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9:7-20
야곱이 가로되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리라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침이었더라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됨을 고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비에게 고하매 라반이 그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매 라반이 가로되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하더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서론
야곱이 도착한 동방 사람의 땅에서는 양 떼를 치는 목자들 사이에 만들어 놓은 규약이 있었습니다. 양 떼에게 물을 먹일 때 개별적으로 와서 아무 때나 먹이는 것이 아니라 근방에 있는 모든 양 떼가 모였을 때 함께 우물을 개방하여 물을 먹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 떼에게 물을 먹일 때를 제외하고는 우물 아구를 큰 돌로 덮어 놓았습니다. 당시 유목민들에게는 양 떼에게 먹이는 물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물의 오염이나 무분별한 낭비, 또한 물 확보를 위해 목자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사로운 시비가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본론
1. 간사한 속성을 지닌 야곱
이러한 상황에서 야곱이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고 말하자 목자들은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고 답변합니다. 야곱이 다른 지방에서 왔기 때문에 현지 상황을 잘 몰랐을 수도 있지만 그곳의 목자들에게 명령하는 듯한 말투로 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야곱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들과 안면이 있는 사이도 아니고 더욱이 그들에게 명령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습니다.
물론 야곱이 이처럼 말하게 된 데에는 그의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성격 탓도 있었습니다. 자신은 한시라도 시간을 아껴서 양 떼에게 더 많은 풀을 뜯김으로 맡겨진 양들을 살찌울 것 같은데 그곳에 모인 목자들은 자신의 마음과 같지 않다고 느낀 것입니다. 아직 해가 높이 떠있으니 얼마든지 양떼에게 풀을 뜯게 할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우물가에 와서 다른 양 떼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일찍 와도 모든 양 떼가 다 모일 때까지는 양들에게 물을 먹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찍 양 떼를 몰고 우물가로 온 것입니다. 그러니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성격을 가진 야곱으로서는 그들의 모습이 당연히 불성실해 보이고 게을러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뒤 생각하지 않고 “양들에게 물을 먹인 후에 다시 데리고 나가서 풀을 뜯기라”고 명령하는 듯한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겸손하고 온유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제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한데요?’ 한다거나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하며 상대에게 권하는 듯한 말투를 사용할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명령하는 듯한 말투로 말한 데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간교한 속성 때문이었습니다.
2. 외삼촌 라반이 유력한 인물임을 파악한 야곱
야곱은 아직 마음이 진리로 일구어지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지혜로운 면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삼촌 라반이 사는 지역에 도착하여 그 지역의 목자들과 몇 마디를 나누어 보면서 즉시로 분위기를 파악할 수가 있었지요. 5-6절을 보면 야곱이 그들에게 외삼촌 라반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안다고 하면서 라반의 딸이 지금 양을 몰고 오고 있다는 것까지 말해 주었습니다. 그만큼 라반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만일 라반이 권세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면 사람들이 그처럼 쉽게 ‘안다’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떤 다른 도시에 가서 누구를 찾는다고 할 때 찾는 사람이 그곳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고 하면 이름만 말해도 쉽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말해서는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이 알 만큼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나름대로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야곱은 짧은 시간에 삼촌 라반의 입지를 파악한 것이지요. ‘외삼촌 라반이 이곳에 꽤 알려져 있는 유력한 인물이구나’ 하는 것을 파악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고 나자 야곱은 곧바로 자신이 라반의 조카라는 사실이 이곳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됩니다. 그의 마음 안에 있던 간교한 속성이 순간 발동되어 ‘내가 바로 라반의 조카다’라는 마음이 앞서면서 그것을 생색내려는 마음에 그만 명령하는 투의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외삼촌의 힘과 권세를 힘입어 마치 자신의 힘과 권세인양 과시하려는 마음이 그의 행동을 통해 나타났던 것입니다.
야곱처럼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놓치지 않고 이용하여 자신의 힘과 권세를 과시하려는 마음도 결국은 간교한 속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간교한 속성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처신을 해야 자신에게 득이 되고 자신의 힘과 권세를 과시할 수 있는지를 알아서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이쪽이 유리할 것 같으면 이쪽으로 붙었다가 저쪽이 유리할 것 같으면 저쪽으로 붙곤 합니다. 자신과 관련된 사람에게 힘과 권세가 있으면 그것을 교묘하게 등에 업어 자신의 것처럼 휘두르려 하기도 하구요. 간교한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는 간교한 쪽으로만 명철의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윗사람의 힘과 권세를 등에 업고 자신의 유익과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휘두르는 분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이것이 옳다’ 하며 자기 앞에 있는 것만 볼 것이 아니라 모든 환경과 주변의 사람들도 두루두루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옳고 진리이니까’라는 마음에 자기 의견과 주장만을 내세우다 보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 믿음에 따라오지 못하여 ‘힘들다’는 말도 나오고 화평이 깨어지는 경우들이 생깁니다. 내가 아무리 충만하다 해도 주변에는 혹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에 삼가 절제할 때도 있고 상대의 믿음과 형편을 살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내 편에서 좋은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더 주려고 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받을 만한 믿음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충만함을 잃고 영적인 힘이 없어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일꾼이 있다고 할 때 머리된 사람은 영적인 원인을 알아서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사명감당도 안하느냐?” 하며 책망하고 다그치기만 한다면 오히려 상대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주관과 인도를 받아야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3. 아직 주의 교양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야곱
다음으로 또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주의 교양’에 관한 분야입니다. ‘주님이시라면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이런 말과 행동을 하셨을까?’ 하는 것이지요. 만약 주님께서 오늘 본문의 야곱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들에게 명령하는 듯한 태도이셨겠습니까? 어린 소자라도 섬기시며 다투지도 아니하시고 들레지도 아니하시며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셨던 주님의 말씨와 행동이 어떠하셨을까요? 남에게 보이기 위해 형식에 얽매인 세상의 교양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주의 교양을 갖춘다면 말 하나 행동 하나에서도 그리스도의 빛이 발하여지고 향기를 풍길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모습은 아직 주의 교양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야곱과 비교하여 ‘나는 과연 주의 교양으로 다듬어져 있는가?’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여 여러분의 모습 중에 주의 교양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말씨와 행동이 있다면 “상대가 아랫사람이니까 그렇지요. 어린아이니까 그렇지요. 친한 사이니까 그렇지요.” 하며 이유를 댈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되면 자연히 말씨나 행함 하나까지도 변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뢰의 아들이라고 불렸던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훗날 사랑의 사도가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4. 라헬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밝히는 야곱
10절에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말씀합니다. 여기서도 야곱의 간교한 속성이 육의 지혜로 나오고 있습니다. 야곱은 목자들을 통해 양 떼들에게 물을 먹이는 방법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이 양 떼를 몰고 우물로 오는 것을 보자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겨 그의 양 떼들이 물을 먹게 합니다.
그리고는 11-12절에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자신이 라헬의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임을 고합니다. 라헬을 보자마자 “내가 당신의 아버지 라반의 생질이다” 하고 먼저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도 있었지만 야곱은 그렇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먼저 선심을 베풀어 라헬의 환심을 산 후에 자신의 목적을 말합니다. 소리내어 울며 자신이 이곳에 왜 와야 했으며 지금 얼마나 처량한 처지인가를 말하면서 라헬로부터 동정심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물론 야곱이 눈물을 흘린 데에는 그 순간 감정이 복받쳐서 그랬던 것도 있지요. 막상 외삼촌의 집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니 안도의 마음이 들면서 그동안 고생했던 것에 대한 생각이 밀려오며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의 또 다른 마음에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상대의 마음에 맞추어 상대로부터 환심과 동정을 얻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야곱의 바로 이러한 간교한 속성을 깨뜨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20년의 연단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5) 주 안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상대의 마음에 맞추어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에 맞추는 그 의도가 중요합니다. 단순히 상대의 마음에 맞추어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라면 좋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려는 마음이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결국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상대를 칭찬하고 띄워주며 마음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진실한 마음에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기 위해 상대에게 맞춰 주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칭찬하고 여러분의 마음에 맞춘다고 해서 그런 사람의 말과 행동을 무조건 ‘좋다’ 해서는 안 됩니다.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육의 지혜 가운데 아첨을 하는 것인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잠 29:5에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말씀한 대로 아첨하는 말과 행동이 여러분의 발 앞에 그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첨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무슨 일을 해 나가는 사람들은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잘되는 것 같지만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크고자 하고 정말 좋은 일을 하고자 하고 큰 일을 하려고 한다면 주변에 아첨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합니다. 또 그러한 사람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사람들이 여러분 주위에서 도울 때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높아져 있고 교만한 사람은 잘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칭찬하며 좋은 말하는 것만을 듣기 원하고 싫은 소리나 지적과 책망의 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잠언 9:8에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말씀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책망하면 오히려 책망한 사람을 사랑하지만 거만한 자를 책망하면 오히려 미워하여 감정을 품고 화가 미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의 주변에는 바른 소리나 지적과 책망의 소리를 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대신 아부하고 아첨하여 힘과 권세에 영합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또한 야곱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눈물에 담긴 의미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말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눈물인지,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서 흘리는 눈물인지, 감격하고 감동해서 흘리는 눈물인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흘리는 눈물인지, 아니면 억지로 짜내는 눈물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이처럼 눈물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6) 육의 지혜는 영에 속한 선의 지혜를 이길 수 없다
여러분이 마음을 영으로 일구고 위로부터 오는 선의 지혜를 받게 되면 이러한 상황들을 다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육의 지혜 가운데 아무리 간교하게 말을 하고 거짓으로 꾸며서 행동한다 해도 선의 지혜가 있으면 분별할 수 있습니다. 결코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육의 지혜도 영에 속한 선의 지혜를 이길 수 없습니다.
더욱이 마음을 영으로 일군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기 때문에 육의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 속을 리도 없구요. 때로는 알면서도 속아 주는 경우가 있는데 무조건 속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몰라서 속는 것이 아니고 알면서도 “당신 왜 속이오?”라고 무례히 말하기 싫으니까 또 그것이 어떤 큰 해가 되지 않을 경우 그냥 속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는 속였다고 좋아할 수 있지만 이미 상대의 마음까지 다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에 속은 것이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설령 사람은 어떻게 해서 속였다 해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상대의 마음을 맞출 때 ‘나는 정녕 영의 마음으로 했는가 아니면 사람의 마음을 맞추려는 의도로 했는가’를 스스로 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간교한 속성이 있을 때 그것으로 인해 당장에는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마치 스스로 지혜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절대로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면 당장의 유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혹여 여러분 안에 간교한 속성이 있다면 야곱과 같이 20년씩이나 연단을 받을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도 신속히 뽑아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7)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본격적인 연단이 시작된 야곱
이어지는 13-20절의 내용을 보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본격적인 연단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이 나옵니다. 라헬은 양들에게 물을 먹이러 우물로 왔다가 뜻밖에 아버지의 생질인 야곱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하니 라반은 야곱에게 달려와 그를 반기며 집으로 맞아들입니다. 야곱은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알려줍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으며 왜 자신이 외삼촌을 찾아 이곳까지 왔는지 등 야곱은 라반에게 자신의 처지를 상세히 말했던 것입니다.
물론 야곱이 자신과 어머니 리브가가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다는 말은 안 했겠지요. 이렇게 해서 라반의 집에 머물게 된 야곱은 그냥 먹고 놀면서 지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14-15절을 보면 야곱이 라반과 지낸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라반이 야곱에게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 말합니다. 이는 지난 한 달 동안 야곱이 외삼촌 라반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모습이지요.
야곱이 처음 외삼촌 라반의 집에 올 때는 단지 얼마 동안만 이곳에 머물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야곱이 게으르고 나태하며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대충 시간만 보내고자 했겠지요. 자신은 주인인 라반의 조카이니 굳이 일을 안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구요. 눈치야 좀 보일 수도 있지만 야곱이 그런 것조차 신경 안 쓰는 사람이었다면 그야말로 빈둥거리며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최선을 다해 외삼촌의 일을 도왔습니다. 라반은 성실한 야곱을 놓치기 싫어서 자신의 집에 붙들어 놓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와 오누이 관계이니 리브가의 모습을 생각해 볼 때 라반 역시 어떠한 속성을 가지고 있을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라반은 간교한 속성으로부터 육의 지혜를 동원하게 되지요. 라반이 야곱에게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말했던 것이 물론 어느 정도 진심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자신의 딸들을 빌미로 하여 야곱을 붙들어 놓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라반의 말을 듣고 자신을 오랜 연단의 시간으로 빠져들게 하는 결정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레아는 안력이 부족한 여인이었고 반면에 라헬은 곱고 아리따운 여인이었지요. 18절에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말하고 맙니다. 야곱은 칠 년을 봉사하여 라헬을 아내로 얻게 되면 그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겠지요. 아내 하나를 얻기 위해서 칠 년을 봉사합니다.
우리는 새 예루살렘 아름다운 천국을 가기 위해서 얼마큼 봉사하고 있습니까? 한 여인을 얻기 위해서도 이렇게 칠 년을 힘껏 마음 성실 다해서 봉사하는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과연 얼마큼 충성하고 있는지요. 더군다나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독생자 아들까지 주시고 또한 독생자 아들 예수는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생명을 다 드려 화목제물이 되어 주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 구세주가 되어 주셨고 아름다운 천국을 만들어 놓고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하여 새 예루살렘에 오라고 수없이 말씀을 해도 듣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19절에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하며 야곱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이때부터 칠 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봉사하게 되지요. 그런데 야곱이 봉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상황이 이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이전에는 단지 외삼촌의 일을 도와주는 수준이었다면 이때부터는 계약에 의해 삯을 받고 일하는 품꾼과 같은 위치가 되고 만 것이지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사랑받으며 자라온 야곱으로서는 품꾼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자체가 바로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깨뜨려 나가는 연단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절을 보면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말씀합니다. 칠 년 동안이나 품꾼처럼 일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야곱에게는 수일같이 여겨졌습니다. 칠 년 후에는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얻을 수 있다는 소망이 야곱으로 하여금 수고롭고 힘든 품꾼의 삶을 살면서도 힘들다 하지 않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지요. 야곱의 소망은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소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어떠한 소망이 있으십니까? 바로 천국의 소망이지요. 여러분에게도 장차 천국에서 사랑하는 주님, 또한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는 이 한 가지 소망만 확실히 있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결코 힘들지 않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의 것처럼 세월이 지나고 나면 변하고 사라지는 헛된 것에 대한 소망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변함없는 참된 것에 대한 소망이지요.
여러분의 소망이 더해지고 주님에 대한 사랑이 더해질수록 그 날은 마치 수일이 지난 듯이 여러분 앞에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그날에 여러분 모두가 주님 앞에 서서 “제가 주님을 너무나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의 날들을 수일같이 여기며 지낼 수 있었나이다.”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3-24 오전 1:01:01 Posted
2015-09-08 오후 2:00:18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