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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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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1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12:1-16 등록일자 2003.11.07
서 론 /

오늘부터는 창세기 강해를 통해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이 되었던 아브라함에 대해 설명이 되어집니다. 순수 혈통을 이어받아 정통 계보를 통해 태어난 아브람이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움 받기까지의 과정이 설명되어질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 제목 설교를 통해서도 아브라함 선지자를 비롯하여 엘리야, 모세, 사도 바울에 대해 그분들은 과연 어떠한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으로부터 그처럼 크신 사랑과 은총을 입을 수 있었는지 그 이유가 설명되어집니다. 그와 별도로 창세기 강해에서는 아브라함 선지자가 믿음의 조상으로 서기까지 순간순간 겪어야 했던 연단과 시험을 어떻게 믿음과 순종으로 통과해 나갔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어지는 것이지요. 계속되어지는 창세기 강해를 통해 여러분도 아브라함 선지자와 같이 믿음의 사람이요 순종의 사람으로 나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 론 /

1. 인간 경작의 섭리 가운데 태어난 아브라함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천하 만물을 지으신 후로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는 몇 차례 새로운 시작점들이 있었습니다. 첫사람 아담이 생령으로 지음받으면서 인간 경작을 위한 첫 출발점이 되었고 이후에 아담이 범죄하여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나 이 땅에 내려오면서부터는 실질적인 6천 년 인간 경작이 시작되었지요.
그러다가 죄악으로 관영한 인류가 홍수의 심판으로 멸망하면서 노아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 경작이 다시 한 번 새롭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가 비로소 본격적인 인간 경작의 시작이었던 것이지요. 홍수의 심판과 함께 창 1:3에 하나님께서 처음 지구를 창조하시면서 둘러 주셨던 빛이 거두어지면서 이제는 모든 것이 근본 육의 속성으로 돌아간 상태에서 본격적인 인간 경작을 받아가게 된 것입니다.
인간 경작의 역사가 또 한 번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바벨탑 사건이었지요. 바벨탑 사건을 계기로 인류의 언어와 민족이 나누어지게 되면서 인간은 비로소 처음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인간 경작의 환경이 온전히 갖추어진 상태에서 인간 경작을 받아 나가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을 예지 예정하시는 하나님께서 참된 인간 경작을 위해 섭리하신 환경이 바벨탑 사건을 계기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인간 경작의 역사에 있어서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람의 탄생이었습니다. 장차 믿음의 조상이 될 아브람의 탄생이 가지는 영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잠시 후 설명이 되겠지만 그의 탄생은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사건들보다도 영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왜 이 시점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일까요? 그가 좀 일찍 태어나게 하셔서 훨씬 더 오래 전에 믿음의 조상이 세워지도록 하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왜 인간 경작이 시작된 지 2000여 년이나 지난 후에야 믿음의 조상이 태어나도록 하신 것일까요? 예를 들어, 인간 경작이 시작되고 얼마 안돼서 믿음의 조상이 세워지도록 하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 편에서의 생각일 뿐이며 하나님의 생각과 뜻은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인간 경작이 시작되고 2000여 년 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태어난 것도 그리고 그 후로 또 다시 2000여 년이 지난 후에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가장 적당한 시점에서 일어난 것이지요. 그보다 더 빨라도 더 늦어도 안 되었던 것입니다. 앞서 인간 경작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시작점들이 되었던 몇 가지 사건들을 대략적으로 짚어 드렸는데 그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인간 경작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건들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모든 것을 이루시기에 어느 날 갑자기 믿음의 조상이 태어나게 하신 것이 아니었고 인간 경작의 환경 역시 단번에 만드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 경작의 환경을 단계 단계 조성해 가셨고 그러면서 인간 경작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적당한 시점에 맞추어 믿음의 조상이 태어나도록 하셨다는 말이지요.

본 제단이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에 세워지고 많은 연단과 시험을 통과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과정 또한 정확한 시점에 맞추어 역사해 오신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때때로 시험과 연단을 허락하신 시점도 그러다가 지난 2000년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세계를 이루어 나가는 세계 선교의 문이 열리게 하신 것도 저를 보내어 성회를 열게 하신 나라 하나하나까지도 정확한 때에 맞추어 역사하셨다는 말입니다. 본 제단이 좀더 일찍 세워질 수도 있었겠고 얼마든지 더 일찍 세계를 이루어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 안에서 본다면 가장 알맞은 시점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제가 권능을 완성해 가는 것과 저를 받쳐 줄 수 있는 주의 종과 일꾼들이 나와지는 것 또한 성도님들의 믿음의 성장 등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고려하셔서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정확하게 맞춰 오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 속에서 임의로 가야 할 나라와 시점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맡겼기에 본 교회는 이처럼 짧은 시간 동안에 세계 속에 우뚝 서는 교회가 되었지요.
이제 다음 주면 출발하여 가게 될 러시아 성회도 사람의 계획 속에서 그 나라를 정한 것도 아니고, 우리 편에서 성회가 개최될 도시의 사정을 미리 알고 일부러 거기에 맞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만 순종했더니 도시가 세워진 지 300주년을 맞는 도시에서 그것도 300주년 기념 공식행사로 등록되어 정부의 지원 속에 성회가 열리게 되었지요. 이것 또한 놀라운 아버지의 섭리 아닙니까? 또 적당한 시점에 주한 러시아 대사되시는 분과 교류와 친분을 가지게 하시더니 이 역시 우리 성회에 도움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러시아 선거에서 성회 개최 도시인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시장 겸 그 지역의 주지사로 당선된 분이 바로 이 러시아 대사의 절친한 친구였지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러시아 대사 분께서 그 친구되시는 분에게 우리의 성회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부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성회와 때를 같이하여 그동안 해외 선교나 각종 해외 행사를 통해 교류를 가져왔던 세계 많은 나라들의 기독교 언론과 방송들이 자원해서 이번 성회를 전 세계로 중계하게 되었습니다. 창조의 최상의 권능의 완성을 통한 본격적인 세계 선교가 시작될 2004년을 앞두고 2003년을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저와 본교회가 세계 속에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심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지요.
이처럼 사람 편에서 애써 맞추려 해도 어려운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인도함을 받아 나가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너무나 정확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할 마음과 자세가 되면 아브람을 인도하여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던 것처럼, 저와 본 교회를 인도하여 세계 속에 뛰어나게 세우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여 뛰어난 사람들로 세워 나가실 것입니다.

2. 아브람의 탄생과 믿음의 연단

앞서 아브람의 탄생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질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좀 쉽게 설명하자면 그것은 장차 모든 사람의 믿음을 견주는 대상이요, 믿음의 기준이 된다는 뜻이지요. 즉 각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되는지를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에 견주어서 비교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믿음이라는 면에서 온전한 자로 세워져야 하는 아브라함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탄생부터 친히 간섭하신 것이고 때가 이르매 친히 연단하셔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믿음의 조상으로서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온전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가 받아야 했던 연단 역시 하나님께서 직접 관여하시는 최고의 수준이어야 했지요.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져야 하는 사람이 그냥 대충 대충 연단받아서 나와지는 것이 아니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한 단계, 한 단계 믿음의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물론 아브람은 본격적인 연단을 받기 전에도 하나님에 대해 알았고 믿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전에 들어서 아는 것과 친히 체험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느끼며 깨달아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요.
이는 우리가 신앙 안에 들어와 믿음이 성장해 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단지 듣고 보아서 아는 수준에서 점차 믿음의 연단과 체험을 통해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엡 4:13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믿음의 성장을 이루기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 불같은 연단이 필요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벧전 1:7에서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답게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을 처음부터 곧바로 통과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을 때 아브람은 즉시로 순종했던 것이지요. 우리는 당시의 상황에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이 결코 순종하기에 쉬운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저도 아브람처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고백할지 모르나 막상 그러한 상황이 되면 순종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모든 삶의 터전과 경제적인 기반 또한 가족들과의 관계까지도 다 뒤로 하고 그것도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낯선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는 것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아브람은 시작부터 이러한 시험을 거뜬히 통과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것도 아닌데 나는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목자의 말씀에, 또한 섬기는 분의 말씀에 순종했는가? 말입니다. 가라 하면 가면 되고 있으라 하면 있으면 되고 뒤로 돌아가라 하면 돌아가면 되는 것인데 그 작은 지시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동원하고 있는지요? 그동안 듣고 보아서 머리로는 분명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도 막상 현실에서는 순종이 나오지 않더라는 말입니다.
또한 너무나 작고 쉬운 것 하나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또 얼마나 많은지요? 하루에 말씀 한 장 이상씩 읽고 한 절씩 암송하라고 한 것도 벌써 3년째가 되었는데 여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분들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 쉬지 말라고 하셨는데 평소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이번처럼 특별 철야가 진행되어도 여전히 기도하지 않는 분은 안 하고 있지요. 그러나 아브람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님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순종을 했습니다. 그동안 조상들을 통해 듣고 배웠던 하나님에 대해 머리에 지식으로만 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처럼 바로 순종의 행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내보였다는 사실입니다.

3. 아브람의 순종과 축복

아브람이 처음부터 순종의 믿음을 내보이기는 했지만 그렇다 해서 그가 온전한 것은 아니었지요. 그가 비록 좋은 그릇을 가지고 태어났고 좋은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해도 이제 영의 사람으로서 온전히 서기 위해서는 그동안 육의 공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배우고 터득되었던 것들 중에 많은 것들을 버려야 했던 것입니다. 육의 환경으로 인해 입력되었던 육의 것들과 그로 인해 나와지는 많은 육신의 생각들을 하나하나 버려 나가야 했던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 해서 아브람이 육신의 생각이 많다거나 육의 것이 많이 입력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해도 어차피 육의 환경에 의해 입력되어진 것들은 연단을 통해 벗어 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연단이 결코 쉬운 것들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죄성을 발견하고 버리기 위해 이런저런 연단을 받아 보셨겠지만 영으로 더 가까이 들어가기 위해 받아야 하는 연단은 그만큼 더 고차원적인 수준이 되어지지요.
그러므로 "누구의 연단이 더 쉽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은 믿음이 적은 대로 연단을 받는 것이고 믿음이 큰 사람은 믿음이 큰 대로 연단을 받아 점점 더 온전케 변화되어 가는 것이지요. 또한 나는 태어날 때부터 밭이 좋지 않고 그릇이 좋지 않아서 나만 이런 연단을 받는다 이렇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릇이 좋고 밭이 좋다 해도 거기에 맞는 나름대로의 연단이 다 있는 것이고 오히려 좋은 그릇, 좋은 밭을 연단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혹독한 연단이 허락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지요.
모세나 아브라함, 야곱이나 요셉처럼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은 분들은 단지 태어날 때부터 그릇이 좋고 밭이 좋아서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남들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힘든 혹독한 연단까지라도 잘 받아 나왔기에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는 그릇들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은 사람들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언약을 변함없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나갔다는 점입니다.

본문 2-3절에도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셨지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이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하여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졌을 때 이루어질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원하시는 온전한 믿음의 분량을 채운 후에 이 모든 축복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말이지요.
아브람은 바로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움받기까지 이 축복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갔지요. 그러나 오늘날 이런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축복의 말씀을 주셔도 믿음으로 받지 못하거나 당장 또는 얼마 시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음에서 의심하며 흔들리고 마는 것이지요. 또한 아무리 큰 축복의 말씀을 주셔도 당장 현실에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불순종하게 되는 것이구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보장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당장 이루어지는 것도 있지만 그것을 이루고 보장하시기 위해서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도 있지요.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개척할 때쯤 하나님께서 기도원 원장에게 성결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저도 성결의 은사를 받았으니 금방 성결되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막상 성결의 은사를 받고 나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지요. 오히려 그때부터 근본에 내재되어 있던 악의 모양들까지 하나하나 끄집어내셔서 연단하여 버리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그 연단이 너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기도원 원장이 기도 쉬지 않으면서 그래도 최선을 다하며 믿음으로 나아왔기에 지금에는 하나님의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권능을 행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도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언약의 말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직 없었다 해도 교회적으로 주신 축복의 언약이 곧 여러분 개개인에게 주신 언약과 같은 것이지요. 지난 주에 잠깐 간증해 드렸듯이 지교회의 재정부를 담당하는 한 집사님이 만민의 성도들에게 축복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신 후부터 크게 물질에 축복받아 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언약의 말씀들을 얼마나 믿음으로 받으셨는지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서 혹여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책상 서랍 깊은 곳에 넣어만 두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이 분명 믿음으로 받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며 지금까지 나아왔다면 이루어지지 않을 말씀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혹여 믿음으로 받지 못했거나 어느 순간부터 잊어버리지 않았나 돌아보십시오. 겔 36:36-37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는 말씀처럼 이루어 주시기를 변함없는 마음으로 구해왔는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결코 의심하거나 잊어버려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신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 변함없이 믿음을 가지고 구해왔지요. 그러했더니 지금에 이르러 돌아보면 개척 때부터 주셨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새롭게 주신 말씀들이 있고 그것들도 앞으로도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구요.

그러므로 문제는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똑같은 축복의 말씀을 주셔도 누구에게는 이루어지고 누구에게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그처럼 하신 것도 아니며 바로 내 자신이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내 자신의 그릇이 준비되어지는 만큼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 또한 그대로 임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단을 받아 나가게 된 아브람 역시 첫 시험은 잘 통과했지만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조금의 육신의 생각이라도 없어야 하기에 곧바로 이어지는 시험을 통해 육신의 생각이 철저히 깨어지는 계기를 맞게 됩니다. 바로 아내 사래를 빼앗기는 시험이었지요.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결 론 /

저와 본교회가 지금까지 세계선교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을 보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지시하는 곳으로 가는 것과 같은 상황들이었습니다. 아무 연고가 없는 나라라 해도 하나님께서 "가라" 말씀하시면 순종할 때 이내 길이 열리고 돕는 자들이 나타나 성회가 이루어져 왔지요. 또 현실적으로는 막막해 보이는 일 역시 하나님께서 "이루어진다." 하시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하나님께서 우리 일꾼들에게 이제는 너희가 목자의 믿음이 되어 일을 이루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말씀하시면 머리인 목자를 보시고 목자의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며 이루어 오셨기에 일꾼들은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일꾼들도 스스로가 믿음을 가지고 목자의 믿음이 되어 일해 나가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이는 여러분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 혼자의 믿음만으로도 능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백성 전체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도 저 혼자만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믿음이지요. 러시아에 직접 가는 것은 저와 선교팀 일행이지만 러시아 성회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아름답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곳에 남아 있는 여러분 모두의 믿음 역시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정성을 다해 드린 선교 헌금과 기도와 금식 등이 모두 합쳐져서 세계 선교를 이루는 믿음의 힘이 되는 것이지요.
불평하고 의심하며 광야 길을 갔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달리 든든한 믿음의 힘이 되어 주시는 본교회와 지교회를 비롯한 모든 성도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여러분을 위한 선물로써 러시아 성회를 통해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리며 기쁜 소식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행함과 정성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셔서 놀라운 축복으로 갚아 주시며 장차 천국에서도 아름다운 상급과 영광으로 주어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57:4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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