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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설교

제목
2차 영혼육 (13)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크기 [요 3:5-7]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2.01.23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크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정작 “마음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 보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시피 합니다. 영과 혼, 영혼을 구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음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미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혼육의 말씀을 잘 양식 삼으면 사람의 마음은 물론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구원의 섭리도 더 밝히 깨달을 수 있으며 더 신속하게 성결되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아담의 마음

아담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마음은 곧 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아담에게는 생명의 씨가 있는 영 자체가 만들어졌고 그 안에 영의 지식 곧 진리의 지식들이 채워졌지요.
아기가 태어나면 자라면서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 지식들을 얻은 후에야 온전하게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담도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에 대해 배우며 선과 진리, 빛과 같은 영의 지식을 습득함으로 영으로서의 구실을 온전히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렇게 영 안에 영의 지식이 채워진 것이 바로 아담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마음이라는 말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곧 영이기 때문에 영이라고 부르면 되었지요. 그런데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더 이상 영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영이 죽은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곧 진리의 지식들을 하나하나 잃어버리고 비진리의 지식들이 채워졌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더 이상 영이 아닌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2. 마음의 크기

사람들은 종종 마음의 크기에 따라 대인 또는 소인이라 표현하곤 하는데, 실제로 사람마다 마음의 크기가 다릅니다. 그리고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은 그 크기가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원래 빛과 소리로 온 우주에 가득하게 펼쳐져 있었고, 또한 그 마음 안에 모든 우주가 품어져 있었지요. 그 우주 안에 하나님께서 영의 세계도 만드셨고 육의 세상도 만드셨으며 지구와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십니다. 무궁무진한 지식, 지혜, 권능, 사랑,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마음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은 그 크기가 어떠할까요?
원래 아담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을 닮아서 무한하게 커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의 지식을 담아 주시는 만큼 한없이 넓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의 영이 죽은 후에는 혼적인 것들이 영을 감싸 버림으로 마음의 크기에 제한이 생겼습니다. 영으로 무엇을 깨닫거나 느끼는 것이 아니라 혼적인 작용을 통해서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혼을 통해 어떤 지식을 얼마나 담고 또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마음의 크기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지식, 틀로 생명의 씨를 감싸므로 혼적인 한계 속에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처럼 혼적인 한계를 가진 사람들 중에도 어떤 사람은 눈앞의 것만을 생각하기보다는 먼 훗날까지 바라볼 줄 알고, 적은 유익에 연연하기보다는 더 큰 것을 생각합니다. 또 쉽게 감정이 요동하기보다는 인내하고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은 비교적 마음이 크다 인정을 받으며 많은 사람이 그 안에 깃들입니다.
그런데 영이 죽은 사람은 비교적 마음이 크다 해도 혼적인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사랑과 덕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그 마음 안에 깃들였으며, 그중에는 유비보다 지혜와 용맹이 뛰어난 사람도 많았지요. 그러나 그는 의형제를 맺은 관우가 죽임당하자 당장 원수를 갚으려고 서두르다가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육의 사람의 한계입니다.
이와 달리 영으로 마음이 큰 사람은 사랑과 덕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랑이 영적인 사랑이며 지혜와 명철, 인내와 절제 등도 함께 임하는 것입니다.


3.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커지는 마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영적으로 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비진리의 지식을 버리고 진리의 지식 곧 영의 지식을 채워 영으로 변화되는 만큼 마음이 무한하게 넓어질 수 있지요.
맨 처음 창조되었던 아담의 마음은 천하 만물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뿐 아니라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에덴동산에 살면서 낳은 수많은 후손들도 그 마음 안에 품어져 있었고, 영의 존재인 그룹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그가 에덴을 지킬 때는 원수 마귀 사단이 감히 넘보지 못할 권세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의 사람이 되어가는 만큼 마음이 커지고 영이신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 또한 능력과 권세 등을 소유하게 됩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육의 세계만이 아니라 신령한 영의 세계까지도 그 마음에 품어지기 때문에 육의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육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육의 사람들이 이렇게 영의 사람, 마음이 큰 사람들을 볼 때 마치 신(神)처럼 여기게 되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영의 세계의 크기는 무한하며 영의 사람만이 그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영의 세계에 속한 사람의 마음 또한 영의 사람만이 느끼며 알 수 있지요.

육에 있는 사람들은 영의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많은 판단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하셨을 때, 혹자는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순종하기가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산에 오르면서도 몇 번이고 되돌아오고 싶었을 것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한 아브라함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삭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육에 있는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높은 차원의 믿음과 순종에 대해 이해할 수 없으며 자기적인 기준에 맞춰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또 열왕기상 19장 4절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탄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너무 힘든 고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차라리 죽고 싶다” 하는 것처럼 엘리야도 그런 원망의 기도를 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자기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 주었는데도 오히려 더 악을 발하는 사람들을 볼 때 너무나 심령이 상해서 이런 애통의 기도가 나왔던 것입니다.
영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신이 영의 마음을 이룬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듣는 만큼 깨달을 수 있습니다(고전 2:15~16). 우리가 주의 마음을 가지고 영의 마음을 가지면, 영의 사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육의 사람에 대해서도 어떤 오해나 판단 정죄가 나오지 않습니다. 혼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진리 속에 제한된 육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 생각의 한계 속에서 판단하며 자신의 좁은 마음 이상의 것을 헤아리기가 어렵지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을 만날 때마다 얼굴을 굳히고 눈을 피하면서 급히 지나간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자신에게 감정과 미움, 혈기 등 육이 있는 만큼 상대를 판단하게 됩니다. “나한테 감정이 있나 보다” 하면서 자신도 상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되지요.
그런데 영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런 판단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나를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수줍음이 많아서 어색해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그 밖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마음에서 정확한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고, 화평을 이룰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이렇게 영의 마음을 이룬 사람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깃들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주의 종이 얼마나 영의 마음, 큰마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마음 안에 수많은 영혼들이 깃들이게 되지요. 찌르고 부딪쳐 오는 양 떼, 육적인 양 떼라 해도 다 이해하고 참아 주고 넉넉히 품어 주니 자연히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업터, 일터에서도 여러분이 영으로 이뤄 마음을 넓히는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고 지혜도 능력도 커집니다. 더구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니 무엇을 하든지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영의 마음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의 구성 성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선을 좇기 원하는 명백한 진리의 마음과, 명백하게 악한 비진리의 마음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이 진리와 비진리의 비중이 다르지요.
그런데 이 두 가지 마음과 또 다른 하나의 마음이 있는데, 바로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본성 속에는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 있는데, 이 본성 속에 있는 비진리를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여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성이라는 것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본성 속의 비진리를 발견하여 버릴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설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 사람이 좁아지거나 편벽되어진다고 오해를 하며, 술 담배를 끊으니 사업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의 마음을 이루면 결코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무궁무진하게 넓어지며 모든 것을 마음에 품는 대로 이룰 수 있습니다.
육의 사람들과 세상적인 교제를 하지 않고 서로 육의 것들을 주고받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으며 지배하고 다스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고후 6:11~13).
또한 영의 마음을 이루면 곧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 되니(요 17:23)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응답받습니다. 그 축복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 앞에서도 하나님께 사랑받는 증거를 보일 수 있지요.
그러므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무한한 영의 지식들을 취해 나가심으로 세상 사람들같이 육의 한계 속에서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던 아담과 같이 넓고 큰 마음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1-27 오전 10:56:25 Posted
2022-01-28 오후 11:45:0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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