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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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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2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14:17-24 등록일자 2004.01.16
서 론 /

성경상에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공식적으로 제사장이라는 직분이 등장하게 되는 것은 출애굽 사건 이후입니다. 출 28:1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말씀하고 있지요. 레위 지파에서 태어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인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이 제사장으로 세움받은 최초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제사장이 세워지기 전이라 해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는 아담이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 온 이후부터 줄곧 있어 왔지요.
창 4장에 보면 아담의 아들들이 제물을 취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부모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이미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것에 대해 배웠고 제사에 담긴 의미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요. 그 이후로도 노아와 아브람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삭이나 야곱 역시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장면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구요. 그러므로 제사장의 직분이 정식으로 생겨나기 전에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는 계속해서 있었고 노아나 아브람처럼 제사장이라 불리지는 않더라도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시간부터 설명 드리는 멜기세덱에게는 정식으로 제사장의 직분이 생겨나기 이전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표현이 쓰여졌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당시에 다른 이방 민족들 중에는 그들이 섬기는 이방신을 위한 제사장이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사장의 직분은 모세의 형 아론이 처음이었음에도 멜기세덱은 제사장이라는 직분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그리고 멜기세덱에 대해 기록한 히브리서의 저자는 히 7:3에서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했고, 히 6:20에는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하여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되신 제사장이라 표현하고 있지요.
즉 예수님과 멜기세덱을 동등한 반열에 놓고 예수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조건에 합당한 분은 과연 누구일까요? 오직 한 분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한 분이신 성령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 시간 성령님에 대해 밝히 깨우치시기 바랍니다.

본 론 /

1. 멜기세덱으로 오신 성령님

갈 4:6에 보면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여성령을 그 아들의 영 즉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의 영이라고 하니까 혹시 주님의 영이 아닙니까? 하고 물으실 분이 계실 수도 있지만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신 영은 여러분도 잘 아시듯이 바로 성령님이시지요.
고전 3:16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바로 우리 마음 안에 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데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가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성령님을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라 표현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생각하고 있지요. 그러나 성경에는 꼭 주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히 1:6에는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하여 주님을 맏아들(firstborn)로 표현하고 있지요. 또 욥 38:7에는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하여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 복수로 나온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혹여라도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히 1:5에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하여 하나님께서 천사를 아들이라 부르지 않으심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아들들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우리 주님 외에 또 다른 아들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천사가 아님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군이겠습니까? 물론 천군은 더더구나 아니지요. 따라서 욥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아들들은 맏아들이신 주님과 또 한 분성령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성령님도 주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의 지위를 가지고 계신 것이지요.

2. 독생자 예수님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령님

그렇다면 성경에는 왜 예수님에 대해서 독생자 또는 독생하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일까요? 마치 아들이 한 분이신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경에 예수님에 대해 이처럼 독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말씀들을 살펴보면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구세주의 자격으로 오신 것에 대해 말씀하실 때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인간 경작의 섭리 가운데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자 사람의 몸을 입고 구세주로 이 땅에 나신 예수님을 수식하는 표현으로서 독생자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요 3:16 말씀 하나만 살펴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지요. 이 말씀은 행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는 말씀과 짝을 이루어 우리가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임을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 3:16 말씀에서는 이 땅에 구세주의 자격으로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직 한 분뿐이시라는 의미에서 독생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성경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 이처럼 독생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예수님 이후로도 여러 사람이 나타나 "내가 구세주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성경은 이미 구세주는 오직 한 분예수님뿐이심을 분명히 기록해 놓고 있지요.
그러니 예수님 이 외에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를 구세주라 말할 수 없는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결코 그러한 미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독생자라고 표현한 것이 하늘에서도 아들이 오직 예수님 한 분만 계시다는 의미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 또한 주님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신 분으로서 주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에 계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님에 대해 표현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바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분임을 분명히 해 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성령님은 주님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독립된 개체로서의 실체를 가지고 계신데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어떤 형상의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성령님은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 역시 하나의 개체로서 성령의 본체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그 모습이 얼마든지 변형되실 수가 있지요. 앞으로 여러분이 아버지 하나님의 근본의 차원인 4차원에 대해 배우게 되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품으시는 대로 그 모습이 변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텐데 성령님께서는 사역의 특성상 사람들 가운데 여러 가지 모습으로 역사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대부분의 경우 인자의 모습으로 보여지시기 때문에 영안이 열린 사람들이 주님을 뵈올 때는 사람과 같은 형상으로 보게 됩니다. 반면에 성령님께서는 본체의 형상만을 입고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비둘기의 형상으로, 때로는 불이나 바람의 형상으로도 역사하시지요. 본문의 멜기세덱처럼 성령님께서 인자의 형상으로 사역하신 경우도 있지만 성령님의 사역은 워낙 다양하고 폭넓기 때문에 대부분 영의 분리를 통한 분체(分體)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사역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님께서 분체(分體)로서 사역하실 때는 각각의 사역에 맞게 형상을 바꾸시기도 하며 때로는 특정한 형상 없이 역사하시기도 하시지요.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많은 사역을 하셨음에도 인자의 형상 즉 우리와 같은 사람의 형상으로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설령 성령님께서 인자의 형상으로 나타나셔도 당연히 주님이나 선지자로 생각하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니 지금까지 성령님의 존재에 대해 많은 부분이 가리워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 아브람과 성령님과의 만남

지금까지의 설명을 듣고 나니 성령님에 대해 좀 깨달아지시는지요? 오늘 본문에 멜기세덱과 아브람과의 만남은 바로 이러한 성령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를 받으시고 이 땅에 친히 내려와 장차 믿음의 조상이 될 아브람을 만나 주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훗날 아브라함이 체험하게 되는 또 한 번의 신비한 사건을 통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멜기세덱의 존재에 대해 좀더 분명히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창 18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만남이지요.
창 18:1-4에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중에 보면 사람 셋이라 하였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용을 읽게 되면 여기서 사람 셋이라 한 것은 바로 인자의 형상으로 오신 하나님과 역시 사람의 형상을 한 두 천사임을 알 수 있지요.
22절에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거하는 곳에 남아 그와 대화를 하시는 장면이 나오고 다른 두 사람 즉 두 천사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소돔 성을 살피러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창 19:1에는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하여 사람의 형상을 한 셋 중에 두 천사만이 소돔 성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창 18장의 내용까지 미리 앞서서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창 18장에 나타나신 하나님과 오늘 본문에 나오는 멜기세덱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읽어 드린 창 18:1-4에 보면 아브라함은 세 사람 즉 인자의 형상을 하신 하나님과 사람의 형상을 한 두 천사를 보자마자 자신을 지극히 낮추며 너무나도 공손하게 맞이합니다. 물론 아무리 인자의 형상을 하셨다 하지만 세 분의형상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고 그 형상에서 발하는 영적인 빛이나 기운으로 인해 하나님과 교통하던 아브라함은 그분들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고 공손히 맞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지극 정성으로 맞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중에 한 분 즉 인자의 형상을 하신 하나님을 알아볼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서 뵈었을까요? 아브람은 이미 창 14장에 기록된 대로 멜기세덱으로 나타나신 성령님을 뵈었던 것입니다. 또한 창 18장에 친히 이 땅에 내려와 아브라함과 대면하여 말씀하신 분도 성령님 즉 성령 하나님이셨지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 성령님을 보면 죽는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대면하여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보내서 사역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예수님을, 어떤 때는 성령님을 보내서 사역하심으로 그 앞에 설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모세와 같은 경우도 뒷모습을 보고 옷자락을 볼 수는 있었으나 친히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볼 수는 없었지요. 아브람은 이미 인자의 형상을 하신 성령님을 뵈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을 단번에 알아보고 이처럼 그 앞에 몸을 땅에 굽혀 극진히 영접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같은 성령 하나님을 뵈었다 해도 오늘 본문에서 멜기세덱이라는 모습으로 뵌 것과 창 18장에서 뵌 것과는 상황이 달랐지요. 오늘 본문의 상황은 아브람이 적과의 전쟁을 위해 함께했던 사람들과 돌아오는 도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다시 말해 살렘 왕 멜기세덱이 아브람 앞에 나타나셨을 때에 아브람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지요. 그러나 이때 아브람과 조카 롯 이외에는 살렘 왕 멜기세덱 즉 성령님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던 장면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지요.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고 있던 사울은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둘러 비추며 그 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면서 주님과 대화를 하는데 사울이 이러한 영적인 체험을 하고 있는 동안 함께했던 다른 사람들은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행 9:7에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했지요.
오늘 본문의 상황도 이와 같아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던 아브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단을 쌓아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있었는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신 멜기세덱이 나타나신 것이지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단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있는 아브람의 모습만 보였지만 아브람은 성령님과 깊은 영적인 교통을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때 아브람이 성령님만 뵌 것은 아니지요.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한 분이신 성령님이 오셨으니 그를 호위하며 수종드는 천군과 천사는 또 얼마나 많이 내려왔겠습니까? 영안이 열려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아브람에게는 그의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너무나도 황홀하고 벅찬 감동의 순간이었지요. 자신에게 친히 나타나신 하나님을 뵈오며 믿음의 조상으로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는 또 한 번의 축복의 계기를 맞았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기 전에 이렇게 만남의 역사를 통해서 믿음과 확신을 심어 주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의의 왕, 평강의 왕 멜기세덱

멜기세덱이라는 단어에는 육적으로 나의 왕은 세덱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에 담긴 영적인 의미는 나눈 자 중에 하나라는 뜻입니다. 바로 태초에 홀로 계시던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의 큰 섭리와 계획 가운데 분리해 내신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두 분 중에 한 분이 되는 것이지요.
흔히 구약시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시며 인도해 가시던 시대로 알고 있지만 그렇다 해서 구약시대 동안 주님이나 성령님께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고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특히 성령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성신으로서 활발히 사역하시며 아버지 하나님의 사역을 도우셨지요. 그 중에 한 가지 사역이 바로 오늘 본문에 멜기세덱의 모습으로 나타나 아브람과 교통하시며 그를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히 7:2에는 멜기세덱에 대해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하여 그 이름의 의미를 의의 왕과 평강의 왕이라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의의 왕, 평강의 왕이라 칭함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면 이때부터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죄가 무엇이고 의가 무엇이며 심판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깨닫도록 인도해 가십니다. 진리와 비진리, 의와 불의를 구분하며 죄와 악이 무엇인지를 분별함으로 의와 선 가운데 들어올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지요.
또한 고전 2:10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는 말씀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성령님께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가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전한 의 가운데로 나오도록 역사해 가시는 것이 성령님의 사역이시지요. 이것이 바로 의의 왕이라 칭함받는 이유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변화가 바로 마음의 평안입니다. 죄인으로 죽어 영영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던 사람이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갈 수 있게 된 증표가 바로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마음에 성령을 받게 되면 천국에 이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정을 받게 되니 자연히 마음에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참된 평안은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서 누리게 되지만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릴 수 있으므로 성령님을 평강의 왕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러한 멜기세덱에게 자신이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드림으로 멜기세덱을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이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인정해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십일조가 아직 율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이미 마음에 주관을 받아 하나님 앞에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더 큰 축복, 곧 믿음의 조상으로 온전히 세워지는 축복을 주시고자 그 마음을 주관해 주셨던 것입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의 씨에 대한 약속과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 말씀하신 가나안 땅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결론/

아브람이 멜기세덱을 만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쌓아 온 믿음의 의가 인정을 받아 한 단계 더 승화되는 시점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롬 4:2-3에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말씀하고 있지요.
이처럼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의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행함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율법에 따른 행위만으로 구원을 받았던 구약시대에 아브람은 이미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소유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해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 행한 행위는 단지 육적인 행위 차원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행함으로도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구약 시대에만 믿음의 조상이 아니요 성령 시대에도 여전히 믿음의 조상으로서 모든 믿는 자에게 믿음의 표상이 될 수 있는 것이구요.
그렇다 해서 아브람이 멜기세덱을 만났던 시점에 아브람의 믿음의 의가 온전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의를 인정하시고 한 단계 더 승화된 의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사랑하는 아들 중에 한 분을 보내어 아브람을 축복케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이러한 축복의 계기를 통해 더욱 신속히 믿음의 조상으로서 준비되어 나감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아 나올 수가 있었지요.
아브람처럼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해 가고 영으로 들어오는 것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한 단계를 뚫어 들어가면 다음 단계를 향해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힘과 은혜를 주십니다. 아브람에게 멜기세덱을 보내심으로 그의 의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음을 인정해 주셨던 것처럼 어떤 축복이나 은혜의 체험을 통해 영으로 한 단계 뚫어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신다는말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를 한 단계 뚫어 들어갈 때도 어느 순간 예전과 달라진 자신의 기도를 스스로가 느끼면서 내가 한 단계 더 기도의 능력을 받았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요. 만약 이러한 체험들이 없다면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스스로 느끼거나 점검하기가 어렵겠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의 신앙생활이 바르게 가고 있는가? 내가 영으로 잘 성장해 가고 있는가? 늘 자신에게서 맺혀지는 열매를 통해 분별하심으로 더욱 신속히 영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아브람은 늘 축복의 열매들이 나타나 하나님 안에서 잘 성장해 가고 있음을 스스로가 느끼며 달려갈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증거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도 늘 넘쳐나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45:3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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