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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사는 밥이다
설교자 정구영 목사 설교본문 살전 5:16-18 등록일자 2019.11.17
오늘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때를 따라 햇볕과 비와 바람을 주심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로 만들어 주는 감사의 중요성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풍파 많은 이 세상 속에서 아름답게 목표를 향해 갈 수 있게 하는 감사에 대해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감사는 절망을 이기는 고성능의 공격 무기입니다

감사가 어떻게 절망을 이기는 고성능 공격 무기가 되는지 한 여대생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 저자 이지선씨입니다.
그녀는 대학교 때 음주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는 했지만 지옥 같은 중환자실 생활을 견뎌야 했고, 다섯 차례에 걸친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지요. 그러나 이식받은 피부가 당기는 고통과 가려움에 또다시 절망해야 했습니다. 그녀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배운 몇 가지 중에 하나가 감사였습니다.
이분이 2000년도에 사고를 당했는데 피부 이식을 받기 위해 진물을 닦아내고 살균 소독을 반복하는 일이 미쳐 버릴 것처럼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진통제 한 대를 맞으면 3시간 정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데 하루에 3대 이상은 맞지 못하므로 9시간 외 나머지 시간은 고스란히 그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지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나날 가운데 절망하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감사 제목을 써 보자는 것이었지요. 현실을 보면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짜증이 나서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찾으니까 신기하게도 감사의 조건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내 발로 걸어서 화장실 갔던 날을 감사했다. 처음으로 왼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내 입에 밥을 넣을 수 있었던 날을 감사했다. 손에 피가 나도록 안간힘을 써도 문을 열지 못했는데, 처음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 수 있어서 감사했다. 처음으로 환자복 단추구멍 하나를 내 손가락으로 채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걸어서 몇 계단을 올라갈 수 있음에 감사했고, 그런 일도 없는 날에는 살아 있어서 가족과 서로 눈을 맞추고 대화할 수 있어 감사했다. 또 유일하게 하나도 다치지 않은 발을 씻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이지선 씨는 처음에는 엄마가 감사 제목을 찾으라고 하니까 억지로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진정으로 감사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이렇게 감사의 제목을 주신 분께서 내일 감사할 거리를 주실 것을 기대하는 믿음도 생겼지요. 통증이 심할 때는 진통제를 맞으면 그나마 좀 나아졌지만 감사를 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진통제가 줄 수 없는 평안이 임했습니다. 감사는 미미하지만 어제보다 좋아진 오늘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주었고, 오늘보다 좋아질 내일을 소망할 힘을 주었습니다.
피부 이식을 마치고 마침내 퇴원해서 집으로 왔지만 이식한 피부가 가렵고 당기며 쪼그라드는 고통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피부가 당기다 보니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모아지지가 않았지요. 그런데 퇴원 후 한 달쯤 돼서 처음으로 입을 다물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어느 날은 재활 운동을 시켜 주던 오빠가 소가죽보다 단단한 피부를 뚫고 나온 몇가닥 눈썹을 발견하고 환희의 소리를 질렀고, 그녀는 너무 좋아서 잠자던 아빠를 깨워 감사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살기 위한 감사를 드렸는데, 어느 때부터는 자신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서 더 감사하였지요. 그녀는 인간으로서 헤어나기 힘든 그 절망의 순간에 자신을 지탱해 준 것이 감사 찾기였기에 ‘감사는 절망을 이기는 최상의 공격 무기다’라고 확신 있게 말했습니다.


2. 감사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나한테 까칠하게 대하는 사람을 사랑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될 때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재료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는 욕심이 없을 때 마음속에서 나옵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감사했을 때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안겨다 주지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훼잇빌에서 한인 목회를 하고 계신 안남웅 목사님의 실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분이 시무하는 교회에 왕언니로 통하는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안 목사님이 부임하기 전에 세 명의 목사님을 내보낸 경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이분과 목사님의 사이가 틀어지고 말았지요. 아무리 목사님이 화해하려고 해도 받아주질 않았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은 단단히 결심을 하고 3일 금식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금식 마지막 날 마음에서 들려오는 “너는 왜 일방적으로 미워만 하고 감사할 줄 모르느냐?”라는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는 권사님을 미워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를 본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후 목사님은 권사님에 대해 100가지 감사를 적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시간을 끙끙거리면서 적었더니 50가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 감동이 없었습니다. 계속하여 끙끙거리면서 80개까지 써내려 갔는데 아무리 머리를 짜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지요. 그러나 100가지를 채워야 되겠다는 각오로 써내려 가는데 자기도 모르는 변화가 마음에서 일어났습니다. 바로 ‘권사님한테도 이런 좋은 면이 있었네.’라는 것을 발견하였지요. 그리고 ‘내가 왜 이분을 이렇게 미워했을까?’ 생각하면서 자기가 ‘미움이라는 안경’을 가지고 권사님을 바라보았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100가지 감사를 다 적었지만 직접 전해줄 용기가 나지 않아 권사님 집 우편함에 넣고 재빨리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주일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오신 권사님은 목사님을 보자마자 “저는 목사님을 쫓아내려고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데 100가지 감사라니요!” 하며 민망해하는 것이었지요. 본의 아니게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목사님이 100가지 감사를 통해 권사님과 화해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이룰 뿐만 아니라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실화입니다.


3. 감사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를 업그레이드시켜 줍니다

다니엘은 다리오왕 시대에 전국을 다스리는 세 총리 중 한 사람으로 워낙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뛰어나 왕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국사에 대하여 고소할 틈을 찾았지만 아무 허물도 발견하지 못했지요.
그러자 이번엔 다니엘이 철저히 하나님의 율법을 좇는 데서 빌미를 잡고자 합니다. 즉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금령을 정하게 하지요. 이는 다니엘이 하루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알고 궁지에 몰아 넣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전처럼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결국 금령을 어긴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지고 말지요.
다니엘은 생명을 잃을 상황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고 자신을 모함한 무리를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사자들의 입을 봉하시니 다니엘은 전혀 해를 입지 않고 살아나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였으며 왕의 신임을 더욱 크게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감사는 밥이다”입니다. 일본 기독교계에서는 역대 일본인으로서 가장 많이 예수님을 알게 해 준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감사는 밥이다>라는 시집의 저자 미즈노 겐조를 든다고 합니다.
미즈노 겐조는 장애인 시인입니다. 그는 11세 때 뇌성마비에 걸려 언어 능력을 상실하고 전신이 마비돼 평생 누워 지냈습니다. 그런데 미야오 목사를 통해 주님을 영접하면서 그의 삶이 변화되었지요. 그의 어머니가 천장에다 성경 말씀을 붙여 놓으면 종일 보았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눈 깜박이는 것과 ‘좋아요’라는 뜻으로 얼굴에 미소 짓는 게 전부였지요.
그러면 글을 쓸 수도 없는데 어떻게 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요? 그의 어머니가 벽에 붙인 ‘아이우에오’ 오십음도표 글자를 차례대로 가리키면, 자신이 원하는 글자에 신호를 보내어 한 글자씩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만들어 마침내 시집이 나왔던 것입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그가 일본 기독교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에서 나오는 감사의 시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감사는 밥이다’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감사는 우리가 밥을 먹듯이 항상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헤어나오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결과적으로 은혜의 토양에 뿌리내린 한 나무의 ‘세 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은혜라는 말이 ‘gratia’인데 감사(gratitude)와 기쁨(gratification)도 어원이 같습니다. 은혜라는 뿌리에서 감사와 기쁨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장미꽃을 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장미꽃에 왜 가시가 있느냐!”고 불평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 뾰족한 가시 안에 이렇게 아름다운 장미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해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서 독생자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그분의 눈에는 우리가 너무나 소중하게 보이는 존재입니다. 그런 은혜를 내가 받았으니 어떤 상황 속에서도 계속하여 감사의 제목을 찾아낼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9-11-18 오후 3:56:43 Posted
2019-11-29 오후 2:32:3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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