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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철야 예배

제목
창세기 강해(204)  [창40:1-2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06.03.03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의 갇힌 곳이라 시위대장이 요셉으로 그들에게 수종하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수일이라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6절부터 19절까지 중략]
제삼 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으로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하니라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여 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 9:11에 보면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선착(先着): 먼저 도착함]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의 기자인 솔로몬이 인생을 돌아보니 인생사 모든 것이 사람의 힘과 능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지요. 분명히 빠른 사람이 먼저 도착해야 할 것 같은데 인생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힘이 있는 사람이 꼭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며, 지혜와 명철이 있다 해서 꼭 부요케 되는 것도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전도자는 그 이유에 대해 ‘시기’와 ‘우연’을 들고 있습니다. 즉 모든 것에는 때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시기’가 맞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육적으로는 만반의 준비가 다 된 것 같은데도 이 ‘때’라는 것을 잘 만나지 못하면 일이 어그러질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우연’이라는 복병도 있다고 말하지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떤 일이 일어나므로 육적인 준비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계획했던 일이 어그러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이어지는 12절에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 말씀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과연 이 말씀처럼 인생사의 모든 것이 ‘시기’와 ‘우연’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결정되고 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의 모든 일에는 우연이란 없지요. 마 10:29에 보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참새 한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을진데 하물며 우리 인생들에 관한 일들이 어찌 우연에 의해 결정되어지겠습니까?
더욱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생사화복(生死禍福)의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설령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일지라도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아주는 것이 이 땅의 모든 만물에게 해당되는 절대불변의 법칙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연’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어떤 원인들이 쌓여져서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때에 결과로 나와진 것입니다. 또한 ‘시기’ 즉 ‘때’라는 것도 물론 사람 편에서 모든 일의 때를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은 일의 ‘시기’까지도 하나님 편에서 가장 합당한 때를 택하여 인도하시지요. 따라서 모든 일의 결과가 마치 ‘시기’와 ‘우연’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가지는 육의 한계 때문입니다.
인생이란 한치 앞을 모르고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은 어찌할 수 없기에 사람의 생각과 예측을 빗나가는 일에 대해 그저 “시기가 안 맞았어, 때가 안 좋았어” 한다거나 “우연이었어”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육의 한계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고 인도하시는 사람의 삶에 “시기가 좋지 않았다”거나 “우연히 그렇게 됐다‘”는 말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법칙에 맞추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일을 이루시기에 결과를 보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성취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사람 편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자칫 일이 어그러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뢰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거나 낙심하지 않지요. 당장 현실에서는 어그러져 가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도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창세기 40장부터는 바로 이처럼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그것을 마음에 품으셔서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증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영의 분리’와도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내용이지요. 여러분이 ‘영의 분리가 어떤 것일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것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깨닫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왜 영의 분리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섭리하셔서 그것을 마음에 품으시게 되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섭리는 성취되어 갑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취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섭리를 이루심에 있어서 이 육의 공간의 공의에도 어그러지지 않도록 일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면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이루어지지요. 이는 마치 잘 짜여진 대본에 의해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대본이 나오게 되면 거기에 맞추어서 배우들은 물론이고 그 외의 수많은 스텝들이 움직이게 되지요. 사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일부일 뿐이며 그 뒤에서는 드러나지 않게 움직여 준 수많은 사람들과 수고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것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그처럼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정확하게 움직여 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한 편의 완성된 영화나 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다는 말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섭리하셔서 그 마음에 품으신 것은 마치 대본과 같습니다. 이제 이 대본에 따라 모든 것이 하나하나 펼쳐져 성취되어 가게 되는데 이때 육의 현실에는 나타나 보이지 않는 많은 과정들이 있게 되지요.
예를 들어 우리는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이 형들의 손에 의해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리는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때 눈에 보여지는 현실의 상황은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어떻게 할까 고심하던 중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미디안 상인들을 보게 되어 그들에게 요셉을 노예로 파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마침 그 상인들이 애굽의 고위층과 거래하는 사람들이어서 요셉은 운 좋게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가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요? 요셉이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 마음에 품으셨던 일들이 정확한 때에 맞추어 드러난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것은 바로 ‘영의 분리’로 인해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영의 분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일들을 이루셨기 때문에 눈에 보여지는 그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말이지요.
예전에 잠깐 설명을 드린 적이 있는데 영의 분리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환상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꿈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마음의 주관이나 감동함을 입혀서 역사하시지요. 이 시점에 누가 누구를 만나야 하고 이 시점에는 누가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고 이 시점에는 누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바로 영의 분리의 여러 가지 형태를 통해 역사해 가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미디안 상인을 본 것도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미디안 상인들이 그 길을 지나게 하신 것이며 마침 또 형들이 눈을 들어 그들을 볼 수 있도록 역사하셨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이와 같은 일들은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서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계속해서 마치 짜여진 각본에 의해 이루어지듯이 정확한 때와 시를 맞추어 일어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신임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마음을 주관하신 것이며, 요셉이 감옥에서 전옥의 신임을 받아야 하므로 하나님께서 역시 전옥의 마음을 주관하셨지요. 요셉이 왕의 측근을 만나야 하기에 때가 되자 왕의 신하 중 두 관원장이 감옥에 들어오도록 하신 것이며, 요셉으로 하여금 그들을 수종들 수 있게 전옥의 마음을 주관하신 것입니다.
또한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통해 은혜를 입고 요셉이라는 인물이 그에게 심어져야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두 관원장에게 각각 꿈을 꾸도록 역사하셨지요. 그리고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여 그 꿈대로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하나 모든 일과 과정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영의 분리라는 방법을 통해 때로는 꿈으로, 때로는 마음을 주관하심으로 정확히 때를 맞추어 역사되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혹여 어떤 분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다 마음을 주관하시고 모든 환경을 주관해서 역사하시면 사람은 단지 로보트처럼 따르기만 하는 것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다시 설명이 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영의 분리를 통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시고 환경과 조건을 조성해 가시되 이 모든 것을 정확한 공의 안에서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억지로 무조건 이끌어 가시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도 정확한 공의가 성립되는 가운데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신다는 말이지요.
예를 들어 오늘 본문에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왕의 떡 굽는 관원장이 감옥에 들어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때 그들에게 아무 죄가 없는데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요셉이 그들을 만나야 하니까 무조건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감옥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 아니지요. 단지 요셉을 만나게 해야 한다는 필요에 의해 하나님께서 아무 죄도 없는 그들을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다면 그것은 공의를 어긴 하나님의 독재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러한 분이 아니시지요. 그들도 공의 가운데 비추어 볼 때 감옥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어서 들어간 것이고, 다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언제 감옥에 들어가게 될지를 아시기 때문에 그때에 맞추어 요셉과 만날 수 있도록 환경과 조건을 주관해 가신 것입니다.
또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중에 술 맡은 관원장은 살아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죽게 된 것도 그들 각자에게 적용되는 공의에 의한 것이지요. 떡 굽는 관원장은 공의에 비추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죽음을 맞게 된 것이며, 술 맡은 관원장 역시 공의에 비추어 죽을 만한 이유가 없었기에 복직이 된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둘 중에 누가 살고 누가 죽게 될지를 아시기 때문에 그 둘에게 각각 앞으로 되어질 일을 꿈으로 역사해 주신 것뿐이지요. 하나님께서 술 맡은 관원장은 살려 주시고, 떡 굽는 관원장은 죽게 하시려고 일부러 그들에게 각각 다른 꿈으로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공의와 또한 전체적인 공의에 맞추어 여러 가지 형태의 영의 분리를 통해 모든 흐름과 환경을 만드시고 정확한 때를 좇아 역사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지금 받고 있는 영의 분리의 훈련 과정이 바로 이러한 역사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을 각 사람에게 해당하는 공의에 맞추어 정확히 마음에 품고 영의 분리를 통해 역사해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람의 깊은 마음도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맞는지 알기위해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속마음이라도 능히 읽어낼 수가 있어야 하지요. ‘저 사람을 품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품는다면 어떤 방법으로 품어야 할지 또한 품어서 어떻게 주관 받도록 해야할지…’ 이러한 모든 것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마음에 품고 영의 분리를 통해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원에 이르러야 앞으로 대성전을 이루고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맞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낼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제 마음이 너무나 급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고요.
제가 근본의 마음으로부터 정확히 주관을 받아 ‘품어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품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 지금 당장 품어야 할 일과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기다렸다 품어야 할 일’ 등을 분별해 나갈 수 있도록 영의 훈련에만 전력해야 하는데 작년과 재작년 한창 훈련을 해야 할 시기에 제 마음을 분산시키는 일들과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훈련시간이 자꾸만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혹여 여러분 중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훈련 시간이 길어질 것도 미리 아시지 않았습니까?’ 하고 물으실 분이 계신지요? 예, 물론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 자유의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섭리가 늦춰질 수도 있고 당겨질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 하여 제가 지금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자유의지 가운데 영의 훈련이 늦춰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협조가 없이는 제가 제 의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훈련이 늦춰질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예를 들어 제가 교회적인 어떤 큰 문제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모르겠으니 알아서들 처리하세요. 저는 영의 훈련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찌하든 영의 훈련에만 전력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당회장으로서 제가 외면할 수가 없기에 수많은 일들을 감당해 나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제 의지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영의 훈련에 지장을 받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감에 있어서 지연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다시 요셉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연단을 받을 때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으며 늘 감사와 기쁨으로 연단을 통과했지요. 자신의 주어진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성실함으로 책임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요셉이 그렇지 않고 연단 중에 자신의 지혜와 방법으로 일들을 풀어나가려 했다거나 감사하지도 기뻐하지도 못했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겠습니까?
또한 요셉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해 내지도 않고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1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애굽의 총리가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섭리가 어그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요셉이 공의에 비추어 준비가 될 때까지 하나님의 섭리가 성취되는 것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이 자유의지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늦춰질 수도 있고 반대로 당겨질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을 인도해야 했던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출애굽한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간 연단하시고자 했던 것은 아니지요.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는데도 결국 순종하지 않으므로 스스로가 40년 연단의 세월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선택한 것도 아니었고 모세로 인한 것도 아니었지요. 그럼에도 이러한 백성들의 선택으로 인해 결국 모세를 통해 이루시려던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섭리는 여호수아 때에 이르러 성취되어집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될 것도 아셨지요. 하지만 공의가 어그러지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선택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얼마든지 훨씬 짧은 시간에 모세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던 하나님의 섭리도 늦춰지게 되더라는 것이지요.
이런 것처럼 저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제 편에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땅은 모세 한 사람을 이끌어 들이기 위해 예비하신 땅이 아니라 출애굽한 백성 전체를 위해 예비하신 땅인 것처럼 본 제단에 주신 하나님의 섭리도 저 혼자만 이루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와 함께 이루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와 본 제단을 통한 섭리를 조금의 지체 없이 이루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내가 요셉이다’라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입술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어떤 일에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았으며 주어진 상황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지요. 하나님 앞에 결코 범죄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요.
이런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에서 스스로 입술을 어떻게 지켰고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지켰으며 여러분의 위치와 사명을 어떤 마음으로 지켰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가 정확한 시와 때를 맞추어 이루어져 갔던 것처럼 저와 본 제단과 여러분을 통한 섭리 역시 ‘영의 분리’의 시점에 맞추어 정확하게 이루어져 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40장 내용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 사람 중에 하나인 요셉을 당시 대국이었던 애굽의 총리로 세우는 일이 육적으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육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가능하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계획하시고 영의 분리를 통해 역사해 가셨습니다.
그런데 저와 본 제단이 앞으로 이룰 일들 역시 육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뿐이지요. 어찌 보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들이며, 복잡한 과정들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와 본 제단에 역사해 주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모든 것을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어떤 일은 영의 분리를 통해 순간에 역사해서 되는 일도 있지만, 어떤 일은 영의 분리를 통해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서 때가 되어야 열매로 드러나는 일도 있지요. 또한 당장 눈앞의 현실만을 볼 수 있는 사람 편에서 생각하는 때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한 눈에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합당하게 생각하시는 때와는 다를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지금 증거되는 창세기 강해 말씀을 통해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에게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영의 분리로 역사해 가시는 성령님의 간섭하심과 섬세한 손길을 사모하시며 느껴 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개인적인 것뿐만 아니라 교회적인 모든 분야들에 있어서도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정확한 주관과 인도를 따라 아름답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03-04 오후 8:47:22 Posted
2018-12-04 오후 1:51:2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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