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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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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07)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9:18-29 등록일자 2003.08.22
서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사람에게는 각 사람마다 기질(氣質)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전에 보면 기질이란 개인이나 집단의 특유의 성질이라 정의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개인이라면 그가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어떤 기(氣)와 성질(性質)을 받고 태어났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기질이 결정되겠지요.
또한 집단 역시 그 구성원이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 그 집단만의 특유의 성질인 기질이 나오게 됩니다. 물론 같은 집단내의 구성원이라 해도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기질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만한 그 집단만의 기질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개인이 되었든 집단이 되었든 그들의 기질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기질입니다. 어떤 기질을 가진 조상으로부터 시작되었느냐에 따라 그 후손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기질이 다른 것이지요. 이렇게 민족마다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지게 된 출발이 바로 노아의 세 아들들로부터였다는 사실입니다.

본 론 /

1. 노아의 세 아들로 인한 민족들의 기질

노아 홍수 이후 근본 육의 속성이 드러나게 되자 노아의 세 아들들에게서도 각자만의 기질이 나오게 되지요. 물론 홍수 이전에도 조상으로부터 전해지는 기질이 나타났지만 근본 육의 속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홍수 후부터는 그 안에 내재되어 있던 기질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들들이지만 셈에게서는 온순한 기질이, 함에게서는 급한 기질이 또한 야벳에게서는 무언가를 취하려는 기질이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 아들들의 기질은 장차 그들을 통해 나오게 될 민족들의 기질로서 그대로 전해지지요. 오늘날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민족들을 살펴보면 그 민족 나름대로의 기질이 존재하는 것을 보는데 이것이 바로 노아의 세 아들들 중에 누구로부터 비롯된 민족이냐에 따라 그 민족의 근본에 깔려있는 기질이 결정되었다는 말입니다.
온순한 기질을 가진 셈의 후예냐 아니면 급한 기질을 가진 함의 후예냐에 따라 그 후손들의 기질에 차이가 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민족은 유순한 민족성을 가지기도 하고 또 어떤 민족은 호전적이고 거친 민족성을 가지기도 합니다. 물론 온순한 기질을 가진 셈의 후예라 해도 이러한 셈의 아들들 중에 어떤 아들을 통해 나와진 후예냐에 따라 그 기질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지만 민족 전체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기질에는 그 민족이 어떤 조상으로부터 시작되었느냐가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가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요. 예를 들어 한 가정에 여러 명의 자녀가 있다고 할 때그 자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적인 기질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로부터 공통적으로 전해 받은 기질이지요. 하지만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이라도 그 각각의 개개인에게서는 동시에 자기만의 특별한 기질이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같은 부모로부터 전해 받은 공통적인 기질도 있지만 반면에 각각의 개인에게 더 강하게 나타나는 자기만의 독특한 기질도 있다는 말이지요.
노아의 세 아들들로부터 퍼져나간 민족들도 이러한 양면적인 요소들이 결합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기질을 가진 여러 민족들로 나눠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광범위하게 보면 공통된 기질을 가진 집단이라 해도 그들을 다시 세세히 나누어 보면 또다시 그들만의 독특한 기질을 가진 수많은 집단으로 나누어질 수가 있는 것이고 반대로 독특한 기질을 가진 여러 집단들이 때로는 하나의 공통된 기질을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만 보아도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 충청도 사람 이런 식으로 그 집단의 구성원에 따라 독특한 기질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우리나라 안에서는 비록 지역에 따라 서로 구별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해도 한민족(韓民族)이라고 하는 더 넓은 집단으로 볼 때는 한민족만이 가지는 특별한 기질이 있지요. 이는 일본이나 중국도 마찬가지여서 일본 사람도 그들 나름대로의 기질이 있고 중국 사람도 나름대로의 기질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이러한 기질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 중국 사람이 서로 구분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류의 새로운 조상이 된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전해지기 시작한 기질은 후대에 나오게 될 수많은 민족들의 기질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2. 노아의 육의 기질과 가나안 민족에게 주어진 저주

본문 18절에 보면 노아의 세 아들들 중에서 특별히 함에 대해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말씀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장차 가나안이라 불리우는 민족이 조상인 함의 기질을 타고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지요.
가나안은 함의 아들들 중에 하나의 이름으로서 창 10:16-18을 보면 그를 통해 헷 족속, 여부스 족속, 아모리 족속, 기르가스 족속, 히위 족속, 알가 족속, 신 족속, 아르왓 족속, 스말 족속, 하맛 족속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족속들은 장차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해, 그 땅으로부터 쫓아내야 할 대표적인 이방 족속들이 되고 말지요.
앞으로 설명이 되겠지만 아버지인 노아로부터 저주받은 함의 자손인 가나안은 훗날 하나님을 떠난 이방족속이 되어 선민 이스라엘 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끝없는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함의 기질과 그 기질로 인해 나오게 된 악한 행동의 결과로서 그 후대에 일어나게 된 일들이지요.

세 아들들에 대한 설명은 잠시 후에 다시 하기로 하고 이어지는 본문 20-21절에 보면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했습니다. 여기서 먼저 농업을 시작했다는 말은 홍수 이후의 삶이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곳에 정착해서 농사를 지을 만큼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처럼 생활이 안정되자 오히려 노아는 이전에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던 마음에서 이제는 자기 위주의 삶으로 바뀌어 갑니다. 또한 이전의 경건하고 신실했던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 가게 되지요. 그가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있었다는 것이 바로 당시에 노아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단면적으로 나타내주는 모습입니다.
이 한 가지 모습을 통해 그의 다른 삶 역시 얼마나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지요. 홍수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 많은 것에서 마음에 절제가 안되고 경건치 못한 모습으로 변해갔던 것입니다. 근본의 육의 속성이 드러나면서 내재되어 있던 기질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오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살 때와는 달리 자기 위주가 되어지고 자신이 가장 머리라고 하는 의식이 생겨나면서 다른 가족들 위에 군림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머리라는 생각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하다보니 결국 절제도 안되어지고 마음에서 나오는 육의 기질들이 비진리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지요.
살전 5:3에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 세상이 어떠할 지를 말씀하신 것이지만 우리는 항상 육적으로 평안하다 할 때에 생각지 못한 시험이 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육적인 평안함이 자칫 영적인 해이함으로 이어질 때 바로 원수 마귀 사단의 목표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당연히 영육간에 다 평안함을 누리며 살아야 하겠지만 영적으로는 항상 깨어 있어서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능히 대적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어지는 22절 이하를 보면 아들 함이 아비인 노아의 허물을 보고 두 형제에게 고하는 장면과 이들의 행함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바로 아들들의 기질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데 함은 급한 기질로 인해 악한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신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마음에서 원하는 대로 행하여 그만 돌이킬 수 없는 길로 향하고 말지요. 술이 깨어 아들 함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게 된 노아는 본문 25절에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하며 엄청난 저주의 말을 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노아의 저주는 함의 아들들 중에 가나안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함과 그 후손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으로서 이 저주로 인해 함의 후손들은 커다란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지요. 물론 함이 자녀된 도리로서 아버지에 대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때 노아가 좀더 순전했더라면 이러한 저주의 말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바로 노아 자신에게도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행하고 마는 기질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이러한 기질이 그 아들들 중에 함에게 전해져서 결국은 함 역시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는 가운데 비진리의 행동으로 나와지고 말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3. 보장되어진 노아의 축복과 저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아가 비록 절제하지 못한 가운데 낸 말이라 해도 그의 말이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말이 이처럼 보장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주어진 권세 때문입니다.
노아는 홍수 이후 자연히 모든 사람들 위에 질서상 가장 머리로서 세워지게 되면서 그에게는 자연히 머리된 권세가 주어지게 되지요. 홍수 이후에 이 땅의 질서를 유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류가 번성해 가기 위해서는 육적으로도 질서가 세워져야 했고 그 질서에 따라 권세가 따라야 했던 것입니다. 육의 공간이 되어버린 이 세상을 유지하려면 육적인 질서와 권세도 있어야 했던 것이지요.
한 가정을 예를 들어 보았을 때 만약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육적인 질서와 권세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바르게 유지될 수가 없듯이 모든 조직이나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주 안에서는 영적인 질서가 더 중요하지만 그렇다해서 육적인 질서가 무시되어서도 안되지요. 그래서 롬 13:1-2에서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에게도 바로 육적인 질서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권세를 주셔서 이를 보장해 주셨던 것이고 결국 노아의 말에도 보장이 따랐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노아의 말을 보장해 주신다해도 그 말이 전혀 합당하지 않을 때는 공의의 법칙에 따라 그 말이 보장될 수가 없습니다. 노아가 비록 온전하지 못한 모습 속에서 아들 함을 저주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노아의 저주가 그대로 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말이 보장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바로 함에게도 그만한 허물이 있었기에 저주가 임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만약 함에게 아무런 허물이 없었다면 공의의 법칙상 노아가 어떠한 저주를 했다해도 그것이 임할 수가 없지요. 잠 26:2에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 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말씀한 대로 공의에 비추어 볼 때 함에게도 아비의 허물을 드러내어 전했던 커다란 허물이 있었기에 노아의 저주가 그에게 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는 육적인 질서 상에서 주어진 권세를 가졌음에도 그의 말 한 마디는 공의의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영적인 권세를 가진 사람의 말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것도 하나님으로부터 온전히 보장받는 차원에 들어간 사람의 말은 결코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엘리사 선지자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왕하 2:24에 보면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명을 찢었더라"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자신을 놀리며 괴롭히는 아이들을 저주하자 그 저주가 그대로 임해버렸던 것이지요. 어찌 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서운 저주가 임하고 말았지만 그 저주가 임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 편에도 분명한 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어린아이의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선(線)을 넘는 악한 행동이었기에 엘리사 선지자의 저주가 임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형성되었지요.
물론 엘리사가 더 온전했다면 이처럼 심한 저주의 말은 나오지 않았겠지만 권능으로 보장받은 선지자 입에서 일단 나온 말이었고 그것이 공의의 법칙에도 합당했기에 이처럼 보장으로 나와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혹여 '하나님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도 공의의 법칙에 어긋나서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나 보다'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공의의 법칙에 합당하지 않다면 하나님의 사람의 말이라도 성취되지 않겠지만 정녕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공의의 법칙에 합당하지 않은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권능을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영의 차원에 들어와야 비로소 권능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온전한 영의 차원에 들어온 사람은 결코 사사로이 입술의 말을 낸다거나 공의에 어긋나는 말을 내지 않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아직 온전치 못한 사람에게 권능을 주신다면 그 사람은 때로 사사로이 입술의 말을 낼 수도 있고 또는 공의에 합당치 않은 말도 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을 보장해 주실 수가 없지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말의 보장을 받지 못하게 되므로 결국 하나님께도 누(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을 주시고 그를 보장해 주시는 이유가 이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도록 하려는 것인데 이처럼 권능을 받은 사람이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는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권능받은 사람은 결코 공의의 법칙에 벗어날 리가 없기에 100% 보장해 주신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권능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공의 가운데 보장해 주신 것이기에 그의 말은 어떤 경우에도 보장되어진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의미없이 했던 말 한마디라도 그것이 원수 마귀 사단의 올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주 안에서 역시 여러분이 어떠한 말을 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지요.
우리 만민의 성도님들이라면 세상에서 흔히 쓰는 피곤하다. 힘들다. 죽겠다. 이런 식의 표현은 쓰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쉽게 낼 수 있는 말 한마디이지만 주 안에서는 이런 부정적인 표현들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송사거리를 주는 것이지요. 입술의 고백처럼 마음에서도 인정하게 되고 그것은 원수 마귀 사단으로 하여금 시험거리를 가져다주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말을 안 듣는다해서 "너는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니? 왜 그렇게 부모 속만 썩이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이런 말만 자꾸 듣는 자녀들은 '내가 커서 뭐가 될까?'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자녀의 마음에도 심겨질 뿐만 아니라 말이 올무가 되어 그대로 이뤄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하지요. 욥기에 보면 욥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지만 그 마음에 항상 자녀들로 인해 부정적이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결국은 그 두려움이 현실로 임하게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무익한 말 한 마디라도 그에 대해 마지막 심판 날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물으신다는 사실과 여러분이 무심코 했던 말이라도 나중에 열매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더 신중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노아가 바로 영으로 깨어 있어서 이러한 사실을 명심했다면 결코 자녀에게 그처럼 악한 저주의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이미 그가 한 번 낸 말에는 그에게 주어진 권세에 대한 보장으로 말미암아 훗날 그대로 성취되어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4. 셈과 야벳에게 주어진 축복

그런데 아비의 허물을 전한 함에게 저주의 말이 선포된 것과는 반대로 함의 말을 듣고도 아비의 허물을 보지 않으며 오히려 허물을 가려드렸던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창 9:26-27에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말씀하고 있지요.
이 말씀은 홍수 이후 짐승들 사이에서도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듯이 인간 관계 속에서도 서열이 정해지는 계기가 됩니다. 장차 노아의 세 아들들로부터 나오게 된 종족들 사이에 어떤 육의 질서 관계가 성립하게 될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말씀이지요. 어떤 조상으로부터 나온 종족이 번성하여 지배층이 되고 어떤 조상으로부터 나온 종족이 피지배층이 될지가 본문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0장에 기록되어 있는 노아의 세 아들들의 계보를 토대로 하여 학자들은 오늘날 전세계에 퍼져있는 인류가 노아의 세 아들들 중에 각각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지요. 먼저 야벳은 오늘날 유럽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함은 중동 국가들과 아프리카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셈은 노아의 뒤를 이은 정통 계보로서 아시아 곳곳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가 대부분 아시아에서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노아의 세 아들들 사이에 어떤 질서 관계가 세워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분들은 육적인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매달려서 축복을 받으므로 육적인 어려움을 면하고 평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되면 자칫 전에 뜨거웠던 신앙이 식어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잠시 찾아왔던 육적인 평안함은 다시금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평안함은 바로 영적인 평안함입니다. 영적인 평안함 없이 오는 육적인 평안함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안개와 같은 것이고 영적인 평안함 없이는 참된 육적인 평안함도 올 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영적인 평안함은 어떻게 오는 것입니까? 바로 내 영혼이 잘되는 만큼 주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처럼 영적인 평안함이 주어질 때에 육적인 평안함도 따라서 임하게 되지요.
그런데 노아는 육적인 평안함에 취하여 정말 추구해야할 영적인 평안함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홍수 전과 달리 홍수 후에 이제 노아는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머리된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해 나갈 수 있는 권세도 있었지요. 이로 인해 노아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요. 섬기는 위치에 있을 때는 열심히 다른 사람을 섬기고 충성하던 사람이 섬김받는 위치에 서게 되면 어느새 섬김 받으려 하는 모습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적받기 원하던 겸비한 마음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을 지적하고 가르치려는 마음이 되어지지요. 이는 결코 없던 모습이 나온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잠재되어 있던 모습이 환경과 조건이 되어지니 나오게 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전에는 사람들과 화평했는데 오히려 화평이 깨어지고 이런 저런 소리가 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연단도 받아가게 되구요.
이때 영으로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잠시 이러한 모습이 나왔다 해도 성령의 역사 속에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이내 변화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 시간이 자신을 발견하여 더욱 영으로 변화되는 값진 연단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오랜 세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채 연단 속에서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 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때때로 허락하시는 연단 속에서 버려야할 악의 모습을 발견하여 버리므로 신속히 영으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분에게는 풀무불이 금을 더욱 값지게 만들 듯이 연단 또한 여러분을 더욱 빛난 보석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이처럼 값진 연단을 통해 근본에 내재된 악의 모양까지도 신속히 발견하여 버리므로 정금같이 나와 새예루살렘의 빛난 영광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5-04-30 오후 1:25:2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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