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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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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1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14:1- 등록일자 2003.12.26
서 론 /

창세기 13장에서는 아브람과 롯이 헤어져서 각각 자기 거할 곳으로 가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람은 상대에게 좋은 것을 먼저 양보하는 넓고 선한 마음으로 행해 나갔지만 반면에 롯은 자기 보기에 더 좋은 것을 택하여 자기 유익을 좇아 가고 말았지요.
창세기 14장에는 이처럼 각각 영과 육을 택하여 떠난 아브람과 롯이 이후에 어떤 결과로 나와지는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육을 좇아 갔던 롯은 전쟁에 휘말려 큰 재앙 가운데 빠져들게 되지만 영을 좇은 아브람은 육적인 축복은 물론이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을 만나는 놀라운 영적인 축복까지 받게 되지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인도함을 받지 못한 채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육을 좇은 결과는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고 얽히고설킨 상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반면 선(善)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은 결과는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 속에 부귀와 명성까지 얻는 복된 결과로 나와졌던 것입니다.

본 론 /

1. 육을 좇은 롯과 영을 좇은 아브람의 차이

본문 1절에 나오는 "당시"란 바벨탑 사건 이후 사람들이 언어와 종족에 따라 흩어져 살면서 나름대로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던 때를 말합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그리 넓지 않은 영토 안에 여러 명의 왕들이 있어서 각각 자기 영토를 관할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가 있지요. 이들은 자기 세력을 더 키우고자 때로는 유익을 좇아 서로 간에 연합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간에 전쟁을 하기도 했는데 본문의 배경도 북방에 거하던 네 왕들의 연합군과 소돔, 고모라를 중심으로 하는 다섯 왕들의 연합군과의 전쟁으로부터 시작되지요.
당시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하여 가나안 지경을 차지하고 있던 왕들은 이 전쟁에서 패하여 북방의 왕들 그 중에서도 엘림 왕 그돌라오멜을 십이 년 동안 섬기게 되었는데 십삼 년이 되던 해에 배반을 하게 됩니다.그리하여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은 다시 연합군을 구성하여 파죽지세로 가나안 지경을 향해 내려옵니다. 르바 족속, 수스 족속, 엠 족속, 호리 족속을 차례로 치면서 내려오지요. 그리고는 다시 방향을 바꾸어 아말렉 족속과 아모리 족속을 친 후에 마침내 소돔과 고모라의 왕을 비롯한 다섯 왕의 연합군마저 패배시키고 맙니다.
본문 11-12절에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말씀하신 대로 소돔 왕이 북방의 네 왕에게 패했을 때 당시 소돔 땅에 거하던 롯에게 재앙이 닥쳤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북방의 네 왕들의 연합군에 의해 가나안 지경과 주변 일대가 거의 점령당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아브람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본문 13절에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말씀합니다. 이는 엄청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브람은 안전하게 지킴받고 있었으며 전쟁으로 인해 어떤 해도 받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당시 아브람이 거하던 곳은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였는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아모리 족속까지도 북방의 네 왕의 연합군에 의해 해를 입는 상황이었지만 근방에 거하고 있던 아브람은 지킴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아브람은 머물고 있던 지역은 물론, 주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며 동맹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지요. 아브람은 전쟁의 와중에도 온전히 지킴받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세력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의 세력을 키워 나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이 어떻게 주변의 세력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가 있었을까요? 이는 아브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지킴받고 보장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며 항상 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당시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의 사람들과 매우 가까이 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때 아모리 족속의 입장에서는 이방인과 같은 아브람과 어찌 처음부터 순순히 좋은 관계를 맺었겠습니까?
주변의 이방 족속들이 아브람을 어찌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예전에 애굽 왕에게 아내 사래를 빼앗겼을 때에 그가 어떻게 해서 다시 아내를 찾게 되었는지 소문에 소문이 더해졌을 것이고 그러면서 주변의 사람들도 자연히 아브람과 함께하시며 그를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해 듣게 되었지요. 또한 아브람을 보장하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그들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쉽사리 아브람을 건드릴 수 없었고 함부로 대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런 상황에서도 늘 주변을 섬기며 배려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지킴받는 사람이다." 하며 주변 이방 족속들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한 것이 아니라 선한 마음 가운데서 항상 먼저 상대를 섬기고 베풀었던 것이지요. 주변 사람들도 이러한 아브람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2. 아브람이 받은 축복

본문 24절에 보면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하러 출정할 때에 아브람에게는 자신이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십팔 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지요.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을 맺은 사람들로서 전쟁이라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아브람을 도울 만큼 아브람과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브람이 평소에 얼마나 주변을 섬겼는지 잘 알 수 있는 것이고 또한 아브람을 보장하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아브람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잘 심겨져 있었는지를 알 수 있지요. 이처럼 아브람이 늘 주변을 섬겼다 해서 이것이 그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육적으로 볼 때도 아브람에게는 주변 사람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힘과 부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지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내용이 바로 본문 14-16절에 나옵니다.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십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더라" 말씀하지요.
아브람이 삼백십팔 인의 용사를 수하에 거느리고 있었다는 것은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브람에게 속해 있었는지를 잘 나타내 줍니다. 용사들에게 딸린 가족들과 그 밖에 필요한 인력들까지 생각하면 이때 아브람이 얼마나 큰 집단을 이루며 커다란 세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아브람이 얼마나 큰 축복 가운데 부와 권세를 누리며 살고 있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아브람은 이처럼 든든한 기반을 형성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마음껏 받아 나갔기에 많은 이방 족속들 사이에서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살아갈 수가 있었지요.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깨달아야 할 것은 아브람은 사람 편에서 할 도리 역시 다 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아브람이 이처럼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했기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아브람은 사람 편에서 할 것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지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겠지 하며 자기가 해야 할 바를 등한히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열심히 사람들을 기르고 훈련하여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소유를 지키는 데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 어떤 분들은 하나님 앞에 믿음을 내보인다 하면서 사람 편에서 해야 할 일까지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믿습니다." 하는 경우를 보게 되지요. 예를 들어 사업터에서 축복받기 원하는 분이 사업터를 돌보는 일에는 소홀한 채 하나님 앞에 축복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한다면 이는 공의에 비추어 보아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내 편에서 돌아볼 수 있는 것은 돌아보고 이것 저곳을 살펴서 육적으로도 빈틈이 없이 일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의 일로 바빠서 사업터나 일터를 돌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서 이런 경우 나 몰라라 하고 자신의 할 일까지 하지 않는다면 이는 바른 신앙의 자세라 할 수 없습니다. 평소에 분야 분야를 잘 살펴서 때로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라도 일이 잘 돌아가도록 해 놓아야 하는 것이며 필요할 때는 나를 대신하여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을 길러 놓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맡긴다 하여 내 편에서 할 수 있는 일들까지 하지 않은 채 입술로만 "믿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사람 편에서 할 도리는 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람 편에서 할 바까지도 하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사람 편에서 할 바에 대해서도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더 잘 관리할 수가 있었고 필요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사람들도 잘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즉시로 롯을 구하러 출정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3. 아브람의 선한 마음

아브람이 축복을 받아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막상 조카 롯이 북방의 연합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육적으로 생각해 보면 선뜻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북방 왕들의 연합군이 이미 주변의 여러 나라와 족속들을 차례로 쳐서 기세가 등등해져 있던 때에 아브람이 연합군을 상대로 하여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아브람은 육적인 상황을 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롯에 대해서도 끝까지 도리를 다하는 선한 마음이었습니다. 혹여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그것 봐라. 좋은 것을 먼저 택해 가더니 결국 그런 재앙을 만나고 마는군 하며 그냥 모른 체 할 수도 있었겠지요. 또는 이미 자신 편에서는 할 수 있는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여 책임 없다고 외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마지못해 조카를 구하러 가는 사람도 있겠지요.
아브람에게는 악한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조카 롯을 구해야겠다는 선한 마음으로 당장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갔습니다. 자신은 빠진 채 군사들만 보낸 것도 아니었고 이런 전쟁의 와중에 내가 이렇게 떠나고 나면 내 장막은 어떻게 하나… 하며 자신의 소유를 먼저 걱정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소유에 대해서는 돌아볼 겨를도 없이 자신이 직접 앞장서서 군사를 거느리고 나갔지요. 아브람에게는 어떠한 사심(私心)도 없었으며 비록 롯이 자기 유익을 좇아 자신을 떠나가긴 했지만 한 번 자기에게 속한 사람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지요. 요 13:1에 보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팔 가룟 유다에 대해서까지도 끝까지 사랑의 마음을 품고 계셨음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때가 되면 자신을 팔 것을 아시면서도 저는 나를 배신하고 팔 사람이다 하여 그를 멀리하고 미워하신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그를 대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가룟 유다에게만이 아니라 장차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될 베드로에 대해서도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되면 두려움에 뿔뿔이 흩어지게 될 다른 제자들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을 주셨지요.
이러한 주님의 마음처럼 아브람 역시 롯이 한때 자기의 유익을 좇아 자신을 떠나갔다 해서 그로 인해 어떠한 감정도 품지를 않았습니다. 롯을 먼저 이해해 주는 마음이었고 비록 롯이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항상 그에게 마음을 쓰며 언제라도 도울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요. 저 역시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이루고자 노력했고 지금까지 지내온 세월들을 돌아보면 항상 이와 같은 마음으로 행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단순히 자기 유익만을 좇는 사람만이 아니라 배신하고 떠나며 악을 행한 사람들까지도 저는 항상 그들에게 선으로 대했고 미워하는 마음을 전혀 가져 보지 않았지요. 그들 중에 재앙을 만나거나 시험 환난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이라도 듣게 되면 제 마음 역시 너무나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특별히 하나님께서 제 곁에 붙여 주셔서 저를 돕도록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항상 그들의 세세한 것까지도 살핌으로 제 편에서 먼저 그들에게 필요한 것으로 채워 주곤 했지요. 설령 실수가 있고 허물이 있다 해도 저는 항상 그것을 용서하고 덮어 주며 그들이 더욱 힘을 내서 달려갈 수 있도록 끝까지 사랑으로 대해 왔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속한 사람들에 대해 끝까지 사랑과 선으로 대하신 것처럼, 아브람이 조카 롯에 대해 항상 마음 쓰며 책임을 지려 했던 것처럼 저도 만민이라는 이름으로 하나 된 여러분 모두를 항상 제 마음에 품으며 기도해 나가고 있지요.

4. 아브람의 사심없는 마음

더욱이 본문 22-24절을 보면 아브람이 얼마나 사심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전쟁에 나갔는지가 잘 나와 있지요. 아브람이 전쟁에 나가 승리하여 빼앗겼던 모든 소유를 찾아가지고 돌아올 때 소돔 왕이 그 앞에 나가 말하기를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아브람은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 했지요.
아브람은 전쟁의 승리자요 소돔 왕에게 큰 은혜를 베푼 자로서 전쟁에서 얻은 물품을 취한다 해도 이것이 결코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소돔 왕이 직접 아브람을 마중 나와 "사람은 내게 돌리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했으니 아브람이 전리품을 취한다 해서 이것이 비진리의 마음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아브람은 자신에게 돌아올 어떠한 사사로운 유익도 취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재물에 대한 욕심이나 사사로운 유익을 좇고자 하는 비진리의 마음이 그에게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는 모든 축복을 오직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만 받으려 했습니다. 사람 편에서 자기 유익을 좇아 부를 쌓아 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잘되어지는 만큼 위로부터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으로만 부(富)를 쌓아 갔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아브람이 이처럼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한 데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진리로 변화되기 전에는 언제든지 자기 유익을 좇아 변개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아브람은 잘 알았던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돔 왕이 지금 당장에는 아브람에게 고맙고 기쁜 마음에 모든 물품을 아브람에게 돌리고자 했지만 나중에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 마음에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다른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원치 않았는데 아브람이 대가를 바래서 주었다." 이런 식의 말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아브람이 이런 사람의 마음을 알면서 어찌 소돔 왕의 제안을 얼른 받아들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오직 전쟁을 수행하는 데 동원된 소년들의 양식과 자신을 도운 동맹군에게 돌릴 분깃 이 외에는 스스로 어떠한 것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을 도운 사람들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수고를 보상해 주려는 아브람의 배려하는 마음도 능히 엿볼 수 있게 되지요. 다음 시간에는 지금까지 살펴본 아브람의 육적인 축복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너무나도 큰 영적인 축복이었던 신비의 인물 멜기세덱과의 만남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결 론 /

아브람은 마음에 조금의 사심이나 욕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도 능히 헤아릴 수가 있었기에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항상 정도를 좇았고 선의 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3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훗날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 때도 장사할 굴을 거저 주겠다는 헷 족속의 제안을 그냥 덥석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굳이 그에 해당하는 상당한 값을 치르고 매장지인 막벨라 굴을 취했던 것을 볼 수 있지요.
만약 아브라함이 주는 대로 다 받았다고 한다면 그 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는 그의 마음에 조금의 욕심이 없었고 정당하지 않은 것을 받으려는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며 또한 이렇게 값을 주고 확실히 자신의 소유를 삼음으로 훗날 그 소유에 대해 어떠한 시시비비도 없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사실을 잘 깨달아서 당장 보기에 좋은 어떠한 제안이 들어왔다 하여 그것을 무조건 취하는 모습은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더욱이 상대가 진리로 변화된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의 유익을 좇아 언제든지 말과 행동이 변할 수가 있기 때문에 항상 진리로 분별해야 하는 것이지요.
또한 자신이 수고하고 힘쓴 것 이상을 받으려는 욕심의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항상 정당한 대가만을 바라야 하는 것이며 그에서 지나친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삼가하고 거절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지요. 잠 22:1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는 말씀처럼 재물보다는 명예를, 은이나 금보다는 은총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축복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꼭 마음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지혜와 방법으로 축복을 받는 데에는 어차피 육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고 또 그것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야 그것이 영원할 수 있는 것이며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하늘에도 축복으로 쌓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들으신 말씀이 지혜가 되고 능력이 되셔서 항상 정도를 좇으며 선의 길을 택할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잠 5:21에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는 말씀처럼 모든 인생의 길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선의 길, 의인의 길을 좇는 여러분의 앞길을 항상 지키시고 보장하시며 축복으로 인도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57:1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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