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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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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0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9:8-17 등록일자 2003.08.08
서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민수기 23:19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고 약속하신 바를 철저히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사람 편에서 믿음으로 받지 못했거나 변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4에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하셨는데 결국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열국의 아비가 되었지요. 또한 창세기 17:8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말씀하셨는데 이같은 내용의 언약을 이삭과 야곱에게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까지도 약속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인도받아 나가고 있지요.
레위기 26:42-44에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 그들이 나의 법도를 싫어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땅이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으로 형벌을 순히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대적의 땅에 거할 때에 내가 싫어 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여 나의 그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라"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것이지요.
이 말씀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여러 번 반복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예언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떠나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을 때는 주변 이방 나라들에 의해 침략을 당하였고 결국 나라가 사라지는 듯한 상황들이 있었지요.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하신 언약을 폐하지 않으시므로 그들을 싫어 버리지 않으셨고 미워하지 않으셨으며 아주 멸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나라가 멸망하고 백성들이 포로가 되었다가도 통회자복하면 다시 본토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하곤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우신 언약 때문이라는 말이지요. 당장은 나라를 잃고 언약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영원히 그 후손에게 주신다"고 언약하신 대로 항상 그 땅을 회복시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1948년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사라진지 1900여 년 만에 다시금 나라를 세우고 독립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셨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금 확증하셨지요.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번 하신 약속을 이처럼 결코 변개함이 없이 지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을 주실 때,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네가 이렇게 하면 축복을 주시겠다"고 단서를 붙이시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지요.
하나님 편에서 단서를 붙여주신 경우라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람 편에서 그 단서의 조건을 충족시킬 때에 누구나 차별없이 반드시 언약의 말씀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반면에 아무런 조건 없이 언약의 말씀을 주신 경우는 당장에 이루어질 것처럼 생각할 수가 있는데 실은 아무런 조건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가 바로 축복받을 그릇 준비를 위해 본격적으로 만들어 가시는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예지 예정 가운데 언약의 말씀을 주셨지만 에스겔 36:36 후반절-37절 전반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말씀하신 대로 사람 편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행함과 간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 받았어도 만약 믿음으로 받지 못했거나 자기가 해야 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지요. 다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지 예정하심 가운데 미리 축복의 말씀을 주시고 인도해 가시는 경우는 조건을 붙여서 축복의 말씀을 주시는 경우와는 달리 강권적인 섭리 안에서 이끌어 가시기 때문에 결국에는 반드시 언약의 말씀이 응하여 축복의 길로 나가게 됩니다. 요셉의 경우도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언약을 주셨는데 친히 요셉의 길을 인도해 가심으로 마침내는 꿈의 언약이 이루어지도록 하셨지요.
이러한 말씀들을 잘 분별하셔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축복 주신다 약속하셨는데 왜 아직까지 축복이 없는가?'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축복 주신다고 했으니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견뎌보자' 생각할 수도 있지요. 정녕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여 축복받을 그릇이라면 언약의 말씀을 끝까지 변함없이 믿을 것이며 또한 축복이 오는 순간까지 아무 노력 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 편에서도 축복받기 위한 믿음의 행함을 계속해 나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본 론 /

1. 무지개와 영의 공간의 일들

본문은 하나님께서 홍수 이후에 이 땅에 살아갈 사람들과 땅에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과 그 언약의 증거로서 주신 무지개에 대한 내용입니다.
노아의 홍수라는 인간 경작의 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획을 긋는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는 육과 영으로 나누어진 공간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세우시고 사람들도 육과 영의 공간의 차이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십니다. 홍수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둘러주신 빛으로 인해 이 땅도 모든 것이 영의 공간에서처럼 운행되고 있었으나 홍수 후에 빛이 거두어지면서부터는 이 땅이 완전히 육의 공간이 되면서 모든 것이 육의 속성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공중 권세잡고 있던 악의 영들의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물론 아담이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난 이후 악의 영들과 그의 사자들은 끊임없이 이 땅의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마침내는 홍수의 심판이라는 결과를 맞기까지 사람들을 악으로 이끌어갔지요. 하지만 완전히 육의 공간이 되어버린 이 세상은 이제 더욱 원수마귀사단이 활동하기에 좋은 환경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홍수 이전과 홍수 이후에 이 땅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되어버렸고 이러한 변화로 인해 둘째 하늘 즉 에덴 동산에 사는 사람들이 첫째 하늘로 내려오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에 창세기 강해를 통해 설명드린 대로 아담이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나자 이때부터 에덴 동산과 이 땅 사이의 왕래가 제한되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완전히 제한된 것이 아니라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해서 살만큼 그때까지는 비교적 왕래하는 것이 자유로웠는데 홍수의 심판 이후로는 에덴 동산과 이 땅 사이의 왕래가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을 관장하고 있는 그룹의 허락 없이는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임의대로 이 땅에 내려올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더 이상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이 육의 세상으로 내려와 타락하는 것을 막으려는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 세상이 완전히 육의 공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지요. 육과 영의 선이 완전히 그어진 상황에서 영의 공간에 속한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육의 공간에 임의로 나오는 것이 더 이상 합당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는 엄연한 구분이 있어서 그 경계를 오고가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에덴 동산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셋째 하늘에 있는 영의 존재들도 육의 세상으로 내려올 때는 엄격한 질서와 법칙에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 때나 아무 곳에나 선지자들이 이 땅에 내려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천사장이나 천사들도 내려올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육의 법칙으로 모든 것이 제한된 육의 공간 안에서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에 맞아야만이 영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스스로도 육의 공간의 법칙을 무시한 채 영의 법칙대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그렇다고 해서 육의 공간이 되어버린 이 세상이 더 이상 하나님의 간섭없이 육의 법칙에 의해서만 운행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빛이 존재하고 있을 때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간섭해 나가시는 것은 아니지만 육의 근본 속성으로 돌아간 공간 안에서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에 맞추어 역사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11절에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의 의미가 문자적으로는 단순히 "물의 심판이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지만 영적으로는 "육의 공간이 되어버린 이 세상이라 해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공의와 사랑 가운데 모든 것을 운행해 가신다"는 의미이지요.
13절에는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의미로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신 것이 아니라 "비록 육의 공간 안이지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성립되어지면 영의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로서 언약의 무지개를 두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구름'은 단순히 이 땅의 구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2 하늘이라는 영의 공간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공간을 의미하는 구름 속에 바로 언약의 증거인 무지개를 두셨다는 것은 비록 육의 공간이 되어버린 이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육의 공간 속에서도 영의 공간의 일들로 역사해 가신다는 의미가 되지요. 쉽게 말해 '이제 이 땅이 육의 공간이 되었으니 영의 공간에 계신 하나님과는 완전히 상관없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간섭하실 것이고 공의와 사랑에 맞추어 육의 공간 안에서도 영의 공간의 일들을 나타내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공의와 사랑에 맞추어 계속 육의 공간 안에서 역사하지 않으신다면 이 세상은 완전히 원수 마귀 사단에게 사로잡힌 어둠의 공간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빛이 거두어진 후에도 계속해서 육의 공간 안에 영의 공간의 일들을 펼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갈 수 있도록 하셨지요.

그런데 육의 공간 안에서 영의 공간의 일들을 나타내시기 위해서는 믿음과 순종과 사랑으로서 육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계신 영의 공간을 육의 공간 안에 펼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지요. 이러한 도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을 영으로 일구어 마음으로서 영이신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영으로써 마음이 통할 때 하나님께 속한 영의 공간을 이 땅에 펼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주어지기 때문이지요.
이번 주의 종 교육 때 영과 공간과 마음에 대해 설명드린 것이 바로 여러분을 통해서도 이러한 역사들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들을 잘 양식 삼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든다면 능히 여러분을 통해서도 영의 공간의 일들이 육의 공간 안에서 펼쳐질 수가 있지요.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본교회와 전국 및 전세계의 지교회 상공에 나타나는 원형 무지개와 갖가지 희한한 무지개입니다.

2. 하나님 보좌를 두르고 있는 무지개

성경을 보면 무지개에 대한 기록이 본문을 포함하여 네 번에 걸쳐 나옴을 알 수 있지요.
먼저 에스겔 1:28에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하였지요. 바로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에서 나오는 사면 광채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다고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계시록 4:3에는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말씀하십니다. 천국 하나님의 보좌를 무지개가 두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계시록 10:1에는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했습니다. 장차 칠년 환난 때에 심판하는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있는 힘센 천사의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무지개는 하나님의 형상이나 하나님의 보좌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예외적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고 오는 특별한 천사에게는 그 증거로서 머리 위에 무지개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에서는 무지개를 단순히 물방울에 비친 빛이 굴절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가설을 내세우고 있지만, 영적으로 무지개는 이처럼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무지개를 사람들과의 언약의 증거로서 구름 속에 주신 것입니다.

3. 본 제단에 나타나는 무지개

이러한 무지개가 본 제단에는 1년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나타나고 있으니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희한하고 특이한 모양의 무지개는 물론이고, 비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반원형 무지개가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 선명하게 뜨기도 하고, 심지어는 본교회의 심벌마크처럼 된 원형 무지개는 본교회 상공과 지교회 상공을 가리지 않고 너무나 자주 뜨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세상 과학으로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 비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가 선명히 뜨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러한 무지개는 본 교회 성전 안에서도 여러 번 관찰되었고 사택의 방 안에서도 자주 관찰되는 현상이지요. 어떤 성도님들은 자기 방 안에 무지개가 선명하게 떴다고 간증하기도 하였지요.
그러면 해 주위로 뜨는 원형 무지개를 한번이라도 보신 적이 있나요? 저희가 수시로 보고 있는 원형 무지개를 세상의 과학에서는 해무리라 부르기도 합니다. 해무리란 해 주변에 가끔 보이는 둥근 흰고리를 말하는데 세상 과학자들은 햇빛이 얼음알갱이를 통과하면서 굴절되어 생긴다고 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여기에 대한 가장 가능성 있는 가설의 하나이지 진리는 아닌 것입니다. 세상 지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수정되는 것을 봅니다. 그 당시에는 진실이라 하였으나 지식이 쌓이고 더 많은 경험을 함으로써 그 진실이 바뀌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한국 기상청에서 관찰한 해무리의 수는 지난 93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 연평균 20여개였다고 합니다. 요즈음 신문이나 TV를 보면 몇 년만에 처음으로 해무리가 관찰되었다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해외에서도 처음 원형 무지개를 보았다고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되고요. 이와 같이 원형 무지개를 세상 사람들이 본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또한 보게 되면 너무너무 신기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대부분 본교회에 원형 무지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전혀 그런 모양의 무지개를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하늘 보기를 좋아했습니다만 그 이전까지 원형 무지개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본교회에서 관찰된 원형 무지개의 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본교회는 아쉽게도 지난 2000년도부터의 자료밖에 없어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지난 3년간의 자료만을 가지고 통계를 내보았습니다. 그것도 국내․외 지교회 및 해외선교 때 뜬 것은 제외하고 단지 본교회가 있는 서울의 구로동과 사택이 있는 신대방동 근처에서만 관찰된 것이었지요. 이렇게 해서 관찰된 원형 무지개의 숫자가 무려 1년에 200여 개를 훨씬 넘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러니 지난 3년을 종합하면 무려 600여 개가 훨씬 넘는 원형 무지개가 본교회와 사택 근처에서만 떴다는 말입니다. 2002년도 자료를 기준으로 해서 원형 무지개가 뜬 날 수만 210회 정도 횟수로는 230여 회 정도 됩니다. 그것도 기상청에서처럼 전문 인력을 동원하여 관찰한 것이 아니라 본교회의 수많은 성도님들이 동일하게 육안으로 관측한 자료가 이 정도였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성도님들이 미처 못 본 것까지 합치면 일년에 얼마나 많은 원형 무지개가 본교회와 사택 근처에 떴는지를 능히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지교회도 마찬가지인데 밀양 만민교회의 경우, 2000년 4월부터 관찰하여 2001년에는 240일, 2002년에는 222일을 관찰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관찰된 원형무지개 중 많은 것이 놀랍게도 선명한 무지개 색깔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다양한 복합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지요. 원형무지개, 일자무지개, 쌍무지개, 대칭무지개, 비대칭 무지개 등 각종 희한한 무지개가 다 뜨고 있습니다. 이중, 삼중, 사중 무지개도 많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수시로 관찰되고 있고요. 필리핀 성회때 설교 중에 무지개에 대해 언급하니까 '짠-'하고 원형 무지개가 달 주위로 오색찬란하게 등장한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본교회 주변과 사택 근처에서는 이처럼 많이 관찰되는 이러한 원형 무지개를 기상청에서는 관측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관측된 해무리의 숫자는 단지 평균 24개였습니다. 하지만 본교회에서 관측한 자료는 이러한 원형무지개의 숫자가 무려 연평균 200여 개를 넘는다는 말입니다. 무려 10배 가까이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만약 본교회에서 관측한 자료에다가 전국의 지교회 및 해외에서 관측된 자료까지 합치면 우리 만민의 제단에는 거의 일년 내내 원형 무지개가 뜬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만민의 제단에는 시간이 갈수록 더 자주 더 많은 원형 무지개들이 나타나고 있지요. 더욱이 본교회나 지교회에 어떤 행사가 있다거나 축하할 만한 일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원형 무지개가 뜨고 있으며 믿음 있는 분들이 목자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자리에서 즉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본교회 선교팀이 해외 어디를 나가도 갖가지 희한한 무지개를 비롯하여 원형 무지개가 뜨곤 했지요. 그래서 그곳 현지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며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좋은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과학으로 세상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본교회에 나타내주시는 원형 무지개를 세상의 이론에 맞추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이는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 속에 본교회를 향하신 언약의 증표로서 나타내 주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일반적인 무지개 역시 본교회에서 관찰된 것이 기상청에서 관찰된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기상청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10년 간 공식적으로 관찰된 무지개 숫자는 연평균 1개가 안 됩니다. 지난 10년 동안 총 7번 밖에 관찰되지 않았지요. 그러므로 본교회와 지교회를 비롯한 만민의 제단 위에 역사하시는 무지개 현상은 결코 세상의 이론이나 지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와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대한 설명은 다음시간에 계속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결 론 /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증거로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듯이 때로는 확실한 증거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32-34에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 예수님의 머리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증거를 나타내셨는데 요한복음 10:25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말씀하신 대로 바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일들이었지요. 그리고 히브리서 2:4에는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임을 나타내거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 그에 따르는 증거들을 주셨지요. 그렇다면 본 제단에는 어떠한 증거들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이 보아온 증거들은 그 가지 수를 셀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 일에 증인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언약의 증거들을 본 증인으로서 이제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시며 우리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로서 우리의 구세주되심을 증거해야 하고 성경이 참임을 증거해야 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들로 역사하고 계심을 열심히 증거해야 할 것이라 이 말입니다.
히브리서 12:1-2절 전반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말씀하신 대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고 오직 주만 바라보며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디모데후서 4:7-8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말씀하신 대로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5-04-30 오후 1:24:0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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