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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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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0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8:22-9:3 등록일자 2003.07.18
서 론 /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인간 경작을 받으며 연단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본성 속에 있는 악까지 발견하여 버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자녀로 나와질 수가 있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악을 버리고 성결을 향해 달려감에 있어서 여러분이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자유의지를 과연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란 쉽게 말해서 여러분 스스로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의지이지요.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지킬 것인가, 지키지 않을 것인가,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 순종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등 수많은 상황 속에서 여러분에게는 바로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물론 아주 어린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자유의지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6세 정도는 넘어가야 자신의 의지 가운데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구원도 이때부터 스스로의 신앙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자유의지는 여러분이 마음을 얼마나 진리로 영으로 일구었느냐에 따라 영의 작용으로 나와질 수도 있고 반대로 얼마나 비진리와 육이 있느냐에 따라 혼의 작용으로 나와지게 됩니다. 그래서 비진리와 육이 많은 사람은 아무리 자유의지 가운데 영을 택하려 해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혼의 작용을 통해 결국은 죄의 종노릇을 하게 되지만 마음을 온전히 영으로 일군 사람은 영의 작용에 의해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100% 맞출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는 참된 자녀를 원하셔서 인간 경작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이후부터 사람의 근본 육의 속성까지 드러나는 환경 속에서 본격적인 인간 경작을 시작하셨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마치 온실에서 꽃을 재배하는 것과 같았다면 이제부터는 온실 밖으로 나와 완전히 세상과 접하는 환경 속에서 꽃을 재배하는 것과 같아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근본에 내재되어 있던 육의 속성들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의인이라 칭함 받았던 노아마저도 홍수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악의 모양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기(氣)를 통해 전해지는 악까지 쌓이면서 이전보다 더 급속히 악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아들이 아비의 허물을 형제들에게 전하자 그 소리를 듣고 노아가 이내 그 아들을 저주해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러한 상황을 다 아시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창 8:21에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 론 /

1. 근본 육의 속성이 드러난 땅

노아 홍수 이후 빛이 거두어지면서 근본 육의 속성이 드러나는 것이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땅 역시 빛이 거두어지면서 근본 육의 속성을 가진 완전한 육의 공간으로 돌아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자연의 모든 것이 근본 육의 법칙에 따라 운행되어지므로 22절에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나면서부터 이 땅은 사람으로 인해 저주를 받아 처음 하나님께서 둘러주신 빛이 많이 거두어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육의 법칙이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창 3:17 후반절 또는 19절에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하지만 노아의 홍수 이전까지는 그래도 하나님께서 둘러주신 빛이 다 거두어진 것이 아니기에 이 땅이 온전한 육의 법칙이 적용되는 공간이 아니었으나 빛이 거두어진 후부터는 지금과 같은 육의 공간이 되어지므로 이전과는 또 다른 육의 법칙이 생겨난 것입니다. 빛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땅이 사람이 살아가기에 가장 적당한 환경으로 유지가 되었으나 완전한 육의 법칙이 적용되면서부터는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이 확연히 드러나게 되고 지역에 따라서도 비옥한 곳과 척박한 곳,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과 그렇지 못한 곳으로 드러나게 되었지요. 땅이 가지고 있는 근본 육의 속성을 좇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근본 땅의 토질이 척박한 곳이라도 전에는 빛의 능력으로 인해 드러나지 않았지만 빛이 거두어지면서 근본 토질이 드러나니 점차 척박한 땅으로 변해가더라는 말이지요. 사람도 근본에 있던 육의 속성이 나오니 점차 악으로 물들어 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특히 지금의 중동 땅은 처음 인간 경작의 시작과 함께 악이 심히 관영해지므로 홍수의 심판의 원인이 되었던 곳으로서 이곳은 죄악으로 인한 저주 때문에 다른 땅들보다도 더 비옥하지 못한 척박한 환경 가운데 놓여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 처음 정착한 곳이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만큼 비옥하고 풍요로와 보이던 땅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고 저주가 임하니 근본 속성이 드러나면서 저주받은 땅이 되고 만 것입니다.

홍수 이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마음에서는 '이제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해 나가겠다' 결심했지만 완전 육의 공간으로 돌아가 근본 육의 속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땅에서 살아가게 되니 마음 먹은 것과는 달리 오히려 점차 악으로 치달아 가게 됩니다. 그러니 이러한 환경 속에서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은 근본에 내재된 육의 속성을 벗어내고 성결되어 영으로 들어온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세상 속에서도 악을 벗고 변화되어 영으로 들어온 사람을 너무나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비록 육의 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의 공간에서와 같이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데 이것이 곧 권능입니다. 즉 마음을 영으로 일군 사람은 육의 공간에서도 영의 공간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영의 공간의 일이란 육의 공간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들, 오직 육의 공간과 법칙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하실 수 있는 일들입니다.
여러분은 본 제단을 통해 이와 같은 영의 공간의 일들을 지금까지 수없이 보아오고 있습니다. 희한한 무지개, 구름의 나타나고 사라짐, 별의 이동 등을 비롯한 기사들과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 말을 하며, 귀머거리가 듣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표적들이 바로 그 증거이지요. 그리고 이제는 여러분 중에서도 마음을 영으로 일군 분들을 통해서 영의 공간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요. 비록 스스로는 아직 온전하지 않다 해도 이 제단에는 이미 영의 공간의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길들이 열려있기 때문에 그 길을 알고 나오는 분들에게는 동일한 역사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들이 여러분 모두에게도 믿음이 되어져서 신속히 육을 벗고 영으로 들어오시므로 더 이상 육의 공간에 매여있는 것이 아니라 한 차원 높은 영의 공간에 속하여 육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능력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제부터 창세기 9장으로 들어갑니다. 9장에서는 먼저 새롭게 인간 경작을 시작하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후손들에게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나옵니다.
창 9:1-2에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말씀하시지요. 본격적인 인간 경작의 시작과 함께 다시 한 번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이 예전에 아담이 이 땅에서 삶을 시작할 때 처음 주셨던 말씀과 매우 비슷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다른 차원의 말씀임을 알 수 있지요. 창 1:28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 즉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명하셨지요.
첫 사람 아담에게는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과 함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도 주셨지만 노아에게는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도 없고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말씀과 노아에게 주신 말씀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먼저, 첫 사람 아담에게 주신 말씀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자로서의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제 1하늘뿐만 아니라 제 2하늘의 에덴에 있는 모든 것들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세우셔서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노아에게 주신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제는 단지 모든 것들 위에 머리된 자로서 서열상 1위의 위치에 세우신다는 의미이지요. 짐승들에 대해서도 다스리는 차원이 아니라 짐승들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도록 질서가 세워지게 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질서상 모든 짐승들이 사람의 서열을 넘지는 못하되 더 이상 사람이 모든 짐승들의 주권자가 아니요 단지 서열상 가장 위에 놓여진 것뿐이지요.
비유를 들면 아담과 모든 짐승들 사이의 관계가 마치 임금과 백성의 관계였다면 노아 이후로는 백성들 중에서 뽑아 가장 머리로 세운 신하와 백성과의 관계라 말할 수 있습니다. 신하의 위치가 아무리 높다해도 임금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것처럼 노아 이후로는 사람들이 더 이상 만물의 주관자가 아니요 만물 중에서 서열상 가장 위에 서게 된 것이지요. 쉽게 말해 사람과 만물의 관계가 수직의 관계에서 수평의 관계로 바뀐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모든 것이 달라진 육의 환경 속에서 병균이나 질병이 본격적으로 사람에게 틈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이 땅이 저주받으면서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노아의 홍수 전까지는 활동할 수 없는 환경이었으나 이 땅이 완전히 육의 공간이 되고 나니 많은 질병과 균들이 급속하게 진전되기 시작했지요. 결국 병균들이 생겨나고 모든 질병들이 생겨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사람들의 죄악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죄악으로 심판이 찾아왔고 그러면서 빛이 거두어지며 사람들은 더 신속히 악으로 물들어감에 따라 본격적으로 질병이 이 땅에 등장한 것이지요.
이처럼 빛이 있는 것과 빛이 없는 것과는 너무나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빛이 거두어진 육의 공간에 살아가게 된 사람들을 그냥 외면하시고 놔두신 것이 아닙니다. 영의 공간과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으셔서 그들을 사사로 또는 선지자와 사도로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끊임없이 선포하시며 이끌어 오셨지요. 만약 아버지 편에서 그냥 아무런 간섭도 없이 두셨다면 사람들은 마음에 원하는 대로 행하여 점점 더 짙은 어두움 가운데로 빠져들어 갔겠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아들까지 내어주시며 잃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창 9:3을 보면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역시 처음 아담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대비되고 있지요. 창 1:29에서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하여 처음 아담에게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식물로 주셨는데 노아의 홍수 이후에는 동물까지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씨 맺는 모든 채소'란 배추나 무 같은 종류의 채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박이니 참외 같은 과일을 말하는 것이며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의 열매란 사과, 감, 복숭아, 배 등의 과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과일 종류만을 먹게 했는데 아담이 범죄하고 저주받고 나서부터 채소가 덧붙여졌던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까지는 번제를 위한 것 외에는 임의로 어떤 짐승을 죽인다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홍수 이후에는 살생이라는 것이 나타나고 짐승들 사이에도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법칙이 존재하게 됩니다. 사람만 짐승을 잡아 죽여서 식물을 삼은 것이 아니라 짐승들 사이에도 서로를 죽이고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들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너무나 마음 아프시고 한탄스러운 상황이지만 육으로 돌아가 버린 공간 안에서는 점차 이러한 상황들이 심해져만 갑니다. 사람들 역시 하나님께서 동물을 식물로 허락하셨다해도 거기에는 지켜야 할 선(線)이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이 선마저 넘으며 변질되어 가자 하나님께서 나중에는 가증한 짐승과 그렇지 않은 짐승으로 나누어 짐승들 중에서도 먹어야 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누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지요. 즉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식물로 허락하신 동물은 정결한 짐승에 속하는 얼마 안 되는 종류였는데 사람들이 악이 더해지면서 자꾸 정해주신 선(線)을 넘게 되자 레위기에 나오듯이 먹지 말아야할 가증한 짐승의 범위를 확실하게 정해주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이 육의 공간이 되어짐에 따라 모든 것이 이전과 같지 않아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도 쉽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나가기도 쉽지 않아졌지요. 그럼에도 중심이 선한 사람들은 이 육의 공간에서 악에 물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예전에도 선한 사람들은 반드시 신을 찾았고 신의 음성을 들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물며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는 것 또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을 밝히 듣는다고 하는 것은 심히 정상적인 일인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을 발견하셨을 때 얼마나 그 마음이 기쁘시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님 편에서도 사랑해 주시며 마음껏 축복해 주실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아담의 범죄 이후에 잃었던 만물의 주관자로서의 위치도 되찾아 갈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만물의 주관자로 세워졌던 사람이 아담의 범죄 이후 그 자격을 잃게 되고 홍수 이후에는 그나마 만물과의 관계가 수직의 관계에서 수평의 관계로 전락하고 말았던 인간이지만 그 마음이 육에 물들지 않고 영으로 일구어 영의 공간에 속한 자가 되어지면 다시금 잃었던 만물의 주관자로서의 권세를 회복해 나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의 권세와 능력이 따르게 되어 만물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강해를 통해 주시는 말씀들이 이러한 축복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밝히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말씀이 여러분에게 온전히 양식되고 능력이 되어 영의 공간에 속한 영의 사람들로 나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5-04-30 오후 1:24:0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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