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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00V의 전기 감전사고로 살 가망성이 전혀 없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어요 - 송후용 집사

날짜 1999년 7월 1일 목요일 출처 PDF 조회수 10955
"송후용 씨! 정신차려요. 괜찮아요? 송후용 씨! 송후용 씨!…" 꿈결인 듯이 H 호텔 방재실 직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어렴풋한 의식 속에서 괜찮다고 대답은 하였지만, 감전 사고로 인해 굳은 저의 몸은 꼼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저에게 큰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만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호텔 파견 근무시 기계실에서 전기공사를 하다가

대학에서 소방 안전관리를 전공한 저는 소방 시설을 관리하는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본사에서 H 호텔로 파견 근무를 나간 1992년 6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엘리베이터 기계실에서 전기공사 작업을 하고 있던 저는 그만 실수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작업하고 있던 옆에는 소방펌프에 전기를 공급해 주는 MCC 판넬이 있었는데 넘어지면서 왼팔이 판넬에 닿았습니다. 이 판넬에는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선이 나란히 있었는데, 다행히 저의 팔과 어깨 부분이 3개의 선에 동시에 닿았기에 합선이 되면서 두꺼비집의 퓨즈가 끊어졌습니다. 전기의 특성상 만약 한 선만 닿았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퓨즈가 끊어지는 순간 전류는 저의 왼팔을 거쳐 심장과 폐를 거치고 위를 지나 왼쪽 옆구리를 통과하였고 저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서비스업계인 호텔의 특성상 공사중에도 전기를 끄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MCC 판넬에는 3300V의 전류가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저의 옷에는 불이 붙었으며, 사고가 난 것을 직감한 객실 근무자들이 달려왔습니다. 호텔의 전기를 총괄하고 있는 변전실에서는 두꺼비집이 차단된 것을 알고 다시 스위치를 올려도 되는가의 여부를 묻기 위해 방재실로 연락을 하였습니다.
방재실에서는 일단 스위치를 올리지 말고 기다려 보라는 지시를 한 뒤에 비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원인을 확인하고자 사고 지점으로 달려 왔습니다.
만약 이 사고를 알 수 없었던 방재실의 근무자가 그대로 스위치를 올리라고 변전실에 지시했다면 저는 판넬에 붙은 채로 다시 3300V의 고압 전기에 감전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3300V의 전류에 감전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그리하여 MCC 판넬에 붙어 있던 저의 몸을 잡아 뗀 후 옷에 붙은 불을 껐습니다. 급히 앰뷸런스에 실린 저는 Y 대 부속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용산에 있는 C 대 부속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갑작스런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온 가족들은 제가 도저히 살 수 없다는 병원의 진단이 내려지자 곧바로 E 대 부속병원으로 옮겨 치료받게 하였습니다.
이미 제 발은 식어 가고 심장의 박동이 희미해졌으며,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위급한 상태였습니다. 화상 환자는 큰 상처 부위로 인해 나쁜 공기에 노출되면 더욱 위험하므로 독방을 써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옮겨진 병원에서 입원실을 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희미한 의식 속에서 예전에 만민중앙교회 성도들의 간증을 모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들」이란 책자를 통해 읽었던 김은득 권사님의 간증이 떠올랐습니다.
의학적으로 소생이 불가능한 전신 3도 화상을 입었지만 믿음을 갖고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은 후 깨끗하게 치료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가족들에게 교회에 가면 살 수 있으니 교회에 데려다 달라고 하였으나 그들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으니 들어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

제가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안에 생명의 말씀이 심겨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완고한 유교 집안에서 자란 저는 대학 시절 C.C.C.(한국 대학생 선교회)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복음을 전해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항상 신의 존재와 그분에 대해 알고자 하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수련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참믿음을 갖지 못하였던 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는 제가 참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민중앙교회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지 수개월이 지나면서 저는 비로소 생명의 말씀이 얼마나 꿀송이처럼 달고 맛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각종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들었을 뿐 아니라,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출퇴근길이나 틈나는 대로 듣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주의로 인해 사고를 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제가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셨으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이 오셔서 기도해 주셨으며, 매일 밤 9시에서 12시까지 열리고 있는 철야기도회에서 성도님들이 합심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
기관에서는 형제자매들이 릴레이 금식과 철야기도로 사랑의 간구를 해 주었지요. 또한 같은 기관의 어느 형제님은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 주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 감사예물까지 드렸다는 감동적인 소식을 후에 접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랑의 간구를 통해 생명을 연장받고

인간의 발달된 과학 기술이나 저를 낳아 준 부모도, 또한 친형제들도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 저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의 사랑의 간구와 오직 하나님께 의뢰하고자 하는 저의 중심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사망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경과가 좋아졌습니다. 9일 만에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하게 되자 가장 먼저 화상 치료를 받았습니다.
화상으로 인하여 혈관이 숨어 들어가고, 혈관 속에는 감전으로 인해 이미 익어버려 응집된 피와 그렇지 않은 피가 섞여 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는 살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루에 세 번씩 항생제를 투여하였고 저는 치료받는 과정에서 매우 큰 고통을 받았지만 그 때마다 주님께서 마음의 평안을 주셨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니 생명의 말씀이 너무나 사모되어서 형제자매들이 가져온 설교 테이프를 하루에 5-10개씩 들었습니다.
이처럼 틈만 나면 말씀을 들으며 평안이 넘치는 저의 밝은 모습에 간호사는 교회에 온 것 같다고 즐거워하였으며 간호하는 가족들도 편안한 마음이었다고 고백하곤 했습니다. 문안 오시는 분마다 오히려 은혜받고 간다고 즐거워하기도 하였지요.
사고나기 전에 저는 교회에서 40일 특별 철야기도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열흘이 지났으므로 아직 30일이 남았음을 기억하고 그 날부터 병원에서 혼자 작정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중심을 다한 기도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알았기에 무릎을 꿇고 부르짖어 기도하기에 힘썼지요.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드려진 30일 작정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셨습니다. 작정기도가 거의 끝나갈 무렵 저는 「십자가의 도」 설교 테이프 말씀을 듣고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상에서 회개하며 기도하니

저는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을 철저히 회개하였으며 하나님과 더욱 깊은 영적 교통함을 이루기 위해 방언의 은사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러자 성령이 임하여 제 마음을 뜨겁게 하시더니 유창한 방언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성령 충만함 속에 방언의 은사를 받으니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 동안 교회에 나간다고 핍박하던 가족들도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제 모습에 호기심을 나타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진 후에 저는 병원 건물 안에 세워진 교회에 가서 틈틈이 기도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과정 속에 수술을 4차례나 받았지만 큰 고통 없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

저는 살 가망성이 0.01%도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빨라도 1년은 걸리는 회복 과정도 불과 3개월 만에 완치되도록 단축시켜 주셨습니다. 또한 전기로 인해 신경이 죽어 팔다리를 절단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완치되어 온몸이 성할 뿐 아니라 후유증 하나 없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는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마음에 묵상하면서 치료 과정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으며 구원의 기쁨과 감사 속에서 병원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동안 직장생활을 하느라 마음껏 들을 수 없었던 말씀을 병원에서는 하루 종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말씀들을 양식삼는 귀한 시간이 되었지요.
되돌아보면 3개월의 짧은 시간 동안 생사의 갈림길인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 귀하고 값진 보화를 얻은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과 타협하며 정작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없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삶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게 하셨으며, 참으로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으니 그 사랑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저 눈물만 흐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녀가 되고자

저는 건강을 회복하고 나서 다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늘 생명의 말씀을 가까이하여 설교 테이프를 듣고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러던 1992년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감동함으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요한계시록 2장 10절의 말씀이 새롭게 깨달아졌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붙잡고 주님 닮은 진리의 마음을 이루기 위해 불같이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제 영혼을 구원해 주시고 이 땅에서 삶을 연장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어서 선교회 기관장, 주일학교 교사, 구역장, 조장 등 해마다 맡겨 주신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려고 힘써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몸도 날로 건강해져서 아내 양인숙 집사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되었고, 더욱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받고자 날마다 기도하며 천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저를 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