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22절 중략]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 교회가 개척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하나님께서는 “장차 때가 되면 성결의 오중복음으로 교단을 설립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당시로서는 그 말씀이 이해는 안 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니 그대로 믿었지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1990년도에 저와 본 교회는 참으로 애통스러운 일을 당합니다. 저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숱한 거짓과 모함 그리고 정당한 절차와 교단법을 철저히 무시한 상태에서 제가 교단으로부터 목사 파직을 당하고 교회도 교단으로부터 제명당하는 사건이었지요. 그러니 이 사건을 육으로 볼 때는 도저히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너무나 뼈아픈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오히려 저와 본 교회에 축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건이 있으므로 인해 결국 지금의 예수교 대한 연합성결교단이 세워졌지요. 개척 때 주신 말씀에 따라 성결의 오중복음으로 새로운 교단이 세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본 교단은 전 세계에 4000여 개가 넘는 지교회를 가진 초대형 교단으로 성장하게 되었지요.
또한 그때부터 저는 교계활동을 비롯하여 마음껏 일을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교계의 대형행사에 초대받아 순서를 담당하고 교계 매스컴에 제 글과 사진들이 실리게 되며 교계 이곳저곳에서 저와 함께 일하기를 청해 오기 시작했지요. 본 교회는 교계의 각종 행사에 초대받아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고요. 이처럼 저와 본 교회의 위상이 순간에 높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전 교단에 계속 속해 있었다면 이러한 일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요. 육적인 질서와 장로의 유전에 묶여서 저는 마음껏 일할 수도 없고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구속에서 벗어나 교단을 세우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크게 쓰이게 되었지요.
사실, 당시 저와 본 교회가 속해 있던 교단으로부터 너무나 있을 수 없는 거짓과 모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게 되자 주변에서 저를 사랑하시는 목사님들 중에는 “그 교단에서 나와서 새롭게 교단을 세우라”고 권면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그 교단을 떠나지 않느냐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저는 주님을 믿기 전에도 ‘배신’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욱이 주 안에 들어와서 제가 몸담고 있는 교단을 제 편에서 먼저 배신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저를 그처럼 자그마한 교단에 속한 목사로서 언제까지 묶여 있도록 놔두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계를 대상으로 성결의 복음을 전하는 권능의 종으로 쓰시려는 원대한 섭리가 있으셨지요. 본 교회도 자그마한 교단에 속한 교회가 아니라, 전 세계에 수많은 지교회를 가진 대형 교단으로 세우시려는 섭리가 있으셨고요.
그러니 저를 그 교단에 그냥 놔두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 편에서 먼저 배신을 하고 그 교단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누구보다도 잘 아셨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축복의 시험을 허락하심과 동시에 그 시험을 통해 새로운 교단을 설립하고 마음껏 날개를 펼쳐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육으로 볼 때는 목사 파직과 교단 제명이라는 엄청난 시련이었고 육의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재앙처럼 보일 수도 있었으나 그 시험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오히려 저를 더 높이시고 더 크게 쓰시려던 것이었지요.
1998, 1999년도에 있었던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에는 육의 사람들이 볼 때 마치 교회가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은 급박한 상황처럼 보였지만 저와 본 교회는 그 시험을 잘 승리했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날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열매로 맺혀졌고 지금도 맺혀져가고 있습니다.
벧전 1:6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하신 대로 축복의 시험으로 인해 잠시 마음 아픈 때도 있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며 하나님의 방법과 사람이 생각하는 방법과는 전혀 다를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하지요.
오늘 본문의 요셉도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경우였습니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집안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가정 총무까지 맡으며 안정된 삶을 살고 있던 요셉에게 어느 날 육적으로는 너무나 엄청난 시련이 다가왔지요. 요셉은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너무나 결백하고 깨끗했는데도 요셉을 미혹하려 했던 보디발의 아내가 오히려 요셉에게 누명을 씌워 그를 죄인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 요셉은 영락없이 죄인이 되고 말았고 은혜를 저버린 나쁜 사람이 되고 말았지요. 결국 요셉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들만 가두는 깊은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육으로 볼 때는 이제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노력과 수고와 공력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 되고 말았지요.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더 큰 축복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요, 방법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인도해 가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집에 돌아온 보디발은 아내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요셉이 자기 아내를 겁간코자 하다가 아내가 소리를 지르니 옷을 벗어 놓고 도망갔다는 것이었지요. 아내의 곁에는 요셉이 버리고 갔다는 옷까지 놓여 있었고요. 이 말을 들은 보디발은 심히 노합니다.
보디발이 그나마 세상사람 중에서는 선한 사람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육적인 선이었지요. 자기가 생각하는 선의 기준에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디발은 자기 기준으로 볼 때에 아내의 말이 타당해 보이자 요셉에게는 한마디 묻지도 않은 채 요셉을 잡아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집어넣지요.
더욱이 자신 편에서는 믿어 주었고 큰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한 요셉으로부터 이처럼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보디발은 더 크게 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육적인 사랑과 육적인 선은 결국 자기가 준 만큼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기에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상대가 해 주지 않으면 좋았던 감정이 순간에 변할 수 있지요. 그래서 예전의 사랑의 감정이 이제는 오히려 더 큰 미움의 감정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보디발도 바로 이런 경우였기에 요셉을 일반 죄인이 들어가는 감옥이 아니라 반역죄나 왕에게 큰 죄를 지은 죄수들만 들어가는 특별한 감옥에 넣었던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이처럼 육적으로는 요셉의 처지가 갈수록 더 안 좋은 상황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앞으로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필요한 모든 지식과 경험을 쌓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라 했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러한 방법으로 연단하실 수 있었던 것도 요셉을 믿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지요.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 받았느냐도 중요합니다.
그러니 만약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오히려 그곳에서 안 좋은 영향을 받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요셉을 연단시킬 수는 없으셨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서 권모와 술수와 궤계와 거짓과 이간질 등 사람들의 수많은 비진리를 보고 듣고 접했지만 그렇다 하여 결코 그런 것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그러한 비진리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대한 안목과 사람에 대한 분별의 능력을 갖는 훈련의 시간이 되었지요. 요셉은 이미 연단을 통해 마음의 악을 버렸기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틈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영으로 들어오게 되면 설령 비진리의 환경 속에 놓인다 해도 그것으로 인해 다시금 육으로 빠지지 않지요. 하지만 아직 영으로 들어오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느 순간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시 틈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 2:12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하였지요. 사도 바울이 함께 있다고 하여 그때만 순종하며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함께 있지 않다 해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함께 있느냐 함께 있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보고 듣고 계시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오늘날과 같이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에서 여러분이 구원에 대한 확신만 가지고 있어도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복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 중에서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여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또한 정말로 마음에서 죄악을 뽑아내기 위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사람 앞에 보이려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신앙은 그렇지 않았지요. 사람 보기에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신앙을 가졌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 해도 요셉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지 않았고 자기에게 좋은 환경에서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했지요.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사랑받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전옥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지요. [전옥(典獄): 오늘날의 교도소장]
21-23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했습니다.
요셉의 신앙이 빛 가운데 거하는 신앙이었기에 빛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와 함께하셨으며 그에게 인자를 더해 주셨지요. 잠 16:7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는데 요셉의 신앙이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요셉이 전옥으로부터도 은혜를 입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더욱이 요셉은 이미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부터 그의 성실함과 정직함을 인정받았었듯이 감옥에 들어와서도 주변사람들로부터 성실과 정직을 인정받았지요. 또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으로 가르침 받은 요셉은 모든 행실이 늘 반듯했으며,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쌓은 많은 경험까지 더해지면서 이제는 말 한마디와 사람을 대하는 마음씀까지도 주변으로부터 사랑받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모습까지 전옥의 눈에 들게 되면서 요셉은 감옥 안에서도 이내 높임 받게 되지요.
성도 여러분, 마음이 악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선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볼 때, 괜히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싫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미워하며 핍박하는 경우도 있지요. 요 3:20에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말씀한 대로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은 자신들의 행위가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빛으로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빛 가운데 사는 사람도 싫어하고 미워하지요.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그렇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모습과 너무 비교가 되다보니 오히려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어둠에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빛 가운데 살므로 잘되는 것을 볼 때도 자신이 그와 같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인정받고 높임 받을 때는 이처럼 주변으로부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더 인정받고 높아질수록 더욱 섬기고 낮아져야 하지요.
요셉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요셉은 예전에 형들로부터 시기와 질투와 미움을 받아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체험해 보았지요. 그래서 연단에 들어가면서부터 요셉은 그런 부분에 대해 마음에 명심을 했습니다.
겉으로만 사람들 앞에서 섬기는 척한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부터 자신을 들레고자 하는 마음과 자랑하려는 마음을 빼내면서 중심에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섬겼던 것이지요. 그것이 윗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주변의 동료나 아랫사람에게도 그와 같이 늘 섬기는 마음이었기에 요셉은 어디에 가더라도 주변사람들로부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아닌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육의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이 자신보다 늦게 왔는데 그가 윗사람의 사랑을 받아서 더 높이 올라가면 주변으로부터 많은 경계와 시기의 눈총을 받지요. ‘윗사람한테 아부를 잘해서 그렇다느니 누구를 통해 손을 써서 그렇게 되었다느니’ 하며 온갖 소문을 지어내면서 꼬투리를 잡고 흠집을 내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이 요셉은 지금 애굽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니지요. 그것도 노예로 팔려온 사람이 주인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서 집안에 있는 애굽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람과 소유물을 주관하는 가정 총무가 되었다면 이는 기존에 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위협으로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더욱이 그동안 보디발의 집에서 나름대로 권세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요셉이 아주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일 수 있지요. 그런데도 요셉은 이러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시기와 질투가 아닌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감옥에는 왕의 주변에서 높은 관직을 담당했던 사람들도 있을 텐데, 어느 날 히브리 출신의 노예였던 요셉이 들어와서 전옥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 제반 사무를 감당하며 옥중 죄수까지 다 그 손에 맡겨졌습니다. 감옥 안에서는 전옥을 대신하여 전권을 휘두를 수도 있는 위치에 오른 것이지요. 그러니 옥중에 있는 죄수들이 악한 마음으로 이러한 요셉을 보았다면 어찌 그의 말에 순순히 순종이 나오겠고, 어찌 좋은 마음으로 요셉을 대하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이러한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사랑과 인정을 받았던 것이며, 그로 인해 요셉이 있는 곳에는 늘 화평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주변으로부터도 늘 사랑받을 수가 있었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었지요. 그것은 바로 요셉이 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더 섬기려는 마음이십니까? 아니면 ‘내가 이제는 이런 위치에 있는데’ 하며 사람들을 더 섬기려 하기보다는 섬김 받고자 하지는 않으시는지요?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직분이 올라가고 사명도 더 커질수록 여러분은 얼마나 더 자신을 낮추며 모든 사람을 섬기려 했는지, 또 얼마나 여러분으로 인해 화평이 이루어졌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이 요셉을 바라보는 요셉 주변의 사람들의 입장도 한번 되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변에 요셉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그가 여러분보다 더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앞서 나갈 때 여러분은 그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는가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혹시 요셉의 주변 사람이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요셉을 시기, 질투하지는 않았을까요? 시기, 질투까지는 아니라 해도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대하지는 않았겠는지요? 더욱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던 권세를 나중 온 사람에게 넘겨주게 되었다면 더더욱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셨겠습니까? 여러분 각자의 마음을 진지하게 점검하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신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신속히 깨달아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모습이 되어질 때 그 연단이 마쳐지게 되며 하나님께서 위로와 축복으로 갚아 주시지요. 요셉은 그 과정이 매우 빨랐던 것을 봅니다. 신속히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렸으며 자기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과 마음까지도 헤아리고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요. 그랬기에 요셉이 보디발의 가정 총무를 맡아 볼 때도 감옥에서 전옥을 대신하여 제반 사무를 볼 때도 그의 손에 맡긴 것은 무엇이든지 돌아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머리의 입장에서 일들을 이루어가다 보면 힘과 권세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지요. 힘과 권세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런 일 저런 일 등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들 속에서 모든 일을 순탄하게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오래 참음 뿐만 아니라 상대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고 살피는 선의 지혜와 덕이 필요하지요.
요셉은 바로 짧은 시간 동안에 이러한 것들을 이루어 나갔던 것입니다. 동시에 육적인 분야들도 신속히 익혀나갔지요. 보디발의 집에 있으면서는 가정 살림의 돌아가는 것과 일하는 방법을 배웠고, 감옥에 있으면서는 왕의 일들과 왕의 규율, 또한 나라의 법과 나라의 돌아가는 일 등에 대해 폭넓게 배우고 익힐 수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연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하셨던 대로 영육 간에 하나하나 준비를 해 나갔던 것이지요. 그러면 이렇게 준비를 갖춘 요셉이 이제 어떻게 해서 감옥에서 나와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은 늘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정직하고 성실했으며 섬세함과 꼼꼼함까지 있었습니다. 또한 말을 함부로 내지 않고 늘 입술을 무겁게 지키는 지혜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해도 요셉이 만약 자기 능력만 의지하려 했다면 그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바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바른 신앙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해 주시므로 만사형통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요.
똑같은 수고를 하고도 더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고 실수되어지거나 어려움을 만날 일이 있으면 지켜 주시고 막아 주시며 미리 깨우쳐 주셨습니다. 요 15:5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말씀한 대로이며, 또한 요15:7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이 말씀처럼 요셉은 하나님 안에 즉 진리와 빛 가운데 거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과실을 많이 맺을 수밖에 없었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받을 수가 있었지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들이 나타났고요.
이처럼 요셉은 자신의 능력만 의지한 것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하나님만 의지한다 하여 자신은 그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할 바는 최선을 다해서 행했고, 작은 일에서부터 충성했지요. 이와 같이 자기편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모든 환경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성실히 행해 나가면서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설령 억울한 상황에 있다 해도 해명하고자 하거나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벗어나고자 하지 않지요. 벧전 2:19-20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선악 간에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억지로 슬픔을 참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감사함으로 인내할 수가 있지요. 그랬을 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공의가 정오의 빛과 같이 드러나게 하시며 여러분의 인내와 수고에 대해서도 아름다운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시므로 여러분의 범사에 늘 선만을 좇으셔서 선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칭찬과 존귀를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02-27 오전 10:04:58 Posted
2018-12-04 오후 1:51:2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