.

밤낮 눈물로 살다가 눈가가 헐어서 눈물을 닦을 수도 없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그 눈물을 받으셨고, 많은 영혼들을 어둠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죄성을 많이 벗어버렸다 하시며 제게서 가려움의 고통을 덜어 주셨다 하실 때 저는 가렵지 않은 기쁨보다도 성도들이 변화되었다는 말씀이 감사하여 또다시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습니다.

사랑하는 가나안, 청년, 빛소금, 학생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다른 소원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만 있다면, 주님의 사랑을 알아 세상 헛된 것을 버리고 새 예루살렘에 이를 수만 있다면, 제가 가진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습니다.

잠시의 정욕을 좇아 썩어질 세상을 취해보니 무엇이 그리 좋았습니까? 하나님과 멀어지므로 곤고하고 형벌의 두려움 속에 눌려 살지 않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무수히 본다 해도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으니 정작 자신의 문제는 담대히 구할 수 없고,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고백조차 떳떳하게 드릴 수 없지요. 아버지께서 주고 싶어 하시는 응답도 축복도,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기쁨과 평안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주변에 열심히 달려가는 형제, 자매가 빛난 얼굴로 새 예루살렘을 외칠 때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오히려 더 곤고하고 괴롭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무익하고 힘든 삶인지요?

이제 다시 한 번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지난날의 죄를 용서해 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결코 저버리지 마십시오. 결코 세상에 눈길을 주지 말고 오직 위엣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이 충만함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아버지와 주님과 목자의 눈물을 항상 기억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14-05-05 오후 10:58:43 Posted
2014-05-12 오후 11:24:4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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