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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니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빌3:12-14 등록일자 2004.06.06
오늘은 주교사 헌신예배를 맞이하여 영적인 주교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교사의 중요성

고린도전서 12:28에 보면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교사라는 직분을 귀히 여기시는 이유는 성도들이 교회에 출석한다 해도 가르침이 없으면 믿음이 성장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롬 10:17).
교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밭에 심겨진 씨앗에 물을 주고 가꾸는 것과 같습니다. 때를 좇아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해 주어야 싹이 자라나 꽃을 피우며 열매 맺듯이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깨우칠 수 있고 믿음이 자라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기까지 버려나갔던 사도 바울의 진심어린 고백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은 그의 믿음이나 하늘에 대한 소망,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적어서가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결코 스스로는 온전하다 여기지 않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더 온전하길 원하며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깊이 있는 마음을 더 닮아 갈까' 하며 늘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주교사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구보다도 더 온전하고 더 반듯하며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넘쳐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항상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더욱 온전함에 이르고자 노력해야 하지요. 믿음도 육적인 지식으로 쌓는 것이 아니요, 정녕 마음에서 아버지를 심히 사랑하므로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아이들과 학생들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참된 소망을 심어 줄 수 있고 영적인 사랑으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녕 영혼들을 가르치는 주교사라면 지식적으로 가르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행하며 이룬 것을 알려 주어야 참으로 생명이 되는 가르침이 되지요. 자신이 먼저 이룬 것, 자신도 행하고 있음으로 능력이 되어진 것을 가르치고 전할 때 비로소 영적인 가르침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2. 영적인 가르침을 이루는 주교사가 되려면

1)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온전치 못한 것을 발견하여 버려나가야 합니다
교사라면 가르치는 입장에 있으니 지식적으로는 많이 알고 있겠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정녕 알고 있는 영의 지식들을 마음에 일구어서 영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에 늘 자신을 비추어서 부족한 점을 깨달아 아직 온전히 이루지 못한 점은 무엇인지 진실하게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이 이룬 것으로 인해 스스로 후한 점수를 줌으로 더 이상 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을 때 부딪히는 소리가 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침으로 변론하지 않는다면 겉으로는 화평을 이룬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의견에 따라주지 않는 사람에 대해 불편해하며 그냥 속으로 삭혀 버린다면 온전한 화평을 이루려 하거나 더 성결되려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영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영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먼저는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마음 상태가 합당치 않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경우 '내 생각대로 좇아주지 않으면 미워하고 멀리하는 마음'이 명백한 비진리의 마음이라는 것, 지금 그 마음이 바로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드러내어 다투고 변론하지 않고 잘 참았다. 이것만도 잘한 일이다.' 하고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줘서도 안 됩니다. 발견된 비진리의 마음을 결코 작은 것으로 여기지 말고 온전히 벗어 버리기 위해 변함없이 불같이 기도하고 금식도 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리하여 비진리의 마음을 하나 하나 버려간다면 그만큼 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으로 들어가는 만큼 아버지 앞에 담대함이 생기니 가르침에 있어서도 영적인 권세가 따르게 되지요.
예를 들어 학생들 사이에 작은 갈등이 생겨서 그중에 머리된 학생이 교사인 여러분에게 상담을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기 생각대로 좇아주지 않으면 미워하고 멀리하는 마음은 비진리의 마음입니다. 더 큰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품어 보세요."라고 대답해 줄 수 있지요. 만일 이러한 비진리의 마음을 빼내 버린 교사가 상담해 준다면 그렇지 않은 교사의 말보다 영적인 권세가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에 영으로 일구어서 나오는 말은 거짓이 아닌 진실이므로 상대에게 영적으로 빛과 같이 비춰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머리에 지식으로만 쌓인 상태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의 지식 전달에 불과할 뿐입니다. 물론 그 말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일 때는 받는 편에서도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율법, 곧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치므로 그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므로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하신 것이지요(마 23:3). 하지만 말씀이 마음에 이루어져 행함도 온전한 사람이 있다면 능히 본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학생들은 아직 어리므로 가르치는 교사의 모습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사의 말과 행함, 그리고 교사의 신앙을 보고 배우며 본받기가 쉬운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16에 사도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겸손함이 부족하거나 겸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을 철저히 복종시켜 순종하였고, 자신의 모든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여 진리로 채워 나갔기 때문입니다(고전 15:31).

2) 모든 것을 하나님께 부탁드리며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도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 않는다면 내 안에 있는 작은 감정 하나 버리기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여 '내가 이마만큼의 일꾼이요, 또한 내가 이만큼 기도하고 말씀도 알며, 믿음이 있으니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이루면 되겠지' 한다면 이는 사람의 생각으로 하는 것이지 아버지 하나님을 의뢰한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정녕 아버지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매 순간 순간마다 아버지 앞에 내 생각과 의지를 온전히 비운 채로 나아갑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그 사람을 주장하시고 인도해 나가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나 사소한 일 하나라도 '이것은 내 생각대로 해도 되겠지' 할 것이 아니라 매사의 모든 일을 아버지 앞에 의뢰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이나 주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하나님께 의뢰하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이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너맘때 이런 진리의 말씀을 들었다면 금세 변화되고 믿음을 가질 텐데, 너는 왜 그리하지 못하느냐?' 하는 말로 오히려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지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주교사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 주는 역할을 감당하면 됩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만일 믿음이 어린 사람들에게 강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가르친다면 오히려 반발심이 생길 수도 있고 신앙생활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이 어린 학생이라 하여 내 뜻대로 이끌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한 영혼, 한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각 사람에게 맞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알려 주실 수도 있고, 여러분의 사랑의 간구대로 그 영혼들을 친히 간섭해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사명을 변개함 없이 잘 감당해야 합니다
충만할 때는 주교사의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충만치 아니하면 사명을 등한시 하고 아예 사명을 놓아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처럼 변개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한 번 주신 사명을 항상 기쁨과 감사함으로 감당하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게 될 때까지 열심을 내어 감당하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요.
오히려 자신이 충만치 못할 때 사명이 있음으로 인해 다시 충만함을 회복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주일날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한번이라도 더 말씀을 볼 것이고, 기도하며 그 말씀 속에서 은혜를 받을 수도 있겠지요. 또한 학생들의 순수한 신앙을 통해 자신이 은혜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혹여 자신이 충만치 못하다 하여 사명을 등한시 할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성실하게 사명을 감당하는 영적인 주교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1-15 오후 10:00:3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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