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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1)
설교자 주현철 목사 설교본문 요일 4:7 등록일자 2019.11.03
오늘은 하나님의 근본 속성인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믿음의 증거를 내보임으로 인간 경작의 표본이 된 아브라함 선지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근본 마음이시며,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동기가 되고, 또 인간을 경작하시는 최종 목적도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근본 속성인 사랑이 어떻게 나타난 바가 되었을까요?


1. 하나님의 근본 마음은 사랑

요한일서 4장 8절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일신으로 스스로 계신 분이며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또 전지전능하시며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지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에 대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다림과 오래 참으심의 하나님, 긍휼과 자비와 용서의 하나님, 거룩하고 신실하신 하나님, 정확한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며 편벽됨이 없고 의로우신 하나님,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완전하신 하나님 등으로 기록되었지요.
그런데 어떤 곳에는 하나님이 미워하고 질투하며 심지어는 보복하시는 하나님, 진노하고 한탄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으로 기록되었는데 이러한 속성들의 근본은 결국 ‘사랑’입니다.
출애굽기 20장 5절에 보면 “그것들(우상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질투하신다고 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육적인 감정 속에 자기만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질투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는 한 영혼도 사망에 이르지 않고 모두가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오기를 원하시는 사랑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할 때 질투하실까요? 바로 자신과 자손들까지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우상 숭배의 죄를 짓는 사람에 대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라 하시며, 그들에게 질투하는 하나님이 되신다 했습니다. 이는 한 사람이라도 허망한 우상 숭배와 같은 사망의 죄 가운데 빠지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의 표현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질투는 악이 없는 오직 선과 사랑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 공의도 역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요, 주관자이며 심판자로서 편벽됨이 없으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잘한 것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축복해 주시지만 잘못한 것 즉 죄에 대해서는 연단하고 징계하시지요. 따라서 공의는 사랑과 상반된 개념 같으나 공의가 있기 때문에 사랑이 온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는 것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고, 정도에서 벗어날 때에는 징계를 해서라도 바로잡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지요.


2.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된 인간 경작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근본 속성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진정 하나님 마음을 이해하고 깨달아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원하셨지요.
하나님 주변에는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천군 천사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들은 자유 의지가 없었기에 마치 로봇 같은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자유 의지 가운데 즐거이 순종하는 사람을 지으신 뒤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를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이 땅의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서 첫 사람 아담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였지요. 육의 부모도 자녀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입을 옷가지에서부터 이부자리와 젖병,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사랑스러운 아담을 위해 최고의 것들로 준비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이라는 최고의 환경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에덴동산과 지구를 다스리는 권세까지 주셨지요. 그리고 아담 홀로 사는 것이 좋지 않아 보여 하와라는 배필도 주셨습니다. 이는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홀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아담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 주신 사랑이었지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행복한 환경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편에서 마음껏 사랑을 주어도 자신들이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사랑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상대성을 체험해 보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불행을 겪어 보지 않았기에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고, 미움을 겪어 보지 않았기에 진정한 사랑 역시 몰랐던 것입니다. 지식적으로는 알았다 하더라도 체험이 없으니 진정 마음에서는 느끼지 못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마음껏 자녀 된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되 다만 한 가지를 금했습니다. 바로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지요.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불행이나 죽음 등에 관해 알지 못했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진정으로 느끼고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사단의 사주를 받은 간교한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류를 죄 가운데로 빠지게 하고 말았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던 것일까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고, 또 범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신 이유는 인간 경작이라고 하는 숨겨진 큰 섭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 땅에 살며 경작받는 동안에 미움, 다툼, 시기, 질투, 고통, 슬픔 등 사랑과 반대되는 것들을 체험하고 느끼면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이러한 사랑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하나하나 깨달아 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유 의지 가운데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지요.
가령, 어린아이가 아무런 체험 없이 부모의 사랑을 얼마나 알겠습니까? 점차 자라면서 부모의 마음과 사랑을 깨달아 가게 되지요. 부모의 보호 밖에서 어려움도 겪어 보고 자신도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를 키워 봄으로써 그 사랑에 더 깊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 경작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 경작 최고의 목표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경작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깨닫고 이룰 수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도 그들에게 사랑을 나타내 주십니다. 장차 그들이 에덴동산을 떠나 어떠한 길을 가게 될지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마치 집을 떠나는 자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으로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시지요. 이렇게 해서 마침내 인간 경작은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이 경작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인간 경작을 잘 받아 믿음의 표상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3. 인간 경작의 표본 아브라함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참 자녀의 마음과 모습, 믿음과 행실은 어떠한 것인지를 경작받는 모든 인류에게 알리길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떠한 신앙을 가졌기에 믿음의 표본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아브라함도 온전해지기까지 몇 차례의 연단이 있었는데 하나님께 최종적으로 인정을 받은 때는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을 통과한 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음을 아셨지만,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지 못하도록 이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명을 내리시자 바로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가서 그를 결박하여 칼로 잡으려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를 막으시고 대신 숫양을 예비해 두셨다가 번제로 드리게 하셨지요.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열국의 아비가 되는 놀라운 축복과 함께 벗이라는 칭함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의 중심을 아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을 주심으로 이를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마음껏 부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보다 더욱 귀한 독자 이삭을 바침으로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을 나타냈지요. 가장 큰 사랑으로 하나님과 벗의 관계를 이루었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표본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참 자녀를 얻고 그 자녀에게 마음껏 사랑을 베푸시고자 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장차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것으로 인해 차마 입을 다물 수 없고, 너무도 감사하여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 땅에서도 그 사랑을 넘치도록 베풀어 주십니다. 강건함의 축복뿐만 아니라 범사에 잘되고 형통한 복을 주시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마음 다해 사랑함으로 예비하신 축복을 풍성히 받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드립니다.


2019-11-05 오전 10:36:18 Posted
2019-11-22 오후 11:33:0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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