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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2
제8과복음을 전하는 자
로마서 10:14~15
읽을말씀 : 로마서 10:14~15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5:5 ㅣ 참고 말씀: 골로새서 4:2~3
교육목표 : 복음을 전하는 자는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무엇보다 불같이 기도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한다.
시편 126편 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말씀했듯이 전도의 씨를 뿌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는 수고와 헌신과 눈물이 필요하지만, 그 씨앗이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로 맺히는 것을 볼 때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지 않고, 성령이 충만하여 믿음도 신속히 자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책임져 주시고 응답과 축복의 간증이 넘쳐 나지요. 그러면 복음을 전하는 자는 어떻게 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1.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영적인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5절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라야 물과 양분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때를 좇아 풍성히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생명의 근원이 되신 주님과 영적으로 늘 교통하며,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포도나무 되신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여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 것이지요.
우리가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과 천국에 대하여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또한 주님 안에 거하여 영으로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되지요. 바로 이러한 삶 자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기에 전도의 열매도 자연히 맺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 얼마나 거하고 계십니까? 전도의 열매가 얼마나 맺혀지고 있는지 살펴보면 스스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명이 많고 바빠서 전도할 시간이 없는데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포도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주렁주렁 맺듯이, 주님 안에 거하는 만큼 살아 계신 하나님이 증거되며 전도의 열매도 아름답게 맺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되 먼저는 전도자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되어 나가는 영적인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깁니다. 이처럼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가족, 친구, 동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때 전도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 이하를 보면 안드레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며 전도함으로 장차 시몬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되지요. 안드레는 정확하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전도할 때 그 열매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열매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요. 그래서 마음에 성령의 충만함이 오고 항상 기쁨이 넘치며 감사가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아름다운 마음의 향이 올라가고 보는 이들에게 은혜를 끼치니 이방인들도 “저 사람을 보니 하나님을 믿고 싶다.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하신 대로 믿는 자에게는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지요. 이렇게 믿음의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말로만 전도하는 것보다 힘 있고 권세 있는 말씀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얼마나 주님 안에 거하느냐에 따라 맺혀지는 전도의 열매가 다르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다르며 상급으로 쌓이는 것이 다릅니다. 포도나무에 든든히 붙은 가지와 같이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분명한 마음의 확신과 믿음의 증거들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 영혼 구원을 위한 불같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은 영계의 싸움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은 자기의 소유인 영혼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때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막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끌어내리는 것이 바로 기도이지요.
골로새서 4장 2~3절에 사도 바울은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했지요. 즉 전도는 기도를 통해 전도의 문이 열려야 십자가에 담긴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할 수 있고 영혼들을 구원해 낼 수 있습니다. 기도가 너무 중요하기에 수많은 교회를 세운 복음의 전도자 사도 바울이라 할지라도 옥중서신을 통해 영혼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계의 법칙을 잘 모르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전도해 보다가 당장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실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은 한두 번 전도하다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이 영혼은 안 되나 보다.” 하고 포기해 버리지요. 그러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순종함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되 무엇보다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다 해도 기도 없이는 참된 열매를 맺지 못하지요. 불같은 기도가 없이 내 생각 속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먼저 하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무엇을 이루실 때에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이루셨지요.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으면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십자가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일을 기도로 준비하며 기도로 이뤄 가야 합니다. 특히 전도할 때, 입을 열기 전에,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먼저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들을 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 구원하는 것을 잃은 양을 찾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닙니다. 깊고 험한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고 때로는 가파른 바위 산도 올라가야 합니다.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가시덤불 속도 들어가야 하며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속도 들어가야 합니다. 오직 양을 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어디든지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잃은 양들을 찾고 계실까요? 어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전도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되찾아오기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신 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된 입술과 아름다운 발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② 영혼 구원을 위한 ( ) 기도가 있어야 한다.
2. 요한복음 15장 5절을 쓰고 외워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포도나무’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요 15:5).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를 흔히 볼 수 있고, 포도나무에서 난 포도즙이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한 열매를 많이 맺는 특성 때문에 포도나무에 비유하셨다.
포도나무 가지에 포도송이가 맺히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결되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 사랑장, 팔복, 빛의 열매와 같은 영적인 열매들이 맺힌다.
이처럼 주님 안에 거할 때라야 생명을 얻고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교육목표 : 복음을 전하는 자는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무엇보다 불같이 기도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한다.
시편 126편 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말씀했듯이 전도의 씨를 뿌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는 수고와 헌신과 눈물이 필요하지만, 그 씨앗이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로 맺히는 것을 볼 때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지 않고, 성령이 충만하여 믿음도 신속히 자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책임져 주시고 응답과 축복의 간증이 넘쳐 나지요. 그러면 복음을 전하는 자는 어떻게 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1.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영적인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5절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라야 물과 양분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때를 좇아 풍성히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생명의 근원이 되신 주님과 영적으로 늘 교통하며,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포도나무 되신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여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 것이지요.
우리가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과 천국에 대하여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또한 주님 안에 거하여 영으로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되지요. 바로 이러한 삶 자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기에 전도의 열매도 자연히 맺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 얼마나 거하고 계십니까? 전도의 열매가 얼마나 맺혀지고 있는지 살펴보면 스스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명이 많고 바빠서 전도할 시간이 없는데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포도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주렁주렁 맺듯이, 주님 안에 거하는 만큼 살아 계신 하나님이 증거되며 전도의 열매도 아름답게 맺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되 먼저는 전도자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되어 나가는 영적인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깁니다. 이처럼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가족, 친구, 동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때 전도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 이하를 보면 안드레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며 전도함으로 장차 시몬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되지요. 안드레는 정확하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전도할 때 그 열매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열매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요. 그래서 마음에 성령의 충만함이 오고 항상 기쁨이 넘치며 감사가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아름다운 마음의 향이 올라가고 보는 이들에게 은혜를 끼치니 이방인들도 “저 사람을 보니 하나님을 믿고 싶다.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하신 대로 믿는 자에게는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지요. 이렇게 믿음의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말로만 전도하는 것보다 힘 있고 권세 있는 말씀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얼마나 주님 안에 거하느냐에 따라 맺혀지는 전도의 열매가 다르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다르며 상급으로 쌓이는 것이 다릅니다. 포도나무에 든든히 붙은 가지와 같이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분명한 마음의 확신과 믿음의 증거들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 영혼 구원을 위한 불같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은 영계의 싸움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은 자기의 소유인 영혼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때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막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끌어내리는 것이 바로 기도이지요.
골로새서 4장 2~3절에 사도 바울은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했지요. 즉 전도는 기도를 통해 전도의 문이 열려야 십자가에 담긴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할 수 있고 영혼들을 구원해 낼 수 있습니다. 기도가 너무 중요하기에 수많은 교회를 세운 복음의 전도자 사도 바울이라 할지라도 옥중서신을 통해 영혼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계의 법칙을 잘 모르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전도해 보다가 당장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실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은 한두 번 전도하다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이 영혼은 안 되나 보다.” 하고 포기해 버리지요. 그러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순종함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되 무엇보다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다 해도 기도 없이는 참된 열매를 맺지 못하지요. 불같은 기도가 없이 내 생각 속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기도를 먼저 하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무엇을 이루실 때에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이루셨지요.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으면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십자가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일을 기도로 준비하며 기도로 이뤄 가야 합니다. 특히 전도할 때, 입을 열기 전에,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먼저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들을 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 구원하는 것을 잃은 양을 찾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닙니다. 깊고 험한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고 때로는 가파른 바위 산도 올라가야 합니다.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가시덤불 속도 들어가야 하며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속도 들어가야 합니다. 오직 양을 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어디든지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잃은 양들을 찾고 계실까요? 어찌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전도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되찾아오기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신 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된 입술과 아름다운 발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② 영혼 구원을 위한 ( ) 기도가 있어야 한다.
2. 요한복음 15장 5절을 쓰고 외워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포도나무’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요 15:5).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를 흔히 볼 수 있고, 포도나무에서 난 포도즙이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한 열매를 많이 맺는 특성 때문에 포도나무에 비유하셨다.
포도나무 가지에 포도송이가 맺히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결되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 사랑장, 팔복, 빛의 열매와 같은 영적인 열매들이 맺힌다.
이처럼 주님 안에 거할 때라야 생명을 얻고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2019-02-15
제7과와 보라
요한복음 1:45~49
읽을말씀 : 요한복음 1:45~49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1:17 ㅣ 참고 말씀: 디모데후서 4:2
교육목표 : 온 천하보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전도에 힘씀으로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한다.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권능을 받아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요,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행 1:8).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간곡한 뜻인 줄 알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 하며 전도를 어려운 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구원코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전도할 마음만 있으면 ‘와 보라’고 담대히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거나 인간의 지혜와 방법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전도가 힘든 것이지, 믿음이 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불타는 사람이라면 전도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1. 빌립이 전도한 나다나엘
요한복음 1장 45절을 보면 예수님을 만난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앞으로 오실 메시아 곧 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예수님을 만난 후 나다나엘에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한 것입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는데 이는 좋지 않은 의미로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나다나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는 사람이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평소에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하게 오실 메시아를 사모하고 있는데 바로 그분이 목수인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하니 자신이 아는 지식과 상식에는 맞지 않아서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자 빌립은 질문하는 친구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말합니다. 자기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직접 그분을 찾아와서 들어 보라는 것이지요. 우리도 전도할 때 “와 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 전달하는 사람이 얼마큼 신뢰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말만 듣고도 상대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마음이 선한 사람이라면 “와 보라”고 할 때에 그 전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요동하게 됩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으로부터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말을 들었지만 선하기 때문에 친히 들어 보고자 예수님 앞에 나왔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며 칭찬하셨지요.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믿는다고 하면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너무 놀라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고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답하십니다.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눈으로 보셨다는 뜻이 아니라 보지 않으셨어도 이미 알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나다나엘은 자기를 처음 만났는데도 밝히 아시는 예수님께 이내 순복했습니다. 자기 중심을 아시고 더구나 자신을 직접 보신 것이 아니라,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이미 자신을 알아본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지요. 그러니 감동함을 입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중심의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빌립이 전도할 때에 “와 보라”고 권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빌립은 고대하던 메시아를 만난 기쁜 소식을 혼자만 간직할 수 없었지요.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 역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도,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고 사자밥이 되며 칼에 목 베임을 당해도 복음 전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지요. 우리도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전도의 세 가지 유형
1)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넘치는 은혜와 뜨거움 속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고전 1:17).
전도는 말의 지혜나 능함에 있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과 그 능력을 힘입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말에는 능치 못해도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전도하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고 지속적인 전도의 열심 가운데 하나하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하여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전하니 성령의 역사를 받아 결국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2)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소망 가운데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불타는 마음으로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아 조리있게 전하지는 못하지만, 전도에 열심과 영혼을 사랑함이 눈물나도록 헌신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정에 못 이겨 점점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사랑하며, 아래로는 영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에 입각해서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자기 영혼에 참된 쉼을 줄 수 있는 주님을 만나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니 많은 영혼을 구원함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하여 나름대로 말씀을 정립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즉 말씀에 입각하여 분명한 뜻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니 영혼들이 그 말씀에 이끌리어 교회를 찾게 되지요.
이처럼 열정적으로 전도하며 무시로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즐거움이요, 교회의 보배이며 성도들의 소중한 본보기가 됩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복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행하고 심은 것이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되어 축복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면 천국의 축복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1) 천국의 처소 :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얼마나 영혼이 잘되었는가에 따라 천국의 처소가 달라집니다. 얼마나 죄를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느냐에 따라서 천국의 처소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 천국 집 : 얼마나 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했고, 하나님 앞에 각종 예물을 심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에 따라서 천국 집이 지어집니다. 영원한 천국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시지만, 오직 한 가지 우리 손으로 지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각 사람이 영원히 거할 천국 집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영혼 구원과 각종 예물이 재료가 되어 천국 집의 크기가 결정되고 우리 마음에 맞춰 아름답게 건축되지요.
3) 천국의 상급 :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이 모두 천국의 상급으로 주어집니다. 몸에 장식품이나 천국 집의 장식들로 아름답게 꾸며지지요.
이처럼 장차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실 축복이 예비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우리가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는 것과, 영혼을 사랑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성전 건축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지요.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전도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얼마나 영혼이 잘되었는가에 따라 ( )가 달라진다.
2.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했고 하나님 앞에 각종 예물을 심었느냐에 따라 ( )이 지어진다.
3.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이 ( )으로 주어진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이 땅에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영혼 구원에 힘쓴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달아 주신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한 사람에게 경배를 드리기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면류관이요, 영광과 자랑이 되는 것이다.
교육목표 : 온 천하보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전도에 힘씀으로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한다.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권능을 받아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요,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행 1:8).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간곡한 뜻인 줄 알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 하며 전도를 어려운 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구원코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전도할 마음만 있으면 ‘와 보라’고 담대히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거나 인간의 지혜와 방법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전도가 힘든 것이지, 믿음이 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불타는 사람이라면 전도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1. 빌립이 전도한 나다나엘
요한복음 1장 45절을 보면 예수님을 만난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앞으로 오실 메시아 곧 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예수님을 만난 후 나다나엘에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한 것입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는데 이는 좋지 않은 의미로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나다나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는 사람이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평소에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하게 오실 메시아를 사모하고 있는데 바로 그분이 목수인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하니 자신이 아는 지식과 상식에는 맞지 않아서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자 빌립은 질문하는 친구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말합니다. 자기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직접 그분을 찾아와서 들어 보라는 것이지요. 우리도 전도할 때 “와 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 전달하는 사람이 얼마큼 신뢰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말만 듣고도 상대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마음이 선한 사람이라면 “와 보라”고 할 때에 그 전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요동하게 됩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으로부터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말을 들었지만 선하기 때문에 친히 들어 보고자 예수님 앞에 나왔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며 칭찬하셨지요.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믿는다고 하면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너무 놀라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고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답하십니다.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눈으로 보셨다는 뜻이 아니라 보지 않으셨어도 이미 알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나다나엘은 자기를 처음 만났는데도 밝히 아시는 예수님께 이내 순복했습니다. 자기 중심을 아시고 더구나 자신을 직접 보신 것이 아니라,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이미 자신을 알아본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지요. 그러니 감동함을 입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중심의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빌립이 전도할 때에 “와 보라”고 권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빌립은 고대하던 메시아를 만난 기쁜 소식을 혼자만 간직할 수 없었지요.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 역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도,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고 사자밥이 되며 칼에 목 베임을 당해도 복음 전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지요. 우리도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전도의 세 가지 유형
1)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넘치는 은혜와 뜨거움 속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고전 1:17).
전도는 말의 지혜나 능함에 있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과 그 능력을 힘입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말에는 능치 못해도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전도하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고 지속적인 전도의 열심 가운데 하나하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하여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전하니 성령의 역사를 받아 결국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2)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소망 가운데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불타는 마음으로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아 조리있게 전하지는 못하지만, 전도에 열심과 영혼을 사랑함이 눈물나도록 헌신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정에 못 이겨 점점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사랑하며, 아래로는 영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에 입각해서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자기 영혼에 참된 쉼을 줄 수 있는 주님을 만나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니 많은 영혼을 구원함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하여 나름대로 말씀을 정립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즉 말씀에 입각하여 분명한 뜻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니 영혼들이 그 말씀에 이끌리어 교회를 찾게 되지요.
이처럼 열정적으로 전도하며 무시로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즐거움이요, 교회의 보배이며 성도들의 소중한 본보기가 됩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복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행하고 심은 것이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되어 축복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면 천국의 축복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1) 천국의 처소 :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얼마나 영혼이 잘되었는가에 따라 천국의 처소가 달라집니다. 얼마나 죄를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느냐에 따라서 천국의 처소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 천국 집 : 얼마나 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했고, 하나님 앞에 각종 예물을 심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에 따라서 천국 집이 지어집니다. 영원한 천국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시지만, 오직 한 가지 우리 손으로 지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각 사람이 영원히 거할 천국 집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영혼 구원과 각종 예물이 재료가 되어 천국 집의 크기가 결정되고 우리 마음에 맞춰 아름답게 건축되지요.
3) 천국의 상급 :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이 모두 천국의 상급으로 주어집니다. 몸에 장식품이나 천국 집의 장식들로 아름답게 꾸며지지요.
이처럼 장차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실 축복이 예비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우리가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는 것과, 영혼을 사랑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성전 건축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지요.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전도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얼마나 영혼이 잘되었는가에 따라 ( )가 달라진다.
2.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했고 하나님 앞에 각종 예물을 심었느냐에 따라 ( )이 지어진다.
3.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이 ( )으로 주어진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이 땅에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영혼 구원에 힘쓴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달아 주신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한 사람에게 경배를 드리기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면류관이요, 영광과 자랑이 되는 것이다.
2019-02-08
제6과전도(3) 복음을 전파하는 방법
디모데후서 4:2~5
읽을말씀 : 디모데후서 4:2~5 | 외울말씀 : 디모데후서 4:2 ㅣ 참고 말씀: 디모데후서 1:8
교육목표 :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 대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한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8장에 나오는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후, 네로 황제 치하에서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기록한 서신이 바로 에베소 교회를 치리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로서 디모데후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치 유언과 같은 마지막 당부를 합니다.
1. 복음 전파에 힘쓸 것을 강조한 사도 바울
디모데후서 4장 2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전도자가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의 할 일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전도인의 일을 하며 직무를 다하는 것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예나 지금이나 복음을 전파하려 할 때는 원수 마귀가 갖가지 궤계로 방해하며, 죄악이 관영할수록 그 방법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말을 들었듯이, 때로는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고난과 핍박이 더할수록 복음은 더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초대교회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목 베임을 당하고 사자 밥이 되는 등 순교를 당하기까지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했기에 오늘날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7~8절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전도에는 꼭 이것만이 정도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영혼들을 대하면서 하나하나 체험해 가는 것이 자신만의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방법을 모방하여 시작하지만 차츰 자신만의 방법이 터득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의 능력을 받기 원한다면 먼저는 전도를 잘하는 분들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요.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하는구나.” 하면서 배우고 익힌 후에 스스로 해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담대함과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고 항상 배운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 될 때도 결코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도전하다 보면 나름대로 방법이 생기고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 어떤 사람의 말은 믿는 반면, 어떤 사람의 말은 흘려 넘기고 믿지 않기도 합니다. 평소에 농담이나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복음을 전파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신뢰를 쌓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복음을 전할 때는 마음의 문을 열고 믿으려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직후나 초신자 때는 복음을 전파하기에 더욱 쉽고 좋은 시기입니다. 직접 하나님을 만났고 또 초신자라 해도 은혜받고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함이 생기며 누구에게든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뜨거워지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전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초신자 때 전도하기 쉬운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삶이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수심이 가득했던 사람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악한 말을 내던 입술이 선하고 아름답게 변하며, 섬기는 모습이 되는 등 매사에 성령의 충만함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변 사람들이 변화된 모습을 느끼고 있을 때 “당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행복하고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어요.”라고 권면하면 상대의 마음이 끌리고 마음 문도 쉽게 열려 전도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누구나 초신자 때가 전도하기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성경 말씀을 깨닫고 하늘로부터 지혜를 얻어 말씀의 권세도 커지며 상대에게 필요한 내용 또한 정확하게 성령의 주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초신자 때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을 전도할 때 무조건 “하나님만이 참 신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복을 받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생명의 지식이 부족함으로 인해서, 또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밝히 알지 못함으로 인해 서로 변론이 되어질 수 있지요.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은 만큼 상대의 잘못된 생각을 깨뜨릴 수 있고, 믿음과 생명을 심어 주어 전도할 수 있으니 초신자 때보다도 훨씬 전도하기가 수월해지는 것입니다.
3. 복음 전도자들의 실제적인 사례
그러면 실제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는 분들은 어떻게 전도하는 것일까요? 한 분은 본 교회에 와서 후두염을 치료받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자신을 만나 주신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출근길에는 집집마다 만민뉴스를 돌렸고, 퇴근길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 전했지요.
토요일 하루를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린 것은 물론, 결혼 후에도 집집마다 방문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으며 임신한 몸으로도 부침개를 들고 다니면서 쉬지 않고 전도를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이를 업은 채 전도하면서 옷이 없는 사람에게는 옷을 사 주고, 물질이 없는 사람에게는 물질로 구제했지요.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여 수차례 전도상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물질로도 축복해 주셨고 지금은 교구장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본 교회로 인도받아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서 이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도에 힘쓰기 시작하셨지요. 특히 전도를 잘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지혜를 받아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에 관한 자료를 스크랩하여 전도에 활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든 자신의 시간을 아껴서 하루에 100 가정, 많게는 200 가정씩 방문하며 전도에 힘쓴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변에 소외된 청소년들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서 열심히 물질로도 섬기니 그들 중에서도 많은 영혼을 전도할 수 있었지요.
다른 한 분은 참으로 바쁜 직업을 가졌지만, 시간을 쪼개어 오직 영혼 구원에 앞장섰습니다. 토요일, 휴일에는 시간만 있으면 성도들을 모아 노방전도를 하며, 직장이나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지요.
이처럼 전도에 힘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기의 유익을 희생하고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먼 곳에서 상(喪)이 나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생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는 꼭 기억해서 챙겨 주지요. 정성을 들이면서 전도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교회에 잘 정착하여 알곡이 된다고 합니다.
타 교회에도 생명 다해 전도에 힘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수년 동안 질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닦아 주고 아이들을 보살펴 주며 청소나 빨래를 해 주면서 전도하는 분, 선물로 가져간 과일 바구니가 내던져지고 몇 차례 물벼락을 맞는 문전박대에도 불구하고 전도의 열매를 거둔 분, 수십 번이라도 방문하고 수년이 걸려도 포기하지 않아 결국 성공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아파트 한 단지를 목표로 전도하는 분, 노인정의 노인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분 등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대상을 목표로 전도하고 있지만, 모두 영혼 구원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실감하여 열심히 전도하며 풍성한 열매를 거둠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너는 ( )을 전파하라 ( )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2. 여러분은 복음 전파를 위해 얼마나 힘쓰고 계신가요?
3. 자신의 구원받은 기쁨과 전도의 열매를 간증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디모데’ (뜻: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루스드라 출신으로,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기도 하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신실한 믿음을 지닌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우며 성장했다.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 루스드라를 방문했을 때 디모데는 주님을 영접했고, 동역자가 되어 2차 전도 여행을 함께했다.
디모데는 아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지에서 사역을 하며 사도 바울의 신임을 받는 신실한 목회자였다.
전승에 따르면, 바울의 순교 이후 에베소 감독으로 지내다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교육목표 :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 대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한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8장에 나오는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후, 네로 황제 치하에서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기록한 서신이 바로 에베소 교회를 치리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로서 디모데후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치 유언과 같은 마지막 당부를 합니다.
1. 복음 전파에 힘쓸 것을 강조한 사도 바울
디모데후서 4장 2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전도자가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의 할 일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전도인의 일을 하며 직무를 다하는 것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예나 지금이나 복음을 전파하려 할 때는 원수 마귀가 갖가지 궤계로 방해하며, 죄악이 관영할수록 그 방법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말을 들었듯이, 때로는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고난과 핍박이 더할수록 복음은 더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초대교회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목 베임을 당하고 사자 밥이 되는 등 순교를 당하기까지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했기에 오늘날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7~8절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전도에는 꼭 이것만이 정도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영혼들을 대하면서 하나하나 체험해 가는 것이 자신만의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방법을 모방하여 시작하지만 차츰 자신만의 방법이 터득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의 능력을 받기 원한다면 먼저는 전도를 잘하는 분들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요.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하는구나.” 하면서 배우고 익힌 후에 스스로 해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담대함과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고 항상 배운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 될 때도 결코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도전하다 보면 나름대로 방법이 생기고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 어떤 사람의 말은 믿는 반면, 어떤 사람의 말은 흘려 넘기고 믿지 않기도 합니다. 평소에 농담이나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복음을 전파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신뢰를 쌓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복음을 전할 때는 마음의 문을 열고 믿으려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직후나 초신자 때는 복음을 전파하기에 더욱 쉽고 좋은 시기입니다. 직접 하나님을 만났고 또 초신자라 해도 은혜받고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함이 생기며 누구에게든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뜨거워지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전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초신자 때 전도하기 쉬운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삶이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수심이 가득했던 사람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악한 말을 내던 입술이 선하고 아름답게 변하며, 섬기는 모습이 되는 등 매사에 성령의 충만함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변 사람들이 변화된 모습을 느끼고 있을 때 “당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행복하고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어요.”라고 권면하면 상대의 마음이 끌리고 마음 문도 쉽게 열려 전도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누구나 초신자 때가 전도하기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성경 말씀을 깨닫고 하늘로부터 지혜를 얻어 말씀의 권세도 커지며 상대에게 필요한 내용 또한 정확하게 성령의 주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초신자 때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을 전도할 때 무조건 “하나님만이 참 신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복을 받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생명의 지식이 부족함으로 인해서, 또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밝히 알지 못함으로 인해 서로 변론이 되어질 수 있지요.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은 만큼 상대의 잘못된 생각을 깨뜨릴 수 있고, 믿음과 생명을 심어 주어 전도할 수 있으니 초신자 때보다도 훨씬 전도하기가 수월해지는 것입니다.
3. 복음 전도자들의 실제적인 사례
그러면 실제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는 분들은 어떻게 전도하는 것일까요? 한 분은 본 교회에 와서 후두염을 치료받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자신을 만나 주신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출근길에는 집집마다 만민뉴스를 돌렸고, 퇴근길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 전했지요.
토요일 하루를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린 것은 물론, 결혼 후에도 집집마다 방문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으며 임신한 몸으로도 부침개를 들고 다니면서 쉬지 않고 전도를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이를 업은 채 전도하면서 옷이 없는 사람에게는 옷을 사 주고, 물질이 없는 사람에게는 물질로 구제했지요.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여 수차례 전도상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물질로도 축복해 주셨고 지금은 교구장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본 교회로 인도받아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서 이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도에 힘쓰기 시작하셨지요. 특히 전도를 잘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지혜를 받아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에 관한 자료를 스크랩하여 전도에 활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든 자신의 시간을 아껴서 하루에 100 가정, 많게는 200 가정씩 방문하며 전도에 힘쓴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변에 소외된 청소년들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서 열심히 물질로도 섬기니 그들 중에서도 많은 영혼을 전도할 수 있었지요.
다른 한 분은 참으로 바쁜 직업을 가졌지만, 시간을 쪼개어 오직 영혼 구원에 앞장섰습니다. 토요일, 휴일에는 시간만 있으면 성도들을 모아 노방전도를 하며, 직장이나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지요.
이처럼 전도에 힘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기의 유익을 희생하고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먼 곳에서 상(喪)이 나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생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는 꼭 기억해서 챙겨 주지요. 정성을 들이면서 전도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교회에 잘 정착하여 알곡이 된다고 합니다.
타 교회에도 생명 다해 전도에 힘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수년 동안 질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닦아 주고 아이들을 보살펴 주며 청소나 빨래를 해 주면서 전도하는 분, 선물로 가져간 과일 바구니가 내던져지고 몇 차례 물벼락을 맞는 문전박대에도 불구하고 전도의 열매를 거둔 분, 수십 번이라도 방문하고 수년이 걸려도 포기하지 않아 결국 성공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아파트 한 단지를 목표로 전도하는 분, 노인정의 노인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분 등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대상을 목표로 전도하고 있지만, 모두 영혼 구원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실감하여 열심히 전도하며 풍성한 열매를 거둠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너는 ( )을 전파하라 ( )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2. 여러분은 복음 전파를 위해 얼마나 힘쓰고 계신가요?
3. 자신의 구원받은 기쁨과 전도의 열매를 간증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디모데’ (뜻: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루스드라 출신으로,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기도 하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신실한 믿음을 지닌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우며 성장했다.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 루스드라를 방문했을 때 디모데는 주님을 영접했고, 동역자가 되어 2차 전도 여행을 함께했다.
디모데는 아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지에서 사역을 하며 사도 바울의 신임을 받는 신실한 목회자였다.
전승에 따르면, 바울의 순교 이후 에베소 감독으로 지내다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9-02-05
제0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해의 머리’라는 의미가 있지요. 지난 한 해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욱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늘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하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458장 ----------------------- 다 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고린도후서 5:17~19 ---------------- 인도자
설 교 ------------------------ 화 목 ------------------------ 설교자
2. 설교 예문
가정에 싸움과 다툼이 없고 사랑이 넘친다면 항상 웃음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행복한 가정의 예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지요. 이러한 남편의 위로를 들은 아내는 감격해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께서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지요. 자초지종을 들으신 후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니까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시어머니께서도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며느리를 감싸 주었습니다.
가족 중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보다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집도 볼 수 있는데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기 때문입니다.
삶의 지혜가 기록된 잠언 17장 1절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는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늘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 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5~6절에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어나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습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했으니 새해를 맞아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격려하는 말,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쳐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만일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남편에게 행한 만큼 돌려 받지 못하면 서운해하고 삐치는 아내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남편의 자존심이 강하여 아내를 품지 못하고 자기 의견만 강하게 내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부간에도 서로 섬기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섬김’이란 겸손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합니다. 또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 34절을 통해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고 섬긴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뿐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며 모든 명령을 그대로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축복을 주실까요? 신명기 28장 1~14절에 나오는 대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며, 모든 복이 임하게 하실 뿐 아니라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도록 만사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며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는 일마다 꼬이고 형통하지 않은 것을 봅니다. 안 될 것은 당연히 안 되고, 잘될 수 있는 일도 안 되는 것이지요.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신 28:15~68).
그래서 출애굽기 20장 4~6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차례를 지내기도 했지요.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들어갑니다. 비록 우리 조상들은 천국과 지옥은 밝히 알지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기에 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 주신 하나님 만이 참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믿고 순종함으로 더욱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해의 머리’라는 의미가 있지요. 지난 한 해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욱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늘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하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458장 ----------------------- 다 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고린도후서 5:17~19 ---------------- 인도자
설 교 ------------------------ 화 목 ------------------------ 설교자
2. 설교 예문
가정에 싸움과 다툼이 없고 사랑이 넘친다면 항상 웃음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행복한 가정의 예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지요. 이러한 남편의 위로를 들은 아내는 감격해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께서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지요. 자초지종을 들으신 후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니까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시어머니께서도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며느리를 감싸 주었습니다.
가족 중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보다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집도 볼 수 있는데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기 때문입니다.
삶의 지혜가 기록된 잠언 17장 1절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는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늘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 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5~6절에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어나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습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했으니 새해를 맞아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격려하는 말,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쳐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만일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남편에게 행한 만큼 돌려 받지 못하면 서운해하고 삐치는 아내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남편의 자존심이 강하여 아내를 품지 못하고 자기 의견만 강하게 내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부간에도 서로 섬기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섬김’이란 겸손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합니다. 또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 34절을 통해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고 섬긴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뿐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며 모든 명령을 그대로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축복을 주실까요? 신명기 28장 1~14절에 나오는 대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며, 모든 복이 임하게 하실 뿐 아니라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도록 만사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며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는 일마다 꼬이고 형통하지 않은 것을 봅니다. 안 될 것은 당연히 안 되고, 잘될 수 있는 일도 안 되는 것이지요.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신 28:15~68).
그래서 출애굽기 20장 4~6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차례를 지내기도 했지요.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들어갑니다. 비록 우리 조상들은 천국과 지옥은 밝히 알지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기에 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 주신 하나님 만이 참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믿고 순종함으로 더욱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9-02-01
제5과전도(2) 하나님의 지혜
고린도전서 1:21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21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4:20 ㅣ 참고 말씀: 사도행전 1:8
교육목표 :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 사망으로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여 참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이 몇 차례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통해, 어떤 사람은 직업을 통해, 어떤 사람은 학교나 전공 선택에 따라 그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처럼 선택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1.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복된 소식, 곧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전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니 오히려 미련하게 생각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도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곧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찌하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가 어떻게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 지금까지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고, 지금도 인도하고 계십니다.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자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대상자를 선택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기도하여 성령의 주관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주관받기보다 처음으로 전도해야 할 경우 누구를 전도 대상자로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1) 가까운 가족, 일가친척, 친한 친구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행 1:8).
복음 전파의 첫 번째 대상인 예루살렘은 영적으로 내가 속한 가정, 학교, 직장, 일터 등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가장 가깝게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을 우선 전도 대상자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깝기 때문에 더 전도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사랑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2) 마음이 선한 사람들
마음 중심이 선한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면서 복음을 전할 때 쉽게 감동을 받아 교회에 나오고 싶어 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교회에 가고 싶은데, 누군가 이끌어 주지 않아서 가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마음이 선한 사람뿐 아니라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받아야 합니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해져 있을 때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강해 보이는 사람도 막상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의지할 곳을 찾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들을 찾아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복음을 전할 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4) 교회에 다니다가 시험 환난으로 다시 세상을 좇은 사람들
예전에 신앙생활을 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지 못하여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는 이들이 다시 주님의 사랑 안에 깃들일 수 있도록 인도해 줘야 합니다. 마음이 강퍅해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도 순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으니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3. 복음을 전하는 구체적인 방법
1) 사랑과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듣고 배운 사랑과 희생과 헌신을 실제 행할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이 없다면 한 영혼도 구원의 길로 이끌 수 없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아무리 마음 문을 굳게 닫은 사람이라 해도 관심을 가지고 진실된 사랑을 실천하며 희생하고 헌신하면 결국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분들은 무언가 나눠 주기를 좋아해서 자신보다 주변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니 상대가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리고 상대의 집안일에 관심을 갖고 애경사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달려가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힘이 되어 줍니다. 특히 궂은일에 앞장서서 도와주면 고마움을 느끼고 감동을 받아 복음을 전할 때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병상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위안이 되어 주고 돌봐 주는 것도 전도의 좋은 방법입니다.
2) 간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각종 문제로 인해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로 해결받은 사례들을 간증해 줄 때 관심을 보일 수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표적과 희한한 능과 기이한 일들을 적극 활용하면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간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른 사람의 간증보다 직접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것을 전할 때 사실을 입증시키기가 쉬워 더욱 효과적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큰 사람은 자기 자신이 전도의 도구이니 만큼 더 열심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3)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따른다면 자연히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우리가 전도 대상자를 찾아가서 기도해 줄 때 문제가 해결되고 질병이 치료된다면 이보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이 따르지 않는다 해도 성령의 역사를 받으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전도 대상자를 위해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전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켜 마음 문을 열어 주십니다. 또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담대함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많이 뿌려야 추수 때 많은 열매를 거두듯이 전도할 때도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즉 전도지나 간증 책자로 노방전도를 하거나 가두 방문하는 경우가 있지요. 비록 전도지 한 장을 건네주었을 뿐인데 나중에 그 전도지를 보고 은혜를 받아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분들은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망의 길로 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전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즉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찌하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는 것이다.
2. 전도 대상자를 선택한 후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전도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권능’이란?
권세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하셨다.
여기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쫓아낼 수 있는 힘은 권세에서 비롯되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힘은 능력의 역사다.
그러므로 권세와 능력을 받아야 권능을 나타낼 수 있다.
권능을 받으려면 온 영의 마음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야 한다.
교육목표 :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 사망으로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여 참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이 몇 차례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통해, 어떤 사람은 직업을 통해, 어떤 사람은 학교나 전공 선택에 따라 그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처럼 선택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1.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복된 소식, 곧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전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니 오히려 미련하게 생각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도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곧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찌하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가 어떻게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 지금까지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고, 지금도 인도하고 계십니다.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자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대상자를 선택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기도하여 성령의 주관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주관받기보다 처음으로 전도해야 할 경우 누구를 전도 대상자로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1) 가까운 가족, 일가친척, 친한 친구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행 1:8).
복음 전파의 첫 번째 대상인 예루살렘은 영적으로 내가 속한 가정, 학교, 직장, 일터 등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가장 가깝게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을 우선 전도 대상자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깝기 때문에 더 전도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사랑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2) 마음이 선한 사람들
마음 중심이 선한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면서 복음을 전할 때 쉽게 감동을 받아 교회에 나오고 싶어 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교회에 가고 싶은데, 누군가 이끌어 주지 않아서 가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마음이 선한 사람뿐 아니라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받아야 합니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해져 있을 때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강해 보이는 사람도 막상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의지할 곳을 찾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들을 찾아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복음을 전할 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4) 교회에 다니다가 시험 환난으로 다시 세상을 좇은 사람들
예전에 신앙생활을 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지 못하여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는 이들이 다시 주님의 사랑 안에 깃들일 수 있도록 인도해 줘야 합니다. 마음이 강퍅해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도 순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으니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3. 복음을 전하는 구체적인 방법
1) 사랑과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듣고 배운 사랑과 희생과 헌신을 실제 행할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이 없다면 한 영혼도 구원의 길로 이끌 수 없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아무리 마음 문을 굳게 닫은 사람이라 해도 관심을 가지고 진실된 사랑을 실천하며 희생하고 헌신하면 결국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분들은 무언가 나눠 주기를 좋아해서 자신보다 주변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니 상대가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리고 상대의 집안일에 관심을 갖고 애경사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달려가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힘이 되어 줍니다. 특히 궂은일에 앞장서서 도와주면 고마움을 느끼고 감동을 받아 복음을 전할 때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병상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위안이 되어 주고 돌봐 주는 것도 전도의 좋은 방법입니다.
2) 간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각종 문제로 인해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로 해결받은 사례들을 간증해 줄 때 관심을 보일 수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표적과 희한한 능과 기이한 일들을 적극 활용하면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간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른 사람의 간증보다 직접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것을 전할 때 사실을 입증시키기가 쉬워 더욱 효과적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큰 사람은 자기 자신이 전도의 도구이니 만큼 더 열심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3)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따른다면 자연히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우리가 전도 대상자를 찾아가서 기도해 줄 때 문제가 해결되고 질병이 치료된다면 이보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이 따르지 않는다 해도 성령의 역사를 받으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전도 대상자를 위해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전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켜 마음 문을 열어 주십니다. 또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담대함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많이 뿌려야 추수 때 많은 열매를 거두듯이 전도할 때도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즉 전도지나 간증 책자로 노방전도를 하거나 가두 방문하는 경우가 있지요. 비록 전도지 한 장을 건네주었을 뿐인데 나중에 그 전도지를 보고 은혜를 받아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분들은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망의 길로 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전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즉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찌하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는 것이다.
2. 전도 대상자를 선택한 후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전도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권능’이란?
권세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하셨다.
여기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쫓아낼 수 있는 힘은 권세에서 비롯되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힘은 능력의 역사다.
그러므로 권세와 능력을 받아야 권능을 나타낼 수 있다.
권능을 받으려면 온 영의 마음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야 한다.
2019-01-25
제4과전도(1) 복음을 전하는 사명
사도행전 20:24
읽을말씀 : 사도행전 20:24 | 외울말씀 : 로마서 10:10 ㅣ 참고 말씀: 로마서 1:14
교육목표 :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에 더욱 힘써 주님의 목마름을 시원케 해 드리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사도행전 8장 이하를 보면 주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주님을 만나 회개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 전하는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나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했지요.
이처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순교하기까지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죽도록 충성한 것입니다.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해야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롬 10:9~10). 하지만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은 죄인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말한다면 상대가 마음 문을 닫아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생각을 깨뜨려 줘야 합니다. 우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나님 한 분만이 참 신이시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 하지요.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게 만든 후에 내세 즉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설명해 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가 있으며 죄인은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말해 줘야 하지요. 천국과 지옥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적당히 살다 끝나면 그만이지.” 하며 전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믿을 수 있도록 알려 준 후에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부활 승천하신 것, 때가 이르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것 등을 전하면 되지요. 이처럼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알았으면 실제로 복음을 전하면 되는데 막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이요, 주님을 닮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생활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더 넓은 차원의 신앙생활이 바로 전도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구원받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전도하며 충성하는 것이 온전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
1) 전도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위험에 빠져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보았다면, 최선을 다해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구원에 대해 알지 못하여 지옥 불로 들어가고 있다면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라도 구원해 주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여 구원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는 영원한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건져내는 일이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어떤 형태로든 복음을 들었기에 구원의 은혜를 받아 영원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으니 전도는 매우 중요하며 전 성도가 함께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로마서 1장 14~1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께 구원이라고 하는 큰 은혜를 입어 복음에 대해 빚진 자임을 깨닫는다면 사도 바울처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죗값으로 인해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의 사명을 게을리하므로 구원받을 수 있는 영혼이 지옥으로 간다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기억하여(롬 10:13~14) 사도 바울처럼 불붙는 심정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당연한 모습입니다.
2) 주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을 보면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명령이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일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승천을 앞두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마지막으로 남기신 주님의 유언으로서 모든 하나님 자녀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6~18절을 통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에 시간이 없거나 직분이 많아서 전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시며 때로는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지만 기회만 있으면 전도에 힘쓰셨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닮기 원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한다면 사도 바울처럼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3)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와 구속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섭리 곧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범죄함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점차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때가 이르매 성자 하나님께서는 인간 구속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의 삯으로 인해 사망으로 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류 구속의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인생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의 도’이지요(고전 1:18).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널리 전파하여 인간 경작의 섭리와 구속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릴레이 경주의 마지막 주자와 같이 마지막 때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뛰어 주느냐에 따라 인간 경작의 마무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도’에 담긴 비밀을 모든 사람이 알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더 나아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 줄 귀한 일꾼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듯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때에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는 귀한 도구로 부름받았음을 깨달아 사도 바울처럼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전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전도는 ( )을 구하는 일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 )이기 때문이다.
② 주님의 ( )이기 때문이다.
③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 )의 섭리와 ( )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 )을 깨뜨려 줘야 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인간 경작’이란?
원래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라는 열매를 얻고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를 심으셨고,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을 경작해 오고 계신다.
따라서 이 땅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역사를 주관하는 과정을 농사 경작에 비유한 표현이다.
교육목표 :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에 더욱 힘써 주님의 목마름을 시원케 해 드리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사도행전 8장 이하를 보면 주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주님을 만나 회개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 전하는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나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했지요.
이처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순교하기까지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죽도록 충성한 것입니다.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해야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롬 10:9~10). 하지만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은 죄인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말한다면 상대가 마음 문을 닫아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생각을 깨뜨려 줘야 합니다. 우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나님 한 분만이 참 신이시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 하지요.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게 만든 후에 내세 즉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설명해 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가 있으며 죄인은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말해 줘야 하지요. 천국과 지옥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적당히 살다 끝나면 그만이지.” 하며 전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믿을 수 있도록 알려 준 후에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부활 승천하신 것, 때가 이르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것 등을 전하면 되지요. 이처럼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알았으면 실제로 복음을 전하면 되는데 막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이요, 주님을 닮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생활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더 넓은 차원의 신앙생활이 바로 전도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구원받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전도하며 충성하는 것이 온전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
1) 전도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위험에 빠져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보았다면, 최선을 다해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구원에 대해 알지 못하여 지옥 불로 들어가고 있다면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라도 구원해 주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여 구원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는 영원한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건져내는 일이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어떤 형태로든 복음을 들었기에 구원의 은혜를 받아 영원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으니 전도는 매우 중요하며 전 성도가 함께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로마서 1장 14~1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께 구원이라고 하는 큰 은혜를 입어 복음에 대해 빚진 자임을 깨닫는다면 사도 바울처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죗값으로 인해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의 사명을 게을리하므로 구원받을 수 있는 영혼이 지옥으로 간다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기억하여(롬 10:13~14) 사도 바울처럼 불붙는 심정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당연한 모습입니다.
2) 주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을 보면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명령이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일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승천을 앞두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마지막으로 남기신 주님의 유언으로서 모든 하나님 자녀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6~18절을 통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에 시간이 없거나 직분이 많아서 전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시며 때로는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지만 기회만 있으면 전도에 힘쓰셨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닮기 원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한다면 사도 바울처럼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3)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와 구속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섭리 곧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범죄함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점차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때가 이르매 성자 하나님께서는 인간 구속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의 삯으로 인해 사망으로 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류 구속의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인생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의 도’이지요(고전 1:18).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널리 전파하여 인간 경작의 섭리와 구속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릴레이 경주의 마지막 주자와 같이 마지막 때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뛰어 주느냐에 따라 인간 경작의 마무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도’에 담긴 비밀을 모든 사람이 알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더 나아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 줄 귀한 일꾼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듯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때에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는 귀한 도구로 부름받았음을 깨달아 사도 바울처럼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전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전도는 ( )을 구하는 일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 )이기 때문이다.
② 주님의 ( )이기 때문이다.
③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 )의 섭리와 ( )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 )을 깨뜨려 줘야 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인간 경작’이란?
원래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라는 열매를 얻고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를 심으셨고,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을 경작해 오고 계신다.
따라서 이 땅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역사를 주관하는 과정을 농사 경작에 비유한 표현이다.
2019-01-18
제3과해산하는 수고와 기쁨
요한복음 16:20~22
읽을말씀 : 요한복음 16:20~22 | 외울말씀 : 갈라디아서 4:19 ㅣ 참고 말씀: 이사야 66:9
교육목표 : 인류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생명을 낳는 복된 일에 동참하여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게 한다.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자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근심으로 가득하였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하시며 제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시자 제자들은 울며 애통했지만 세상은 기뻐하였습니다. 즉 빛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니 어두움이 좋아한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 제자들은 근심이 변하여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1. 엄청난 해산의 수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로하신 후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 16:21) 하시며 해산의 수고와 기쁨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여자가 잉태하면 열달이 지나야 해산하게 됩니다. 임산부는 그 열달 동안 몸가짐이나 음식물에 주의해야 하고 입덧을 하는 등 평소보다 자유롭지 못하고 수고로움을 겪게 됩니다. 마침내 해산할 때는 큰 고통을 겪으며 아기를 낳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해산의 기쁨과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흠뻑 빠져 모든 해산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며 믿음의 후사를 얻기 위해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인류를 위해 짐승의 우리에 태어나셨으며,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해 일생 동안 가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대속해 주시고자 채찍에 맞아 피 흘려 주셨고, 우리의 생각으로 짓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셨지요.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양손과 발에 못박히셨습니다. 모든 불의와 불법을 대속하기 위해 온갖 멸시 천대와 핍박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해산의 수고가 엄청났기에 죄인 된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는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되었지요. 그래서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행 20:28).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핏값을 주시며 희생하신 대가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건물 즉 예배당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에는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엄청난 해산의 수고를 하신 것은 오늘날 주 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우리를 낳기 위함이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2. 영적인 자녀를 낳기 위한 해산의 수고와 기쁨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각색 병든 자를치료하며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하셨지요.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 해산의 수고에 동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도 대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매일같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며 금식기도나 철야기도도 하지요. 나를 반겨 주지 않아도 사랑을 가지고 웃는 얼굴로 찾아가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해산의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태어난 아기를 보면 모든 고통을 잊듯이 우리가 전도한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 상급으로 쌓이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만삭이 되어 태어나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전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도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영혼은 빨리 적응하고 은혜도 받으며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청하여 억지로 등록한 경우는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어렵지요.
그러면 영적으로 만삭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교회에 등록하기 전에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식들을 알 수 있도록 전도자가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 천국과 지옥 등에 대해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전도받은 사람이 신앙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 간증을 듣고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고 성령을 받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태어난 성도들은 설교자를 통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고 신앙이 쑥쑥 자라 가며 열매도 잘 맺게 됩니다.
그러나 만삭이 되어 태어난 아이라도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성도라 할지라도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일꾼들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젖 먹는 신자에서 밥 먹는 신자가 되고, 굳건한 믿음으로 영적인 자녀를 낳을 수 있기까지 수고하고 애쓰며 돌봐야 합니다. 즉 직분을 받아 스스로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까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며 부모의 심정이 되어 사랑으로 보살펴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해산의 수고를 기뻐 받으시고 이 땅에서의 축복은 물론 하늘나라에서 귀한 상급으로 넘치도록 갚아 주십니다(단 12:3).
또한 이사야 66장 9절 후반절에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전도의 능력을 주시며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해산의 기쁨도 주십니다.
3. 권능 받은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부흥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시기에 부활 승천하셨고,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은 더 이상 근심과 두려움에 싸인 나약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확신 가운데 담대히 전파했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이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았지요.
심지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삼천 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나 초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자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지요.
그리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집에서는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이에 성도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고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도록 큰 부흥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행 2:46~47).
사도 바울이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고백한 대로, 여러분도 생명을 낳는 복된 일에 동참하여 하늘의 상급을 쌓으며 해산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도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며 ( )를 얻기 위해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맛보셔야 했다.
2. 만삭이 되어 태어난 아이라도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성도라 할지라도 ( )에 서기까지는 ( )들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
젖 먹는 신자 : 믿음의 성장 과정 중 갓난아기나 어린아이와 같은 시기, 곧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신자를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고전 3:1~2).
밥 먹는 신자 : 믿음의 성장 과정 중 청년과 같은 시기, 곧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하는 신자를 일컫는다(고전 3:1~2).
이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말씀에 따라 행할 수 있다.
교육목표 : 인류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생명을 낳는 복된 일에 동참하여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게 한다.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자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근심으로 가득하였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하시며 제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시자 제자들은 울며 애통했지만 세상은 기뻐하였습니다. 즉 빛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니 어두움이 좋아한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 제자들은 근심이 변하여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1. 엄청난 해산의 수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로하신 후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 16:21) 하시며 해산의 수고와 기쁨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여자가 잉태하면 열달이 지나야 해산하게 됩니다. 임산부는 그 열달 동안 몸가짐이나 음식물에 주의해야 하고 입덧을 하는 등 평소보다 자유롭지 못하고 수고로움을 겪게 됩니다. 마침내 해산할 때는 큰 고통을 겪으며 아기를 낳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해산의 기쁨과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흠뻑 빠져 모든 해산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며 믿음의 후사를 얻기 위해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인류를 위해 짐승의 우리에 태어나셨으며,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해 일생 동안 가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대속해 주시고자 채찍에 맞아 피 흘려 주셨고, 우리의 생각으로 짓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셨지요.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양손과 발에 못박히셨습니다. 모든 불의와 불법을 대속하기 위해 온갖 멸시 천대와 핍박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해산의 수고가 엄청났기에 죄인 된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는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되었지요. 그래서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행 20:28).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핏값을 주시며 희생하신 대가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건물 즉 예배당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에는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엄청난 해산의 수고를 하신 것은 오늘날 주 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우리를 낳기 위함이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2. 영적인 자녀를 낳기 위한 해산의 수고와 기쁨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각색 병든 자를치료하며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하셨지요.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 해산의 수고에 동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도 대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매일같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며 금식기도나 철야기도도 하지요. 나를 반겨 주지 않아도 사랑을 가지고 웃는 얼굴로 찾아가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해산의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태어난 아기를 보면 모든 고통을 잊듯이 우리가 전도한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 상급으로 쌓이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만삭이 되어 태어나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전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도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영혼은 빨리 적응하고 은혜도 받으며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청하여 억지로 등록한 경우는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어렵지요.
그러면 영적으로 만삭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교회에 등록하기 전에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식들을 알 수 있도록 전도자가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 천국과 지옥 등에 대해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전도받은 사람이 신앙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 간증을 듣고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고 성령을 받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태어난 성도들은 설교자를 통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고 신앙이 쑥쑥 자라 가며 열매도 잘 맺게 됩니다.
그러나 만삭이 되어 태어난 아이라도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성도라 할지라도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일꾼들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젖 먹는 신자에서 밥 먹는 신자가 되고, 굳건한 믿음으로 영적인 자녀를 낳을 수 있기까지 수고하고 애쓰며 돌봐야 합니다. 즉 직분을 받아 스스로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까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며 부모의 심정이 되어 사랑으로 보살펴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해산의 수고를 기뻐 받으시고 이 땅에서의 축복은 물론 하늘나라에서 귀한 상급으로 넘치도록 갚아 주십니다(단 12:3).
또한 이사야 66장 9절 후반절에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전도의 능력을 주시며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해산의 기쁨도 주십니다.
3. 권능 받은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부흥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시기에 부활 승천하셨고,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은 더 이상 근심과 두려움에 싸인 나약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확신 가운데 담대히 전파했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이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았지요.
심지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삼천 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나 초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자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지요.
그리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집에서는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이에 성도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고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도록 큰 부흥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행 2:46~47).
사도 바울이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고백한 대로, 여러분도 생명을 낳는 복된 일에 동참하여 하늘의 상급을 쌓으며 해산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도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며 ( )를 얻기 위해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맛보셔야 했다.
2. 만삭이 되어 태어난 아이라도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성도라 할지라도 ( )에 서기까지는 ( )들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
젖 먹는 신자 : 믿음의 성장 과정 중 갓난아기나 어린아이와 같은 시기, 곧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신자를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고전 3:1~2).
밥 먹는 신자 : 믿음의 성장 과정 중 청년과 같은 시기, 곧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하는 신자를 일컫는다(고전 3:1~2).
이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말씀에 따라 행할 수 있다.
2019-01-11
제2과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자
사도행전 1:8
읽을말씀 : 사도행전 1:8 | 외울말씀 : 사도행전 16:31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3:12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 담대히 복음을 전함으로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하고 동시에 전도를 받고 있습니다. 저희 제단에도 전도받아 믿음을 갖게 되고 교회의 소중한 일꾼이 되어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본이 되고 있으니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 열매는 또한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 복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삶의 궁극적인 목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한 사람만의 행복을 위해 먹고 입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아니면 자기 가족을 위해 먹고 입고 마시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살아가는 삶은 참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이 사회에 사랑의 불을 밝히는 촉매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큰 집을 사서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 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것에 두어야 할까요?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일, 즉 복음을 전하며 전도하는 일에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과도 같이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 곧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지요. 단순히 우리만 구원에 이를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일가친척, 이웃까지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전도에 힘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전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맡겨 준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영혼 구원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2. 전도의 중요성
만일 여러분을 전도한 사람이 없었다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천국을 소망하며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요, 몇 사람만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것도 아닙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빛이 되어 주셨고, 참된 소망이 되어 주셨으며 값없이 보혈의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그 결과 천국, 지옥의 두 갈래로 나뉘어집니다. 주님을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고, 주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는 것은 정해진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누가복음 16장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예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죽은 후에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에 속한 윗음부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에 죽은 후에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습니다. 부자는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요.
지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참혹한 곳입니다. 지옥 설교를 통해 알려 드린 대로 아랫음부에서 고통 받는 한 영혼의 고백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끌려 다니며 심히도 많이 끌려 다니며 내가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나이다. 냄새나고 싫은 곳에서 나의 껍질이 벗겨지고 피 흘릴 때 벌레들이 나와서 살을 먹는데 벌레를 피하고자 내가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그 자리임이니이다. 계속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와서 나를 물어뜯나이다. 내 살을 뜯어먹나이다. 내 피를 빨아먹나이다. 내가 두렵고 떨리나이다. 어찌 하오리이까 …
내가 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잠시 이 시름을 잊고자 기절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며, 내가 이 시름을 잊고자 잠시 눈을 감아 보아도 그 앞이 환하여 쉼을 갖지 못하나이다. 눈을 뜨면 끝없이 망망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여 형벌을 피하여서 달리고 달려도 그 자리일 따름이니 어찌하나이까! 이를 어찌하나이까!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정녕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우리가 어찌 사랑스러운 자녀, 소중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일가친척, 이웃을 그곳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자신처럼 아랫음부에 떨어져 형벌 받는 영혼이 없게 해 달라고 호소하는 이 영혼의 소리가 들린다면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옥에서 영원토록 형벌 받는 것을 즐거워하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아무리 죄악으로 물들어 있다 해도 회개하여 천국에 이르기를 고대하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신 주님께서는 승천을 앞두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시며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3. 알곡과 쭉정이
마태복음 3장 12절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했고, 마태복음 7장 17~18절에는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알곡이 되지 못하고 나쁜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가 되면 백보좌 대심판 때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을 말씀합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갈라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 되어 가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며 호리(몹시 적은 분량을 이르는 말)라도 남김없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심판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알곡 성도,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되 잎사귀가 무성한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지옥은 무섭고 고통스러우며 두려운 곳이지만, 천국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천국의 아름다움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했고, 21장 6절에는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는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천국에 대한 영원한 약속의 말씀을 주시며 알곡 성도, 좋은 나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알곡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요, 영적인 사랑이 있고 복음의 씨앗을 심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있으니 가정과 직장에서 복음을 전하며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고자 힘쓰는 것이지요. 좋은 나무란 자신이 있는 곳곳에서 아름다운 진리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도 영혼이 잘되는 만큼 범사가 형통하며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알곡 성도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전도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영생을 알고 참된 사람의 본분을 되찾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도는 주님의 핏값을 찾아드리며 주님의 목마름을 채워 드리는 값진 일이기 때문에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으로 ( )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영적인 사랑이 있고 복음의 씨앗을 심는 사람을 말한다.
2. ( )란 있는 모든 곳에서 아름다운 진리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생명나무에 달마다 과실을 맺는다는 의미(계 22:2)’
생명수 강가 좌우에는 아름드리 생명나무들이 쭉 늘어섰는데 한 그루에 열두 가지 실과가 한꺼번에 맺히는 것이 아니라 열두 종류의 생명나무가 각기 다른 열매를 맺는다.
생명나무가 달마다 실과를 맺는다는 것은 생명나무가 달마다 번갈아가며 과실을 맺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열두 종류의 실과가 달마다 늘 맺혀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생명나무에는 과실이 항상 맺혀 있고 누군가 과실을 따면 그 자리에서 다시 생겨난다. 천국에는 각종 과일 나무가 있는데 열두 종류의 생명나무에서 나는 과일을 ‘생명 과일’이라고 한다.
열두 가지 생명 과일은 각각의 빛, 크기, 모양과 맛이 다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 담대히 복음을 전함으로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하고 동시에 전도를 받고 있습니다. 저희 제단에도 전도받아 믿음을 갖게 되고 교회의 소중한 일꾼이 되어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본이 되고 있으니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 열매는 또한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 복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삶의 궁극적인 목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한 사람만의 행복을 위해 먹고 입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아니면 자기 가족을 위해 먹고 입고 마시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살아가는 삶은 참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이 사회에 사랑의 불을 밝히는 촉매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큰 집을 사서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 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것에 두어야 할까요?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일, 즉 복음을 전하며 전도하는 일에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과도 같이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 곧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지요. 단순히 우리만 구원에 이를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일가친척, 이웃까지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전도에 힘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전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맡겨 준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영혼 구원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2. 전도의 중요성
만일 여러분을 전도한 사람이 없었다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천국을 소망하며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요, 몇 사람만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것도 아닙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빛이 되어 주셨고, 참된 소망이 되어 주셨으며 값없이 보혈의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그 결과 천국, 지옥의 두 갈래로 나뉘어집니다. 주님을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고, 주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는 것은 정해진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누가복음 16장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예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죽은 후에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에 속한 윗음부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에 죽은 후에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습니다. 부자는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요.
지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참혹한 곳입니다. 지옥 설교를 통해 알려 드린 대로 아랫음부에서 고통 받는 한 영혼의 고백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끌려 다니며 심히도 많이 끌려 다니며 내가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나이다. 냄새나고 싫은 곳에서 나의 껍질이 벗겨지고 피 흘릴 때 벌레들이 나와서 살을 먹는데 벌레를 피하고자 내가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그 자리임이니이다. 계속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와서 나를 물어뜯나이다. 내 살을 뜯어먹나이다. 내 피를 빨아먹나이다. 내가 두렵고 떨리나이다. 어찌 하오리이까 …
내가 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잠시 이 시름을 잊고자 기절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며, 내가 이 시름을 잊고자 잠시 눈을 감아 보아도 그 앞이 환하여 쉼을 갖지 못하나이다. 눈을 뜨면 끝없이 망망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여 형벌을 피하여서 달리고 달려도 그 자리일 따름이니 어찌하나이까! 이를 어찌하나이까!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정녕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우리가 어찌 사랑스러운 자녀, 소중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일가친척, 이웃을 그곳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자신처럼 아랫음부에 떨어져 형벌 받는 영혼이 없게 해 달라고 호소하는 이 영혼의 소리가 들린다면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옥에서 영원토록 형벌 받는 것을 즐거워하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아무리 죄악으로 물들어 있다 해도 회개하여 천국에 이르기를 고대하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신 주님께서는 승천을 앞두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시며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3. 알곡과 쭉정이
마태복음 3장 12절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했고, 마태복음 7장 17~18절에는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알곡이 되지 못하고 나쁜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가 되면 백보좌 대심판 때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을 말씀합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갈라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 되어 가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며 호리(몹시 적은 분량을 이르는 말)라도 남김없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심판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알곡 성도,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되 잎사귀가 무성한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지옥은 무섭고 고통스러우며 두려운 곳이지만, 천국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천국의 아름다움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했고, 21장 6절에는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는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천국에 대한 영원한 약속의 말씀을 주시며 알곡 성도, 좋은 나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알곡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요, 영적인 사랑이 있고 복음의 씨앗을 심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있으니 가정과 직장에서 복음을 전하며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고자 힘쓰는 것이지요. 좋은 나무란 자신이 있는 곳곳에서 아름다운 진리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도 영혼이 잘되는 만큼 범사가 형통하며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알곡 성도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전도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영생을 알고 참된 사람의 본분을 되찾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도는 주님의 핏값을 찾아드리며 주님의 목마름을 채워 드리는 값진 일이기 때문에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으로 ( )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영적인 사랑이 있고 복음의 씨앗을 심는 사람을 말한다.
2. ( )란 있는 모든 곳에서 아름다운 진리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생명나무에 달마다 과실을 맺는다는 의미(계 22:2)’
생명수 강가 좌우에는 아름드리 생명나무들이 쭉 늘어섰는데 한 그루에 열두 가지 실과가 한꺼번에 맺히는 것이 아니라 열두 종류의 생명나무가 각기 다른 열매를 맺는다.
생명나무가 달마다 실과를 맺는다는 것은 생명나무가 달마다 번갈아가며 과실을 맺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열두 종류의 실과가 달마다 늘 맺혀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생명나무에는 과실이 항상 맺혀 있고 누군가 과실을 따면 그 자리에서 다시 생겨난다. 천국에는 각종 과일 나무가 있는데 열두 종류의 생명나무에서 나는 과일을 ‘생명 과일’이라고 한다.
열두 가지 생명 과일은 각각의 빛, 크기, 모양과 맛이 다르다.
2019-01-04
제1과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사야 60:1
읽을말씀 : 이사야 60:1 | 외울말씀 : 이사야 60:1 ㅣ 참고 말씀: 요한일서 1:5, 에베소서 5:8
교육목표 : 어두움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고 있는 마지막 때에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에 드러내는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 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그 가치가 더욱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으로 관영한 마지막 때에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주님을 믿는 만민의 성도들은 더욱 빛을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말씀했습니다(사 60:1).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하며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악에 악을 더해 갔습니다. 더구나 주변 국가의 위협이 도사리고 국력은 쇠퇴해질 대로 쇠퇴해졌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심판을 받을 것과 선민 이스라엘에게 다시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만민의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에게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 수많은 교회에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으로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한 대로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즉 따르는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실히 증거해 줘야 하지요. 또한 교회에 다닌다 해도 진리가 없어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섭리와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달을 수 있도록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계 선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전 성도가 당당히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하겠습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고, 요한복음 8장 12절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한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좇아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엡 5:8~9).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빛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진리의 빛을 비추시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 안에 들어오는 만큼 예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각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분명한 것은 진리의 빛이 임하는 만큼 비진리의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사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 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권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죽어 무덤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며(요 11장), 하나님의 권능을 받았던 사도 바울에게는 희한한 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습니다(행 19:12).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행 1:8~9). 그리하여 초대교회 사도들은 물론, 빌립 집사나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도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이라 해도 권능을 받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어야 합니다.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온전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가며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친히 목도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하는 자들이 없다면 들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만민의 주의 종과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친히 보았고, 혼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는 생명의 말씀을 친히 들었으니 이제는 일어나 빛을 발하며 담대히 전해야 하겠습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가정과 직장, 학교와 일터에서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도 된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비록 옥에 갇혀 매인 몸이 되었어도 편지로 성도들을 깨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 믿음으로 환난과 핍박을 넉넉히 이겨 냄으로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도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어느 곳에 있든지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 )를 발해야 한다.
② ( )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생명의 ( )과 하나님의 ( )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2. 영적으로 ( )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 )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유다의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유다가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교육목표 : 어두움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고 있는 마지막 때에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에 드러내는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 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그 가치가 더욱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으로 관영한 마지막 때에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주님을 믿는 만민의 성도들은 더욱 빛을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말씀했습니다(사 60:1).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하며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악에 악을 더해 갔습니다. 더구나 주변 국가의 위협이 도사리고 국력은 쇠퇴해질 대로 쇠퇴해졌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심판을 받을 것과 선민 이스라엘에게 다시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만민의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에게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 수많은 교회에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으로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한 대로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즉 따르는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실히 증거해 줘야 하지요. 또한 교회에 다닌다 해도 진리가 없어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섭리와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달을 수 있도록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계 선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전 성도가 당당히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하겠습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고, 요한복음 8장 12절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한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좇아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엡 5:8~9).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빛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진리의 빛을 비추시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 안에 들어오는 만큼 예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각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분명한 것은 진리의 빛이 임하는 만큼 비진리의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사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 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권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죽어 무덤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며(요 11장), 하나님의 권능을 받았던 사도 바울에게는 희한한 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습니다(행 19:12).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행 1:8~9). 그리하여 초대교회 사도들은 물론, 빌립 집사나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도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이라 해도 권능을 받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어야 합니다.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온전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가며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친히 목도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하는 자들이 없다면 들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만민의 주의 종과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친히 보았고, 혼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는 생명의 말씀을 친히 들었으니 이제는 일어나 빛을 발하며 담대히 전해야 하겠습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가정과 직장, 학교와 일터에서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도 된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비록 옥에 갇혀 매인 몸이 되었어도 편지로 성도들을 깨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 믿음으로 환난과 핍박을 넉넉히 이겨 냄으로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도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어느 곳에 있든지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 )를 발해야 한다.
② ( )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생명의 ( )과 하나님의 ( )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2. 영적으로 ( )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 )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유다의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유다가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2018-12-28
제52과의를 위해 핍박받은 바울
고린도후서 11:23~27
읽을말씀 : 고린도후서 11:23~27 | 외울말씀 : 디모데후서 4:8 ㅣ 참고 말씀: 로마서 9:3
교육목표 : 이방인의 사도로서 세계 선교의 초석이 된 사도 바울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참 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진해졌지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권능을 베풀며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 주님을 만나 회심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그는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자기 의가 아주 강하여 자신이 가진 지식과 의로써 변론하며 지지 않으려는 성품이었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했지요. 마치 모세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 같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느 날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서 빛이 바울을 둘러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시지요. 사울은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그 후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안수한 다음에야 볼 수 있었지요. 그는 아나니아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해 선택된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고 잔해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삶으로 온전히 바뀌었지요.
2. 숱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직 감사했던 사도 바울
바울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자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귀한 사명까지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지요. 그러니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해도 주를 향한 마음이 변함없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감옥에 갇혔다 해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앞의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겼지요. 또한 영혼을 구원하며 하늘에 많은 상급을 쌓을 뿐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습니다.
혹여 여러분은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려움에도 이내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고 모든 것을 드리기까지 헌신했는데 원하는 대로 축복이 임하지 않았을 때 슬퍼하지는 않았는지요? 또 스스로 실망하여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육신의 생각으로 많은 분야에서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사도 바울처럼 어떠한 상황에 처했다 할지라도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중심에서 감사하며 작은 사명이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3. 영혼 사랑이 승했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면서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도 숱한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성도들이 진리 안에 살도록 눈물로 훈계하며 간구하였지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 9장 3절에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했지요.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자기와 같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 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했지요.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며 자신이 지옥에 떨어져도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누구보다 지옥의 참담함과 무서움을 잘 알면서도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승했기 때문입니다.
4. 천국 소망으로 가득 찼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장차 주님을 뵈올 수 있다는 천국 소망으로 넘쳐났습니다. 이 세상 무엇도 주님과는 비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주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에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했지요.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하신 대로 오직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한 번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고 종국에는 순교에 이를 때도 오직 감사뿐이었습니다. ‘내 생애가 이렇게 마감되는구나!’ 하고 착잡한 마음이나 회한이 든 것이 아니었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한 경직된 심정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도 보고 싶었던 주님을 이제 곧 뵈올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기에 천국 소망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감사했기에 연단을 통해 권능의 대사도로 나와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가 변치 않고 천국 소망 가운데 죽도록 충성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크게 확장시켜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신약 시대 최고의 권능의 사도로 이방인 선교에 앞장서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2. 사도 바울이 말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3.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지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읽으면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한 해 동안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크신 사랑과 은혜로 축복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마음껏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인 편지들로 신약 성경 27권 중 14권이 이에 해당한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서 기록하였다 하여 옥중서신이라 한다.
교육목표 : 이방인의 사도로서 세계 선교의 초석이 된 사도 바울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참 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진해졌지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권능을 베풀며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 주님을 만나 회심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그는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자기 의가 아주 강하여 자신이 가진 지식과 의로써 변론하며 지지 않으려는 성품이었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했지요. 마치 모세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 같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느 날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서 빛이 바울을 둘러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시지요. 사울은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그 후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안수한 다음에야 볼 수 있었지요. 그는 아나니아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해 선택된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고 잔해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삶으로 온전히 바뀌었지요.
2. 숱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직 감사했던 사도 바울
바울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자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귀한 사명까지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지요. 그러니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해도 주를 향한 마음이 변함없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감옥에 갇혔다 해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앞의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겼지요. 또한 영혼을 구원하며 하늘에 많은 상급을 쌓을 뿐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습니다.
혹여 여러분은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려움에도 이내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고 모든 것을 드리기까지 헌신했는데 원하는 대로 축복이 임하지 않았을 때 슬퍼하지는 않았는지요? 또 스스로 실망하여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육신의 생각으로 많은 분야에서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사도 바울처럼 어떠한 상황에 처했다 할지라도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중심에서 감사하며 작은 사명이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3. 영혼 사랑이 승했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면서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도 숱한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성도들이 진리 안에 살도록 눈물로 훈계하며 간구하였지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 9장 3절에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했지요.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자기와 같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 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했지요.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며 자신이 지옥에 떨어져도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누구보다 지옥의 참담함과 무서움을 잘 알면서도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승했기 때문입니다.
4. 천국 소망으로 가득 찼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장차 주님을 뵈올 수 있다는 천국 소망으로 넘쳐났습니다. 이 세상 무엇도 주님과는 비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주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에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했지요.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하신 대로 오직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한 번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고 종국에는 순교에 이를 때도 오직 감사뿐이었습니다. ‘내 생애가 이렇게 마감되는구나!’ 하고 착잡한 마음이나 회한이 든 것이 아니었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한 경직된 심정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도 보고 싶었던 주님을 이제 곧 뵈올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기에 천국 소망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감사했기에 연단을 통해 권능의 대사도로 나와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가 변치 않고 천국 소망 가운데 죽도록 충성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크게 확장시켜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신약 시대 최고의 권능의 사도로 이방인 선교에 앞장서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2. 사도 바울이 말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3.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지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읽으면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한 해 동안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크신 사랑과 은혜로 축복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마음껏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인 편지들로 신약 성경 27권 중 14권이 이에 해당한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서 기록하였다 하여 옥중서신이라 한다.
2018-12-21
제51과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
마태복음 2:1~12
읽을말씀 : 마태복음 2:1~12 | 외울말씀 : 누가복음 2:14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1:21
교육목표 :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인 황금, 유향, 몰약에 담긴 영적 의미를 알아본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지금부터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지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정욕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름없게 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지요(전 3:1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범죄한 아담의 후손은 점점 죄로 물들어 갔고 결국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의 본분을 벗어나서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이들의 참된 양식이 되기 위해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눅 2:7).
또한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태어나신 것은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저주를 받음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시고자 가난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고후 8:9).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선민은 아니었지만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찾아가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마 2:11).
사실 육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왕궁도, 호화로운 저택도 아니고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보면 그곳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하늘의 선지자들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육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으로 보고 느꼈기에 영의 행함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광 돌렸지요. ‘안나’ 선지자 역시 과부 된 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 속에서 구세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영으로 깨어 있어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줍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이들은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지 못했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에 담긴 영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이 세 가지 예물에는 어떠한 영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1) 마음을 의미하는 황금
황금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합니다. 또한 황금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마 6:21).
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드린다는 말은 마음을 드린다는 의미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 그 이상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요. 이처럼 우리가 가진 전부를 드리는 일, 할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며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는 유향
유향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하지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모습이 바로 주님 앞에 유향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함은 물론 중심을 감찰하시며 무엇보다 마음의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림과 같이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중심이요,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중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범사가 형통하며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도 받습니다(요삼 1:2).
3)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몰약
몰약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즉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변함없이 생명까지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 번 주님을 만나 자신의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면 은혜받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변함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함없는 마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변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되 마음의 할례를 통해 그 속의 비진리를 모두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이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값진 선물을 받은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 우리의 마음인 황금과, 그리스도의 향기인 유향과, 변함없는 믿음인 몰약을 선물로 드림으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하며 영적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
2. ( )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준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한다.
3. ( )은 부패를 막아주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이다.
즉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08~21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서 5장 2절을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되어 있다.
교육목표 :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인 황금, 유향, 몰약에 담긴 영적 의미를 알아본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지금부터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지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정욕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름없게 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지요(전 3:1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범죄한 아담의 후손은 점점 죄로 물들어 갔고 결국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의 본분을 벗어나서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이들의 참된 양식이 되기 위해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눅 2:7).
또한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태어나신 것은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저주를 받음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시고자 가난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고후 8:9).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선민은 아니었지만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찾아가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마 2:11).
사실 육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왕궁도, 호화로운 저택도 아니고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보면 그곳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하늘의 선지자들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육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으로 보고 느꼈기에 영의 행함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광 돌렸지요. ‘안나’ 선지자 역시 과부 된 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 속에서 구세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영으로 깨어 있어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줍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이들은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지 못했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에 담긴 영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이 세 가지 예물에는 어떠한 영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1) 마음을 의미하는 황금
황금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합니다. 또한 황금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마 6:21).
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드린다는 말은 마음을 드린다는 의미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 그 이상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요. 이처럼 우리가 가진 전부를 드리는 일, 할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며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는 유향
유향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하지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모습이 바로 주님 앞에 유향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함은 물론 중심을 감찰하시며 무엇보다 마음의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림과 같이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중심이요,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중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범사가 형통하며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도 받습니다(요삼 1:2).
3)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몰약
몰약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즉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변함없이 생명까지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 번 주님을 만나 자신의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면 은혜받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변함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함없는 마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변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되 마음의 할례를 통해 그 속의 비진리를 모두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이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값진 선물을 받은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 우리의 마음인 황금과, 그리스도의 향기인 유향과, 변함없는 믿음인 몰약을 선물로 드림으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하며 영적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
2. ( )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준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한다.
3. ( )은 부패를 막아주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이다.
즉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08~21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서 5장 2절을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되어 있다.
2018-12-14
제50과온 집에 충성한 모세
민수기 12:3, 7
읽을말씀 : 민수기 12:3, 7 | 외울말씀 : 민수기 12:7 ㅣ 참고 말씀: 출애굽기 32:32
교육목표 :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처럼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낸 출애굽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을 일삼고 원망하는 백성들을 아비의 심정으로 늘 마음에 품고 놓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백성이기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모세는 이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습니다.
1. 모세의 출생과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거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과 그의 일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거기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어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주 당시 70명에 불과했던 야곱의 혈속은 갈수록 번성해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애굽 총리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고 요셉을 모르는 사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은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리며 학대하지요(출 1:9~10).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더욱 번성하니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태어나는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는 이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지요. 그의 부모는 석 달간 모세를 숨겨 키우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웁니다. 그때 마침 목욕하러 나온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아이를 데려다가 양자로 삼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 추천되고, 공주는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며 키우게 합니다.
이로써 모세는 어린 시절 친어머니에게 히브리 민족과 하나님에 대해 배웠고, 애굽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 한편에는 친어머니로부터 들은, 하나님과 애굽에서 고통 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지요.
2.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세월을 보낸 모세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그를 쳐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 날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모세가 잘못한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며 말립니다. 그러자 그가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하므로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납니다. 이에 바로왕이 모세를 죽이려고 찾습니다.
만일 모세가 자기 안위만 생각했다면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봐 모른 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민족인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5).
결국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그곳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양 무리를 치며 삽니다. 왕자로서의 자존심이나 자신감도 사라지고 평범한 양치기의 생활에 적응해 갔지요. 이러한 광야생활이 적응되자 마음의 연단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졌지요.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니라 철저히 낮아진 모세를 원하셨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온전히 비운 모세를 불러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고 큰 사명을 주십니다.
3.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모세
온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합니다.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아도 품어 주지요.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발하는 사람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변화될 것을 바라며 기다려 줍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시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이내 원망하였지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범죄함으로 마침내 멸망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모세의 온유함이 얼마나 승하였는지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서 더디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며 방탕히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던지 백성들을 진멸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때 모세는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중보 기도를 올립니다(출 32:31~32).
모세는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즉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멸망당할 위기에 처한 백성을 구해 달라고 했지요. 모세의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의 간구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십니다. 이처럼 모세는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으로 품었습니다.
4. 온 집에 충성한 모세
‘충성’이란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은 물론이요, 맡겨진 직무 이상을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이란 자기가 속한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일터, 사업터 등 주어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정성, 시간과 물질까지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5절에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자신을 낮추어 맡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당시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대드는 백성들을 이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백성의 지도자가 되면 그만큼 져야 할 짐도 많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모세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난관을 뚫어 나갔습니다.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품었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날부터 생명이 다하기까지 모세는 단 한순간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습니다. 백성들로 인해 흘린 눈물과 그들을 위해 올렸던 애통의 기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요. “이 백성들을 저버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해 주시라.”고 늘 간구했던 것입니다.
혹여 ‘사명이 무겁고 힘들다. 사명을 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모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부터 생명이 다할 때까지 충성하고서도 열매가 적다며 민망히 여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사함으로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낸 출애굽의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2. 하나님께서는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닌, 어떤 모습을 원하셨나요?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방탕하게 먹고 마셨을 때 진멸하고자 하십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올린 기도를 써 보세요.
4. 히브리서 3장 5절에“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 )으로 충성하였고”말씀합니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36~24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모세의 선’
1.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는 것을 택했다.
2. 연단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에 중심에서 감사했다.
3.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했다.
4. 온 집에 충성했다.
교육목표 :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처럼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낸 출애굽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을 일삼고 원망하는 백성들을 아비의 심정으로 늘 마음에 품고 놓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백성이기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모세는 이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습니다.
1. 모세의 출생과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거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과 그의 일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거기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어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주 당시 70명에 불과했던 야곱의 혈속은 갈수록 번성해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애굽 총리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고 요셉을 모르는 사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은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리며 학대하지요(출 1:9~10).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더욱 번성하니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태어나는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는 이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지요. 그의 부모는 석 달간 모세를 숨겨 키우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웁니다. 그때 마침 목욕하러 나온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아이를 데려다가 양자로 삼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 추천되고, 공주는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며 키우게 합니다.
이로써 모세는 어린 시절 친어머니에게 히브리 민족과 하나님에 대해 배웠고, 애굽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 한편에는 친어머니로부터 들은, 하나님과 애굽에서 고통 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지요.
2.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세월을 보낸 모세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그를 쳐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 날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모세가 잘못한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며 말립니다. 그러자 그가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하므로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납니다. 이에 바로왕이 모세를 죽이려고 찾습니다.
만일 모세가 자기 안위만 생각했다면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봐 모른 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민족인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5).
결국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그곳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양 무리를 치며 삽니다. 왕자로서의 자존심이나 자신감도 사라지고 평범한 양치기의 생활에 적응해 갔지요. 이러한 광야생활이 적응되자 마음의 연단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졌지요.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니라 철저히 낮아진 모세를 원하셨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온전히 비운 모세를 불러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고 큰 사명을 주십니다.
3.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모세
온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합니다.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아도 품어 주지요.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발하는 사람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변화될 것을 바라며 기다려 줍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시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이내 원망하였지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범죄함으로 마침내 멸망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모세의 온유함이 얼마나 승하였는지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서 더디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며 방탕히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던지 백성들을 진멸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때 모세는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중보 기도를 올립니다(출 32:31~32).
모세는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즉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멸망당할 위기에 처한 백성을 구해 달라고 했지요. 모세의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의 간구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십니다. 이처럼 모세는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으로 품었습니다.
4. 온 집에 충성한 모세
‘충성’이란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은 물론이요, 맡겨진 직무 이상을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이란 자기가 속한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일터, 사업터 등 주어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정성, 시간과 물질까지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5절에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자신을 낮추어 맡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당시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대드는 백성들을 이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백성의 지도자가 되면 그만큼 져야 할 짐도 많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모세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난관을 뚫어 나갔습니다.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품었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날부터 생명이 다하기까지 모세는 단 한순간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습니다. 백성들로 인해 흘린 눈물과 그들을 위해 올렸던 애통의 기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요. “이 백성들을 저버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해 주시라.”고 늘 간구했던 것입니다.
혹여 ‘사명이 무겁고 힘들다. 사명을 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모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부터 생명이 다할 때까지 충성하고서도 열매가 적다며 민망히 여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사함으로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낸 출애굽의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2. 하나님께서는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닌, 어떤 모습을 원하셨나요?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방탕하게 먹고 마셨을 때 진멸하고자 하십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올린 기도를 써 보세요.
4. 히브리서 3장 5절에“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 )으로 충성하였고”말씀합니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36~24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모세의 선’
1.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는 것을 택했다.
2. 연단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에 중심에서 감사했다.
3.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했다.
4. 온 집에 충성했다.
2018-12-07
제49과성령의 열매를 맺자
갈라디아서 5:16~26
읽을말씀 : 갈라디아서 5:16~26 | 외울말씀 : 갈라디아서 5:22~23 ㅣ 참고 말씀: 히브리서 12:14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 알아 풍성히 맺을 수 있도록 돕는다.
열매란 밭에 씨를 심어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운 후 맺는 결과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마음 밭에 성령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 성장을 통해 맺어가는 아홉 가지 열매를 말합니다.
1. 사랑의 열매
사랑에는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언젠가는 변질되는 사랑입니다. 반면 영적인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이지요.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보다 차원이 높습니다. 예수님처럼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나를 미워하는 원수를 위해 생명까지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2. 희락의 열매
‘희락’은 문자 그대로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희락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인 희락이 마음에 맺히면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한 대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희락입니다.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주님의 보혈로 구원받아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 항상 희락이 넘칠 수 있습니다.
3. 화평의 열매
화평이란 내가 옳아도 상대에게 맞춰 주고,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으며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부부간에, 형제간에, 부모 자녀 간에, 이웃 간에는 물론 그 외 모든 사람과도 화평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애매히 나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사람들과도 화평을 이뤄야 하지요. 화평이 깨지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고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송사거리만 내줄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무리 충성하고 좋은 결과를 냈다 해도 화평이 깨지면 칭찬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결되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4. 오래 참음의 열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기는 하지만 육적인 인내를 합니다. 감정 상할 일이 생기면 참느라고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식음을 전폐하며 끙끙 앓다가 노이로제나 우울증 같은 병을 얻기도 하지요. 그러나 영적인 참음은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는 것입니다. 선으로 참을 때는 힘든 일도 소망 중에 감사함으로 이겨 내며 어떤 일을 당해도 요동하지 않고, 애매히 비난을 받아도 “오해가 있나 보다.” 하며 어찌하든 상대의 마음을 풀어 주고자 하지요.
영적인 오래 참음에는 먼저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마음에 악이 많을수록 오래 참기가 어렵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더 쉬어집니다. 다음으로,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는 상대가 내 생각,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항상 선으로 이해하고 참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대한 오래 참음’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 응답받기까지의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5. 자비의 열매
자비의 영적인 의미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또 사람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용서하는 마음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비의 마음으로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자비는 진정한 용서, 곧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젖먹이 아이를 대하듯 모든 사람을 넉넉하게 품고 포용할 수 있습니다. 설령 어떤 사람에게 큰 허물이 있다 해도, 혹은 중한 죄를 지은 것이 드러났다 해도 판단 정죄하기보다 긍휼의 마음이 앞섭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해 주며 그를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6. 양선의 열매
양선은 영적으로는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선을 추구하는 마음만 간절하다고 양선의 열매를 맺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선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 마음이 행함으로 드러나야 ‘열매’가 맺혔다 할 수 있지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낸다’고 하신 것처럼 진정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외적으로도 선이 배어 나옵니다(마 12:35).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양선한 사람에게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7. 충성의 열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충성과는 차이가 납니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 해서 그 행위만으로 충성이 될 수는 없지요. 또 어떤 특정한 분야에만 생명 다하기까지 열정을 쏟는다 해서 온전한 충성이라 하지도 않습니다. 바로 영적인 충성이라야 하지요.
영적인 충성이란 꾸준히 ‘마음의 할례’를 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끊임없이 마음의 두루마기를 빠는 일로, 즉 비진리, 악, 불의, 불법, 어둠 등 모든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뤄 드린다는 뜻이지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마음의 죄악을 벗어 버리는 영적인 충성이 함께 병행되어야 합니다.
8. 온유의 열매
영적인 온유함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德)이 겸한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으면 항상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듯하게 치리해야 할 때는 위엄을 가지고 치리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의 마음은 솜털같이 포근합니다. 푹신한 솜털에 돌을 던지거나 바늘로 찔러도, 솜털은 소리 없이 감싸 버리지요.
이처럼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대한다 해도 온유한 사람의 마음에는 걸림이 없습니다. 곧 상대로 인해 혈기를 내지 않으며 서운해하지도 않습니다. 또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으며 그를 이해하고 감싸 줍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깃들이며 그에게서 쉼을 얻는 것입니다.
이처럼 온유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마 5:5). 이 세상이 아닌 천국에서의 넓은 땅을 받지요. 이 땅에서 자기 안에 깃들였던 모든 영혼들을 초청하여 함께할 만큼 큰 처소를 상급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9. 절제의 열매
절제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해지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시작은 사랑이지만 마지막은 절제입니다. 절제는 다른 열매에 비해 특성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조절하여 안정되게 하고 단단하게 지탱해 주지요. 절제의 열매가 있어야 모든 열매들이 온전해지기에 가장 마지막에 언급하신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다.
2. ( )은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이다.
3. ( )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한다.
4. ( )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이 겸한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67~1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절제의 열매’가 맺힐 때 나타나는 증거
1.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한다.
2. 진리를 행할 때 대상과 시기, 장소를 고려할 줄 안다.
3.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한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 알아 풍성히 맺을 수 있도록 돕는다.
열매란 밭에 씨를 심어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운 후 맺는 결과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마음 밭에 성령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 성장을 통해 맺어가는 아홉 가지 열매를 말합니다.
1. 사랑의 열매
사랑에는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언젠가는 변질되는 사랑입니다. 반면 영적인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이지요.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보다 차원이 높습니다. 예수님처럼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나를 미워하는 원수를 위해 생명까지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2. 희락의 열매
‘희락’은 문자 그대로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희락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인 희락이 마음에 맺히면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한 대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희락입니다.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주님의 보혈로 구원받아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 항상 희락이 넘칠 수 있습니다.
3. 화평의 열매
화평이란 내가 옳아도 상대에게 맞춰 주고,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으며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부부간에, 형제간에, 부모 자녀 간에, 이웃 간에는 물론 그 외 모든 사람과도 화평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애매히 나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사람들과도 화평을 이뤄야 하지요. 화평이 깨지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고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송사거리만 내줄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무리 충성하고 좋은 결과를 냈다 해도 화평이 깨지면 칭찬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결되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4. 오래 참음의 열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기는 하지만 육적인 인내를 합니다. 감정 상할 일이 생기면 참느라고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식음을 전폐하며 끙끙 앓다가 노이로제나 우울증 같은 병을 얻기도 하지요. 그러나 영적인 참음은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는 것입니다. 선으로 참을 때는 힘든 일도 소망 중에 감사함으로 이겨 내며 어떤 일을 당해도 요동하지 않고, 애매히 비난을 받아도 “오해가 있나 보다.” 하며 어찌하든 상대의 마음을 풀어 주고자 하지요.
영적인 오래 참음에는 먼저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마음에 악이 많을수록 오래 참기가 어렵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더 쉬어집니다. 다음으로,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는 상대가 내 생각,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항상 선으로 이해하고 참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대한 오래 참음’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 응답받기까지의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5. 자비의 열매
자비의 영적인 의미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또 사람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용서하는 마음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비의 마음으로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자비는 진정한 용서, 곧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젖먹이 아이를 대하듯 모든 사람을 넉넉하게 품고 포용할 수 있습니다. 설령 어떤 사람에게 큰 허물이 있다 해도, 혹은 중한 죄를 지은 것이 드러났다 해도 판단 정죄하기보다 긍휼의 마음이 앞섭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해 주며 그를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6. 양선의 열매
양선은 영적으로는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선을 추구하는 마음만 간절하다고 양선의 열매를 맺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선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 마음이 행함으로 드러나야 ‘열매’가 맺혔다 할 수 있지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낸다’고 하신 것처럼 진정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외적으로도 선이 배어 나옵니다(마 12:35).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양선한 사람에게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7. 충성의 열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충성과는 차이가 납니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 해서 그 행위만으로 충성이 될 수는 없지요. 또 어떤 특정한 분야에만 생명 다하기까지 열정을 쏟는다 해서 온전한 충성이라 하지도 않습니다. 바로 영적인 충성이라야 하지요.
영적인 충성이란 꾸준히 ‘마음의 할례’를 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끊임없이 마음의 두루마기를 빠는 일로, 즉 비진리, 악, 불의, 불법, 어둠 등 모든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뤄 드린다는 뜻이지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마음의 죄악을 벗어 버리는 영적인 충성이 함께 병행되어야 합니다.
8. 온유의 열매
영적인 온유함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德)이 겸한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으면 항상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듯하게 치리해야 할 때는 위엄을 가지고 치리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의 마음은 솜털같이 포근합니다. 푹신한 솜털에 돌을 던지거나 바늘로 찔러도, 솜털은 소리 없이 감싸 버리지요.
이처럼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대한다 해도 온유한 사람의 마음에는 걸림이 없습니다. 곧 상대로 인해 혈기를 내지 않으며 서운해하지도 않습니다. 또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으며 그를 이해하고 감싸 줍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깃들이며 그에게서 쉼을 얻는 것입니다.
이처럼 온유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마 5:5). 이 세상이 아닌 천국에서의 넓은 땅을 받지요. 이 땅에서 자기 안에 깃들였던 모든 영혼들을 초청하여 함께할 만큼 큰 처소를 상급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9. 절제의 열매
절제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해지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시작은 사랑이지만 마지막은 절제입니다. 절제는 다른 열매에 비해 특성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조절하여 안정되게 하고 단단하게 지탱해 주지요. 절제의 열매가 있어야 모든 열매들이 온전해지기에 가장 마지막에 언급하신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다.
2. ( )은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이다.
3. ( )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한다.
4. ( )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이 겸한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67~1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절제의 열매’가 맺힐 때 나타나는 증거
1.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한다.
2. 진리를 행할 때 대상과 시기, 장소를 고려할 줄 안다.
3.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한다.
2018-11-30
제48과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17
읽을말씀 : 요한복음 21:15~17 | 외울말씀 : 요한복음 6:53 ㅣ 참고 말씀: 요한복음 1:29
교육목표 : 주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대로 영혼 구원에 힘쓰는 일꾼이 되게 한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고향 갈릴리로 돌아온 일곱 제자들은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자 함께 따라 나섭니다.
제자들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십니다. 그대로 순종하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날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님과 함께 맞는 아침은 여느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침 식사를 한 후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는 시몬 베드로에게 질문한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선 모든 사람들,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주의 종들과 일꾼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지요.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모르셔서 세 번씩이나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고라고도 합니다. 결코 주님은 이미 회개하고 돌이킨 일로 찌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는 베드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그 마음에 열정이 어떠했는지 잘 아셨지만, 스스로 고백하게 함으로써 온전히 마음에 각인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주님께서 물으실 때 어떻게 고백할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는 만큼 주님의 마음에 맞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많은 연단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세 번 물으실 때에 본문과 같이 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그는 주님께서 왜 자신에게 이같이 질문하셨는지를 깨우치고, 그때 자신이 어떻게 답하였는지를 떠올리며 사도의 길을 충만하게 달려갔지요. 주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돌보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힘쓰다가 기쁨으로 순교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 내 어린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신 첫 번째 질문에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어린양을 먹이라” 말씀하시지요.
여기서 어린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혹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양이라고 표현하셨으니 어린양은 초신자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양은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표현했지요. 레위기에는 어린양을 제물로 드리는 장면이 곳곳에 나옵니다. 어린양은 영적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오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장 1~11절에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어린양을 취하여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장 51~5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했습니다.
바로 어린양인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만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요 1:14). 따라서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신 것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지요.
3. 내 양을 치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도 베드로는 동일하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하며 죄를 싸워 버리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꾼이 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양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5장 2~3절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말씀합니다. 즉 양이란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입니다. 맡겨진 양 떼에게 꼴을 잘 먹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밝히 알고 믿음이 성장하도록 해 주며 또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알려 주고 기도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교회 건물이나 양 떼가 없었으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고 양 떼를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날은 교회를 세워 양 무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면서 정성껏 갈무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의 종뿐 아니라 장로, 집사, 교사 등 직분을 받아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함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넘어진 양 떼를 일으켜 주고 치료해 주는 등 바른길로 인도해 줘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과 의욕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최선을 다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곧 양을 치는 것입니다.
4. 내 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십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똑같은 질문에 근심하여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십니다.
베드로가 근심한 것은 어떤 악한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아시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 중에는 믿음이 잘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이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병들고 상한 양을 치료하여 건강하게 하고, 길 잃은 양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지요. 진리 안에 바로 서지 못하고 당을 지으며, 시기 질투하는 등 목자를 시험하는 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생명의 양식을 먹임으로 순한 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양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하늘로부터 임하여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후,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심으로 그 중요성을 명심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더욱 믿음과 순종, 겸손과 섬김으로 주어진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말씀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이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다.
2. ( )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이다.
3. ( )는 말씀은,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 병들고 상한 영혼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92~19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을 의로 여기고 그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며 천국 열쇠를 주셨다(마 16:19).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생명 다해 주님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다.
교육목표 : 주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대로 영혼 구원에 힘쓰는 일꾼이 되게 한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고향 갈릴리로 돌아온 일곱 제자들은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자 함께 따라 나섭니다.
제자들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십니다. 그대로 순종하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날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님과 함께 맞는 아침은 여느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침 식사를 한 후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는 시몬 베드로에게 질문한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선 모든 사람들,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주의 종들과 일꾼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지요.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모르셔서 세 번씩이나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고라고도 합니다. 결코 주님은 이미 회개하고 돌이킨 일로 찌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는 베드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그 마음에 열정이 어떠했는지 잘 아셨지만, 스스로 고백하게 함으로써 온전히 마음에 각인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주님께서 물으실 때 어떻게 고백할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는 만큼 주님의 마음에 맞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많은 연단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세 번 물으실 때에 본문과 같이 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그는 주님께서 왜 자신에게 이같이 질문하셨는지를 깨우치고, 그때 자신이 어떻게 답하였는지를 떠올리며 사도의 길을 충만하게 달려갔지요. 주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돌보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힘쓰다가 기쁨으로 순교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 내 어린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신 첫 번째 질문에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어린양을 먹이라” 말씀하시지요.
여기서 어린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혹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양이라고 표현하셨으니 어린양은 초신자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양은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표현했지요. 레위기에는 어린양을 제물로 드리는 장면이 곳곳에 나옵니다. 어린양은 영적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오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장 1~11절에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어린양을 취하여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장 51~5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했습니다.
바로 어린양인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만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요 1:14). 따라서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신 것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지요.
3. 내 양을 치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도 베드로는 동일하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하며 죄를 싸워 버리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꾼이 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양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5장 2~3절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말씀합니다. 즉 양이란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입니다. 맡겨진 양 떼에게 꼴을 잘 먹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밝히 알고 믿음이 성장하도록 해 주며 또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알려 주고 기도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교회 건물이나 양 떼가 없었으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고 양 떼를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날은 교회를 세워 양 무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면서 정성껏 갈무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의 종뿐 아니라 장로, 집사, 교사 등 직분을 받아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함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넘어진 양 떼를 일으켜 주고 치료해 주는 등 바른길로 인도해 줘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과 의욕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최선을 다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곧 양을 치는 것입니다.
4. 내 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십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똑같은 질문에 근심하여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십니다.
베드로가 근심한 것은 어떤 악한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아시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 중에는 믿음이 잘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이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병들고 상한 양을 치료하여 건강하게 하고, 길 잃은 양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지요. 진리 안에 바로 서지 못하고 당을 지으며, 시기 질투하는 등 목자를 시험하는 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생명의 양식을 먹임으로 순한 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양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하늘로부터 임하여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후,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심으로 그 중요성을 명심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더욱 믿음과 순종, 겸손과 섬김으로 주어진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말씀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이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다.
2. ( )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이다.
3. ( )는 말씀은,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 병들고 상한 영혼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92~19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을 의로 여기고 그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며 천국 열쇠를 주셨다(마 16:19).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생명 다해 주님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다.
2018-11-23
제47과죽어지는 밀알이 되자
요한복음 12:24~2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2:24~2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2:24 ㅣ 참고 말씀: 히브리서 12:2
교육목표 : 예수님처럼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 맺는 과정을 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죽어져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비록 형체는 없어져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은 어떻게 죽어지는 한 알의 밀이 되셨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피조물에 의해 수치와 모욕과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며 가시관을 쓰시고 온갖 조롱을 받으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부끄러움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사망의 길로 가는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예수님처럼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철저히 죽어진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1)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들으며 지식을 쌓아갑니다. 그 쌓은 지식과 교양으로 자아를 형성해 가지요.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죄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자아를 형성했던 것들은 대부분 진리에 위배되므로 부딪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해야 자아가 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생각과 이론을 철저히 깨뜨려야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고후 10:5).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4절에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해야 버릴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죄는 대충 회개한다고 벗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기도 하시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며 버릴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야 합니다. 성장하면서 진리가 아닌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만일 남편이 주님을 믿지 않고 아내만 믿는 가정이라면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고 섬기며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죽어지는 밀알이 되면 남편이 변화를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남편만 주님을 믿는 가정이라 해도 그렇게 하면 되지요.
가족복음화를 온전히 이루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가정이 되려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먼저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기 때문에 본이 되지 못하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죽어지려면 자신의 구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구습이란 하나님을 믿기 전 옛사람일 때 자신의 몸에 밴 좋지 않은 습관을 말합니다.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하는 것, 또 방이 지저분해도 치우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것 등입니다. 이런 나쁜 구습들을 버리고 성실히 본이 되어 가족들을 섬긴다면 가정복음화는 물론 항상 웃음꽃이 피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갈 가족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성도의 허물을 들추며 남에게 전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고 상대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 불편해하고 용서하기가 어렵지요.
자신이 얼마나 죽어졌는지는 화평의 분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히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기 마련이지요. 만일 ‘김 집사’와는 잘 지내는데 ‘최 집사’와는 불편하다면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지요.
교회 직분의 상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당부하셨지요(행 1:8).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할 때 하나님 나라가 크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랑의 수고가 따르지요.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그들이 은혜를 받고 빛이신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전도된 영혼을 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이러한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많은 영혼이 영적인 성장을 이루며 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우친 사람은 이 사랑에 빚진 심정으로 전도하며 영혼 갈무리하는 일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며 자원함으로 헌신하지요.
로마서 8장 17절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죽어짐으로 사망으로 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의 핏값을 찾아드리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은 누구를 의미할까요?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가 죽어야 한다.
② 가정에서 죽어져야 한다.
③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한다.
④ ( )를 위해 죽어져야 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84~19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옛사람, 새사람’(골 3:9, 엡 4:24)
옛사람이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주 안에서 거듭나지 않아 비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 새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옛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3~24).
교육목표 : 예수님처럼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 맺는 과정을 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죽어져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비록 형체는 없어져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은 어떻게 죽어지는 한 알의 밀이 되셨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피조물에 의해 수치와 모욕과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며 가시관을 쓰시고 온갖 조롱을 받으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부끄러움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사망의 길로 가는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예수님처럼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철저히 죽어진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1)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들으며 지식을 쌓아갑니다. 그 쌓은 지식과 교양으로 자아를 형성해 가지요.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죄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자아를 형성했던 것들은 대부분 진리에 위배되므로 부딪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해야 자아가 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생각과 이론을 철저히 깨뜨려야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고후 10:5).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4절에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해야 버릴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죄는 대충 회개한다고 벗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기도 하시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며 버릴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야 합니다. 성장하면서 진리가 아닌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만일 남편이 주님을 믿지 않고 아내만 믿는 가정이라면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고 섬기며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죽어지는 밀알이 되면 남편이 변화를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남편만 주님을 믿는 가정이라 해도 그렇게 하면 되지요.
가족복음화를 온전히 이루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가정이 되려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먼저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기 때문에 본이 되지 못하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죽어지려면 자신의 구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구습이란 하나님을 믿기 전 옛사람일 때 자신의 몸에 밴 좋지 않은 습관을 말합니다.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하는 것, 또 방이 지저분해도 치우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것 등입니다. 이런 나쁜 구습들을 버리고 성실히 본이 되어 가족들을 섬긴다면 가정복음화는 물론 항상 웃음꽃이 피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갈 가족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성도의 허물을 들추며 남에게 전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고 상대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 불편해하고 용서하기가 어렵지요.
자신이 얼마나 죽어졌는지는 화평의 분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히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기 마련이지요. 만일 ‘김 집사’와는 잘 지내는데 ‘최 집사’와는 불편하다면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지요.
교회 직분의 상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당부하셨지요(행 1:8).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할 때 하나님 나라가 크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랑의 수고가 따르지요.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그들이 은혜를 받고 빛이신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전도된 영혼을 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이러한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많은 영혼이 영적인 성장을 이루며 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우친 사람은 이 사랑에 빚진 심정으로 전도하며 영혼 갈무리하는 일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며 자원함으로 헌신하지요.
로마서 8장 17절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죽어짐으로 사망으로 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의 핏값을 찾아드리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은 누구를 의미할까요?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가 죽어야 한다.
② 가정에서 죽어져야 한다.
③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한다.
④ ( )를 위해 죽어져야 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84~19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옛사람, 새사람’(골 3:9, 엡 4:24)
옛사람이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주 안에서 거듭나지 않아 비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 새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옛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3~24).
2018-11-16
제46과하나님께 감사
출애굽기 23:16
읽을말씀 : 출애굽기 23:16 | 외울말씀 : 시편 17:8 ㅣ 참고 말씀: 레위기 23:42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지요.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하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3절에는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40년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지냈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질병이 있는데 그중에는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지요.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습니다.
여 성도 한 분은 ‘양수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다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76~18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지요.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하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3절에는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40년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지냈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질병이 있는데 그중에는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지요.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습니다.
여 성도 한 분은 ‘양수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다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76~18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2018-11-09
제45과사람의 본분을 찾자
전도서 12:13~14
읽을말씀 : 전도서 12:13~14 | 외울말씀 : 전도서 12:13 ㅣ 참고 말씀: 베드로전서 1:16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거룩하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우리가 삶의 목표와 방향을 어디에 두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삶의 목표를 영원한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의 성공과 부귀영화에 두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마저 무시해 버리기도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육신의 정욕을 좇아 무절제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람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사람의 본분이란
창세기 1장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도록 역사하셨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명령도 지키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웠으며 거짓 없이 진실하고 깨끗하고 온전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면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렸지요.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생령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죄의 삯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롬 6:23).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정욕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게 되었지요. 오늘날은 죄악이 더욱 관영함으로 인륜 도덕이 땅에 떨어져 부모 자녀 간에도 사랑을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범죄한 아담과 그의 후손은 모두 죄인이 되었기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죽은 영이 살아나 사람의 본분을 되찾으며 영생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가 있는데 바로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14절에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했고, 전도서 1장 2~3절에는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정욕을 좇아 이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지요. 오직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방법
1) 하나님을 밝히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밝히 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경작하시는지, 어떻게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지 등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바로 알고 깨달아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드넓은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로봇처럼 순종 잘하는 천사가 많이 있었지만 자유 의지 가운데 순종하는 참 자녀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한 사람을 경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려면 많은 수고가 따르지만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훌륭하게 장성하면 큰 기쁨이 되기 때문에 수고도 마다하지 않지요. 하나님께서도 사람의 악함을 아시지만 즐거이 경작하시는 것은, 하나님 마음을 알아 자유 의지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참 자녀로 나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지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므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지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기를 받아 여러 가지 죄성을 타고납니다. 성장 과정 중에도 진리와 맞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배우는 만큼 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 마귀도 알며,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과 불의가 얼마나 추하다는 것을 깨달아 불같이 기도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밝히 알아가야 사람의 본분인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자기 자신을 개간해 나가야 합니다
농부가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묵은 땅을 기경하며 씨를 뿌린 후에는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밭도 개간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옥토가 되어 사람의 본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인간 경작의 섭리를 알았다면,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의 마음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며, 읽는 대로 깨달아지고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하신 대로 악을 미워하고 죄를 버리며 자신의 마음밭을 열심히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마음밭을 개간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성령의 열매와 영적인 사랑, 팔복 등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3) 자신의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지키려면 맡은 일을 잘 감당할 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요. 예를 들어,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자녀는 자녀로서의 도리를 다합니다. 학생은 본분인 공부를 잘해야 하고, 군인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기관장, 성가대, 교사, 구역장, 조장, 지역장 등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자기의 본분을 다했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성 봉사해야 하지요.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쓰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마음 다해 찬송하는 것,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은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혹여 영적인 사명을 감당한다는 이유로 육적인 사명을 소홀히 하거나 육적인 사명 때문에 주 안에서 감당해야 할 영적인 사명을 게을리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을 지혜롭고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참 자녀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람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을 밝히 ( ) 사람이 되어야 한다.
② 자기 자신을 ( )해 나가야 한다.
③ 자신의 삶에 ( )해야 한다.
2.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28~23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에덴동산’이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쫓겨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자손을 낳으며 살았던 곳이다.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과 지구를 다스리고 지배하며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들이 있는 곳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하지만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는데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결국 두 사람 모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거룩하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우리가 삶의 목표와 방향을 어디에 두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삶의 목표를 영원한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의 성공과 부귀영화에 두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마저 무시해 버리기도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육신의 정욕을 좇아 무절제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람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사람의 본분이란
창세기 1장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도록 역사하셨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명령도 지키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웠으며 거짓 없이 진실하고 깨끗하고 온전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면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렸지요.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생령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죄의 삯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롬 6:23).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정욕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게 되었지요. 오늘날은 죄악이 더욱 관영함으로 인륜 도덕이 땅에 떨어져 부모 자녀 간에도 사랑을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범죄한 아담과 그의 후손은 모두 죄인이 되었기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죽은 영이 살아나 사람의 본분을 되찾으며 영생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가 있는데 바로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14절에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했고, 전도서 1장 2~3절에는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정욕을 좇아 이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지요. 오직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방법
1) 하나님을 밝히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밝히 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경작하시는지, 어떻게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지 등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바로 알고 깨달아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드넓은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로봇처럼 순종 잘하는 천사가 많이 있었지만 자유 의지 가운데 순종하는 참 자녀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한 사람을 경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려면 많은 수고가 따르지만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훌륭하게 장성하면 큰 기쁨이 되기 때문에 수고도 마다하지 않지요. 하나님께서도 사람의 악함을 아시지만 즐거이 경작하시는 것은, 하나님 마음을 알아 자유 의지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참 자녀로 나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지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므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지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기를 받아 여러 가지 죄성을 타고납니다. 성장 과정 중에도 진리와 맞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배우는 만큼 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 마귀도 알며,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과 불의가 얼마나 추하다는 것을 깨달아 불같이 기도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밝히 알아가야 사람의 본분인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자기 자신을 개간해 나가야 합니다
농부가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묵은 땅을 기경하며 씨를 뿌린 후에는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밭도 개간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옥토가 되어 사람의 본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인간 경작의 섭리를 알았다면,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의 마음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며, 읽는 대로 깨달아지고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하신 대로 악을 미워하고 죄를 버리며 자신의 마음밭을 열심히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마음밭을 개간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성령의 열매와 영적인 사랑, 팔복 등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3) 자신의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지키려면 맡은 일을 잘 감당할 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요. 예를 들어,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자녀는 자녀로서의 도리를 다합니다. 학생은 본분인 공부를 잘해야 하고, 군인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기관장, 성가대, 교사, 구역장, 조장, 지역장 등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자기의 본분을 다했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성 봉사해야 하지요.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쓰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마음 다해 찬송하는 것,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은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혹여 영적인 사명을 감당한다는 이유로 육적인 사명을 소홀히 하거나 육적인 사명 때문에 주 안에서 감당해야 할 영적인 사명을 게을리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을 지혜롭고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참 자녀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람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을 밝히 ( ) 사람이 되어야 한다.
② 자기 자신을 ( )해 나가야 한다.
③ 자신의 삶에 ( )해야 한다.
2.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28~23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에덴동산’이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쫓겨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자손을 낳으며 살았던 곳이다.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과 지구를 다스리고 지배하며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들이 있는 곳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하지만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는데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결국 두 사람 모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2018-11-02
제44과다시 오실 주님
마태복음 24:32~34
읽을말씀 : 마태복음 24:32~34 | 외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4:16 ㅣ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15:20
교육목표 :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공중 강림과 여러 징조들을 조명해 봄으로 더욱 깨어 근신하게 한다.
약 2천 년 전,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아무 흠도 죄도 없으셨기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40일 후에는 하늘로 승천하셨지요.
이때 제자들이 하늘로 승천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자 두 천사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말합니다. 과연 주님은 언제 어떻게 다시 오시는 것일까요?
1. 예언대로 성취될 주님의 공중 강림
구약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의 고난 등 수많은 예언이 나옵니다. 그중 대부분의 예언이 성취되었고 장차 이루어질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 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이 남아 있습니다.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을 버리고 깨어 근신하며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아름다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니 세상의 헛되고 썩어질 것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을 보면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장차 공중에 어떻게 강림하실 것인지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가장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합니다. 이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잠자는 자’라고 하지요(고전 15:20).
무덤에 장사되어 잠자는 자들의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하고 공중에서 영혼과 함께 결합되어 부활체가 됩니다. 이렇게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면, 그다음에는 죽지 않고 이 땅에 살아 있는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즉 휴거되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2. 주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히브리서 10장 37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성경 곳곳에 나오지만,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시험하는 사람도 있지요. 심지어 극단적인 종말론자들로 치부하며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주님의 재림은 속히 성취될 일입니다.
알곡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기에 신부 단장에 힘쓰며 신랑 되신 주님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 준비를 잘한 성도들은 구원받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쭉정이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고 신부 단장을 하지 않다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특별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것이 맞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날과 그때를 안다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예언된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깨어 근신하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하지요. 그런 성도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지만, 세상과 짝하며 어둠에 있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아무리 외쳐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며 세상을 취하다 결국 홍수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독립하였을 때는 곧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임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마 21:18~19)라고 저주하시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립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힐 때가 아니므로 잎사귀만 무성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평소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일까요?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 강조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고백한 대로 그 피는 이스라엘과 그 자손에게 저주로 임했지요(마 27:25). A.D. 70년,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없는 서러움과 멸시 천대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에 의해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을 당하는 등 그들에게 임한 저주와 시련은 참혹하리만큼 무서웠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율법을 지켰습니다.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그날이 바로 1948년 5월 14일이지요. 완전히 멸망하여 없어진 나라가 약 1900년 만에 재건된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설 것을 곳곳에 예언해 놓았습니다. 이사야 49장 8절에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게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에스겔 38장 8절에는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했지요.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 이스라엘은 독립한 후 짧은 시간에 선진국으로 부상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심히 가까웠음을 깨달아 신부 단장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 )라고 표현한다.
2.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 )을 뜻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67~1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바리새인’이란?
신약 시대 유대계파 중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로, 율법을 엄격히 준수했다. 또한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며, 레위기의 청결 의식을 철저히 지켰다.
이들은 장로의 유전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신 것과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행위까지도 안식일을 범했다고 간주했다.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고 겉으로만 거룩한 체하는 이들은 예수님께 ‘회칠한 무덤’과 ‘외식하는 자’라는 엄한 책망을 들었다.
부활과 천사와 영의 존재들을 인정하는 바리새인들은 이를 부인하는 사두개인들과 대립하기도 했다(행 23:6~8).
교육목표 :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공중 강림과 여러 징조들을 조명해 봄으로 더욱 깨어 근신하게 한다.
약 2천 년 전,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아무 흠도 죄도 없으셨기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40일 후에는 하늘로 승천하셨지요.
이때 제자들이 하늘로 승천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자 두 천사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말합니다. 과연 주님은 언제 어떻게 다시 오시는 것일까요?
1. 예언대로 성취될 주님의 공중 강림
구약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의 고난 등 수많은 예언이 나옵니다. 그중 대부분의 예언이 성취되었고 장차 이루어질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 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이 남아 있습니다.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을 버리고 깨어 근신하며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아름다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니 세상의 헛되고 썩어질 것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을 보면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장차 공중에 어떻게 강림하실 것인지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가장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합니다. 이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잠자는 자’라고 하지요(고전 15:20).
무덤에 장사되어 잠자는 자들의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하고 공중에서 영혼과 함께 결합되어 부활체가 됩니다. 이렇게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면, 그다음에는 죽지 않고 이 땅에 살아 있는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즉 휴거되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2. 주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히브리서 10장 37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성경 곳곳에 나오지만,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시험하는 사람도 있지요. 심지어 극단적인 종말론자들로 치부하며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주님의 재림은 속히 성취될 일입니다.
알곡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기에 신부 단장에 힘쓰며 신랑 되신 주님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 준비를 잘한 성도들은 구원받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쭉정이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고 신부 단장을 하지 않다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특별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것이 맞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날과 그때를 안다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예언된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깨어 근신하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하지요. 그런 성도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지만, 세상과 짝하며 어둠에 있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아무리 외쳐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며 세상을 취하다 결국 홍수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독립하였을 때는 곧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임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마 21:18~19)라고 저주하시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립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힐 때가 아니므로 잎사귀만 무성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평소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일까요?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 강조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고백한 대로 그 피는 이스라엘과 그 자손에게 저주로 임했지요(마 27:25). A.D. 70년,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없는 서러움과 멸시 천대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에 의해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을 당하는 등 그들에게 임한 저주와 시련은 참혹하리만큼 무서웠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율법을 지켰습니다.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그날이 바로 1948년 5월 14일이지요. 완전히 멸망하여 없어진 나라가 약 1900년 만에 재건된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설 것을 곳곳에 예언해 놓았습니다. 이사야 49장 8절에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게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에스겔 38장 8절에는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했지요.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 이스라엘은 독립한 후 짧은 시간에 선진국으로 부상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심히 가까웠음을 깨달아 신부 단장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 )라고 표현한다.
2.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 )을 뜻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67~1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바리새인’이란?
신약 시대 유대계파 중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로, 율법을 엄격히 준수했다. 또한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며, 레위기의 청결 의식을 철저히 지켰다.
이들은 장로의 유전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신 것과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행위까지도 안식일을 범했다고 간주했다.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고 겉으로만 거룩한 체하는 이들은 예수님께 ‘회칠한 무덤’과 ‘외식하는 자’라는 엄한 책망을 들었다.
부활과 천사와 영의 존재들을 인정하는 바리새인들은 이를 부인하는 사두개인들과 대립하기도 했다(행 23:6~8).
2018-10-26
제43과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요한계시록 22:12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22:12 | 외울말씀 : 요한계시록 22:12 ㅣ 참고 말씀: 말라기 3:10
교육목표 : 구원의 확신을 가지며 물질의 축복, 천국의 상급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오늘날 “주여, 주여”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 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를 지으면서도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구원받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 가운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1.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1)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먼저,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마음에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마음에 믿어져야 재림도, 천국도 믿어지고 구원의 확신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라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며, 이 믿음이 있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2) 행함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에 불과합니다(약 2:26).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으면 입술로 시인하게 되고, 말씀을 듣고 깨우친 만큼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함이 따릅니다. 행함 있는 믿음을 내보인 만큼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성령을 체험케 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의 할례를 하며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구원에 이릅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 낸다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착각 속에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 아무리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어 나간다면 성령이 소멸되며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집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도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행함 있는 믿음으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의를 이루어 갈 때라야 구원의 확신이 주어집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버리고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고 구원의 문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2.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물질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물질로 심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심지 않은 데서 거둘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씀합니다. 즉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 주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초신자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면 마치 물질에 손해가 갈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가정, 일터, 사업터를 지켜 주십니다. 어떤 사고나 재앙에서도 보호해 주시므로 물질이 낭비되지 않습니다.
감사예물이나 절기예물 등 헌물을 할 때도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되지요(고후 9:6).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는,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공궤하였습니다. 과부가 이렇게 귀한 것을 심었기에 비가 다시 올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요. 이처럼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온전한 십일조는 물론 헌물을 드리되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겨 드려야 합니다(고후 9:7).
3.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에 따라 행함이 각기 다릅니다. 믿음이 큰 만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늘에 상급도 많이 쌓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잘하면 인정을 받고 상을 받아 장래가 보장되고 자신에게 영광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창조주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없어지지 않고 영광이 되는 상을 주십니다. 천국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하고 심은 것에 대한 상급이 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게 하는 분이니 얼마나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시겠습니까.
특히 영혼 구원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며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고, 한 영혼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사랑하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 구원을 위해 모진 핍박과 환난을 받으면서도 감사했고, 영혼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참수를 당하면서도 이 땅에 남겨진 영혼들을 걱정하며 믿음으로 세상을 잘 이기기를 간절히 기도했지요. 이처럼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헌신했던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은 물론 천국에서 높은 서열에 이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하며 상급을 쌓기에 힘쓰게 됩니다. 더구나 주의 종이나 지역장, 조장, 구역장, 연합회장, 선교회장, 기관장이라면 부흥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요. 성가대나 교사, 봉사대, 헌금위원 등 자신의 달란트를 살려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 드리기 위해 충성 봉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심는 것은 모두가 상급이 됩니다.
가령, 교회가 성전 건축을 한다면 벽돌 한 장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심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금식과 기도로 심는 것 또한 상급이 됩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도 잊지 않고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며, 누가 어떤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귀히 여기며 이웃을 섬기는지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늘나라에 많은 상급을 쌓고 이 땅에서도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마음에 믿어지는 ( )이 있어야 한다.
② ( )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2. 주님을 영접하여 ( )을 받았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어 나가면 ( )이 소멸되며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진다.
3.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을 쓰고 외워 보세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56~16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망에 이르는 죄’란?
성령 훼방, 거역, 모독하는 죄를 말한다(마 12:31~32, 눅 12:10).
또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죄와(히 6:4~6),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한다.
(히 10:26~27)
교육목표 : 구원의 확신을 가지며 물질의 축복, 천국의 상급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오늘날 “주여, 주여”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 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를 지으면서도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구원받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 가운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1.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1)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먼저,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마음에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마음에 믿어져야 재림도, 천국도 믿어지고 구원의 확신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라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며, 이 믿음이 있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2) 행함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에 불과합니다(약 2:26).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으면 입술로 시인하게 되고, 말씀을 듣고 깨우친 만큼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함이 따릅니다. 행함 있는 믿음을 내보인 만큼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성령을 체험케 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의 할례를 하며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구원에 이릅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 낸다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착각 속에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 아무리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어 나간다면 성령이 소멸되며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집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도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행함 있는 믿음으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의를 이루어 갈 때라야 구원의 확신이 주어집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버리고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고 구원의 문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2.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물질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물질로 심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심지 않은 데서 거둘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씀합니다. 즉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 주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초신자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면 마치 물질에 손해가 갈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가정, 일터, 사업터를 지켜 주십니다. 어떤 사고나 재앙에서도 보호해 주시므로 물질이 낭비되지 않습니다.
감사예물이나 절기예물 등 헌물을 할 때도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되지요(고후 9:6).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는,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공궤하였습니다. 과부가 이렇게 귀한 것을 심었기에 비가 다시 올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요. 이처럼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온전한 십일조는 물론 헌물을 드리되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겨 드려야 합니다(고후 9:7).
3.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에 따라 행함이 각기 다릅니다. 믿음이 큰 만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늘에 상급도 많이 쌓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잘하면 인정을 받고 상을 받아 장래가 보장되고 자신에게 영광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창조주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없어지지 않고 영광이 되는 상을 주십니다. 천국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하고 심은 것에 대한 상급이 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게 하는 분이니 얼마나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시겠습니까.
특히 영혼 구원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며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고, 한 영혼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사랑하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 구원을 위해 모진 핍박과 환난을 받으면서도 감사했고, 영혼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참수를 당하면서도 이 땅에 남겨진 영혼들을 걱정하며 믿음으로 세상을 잘 이기기를 간절히 기도했지요. 이처럼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헌신했던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은 물론 천국에서 높은 서열에 이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하며 상급을 쌓기에 힘쓰게 됩니다. 더구나 주의 종이나 지역장, 조장, 구역장, 연합회장, 선교회장, 기관장이라면 부흥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요. 성가대나 교사, 봉사대, 헌금위원 등 자신의 달란트를 살려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 드리기 위해 충성 봉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심는 것은 모두가 상급이 됩니다.
가령, 교회가 성전 건축을 한다면 벽돌 한 장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심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금식과 기도로 심는 것 또한 상급이 됩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도 잊지 않고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며, 누가 어떤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귀히 여기며 이웃을 섬기는지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늘나라에 많은 상급을 쌓고 이 땅에서도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마음에 믿어지는 ( )이 있어야 한다.
② ( )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2. 주님을 영접하여 ( )을 받았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어 나가면 ( )이 소멸되며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진다.
3.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을 쓰고 외워 보세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56~16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망에 이르는 죄’란?
성령 훼방, 거역, 모독하는 죄를 말한다(마 12:31~32, 눅 12:10).
또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죄와(히 6:4~6),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한다.
(히 10:26~27)
2018-10-19
제42과열 므나 비유
누가복음 19:11~27
읽을말씀 : 누가복음 19:11~27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5:26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13:44
교육목표 :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인 장사를 잘하여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
흔히 열 므나 비유와 달란트 비유를 동일하게 여기는데, 이 둘의 영적인 의미는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는 영적인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장차 주님께 인정받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열 므나 비유에는 어떤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1.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누가복음 19장 12~13절에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했습니다.
여기서 ‘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므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은 것처럼,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성령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는 사명에 관한 것으로 각기 재능에 따라 다르게 달란트를 나눠 주었지요. 그러나 므나는 성령을 의미하므로 모든 사람이 한 므나씩 공평하게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한 므나씩 나눠 준 뒤 귀인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여기서 ‘먼 나라’란 하나님 계신 천국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천국에 가시기 전에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므나 비유에서는 주님께서 천국에 가시기 전에 므나를 나눠 줬으므로 실제와 다른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8절에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왕권을 얻어 부활체로 나타나실 것을 볼 제자들도 있다는 뜻입니다.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고 부활을 알리신 후, 천국에 가셨다가 그날 저녁 다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이미 하나님께 가서 왕위를 받으셨는데, 왜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가기 전에 한 므나씩 나눠 주었다고 하신 것일까요?
여기서 왕위는 주님 자신을 위한 왕위가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왕위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왕위를 이미 얻으셨지만 성도들은 아직 왕위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이 세상에서 경작을 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차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성도들의 왕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2.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귀인이 먼 나라로 갈 때에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 나눠 주며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부탁합니다. 주님께서 신랑으로 오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부 된 자격으로 주님을 맞이할 때가 곧 주님의 공중 강림의 때요,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장사한 것을 알아보는 때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눠 주고 장사하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장사하라는 것일까요? 달란트 비유에서는 각각 그 재능에 따라 사명을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장사로 표현했지만, 열 므나 비유에서의 장사는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즉 누구나 똑같이 받은 성령으로 장사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그것이 진정 귀한 것임을 안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사야 하지요.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산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비진리에 속한 육신의 생각이나 이론, 육체의 소욕 등을 버리고 깨뜨림으로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진리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는 장사, 곧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되 온전하게 장사하여 마음의 성결을 이루었음을 의미합니다.
3. 한 므나로 장사한 것을 회계하시는 주님
마침내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했는지 알고자 불렀습니다. 한 종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다고 하자,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합니다. 이것이 곧 성결된 사람이 받는 칭찬과 상입니다.
이어서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고만 하고 칭찬은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장사는 하였지만, 열 므나를 남긴 종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므나를 장사도 하지 않고 수건에 싸 두었다가 그대로 내놓은 종에게는 “악한 종아 …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며 책망하지요.
악한 종은 이미 성령을 받고서도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세상 사람과 똑같이 죄악 중에 살았습니다. 그러고는 되려 주인을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이라 판단하지요.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또한 자녀들이 심은 대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로운 분이니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도록 열심히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라고 부탁하셨지요. 그런데 한 므나를 받은 종은 오히려 무섭고 엄한 하나님으로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한 므나를 그대로 수건에 싸 두었던 종은 주인으로부터 악한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한 므나마저 빼앗기고 맙니다. 이는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계속 죄 가운데 살다가 결국 하나님을 떠나 성령이 소멸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계 3:1~6).
4.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열심히 말씀대로 살며 죄를 버리는 사람들은 성령이 충만하니 진리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회개하기는커녕 시험거리를 만들고 악을 행하다가 결국은 구원에 이르지도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왕 됨을 원치 않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하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마 27:23).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시험거리를 만들고 성령 훼방, 모독, 거역하며 주님을 십자가에 현저히 못 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9장 24절 이하에 보면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영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불순종했을 때 영이 죽었던 것처럼 성령으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장사를 하지 않으면 받았던 성령까지 빼앗겨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면 한 므나를 받은 것입니다. 나아가 열 므나를 남기면 칭찬받고 열 고을 다스릴 권세를 차지할 수 있으니, 열심히 장사하여 성결을 이룸으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귀인은 ( )를 의미하고, 므나는 ( )을 의미한다.
2.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은 것처럼,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 )을 받는다.
3.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는 장사, 곧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되 온전하게 장사하여 마음의 ( )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4. 귀인은 누구의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기 위해 먼 나라로 간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48~15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므나
영적으로 성령을 의미하는 므나는 금과 은, 보석 같은 귀금속의 중량을 재는 단위로 사용되었으며 달란트의 60분의 1 에 해당한다.
교육목표 :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인 장사를 잘하여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
흔히 열 므나 비유와 달란트 비유를 동일하게 여기는데, 이 둘의 영적인 의미는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는 영적인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장차 주님께 인정받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열 므나 비유에는 어떤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1.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누가복음 19장 12~13절에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했습니다.
여기서 ‘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므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은 것처럼,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성령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는 사명에 관한 것으로 각기 재능에 따라 다르게 달란트를 나눠 주었지요. 그러나 므나는 성령을 의미하므로 모든 사람이 한 므나씩 공평하게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한 므나씩 나눠 준 뒤 귀인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여기서 ‘먼 나라’란 하나님 계신 천국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천국에 가시기 전에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므나 비유에서는 주님께서 천국에 가시기 전에 므나를 나눠 줬으므로 실제와 다른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8절에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왕권을 얻어 부활체로 나타나실 것을 볼 제자들도 있다는 뜻입니다.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고 부활을 알리신 후, 천국에 가셨다가 그날 저녁 다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이미 하나님께 가서 왕위를 받으셨는데, 왜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가기 전에 한 므나씩 나눠 주었다고 하신 것일까요?
여기서 왕위는 주님 자신을 위한 왕위가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왕위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왕위를 이미 얻으셨지만 성도들은 아직 왕위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이 세상에서 경작을 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차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성도들의 왕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2.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귀인이 먼 나라로 갈 때에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 나눠 주며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부탁합니다. 주님께서 신랑으로 오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부 된 자격으로 주님을 맞이할 때가 곧 주님의 공중 강림의 때요,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장사한 것을 알아보는 때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눠 주고 장사하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장사하라는 것일까요? 달란트 비유에서는 각각 그 재능에 따라 사명을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장사로 표현했지만, 열 므나 비유에서의 장사는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즉 누구나 똑같이 받은 성령으로 장사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그것이 진정 귀한 것임을 안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사야 하지요.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산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비진리에 속한 육신의 생각이나 이론, 육체의 소욕 등을 버리고 깨뜨림으로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진리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는 장사, 곧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되 온전하게 장사하여 마음의 성결을 이루었음을 의미합니다.
3. 한 므나로 장사한 것을 회계하시는 주님
마침내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했는지 알고자 불렀습니다. 한 종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다고 하자,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합니다. 이것이 곧 성결된 사람이 받는 칭찬과 상입니다.
이어서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고만 하고 칭찬은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장사는 하였지만, 열 므나를 남긴 종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므나를 장사도 하지 않고 수건에 싸 두었다가 그대로 내놓은 종에게는 “악한 종아 …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며 책망하지요.
악한 종은 이미 성령을 받고서도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세상 사람과 똑같이 죄악 중에 살았습니다. 그러고는 되려 주인을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이라 판단하지요.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또한 자녀들이 심은 대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로운 분이니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도록 열심히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라고 부탁하셨지요. 그런데 한 므나를 받은 종은 오히려 무섭고 엄한 하나님으로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한 므나를 그대로 수건에 싸 두었던 종은 주인으로부터 악한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한 므나마저 빼앗기고 맙니다. 이는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계속 죄 가운데 살다가 결국 하나님을 떠나 성령이 소멸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계 3:1~6).
4.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열심히 말씀대로 살며 죄를 버리는 사람들은 성령이 충만하니 진리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회개하기는커녕 시험거리를 만들고 악을 행하다가 결국은 구원에 이르지도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왕 됨을 원치 않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하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마 27:23).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시험거리를 만들고 성령 훼방, 모독, 거역하며 주님을 십자가에 현저히 못 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9장 24절 이하에 보면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영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불순종했을 때 영이 죽었던 것처럼 성령으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장사를 하지 않으면 받았던 성령까지 빼앗겨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면 한 므나를 받은 것입니다. 나아가 열 므나를 남기면 칭찬받고 열 고을 다스릴 권세를 차지할 수 있으니, 열심히 장사하여 성결을 이룸으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귀인은 ( )를 의미하고, 므나는 ( )을 의미한다.
2.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은 것처럼,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 )을 받는다.
3.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는 장사, 곧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되 온전하게 장사하여 마음의 ( )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4. 귀인은 누구의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기 위해 먼 나라로 간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48~15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므나
영적으로 성령을 의미하는 므나는 금과 은, 보석 같은 귀금속의 중량을 재는 단위로 사용되었으며 달란트의 60분의 1 에 해당한다.
2018-10-12
제41과달란트 비유
마태복음 25:14~30
읽을말씀 : 마태복음 25:14~30 | 외울말씀 : 마태복음 25:21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25:26
교육목표 :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귀중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는 사명자가 되게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크든 작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소중히 감당하지요. 지옥에 가지 않도록 구원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귀한 사명을 주셔서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마음 다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1.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 14절 이하를 통해 성도들이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시지요.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게 되자 종들을 불러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장사는커녕 땅에 묻어 두었지요.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칭찬합니다. 반면 한 달란트를 받아서 장사하지 않고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하시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타국’은 천국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을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또 ‘자기 소유’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천하 만물과 인생들을 말합니다(요 1:10, 히 1:2).
성경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천하 만물과 인생들이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눅 4:6). 그런데 하나님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 승천하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천국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아직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로 있는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되찾아야 합니다. 주님의 소유로 되찾는 것,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믿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요,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주님께서 천국에 가실 때 ‘자기 소유를 맡기되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고 했는데 여기서 재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재능에는 육적인 재능과 영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찬양이나 무용 등 특별히 어떤 분야를 잘할 수 있는 재주와 능력, 기술, 지혜, 학식 등이 육적인 재능입니다. 하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영적인 재능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재능은 영적인 재능으로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첫째, 각자 믿음의 분량(롬 12:3)에 따라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움과 전도의 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전할 수 있어 믿음대로 전도가 이루어지고 영혼이 구원되지만, 믿음이 적은 사람은 담대히 전하지 못하니 그만큼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둘째, 천국에 대한 소망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큰 사람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여 영혼 구원에 앞장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고자 하지요.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영혼을 구원하며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와도 감사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도, 봉사, 찬양 등 주 안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영혼 구원과 직결되므로 충성되이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얼마큼 있느냐에 따라 달란트가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재능이 많은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약간 적은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아주 적은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이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즐거움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고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은 교회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는 즐거움에 참예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으로 상이 주어지며 천국 잔치에 참예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열심히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자기의 재능 안에서 충성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과 동등하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최선을 다해 감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사랑을 베푸십니다.
4.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은 주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며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 알았기 때문에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에 공의로우신 주님을 굳은 사람이라 자기의 생각에 맞춰 오해했지요.
또한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을 좇아 열심히 수고하여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땅속에 그대로 감추어 두었습니다. 곧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지 않았으니 열매를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은행에 맡겼으면 이자라도 받았을 텐데 변리도 취하지 못하게 했으니 그만큼 주인의 소유에 손해를 입힌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열 달란트 가진 자는 사명이 많아 벅찰 것 같지만 그만큼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기에 그 이상의 것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종에게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마 25:30). 이는 자기의 사명을 감당치 않고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재능인 믿음, 소망, 사랑으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열매 맺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떤 사람은 ( )를 의미하고, 타국은 ( )을 뜻한다.
2.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 ), ( ), ( )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다.
3.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40~14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달란트와 데나리온
무게와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는 달란트는 성경에서 재능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1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6천 일, 약 16년간 품삯에 해당된다.
‘1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화로, 군인이나 품꾼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금액이며, 헬라의 은화 1 드라크마의 가치를 지녔다.
교육목표 :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귀중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는 사명자가 되게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크든 작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소중히 감당하지요. 지옥에 가지 않도록 구원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귀한 사명을 주셔서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마음 다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1.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 14절 이하를 통해 성도들이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시지요.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게 되자 종들을 불러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장사는커녕 땅에 묻어 두었지요.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칭찬합니다. 반면 한 달란트를 받아서 장사하지 않고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하시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타국’은 천국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을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또 ‘자기 소유’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천하 만물과 인생들을 말합니다(요 1:10, 히 1:2).
성경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천하 만물과 인생들이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눅 4:6). 그런데 하나님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 승천하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천국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아직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로 있는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되찾아야 합니다. 주님의 소유로 되찾는 것,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믿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요,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주님께서 천국에 가실 때 ‘자기 소유를 맡기되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고 했는데 여기서 재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재능에는 육적인 재능과 영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찬양이나 무용 등 특별히 어떤 분야를 잘할 수 있는 재주와 능력, 기술, 지혜, 학식 등이 육적인 재능입니다. 하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영적인 재능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재능은 영적인 재능으로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첫째, 각자 믿음의 분량(롬 12:3)에 따라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움과 전도의 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전할 수 있어 믿음대로 전도가 이루어지고 영혼이 구원되지만, 믿음이 적은 사람은 담대히 전하지 못하니 그만큼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둘째, 천국에 대한 소망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큰 사람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여 영혼 구원에 앞장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고자 하지요.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영혼을 구원하며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와도 감사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도, 봉사, 찬양 등 주 안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영혼 구원과 직결되므로 충성되이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얼마큼 있느냐에 따라 달란트가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재능이 많은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약간 적은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아주 적은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이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즐거움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고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은 교회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는 즐거움에 참예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으로 상이 주어지며 천국 잔치에 참예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열심히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자기의 재능 안에서 충성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과 동등하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최선을 다해 감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사랑을 베푸십니다.
4.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은 주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며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 알았기 때문에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에 공의로우신 주님을 굳은 사람이라 자기의 생각에 맞춰 오해했지요.
또한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을 좇아 열심히 수고하여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땅속에 그대로 감추어 두었습니다. 곧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지 않았으니 열매를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은행에 맡겼으면 이자라도 받았을 텐데 변리도 취하지 못하게 했으니 그만큼 주인의 소유에 손해를 입힌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열 달란트 가진 자는 사명이 많아 벅찰 것 같지만 그만큼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기에 그 이상의 것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종에게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마 25:30). 이는 자기의 사명을 감당치 않고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재능인 믿음, 소망, 사랑으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열매 맺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떤 사람은 ( )를 의미하고, 타국은 ( )을 뜻한다.
2.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 ), ( ), ( )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다.
3.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40~14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달란트와 데나리온
무게와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는 달란트는 성경에서 재능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1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6천 일, 약 16년간 품삯에 해당된다.
‘1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화로, 군인이나 품꾼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금액이며, 헬라의 은화 1 드라크마의 가치를 지녔다.
2018-10-05
제40과천국의 처소와 면류관
요한계시록 21:1~2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21:1~2 | 외울말씀 : 로마서 12:3 ㅣ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9:25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 예비하신 아름다운 천국의 여러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살펴본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으면 모두가 똑같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세상과 짝하며 죄를 버리지도 않은 채 살다가 겨우 구원받은 사람과, 주님의 마음을 닮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사람이 장차 천국에서 똑같은 영광과 상급을 받는다면 공평하지 않지요.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선악 간에 심판하시며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니 각 사람이 일군 믿음의 분량에 따라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상급, 면류관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낙원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은 신앙생활 하면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낙원에 들어가는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기만 했을 뿐, 죄를 버리거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도 않았고 주를 위해 행한 것도 없습니다. 천국의 아름다운 처소와 빛나는 상급은 주 안에서 믿음으로 행하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충성하고 심은 대로 주어집니다. 하지만 낙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겨우 구원에 이르렀기 때문에 상급이나 면류관, 집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낙원의 삶은 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고 자연환경도 아름답습니다. 낙원에 들어가면 집이 없다고 해서 마냥 잔디밭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생활하기도 하지요. 천국에는 악이 없기에 공동생활을 해도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배려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2.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주어지는 1천층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경주를 하여 1천층에 들어가면 낙원과는 달리 개인 집과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비록 비진리가 많이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노력을,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하여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1천층의 집은 궁전같이 크고 화려한 건물은 아닙니다.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 형태라 할 수 있고, 안에는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이러한 집 외에는 1천층에서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시설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도 없지요. 다만 정원, 골프장, 수영장 등 1천층에 들어온 하나님의 자녀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대시설을 관리하며 시설을 이용할 때 도와주는 천사들만 있습니다.
3.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2천층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는 2천층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독립된 주택이 주어지는데,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단장되어 있습니다.
2천층에 들어온 사람들은 아름다운 호수든, 수영장이든, 산책길이든, 무도회장이든 가장 원하는 부대시설을 한 가지만 가질 수 있습니다. 2천층의 집에는 문패가 달려 있는데 천국의 글씨로 주인의 이름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2천층에 들어가면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 5:4). 이들은 마음에 온전한 할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상급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온전히 성결되지 못한 것에 민망히 여깁니다.
4.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3천층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께서 영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십니다. 이때부터는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자녀라 할 수 있지요. 낙원이나 1천층, 2천층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3천층 이상의 천국에 들어가면 각 사람에게 천사가 주어져 수종을 듭니다. 더 성결을 이루고 행함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에게는 수종 드는 천사가 많습니다. 3천층에서는 교통수단으로 구름 자가용을 이용하게 됩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사람은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지만 3천층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공용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3천층의 집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요? 2천층의 건물은 단층이며 가장 원하는 부대시설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 했습니다. 반면 3천층부터는 집이 복층으로 되어 있으며 산책길, 호수, 골프장, 수영장 등 자신이 원하는 모든 부대시설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3천층에서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들은 순교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했을 뿐 아니라,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렸습니다. 이렇게 성결을 이루고 생명을 다해 죽도록 충성하였기에 아름다운 3천층에 들어가며, 그에 대한 상급으로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5. ‘금면류관’,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새 예루살렘 성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천국 처소로 중앙에는 하나님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들을 위해 예비하신 사랑의 결정체이며, 열두 진주문을 통해 믿음의 5단계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가 들어갑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게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인 정육면체 모양입니다(계 21장). 크고 높은 성곽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벽옥으로 쌓였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마련된 집은 복층이며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져 있고,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원하는 시설은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면 의의 면류관(딤후 4:8)과 금면류관(계 4:4)이 주어지며, 이 외에도 화관, 진주관, 크리스털관, 온갖 보석이 화려하게 장식된 면류관들이 있어 각종 연회에 맞춰 사용합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천사가 그림자처럼 수종 들어 줍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배우고 보고 듣고 즐기며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끝이 없습니다. 영원한 삶의 매 순간마다 새롭고 행복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이곳에서는 항상 연회가 열리는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도 하고 주님과 성령님이 주관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연회가 열리면 각자 최고로 아름답게 단장하고 최상의 것을 먹고 마시며 아름다운 찬양과 춤을 즐기는데 그 행복과 영화로움은 가히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영광을 얻기 위해 죄악을 온전히 벗어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할 뿐 아니라, 마음에 선과 사랑을 가득 채움으로 영광의 성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이렇게 믿음의 경주를 하여 ( )에 들어가면 ( ) 면류관이 주어진다.
2. ( )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게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인 ( ) 모양이다. 크고 높은 성곽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벽옥이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32~13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옷의 문양’
천국에서는 옷의 문양만 보아도 이 땅에서 행한 것을 알 수 있다.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였다면 감사의 문양과 기쁨의 문양이 새겨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중심의 찬양을 올린 사람의 옷에는 찬양의 문양이 새겨진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생명 다해 기도한 사람의 옷에는 기도의 문양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영광 돌린 사람에게는 영광의 문양이 새겨진다. 영광의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으면 천국에서 가장 존귀한 자라 할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 예비하신 아름다운 천국의 여러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살펴본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으면 모두가 똑같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세상과 짝하며 죄를 버리지도 않은 채 살다가 겨우 구원받은 사람과, 주님의 마음을 닮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사람이 장차 천국에서 똑같은 영광과 상급을 받는다면 공평하지 않지요.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선악 간에 심판하시며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니 각 사람이 일군 믿음의 분량에 따라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상급, 면류관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낙원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은 신앙생활 하면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낙원에 들어가는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기만 했을 뿐, 죄를 버리거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도 않았고 주를 위해 행한 것도 없습니다. 천국의 아름다운 처소와 빛나는 상급은 주 안에서 믿음으로 행하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충성하고 심은 대로 주어집니다. 하지만 낙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겨우 구원에 이르렀기 때문에 상급이나 면류관, 집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낙원의 삶은 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고 자연환경도 아름답습니다. 낙원에 들어가면 집이 없다고 해서 마냥 잔디밭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생활하기도 하지요. 천국에는 악이 없기에 공동생활을 해도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배려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2.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주어지는 1천층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경주를 하여 1천층에 들어가면 낙원과는 달리 개인 집과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비록 비진리가 많이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노력을,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하여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1천층의 집은 궁전같이 크고 화려한 건물은 아닙니다.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 형태라 할 수 있고, 안에는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이러한 집 외에는 1천층에서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시설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도 없지요. 다만 정원, 골프장, 수영장 등 1천층에 들어온 하나님의 자녀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대시설을 관리하며 시설을 이용할 때 도와주는 천사들만 있습니다.
3.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2천층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는 2천층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독립된 주택이 주어지는데,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단장되어 있습니다.
2천층에 들어온 사람들은 아름다운 호수든, 수영장이든, 산책길이든, 무도회장이든 가장 원하는 부대시설을 한 가지만 가질 수 있습니다. 2천층의 집에는 문패가 달려 있는데 천국의 글씨로 주인의 이름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2천층에 들어가면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 5:4). 이들은 마음에 온전한 할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상급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온전히 성결되지 못한 것에 민망히 여깁니다.
4.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3천층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께서 영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십니다. 이때부터는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자녀라 할 수 있지요. 낙원이나 1천층, 2천층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3천층 이상의 천국에 들어가면 각 사람에게 천사가 주어져 수종을 듭니다. 더 성결을 이루고 행함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에게는 수종 드는 천사가 많습니다. 3천층에서는 교통수단으로 구름 자가용을 이용하게 됩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사람은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지만 3천층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공용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3천층의 집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요? 2천층의 건물은 단층이며 가장 원하는 부대시설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 했습니다. 반면 3천층부터는 집이 복층으로 되어 있으며 산책길, 호수, 골프장, 수영장 등 자신이 원하는 모든 부대시설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3천층에서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들은 순교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했을 뿐 아니라,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렸습니다. 이렇게 성결을 이루고 생명을 다해 죽도록 충성하였기에 아름다운 3천층에 들어가며, 그에 대한 상급으로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5. ‘금면류관’,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새 예루살렘 성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천국 처소로 중앙에는 하나님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들을 위해 예비하신 사랑의 결정체이며, 열두 진주문을 통해 믿음의 5단계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가 들어갑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게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인 정육면체 모양입니다(계 21장). 크고 높은 성곽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벽옥으로 쌓였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마련된 집은 복층이며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져 있고,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원하는 시설은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면 의의 면류관(딤후 4:8)과 금면류관(계 4:4)이 주어지며, 이 외에도 화관, 진주관, 크리스털관, 온갖 보석이 화려하게 장식된 면류관들이 있어 각종 연회에 맞춰 사용합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천사가 그림자처럼 수종 들어 줍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배우고 보고 듣고 즐기며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끝이 없습니다. 영원한 삶의 매 순간마다 새롭고 행복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이곳에서는 항상 연회가 열리는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도 하고 주님과 성령님이 주관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연회가 열리면 각자 최고로 아름답게 단장하고 최상의 것을 먹고 마시며 아름다운 찬양과 춤을 즐기는데 그 행복과 영화로움은 가히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영광을 얻기 위해 죄악을 온전히 벗어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할 뿐 아니라, 마음에 선과 사랑을 가득 채움으로 영광의 성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이렇게 믿음의 경주를 하여 ( )에 들어가면 ( ) 면류관이 주어진다.
2. ( )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게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인 ( ) 모양이다. 크고 높은 성곽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벽옥이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32~13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옷의 문양’
천국에서는 옷의 문양만 보아도 이 땅에서 행한 것을 알 수 있다.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였다면 감사의 문양과 기쁨의 문양이 새겨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중심의 찬양을 올린 사람의 옷에는 찬양의 문양이 새겨진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생명 다해 기도한 사람의 옷에는 기도의 문양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영광 돌린 사람에게는 영광의 문양이 새겨진다. 영광의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으면 천국에서 가장 존귀한 자라 할 수 있다.
2018-09-28
제39과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마태복음 11:12
읽을말씀 : 마태복음 11:12 | 외울말씀 : 마태복음 11:12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13:31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름다운 천국을 믿음으로 침노하여 소유하게 한다.
올림픽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의 기쁨은 생애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 뼈를 깎는 듯한 고되고 힘든 훈련들을 잘 견디어 낸 눈물과 땀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잠시 잠깐 사는 이 세상에서도 상을 받기 위해 자신을 절제하고 고통을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요. 하물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믿음으로 침노하는 천국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할 수도 없는 빛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는다는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김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 사단은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주님을 믿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라 할지라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어떻게든 죄를 짓도록 미혹합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최후 승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직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성결을 이루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만큼 믿음이 성장하므로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마태복음 11장 12절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침노를 당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역을 이루시도록 그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하지요.
구약 시대는 율법 시대로 율법의 행위로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드시 율법을 지켜 행해야 했고 지키지 못하여 범죄했을 때는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사함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신약 시대는 율법대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인도함 받아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약 시대를 성령 시대, 은혜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는 은혜의 시대이니 죄를 지어도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신약 시대에는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음에 악을 품은 자체로 죄가 성립이 됩니다. 하물며 행위적으로 범죄한다면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현저히 육체의 일을 하는 자’ 곧 음행, 호색, 우상 숭배, 분쟁, 투기, 방탕함 등 행함으로 범죄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날마다 믿음을 성장시켜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의 악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는 구약 시대보다 구원받기가 더 어려울까요? 구약 시대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율법을 지켜야 했다면,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버릴 수 있고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 악을 행하던 사람이 선을 행해 나갑니다.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죄의 성질도 버리며 성결한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버리거나 변화될 수도 없지만, 주님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믿기 전에는 술, 담배를 끊는 것이 힘들었는데,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를 버리고자 노력해 갈 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속에 있는 죄성까지 뽑아 버리게 됩니다. 이처럼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에 믿음으로 구원받고 죄를 버리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3.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면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도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좋은 곳을 사모하여 침노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는 영의 하늘에 속해 있으며 영의 하늘은 이 육의 하늘과 차원이 다른 영역입니다. 영의 하늘도 다시 여러 하늘로 나뉩니다(느 9:6, 왕상 8:27).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는 사도 바울의 영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말합니다. 셋째 하늘이 있으면 첫째, 둘째 하늘도 있고, 그 이상의 하늘도 존재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 하늘 중에서 바울이 말하는 셋째 하늘은 바로 천국이 있는 하늘입니다. 그리고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천국이 있는 셋째 하늘 중에서도 낙원을 보았는데 이를 차마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낙원은 어떤 곳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한 한편 강도와 같이 간신히 구원받은 사람이 가는 천국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 일도 없어 상급이 없는 사람이 가는 곳으로 천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입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사도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 성이 나옵니다. 천국에서 가장 영화로운 처소 곧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마음의 성결을 온전히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천국에는 겨우 구원받은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인 낙원이 있는가 하면, 주님을 닮아 온 영의 마음을 이룬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처소가 있으며,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천국 처소가 결정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만큼 더 좋은 처소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한 성도들의 믿음은 겨자씨처럼 작지만 그 씨를 자신의 마음 밭에 심고 열심히 가꾸면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울창한 나무와 같이 큰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큰 나무에 많은 새가 깃들이듯이 믿음이 큰 사람은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큰 사람은 수많은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영적 성장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며 행복한 것을 상상한다 해도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의 삶과도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과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대해 알수록 이 땅의 것이 헛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삶을 마치는 순간, 자신의 천국 처소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부지런히 천국을 침노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까지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 )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한다.
2.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24~13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늘들’이란?(렘 51:15, 시 68:33)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은 크게 넷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하늘’은 이 땅에 속한 육의 세계를 말한다.
‘둘째 하늘’은 ‘공중’(살전 4:17)으로 표현되며,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으로 나뉜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까지 살았던 에덴동산과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신 후 혼인 잔치 하는 공간이 빛의 영역이라면, 악한 영들이 거하는 곳이 어둠의 영역이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자녀가 들어갈 천국이 있는 곳이다.
낙원에서 새 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처소가 있다.
‘넷째 하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곳이다.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름다운 천국을 믿음으로 침노하여 소유하게 한다.
올림픽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의 기쁨은 생애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 뼈를 깎는 듯한 고되고 힘든 훈련들을 잘 견디어 낸 눈물과 땀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잠시 잠깐 사는 이 세상에서도 상을 받기 위해 자신을 절제하고 고통을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요. 하물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믿음으로 침노하는 천국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할 수도 없는 빛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는다는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김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 사단은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주님을 믿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라 할지라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어떻게든 죄를 짓도록 미혹합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최후 승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직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성결을 이루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만큼 믿음이 성장하므로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마태복음 11장 12절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침노를 당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역을 이루시도록 그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하지요.
구약 시대는 율법 시대로 율법의 행위로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드시 율법을 지켜 행해야 했고 지키지 못하여 범죄했을 때는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사함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신약 시대는 율법대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인도함 받아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약 시대를 성령 시대, 은혜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는 은혜의 시대이니 죄를 지어도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신약 시대에는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음에 악을 품은 자체로 죄가 성립이 됩니다. 하물며 행위적으로 범죄한다면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현저히 육체의 일을 하는 자’ 곧 음행, 호색, 우상 숭배, 분쟁, 투기, 방탕함 등 행함으로 범죄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날마다 믿음을 성장시켜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의 악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는 구약 시대보다 구원받기가 더 어려울까요? 구약 시대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율법을 지켜야 했다면,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버릴 수 있고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 악을 행하던 사람이 선을 행해 나갑니다.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죄의 성질도 버리며 성결한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버리거나 변화될 수도 없지만, 주님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믿기 전에는 술, 담배를 끊는 것이 힘들었는데,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를 버리고자 노력해 갈 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속에 있는 죄성까지 뽑아 버리게 됩니다. 이처럼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에 믿음으로 구원받고 죄를 버리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3.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면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도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좋은 곳을 사모하여 침노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는 영의 하늘에 속해 있으며 영의 하늘은 이 육의 하늘과 차원이 다른 영역입니다. 영의 하늘도 다시 여러 하늘로 나뉩니다(느 9:6, 왕상 8:27).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는 사도 바울의 영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말합니다. 셋째 하늘이 있으면 첫째, 둘째 하늘도 있고, 그 이상의 하늘도 존재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 하늘 중에서 바울이 말하는 셋째 하늘은 바로 천국이 있는 하늘입니다. 그리고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천국이 있는 셋째 하늘 중에서도 낙원을 보았는데 이를 차마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낙원은 어떤 곳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한 한편 강도와 같이 간신히 구원받은 사람이 가는 천국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 일도 없어 상급이 없는 사람이 가는 곳으로 천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입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사도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 성이 나옵니다. 천국에서 가장 영화로운 처소 곧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마음의 성결을 온전히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천국에는 겨우 구원받은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인 낙원이 있는가 하면, 주님을 닮아 온 영의 마음을 이룬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처소가 있으며,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천국 처소가 결정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만큼 더 좋은 처소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한 성도들의 믿음은 겨자씨처럼 작지만 그 씨를 자신의 마음 밭에 심고 열심히 가꾸면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울창한 나무와 같이 큰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큰 나무에 많은 새가 깃들이듯이 믿음이 큰 사람은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큰 사람은 수많은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영적 성장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며 행복한 것을 상상한다 해도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의 삶과도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과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대해 알수록 이 땅의 것이 헛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삶을 마치는 순간, 자신의 천국 처소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부지런히 천국을 침노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까지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 )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한다.
2.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24~13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늘들’이란?(렘 51:15, 시 68:33)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은 크게 넷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하늘’은 이 땅에 속한 육의 세계를 말한다.
‘둘째 하늘’은 ‘공중’(살전 4:17)으로 표현되며,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으로 나뉜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까지 살았던 에덴동산과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신 후 혼인 잔치 하는 공간이 빛의 영역이라면, 악한 영들이 거하는 곳이 어둠의 영역이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자녀가 들어갈 천국이 있는 곳이다.
낙원에서 새 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처소가 있다.
‘넷째 하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곳이다.
2018-09-24
제0과추석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로마서 12:18
읽을말씀 : 로마서 12:18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오늘은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308장 ---------------------- 다 같이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 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2. 추수 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
3. 먼동 틀 때 일어나서 일찍 들에 나아가
황혼 때가 되기까지 추수하게 하소서
4. 거둬 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주가 베풀 잔치 자리 우리 참여 하겠네
후렴
무르 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아멘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18 -------------------- 인도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설 교 ----------------------- 화목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어느 노부부가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지요. 식사 때가 되어 할아버지에게 상은 차려 주었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내가 침묵하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지요. 그러다가 순간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서랍을 뒤지며 열심히 찾는 것이었지요. 할머니는 처음에는 못 본 척 하다가 옷장 속의 옷이며 서랍 안의 물건들까지 다 꺼내 놓으니 왜 그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뭘 찾는데 그래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지 뭐야.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구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이제 화 풀어요.” 하며 사과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이내 마음이 풀어져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다투지 않고 화평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어느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
두 번째로, 자기 의와 틀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는 옳다고 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화평을 깬다.”고 한다면, 정말 상대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내가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지요.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입니다.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올해도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더욱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오늘은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308장 ---------------------- 다 같이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 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2. 추수 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
3. 먼동 틀 때 일어나서 일찍 들에 나아가
황혼 때가 되기까지 추수하게 하소서
4. 거둬 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주가 베풀 잔치 자리 우리 참여 하겠네
후렴
무르 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아멘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18 -------------------- 인도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설 교 ----------------------- 화목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어느 노부부가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지요. 식사 때가 되어 할아버지에게 상은 차려 주었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내가 침묵하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지요. 그러다가 순간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서랍을 뒤지며 열심히 찾는 것이었지요. 할머니는 처음에는 못 본 척 하다가 옷장 속의 옷이며 서랍 안의 물건들까지 다 꺼내 놓으니 왜 그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뭘 찾는데 그래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지 뭐야.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구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이제 화 풀어요.” 하며 사과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이내 마음이 풀어져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다투지 않고 화평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어느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
두 번째로, 자기 의와 틀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는 옳다고 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화평을 깬다.”고 한다면, 정말 상대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내가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지요.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입니다.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올해도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더욱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8-09-21
제38과신부단장을 잘하자
마태복음 25:1~13
읽을말씀 : 마태복음 25:1~13 | 외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23 ㅣ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5:4
교육목표 :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할 신부의 자격에 대해 깨닫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하시며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열 처녀는 하나님을 믿고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재림의 주님을 기다린다 하면서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은 성도가 있는가 하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준비를 잘한 성도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1. 열 처녀 비유
열 처녀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가 있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열 처녀는 모두 등을 들고 신랑을 기다렸지요.
밤은 깊어 가고 신랑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 처녀 모두 꾸벅꾸벅 자고 있을 때, 갑자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열 처녀는 부랴부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등을 챙겨 불을 밝혔지요.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등불이 꺼져갑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 달라” 부탁하지만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합니다. 결국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사러 갔고, 그 사이에 기다리던 신랑이 도착했지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돌아와 아무리 외쳐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무서운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가 내일도 있다.”며 깨어 있지 않고 신부단장에 힘쓰지 않습니다.
신부단장의 기회는 깨어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며 구원의 문은 한 번 닫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은 기름이 떨어져도 느끼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를 통해 항상 깨어 있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온전히 신부단장을 마치라고 당부하십니다.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하셨지요.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세상과 짝하며 쾌락을 즐긴다면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며 구원과도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주님의 신부 된 자격을 갖추려면
성경을 보면 주님을 ‘신랑’, 성도를 ‘신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이 땅에서 시작된 6천 년 인간 경작이 마쳐지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셔서 신부단장에 힘쓴 성도들과 함께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벌입니다.
장차 될 일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19장 9절을 보면 “어린양(곧 주님)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초청받아 들어간다는 것은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뜻이니 복이 있다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 땅에 남아 7년 대환난을 겪게 됩니다. 그러니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깨어 있어 신부단장에 힘쓰며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랑 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부의 자격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어떠한 시험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은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온전히 순종하여 믿음의 행함을 증거로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약속의 씨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육신의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어떻습니까?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을 만들어 다니엘의 세 친구 곧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절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절을 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고 위협하였지요(단 3:15).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 앞에 결코 절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담대히 고백합니다. 결국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 신상에 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무 불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도록 지켜 주셨기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며 크게 영광 돌렸지요.
둘째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흠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교양과 지식으로 겉을 거룩하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했습니다(삼상 16:7).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청결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했습니다. 마음을 더럽게 하는 죄악을 온전히 버려야 마음이 청결해지고 자기 몸과 주변도 청결히 합니다.
성경에서는 마음을 청결케 하는 것을 ‘두루마기를 빤다’고 표현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했습니다. 만일 옷에 오물이 묻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깨끗이 빨아서 입을 것입니다. 마음에 묻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물인 하나님 말씀으로 깨끗이 씻어 내야지요. 다투고 혈기 내던 사람은 혈기를 버려야 하고, 교만한 사람은 낮아지고 섬기며,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결해지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오히려 품게 됩니다.
셋째로, 기름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은 기도와 성령 충만함을 뜻합니다. 기름이 있어야 등에 불을 밝힐 수 있듯이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영혼의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충만함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점차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죄악 가운데 살다가 결국에는 구원에도 이를 수 없지요. 만일 미련한 다섯 처녀가 깨어 있어 신랑이 더디 오는 것을 알았다면 기름을 넉넉히 준비해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주 안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습니다(살전 5:4). 그러나 깨어 있지 않으면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으로 다 멸하기까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은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기름 준비는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믿음도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신부단장을 잘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갖춰야 할 신부 자격은 무엇일까요?
① 어떠한 시험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 )을 가져야 한다.
②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 )이 없어야 한다.
③ 기름 준비하고 ( ) 있어야 한다.
2.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한다. 이때 기름은 ( )와 성령 충만함을 뜻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15~12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계 19:9)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신부의 자격으로 7년 동안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하는 잔치를 가리킨다. 주님이 공중 강림하시면 구원받은 모든 영혼이 신부로서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한다.
이때 구원받은 자녀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7년 동안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베푸신다. 장차 백보좌 대심판을 통해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천국의 처소와 상급으로 갚아 주지만, 그 이전에 혼인 잔치를 베풀어 주님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하신다.
교육목표 :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할 신부의 자격에 대해 깨닫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하시며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열 처녀는 하나님을 믿고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재림의 주님을 기다린다 하면서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은 성도가 있는가 하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준비를 잘한 성도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1. 열 처녀 비유
열 처녀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가 있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열 처녀는 모두 등을 들고 신랑을 기다렸지요.
밤은 깊어 가고 신랑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 처녀 모두 꾸벅꾸벅 자고 있을 때, 갑자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열 처녀는 부랴부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등을 챙겨 불을 밝혔지요.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등불이 꺼져갑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 달라” 부탁하지만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합니다. 결국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사러 갔고, 그 사이에 기다리던 신랑이 도착했지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돌아와 아무리 외쳐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무서운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가 내일도 있다.”며 깨어 있지 않고 신부단장에 힘쓰지 않습니다.
신부단장의 기회는 깨어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며 구원의 문은 한 번 닫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은 기름이 떨어져도 느끼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를 통해 항상 깨어 있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온전히 신부단장을 마치라고 당부하십니다.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하셨지요.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세상과 짝하며 쾌락을 즐긴다면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며 구원과도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주님의 신부 된 자격을 갖추려면
성경을 보면 주님을 ‘신랑’, 성도를 ‘신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이 땅에서 시작된 6천 년 인간 경작이 마쳐지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셔서 신부단장에 힘쓴 성도들과 함께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벌입니다.
장차 될 일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19장 9절을 보면 “어린양(곧 주님)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초청받아 들어간다는 것은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뜻이니 복이 있다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 땅에 남아 7년 대환난을 겪게 됩니다. 그러니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깨어 있어 신부단장에 힘쓰며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랑 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부의 자격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어떠한 시험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은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온전히 순종하여 믿음의 행함을 증거로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약속의 씨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육신의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어떻습니까?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을 만들어 다니엘의 세 친구 곧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절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절을 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고 위협하였지요(단 3:15).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 앞에 결코 절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담대히 고백합니다. 결국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 신상에 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무 불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도록 지켜 주셨기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며 크게 영광 돌렸지요.
둘째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흠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교양과 지식으로 겉을 거룩하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했습니다(삼상 16:7).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청결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했습니다. 마음을 더럽게 하는 죄악을 온전히 버려야 마음이 청결해지고 자기 몸과 주변도 청결히 합니다.
성경에서는 마음을 청결케 하는 것을 ‘두루마기를 빤다’고 표현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했습니다. 만일 옷에 오물이 묻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깨끗이 빨아서 입을 것입니다. 마음에 묻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물인 하나님 말씀으로 깨끗이 씻어 내야지요. 다투고 혈기 내던 사람은 혈기를 버려야 하고, 교만한 사람은 낮아지고 섬기며,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결해지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오히려 품게 됩니다.
셋째로, 기름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은 기도와 성령 충만함을 뜻합니다. 기름이 있어야 등에 불을 밝힐 수 있듯이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영혼의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충만함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점차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죄악 가운데 살다가 결국에는 구원에도 이를 수 없지요. 만일 미련한 다섯 처녀가 깨어 있어 신랑이 더디 오는 것을 알았다면 기름을 넉넉히 준비해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주 안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습니다(살전 5:4). 그러나 깨어 있지 않으면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으로 다 멸하기까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은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기름 준비는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믿음도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신부단장을 잘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갖춰야 할 신부 자격은 무엇일까요?
① 어떠한 시험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 )을 가져야 한다.
②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 )이 없어야 한다.
③ 기름 준비하고 ( ) 있어야 한다.
2.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한다. 이때 기름은 ( )와 성령 충만함을 뜻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15~12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계 19:9)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신부의 자격으로 7년 동안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하는 잔치를 가리킨다. 주님이 공중 강림하시면 구원받은 모든 영혼이 신부로서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한다.
이때 구원받은 자녀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7년 동안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베푸신다. 장차 백보좌 대심판을 통해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천국의 처소와 상급으로 갚아 주지만, 그 이전에 혼인 잔치를 베풀어 주님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