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십계명 중 제9계명인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하신 말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고 자부하는 사람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런 사람들도 대부분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더러움이 잘 보이지 않아도 아주 밝은 빛이 비추이면 미세한 먼지나 얼룩까지 드러나는 것처럼, 진실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짓 증거를 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거짓 증거란 무엇인지 세 가지 유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하거나,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하는 것
거짓 증거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확연히 드러나는 대표적인 경우는 재판할 때입니다. 재판석에서는 증인의 말이 직접적으로 판결에 영향을 줍니다. 거짓 증인으로 인해 무죄한 사람이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고 심지어 생사가 달라지는 일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증언하는 사람도, 증언을 듣고 판결하는 사람도 모두가 신중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19장 15절에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하셨지요.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남을 정죄하지 말고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 보고 정황을 바르게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어지는 19~20절에는 거짓 증인에 대한 형벌을 정하고 계십니다. 곧 거짓 증인으로 인해 상대가 받을 뻔한 형벌을 거짓 증인 자신이 받도록 하라는 것이지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일상생활 속에서의 사소한 거짓말도 버려야 합니다. 상대에게 심각한 손해를 입히는 경우가 아니라 해도 작은 거짓말 역시 비진리이지요. 또한 자신이 사실을 말해야 할 상황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도 거짓된 행함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범한 잘못에 대해 다른 사람이 애매히 누명을 쓰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한다든가, 물건 값을 지불한 후 더 많은 거스름돈을 받고도 아무 말 없이 왔다면 정직하다 할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짓을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 자체가 정직하여 말과 행실이 다 참되고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거짓말 중에는 “하얀 거짓말”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지요. 욕심이나 상대를 해치려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하는 거짓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식사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사실은 식사하지 않았는데도 상대가 자신에게 마음 쓰지 않도록 “먹었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먹지 않았지만 먹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경우가 나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들에 숨겨 두었으면서도 다윗을 무고히 죽이려 하는 사울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다윗이 형들을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 다윗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좇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선한 의도일 때는 하나님께서도 “네가 거짓말을 했다.”고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더 온전한 선의 차원에 이르면 이런 상황조차도 생기지 않습니다. 굳이 하얀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라도 상대를 감동시킴으로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좇아 거짓말을 하고도 “나는 선한 의도로 했다.”고 말하는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정직한 마음을 이루고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음으로 항상 덕스럽고 은혜로운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2. 말을 전할 때 더하거나 빼는 것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느낌 속에 말을 더하거나 빼서 엉뚱하게 전하는 경우입니다. 그나마 좋게 전한다면 다행이지만 나쁘게 전하여 오해를 빚으니 문제입니다. 설령 글자 하나까지 그대로 전했다 해도 말의 억양이나 장단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왜 그래?”라는 표현도, 걱정스럽게 “왜 그래?” 하는 억양과 화가 나서 “왜 그래!” 하고 따지듯이 말하는 억양이 다른 것입니다.
물론 녹음기처럼 상대의 말을 똑같이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말한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비록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해도 은혜와 덕이 되지 않고 진리가 아닌 말이라면 전하지 않아야 하지요. 좋은 의도에서 전했다 해도 듣는 사람 편에서는 마음이 상하므로 사람들을 이간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은혜롭고 덕이 되는 말을 하여 의롭다 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 자기 생각에 맞춰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서 판단 정죄하며 비판하는 것
사람들은 남의 표정과 행동을 보거나 말을 들을 때,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맞춰 상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마음이라서 그 말을 했을 것”이라거나 “이러한 의도가 있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라 말하지요. 가령, 상대는 눈이 나쁘거나 딴 생각을 하며 걷다가 나를 못 보고 지나쳤는데 ‘저 사람은 나를 보고도 모른 척한다. 나에게 감정이 있는가?’ 생각합니다.
아무리 눈치가 빠른 사람도, 서로 사랑하고 친한 사이라 해도 상대의 마음을 다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기준에 맞춰 상대를 오해하고 판단함으로 감정을 품거나 상대를 비방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사실이 아닌 말을 전하면, 그 말만 듣고 동조함으로 남을 판단하고 허물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역시 거짓 증거에 동참하는 어리석은 행동이지요.
자기 기준에 맞춰 상대를 판단하고 비방하는 사람은 상대를 정죄하는 그 정죄가 오히려 자신에게 해당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악을 발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과 같은 악을 발할 것이라 생각하지요. 자신에게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속이는 것”이라 의심하며, 어떤 장면을 보고 나쁜 생각이 들었다면 “상대도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자신에게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으니 상대의 행동을 오해하여 “저가 나를 무시한다, 교만하다.” 말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했고, 마태복음 7장 1~5절에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했습니다.
상대의 허물을 말하며 이를 비판하는 사람은 자신이 상대보다 더 큰 악을 행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며, 자기 악을 버리고 성결될 때라야 다른 사람의 잘못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마음의 악을 다 벗어 버리면 상대방의 허물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좋은 것을 보기 원하며 상대에게 허물이 있다 해도 덮어 주려고 하지요.
또 야고보서 4장 11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했습니다. 형제를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은 곧 재판장이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큰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명심할 것은, 사람이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말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한계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실 수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을 동원하여 “잘못되었다.” 판단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악한 의도가 아니라 해도 사람들은 종종 사소한 거짓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 생각 속에서 사실과 다르게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경우가 있지요. 상대가 “아주 많이 먹었다.” 하면 “다 먹어버렸다.” 하거나 “조금밖에 안 남았다.” 하면 “하나도 안 남았다.” 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혹은 많은 사람 중에 겨우 두세 사람이 동일한 의견을 냈는데 “모두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의 말을 전할 때, 자신의 생각에 맞춰 엉뚱한 말로 전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여러 사람과 함께 식사하던 중에 “상이 초라하네.” 하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반찬의 종류가 아니라 각각의 그릇에 담긴 반찬의 양이 적다는 의미였지요. 저는 먹는 양이 적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으니 그릇마다 반찬이 좀 넉넉하게 담겨 있으면 좋겠다는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 말을 듣고 “당회장님이 고기반찬이 없다고 하셨다.”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나쁜 의도로 거짓말한 것도 아니며, 누군가를 악하게 판단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을 더하거나 빼는 거짓된 모습이 있다면 더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아 보아야 하지요.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더하거나 빼서 전달하지 않습니다. 오직 알고 있는 그대로만 말할 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더해서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라 해도 자신의 말에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이는 곧 마음에 거짓의 속성이 남아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거짓의 뿌리를 다 뽑지 못한 사람은 어떤 긴박한 상황을 만나면 남을 해롭게 하는 거짓말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거짓이라도 발견하는 대로 철저히 벗어버림으로 온전히 변화되는 계기를 삼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짓말 외에도 말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나 남의 마음을 헤아려서 판단 정죄하며 비판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 증거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짓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결한 마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시편 84편 11절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길을 밝히 비추시고 어려운 일마다 방패가 되어 주시며 여러분의 삶 가운데 좋은 것을 아낌없이 부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08-11 오후 4:45:16 Posted
2021-08-13 오전 9:53:29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