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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1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12-16 등록일자 2010.11.28
성경은 성령의 음성 또는 하나님 말씀이나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복 받은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그중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는 ‘자기’가 매우 강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께 순종의 훈련을 받은 결과 죽기까지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베드로가 변화되는 과정을 살펴볼 때 은혜와 소망이 더해지고 도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생각의 문을 열고 순종한 베드로

누가복음 5장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뒤로하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지요.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양의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를 본 베드로는 예수님 무릎 아래 엎드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드디어 예수님을 향해 마음 문을 활짝 연 것이지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까지 하나님 말씀을 많이 듣고 배우셨습니다. 기사와 표적을 수도 없이 보았고 직접 체험도 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도 확실히 변했는지요? 아니면 아직도 주님을 믿기 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마음에 영접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변화가 따릅니다. 먼저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기 위해 노력합니다. 베드로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인정할 때 중심의 회개가 나오지요. 중심으로 회개한 다음에는 그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 생명을 빚졌으니 생명 다해 열심히 충성해야 합니다.

로마서 6장 12~13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말씀하신 대로 살아야 하지요.

그런데 혹 아직도 죄를 범하며 육의 삶에 얽매여 사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서 변화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면 ‘나에게 과연 참 믿음이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육신의 생각이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영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지요. 또한 역으로 순종하고자 할 때 영적인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2. 여러 차례 순종 테스트를 거친 베드로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하루는 성전 세를 걷는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아와서 예수님과 베드로의 성전 세를 요구했습니다. 이 상황을 아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금 낼 돈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가장 먼저 잡히는 고기의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라고 일러 주셨지요.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명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베드로의 입장에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한강에 가서 낚시를 던지면 물고기가 잡힐 것이고, 그 물고기의 입을 열면 동전이 나올 것이다. 그걸 가져오라.”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그러면 우선 차를 타든지 지하철을 타든지 한강으로 가시겠지요? 한강에 가서는 낚시를 던지고 물고기가 잡힐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또는 며칠을 기다려야 할지 전혀 모릅니다. 이때 ‘정말 잡힐까? 언제쯤 잡힐까?’ 이런저런 육신의 생각이 틈타면 기다리다가 포기해 버릴 수도 있지요. 여러분은 얼마나 자신이 있으십니까? 베드로는 이 시험을 쉽게 통과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한 세겔을 얻었지요.

저는 단돈 7천 원으로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지금까지 순종의 시험을 여러 차례 치렀습니다. 예를 들어 더 넓은 성전을 찾아 이전할 때도 재정이 넉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른 교회를 구제하고 세계 선교를 할 때도, 방송 선교를 시작할 때도 넉넉해서 순종한 적은 없었지요.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답이 명쾌하면 차라리 나을 것 같은데 오직 기도하며 응답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지요. 해외 집회를 치를 때는 집회할 나라로 출국할 때가 다 되었는데도 필요한 재정이 채워지지 않다가 출국 직전에 응답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순종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기적적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가나안성전 건축 재정도 바로 이런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주신 열매이지요.

성경을 보면 놀랍게도 예수님은 베드로가 “세금을 내라 하는데 어찌할까요?” 하고 상황을 설명하기 전에 이미 이 일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여쭈기도 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바로 답을 주셨지요. 이런 것처럼 성령님도 여러분의 형편을 훤히 다 아십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그 길을 잘 아시지요. 그러므로 여러분도 모든 필요를 성령께 구하고 오직 주관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범사에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4장 22~33절에 보면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를 향해 오십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담대한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고 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오라” 하셨고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걷기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바람에 물결이 출렁이는 것을 보고 순간 ‘빠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곧 육신의 생각이 틈탔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오라” 하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몸이 물속에 빠져 들어갔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잡아 주셨고,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아무리 순종하고 싶어도 육신의 생각이 남아 있으면 온전하게 순종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지요. 종종 하나님 나라에 힘이 되겠다며 창업하는 성도들이 계십니다. 당회장님은 성령의 주관을 잘 받으시니 말씀해 주시는 대로 순종하겠다면서 “어떤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하고 질문해 오지요. 처음에 품은 뜻은 좋지만 중간에 일이 생각대로 안 되거나 냉혹한 현실을 직면하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연 이 길이 맞을까?’ 의심이 틈타서 다른 분야로 진로를 바꾸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 방법을 동원하다가 불법을 행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싶어도 육신의 생각을 온전히 깨뜨리지 않으면 결코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변화되는 과정에서 실수도 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은 항상 예수님 말씀에 순종할 마음이었지요. 그런데 육신의 생각이 있는 한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3. 육신의 생각과 순종과의 관계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물으십니다. 제자들의 답을 들으신 뒤에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질문하셨지요. 이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고 흡족한 답을 드렸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시고 큰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드로는 예수님께 엄한 책망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이즈음부터 제자들에게 십자가 고난과 죽음, 부활에 대해 언급하셨지요.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했지요.

이에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고 베드로를 엄하게 책망하십니다. 사랑하는 스승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죽으셔야 한다니, 수제자 베드로의 심정이 얼마나 불붙는 듯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인간적인 도의에서 나온 ‘의’였습니다. 육적으로는 스승을 생각하는 선한 생각일지 모르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막아서는 육신의 생각일 뿐이었지요.

저도 지금까지 교회 일꾼들을 지켜보면서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 일꾼들 중에는 그래도 세상에서 성실하고 정직하다고 인정받은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 중 많은 분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면 세상적인 의와 틀, 자기적인 의와 틀을 깨뜨리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보았지요. 교회 일꾼이 되면 대부분 교회와 목자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동분서주합니다. 그러나 자기적인 의와 틀 때문에, 정작 하나님 뜻이나 목자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므로 의와 틀을 깨뜨려서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는 일꾼이 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운명하시는 그 순간까지 제자들을 마음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진한 사랑으로 베드로도 결국 변화되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주님과 하나 되어 많은 영혼을 구원했지요. 단번의 설교로 수천 명도 회개시켰습니다. 사람들이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라고 환자들을 데려올 만큼 놀라운 권능도 나타냈지요. 이런 베드로였지만 주님 앞에 갈 때까지는 더 온전해지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권능의 사도로 쓰실 만큼 성결 되었지만 아직 육의 흔적이란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두 제자에게 한 가지 일을 지시하십니다. 누가복음 19장 30절에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하셨지요. 이때 예수님은 보내신 제자 둘을 과연 어떤 기준에 따라 선정하셨을까요? 첫째 기준은 단연 순종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자들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예수님 말씀을 의심하거나 자기 생각대로 행하면 일의 열매가 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영계의 법칙 곧 공의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순종할 만한 제자들을 택해서 보내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교대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주로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보내셨지요.

지금 세계 곳곳에서 만민에게 세미나와 집회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요. 주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낼꼬?’ 하시는 이때에 바로 여러분이 자원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조건 자원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먼저는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오직 ‘예! 아멘!’ 순종하는 일꾼이 되어야 하지요. 아직 마음의 성결 분야가 좀 미흡해도 순종해 나가면 육신의 생각이 더 빨리 깨집니다.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는 일꾼으로 더 신속하게 변화될 수 있지요.

여러분이 성령과 함께하는 일꾼이 되시면 이 마지막 때 구원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성결의 복음과 손수건에 담긴 권능으로 더 많은 영혼을 추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베드로처럼 육신의 생각을 다 깨뜨리고 주님과 성령과 하나 된 일꾼으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11-29 오후 10:45:35 Posted
2010-12-04 오후 7:49:1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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