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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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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1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13:1-10 등록일자 2003.12.05
서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때로 너무나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주변에 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 소중함을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것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나면 그때 가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고 뒤늦게 후회하기도 하지요. 또는 소중한 것도 알고 귀한 것도 너무나 잘 아는데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소중함과 귀중함을 마음 깊이 느끼며 깨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은 늘 함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어떤 사정으로 인해 멀리 떨어지게라도 되면 평소에 깨닫지 못했던 소중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헤어짐이 당장에는 좀 마음 아프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이때 가족이라 해서 꼭 육적인 가족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 12:50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말씀하신 대로 참된 가족이란 주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자녀된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지요. 장차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갈 사람들은 바로 믿음 안에서 형제, 자매된 성도들인 것이구요. 그러니 가족이라 해서 꼭 육적인 가족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형제, 자매된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소중한 존재들에 대해 평소에는 마음 깊이 느끼지 못했다가 어떤 시험이나 연단을 통해 느낄 수 있게 되었다면 그 시험이나 연단은 참으로 값진 것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시험이나 연단이 당장에는 좀 힘들고 마음 아플 수 있지만 그것을 잘 통과하고 나면 다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값진 깨달음과 능력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도 아내 사래를 애굽의 바로 왕에게 빼앗겼다가 도로 찾는 연단을 통해 너무나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었지요.

본 론 /

1. 빼앗겼던 아내를 찾은 아브람의 고백

아브람은 어렸을 때부터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듣고 배워 왔기 때문에 스스로는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잘 안다.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 시험이 닥쳐오자 아브람은 그처럼 잘 아는 하나님 즉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해 가시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뢰하지 못한 채 자신의 지혜와 생각을 동원하고 말았지요. 그러다가 자신의 힘으로 풀 수 없는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 바로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 주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지혜와 방법으로 커다란 어려움에서 극적으로 벗어난 아브람이 하나님께 올려 드렸던 고백을 잠시 들어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아브람의 고백입니다.

"사람의 지혜가 우둔함이며 하나님의 지혜를 따를 수 없고
사람의 지혜가 우둔하며 심히 우둔함이나니
모든 것에 있어서 이와 같은 것을 깨우치지 아니하고서야
어찌 아버지의 마음을 알며 정녕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가 있으리요.
하나님을 이와 같이 부르는 자도 있고 저와 같이 부르는 자도 있으나
정녕 내 마음에 심히 깊이 있게 자리 잡은 그분에 대해서 깨달은 바 되었음이나니
내 영혼이 살찌우며 내 영혼이 기쁨과 감사로 넘치나이다.
사람의 생각이 깊고 오묘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둔하며 미련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나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하심은 심히도 깊고 깊이가 있어
정녕 사람의 그 모든 것이 감당할 수가 없음이나니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께 감사 찬송을 올리나이다.
내게도 늘 계셨고 예전에도 계셨으며 곁에 늘 계시어
나를 치리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그분의 그 마음을 내가 알 수 없었으되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마음에 대해 내게 이와 같이 깊이 있게 깨우친바 되게 하셨으며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우둔하며 미련한지를 깨우치게 하신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며 찬양하리이다.
내 마음 깊이 계시며 늘 내 곁에 계셨으되 그분에 대해서 이제야 비로소
내 마음 속에 깊이 있게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인내하심과 인자하심을 느낌이나니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며 심히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을 살찌우시고 나를 인도해 가시며 내 모든 것을 부탁하고 부탁하리니
그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시며 모든 것에 완전하시고 온전하심이나니
내 입술로 고백한 이 고백이 내 중심의 고백이오며
정녕 내 사랑하는 그분에 대한 고백이나이다.
나의 영혼을 살찌우시고 내 영혼을 잘 되게 하사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분을 내 가슴 깊이 새긴 바 되게 하사 그분을 찬송하며 그분을 사랑하게 하심이니
모든 것에서 영광을 돌리며 감사를 드리니이다."

우리는 아브람의 고백을 통해 그가 연단을 통과하면서 얼마나 값지고 귀한 깨달음을 얻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사람의 지혜와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둔하고 미련한 것인지를 깨달았고, 두 번째로는 아버지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위대하심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분임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지요. 또한 세 번째로는 이러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너무나 좋으시고 자상하시며 섬세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늘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연단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얼마나 섬세하고 자상하게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인도해 오셨고 또 지금도 인도해 가고 계신지를 마음 중심에서 깨닫게 되었던 것이지요.

2. 기쁨과 감사함으로 연단을 받으면 축복

이처럼 아브람에게 있어서 이번 연단은 그 동안 듣고 배워서 알고 있던 하나님에 대해 정녕 마음 깊이 깨닫고 중심에 새기며 앞으로는 하나님만을 전폭적으로 의뢰하게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를 발견하여 철저히 깨뜨리는 기회가 되었구요. 뿐만 아니라 아브람은 이 연단을 통과하면서 그 소유가 풍부해지는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이 한 번의 연단을 통해 영육간에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연단을 허락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깊으신 뜻입니다. 연단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우리를 힘들고 어렵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과 같이 우리에게도 영육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아브람처럼 연단을 통해 영육간에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바로 연단을 기쁨과 감사로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람은 아내 사래를 빼앗기는 시험 중에도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감사했지요. 물론 자신의 지혜와 생각을 동원했다가 결국 아내를 빼앗기게 된 것에 대해서는 번민하고 힘들어했지만 왜 나에게 이런 연단이 오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지켜 주지 않으셨나? 이런 식으로 하나님 앞에 서운해한다거나 불평하는 일은 결코 없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처럼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을 받았기 때문에 연단을 통해 큰 영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되니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법칙에 따라 육적인 축복도 자연히 함께 따라왔던 것이구요. 아브람이 애굽에 들어갈 때보다 훨씬 많은 소유를 얻어 가지고 애굽으로부터 나올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된 섭리였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날 때 그가 하란에서 모았던 모든 소유를 가지고 떠났다고는 하지만 당시 그의 소유가 많은 것이 아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연단을 통과하여 영혼이 잘되어짐과 동시에 육적인 축복도 넘치게 받도록 하시기 위해 애굽의 가장 높은 권세자였던 바로를 연단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더 권세자를 통해 연단을 받게 하셨으니 축복도 또한 크지 않겠습니까? 다니엘이나 세 친구도 왕을 통해 연단을 받으니까 그 다음 축복이 엄청나지 않습니까?
창 12:16에 보면 애굽의 최고 권세자였던 바로는 사래를 취하면서 그 대가로 아브람에게 많은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주었었는데 아내를 도로 찾게 된 아브람은 이때 얻은 소유까지도 함께 가지고 애굽에서 나올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아브람에게 영육간에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어떤 잘못이 있거나 악을 행하여 재앙이 왔을 때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켰다 해도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러나 어떤 악을 행하거나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영적인 축복을 주시기 위해 허락된 연단은 그 연단을 통과한 후에 반드시 이전보다 더한 축복이 주어지게 되지요.
아브람의 경우는 하나님 앞에 어떤 악을 행한 것도 아니었고 큰 잘못이 있어서 연단을 받은 것이 아니었기에 그가 연단을 통해 자신의 나약함을 깨우치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의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전보다 더한 축복으로 갚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이처럼 연단을 통과하면서 영육 간에 축복을 함께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연단을 받는 아브람의 태도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아브람은 연단 중에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기쁨과 감사로 연단을 받아 나갔지요. 또한 아브람은 이후로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지기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연단을 기꺼이 감사함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사로 연단을 받아 나가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연단 중에라도 부족됨 없이 항상 넘치는 축복으로 역사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온전해지기까지 연단은 받는 것이되 그 연단을 어떠한 태도로 받느냐에 따라 축복 가운데 연단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어려움 가운데 연단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아브람은 그 중심이 곧고 성실하며 정직한 사람으로서 항상 기쁨과 감사로 연단을 통과해 나갔기에 그는 연단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고 물질의 축복도 넘치게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때 연단 중에 어떤 마음을 가지셨는지요? 나는 아브람과 같은 중심이 아니니… 하고 마시겠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어떠한 연단이 왔을 때라도 한 번도 원망 불평하거나 힘들다. 하지 않았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오직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해 나갔지요.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연단의 시간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축복의 연단이라" 말씀하셨기에 한 번도 그 말씀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나이다" 고백하며 모든 연단을 통과해 왔던 것이지요. 그래서 비록 연단을 받는 중이라 할지라도 저는 항상 부족됨 없이 축복을 받아 나갔고 권능도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나도 할 수 있나이다" 고백하며 어떤 연단이라도 기쁨과 감사로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돌려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똑같은 연단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감사로 받는 사람과 힘들게 받는 사람과는 연단을 통과한 후에 축복의 정도도 다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심도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녕 곧은 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녕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브람처럼 그 외에 성경상의 많은 인물들처럼 연단을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고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연단 중에라도 항상 사랑의 증거를 나타내 주시지요. 연단 중에라도 감사와 기쁨으로 심었으니 하나님께서도 이런 사람에게는 감사의 조건을 넘치게 주심으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3. 단을 쌓고 감사의 제사를 드린 아브람

본문 3-4절에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했는데 이는 그가 이전에 단을 쌓았던 곳에 이르러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단을 쌓고 감사의 제사를 드렸음을 말해 줍니다. 그동안 마음 깊이 깨닫지 못했던 섬세하시고 자상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은 것에 감사하며 자신의 길을 인도하사 시험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의 단을 쌓은 것이지요.
그냥 입술로만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러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백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음으로 자신의 고백과 깨달음을 확증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했던 감사의 고백을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 중심에 새김과 동시에 하나님 앞에도 자신의 감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아름다운 향으로 올려 드렸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면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의 단을 쌓는 데는 인색한 것을 봅니다. 그냥 입술로만 "감사합니다." 하고 말거나 하나님 앞에 적당히 감사하는 것으로 끝내고 말지요.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편에서만 이 정도 감사면 되겠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받는 편에서도 그 감사의 마음을 느끼고 인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우리 편에서 적당히 감사를 표한다고 해서 하나님 편에서 무조건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정녕히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만한 향으로 하나님 앞에 올려 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도 그 마음의 향을 받으시고 우리의 감사를 인정해 주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실 때라야 참된 감사로 하늘에도 쌓여지는 것이구요.
아브람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았기에 창 12:7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타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해 주셨을 때도 그곳에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정성껏 단을 쌓았습니다. 이렇게 단을 쌓아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을 하나님과의 사이에 확증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아브람이 처음으로 단을 쌓았던 곳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을 때는 그의 마음이 이전에 단을 쌓을 때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물론 아브람은 이전에도 하나님 앞에 열심히 단을 쌓는 사람이었지만 그때는 다만 조상으로부터 듣고 배운 대로 행한 것이었지요. "이런 때는 이렇게 단을 쌓아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조상으로부터 듣고 가르침받은 대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 중심을 실어 단을 쌓으며 감사로 찬양하고 하나님의 성호를 송축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연단을 받기 이전과 연단을 받은 이후에 이와 같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지요. 단을 쌓는 그 중심, 마음이 이전과 지금은 전혀 다른 마음이지요. 이전에는 배워서 배운 대로 행했겠는데 이제는 마음 중심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단을 쌓았을 것이구요. 이처럼 아브람은 한 번의 연단을 통해 많은 것이 깨어지고 부서졌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합한 자로 접어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을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맡겨 나가는 사람이 되었지요.

4. 연단 이후 성숙된 아브람의 신앙

본문 5절 이하를 보면 아브람의 성숙된 신앙의 모습이 잘 나타나는 사건이 나옵니다. 아브람에게는 조카 롯이 함께했었는데 아브람의 소유와 조카 롯의 소유가 점점 늘어나게 되자 그들이 거하던 땅에 둘의 소유가 동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지요.
6절에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는 사태까지 발생하지요. 이에 아브람이 먼저 나서서 롯에게 말하기를 8-9절에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롯은 눈을 들어 주변을 살핀 후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먼저 골라 선택하였지요. 그가 선택한 땅이 바로 소돔 땅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처음 하란을 떠날 때 롯은 삼촌을 따라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넉넉한 소유를 가진 것도 아니었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롯도 많은 소와 양과 장막을 소유하여 아브람과 함께 동거할 수 없었던 것을 봅니다. 이는 롯이 아브람과 함께 떠난 이후로 그만큼 많은 축복을 받아 나갔음을 말해 주지요. 아브람의 소유가 풍성해짐에 따라 함께했던 롯 역시 소유가 늘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롯의 축복은 결국 아브람과 함께함으로 말미암았다는 말이지요. 롯이 아브람과 함께했고 아브람에게 속한 바 되었기에 그의 소유가 아브람의 소유와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지킴받을 수 있었고 불어날 수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롯의 입장에서 자신의 목자와 삼촌 아브람의 목자가 서로 다투는 상황이 되었을 때 어찌해야 했겠습니까? 당연히 자신이 먼저 삼촌에게 양보하고 물러나는 것이 질서상으로나 도리상으로나 마땅한 일이었지요. 그러나 롯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이는 육적인 면에서 볼 때도 전혀 질서를 좇은 것이 아니었고 윗사람을 섬기지도 못하는 것이었지요. 영적인 면에서 볼 때는 더더욱 진리에 맞지 않는 것이었구요. 영적인 질서상에 있어서도 롯은 당연히 아브람을 섬겼어야 했으나 그렇지를 못했다는 말입니다. 결국 롯 스스로가 자신이 아브람으로 인해 받게 된 축복에 대해 감사하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도 아브람은 "롯, 네가 나로 인해 부유해졌고 네가 나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지킴을 받았다" 하지 않았고 조금의 서운함이나 감정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면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롯은 한 번의 사양이나 양보도 없이 즉시로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릇의 차이에서 오는 모습입니다. 아브람의 그릇과 롯의 그릇이 확연히 비교되는 사건이지요.
롯 역시 아브람 못지 않게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듣고 배웠으며 진리에 대해 듣고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람과 비교할 때는 너무나 작은 그릇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롯이 눈에 드러나는 큰 죄를 행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었기에 당장 눈에 보여지는 것 당장 자기 유익에 맞는 것만을 생각했던 것이고 이렇게 자신의 정욕을 좇은 결과 결국 고통의 길로 가고 말았던 것이지요. 만약 아브람이 롯과 같은 위치였다면 삼촌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을 것이고 자신의 소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삼촌의 소유까지도 살폈을 텐데 롯은 그렇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다음 시간에는 아브람과 롯을 비교하면서 큰 그릇과 작은 그릇의 차이점을 살펴보고 롯의 선택이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 중에는 물질을 넉넉히 가지게 되었을 때 마음에 여유를 가지며 자신의 소유를 남에게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물질에 여유가 생길수록 마음이 단단해지고 인색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릇됨의 차이지요.
그릇이 작은 사람은 내 것, 내 소유, 내 입장, 내 형편 등 자신과 관련된 것에만 시야를 한정시키므로 그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살필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돌아볼 줄도 모르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줄도 모르지요. 자기의 유익만을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도 부딪힘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속에 사람들이 깃들일 수가 없지요. 이런 사람이 권세나 힘을 가지고 있을 때 겉으로는 그 앞에 순종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정녕 마음 속 중심에서 순종하는 사람을 얻기는 힘듭니다.
반면에 그릇이 큰 사람은 내 입장, 내 형편, 내 소유, 내 것만을 생각하지 않고 나보다는 먼저 다른 사람의 형편과 입장까지도 살피며 내 소유, 내 것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유와 유익까지도 살필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깃들이게 되며 더불어, 함께 풍성한 축복을 받아 나가게 되지요. 아브람과 함께했던 롯이 축복을 받았던 것처럼 큰 그릇을 가진 사람과 함께하면 함께하는 사람까지도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은 어떠신지요?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 안에 깃들이고 있습니까? 여러분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축복을 받아 나가고 있는지요? 계속되는 창세기 강해를 통해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어떻게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으로 세워질 수 있었는지 또한 어떻게 그와 함께한 사람까지도 더불어 축복을 받아 나갈 수 있었는지 깨달으셔서 여러분의 삶 속에도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증거가 날마다 넘쳐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며 여러분에게도 한량없는 축복이 내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57:2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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