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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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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1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12:4- 등록일자 2003.11.21
서 론 /

금번 러시아 성회를 위해 기도와 금식으로 또한 정성을 다한 선교헌금으로 힘써 주신 본교회와 지교회와 해외의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성회를 출발하기 전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금번 러시아 성회는 그들이 이전에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큰 권능으로 역사하셨고 첫째 날보다는 둘째 날에 둘째 날보다는 셋째 날에 더 크게 역사하심으로 셋째 날에는 권능의 대폭발을 이루셨지요.
러시아 현지인들이 기상이변이라 할 정도로 날씨 역시 너무나 확실하게 보장을 받았으며 닛시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을 비롯하여 많은 짐과 장비들까지도 까다롭다는 러시아 공항을 순조롭게 통과할 수가 있었습니다. 백 명이 넘는 선교팀 모두가 형통하게 인도받는 시간들이었지요. 또한 금번 성회는 굳이 러시아 연합성회라 표현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12개의 위성을 통해 전세계 140여 개가 넘는 나라로 동시에 생중계됨으로써 인도 연합 대성회에 이어 세계 기독교 역사상에 또 하나의 초유(初有)의 기록을 남기는 성회였습니다.
기독교 집회 역사상 지금까지 이처럼 많은 나라에 동시에 생중계 되었던 기독교 성회는 없었으며 이처럼 위성을 통해 함께한 참석자들을 고려하면 금번 성회는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인종과 언어와 민족과 이념을 넘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 되며 아버지 하나님의 권능을 목도하는 전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던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며 한국의 기독교 문화를 세계에 소개하고 전하는 기회도 되었구요.이처럼 크고 놀라운 일들을 저와 우리 만민의 성도님들이 하나 되어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금번 러시아 성회를 어떻게 섭리하셨고 역사해 가셨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앞으로 대예배를 통해 자세히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본 론 /

1.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려면

지난 시간에는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지기 위한 본격적인 연단이 시작되는 과정을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란 말 그대로 모든 믿는 사람들의 조상을 뜻하지요. 물론 아브라함 이전에도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아브라함의 때에 이르러 믿음이라는 기준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모든 사람의 믿음의 기준이요 믿음을 견주는 비교의 대상으로 세워 주심으로써 아브라함의 믿음과 비교해 보면 스스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볼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사람의 구세주가 되어 주시기 전에는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의 기준도 바로 아브라함을 통해서였습니다. 구세주로 오신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입어 구원에 이르게 되기 전까지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과 행함이 기준이 되어 구원의 선(線)이 정해졌다는 말이지요.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얼마나 온전해야 하겠습니까?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분량이 어떤 흠도 점도 티도 없는 온전한 분량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 친히 연단을 시작해 가셨던 것이지요. 물론 아브람은 그 이전부터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섬기는 사람이었지만 이전에 들어서 알고 있던 것들을 이제는 실전에서 연단을 받아 나감으로 온전히 능력 삼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하나님에 대해 듣고 배우며 자랐다 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영이 되기 위해서는 어차피 기(氣)를 통해 조상으로부터 전해진 성격적인 것들이나 본성 속에 내재된 것들 또한 육의 환경 속에서 자라고 겪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력된 육적인 것들을 다 벗어 버려야 하기에 연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연단을 잘 통과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가 없어야 하지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주장하는 자기적인 것들이 없을 때라야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함으로 자기 안에 있는 육적인 것들을 신속히 빼내 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 이미 자기라는 것이 철저히 깨어져 있었지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나를 주장하고자 하는 의(義)도 내가 옳다고 하는 지식이나 생각 등 자기적인 모든 것이 철저히 깨어지고 없어진 상태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의지할 곳도 없고 세상에서는 참된 사랑도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은 상태에서 주님을 만난 것이지요. 그러니 주님을 영접한 이후로 저의 모든 마음과 생각과 힘과 정성 또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누구를 향했겠습니까? 오직 주님만을 향하게 되었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을 향하게 되었지요.
이는 성경 상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에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설명해 드렸듯이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 하나 의지할 곳 없이 심신(心身)의 고통으로 인해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지요. 가족들로부터도 철저히 버림받았고 더욱이 일곱 귀신에 의해 고통 받고 있었으니 그 처지가 어떠했겠습니까? 이런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만남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만난 이후로 자신의 모든 것을 오직 주님만을 위해 헌신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자기가 철저히 깨어진 상태, 마음 안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없는 상태, 심령이 가난하여 마음이 지극히 낮아진 상태 바로 이러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주님을 가장 첫째로 사랑하며 주님의 말씀에 오직 순종만이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처음에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끝까지 변함없었기에 막달라 마리아는 하나님으로부터 그처럼 사랑받는 여인이 될 수가 있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도 영으로, 온 영으로 신속히 들어오기 위해서는 우선 세상에서 만들어 온 자기라는 것을 철저히 깨트려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사랑하거나 의지하려 해서는 안 되며 오직 주님만이 삶의 전부요 의지할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아브람 역시 바로 이러한 모습이 되기 위해 연단을 받아 나가기 시작한 것이구요.

2.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즉시 순종한 아브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교통하실 때 친히 음성을 통해 역사하시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계신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음성으로 교통하시거나 외부로부터 성신의 감동을 통해 역사하셨지요. 그리고 아브람은 하나님과 이처럼 교통하는 것에 대해 이미 조상들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음성으로 역사하셨을 때 그 음성을 의심한다거나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듣는 순간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이구나 알았지요. 물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적도 있습니다. 소돔 고모라를 심판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직접 아브라함을 만나 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더욱이 본문 7절에서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시는 경우는 하나님의 음성뿐만 아니라 함께하시는 징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해서 하나님의 본체가 직접 오신 것은 아니지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 가운데 소리로써 역사하셨지요. 영광의 빛은 육적인 것으로 설명하자면 마치 하얀 연기와도 같아서 이러한 연기와 같은 것이 드리워진 속에서 소리가 들려져 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람은 하나님과의 교통함을 통해 어떠한 말씀이나 지시를 받았을 때에 즉시로 순종이 나왔던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런데 현실에서 보면 어떤 말씀이나 지시를 받았을 때 바로 순종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순종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만 순종하거나 아예 생각에 막혀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만큼 온전한 순종과는 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생각을 동원하면 순종하기 쉽지 않은 말씀임에도 본문 4절에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말씀한 대로 곧바로 순종이 나왔던 것을 볼 수 있지요.그의 아버지 데라가 일백오 세를 살았고 아브라함이 일백칠십오 세를 산 것을 생각하면 칠십오 세라는 나이가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하란에 정착하여 경제적인 기반을 다지고 있었고 조상 대대로 살아오며 많은 친척들이 함께하는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뒤로 하고 떠난다는 것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즉시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이렇게 해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되지요.
이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나타나셔서 언약의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 것입니다. 이는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로서 이 말씀은 그로부터 약 400여 년이 지난 후에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3. 아내를 뻬앗기는 연단을 받기 전, 아브람의 고백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을 때 사람 편에서 순종이 안 되어지거나 믿음이 되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지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창조의 근본의 소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취되지요. 다만 그것이 당장 성취될 말씀인가 아니면 시간이 지난 후에 성취될 말씀인가 이러한 차이점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료하실 때도 항상 근본의 소리를 발하셨는데 대부분 그 자리에서 즉시로 치료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눅 17장에 나오는 열 문둥병자의 경우는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가던 도중에 깨끗함을 받았지요.
이처럼 본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네 자손들에게 주시겠다" 하신 말씀도 금방 이루어질 말씀이 아니라 400여 년이 지난 먼 훗날 모세를 통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가게 되면서 이루어질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근본의 소리를 발할 때도 이와 같지요. 당장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역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말씀을 받는 일꾼들 편에서 얼마나 믿음을 가지고 받아서 자기의 할 바를 행해 나가느냐에 따라 말씀이 성취되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고 단축될 수도 있지요. 이때도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자기 생각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 생각을 깨뜨리는 훈련을 시키시지요. 바로 아내 사래를 빼앗기는 연단이었습니다. 이 연단을 통해 아브람은 자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리는 계기가 되었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했던 아브람이었지만 막상 자신의 생명이 걸린 상황이 되니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그만 자신의 생각을 동원했던 것입니다. 이는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이 아내를 빼앗기는 연단을 받기 전 그가 하나님 앞에 단을 쌓으며 고백했던 내용을 들어 보면 아브람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잘 듣고 배워서 알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지요. 하나님이 저에게 알려 주신 아브람의 고백을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에 신실하시고 온전하시며 모든 것을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곧 나의 조상의 하나님이 되시며
나의 조상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는 그분에게 이와 같이 찬양하리이다.
정녕 모든 것에 신실하시고 온전히 행하시는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며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지시하시고 모든 것을 이끌어 주신 그분의 이름 앞에
순종하며 그분의 이름 앞에 이와 같이 엎드러지나이다.

그분의 이름은 높고 광대하시며 모든 것을 지으신 바 되셨고
우리 조상의 주가 되셨고 우리 조상 위에 조상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신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내가 그분 앞에 이와 같이 엎드러지며
정녕 그분의 이름을 인하여서 내가 모든 것을 믿고 순종하나이다.
그분의 이름 앞에 모든 것이 두려워 떨며 모든 것이 그분의 발 아래 있나이다.
그분의 이름은 광대하시고 그분은 온전하시어
모든 길을 지시하시고 인도하심이니 그 말씀에 순종하고 순종함이 당연하며
모든 것이 그분의 이름 앞에 있나이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절대적인 존재이시며 광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신지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에 대해 알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했다 해서 그가 온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아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는 분은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아는 차원을 넘어 정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살피시며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도 온전해져 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아브람도 아는 것을 온전한 믿음으로 바꿔 나가기 위해 연단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생각을 깨뜨리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먼저 아브람에게 피할 길을 주실 수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도록 가만 놔두셨던 것이지요.
아브람이 생각을 동원하기 시작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기근을 피하여 애굽 땅으로 내려가던 아브람은 자신의 아내 사래로 인해 자기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내로 하여금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고 하지요. 그러나 이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 20:12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내 사래에게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하여 실제로 사래가 아브람의 누이였음을 알 수 있지요. 이복누이였다 이 말입니다.그런데 문제는 이 말의 사실 여부를 떠나 아브람이 아내에게 누이라고 말하게 했던 동기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지혜를 동원하여 위기를 피해 보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과연 아브람이 생각했던 대로 아브람은 아내를 누이라 하여 목숨은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까지는 생각하지를 못했지요. 이것이 바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며 자신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의 한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아브람으로 하여금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깨닫고 이후로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아내 사래를 빼앗기는 연단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아브람의 고백에서처럼 전능하시고 신실하시며 모든 것을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에 대해 직접 느끼고 체험하며 깨닫게 하신 것이지요. 아브람이 아내 사래를 빼앗겼던 연단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결 론 /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할 때 이것이 생각을 동원하는 것인지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자기 스스로는 지혜 있다 하며 이렇게 하면 잘 되겠지 생각하는 것이지요. 너무 원칙대로 하는 것이 자칫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고 이렇게 하면 더 쉽고 빠를 텐데…하며 나름대로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전 3:18-20에는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말씀하지요.
우리가 주 안에서는 당연히 지혜로워야 하되 세상의 지혜에 있어서는 오히려 미련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결국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게 하여 하나님과는 원수가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이지요. 주 안에서의 지혜는 오직 성결하고 선한 데서 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잠 16:9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처럼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지요. 아브람도 이것을 깨닫기 위해 연단이 필요했던 것이고 여러분도 역시 연단을 통해 이것을 신속히 깨달아서 세상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버리고 주 안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가 얼마나 한정된 것인지를 깨달아 오직 지혜의 근본 되시며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만 맡기고 의뢰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람의 지혜와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와 방법으로 항상 범사에 형통하게 인도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57:3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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