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

> 권능이란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치료 사도 바울은 신약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가장 큰 권능을 행했던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권세있는 말씀과 함께 따르는 기사와 표적, 즉 권능이 있었기에 참 신이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었다. 당시 우상 숭배와 주술적인 행위가 성행했던 것으로 보아 이방인들 중에도 사람들을 미혹할 만한 여러 가지 일들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보아 왔던 거짓 술수나 악한 영의 역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따라야 했다.(롬 15 :18) 그래서 사도행전 14장 8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라는 곳에 복음을 전할 때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향해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명하자 곧 뛰어 걷게 된 것이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놀라 바울을 가리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고 외쳤다(행 14 :11).


1. 능력과 권능의 차이

기도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지칭할 때 권세와 능력, 권능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분명한 차이가 있다.
국어사전에 보면 능력이란 ‘일을 감당해 내는 힘’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영적인 의미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믿음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능력이란 포괄적인 의미가 있기에 귀신을 내어쫓기도 하고 병이나 약함을 고치기도 하며 죽은 자를 살리는 것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망에서 영생의 길로 가는 것 자체도 능력이며 모든 신령한 역사가 능력에 포함된다.

능력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마음의 성결을 이루어 진리 안에 합당히 행할 수 있는 완전한 영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마가복음 16장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말씀하신 대로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에게 주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를 나타내 주시는 것이다. 물론 아직 악의 모양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혼들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능력을 구하며 무수한 기도를 쌓아 나가면 능력을 받을 수 있지만 온전한 것이 아니다.


2. 권세란?

오로라 영적으로 권세란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 있고 영광스러운 힘이며,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영적으로 권세란 성결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여 마음의 악과 비진리를 온전히 벗어 버리고 성결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는 것이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악이 없고 사랑과 덕과 관용을 갖춘 큰 그릇에게 영적 권세를 주신다. 또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무한한 기도와 금식을 쌓은 사람에게 영적 권세를 주신다.


3. 권능이란 무엇인가?

치료 국어사전을 보면 권능이란 ‘권세와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영적으로는 권세와 능력을 함께 나타내 주기 때문에 ‘권세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복음 9장 1절을 보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했고, 누가복음 4장 36절에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라고 하였다. 이처럼 권세와 능력이 함께 나오는 것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권능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곧 권세와 능력을 합친 의미가 권능인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교통을 정리하는 경찰관은 자동차를 멈추고 세울 수 있는 권세가 있다. 국가로부터 권세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권세와 능력은 다른 것이며 권세와 능력을 겸한 경우에 권능이라고 한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말씀하신 대로 권능은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쫓아낼 수 있는 권세와 함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4. 권능은 하나님께 속한것

권능 이러한 권능은 시편 62편 11절에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셨다 하셨도다” 하신대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권능은 마치 하나님께 속한 고유 상표와 같아서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의 권능을 행한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일 거짓으로 꾸며 권능을 행하는 것처럼 속이는 사람이 있다면 처음에는 그럴 듯하여 속일 수 있지만 결국은 가짜임이 밝혀지게 된다. 거짓으로 권능을 흉내 내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나타나는 열매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권능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통해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 나타날 때 그 열매를 보고 바로 분별할 수 있다. 그 안에 성령이 계시므로 성령의 역사임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원수 마귀 사단은 결코 하나님께 속한 권능을 행할 수가 없다. 그들도 영물이기에 사람보다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능력은 많다.


5. 권능은 어떤 사람이 받을 수 있는가?

치료 하나님께서는 성결되고 정금 같은 온전한 믿음을 지닌 그의 자녀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권능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의 차원에 가까이 이를수록 권능 위에 권능을 더하시며 큰 권능으로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22절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을 상고해 보면 하나님께 권능을 받은 사람들은 그 마음에 악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아멘’하고 순종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도 누구든지 성결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아멘으로 순종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표적은 물론 기사와 희한한 능, 기이한 일들로 함께 해 주시는 것이다. 물론 온전한 권능을 행하려면 하나님을 지극히 기쁘시게 해 드리는 그리스도의 믿음을 소유해야 하지만 아직 이 차원에 이르지 못했다할지라도 성결의 단계에 들어와 그 중심이 변개하지 않을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 주시는 것이다. 여기에 불같은 기도의 양을 쌓는 만큼 더 큰 역사가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아직 성결에 이르지 못해 스스로 권능을 행할 만한 차원에 이르지 못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보장하는 사람의 기도를 믿음으로 받을 수 있다면 그에게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제자들을 안수하여 보내셨을 때 그들에게도 표적이 따랐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마 10 :1). 그러나 그러한 것은 지속적이지 못하며, 오직 성결을 이룬 영의 사람이 되어 권능을 받아야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바울 사도 외에도 베드로 사도, 빌립 집사, 스데반 집사가 권능을 행한 기록이 나온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베드로 사도만이 권능을 행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비록 집사라할지라도 마음이 성결되고 하나님 앞에 합당한 그릇이라면 하나님께서 권능을 주셔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6. 신유 은사와 권능의 다른점

권능 혹자는 빛이신 하나님의 권능을 신유의 은사와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권능과 신유의 은사는 전혀 다르다.
병 고치는 은사는 주로 균으로 말미암은 질병들을 태우는 역사를 베풀기 때문에 신체 조직의 일부가 퇴화되었거나 신경 세포가 죽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치료할 수는 없다.
신유의 은사는 마음의 성결과는 상관없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많이 쌓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담대하여 사용하실 만한 그릇이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유익을 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거두신다. 반면 빛이신 하나님의 권능은 성결을 이룬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므로 한번 받으면 약해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 마음을 닮아갈수록 높은 단계의 권능을 입혀 주심으로 더욱 큰 역사를 베풀게 된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면에서도 크게 다르다. 신유의 은사는 아주 중한 병이나 희귀병을 쉽게 고칠 수가 없으며 더욱이 환자의 믿음이 적은 경우는 더 어렵다. 그러나 빛이신 하나님의 권능으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며 환자가 조금만 믿음을 내보여도 단 번에 역사될 수 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 홈페이지 권능과 창조의 역사들 중(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