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육체의 일, 육신의 일을 버리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혼의 분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육을 벗고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차단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육체의 일을 끊고 육신의 일도 하나하나 벗어 나가야 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육을 벗어 나가는 과정이 사람의 능력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버리려는 자신의 노력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지요. 이 네 가지가 하나 되어 사람 안에 있는 육적인 요소들을 철저히 벗겨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일, 육신의 일을 버리는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무엇 무엇을 하라” 또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이런 하나님의 명령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라, 시기하지 말라, 간음을 버리라, 안식일을 지키라 등 이런 명령들이 많이 나오지요.
여기서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말씀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며 순종하면, 이것이 곧 육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에 순종하면 마음에 영의 지식들, 곧 진리가 채워지지요.
농부가 잡초 무성한 밭에서 수확하려면 먼저 잡초를 뽑고 곡식을 심어야 합니다. “하지 말라”, “버리라” 하는 말씀들에 순종하면 이것은 마음밭에서 잡초를 뽑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을 지키면 마음 밭에 진리의 씨를 심는 것과 같지요.
비진리의 잡초를 뽑으면서 진리의 씨를 심는데 이런 작업들을 계속 믿음으로 행해 나가면 여러 가지 영의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사랑장에 있는 사랑의 열매, 빛의 열매 이런 열매들이 하나하나 맺히게 되지요. 그러면 어느새 영의 사람으로 변해 있는 것입니다.
1. 가장 큰 죄성부터 뽑아내면 나머지는 쉽게 버려져
어떤 사람은, “내 안에는 버리지 못한 육이 너무 많은데 어느 세월에 다 버립니까” 하고 처음부터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리 비진리가 많아도, 그중에 가장 큰 것부터 목표삼아 버리면 됩니다.
자신에게서 제일 크게 보이는 죄성을 붙잡고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입니다. 큰 나무를 뽑는다고 해도 뿌리를 하나하나 다 뽑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큰 뿌리만 뽑아내면 나머지 잔뿌리는 따라서 뽑혀 나오지요. 그런 것처럼 자기 안에 가장 큰 죄성을 버리고 나면 나머지는 훨씬 쉽게 버릴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 안에 제일 큰 죄성이 미움이라면 이것을 놓고 불같이 기도하고 금식하며 동시에 미움과 반대인 사랑을 이뤄내면 됩니다. 전에는 미워했던 사람에게 이제는 반대로 사랑하는 행함을 보이면서 진리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 주고, 한 번 더 웃어 주고, 어찌하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살펴서 그가 요구하지 않아도 먼저 찾아 섬기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미움이 버려지고 영적인 사랑이 임하면 다른 여러 비진리들도 버려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적인 사랑이 임하면 시기하지 않으며 혈기 내지도, 자기 유익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무례히 행하지도, 판단 정죄하지도 않지요.
‘미움’이라는 큰 뿌리를 뽑아내고 사랑이 임하니 이런 잔뿌리 같은 육의 요소들까지도 다 동시에 사라지더라는 사실입니다.
2. 마음에서 육을 벗어 버리면 몸도 영에 속한 육으로 변해
육적인 것들, 곧 비진리의 요소들을 다 벗고 나면 사람의 몸도 육에 속한 육이 아니라 영에 속한 육으로 변합니다. 툭하면 이런저런 병에 걸리고 배고픔과 피곤에도 못 이기는 그런 연약한 몸이 아니라 건강한 몸으로 변하게 되지요.
성령받기 전 베드로는 졸음 하나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십자가 고난을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시면서 함께 깨어 있을 것을 당부하셨는데 졸음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0~41) 하시지요.
그런데 여기서 육신이 약하다는 것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베드로의 몸이 약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베드로가 아직도 죄를 다 버리지 못한 사람으로서 영에 속한 육을 이루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육을 버리고 영으로 들어가면 혼이나 육이 영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육이 아무리 피곤하다 해도 마음이 깨어 있기 원할 때는 잠들지 않을 수가 있지요.
당시의 베드로는 비록 건장한 장정이었을지라도 아직 육을 다 버리지 못한 상태였기에 마음이 아무리 깨어 있기를 원한다 해도 피곤함과 게으름 같은 육의 속성을 다스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베드로는 나중에 예수님께서 잡히신 후에는 순간의 두려움으로 인해 사랑하는 예수님을 부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영으로 혼을 지배할 수 있었다면 능히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 육신이 약했기 때문에 두려움에 굴복하여 이런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주님을 부인했는데 나 같은 사람이야 잘못할 수도 있지”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육신이 약했던 것은 성령받기 이전이었기 때문이지요. 성령을 받고 육을 벗어 버린 후에는 오히려 많은 사람의 질병과 연약함, 귀신들린 것도 고쳐 주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권능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자청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기까지 모든 고난을 두려움 없이 감당할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지요.
성령을 받은 여러분도 마음에 성결을 이뤄 가는 만큼 영에 속한 육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온전히 성결된 것은 아니라 해도 영으로 변화되어 가는 만큼 예전에 연약했던 사람들에게 강건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말씀이 그대로 임하게 되는 것이지요.
3. 육에 속한 혼을 영에 속한 혼으로 바꿔야
이제 3차 영혼육, 육의 분야를 마치고 혼의 분야로 들어갑니다. 혼의 분야에서는 주로 육에 속한 혼을 영에 속한 혼으로 바꿔 나가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혼이란 무엇인지를 잠시 복습해 보겠습니다.
사람의 뇌 속에는 기억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게 된 지식들, 곧 보고 듣고 배우고 체험한 무수한 내용이 이 기억장치 안에 저장이 됩니다. 이렇게 저장된 자료들, 곧 기억된 내용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생각이고 그 지식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말하지요.
머릿속의 기억장치와 그 안에 기억된 지식들,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작용들, 이런 것들을 다 통틀어서 혼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컴퓨터 안에 기억장치가 있고 그 기억장치 안에 자료를 저장할 수가 있습니다. 나중에 그 자료를 검색하여 찾아내거나 프로그램에 맞게 활용할 수 있지요. 컴퓨터의 기억 장치와 자료, 그리고 검색하고 활용하는 모든 과정이 사람으로 치면 다 혼에 속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보고 듣고 입력해서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는지, 또 이것을 어떻게 떠올리며 활용하는지는 모든 사람이 다릅니다. 태어나서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그 안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 각각 다르지요. 그래서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에 사람마다 생각하고 대응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며 혼의 작용이 다 다르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혼의 작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육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하는 경우가 있고, 영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의 생각’을 하는 경우와 ‘영의 생각’을 하는 경우이지요.
그러면 육신의 생각은 무엇이고 영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입력된 지식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것이 생각이라 했지요. 이때 ‘진리의 지식이 활용되느냐’ ‘비진리의 지식이 활용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의 지식이 활용될 때는 영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며 비진리의 지식이 활용될 때는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진리를 많이 안다고 해서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지식이 마음에 임한 만큼, 곧 육을 버리고 영의 마음을 이룬 만큼 영의 생각을 하게 되지요. 마음 안의 진리가 떠오르고 활용되어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심히 모욕을 주었다고 합시다. 전혀 상관이 없는 애매한 일로 욕하고 위협하는 것입니다.
이때 진리의 지식이 마음에 임한 사람은 먼저 영의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아야지, 감정을 풀어야지’ 생각하게 되지요.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고, 자신이 죽어져서라도 상대와 화평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혈기가 나지 않고 같이 맞서 싸우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들은 당장 마음에 혈기가 요동하게 됩니다. 언성을 높여 변론하게 되고 상대를 공격함으로 싸움이 벌어지지요.
영의 마음을 이룬 만큼 생각도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 말은 역으로 하면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만 영으로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께 축복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까지 하시는데 이런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 영으로 들어간다거나 축복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육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조차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지식과 틀, 이론 등을 동원하여 육신의 생각에 젖어 살면서도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증거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하게 되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통달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밝히 알려 주십니다.
성령께서 알려 주시는 것을 잘 듣고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길로 행하여 만사형통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에 온전히 순종하여 부지런히 영의 지식을 마음에 채우고 혼의 작용도 진리로만 해 나가야 하지요.
영의 생각 가운데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밝히 받아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4-27 오후 7:47:36 Posted
2022-05-04 오후 9:20:52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