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딤전 6:1에 보면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래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윗사람을 섬기지도 않고 공경하지도 않는다면 윗사람이 이런 아랫사람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또한 불성실하게 게으름을 부리며 윗사람의 눈치만 보면서 요령을 피우기나 하고 맡겨진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이를 보는 윗사람이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더욱이 윗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이라면 이런 아랫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밖에 없지요. 아랫사람에 대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오히려 세상 사람보다 못하다’고 한다든지, ‘교회 다닌다 하면서 저런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교회를 안 나가지’ 한다거나, 심지어는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느냐’는 식으로 비꼬는 경우들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만민교회 성도님들 중에는 이런 말을 듣는 분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결코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 만민교회 성도님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느 누구도 절대로 이런 말을 들어서는 안 되지요. 이 얼마나 사단에게 훼방거리를 주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까? 차라리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 ‘교회에 다닌다’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낫지요.
정녕 스스로에 대해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교회에 다니는 성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려면 그는 당연히 말과 행실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마 5:16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 이방인들의 입술에서도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야 하지요.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어디에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더 열심히 상대를 섬기고 자신을 희생하며 맡겨진 일에 성실하게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딛 2:9-10에도 보면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고 있지요.
자녀들이 밖에 나가서 바른 행실을 했을 때 “저 아이들은 가정교육이 잘됐어. 저 집안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잘 가르쳤네” 하며 아이들로 인해 집안과 집안의 어른들에게까지 칭송이 돌아가게 됩니다. 이런 것처럼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른 말과 행실 가운데 살아갈 때 바로 여러분을 가르친 하나님의 교훈, 즉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빛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지요.
그렇다면 이제 만약 섬기는 윗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이 딤전 6:2에 나옵니다.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했지요.
믿는 상전에게는 더 잘하라는 말씀입니다. 윗사람이 같은 믿음의 형제라 하여 경히 여기며 아랫사람으로서 할 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어차피 서로가 같이 믿는 사람들끼리니까’ 하면서 윗사람이 적당히 봐 주기를 바란다든지, ‘윗사람이 이해해 주겠지’ 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주의 일로 바쁘다 하면서 그 핑계를 대고 직장 일을 등한히 해서도 안 되지요. 오히려 윗사람을 더 잘 섬기고 맡겨진 일에도 충성을 다해서 그 사업터가 잘되도록 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윗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랫사람이 직장에서도 충성하지만 주의 일에도 충성할 수 있도록 가능한 범위 안에서는 배려를 해 줄 수도 있어야 하겠지만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혹여 그것을 핑계로 하여 윗사람에게 누가 되거나 직장에 피해를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요. 주 안에서 믿음의 형제끼리라 해도 바로 이러한 관계성과 질서들이 잘 지켜질 때 서로에게 유익이 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도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믿음의 형제 사이라 해서 이처럼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로 인해 믿음의 형제 사이에 금이 가고 서로 간에도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길 수 있지요. 따라서 성도 간에 부득이하게 사업적인 거래관계나 동업관계에 있을 때에는 오히려 더 정확하고 확실하게 일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혹여 물질의 이득을 얻으려고 하다가 자칫 믿음의 형제를 잃을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점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요셉은 이방인인 주인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주인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기까지 했지요. 요셉이 이처럼 주인으로부터 신뢰와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셨기 때문이지만, 요셉 스스로도 주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만한 행함과 노력을 했습니다.
본문 4절 전반절에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겼다” 했는데 이는 요셉이 마음 중심으로 주인을 섬겼음을 의미하지요.
요셉이 만약 육의 사람이었다면 예전에 아버지 야곱 곁에서 살던 당시와 지금의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게 되므로 마음에 낙망할 수도 있고 서러울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때도 억지로 힘들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하지만 요셉은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거두어 준 주인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졌고 은혜를 입은 자로서 주인을 섬겼지요. 이 모습만 보아도 요셉의 중심이 얼마나 좋으며 그 마음이 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만 어려움이 찾아와도 예전에 좋았던 시절과 비교하며 오히려 낙망하고 좌절해 버리지요. 감사하기는커녕 지금의 상황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자기가 해야 할 일마저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내가 이렇게 누리며 살았는데 지금은 이게 뭔가’ 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이지요. 이는 자신의 그릇이 얼마나 작으며 그 마음이 선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가를 스스로가 나타내 보이는 모습입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이라고 하면 지금 비록 예전보다 훨씬 못한 상황에 있다 해도 ‘예전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처럼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었구나’ 하며 오히려 그 당시에 대해 감사하게 되지요. 그러면서 지금 이러한 상황에 처해 봤기에 예전에 누리던 것에 대한 참된 감사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니 지금의 모든 상황에도 오직 감사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의 차이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시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선한 자녀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인간 경작을 통해 정말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정말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자녀 바로 이러한 자녀를 원하시지요. 그런 사람이 장차 천국에서도 그 아름다운 영광과 행복을 누리면서 세세토록 변치 않고 감사하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더 좋은 천국의 처소에 갈수록 더 진하게 느낄 수가 있지요. 천국에서 더 좋은 처소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 땅에서는 더 힘들고 험한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알았던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조건과 믿음의 4, 5단계에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다르지요.
믿음의 4, 5단계에 있는 사람은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이처럼 경작을 통해 도저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선의 마음을 이룬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장차 천국에 가서 느끼는 행복의 진한 정도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상대성을 더 진하게 느껴보았고 그러면서도 선과 진리로 더 아름답게 일군 사람, 이런 사람이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이런 사실을 믿는다면 어떤 험한 시험, 환난이 다가온다 해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장차 자신이 천국에서 느낄 행복은 더 진해지기 때문이지요.
바로 요셉은 그의 선한 마음 가운데 지금의 현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자신이 얼마나 감사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또한 보디발의 집에 팔려와 처음에 가졌던 섬김의 마음과 행함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지요.
일반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인정받기까지는 열심히 하다가도 일단 인정을 받고 나면 그 후에는 ‘내가 이마만큼 인정을 받는다. 내가 인정을 받아 이만한 위치에 올랐다’ 하며 처음의 모습에서 변질되곤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주인으로부터 신뢰를 얻기까지 정직하고 성실히 행했으며, 인정을 받은 후에도 그 모습이 변함없었기에 주인의 모든 소유를 위임받는 가정 총무의 자리에까지 이를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보디발의 눈에 요셉이 띄도록 하신 것이지만 보디발 편에서도 요셉의 정직과 성실함 그리고 변함없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마음에서 인정하고 신뢰했기에 자신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 민족도 아닌, 한낱 이방인 노예였던 요셉을 가정 총무의 자리에까지 높이게 되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도 어떤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 점점 그 위치가 올라가고 머리가 되었다 해서 ‘이제는 좀 쉬엄쉬엄해도 되겠지’ 하며 자신이 맡은 것을 소홀히 하거나 눈가림으로 윗사람을 속이려 해서는 안 됩니다.
머리가 될 수록 더 많이 돌아보고 살펴야 하며 두루두루 챙겨야 할 것도 많아지는 것이고 거기에 따르는 책임도 더 커지게 되지요. 더욱이 예전에는 섬기던 위치에서 이제는 섬김 받는 위치에 있다하여 섬김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며, 예전에 섬기던 분에 대한 은혜를 저버려서도 안 됩니다.
이에 대해 엡 6:5-8에는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 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골 3:22-23에도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하셨지요.
이 말씀들처럼 여러분이 누구를 만나든지 진정 주님께 하듯 마음을 다해 섬긴다면 여러분은 어디를 가더라도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똑같은 것으로 인해 연단을 받더라도 연단을 받는 사람의 모습은 전혀 다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변에서 볼 때 “저 사람은 연단도 안 받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할 정도로 조용히 받는 것을 보게 되지요. 주변 사람과 별로 걸리는 일도 없고 주변과 화평을 깨거나 소리 나는 일 없이 조용히 연단을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꼬이거나 막히는 일 없이 형통하게 잘되어가는 것처럼 보이고요. 물론 연단을 받는 사람의 속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처럼 조용히 연단을 받는 것 같아도 마음의 연단이 심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연단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버려야 할 악의 모양이 있다면 거기에는 남들이 모르는 아픔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연단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물 흐르듯 조용하고 신속하게 연단의 과정을 뚫어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연단을 받는 중에 아주 시끌벅적한 사람도 있지요. 여기저기서 부딪히는 소리가 나오고 주변과 화평도 깨어지며 만사가 꼬이고 불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변에서도 ‘저 사람은 저 연단을 참 오랫동안도 받는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좀처럼 그 연단을 뚫지 못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자신은 어느 편에 속하는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연단 중에야 이런저런 소리도 날 수 있고 때로는 불통한 것처럼 보이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연단 중에 유독 시끄러운 소리가 나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도 피해를 주면서 연단을 받아 나가는 경우가 있지요. 모든 일이 꼬이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요. 이런 경우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기 안에 얼마나 악이 많은지’를 깨우쳐야 하지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하셔도 어떤 사람은 선한 사람을 만나서 연단을 받게 하시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강하고 센 사람과 만나서 그 속에서 연단을 받게도 하십니다. 이때 강하고 센 사람을 만나 연단을 받는 사람은 자주 부딪히고 소리가 나기 마련인데, 그러면서 그 탓을 상대에게 돌리지요. 상대가 강하고 센 사람이어서 이렇게 부딪히고 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하지요. 자신이 그런 사람들 속에서 연단을 받아야 만이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고 깨뜨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선한 사람을 만나서 연단 받는 사람은 그런 환경 속에서 연단을 받아도 얼마든지 자신을 발견하고 깨뜨려 변화될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마음에 얼마나 악이 많은지 또 얼마나 강하고 단단한지를 다 살피셔서 그에게 가장 알맞은 환경 가운데서 연단을 받도록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연단 중에 요란한 소리가 나고 화평이 깨지면서 그것을 통해 자기 악의 모양이 드러나는 사람은 그만큼 자기 안에 있는 악과 상대의 악이 함께 부딪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요. 그래서 자신의 악을 먼저 인정하고 발견해야 깨어지고 변화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부딪히고 소리가 나면서도 여전히 상대만을 탓하고 있으니 자신을 발견할 수도 없고 변화될 수도 없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 성도님들 중에 가끔 남편은 교회를 나오지 않는데도 사업터가 날로 번창한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어봅니다. 그래서 그 사정을 자세히 들어보면 남편이 비록 교회는 같이 다니지 않지만 아내가 교회 나가는 것을 핍박하지도 않고 아내가 교회에 나가 기도해 주기 때문에 자신의 사업터가 번창하고 있다고 인정을 한다는 것이지요. 교회에 헌금을 드리는 것에 대해서도 그냥 모른 척해 준다거나 오히려 드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비록 아직은 교회에 안 나온다 해도 그의 마음과 행함이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을 만한 이유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마음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복 주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요셉의 주인 보디발에게 축복이 임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보디발의 집과 모든 소유에 축복이 넘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셨기 때문이지요. 보디발이 모든 것을 요셉의 손에 위임했기에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과 소유에도 축복이 임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보디발이 요셉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그에게는 이러한 축복이 임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보디발은 단지 요셉을 잘 만나서 이와 같은 축복을 받았던 것일까요? 여기에도 하나님의 정확한 공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의 형통함을 보면서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했지요. 자신이 받고 있는 축복이 요셉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마음에서부터 인정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선으로 인정을 받았기에 공의에 어그러짐 없이 그의 집과 소유에 축복이 임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만약 보디발이 요셉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도 공의의 법칙 상 보디발의 집과 소유에 축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단지 요셉 개인을 축복하시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것처럼 비록 교회에는 나온다 해도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다 해도 그에게는 축복이 올 수가 없지요.
또한 한 가정에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있을 때 그로 인해 가정 전체에 축복이 임할 수도 있지만, 단지 그 개인에게만 한정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공의에 비추어 가족들도 축복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 있다면 함께 축복을 받겠지만, 그런 그릇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받는 개인에게만 축복이 임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보디발은 자신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요셉을 믿고 신뢰했으며, 요셉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보디발은 애굽이라는 대국의 시위대장으로서 그의 소유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지요.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맡기고 간섭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얼마나 보장하셨고 함께하시는 증거들로 나타내 주셨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보디발이 조금이라도 요셉을 신뢰하지 못했다면 그 큰 살림의 이것저것을 간섭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보디발이 전혀 상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과 모든 소유는 축복을 받아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더욱이 요셉은 연단을 통해 자신이 철저히 깨어지고 있었기에 예전처럼 자기 의로움이나 주장을 내세우려는 모습이 전혀 없었습니다. 큰 직분을 맡았다 하여 들레려 하거나 높아진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변함없는 마음으로 주인을 섬기며 그 뜻에 맞추어 순종을 해 주니, 보디발의 입장에서 이런 요셉이 얼마나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웠겠는지요?
그런데 이렇게 형통함을 받고 있는 요셉에게 한 가지 커다란 시험이 찾아옵니다. 육으로 보면 잘 나가고 있는 요셉의 발목을 잡으려는 시험 같았지만, 영적으로는 요셉으로 하여금 더 큰 축복의 길로 나가게 하려는 연단이었지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은 자신이 안 좋은 남편 또는 아내를 만났고 안 좋은 부모를 만났으며 안 좋은 윗사람을 만났기에 불행해졌다고 말합니다. “내가 좀 더 좋은 남편을 또는 아내를 만났더라면… 내가 좀 더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내가 좀 더 좋은 윗사람을 만났더라면 행복했을 텐데”라고 말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그것이 남편, 아내 탓이고, 부모 탓이며, 윗사람 탓일까요? 그렇게 말하는 분이 있다면 여러분이 먼저 한번 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먼저 좋은 아내와 남편이 되시고, 여러분이 먼저 좋은 자녀가 되시며, 여러분이 먼저 좋은 아랫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되면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의 남편은 좋은 아내를 만난 사람이 되고, 여러분의 아내는 좋은 남편을 만난 사람이 됩니다. 또한 여러분의 부모는 좋은 자녀를 둔 사람이 되고 여러분의 자녀는 좋은 부모를 둔 사람이 되지요. 여러분의 상사는 좋은 부하를 둔 사람이 되고 여러분의 부하는 좋은 상사를 둔 사람이 되고요.
그리고 바로 좋은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비로소 불행의 원인이 상대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상대가 변해야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내가 먼저 변하니 나로 인해 모두가 행복해지더라는 말입니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비법,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비법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얼마나 실천하고 계시는지요?
오늘 본문에 보면 요셉 한 사람으로 인해, 그 주변에까지 얼마나 축복이 함께 임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요셉으로 인해 그 주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까지 복이 임했지요. 그러니 그의 주인은 물론이고 그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까지도 그 축복을 함께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바로 이러한 요셉과 같이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도 축복을 함께 나누어 줄 수 있고 행복을 줄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요셉이 주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도 사랑받은 것처럼, 여러분도 얼마든지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가 있지요. 이처럼 여러분 모두가 행복을 주는 사람, 여러분으로 인해 주변까지 복 받게 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이러한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01-23 오후 12:06:25 Posted
2018-12-04 오후 1:51:2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